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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경기전의' 어떤 내용 담고 있나

'(태조 어진은) 비단 1폭으로 길이는 15자 쯤이고 넓이는 5자 쯤이다. 단정히 두 손을 마주잡고 정면을 향하였으며, 수염이 희고 익선관을 썼으며, 청색의 소매 좁은 용포를 입고 옥대(玉帶)를 맸으며, 검은 가죽신을 신고 용상에 앉아 있다. 영정 위에는 홍색과 녹색의 술이 늘어뜨려져 있고, 위 아래 옥축(玉軸)이 족자 모양 같다.''즉각 진전으로 들어가 수문장 이우상과 수복들과 더불어 권축의 묶인 끈을 풀고 궤 안에 봉안하고 붉은 노끈으로 밖을 쌌으나 너무 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수복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소리가 경기전 안에 진동했다. 정신을 수습하고서 어진을 높이 들고 경기전 문밖으로 나갔는데 수문장은 어깨에 메고 참봉은 옆구리에 끼었다. 동쪽 성문에 이르니 그때 성은 이미 함락되었다.'「경기전의(慶基殿儀)」 중 '영정의(影幀儀)'에는 재질과 크기, 형상 등 태조 어진에 대한 양식(樣式)이 나와있다. '경기전참봉 장교원 실록'은 동학농민운동을 '난리'로, 농민군들을 '우리나라 백성이 승냥이가 된 것'으로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농민군에 의해 전주성이 함락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태조 어진을 지켜내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전주시와 전주역사박물관이 「경기전의」를 완역해 펴낸 「국역 경기전의」는 경기전 철망 보수에 들어간 물자까지 적어놓은 태조 어진과 경기전에 관한 제반 사항들에 대한 기록이다. 아쉽게도 1872년 태조 어진 모사에 관한 내용은 빠져있지만, 1906년까지의 문서가 실려있어 조선 멸망 직전까지 경기전 관련 문서들이 집적돼 있다고 할 수 있다.경기전 도판을 맨 처음으로 이어 전주의 형세와 태조 선대들에 대한 기사가 앞에 나오는 등 나름대로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예를 들어 분향에 관한 내용이 한 장에 모여 있지 않고 앞과 뒤에 떨어져 나오는 등 성격별로 정리돼 있지 않아 번역 과정에서 책의 편자와 무관하게 내용별로 모아서 소개했다.내용적으로는 크게 '전주의 형세와 태조 선대의 유사' '경기전 연혁과 구조' '경기전 관리 조직' '경기전 제례' '어진 이·환안과 거둥' '태조 어진과 경기전 관리' '태조 어진과 경기전 보수' '경기전비 건립' 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이희권 전북대 명예교수와 함께 번역을 맡은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태조 어진 경기전 봉안 600주년을 맞아 당장 어진 봉안 행렬 등의 행사가 준비되고 있는데, 「경기전의」의 내용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관장은 "정해년 대화재 때 전주의 긴박했던 상황들과 동학농민혁명 때 전주부성의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등 「경기전의」는 경기전과 관련된 당시 전주지역 상황들도 잘 보여주고 있다"며 "한편으로 조선 후기 물가를 비롯한 경제상황, 지방행정체제 등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어 그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10.07.22 23:02

'경기전의' 첫 완역

보물 제931호인 태조 이성계 어진(御眞)이 봉안된 지 600년 만에 전주 경기전의 베일이 벗겨졌다.태조 어진이 봉안된 경기전의 연혁과 건축구조, 의례, 관리체제 등 제반 사항을 기록한 「경기전의(慶基殿儀)」가 완역(完譯)됐다.그동안 필요에 의해 부분적으로 번역된 적은 있었지만, 「경기전의」 전체가 번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 태조 어진 봉안이나 경기전 관련 자료로도 첫 작업인 데다가 올해가 태조 어진 전주 봉안 600주년을 맞는 해여서 더 의미있다는 평가다.전주시와 전주역사박물관이 펴낸 「국역 경기전의」는 '전주학 총서' 시리즈. 이희권 전북대 사학과 명예교수와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이 2년 여에 걸쳐 번역했다.조선 왕조는 1410년 왕실의 본향인 전주에 건국자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했으며, 1442년 그 진전(眞殿)의 이름을 경기전이라고 하였다.「경기전의」는 일종의 경기전 운영관리에 관한 지침서로, 언제 누구에 의해 편찬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원본은 경기전에 소장돼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일제 강점기에 원본을 등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권이 남아 각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이 중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9월 12일까지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경기전, 조선의 가슴에 귀 기울이다'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10.07.22 23:02

