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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년들 눈에 비친 6·25

1950년 7월, 6·25전쟁 통에 간단한 봇짐만 챙긴 채 일가족이 피난길에 오른다. "첫 관문은 한강을 건너는 문제였다. 인도교는 끊어졌고 함께 끊어진 철교는 기괴하고 흉측했다. 군인 시체들의 참혹한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없는 시체, 다리가 끊어진 시체, 어깨만 내어놓고 강물에 떠내려가는 시체도 있었다."당시 31살인 어머니와 9살, 3살, 생후 10개월인 세 여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 피난길에 오른 김경엽(당시 12살) 전(前) 삼신올스테이트생명 대표이사는 "가슴 아린 추억담"이라며 힘겨웠던 피난 생활을 떠올렸다. 서울법대 58학번 동기들이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전쟁 회고담 '6·25와 나'(까치 펴냄)를 출간했다. 가족들과 함께 흥남 철수 작전의 마지막 날 배에 올라 남한 땅을 밟은 이야기, 누이와 함께 서울에서 전라남도까지 어머니를 찾아간 이야기 등 저자 39명은 6·25 전쟁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배고프고 고달픈 피란 시절이었지만 아이들은 꿈을 꿨다. 아이들은 천막 교사에서 영어 알파벳과 구구단을 외웠다. 바닥에 가마니를 깐 채 제대로 된 교과서도 없었지만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 하던 시절이었다. 정성진 전 법무장관은 이 책에 "비록 전란 중이기는 했으나 그 시절의 우리는 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먹고 키우면서 하루하루를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일종의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썼다. 10살 남짓의 소년들은 이제 백발이 성성한 70대 노인들이 됐다. 가슴 한편에 묻어두었던 힘겨웠던 지난 시절의 아픈 이야기를 애써 끄집어 낸 것은 자신들의 체험을 기록으로 남겨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동기들의 회고담을 엮은 이하우 전 금호그룹 상임고문과 최명 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책의 머리말에서 6·25 전쟁이 잊혀져가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내면서 "우리는 6·25를 기억하는 거의 마지막 세대이다. 선배들이 기억을 남기지 않고 우리가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6·25는 신라와 백제의 전쟁처럼 역사의 한 장면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하다"며 6·25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452쪽. 1만6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5.21 23:02

방콕 매춘가에서 만나는 우리 자신의 모습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자정의 픽션' 등으로 주목받은 작가 박형서(38) 씨의 첫 장편소설 '새벽의 나나'(문학과지성사)가 출간됐다. 지난해 계간지 '문학과사회'에 연재해 결말을 보여주지 않고 마감했으나 이번에 결말을 더해 단행본으로 완성했다. 작품의 무대는 태국 방콕 수쿰빗 지역의 나나역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매춘가다. 태국에서 현지인처럼 먹고 입으며 꼼꼼하게 실태를 취재한 박씨는 방콕의 뒷골목 거리가 눈앞에 보이고 냄새까지 전달되듯 생생하게 방콕의 뒷골목을 묘사한다. 2005년 동남아 여행 중에 이 소설을 구상한 박씨는 중국 광둥성 주하이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2007년 매달 방콕을 찾았다. 2008년 여름 강의 계약이 끝나자 방콕으로 들어가 일곱 달 동안 구상한 이야기를 엮었다. 소설은 여행길에 오른 한국 남자 레오가 경유지인 태국에서 만난 매력적인 매춘부 플로이에게 빠져 그곳에 머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레오의 최종 목적지는 아프리카이지만 그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수쿰빗의 이방인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레오와 플로이의 애절한 연애담이 아니다. 작가는 두 사람의 사랑보다는 그들이 지낸 거리의 수많은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과 인간관계에 집중하고 그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한다. 박씨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선택에서 소외된 적이 없었고 흘러간 모든 시간들은 우리 스스로가 의도한 것"이라며 "이 책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자 여행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우리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우리가 떠날 때의 우리가 아니듯, 돌아온 곳도 떠날 때의 그곳이 아니다. 우리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여행을 매 순간 치러내며 살고 있다."406쪽. 1만1천500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5.20 23:02

