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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사 문자

연초에 꼭 챙겼어야 할 조문을 놓쳤다. 뒤늦게 알게 된 지인의 부친상이었다. 그동안에도 몰라서 챙길 수 없었거나 알고도 일상이 바빠 지나쳐버린 경우가 더러 있었으나 이번에는 마음이 유독 쓰였다. 상주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청년이다. 친족도 적어 상가가 쓸쓸하더라는 말을 전해 들으니 더 착잡했다. 조의라도 전하려고 전화를 했다. 상을 당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슬픔이 깊겠다 싶어 조심스러웠다. 왜 알리지 않았느냐고 섭섭함도 전할 요량이었는데, 의외로 목소리가 밝았다. 긴 투병생활에 마지막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던 덕분인지 마음을 빨리 추스를 수 있었다고 했다. 알려야하나 많이 고민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동안 제대로 연락 없이 지내다가 불쑥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연락한다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단다. 오히려 “마음 쓰이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미안해했다.

경조사와 관련해 지난해부터 심심찮게 겪은 일이 있다. 고위직 공무원의 딸 결혼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오래전에 업무로 왕래가 있었지만 몇 년 동안 소식이 끊겼던 분이어서 결혼식 알림 문자가 다소 뜨악했다. 생각해보니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를 확인하지 않고 일괄 전송한 문자임이 분명했다.

어느 때는 부고를 알리는 문자도 똑같은 방식으로 전해졌다. 부고 문자를 받고서도 이 분이 누구였던가를 생각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온갖 광고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올 정도로 개인 정보가 유출되어 있으니 이런 저런 인연으로 알게 된 분들의 경조사를 알게 해주는 알림 문자가 꼭 나쁠 것은 없다.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상대방을 확인하지 않고 보낸 경조사 알림문자 중 다시 정중한 인사문자를 받게 되는 경우다. 그런 문자들은 대략 ‘공사다망하신 중에도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댁내에 경조사가 있을 때 꼭 연락주시라’는 내용이다. 이쯤 되면 혼란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조문을 가지도 않았는데 인사문자를 받으니 얼마나 마음이 무거워지겠는가. 처음 이런 문자를 받았을때는‘못가 뵈어 죄송하다’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문자를 보낼까 고민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경조사 알림 문자를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를 가리지 않고 보냈던 것처럼 답 인사문자도 그렇게 보낸다는 사실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또 있다. 이런 경조사 문자를 보내는 경우를 보면 십중팔구 고위공직자나 회사 임원의 경조사란 것이다.

경조사 문자까지도 광고가 되어버린 시대. 이 가벼운 삶의 문화가 안타깝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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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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