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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15)사라져가는 새만금의 생물들

새만금사업으로 전라북도는 전국에서 제일 넓은 면적의 갯벌을 잃었다. 지난 5월 국토해양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의 갯벌은 2008년 말 기준 총 2,489.4㎢로 첫 조사가 이뤄진 1987년 이래 714.1㎢가 줄었다. 같은 기간 전라북도 갯벌은 321.6㎢에서 117.7㎢로 무려 63%나 감소했다고 한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굳이 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동진만경강 하구에서 얼마나 넓은 면적의 갯벌이 사라졌는지를 알 수 있다.▲ 새만금 갯벌의 대표 조개 '백합'새만금 갯벌에는 무수하게 많은 생명이 깃들어 있다. 그 중 백합, 우줄기, 계화도조개, 대맛조개, 가무락조개, 해방조개, 동죽, 대추귀고둥 등은 새만금 갯벌의 명물들이다. 이 명물들 중에 대표급은 역시 백합이다.백합은 우리나라 서해와 중국, 일본 등지에 사는데 그 중에서도 부안의 계화도나 김제의 거전, 심포가 유명하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나는 백합이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물론 새만금 물길이 막히기 전의 이야기다.백합은 퇴적물이 유입되는 하구역 갯벌을 선호하는데, 부안의 계화도와 김제의 거전은 동진강과 만경강이 유입되고,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하구역 갯벌이 건강하게 발달되어 있다.백합이라는 이름은 껍데기의 크기가 100㎜ 정도로 큰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껍데기 표면의 무늬가 백이면 백, 각기 달라 얻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그런가하면, 부안에서는 백합을'생합'이라고 부른다. 이는 백합이 다른 패류에 비해 오래 살기 때문에, 혹은 육질이 깨끗하고 신선해서 생으로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백합은 아이들 주먹만한 중간 크기가 먹기에는 좋다. 탕으로, 죽으로, 구이로, 횟감으로, 찜으로 요리해 먹는데 맛과 향이 아주 뛰어나다. 또한 백합에는 철분, 칼슘, 핵산, 타우린 등 40여 가지의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 있어 영양 면에서도 으뜸이다. 예부터 간질환, 특히 황달에 좋다고 전해지고 있다.동진강과 만경강 하구 사람들은 하루에 두 차례씩 어김없이 들고나는 갯벌에 나가 백합 잡아 자식들 공부시키고, 혼사도 시키며 질척이는 삶을 이어왔다.그러나 이처럼 우리네 삶을 지탱해 주고, 미각을 사로잡은 백합이 이 지역에서 사라져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물길이 닿는 지대 어디쯤에 아직은 모진생명 붙들고 있는 백합들도 언제 변을 당할지 모른다.▲ 미국으로 이민 간 '계화도조개'계화도조개는 이름 그대로 계화도에 흔한 조개다. 부안사람들은 바지락보다도 훨씬 작은 이 계화도조개를 '아사리'라고 부른다. 새만금 물길이 막히기 전만해도 부안시장에 가면 가끔 계화도조개를 까서 파는 아주머니를 볼 수 있었는데 주로 젓갈을 담가 먹었다.계화도조개라는 이름은 계화도에서 처음 발견되었거나 계화도에서만 서식하는 생물인 줄 알고 학명을 그렇게 붙인 듯하다. 그런데 이 조개가 태평양 건너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고 한다. 새만금 물길이 막힐 것을 미리 알고 이민이라도 간 것일까? 사실인즉, 계화도조개 종패가 외항선박에 편승하여 샌프란시스코에 건너갔다고 한다.미국 샌프란시스코 해안 생물들이 계화도조개를 당해내지 못하고 자기 영역을 시나브로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계화도조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1986년 처음 발견되었고, 1년 사이에 북부로 확산, 지금은 샌프란시스코만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고향에서는 멸문할 운명에 놓여 있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가문을 번성시키고 있다고 하니 계화도조개 가문의 입장에서는 천만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고사위기에 놓인'대추귀고둥'부안 해창과 김제 학당마을에 서식하는 대추귀고둥도 고사할 운명에 놓여있다.대추귀고둥은 담수의 영향이 미치는 곳, 그것도 염분 농도가 낮은 강 하구의 만조선 위에서 서식하는 희귀종으로 강 하구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생물이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서만 사는 이 종은 1속1종인데다 환경파괴로 인해 개체수마저 크게 줄고 있어 환경부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Ⅱ급으로 지정하였다.대추귀고둥의 크기는 높이 3.5cm, 지름 1.5cm 정도로 대추를 닮은 원추형이며 입구는 사람의 귀를 닮아 좁고 상하로 길며, 항문구 쪽은 좁고 앞쪽은 둥글고 넓다. 껍데기는 두껍고 갈색의 각피로 덮여 있어 벗겨지면 회색이 드러난다.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대추귀고둥이 물길이 막힌 지금도 살아 있을까?2007년 8월12일과 17일 답사 때만해도 살아있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김제 학당 서식지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고 부안 해창의 경우에도 아직은 살아있는 몇몇 개체가 바다와 가까운 해창다리 부근에서 발견되었다.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0년, 김제의 학당이나 부안의 해창 대추귀고둥 서식지 주변환경은 몰라보게 변해 있다. 이 지역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 해 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오동필 씨에 의하면 지난 봄 답사 때에도 이들의 생존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한다.실제 바닷물길이 끊긴 후로 대추귀고둥 서식지 주변은 비교적 키가 낮은 칠면초, 나문재 등의 염생식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키가 크고 억센 갈대를 비롯하여 자귀풀, 사데풀, 명아주 등이 발 디딜 틈 없이 밀생해 자라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대추귀고둥이 서식하기란 좀처럼 어려워 보인다. 설령 아직은 생존해 있다하더라도 서식지 소멸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여겨진다.▲ 새만금갯벌의 이름 없는 생명또 있다. 이 생명체는 세상에 그 존재를 제대로 알리지도 못한 채 새만금에서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동진강과 고부천이 만나는 지점인 동진강 하구(부안군 동진면 하장리 일대)나 만경강 하구인 김제의 화포에 집단으로 서식하는 미기록종이다.지난 9월17일 부안의 이 미기록종 서식지를 찾아 나섰으나 안타깝게도 생존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게 주변 환경이 변해 있었다. 대추귀고둥과 마찬가지로 설령 아직은 생존해 있다하더라도 서식지 소멸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여겨진다.최근 갯벌 전문가들 사이에서 육상의 민달팽이를 닮은 이 생명체의 이름을 '순천바다민달팽이'라고 짓자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름 없는 생명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순천만 말고도 새만금에도 엄연하게 생존하고 있으니 앞의 '순천'은 빼고 '바다민달팽이'라고 이름 지어도 무방할 것 같다.2006년 3월9일 한일공동 갯벌조사단은 환경부 기자실에서 일본 측 전문가들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새만금 갯벌에서 서식하는 신종과 미기록종을 발표했었는데 이 미기록종의 일본 이름은 '야베가와모치'라고 밝힌 바 있다.생물 한 종이 지구상에서 멸한다는 것은 결국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고한다. 후손들이 살아갈 터전인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후손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새만금갯벌에 깃든 뭇생명들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고, 또 이 갯벌에 기대어 살아 온 어민들도 삶터에서 내몰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새만금 생명들을 살리는 근본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허철희(부안생태문화활력소 대표)※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 환경
  • 전북일보
  • 2010.11.01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14)하천 생태계⑤-하구의 조류

동진강 하구인 문포(부안군 동진면)와 동진대교 사이 습지는 주변의 넓은 들과 갈대군락, 그리고 완만한 경사로 인해 겨울철새를 비롯한 새들의 낙원이다.이 곳에 요즘 천연기념물 제 205호 저어새가 머물고 있다.10월초 어느 날, 아침부터 서둘러 동진강 하구 문포에 들렀다. 전날 만경강 하구의 새들을 보고 동진강 하구로 향할 때 쯤 해가 지기 시작해 일정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전 세계에 2,000여 마리 밖에 없는 저어새를 관찰하기 위해서다. 저어새가 꼭 있을만한 장소인 동진강 하구를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맑은 하늘을 주려는 지 아침 안개는 9시30분이 넘어서야 약해진다. 연해진 안갯속을 비집고 망원경을 들이대니 흐릿한 여백에 새하얀 저어새들이 정말 신기하게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300여 미터 앞에 나타난 저어새들은 바로 한강 하구를 비롯한 강화도 주변 번식지에서 남하, 한동안 이곳 동진강 하구에서 머물 것이다.어느새 14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깊지 않은 물에는 많은 치어들이 밀물 때 들어와 새들의 먹이가 되어준다. 펄쩍 펄쩍 뛰며 치어를 쫓는 쇠백로도 만찬을 즐기고 있다. 밥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이리저리 저어가며 먹이를 찾는 저어새는 이렇게 치어들이 몰리는 강 하구의 얕은 물길을 먹이터로 이용한다.매년 수차례씩 전국적으로 조류 동시조사가 있다. 봄가을 갯벌을 주요 서식지로 이용하는 도요물떼새 조사와 가창오리 등 오리기러기류를 조사하는 겨울철 동시조사, 봄과 가을 우리나라가 번식지인 저어새 동시조사, 그리고 겨울을 중심으로 한 두루미류 조사 등이다. 우리나라에서 버더들에게 봄과 가을겨울은 다양한 새들을 조사관찰해야 하는 바쁜 계절이다.이렇게 새들이 많이 찾아 올 때 우리나라에서 꼭 관찰해야 할 곳 중 한 곳이 바로 동진강 하구다. 넓은 의미로의 동진강 하구는 동진대교 1~2km 상류에서부터 부안 계화도까지라고 할 수 있고, 좁은 의미로는 동진대교 부근에서 문포까지라고 할 수 있다.그럼 이 곳 동진강 하구는 새들에게 어떤 곳일까. 하구는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묵직하게 내려온 물줄기가 바다를 만나 수심이 얕은 지형에 작은 갯골과 모래톱 그리고 갯벌을 만들고, 얕고 잔잔한 수면과 함께 다양한 경관을 연출해낸다.동진강 하구는 이처럼 경관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새들에게도 중요한 안식처를 제공해준다.동진강 하구는 우리나라에서 세계적 희귀 조류인 저어새를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다양한 생명이 살아 숨쉬는 경관이 우리가 말하는 '공존'이라면 동진강 하구 생태계는 그런 공존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현재 동진강 하구에는 천연기념물 제 205호인 저어새와 노랑부리저어새, 그리고 천연기념물 제 228호인 흑두루미와 오리기러기류, 도요물떼새 등이 찾아온다. 이렇게 진객이 찾아와 줄 때 반갑게 이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 볼 때이다./오동필(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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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0.10.18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동진강 유역 겨울철새

