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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이 찬란하다. 나뭇잎 하나에도 가을 냄새가 난다. 계절의 표정이 바뀌는 이 계절에 나는 태어났다. 진통이 시작되자 어머니는 심호흡을 하며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보았다 했다. 파란색은 하느님의 색. 하늘이 사람을 내일 적에는 귀애하는 것도 함께 내어 준다고 하였으니, 손가락 사이에 닿는 햇볕이 혈육 같다. 가을빛 풍성하게 쏟아지는 창 앞에서 바라노니, 내가 가는 날도 오늘 같길.......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라 했던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 작가다. 데카당스는 퇴폐주의 혹은 염세주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인간 관계에 대한 공포와 회의를 표현했다. 텔레비전에 나온 사람들이 뻔뻔한 표정으로 뻔뻔한 이야기를 펀펀(fun fun)하게 한다. 주객이 전도되고 주어가 없는 말들이 뛰어다닌다. 취한 시정잡배의 말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세상이 돌아간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 소설 『인간실격』은 서로 속고 속이며 사는 위선적인 사회를 고발한다. 주인공 ‘오바 요조’는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는 사람들이 무섭고 두렵다. 거짓을 겨루며 사는 사회란 ‘참으로 산뜻하고 해맑고 명랑한 불신의 무대’다. 어린 ‘요조’는 위선적인 세상에 위악으로 대응한다. 익살과 위악은 소심한 이의 위장의 기술이다. 광대처럼 자신을 숨기고 살다 보면 남은 것은 허무뿐이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기’에 총명하고 아름다웠던 청년은 서서히 파멸에 이른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다자이 오사무도 서른아홉의 나이로 자살했다. 자살은 ‘인간실격’일까? 죽음으로써 자신을 지키려 했던 이들을 나약함으로 폄홰하지 말자. 키에르케고르의 말처럼 ‘사람이 절망에 빠질 때는 오직 자기 스스로에게 절망할 때’이니까. 며칠 전, 전주시 노송동에 있는 오래된 이발소에 갔다. 팔순의 이발사는 가위질만 60년이라고 했다. 기린봉으로 향하는 언덕배기의 작은 이발소에는 연탄난로가 지펴져 있었고 곁에는 서너 개의 연탄이 포개져 있었다. 이 연탄이 다 타고나면 쌓인 순서를 바꿔 길가에 쌓일 것이다. 그리하여 눈이 오고 길이 얼면 연탄은 찬란히 부서질 것이다. 연탄재가 쌓인 이 언덕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 가를 평생 의식한다’고 했다. 소설 속 ‘요조’처럼 나도 가을 햇볕이 담뿍 드는 이발소 의자에 앉아 ‘째깍째깍’ 가위질 소리를 할아버지의 시계 소리처럼 졸음에 겨워 듣는다. 그리고 기린봉 언덕배기에 이발소를 차리고 아이를 키워 재금 낸 노인과, 눈이 와서 미끄러운 언덕 길에 산산이 부서지고 또 부서졌을 연탄들을 생각했다. 『인간실격』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때다. 박태건 시인은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와반시 신인상,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시집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를 비롯하여 인문서 『익산 문화예술의 정신』, 『마을, 오래된 미래를 담다』 등을 냈다.
중견 시인 정성수 씨가 26번째 시집 <화답>(화암출판)을 펴냈다. 정 시인은 이번 시집을 증정본과 소장용 99권, 비매품 한정판으로 특별 제작했다. 시집에는 다른 사람이 지은 시에 화답하는 시 63편이 담겨 있다. 시집은 원시와 화답시를 따로 분류하지 않고 하나의 맥락으로 묶어 읽을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이에 정 시인은 "원시와 화답시를 하나로 묶어 읽는다면 원시와 화답시 사이의 간극이 좁아져 이해하는 데 도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관식 평론가는 "시인의 내면세계와 문학적 지향점까지 유추할 수 있는 시들은 교육적 의미와 시적 가치까지 내재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학적 성공 작인 동시에 삶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와 교감에 방점을 찍었다"고 평가했다. 또 이준관 시인은 "화답시는 원시와 관련된 사건이나 일화 등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아 읽는 사람의 공감을 받고 나아가 시적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정 시인의 시집 <화답>은 대화적, 서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적 자료가 되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정 시인은 서울신문으로 등단했다. 이후 시집, 동시집, 산문집, 동화집 등 67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세종문화상, 소월시문학대상, 윤동주문학상, 황금펜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전라북도 문화예술창작지원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등을 수혜 했다. 그는 전주대 사범대학 겸임교수, 전주비전대 운영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향촌문학회장, 사단법인 미래다문화발전협의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영어로 '1 saves 9'이라고, 한 분이 장기를 기증하면 최대 9명을 살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전북대학교병원 장기 이식 센터장을 지낸 박성광 교수가 <심장이 멎기 전, 안녕 내 사랑-뇌사자 장기기증: 삶, 죽음, 사랑 이야기>(신아출판사)를 펴냈다. 