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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기자의 예술관람기] 앙리 마티스 특별전: 재즈와 연극

앙리 마티스 작품 '어릿광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를 꼽으라면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칸딘스키를 조금도 주저치 않고 꼽을 수 있겠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년 12월 31일~1954) 탄생 150주년 기념 마티스 특별전: 재즈와 연극이 10월 31일 개막, 내년 3월 3일까지 서울 대치동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린다. 프랑스 출신 야수파의 기수 마티스가 창안한 기법 컷 아웃으로 제작된 재즈 시리즈, 드로잉, 석판화, 발레공연용 무대의상, 로사리오 성당 건축 등 다채로운 작품 120여점이 전시된다. 원색의 마술사로 불리는 마티스는 평화로움과 조화로움, 즐거움과 행복감을 주는 작품을 창조한 예술가다. 마티스는 20세기 초 야수파의 시기를 지나 점차 순수하게 장식적인 방향으로 전환한다. 아라베스크나 꽃무늬를 배경으로 한 평면적인 구성과 순색의 대비로 그만의 독특한 작품을 구현한다. 마티스는 순수한 색채와 단순한 선만으로도 눈부신 빛을 창조할 뿐만 아니라 냉철하고 풍부한 지성으로 그림에 예술적 질서까지 부여한다. 이런 점이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꼽힐 것이다. 마티스는 말년에 몸이 불편해지자 거의 모든 시간을 침대나 안락의자에서 보냈다. 그림을 그릴 수 없으므로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컷아웃 기법을 창안한다. 마티스는 단순하지만 선명한 색상의 색종이를 오려 붙여 역동적인 선과 포즈가 살아 움직이는 완성도 높은 컷아웃 재즈 시리즈를 내놓는다. 늘 마음속으로만 염원하던 마티스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였다. 몇 개 되지 않은 선과 색으로 그토록 풍부하고 시적인 미감을 창조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특히 로열 블루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젊은 시절부터 모아 온 마티스 작품집과 책자를 오랜만에 꺼내보고 읽었다. 나는 관찰과 감각, 체험을 통해 색을 선택한다., 스타일은 그 화가의 마음에 있는 질서와 품위에서 나온다.라고 말한 마티스의 어록을 되뇌어본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0.12.07 18:36

['박래현, 삼중통역자'展] 시대 앞선 여성…한국화 확장

박래현 작품 1966-1967. 뮤지엄산 소장 한국화를 현대화한 선구자로 추상미술의 한 획을 그은 한국 근대 화단의 대표적인 여류화가 박래현의 탄생 100주년 기념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지난달 29일 개막해 내년 1월 3일까지 열린다. 회화와 판화, 태피스트리 등 총 138점이 전시된다.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 1920~1976)은 한국화의 거장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의 아내로서 남편에 가려진, 뛰어난 예술가로서의 진면목을 조명하는 전시다. 평남 진남포에서 1920년 대지주의 장녀로 태어난 박래현은 여섯 살 때 전북 군산으로 이주해 전주여고보(전주여고 전신)와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를 다녔고, 귀국한 후 1956년 대한미협과 국전에서 이른아침, 노점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47년 박래현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 후에도 화가로 살게 해준다는 운보의 약속을 굳게 믿고 청각장애인 김기창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렇게 박래현의 삶과 예술은 새로운 길로 가게 된다. 전시는 1부: 한국화의 현대, 2부: 여성과 생활, 3부: 세계여행과 추상, 4부: 판화와 기술로 일목요연하게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관념적인 전통회화에서 탈피해 현대에 걸맞게 한국화를 창작한 작품들로 가득하다. 2부는 아내와 어머니, 예술가로서 역할을 감당하며 부부전과 백양회회원전을 중심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친 시기. 3부는 1960년 타이완, 홍콩, 일본 등을 여행하며 추상화의 세계적인 추세를 확인, 본격적인 추상화 제작에 몰두한다. 1960년대 중반에는 미국, 유럽, 아프리카를 다니고 해외 박물관의 고대유물에 매료된다. 황금빛 유물과 가면 등에 매혹된 박래현은 구불거리는 황색 띠로 새로운 추상화를 창작한다. 4부는 뉴욕에 7년간 체류하며 태피스트리와 판화를 연구한다. 처음에는 정교한 기술을 배우고 익힌 뒤 기술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작품을 제작한다. 이렇게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창작활동은 병마로 갑작스럽게 1976년 멈추게 된다.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었다. 1부에서부터 필자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들은 4부까지 이어졌다. 특히 추상화에 매혹됐다. 태양의 생활력을 황색으로, 인간의 생명은 피로, 타산을 벗어날 수 없는 시대의 신중성을 흑빛의 침묵으로 나를 대변했다고 박래현은 추상화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전시제목 삼중통역자는 자신을 미국 여행에서 영어 설명을 구화와 몸짓으로 김기창에게 전달하며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으나, 필자는 우향의 뛰어난 예술적인 시각언어를 추가해 사중통역자라고 하고 싶다. 전시를 보고 나오니 덕수궁 단풍이 하오의 햇살에 박래현의 추상화처럼 주황과 붉은색, 노란색으로 황홀하게 펼쳐져 있었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0.11.17 18:57