청춘의 '두려움' 바이러스 대처법

"젊은 세대는 사랑 혹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삶의 의지를 지배하잖아요. 삶에 대한 공포라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영화 '모던보이'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이지민(36) 씨가 이번에는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청춘물을 선보인다. 그의 새 장편소설 '청춘극한기'(자음과모음)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는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자의 청춘을 그린다. 청춘의 로맨스가 아닌 청춘 그 자체를 파고드는 청춘소설이다. 출간을 맞아 17일 기자들과 만난 이 씨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아파하는 청춘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며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청춘물을 쓰고 싶어하는데 확실한 30대 후반이 되기 전에 써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두운 것을 쓰면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은 때가 온다"며 "이번 소설은 나 자신에게 필요했으며 독자들에게도 그런 에너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누구나 강력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잖아요. 그게 연애일 수도 있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요. 그 바이러스를 이겨내기도 하고 꺾이기도 하죠. 바이러스라는 소재를 통해 인생의 중간점검을 하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했어요."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일과 연애, 행복 등에 대한 미련을 버린 지 오래인 여성 옥택선. 어느 날 아무런 기대 없이 나간 과학자와 소개팅을 하고 그를 통해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걸리는 순간 상대가 누구든 사랑에 빠져버리는, 치료제도 없는 바이러스에 걸린 택선은 백신 개발을 위해 실험 대상이 된다.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 속에서 그는 비로소 진정한 청춘의 의미를 알게 된다. 바이러스를 등장시킨 작품이지만 과학적, 사실적이기보다는 '생활 SF'라는 작가의 표현처럼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로 풀어냈다. 이지민 씨는 "과학자인 언니의 도움을 받아 과학적인 이야기로 쓸 수 있었지만 오히려 현실감과 긴장감이 떨어질 것 같았다"며 "그래서 반대로 우화적으로 꾸며 과학적이기보다는 내면적, 정서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영화 '모던보이'의 원작인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로 2000년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좌절금지' '나와 마릴린', 소설집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 등을 펴냈다. 268쪽. 1만1천500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5.18 23:02

