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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85) 15장 황산벌 4

계덕 천용이 돌아왔을 때는 깊은 밤이다. 자시(12시) 무렵, 그러나 계백은 내일 출정 준비 때문에 아직 침상에 오르지 않고 있었다. 계백이 청에서 흥수, 윤진 등과 함께 천용을 맞는다. 천용이 두 손을 청 바닥에 짚고 계백을 보았다. 갑옷은 땀과 먼지로 얼룩투성이가 되었고 더러운 얼굴에서 두 눈만 번들거리고 있다. 달솔, 저 혼자서 도망쳐 나왔소. 계백이 시선만 주었고 천용이 말을 이었다. 장덕 한성이 너 혼자라도 살아서 달솔께 달려가 도성에 오시지 못하게 막으라고 했습니다. 한성이 죽었느냐? 대왕께서 고마미지 성에서 달려간 놈을 만나 내막을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연임자가 달솔을 부르려고 그놈 심복인 사신 한 놈을 장덕과 함께 보낼 것입니다. 사신은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야. 듣고 있던 흥수가 말을 받았다. 한성을 죽이고 그냥 돌아가 달솔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할 거네. 계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처연해진 얼굴로 흥수를 보았다. 좌평,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천용이 청 바닥을 짚은 채 짧게 흐느꼈다. 눈을 부릅뜨고 흐느꼈기 때문에 딸꾹질하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부릅뜬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고 있다. 둘러앉은 윤진, 하도리까지 이를 악물고 있다. 이윽고 흥수가 대답했다. 달솔, 도성으로 들어가면 죽네. 그럼, 대왕께서 내가 도성으로 가지 않을 줄도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하성이 보고할 테니까 그대를 역적으로 부르겠지. 그럼 김유신 군(軍)을 어떻게 막으시려는 것입니까? 동방방령 사택부를 시켜 3만 군사로 가로막겠지. 그것이 차선책 아닌가? 사택부는. 연임자와 내통한 사택부는 시간을 끌면서 황산벌로 나가지 않을 것이네. . 김유신군은 무인지경처럼 황산벌을 통과하여 사비도성에 닿겠지. 흥수의 눈에 가득 고여졌던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그러나 목소리는 또렷했다. 그것이 연임자와 김춘추의 오랜 기간에 걸친 음모인 것 같네. . 나도 이제야 윤곽이 잡히는구먼. 흥수가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천정에 누가 있는 것 같은 표정이어서 모두 그쪽을 볼 정도였다. 아, 선왕(先王)이시여. 이 죄를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망국(亡國)의 죄를 지었습니다. 수백만 백제인이 신라인의 종이 되고 도살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선왕이시여. 제 죄는 백번 죽어도 마땅합니다. 그때 계백이 어깨를 부풀렸다. 들어라. 청안이 조용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모여졌다. 계백이 초점이 잡힌 눈으로 윤진부터 하나씩 시선을 맞추고 나서 말했다. 내일 아침 묘시(6시)에 전군이 북상(北上)한다. 모두 숨을 죽였고 계백이 말을 이었다. 황산벌로 달려가 김유신 군(軍)을 막는다. 김유신은 황산벌이 비어 있을 줄 알고 있을 것이네. 흥수가 외면한 채 말했다. 연임자, 사택부하고도 밀정이 오가고 있을 테니까. 그때 계백이 윤진에게 물었다. 황산벌까지 얼마나 걸리겠는가? 이틀이요. 윤진이 뱉듯이 대답하고 웃었다. 나흘 길이지만 우리는 계백 군(軍)이요.

  • 문학·출판
  • 기고
  • 2019.02.18 19:48

[불멸의 백제] (284) 15장 황산벌 3

계덕, 너는 지금 곧장 도성을 빠져나가 달솔께 가라. 한성이 낮게 말했다. 연임자가 날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장덕, 같이 도망치십시다. 한성과 함께 전령으로 달려온 계덕 천용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은 도성안 대왕청 근처의 대기소 앞이다. 그때 한성이 꾸짖듯 말했다. 이놈아! 기회를 놓치면 달솔께 상황도 전해드리지 못하고 다 죽는다! 예, 장덕. 천용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한성을 보더니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장덕, 저승에서 만납시다. 기어코 살아서 달솔께 도성 분위기를 전해라. 달솔이 도성에 오시면 죽는다. 예, 갑니다. 몸을 돌린 천용의 등에 대고 한성이 말했다. 저승에서 보자. 그 시간에 계백에게 흥수가 말했다. 대왕은 그대 뒤를 사택부터 동방군 3만으로 지원해주겠다고 했는데 잘못된 계책이야. 왜 그렇습니까? 사택부는 이미 연임자의 심복이 되어 있어. 동방군 3만은 그대를 지원하지 않을 것이네. 대왕은 왜 사택부를 앞세우지 않으십니까? 그때 흥수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사택부도 대성 8족 아닌가? 그자도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 저런. 계백이 한숨을 쉬었다. 좌평, 대왕의 총기가 흐려지셨소. 연임자의 농간에 넘어가 대성 8족을 하나씩 요직에 등용한 것이지. 이젠 우리가 밀려났네. 의자가 중용(重用)했던 성충, 윤충, 흥수, 의직 등이 모함을 받아 유배되거나 죽었지만 그렇다고 대성 8족을 믿는 것도 아니다. 오직 연임자 하나만 믿고 있다. 흥수가 말을 이었다. 연임자는 김춘추와 수년전부터 내통하고 있었어. 우리는 최근에야 알았지만 이미 늦었어. 방심하셨소. 내가 선대(先代)왕께 죽을 죄를 지었네. 좌평. 계백이 부르자 흥수가 고개를 들었다. 백제가 망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신라에게 철저히 유린당하겠지. 시선을 돌린 흥수가 말을 이었다. 김춘추는 지금까지 쌓였던 한을 풀 것이네. 구례성의 청 안이다. 둘이 마주보고 앉아 있을 뿐 청은 텅 비었다. 오후 유시(6시) 무렵, 내일 아침이면 북진한다. 그때 흥수의 말이 이어졌다. 백제땅은 모두 신라 귀족의 장원이 되고 백제인은 노예가 되겠지. 아마 건장한 남녀, 아이까지 수십만은 당으로 노예가 되어 팔려 나갈 것이네. 백제의 유적은 남김없이 부숴버리고 불에 태워서 흔적을 찾지 못하도록 하겠지. 아마 사비도성이 함락되고 왕가(王家)가 멸망하면 백제 주민의 3할 내지 4할은 이곳 구례성을 통해 왜국으로 빠져나갈 것이네. 흥수가 길게 숨을 뱉았다. 왜국이 제2의 백제가 되겠지만 대백제의 이름은 사라질 것이네. 좌평, 소인이 백제를 떠난지 3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계백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흥수를 보았다. 어찌 이렇게 허무하게 국력(國力)이 흔들릴 수가 있습니까? 3년쯤 전부터 백제 내부(內部)에서 불길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네. 흥수가 마침내 눈물을 쏟았다. 궁중에서 귀신이 나타나 백제는 망한다는 소리를 지르다 사라졌고 여우가 대왕의 용상에 앉았다가 도망쳤다는 등 소문이 끊이지 않았네. 모두 연임자 일당이 낸 소문인데 그때부터 민심이 흔들리기 시작했어.