[新국보보물전] 선조들의 기품 넘치는 작품들

사상 최대 규모의 국보보물 특별전 새 보물 납시었네, 新국보보물전 2017~2019가 지난달 21일부터 9월 27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보물 등 3년간 문화재 대여 기관 34곳의 83건 196점을 공개하는 전시다.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종류의 국보와 보물이 △역사를 지키다 △예술을 펼치다 △영원을 담다 등 세 가지 주제로 전시되고 있다. 이 중 이달 12일부터 9월 2일까지 열리는 예술을 펼치다에 온라인 예약을 통해 가 보았다. 조선시대 선조들의 심미적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 무엇보다도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는 발길을 한참동안 붙들었다. 우선 갸름한 달걀형의 앳된 얼굴선이 일품이다. 초승달 눈썹에 앳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눈빛은 수줍은 듯 그윽하며, 조그마한 입술매무새가 야무진 조선시대 전통적인 단아한 미인이다. 목선과 어깨선 또한 유려하며 노리개를 잡고 있는 손가락도 섬섬옥수다. 주름이 많이 잡힌 풍성한 비취색 치마는 저고리와의 비율이 뛰어난 세련미까지 갖추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풍악내산총람도를 빼놓을 수 없다. 정선은 예술혼이 무르익을 대로 익은 노년에 우리강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의 금강산 풍악산(楓嶽山)을 그렸다. 가을의 내금강 일만 이천봉 전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한눈에 들어오도록 압축해 그렸다. 빼어난 필치로 기암절벽을 묘사했고, 그 사이사이에 절과 암자를 눈에 거슬리지 않게 배치하는 균형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말 위에서 꾀꼬리가 우는 것을 바라본다는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이 눈길을 끈다. 늦은 봄날 머슴을 대동하고 말을 타고 가는 한 선비가 꾀꼬리를 정신을 잃은 듯 쳐다보는 모습을 담아낸 그림은 구도 또한 대담하다. 역시 단원이다. 선조들의 기품 넘치는 작품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 전시였다. 국새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 놀라웠고, 금속으로 정교하게 하늘을 재는 천체시계도 신비로웠다. 한편, 성형수술이 대세인 현재 우리나라 여성들이 신윤복 미인도의 미감을 한번이라도 느껴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전시장을 천천히 걸어 나왔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0.08.20 19:58

추상화가 최욱경

불꽃같은 예술혼을 불태우며 살다간 추상화가 최욱경(1940~1985)의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 Wook-kyung Choi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 갤러리에서 이달 18일부터 7월31일까지 열리고 있다. 작가가 미국에 머물던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반까지 강렬한 원색의 추상화와 먹을 사용한 흑백그림 등 작품 40여점을 소개한다. 내년 5월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추상 속 여성展에 최욱경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45세에 요절한 천재화가 최욱경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과 열정이 남달랐다. 부모의 지원을 받고 자란 작가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진정한 화가가 되기 위해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명문 크랜브룩 미술학교와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미술학교를 나와 프랭클린 피어슨대에서 조교수를 역임한 최욱경은 1978년 귀국한 후 영남대와 덕성여대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최욱경이 경도됐던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까지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을 중시했던 미국에서 주목받은 미술운동이다. 최욱경은 잭슨 폴락, 윌렘 드 쿠닝, 마크 로스코 등 미국의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끝없는 실험정신으로 강렬한 원색을 거침없이 구사하는 추상작업을 계속해 마침내 자신만의 독창적인 추상세계를 구축했다. 유학 후반부에 최욱경은 꽃과 사막의 화가로 유명한 조지아 오키프의 영향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탐구하기 시작해 거칠던 붓질은 곡선으로, 화려한 원색은 우아한 파스텔 톤으로 바뀌기도 했다. 최욱경은 즉흥적이고 표현도 자유스럽지만 일말의 허무감을 안겨 주어서 추상표현주의를 염두에 두면서도 형체를 찾아내보려고 하였다라고 말하며 말년에는 화폭에서 조금씩 형체를 드러냈다. 색상 또한 그전의 빨강, 노랑, 초록, 검정 등 강렬한 색채를 즐겨 사용하던 작가는 단청이나 민화의 한국적인 색상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일어나라! 좀 더 너를 불태워라는 문구를 작업실 벽에 붙여 놓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오직 그림에 삶을 받쳐온 최욱경은 한창 예술혼이 무르익을 나이인 45세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최욱경은 남성중심의 한국추상화단에서 이방인이었지만 현대의 시선에선 단연 독보적인 예술가다. 최욱경이 남긴 작품들은 강렬한 색상과 보색대비, 붓 터치로 작가의 깊숙한 영혼에서 부르짖는 절규 같다. 짧고 굵게 살다간 예술가 최욱경의 삶이 안타깝지만, 이번 전시는 기억의 창고에서 젊은 날 최욱경을 좋아했던 추억을 꺼내보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 문화일반
  • 서유진
  • 2020.07.09 15:15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시대를 뛰어 넘은 상상력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 센트럴 뮤지엄에서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이 지난 4월 29일부터 열리고 있다(9월 13일까지). 이번 특별전은 회화, 사진, 다큐멘터리 등 총 160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멀티미디어를 통해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전시다.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와 인생과 예술의 동반자 아내 마리 조르제트 베르제 등 주변 인물도 소개한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는 20세기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벨기에 화가다. 초현실주의는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과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 20세기 초 예술 사조다. 그가 창작한 기상천외한 환상의 세계는 신비스럽고 희극적인 요소와 함께 위기감과 공포가 서려 있기도 하며 비논리적이며 독창적이다. 마그리트는 사과, 새, 체스, 말, 나무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상을 상식을 벗어난 예기치 않은 결합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롭게 볼 수 있게 만드는 그만의 독특한 재능을 발휘한다. 이런 기법을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 칭하는데 이는 20세기 문화와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물체의 변형으로 현실의 상황들을 바꾸고 고정관념을 깨트린다. 작품 제목도 남다르다. 그림에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다. 내 작품이 전하려하는 것은 한편의 시라는 마그리트의 미학이 색다르다. 예술이란 남다르게, 새로워야 함으로. 전시는 다섯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마그리트의 여러 면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섹션에서는 프랑스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를 비교 설명한다. 또한 마그리트가 고민했던 사물과 언어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찰과 함께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메레 오펜하임의 작품도 전시된다. 르네 마그리트 전시는 우리가 흔히 보는 일상의 물체들을 다르게 보게 하는 마력을 물씬 뿜어낸다. 작품 하나하나가 심상치 않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매료됐던 바다와 하늘을 작품에 강렬하게 묘사하는 점도 특이하다. 바다와 하늘이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제공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 블루여서일까. 그의 나이 14세에 비극적으로 자살한 어머니가 남긴 우울한 유산일까. 마그리트는 아마도 현실과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남다르게 보는 법을 창조했을 지도 모르겠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0.06.18 19:44

