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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000개 팔리는 호떡, 어지간한 빵집도 부럽지 않아요."군산시 경암동 365번지에 있는 '중동호떡'은 70년 전통의 수제 호떡 가게다. 중동은 말 그대로 처음 문 연 지명을 의미한다. 길 하나를 두고 지금의 자리로 옮겼지만 가게 이름엔 손대지 않았다.창업주인 故 이봉수 씨가 1943년 문을 열면서 가게의 역사는 시작됐다. 아들 이년욱(71)씨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현재는 서울에서 IT 회사에 다니던 손자 이주호(42) 씨가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이주호 씨는"할아버지가 예전에 중국인 가게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며"중국 빵인 공갈빵을 보고, 해방 후에 호떡을 만들어서 팔기 시작한 것이 중동호떡의 시초"라고 소개했다. 70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처음엔 50환 하던 호떡의 가격도 700원으로 올랐다. 많은 사람이 중동호떡에 열광하는 이유는 기름에 튀기지 않아 화덕에 구운 빵처럼 기름 없이 담백한 맛에 있다. 쫄깃하게 씹히는 빵의 풍미는 흑설탕으로 녹여 만들어낸 시럽과 만나 조화를 이룬다. 호떡 윗부분을 살짝 뜯은 다음, 호떡피를 흑설탕 시럽에 찍어 먹는 특별함도 재미를 더한다. SBS 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 '대박 자영업자의 비밀 편'에 호떡을 먹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이 모이는 이유가 소개될 정도로 주목받았다.이제는 외국에서도 중동호떡을 맛보러 오는 관광객이 생겨날 정도다. 하루 1000여 개의 호떡을 팔려나가고, 주말이면 고객 90% 이상이 외지인들이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이 씨는 "철판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서도 호떡을 구워내는 비법은 '반죽 기술'에 있다"며"중동호떡의 반죽 방법은 그야말로 공개하지 않는 비법"이라고 말을 아꼈다. 주인장이 권하는 '남은 중동호떡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냉동보관 한 호떡을 프라이팬에 데우는 것이다. 기름 없이 중간 불에 데워야 제맛이 난다.전자레인지에 3~4개 데울 때는 30초 정도 데우는 것이 좋지만 약간의 뻣뻣함이 있다고.특별한 맛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우유를 한잔 연한 블랙커피나 녹차와 함께 먹으면 일품이다.이씨는 '전통을 잇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했다.그는 "국민 간식으로 손꼽히던 호떡도 80년대를 지나면서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며"이런 인식을 없애기 위해 본격적으로 가게 운영을 맡은 1년 반 전부터는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고 말했다.실제 중동호떡 가게 안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번호표 뽑는 기계가 놓여있다. 예쁜 포장 상자도 마련했다. 무엇보다 전국 배달을 할 수 있는 택배도 가능해졌다. 최소 1만 원 이상부터 택배 주문이 가능하지만 한두 장 덤으로 얹어주기도 한단다.그는"추억을 찾아 가게에 오는 사람들을 만날 때 전통을 이어가는 자부심을 느낀다"며"재료 가격이 올라도 '좋은 재료만 써야 한다'는 할아버지 말씀만큼은 대대로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이 대표는 "앞으로 중동호떡을 체인점화 하는 게 목표다"며"전국 어디서나 중동호떡을 맛볼 수 있도록 성장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끝)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한 게 엊그제 같아요. 온 가족이 대대로 부채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쳤으니 그야말로 부채가 인생 전부인 셈이죠. "전주를 대표하는 합죽선. 이름 그대로 대나무를 이어 만든 합죽선은 조선 시대 진상품으로 명성이 높았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 김동식(70) 선생은 140년 부채 명가의 4대 전수자다. 140년의 세월은 외조부의 기억에 의존해서 계산된 것일 뿐 그 이상 훌쩍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4대째 가업으로 부채를 만들어 온 그의 손끝에서 완성된 부채는 전통의 역사 그 자체다.전주시 삼천동 580-3번지에 있는 동성공방 역시'동쪽에서 뜻을 이루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다.그의 외가는 140년간 부채를 만들어 온 부채 명가다. 외증조부인 故 라경옥 옹 때부터 부채를 만들기 시작한 그의 외가는 당시 완주군 용진면 산정리 석소마을로 터를 옮긴 후 쭉 전통을 이어 왔다. 외조부인 2대 故 라학천 선생 역시 고종에게 합죽선을 진상할 만큼 뛰어난 합죽선 명인이었다고 한다.그 기술은 3대인 라오복, 라이선, 라태순, 라정옥, 그리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라태용 선생에게 이어졌다. 김 명인 역시 14살 때부터 외삼촌들에게 부채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그는 140~150가지의 공정을 오로지 수작업으로 한다. 벼락을 맞은 대추나무나 상아, 민어 부레로 만든 풀을 쓰다 보니 2~3일이 걸려야 하나가 완성된다. '좋지 않은 부채는 제작도 안 한다'는 신념으로 만들다 보니 들어가는 부품도 고가다. 부챗살부터 부채 등까지 모든 재료를 산지에서 공수한다. 최소 5만원에서 25만원에 판매되고 있지만 인기다. 그동안 김 명인이 만들어 낸 부채는 종류도 다양하다. 왕실에 진상하던 50접천선과 윤선을 비롯해 한치의 칠에 따라 달라지는 황침선, 옻침선 등이다. 그는 "요즘은 부채가 흔해졌지만, 부채라고 다 같은 부채가 아니다"라며 "전통과 장인 정신이 담긴 부채를 만들다 보니 자부심도 남다르다"고 말했다. 부채 만드는 일이 사양길로 접어들던 어느 해엔 가세가 기울어 '두 번 다시 부채를 잡지 않겠노라' 다짐하기도 했다는 그. 그러나 백 년 이상을 이어온 전통을 포기하기가 쉽지 많은 않았다고 털어놨다.