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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전라도 장인 33인'

신부자의 「전라도 장인 33인 : 신부자의 장인탐구」(전주문화원, 1998)는 저자가 PD로서 전주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을 위해 '전라도의 장인정신' 시리즈로 취재했던 것을 책으로 펴낸 작품이다. 대단히 휼륭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살 수 있는가? 쉽지 않을 것이다. 10여년전에 나온 책이라서 구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지난해 아니 올해 나온 책이라도 우리 지역에서 출간된 책은 돈 주고 사겠다고 발버둥쳐도 사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난 1년간 연재해온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을 오늘로 끝내면서, 지역출판의 현실에 대해 평소 해온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다.내가 신부자의 「전라도 장인 33인」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탄탄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지역사랑과 지역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모범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지역경제와도 연관된 문제이다. '책'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시대에 무슨 책이냐는 식이다. 엄청난 착각이라는 걸 힘주어 말하고 싶다. 이른바 창구효과(window effect) 때문이다.미디어업계에서 창구효과란 하나의 프로그램을 서로 다른 시점에서 서로 다른 채널을 통해 공급하여 프로그램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적인 배포방식을 의미한다. 예컨대, 한번 방송된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은 이후 케이블TV, 위성방송, 지역민방, 인터넷, 비디오, DVD, 해외수출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 게임, 음반, 캐릭터 등과 같은 부가산업이나 드라마 촬영지의 관광상품화까지도 활성화시킨다. 바로 이런 창구효과를 통해 프로그램은 각 미디어의 성격에 맞게 변형되고 계속 재활용되어 하나의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원 소스 멀티 유스(one-source multi-use)'의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김지운·정회경의 「미디어 경제학」)이런 창구효과의 기본이 되는 미디어가 바로 책이다. 전북의 미래산업으로 '영상'이 외쳐지면 질수록 그 콘텐츠 공급원인 책과 출판의 가치도 인정받아야 할 터인데, 우리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귀찮다고 뿌리를 자른 채 나무를 심는 꼴이다. 전북지역내 큰 서점들을 가서 살펴 보시라. 전북에서 출판되었거나 전북을 다룬 책들이 별도의 코너로 마련돼 있는가? 아니 그런 코너가 없어도 좋다. 책이 있기는 한 건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전북을 알고 싶어 미치겠다는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책을 선뜻 소개해줄 수 있는가? 그런데 그 책을 구할 수는 있는 건가? 전북의 출판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신아출판사의 이름을 아는 전북인은 얼마나 될까?전북 관련 책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언젠가 신아출판사에 직접 연락을 해 그간 나온 책을 모두 한꺼번에 구입한 적이 있다. 사실 신아출판사야말로 전북학의 총본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간 지역 관련 책들을 많이 출간해왔다. 이 책들을 널리 읽히게 하는 동시에 더욱 많은 필자들이 전북사랑·전북연구에 뛰어들게 할 수는 없을까?참으로 유감스러운 사실이지만, 기존 '시장논리'는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잘 아실 것이다. 한국시장 전체를 상대로 한 책도 나가질 않아 출판사들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인구 200만도 안되는 전북에서 '시장논리'에 따른 출판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하는가? 좋다. 그게 모든 전북인의 뜻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으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말하는 전북인은 거의 없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어떤 식으로건 '지역'을 내세우면서 시장논리를 초월한 주장과 호소들을 많이 내놓는다. 물론 그런 일을 위해 적잖은 예산이 투입된다. 그렇다면 책과 출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닌가?책과 출판이라고 하면 촌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각 지자체별로 가칭 '영상 콘텐츠 발전 위원회'라는 민간위원회를 구성해보면 어떨까? 이 위원회가 평가와 심사를 맡아, 전북 관련 책의 출간에 재정 지원을 해주는 건 어떨까? 돈 많이 들지 않는다. 건당 수백만원이면 족하다. 전북발전에 큰 도움이 될 책을 내려는 사람에게 자비(自費) 출판을 하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 아니 그래서 전북발전을 위해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정보·지식·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아예 책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과연 이대로 좋은가?신부자의 「전라도 장인 33인」은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궁금하다. 어디 그뿐인가. 전북의 문화정책에 대한 검증은 그들의 입을 통할 때에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 그 후속편을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전북의 거시적인 발전전략에 대해서도 지역대학의 교수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이 책을 내고, 그걸 근거로 신문지상 논쟁과 방송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지역대학 교수들이 전북을 넘어서 대한민국 전체만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긴 하지만, 더욱 아름다운 건 '땅을 딛고 서 있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보는 게 아닐까?지자체에서 펴내는 각종 간행물들이 많다. 그 상당부분을 민간 영역으로 돌려보자. 관(官)은 아무리 성실하고 양심적이라 하더라도 그 특유의 관료적 매너리즘 때문에 대중과의 적극적인 소통 의지가 약한 법이다. 그간 지자체들이 펴낸 지역 역사서들이 꽤 나와 있다. 돈을 적잖이 들인 만큼 알찬 내용들도 많다. 그런데 아쉬운 건 책을 시장에서 팔아 보려는 마인드가 없기 때문에 '상품화'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 조금만 더 정리하고 구성을 이렇게 했더라면" 하고 안타깝게 생각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게다가 그런 책들은 한결같이 도서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비매품(非賣品)이다. 누가 도서관까지 찾아가서 그걸 읽으려고 할까?지역내 서점들도 발상의 전환을 해보면 어떨까? 잘 읽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을 지역 관련 책들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한다는 건 손실을 유발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그래서 그건 감히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서점의 구석 한 편에라도 전북 관련 서적들을 모아서 작은 코너 하나쯤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야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겠지만, 손해를 보면 얼마나 보겠는가? 하나의 새로운 풍토를 만들어나가는 일이고, 바람직한 풍토 조성이 이루어진다면 그 만한 보상이 반드시 뒤따를 것이다.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무슨 '지역'이냐, 전북도 범수도권이다, 그러니 서울 하늘 바라보면서 살아가자, 지역대학 가려는 학생들에겐 어떻게 해서건 서울소재 대학 가라고 모멸하고 압박을 넣자, 그렇게 거창하게 살아야지 쫀쫀하게 무슨 시대착오적인 전북 타령인가? 민관(民官) 합동으로 이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넌센스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보자. 왜 순창 고추장이 유명한가? 당신은 그걸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가? 「전라도 장인 33인」의 '문정희편'(336~345쪽)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0.03.26 23:02