[오항녕의 인문학 에세이] 효(孝)에 대한 생물학적 사색

▲ 재아는 단지 생각이 짧았을 뿐재아(宰我)가 물었다. "1년이 지나면 새로 추수도 해서 햇곡식도 나오고, 불씨도 바꾸게 마련입니다. 3년이 아니라 1년이 어떻습니까?" 그러자 공자(孔子)는 말이 없었다. 제자가 나가고 나자 공자는 뒤에다 대고 들으란 듯이 말했다. "재아는 3년 동안 부모 품에 안긴 적이 없었나보군!"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3년 상례(喪禮)를 한다는 공자의 말이 있었든지, 재아는 위와 같이 물었다. 그랬다가, 공자의 극한 분노를 불렀고 (그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침묵으로 대응하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그는 무척 언짢았던 거다.), 급기야 재아가 세미나 자리를 나가고 난 뒤에, 그 뒤에다 대고 요즘 말로 하면 '후레자식'이라는 욕설을 퍼붓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일화는 동아시아 최고의 고전 「논어(論語)」에 실렸고, 이후 무려 2500년간 재아에 대한 세인들의 인상을 구겨놓았다.그러나 이 장면을 잘 헤아려 보면 재아의 질문이 터무니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닌 게 아니라, 1년이면 대체로 수확이 끝나 햇곡이 나오게 마련이고, 캘린더도 바꾸게 된다. 사람들의 시간 구획 정서에 1년은 그만큼 명징하게 다가온다. 그러므로 상례도 이런 자연순환의 메커니즘에 따라 1년으로 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고 상징성도 있다는 게 재아의 질문이었던 것이다.그럼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것은 공자의 말에 있다. 3년은 부모 품에서 커야 한다는 너무도 명료한 사실이 그것이다. 공자의 삼년상(만 2년)은 바로 이 생물학적 토대에서 출발했다. 재아가 놓친 것은 이런 자연순환의 일반성과 다른 인간이란 동물의 자연성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 대화를 전후해 어떤 불쾌한 일이 있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아무리 생각해도 재아가 공자에게서 이런 말까지 들을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미숙아를 낳았기 때문에가끔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늘 의아했던 일이 있다. 종종 사자의 먹이감이 되는 가젤(소과에 속하는 영양류)은, 새끼가 어미 뱃속에서 나오면 잠시 비척거리다가 거의 10초 안에 걷고, 곧이어 뛴다. 얼마 전 본 영화 '적벽'에서 거꾸로 들어선 망아지를 제갈공명이 바로 돌려 순산시키는 장면이 나왔는데, 거기서도 망아지는 태어나자마자 거의 가젤과 같은 수준으로 '자립'했다.그러나 인간은 절대 이렇게 못한다. 종종 막 태어난 갓난아기를 보면서 귀엽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난 아직도 그 말이 곧이곧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큰 놈, 작은 놈이 태어났을 때도 나는 귀엽다는 느낌보다는 징그러웠다. (이런 느낌의 배후에는 내 인격 수준이 있기도 하겠지만.) 나중에 귀여워지기는 했다.태어난 뒤 3년 이상은 안고 먹이고 싸게 하고 온갖 수발을 다 들어주어야만 인간은 가젤이나 말, 소가 태어나면서 불과 10초 만에 도달하는 운동 능력에 가까스로 도달할 수 있다. 여기서 문명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진화에 필요한 기간은 제외하자. 다만, 그 기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 교육 기간이 늘어나고, 혼인 시기가 늦추어지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정도만 짚고 넘어가자.▲ 영장(靈長) 신화의 실제이렇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 품에 있어야 하고, '그 오랜 보살핌이 보다 영속적인 유대를 이루리라'는 말처럼, 가족이란 것이 생겼다. 그리고 공자의 말은 바로 이런 생물학적 조건을 '삼년상'이라는 제도와 윤리로 표현한 것 뿐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적어도 삼 년은 품안에서 널 키워준 은혜 정도는 생각하는 게 사람답지 않겠느냐는, 이 호소가 그렇게 무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렇다고 해서 미심쩍은 인간 중심주의마저도 양해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난 지 10초 만에 뛰지 못한다고 해서 인간이 가젤이나 말보다 못하다고 비하하려는 건 더욱 아니다. 적어도 인간이 진화의 역사에서 도달해야할 정점, 흔히 말하는 만물의 영장은 아니라는 점은 확인해야겠다.미숙아의 탄생은 직립(直立)에서 연유한다. 직립으로 도구 사용이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그건 전혀 근거가 없다. 직립을 하면서 골반이 작아졌고, 도저히 오랫 동안 자궁에 태아를 담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젤처럼 태어나서 바로 걷기 위해서는 적어도 태아를 자궁에 1년 이상을 더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보다 임신 기간이 1년 이상 늘어날 때 그 태아를 정상적으로 분만할 수 있는 산모가 많지 않다는 게 의학계의 정설이다. 아마 산모 사망률이 대폭 늘어날 것이다. 돌이 지난 애를 낳는다고 생각하면 상상이 쉽다. 그나마 열 달 짜리 태아는 머리뼈가 말랑말랑해서 자궁을 빠져나오기 쉽다. 그러나 22개월 된 태아는 머리뼈가 굳어져서 현재 인간의 골반 수준이라면 이런 아이를 제대로 분만할 수 있는 산모는 열에 한 둘 뿐이다. 간단히 말하면 멸종한다는 뜻이다.▲ 다시 생각해보는 효(孝)이상이 생물 진화 일반에서 본 약간 슬픈 인간의 모습이라면, 좀 더 인간적인 수준에서 재아와 공자의 대화는 색다른 슬픔을 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공자의 '오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 서운함 말이다. 그건 우리가 흔히 듣는 말, "너도 애 키워 봐라!" 하는 조금 저주의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악의적이지만은 않은 말 속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인간은 숙명적으로 부모보다 늦게 태어나게 되어 있다. (설마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분이 있을까?) 그리고 미숙한 상태로 품안에서 적어도 3년 이상을 지낸다. 그러나 머리가 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엄마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어!"하면서 대든다. 그 때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대개, 체념을 섞어서, "너도 애 키워 봐라!" 하신다. 그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자식들은 "또 그 소리!" 하는 마음으로 멀뚱멀뚱 눈알만 굴린다. 짐작이 가지 않는 차원의 일이므로.그런데 나중에 막상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신들이 새끼들을 키워보면 그제서야 "아, 그 말이었구나!" 하면서 때늦은 후회로 온다. 그래서 명절 때 차례 지낸 후 유난히 쓸쓸한 햇살을 받으며 그리워하고, 어쩌다 속을 썩이거나 흐뭇하게 만드는 새끼들을 보면 그 분들을 떠올리곤 눈물 짓는다. 이 숙명, 결코 바꿀 수 없다. 그래서 효를 가르쳤던 유가(儒家)의 정조에는 슬픔이 배어있다. 효는 부모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식·새끼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새끼들은 그걸 모른다. 숙명이다. 그러나 가르치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가 돌아가신 뒤 덜 마음이 아플 테니까. 새끼들이….지난 8일, 어버이날이라고 큰 놈, 작은 놈 모두 카네이션을 만들고, 문자메시지 정도의 세 줄짜리 글을 편지랍시고 내밀었다. 내용 ? 뻔했다. 별로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 관계의 진실을 알고 있는 나는 약간 슬프면서도 또 조금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 또한 숙명이다. / 오항녕(한국고전문화연구원)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0.05.14 23:02