출판계, '신간할인율 유지' 반발 법적투쟁

출판계와 중소서점 업계가 정부의 신간도서 할인율 유지 결정에 강력 반발하며 법적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11개 주요 출판·서점 단체장들은 21일 서울 사간동 출판문화회관에서 도서정가제 법령 개정을 비롯해 출판진흥기구 설립, 저작권법 개정, 전자출판산업 육성 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특히 최근 정부가 신간 도서의 할인율을 최대 19%로 유지한 것과 관련, "가격 할인 경쟁으로 극소수 인터넷 서점만 존립 가능하고 대다수 중소 출판사와 중소 서점은 제도적으로 시장 퇴출을 강제 당하는 현행 도서정가제 규정 아래에서는 출판문화의 존립 기반조차 유지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할인율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도서정가제 법령이 개정돼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창연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회장은 도서정가제 법령 개정을 위해 "행정소송과 정부 규탄 대회 등 강력한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단체장들은 또 위기에 처한 출판산업을 육성 지원하려면 무엇보다 제대로 된 출판진흥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출판계의 의견이 반영되는 출판진흥기구를 설립하고 지원을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백석기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간행물윤리위원회와 번역원을 주체로 한 출판진흥기구를 설립하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출판진흥기구가 되려면 출판계의 의견이 반영되는 의사결정기구가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사업은 민간에 위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철희 한국출판인회의 회장도 "과거 규제와 통제 기구였던 간행물윤리위원회와 번역원은 전문성이 없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작년 12월 출판계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전달받아 이를 토대로 출판진흥기구 설립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면서 7-8월에 출판계 인사가 포함된 전문가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여론수렴 과정 등을 거쳐 연내 설립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급변하는 출판환경 변화에 맞춰 출판진흥기구가 출판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종합적, 체계적으로 출판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이라면서 간행물윤리위원회와 번역원 등이 맡아온 출판진흥 관련 기능들도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서정가제 법령 개정 요구와 관련, "출판계의 의견을 수용해 직·간접 할인 폭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했으나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 성사되지 못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7.22 23:02

석정 시인의 문학세계·예술혼 기린다

한국 근현대사 시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신석정 선생(1907~1975년)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석정문학제가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부안예술회관 공연장에서 다채롭게 열린다.<사>한국문인협회 부안지부(지부장 송기옥)이 주관하고 <사>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부안지회가 주최하는 석정문학제는 올해로 다섯번째이다.23일 첫째날에는 오후 3시40분에 개막행사가 예술인·기관단체장과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이어 문학강연으로 윤갑철 아동문학가와 김우영 한국해외문화교류발행인 및 소설가가 각각 '내가 본 석정선생''석정 시문학과 부안 책 마을의 희망'이란 주제로 강연한다.또 오후 7시부터는 문학페스티벌로 대금연주·시낭송·기타와 성악무대·시극·색소폰 연주 등이 펼쳐진다.24일 둘째날엔 문학기행이 부안문인협회장 해설로 석정고택~석정공원~계화도~석불산 영상랜드~구암리 고인돌~부안댐 시비공원~새만금~조각공원~해안마실길~적벽강~채석강~솔섬~곰소~개암사 주류성 코스로 이어진다.25일 마지막날엔 부안읍 선은리 선은마을 석정고택및 부안예술회관에서 시화전이 전시된다.한편 부안군 관계자는 "석정문학제는 석정 시인으 문학세계와 시정신을 계승하여 문향의 고장인 부안군의 문화예술을 부흥시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홍동기
  • 2010.07.20 23:02