국립전주박물관, 어린이 전시유물감상 프로그램 개발

국립전주박물관(관장 김영원)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전시유물 감상 프로그램 '고대문화실 보물찾기'를 개발했다.이 프로그램은 고대문화실 입구에 비치된 활동지를 가지고 유물을 찾아 관찰하고 퀴즈와 과제들을 풀어나가는 방식. 활동지는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저학년용'과 초등학교 고학년 및 중·고교생을 위한 '고학년용',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해설서 등 3종류로 나뉘어져 있다. 전시실 동선에 따라 고인돌문화, 청동기시대 제사장, 토기, 익산 입점리 금동신발, 가야의 병사, 백제 무왕, 부안 죽막동 유적 등으로 구성했다.학예연구실 교육담당 이정원씨는 "그동안 박물관을 방문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유물을 어떻게 보고 느껴야 하는 지에 대해 많은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은 좀더 쉽고 재밌게 유물을 이해할 수 있고, 박물관은 어린이들의 관심과 흥미요소, 전시에 대한 반응 등의 자료를 수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고대문화실 보물찾기'는 고대문화실 입구에서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40명 이상 단체의 경우 박물관 교사의 지도도 받을 수 있으며, 보물찾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참가자 중 매월 두 명을 선발해 선물도 증정한다. 상반기 중 미술실과 민속실의 보물찾기도 개발할 예정이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10.03.25 23:02

시와 시인, 그리고 독자와의 친밀한 만남

가난과 슬픔의 시인 박재삼. 시인은 평소에 책상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엎드려 시를 쓰고 고치고 또 고치고 이것이 시인의 삶이었다. 천상병은 젊은 시절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했다. 삶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의 낙천적인 인생관은 막걸리 한 잔으로 응축되어 있다.육사는 자신의 작품 중 '청포도'를 가장 아꼈다. "어떻게 내가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라며 육사 스스로 감탄했다. 당시 그와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은 육사가 이 작품을 쓰고 "내 고장은 조선이고, 청포도는 우리 민족인데, 청포도가 익어 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 그리고 곧 일본도 끝장난다."고 말했다고 한다.박재삼 김춘수 유치환 천상병 이형기 이육사 구상 박목월 이호우 이상화 조지훈. 「추억의 詩, 여행에서 만나다」(도서출판 경진)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에 삶의 흔적을 남겨놓은 시인들을 좇고 있다. 양병호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비롯해 노용무 이승철 송지선 이강하(전북대 강사) 정유미(중국 중산대 강사) 김형근(남원여고 교사) 신혜원(양주 회천중 교사) 박지학(전북대 박사과정) 백장완 박선미(전북대 석사수료) 등 전북대에서 시를 공부한 이들이 글을 썼다.이들은 연구서 보다는 대중들에게 시를 소개하는 안내서로서 시와 독자의 행복하고 친밀한 만남을 꿈꿨다고 했다. 방학과 휴일을 이용해 시인들의 고향과 생가, 문학관, 시비 등을 찾았으며, 시인의 고향 마을 언저리에서 일박을 하며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밤 세워 술을 마시며 온 몸으로 시인의 시정신에 감염되려고 했다. 시 연구의 학문적 압박으로부터 벗어난 이들 역시 그동안의 답답함을 풀어버릴 수 있어 즐거웠다.양병호 교수는 "시 연구자들은 대개 작품 위주로 보는데 시인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고 부각시키고 싶었다"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시에 대한 열병을 앓고, 직접 시인의 고향이나 생가를 찾는 처방으로 열병을 치유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때문에 시인과 시 선택은 의외로 쉬웠다. 우리 시문학사에 의미가 있는 시인들을 택했으며,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그들의 시를 골랐다. 대신 시인이 살았던 공간에 대한 현장 조사를 통해 시를 이해하려고 했으며, 시인의 시정신을 기행의 서정과 결부시키려고 노력했다. 일반 독자들을 위해 해설 텍스트와 사진을 병행 편집했으며, 편안한 문체로 풀어썼다.2년 전 이미 전라도와 충청도를 돌아보고 「그리운 詩, 여행에서 만나다」를 펴내기도 했던 이들은 내년 서울·경기·강원도 지역의 시인들로 다시 책을 낼 계획이다. 나중에는 중국 연변의 조선족 시인들과 일본의 재일교포 시인들도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물론, 남북통일이 되고 나면 북쪽 시인들과 그들의 시도 만나고 싶다.

  • 문학·출판
  • 도휘정
  • 2010.03.19 23:02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뇌물의 역사