[성낙희 개인전 'Modulate'] 가득 차 있지만 비어 있는 화면

서울 서초구 패리지 갤러리에서 성낙희 개인전: Modulate전시회가 5월 9일까지 열리고 있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성낙희(Nakhee Sung, 1971~)작품 19점을 전시한다. 성낙희 작가는 수시로 변화하는 생각과 의식의 심리적 여정을 시각언어로 구현하는 추상표현주의 회화와 벽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제목처럼 조정하다의 공간감으로 축약된다. 조정이라는 명사가 아닌 동사를 쓴 점도 눈에 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Sequence(연작)는 공간의 미학이 독특하다. 수직과 수평, 사선으로 그리면서 곡선으로 굴절하는, 색상이 다른 면들은 그 안에 그라데이션으로 처리해 깊이감과 입체감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는 흐르는 듯 율동미도 겸비한다. 가득 차 있는 듯 비워져 있고, 비워져 있는 듯 가득 차 있다. 제목처럼 조정하다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던함이 뛰어나다. 색상 또한 환상적이다. 성낙희 작가는 나의 시각언어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역이고, 역동적으로 쌓이는 과정이 축적되어 점차 조화롭고 균형 있는 공간으로 진화하는 구조를 갖는다.고 자신의 미학을 피력한 바 있다. 작가는 1994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미술대학 학사와 1998년 로열컬리지 오브 아트에서 석사를 했다. 그 후 개인전을 여러 차례 열고 수많은 그룹전에 참가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해도 삶과 예술은 계속된다. 봄은 코로나 따윈 아랑 곳 하지 않고 찾아오고, 필자는 마스크를 쓰고 전시회에 찾아 간다. 현대추상회화의 거장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과는 또 다른 성낙희 작품의 모던함에 가슴 가득 기쁨이 넘쳐난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0.04.16 17:30

[서유진 기자의 예술관람기] 툴루즈 로트렉展

La Goulue(욕심 많은 사람) 나는 이상보다는 진실을 추구한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툴루즈 로트렉展이 5월 3일까지 열리고 있다.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툴루즈 로트렉展은 그리스 헤라클레이돈 미술관 소장품 150여점이 전시된다. 포스터, 석판화, 스케치, 잡지에 게재된 그래픽, 일러스트 등 대표적인 작품과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세계 각국에서 출판된 로트렉의 도록과 작품집, 툴루즈 로트렉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영상이 제공된다. 1864년 남부 프랑스 알비의 귀족집안 출신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1864~1901)은 허약한 체질을 갖고 태어났다. 게다가 소년시절 다리를 다쳐 평생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고 성장도 일찍 멈춰 작은 키로 살아야 했다. 어릴 때부터 스케치를 했던 로트렉은 다리를 고치는 힘든 치료과정을 거치며 많은 시간을 미술에 할애하게 된다. 그렇게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시작된다. 1872년 파리로 건너간 로트렉은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880년대 중반부터 비천함과 귀족적인 것이 혼재된 몽마르트에서 보헤미아 생활을 시작한다. 몽마르트의 카페와 카바레 물랭 루즈, 그 지역 연예인들과 미술가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물랭 루즈에 오는 인물들의 동작을 원근법에 얽매이지 않고 주변과의 유동적이며 활기찬, 독창적인 방법으로 구사하는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을 발휘한다. 스케치북과 캔버스 위에서 이미지를 구성하고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하는 현대적인 스타일이 돋보이는 걸작들을 남긴다. 특히 로트렉의 독창적인 예술성은 포스터와 석판화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300여점의 석판화를 제작하는 열정을 보인다. 연작 석판화 그 여자들(Elles)은 오랜 시간 매춘부와 고객의 행동을 관찰한 후 창조한 걸작들이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고독을 그 여자들에게서도 발견했던 것이다. 작품 중 로트렉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꿈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린 54번 선실의 여행객도 빠트릴 수 없다. 수많은 걸작을 남긴 그는 알코올중독과 말년의 신경쇠약으로 36세 젊은 나이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전시회를 나올 때 정신적으로 자유롭지만 신체적으로 제한된 로트렉의 고독한 삶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보고 싶었던 로트렉의 걸작들을 볼 수 있어서 기쁘지만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것은 웬일일까.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0.02.20 19:40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모네에서 세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모네에서 세잔까지: 예루살렘 이스라엘박물관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걸작전이 4월 19일까지 열리고 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못이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예루살렘 이스라엘박물관 소장품 106점이 전시된다. 인상파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1840~1926)는 1872년 인상, 해돋이를 발표한다. 모네는 자연에서 순간을 포착하고 그 대상의 색상이 주변 물체의 색상과 반사뿐만 아니라 빛의 밝기에 의해 바뀌는 것을 관찰한다. 모네는 동일한 대상이 시간, 계절, 날씨 등의 요소에 의해 빛이 어떻게 변하는지 일생 내내 탐색한다. 모네는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으며 말년의 수련 연못 연작은 모네의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준 걸작으로 꼽힌다. 인상파 화가 중 여성을 가장 아름답고 화사하게 그린 화가는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다. 소녀들을 가까이서 그린 피아노 치는 두 소녀, 책 읽는 소녀, 바느질하는 소녀 등은 유명하다. 르누아르는 1880년대 초 이탈리아 여행 후 인상파에서 이탈, 눈부시게 빛나는 원색대비로 원숙미가 무르익은 걸작을 남겼다. 대표적인 후기인상파 화가는 폴 고갱(1848~1903)과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폴 세잔(1839~1906)이다. 원시의 파라다이스를 동경했던 폴 고갱은 생의 마지막 10여년을 타히티를 비롯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고갱은 인상파 경향과 결별, 형상은 관념적으로 바뀌고 색채는 추상적으로 변했다. 벌거벗은 원시세계와 투박하지만 살아있는 검은 여인들의 모습을 강렬한 색채로 표현, 20세기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후기인상파 중 가장 뛰어난 폴 세잔은 20세기의 많은 화가들과 미술운동, 특히 입체파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잔은 끝없는 실험정신으로 자연의 진실을 화폭에 구현하기 위해 평생을 받쳤다. 세잔은 색채의 논리를 규정하고 새로운 구조적인 공간을 창조, 자신의 감각을 실현하는 일에 성공, 20세기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인상파와 후기인상파의 거장들의 작품이 몇 점밖에 되지 않아 실망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모네 작품은 3점뿐이고, 고갱과 세잔의 걸작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마저 저버렸다. 인상파 화가 피에르 보나르, 카미유 코로,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등이 그린 풍경화를 보는 기쁨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20.01.30 15:41