작가들의 특별한 수업 이야기

소설가 이순원 씨는 중학교 시절 어느 국어 시간 "이 반에는 문교부장관이 누군지 아는 사람이 있나?"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기운차게 손을 들었다. 교과서를 뒤져보니 '문교부장관 검정필'이라고 쓰여있어 자신 있게 "우리나라 문교부장관의 이름은 검정필입니다"라고 답했고, 선생님은 바로 포복절도했다. 펼쳐보지도 않을 영어사전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급우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애썼던 그는 그다음 날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다시는 갖고 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의 사연을 비롯해 소설과 시인 18명이 추억이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수업을 주제로 쓴 에세이집 '수업'(황소북스)이 출간됐다. 유쾌한 입담을 자랑하는 소설가 김종광 씨는 초등학교 산수 시간에 있었던 '검투사'와 '검사조' 이야기를 전한다. 선생님은 검투사에게는 칠판 앞에서 산수 문제를 풀게 시키고, 검사조를 불러내 그 답을 검사하도록 했다. 검사조였던 김씨는 친구의 답이 틀렸다고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신이 내린 답이 틀렸다. 용기를 내 사실을 실토한 그는 선생님에게 친구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누명을 씌웠다며 야단맞았다. 사과하는 그에게 친구는 "너두 나 때문에 된통 맞았잖여. 피장파장이지 뭐. 그런디 앞으로는 신경 좀 써. 검사조 애들 너무 건성으로 풀더라구"라고 읊조린다. 소설가 양귀자 씨는 오랜만에 발표한 자신의 소설을 읽었다는 어느 독자의 편지를 소개한다. "오래간만에 '현대문학' 2010년 1월호에 눈곱만치 몇 자 적었습디다. 구렁이 알같이 아껴 저금해놓은 수월찮은 돈으로 샀는데, 글이 짧아 원 참, 애간장을 녹입니다. 지금껏 글만 써왔으면 참 좋으련만…"아직 답장을 쓰지 못했다는 양씨는 "다시 소설을 쓴다면, 그 소설은 아마도 많은 부분 이 수업에 빚지고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밖에 책은 작은 분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월부 책 장수가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갖고 온 것을 계기로 책에 파고들었던 시인 김용택 씨의 이야기 등을 전한다. 256쪽. 1만3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5.12 23:02

'마한시대 분묘 역사' 한눈에 본다

전북대학교 박물관(관장 김승옥)이 고대 묘제 연구에 있어 중요한 기초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완주 상운리 유적의 연구성과를 정리, 「상운리(上雲里)」를 펴냈다.익산∼장수간 고속도로 건설구간 내 완주군 용진면 상운리 일대에 위치한 상운리 유적은 분구묘 30기, 매장주체부 163기 등 현재까지 발견된 마한계 분묘 중 최대 규모다. 또한 토기류 320여 점, 철기류 500여 점, 옥류 6000여 점 등 약 7000여 점이 조사돼 호남지역에서는 최고의 출토량을 기록했다.상운리 유적은 전북대 박물관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여에 걸쳐 발굴조사했다. 당시 발굴조사 총책임자였던 김승옥 전북대 박물관장은 "마한 최대 규모의 분묘 유적인 상운리는 근초고왕의 남정으로 마한이 백제에 병합되는 4세기 이후에도 여전히 완주지역에서 마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며 "호남지역에서 마한이 백제로 전환되는 고고학적·역사적 발판"이라고 말했다. 김관장은 "상운리 유적은 정치·사회·문화·기술·이념 등 당시 사회체제가 압축돼 있는 고고학적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상운리」는 총 3권으로 구성됐다. Ⅰ권에는 상운리 분구묘에 대한 조사방법과 조사내용이, Ⅱ권에는 분구묘와 목관묘군에 대한 조사내용이, Ⅲ권에는 생활유구와 분묘·유적에 대한 고찰 등이 담겼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10.05.11 23:02