그는"돈 안 된다고 아무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며 "어려운 시절, 남모르게 지원해준 주위 사람들 덕분으로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아들 김대성(38)씨와 1년 전 들어온 문하생 정회윤(33)씨가 부채의 맥을 이어 가기 위해 비법을 전수받고 있다. 김 명인은 '사는 동안 전통 기술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해마다 아카데미도 열고 있다. 그가 블로그를 통해 기록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대신 팔아주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나 알음알음 인터넷에서 주문이 오기도 한단다.그의 소망은 우리 부채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것 하나뿐이다. 그는 우리 전통을 올곧게 지켜나갈 수 있는 젊은이들이 많이 생겨나도록 현실적인 여건이 조금 나아지길 바라고 있다.김 명인은 "부채는 몇 개를 만드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며"내가 만드는 부채 바람을 타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식(食)은 명(命)을 바꾸는 거예요. 그만큼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겠죠. 저는 음식이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전주의 대표적 음식인 한정식의 대를 이어가고 있는 백번집 주환 대표(69).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1가 44-7번지에 있는 백번집은 주인장의 기억으로 따져봐도 간판을 내건 지 50년이 훌쩍 넘었다.대표 주환씨의 기억으로는 54년이 넘지만, 시에서도 자료를 찾을 수 없어서 추정만 하고 있다.백번집의 시초는 흙 골재 사업을 하던 어머니 故 김종화 씨가 인부의 음식을 차려주던 일에서부터다. 음식 솜씨가 소문나면서 故 김종화 씨는 기존 골재 사업을 외삼촌들에 넘기고, '칠봉옥'이란 이름으로 식당 문을 열었다.4년 넘게 칠봉옥을 운영하다가 자리를 옮기면서 지금의 이름인 '백번집'이 탄생했다.가게에 자주 찾던 향교 어르신들이 지어준 백번집은 '백제땅의 주막'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칠봉옥 시절엔 막걸리와 약주를 개발해서 술상도 봤었다는 주 대표. 이후 5번이 넘게 자리를 옮기며 지금의 한정식이 완성됐다. 현재 가게의 자리는 1997년 11월에 이사와 15년 째다. 당시 직장생활을 하던 장남 주환 씨가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았다. 4인을 기준으로 한 상 가격이 10만원부터 25만원 정도.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한 달 평균 1500명의 손님이 다녀간다. 주 대표는 "어머니가 가게를 운영하던 시절, 외상으로 밥을 먹던 손님들이 봉급날을 기다리며 장부에 일일이 사인하던 때가 있었다"며 "기억에 남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음식재료가 떨어져도, 사람들이 붐벼도, 끝끝내 기다리다 돌아서도, 백번을 찾아주는 손님들이 가장 애틋하다.백번집의 맛의 비법은 음식 기본 베이스인 된장, 고추장, 간장을 직접 담그는 데 있다.여전히 매일 새벽 5시가 되면 음식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으로 향한다. 홍어탕, 홍어찜, 육회, 된장찌개가 인기 메뉴. '시골 밥상을 차려주는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치켜세우는 손님들이 많단다.전통을 이어가는 가게가 모두 그러하듯이 가게 운영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는 그. 그는 음식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다.주 대표는 "추운 지방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의 식사법이 다르고, 남쪽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식사법이 다르듯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계절마다 음식도 다르다"며 "제철에 나는 음식재료를 성심껏 거두어 손님께 대접하는 한정식은 음식의 종합예술이면서 동시에 약상이다"고 말했다. 외지인 방문이 늘어나면서 전주 한정식에서도 퓨전(fusion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것을 섞어 새롭게 만든 것)이 시도되고 있지만, 신토불이만을 고집하는 이유다.어머니가 생전에 '이익 남기려고 값싼 음식재료를 쓰면 얼마 안 가서 망한다','진실로 살라'는 말은 이제 신념이 됐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한식재단과 농림수산식품부가 공동사업으로 진행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 100선'에도 뽑혔다. 국내 다수의 방송은 물론 일본 NHK에 소개될 정도다. 여수 엑스포가 열리는 기간에는 백번집을 찾는 손님들로 가게가 마비됐었다고. 도에서 지정하는 향토 전통음식업소 지정도 그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1년 전부터는 아들 주범준(34) 씨가 주 대표의 뒤를 잇고 있다. 주 대표는 "전통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게 아닌 것 같다"며 "시대가 변하지 않는 맛, 향토 음식으로 승부하겠다"고 말했다.