전북시인협회 '도심 속 문학 강좌' 초대된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41·불교방송 PD)은 한 그루의 나무 같다. 그냥 그 자리에 나무처럼 묵묵히 서 있는 것이다. 또한, 차분하게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 17일 춘향골 문화공간에서 열린 전북시인협회(회장 유대준)의 '도심 속의 문학 강좌'에 초대된 그는 나직하고 겸허한 태도로 내밀하고 황홀한 시와의 만남을 이야기했다.시는 '세계를 횡단해가는 예감 같은 것'이라고 했다. 시인은 "섬세하고 미묘한 움직임이 다 합해져서 '감(感)'으로 온다"며 술 익는 듯 익어서 나오는, 우러나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시는 '관계의 재발견'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대상과 주고 받는 것으로 관계를 새롭게 발견할 때 시가 태어난다."신석정 시인은 '내 가슴 속에는 하늘로 발돋음하는 짙푸른 산'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 가슴 속에 누적돼 있는 삼라만상이 나의 전 재산이고 이 재산으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사유하고 욕망하고 의욕한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관계의 발견인 셈이죠."그런 점에서 시는 안과 밖이 계속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시간의 경계든, 공간의 경계든, 무엇이든 어떤 것을 결정짓는 가두리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우리가 양동이에 물을 받아 들고 가는 동안은 출렁출렁하죠. 우리의 생각도 그렇게 출렁출렁해야 좋은 시가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가두려고 해요. 시도 이렇게 끝나야지 완결이 될 것만 같다는 강박관념을 갖는 겁니다. 시에는 완결이 없습니다. 완결이 되는 순간 오히려 시는 죽어요."대신 모든 시는 관계를 통해 설명돼야 한다. 시적 화자가 우월적인 위치에서 채근을 하기 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시인은 "좋은 시를 쓰는 사람은 그래서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 끝까지 잘 듣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현종 시인의 산문을 예로 들면서 도를 깨친 스승이 진리를 전할 때 제자의 귀에 대고 들릴듯 말듯 전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스승은 (진리를) 속삭였던 것은 너무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공중에 흩어져버릴까봐 조심스러운, 경외하는 마음이었던 겁니다. 이 일화는 시인이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겸손하고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하지만 좋은 시는 채우기 보다는 비우는 것에 가깝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게으름."조지훈 선생이 게을러야 좋은 시를 쓴다고 한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여기서의 게으름은 세상의 번다한 것을 뜻합니다. 술 약속, 놀러갈 생각, 금전 거래 등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것이죠. 느릿느릿한 자연의 속도를 즐기고 있는 순간 바깥에 있던 내가 안쪽을 굽어다보게 되는 겁니다."결국 고독한 시간을 잘 견디는 사람일수록 좋은 시를 쓸 수밖에 없다. 자신도 독방에서 혼자 울면서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다면서 자신을 붙들고 있는 리듬을 자꾸자꾸 생각해보게 된다고 했다.2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은 흰 몇 마처럼 품이 넉넉했다. 앞으로도 시인은 따뜻하고 속 깊은 시를 새롭게 벼리게 될 것이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0.07.19 23:02

펜끝에 자유를 달고, 문인의 꿈 펼치세요

전북문인협회(회장 이동희)와 2010도민문예창작캠프 운영위원회(위원장 조미애)가 고은 시인을 초청, 문학을 꿈꾸거나 창작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문인들을 위한 열린 자리를 마련한다.오는 31일 부안 학생해양수련관에서 열리는 '2010 도민문예창작캠프'. 지난해 캠프는 첫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300여명이 참가하는 등 문학 지망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도민문예창작캠프는 문인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해 더 의미있다. 책으로만 접하던 문학과 문인을 만나 소통하며 스스로 창작에 대한 열망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다.올해 캠프는 군산이 고향인 고은 시인의 특강과 중견 작가들의 문학특강, 시낭송회 등 문학행사와 캠프 백일장으로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가람반, 석정반, 백릉반, 미당반으로 학습반을 꾸려 '나의 대표작' '내가 좋아하는 문학작품' '나의 습작품' 등을 주제로 문학수업을 받게 된다.캠프 이수자에게는 수료증이 주어지며, '문예캠프 백일장'의 입상자는 전북문협 정회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이동희 전북문협 회장은 "문예창작캠프를 통해 문학으로 삶의 진정성을 확립해 가려는 도민의 열망을 다잡아 가는 일이 문인의 의무이자 문협의 책무라고 생각한다"며 "전북 문단의 미래를 이끌어갈 신인 작가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참가비는 2만원으로, 현재 참가 신청을 받고 있다. 31일 오전 7시40분 전주시 효자동 전북도청 남문 앞에서 버스가 출발한다. 문의 063) 278-2296