동진강 유역은 금강만경강과 함께 국내 대표적인 겨울철새 도래지로 꼽힌다. 전북도에서는 도내 내륙해안습지를 찾아오는 겨울 진객들을 위해 인근 농가와 '생물 다양성 관리계약 사업'을 추진, 풍부한 먹이와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동진강 유역을 찾아오는 겨울철새의 종류와 개체수는 얼마나될까.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은 우리나라 겨울철새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생태자료 확보를 위해 해마다 전국 주요 내륙 및 해안습지에서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를 실시한다.올해는 지난 1월 22일~24일, 88개팀 173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전국 172개 습지에서 겨울철새 일제 조사를 진행했다. 이 중 동진강 유역은 ▲동진강 하구 ▲청호저수지 ▲부안 계화조류지 ▲부안 고마제 ▲고창 동림저수지 ▲김제 백산저수지 등이 포함됐다.국립생물자원관의 '2010년도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동진강 유역의 경우, 우선 강 하구 일대에서 57종 3만745마리의 겨울 철새가 관찰됐다. 이 곳에서 겨울을 나는 조류는 청둥오리와 쇠기러기검은머리흰죽지민물도요 등이 많았으며,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인 매와 큰고니큰기러기잿빛개구리매말똥가리재두루미검은머리물떼새알락꼬리마도요검은머리갈매기 등 130여 마리의 희귀 조류가 관찰되기도 했다.철새 개체수가 많기로 유명한 고창 동림저수지에서는 가창오리와 청둥오리큰기러기 등 모두 25종 7만7988마리의 겨울 새가 관찰됐다. 동진강 수계 고부천의 수원인 이 저수지에 서식하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은 큰고니와 큰기러기가창오리참매말똥가리 등이다.또 부안 청호저수지에서는 7종 335마리, 부안 계화조류지 17종 1053마리, 부안 고마제 10종 198마리, 김제 백산저수지에서는 12종 690마리의 겨울 새가 관찰됐다.특히 고창 동림저수지는 겨울 새의 종수는 많지 않았지만 개체수는 전남 영암군 영암호(48만8188개체)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많아 주목을 받았다. 또 동진강 하구도 겨울철 조류 개체수가 전국에서 일곱번째로 많았다.국립생물자원관의 2010년도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에서는 전국 172개 조사지점에서 모두 204종 145만2215마리의 새가 관찰됐다. 이는 2009년도와 비교, 조사지역이 31곳이나 증가했는데도 개체수는 약 25.3%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 환경
  • 김종표
  • 2010.10.18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13) 하천 생태계④ - 하구역 식생 변화

원래 동진강 하구역은 넓은 염습지가 펼쳐져 있어 생태계는 물론, 경관생태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이 곳의 염습지는 조수의 횟수와 침수시간에 따라 시공간적으로 다양한 염습지 동식물들이 서식했던 곳이다. 특히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 완공 이전 동진강 하구역 일대는 주기적으로 해수의 영향을 받아 전형적인 염습지 식생의 유형을 지닌 우리나라 대표적인 염습지였다.동진강 하구역은 침수시간의 영향, 토양 함수량, 염분 농도 등의 차이에 의하여 염습지 식생의 다양성이 높았던 곳이다. 그러나 새만금 방조제 완공 이후 다양한 환경의 변화가 발생, 염습지 식생에서 기수습지와 육상습지 식생의 유형으로 천이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예전 동진강 하구역 일대는 지형의 기복이 심하지 않고 편평하여 조간대가 넓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해수의 영향에 따른 식생대의 변화가 비교적 뚜렷하였다.지형이 낮고 조수의 침수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저위 염습지에서는 칠면초가 순군락을 형성하였으며, 수로 부근과 토양 수분함량이 높은 곳에서는 갈대, 천일사초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또 중위 염습지에서는 갯개미취가 우점하는 곳이 많았으나 칠면초 분포 지역도 비교적 넓게 형성되어 갯개미취-칠면초 혼생 식생의 유형을 보이고 있었다.염습지내에서도 조수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제방 주변 및 육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나문재, 모새달, 갈대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갯잔디, 천일사초, 갈대, 새섬매자기 등은 집중반상형(Patch형)으로 중고위 염습지 등에서 소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었으며, 가는갯능쟁이, 갯개미취, 나문재, 모새달은 띠모양의 군락구조를 나타내고 있었다.그러나 2006년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 완공 이후 1년이 지난 2007년 조사 결과, 동진강 하구역 염습지 식생에서 가장 큰 변화는 염습지 육화현상에 따른 육상식물의 침투로 나타났다.원래 갯벌지역이었던 곳은 칠면초가 침입하여 군락을 이루었으며, 나문재, 갯개미취, 가는갯능쟁이, 갯잔디, 천일사초, 사데풀, 퉁퉁마디, 비쑥 등의 다양한 식물과 갯벌 수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갈대 군락이 빠르게 분포역을 늘려갔다.또한 조수의 영향을 크게 받은 지역은 갯벌로서 식생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방조제 완공 후 염습지 염분농도 등과 관련된 토양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염습지내 식생형성 및 변화가 뚜렷하게 일어나고 있었다.방조제 완공 2년째인 2008년도 이후 염습지 식생의 가장 큰 변화는 육상식물의 빠른 침투 및 이입으로 인하여 동진강 하구역 여러 곳에서 염생식물의 쇠퇴와 육상식물 중 천이초기 식물과 귀화식물의 분포역이 확장됐다는 점이다.특히 동진강 하구역의 김제 광활면 등 일부 지역에서는 귀화식물인 빗자루국화가 강하게 우점하게 되었으며 하구역 곳곳에서 망초, 개망초, 소리쟁이, 방가지똥 등 외래종이 분포하게 됐다.방조제 완공 이후 현재까지 동진강 하구역의 식생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역중 한 곳이 동진대교 일대의 염습지다. 방조제 완공 이전과 완공 직후인 2006~2007년도의 경우 이 곳 염습지내에 분포하는 염생식물의 종수 변화는 크지 않았으나 특정 염생식물의 개체군 크기의 변화는 매우 컸다.2003년에는 갈대, 칠면초, 비쑥, 갯잔디 등이 고르게 분포하였으며, 갯개미취의 경우 예전에는 군락의 구성종으로서 나타났으나 2007년에는 갈대, 칠면초와 함께 이 곳의 주요 종으로 자리잡으면서 갯개미취 분포역이 크게 확장됐다.2007~2008년에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던 갈대군락은 이후 모새달군락과 돌콩-갯조풀-강아지풀-갈대-천일사초의 혼생군락으로 천이가 진행되었다. 또 2007~2008년 칠면초 분포역 내에 소규모 집중반상형으로 분포하던 갈대군락, 갯개미취군락은 현재 갈대, 갯개미취, 빗자루국화, 사데풀 등으로 천이가 진행되면서 매우 큰 식생변화가 일어났다.특히 방조제 완공 이전 식생이 형성되지 않았던 갯벌지역에는 방조제 완공 이후 기수지역의 우점종인 갈대, 새섬매자기, 돌피 등이 분포하고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한 염습지의 염도 변화가 식생의 구성종 변화를 유도한 셈이다.과거 동진강 하구역은 육상생태계와 해양생태계를 연결해 주는 완충지역으로서 생물학적 상호작용이 복잡하게 얽힌 독특한 염습지 생태계를 이룬 곳이었다.그러나 현재의 동진강 하구역은 염습지로서의 역할을 접고 수많은 육상식물과 외래종들에 둘러싸여 서서히 풍요로웠던 염습지로서의 흔적을 지워가고 있다./김창환(전북대 환경조경디자인학과 교수)※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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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0.09.27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수생식물