책에는 장기 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뇌사자와 그의 가족,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받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 지금도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은 1편 '네 꿈이 끝날 때 네 청춘도 끝난다', 2편 '심장이 멎기 전, 안녕 내 사랑'으로 구성돼 있다. 1편은 박 교수가 신문, 잡지에 냈던 기고, 경험했던 일을, 2편은 장기 이식 센터 코디네이터가 기록한 내용에 박 교수의 기억을 더하고 장기 기증자 가족과 인터뷰한 내용과 사진, 그들이 보낸 편지 등을 담아 구성했다. 책의 긴 제목과 표지가 눈에 띈다. 박 교수는 "제목은 장기 기증하는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이 멎기 전에 가슴이 찢어지는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심장이 멎기 전, 안녕 내 사랑'이라고 정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법에는 심장이 뛰고 있어도 뇌사 판정을 받은 시각을 사망 시각으로 쓰게 돼 있어 뇌사 판정을 받으면 사망한 것과 다름이 없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표지는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장기를 기증한 사람들의 사진으로 가득 채웠다. 박 교수는 책을 통해 장기 기증자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싶었다. 독자들에게는 뇌사자 장기 기증이 무엇이고, 기증하는 가족들의 극심한 슬픔을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희생에 대해 증언하고자 했다. 그는 "나아가서 더 많은 분이 장기를 기증함으로써 장기 이식 외에는 치료법이 없어서 장기기증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말기 중환자들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전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북대학교 병원 내과 전공의를 지냈다. 이후 미국 스탠포드 의대 약년형당뇨재단 펠로우, 전북대 의과대학 의학과장, 대한신장학회장, 전북대학교 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의생명연구원장, 예수병원 이사, 예수대학교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전주 함께하는 내과 원장이다.
"원통하고 분해도 떨어지면 똥이다/은하수 무리에 숨어서 숨 쉬면 별이다//밤하늘에 비수를 긋고 뻔쩍이는 빛은/곧 스러진다/똥줄 빠지게 매달려야 산다/반짝거려야 별이다//떨어지면 별똥별이여/내가 나를 붙잡고 살아봐"('별도 떨어지면 똥' 전문) 이소애 시인이 시선집 <별도 떨어지면 똥>(시인동네)을 펴냈다. 시선집은 총 6부로 구성돼 있다. 이 시인이 2002년부터 2021년까지 펴낸 6권의 시집을 6부의 주제로 설정했다. 목차는 '침묵으로 하는 말, 쪽빛 징검다리, 시간에 물들다, 색의 파장, 수도원에 두고 온 가방, 쉬엄쉬엄으로 구성했다. 그동안 이 시인의 작업을 결산하는 의미를 가진 시선집이다. 발표했던 시집을 순차적으로 1∼6부로 구성해 이 시인의 시적 특성과 변화하는 작품의 느낌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그의 시는 조금씩 성숙해졌지만, 그가 대단한 시인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해설을 맡은 우대식 시인도 "그의 시편들은 통시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있었으나 시인이라는 자의식은 일관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저 아름다운 시가 아닌 사람살이로서의 시적 형상화는 깊은 울림을 던져주기에 충분했으며, 이소애라는 시인의 진면목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바다를 떠다니는 유빙처럼 숨죽이고 기억을 불러 가슴에 담았다"며 "시는 내 삶의 파도를 극복하는 원천이었다. 행복한 기억으로 시가 떨리는 입술을 깨물 때 행복하게 불러줘서 고마웠다"고 전했다. 그는 정읍 출신으로 1960년 '황토'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우석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북대 경영대학원 경영학과를 수료했다. 한국미래문화상, 허난설헌문화예술상, 황금찬시문학상, 중산시문학상, 한국예총하림예술상, 바다문학상, 전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데미안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에 출간되었다. 유럽의 많은 청년들은 전쟁터에서 데미안을 읽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것은 학창시절 어느 수업 시간이었다. 양지바른 곳에서 홀로 집중하여 데미안을 읽은 뒤였지만 줄거리조차 잡지 못한 때였다. 하여, 유럽 청년들이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며 데미안을 읽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절망했다. 범접할 수 없는 문해력. 그것을 뒷받침하는 통찰력. 