[‘매그넘 인 파리’展] 낭만과 혁명, 파리지앵의 진짜 얼굴

유럽에서 예술가들의 집이란 파리 말고는 없다. (프레드리히 니체) 기록은 힘이다. 여러 가지 기록 중에서 사진이 가장 진실하다. 사진은 진실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찰나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이기도 하다. 세계 사진사에 찬란한 이름을 남긴 사진작가들의 매그넘 인 파리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내년 2월 9일까지 열리고 있다. 세계 최고의 보도사진가 그룹인 매그넘 포토스 소속 작가 40여명의 작품 264점과 122컷의 미공개 사진작품을 담은 영상자료가 전시된다. 파리 관련 고서와 지도, 일러스트 34점이 근대수도로서 파리의 위상을 드러낸다. 시인, 작곡가, 공예가, 영화감독, 시각디자이너 등이 참여한 아티스트 협업 작업을 통해서 예술의 수도 파리를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의 전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사랑했던 파리의 찰나의 순간, 엘리엇 어윗의 위트가 넘치는 파리와 현대사진의 대가 로버트 카파 등 별처럼 빛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파리의 다양한 모습뿐만 아니라 파리지앵의 초상코너에서 파리에 거주했던 세계의 지성사와 예술사를 바꾼 거장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실존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지성 사르트르, 그의 연인 시몬느 보브와르, 지난 2월에 타계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슬픔이여 안녕의 저자 프랑수아즈 사강,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가수 에디트 피아프, 20세기 천재조각가 쟈코메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대통령 등의 얼굴이 발길을 한참동안 멈추게 했다. 그들의 눈빛과 분위기, 카리스마는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전시회에서 제공한 8개 영상이 인상 깊었다. 두 개의 커다란 화면이 교차로 움직이면서 파리의 문화와 예술을 보여주고, 자유와 낭만을 상징하는 파리의 역사를 한 눈에 읽을 수 있어 그 또한 기뻤다. 그것들을 영위하기 위해 투쟁까지도 불사하는 파리지앵의 삶도 엿볼 수 있었다. 매그넘 인 파리는 사진을 통해서 무엇을 기록하고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응답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도 잊을 수 없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19.10.08 19:45

[조선 실경산수화전] 조선시대 우리 강산 여행

조선시대 선비들은 산수화를 벽에 걸고 방 안에 누워 산수를 즐기는 와유(臥遊)로 피서를 삼았다. 기암절벽 아래 폭포수가 쏟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파도가 소용돌이치는 산수화를 보고 더위를 잊는 즐거움을 누린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즐긴 푸른 산과 계곡, 바다를 담은 실경산수화 전시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9월 22일까지 열리고 있다. 화가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어,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비롯해 김응환, 김윤겸, 강세황, 윤제홍 등의 17세기부터 19세기에 활동한 화가들의 실경산수화 360여점이 펼쳐진다. 전시는 4편으로 나뉘어져있는데, 1편 실재하는 산수를 그리다에서는 조선 실경산수화의 전통과 제작배경을 볼 수 있다. 조선의 실경산수화는 관료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나 별서도 등 다양한 회화적 전통과 풍수개념, 유교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2편 화가, 그곳에서 스케치하다는 화가가 유람 길에서 마주친 우리강산을, 현장에서 즉각적인 반응으로 간략하게 초본을 그렸다. 풍경의 요점과 당시 느낀 감정을 화면에 써 놓기도 했다. 3편 실경을 재단하다에서는 화가가 여행 후 작업실로 돌아와 초본과 기억들을 바탕으로 자연경관을 완성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화가의 시점과 화첩, 두루마리, 부채 등 다양한 매체에 따른 구성과 편집과정을 알 수 있다. 4편 실경을 뛰어넘다에서는 우리의 금수강산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표현한 화가들의 독창적인 걸작들이 펼쳐진다. 화가들은 그림 속 우리강산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유하며 끊임없이 실험적으로 구사했다. 조선시대 왕 중에서 예술을 사랑한 왕을 꼽으라면 단연 정조다. 1788년 정조는 도화서화원 김홍도(1745~1806)와 김응환(1742~1789)에게 관동지역과 금강산을 50여일 유람하고 그림을 그리라는 어명을 내린다. 김홍도는 매우 빠른 속도로 그렸지만 섬세한 해동명산도첩 32점을 남겼다. 김홍도와 동행한 김응환(1742~1789)은 금강산을 그린 해악전도첩 60점을 완성한다. 김응환은 실경을 재현하기보다는 여백이 없이 화면에 기하학적인 선과 면으로 가득 채워 그렸다. 현대의 시선에서 봐도 그의 그림은 파격적이며 모던하다. 우리의 금수강산 곳곳에 숨겨진 보물 같은 절경을 다채롭게 구현한 조선의 화가들의 미감을 만끽한 전시였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선비들처럼 우리강산을 시적이고 격조 있는 유람과 함께 와유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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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19.08.08 17:57

[야수파 걸작전] 화려한 원색·거친 붓질 '감성의 해방'

