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광리는 안덕면 서북쪽 해발 300미터에 위치한 산간마을이다. ‘무등이왓’이란 별칭으로 불리어온 이 마을은 300여 년 전, 관의 침탈을 피해 쫓겨 온 사람들이 모여 화전을 일구어 살아가면서 형성된 자연마을이다. 조선 말기, 관의 침탈에 항거하여 농민봉기를 일으킨 진원지로도 알려진 이 마을 사람들은 교육열이 높아 일제강점기에는 2년제 동광간이학교가 건립되기도 했다. 1946년에는 미군정의 공물수집에 항의하며 보리 공출을 반대했고, 이 때문에 군경의 탄압이 가해지면서 마을의 청장년들이 대부분 산으로 피신해야 했다. 그러자 군경의 토벌작전은 더 집요해져 추위와 굶주림, 무차별한 학살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큰 넓궤에 이르는 길은 현무암이 깔린 황량한 들판이었다. 그때만 해도 제주사람들조차 위치를 몰랐던 큰 넓궤는 입구가 얼마나 좁은지 사람 한 명이 낮게 엎드려 몸을 접어야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천연동굴인 큰 넓궤는 1948년 4.3항쟁 당시 마을 주민 120여명이 군경의 토벌을 피해 숨어 지냈던 곳이다. 나중에 토벌대에 발견되었으나 위기를 모면해 다시 한라산 영실 근처 볼래오름까지 피신했지만 주민 대부분이 붙잡혀 총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입구에서 멀어질수록 칠흑 같은 어둠으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긴 통로를 낮게 엎드려 따라 들어간 동굴의 끝에서 우리를 안내했던 4.3연구소 강태권 사무국장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지요. 이 칠흑 같은 어두움이 바로 제주도의 역사였습니다. 이제 옆 사람의 손을 잡아보세요.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손을 잡으면 어두움 속에서도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우리는 이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이 힘으로 역사의 어둠을 벗겨내야 합니다. 제주도 사람들도 손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 촛불이 켜졌다. 동굴 안은 꽤 넓었다. 서로를 의지해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냈을 120명 마을 주민들의 고통스러웠을 시간이 떠올랐다.
70주년을 맞은 제주 4.3항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제주 평화공원에서 열린 4.3사건 추념식에 참석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했다.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단언했다. 4.3사건의 진실이 우리 앞에 올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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