(사례 1) "얼마 전 미국 뉴욕 타임스에 우리나라의 경조문화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기사는 뇌물인지 선물인지 모를 돈 봉투를 줄 서서 기다리다 내고, 결혼 당사자보다 부모의 하객이 훨씬 많고, 축하하러 온 건지 밥 먹으러 온 건지 '눈도장' 찍자마자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의 모습 등 불합리한 우리의 결혼문화를 잘도 꼬집었다."(중앙일보 2009.12.14)(사례 2) "서울시교육청은 인사 때마다 뒷말이 많은 곳이다. 인사를 전담해온 어떤 과는 '무슨 무슨 지역 마피아의 돈지갑'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어떤 인사 때는 인사 상납금이 '따블'이 됐느니 '따따블'이 됐느니 하는 말까지 돌아다녔다. 돈을 주고 교감·교장, 장학사·장학관 자리를 꿰찬 사람들이 일선학교나 교육청에서 무슨 일을 할 건가는 보나마나다. 교육보다는 본전 챙기기에 급할 수밖에 없다. 교육청 발주(發注) 건물은 10년만 지나면 금이 간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조선일보 2010.1.25)(사례 3) "양산시장이 지난해 11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의 원인은 시장 선거를 치르면서 빌린 60억원인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24억원의 뇌물을 받고 부동산 개발 청탁을 들어준 것이다. 이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상당수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들이 수십억원의 직간접적인 선거비용을 쓰고 당선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한국일보 2010.2.1)한국은 '뇌물 공화국'인가? 굵직한 뇌물 관련 사건이 끊임없이 터지고, 신문지상엔 크건 작건 뇌물 사건이 빠지는 날이 하루도 없으니 말이다. 흥분하기보다는 차분하게 '뇌물'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미국의 법조인이며 법학자인 존 T. 누난(John T. Noonan)이 쓴 「뇌물의 역사」(이순영 옮김, 한세, 1996)는 뇌물이 의외로 매우 복잡한 사회적 현상임을 말해주고 있어서 흥미롭다.뇌물 연구의 최대 장애는 '선물'과 '뇌물'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다. 인류 역사 이래로 늘 이게 쟁점이었다. 선물과 뇌물 사이의 경계를 짓는 일에 보편주의는 적합지 않다는 게 문화 상대주의에 친화적인 문화인류학자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뇌물'이라는 말을 아예 사용하지 않으면서 그것도 선물로 보았다. 선물과 뇌물의 경계를 가르는 게 쉬운 일도 아니다. 청교도 정신이 강한 미국 연방법원조차 뇌물과 선물을 구분하려는 시도를 했었지만 매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에 머무르고 말았다.뇌물이라 한들 그게 나쁘기만 한 거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교수 제임스 윌슨(James Q. Wilson)은 1968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글에서 "부정부패는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하면서 '통합적 부패'와 '분열적 부패'를 구분했다. '통합적 부패'는 엘리트 내부의 분열로 인한 폐해를 방지해 결과적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었다.제임스 스코트(James C. Scott)는 1973년에 출간한 「정치적 부패의 비교」라는 책에서 제3세계에서 부패가 횡행하는 이유를 ①이들 나라에는 선물을 주고받는 전통이 강하다, ②인맥·학맥·혼맥 등 인간관계의 유대를 지나치게 중시한다, ③뇌물보다 더 큰 반대급부를 정부로부터 받아낼 수 있다, ④각종 사업에 정부의 간섭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 ⑤사회의 다른 분야에 비해 관료조직의 힘이 너무 크다, ⑥공무원들의 신분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농부들의 존경을 받는다 등 6가지를 지적했다.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닉슨 행정부에 관한 이야기다. 닉슨 행정부라고 하면 당장 떠오르는 생각이 워터게이트를 포함한 각종 비리 스캔들이다. 그런데 미국 역대 행정부 중 가장 강력한 반(反)부패법을 제정한 주역이 바로 닉슨 행정부라니, 재미있지 않은가.1970년 닉슨 행정부는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와의 협조속에 '사기 및 부패금지법(Racketeering Influenced and Corrupt Organization Act: RICO)'을 제정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 법은 매우 강력한 반부패법이어서 미국인권연합이 우려를 나타낼 정도였다. 물론 이 법에 대한 대중의 인기는 매우 높았다.이 법 덕분에 1970~1977년 사이에 43명의 시장, 44명의 주 사법부 판사, 60명의 주의회 의원, 260명의 경관들이 연방정부에 의해 뇌물죄로 기소되었고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았다. 종합해 보자면, 369명의 주정부 공직자와 1,290명의 카운티 관리들이 부패로 인해 유죄판결을 받았다. 닉슨 행정부의 부통령 스피로 애그뉴도 이 법의 희생자가 되어 중도 사임했다.그런데 궁금한 건 왜 하필 1970년 그것도 온갖 스캔들로 얼룩진 닉슨 행정부에 의해 이런 강력한 법이 제정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이것은 어떤 특정개인의 힘이 아니라, 사회 전반을 주도하는 도덕관과 가치관이 그렇게 시킨 것이라 보아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1960년대 학생운동의 주된 목표는 베트남 참전을 반대한 것이었으나, 이 운동을 계기로 해서 정당·정부 등 사회적 권위에 대한 회의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런 사회적 권위를 인정해준 기존의 법에 대한 회의감이 생겨나, 보다 더 강력한 도덕적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욕구가 태동했다. 법관들도 법의 권위와 공정성을 보장하는 신법(新法)의 제정에 찬성했다."그게 전부일까? 좀더 심층적인 이유는 없는 걸까? 저자는 미국의 성도덕 변화에 따라 '순결'이 사라진 세태의 정점이 1960년대 말이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한다."과거에 성문제에 대한 순결규칙(혹은 사회적 오염을 예방하는 규칙)은 사회에 어떤 질서를 부여하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그런 순결 규칙이 힘을 잃어버리자, 공직자에 대한 순결을 강조하는 대체적 규칙이 힘을 얻게 되었다. 고대에는 성적 타락이 곧 인격의 타락을 의미했고, 그래서 뇌물을 묘사할 때 성적 비유가 많이 쓰였다. 이것은 반뇌물윤리와 성윤리가 모두 사회의 오염을 막아 주는 강력한 힘이었음을 반증해 준다. (…) 유산·간통·피임·간음·동성연애 등을 금하고, 결혼을 장려하고 이혼을 죄악시하던 성윤리가 서서히 퇴조하면서, 그 자리에 공직자들이 직무상의 결백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대두된 것이다. 이제 성윤리의 책임이 면제된 선거구민들은 제 멋대로 성에 탐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 사회를 지탱하는 힘으로서의 공직자들이 대신 순결해져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뇌물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주장임엔 틀림없다. 우리는 편리한 이중기준을 갖고있는 건 아닐까? 나의 선물은 선물일 뿐이지만, 너의 선물은 뇌물이라는 식의 이중기준 말이다. 또 하나의 이중기준이 있다. 부정의 규모에 의한 상대 평가다. "그 돈을 먹었다 해도 그렇지, 지들이 해처먹은 것과 비교하면 그거 껌값 아니오?" 언젠가 어느 택시기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강력 옹호하면서 그렇게 외쳐대기에 그저 잠자코 먼 산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0.03.19 23:02

최하림 시인의 러시아 기행

최하림(71) 시인의 러시아 기행기 '최하림의 러시아 예술 기행'(랜덤하우스)이 출간됐다. "오랫동안 시베리아를 마음속으로 그려"왔다는 시인은 2004년과 2006년 두 차례 러시아에 다녀왔다. 문인들과 교사, 이들의 가족 등이 함께한 여행에서 시인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푸슈킨 등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 배경지와 집, 기념관을 찾았다. 먼저 시베리아에서 광활한 대지를 본 시인은 "시베리아는 검은 몽상과 검은 침묵의 땅"이라며 "러시아의 모든 작가와 시인들은 시베리아의 검은 몽상을 경험하고서 러시아의 대작가가 된다"고 말한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체호프도 스카초프도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하거나 시베리아에서 살거나 시베리아를 경험했다. 그들은 수백 리 자작나무 숲을 헤맸다."(26쪽)시인은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버스와 지하철, 택시를 번갈아 타며 소설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를 집필한 이층집을 찾아 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리기도 했다. 책은 러시아 문호들의 자취를 좇으면서 그들의 작품과 등장인물에 대한 시인의 해석도 담았다. 또한,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 자연, 여행지의 감상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폭넓은 시선을 적고 있다.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 시인은 '우리들을 위하여',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 등의 작품집을 냈다. 지난 2월에는 '최하림 시 전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다. 2002년 경기도 양평에 정착한 시인은 지난해 간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208쪽. 1만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17 23:02