동진강 상류 정읍시 칠보면 고현교 일대는 비교적 수질이 양호하고 수심이 얕아 다양한 수생식물이 자란다. 이 지역의 주요 식물 군락은 검정말, 붕어마름, 실말, 애기가래, 달뿌리풀, 고마리 등이다.하천의 전반적인 우점종은 고마리이며, 배후식생으로 달뿌리풀이 넓게 군락을 이룬다. 정읍 칠보면 일대 하천에서는 식물이 비교적 다양하게 관찰되는데 말즘, 대가래, 미나리, 사마귀풀, 여뀌 등이 많다.강 주변의 제방과 경작지에는 쑥, 비수리, 환삼덩굴 등이 주로 분포한다.동진강 중류에 속하는 정읍 신태인교 주변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직강 하천으로서 호안의 구조가 단조로워 식물군락 형성에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이곳의 우점종은 갈대이며, 수심이 얕은 호안 가장자리에는 주로 줄이 군락을 이룬다. 대표적인 식물 군락으로는 갈대, 줄, 고마리, 환삼덩굴 등이며, 뚜껑덩굴, 박주가리, 망초, 쥐깨풀, 족제비싸리, 쑥 등 수생식물과 교란지식물이 혼생한다.또 정읍 신태인읍과 이평면을 연결하는 만석대교 일대는 대부분의 하천 고수부지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어 식생이 매우 단조롭다. 그러나 경작지로 이용되지 않고 있는 고수부지에는 매우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이는 하천 형태와 하천 공간의 인위적 교란의 정도가 식물 다양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이곳의 대표적인 식물 군락은 검정말, 마름, 부들, 애기부들, 줄, 갈대, 고마리 등이다. 또 주요 출현종은 붕어마름, 물잔디, 나도겨풀, 큰고랭이, 방울고랭이, 물피, 미나리, 노랑어리연꽃, 왕버들 등이다.강 하류인 동진강제수문 일대와 원평천 죽산교 주변의 경우 인위적 직강하천의 호안과 고수부지의 경작지 사이에서 협소하게 식생이 형성되어 있다.그러나 고수부지의 만곡된 곳에서는 다양한 수생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수생식물로는 검정말, 붕어마름, 실말, 마름, 송이고랭이, 세모고랭이, 방울고랭이, 줄, 애기부들, 갈대 군락을 꼽을 수 있다. 또 귀화식물인 털물참새피가 호안을 따라 길게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김창환(전북대 환경조경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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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0.09.13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12) 하천 생태계③-식생

동진강은 조수성 하구습지와 물길을 따라 형성된 하천습지가 잘 발달한 강이다. 발원지에서 하구역까지 길게 이어진 동진강 생태계는 각 지역에서 다양한 식생대를 연출해낸다.하천식생은 하천의 먹이 형태와 함께 생물 서식환경의 기반으로 곤충이나 조류, 물고기 등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를 제공한다. 또한 홍수 때에는 유속을 약화시켜 하천 바닥이나 수변의 토사 유출을 방지한다. 수질 악화의 주범인 질소와 인을 흡수하는 수질 정화 기능도 탁월하다. 이와함께 식생은 아름다운 하천 경관을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예나 지금이나 동진강은 호남평야의 젖줄이다. 그러나 동진강은 인간의 필요성이 커질수록 그만큼 자연하천의 모습을 잃어갔다. 일제강점기 식량수탈을 위해 만들어진 보(洑)간선수로 등의 관개시설과 직강화 등 치수 사업이 1970년대 식량증산을 위한 녹색혁명으로 더욱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천의 상당 구간이 인공하천으로 변하면서 인위적 식생 교란이 일어나 생물종다양성 감소를 불러왔다.동진강의 식생(植生)은 크게 발원지 식생, 강의 상류중류하류 식생, 그리고 하구 식생으로 구분된다.강의 상류에는 달뿌리풀, 고마리, 미나리, 여뀌, 검정말, 붕어마름, 실말, 말즘, 애기가래 등이 주로 분포한다. 하천식생의 전반적인 우점종은 지점에 따라 달뿌리풀과 고마리이며, 비교적 다양한 침수식물이 자란다.강의 중류는 대부분 인위적으로 조성된 직강하천으로서 제방과 제방을 사이에 두고 물이 흐른다. 수심은 0.5~1.5m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나 하천 형태가 매우 단조로워 다양한 수생식물의 분포가 어렵다. 하천식생의 우점종은 대부분이 갈대이며, 하도에는 줄이 우점한다. 중류에서 주로 관찰되는 수생식물은 부엽식물인 마름, 침수식물인 물수세미검정말, 정수식물인 갈대줄애기부들 등이며, 교란지 식생의 대표종인 환삼덩굴털물참새피가 수변에 넓게 분포한다.부안군 백산면 동진강제수문 일대는 강 하류의 식생을 대표하는 곳이다. 이 일대는 특히 직강화로 인해 식생의 인위적 교란이 매우 심하다.식생은 강 본류의 호안 1~2m 이내에서 주로 형성되어 있다. 하류의 하폭이 50~100m인 점을 고려할 때 식생 폭은 매우 좁다. 특히 식생 형성이 어려운 옹벽시멘트 블록 등으로 조성되어 있는 곳이 많으며, 경작지와 연접되어 있어 수생 및 습생식물의 다양성을 크게 감소시킨다.그러나 강의 본류로 유입되는 지류, 농수로에는 자라풀, 세모고랭이, 큰고랭이, 가래, 매자기 등 비교적 다양한 식물들이 자란다.동진강 하천 식생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귀화식물인 털물참새피, 물참새피, 돼지풀, 가시상치, 망초, 개망초, 기생초 등의 외래종이다. 이들은 동진강 식생의 단조로움 뿐만 아니라 건전한 하천 생태계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종다양성 감소하천의 경관생태학적 교란 등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치수사업으로 단순화된 식물군락의 복원이 시급한 이유다.또한 질소와 인 흡수 능력이 탁월한 붕어마름, 검정말, 자라풀, 어리연꽃, 왜개연꽃, 고마리, 갈대, 줄, 부들 등은 빗물 오염원을 정화하는 기능을 한다. 생활하수나 공장폐수가축분뇨와 같은 점오염원은 하수처리시설로 어느 정도 정화할 수 있지만 유역 전체에서 모여든 빗물 오염원은 해결이 쉽지 않다.따라서 동진강 하구의 생태습지 조성은 새만금 지역 수질개선의 대안이며, 더불어 갈대가 흐드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이룰 것이다. 또 그 속에 깃든 다양한 새들과 동물의 보금자리는 동진강의 생태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새만금 내부개발에 앞서 강 하구 습지 조성 지역을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다./김창환(전북대 환경조경디자인학과 교수)※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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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9.13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실뱀장어, 봄철 노다지의 꿈 이젠 옛말

2월 하순에서 5월 초순까지 동진강 하구의 주인공은 실뱀장어다. 어민들은 갯골에 자리를 잡고 고래등처럼 펼쳐진 자리그물을 내린다. 하룻밤 사이에 논 몇 마지기를 벌기도 했다는 일확천금의 꿈도 그물처럼 부풀어 오른다. 실제 실뱀장어가 금값과 맞먹던 시절도 있었다.어민들이 만나는 실뱀장어는 멀리 3000km나 떨어진 필리핀 인근의 아열대 해역에서 쿠로시오 해류와 쓰시마 해류를 타고 본능에 따라 동진강으로 온 녀석들이다.머나먼 여정을 거치면서 댓잎처럼 납작하게 부화했던 댓잎뱀장어는 원통형으로 바뀌며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실뱀장어가 된다.그렇게 일 년 남짓 먼 길을 돌아 동진강 하구에 당도했다가 상류로 올라가지 못하고 잡힌 5~7㎝ 크기의 실뱀장어들은 양식장으로 팔려간다. 여전히 인공부화가 불가능한 탓이다.예전 같으면 족히 4~5년은 되어야 크게는 1m 남짓 자라지만 양식장에서는 다져 익힌 고기 사료로 불과 1년이면 성체로 자란다. 어획량이 크게 줄어든데다 보양음식으로 뱀장어의 인기가 높다보니 실뱀장어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그러나 강에 제수문과 보(洑)가 잇따라 설치되면서 서식지가 줄고 마구잡이 어로행위로 인해 바다로 알 낳으러 가는 뱀장어가 크게 줄었다. 강 하구를 찾는 실뱀장어 역시 급감했다.그나마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면서 실뱀장어 조업은 한 시절의 꿈이 되고 말았다. 불과 수년만의 일이다. 아직도 방조제 수문을 드나드는 바닷물에 의지해 실뱀장어 그물을 내리는 배도 있지만 빈 그물이기 일쑤다.시민환경연구소의 2006년 조사에 의하면 새만금 연안의 연평균 수산물 생산액은 2,400억원. 그 중심에 실뱀장어가 있었다. 대부분 현금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지역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최근 수산물 생산액은 당시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수산물 값은 오르고 어민들의 소득도 줄었다.갈대만 무성한 하구 갯등과 기능을 상실한 포구에 버려진 폐선처럼 동진강 실뱀장어의 앞날도, 어민들의 앞날도 쓸쓸하고 답답하다./이정현(전북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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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30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11) 하천 생태계②- 하구의 어류상 변화

