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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 문경근

▲ 문경근
덤의 사전적 의미는 제값 외에 조금 더 얹어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본디의 물건이나 일에 딸린 것으로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 덤이 사람 사이에도 존재하여 때로는 각박한 삶에 온기를 감돌게 한다.

 

나는 덤을 좋아한다. 우선 공짜라는 게 마음에 든다.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내가 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정 때문이다.

 

그런데 주는 이가 알아서 얹어주는 덤은 마음에 정이 얹혀 그 의미를 배가시키지만, 받는 이가 빼앗듯이 받은 덤이나 상술에 의한 덤은 변질된 덤이라 받고도 불쾌한 경우가 있다.

 

가을이면 들녘에서는 여문 곡식들을 거두어들이느라 바쁘다. 풍성한 수확 뿐만 아니라 기쁨도 따라 들어온다. 요즘에는 농기계가 척척 알아서 거두어주는데 예전에는 농부들의 발걸음은 멈칫거릴 새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가을 들녘이 떠오른다. 오직 손과 땀만으로 거두어야 했던 그 시절 어른들은 허리춤 한 번 추켜올릴 겨를이 없었다. 오죽하면 부엌에 있던 부지깽이도 뛰어나오는 때라고 했을까. 아직도 그 시절 농부들의 등짐 행렬이 눈에 선하다.

 

마지막 볏단이 마당에 들어올 무렵이면 저녁상을 챙기는 어머니의 손길도 빨라졌다. 하루 일을 마친 농부의 밥상에 놓일 밥그릇을 채우는 과정은 작은 의식처럼 보였다. 밥을 꽉꽉 눌러 담는 것도 모자라 덤을 얹고 또 얹었다. 그 위에 정성이라는 덤까지 한 겹 더 얹음으로써 완성된 것이 고봉밥이었다. 정량보다 넘치게 담아 올린 덤은 마음의 증표였다.

 

덤 위에 주는 사람의 마음이 실리는데 크기나 양의 많고 적음이 무슨 상관이랴.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고봉밥의 덤은 내가 겪어온 덤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일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덤을 만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냥 얻어걸린 작은 부산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덤이 내 마음속까지 이르러 따뜻한 여운으로 남는다면 그것은 영양 만점의 덤일 될 것이다.

 

내가 수필을 쓰기 시작하였던 과정도 그렇다. 나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수필 쓰기를 제대로 배워보려는 목표로 평생교원원에서 수필 쓰기 과정을 차근차근 밟으면서 늦었지만, 반드시 해내리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다녔다.

 

그런데 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슬슬 덤이 붙기 시작했다. 강의 시작 전에 차를 마시며 나누는 일상 이야기들은 그날 수업의 워밍업 역할을 해 주어 교수님의 맛깔 나는 강의에 절로 빠져들게 된다. 작지만 소중한 칭찬 거리를 주고받다 보면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한 수강생이 나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50여 년 전의 학창시절을 반추해보기도 한다. 등단 축하 케이크를 한 입 먹으며 나도 언젠가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다짐도 해본다. 이것이 내가 얻은 소중한 덤들이었다. 애당초 덤까지 생각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덤은 점점 쌓여갔다. 때로는 이러다간 덤이 본체보다 더 커지지 않을까 하는 유쾌한 걱정도 했다.

 

요즘도 인정 많은 사람들 사이에는 덤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나에겐 좀 더딘 걸음으로 왔으면 하는 덤이 하나 있다.

 

김광림 시인은 ‘덤’이라는 시에서 나이 예순이면 살 만큼 살았다고 썼다. 나머지 인생은 덤이라는 것이다. 지금 덤으로 살고 있는 나는 그 덤이 얼마나 될까?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덤이 좀 더디게 오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문경근 수필가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했다.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해 전북문인협회와 정읍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필집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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