  • 문학·출판
  • 도휘정
  • 2010.07.15 23:02

'날카로운' 사랑의 상처에 대한 위로

"K는 내게 X-연인이 덜 상처받는 이별법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별을 결심했다면 톱질하지 말고 단칼에 베어버려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덜렁거리지 않게, 너덜거리지 않게, 그것이 목을 베는 망나니가 베풀어야 하는 자비다."(42쪽)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김규나 작가가 첫 번째 소설집 '칼'(문학에디션 뿔)을 펴냈다. 등단작 '칼'을 비롯한 단편 11편을 묶은 것으로, 모두 삶과 사랑에 다친 날카로운 상처를 드러내고 또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사랑, 섹스, 불륜, 배신 등 그 위태로운 사랑 이야기의 외형은 지극히 통속적이다. 그러나 작가의 마지막 시선은 치유와 위로에 가닿는다. 깨지고 부서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뒤에 오는 결말은 묘한 여운을 남기며 상처를 덮는다. 등단작이자 표제작인 '칼'은 하룻밤 사랑을 나눈 며칠 후 시체와 부검의로 만나는 남녀를 독특한 문장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아내에게 상상하지 못한 배신을 당한 오케스트라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남자인 '당신', 강간당한 채 강물에 버려진 소녀의 사체를 한나절 주무르던 여자 부검의 '그녀'. 클럽에서 술과 담배로 마음을 달래다 만난 두 사람은 하룻밤을 보내고 며칠 뒤 부검실에서 다시 만난다. "가만히 누워만 있었는데도 이렇게 고단한데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신은 부검실에 남겨 두고 온 그녀를 잠시 생각했다. 당신을 보낸 그녀는 손끝으로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31쪽)그 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애인에게 아기를 빼앗긴 여자와 한 사진작가의 만남을 그린 '달, 컴포지션', 섹스 상대로만 여겼던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온 남자를 놓아주는 '내 남자의 꿈' 등 유리처럼 날카롭고 부서지기 쉬운 이 시대의 사랑을 그린 단편들이 실렸다. 작가는 "살아내는 건 투쟁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유전자를 진화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느라 오늘도 힘겹게 뛰고 있는 당신은 나의 위대한 동지"라며 "그 분주하고 촘촘한 시간 속에서 잠깐만이라도, 내가 쓴 글 한 줄이 당신의 심장을 따사롭게 어루만져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284쪽. 1만1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7.15 23:02

성석제가 쓴 전래동화 '토끼와 자라'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서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우리 시대 대표 이야기꾼 성석제가 처음으로 전래동화를 썼다. 우리 전통 구전 이야기인 '토끼전'을 바탕으로 한 판소리 수궁가를 재창작한 '토끼와 자라'(비룡소)로, 그림책으로 꾸며졌다. 성석제 특유의 해학적인 표현은 여전하지만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가볍고 부드러운 어법으로 풀어냈다. 바다 용왕의 병을 낫게 하고자 토끼의 간을 구해오라는 명을 받은 자라가 육지에서 토끼를 꾀어 데려오지만 토끼는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탈출한다는 기본 줄거리는 변함없다. 하지만, 성석제만의 익살스러운 표현이 곳곳에서 번득인다. 용왕의 부름을 받고 거북, 도미, 민어, 오징어, 도루묵, 조개 등 수많은 바다 생물이 몰려와 절을 하자 용왕이 "내가 용왕이 아니라 생선 가게 주인 같구나"라고 한다거나, 용왕의 명을 받은 자라가 집을 떠나기 전 아내에게 "나 없는 사이 남생이 녀석이 옆에 안 오게 조심해!"라고 이르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 토끼와 자라가 처음 만나는 장면도 재미있다. "요리로 깡충 저리로 깡충 갸우뚱거리고 까불며 내려오다가 자라하고 부딪쳐 버렸네. '아이고 코야! 아이고 이마빡이야! 초면에 남의 이마빡은 왜 이렇게 받아요? 자! 우리 서로 자기소개나 합시다.'"이야기의 결말도 이채롭다. 용왕 앞에서 간을 육지에 놓고 왔다는 거짓말로 탈출해 육지로 올라온 이후에도 토끼는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에 시달린다. "토끼는 살아났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오두방정을 떨다가 그만 그물에 걸렸대. 아이들이 잡으러 오자 썩은 냄새 나는 방귀를 풍풍 뀌어서 빠져나왔지."이런 후일담을 덧붙이고도 작가는 토끼의 운명에 여운을 남기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성석제는 원전이 판소리 대본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과 공연하는 사람이 서로 호응하면서 말과 이야기의 풍성한 잔치를 만들어가는 것을 많이 보여주려고 했다고 출판사 측은 전했다. '동강동강' '할짝할짝' '앙금앙금' '송알송알' 등 생동감 넘치는 우리말이 읽는 맛을 더한다. 섬세한 판화와 다채로운 색의 콜라주, 일러스트 기법을 혼합해 동물들을 단순하면서도 섬세하게 묘사한 그림(작가 윤미숙)도 인상적이다. 44쪽. 1만2천원. 6세 이상 권장.