영상을 만난 문학, 어디로 가야 하나

"1960-1970년대 아날로그 문학인의 눈으로 볼 때 만화 같은 내용 및 형식의 2,30대 디지털 세대 문학과, 젊은 디지털 문인들에게 이조 잔영(과거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노후한 문학이 공존하고 있다. 안타까움은 그러나, 이 공존이 화평의 공존일까 하는 의문에 있다."문학 평론가 김주연(69ㆍ한국문학번역원장)씨는 최근 출간한 '문학, 영상을 만나다'(돌베개)에서 문단에 일고 있는 영상문화의 바람을 냉철하게 바라봤다. 김씨는 "2000년대 이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일군의 젊은 소설가들은 이미 전통 서사에서 벗어나 소설 자체가 하나의 영상 내지 만화와 같은 공간을 빚어내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는 최근 젊은 소설들을 거의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씨는 만화의 종주국인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한국은 소설에서도 그 영향이 적지 않아 만화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폭력과 섹스가 소설 속에 강하게 스며들어 있으며 여기에 이들이 혼합해 만들어 내는 자학과 공포가 회화적인 분위기를 타고 어두운 화상을 빚어낸다고 주장한다. 이런 분위기는 소설만이 아니라 시에서도 영화가 보여주는 "검은 영상"을 만들어낸다고 덧붙였다. 이제 "개인의 인격적인 완성 추구와 윤리 문제를 갖고 고민했던 1960년대 이후의 문학적 가치는 더이상 아름다움으로 존중되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안타까워할 정도다. "종이 문화 전통의 끝에 앉아 있는 세대의 문학인"인 김씨는 새롭게 대두된 영상 문학에 어느 정도 비판적인 시각이 잠재돼 있다고 고백한다. 그 이유는 영상 문학의 특징이 명멸에 있음에 반해, 각인을 특징으로 하는 활자 문학은 삶의 순간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앞서 말한 활자 문학과 영상 문학의 '화평'을 위해 아날로그는 디지털을,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배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디지털을 배경으로 한 인터넷 문화, 영상 문화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 하더라도, 근대 문명의 축이 되어 온 종이 문화와 책의 근간이 되는 아날로그 시대가 단순 배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양자의 상호 연구는 이 시대 문학의 불가피한 요체가 아닐 수 없다." 돌베개 출판사의 '석학인문강좌' 시리즈 열 번째 책이다. 262쪽. 1만2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5.07 23:02

28일 법정스님 49재…스님 조명한 책들 '유감'

