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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중국 공산당이 창당된 것은 1921년이다. 이미 중국의 혁명 지도자인 손문이 중국국민당을 창당해 개혁을 주도하고 있었지만 정치적 이념이 서로 다른 공산당과 국민당은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결속해 군벌에 대항하며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손문이 사망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손문의 뒤를 이은 장개석의 국민당이 공산당 탄압에 나서자 그에 대항하는 공산당의 항전이 시작됐다. 수적 양적으로 우세한 국민군의 공세가 1930년 이후 5년 가까운 동안 지속되면서 공산당은 패전의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세력은 위축되었으나 공산당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자신들이 수립한 강서 소비에트를 포기하면서도 항복하지 않고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한 후퇴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1934년 10월 15일 10만여 명의 홍군을 이끌고 나선 공산당의 역사적 대행군인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공산당이 퇴각의 통로를 서쪽으로 잡은 것은 국민당의 전력이 그나마 허약한 지역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국민당의 공세는 강력하고 집요했다. 2선으로 물러나있던 모택동이 다시 지도자가 되어 공산당을 이끌었지만 퇴로의 길은 고난과 희생의 과정이었다. 목적지인 서북지방의 섬서성까지의 대장정은 총길이만 1만 5000킬로미터, 열여덟 개의 산맥을 넘고 스물네 개의 강을 건너야만 하는 길. 걷는 것만으로도 고행인데 전투까지 치러야 했으니 그 희생의 정도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만하다.

강서성을 출발해 섬서성에 도착하기까지 10개월. 100킬로미터에 이르는 행렬이 쉬지 않고 하루 40킬로미터를 걸어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8천여 명이었다. 행군의 결과는 참담했으나 공산당은 전열을 정비하고 세력을 키워 국민당과의 내전은 물론, 항일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고난의 과정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중국본토를 통일시킬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다. 들여다보니 공산당 대장정의 완성은 중국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민선 7기, 새롭게 등장한 자치단체장의 비전과 정책이 관심을 모은다. 대부분이 주민들을 앞세우거나 함께 가는 길에 놓여있으니 더 반갑다. 앞으로 4년, 자치단체들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이 또한 주민들로부터 힘을 얻어야 완성할 수 있는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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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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