김제에서 부안으로 가는 길, 동진대교 주변은 육지에서 내려온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 하구, 기수역(汽水域)이었다. 강과 바다가 끊임없이 실어 나른 유기물은 하구 갯벌 생명력의 원천이었다. 영양분이 풍부한 하구에 자리잡은 저서생물은 기수역의 물고기에게도 넉넉한 먹잇감이었다. 또한 하구는 어류가 산란을 하거나 어린 물고기가 잘 자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민물과 바닷물을 오고가면서 살아가야 하는 기수역의 물고기는 몸속의 체액과 주변 물속의 염분 농도가 평형을 유지해야 살 수 있다. 회유하는 물고기들이 기수역에서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계를 오가는 이들이 누리는 풍요는 바로 수 만년 동안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해 온 결과다. 그리고 여전히 제 몸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가 지난 2006년에 실시, 이듬해 내놓은 '동진강 어류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진대교 일대 기수역에는 23종의 물고기가 서식한다. 출현 빈도는 숭어보다 기수역 상류까지 서식하는 가숭어가 33.2%로 가장 높았다.다음은 멀리 3000km 떨어진 필리핀 해역에서 해류를 타고 고향을 찾아온 실뱀장어가 23.1%를 차지했다. 두줄망둑보다 민물에 더 적응한 민물두줄망둑이 18%로 뒤를 이었다. 마치 꽁치처럼 날씬하고 아래턱이 길게 튀어나온 줄공치와 치리가 각각 5%를 차지한다.또 맛이 좋아서 조선시대 왕실에 진상했다는 웅어, 회유성 어류로 바다에서 성장하고 강 하구에서 산란하는 도화뱅어, 식용으로 널리 이용되었으나 최근 수질오염 등으로 매우 희귀해진 국수뱅어도 눈에 띈다. 몸이 긴 막대처럼 가늘고 긴 실고기도 있다.고유종은 모두 3종이 확인됐다. 물 흐름이 느리고 탁한 하천 중하류 진흙이 있는 곳에 사는 '가시납지리', 유속이 완만한 곳이나 저수지에 주로 사는 '치리', 진흙바닥인 조간대와 하구의 웅덩이에서 서식하는 '점줄망둑'이 그 주인공이다.가시납지리와 치리는 일시적으로 하구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민물에서만 살 수 있는 1차담수어다. 그런데 어떻게 기수역의 하부라 할 수 있는 이곳에서 발견되었을까? 이유는 바로 새만금 방조제에 있다.동진강 어류 조사 시기인 2006년 3월 중순은 새만금 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를 한 달 가량 앞둔 시점으로 해수의 양이 줄어 염분 농도가 낮아진 때였다. 또한 바닷물의 힘이 약해지면서 상시 노출 갯벌이 늘어났고, 육지 식물이 자리를 잡는 육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 이완옥 박사는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돼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한다면 10여종의 기수역 물고기가 사라질 것" 이라고 밝혔다.이는 2009년 한국농어촌공사의 동진강 하구 삼각망 채집조사 결과가 뒷받침한다. 하구 어류조사 결과 모두 13종이 채집되었는데 역시 가숭어가 우점종이고, 풀망둑, 웅어 등 기수역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었다.여전히 새만금 방조제 수문을 통해 적게나마 바닷물이 들고 나기 때문이다. 반면 담수화의 영향으로 붕어, 잉어, 치리 등 담수어의 종류와 개체 수는 많이 늘었다."회유성 물고기가 여전히 기수역에 서식하긴 합니다. 하지만 개체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매년 새만금으로 흘러가는 해창천 어류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생물다양성연구소 양현 소장의 설명이다.그런데 사라져가는 하구 생물들에 대한 기록이 충분하지 않다. 1984년 이후 20여년만에 나온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의 '동진강 어류조사 보고서'가 소중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수 만년 동안 한 곳을 지키며 살아왔던 생물을 기록하는 것은 어쩌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또한 이 보고서는 유역변경으로 인해 섬진강의 고유 어종인 왕종개, 줄종개, 섬진강자가사리가 동진강 상류에 서식하면서 잡종형성과 같은 유전자 교란이 심각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동진강 하구 생태계 변화와 상류지역 물고기 유전자 교란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이정현(전북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국장)※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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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30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왕종개와 줄종개

동진강에는 종개류 가운데 참종개와 점줄종개만이 살았다. 그러나 1920년대말 일본인 농장 자본에 의해 섬진강 상류에 유역 변경식 댐인 운암댐이 만들어지면서 섬진강 특산종인 왕종개, 줄종개가 넘어왔다.오랜 세월에 걸쳐 변화되고, 특수한 환경조건에서 이뤄진 새로운 종들이 섞이게 되는 하천 생태계의 교란이 일어난 것이다. 주로 물속에 사는 곤충이 먹잇감이고, 물의 속도가 빠르고 자갈이 많은 바닥이 서식지이다보니 경쟁은 필연이다.동진강의 터줏대감인 참종개와 점줄종개, 그리고 이 자리를 노리는 섬진강 왕종개줄종개의 대결은 누구의 승리로 돌아갈까.윤창호 박사(우리물고기연구소장)는 '지형과 환경 특성에 잘 적응해 온 서식종이 유리할 것 같지만 의외로 외부에서 이식된 종이 우세하다'고 한다. 한강에서만 살던 강준치와 끄리가 낙동강 수계에 이식되면서 어느새 우점종을 이룬 것이 좋은 예다. 다만 이 종개류가 저서성 어류라서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새로운 종의 출현은 경쟁종의 멸종위기로 이어진다. 이는 그 지역의 역사성과 환경특성 등 고유 유전자를 지닌 국가적인 보물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이정현(전북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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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23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⑩하천생태계①-상류의 물고기

어릴 적 기억 속 동진강 상류 동구내에서는 물고기가 물 밖으로 뛰어올랐다. 모내기를 마친 반듯한 논들이 진초록으로 물들어가고 멱 감으러 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질 무렵이다.뭉게구름을 담은 푸른 강물위로 날개를 편 물고기들이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그것은 해질녘 물위에 산란하는 하루살이를 잡아채기 위해 뛰어오르는 피라미와 분명히 달랐다. 강가에 사는 친구들은 그 물고기를 날치라 불렀다."그렇게 날 정도의 민물고기는 없는데." 함께 답사 온 윤창호 박사(우리물고기연구소장)가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아 그때는 있었다니까요." 라며 우겨본다. 적어도 강을 끼고 살았던 우리의 기억에서 동진강은 물고기가 지천이었다."어류학자 눈에는 재미가 없는 하천이예요. 일찍이 농업용수로 이용되다 보니 제방과 보로 인해 수변이 단순해지면서 자연적인 하천의 모습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죠." 인위적인 간섭이 지나치다 보니 물고기의 종다양성도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윤박사의 말이다. 그래도 동진강 상류인 정읍시 옹동면 산성리 일대의 물환경은 최적이라고 덧붙인다.오목내라 불리는 이곳에는 30여종이 넘는 날도래와 하루살이를 비롯한 수서곤충의 유충들, 그리고 재첩다슬기물달팽이플라나리아 등이 돌 위의 부착조류를 먹잇감으로 하며 서식한다. 대형 무척추동물을 이용한 생물 등급이 A로 환경생태는 최적이다. 이들은 또 물고기의 먹이가 되다보니 자연히 서식하는 물고기 종도 많다.2006년 국립환경과학원 조사에 의하면 동진강 상류에는 우점종인 민물검정망둑, 피라미, 갈겨니를 비롯해 약 30종의 어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200여종의 물고기 가운데 고유종은 50여종에 이른다. 쉬리, 눈동자개, 줄납자루, 칼납자루, 돌마자, 동사리, 각시붕어 및 몰개 등이 이 일대에 사는 고유종이다.이 구간은 물의 흐름이 빠른 여울과 수심이 깊은 곳, 자갈이 많이 깔린 곳과 모래와 뻘이 쌓인 곳이 있어 다양한 물고기가 살아가기 좋은 여건이어서 생물다양성이 높다는 게 윤박사의 설명이다.수박 향 나는 은어도 많다. 도수로를 통해서 내려온 섬진강댐 육봉은어로 보인다. 연안에서 월동하다가 하천에서 성장하고 다시 하구에 가까운 여울에 산란하는 것이 본래의 습성이지만 댐 건설로 인해 강이 막히면서 내륙 생활에 적응한 녀석들이다.줄종개와 왕종개, 섬진강자가사리는 인위적인 물길 유입으로 하천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종이다.줄종개와 왕종개는 섬진강에서 서식하는 종이다. 그러나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섬진강댐을 만들고 그 물을 동진강으로 돌리면서 섬진강 특산종이 정읍천 합류지점까지 넓게 분포하게 된 것이다.하천 생태계의 무법자 배스와 블루길도 어김없이 눈에 띈다. 양식용으로 도입했던 외래종들이 인근 하천으로 확산된 것이다. 배스는 섬진강댐에, 블루길은 내장저수지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특히 배스는 새우 등 갑각류와 수서곤충, 토종 물고기의 치어는 물론 다자란 물고기까지 모조리 먹어치운다. 따라서 배스가 득세하는 곳은 하천의 생물 종다양성이 감소하고, 자정기능을 떨어뜨려 수질이 나빠진다.동진강은 정읍시 신태인읍 신양동 구간을 지나면서 물고기의 종수가 줄어든다. 물을 대기 위한 보(洑)들이 많아 유속이 느려지고, 둔치 내 경작지에서 흘러나온 비료와 농약으로 인해 수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이곳에 서식하는 물고기는 모두 15종이며 대부분 오염 내성종이다. 산성리 구간에서는 누치, 배스, 블루길, 잉어 및 피라미 등 5종이 오염 내성종으로 확인된 반면, 신양동 구간에서는 끄리, 동자개, 떡붕어, 메기, 몰개, 미꾸라지, 배스, 버들매치, 붕어 등 12종이 오염 내성종으로 나타났다. 붕어는 우점종으로 확인되었으며, 우점비율은 37%로 높았다. 한국 고유종은 돌마자, 칼납자루, 몰개, 동사리 등 4종으로 줄었다.2007년 국립수산과학원 중부내수면연구소의 동진강 생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동진강 유역 8개 지점에서 채집된 어류는 총 74종이다. 잉어과가 30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망둑어과가 9종, 미꾸리과가 6종이었다. 이중에 20종은 우리나라에만 출현하는 고유종이었다.일제강점기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위적인 간섭과 생태계 교란 요인이 있었으나 여전히 동진강의 생태계는 어느 강 못지않게 건강하다. 하지만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새만금 사업으로 하구가 막힌 상황에서 기수역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이정현(전북환경운동연합 정책기획국장)※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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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23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백파 통수식은

