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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하나 되는 새만금] '군산·김제·부안' 전북 서해안 다질 새 문화코드는?

군산 옥구향교, 신라말 최치원이 글 읽던 자천대…백성사랑 키우고 미래 비전 세워 / 김제 금산사, 진표율사 12세에 출가·수행한 곳…미륵신앙, 지역민들 삶에 큰 힘돼 / 부안 반계서당, 조선실학자 유형원, 반계수록 써…전란 겪은 서민 위한 상생법 고민

▲ 새만금 방조제 전경.

조선 중기 민간에게 널리 퍼진 비결서인 〈정감록〉에 ‘퇴조 삼백리면 범씨 천년 왕국’이라는 설이 있다. 혹자는 새만금 방조제로 인해 퇴조 삼백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그렇다. 단군 이래 우리 기술로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만들어 간척사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새만금’은 새로 만들어진 만금(萬金) 평야라는 말이다. 1991년 첫 삽을 뜨고 난 후 방조제가 연결되기까지 20여 년이 걸렸다. 그 오랜 기다림만큼 전북도민들은 그 땅에서 만금(萬金)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지난 8월 17일 세계스카우트연맹은 ‘대한민국 새만금’을 제25회 세계잼버리대회 개최지로 확정했다. 새만금이 만들어지고, 이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대회라서 더욱 의미가 크다.

 

2023년에 개최될 세계잼버리 대회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예술, 공연, 체육 등 다양한 문화발전의 촉매제가 될 것이며 공항, 철도, 도로 등 새만금 개발 속도를 배가할 수 있는 전기가 될 것 같다.

 

세계잼버리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 전라북도는 치밀한 계획과 함께 인프라 구성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새만금(아리울: 새만금의 또 다른 이름)은 알다시피 군산, 김제, 부안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따로이지만 하나인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세 지역민들이 새롭게 도출해야 할 문화코드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로 여겨진다.

 

필자는 그 해결점을 전북 서부 해안지대라는 공동의 지정학적 위치가 갖고 있는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군산대 철학과 교수인 김성환은 그 해결점을 ‘새만금’ 하면 떠오를 수 있는 고유하고 일관된 문화적 컨셉을 구축해야 한다고 보았다. 예컨대 ‘안동’하면 연상되는 유교문화(퇴계, 도산서원, 하회마을 등)라든가. ‘부여’ 하면 떠오르는 백제문화, ‘보성’ 하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녹차문화와 같은 독특하고도 차별화된 문화코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새만금의 성격을 서민문화권으로 보았다. 탁 트인 들판이 펼쳐 있음으로 도성이 들어서지 못하는 지역, 그로 인해 권력의 중심지가 되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지배, 권력, 집중’ 등의 가치와 차원을 달리하는 ‘자유, 상생, 개방’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 문화, 정신적 열망이 성장한 곳으로 한다.

 

그것이 때로는 미륵불교와 선도적 이상향의 갈망으로 때로는 세상의 병폐를 치유하고자 하는 사상, 학문, 종교적 개혁의 추구로 혹은 세상을 뒤집어엎으려는 혁명의 불길로 타올랐다. 필자 또한 이 의견에 동감한다.

▲ 신라말 최치원이 글을 읽었다는 군산 옥구향교의 자천대

필자는 지역역사문화콘텐츠전문가로서 새만금 지역이 하나 되기 위한 코드와 콘텐츠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과정으로 추석 연휴 동안 자천대가 있는 군산의 옥구향교와 김제의 금산사 그리고 부안의 반계서당을 다녀왔다.

 

문화재 안에는 그 주인공이 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영향을 받아 정신세계가 형성된다. 새만금 지역 안에는 그 시대의 문화영웅이라고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는 주인공들이 있다.

