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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가히 광풍이다. ‘미투’를 빼놓고 대화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검찰에서 출발한 ‘미투’가 문화예술계, 대학가를 거쳐 정치권으로 넓혀가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미투운동과 함께 SNS의 ‘대나무숲’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나무숲’을 통해 성폭력 관련 글이 잇따라 게재되면서다. 전북지역 인권단체 활동가가 대학 강사 시절 여러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폭로도 페이스북 계정인 ‘전북대 대나무숲’에 오르면서 알려졌다.

 

‘대나무숲’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신라 경문왕 설화에서 이름이 나왔다. 세상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사실을 참을 길 없었던 두건 만드는 노인이 대나무 숲에서 토해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다. 2012년 한 출판사 직원이 익명으로 ‘출판사X’라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회사의 부조리를 공개하는 글을 올린 것이 그 출발이었다. 이 계정이 사라진 것을 아쉽게 여겨 만들어진 트위터 계정이 최초의 대나무 숲인 ‘출판사 옆 대나무 숲’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익명으로 억울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퍼지기 시작한 ‘대숲’은 대학가의 이슈 메이커로 작동하면서 유명해졌다. 도내 여러 대학들도 페이스북 계정의 대숲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에 따라서는 ‘대숲’기능의 다른 이름인 ‘대신 말해드립니다’ ‘대신 전해드립니다’등의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술자리 강요와 막걸리 세례, 선배 졸업반지 선물비 걷기, 단체기합에 성희롱 등의 학내 이슈들도 바로 이 계정들을 통해 공론화됐다.

 

물론, 대숲에서 사회적 발언이 주류는 아니다. 수강신청을 위해 교수의 성향과 실력을 묻고, 시험기간에는 출제 관련 이야기를 공유하는 등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는 게 보편적이다. 대학마다 학내 사이트가 많이 있기 때문에 대학 전체적으로 볼 때도 대숲은 변방이다. 그럼에도 대학의 공식 웹사이트가 아닌 대숲이 주목을 받는 것은 자유분방한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놓고 불만을 토로하기 힘든 대학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리라.

 

온라인상 대자보인 대숲의 팔로워와 트위터가 늘어나는 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음습한 단면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당나귀 귀를 마음껏 외칠 공간마저 없다면 우리가 어찌 임금님 귀를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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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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