겨우내 닫혀있던 거대한 수문이 일제히 열렸다.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린 물줄기는 거미줄처럼 얽힌 수로를 통해 호남평야 구석구석으로 흘러든다.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는 지난 4월20일 정읍시 태인면 낙양리 동진강 본류를 가로막은 수리시설 '낙양취입수문'에서 '백파 통수식(백파제百派祭)'을 열었다. 대규모 수리시설의 수문을 열어 농업용수를 내보내는 통수식은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다.백파 통수식은 1927년 낙양취입수문 준공 이후 올해가 여든 세번째다.'일원종시백파(一源從是百派)'. 한 줄기의 물이 백 갈래로 퍼져 광활한 농경지를 고루 적셔준다는 뜻으로 동진강 낙양취입수문옆 언덕(낙양동산)에 위치한 기념비의 문구다.낙양취입수문 준공(1927년 5월)과 함께 세워진 이 기념비는 벼농사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중과 거미줄처럼 연결해놓은 수로(水路)의 역할을 널리 알리는 상징물로 관리되고 있다. 그리고 백파 통수식의 명칭은 이 기념비의 문구에서 유래됐다.전국 곳곳의 농업용 수리시설에서 봄철 일제히 통수식이 열리지만 가장 주목받는 행사는 역시 곡창 호남평야 농경지에 물꼬를 트는 백파 통수식이다.급수면적이 상대적으로 넓고 한반도 벼농사의 상징 공간이라는 점에서 매년 백파 통수식에는 물관리 기관은 물론 정치계와 자치단체 등 각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 풍년 농사를 기원한다. 10여년전까지 전통 제례(祭禮)에 따라 행사를 치렀지만 최근에는 그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통수식은 대개 4월 중순께 열린다. 그러나 기상여건과 옥정호(섬진강댐)의 저수량농업용수 수요 등에 따라 해마다 그 날짜는 달라진다.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 관계자는 "섬진강댐 수자원을 활용하는 농어촌공사 정읍부안동진지사가 매년 해당 지역 농민들과 상의해서 통수식 날짜를 정한다"면서 "2009년 봄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옥정호 저수량이 너무 적어 평년보다 한달 늦은 5월 중순에 통수식을 열었다"고 말했다.한국농어촌공사에서는 통수식과 함께 물관리상황실을 운영, 9월말 수문을 닫을 때까지 약 6개월동안 영농급수 계획을 추진한다.김종표기자 kim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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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10.08.16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⑨도수(導水)시설-호남평야 거미줄 수로 연결, 농경지에 '물꼬'

동진강은 1920년대 후반기부터 섬진강 상류의 풍부한 수자원을 끌어들여(유역변경) 호남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영농기 드넓은 평야지대에서 필요로 하는 막대한 양의 물을 강줄기(자연유로)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다.이같은 이유로 일찍부터 운암제(섬진강 구댐) 축조사업과 더불어 동진강 유역에서는 도수로(導水路) 건설사업이 진행됐다. 농경지 사이사이를 거미줄처럼 수로로 연결, 천수답(天水畓)과 수리불안전답을 없애자는 목적이었다.동진강 유역 농경지에 큰 물줄기를 이루고 있는 도수시설로는 1927년 완공된 김제용수간선(用水幹線)과 정읍용수간선, 그리고 계화도 간척사업의 일환으로 196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동진강도수로를 꼽을 수 있다.영농기(4월~9월) 이들 도수시설의 계획통수량은 김제용수간선이 초당 20톤, 정읍간선이 초당 5톤이다. 또 섬진강수력발전소에서 물길을 시작하는 동진강도수로의 계획통수량은 초당 12.5톤 정도다.섬진강수력발전소와 운암취수구에서 옥정호의 물을 유역변경, 동진강 수계로 내보내는 물의 양이 영농기에 최대 40~45톤(초당) 정도임을 감안하면 영농기에는 강 본류보다 도수시설의 유량이 더 많은 셈이다. 계절에 따라 하천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 또한 동진강의 특색이다.동진강 상류로 방류된 옥정호의 물은 북서진(北西進)을 계속하다 정읍시 태인면 낙양(洛陽)리에 있는 대규모 수리시설 '낙양취입수문'에서 방향을 바꾼다.강 본류를 가로막은 낙양취입수문의 양 끝에는 각각 수문이 설치돼 물길과 유량을 조절한다. 정읍시 정우면쪽에 설치된 수문이 정읍용수간선 취입구(取入口), 맞은 편에 나란히 자리잡은 수문이 강 본류로 물길을 내는 동진강 방수문과 김제용수간선 취입구다.1926년 4월에 착공, 김제용수간선과 정읍용수간선 완공 직후인 1927년 5월 준공된 낙양취입수문은 동진강 유역 평야지대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놓은 용수로(用水路)에 물길을 터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막대한 양의 관개용수를 필요로 하는 4~9월 영농기에는 강 하류로 향하는 수문을 거의 닫아놓고(홍수방지 등 유량조절용으로만 방류) 김제와 정읍간선으로 물길을 돌린다. 이와 반대로 비영농기에는 김제정읍간선의 물길을 아예 차단하고 강 본류쪽 수문만을 열어 놓는다.동진강 상류 정읍시 칠보면 섬진강수력발전소에서 부안군 하서면 청호(晴湖)저수지까지 총 연장 67㎞의 구간을 연결하고 있는 동진강도수로는 옥정호의 수자원을 계화도 간척지구로 끌어들이기 위해 조성된 인공 수로다.1968년 계화도간척사업 방조제 완공으로 그 안쪽에 조성된 농경지 관개용수 확보를 위해 인근에 청호저수지를 축조, 섬진강수력발전소에서부터 이 저수지까지 도수로를 건설한 것이다. 1969년 도수로 공사 준공 후 지속적인 보완사업과 함께 1971년부터 1981년까지 각 구간별로 지선(支線) 개설과 양수장 등 관개시설 공사를 실시, 안정적 용수공급을 위한 토대를 구축했다.이에따라 섬진강수력발전소에서 끌어낸 옥정호의 물은 동진강 본류와 동진강도수로로 그 물길이 갈라지게 된다. 발전소 구내에 설치된 수문을 조절해서 비영농기에는 동진강도수로의 물길을 차단, 강 본류로만 물을 보내고 영농기에는 양쪽에 일정한 비율로 나눠 방류하는 방식이다.동진강도수로로 흘러든 물은 주변의 수리불안전답과 야산지대 경작지를 적시면서 부안군 하서면으로 이동, 청호저수지에 저수되었다가 영농기에 계화도 간척지 관개용수로 사용된다.이같은 도수시설을 통한 영농 급수로 김제와 정읍부안지역 농경지 수혜면적은 총 3만3177ha에 이른다.시설별로는 수로 연장 59km인 김제용수간선이 1만6569ha로 수혜면적이 가장 넓고, 동진강도수로(수로연장 67km)는 1만3815ha에 이른다. 또 정읍간선(수로연장 22km)은 1033ha, 낙양취입수문 상류 12개 보(洑)의 수혜면적이 1760ha에 달한다.※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 환경
  • 김종표
  • 2010.08.16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폐허로 남은 남한 첫 유역변경식 '운암발전소'