"칼국수가 칼국수지 별거 있겠느냐고요? 한번 맛보면 잊지 못하는 맛의 비법은 조리법을 공개해도 흉내 낼 수 없는 정성에 있죠."전주시 완산구 교동 85-1에 있는 베테랑은 1977년 故 김정기김향임(61)씨 부부가 처음 문을 열었다.베테랑이란 이름은 故 김정기 씨가 소련의 베테랑 조종사를 소개하는 뉴스를 우연히 보게 되면서 만들어졌다.프랑스어인 베테랑(veteran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의 의미를 알게 된 故김정기 씨가'나도 베테랑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이곳의 역사가 시작됐다. 사실 베테랑은 처음엔 라면, 냉면 등을 파는 분식집이었다. 김향임 씨가'비싼 라면을 대신할 메뉴가 없을까?'생각하다가 만들어진 메뉴가 지금의 칼국수다. 지금은 칼국수 외에도 쫄면, 만두 등 3가지 메뉴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칼국수 면과 깨, 달걀, 김이 넉넉하게 들어간 칼국수의 매력은 툭툭 끊어지는 면발에 매력이 있다. 또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피의 만두는 깨물었을 때 입안에 퍼지는 고소한 육즙이 일품이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의 칼국수를 처음 맛본 사람들은 혹평하기도 하지만 3번 이상 먹으면 100% 중독될 정도로 독특한 맛이 있다고.현재 베테랑은 김향임씨와 아들 김은성 씨(37)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김은성 씨는 이런 유명세에도 어머니가 그만두려고 결심, 4년 전엔 아예 가게를 내놓은 적이 있을 정도로 조리 과정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서울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하던 김은성 씨는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 이젠 그야말로 베테랑이 됐다. 한옥마을이 유명해지면서 한 달에 찾는 손님 수도 3만 명으로 늘었다.인터넷에 소문이 나면서 '칼국수 한 그릇 먹기 위해 전주에 왔다''베테랑 칼국수 진짜 베테랑이셔' 등 재미난 글들이 올라올 정도다.베테랑이 특별한 이유는 이런 유명세에도 대부분 '이름 좀 있다'하는 맛집이면, 있을 법한 유사 음식점이 없다는 데 있다. 대표 메뉴인 칼국수 조리법을 아는 사람은 25년 차 주방직원을 포함해 5명. 김 대표는 "사실 가게에서 일하던 사람이 비슷한 가게를 잠깐 낸 적도 있었다"며"가게로 돌아온 직원이 '똑같은 조리법으로 만들어도 같은 맛이 나오지 않는다'고 속마음을 털어놔 함께 웃었다"고 귀띔했다.김 대표가 생각하는 맛의 비법은 좋은 재료와 정성에 있다. 특히 베테랑이 고집하는 국산 재료와 사계절 내내 새콤한 맛으로 유명한 무는 신선한 보관을 위해 별도의 저온창고까지 마련했다고."전통을 지켜내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도민들이 오랜 시간 찾아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영광은 없었다고 생각해요."김 대표는 가게를 물려받은 뒤 손님이 부쩍 늘어 힘은 들지만, 고객들이 알아준다는 생각에 힘을 얻는다고 했다. 아버지가 남몰래 인근 학교 학생들을 위해서 내놓았던 장학금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그의 꿈은 베테랑의 전통을 대대손손 이어가는 것이다.김 대표는 "유명세를 얻었지만, 가게 한번 떠나지 못하고 일해왔던 어머니는 '뭐가 좋아 이 고생을 손주에게까지 물려 주려고 하느냐'고 타박을 주기도 한다"며"가까운 미래에 아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을 그리며 꾸준히 노력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화 바람이 불면서 대부분의 동네 치킨집들이 사라졌잖아요. 사실 저희 가게도 문 닫을만한 일이 많았어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40년간 전기구이 통닭 맛을 이어왔으니, 고객 여러분이 가게를 지켜준 셈이지요."전주시 경원동 2가 53-5번지에 있는 '꼬꾜영양통닭'은 40년 전통의 전기구이 통닭 맛을 자랑한다.'꼬꾜영양통닭'은 전주 사람이라면 다 아는 유명한 곳이다.김금술(64)장월주(63) 씨 부부가 1974년에 문을 연 '꼬꾜영양통닭'. 지금도 많은 사람이 '꼬꼬영양통닭'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애칭이다.닭의 울음을 표현해 만든 '꼬꾜'를 손님들이 '꼬꼬'로 바꿔 부르면서 이름도 두 개가 됐다. 단골들이 부르는 애칭이 가게 이름으로 바뀐 셈이다. 자리를 옮겼지만, 간판에는 두 개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졌다.꼬꾜는 기름을 쪽 뺀 전기구이는 물론 얼큰한 닭곰탕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새콤달콤하고 사각사각한 맛으로 인기를 끄는 무와 양배추와 케첩, 마요네즈가 버무려진 샐러드는 추억의 맛이 담겨있다. 개점 당시 통닭뿐 아니라 닭백숙, 칼국수 등 수십 가지의 메뉴를 팔기도 했지만, 현재는 닭곰탕과 전기구이 두 가지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처음 850원으로 시작한 통닭 가격은 최근 17000원으로 올랐지만, 보통 통닭이 700~900g인 것에 비해 꼬꾜의 닭은 1.1㎏ 정도로 푸짐하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다른 지역에서 손님들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지만, 하루에 70~100마리 정도만 판매하고 있다.특히 가게에서 내놓은 모든 음식은 국내산만을 고집해 직접 만들고 있다. 아내 장 씨가 직접 담근 무절임 역시 가정에서 만드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에서는 '인공적인 맛이 나지 않는 가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김금술 대표가 꼽는 맛의 비결은 다른 집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 닭을 손질하는 데 있다. 닭 속까지 양념을 넣어 그 맛도 깊다.김 대표는 "초벌구이한 뒤 개발한 닭기름에 재벌구이해 바삭한 맛을 입힌다"며 "일반적인 전기구이 통닭이 기계에 1시간가량 익힌 다음에 식용유에 2~3분 튀기는 방식과도 대비된다"고 말했다. 이어 "낮 12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데도 새벽 4시에 출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귀띔했다.현재 맛의 비법은 아들 김동환 씨(36)가 전해 받고 있다고.그러나 꼬꾜가 늘 탄탄대로를 걸어왔던 것은 아니다. 김 대표는 "양념 통닭이 들어서기 전에만 해도 3층 가게가 꽉 찰 정도였고, 가게에서 약혼식을 하는 손님들도 있었다"며"그러나 '88올림픽'때부터 양념 통닭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전기구이는 밀려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이어"양념 통닭 인기와 IMF, 조류인플루엔자까지 겪으며 손님은 뚝 떨어졌었다"며 "세 번의 고비를 넘는 동안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그가 가게 문을 닫기로 작정한 2002년 월드컵 직후에도 이를 알아챈 고객들의 만류를 이기지 못해 계속 문 열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들어서는 대형프랜차이즈와 물가 인상만큼은 감당할 수 없어 가격을 올렸다고.