십대의 내겐 없는 것들이 그들에게 있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유럽 청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데미안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얼마 전이었다. 나이 들어 다시 읽으니 줄거리가 선명하게 잡혔다. 유럽 청년들이 데미안을 손에 들고 전쟁터를 누빌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정신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열 살 소년 싱클레어는 재단사 술꾼의 아들인 악동, 프란츠 크로머를 무서워하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한다. “나를 다른 애들과 똑같이 취급한다는 것은 기뻤다. 그 애는 명령했고, 우리는 복종했다. 그러는 것이, 처음 그 애와 함께 있었건만, 마치 오래 해오던 일처럼 여겨졌다.” 싱클레어에게 크로머는 어둠의 세계다. 자신이 다니는 라틴어 학교처럼 밝고 올바른 세계라 믿었던 집에서 늘 보았던, 하녀 리나가 머리 없는 난쟁이 이야기를 하고 이웃 아낙들과 싸움을 벌이는 것처럼 일상적인 세계. 그 세계는 “자주 낯설고 무시무시했”다. “그곳에서는 규칙적으로 양심의 가책과 불안을 얻을지라도.” 싱클레어가 한동안 “가장 살고 싶어한 곳은 금지된 세계 안이었다.” 이처럼 어린 싱클레어는 집안에서 벌어지는 밝고 어두운 세계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평화롭고 사랑 가득한 집에서 소음과 폭력이 난무한 어둠을 인식한다. 두 세계의 간극을 치명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싱클레어 자신이다. 자랑삼아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다고 크로머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데미안을 만난 뒤로 싱클레어는 자란다. 선악에 대한 사유가 끝없이 이어진다. 어린 시절 집에서, 크로머에게서 보았던 어둠을 내면에서 찾는다. 데미안의 엄마인 에바 부인을 만나고 베아트리체를 상상하며 새를 꿈꾸고 선악의 신인 압락삭스로 이끌리며 진정한 자신을 만날 때까지. 적군과 아군이 뚜렷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고 죽여야만 했던 유럽 청년들의 정신적 트라우마. 죄책감과 혼돈을 극복하고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길 희망하던 그들에게 책, 데미안은 구원이었을 것이다. 세계는 경험을 통해서 재확인 된다. 1,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한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이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다면화된 세계에서 싱클레어의 화두였던 선악 대립은 고리타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데미안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하다. 세계는 곧 자신이라 말하며 온전한 자기가 되어 보겠다는 싱클레어와 그를 인도하는 데미안이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고 응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워낙 오래 홀로였고, 포기를 연습하고, 내 자신의 고통으로 힘들게 허우적거리는데 익숙했던 터라 H시에서의 이 몇 달은 꿈의 섬처럼 느껴졌다.(p.210/민음사)”는 싱클레어가 되어 데미안을 다시 만나니 깊어진 가을, 스산한 바람이 반갑다. 오은숙 소설가는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납탄의 무게’로 등단했다. 공저로는 <1집 스마트 소설>,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2021 신예작가>가 있다.
전북아동문학회(회장 조경화)가 제34회 전북아동문학상(이하 문학상) 수상자에 정광덕 시인을 선정했다. 문학상은 전북아동문학회가 회원들의 창작을 격려하는 마음을 담아 제정한 상이다. 1년 동안 우수한 작품을 발표하고 전북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한 회원을 대상으로 수여하고 있다. 올해 수상자는 문학상 운영규정 제5∼7조의 규정에 따라 가장 적합한 참신하고 깔끔하며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그린 정 시인의 동시집 <맑은 날>으로 선정했다. 정 시인은 전남 영광 출신으로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2012년 아동문예문학상 동시 부문에 '연못과 새'로 등단했다. 그는 전북아동문학회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꽃심전주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독서논술을 지도하고 있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중에 개최할 예정이다.
최명희문학관이 21, 22일 최명희문학관, 전주부채문화관에서 '가을가을한 책 이야기, 책 나누기' 행사를 개최한다. 행사의 화두는 단연 가을과 책이다. '판소리로 듣는 전주'와 '가을가을한 책 나누기'를 통해 책 이야기와 나눔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소리꾼 경보비와 고수 김강록이 만드는 판소리 공연에서는 소설 <혼불>과 희곡집 <달릉개> 등 전주를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으로 만든 창작 판소리를 들려준다. 