섬진강수력발전소(정읍시 칠보면)를 지나 동진강 상류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도로옆 물길을 끼고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2층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볼 수 있다.지금은 폐허가 돼 대낮에도 들어가기가 꺼려지는 이 건물이 남한 최초의 유역변경식 발전소로 기록돼 있는 운암발전소다.정읍시 산외면 종산리에 위치한 이 건물 입구에는 아직도 '운암발전소(雲岩發電所)'라는 한자 표기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또 건물 뒤편 산자락에서는 옥정호의 물을 발전소로 끌어들인 대형 도수관(導水管)과 도수터널 출구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있다.1931년 10월에 준공된 운암발전소는 1985년 2월, 그 역할을 섬진강수력발전소에 넘기고 50여년만에 폐쇄됐다.이후 발전소 건물은 민간에 매각돼 한 종교단체가 수양시설로 사용하기 위해 내부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공사로 인해 유역변경식 옛 수력발전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또 종교단체의 내부 리모델링 공사도 중단돼 운암발전소는 오랫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는 빈 건물로 남아있다.정읍 산외면사무소에 따르면 현재 이 건물과 토지는 지역 주민 김모씨가 소유권을 갖고 있다.섬진강과 동진강 유역 근대 수자원 개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옛 운암발전소 건물이 제 모습을 잃은 채 흉물로 방치된 셈이다.이에따라 운암발전소 건물과 도수터널의 출구를 산업유적 테마박물관 등으로 복구, 김제 광활면 및 부안 계화간척지와 연계시켜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이에대해 서인석 정읍시 문화재전문위원은 "문화재(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검토하기 위해 여러 차례 현장 조사활동을 벌였다"면서 "그러나 아쉽게도 옛 발전소 건물을 매입한 종교단체가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지금은 원래 모습이 남아있지 않아 문화재 등록이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공동기획-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 사회일반
  • 김종표
  • 2010.08.09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⑧수력발전소

섬진강댐(옥정호)의 풍부한 수자원을 동진강 상류로 끌어내면서 낙차를 이용,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섬진강수력발전소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유역변경식 발전소다.'유역변경식 발전'이란 두 하천의 높낮이를 이용, 고지대 하천에 댐을 막은 다음 산지에 도수(導水)터널을 뚫고 지형이 낮은 하천으로 물을 끌어들여 발전하는 방식을 일컫는다.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위치한 섬진강수력발전소는 사실 발전(發電)보다는 수자원이 턱없이 모자란 동진강 유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건립된 시설이다.칠보발전소로도 불린 이 시설은 일제 강점기인 1940년 9월 섬진강댐 건설 사업과 병행, 옥정호의 수자원을 동진강 유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에서 착공됐다.당시 사업을 맡았던 조선전업(주)은 해방 직전인 1945년 4월 시설용량 1만4400kW의 섬진강수력발전소를 준공했다. 정읍 산내면 능교2리 용암마을에 취수구를 두고 칠보면 시산리까지 직경 3.4m, 길이 약 6.2km의 도수로를 통해 섬진강의 물을 동진강으로 끌어들인 이 시설이 섬진강수력발전소 제 1호기다.이후 한국전쟁 등으로 중단됐던 섬진강댐 건설공사가 1961년 다시 진행됨에 따라 발전소 증설사업도 함께 추진됐다. 1965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이 완공되면서 발전소 2호기가 준공됐으며 1985년 3월에는 3호기 증설 공사를 완료, 발전설비 용량을 총 3만4800kW로 늘렸다.섬진강수력발전소에서 전력생산에 사용된 수자원은 동진강 본류와 동진강도수로를 통해 호남평야와 부안 계화간척지로 흘러들어 농업용수로 쓰인다.또 한국수자원공사는 섬진강수력발전소 부근 동진강 상류에서 생활용수를 취수, 정수시설(정읍 산성정수장)을 거쳐 정읍과 김제지역 광역상수원으로 공급하고 있다.현재 섬진강댐은 한국수자원공사, 수력발전 설비는 한국수력원자력(주)에서 관리하고 있다. 또 한국수력원자력(주)과 한국수자원공사는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영농기를 앞둔 3월31일 기준, 섬진강댐 수위를 188.68m로 유지하기로 한 한국농어촌공사와의 협약을 준수하고 있다.이에따라 관개(灌漑)기간인 4~9월 6개월 동안은 발전설비를 24시간 가동할 수 있지만 농업용수가 사용되지 않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협약수위를 유지하기 위해 발전시설 가동을 대폭 제한, 방류량을 줄여야 한다. 섬진강수력발전소의 성격과 운영 목적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섬진강수력발전소에 앞서 동진강 상류에서는 1930년대 초부터 운암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었다.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에 위치한 운암발전소는 함경남도의 부전강발전소(1929년)에 이어 남한지역에서는 최초로 건설된 유역변경식 발전소다.1927년 12월 동진수리조합에 의해 완공된 운암제(섬진강 구댐)는 당초 동진강 유역 관개용수 확보를 목적으로 시행됐지만, 착공 당시부터 발전사업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운암제가 섬진강 상류의 넓은 집수면적을 갖고 있고 고지대에 저수지를 조성, 지대가 낮은 동진강으로 물길을 바꾸면 높은 낙차를 이용한 수력발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이에따라 조합측에서는 운암취수구를 통해 동진강으로 방류되는 섬진강 수자원 중 잉여 수량을 남조선전기주식회사에 공급, 일종의 수리(水利) 사용료를 징수했다. 이 회사는 관개 목적의 도수터널 출구인 정읍 산외면 종산리 팽나무정에서 제 2도수터널을 착공, 해발고도 100m 지점에 유효낙차 77.02m를 가진 운암 수력발전소 12호기를 1931년 10월 준공했다. 당시 이 곳에서 생산된 전력은 연간 최대 2242만6000kWh 였고, 처음에는 이리변전소에만 송전하다가 이후 군산 및 강경변전소에까지 전기를 보냈다.운암발전소는 섬진강수력발전소 제 3호기 준공에 맞춰 1985년 2월, 그 역할을 섬진강수력발전소에 넘기고 50여년만에 문을 닫았다./ 공동기획-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 사회일반
  • 김종표
  • 2010.08.09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전북의 간척사업

일제 강점기 간척사업은 1920년대 '산미증식(産米增殖) 계획' 이후에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 이전에도 간척사업은 진행됐지만 사업 시책이나 기구가 전혀 마련되지 않았고, 정책지원도 지세 감면 정도에 불과해 준공면적은 미미한 수준이었다.1920년 이후 일제는 산미증식계획 등 미곡증산정책의 일환으로 법령과 제도의 정비, 국고 보조금 교부, 저리 자금 알선 등 정책지원을 통해 본격적으로 간척사업을 추진했다.일제가 간척사업을 토지개량사업의 하나로 중시한 이유는 일본의 여건에 비하여 기술적으로 쉽고, 비용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실제 저렴한 경비로 소작인을 모집할 수 있었고, 공사 인부 임금도 매우 낮아 일본의 6분의 1 정도 비용만 들여도 간척사업을 마칠 수 있었다.1929년 동양척식회사 토지개량부 조사 자료에 따르면 조석간만의 차에 의해 형성된 조선 전체의 간석지 면적은 약 20만ha로 전남황해도평남 등 3개도가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었다.전북은 간석지 면적이 5849ha(조선 전체의 약 3%)에 불과했으나 산미증식계획 기간 중 각종 지원을 받아 괄목할만한 간척실적을 보였다. 1940년말 기준, 전북의 간척실적은 5829ha로 거의 모든 간석지가 간척되었다고 볼 수 있다.당시 전북지역 간척사업에 참여한 회사는 4개(조선인 회사는 1개), 개인은 10명(조선인은 4명)으로 일본인의 비중이 많고 이들의 신분은 대부분 대지주였다. 이들이 자본 회전율이 낮은 간척사업에 참여한 이유는 약 10년이 지나면 기존 농지에서보다 더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어 경제적으로 유리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게다가 총독부는 공사비의 약 50%를 보조하고, 연리 8% 내외의 장기 저리자금을 알선해 주었다. 또한 간척사업 완료 후 소작인(혹은 일본인 이주민)을 모집할 경우 여비와 주택비농구비 등 이주에 직접 필요한 비용에 대해 보조금을 교부했다. 20세기초 간척사업은 일본제국의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곡증산정책의 일환으로 자금과 기술제도면에서 총독부의 강력한 지원에 의해 추진되었던 것이다.해방 후 대부분의 간척농지는 농지개혁 때 농민들에게 분배되었지만 일부 간척지는 농지소유권 분쟁의 진원지가 되기도 하였다. 1985~87년 고창군 심원면해리면의 삼양염업사 간척지 분쟁이 대표적인 예다./소순열(전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0.08.02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⑦농경의 역사와 근대농업(하)-강 유역 지형변화