  • 문학·출판
  • 기고
  • 2019.02.17 18:56

[불멸의 백제] (283) 15장 황산벌 2

사비도성에 전령 두 명이 동시에 닿았다. 하나는 달솔 계백이 보낸 장덕 한성이며, 또 하나는 고마미지성에서 달려온 시덕 공지. 둘 다 대왕을 뵈려고 왕궁의 청으로 달려왔지만 공지가 먼저 대왕을 만났다. 의자 옆을 떠나지 않는 내신좌평 연임자가 그렇게 만들었다. 대왕, 계백이 성주 진범을 베어 죽이고 유배된 흥수를 풀어 데려갔습니다! 공지가 소리쳐 보고하자 청안이 술렁대었다. 대신들이 수근거린 것이다. 계백이? 의자가 신음소리처럼 물었다. 그때 공지가 다시 소리쳤다. 계백은 대왕의 처사를 비판하면서 흥수를 데려갔습니다! 저런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 의자가 어깨를 부풀렸을 때 연임자가 나섰다. 대왕, 계백을 부르시지요. 연임자가 서두르듯 말을 잇는다. 이미 백제를 배신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 같사오나 대왕께서 부르셔도 오지 않는다면 반역이 분명합니다. 그것으로 판단하시지요. 그렇지. 의자가 충혈된 눈으로 백관들을 보았다. 누가 계백에게 가겠느냐? 소신이 가겠습니다. 달솔 유백진이 나섰다. 유백진은 전(前) 남방 방령으로 계백과 친분이 있다. 그때 연임자가 머리를 흔들었다. 달솔은 계백과 같은 방(方)에서 친밀했던 사이 아니시오? 계백에게 속아 넘어갈 가능성이 많소. 좌평, 내가 계백에게 속아 대왕을 배신한단 말씀이오? 유백진이 버럭 소리치자 의자가 나섰다. 너는 내 옆에 있어라. 너까지 잃기는 싫다. 그때 연임자가 말했다. 덕솔 하성을 보내지요. 하성은 연임자의 심복으로 내신부의 감찰이다. 의자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청 아래가 소란스럽더니 위사장이 소리쳐 보고했다. 대왕! 계백이 보낸 전령이 왔습니다. 청안이 조용해졌고 의자가 눈을 치켜떴다. 데려오라! 곧 위사장이 먼저투성이 갑옷을 입은 무장을 데려왔는데 계백의 부장(副將) 장덕 한성이다. 한성이 청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의자를 보았다. 한성은 32세. 계백을 따라 왜국에 갔다가 지금 대왕을 3년 만에 본다. 한성의 눈에 금방 눈물이 고였다. 대왕! 달솔 계백의 전갈입니다! 의자가 눈썹만 모았고 한성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충신 성충을 모함으로 죽이시다니 대왕께서는 역적 연임자에게 속으셨습니다! 의자가 숨을 들이켰지만 대신들은 침묵했다. 다만 연임자 혼자서 빙긋 웃었을 뿐이다. 그때 다시 한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군(唐軍)을 백강에서 막지 않고 신라군을 탄현에서 막지 않은 것은 백제국의 성문을 다 열고 도적 무리를 받아들인 것이나 같습니다! 닥쳐라! 마침내 의자가 버럭 소리쳤다. 백강은 뻘이 깊고 넓어서 오히려 우리가 불리했다! 그래서 구드레 포구에서 막을 것이다! 그리고 탄현은 곧 서방(西方)과 남방(南方)의 군사가 뒤를 칠 것이다! 모두 연임자와 그 무리가 의자에게 조언해준 작전이다. 백강과 탄현은 반역자가 되어 있는 성충, 흥수의 주장이었으니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의자가 손으로 한성을 가리켰다. 너, 들어라. 계백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예, 구례성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당장 계백을 이곳 도성으로 오라고 일러라. 예, 대왕. 너를 벌하지는 않겠다. 지금 덕솔 하성과 함께 떠나라! 예, 대왕! 탄현을 넘은 김유신군은 동방군 3만이 막고 있을 테니까 걱정할 것 없다고 이르라! 동방 방령 사택부가 지휘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9.02.14 19:54