6.25 이후 6단계 정리 '남북관계 변천사' 발간

6.25전쟁 이후 현재까지 남북관계 흐름을 6단계로 나눠 정리한 책이 발간됐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 기획통제실장을 맡았던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은 최근 발행된 '남북관계 변천사'(연세대학교 출판부. 495쪽. 2만2천원)에서 6.25 이후 남북관계를 '폐색기', '태동기', 정립기', 화해협력 모색기', 화해협력 진입기', '조정기'의 6단계로 구분했다. 1단계는 전쟁 후 1969년까지 '남북관계 폐색기'로, 양측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은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 배타적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고, 2단계는 1970∼1979년의 '남북관계 태동기'로 국제적 데탕트 물결 속에 7.4남북공동성명이 체결됐다. 3단계는 1980∼1987년의 '남북관계 정립기'로 미얀마 폭파사건 등에도 불구하고 적십자, 국회, 경제, 체육 등 분야에서 남북 회담이 열렸고, 4단계는 1988∼1997년의 '화해협력 모색기'로 노태우.김영삼 정권 시절 '기본합의서' 체결 등에 힘입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 5단계는 1998∼2007년의 '화해협력 진입기'로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에 두 차례 정상회담이 열려 금강산 관광과 남북간 철도.도로 연결 등 중요한 진전이 이뤄졌고, 6단계는 2008년 이후 '남북관계 조정기'로 이명박 정부가 새로운 남북관계 설정 의지를 밝혀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 전 차관은 미래의 남북관계를 위해 "어떤 경우에도 북한을 '대화의 장'에 묶어 둬야만 남북관계사의 흐름을 컨트롤하면서 민족공동체 완성의 소명을 다할 수 있다"면서 "북한의 의도를 먼저 분석하고 대처 방안을 찾기보다 남북관계를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정한 뒤 그에 맞게 상황을 리드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1977년 옛 통일원에 들어와 2003년 차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마칠 때까지 26년간 남북관계 정책 수립에 깊숙이 참여하고 직접 회담에 나가기도 했던 그는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외교센터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17 23:02

[문학] "절판된다니 사놓자" 품귀현상

서울 자양동에 사는 주부 이모(58)씨는 12일 저녁 시내 대형 서점 여러 곳에 전화를 걸어 법정스님의 대표 산문집 '무소유'가 있는지 물었지만 "당분간 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씨는 "뉴스에서 법정스님이 더 이상 책을 내지 말라는 유지를 남겼다고 들었기에 이번이 스님 책을 살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싶어 책을 구해보려 했다"며 "이제 스님의 책들을 읽지 못하게 된 건 아닌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이 11일 입적하기 전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면서 절판을 우려한 독자들이 스님의 저서들을 앞다퉈 사들여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교보문고에서 법정스님 입적 후 저서 판매량이 하루 만에 5배 늘어났으며, 인터파크도서에서도 '무소유', '일기일회', '아름다운 마무리' 등 스님의 산문집과 법문집이 판매량 1∼3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김수환 추기경, 노무현ㆍ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저서들의 판매량이 급증했으나 법정스님의 책들은 서점가에서 공급량이 동날 정도로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에서 전에 없는 현상이다. 대표작 '무소유'와 '홀로 사는 즐거움', '말과 침묵', '텅빈 충만' 등은 오프라인 서점뿐 아니라 예스24, 알라딘, 인터넷교보문고 등 대부분 인터넷 서점들에서도 '품절', '절판', '판매중지'로 안내되고 주문이 불가능하다. 출판계와 서점가는 "지금 아니면 못 구한다는 분위기가 퍼졌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하고 있다. 책들이 더는 출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절판되기 전에 사놓자"는 독자가 몰리고, 독자가 몰리자 품절되는 현상이 빚어졌다는 것. 인터파크도서 오경연 북마스터는 "법정스님의 유지로 현재 더 이상 관련도서의 출간 예정이 불투명함에 따라 갑자기 도서 주문이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출판사로부터 소량씩 도서가 확보되는 대로 한정적으로 판매가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말했다.책이야 찾는 독자들은 많고 재고가 떨어졌다면, 새로 찍으면 될 일이다. 문제는 법정스님의 책을 출간해온 출판사들이 당장 책을 새로 찍겠다고 팔을 걷어붙일 수 없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출판사들은 "모든 출판물을 앞으로 더는 출간하지 말라"는 유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앞으로 책을 더 찍어 독자들에게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뜻을 널리 알려야 할지, 유지로 알려진 뜻대로 절판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일기일회', '아름다운 마무리' 등 근작들을 낸 출판사 문학의숲 고세규 대표는 "스님을 지난 4일 찾아뵈었을 때 새로 나온 '내가 사랑한 책들'을 받아보시고 반기셨다"며 "맺고 끝는 게 정확한 분이라 절판을 바라셨다면 출판사에 말씀했을 텐데 말씀이 잘못 전해지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무소유'를 낸 범우사의 김영석 실장은 "스님의 좋은 뜻이 더 많이 읽혀야 할 텐데 싶고, 절판되면 오히려 무단 복제판이 판칠 수도 있어 걱정"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샘터의 김성구 대표는 "법정스님이 이끄신 시민모임 '맑고향기롭게'의 뜻을 들어보고 절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은 탁월한 문장력과 무소유 철학, 서정적이고 소탈한 내용이 담긴 책들로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스타 작가'이자 '스타 스님'이었다. 특히, 1976년 첫 출간된 '무소유'는 330만 부 넘게 팔려나간 인기 도서이자 황금만능주의를 경계하고 검소하며 단순한 삶을 권하는 내용으로 스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대표작이다. 출판사들은 법정스님이 책 인세를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지 않았나 추측할 뿐, 스님이 직접 "내가 이런 좋은 일을 한다"는 말을 겉으로 내비친 적은 없다고 전했다. 범우사 김영석 실장은 "스님이 인세로 좋은 일을 하셨고 맑고향기롭게 일에 쓰셨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지,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일에 쓰신다는 건지 말씀하신 적은 없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15 23:02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도박