지난달 11일 오후 1시51분 입적한 법정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매주 수요일 진행돼온 49재가 28일 오전 10시부터 열리는 순천 송광사의 49재 막재(終齋)로 마무리된다. 49재는 끝나지만, 법정스님이 법문과 책을 통해 남긴 무소유의 정신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간직해야 할 맑고 향기로운 가르침이다. 법정스님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지고 가지 않겠다'며 자신이 쓴 책들을 절판하라고 유언, 법정스님의 유지를 받든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와 출판사들은 기존 책들을 올해 연말까지만 판매하기로 했다. 하지만, 법정스님의 49재에 맞추기라도 한 듯 법정스님을 기리는 책들이 최근 소설이나 전기, 산문 등 형태로 쏟아져 나왔다. 과연 이 책들은 법정스님의 뜻을 잘 받들고 있는지, 불교계에서는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설로 재구성한 법정스님의 생애 = 소설가 정찬주씨와 백금남씨가 최근 나란히 '소설 무소유'(열림원), '법정-맑고 향기로운 사람'(은행나무)을 내놓았다. 동국대 국문과 출신으로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소설을 여러 권 내온 정찬주씨는 '소설 무소유'에서 법정스님이 전남대 상대 시절 출가를 결심하고 입적할 때까지를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로 재구성했다. 해남과 목포에서 지낸 법정스님의 청년기, 행자 시절과 다래헌 시기 등 생애 전반기의 삶에 집중했으나 후반기로 갈수록 밀도가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다. 법정스님의 맏상좌 덕조스님, 역시 법정스님의 상좌로 길상사 주지이자 맑고향기롭게 이사장 직무대행인 덕현스님, 법정스님의 속가 조카이면서 맑고향기롭게 이사인 현장스님의 추천글이 붙었다. 역시 불교관련 소설을 많이 출간해온 백금남씨가 5년간 집필했다는 '법정-맑고 향기로운 사람'은 역시 법정스님의 출가와 사회참여활동, 입적까지를 그려냈다. 출판사측은 책은 법정스님이 30대에 쓴 시 4편을 발굴해 수록, 산문인 뿐만이 아니라 시인이었던 법정스님을 재조명해 차별화를 꾀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평전 전문 작가가 법정스님의 일대기를 재구성하고 산문집 내용도 곁들인 책, 법정스님과 함께 일하던 시민단체 관계자가 펴낸 책 등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대체로 법정스님이 남긴 여러 산문집과 법문들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법정스님의 머리를 깎아준 은사 효봉스님을 비롯한 사형과 도반 이야기, 여러 에피소드들이 소설 등의 옷을 갈아입었으나 지금껏 공개된 것 이상의 새로운 내용은 드물고, 심지어 법정스님의 산문이나 법문 내용을 그대로 발췌해 실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 일부 법정스님 지인들의 평가다. 조계종의 한 스님은 "소설의 경우, 법정스님의 생애를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복원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지 의문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맑고향기롭게' 관계자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요즘 '법정스님의 000'하는 책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다 챙겨보고 있는 중이지만 결국은 스님의 글을 짜깁기한 것들이다. 어찌 그리 재주들이 좋은지…"라고 아쉬워하면서 "우리에게는 스님의 글이 있다. 그 글을 보고 읽으면 되지 다른데 시선을 팔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저작권 침해의 소지마저 다분한 책들도 있다. 맑고향기롭게 관계자는 "한 출판사에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내용 증명을 발송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출판사들이 교묘하게 법정스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지만 떠들썩하게 시비를 하는 것 자체가 스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염려도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송광사 49재ㆍ추모 다큐 = 28일 순천 송광사에서 열리는 49재는 법종소리와 함께 시작돼 법요식에 이어 상좌스님 등의 헌향, 헌다 등과 함께 법정스님의 생전 법문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순서가 마련된다. 1만여명(송광사 예상)이 참여할 이번 49재에서는 전(前)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법문을 하고 길상사 합창단의 조가, 송광사 주지 영조스님의 인사 등이 이어진다. 약 1시간에 걸쳐 49재가 끝나면 법정스님이 기거하던 송광사 불일암에서 산골(散骨)의식도 거행된다. 조계종에서는 지관스님을 비롯해 자승 총무원장 스님, 혜총 포교원장 스님, 중앙종회의장 보선스님 등이 49재에 참석하고 송광사 사중에서는 원명, 법흥, 현호스님 등이 참석한다. 한편, BBS불교방송에서는 법정스님의 49재를 맞아 추모특집 다큐멘터리 '꽃들아 수고 많았다'를 27일 오후 3시 방송하고 28일 오후 3시와 29일 오후 5시에 재방송한다. 또 스님의 60년 지기 친구인 박광순 전남대 명예교수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수준 높은 철학적인 책을 애독하던 법정스님의 면모를 전한다. 스님이 불일암으로 떠나기 전까지 생활하던 봉은사 다래헌 시절 '씨알의 소리'에 투고하기 위해 작성한 '악을 선으로 바꿈'이라는 원고도 소개한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4.28 23:02

"정 많고 인간적인 법정스님 그려"

