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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잔재 지명(地名)

고향의 마을 이름이 구암리다. 마을 뒷동산 아래에 거북모양의 큰 바위가 있었기에 구암(龜岩)마을로 불렸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구암(九岩)마을로 한자표기가 바뀌었다. 충북 진천에 있는 구산리도 산 모양이 거북을 닮았다고 해서 구산(龜山)이었지만 역시 거북 구(龜)가 아닌 아홉 구(九)로 개명됐다. 동네 어른들 얘기로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때문에 왜구가 패망했기에 우리 지명에서 거북 구(龜)를 못쓰게 했다고 한다.

거북 구(龜)뿐만 아니라 지명에 용(龍)이나 봉황(鳳凰)이 들어간 곳도 일제가 바꿨다. 대전 계족산의 원래 이름은 봉황산이었다. 장수 용계(龍鷄)마을도 고려 말기 왜구 토벌에 나선 이성계 장군이 깜박 잠이 들었다가 닭 울음소리에 깨어나 왜구를 무찔렀다 해서 그렇게 불렸지만 일제 강점기 때 닭 계(鷄) 대신 시내 계(溪)로 바꿨다.

1910년 대한민국 국권을 침탈한 일제는 1914년 3월부터 1917년까지 창지개명(創地改名)을 통해 우리 고유의 지명을 모조리 바꾸었다.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전국 3만4233개에 달하는 고유의 지명을 한자 표기로 고쳤다. 새터마을은 신기(新基)로, 큰 골은 대곡(大谷), 장터는 장기(場基), 대밭골은 죽전(竹田), 솔고개는 송현(松峴) 등으로 개칭했다. 또한 관청을 중심으로 방향을 뜻하는 동면·서면·남면·북면으로 지명을 정했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 때 바뀐 지명 가운데 아직도 30% 정도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987년부터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지명 정비사업을 추진했지만 지금까지 전국에서 60여 곳만이 이름을 되찾는 데 그쳤다. 이후 2006년 행정안전부에서 일제 잔재를 뿌리 뽑겠다며 지명 개정대상 31곳을 선정했지만 14곳만 고쳤다.

엊그제 전주 동산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일제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의 창업주 이와사키 야타로의 호를 딴 동산동 지명을 바꾸기 위한 첫 설명회를 가졌다. 동산동의 원래 이름은 쪽구름마을이었다. 전주시는 이달 말까지 명칭변경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뒤 지명 개명에 나설 계획이다. 군산 서수면도 악덕 일본인 농장주 가와사끼가 자신의 고향에 있는 신사를 옮겨와 세워놓고 서수(瑞穗)라 지은 이름이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이 담겨 있는 우리 고유의 지명을 반드시 되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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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kwonst@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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