"도대체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가상공간의 재앙'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IT 강국 대한민국에 경고등이 켜졌다. 사이버 세상의 늪에 빠져 치료와 상담이 필요한 인터넷 게임 중독자들이 갈수록 늘어 현실 사회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가상공간의 유혹은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부모가 인터넷 게임에 빠져 생후 3개월 된 딸을 방치, 굶어 죽게 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도 일어났다. 도내에서도 인터넷 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전북일보 3월 9일자 1면에 실린 <인터넷 게임중독: 마약같은 덫, 당신은?>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위와 같이 시작하고 있다. 맞다.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 혹 우리의 작명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인터넷 게임중독'이 아니라 '인터넷 도박중독'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도박'을 '게임'으로 인식한 나머지,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는 건 아닐까?도박의 목적은 돈이지만, 게임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는 반론이 나올 법 하다. 과연 그럴까? 영국의 사회학자 거다 리스(Gerda Reith)가 쓴 「도박: 로마제국에서 라스베가스까지 우연과 확률 그리고 기회의 역사」(김영선 옮김, 꿈엔들, 2006)는 그런 반론이 착각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어 흥미롭다.리스는 도박의 목적은 흥분과 스릴이지, 돈이 아니라고 말한다. 돈은 그 흥분과 스릴을 느끼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도박자는 승리를 위해서 또는 돈을 위해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돈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다. 사실 도박자가 단조로운 게임에서 계속 이기게 되면 쉽게 지루해진다. (…) 우연의 요소, 즉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이 없는 게임은 스릴을 없애 버리고, 단순히 단조로운 노동이 되어버린다. 이 효과는 최고 수준의 포커 도박사들의 행동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집중된 노력과 기술을 통해 많은 돈을 딴 후에, 크랩이나 룰렛 같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도박에 베팅을 해서 그 돈을 잃은 경우가 허다하다."과감하게 게임을 하기 위해서 도박자는 돈 자체에 무관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돈은 도박자의 정신세계에서 평가절하된다. 도박산업은 그런 평가절하를 돕기 위해 돈 대신 '칩'을 사용한다. 경제적 현실이나 금전적 손익 같은 냉혹하고 절실한 느낌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게임에서 칩은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 결과, 도박자는 자신의 손을 통해 흘러 다니는 칼라 플라스틱 조각이 가진 가치의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이런 식으로 플라스틱으로 바뀐 돈은 더 이상 실제 세계의 의미 있는 부분으로 인식되지 않고, 게임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하찮은 말로 간주된다. 그래서 도박자는 자신의 자본금을 쉽게 잃게 되고, 게임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게 된다. 여기에서 돈의 사용은 미래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게임의 다음 판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다. 돈을 거는 순간에 생기는 흥분은 돈의 경제적 가치를 압도한다."이런 이치에 대해 도스토예프스키는 "핵심은 게임 그 자체이다. 맹세컨대, 돈에 대한 욕심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단언한다. 한 도박자는 "돈의 유일한 가치는 당신을 도박 행위에 남아 있게 하는 것이다. 일단 돈이 떨어지면, 자명하다. 당신은 판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인터넷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머니나 게임아이템이 없으면 판을 떠나야 한다. 게임머니나 게임아이템 시장의 거래 규모는 연간 수조 원대에 달한다. 국내 최대 게임 포털인 NHN의 '한게임'은 고스톱과 포커 등 웹보드 게임을 통해 연간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게임의 가입자는 200만 명으로 하루 방문자만 300만 명 이상이다. 정부는 웹보드 게임이 사행성이 높기 때문에 현금으로 게임머니를 거래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동아일보 2009년 8월 14일자에 따르면, "인터넷 게임 사이트들은 개인 캐릭터를 표현하는 아바타를 구매하면 충전해주는 방식으로 사실상 게임머니를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령 휴대전화 소액결제 등을 통해 해당 사이트의 사이버머니를 산 뒤 이를 이용해 아바타를 구매해 게임머니를 얻는 방식으로 현행법을 '우회'하는 것이다. 또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바꾸는 불법 환전도 상당했다.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해주는 이른바 '짱구방'을 통해 현금을 입금받은 게임머니 환전상이 일부러 게임머니를 잃어주는 방식으로 24시간 언제나 불법 거래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A 인터넷 게임 업체의 짱구방에서는 사이버머니 100조 원이 현금 7만∼15만 원, B업체에서는 사이버머니 1조 원이 현금 9만∼16만 원에 각각 거래됐다."또 리니지2, 카발온라인 등 인기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은 중개사이트를 통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팔리고 있다. 게임 아이템, 캐릭터 등 거래를 중개하는 사이트는 보건복지가족부의 고시(2009.3.19)에 따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돼 청소년을 상대로 상거래를 할 수 없지만, 2008년 6월 경찰에 적발된 19개 사이트는 고시 이후 3만4,000여명의 청소년 회원을 가입시키고 88억1,200만원 상당의 게임아이템 거래를 중개한 혐의를 받았다. 적발된 게임아이템 중개사이트들에서 2008년에 거래된 총액만 8,620억원, 매출액은 444억원이었다. 또 1,147만명의 회원 중 청소년이 105만명(9%)에 달했다.도박의 목적이 흥분과 스릴이라면, 도대체 그 정체는 무엇인가? 리스는 "도박 경험의 정점은 흥분이 최고조에 다다르고 도박자가 게임의 열기에 사로잡혀 게임을 계속하면서 주위환경, 자신의 패배, 시간의 흐름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을 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고 말한다."이런 도박에서 도박자는 자기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피곤함도 망각한다. 바로 이 상태가 전설적인 장시간의 도박을 낳았다. 예를 들러 샌드위치(Sandwich) 경(卿)이 게임을 중단하는 것이 싫어서 도박 테이블에 음식을 가져오게 하는 수단으로 샌드위치를 발명한 일화가 대표적이다."샌드위치보다 더 놀라운 걸 발명한 사람이 전주에 있다. 앞서 소개한 ??전북일보?? 기사에 따르면, "하루 종일 인터넷에 빠져 사는 중학생 B군(16?전주시 중화산동)은 자신을 게임 속의 주인공으로 착각, 공격적인 행동을 보였다. 또 화장실을 가는 시간도 아까워 대?소변을 의자에 앉은 채로 본다."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많은 사람들이 도박을 돈으로만 설명하려고 든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도박의 오래된 그리고 광범위한 인기는 보다 근본적인 인간의 관심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라 안전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안전의 욕망? 게임 중독자건 도박 중독자건 모든 중독자들이 가장 못 견뎌 하는 건 바로 권태다. 그들에게 권태는 불안전한 상태요, 흥분과 스릴은 안전한 상태다. 도박에 대한 전문가였던 파스칼은 도박이 권태로부터 벗어나는 유용한 방법인 동시에 위험한 방법이라고 했다.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0.03.12 23:02

"칠서가, 칠서방에서 간행됐다"

김해정 우석대 명예교수가 「시전(詩轉)」의 문고본이 전주 책방인 칠서방에서 간행됐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밝혔다. 칠서방(七書房)에서 간행된 「통감(通監)」의 뒷 표지에서 찾은 지배문서(책의 앞·뒤 표지 속 재활용 폐지)에서 「시전」의 문고본과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는 것이다."창암 이삼만 선생이 규장각의 칠서(七書·사서삼경)를 썼다는 기록은 있는데, 이를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칠서가 칠서방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추론만 해왔는데, 이를 통해 객관적으로 방증할 수 있게 됐죠."문고본은 도포에 넣어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책자로 크기는 15cm x 20cm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책이 오래 되어서 판권지나 출판일자를 가늠할 수 없을 때엔 그 표지 속에 숨어있는 지배문서를 찾아보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자기 책방에서 나온 폐지를 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맥락적으로 살펴 원문의 출처를 밝히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됐다"고 설명했다.김 교수는 간행연대는 미상이지만, 칠서방의 기록 연대가 1916년인 데다 일제가 신 판권지로 교체하기 전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 이전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덧붙였다."고서적들을 수집하다 보니 한 권 한 권이 전부 귀한 자료가 됩니다. 앞으로도 여러 사람이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기록하면서, 후대에 물려주겠습니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0.03.11 23:02