  • 문학·출판
  • 연합
  • 2010.07.15 23:02

최고 대학생과 석학들이 논하는 철학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치철학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하버드대 학생들과 석학들의 인터뷰를 실은 책이 나왔다.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돌베개 펴냄)는 하버드대 학부생들이 창간한 철학잡지 '하버드 철학 리뷰'의 학생 편집자들이 1991년에서 2001년 사이 세계적인 철학사상가들과 한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인터뷰 대상은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미학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를 비롯해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남자다움에 관하여'의 저자 하비 맨스필드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샌델 교수, 코넬 웨스트 프린스턴대 교수 등 모두 14명. 이 책은 학생들이 학자들의 저서에 담긴 사상에 관해 질문을 던지면 학자들이 이에 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학생들의 질문은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학생들은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철학을 탐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으로 석학들의 진땀을 빼놓는다. 에코는 1993년 인터뷰에서 소설을 쓸 때 철학적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질문에 "소설을 시작할 때 특정한 철학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소설을 쓸 때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만들 인상을 갖고 다수의 결론이 나올 수 있는 사실을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독자들에게 연속된 물음을 던질 뿐 대답을 해주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2002년 타계한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생생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정의론'의 저자 롤스는 1991년 인터뷰에서 어떻게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됐느냐는 질문에 "어떤 것에 대해 어떻게, 왜 관심을 갖게 됐는지 우리는 실제로 알 수 없다. (중략) 전쟁에 대한 경험은 우리 세대를 지금 세대와는 매우 다르게 만들었다. 1943년 초반부터 1946년 초반까지 3년 동안 태평양, 뉴기니, 필리핀, 일본에서 군 생활을 했다. 그 경험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틀림없다"고 답했다.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공부하라고 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학생들에게 철학에 뛰어들라고 권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철학의 결점을 더 강하게 부각시킵니다. 그대로 강렬히 하길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렇지 않으면 철학에는 고난과 시련이 있기 때문에 철학에 뛰어들어서는 안됩니다." 학생들이 던지는 질문도 하나같이 만만하지 않지만 이에 대한 석학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더 큰 장점이다. 강유원. 최봉실 옮김. 1만8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7.14 23:02

中 충칭 '범죄와의 전쟁' 소설로 나온다

중국 충칭(重慶)시가 대대적으로 시행한 '범죄와의 전쟁'을 주제로 한 소설이 출간된다. 11일 중국 화룡망(華龍網)에 따르면 충칭시 작가협회는 충칭시 공안국의 협조를 받아 지난해부터 시행된 범죄와의 전쟁과정을 상세히 담은 소설을 출간하기 위해 전문 집필팀을 출범시켰다. 충칭시 작가협회 황지런(黃濟人) 주석은 충칭시 왕리쥔(王立軍) 공안국장으로부터 소설 창작을 위해 공안국이 비밀수사 및 재판기록과 관련자료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충칭시는 지난해부터 보시라이(薄熙來) 당서기 주도로 범죄와의 전쟁을 벌여 범죄조직과 관련이 있는 3천348명을 체포하고 63개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했다. 아울러 최근 사형이 집행된 원창(文强) 전 충칭시 사법국장을 비롯해 조직폭력배를 비호한 24명의 국가공무원을 처벌했다. 소설에는 폭력조직이 구성에서 발전되는 과정을 파헤치고 원창 등 공무원들이 이들을 조직적으로 비호하는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는 동시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 범죄와의 전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담을 예정이다. 작가협회는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해 자료로 남김으로써 공무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조폭을 척결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 독자들의 흥미도 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원 전 국장을 두고 정치적 희생양일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어 이번 소설 창작이 범죄와의 전쟁을 영웅적 행동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7.12 23:02