책 나누기 시간에는 김영주·윤일호 동화작가, 유수경·문신 시인, 신여랑 청소년 소설가, 황지호 소설가가 시민과 함께 늦은 가을에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고 책 속 문장을 읽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밖에도 야외전시 '가을가을한 책 이야기'와 김근혜 동화작가와 함께하는 '전주 발, 엽서 한 장', 주름지와 헌책을 접어 꽃을 만드는 '종이꽃 피우다', 책 모양 열쇠고리를 만드는 '책고리 만들기', 정서연·정수현·조귀녀 공예가가 꾸미는 사진 맛집 등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여울 작가가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어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에 관한 시집 <사라져 간 그리운 우리 것들>(인문사 artcom)을 펴냈다. 김 작가는 작품을 쓰기 위해 100여 가지의 사라져 가고 있거나 없어진 것을 모아 50편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대장장이, 조선낫 호미, 다듬이질 소리, 맷돌, 물레방아, 호롱불, 작두, 지게, 징검다리, 인두, 가마솥, 대소쿠리 등이 작품의 소재다. 시집을 통해 소리 없이 사라지거나 없어져버린 것들을 다시 소환하고자 했다. 그는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오늘을 살고 있다. 예전 한 때 우리와 함께 했던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고 없는 데도 허허실실 하듯 해도 되는 것인지 한 번쯤 물음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신해식 시인이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을 통해 시집 <눈꽃, 그리고 사랑>(시선사)을 펴냈다. 신 시인은 시인의 산문에서 어렸을 때부터 독신주의자였음을 알렸다. 그가 서른이 되고 매년 1월 1일에 여는 가족 신년하례회에서 나온 결혼 이야기에 초임 발령 당시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과 결혼하게 된다. 독신주의자였던 신 시인이 무색하게 시집에는 아내, 딸, 아들, 어머니 등 가족 이야기가 곳곳에 담겨 있다. "우리 아들, 어서 오게/조용한 미소만/마지막으로 남기시고/허전한 가슴으로/저를 안아 주시면서/오목한 볼에/저의 얼굴을 부비셨습니다./그리고/저의 곁을 떠나셨습니다./백 년을 채우지 못하시고/황급히 떠나가셨습니다.//찬란한 눈꽃만 남았습니다."('눈꽃, 그리고 사랑' 일부)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어려운 소재로 시를 쓰기보다는 일상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소재로 시를 썼다. 일기를 시로 풀어낸 듯한 느낌이 가득하다. 신 시인이 여자고등학교에서 담임을 맡았을 때 이야기부터 딸아이 어렸을 때 이야기,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 이야기, 계절 이야기, 어머니를 떠나보낸 이야기 등 일상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또 그의 바람도 시집에 담았다. 80년대의 풍속도를 생각하며 언젠가는 꼭 행복한 삶이 오리라 다짐하면서 쓴 '가을은', 강과 숲이 어우러지는 맑은 햇살이 드는 신비한 자연의 세계에서 손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리면서 쓴 '붉게 물든 노을이 숲 뒤쪽에서' 등이 그 예다. 신 시인은 전주 출신으로 전주고, 전북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9년 '문예사조'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그는 남원여고·전주고·무주고·전북대사범대학부설고·군산여고 등에서 교감으로 지냈으며 운암중 교감으로 정년퇴직했다.
"순간처럼 영원처럼 오는 너. 그런 너를 붙잡기 위해 긴장의 구도 속에서 감각의 안테나를 높이 세운다. 순간처럼 영원처럼 오는 내 뜨거운 생명, 내 영혼의 꽃, 시. 너는 내 영원한 귀로." 시집 <순간처럼 영원처럼 오는 너> 첫 페이지에 적힌 시인의 말이다. 깊은 사유를 품는 그리움의 서정시로 가득한 시집이라는 것을 미리부터 알려주는 문구다. 김제 출신의 최유라 시인이 시집 <순간처럼 영원처럼 오는 너>(도서출판 문화의 힘)을 출간했다. 시집은 순간처럼 영원처럼, 초록의 영토, 총알 여섯 개, 삶은 지금이다 등 총 4부로 구성돼 있으며, 70여 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작품은 애절함, 서러움, 사랑 등 여러 감정을 노래한다. 가장 돋보이는 감정은 그리움이다. 최 시인이 가장 잘 표현하는 감정이 그리움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집을 통해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함께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삶의 태도를 보여 준다. 시와 고향, 사회, 자신의 삶까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사색하는 최 시인의 창작력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해설을 맡은 소재호 시인은 "최유라 시인의 시편 중에는 거의가 그리움의 미학이 번뜩인다. 최 시인의 파다한 그리움은 서로 연쇄해 영혼의 집을 세운다"며 "그리움을 모태로, 서정성을 배경으로 구축하지만 깊은 사유의 명상을 내포하는 시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가 결코 가볍지 않고 응축미를 띠며 시답게 기교 부리는 메타포는 매우 신선해 시의 본질에 다가가기 때문에 시의 품격이 높다. 인간성 함양을 위한 교훈적 역할도 빼어나 시적 변용에 크게 이바지한다"고 덧붙였다. 최 시인은 전북문학 회원으로 본격적으로 문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월간 순수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그는 전북문인협회·여류문학·시인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해다. 글벗·문예가족 회장을 역임했다.