철학으로 분석한 슈퍼영웅의 삶과 정의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헐크… 초능력을 지닌 슈퍼영웅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단골메뉴이자 서구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다.스티븐 에번스 베일러대 교수와 C. 스티븐 레이맨 시애틀퍼스픽대 교수 등 구미 철학자와 전문 작가들은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도서출판잠 펴냄)에서 슈퍼영웅의 삶과 사회 정의를 진지하게 논의한다.저자들은 슈퍼영웅이 쌓은 대중적 이미지를 파헤치기도 하고, 도덕성이나 정체성, 유대관계 등 그들의 '실존세계'를 탐구하기도 한다.저자들의 현미경 안에서 엑스맨, 배트맨 같은 허구적 인물들은 현실적인 존재로 바뀐다.가령, 케빈 킹혼 영국 옥스퍼드대 강사는 "브루스 배너가 헐크로 변할 때 저지른 불법행위로 샌프란시스코 법정에 선다면 유죄인가, 무죄인가?"라는 흥미로운 물음을 던지며 슈퍼영웅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한다."사람이란 자신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즉 시간과 장소가 달라져도 여전히 동일한 생각하는 존재라고 여기는 존재"라는 존 로크의 정의를 바탕으로 보면, 브루스 배너와 헐크 사이에는 기억과 자기인식, 사고의 연속성이 없으므로 동일 인물이라 보기 어렵다.그러나 킹혼은 주위 인물들과 지속적이고 동일한 관계가 이어지는지에 따른 '상관적 정체성'을 적용한다. 연인 베티 로스, 데이비드 배너 박사 등 중요한 주위 인물들이 헐크와 브루스 배너에게 같은 감정을 갖고 동일 인물로 대하므로, 이 둘은 동일 인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저자들은 슈퍼영웅들의 실존 문제에서 더 나아가 이야기를 떠받치는 미국적 또는 서구적 세계관의 실상을 파악해 보기도 한다.영화제작자 출신 작가 매트 모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가지 우정론'을 통해 배트맨의 인간관계를 분석하면서 영웅의 관계 맺기를 풀이한다.배트맨은 중요한 '단짝'인 로빈, 친구에서 적수로 바뀌는 '투페이스' 하비 덴트, 늘 곁에서 자신을 보좌하는 집사 알프레드 등과 우정을 나누지만, 이는 필요에 의해 유지되는 '유용성의 우정'이나 함께 기쁨을 나누는 '쾌락의 우정'에 머물 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완전한 '미덕의 우정'에는 이르지 못한다.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한 우정에 도달하려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상대를 위해 헌신할 수 있어야 하나, 슈퍼영웅이 존재하면 그 외의 친구들은 조역에 머무르기 때문에 관계의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다. 패권국가 미국이 세계에서 차지한 위치의 한계를 시사하는 대목이다.Superheroes and Philosophy : Truth, Justice and the Socratic Way. 하윤숙 옮김. 408쪽. 1만5천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10 23:02

굶주리는 이들, 인간다운 삶 찾는 날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의한 문제점, 국가 간 빈부 격차와 불평등을 고발하고 빈국의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돌려줄 대안을 찾는 책들이 나란히 출간됐다.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세계화가 가져온 기아 문제를 고발했던 장 지글러 유엔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은 신작 '빼앗긴 대지의 꿈'(갈라파고스 펴냄)에서 남반구 주민들의 가난과 굶주림을 부추기는 서구의 '이중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비판한다.지글러는 서구 열강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는 인권선언문을 읊고 바로 뒤돌아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채찍을 휘둘렀던 두 얼굴의 역사가 멈춘 게 아니라 겉모습만 바꾼 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국제기구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경험을 바탕에 깔고 제3세계의 아픔을 그려 나가는 저자의 필치는 생생하고 세세하다.저자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는 세계 8위의 석유생산국임에도 다국적 기업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 노동력 착취, 국부 반출로 가난에 허덕인다. 이들 기업은 현지 정치인들을 열심히 '부패' 시켜 사업권을 확보한다.국제사회 자금까지 잘못 흘러들어 상황을 악화시킨다. 저자는 세계은행(WB)이 훨씬 처참한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돌아가야 할 개발지원금을 나이지리아에 퍼부어 석유기업들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저자는 인류 역사상 '최악'인 현재의 세계 경제 체제가 "세계화한 서양 자본이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을 비롯해 다국적 민간 기업들로 구성된 '용병'들을 이끌고 신자유주의 이념을 무기 삼아 강요하는 체제"라며 비난을 쏟아붓는다.그는 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의 변화에서 희망을 찾는다. 아메리카 원주민 농부 출신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주의 정권은 취임하자마자 에너지 사업을 국유화하는 데 나섰으며 그 재원을 빈곤층 구제로 돌렸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변화는 이어지고 있다.이 책의 최종 주문은 "인류애만을 기억하라"는 것.잘 사는 일부, 못 사는 절반이 동지애를 가지고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꿈꾸는 저자는 "국제사회의 다극화란 인권존중, 전 지구적인 사회계약 존중, 생존에 필요한 공기, 물, 식량을 보호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라는 대가를 통해서만 성공리에 안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양영란 옮김. 312쪽. 1만2천800원.월든 벨로 필리핀국립대 교수의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더숲 펴냄)는 식량 문제에 초점을 맞춰 세계화의 문제점을 짚어본다.식량 생산량은 충분한데도 빈부격차와 분배의 실패 때문에 현대의 빈곤층이 굶주리는 것이 아니라 빈국과 개발도상국의 농촌 경제를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때문에 식량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이 막혀버렸다는 것.지글러처럼 벨로도 IMF나 세계은행을 '주범'으로 지목한다. 특히, 그는 IMF가 1980년대 이후 여러 나라에서 벌인 '구조조정'이 어떻게 제3세계의 농촌 경제를 뒤흔들어놓았는지 파고든다.IMF가 각국 정부에 요구한 정부 지출 감축과 무역자유화는 현지 농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정부의 농업 지원금이 뚝 끊기고 외국의 자본 기업농이 생산한 농산물이 물밀듯이 밀려오자 농촌은 맥을 못 추고 무너졌다.저자가 멕시코, 필리핀, 중국,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농업이 세계화로 어떻게 타격을 받았는지 하나하나 분석한 데 이어 내놓은 대안은 물론 '탈세계화'와 '지역화'다.저자는 식량의 생산량과 소비량, 생산양식과 소비 방식을 결정할 권리가 각 국가에 있는 '식량주권'이 자리를 잡아, 자연에 무리하게 해를 가하지 않는 영세 소농의 활성화와 국가가 관리하는 공정한 가격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김기근 옮김. 288쪽. 1만4천900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10 23:02