서울 광화문 세종미술관에서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 - 야수파 걸작전>이 9월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현대미술과 추상미술의 분수령이 된 야수파의 혁명적 예술가들이 펼친 회화, 사진, 조각, 영상 등 총 140여점이 펼쳐진다. 프랑스 트루아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국내 최초 전시다. 야수파는 20세기 초, 근대회화에서 현대회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등장한 전위적이고 혁명적인 미술 사조다. 야수파 화가들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회화에 반기를 들어 대상의 객관적 모습보다는 작가 자신의 감성을 중시, 감성의 폭발을 표현하기 위해 튜브에서 바로 짜낸 화려한 원색들을 강하고 거친 붓질로 감성의 해방과 창조적인 열정을 그림에 쏟아 부었다. 1905년 파리 살롱 도똔에서 처음 전시된 야수파의 그림은 관객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며 야수파란 이름을 얻게 된다. 야수파의 기수는 프랑스가 낳은 현대미술의 거장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다. 당시 시대에 반항하는 예술가집단을 이끌었던 마티스는 폴 세잔을 비롯해 폴 고갱과 빈센트 반 고흐, 조르주 쇠라 등의 작품을 세밀하게 연구, 야수파의 혁명적 미술양식을 창조했다. 전통적인 3차원 공간의 묘사를 거부하고 색채로써 새로운 회화공간을 만든 것이다. 그는 원색의 마술사로 색채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했고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등 한정된 주제를 다양하게 표현, 수많은 걸작을 세상에 남겼다. 다른 야수파 화가로는 앙드레 드랭(1880~1954)과 모리스 드 블라맹크(1876~1958)가 있다. 드랭은 풍경화의 모든 색조를 선명한 원색으로 처리하고, 짧고 힘찬 필치가 특징이다. 드랭은 1906년 야수파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빅 벤을 세상에 내놓았다. 드랭이 빨강과 노랑, 파랑과 초록의 원색을 사용, 작렬하는 태양아래 런던의 시계탑과 템즈강을 묘사한 빅 벤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드랭과 화실을 같이 사용한 블라맹크는 반 고흐의 표현력의 영향으로 색채로 소용돌이치는 듯 격앙된 회화를 구사했다. 블라맹크는 후에 회색과 흰색, 짙은 청색을 두껍게 칠한 마을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처음 파리에서 야수파의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비난과 조롱, 야유를 퍼부었으나 시대를 앞서 간 야수파 화가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철학을 고수했다. 미술혁명은 그렇게 시작되어 세상의 색채와 형태를 바꾸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명인 마티스의 그림이 몇 점밖에 없어 조금 서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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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19.07.18 20:19

[에릭 요한슨 사진전] 엉뚱하고 재미있는 상상

우리를 제한시키는 유일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세계를 한 장의 사진에 구현하는 사진작가가 있다. 에릭 요한슨 사진展: Impossible is Possible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9월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스웨덴 출신 에릭 요한슨(Erik Johansson, 1985~)의 촬영과 리터치를 한 사진 50점, 스케치 20점, 영상 10개와 작품에 사용된 소품 등이 펼쳐진다. 전시는 총 4개 공간에서 상상력과 초현실주의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을 선보인다. 첫 번째 공간은 어릴 적 상상, 꿈꾸던 미래라는 제목대로 작품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장면은 상상의 세계와 순수한 동심을 구현했다. 어렸을 적 풍선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상상을 작품으로 구현한 요한슨은 우리 어렸을 때와 비슷하다. 두 번째 공간 너만 몰랐던 비밀은 달의 모양을 매일 바꿔주고 양털을 깎아 구름을 만든다는 작품으로 요한슨의 기발하고 엉뚱하며 재미있는 상상의 구현이다. 세 번째 공간 조작된 풍경은 내 눈앞의 도로가 반으로 갈라지고, 바다가 내 발 아래서 거울조각처럼 부서진다는 작품 등이 전시된다. 네 번째 공간 어젯밤 꿈은 지금까지 꿔왔던 꿈과 악몽 속의 세상을 그대로 작품에 실었다. 두렵고 무서운 경험과 꿈, 마음을 작품으로 옮겨놓았다. 초현실주의 사진작가답다. 상상을 찍는 작가 에릭 요한슨은 한 작품을 제작할 때 영화를 제작하듯 치밀한 기획을 한다. 우선 아이디어 및 기획은 보통 한 달에서 일 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아이디어의 불씨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이를 메모하고 스케치를 해 둔다. 그리고 내버려 두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때는 충동적으로 작품을 만든다. 사진촬영은 철저히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끝이 나기도 하지만, 특수한 조명이나 자연의 상태가 필요한 경우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마지막 단계인 이미지 프로세스는 한 작품을 만드는 데 약 150개 이상의 레이어가 사용된다. 이 작업은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오랜 시간 사진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어버리기 위해 노력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요한슨은 15살이 되었을 때 처음 디지털카메라를 갖게 된 순간부터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이 사진으로 되살아 난 것이다. 그의 사진의 진가는 합성의 시작이 어디인지 타인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는 점이다. 환상이 그럴듯하게 현실화된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나면 기상천외함과 정교함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공상과학영화를 여러 편 보고 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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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19.06.27 17:37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하이메 야욘 전시

디자인이란 사용자의 감성을 건드리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 스페인 대표 디자이너 하이메 야욘의 전시 하이메 야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 (Jaime Hayon: Serious Fun)이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11월 17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디자인, 가구, 회화, 조각, 스케치부터 특별 제작된 설치작품에 이르는 140여점의 다양한 작품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타임은 2014년 가장 창의적인 아이콘으로 하이메 야욘(1974~)을 선정한 바 있다. 하이메 야욘의 작품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오브제(소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우리가 잊고 있던 감성과 상상력을 일깨운다. 마치 마술사처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브제에 스토리를 덧입혀 뜻밖의 재미를 선사한다. 이번 전시에서 야욘은 이런 오브제들의 각각의 흥미로운 사연을 들려준다. 전시의 첫 공간 크리스털 패션(Crystal Passion)은 보석들이 열대 지방에 간 이유를 이야기한다. 장식용 화병 세트를 설치, 열대 과일의 생생함이 살아있게 표현했다. 네 안의 보석을 빛내봐.라고 작품은 말하고 있다. 두 번째 공간 아프리칸도 가족의 사연(Modern Circus & Tribe)은 유리와 대리석의 조화를 시도했다. 내 이름은 사이다(Saidah). 행운이란 뜻이지. 너도 한번 떠나보는 건 어때? 세 번째는 트라팔가르의 체스경기(Checkmate)로 2009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작가가 디자인한 대형 체스게임 설치작품 더 토너먼트를 소개하는 공간이다. 야욘은 2m 높이의 체스 말 32점에 런던을 상징하는 역사적 건물, 돔, 타워 등을 그려 넣었다. 네 번째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꿈(Dream Catcher)은 작가의 페인팅 작품 5점으로 작가의 꿈의 그림이자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판타지이다. 상상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 줄 아니? 바로, 꿈꿨기 때문이야. 다섯 번째 수상한 캐비닛(Cabinet of Wonders)은 캐비닛 안에 70여점의 다양한 물건과 스케치북을 전시, 우리 삶은 네가 내 말을 들어줄 때 가치가 있다고 전한다. 여섯 번째는 가구가 반짝이는 푸른 밤(Furniture Galaxy)은 유명 가구브랜드와 협업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작가의 개성과 스타일이 두드러진, 가구 디자이너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공간이다. 마지막 공간 야욘의 그림자 극장(Hayon Shadow Theater)은 대형 설치물들이 빛과 그림자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실루엣으로 거듭난다. 벽과 바닥에 비치는 그림자들은 정말 자유롭고 싶다면 용기를 내서 자신을 드러내봐.라고 외친다. 야욘의 작품들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재미와 유머가 넘쳐난다. 경쾌하고 유쾌하다. 끊임없이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영감을 얻는다는 야욘은 주변의 사물에서 스토리를 이끌어 내면서 동시에 사물의 기능성과 미학적인 측면까지 극대화하려 노력한다.고 자신의 작업철학에 대해 말한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야욘은 재미있게 살아봐. 삶은 유쾌한 거야.라고 장난끼 가득한 미소와 함께 속삭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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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19.06.13 17:56