'김제강(부안강 또는 동진강)은 태인과 정읍 사이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김제, 부안의 양 군(郡)을 통과하고 서쪽으로 돌아서 바다로 흘러간다. 그 총 길이는 짧아도, 하구에서 상류의 40리(16km) 사이는 작은 배가 통과할 수 있다.'(한국토지농산조사보고, 1905년)동진강은 본래 정읍 내장산에서 발원, 정읍천을 본류로 하여 진봉반도와 계화도 사이에서 바다로 유입됐다. 고부천과 원평천두월천신평천 등의 동진강 지류는 본류를 거치지 않고 별개의 수계로서 서해로 직접 흘러든다.예전에는 정읍천이 합류되는 신태인 서쪽의 하천바닥이 낮아서 홍수와 사리가 겹칠 때는 신태인 부근까지 바닷물이 들어오기도 했으며, 부안군 동진면 문포에서 상서면 고잔리 목포까지 곡식을 실어 나르는 수십척의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동진강 유역은 자연상태에서는 지면이 평탄한 범람원과 간석지다. 홍수 때나 밀물 때는 물이 차고, 강바닥이 얕아서 유량도 부족, 농사짓기에는 아주 부적합했다. 그러나 유역 주민들은 지형에 맞게 보(洑)를 설치하여 그 주변 소규모 간석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 왔다.1925년 설립된 동진수리조합은 임실군 운암리에 운암저수지(옥정호)를 만들어 정읍군 산외면 종산리 팽나무정 마을 부근 계곡까지 도수터널로 섬진강 유역의 물을 동진강 상류로 유역변경시켰다. 저수지에 모아둔 물을 동진강 유역으로 끌어들여서 관개에 이용한 것이다. 이른바 우리나라 최초로 시도된 유역변경식 관개방식이었다.이와함께 하천 직강공사로 자유곡류하던 동진강이 직강화(유로의 직선화)됐다. 또 제방 축조 후 동진강 하류는 인공하천이라 할 만큼 인위적으로 지형이 크게 변모되었다. 섬진강 수계의 물을 끌어내는 유역변경으로 인해 동진강의 길이는 인위적으로 변경되었던 것이다.해안평지까지 물을 공급함에 따라 넓은 만을 끼고 발달한 간석지(갯벌)는 간척지화 되어 해안지형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전북에서 연속적으로 간석지가 발달된 곳 중 하나는 옥구반도와 변산반도 사이의 만이다.1929년 동양척식회사 토지개량부의 조사에 의하면 당시 전북지역 간석지 면적은 5849ha였다. 이 중 1940년말 5829ha가 간척된 것을 보면 전북의 거의 모든 간석지가 간척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대대적인 간척사업이 전북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일제시대 동진강 유역의 간척사업은 6개소에서 진행됐다. 간척지 면적은 약 5000ha, 방조제 길이만 약 38km나 됐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김제 진봉반도의 광활간척지다.아베(阿部)농장에서 개편된 동진농업주식회사가 1800여ha의 해면평지에 간척공사를 진행, 광활간척지를 조성했다. 진봉반도 남단의 거전에서 학당에 이르는 지역에는 10km의 해안방조제를 만들어 해안지형을 크게 변화시켰다. 이로써 1949년 광활면이라는 행정구역명이 생겨나게 되었다. 면 전체가 간척지만으로 이루어진 전국에서 산이 없는 유일한 지역이다.해방 후 동진강 유역의 지형을 가장 크게 바꾼 것은 계화도 간척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염습지가 아닌 어민의 어장을 대상으로 벌인 최초의 대규모 간척사업이었다.1979년 계화간척사업 이후 1991년에는 서해안 지도를 바꿀 새만금사업의 첫 삽을 떴다. 그리고 지난 4월 세계 최장의 새만금 방조제가 착공 19년만에 준공됐다. 4만100ha의 바다가 육지(2만8300ha)와 호수(1만1800ha)로 바뀌는 것이다. 이는 계화도 간척지 매립면적의 10배가 넘고 서울시 면적의 3분의 2에 이르며 전주시 면적의 두 배에 달한다.지난해 8월 국립환경과학원은 우리나라 서해안의 길이가 90여년만에 40% 짧아졌다고 밝혔다. 간척이나 매립 등의 개발행위로 인해 해안선이 직선화 되었기 때문이다.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한강 하구부터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서해 해안선 길이가 약 2100km로 1910년대 3500km에 비해 무려 1400km 짧아진 것이다.전북의 해안선은 대대적인 간척사업으로 인해 훨씬 더 짧아졌다. 전북지역 해안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 간석지와 굴곡해안, 해안사구 등 고유 자연경관이 발달했다. 그러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간석지가 줄어들고, 해안선이 직선화되면서 전체 길이도 급격히 감소했다. 전북지역 해안선은 우리나라 서남해안 가운데 가장 단조로운 모습을 보인다./소순열(전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10.08.02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20세기초 전북의 수리조합

수리조합은 20세기초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인 농장주가 주도하고 조선인 대지주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전국 곳곳에 잇따라 설립됐다. 특히 군산 개항(1899년) 이후 일본인 농장이 급속하게 확대된 만경강동진강 유역에 대규모 수리조합이 집중됐다.'한국농촌공사 100년사'(2008년 12월 발간)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리조합의 효시는 1908년 12월8일 설립된 '옥구서부수리조합'이다. 근대적인 법령의 형식을 갖춘 수리조합 조례가 제정된 이후 옥구군(현 군산)에 전국 최초의 수리조합이 설립된 것이다.만경강 하류 지역에 가장 먼저 수리조합이 설립돼 근대 수리시설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이 곳에 '미제(米堤)'와 '선제(船堤)'라는 저수지가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군산시 나운동과 미룡동지곡동 일원에 위치한 미제 저수지는 옛부터 '쌀밑 방죽'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동국여지승람'에도 표기돼 있는 재래지(在來池)다. 현재는 은파유원지, 또는 미룡저수지라고 불린다.옛 문헌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수리공동체 조직이 결성돼 저수지를 관리해왔다. 이같은 전통 수리시설과 물관리 조직을 바탕으로 옥구서부수리조합이 설립된 것이다.이후 일제의 수리조합 사업 추진으로 전국에 수 많은 저수지와 보(洑)가 축조됐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완주 대아댐과 임실 운암제다.완주군 동상면 대아리에 농업용수 전용 저수지로 축조된 대아댐은 1920년 익옥수리조합이 설립되면서 1921년 10월 착공, 1923년 3월에 완공됐다.또 1925년 8월 당시 전국 최대규모(몽리면적 기준)로 설립된 동진수리조합은 곧바로 섬진강 상류에 운암제(雲岩堤섬진강 구댐)를 착공, 1927년 12월 완공했다. 운암제는 준공 당시는 물론 195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규모가 제일 큰 저수지였다.이와함께 도내에서는 일본인 주도로 임익수리조합(1909년)과 임익남부수리조합(1909년)전익수리조합(1910년)임옥수리조합(1911년) 등이 설립됐다.

  • 사회일반
  • 김종표
  • 2010.07.19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⑥농경의 역사와 근대농업(중)-수리조합사

'동진수리조합은 전라북도 정읍부안김제지역에 걸친 일대 수리조합이다. 섬진강에 90척(尺)의 둑을 쌓고 저수량 21억6000입방척(立方尺), 주위 18리(里)의 운암저수지를 만들어 3년에 한 번씩 한발을 겪은 지방이 일약 벼 45만석 내지 50만석 증수를 가져와 오늘날 조선 제일, 아니 일본 제일의 수리조합이다'(조선농회보, 1930년)동진강 유역에서의 수리조합 설치 논의는 만경강 유역과 비슷한 무렵에 시작되었다. 1909년 이시가와현(石川縣)농업주식회사 전무 기타오(北尾營太郞)와 이완용농장 주임 이근파가 중심이 되어 당시 도지부 대신에게 수리사업 청원서를 제출한 것이 최초다.1910년 동진강 남부와 북부에 각각 별도의 수리조합 설치 청원서, 다음해인 1911년에는 두 조합을 묶은 동진강수리조합 설치 청원서가 제출되었으나 지주들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진척이 없었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회의 개최와 측량 조사 등 수리조합 설립 시도가 있었으나 비로소 1925년에 가서야 설립인가를 받았다.동진강유역의 수리조합이 만경강유역에 비해 다소 늦었던 것은 관개용수 부족 때문이다. 동진강 유역은 상류와 하류의 지형적 차이가 크고 강바닥이 얕아 많은 유량을 수용할 수 없어 항상 수자원이 부족했다.1910년 동진강 유역 남부와 북부에 별도 수리조합 설치인가 신청서를 제출한 것도 상하류의 지형차로 인한 용수문제였다. 남부지역 지주들이 북부지역 수리조합 구역에 포함될 경우 자신들의 농지 관개용수가 부족해질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수리조합 설립과정에서 동진강 유역 수자원 확보를 위한 대안으로 벽골제를 저수답으로 하고 죽산보(竹山洑)를 철폐하자는 제안까지 있었다. 상류지역의 대지주였던 구마모토(熊本利平)와 하류지역의 다기(多木久米次郞)가 조합비 부과문제로 심하게 대립한 유명한 일화 또한 동진강 유역 물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결국 1924년 대한발을 겪으면서 막대한 자금을 동원, 섬진강 수자원을 유역변경시켜 동진강 일대의 평야를 관개한다는 계획 하에 1925년 동진수리조합 설립인가를 받기에 이르렀다.사실 동진강 유역에 최초로 설립된 수리조합은 본류와 별계의 수계를 가진 고부천 유역을 몽리구역으로 한 고부수리조합이다. 1913년 고부군수가 고부평야 지주들을 소집하여 지주총회를 열고 수리조합 설립건을 가결시킴에 따라 1916년 고부수리조합이 설립됐다.원래 고부지방은 국유지와 왕실토지가 많았다. 전통적인 제언인 눌제(訥堤)도 있었다. 이 지역 토지는 대부분 동양척식회사에 불하되고 눌제를 이용하여 상류쪽에 흥덕제(興德堤)라는 새로운 저수지를 만들어 그 밑으로 수로를 설치하는 것이 매우 용이하였다.1942년 동진수리조합은 고부수리조합과 영원수리조합을 흡수 합병하였다. 이로써 창립 당시 몽리면적 1만5000ha 조합원 3600명 규모였던 동진수리조합은 3개 조합 합병으로 몽리면적 2만3000ha 조합원 6600명에 이르는 전국 최대 규모의 수리조합으로 몸집을 불렸다.동진강 유역 수리조합 사업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계층은 일본인 지주들이었다. 당시 동진강 일대에 1000정보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는 동양척식회사를 비롯하여 동진농업주식회사, 구마모토장(熊本)농장, 다기(多木)농장, 이시가와현(石川懸)농업주식회사 등 5명이었고, 그 외 중소 지주가 3500여명이었다.일본인 지주들은 수리조합 설립 당시부터 창립위원 또는 상설위원, 평의원 등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설립후 운영에도 적극 관여했다.동진강 유역에 근대적인 수리시설을 갖추기 시작하여 관개용수가 확보되고 농업기술이 발달됨에 따라 미곡 생산량도 늘었다. 당시 현미로 따져서 전북지역 10a당 현미 생산량이 평균 1석이었지만 동진강 유역은 1.5석 내지 2.0석으로 증대됐다. 아베(阿部)와 같은 지주는 동진강 하류(현재 김제시 광활면) 간척에 필요한 용수를 확보하여 가장 큰 이득을 취한 경우이다.반면에 동진강 유역의 조선인 중소 지주는 수리조합비의 과중한 부담으로 토지 상실이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조선인 중소지주의 토지 방매가 빈번하게 일어난 사실은 동진수리조합내 토지이동 상황에서도 확인된다. 사업 시공후 증수량 벼값 환산액에 대한 조합비의 비율은 20~40%로 상당히 높아 1929년 정읍 산외면 평사리에서는 중소지주들이 조합비 불납동맹까지 벌인 적도 있었다.동진강유역 수리조합 사업은 일반 농민들보다는 지주, 특히 일본인 지주의 이익을 옹호하고 식민지 지주제를 더욱 강화시켰다. 전통적인 제언이나 보(洑) 등 재래 수리시설은 주민 자치조직으로 운영되었지만, 수리조합 사업으로 대다수 농민은 근대적 수리시설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이는 동진강 유역에 일본인 지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수리영농질서가 형성된 것을 의미한다. 농업생산과 토지소유를 둘러싼 식민지 농업개발의 결과였으며 근대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소순열(전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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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9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⑤농경의 역사와 근대농업(상)-벽골제