전북일보사와 최명희문학관, 혼불기념사업회가 주최·주관하고 전라북도와 전라북도교육청이 후원하는 제16회 대한민국 초등학생 손글씨 공모전에서 김호산나(김포양곡초 4년) 학생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 결과 대상은 김호산나 학생, 최우수상은 김민서(인천인동초 4년)·정원혁(대구장동초 3년) 학생, 우수상은 고다윤(제주아리초 2년)·곽보민(김해능동초 6년)·김별해(전주한들초 6년)·김서현(무주설천초 5년)·유수민(유상상지초 3년)·이율리(서울언주초 6년)·장하은(전주진북초 1년)·정태현(전주동초 3년)·허지안(서울강빛초 5년)·현지예(제주아라초 2년) 학생이 받는 등 총 115명의 학생이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공모전에는 전국 202개 학교(도내 90개교, 전북 외 112개교)에서 총 1463명의 학생이 작품을 응모했다. 도내 학생이 40%로 가장 많이 참가했고 서울(15%), 경기 (11%), 경남·경북 (10%), 인천 (8%) 등이 뒤를 이었다. 이밖에도 뉴질랜드, 베트남 등 해외에서 참가한 학생도 여럿 있었다. 전년과 비교해 개인 참여보다는 학교·학원·아동센터 등 단체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공모전에서는 코로나19 관련 이야기가 주를 이었지만, 올해는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다수였다. 가족과의 행복한 여행일지, 친구와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 반려동물과의 일화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작품이 접수됐다. 심사는 김근혜 동화작가, 김미영 문학박사, 이경옥 동화작가, 전선미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정서연 재미보따리 대표, 최기우 극작가 등이 맡았다. 이경옥 심사위원은 "나무 향이 전해지는 연필로 쓴 글에서 어린이들의 향기까지 느낄 수 있었다"며 "어린이들이 느꼈던 생생하게 살아 있는 표현들이 돋보였고 솔직한 감정을 어린이다운 재치와 발랄함으로 나타내 줬다"고 말했다. 수상 작품은 오는 11월부터 네이버의 '손글씨 블로그'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오는 12월까지 최명희문학관 마당에서 전시한다. 한편 공모전을 통해 평생 만년필 쓰기를 고집했던 소설가 최명희의 삶과 문학 열정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손으로 쓴 편지와 일기로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에 관심을 두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마련된 공모전이다. 16년 동안 총 46000여 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나비를 시작하거나 나비 애호가에게 꼭 필요한 필드형 도감이 나왔다. 30년 동안, 나비 연구에 매진한 저자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발간한 『초보자를 위한 한국나비 생태 도감』이다. 이 책은 1년 중 280일 이상 나비를 보러 가는 남자, 상제나비가 보고파서 연변까지 한달음에 날아간 나비학자, 공작나비를 보기 위해 기꺼이 한 장소를 300번 이상 달려가는 저자의 열정과 끈기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초보자를 위한’이라는 제목을 내걸었지만 이 도감은 전문가의 갈증을 충족시키기에도 손색없는 수준을 갖추고 있다. 그동안 여러 형태의 나비 도감이 출간되었으나 실제 현장에서 초보자가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나비를 판별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나비 표본을 사진으로 찍어 만든 도감과 눈앞에서 보는 실제 나비와의 괴리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 도감은 나비의 이름을 잘못 표기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초보자를 혼란스럽게 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 나비 도감은 저자가 현장에서 찍은 나비의 알과 애벌레, 그리고 번데기와 성충까지 충실하게 수록함으로써 초보자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또한 『초보자를 위한 한국나비 생태 도감』은 초보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나비 구별이 가능하도록 정확한 동정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 나비 도감은 나비의 서식지, 나비의 습성, 생태 주기, 기주식물 등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기록종과 아종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저자는 그동안 나온 다른 나비 도감과 달리 관찰 난이도를 별 숫자로 표시하고 감소 추세를 신호등으로 나타냄으로써 초보자들의 나비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나라의 나비는 급격한 기후변화, 기주식물의 서식지 파괴, 농약 등의 환경오염 등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몇 년 내에 지금은 사라진 상제나비나 쐐기풀나비처럼 이 나비 도감에 있는 나비를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초보자를 위한 한국나비 생태 도감』이 저자의 염원대로 초보자들이 나비를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충실한 길라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장창영 시인은 전주 출신으로 20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동백, 몸이 열릴 때> 와 문학이론서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을 펴냈다. 그동안 다녀온 여행기를 여행잡지 <뚜르드 몽드>에 연재하고 있다.