[권여현-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 수상 기념전] 치열한 성찰 녹여낸 붓질

눈먼 자의 숲에서 메두사를 보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그림으로 말하는 작가가 있다. 제9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 수상자 권여현 홍익대 서양화과 교수의 전시회가 지난 3일부터 4월 30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보혜미안(保慧美安)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은 작가의 창작력과 뛰어난 작품성을 가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선정된다. 권여현 작가는 신화, 역사, 철학, 종교 등 인문학적 배경으로부터 다져진, 신비롭고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눈먼 자의 숲에서 메두사를 보라는 쏟아지는 폭포수를 배경으로 나무 등걸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숲속에, 베일로 눈을 가린 사람들이 여러 명이 등장한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 이오카스테 사이에 태어난 딸 안티고네 등이 뒤엉켜 헤매고 있다. 수많은 뱀의 머리카락을 가진 안티고네는 눈이 마주친 생명체를 돌로 만드는 메두사를 닮았다. 작가 권여현은 눈먼 자의 숲은 눈을 가림으로써 감각의 예민함을 회복하고 공정성을 담보하는 재판에 여신 페미다가 인종, 계급, 남녀구분하지 않고 평등한 판결을 위해 눈을 가림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작가노트를 읽어보면 작가는 자신의 경험에 연관된 모든 정보를 그림으로 만든다고 한다. 작가에게는 신화와 철학, 정신분석학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네 가지의 코드가 있고, 코드를 거치고 나면 네 개의 개념어가 드러난다. 개념어 오필리아(Ophelia)는 사회적 주체로서의 형성과정에서 거울을 거치지 말고 상상력을 살리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리좀(Rhizome)은 수목에 관한 내용으로 신화 속의 인물은 주로 디오니소스, 아르테미스, 오이디푸스 등이다. 베일(Veiled)은 프랑스 여성철학자 엘렌 식수(Helene Cixoux)가 말했던 베일과 일맥상통한다. 엘렌 식수는 극심한 시력 장애로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감각에 의지해 글을 썼다. 그 후 수술을 받아 눈이 밝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밝히 보이는 사물의 외관과 이성적 판단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베일에 가린은 시각을 가림으로써 감각을 극대화한 개념이다. 깔때기(Funnel)는 혼돈의 세계와 논리 정연한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서 역할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외국작가의 그림처럼 보이는 권여현작가의 그림을 보러 남산에 위치한 보혜미안갤러리를 찾아갔다. 그림을 다 보고 갤러리 밖으로 나오니 대낮에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온 것 같았다. 남산의 숲은 연두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권 작가의 복잡하고 난해한 그림도 아름다웠다.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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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19.04.18 20:13

['데이비드 호크니'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나는 항상 그림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현대미술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가 지난달 22일부터 8월 4일까지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영국 테이트미술관이 공동주최한 이번 전시는 테이트미술관 소장품과 7개 기관 및 개인 소장품을 대여한 회화, 드로잉, 판화, 사진 등 133점으로 아시아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다. 1960~1970년대 로스앤젤레스 시기의 작품, 자연주의 시기의 2인 초상화, 피카소의 입체주의, 다양한 기법의 판화, 대규모 풍경화, 최근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작품을 총망라한다. 1937년 영국 브래드퍼드 출신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는 런던 왕립예술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호크니의 그림은 절제된 기법, 빛에 대한 관심, 팝 아트와 사진술에서 끌어낸 솔직하고 다양한 시도로 그린 그림 그리기가 특징이다. 특히 그의 그림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는 호크니가 회화의 전통성과 현대성을 결합시키는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도전을 지속한 60여 년에 걸친 작업여정을 7개의 주제로 구분했다. 초상표현주의에 대한 반기 로스앤젤레스 자연주의를 향하여 푸른 기타 움직이는 초점 추상 호크니가 본 세상 등이다. 테이트미술관 큐레이터 헬렌 리틀은 호크니의 영웅은 다양한 형식을 보여준 피카소였다. 3차원의 세상을 2차원 캔버스에 담아내기 위해 소재와 표현방식을 치열하게 고민한 예술가라고 설명한 바 있다. 호크니의 가장 유명한 수영장 시리즈는 1961년 미국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맡았는데, 그중 로스앤젤레스의 강렬한 햇빛과 세련된 캘리포니아 현대 미학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1960연대 영국에서는 동성애는 불법이었지만 미국은 달랐다.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던 호크니에게 미국은 파라다이스였다. 화창한 날씨, 야자수와 수영장에 매료된 그는 다양한 형태의 물과 빛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광택이 풍부하고 얇게 발리는 아크릴 물감으로 수영장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그는 어릴 때부터 청력이 좋지 않아 40세쯤에는 거의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글자나 숫자에서 색채를 느끼는 공감각(Synesthesia)을 타고났을 뿐만 아니라, 사물과 빛에 민감하고 뛰어난 관찰력의 소유자였다. 관찰은 통찰로, 창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본다는 것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세상을 기억과 함께 보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 있어도 같은 것을 보지 않는다.는 호크니의 말을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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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19.04.04 20:42