'법정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출간

와병 중인 법정 스님(78)이 평소 법회 등에서 언급한 책 중 50권을 골라 소개한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이 출간됐다.법정 스님의 책을 많이 출간한 출판사 문학의숲 편집부는 "법정스님이 평소 법회나 잡지 기고문에서 언급한 책 가운데 300여 권을 고르고 이 가운데 50권을 다시 추려내기 위해 2년여에 걸쳐 스님과 대화했다"며 "스님은 지난겨울 병중인데도 원고를 꼼꼼히 읽고 문장을 바로 잡아주셨다"고 설명했다.50권 중에는 다양한 종교관련 책, 고전이 된 동서고금의 문학작품, 파괴와 착취를 향해 질주해가는 이 시대의 종말을 경고하는 환경서적, 이미 절판된 책 등이 포함됐다.외국책으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제러미 리프킨의 '음식의 종말',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 환경, 명상, 문학, 인권 관련 작품이 다양하게 포함됐다.한국책으로는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김태정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꽃 백가지', '허균의 숨어사는 즐거움' 등 옛날 책과 요즘 책, 창간호부터 줄곧 구독했다는 잡지 '녹색평론' 등이 포함됐다.출판사측은 법정 스님의 책사랑은 출가 이전부터 남달랐다고 전했다.법정 스님은 출가 당시를 회고하면서 "단박에 삭발을 결정하고 얻어 입은 승복까지도 그리 편할 수가 없었건만, 집을 떠나오기 전 나를 붙잡은 것이 책이었다. 그것들을 차마 다 버릴 수가 없어서 서너권만 챙겨가리라 마음먹고 이 책 저 책을 뽑았다가 다시 꽂아놓기를 꼬박 사흘밤. 책은 내게 끊기 힘든 인연이었다"고 했다고 출판사는 소개했다.또 책에 대해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베스트셀러에 속아서는 안 된다", "책에 읽히지 말고 책을 읽으라",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좋은 책의 내용이 나 자신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등 많은 이야기를 했다.출판사측은 책 마지막에는 스님이 법회와 잡지 등에서 언급한 책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엮었다.아울러 스님이 늘 곁에 두고 스승으로 삼는 경전으로 '초발심자경문', '선가귀감', '숫타니파타', '장로게', '정법안장' 등이 있다고 전했다.아울러 스님의 서가에는 경전이나 주석서 못지않게 자주 펼쳐보았다는 '어린왕자'를 비롯해 '꽃씨와 태양', '구멍가겟집 세 남매' 등의 동화가 꽂혀있고, 스님은 성경 가운데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라는 구절을 좋아한다고 소개했다.488쪽. 1만8천500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09 23:02

세밀화로 보는 생물 진화의 흐름

산꼭대기에서는 지하의 열이 밀어올린 온천이 솟고 주변 습지에는 다양한 관다발 식물이 자라 있다. 식물과 바위 사이사이로 거미나 전갈처럼 생긴 동물들이 돌아다닌다.4억800만 년 전 데본기 동식물 조직이 잘 보존된 스코틀랜드 애버딘셔 라이나 각암을 세밀화로 '복원'한 모습이다.1억2천800만 년 전 백악기, 중국 랴오닝(遼寧)성에서는 다양한 종의 공룡들이 물가를 뛰어다니는 가운데 오소리처럼 생긴 원시 포유동물이 갓 태어난 새끼 공룡을 잡아먹고 있다.영국 과학 저술가 더글러스 파머가 쓰고 자연사 전문 삽화가 피터 바렛이 그린 '35억 년, 지구 생명체의 역사'(예담 펴냄)에는 생물이 지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35억 년의 역사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주요 화석 발굴지 100곳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 100컷은 생물 진화의 흐름을 보여준다.암초 생물이 번성하다가 턱없는 어류가 출현하고 육지는 녹색으로 바뀐다. 사지동물이 육지에 상륙하고 빙하시대를 지나 복잡한 먹이사슬이 생겨난다. 공룡들 사이에 약육강식이 펼쳐지다가 포유류가 등장하고 지구 온난화가 닥쳐온다. 대초원이 생기고 원숭이가 진화한다.인류가 등장하는 것은 마지막 몇 장면뿐이고 진짜 주인공은 기나긴 지구 역사 속의 다양한 생물체들이다.일러스트 외에도 진화, 생물의 분류, 화석에 관한 개괄적인 글과 생물 계통도, 멸종 생물과 현존 생물의 상관관계, 세계 화석 발굴지명 사전, 다세포 생물 종 목록 등 진화와 생물에 관한 방대한 분량의 정보를 망라해 '자연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런던자연사박물관 공동 제작. 최재천 감수. 강주헌 옮김. 374쪽. 8만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0.03.09 23:02