전북문인협회(회장 김영)가 지난 11일부터 15일까지 5일 동안 안동 문화예술의전당에서 2022 영·호남 예술 교류전을 개최했다. 예술을 통한 화합과 소통으로 지역의 문화를 교류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전북예총(회장 소재호)과 경북예총이 지난 1998년에 결연을 맺고 24년 동안 꾸준히 교류하고 있다. 교류전은 김영·소재호 회장을 필두로 전북의 문향을 알리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영 회장은 영·호남을 막론하고 지금의 문인들에게 영향을 준 호남 출신의 문사들을 언급하며 인사말 포문을 열었다. 그는 "전북 문인들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낙동강을 건너온 섭렵의 길이 서로의 지평을 확장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신화는 결국 우리 인간의 이야기"라는 일관된 시선으로 신화를 연구해 온 세계신화연구소 소장 김원익 박사가 지난 20여 년간의 연구와 강의를 토대로 그리스 신화를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총망라한다. 책은 <김원익의 그리스 신화>(세창출판사). '그리스 신화'는 어릴 때부터 만화로 먼저 접할 정도로 대중적인 고전 중 하나다. 독자 대다수가 '그리스 신화' 관련 단편적인 일화는 알고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이나 일화가 생기게 된 계기 등을 분석해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 한 권으로 하루 10여 분, 총 180일 동안 지치지 않고 그리스 신화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책은 1, 2권으로 구성돼 있다. 1권은 신과 인간의 이야기로, 그리스 신화의 전승 과정부터 캐릭터의 원형인 신들의 성격 유형을 분석했다. 또 그리스 신화 속 3대 명문 가문을 발굴하고, 인간의 오만과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2권은 영웅과 전쟁의 이야기로, 전쟁 속 영웅의 성장기를 통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시련과 극복 과정을 보여 준다. 책을 통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리스 로마 고전 6권과 그리스 비극 33편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김 박사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그림과 가계도, 지도를 첨부했다. 두 페이지에 평균 한 장 이상의 그림이 실려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가문의 가계도, 영웅의 모험 경로 등을 이해하기 쉽도록 새롭게 구성해 첨부하기도 했다. 그는 연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릴케의 말테의 수기와 대도시 문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KBS 2TV에서 '신화, 인간의 거울'이라는 제목으로 4회에 걸쳐 TV 특강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에서 '김원익의 그리스 신화 읽기' 코너를 담당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명지대학교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문인화의 개념은 무엇일까. 오늘날의 문인화는 무엇일까. 권윤희 교수가 문인화 미학의 심미 원리를 담은 <나는 문인화입니다>(유니랩)를 출간했다. 책은 △유가 문인예술의 본질 △문인화의 정의 △문인화 심미의 전제 △문인화 심미의 기제 △문인화의 심미 체험 △문인화의 심미 구현 △문인화 맥의 형성 등 7장으로 구성돼 있다. 권 교수는 책을 통해 필자의 조그만 노력이 문인화 장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했다. 쉽게 정의·접근하기 어려운 '문인화'를 소재로 설정한 것은 다변화되고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 때문이다. 아무리 빠르게 바뀌지만 동양 문화의 정신 문물이 '문인화'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오랜 시간 고민과 연구 끝에 문인화가라고 칭하는 모두가 스스로가 문인의 격과 자세를 유지하면서 그림에 임한다면 문인화가라고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 작품의 소재나 채색, 장르가 문제가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문인적인 입장에서 그림에 임하는가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는 의미다. 권 교수는 "문인화의 격조성과 고결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러므로 문인화 발전의 모색은 결국 문인화에 대한 개념의 정립에 있으며, 이는 결국 문인화라는 예술 장르의 본질을 발견하고 이를 회복하는 바에 있다고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균관대에서 강암의 풍죽을 연구해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초빙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한국외대에서 동양미술을 강의하고 있다. 