[‘로버트 마더웰-비가’전] 삶과 죽음의 극명한 대비

미국 현대미술작가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1915~1991)의 로버트 마더웰-비가전이 6일부터 5월 12일까지 서울 삼청동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로버트 마더웰은 마크 로스코, 빌럼 데 쿠닝, 잭슨 폴록 등과 함께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주도했던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그의 작품이 세계 유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915년 미국 워싱턴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로버트 마더웰은 스탠포드와 하버드대학에서 철학을, 콜롬비아대학에서 미술사를 수학했다. 마더웰은 하버드대학에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공부하고 시민권, 스페인내란 등과 같은 정치적 이슈를 접하게 된다. 1939년부터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또한 저술가, 기획자, 비평가로서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모더니즘의 핵심적인 인물로 활약을 펼친다. 그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자연스럽게 자동기술법에 매료된다. 자동기술법은 무의식의 창조적 힘을 예술로 표현하는 기법으로 임의적이고 즉흥적인 붓질로 구사한다. 그가 자동기술법으로 그린 대표작이 바로 비가 연작이다. 마더웰은 1948년부터 스페인내란(1936~1939)에서 받은 영감을 스페인 공화국에의 비가 (Elegy to the Spanish Republic, 1948~1990) 시리즈 100여 점을 40여 년에 걸쳐 발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1958년부터 1985년까지 연작과 판화 23점이 펼쳐진다. 내란의 희생자 애도가 작품제작의 주요 동기였지만 이 연작은 전쟁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 그 극적인 대비가 주제다. 검은색은 죽음과 불안을, 흰색은 생명과 약동을 의미한다. 스페인내란을 피카소는 게르니카(1937)로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면, 마더웰은 회고적이며 추상표현주의로 구사했다. 그는 비평가들이 자신의 그림에 대한 여러 해석에 대해 현실 세계의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온전히 정신세계에 대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번 전시는 강렬한 흑백의 삶과 죽음의 극명한 대비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화폭은 한국화의 수묵화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무게감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반면에 그의 비가 연작 외의 작품 중 콜라주는 삶의 예측불허한 다이내믹이 발산된다. 인간의 삶은 죽음과 생명이 공존한다는 진실에 대해 생각하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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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19.03.12 20:55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 간송이 지켜낸 우리 문화재들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랙숀이 서울 동대문디자인 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3월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서울디자인재단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선생이 보물과 국보를 지켜내기 위해 보낸 시간 속 사건들과 교육자로 헌신한 간송의 소장품들이 함께 펼쳐진다. 국보 6점, 보물 8점, 고려청자, 조선백자, 추사의 글씨, 겸재의 그림,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뻔했던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백자청화철재초충난국문병 등이 전시된다. 간송 전형필은 1906년 서울의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1926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에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그 후 전형필은 평생의 스승 독립운동가 오세창의 동서고금에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가 낮은 나라에 영원히 합병된 역사는 없고, 그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다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문화재를 감식하는 눈을 기르게 된다. 당대 일류 서화가와 문사들과 교유한 일도 문화, 예술 방면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 겸재 정선의 그림 인곡유거를 필두로 본격 우리 문화유산을 수집하는데 헌신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거금을 지불하고 찾아온다. 전시공간은 5개로 나뉘어있다. 첫 번째 알리다공간은 지난 5년간 DDP에서 전시된, 디지털화된 주요 유물 15점을 만날 수 있다. 두 번째 전하다에는 민족사학 보성학교를 구해준 간송의 교육자적 면모를 보여준다. 세 번째 모으다에서는 최초의 사립박물관 보화각(간송미술관 전신)을 통해 고려청자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의 실물과 수장 비화를 볼 수 있다. 또한 친일파의 불쏘시개가 될 뻔했던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과 그 수장한 과정도 알 수 있다. 네 번째 지키다에서는 합법적 문화재 반출구였던 경성미술구락부를 통해 지켜낸 대표 유물 배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예서대련, 추사의 침계 외 14점을 보여준다. 마지막 되찾다는 일본 주재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의 20년에 걸친 컬렉션을 일본으로 건너가 인수한 이야기와 우아한 비취빛 고려청자 12점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국보 68호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의 천하제일의 비색과 청자의 어깨에서 굽까지 내려오는 그 유려한 곡선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진정 기뻤다. 귀한 것을 귀하게 보는 눈은 얼마나 귀한가. 우리역사에 특히 일제가 우리 문화유산을 수탈해가는 데 혈안이 되었을 때 간송이 존재한 일은 얼마나 다행이고 귀한 일인가. 하늘이 낸 만석꾼 간송의 재력과 숭고한 정신, 뛰어난 심미안, 담대한 배짱과 확고한 의지가 하나가 되어 우리나라에서 사라질 뻔했던 보석과 같은 우리 문화재를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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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19.02.21 20:31

[자비에 베이앙 개인전]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조각가, 그 뛰어난 절제미"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대표작가이며,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대형 모빌을 설치한 조각가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han, 1963~) 개인전이 서울 성북구 313아트프로젝트에서 2월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자비에 베이앙이 다양한 색감과 질감, 재료로 제작한 인물 조각과 설치미술 등 20여점 소개된다. 5년에 걸쳐 발전시켜온 설치작업 Rays(선),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 스튜디오 베네치아의 음악적 요소를 조각으로 재현한 작품, 복잡한 구성의 모빌 넘버7 등 실험적이고 상징적인 작품들이 펼쳐진다. 1963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난 베이앙은 파리국립고등장식예술학교(EnsAD)를 졸업한 후, 거꾸로 뒤집힌 그림으로 유명한 독일 작가 게오르크 바셀리츠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베이앙은 2009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프랑스 대표적 현대조각가로 세계무대에 등장한다. 베이앙은 대상의 외형적 특성을 실재에 가깝게 표현하기 보다는 대상의 존재성 그 자체에 중점을 둔다. 모든 디테일을 없애고, 생략과 절제로 단순화된 그의 조각은 추상적인 형태로 본질만 남게 된다. 남겨진 에센스는 새롭고 역동적인 현대적인 미감이 충만한 조각품이 탄생하게 된다. 베이앙은 현대조각의 거장 콘스탄틴 브랑쿠시(1876~1957)가 추구하는 숭고한 보편성에 다가가고자 한다고 자신의 예술철학을 피력한 바 있다. 전시에서 특별히 발길을 붙드는 작품 만프레디(Manfredi)는 13세기 신성로마제국 시칠리아의 왕의 이름이다. 왕위에 오른 후 내전으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만프레디 왕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조각품이다. 그는 고전의 현대적 측면이라고 설명하며 그가 고전조각에 흥미를 갖는 것은 그 역동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세계 유수의 기관과 공공장소에 작품을 설치하고 대중과 소통하고 공유한다. 그는 확장, 통합, 상호작용이 자신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 바 있다. 전시를 보고 나올 때는 절제미가 뛰어난 현대시를 몸으로 체험한 듯하다. 그의 조각품이 나에게 말을 걸면 나는 기꺼이 응답하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베이앙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 것이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19.01.20 18:18

