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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일본에서 확인된 가야의 ‘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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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식 장수군수

‘일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이들이 “가깝고도 먼 나라”를 떠올린다. 지리적으로는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이지만, 일제강점기의 상처는 여전히 복합적인 감정을 남겨두고 있다.

필자는 최근 장수군 고대사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가야 역사 자원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일본 도쿄를 찾았다. 거대한 도시의 빠른 흐름 속에서 장수군과 가야의 흔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답사를 이어갔다.

답사의 마지막 날 찾은 곳은 일본을 대표하는 국립도쿄박물관이었다. 1872년 설립된 이 박물관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박물관으로, 여러 전시동 가운데 헤이세이관에는 아시아의 고고학 유물이 폭넓게 전시되어 있다. 바로 이곳에서 뜻밖의 장면을 마주했다. 전시된 고대 유물 중 일부가 장수군 삼봉리 고분군을 비롯한 우리 지역 가야계 유물과 매우 닮아 있었던 것이다. 안내문에는 “백제와 가야의 영향을 받은 고대 일본 사회의 물질문화”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일본의 대표 국립기관이 이처럼 ‘가야의 영향’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더 큰 충격은 이어졌다. 전시관 한편에서 발견한 ‘5~6세기 한반도 남부와 일본 규슈 지역의 교류 관계’ 지도에서, ‘가야(加耶)’의 중심 위치가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일원에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도에는 부안 죽막동유적(‘죽교동’)과 고령·김해 등 가야 문화권의 주요 지점이 별도로 표기되어 있었고, 그 중심점이 장수군으로 찍혀 있었다. 동행한 일행 모두가 한 목소리로 “유레카!”를 외칠 만큼 뜻밖의 발견이었다.

왜 일본 국립박물관의 지도에서 가야의 핵심 위치가 장수군으로 표시되어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일제강점기 일본인 고고학자 도쿠라 세이지가 장수 삼봉리 일대 토지를 매입해 도굴을 자행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또한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고적도보』에 기록된 장수 지역의 토만두형 고분 자료 역시 이러한 표기의 근거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비록 박물관 학예사와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일본의 대표 역사기관이 장수를 가야의 중심축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지금까지 장수군은 백두대간을 넘어 서쪽으로 전해진 유일한 가야문화 지역으로 평가받아 왔다. 삼봉리·대적골 고분군 등 다수의 유적이 국가사적과 도 기념물로 지정돼 있음에도, 사료 부족 탓에 ‘가야의 변방’으로 여겨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국립박물관의 전시 내용은 장수군이 단순한 주변부가 아니라 가야문화권의 중요한 고리였음을 시사한다.

이 경험을 통해 필자는 다시 확신하게 되었다. 가야의 역사는 아직 완전히 해명되지 않았으며, 그 미완의 역사를 풀어낼 열쇠가 장수군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장수는 가야·백제·마한·신라·후백제가 공존한 전국 유일의 지역으로, 고대 동아시아 문명이 교차한 지점이었다. 이는 장수군이 역사문화 자원의 가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재발견하고, 체계적인 연구·보존·활용 전략을 마련해야 함을 말해준다.

국립도쿄박물관의 지도는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장수군의 가야사와 다섯 역사문화권의 위상 정립은 이제 지역의 선택이 아니라 시대적 과제라는 것이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손에 따라 왜곡될 수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수도 있다. “장수군의 역사는 남이 써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밝혀내야 한다.” 이 말은 장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지역이 가져야 할 역사 인식의 태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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