사랑 찾아 떠난 노래꾼의 슬픈 운명

"노래를 부르지 않는 한, 땅에서 발을 떼고 허공을 밟으면서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노래를 잃어버린 사람이 일상을 선택하지 않는 한, 그에게 탈출구는 없다. 만약 그 일상을 견디어 낼 수 없다면 남은 유일한 방법은 사라지는 것뿐이다."(244-245쪽)소설가 조용호(49) 씨의 첫 장편소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문이당 펴냄)가 출간됐다. 199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해 소설집 '왈릴리 고양이나무' 등을 발표한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사라진 노래를 찾아 떠난다'며 자취를 감춘 노래꾼의 행방을 쫓는 이야기를 담았다. 젊은 시절 한때 노래꾼의 삶을 살았던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는 이 소설은 가슴 깊은 곳에서 북받쳐 나온 노래처럼 애달픈 한 노래꾼의 운명적 사랑을 그린다. 소설은 어느 날 노래꾼 연우가 화자인 '나'에게 유언 같은 비망록을 남기고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비망록에는 노래와 사랑에 대한 연우의 사연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나는 대학 시절 좋아했던 여인이며 지금은 연우의 아내인 승미와 함께 그를 찾아 나선다. 연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은 지난날의 추억을 만나고 연우가 치명적인 사랑의 아픔을 남기고 떠난 여인 선화를 찾아 떠났음을 알게 된다. 노래꾼이었던 작가가 쓴 노래꾼의 이야기답게 소설의 처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노래가 흐른다. '마른 잎 다시 살아나'와 '오월의 노래'는 분노와 슬픔의 역사를, '흥타령'과 '상엿소리' '만물산야' 등의 민요는 서러운 정한을, '생에 감사드리며'와 '마리아가 가네'는 운명적인 사랑을 드러낸다. 제목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는 아타우알파 유팡키의 노래다. 작가는 "내 청춘기를 지탱해 주었던 것도 노래였다. 그 노래의 힘으로 고통스러웠던 연대를 헤쳐 나올 수 있었다"며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안팎으로 노래에 많이 기댔다. 나의 서사가 그 노래들에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경림 시인은 "연우를 둘러싼 몇 노래꾼과 그 삶의 궤적은 사람의 운명과 인연은 무엇이고 꿈과 욕망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며 "직접 노래운동을 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세목은 때로는 서럽고 때로는 안타깝고 또 때로는 아름답다"고 말했다. 280쪽. 1만1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7.09 23:02

출판계에도 3D 바람부나

출판업계에도 3D 바람이 불 조짐이다. 생생한 3D 입체 영상을 통해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아동 도서를 중심으로 3D 도서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삼성당은 영국의 아동전문 출판사 칼튼북스의 3D 멀티미디어 도서 '공룡이 살아있다'를 8일 출간했다. '공룡이 살아있다'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시스템을 적용한 3D 책으로, 컴퓨터 화면을 통해 공룡의 생생한 입체 영상을 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몸무게가 80t이 넘는 브라키오사우루스, 길이가 28m에 달하는 디플로도쿠스, 가시와 갑옷으로 무장한 가스토니아 등 수십 종에 달하는 공룡의 생태를 생동감 넘치는 영상으로 배울 수 있다. 삼성당은 이달 중 칼튼북스 두 번째 시리즈인 '요정나라'를 3D 책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삼성당 문주강 팀장은 8일 "외국 수입 도서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컴퓨터 화면을 통해 입체 영상을 구현하는 3D 도서가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Why?' 시리즈로 유명한 아동출판업체 예림당은 올해 말 PDF 파일 형태의 전자책을 출간하는 데 이어 내년에는 3D가 구현되는 전자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삼성출판사도 입체영상을 포함한 멀티미디어 형태의 전자책을 연내에 선보일 계획이다. 삼성출판사는 유아, 아동용 도서 분야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멀티미디어 형태의 유아, 아동용 전자책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최상원 예림당 신사업본부장은 "특히 아동 도서는 테스트 위주의 성인 도서와 달리 동영상 등 시각적 측면이 중요하다"면서 3D를 포함한 멀티미디어 도서가 아동 도서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7.09 23:02