[파리시립미술관 소장 걸작선 ‘피카소와 큐비즘’전] 창조적 파괴…입체주의 한눈에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피카소와 큐비즘을 지난해 12월 28일부터 3월 31일까지 전시하고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미술사조 큐비즘(입체주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로, 피카소와 브라크를 필두로 로베르 들로네, 페르낭 레제 등 입체파화가 작품 90여 점이 펼쳐진다. 이번 전시는 파리시립미술관 소장 걸작들을 국내 처음으로 소개하는 특별전이다. 1907년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뜨리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세상에 내놓는다. 피카소는 서양의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대상을 정지된 시점에서 보고 조화로운 구성을 추구한, 오백 년 지켜오던 전통을 파괴하고 대상을 다중 시점에서 분석배열조합함으로써 관점의 다중화를 통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창조한다. 이에 영향을 받은 조르주 브라크도 여러 시선으로 바라본 대상을 한 화면에 동시에 구현한다. 초현실주의, 추상, 미니멀리즘 등 현대미술은 피카소와 브라크가 주도한 입체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입체파는 원시미술과 후기인상파 폴 세잔에게 힘입고 있다. 피카소가 이끈 입체파가 엄격한 기하학적 구성을 중시하고 무채색을 주로 사용했다면, 그 후 입체파 화가들은 색채를 회화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로 삼았다. 공간적 요소인 형태와 시간적 요소인 리듬과 함께 화려한 색채를 감각적으로 구사한 오르피즘을 창조한다. 오르피즘은 그리스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에서 유래한다. 그 대표적 화가로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1885~1941)와 그의 부인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 1885~1979)가 유명하다. 전시실 마지막에는 5m가 넘는 초대형 크기의 로베르와 소니아 들로네의 리듬 시리즈 작품 4개가 성벽처럼 초현실적으로 차지하고 있었다. 들로네부부의 작품은 크기만 압도적인 것이 아니라 수십 개의 다양한 색채로 조화와 율동성이 뛰어난, 80년을 앞서간 걸작을 창조했다. 그 모던함에 압도돼 한참을 전시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로베르 들로네는 한창 일할 나이 56세에 생을 마감했지만 부인인 소니아가 그의 뒤를 이어 오르피즘을 응용 발전시켰다. 1964년 당시 생존하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루브르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가졌고 1975년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명예로운 레지옹 도뇌르훈장을 받았다. 이번 전시는 로베르와 소니아 들로네의 발견이었다. 필자에게는 타임머신을 탄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 목록이 있는데 두 사람을 추가하게 되어 기뻤다.

  • 전시·공연
  • 서유진
  • 2019.01.06 19:20

['한묵: 또 하나의 시(時)질서를 위하여'전] 우주 속에 던져진 '인간의 전율'

한국기하추상의 선구자 한묵: 또 하나의 시(時)질서를 위하여 한묵(韓默, 1914~2016) 전시회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 11일부터 내년 3월 24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묵이 이룩한 화업(畵業)을 전체적으로 조명하는 첫 유고전이다. 서울시대와 파리시대로 구분하고, 1950년대의 구상부터 시공간의 역동적 기하추상이 완성되는 1990년대 작업을 망라했다. 한묵 화백은 시공간과 생명의 근원을 평생 탐구, 기하학적 추상미술 언어로 구현한 한국추상미술의 거장이다. 한묵은 빨강노랑파랑의 원색을 그만의 독특한 역동적인 선과 형태로 기학학적인 추상미술을 구현했다. 한묵 화백은 시공간 즉 우주, 4차원을 2차원의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평생 해왔다. 1914년 서울에서 출생한 한묵은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1944년 졸업한 후 1955년 홍익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51년에는 부산에서 이중섭과 박고석과 함께 기조회(基潮會)를 창립하고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모던아트 협회 창립멤버로서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던 중 1961년 진정한 화가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프랑스로 건너갔다. 파리에서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TV로 지켜보던 한묵 화백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때 2차 평면에 4차원 우주 질서를 담겠다는 야심을 키웠다고 한다. 어디가 끝인지 알 수도 없는 무한한 우주 속에 살면서 그 우주 공간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는 독창적이고 역동적인 우주 에너지가 넘치는 기하학적 추상 언어를 창조했다. 그 기하학적 추상화는 무한한 우주 속에 던져진 인간의 전율이다. 시간의 연속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컴퍼스와 자를 사용하여 나선으로 나아가며 방사선을 결합 교차시킨다. 80년대 후반에는 화백의 관심이 우주에서 인간, 탄생의 비밀로 이어진다. 전시를 보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나오며 작년 국립현대미술관 삼라만상 전에서 신소장품 121점 중 처음 본 한묵 화백의 금색운의 교차가 떠올랐다. 많은 작가의 작품이 펼쳐졌지만 유독 한묵 화백의 금색과 검은색의 나선 추상화가 발길을 한참 붙들었다. 충격이었다. 생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화백이 거주했던 파리 아파트 6층을 나선형의 나무계단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나온다. 몇 십 년을 나선형의 계단을 매일 오르내리며 우주공간을 나선형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 봤다. 한묵 화백이 언급한 인간의 전율을 우리는 일생에 한 번이라도 느끼기는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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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유진
  • 2018.12.30 19:08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