이밖에도 한국외대 철학 문화연구소 초빙연구원, 한국서예협회 평론분과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아내는 몹쓸 병에 패배하고 말았다. 자녀들과 같이 절규했지만 한 번 눈 감은 아내는 그토록 정이 넘쳤건만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부안 출신의 김용재 작가가 아내의 삶을 담은 <허물을 덮어준 이불>(도서출판 한맘)을 펴냈다. 책에는 아내와의 첫 만남부터 약혼, 결혼식, 분가, 가정의 이런저런 일, 병마에 시달린 아내의 이야기 등을 담았다. 끝에는 자녀들의 추모글도 담겨 있어 독자들의 마음을 저리게 만든다. 김 작가는 아내와 만수무강할 줄 알았다고 한다. 아내가 중병으로 병상에 눕게 되고 매일같이 수발을 들었다. 날마다 붙어 있으면서 아내의 형상이 바뀌어간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는 "아내에게 '당신의 얼굴은 지금도 인형처럼 예쁘네.' 했더니 아내는 꽃처럼 웃었다"며 그때 상황을 떠올리기도 했다. 무덤덤하게 풀어낸 듯하지만 가족들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 작가는 "아내와 56년을 함께 살아온 인생의 삶에서 가슴 깊이 새겨 있었던 곳곳을 더듬어보았고, 아들딸이 쓴 추모의 글과 함께 작은 그릇에 담아 아내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1974년에 삼남문학상(수필)을 받았으며, 1976년에 아동문예에서 동화 2회 추천받아 동화와 수필을 쓰고 있다. 동화집 13권, 수필집 2권 등 총 15권의 책을 펴냈다. 현재 아동문예작가회·한국아동문학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현우 기자
물이 마시는 존재에 따라 독이 되고 젖이 되고 약이 되듯. 머문 장소와 형상에 따라 구름이 되고 안개가 되고 바다가 되듯. 한 시인의 붓끝도 닿는 자리에 따라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역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이 외양은 변해도 그 본성은 언제나 물이듯 붓끝이 어디에 닿건 시인의 뜻은 한결같아서 변방의 언어로 이름 없는 풀과 잊힌 민중들을 소환했다. 시인의 삶 또한 그의 해타(咳唾)와 다르지 않아 뜻 맞는 시인들과 함께 시를 쓰고 그 시로 전쟁으로 고통받는 미얀마 문인들을 도왔고. 막 등단해 쭈뼛쭈뼛 말석에 앉아있는 새내기 작가들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술을 따라주었다. 이미 이름이 높고 묵향이 진한 작가들이 문단을 오래 이끌었으니 막 등단해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겉도는 신입 작가들에게 문단 일을 맡겨 생기라면 생기, 변화라면 변화를 이끈 사람도 그였다. 전 전북작가회의 회장 이병초였다. 그리하여 그의 붓은 심술궂어 보이지만 뿌리를 다독이는 바람이었고, 약자를 품는 느티나무의 넉넉한 그늘이자 위로였으며, 죽은 역사를 깨워 산 사람을 위로하는 박수무당의 넋두리였다. 시인의 ‘무릎걸음’ 술잔을 받은 다음날 송구하여 그의 시집 『까치독사』를 ‘내돈내산’하여 읽었고 그 시집을 책갈피 삼아 그의 넋두리이자 역사소설 『노량의 바다』를 읽었다. 시인이 쓴 소설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조사를 아껴 문장을 벼렸고, 적확한 단어를 찾아와 제자리에 앉혔으며, 행간의 여백으로 아련함을 만들어 가끔, 무연히 멈추게 했다. 화려하고 지나친 비유가 없으므로 문장이 여는 길이 분명했고, 플롯으로 서사에 힘을 더해 긴장을 놓지 않게 했으며, 말하고자 하는 바가 칼끝처럼 분명해 에둘러 돌아가지 않게 했다. 책을 덮은 이후의 여운도 길어 쓸쓸함이 버들잎처럼 흘러 노량의 바다까지 닿을 수 있게 했다. 이제 시인이자 소설가인 작가는 시집 『까치독사』 등장했던 ‘들몰댁’과 ‘즈아부지’와 ‘군산댁’과 ‘그 가시내’와 같은 이름 없는 것들을 역사소설 『노량의 바다』에서 노꾼으로, 감시병으로, 피 냄새 나는 군복을 “생선의 포를 뜨듯이 실을 박아 깁고 훌치고 호며감치고 후미벼 공그렸던” 순옥으로 다시 불러냈다. 그들에게 “밥과 나물과 푸성귀가 어우러진 비빔밥의 평등과 상하 구별 없이 너나들이로 퍼먹는 밥의 평등을 수저처럼 쥐어” 주고 싶어 했다. 그것을 작가는 “아버지가 된 자가 해야 할 일” 이라고 믿었다. “김을 매고 베를 짜고 염천을 견디고 난 뒤에 곡식을 거두는 일- 거기에 목숨을 바치다시피 했던 만백성의 역사, 양반층에게 함부로 무시당하고 멸시당했지만, 헐벗고 굶주린 조선 백성이 어째서 조선 역사 발전의 주체가 되었는가를 분명하게 짚어줄 글줄은 어디에 있는가” 분노하며 스스로 먹을 갈아 이 소설을 썼다. 백성의 코와 귀가 소금에 저려질 때 나만 살겠다고 몽진을 떠난 왕. 세한의 소나무 같은 선비들을 죽이고 옥에 가둬 가문과 권력, 부귀와 명예를 지키려 했던 칼 든 신하. 부하들을 승산 없는 전투에 내몰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능력 없는 장군을 소환했다. 그 소환한 자들을 이 시대 위정자들에게 들이밀며 ‘이것들이 너희 아니냐고 이들처럼 목민해서는 안 된다’ 고 일갈하며 죽비 대신 내리치려고 이 소설을 쓴 것이다. 그것도 시인이 소설을 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황지호 소설가는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했다.