[불멸의 백제] (282) 15장 황산벌 ①

으악! 목이 잘리면서 진범이 처절한 비명을 질렀으나 머리통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달솔, 왜에서 병력을 얼마나 가져왔느냐? 흥수가 머리 없는 진범의 몸뚱이가 뒤늦게 넘어지는 것을 본 척도 않고 물었다. 기마군 5천이요. 계백이 물기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흥수를 보았다. 신라군은 지금쯤 탄현을 넘었지 않겠습니까? 연임자가 술수를 써서 넘게 했을 것이다. 둘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숙소 마당을 나와 대문 앞에 섰다. 대문 밖에는 하도리가 이끄는 기마군이 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하도리는 전점의 휘하 무장과 부하들을 처치하고 고마미지 성을 장악해놓은 것이다. 주위를 둘러본 흥수가 긴 숨을 뱉었다. 나는 달솔 덕분에 살았지만, 병관좌평은 북쪽에서 죽임을 당했을 것 같다. 좌평, 대왕께선 판단이 흐려지신 것이오? 나도 이곳에 귀양을 당하고서야 알았으니, 대왕은 오죽하셨겠느냐? 같이 구례성으로 가십시다. 계백이 하도리를 불러 흥수의 말을 준비시키면서 핏발이 선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탄현을 동쪽의 신라군이 거쳐야 할 난공불락의 요지다. 만일 신라군이 탄현을 넘었다면 사비도성을 막을 곳은 황산벌뿐이다. 그 시간에 김유신이 이끄는 5만 군사는 탄현을 넘어가고 있었다. 탄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외길로 20여리(10km)를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예부터 탄현을 지키면 백제는 온전하다라는 말까지 나왔던 것이다. 모두 연임자의 공이다. 말을 타고 탄현의 고개를 내려가면서 김유신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연임자가 1백만 대군의 몫을 했다. 지금쯤 성충, 흥수는 죽었을 것입니다. 옆을 따르는 대장군 품일이 말했다. 흥수는 남방 소속의 고마미지 성으로 귀양을 보냈고, 성충은 북방의 안산성에 보냈습니다. 그때 품일의 말을 흠춘이 받았다. 고마미지, 안산 성주는 모두 연임자의 심복입니다. 성주가 유배된 죄인을 죽이겠지요. 계백이 지금쯤 백제 남방에 닿았을까? 김유신이 묻자 품일과 흠춘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놈이 걸리는군. 김유신이 흰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웃었다. 허나 이미 늦었다. 백제의 국운은 이미 꺼져가는 촛불이다. 오후 미시(2시) 무렵, 탄현의 긴 골짜기를 가득 메운 신라군이 이제는 내려가고 있다. 그때 김유신이 말고삐를 당기면서 옆에 선 흠춘에게 말했다. 이제 탄현을 건넜으니 백제군과 부딪칠 곳은 황산벌뿐이야. 그렇습니다. 흠춘이 정색하고 김유신을 보았다. 이곳에서 사흘 거리입니다. 총사령. 계백이 남방에 상륙하지 않았다면 무인지경이 되지 않았겠느냐? 왜국에서 오는 길은 남방의 구례성이니 그곳에서 황산벌까지는 닷새 거리입니다. 그렇다면 계백이 구례성에 지금 닿았다고 해도 우리가 사비성을 먼저 칠 수 있겠다. 예, 총사령. 선봉에 일러라. 오늘은 술시(8시)까지 행군하고 내일 아침에는 묘시(6시)에 출발한다. 예, 총사령. 흠춘이 말을 몰아 달려갔을 때 품일이 김유신에게 물었다. 도총관은 백강을 무사히 지났다니 이제 사비성을 좌우 협공을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에 전령의 연락을 받은 것이다. 김유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든든한 둑도 주먹이 들어갈 틈 하나 때문에 무너진다는 예가 지금 백제에서 일어나고 있다. 반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지요. 품일이 감개무량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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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3 19:55

[불멸의 백제] (281)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7

계백이 구례항에 도착했을 때는 7월 6일이다. 오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예정보다 사흘이 늦었다. 다행히 병선 3척이 실종되었을 뿐 군사와 말 대부분은 무사했다. 그러나 20일 가까운 항해에 군사와 말은 지쳤다. 이틀은 쉬어야 한다. 구례성에 들어간 계백에게 성주 목천기가 말했다. 달솔, 좌평 흥수, 성충이 김춘추의 뇌물을 받고 밀서를 교환하다가 발각이 되었소. 무엇이? 놀란 계백이 목천기를 쏘아보았다. 구례성의 청안이다. 함께 들어온 화청과 윤진도 놀란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목천기가 길게 숨을 뱉었다. "내신좌평 연임자가 그 증거물을 들고 대왕께 보고한 터라 두 좌평은 어쩔 수 없이 유배되었소." "유배되었다고? 이 전쟁 중에?" 계백의 목소리는 외침 같았다. 청안에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다가 목천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예, 전쟁 중이어서 죽이지 않았다고 하오. 연임자 이놈이 마침내 어깨를 부풀린 계백이 목천기에게 물었다. 나솔, 두 분은 어디에 계신가? 흥수좌평께서는 여기서 50리 떨어진 고마미지성에 유배되셨고 성충좌평께선 북방의 안산성에 계시오. 그때 계백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달솔, 유배자를 만나실겁니까? 윤진이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대왕께서 간신에게 속으셨다. 자르듯 말한 계백이 화청과 윤진을 보았다. 그대들은 이곳에서 말과 군사를 쉬도록 하라. 난 좌평을 뵙고 오겠다. 그러지요. 화청이 긴 숨을 뱉으면서 말했다. 소장은 달솔만 따르겠소. 계백이 하도리와 기마군 5백여기를 거느리고 고마미지성(城)에 들어닥쳤을 때는 유시(오후 6시) 무렵이다. 놀란 성주 진범이 계백을 맞았는데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마미지성은 남방 소속으로 상안의 군사가 1천여명, 성주 진범은 5품 한솔관등이다. 곧장 청으로 안내된 계백이 기다리고 선 진범에게 바로 말했다. 성주, 내가 이곳에 유배된 흥수좌평을 뵙겠다. 지금 어디 계신가? 성안 객사에 유배되어 계시나 대왕의 명이 없으면 만나지 못하십니다. 30대 중반의 진범이 예상하고 있었던 듯 바로 말했다. 계백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범 앞으로 다가갔다. 너, 이곳에서 머리가 잘리겠느냐? 달솔, 무슨 말씀이시오? 진범의 얼굴이 누렇게 굳어졌고 입이 반쯤 벌려졌다. 진범은 대성8족 중 하나인 진(眞) 씨다. 그리고 연임자의 친척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임자가 흥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이다. 그 순간이다. 청 주위에서 갑자기 비명과 외침 소리가 들리더니 곧 칼을 쥔 하도리가 올라왔다. 손에 쥔 장검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다. 하도리가 소리쳐 말했다. 성주놈이 청 주위에 숨겨놓은 위사 10여명은 다 죽었습니다. 그때 계백이 진범에게 말했다. 네가 앞장을 서서 좌평께 안내해라. 겁에 질린 진범이 입만 달삭였을 때 하도리가 칼등으로 진범의 머리통을 두드렸다. 앞장서. 개 같은 놈아. 객사에서 계백을 본 흥수의 눈에 금방 눈물이 고여졌다. 달솔이 왔는가? 좌평, 이게 왠일이시오? 계백이 소리치듯 묻자 흥수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달솔, 큰일 났어. 당군(唐軍)을 백강 입구에서 막아야 하는데 연임자와 상영이 대왕의 정신을 흐리게 하고 있다. 시기가 늦었는지 모르겠구나. 어쩌다 이렇게 되셨소? 계백이 다시 소리쳤을 때 흥수가 이를 악물었다. 자만했다. 우리도, 그리고 대왕도. 그때 계백이 허리에 찬 칼을 빼면서 진범의 목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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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2 19:34