어려움을 있을때마다 '건강한 음식을 찾는 때가 오면 고객도 전기구이로 발길을 돌릴 것'이라는 아내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는 김 대표.그는 "맛으로만 인정받아 전통을 이어온 지역의 많은 가게가 알려질 수 있도록 자치단체의 지원도 있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꼬꾜통닭을 먹으면 '전주를 맛봤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처음 전주에 오시면 비빔밥, 콩나물 해장국 찾으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하지만 오모가리탕을 맛보고서야 진짜 '전주의 맛'을 찾았다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정말일까 궁금하시다면 한 뚝배기 하러 오세요."오모가리는 항아리를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오가리'에서 나온 말이다. 뚝배기에 시래기를 깐 뒤 쏘가리, 메기, 동자개(빠가사리) 등의 민물고기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민물 매운탕을 오모가리탕이라 부른다. 음식을 끓여낸 그릇이 요리 이름이 된 셈이다.전주천변 전통문화센터 옆에는 오모가리탕을 파는 음식점 서너 곳이 몰려있다. 그중에서도 전주시 완산구 교통 2-8번지에 있는'화순집'이 원조로 꼽힌다. 故 허점순 씨의 손맛은 30여 년 전 김종희(65) 대표가 이어받았다.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이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친척 할머니다. 가게 이름 역시 故 허점순 씨의 고향인 전남 화순을 의미한다.625 직후 천변 근처에서 하숙집을 했던 故 허점순 씨가 가게 앞 개울에서 잡아 올린 민물고기를 냄비에 끓여 하숙생에게 대접했던 게 화순집의 시초다. 늑장을 부리던 하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먹이기 위해 뚝배기에 끓이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전주천이 아닌 진안 지역에서 잡아 온 메기나 쏘가리, 동자개 등으로 매운탕을 끓이는 것이다. "우리 집 맛의 비법은 정성이에요.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 국산 재료만을 엄선하거든요. 1년 동안의 숙성과정을 거쳐 유해성분을 말끔히 제거한 천일염으로 맛을 낸 시래기를 더 좋아하시는 분들도 꽤 많아요."오모가리탕은 천천히 즐기며 먹는 음식이라는 김 대표는'설 끓으면 비린내가 나서 먹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애피타이저로 '깜밥(누룽지의 전라도 사투리)'을 내놓기도 한다. 누룽지는 바삭바삭하면서도 쫀득쫀득해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뚝배기에 끓인 오모가리탕도 맵싸하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개운하다. 오모가리탕과 함께 화순집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1년 365일 제공되는 검은 콩밥과 갈치속젓이다. 콩밥에는 고객들에게 질 좋은 쌀과 콩으로 맛있는 밥을 먹게 해주겠다는 김 사장의 발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농가를 직접 찾아가 쌀과 콩의 품질을 꼼꼼히 살펴본 뒤 직접 구매하고, 까다롭게 골라 직접 담은 100% 가정식 김치만 내놓는다. 갓 구운 김에 싸먹는 갈치속젓의 맛은 한 번 맛본 사람은 절대 잊을 수 없어 갈치속젓을 직접 구매하는 손님도 많다. 특히 그가 고르는 생선은 까다롭기로 유명해 진안에서 나는 자연산만을 고집한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때그때 조달한다고.인터넷으로 화순집의 맛이 소문이 나면서부터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12개 테이블만 놓인 이 작은 가게에서 점심과 저녁만 파는데도 하루 평균 80여 명의 손님들이 다녀간다.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강한 밥상을 대접하려 했던 창업주의 마음을 지키고 싶다는 김 대표.김 대표는 "한해가 더해 갈수록 60년이 넘는 전통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커진다"며 "손님이 언제 찾아와도 어머니가 해주시는 집 밥 같은 밥상을 맛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기록에 있는 것으로만 따지면 진묵대사님이 수왕사를 정유재란 때 중건하고 송화백일주를 만들었습니다. 송화백일주의 역사를 따져보면 최소 400여 년 이상이죠. 닫힌 기(氣)를 다스리게 하는 송화백일주 한 모금이 곧 정신문화였지요.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1호 벽암(碧岩) 스님이 빚어내는 '천 년 신비의 사찰 법주'로 알려진 송화백일주.그 향의 깊이를 알기 위해서는 수백 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애초 송화백일주는 스님들이 고산병을 없애려 마시던 곡차였다. 모악산 해발 800m 수왕사에서 참선을 하던 수도승들은 기압차이에 의한 고산병을 치유하려고 지천으로 널린 소나무 꽃을 이용해 곡차를 만들어 마셨다.이런 기록은 신라 진덕여왕 때 부설거사 도반승인 영희(靈熙)와 영조(靈照)가 수도에 정진하고 헤어지면서 회포를 달래기 위해 송화 곡차를 마셨다는 불교사화집에서 입증된다.송화가루와 솔잎의 깊은 향에 산수유, 오미자, 구기자 등의 재료를 더한 송화백일주는 100일 이상 저온 숙성해 황금색을 띤다. 뒤끝이 깨끗하고 잔향의 여운이 은은해 맛보려는 사람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송화백일주는 수왕사 주지들에게만 일인 단맥으로 전해져 온 덕분에 일제 강점 문화말살기와 밀주 단속이 심했던 때에도 맥이 끓기지 않았다. 벽암 스님(조영귀64) 역시 모악산 수왕사 주지이면서 송화백일주 12대 전승기능보유자다. 벽암 스님은 12세에 김제 흥복사로 출가, 15세 때부터 수왕사에서 송화백일주송죽오곡주 만드는 법을 배웠다. 1960년부터 수왕사에서 법력을 키워온 스님이 사찰 법주를 대중화시킨 것은 1992년부터다. 