장수 출신의 박상재 동화작가가 대한민국 최초의 한문 소설로 평가받고 있는 '금오신화'를 어린이·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각색한 <금오신화>(신아출판사)를 출간했다.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지은 한문 단편 소설집이다. 박 작가가 각색한 이 책은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등 모두 5편의 단편으로 구성돼 있다. 책은 한국을 배경으로, 국민을 등장인물로 설정했다. 박 작가는 한국인의 풍속, 사상, 감정을 표현하고 소재에 귀신, 염왕, 용와, 염부주, 용궁 같은 비현실적인 요소를 더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부각했다. 그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전기 소설인 전등 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공간적 배경을 조선으로 해 주제 의식을 드러냈다. 또 굳센 기상과 의지를 지닌 선비와 아가씨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한국적 인물을 창조했다"고 말했다. 박 작가는 1981년 아동문예 신인상,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을 통해 등단했다. 현재 아동문학사조 발행인,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을이다. 수확을 앞두고 쌀값 하락과 재고 폭증의 난관에 부딪힌 일부 농민들은 애써 농사지은 논을 갈아엎었다. 사실 농촌지역에 어두운 장막이 드리워진 것이 비단 어제오늘 일인가.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일손이 부족한데다, 쌀 소비량이 현저히 줄어든 현대인들의 생활습관도 농촌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원철 부안농협 조합장의 자전에세이 『가지 많은 나무의 뿌리가 되어』(2022, 신아출판사)는, 우리가 ‘밥맛이 없다’고 뒷전에 둔 농촌의 현실을 현저히 보여주고 있다. 김원철 조합장은 1998년 부안농협 제10대 조합장으로 취임한 이후, 조합장 6선에 이어 농협중앙회 3선 이사라는 남다른 이력을 지니고 있다. 자그마치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농협의 일꾼으로 고군분투해 온 것이다. 한마디로 그의 자전에세이는 개인의 인생사를 넘어 한국 농업과 농협의 역사를 감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조합장 초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IMF 구제금융 요청으로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금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많은 농업인은 물론 대기업까지 줄도산을 면치 못하는 시절이기도 했다. 부안농협 역시 부안 관내 다른 농협에 비해 정도가 심했다. 과다한 부실대출로 연체비율만 해도 20%를 웃돌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본잠식은 무려 55억 원이나 되었다. 조합원들에게 배당금은커녕 직원들 상여금 주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가지 많은 나무의 뿌리가 되어』에는 당시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몇 날을 뜬눈으로 지새운 그의 고뇌와 좌절, 아픔이 담겨 있다. 합병으로 인한 경영 악화 상태에서 10년이 걸릴 것을 4년 만에 정상화시킨 기쁨도 녹아 있다. 또한 이후에 닥쳐온 농촌의 크고 작은 일들을 온몸으로 맞으며 내린 결단과 그에 따른 결과가 오롯이 농촌의 나아갈 방향이 되어 이어오고 있다. 물론 기존의 관행을 뒤엎고 그 체질을 바꾸기란, 바다를 막아 다리를 놓는 일만큼 쉽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벼슬을 사귀지 말고, 사람을 사귀어라!”라고 말해온 그의 신조대로 평생을 사람에 대한 신의를 지켜왔기에 지금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거라. 한여름 뙤약볕과 숱하게 불어오는 천둥 번개, 비바람 속에서도 끄떡없이 조합원들의 버팀목이 되어줄 농협을 만드는 데 일생을 허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농협 본연의 목적대로 농민조합원이 주인인 농협으로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크기가 훨씬 작아진 공깃밥 한 그릇도 많다고 덜어내고, 다이어트 한다고 안 먹고, 출근하느라 바쁘다며 밥 먹을 시간이 없고, 밥하기 싫어서 먹기 싫고, 이런 저런 이유로 건너뛰는 게 밥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밥맛이 없어서 안 먹는 것이 또 쌀”이 되어버린 시대. 김원철 조합장과 같은 이들이, 그리고 수많은 농민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힘들게 지켜온 우리의 농촌이 다시 이 땅의 ‘미래’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우리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오천 년 문화가 담겨 있는 벼농사인 만큼 우리에게 있어 쌀 생산을 위한 농업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는 그 이상의 공익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일이 있어도 쌀만은 지켜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김원철 조합장의 자전에세이 『가지 많은 나무의 뿌리가 되어』는, 잃어버린 밥맛이 돌게 하는 특별한 것이 있다. 올가을, 하루 저녁 정도는 책장을 넘기며 그 비법을 전수받아보는 것도 좋겠다.
"소리 없이/수평선 너머로/쏘옥/사라져 가는/저∼ 불덩이//나도/저처럼/아름답게/익사할 수 있을까?"('부안 격포의 해넘이' 전문) 조철헌(84) 시인이 부안에서 해넘이를 보고 '부안 격포의 해넘이'라는 시를 썼다. 조 시인은 소리도 없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가는 불덩이 같은 해를 보며 시인 본인을 떠올렸다. 해넘이를 보며 "아름답다!"가 아닌 "나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떠올렸다는 것이 조 시인의 설명이다. 그는 "부안 격포에 갔다가 석양 노을을 봤다. 덩그러니 하늘 위에 떠 있던 해가 소리도 없이 빨간빛을 내뿜으며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시상이 떠올랐다. 집에 가자마자 그때 감정과 느낌을 정리하고 나중에 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조 시인은 부안 출신으로 전주고,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군 생활만 40여 년 동안 했으며, 2018년에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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