[불멸의 백제] (280)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6

나솔 진의창의 밀서 내용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의자의 친필 밀서다. 기마군 5천을 이끌고 7월 7일까지 도성에 닿으라. 밀서에서 시선을 뗀 계백이 진의창에게 말했다. 25일 남았으나 맞추도록 하겠다. 닷새 후에 출발하면 구례성에는 15일이면 닿을 것이다. 구례성에서 도성까지 닷새면 된다. 달솔, 그럼 소인도 함께 가지요. 백제에서 달려온 진의창이 말하자 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진 준비는 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계백을 따라온 화청과 윤진, 하도리가 따라 돌아갈 것이고 왜장 다께다가 같이 가겠다고 해서 합류시켰다. 그날 밤, 계백의 품에 안겨있던 미사코가 말했다. 나리, 백제방 방주께서도 백제로 가십니까? 풍 왕자께선 이곳에 계실 것이야. 미사코의 어깨를 당겨 안은 계백이 말을 이었다. 왜국은 백제 담로 중 가장 큰 영지다. 본국은 대왕이, 왜국은 왕자 전하께서 통치하시기로 되어있기 때문이야. 곧 개선해 오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계백이 손을 뻗어 미사코의 불러오기 시작한 아랫배를 쓸었다. 이놈이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 사내아이라고 믿으십니까? 믿는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다나에가 다음 달에 산일이 되었으니 첫 아이를 낳겠구나. 그리고 이어서 아야메, 하루에의 순서로 아이를 낳을 것이다. 왜국에서 정실 노릇을 하고 있는 미사코가 가장 늦다. 그러나 미사코는 영주이며 정실이다. 다음날 아침, 계백의 거성(居城)인 토요야마성에 계백 영지의 소영주(小領主), 중신(重臣)들이 다 모였다. 그 중 소영주가 되어있던 화청, 윤진 등은 이번에 계백을 따라 출진을 하게 된다. 계백과 미사코가 청의 안쪽인 상석에 나란히 앉았을 때 청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방 3백자(90m) 가깝게 되는 청안은 중신들로 가득 차 있다. 계백이 서열대로 질서정연하게 앉아있는 영지의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들어라. 계백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나는 대왕의 명을 받고 본국에 다녀올 것이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계백령은 왜국에서의 내 정처인 미사코가 영주 대리를 맡는다. 중신(重臣)으로 사다케, 노무라, 슈토가 보좌할 것이다. 미사코가 여영주(女領主)가 된 것이다. 이것은 백제방주 풍왕자 전하께서도 허락하신 것이니 모두 영지의 관리를 철저히 해야 될 것이다. 알았느냐? 예엣! 모두 일제히 대답을 해서 청을 울렸다. 계백은 영지를 미사코에게 맡겨놓고 떠나는 것이다. 미사코의 배 안에는 계백의 자식이 들어가 있다. 그것으로 여영주(女領主)의 권위가 더 무거워졌다. 닷새 후, 병선(兵船) 350척에 탑승한 기마군 5천, 말 1만3천필은 서쪽을 향해 출진했다. 목적지는 백제 남방(南方)의 구례항, 대장선의 3층 누각 위에 선 계백의 옆으로 화청이 다가와 섰다. 달솔, 실로 파란만장한 일생이오. 계백의 시선을 받은 화청이 흰 수염 속의 입을 벌리고 웃었다. 달솔께선 대륙의 백제령 담로 연남군에서부터 백제 본국, 그리고 왜국 백제방 영주를 지내시다가 다시 본국의 전쟁터로 가시고 있소. 그대는 나보다 더하지 않는가? 끌려가듯 웃은 계백이 힐끗 멀어지는 왜국 땅을 보고 나서 말을 잇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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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1 19:33

[불멸의 백제] (279)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5

이제 기회가 왔어. 내신좌평 연임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사택부를 보았다. 이보게, 방령. 그 이치를 아는가? 무슨 말씀이오? 사택부가 찌푸린 얼굴로 연임자를 보았다. 밤 해시(10시)가 지난 시간이어서 주위는 조용하다. 이곳은 사비도성의 서방(西方)에 위치한 내신좌평 연임자의 저택 안, 마루방 안에는 둘이 마주 보고 앉아있다. 연임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거대한 전각도 대들보 한 개만 어긋나면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린다네. 연임자의 시선을 받은 사택부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연임자는 내신좌평으로 관리들의 인사권을 쥔 실세다. 다섯 명 좌평 중에서 병관좌평 성충 다음 서열이지만 왕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전내부의 수장으로 국정을 장악하고 있다. 그 연임자가 신라 김춘추로부터 10여 년간 뇌물을 받아온 반역자인 것이다. 연임자는 대성8족 중 하나인 연(燕)씨로 한때 집안이 융성했지만 무왕 때부터 몰락했다가 연임자가 가문을 일으켰다. 의자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연임자가 말을 이었다. 방령, 이번에 신라군이 왔을 때 지원군을 늦추기만 하면 되네. 늦추기만 하면 되겠소? 그래, 왕이 동방군(東方軍)을 후위군으로 둔다는 것은 그대를 믿지 못한다는 말이나 같지 않은가? 그건 그렇소. 쓴웃음을 지은 사택부가 말을 이었다. 성충이가 왕에게 말했을 것이오. 사택부는 믿을만하지 않다고. 그러니까 이틀만 늦추면 되네. 연임자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앞에 앉은 사택부는 45세, 역시 대성8족 중 하나였지만 신진 세력인 성충, 윤충, 의직, 흥수 등에게 밀려 변방으로 떠돌다가 연임자의 추천으로 겨우 동방방령이 되었다. 사택부의 직위는 제2품인 달솔, 동방은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방으로 상비군이 4만 가깝게 된다. 그래서 이번 전쟁에 3만을 추려 계백군의 후위군 역할을 맡은 것이다. 내가 계백보다 나이나 경륜도 많고 전장에 많이 나갔소. 더구나. 그 뒷말은 안 들어도 안다. 사(沙)씨 가문은 대성8족 중 으뜸 가문인 것이다. 무왕(武王)에 이어서 의자왕대까지 왕권이 강화되면서 대성8족은 견제를 받았다. 대신 신흥 세력이 중용되어 백제국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연임자가 말했다. 왕은 자만하고 있어. 당군(唐軍)쯤은 백강이나 탄현에서 격파하고 김유신군은 황산벌에서 단숨에 깨뜨릴 계획이야. 하지만 내가 그러지 못하게 할 거네. 어떻게 말씀이오? 좌평 흥수, 성충을 역적으로 몰아 일단 입을 막을 작정이야. 놀란 사택부를 향해 연임자가 빙그레 웃었다. 신라 김춘추가 뇌물을 보냈다는 증거를 보이면 왕은 어쩔 수 없이 둘을 구금하겠지. 증거가 있습니까? 신라에서 보내온 보물과 편지가 있어. 연임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내일 신라 첩자를 잡아 왕께 데려갈 거네. 물론 그 첩자는 목숨을 걸고 온 신라 화랑이야. 과연. 왕은 혼란에 빠지겠지. 좌평, 신라가 도성을 차지하면 내 위치는 어떻게 되겠소? 그대는 좌평이 되어서 나와 함께 백제를 다스리기로 하지. 김춘추왕과 약조가 되었습니까? 몇 번이나 했어. 정색한 연임자가 사택부를 보았다. 벌써 10년이 넘었네. 이제 김춘추공은 신라왕이 되셨고 우리도 가문을 다시 일으킬 때네. 가문만 일어나면 누가 왕이 되어도 좋소. 마침내 마음을 굳힌 사택부가 똑바로 연임자를 보았다. 반역은 이렇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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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0 18:39

