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7월 14일 파리의 무장한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앙시앵 레짐(절대왕정)’의 억압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파리 시민들이 일으킨 폭거의 시작이었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점거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곳에 보관된 무기와 탄약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바스티유 감옥은 애초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졌던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의 왕 샤를 5세(1364~1380)가 파리 동부 외곽과 오뗄상폴 궁전을 지키기 위해 축조한 요새다. ‘바스티유’란 이름도 ‘작은 요새’라는 뜻을 가진 ‘바스티드(bastide)’에서 비롯됐다. 높이 30미터에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조성한 24미터의 인공연못이 둘러싸여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바스티유를 감옥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루이 13세 때다. 바스티유는 많은 사람을 구금하지는 않았지만 정치범을 투옥시켜 절대왕정의 폭압과 탄압의 상징으로 여겨졌는데, 볼테르나 드니 디드로 등과 같은 당대의 저명한 철학자나 사상가들도 이곳에 투옥됐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바스티유 감옥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감옥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치범 수용소라고 알려진 이곳이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사용하던 가구를 들여놓거나 요리사를 고용해 즐겼으며 심지어는 시종을 따로 두고 부리기도 했다고 한다. 죄를 짓고 피신처로 활용하는 예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에도 수감자에 따라 온갖 특혜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부패가 횡행했던 모양이다. 어찌됐든 바스티유 감옥은 알려진 대로 전제군주의 억압을 당하는 정치범만을 수용하는 곳이 아니었던 셈인데 실제로 파리 시민들이 궐기하여 바스티유를 습격했을 때도 이곳에는 경제사범과 정신이상자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시민들의 분노가 더 뜨거워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은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프랑스 혁명을 이끌어내는 발판이 됐다.
교도소의 특혜 논란을 받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감 환경에 인권침해 논란이 부상했다. CNN이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세계 각국 고위급 인사의 법적 외교적 분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MH그룹의 박 전 대통령 인권침해 보고서 내용을 보도하면서다. 더럽고 차가운 감방에 불을 켜놓아 잠을 제대로 못자에게 하고, 만성질환과 영양 부족의 고통조차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법무부의 반박이 이어졌다. 6인실을 개조한 3평짜리 방에 평균 20도를 유지하고, 움직임만 볼 수 있는 낮은 조도에 충분한 진료와 식단 제공이 이뤄지고 있는 환경. 이쯤 되면 특혜와 인권침해, 그 경계와 기준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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