"법정스님은 '베푼다'는 말을 싫어하셨어요. 내 것이 없는데 어떻게 베푸느냐는 것이지요. 다만, 갖고 있다가 돌려주는 것이니 나눈다는 말을 좋아했습니다. 이것이 무소유지요. 정이 많고 인간적인 스님이셨습니다."작가 정찬주(57)씨가 지난 3월 11일 입적한 법정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그린 '소설 무소유'(열림원)를 냈다. 정씨는 1984년 출판사 샘터사의 편집자로 스님을 처음 만나 스님의 산문집 10여 권을 펴내는 등 인연을 쌓으며 재가제자(在家弟子)가 돼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의 무염(無染)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책 출간을 맞아 26일 서울시내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씨는 스님이 오래 머물렀던 송광사 불일암을 찾아갈 때 스님이 들려줬던 어린 시절 이야기 등을 메모해 이번에 책을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스님에게 '좋은 말씀' 한마디를 부탁했어요. 그럴 때면 스님은 불일암 토굴에 앉아 건너편의 조계산을 가리키며 침묵하는 저 산을 바라보면 답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침묵 속에서 지혜를 얻지 못하니 인격이 완성되지 않는 것이라 하셨죠."스님은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다면서 굴참나무로 만든 의자를 '빠삐용 의자'로 부르며 자신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했다고 전했다. 속가의 인연을 끊어야 하는 스님에게 여동생은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사연이다. 정씨는 "스님이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고등학생 때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여동생을 낳았다"며 "스님은 여동생을 낳기 이전의 어머니만 인정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을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아서였는지 스님이 첫 탁발을 나갔을 때 예닐곱 여자아이가 있는 것을 보고는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고, 여동생 또래 아이들만 보면 그렇게 예뻐했다고 한다. 스님이 서울에 오면 관객이 적은 아침 일찍 영화를 종종 보곤 했는데, 한 번은 단성사에서 주인공들이 오누이 사이로 나왔던 '서편제'를 보는 도중 손수건을 꺼내 자꾸 눈물을 훔쳤고, 강원도 오두막에서는 박항률 씨가 그린 단발머리의 '봉순이'를 한동안 걸어놓고 살았다. 스님은 입적하기 며칠 전 찾아온 여동생에게 "꿋꿋하게 살라"고 말했고 이후 여동생이 뭔가 말하려 하자 "내가 다 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애틋한 연민의 정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스님이 "선방의 울타리를 벗어나 '법정스님식'으로 선승이 나아갈 길을 보여줬다"며 "남의 흉내를 내지 않은 수행자이자 '나도 없는데 하물며 내 것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마음으로 참다운 무소유 사상을 바탕으로 정진한 수행자"라고 평했다. 자신의 출판물을 절판하라는 스님의 유언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스님의 책에서 지혜를 얻기보다는 좋은 말만 쫓으니까 그것을 '말빚'이라 보셨을 것"이라며 "그 유언은 그 말빚을 지지 않기 위해 스님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사자후'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스님은 아이들이 마음을 다칠까 봐 고학생을 직접 불러 장학금을 준 적이 없다며 "광주에 갈 때면 고전음악감상실 '베토벤'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고지서를 갖다놓으라 하셨을 정도"라고 전하기도 했다. 책에는 초등학교 5학년 산수 시간에 일본인 흉내를 내는 조선인 담임교사에게 반감을 표시하다 고무 슬리퍼로 폭행당했던 일, 목포로 가서 중학교에 다닐 때 납부금을 내지 못해 울었던 이야기 등도 실렸다. 정씨는 "언젠가 스님의 말씀을 글로 한 번 정리해보겠다고 하자 미소를 짓더라"며 "이 책을 보면 기특해 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책 내용은 법정의 맏상좌인 덕조스님, 제자 덕현스님, 조카 현장스님의 자문과 감수를 받았다고 출판사는 설명했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4.27 23:02

"참으로 아름다운 작가 최명희"

"수금 많이 해주면 고맙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원래 말을 가지고 장사하면 인간이 망가지는 건데 말이죠. 말 장사는 역사에다 팔아야지 시장 바닥에 파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25일 전주 최명희문학관을 찾은 이기웅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70)은 도서출판 열화당(悅話堂)의 발행인이다. 열화당은 어린 시절을 보낸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있는 기와집 선교장(船橋莊)에 있는 사랑채 이름. '가까운 이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라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왔다."30만개 공구를 만드는 데는 그 공구를 만드는 3000개의 공구가 필요합니다. 3000개의 공구를 만드는 데는 그 공구를 만드는 300개의 공구가 필요하고, 300개의 공구를 만드는 데는 30개의 공구가 필요합니다. 요즘 시장주의자들은 많이 팔리는 30만개의 공구만 만들려고 하는데, 이는 말과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출판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것이죠."그는 "출판은 말장사"라며 부끄럽다고 했다. "책 내기가 두렵다. 무슨 책을 내야할 지 겁이 난다"고도 덧붙였다."출판 뿐 아니라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위선과 혐오에 찬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민족은 동족간 싸움이었던 6·25를 치르면서 말이 험해지고 정신도 거칠어 진 것 같습니다."이 이사장은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했다."'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과 같이, 말도 말을 만든 태초의 말이 있었고 문학도 문학을 만든 태초의 문학이 있었습니다. 작가 최명희는 말을 만든 태초의 말과 같고, 문학을 만든 태초의 문학과 같습니다."최명희문학관 개관 4주년을 맞아 '내가 아는 작가 최명희'를 주제로 강연한 그는 최명희를 "나보다 일곱살이나 어렸지만 어마어마한 작가였다"며 "참으로 아름다운 작가"로 기억했다."작가 최명희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세 하나 화법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작가 최명희의 말과 문학 또한 그렇습니다. 작가 최명희는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운 한국 최고의 여성이었습니다."이 이사장은 출판사 대표로 최명희와 인연을 맺었다. 열화당 '한국의 굿' 시리즈 중 「은산별신굿」(1986)을 사진작가 김수남 선생과 공저했다. 이 책에는 최명희 선생의 미완성 장편소설 '제망매가'의 모티브가 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10.04.27 23:02