사찰 법주 역사를 후대까지 전하기 위해 1990년 송화양조사를 세웠다. 4년 후인 1994년 8월엔 벽암 스님이 민속주 명인 제1호로 지정되는 영예도 안았다.1998년에는 민속주 부문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만큼 송화백일주가 명주로서 진가를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벽암 스님은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벽암 스님은"사실 송화백일주 제조작업이 힘든데다가 돈이 되지 않는다"며"그럼에도 일을 해 오고 있는 것은 우리 전통문화를 어떻게든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선조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지금은 가족들이 함께 꾸려가고는 있지만 사실 힘이 부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벽암 스님은"명인이 기업화에 나서면 명주의 의미도 훼손된다는 게 보편적인 생각이지 않느냐"고 반문하며"명인으로 지정만 해놓고 지원이 미비한 정부 정책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명인이 장사꾼으로 남지 않고 전통을 보존계승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문화의 한 장으로 끌고 가야 후대에서도 잊히지 않는다는 스님의 생각은 후계자 조의주 씨(40)에게도 전해지고 있다. 가족이기도 한 조씨는 이런 이유로 송화백일주의 비법을 전수받고 있기도 하지만 콘텐츠를 살려내려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전해져 내려온 사료들을 정리하고 그 제조 과정을 살려낸 대한민국식품명인1호 송화백일주 이야기 팸플릿을 만들어 기록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벽암 스님은 "송화백일주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 빚어낸 술"이라며 "앞으로도 송화백일주에 담긴 선조의 정신문화가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물량이 없어서 못 팔 때도 있어요.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날에는 구매 제한을 둘 정도니까요. 많이 파는 것보다 하나라도 정성 들이고 싶어요. 못 사고 가시더라도 이해해주세요."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넘쳐나는 세상, 그 흔한 홈페이지 하나 없이 늘 빵을 사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있다.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 1가 40-5번지에 있는'피엔비(PNB) 풍년제과'는 매장이 150㎡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가게다.어렸을 때 별명이'현미 빵'이었다는 강현희(66) 대표는 "빵과 함께 인생의 희노애락을 경험해왔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PNB 풍년제과는 1951년에 문을 연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다. 그의 기억 속에 제과점이 뚜렷했던 해를 개업일로 잡아 간판에 새겼다. 그렇게 올해 62년째인 빵집의 역사는 간단치만은 않다.창업주이자 아버지인 故 강정문 씨는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전병(煎餠밀가루 등의 재료를 반죽해 틀에 넣고 구운 과자)으로 손맛을 인정받았다. 3대에 걸쳐 100~150가지의 빵을 파는 피엔비(PNB) 풍년제과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시내 상권의 중심에 우뚝 섰었다. 빵집의 대명사이자 만남의 장소로 인식될 정도였지만,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위기에 닥쳤다.대기업 빵집들이 도심 가에 들어서고, 포인트 카드 등을 내세운 할인에 밀려나기 시작했고, 가족이 함께한 프랜차이즈 사업에서도 쓴맛을 봤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전남 광주의 한 업체에 상표서비스표권을 팔면서 본점은 '풍년제과' 대신'피엔비(PNB) 풍년제과'를 쓰게 됐다.현재 가족들도 사업에 손을 떼, 아버지의 맛을 잇는 가게는 오로지 이곳 하나다.한때'풍년제과는 망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어려웠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일본 유명제과점에서 근무하는 제빵사를 매주 초청해 기술을 닦았다. 기술뿐 아니라 영업 마인드와 제과점마다 서로 다른 장점을 익히기 위해 애썼다. 적자를 봐도 재료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이런 노력 끝에 3년 전부터는 한옥마을을 다녀간 관광객을 중심으로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풍년제과 초코파이'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호두, 마시멜로, 딸기잼이 묘하게 어우러져 달지 않은 초코파이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한 개에 1600원이지만 매장에서만 하루 5000개가 팔리고, 인터넷에서는 '꼭 들러봐야 할 명소'로 꼽힐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택배를 보내달라는 주문도 오로지 전화로 받다 보니 전화 연결까지 수십 분을 기다려야 한다. 취재가 이뤄진 평일, 점심시간 전 이미 100여 명의 손님이 다녀간 뒤었지만 관광객이 몰린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뤘다.강 대표는 최근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비결로 '정성'을 꼽았다. 그는"옛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신선함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그러나 맛이 변하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전통방식만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대표의 목표는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남긴 맛,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현재 자녀에게 자신의 경영 철학과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는 강 대표는 "빵 하나를 사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주시는 손님들을 볼 때면 기쁘기도 하지만 책임감이 더 막중해진다"며 "역사를 함께 만들어 온 도민의 삶 속에서 맛을 잃지 않는 제과점이 되겠다"고 말했다.