[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독신의 수난사

지난 2009년 10월 통계개발원이 내놓은 '한국의 차별 출산력 분석'에 따르면 30대 여성의 미혼율이 2000년 이후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출산연령대 여성의 급격한 미혼율 증가가 저출산의 핵심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혼여성 비율은 30~34세가 2000년 10.5%에서 2005년 19.0%로, 35~39세는 4.1%에서 7.6%로 5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5~29세의 미혼율은 같은 기간 39.7%에서 59.1%로 늘었다.각자 어떤 이유에서건 독신은 우리 시대의 주요 화두가 되고 있다. 뉴스가 되질 않아서 그렇지 지금 이순간에도 전국 방방곡곡 수많은 가정에서 성인이 된 자녀의 독신을 둘러싸고 부모-자식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독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프랑스의 역사학자 장 클로드 볼로뉴(Jean Claude Bologne)의 「독신의 수난사」(권지현 옮김, 이마고, 2006)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을 뿐 인류 역사 이래로 내내 독신은 모진 탄압을 받아왔다. 독신자를 탄압한 주요 이유는 늘 인구·풍속 문제였다. 독신자가 많아지면 인구가 줄고 풍속이 타락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신자에게 벌금을 내게 하는 제도는 '기본'이었고, 각종 모욕과 탄압이 가해졌다. 전쟁을 많이 벌이던 스파르타에선 겨울에 독신자들을 강제로 벌거벗겨서 광장을 돌게 하는 모욕을 주고 독신자들이 법을 어긴 만큼 벌을 받아도 싸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게 했다.일시적으로나마 독신자의 구세주는 1798년 「인구론」을 출간한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 1766~1834)였다. "인구의 힘은 인간을 부양할 지구의 힘보다 항상 훨씬 더 크다"는 주장은 공포감마저 불러 일으켰다. 출판사는 한정된 자원과 넘쳐나는 인구로 지구는 곧 멸망할 것이라는 포스터까지 등장시켜 홍보했고, 책은 날개돗친 듯이 팔려 나갔다. 맬서스의 인구억제론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에 명백한 한계는 있었지만, 한동안이나마 독신자들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그러나 인구 증가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면서 독신자는 다시 탄압의 무대 위에 올려졌다. 빌레르메라는 사람은 1850년에 발표한 글에서 독신자들이 가정을 타락시킬 수도 있으니 이들과 일체의 접촉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97년 「자살론」을 펴낸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 1858~1917)은 독신과 자살을 결부시키면서, 독신자의 자살을 '이기주의적 자살'로 비난했다.독일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는 「가족, 사적 재산, 국가의 기원」(1884)에서 자본이 인간관계를 가족관계로 축소시킨다며, 일부일처제를 버리는 것이 역사적 진보라고 주장했지만, 독신을 옹호하진 않았다. 그는 일부일처제와 유사하지만 사회경제적 이유보다는 감정에 기초한 사랑을 역설하면서 이런 관계가 매매춘, 불륜, 여성의 노예화라는 부작용을 낳지 않으리라 믿었다.엥겔스의 주장이 시사하듯이, 사실 기존 가족제도의 문제점을 개혁해보려는 수많은 시도가 이루어졌다. 예컨대, 19세기 초반 미국에서 생겨난 셰이커교(Shakers) 같은 종교단체는 출생으로 인한 고통과 위협, 그리고 영아 사망으로 인한 슬픔에서 여성을 구원하기 위해 독신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 신흥종교는 독신주의 교리 때문에 곧 쇠퇴하고 말았다.20세기 들어 독신을 가장 탄압한 체제는 파시즘 국가들이었다. 1927년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남성 독신세를 신설했다. 무솔리니는 "우리나라의 인구 증가에 채찍질을 가하기 위해 이 세금을 활용한다"며 "9천만 독일인, 2억 슬라브 민족 앞에 겨우 4000만 이탈리아 인구가 말이 되는가?"라고 물었다. 무솔리니의 목표는 20세기 후반에 인구 6000만을 돌파하는 것이었다.히틀러의 독일도 마찬가지였지만, 독일은 '우등 인간'을 키운다는 우생학적 목표가 더해졌다. 히틀러는 1933년 집권하자마자 독신세를 통한 결혼의 권장을 최우선 정책 중 하나로 만들었다. 우생학적으로 허용된 결혼의 목적은 오직 다산(多産)이었다. 히틀러의 어머니 생일인 8월 12일에는 해마다 수천명의 산모가 메달을 받았다. 4~5명을 낳은 사람은 동메달, 6~7명을 않는 사람은 은메달, 8명 이상을 낳은 사람은 금메달을 받았다. 1943년경엔 모든 여성이 35세까지 순수 독일 인종이 남성들과의 사이에서 4명의 아이를 생산해야 한다는 출산의무제도가 도입되었고, 4명의 출산목표를 달성한 가장의 경우 다른 여성들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조항마저 포함되었다.파시즘 체제는 아니었지만, 프랑스도 이미 1920년대부터 인구 증가를 위한 강력한 정책을 폈다. 1923년 폴 오리(Paul Haury)라는 사람은 '프랑스의 삶 혹은 죽음'이라는 연구로 정부의 상을 받았는데, 그는 프랑스를 죽인 살인용의자는 독신자라고 주장했다. "한 나라에서 독신자들과 자녀 없는 가정들은 과연 무엇인가? 전혀 번식하지 않는 세포들이다. 그들은 무엇을 남기는가? 무덤 하나, 그것이 전부이다."독신자 탄압에 대한 저항이 사회운동 수준으로까지 발전돼 나타난 것은 1960년대 미국의 히피 운동이었다. 히피들은 공동체 생활과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자유분방한 성관계를 가지면서 독신을 대안적 생활방식으로 발전시켰다.이후 독신자들은 굳이 저항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경제사회적 환경이 독신을 강요하는 쪽으로 급격히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독신자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사회경제적 불안이다. 날이 갈수록 살기가 편해졌다곤 하지만, 그만큼 치열해진 생존경쟁은 출산과 양육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게 만들었다.오늘날 독신자를 위한 옹호운동은 사실상 대중문화와 소비여가산업이 대신 해주고 있다. 이 분야의 산업들이 독신자 인구의 막강한 구매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독신자는 기혼자들보다 영화관이나 식당에 두 배 더 자주 가고, 웰빙에 훨씬 더 관심이 있으며, 가족부양의 책임이 없어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밝혀졌다.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줄 일도 없으니 죽을 때까지 소비한다. 그러니 각종 소비산업이 어찌 독신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독신의 사회적 장점도 많다. 독신은 무엇보다도 혁신의 동력이다. 결혼이 폐쇄해버리는 미래의 가능성이나 직업선택·전환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기존 규범에 의문을 품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독신은 기존 가족중심적 인간관계의 문제를 완화시킬 수도 있다. 저자는 "독신생활은 탑에 홀로 갇혀서 통조림이나 냉동식품을 까먹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이다."고 말한다.독신을 찬양하고 싶어도 인구 감소 문제가 마음에 걸린다는 애국자들이 많겠지만, 그건 독신자들에게 할 말은 아니다. '국가경쟁력'을 빙자해 자녀의 사교육에 목숨 걸지 않으면 안되게끔 만드는 현 입시전쟁 체제를 고수하거나 더 악화시키려는 사람들, 자녀 양육에 도움을 주려는 정책보다는 국론을 분열시키는 토건사업에만 '올인'하려는 사람들에게 따져야 할 문제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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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0.03.05 23:02

돈욕심 없는 그는 과연 제정신일까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미국 작가 커트 보네거트(1922-2007)의 소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문학동네 펴냄)는 재치 있는 첫 문장이 귀띔하듯 '돈'에 대한 이야기다.'제5도살장', '마더 나이트' 등의 소설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반전(反戰)작가이자 탁월한 풍자가인 그는 1965년 발표한 이 소설에서 돈과 노동의 본질을 유쾌하게 풀어낸다.소설의 주인공은 미국에서 열네 번째 부자인 로즈워터 가의 일원으로서 자선문화재단인 로즈워터 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앨리엇 로즈워터.늘 술에 취해 기행을 일삼던 앨리엇은 정신과 의사마저 치료를 포기할 정도의 기인이었다. 급기야 집을 나와 미국 여기저기를 떠돌던 그는 고향 로즈워터 군에 정착해 그곳에 있는 "쓸모없고 볼품없는 사람들"을 보살피며 살기로 한다.한편 로즈워터 재단을 관리하는 법률회사의 젊은 악덕 변호사 노먼 무샤리는 재단 임원이 정신이상 판정을 받으면 즉시 퇴출된다는 규정을 이용해 앨리엇을 몰아낼 음모를 짠다. 규정에 따라 차기 이사장이 될 앨리엇의 먼 친척 프레드의 대리인을 맡아 막대한 수임료를 챙길 속셈이다.소설은 유쾌한 '미치광이' 앨리엇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가난한 프레드를 대비시키며 로즈워터 가 재산의 향방을 흥미롭게 따라간다.공상과학 소설을 사랑하고 소방관을 존경하는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 앨리엇이 던지는 어린아이 같은 물음은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제법 진지한 질문을 이끈다."한 나라의 정부라면 최소한 모든 아기에게 재물을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해요. 안 그래도 힘든 인생인데, 돈 문제까지 고민하다 병이 나서야 되겠어요? 우리가 조금만 더 나눈다면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이 풍족할 거예요."(137쪽)노먼 무샤리의 음모를 잠재우는 '엘리엇다운' 해법도 통쾌한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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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
  • 2010.03.0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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