[불멸의 백제] (278)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4

당군(唐軍)이 출발했습니다. 장안성에서 나는 듯이 달려온 첩자가 병관좌평 성충한테 보고 했을 때는 5월 말이다. 저녁 술시(8시)가 지난 시간이어서 성충은 저택에서 첩자를 맞고 있다. 신구도행군도총관 소정방이 주장(主將)이 되어서 13만 군사가 출정을 했습니다. 첩자는 장안성에 뿌리를 박고 사는 상인 안청이다. 그러니 당 왕궁이나 관부에 뇌물을 먹인 정보원이 많다. 안청이 말을 이었다. 백제에 닿으려면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으며 신라와 좌우에서 협공을 할 작정이라고 합니다. 수고했다. 성충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도 장안성에서 온 첩자가 다녀갔다. 대감, 이번 전쟁은 예사로 볼 것이 아닙니다. 50대 중반의 안청이 정색하고 성충을 보았다. 고구려의 지원을 받지 않으십니까? 대왕께선 우리 힘으로 능히 당군을 격파하고 김유신군을 몰사시킬 수 있다고 하셨다. 다행입니다. 이번 싸움으로 신라가 멸망할 것이다. 성충이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렸다. 다음날 오전, 도성의 청에서 성충의 보고를 받은 의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왜에 전령을 보내라. 예, 대왕. 백제방의 풍왕자께 보냅니까? 아니, 계백이 더 가깝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아스카의 백제방은 내해(內海)를 따라 돌아가야 하지만 계백의 영지는 동해(東海)만 건너면 되니까요. 성충이 말을 잇는다. 오가는데 20일이면 됩니다. 계백에게 정예군을 추려서 오도록 해라. 군사를 얼마나 모으라고 할까요? 기마군 5천. 의자가 생각하고 있었는지 바로 말했다. 말까지 싣고 오려면 보군 1만 5천이 움직이는 것이나 같을 것이야. 그렇습니다. 대왕. 계백의 기마군 5천으로 김유신군을 맞게 할것이다. 김유신은 신라군 5만을 이끌고 올 것입니다. 동방(東方)의 군사 3만을 계백의 후위군으로 주면 충분하다. 백제는 동, 서, 남, 북 중 5개의 방(方)으로 구분되었고 각 방(方)은 방령이 통치하는데 각각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다. 백제는 5방 37군, 200성의 행정조직에 76만호를 거느리고 있었으니 고구려의 5부 176성에 69만 7천호보다 더 강성한 국가다. 22개 담로까지 합하면 600만이 넘는 인구인 것이다. 당시 대륙을 통일했던 수(隨)의 인구가 890만호에 4천 6백만이었으니 백제는 동방의 강국이다. 더구나 왜까지 합하면 수(隨)를 이은 당(唐)도 단독으로 대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의자가 청안에 도열한 대신들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이때를 기다렸다. 모두 숙연해졌고 의자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백제와 신라, 그리고 고구려는 같은 땅에서 같은 말을 써왔지만 서로 반목했다. 의자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고구려와 백제는 같은 시조에서 분류된 왕국이나 신라는 다르다.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다. 백제는 고구려 유민으로 건국되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백제의 시조인 것이다.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 소서노는 주몽이 졸본으로 망명해 왔을 때 그와 재혼해서 두 아들을 낳았다. 소서노는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한 것이다. 그러나 주몽의 첫아들인 유리가 나타나 태자로 책봉되자 비류와 온조는 추종자들을 이끌고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한 것이다. 비류와 온조는 각각 분가했지만 곧 온조계 백제가 주도권을 장악하여 대를 이어왔다. 의자가 말을 이었다. 백제가 대를 이어온 지 어언 6백 60년, 대백제의 뿌리는 천년만년 이어질 것이다. 단하에 서 있던 성충의 시선이 옆쪽의 흥수, 의직에게로 옮겨졌다. 지금까지 고구려는 대륙 세력의 침입을 여러 번 겪었지만 백제는 이번 당(唐)의 침입을 처음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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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07 16:50