지난 5월말 전국역사학대회에서 매우 흥미있는 발표가 있었다. 발표자는 충남대 허수열 교수. 허교수의 발표는 역사 대하소설 '아리랑'의 작가 조정래에 대한 이영훈(서울대 교수)의 재반박(시대정신, 2007년 가을호)에 관한 문제제기였다. 김제 벽골제가 과연 저수지인가 방조제인가, 재래의 수리시설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벽골제 아래 김제평야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논이었을까가 핵심이었다.사실 '벽골제가 저수지냐 방조제냐'의 논란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고고학, 지리학, 수공학 등의 분야에서 제기된 바 있다.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조정래에 대한 재비판 과정에서 '벽골제는 방조제이고 그 둑 아래 저지대는 바닷물이 수시로 드나들어 소금기가 많고 풀이 죽어 있는 갯논이었으며, 그 버려진 땅은 일본인들이 와서 오늘날처럼 광활하고 비옥한 평야로 바뀐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정래가 말하는 것처럼 아리랑이 시작된 1904년 당시 '징게맹갱외에밋들'(김제 만경 너른 들)은 그렇게 광활함과 풍요로움으로 가득찬 곳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충남대 허수열 교수가 이같은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편 것이다.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크다.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수리시설이다. 둑의 길이가 3.3km, 몽리면적만 1만ha 정도나 된다. 둑은 김제시 부량면을 남북으로 가로 지르고 가둔 물은 정읍, 부안까지 흘러 들어갔다. 그래서 김제는 우리나라 제일의 곡창지대이자 도작문화의 발상지라고 불리운다.그러나 동진강을 대표했던 벽골제는 조선 세종 때 사실상 폐제(廢堤)된다. 저수 기능이 현저하게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1420년 둑이 무너져 피해를 본 뒤 수축되지 못한 가운데 저수지를 몰래 경작하는 모경(冒耕)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본래 5개의 수문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장생거와 경장거 두 개의 수문만 남았다. 둑은 2,500m가 남아 간선수로 기능을 하고 있다.동진강유역에는 해안을 따라 수 많은 방조제가 축조돼 있었다. 동진강은 만경강보다 지형이 낮고 자연제방과 배후습지 사이 높이 차가 별로 없다. 동진강의 지류인 고부천원평천정읍천 등이 강 하구 부근에서 만나 물질을 퇴적시키기 때문에 하구 부근이 높고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지면이 낮다. 이같은 하천 조건 때문에 강 유역은 물바다가 되는 일이 흔했다.일제 초 간행된 자료를 보면 전북 전체의 방조제는 100여 개소, 100여km에 달했다. 그 가운데 절반이 김제와 부안에서 이루어졌다. 해안과 하천을 따라 방조제방호제 등이 만들어져 바닷물이나 하천의 범람을 막았다.내륙에서는 물이 넘치는 것을 막거나 물을 가두어 두는 제언(堤堰)도 많이 만들어졌다. 일제 초기의 자료에 의하면 김제와 정읍에 전북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80개가 집중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기록은 동진강 유역이 어느 지역보다도 전통적인 수리시설이 발달한 농업지대라는 사실을 알려준다.제언 이외에 수많은 보(洑)도 존재하고 있었다.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는 없지만 동진강유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죽산보와 용산보다. 죽산보는 동진강 죽산지류, 용산보는 정읍지류와 태인지류가 합류하는 지점에 만들어졌다. 죽산보 또한 매년 우기마다 무너지고 우기 후에는 쉽게 복구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김제시 죽산면에서 그 유허를 볼 수 있다.수리시설은 조선중기 성종때 이후 제언저수방식에서 천방관개(川防灌漑)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천방'은 당시의 수방기술 수준으로 보아 갯골변에 진흙, 돌, 나무, 솔가지 따위를 재료로 하여 천방을 치고 그 내측의 간석지를 간척하는 것을 말한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수리사업이 민간차원에서도 지속되었던 것이다.그러나 19세기 개항 이후 중앙의 행정력 약화와 더불어 동진강 유역의 수리시설은 황폐해졌다. 사실상 전통적인 수리시설 중 절반 이상이 쓸 수 없게 된 것이다.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인 벽골제가 축조된 지 1700년이 됐다. 벽골제도 천방도 조선말기에 이르러서는 거의 그 기능을 상실했다. 동진강 유역의 넓은 농경지에 충분히 물을 대기에는 수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일본인 지주들의 진출과 수리조합 설립을 계기로 섬진강 수계에 옥정호가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호남평야가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이 된 것이다.사실 소설가가 작품에 그린 현실이 역사적 사실과 얼마나 정합성을 갖는가의 문제는 대단히 복잡하다. 역사소설에 얼마나 비역사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가를 확인하는 의미로써의 '사실(fact)'이 아니라 작가가 사실을 어떻게 보았고, 그 작품을 연구자는 어떻게 보는가가 더욱 중요하다./소순열(전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공동기획: 만경강 생태하천가꾸기민관학협의회정읍의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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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2 23:02

[동진강, 생명의 길을 묻다] ⑤벽골제와 아리랑문학관

우리나라 저수지의 효시로 알려진 김제 부량면의 '벽골제(碧骨堤사적 제 111호)'가 논란에 휘말렸다.지난 2007년 서울대 이영훈 교수(경제학과)가 소설가 조정래씨의 역사소설 '아리랑'의 역사적 근거를 비판하면서 '벽골제는 저수지가 아니고, 바닷물의 유입을 막는 방조제'라는 새로운 학설을 뉴라이트재단의 기관지인 '시대정신'에 발표한 게 계기다. 이는 소설 '아리랑'의 주무대인 김제만경평야가 소설의 내용과 달리 19세기까지 황무지였으며 일제 식민시대 대규모 수리사업을 통해 비로소 곡창지대로 변모했다는 주장을 부연하면서 이교수가 내놓은 학설이다.물론 조정래씨와 관련 학자들의 반박도 이어졌다.논란의 중심이 된 조정래의 '아리랑'은 일제 강점기 식민통치하에서 민중이 겪은 고난과 수탈의 역사를 다룬 역사 대하소설(전 12권)로 김제 만경들녘이 그 배경이 됐다.김제시는 지난 2003년 5월 동진강 지류인 원평천 옆 벽골제 단지 안에 아리랑문학관을 개관했다. 또 삼국시대(백제 비류왕 27년330년)에 축조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저수지 벽골제의 수문이 남아있는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벽골제 수리민속유물전시관'을 건립, 1998년 개관했다. 이 전시관은 2006년말 박물관으로 등록, '벽골제 농경문화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2009년 10월 전시개선사업을 마치고 재개관했다.역사소설을 둘러싸고 불거진 '저수지방조제 논란'과 상관없이 벽골제는 농경을 위한 고대사회 대규모 수리시설로서의 역사적 의미와 그 기능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벽골제 농경문화박물관 관계자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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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10.07.1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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