[오향녕의 인문학 에세이] 민심에 부응하지 못하면 좌든 우든 뒤집혀

그러니까 한 3, 4년 전인가? 최장집 선생께서 어느 신문에 인터뷰를 하셨는데, 그때가 고 노무현 대통령 후반기였다. 민심이 노무현 정권에서 멀어졌던 그때, 최장집 선생은, "민주주의에서는 이 당에서 저 당으로, 저 당에서 이 당으로 정권이 바뀌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아주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총명함을 내뿜는 안광과 함께 담긴 깊은 사색의 아우라를 풍기는 노학자의 혜안은 좌나 우, 보수나 진보라는 정치적 입장에 따른 상황인식이 종종 초래하는 조급함을 덜어내고 어떤 것이 민주주의인가,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인가를 차분히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왜 그렇지 않겠는가. 민심에 부응하지 못하는 정권은 좌든, 우든 뒤집어지게 마련인 것을. 보수든 진보든,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한나라당이 정권을 넘겨주었을 때, 다시 10년 뒤 민주당이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넘겨주었을 때 가졌던 허탈함을 느낌 사람이라면 최장집 선생의 한 마디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권은 빼앗고 빼앗기는 물건이 아니다. 애당초 자기들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최장집 선생의 말은 바로 정권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우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티타스)인데, 지난달에 개정판이 나왔다. 민주주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민심이 고정된 실체가 아닌 민암, 즉 위태로운 존재이듯이. 그러므로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가 고민되어야 한다. 더욱이 요즘은 민주주의를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또 근대 민주주의의 핵심인 헌법(憲法)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재미있는 책으로, 로버트 달 저, 「미국헌법과 민주주의」(박상훈 등 옮김. 후마티타스. 원제는 How Democratic the American Constitution)가 있다. 교과서에서 헌법 조문 몇 개만 배운 우리에게 시민이 알아야할 헌법을 일러준다. 최장집 선생이 곡진하게 서문을 써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주셨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0.07.09 23:02