[불멸의 백제] (277)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3

"어딜 보세요?" 뒤에서 미사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옷자락이 마룻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저녁 무렵, 성의 5층 누각에 선 계백이 앞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다가온 미사코가 계백의 옆에 섰다. 바람이 미사코의 옷자락을 가볍게 흔들었고 긴 머리칼 몇 가닥이 얼굴을 휘감았다. 미사코의 체취가 맡아졌다. 향기가 섞인 살 냄새다. 계백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미사코가 같은 방향에 시선을 준 채로 다시 말했다. "노을은 볼 때마다 달라요. 얼핏 보면 똑같은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어요." "" "냄새도, 파도도, 날씨도" 계백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녁노을이 붉은 비단을 덮은 것처럼 바다를 물들였다. 태양은 수평선 아래쪽으로 모습을 감추면서 바다가 끓어오르는 것 같다. 미사코는 잘못 물었다. 어딜 보느냐고 묻지 말고 뭘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면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토요야마성, 미사코가 따라와서 닷새째 머물고 있다. 토요야마성에는 소실이 셋 있다. 아야메, 하루에, 다나에다. 그중 다나에와 하루에는 임신을 해서 배가 부르다. 이번에는 바람이 조금 세게 불어서 바다냄새가 맡아졌다. 토요야마성에서 서쪽 바다가 보이는 것이다. 그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미사코, 저 바다 건너편에 전운(戰雲)이 덮여져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보입니다." 미사코가 바로 대답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보는 시늉을 했다. 계백이 더 붉어진 수평선 위쪽 하늘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저곳에 신라, 백제, 고구려, 당이 펼쳐져 있다." 미사코가 숨을 죽였다. 곧 미사코는 미사코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미사코는 엄연히 소영주(小領主)인 것이다. 미사코성(城)을 중심으로 옛 후쿠토니의 영지를 통치해야만 한다. 계백의 목소리가 누각 위에 울렸다. "난 조만간 저곳으로 돌아간다. 미사코." "알고 있습니다. 주군." 미사코가 계백의 옆에 바짝 붙어섰다. 계백의 측실 중에 미사코만이 이런 행동을 한다. "미사코, 네가 중심이 되어라." "예. 주군." "내 자식들을 낳으면 네가 다 뒤를 봐주도록 해라." "주군이 옆에 계셔야지요." "있을 것이다." "꼭 돌아오신다고 약속해주세요." "돌아오마." "하루에, 다나에님은 곧 아이를 낳을 것이고, 아야메님도 잉태를 했습니까?" "했을 것이다." "제가 낳는 아들이 적자가 됩니까?" "내가 백제방과 이곳에 남는 중신(重臣)에게 말해놓겠다. 네 아들이 적자다." "주군." 미사코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미사코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미사코가 계백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 말씀 하시려고 저를 데려오셨습니까?" "다른 소실들 인사도 받아야 할 것 아니냐?" 미사코를 왜국 내의 정실부인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미사코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이곳 계백 가문은 걱정하지 마세요. 뿌리는 단단히 굳혀놓을 테니까요." "다른 백제계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너희들의 바탕이 든든하다." "좋은 밭(田)입니다." 미사코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웃었다. "바다를 건너가실 때는 뵙지 못하겠군요." "언젠가는 돌아올 테니까." 이제는 계백이 고개를 돌려 뒤쪽을 보았다. 왜국이다. 뒤쪽 청에는 이미 향초를 여러 개 켜놓아서 환해져 있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이곳, 왜국은 내 고향이나 같다. 내 자식들이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뿌리를 뻗고 열매를 맺어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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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06 18:46

[불멸의 백제] (276)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2

사비도성의 청 안, 의자왕이 좌평 성충, 흥수, 연임자 등 대신들을 둘러보며 묻는다. 한달 전에 김창준이 당왕 이치한테서 당군의 파병을 통보받았어. 지금은 파병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는가? 소정방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각 주(州)에서 제대로 군사나 물품이 준비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관 좌평 성충이 대답했다. 이번 파병은 제 나라 일도 아닌 데다 겨우 미랑에게 뇌물을 써서 이루어진 일이라 그렇습니다. 미랑은 곧 무후(武后)다. 미랑은 현(現) 당왕(唐王)의 부친 이세연의 애첩이었을 때의 이름이다. 그 미랑이 이세연의 총애를 받아서 무미(武媚)라는 호를 받았는데 본래 이름이 무조(武照)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제 조정은 당(唐) 왕실의 패륜을 경멸하여 죽은 아비의 소실을 왕비로 삼은 당왕(唐王) 이치는 물론 무후 미랑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때 흥수가 말했다. 이찬 김창준이 장안성에 머물면서 계속 미랑에게 뇌물을 바친다니 성과가 있을 것이오. 그럴 것이다. 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라가 목숨을 부지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미랑이 뇌물 몇만량에 대군(大軍)을 동원할 리가 있습니까? 아무리 제 욕심만 차리는 계집이라고 해도 일국의 왕비가 된 괴물입니다. 성충이 말을 이었다. 설령 당왕 이치는 그냥 넘긴다고 해도 대신들에게 명분을 내세워야 할 것입니다. 옳다. 의자가 입술 끝을 올리고 물었다. 그 명분은 신라, 백제, 고구려까지의 병합이겠지? 그렇습니다. 신라는 이미 당의 관복을 입고 당의 속령으로 자처하고 있으니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 후에는 속국으로 삼겠다는 명분을 세울 것입니다. 결국 김춘추의 당과 일심동체론이 당의 대신들에게도 먹히겠지. 신라의 위협이 당의 위협으로 될 것입니다. 김춘추가 필사적으로 당에 매달린 이유가 바로 그것이야. 눈을 가늘게 뜬 의자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제일 두려운 상황이 무엇인지 아느냐? 의자가 묻자 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얼른 대답하는 대신은 없다. 의자의 시선이 내신좌평 연임자에게 옮겨졌다. 내신좌평이 말해보라. 당의 대군이 예상 외로 많이 출정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몇십만이 더 많아진다고 해도 대백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때 흥수가 나섰다. 당의 대군이 빨리 오는 경우입니까? 아니다. 의자의 시선이 성충에게로 옮겨졌다. 병관좌평이 말해보라. 이치가 죽고 미랑이 집권하는 것 아닙니까? 옳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친 의자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것은 두 번째로 두려운 상황이다.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왕. 그럼 무후(武后)가 당왕(唐王)이 되겠구나. 미랑은 왕비를 퇴위시키려고 제가 낳은 딸을 질식시켜 죽인 요물입니다. 과연. 의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 딸을 질식시켜 죽인 미랑은 그 죄를 왕비에게 뒤집어씌웠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미랑은 왕비가 되었다. 그때 의자가 입을 열었다. 내가 가장 두려운 상황은 김춘추와 미랑이 결탁하는 것이다. 세쌍의 시선을 받은 의자가 말을 이었다. 김춘추는 나이들었지만 지금도 수려한 용모에 언변이 뛰어났고 재능은 따를 자가 없다. 미랑이 그자를 만난다면 이 세상은 김춘추가 장악하게 될 것이다. 모두 입을 다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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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31 20:02

