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28 02:41 (Su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오목대
일반기사

공동체 마을 우파 파블릭

농촌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오래전부터 귀농귀촌이 이어지고 있지만 농촌은 여전히 노령화의 고갯길에 놓여있는 현실로 보자면 청년들의 농촌행(?)은 우선 반갑다. 그 이면에는 자치단체들의 특별한 지원정책이 있다. 청년을 불러들이는 이들 다양한 프로젝트 중에는 눈길을 끄는 사업이 적지 않지만 아쉽게도 일시적으로 시행되는 것들이 많다. 청년들의 농촌행이 지속적인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일터다.

 

상황은 다르지만 눈여겨볼만한 사례가 있다. 도심 속 문화생태마을을 조성해 성공시킨 독일 서베를린의 공동체 마을 ‘우파 파블릭(Ufa Fabrik)’이다. 우파 파블릭은 노인들이 주를 이루던 지역에 젊은 세대들이 찾아오고, ‘떠나고 싶었던 마을’이 ‘살고 싶은 마을’로 변신한 곳이다.

 

학생운동이 활발하게 일었던 1960년대, 베를린에는 유럽권 젊은세대의 이주가 이어졌다. 영화 필름현상소가 있던 우파 파블릭에도 100여명의 젊은이들이 찾아왔다. 낡고 오래된 공간은 불편했지만 대부분의 이주자들은 떠나지 않고 정착했다. 이들이 지속적인 삶을 위해 시도했던 것은 일종의 동업자 조직인 ‘길드’다. 이들은 함께 살 수 있는 작은 공동체 마을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성공시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78년 우파파블릭 주민들이 만들어낸 축제는 그동안 이어온 실험의 결실이었다. 도심의 쓰레기와 쓰지 않는 물건들을 활용해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나누어 쓰는 이들의 삶의 방식은 새로웠다. 환경친화적 삶의 실현을 지향해온 이들은 세계 최초로 태양열목욕탕과 물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자연발효화장실을 개발해냈다.

 

1979년 6월, 공동체 마을 우파 파블릭은 공식적으로 출발했다. 카페와 레스토랑을 열고, 빵공장을 만들어 그룹별로 일하면서 수입을 늘렸다. 얼마되지 않아 우파 파블릭의 빵은 베를린 전역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늘어난 우파파블릭 주변에는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이주해오고 방문객들도 늘어났다. 덕분에 다양한 공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체육관, 카페, 빵집, 유기농식품점, 어린이서커스학교, 프리스쿨, 어린이동물농장이 들어서고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지역주민들과의 교류도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사업을 함께 일궈내게 된 이 일대는 베를린의 ‘살고 싶은 마을’이 되었다. 지속적인 삶을 위한 고민과 노력으로 얻은 공동체 마을의 결실이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은정 kimej@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