"가게를 옮기거나 개조를 하지도 않았어요. 오로지 '맛으로만 승부하자'는 제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서 노력했죠. 그러다 보니 외국에서도 찾아오는 손님까지 생겨났어요. 이제는 세월이 흘러도 동락일식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지금의 맛, 그대로를 전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3가 88-3번지에 있는 동락일식은 숙성회와 어묵탕, 생선탕으로 유명하다. 수족관이 없는 일식집으로도 유명한 이곳. 故 김장수 씨가 개점 초기 일식, 한정식, 경양식을 파는 가게로 시작, 초반엔 초밥가게로 유명했다. 특히 돌에 갈아서 만든 어묵이 인기였다. 71년도에 일식에 입문한 임재택(60) 씨는 1983년에 현재의 자리를 그대로 이어받아 일식점으로 개점했다. 현재 그의 맛은 아들인 임채규(35) 씨가 이어받기 위해 배우고 있다. 초창기 동락에서 일을 배웠다는 임 대표는 "한자리에서 가게 이름을 지켜낸 지 반 백년이 훌쩍 넘었다"며"초심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손님이 늘어도 가게는 늘리지 않았다"고 말했다.60명이 머물 수 있는 작은 가게는 정직한 그의 맛처럼 세월 그대로를 담고 있다. 하루 평균 100여 명의 손님이 다녀가고, 일 년 매출은 3억원 선이다.동락일식에서 유명한 숙성회는 자연산 민어와 광어를 일정 시간 무명천에 감싸 물기를 빼고 먹는다. 특이한점은 두툼한 회를 묵은지에 돌돌 말아 싸먹는 방식인데 고추냉이에 찍어 먹는 맛과는 다르다. 광어와 민어가 두툼한데도 불구하고 식감은 부드러워 인기다.특히 일본인 스승인 사히또 상에게 전수받은 그대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방식만큼은 고수하고 있다. 매일 장을 보는 임 대표는 군산까지 달려가 직접 수협 어판장에서 낙찰받은 상품만 쓴다.쌀과 김치는 모두 국내산 재료로 직접 만들고, 채소는 그날그날 필요한 만큼만 산다. 절대 냉동실에 있는 음식은 내놓지 않는다는 게 원칙. '맛이 변하면 망한다'는 생각에 생선탕에도 얼리지 않는 재료만 고집한다.횟집은 대개 비수기인 여름에 1~2개월 문을 닫기도 하지만 동락일식엔 보신탕 대신 민어탕을 찾는 손님으로 가득하다.사골로 우려 깊은 맛을 자랑하는 어묵탕 역시 인기. 4월까지만 판매하는 어묵탕을 맛보기 위해 외국에서 찾아올 정도다. 그러나 점심 한 끼라도 예약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다.임 씨는 "대기업에서 파는 어묵은 절대 쓰지 않는다"며"겨울철에만 만드는 수제 어묵을 쓰기 때문에 그 맛이 다르다"고 말했다.이어"물가가 오르지 않았을 땐 술값만 받고 안주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도 했다"며"현재 메뉴도 손님의 부담이 덜기 위해 고민 끝에 내놨다"고 소개했다. 실제 2명이 가서 1인 회만 시켜도 되기 때문에 부담도 적다. 계절에 맞는 굴, 민어 껍데기, 전복, 키조개 관자 등 신선한 보조 음식도 맛볼 수 있다.신념을 지켜내니 가게 운영은 비교적 순탄했다는 임 대표는 "가게와 함께 인생의 과정을 겪어낸 70대 손님에게 조금더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된다"며"맛에만 집중해 손님을 이끌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이어"시간이 흘러도 동락에 오시는 분들에게 지금의 맛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454-1에 있는 삼백집은 전주 콩나물국밥 집에서도 원조 격이다. '욕쟁이 할머니'집으로 유명했던 삼백집은 故 이봉순 씨가 1947년에 개업한 이후 66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창업주 이봉순 씨가 내뱉는 투박하고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는 콩나물 국밥만큼 시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욕이라기보다 누구에게나 구수하고 고향집에 찾아온듯한 편안함을 안겨주었다고.가게 이름이 삼백집인 이유도, 하루 300그릇의 국밥을 준비해놓고 떨어지면 문을 닫았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붙여졌다.1972년에 이봉순 씨가 타계하면서 삼백집의 맛은 함께 일해오던 故 방복순씨에게 이어졌다. 삼백집은 거의 비슷한 연배인 이 할머니와 방 할머니 두 사람의 손맛으로 이뤄냈다. 방복순씨는 지금 대표인 조정래 씨(68)의 어머니다. 방 할머니마저 손을 놓은 주방은 조 씨의 부인 김분임 씨(67)와 자매인 김옥임 씨(75)가 31년 동안 지켜오다 최근 젊은 주방장에게 이어졌다.오랜 세월만큼 이야기도 넘치는 삼백집. 현재 본점에서만 하루 1500그릇이 팔릴 정도로 인기다. 특히 60년대 후반 근처 호텔에 머물며 흰 Y셔츠차림으로 아침해장을 하러 찾아왔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해장국을 먹는 박정희에게 달걀을 넣어주다가 유심히 내려다보며 '네놈을 어찌 그리 박정희를 쏙 빼닮았냐? 누가 보면 대통령인줄 알겠다 이놈아' 하며 돌아서다가 '그래도 그놈은 큰일이나 했지'하고 달걀을 하나 더 깨서 얹어주었다는 것.자신의 작품 식객에 삼백집을 소개한 만화작가 허영만 씨도 100% 국내산 콩나물과 김치로 만들어지는 국밥을 시시때때로 찾아주는 고마운 손님이다. 그러나 조 대표는 오히려 이름도 직업도 모르지만, 가게에서 수십 년째 아침 점심을 먹는 손님들 덕분에 전통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한다.여전히 삼백집은 출근길 직장인들에게는 아침 식사 겸 해장국집이고, 점심과 저녁도 언제 가든 식사가 가능한 가게다. 그러나 국 맛과 분위기는 변화하고 있다고.조 대표는"콩의 명산지인 임실군 콩 재배 농민들과 영농조합을 설립해 건강한 콩나물을 생산하고 있다"며"음식에는 건강한 재료를 써야한다는 어머님 말씀을 명심하지만 조금씩 재료를 변화해 다른 맛을 찾고 있다"고 했다. 