전주 토박이들에게 최고의 피서지는 한벽당 앞 전주천이었다. 아름다운 풍광과 깨끗한 물이 피서객들을 불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한벽당은 역사가 됐다. 전주 한옥마을이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으나 정작 한옥마을의 산증인인 한벽당은 뒷전으로 밀렸다. 관광객들은 물론, 전주시민들조차도 한벽당은 별 존재감이 없다.
엊그제 독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문 기사에 ‘한벽루’라고 했는데, ‘한벽당’이 옳지 않느냐는 거다. 익산에서 초중고를 다닌 독자는 여름이면 한벽당 아래 전주천에서 바지를 걷고 물고기를 더듬었던 추억과, 한벽당 마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그리 좋을 수 없다는 감회를 곁들여서다. 전주시에서도 한벽루와 한벽당을 혼용하고 있어 헷갈린다는 이야기도 했다. 전주의 랜드마크격인 한벽당을 놓고 이름부터 정확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줬다.
독자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뒤졌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과연 각종 기사와 웹문서에는 한벽당과 한벽루가 혼용되고 있었다. 전주시 관광홍보 사이트에는 ‘한벽당’으로 정리됐다. 한벽당에 관해 연구논문( ‘통시적 관점에서 본 한벽당’-한국조경학회지 2008년 2월)을 쓴 교수(노재현 우석대 조경학과)에게 답을 구했다. 결론은 ‘한벽루’도, ‘한벽당’도 될 수 있다고 했다. 격으로 따지면 ‘한벽당’이 높지만, 현재 남아 있는 형태상으로 보면 ‘루’에 가깝단다. ‘당’은 여러 건물이 있을 때 건물의 중심이 되는 곳이며, ‘루’는 멀리 넓게 볼 수 있는 다락구조의 집을 뜻하기 때문이다. 600년 전 건립 당시 최담 선생이 지은 이 누정을 후손들이 선생의 호를 따 ‘월당루’라고 했고, 현재의 한벽당으로 바뀐 과정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주자의 시 중 ‘벽옥한류’(碧玉寒流 라는 글귀에서 따왔거나 옛 지명에서 따왔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한벽정’이라는 기록도 있다.
그럼에도 독자(황호일)의 지적처럼 명칭의 일원화는 필요할 것 같다. 고산 윤선도, 다산 정약용, 초의 선사, 면암 최익현 등의 유명 인사들이 시와 중수기로 찬양하고, 명필가인 창암 이삼만의 일화가 전해지는 역사 깊은 곳이 하나의 이름조차 갖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아직 피서를 가지 못했다면 ‘한벽당’이 시원한 그늘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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