 

신라말 사상가 최치원과 미륵신앙의 조승(組僧) 진표율사 그리고 조선 후기 실학의 비조(鼻組)인 유형원이다. 각각 다른 시대를 살다간 분들이지만 그들에게서는 사상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민초 즉 약한 자들을 위해 삶의 에너지를 집중한 자들이다. 또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강력한 꿈을 꾼 자들이다. 이들의 삶을 찾아서 답사하는 중에 새만금의 비전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을이다. 파란 하늘에 새털구름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옥구 들은 황금빛 나락으로 익어간다. 그 길을 지나 옥구향교에 이르면, 빨강 홍살문이 버티고 서 있다. 외삼문을 지나 명륜당 오른쪽 옆에 자천대가 있다. 자천대는 신라말 최치원이 어릴 적 글을 읽었다는 곳에 세워진 누각이다. 선연리 하제 바닷가에 있었다. 그 자리에 미군비행장이 들어오게 되면서 헐리게 될 위기에 처하자 옥구향교 경내로 옮겨놓았다.

 

군산에는 최치원을 추억할 수 있는 전설과 설화가 깃든 장소가 많다. 최치원이 출생하고 12살까지 성장한 곳이 군산이라는 설이 있다. 최치원이 누구인가? 6두품 출신이면서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빈공 자격으로 세계인과 겨루어 30인을 뽑는 진사과에 합격한 재원이었다. 그는 우리 고유사상인 풍류도 속에서 유.불.선의 원리가 들어있음을 주체적으로 찾아내고 통섭적인 생각으로 백성을 위한 일관 된 삶을 살았던 분이었다. 최치원과 관련된 문화재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백성 사랑과 폭넓은 미래 비전이다.

▲ 김제 금산사 일주문

김제 금산사로 향했다. 최치원보다 100여 년 먼저 살다간 스님인 진표율사가 출가해서 수행했던 곳이다. 10세 무렵 들에서 놀다 개구리를 잡아 나뭇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 놓고 잊어버린 뒤, 이듬해 봄에 다시 가보았더니 그 개구리들이 그때까지 살아서 울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사무치게 참회한 진표는 12세에 금산사로 출가를 한다.

 

부안 ‘부사의 방’에서 망신참법으로 수행을 하다가 깨달음이 없자 산 아래로 투신을 했는데 청색 옷을 입은 동자가 구해준다. 미륵보살로부터 교법을 받은 후 금산사로 내려와 미륵신앙을 민중의 신앙으로 정착시키기에 온 힘을 기울인다. 미륵신앙은 이 지역사람들의 삶의 힘이 됐다.

 

금산사 입구는 다른 절과는 다른 성문이 있었다. 후백제 말 견훤이 큰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 미륵전에 감금을 당했고 이때 싸움이 있었던 곳이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며 금산사를 뒤로하고 부안으로 향했다.

▲ 부안 반계정에서 바라본 우반동 전경.

부안으로 건너가 우반동 계곡에 이르렀다. 반계서당은 외 딴 곳에 있다. 그곳에서 칩거하며 연구와 후진 양성에 몰입을 했을 유형원을 생각해 보았다. 그가 앉아 있었을 마루에 앉아보기도 하고, 뒤 곁을 둘러보기도 하고 노릇하게 익어가는 아담한 들판을 쳐다보며 건너편 〈홍길동 전〉을 집필했다는 허균의 집터가 있는 곳도 바라보았다. 가을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무심한 세월을 말하는 듯했다.

 

유형원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힘들었던 조선 백성들을 생각했다. 권고받은 관직도 마다하고 우반동 계곡으로 들어왔다. 그는 매일 말을 타고 달리며 자신의 몸을 단련했고, 지역민들과 함께 부대끼는 가운데 조선의 백성들이 실질적으로 잘 살 방법이 무엇인지 연구하여, 그 생각을 〈반계수록〉에 고스란히 담아 놓는다. 그는 호남실학의 비조가 되었다. 그 뒤를 이어 여러 실학자가 그의 후학으로 자처했고, 정약용에 이르러 호남실학 즉 중농학파의 실학이 집대성된다.

답사하면서 새만금 지역에 관통하는 서민 중심의 생각과 미래를 위한 상생의 사상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보았다.

군산의 자천대, 김제의 금산사, 부안의 반계서당 그 문화재에 담긴 주인공들인 진표율사, 최치원, 유형원으로 이어지며 추구했던 그들의 사상이 새만금을 하나로 엮을 수 있는 끈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이글을 마친다.

문정현 ㈔아리울역사문화연구소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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