[오항녕의 인문학 에세이] 민주주의 시대에 생각하는 민심

오랜만에 「서경(書經)」을 펼쳐보게 되었다. 「서경」은 우리가 잘 알듯이 (보지는 않지만) 사서삼경(四書三經) 중의 하나이고, 경(經)이라고는 하지만, 요순(堯舜) 시대 이래 정치 활동에 대한 역사 기록이기도 하다. 「서경」을 보게 된 것은 읽고 있던 글 중에서 '민암'이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민암에 대한 이야기는 「서경」의 주서(周書) 소고(召誥)편에 나온다. 백이(伯夷)와 숙제(叔弟)가 수양산으로 들어가서 고사를 캐먹다가 죽었다는 고사의 계기가 된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아들 소공(召公)이 소고편의 주인공이다. 소고편은 소공이 성왕(成王)으로 즉위하면서 남긴 후손에 대한 경계 및 대국민담화문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왕이 정치를 할 때 등용할 만한 사람을 뒤에 둘 수는 없다. 백성들의 마음이 어디로 갈이지 위태롭다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王不敢後, 用顧外于民巖)"민암은 이렇게 백성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정치를 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민심의 험한 응징을 받을 것이라는 경계를 담은 표현이었다. 암(巖)은 바위라는 의미도 있지만, 위태롭다, 험하다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래서 민심은 위태롭다, 험하다는 말이 된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라는 표현도 쓰는데, 물이 화가 나면 배가 뒤집히기 마련이라는 뜻으로, 민암의 의미를 잘 설명한 표현이다.▲ 언제든지 떠나고 등 돌리는 것백성이 근본이라는 생각은 민주주의의 독점물이 아니다. 비잔틴 제국을 이룬 사라센 사람들 덕으로(사라센 사람들이 북부 아프리카에 남아 있던 그리스 문명을 번역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명을 전수받은 르네상스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의 비전으로 민주정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리스 도시국가의 민주주의는 시민권을 가진 남자들에 국한된 민주정이기 때문에, 이런 족보는 사실 이웃집 암소가 강아지를 낳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오히려 왕정(王政) 아래서 백성이 근본이라는 생각을 꾸준히 갈고 닦아온 역사를 조선에서 찾을 수 있다. 태조의 즉위교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하늘이 숱한 백성을 낳았고 군주를 세웠다. 군주는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게 해야 하고, 정치를 통해 서로 편안하게 살도록 해야 한다. 그에 따라, 임금의 길에는 잘잘못이 있게 되며, 또 그 잘잘못에 따라 인심이 인정하든지 돌아서든지 할 것이다. 결국 그 민심에 따라 천명(天命)이 떠나갈지 머물러 있을지가 달려 있으니, 이것이 변치 않는 우주의 이치이다."(「태조실록」권1 원년 7월 28일)그러나 선언이 이렇다고 그대로 실천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초심이 그랬다고 나중까지 그 약속이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역사는 민심이 천심이라는 선언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를 둘러싼 노력으로 점철되었다. 방해하는 자들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조선 학인(學人)이 본 민심긴 얘기보다 간단한 글 한 점이 좋을 때도 있다. 마침 날씨도 덥고 하니, 시원한 부(賦·시와 산문을 결합한 문체) 한 작품을 소개한다. 퇴계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지은 글이다.민암부(民巖賦)기나긴 역사를 통해 험한 모습 보여 왔지 (?萬古而設險)잘난 제왕 몇몇이 예사로 보았었지 (幾帝王之泄泄)걸이나 주가 탕, 무에게 망했다고? (桀紂非亡於湯武)아니지, 산골 백성마음 얻지 못한 탓이지 (乃不得於丘民)한나라 유방은 한갓 평민이었고 (漢劉季爲小民)진나라 이세는 이미 대군이었지 (秦二世爲大君)필부가 중원의 천자가 되었으니 (以匹夫而易萬乘)대권은 정말 어디에서 오는 걸까 (是大權之何在)오직 우리 백성들 손에 있는 것이라네 (只在乎吾民之手兮)두렵지 않은 것을 진정 두려워해야하리 (不可畏者甚可畏也)* 걸(桀)과 주(紂)은 각각 하나라,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 이세(二世)는 진나라 시황제(始皇帝)의 아들역시 권력이 서슬 퍼렇게 살아 있던 문정왕후에게 대놓고 과부(寡婦)라고 부르고, 그 아들 명종(明宗)을 고아라고 불렀던 기개를 가졌던 분답게 남명은 너무도 명쾌하게 백성을 떠난 권력이 얼마나 공허한 지를 한 마디로 정리해주고 있다.▲ 잘난 사람들 골탕 먹인 민심7월 1일에 전국에서 신임 광역시도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취임식이 열렸다. 이왕 하겠다고 나서서 당선되었으니 잘 해보라는 뜻으로 '민암'을 들먹었지만, 실은 이번 선거를 통해서 우리는 민암을 이미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근거인지는 모르지만 주변에서 좋은 소리를 듣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50%를 넘는다고 하여 초등학생들까지 기막혀 하는 지경에서, 각종 여론조사는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전반적 우세를 예상했다. 해석이 잘되지 않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삼삼오오 이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다는 예의 '국민의 수준' 버전부터, 방송장악의 결과라는 얘기, 천안함 바람 얘기 등이 절망, 기대와 버무려져서 인구에 회자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어지간하면 선거 개표를 보지 않고 딴 일을 하려고 했었다.그러나 민심은 그 많은 자칭 타칭 '분석가'들을 보기 좋게 비웃어주었다. 마치 '이래도?' 라고 묻듯이. 이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비웃음에 대해, 누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절망했고, 누구는 마치 지레 알고 있었던 듯 표정을 관리하며 득의의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다시 한 번 축하한다. 여러분은 지금 민심이라는 배를 탔다. 순항하기 바란다. 당신들과 함께 살고 있는 시민들이, 도민들이, 군민들이 뿌듯하게 느끼도록 해보라. 오늘과 내일의 삶이 예상될 수 있게, 그리고 평온할 수 있게 해보라. 아니면? 말 안 해도 잘 알 것이다. / 오항녕(전주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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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0.07.0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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