[불멸의 백제] (275)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1

장군, 이번이 마지막 기회요. 김춘추가 말하자 김유신이 먼저 길게 숨부터 뱉었다. 그렇습니다. 먼 길을 걷고 나서 앞쪽에 사람 사는 민가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소? 쓰게 웃은 김춘추가 술잔을 들었다. 깊은 밤. 해시(10시) 무렵이다. 동경의 내성 청 안에는 신라왕 김춘추와 대장군 김유신 둘이서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둘은 왕과 신하이기 전에 처남 매부 사이며 지금까지 온갖 역경을 함께 겪어온 동지이기도 하다. 김유신의 무력(武力) 뒷받침이 없었다면 기라성 같은 다른 진골 왕족을 젖히고 김춘추는 신라왕이 되지 못했다. 김유신 또한 김춘추의 지원이 없었다면 가야 출신으로 대장군까지 이르지 못했다. 둘은 합심하여 상대등 비담의 난을 평정했고 그 와중에 여왕 김덕만을 제거했으며 사촌 여동생 김승만을 여왕으로 옹립했다. 후에 선덕, 진덕으로 불린 여왕들이다. 진덕여왕 김승만이 재위 8년 만에 죽고 김춘추가 왕이 되었으니 53세가 되었을 때다. 김춘추가 지그시 김유신을 보았다. 장군, 백제를 멸망시키면 고구려는 저절로 떨어지는 감이나 같소. 그렇습니다. 김유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연개소문의 기반이 불안한 터라 연개소문만 죽으면 고구려는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렇소. 그동안 얼마나 시달렸는가? 신라가 명운을 지금까지 유지해 온 것은 김춘추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중에서 가장 세력이 약하면서도 내분이 많았던 신라다. 성골, 진골 왕족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주민들의 왕조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백제 의자왕 초기에 대야성이 함락되고 주변의 42개 성까지 백제령이 되는 바람에 영토의 4할을 빼앗겼다. 그야말로 국운이 풍전등화가 되어 있었던 상황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대국 백제, 고구려는 호시탐탐 대륙을 노리는 중이어서 신라를 등에 붙은 거머리 정도 밖으로 여기지 않는다. 김유신이 말을 이었다. 전하, 당군(唐軍)이 온다는 소문은 백제에도 전해졌을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김춘추가 6살 연상의 김유신을 보았다. 아마 연개소문도 알고 있을 것이오. 연개소문은 지난번 이세민의 침공 때 입은 피해를 복구하느라고 아직 군병을 모아 백제를 도울 여력이 없습니다. 김유신이 흰 수염을 쓸면서 말을 이었다. 제일 위험한 쪽은 왜입니다. 그렇군. 왜에서 계백이 대영주가 되어 있습니다. 전하. 그 놈이 또 뒤를 치면 큰일이오. 첩자의 말을 들으면 영지에서 군사 5만을 금방 모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놈이 동진을 해서 서쪽 해안까지 닿았다니 바다만 건너면 바로 우리 등에 닿게 되지 않겠소? 진즉 우리가 왜를 개척했어야 했습니다. 뼈다귀 싸움하는 바람에 다 놓쳤지. 지금 가장 위험한 적이 계백입니다. 김춘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을 왜에 묶어놓아야 할 텐데 방책이 없겠소? 백제 조정 내부에 있는 첩자를 운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전하. 내가 이찬 김기평을 불러 지시를 하리다. 길게 숨을 뱉은 김춘추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장군, 5년쯤 후에는 세상이 달라졌을 것이오. 장군의 생각은 어떠시오? 어떤 세상이 펼쳐졌을 것 같소? 그때 김유신이 눈을 가늘게 떴다. 소신은 대왕께 충성을 한 장수로만 알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이건 관심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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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30 19:30

[불멸의 백제] (274)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10

화청과 윤진, 백용문은 계백을 따라 본토에서 바다를 건너 백제 담로인 왜국으로 건너온 후에 왜국 영주가 되었다. 계백이 영지를 나눠준 것이다. 물론 계백령이라 불리는 계백의 영지 안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계백의 신하다. 그러나 각각 10여만 석의 영지를 통치하고 영지 안 주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터라 왕(王)이나 같다. 또한 전(前) 영주의 소실이나 이리저리 인연을 잡아 내실에 처첩을 둘씩, 셋씩 거느렸고 시녀들이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딴 세상을 사는 중이다. 그 계백의 원래 측근 셋이 미사코성에 모였다. 계백이 부른 것이다. 미사코성은 계백령의 중심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동정(東征)하면서 거성(居城)을 여러 번 옮긴 터라 계백의 처첩은 모두 동쪽 토요야마 성으로 옮겨갔다. 미사코성의 미사코만 예외다. 그대는 갈수록 젊어지는 것 같구나. 계백의 앞쪽에 앉은 화청에게 말했더니 청 안에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윤진과 백용문이 웃은 것이다. 물론 화청은 안 웃었다. 대신 얼굴이 붉어졌다. 제가 이러다가 오래 못 살 것입니다. 화청이 시선을 내린 채 말했다. 맛있는 음식을 포식하고 밤에 젊은 여자에게 원기를 빼앗기는 생활을 하면 그 죗값을 받습니다. 이젠 그럴 때도 되었지 않나? 이렇게 살았다면 30년 전에 죽었을 것입니다. 나솔, 자책할 일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왔던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닌가? 한(限)을 품은 채 다음날을 기다리며 살았으니 이렇게 견딘 것입니다. 고개를 든 화청이 계백을 보았다. 달솔, 고향으로 돌아가 육신을 눕히고 싶습니다. 누가 있다고 그러는가? 다 흙이 되어 있으니 저도 같은 땅의 흙이 되려고 그럽니다. 화청의 고향은 대륙의 태원이다. 수(隋)나라 태원유수 이연의 막하 장수였던 화청은 이연이 아들 이세민의 설득을 받고 반란을 일으키자 수 양제에게 보고를 했지만 발각되어 가족이 몰사를 당했다. 그 후로 화청은 몸을 피해 도망을 쳤고 이연은 승승장구, 마침내 당(唐)을 세운 것이다. 그것이 지금부터 40년 전이다. 이제 화청은 63세, 백발로 덮인 노장(老將) 모습으로 바다 건너 왜국의 영주가 되어 대륙을 그리고 있다. 당왕(唐王) 이치(李治)가 그때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지. 계백의 말에 화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치를 깔고 앉은 미랑이란 요물도 마찬가지지요. 미랑은 곧 무후(武后)다. 그때 윤진이 입을 열었다. 주군, 곧 당군(唐軍)이 신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공격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그대들을 부른 것이다. 정색한 계백이 셋을 둘러보았다. 이제 영지의 기반이 굳어졌을 테니 정병을 길러 만일에 대비하도록 하라. 셋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따르겠다는 표시를 했고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는 대군(大軍)을 수송할 수 있는 대선단을 만들 테다. 이것은 풍왕자께서도 허락하셨다. 그때 윤진이 물었다. 대군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본국으로 데려갈 병력은 기마군 2만, 말이 5만필이다. 계백이 바로 대답했다. 양곡은 반년분을 싣고 간다. 사역병, 잡병, 기타 부속병까지 5천은 더 있어야 될 것이고 마차나 진막, 자재까지 준비해야 됩니다. 모두 원정군 경험이 있는 터라 화청이 말을 잇는다.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윤진을 보았다. 원정군 준비는 나솔 윤진이 맡고 기한은 년으로 한다. 모두 적극 협력하도록. 아직 당군(唐軍)의 병력, 출동 일자는 결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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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9 15:59