맛이 변화하는 것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는 조 대표. 가게 인근에 마련된 연구소에서는 6명의 직원이 더 나은 맛을 위해 실험하고 있다고 귀띔했다.3년 전부터는 이런 맛을 인정받아 프랜차이즈점을 서울과 대전 등 전국에 내고 있다. 어디서나 본점과 같은 맛을 볼 수 있도록 회사 휴림(주)과 공장을 세워 재료를 납품할 수 있게 했다.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조 대표. 조리방법만 배우고 나가서 비슷한 가게에 취업하거나 창업하는 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최근엔 한 박스에 3만원 하던 청양고추가 14만원으로 올랐을 만큼 원재료 값은 물론, 인건비 등이 상승하면서 근심도 커졌다.하지만 지난해 말 대형 업소를 중심으로 한 그릇에 5000원에서 6000원으로 콩나물국밥값이 20% 올렸지만, 삼백집만큼은 고객의 사랑을 지키고 싶어 5000원을 고수 하고 있다.조 대표는 "전주 삼백집하면 마음 놓고 시원한 콩나물해장국 한 그릇을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정직하고 착한 가게라는 평판만큼은 지키고 싶다"며"시대가 흘러도 두 할머니가 끓여내던 정성의 맛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70년의 맛, 그 맛에 반해 맥을 잇기로 했지요. 꾸준히 찾아주는 손님들이 없었다면 지켜내지 못했을 거예요."전주시 완산구 경원동 3가 199번지에 있는 백일홍은 만두와 찐빵으로 유명하다.평소 꽃을 좋아했다는 창업주 故 정창녕씨가 전라북도의 꽃인 백일홍을 가게 이름으로 내걸면서 찐빵가게의 역사가 시작됐다.고인이 된 정씨는 85세까지 직접 가게를 운영했지만, 그 맛은 아들의 친구였던 장성기(56) 대표에게 대물림됐다. 현재 장 대표는 아내 신동순 씨(54), 조카 장진영 씨(36)와 함께 그 맛을 이어가고 있다.백일홍가게 옆에서 구두 제화점을 운영하던 장 대표가 친구 아버지의 가게로 들어선 것은 1986년쯤. 6년 가까이 만두와 찐빵 만드는 법을 배웠고 지금 자리에 가게 문을 연 지 15년째다.백일홍 찐빵과 만두의 특징은 두툼하면서도 쫄깃한 만두피와 100% 국내산만을 고집하는 재료에 있다. 팥앙금과 고기는 물론 야채까지 손수 구입하는 것은 물론 '날씨 따라 달라지는' 반죽조차 수제다.그날그날 판매할 양을 준비했다가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 백일홍. 이 때문에 허탕치고 가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전통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노력하는 백일홍은 만두와 팥 앙금 파동이 있었을 때도'믿고 먹을 수 있는 만두'라고 소문나면서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소량판매 원칙을 세우다 보니 KBS 아침마당에 가게가 소개됐을 땐 '단골손님들은 당분간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단다.오랜 전통을 이어가다 보니 손님 성화에 고속버스로 다른 지역까지 찐빵을 실어나르기도 했다는 장 대표. 현재는 당일 배송이 되는 서울에만 택배를 보내고 있다. 오랜 시간만큼 기억에 남는 고객들도 많다고 한다. 한승헌 변호사, 탤런트 고 조경환씨 등 유명인사한테는 편히 맛보라고 사인이나 기념사진도 안 찍고 그냥 보낸다는 장 대표. 오히려 맛에 길든 고객들이 모니터링을 자처한다고. 이렇다 보니 팥 앙금에 들어가는 설탕을 줄이는 데 10년이 걸렸다.그러나 장 대표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장 대표는 "3년 전에 kg당 4500원이었던 팥이 올해는 1만3000원까지 올랐다"며 "야채, 밀가루는 물론 공공요금까지 올라 가격을 지켜내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이어 "매일 1인분씩 50년째 사가는 단골, 대신 배달해주는 손님들이 있어 쉽게 재료와 가격의 유혹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고객과 함께 전통을 만들어간다는 장 대표.그는 "손님들이 크게 붐비지 않아도 꾸준히 맥을 이어가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에 만족한다"며 "가족이 먹는다는 심정으로 전통의 맛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구한말을 전후해 인천에 화교들이 들어오면서 '청요리'가 알려졌어요. 부두 근로자들을 상대로 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게 되면서 자장면 같은 중국음식이 인기를 끌었죠. 1940년대 후반부터 전주에도 상당수의 중국인들이 이주해오면서 구 다가동 파출소 일대에 중국음식점이 들어섰습니다."전주시 완산구 중앙동 2가 31번지에 위치한 일품향은 만두 전문 중국 요리집이다. 올해로 63년째를 맞는 이 가게는 오로지 맛있다는 입소문으로만 찾아온 손님들에게만 음식을 내놓는다.자장면보다 우동이, 우동보다 만두가 더 유명한 조금 특별한 가게다.보통 중국집이 점심때 손님이 집중되는 것과 달리, 일품향은 점심시간이 지나서도 만두를 맛보려는 손님들이 몰린다. 특히 주말에는 오후 9시까지 서울, 부산 다른 지역에서 찾아 온 손님들로 북적인다.중국인 故 조홍발씨가 1950년에 창업한 일품향.그의 손맛은 아내 소정순씨(83)에게 이어졌다. 소정순씨는 지금 장녀 조충화씨(58), 사위 레경구씨(59)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가게에서 태어나 일품향에 대한 애정이 더 각별하다는 조충화씨.조씨는 "처음엔 삼동식 만두를 잊지 못한 아버지가 레시피를 개발해 군만두, 찐만두, 물만두만 팔았다"며"다른 중국집과 비슷한 메뉴를 팔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부터다"고 설명했다.여전히 소정순씨가 만두의 맛을 내고 있지만 장녀인 조씨는 장보기부터 사실상 가게 운영을 도맡고 있다. 만두안에 가득한 고기가 일품으로 유명한 이 곳. 특별함보다는 정직함으로 승부한 만두는 속이 두둑하다.조씨는 고기보다 야채를 선호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부터 야채 비율을 조금 늘렸다고 귀뜸한다. 특히 가격을 세분화해 여러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게 한 11년 전부터 혼자서 가게를 찾는 손님들도 늘어났다고 한다.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개발한 탕수육과 우동도 만두 못지않은 인기 메뉴다. 아버지 때부터 강조한 것은 오로지'문밖에 나가지 않고 오는 손님만 받는다'는 원칙. 