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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평양 풍경

2005년 여름이었다. 순안 공항에서 전세기를 타고 도착한 그곳, 평양이었다. 4일 동안 머문 숙소는 시내 중심가의 고려호텔. 평양역 옆에 위치해있어 기차 소리가 컸지만 오가는 기차가 빈번하지 않아서인지 밤은 더 적막했다. 호텔 방에 놓인 국제전화안내서에는 수백 개 나라가 소개되어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없었다.

주체사상탑에 올랐다. 주체사상탑은 김일성 주석 탄생 70주년을 기념해 평양시 대동강 변에 세운 혁명 기념탑이다. 고속 승강기로 올라간 전망대에서 보니 평양시내를 가로지르는 대동강 물은 넓고 낮게 흘렀으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길게 흐르는 대동강을 끼고 왼쪽에는 녹색 기와를 인 옥류관이, 그 위 오른쪽으로 벽화를 가진 조선혁명박물관이, 왼쪽으로는 만수대의사당이 있었다.

평양 거리는 깨끗했으나 활기가 없었다. 한복을 즐겨 입는 평양 여성들이나 시민들의 옷은 주로 어두운 단색이었다. ‘구호의 나라’(?)답게 평양 시내의 거리와 건물 곳곳에는 선전 선동 구호가 휘날렸는데 의외로 주체사상이나 남북공동선언의 실천을 강조하는 구호들이 많았다.

평양 시내는 아파트와 고층 건물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었다. 평양의 대부분 건물은 70년대와 80년대 초반 사이에 지어진 것들이라고 했다.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런닝차림의 노동자들이 건물에 붙어 닦고 수리하던 광경이 지금도 선하다.

차가 많지 않은 평양시내는 수신호로만으로도 교통 흐름이 원활했다.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을 기념하는 횃불행진을 위한 대대적인 준비로 평양 어딜 가나 광장이 있는 곳이면 학생들이 마스게임 연습을 하고 있었다.

옥류관 ‘평양랭면’을 맛보았다. 정기 휴일이었지만 특별히 문을 열었다는 그날, 덕분에 좀체 볼 수 없다는 풍경을 만났다. 널찍한 옥류관 마당이 온통 빨간 고추로 가득 찬 풍경이었다. 북한 냉면 맛은 담백하다. 조미료와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남한사람들에게는 그 맛이 ‘밍밍한’ 듯했지만 먹다보니 입맛이 났는지 ‘한 그릇 더’ 주문이 이어졌다. 누군가 긴 냉면 발을 가위로 나누어달라고 부탁했다. 접대원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냉면을 잘라먹으면 명이 짧아집니다. 그냥 드시라요.” 모두 큰 웃음을 터뜨렸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그곳, 평양 거리를 TV로 다시 만났다. 여전히 낯설지만 그 낯섦은 더 이상 예전의 그 것이 아니다. 낯선 것으로부터 익숙해지는 과정. 곧 통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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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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