붓다의 세계와 불교 우주관

불교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온 천문학자인 이시우 서울대 명예교수(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가 불교와 천문학을 접목한 또 한권의 책 '붓다의 세계와 불교 우주관'(민족사 펴냄)을 출간했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4월까지 24회에 걸쳐 불교TV 방송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은 책이다. 책에서 저자는 초기 불교 경전에 있는 석가모니 부처의 말을 통해 부처의 인생관과 우주관을 살펴봤다. 이를 위해 천문학적 세계관과 불교의 세계관을 비교해 살펴보면서 불교는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근본으로 하는 자연중심사상을 지닌 종교라는 것을 주장했다. 이시우 박사는 "불교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에 대한 진리를 펴 보여 첨단우주과학시대에 가장 알맞은 종교"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불교는 붓다의 이런 우주관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좁디좁은 인간의 마음에만 관심을 두고 신앙불교와 수행불교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ㆍ인간은 모두 부처라는 사상)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면서 "그 결과 오늘날 첨단우주과학이 지향해 갈 방향이나 지구환경의 위기에 대응해야할 방법에 대해 불교가 대처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고 꼬집었다. 저자는 한국 불교 출가자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과거에는 재가자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한문교육을 받고 경전을 공부한 출가자들이 재가자들의 훌륭한 스승이 됐지만 오늘날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재가자들이 최소한 고등학교 이상의 수준으로 좋은 교육을 받고 또한 현대 문명의 이기를 잘 활용하고 있는데 출가자들의 법문의 질은 현대인의 높은 의식수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출가자들이 권위의식을 버려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대인의 과학적 지식수준에 알맞게 현실에서 경험 가능한 것이 불법에서 다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오늘날 한국불교의 불자들이 자신있게 답할 수 있어야한다"며 "그렇지 못하다면 신앙중심의 불교는 믿지만 진리의 불법은 마음 밖에 존재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512쪽. 2만5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4.23 23:02

비참하고 사소한 현실에서 읽는 해학

지난 3월 장편 '군대 이야기'(자음과모음)를 출간했던 작가 김종광(39) 씨가 새 소설집 '처음의 아해들'(문학동네)을 냈다. 책에는 때로는 비참하고, 때로는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는 현실을 작가 특유의 해학과 익살로 그려낸 단편 9편이 실렸다. 표제작은 지방 소도시의 스승과 제자들의 이야기로 전교조 교사와 그가 첫 담임을 맡았던 제자 열한 명이 모임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현실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영원한 문제 스승'의 약칭으로 '영문승'으로 불렸던 교사는 교과서 이외의 얘기에 으레 "민주, 평화, 통일, 공존, 정의, 진실, 사필귀정"이라는 단어들을 썼다. 제자들은 공부하라는 말도 잘 안 하고, 자율학습 빠져도 제대로 한 번 패지도 않았던 교사에게 이제 술김에 "선생님 같은 참교육 담임을 안 만나고 개백정같이 잡아주는 담임을 만났으면, 4년제는 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을 드러내며 원망 섞인 말을 한다. 또 다른 수록작 '우라질 양귀비'는 일부러 키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와 싹이 튼 양귀비 때문에 경찰서에 끌려간 '음순'네 이야기다. 음순은 누가 경찰에 자신을 신고했는지 알아내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수지 상류 쪽 방갈로 패권을 두고 다투었던 '맛나슈퍼 김화투'네, 자신이 도둑놈으로 몰아 마음 상하게 했던 '백수 청년' 등 마음에 걸리는 마을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책에는 이밖에 자식에게는 "흙 파먹고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죽을 똥 싸가면서 공부시킨" 아버지와 "펜대 굴리는 삶"을 사는 아들 사이를 그린 '내시경'을 비롯해 소시민의 다양한 삶을 그린 단편들이 수록됐다. 해설을 쓴 문학 평론가 이선우 씨는 소설 속 등장인물에 대해 "딱히 누구를 주인공이라고 꼽을 수 없다"며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는 일파만파는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이를 통해 드러나는 다양한 인물의 면면과 그들이 엮어가는 삶의 가락이야말로 김종광 소설의 매력"이라고 적었다. 352쪽. 1만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4.22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