세련되지 않은 가게 모습은 63년의 역사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일품향의 만두는 이제 해외에서 직접 찾아와 제조 방법을 배우려는 화교들의 발길이 이어질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미식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만두명가'로 자리매김하면서 연매출도 1억원을 훌쩍 뛰어 넘었다.조씨는 "중앙동 상권이 침체되기 시작했을 때도 옮기지 않고 그 맛과 가게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한 것이 성공의 비결인 것 같다"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맛을 유지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제 상황 때문에, 대기업에 밀려서. 하루에 문을 여닫는 가게가 수없이 늘어나고 있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신 만의 차별화된 노하우로 명성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트렌드도 비껴가는 명가 이야기. 전북일보는 명가로 자리 잡기까지의 남다른 노력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흘린 눈물과 땀방울,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다."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그 이름을 지켜내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가장 좋은 재료만 쓰라는 시어머니 말씀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 게 명가라는 이름을 듣는 비결인 것 같아요. 개업 이후 한 번도 불량 식자재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거든요."전북 군산시 중앙로 1가 옛 시청 건물 맞은편에 자리한 제과점 이성당(李成堂). 1945년 광복을 맞던 해 문을 연 이후 68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기도 하다.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든 집이라는 간단한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력과 명성은 간단치 않다.이성당은 사실 1920년 '이즈모야'라는 일본인 제과점이 모태다. 이 제과점 이름은 일본 시네마현 이즈모시의 지명에서 따왔다고 한다. 광복 후 적산가옥 불하 과정에서 이성당 창립자 이석우 씨가 이 건물의 절반을 받아 제과점을 시작한 게 현재의 이성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창업주 고(故) 이석우 씨의 조카인 고 조천형 씨의 며느리인 김현주 사장(51)이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김 사장은 "1984년 남편과 결혼할 때만 해도 국내에서 제일 오래된 빵집을 내가 운영하게 될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남편이 1988년 빵과 과자 재료인 앙금과 쌀가루를 생산하는 대두식품을 설립하면서 이성당 운영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평일에는 1500~2000명, 주말에는 3000명 이상이 우리 가게 빵을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들어요. 하루 1만3000개(주말 2만5000개 이상)의 빵과 과자가 팔려 나가지요. 주말에는 1인당 구매량을 빵 10개 이하로 제한했어요. 때론 제과업계 대표님들이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저에겐 언제나 전쟁 같은 일이죠."150평 규모의 이성당은 지난해 60~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식품 원료인 쌀가루와 앙금 등은 김 사장의 남편 조성용 씨(57)가 운영하는 곡물 가공 업체인 대두식품에서 공급받고 있다. 전체 직원 60명 중 제빵기술자 20여 명이 전통의 맛을 재창조한다.이성당이 만들고 있는 제품은 빵과 과자, 케이크, 빙과류 등 200여 가지.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게 앙금빵과 야채빵, 크로켓 등 전통의 아이템이다. 그러나 김 사장은 이성당이 항상 흑자를 냈던 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군산 시내 상권이 신도심 쪽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구도심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 1990년대 말. 구도심 한가운데 있던 이성당도 타격을 크게 받았다. 2000년 초에는 5년 가까이 내리 적자를 냈다.위기를 기회로 삼으려 노력했다는 김 사장은 남편과 함께 쌀빵 개발에 나서는 한편 커피와 야채수프, 토스트 등으로 이뤄진 모닝세트를 내놓았다. 스파게티와 스테이크 요리 등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메뉴도 만들었다.각고의 노력 끝에 이성당이 쌀빵을 내놓기 시작한 2006년부터 손님들이 다시 늘기 시작했다. 그중 성공작이 2006년에 내놓은 쌀가루 빵인 '블루빵'이다. 특히 100% 쌀로 만든 식빵과 센베는 인기만점이었다. 이제 군산의 근대역사콘텐츠가 관광지로 주목받으면서 관광객들의 필수 여행 코스로까지 자리 잡았다.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열리는 유기농 재료 전시회, 제과 전시회를 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는 김 사장. 그는 1년째 전 제품을 효소로 전환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김 사장은 "전통 아이템이지만 프랜차이즈에서 따라올 수 없는 맛을 구현해 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이성당이 오랜 시간 변함없이 인기를 누리는 비결은 기술과 믿음에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앞으로 100년, 200년 고객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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