[불멸의 백제] (273)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9

네가 누구냐? 당왕(唐王) 이치(李治)가 묻자 김창준이 납작 엎드렸다. 장안성 왕궁의 청 안이다. 예, 신라 사신 김창준입니다. 소리쳐 말했지만 당왕과의 거리가 30보나 되어서 잘 안 들렸는지 이치가 비만한 몸을 꿈틀거렸다. 눈썹이 찌푸려져 있다. 누구? 김춘추라고? 아닙니다! 김창준입니다! 이번에는 더 크게 대답하자 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춘추가 김창준으로 이름을 바꾼 모양이군. 그때 옆쪽의 이의부가 반 발짝 앞으로 나섰다. 대왕전하. 그게 아니라고 설명을 하려던 이의부는 입을 다물었다. 이치 옆에 앉아있던 무후가 손을 저었기 때문이다. 가만있으라는 표시다. 그때 무후가 말했다. 김춘추나 김창준이나 그 이름이 그 이름이지, 안 그러냐? 높고 앙칼진 무후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그러자 이의부, 허경종이 일제히 허리를 꺾었다. 마마, 그렇습니다. 그때 무후가 이치를 돌아보았다. 대왕, 신라가 원병을 청하니 보내 주시지요. 그놈들은 맨날 원병이야? 제 앞가림도 못 하고 어떻게 사노? 신라가 없어지면 백제 고구려가 대당의 등을 찌를테니까요. 무후가 쨍쨍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대왕, 대왕이 즉위하시고 나서 고구려 백제는 인사도 안 했습니다.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그랬지, 인사도 안 했지. 소정방을 신구도행군도총관으로 삼아서 병력을 모으라고 하지요. 소정방을, 그자가 살아있나? 원정군 사령관으로 적당해요. 청 안에 백 명이 넘는 백관이 도열하고 서 있었지만 계단 위의 옥좌에 나란히 앉은 왕과 왕비가 거침없이 국사를 논하고 있다. 아니, 논하는 것이 아니다. 왕비 무후가 왕 이치에게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백관들이 다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이제 일상화되어서 놀라지도 않는다. 그때 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소정방을 보내지. 백제를 멸망시키면 그곳에 도독부를 두고 속령으로 삼을 것입니다. 옳지, 속령으로. 그때 이의부가 소리쳐 대답했다. 대당(大唐)이 천년만년 번성할 것입니다. 만세! 대왕 만세! 왕비 만세! 그러자 다른 백관들도 따라서 만세를 불렀다. 엎드려있던 김창준도 두 손을 들고 만세를 따라 부른다. 이제 되었다. 왕궁을 나오면서 김창준이 부사(副使) 김익수에게 말했다. 얼굴이 상기되었고 눈에 눈물까지 고여져 있다. 신라가 이제 살아나는구나. 대감, 애쓰셨습니다.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당의 도성 장안성에서 석 달째 머물고 있었던 김창준이다. 성문을 나온 김창준이 소매로 눈물을 닦고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대왕께서 그토록 공을 들이신 덕분이다. 저 돼지 같은 놈의 군사를 빌려 개떼 같은 백제, 고구려를 치는 것이다. 대감, 감개가 무량합니다. 김익수도 눈물을 닦았다. 둘은 신라의 충신이다. 다시 발을 떼면서 김창준이 말을 이었다. 어서 이 소식을 대왕께 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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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8 19:35

[불멸의 백제] (272)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8

꿈틀거리면서 엉켜붙는 미사코의 몸은 뜨거운 문어 같다. 방안에는 미사코의 신음으로 가득 덮여졌다. 한 몸이 되고 난 후부터 미사코는 순하고 겁 많은 양에서 사나운 고양이가 되었다. 신음은 야성의 울부짖음 같았고 계백의 움직임에 맞춰서 대드는 것처럼 잡고 놓지 않는다. 계백도 어느덧 미사코의 뜨거운 폭풍 속으로 몸이 빨려 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온몸에서 뻗어 나오는 열기가 미사코의 몸 안으로 뚫고 들어가면서 저절로 탄성이 뱉어졌다. 용암 굴이 터지고 터지다가 미사코가 마침내 온몸이 녹아 없어지는 것처럼 신음하더니 폭풍 속으로 흡수되었다. 그 순간 계백이 온몸을 굳히면서 미사코와 함께 떠올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계백은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미사코의 숨결에 찬 기운을 느끼고는 몸을 비틀어 누웠다. 그리고는 미사코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알몸의 미사코는 허물어지듯이 계백의 가슴에 몸을 붙인다. 땀이 배인 몸이 미끈거리고 있다. 그때 미사코가 가쁜 숨을 가누면서 물었다. 주군, 어디로 가십니까? 내가 언젠가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될 것 아니냐? 계백이 미사코의 엉덩이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넌 요부다. 미사코. 부끄럽습니다. 뭐가 부끄럽단 말이냐? 제 몸이 이렇게 뜨거울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나도 너 같은 몸은 처음이다. 좋으셨습니까? 요부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게 칭찬이다. 내가 미사코성에 오래 머물지 못할 터라 미리 이야기해놓을 것이 있다. 계백이 정색한 얼굴로 미사코를 보았다. 내 자식을 낳으면 계백충(忠)이라고 이름을 붙여라. 미사코가 숨을 죽였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여아를 낳는다면 계백진(眞)이다. 알았느냐? 네. 주군. 네가 잘 키우리라고 믿는다. 주군, 본국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미사코가 몸을 붙이며 물었다. 두 눈이 젖어가고 있다. 계백이 다시 미사코의 알몸을 당겨 안았다. 미사코도 두 팔로 계백의 허리를 감는다. 김춘추가 마침내 신라왕이 된 데다가 신라는 위쪽과 좌우가 막힌 독 안에 든 쥐 형국이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김춘추는 결사적으로 당(唐)에 매달려 사생결단을 하는 수밖에 없다. 주군께서도 출진하십니까? 결전의 시기가 오면 가야지. 그것이 언제입니까? 김춘추가 당에 청병을 원하는 사신을 보냈다니 곧 연락이 올 것이다. 당왕(唐王)이 몸도 못 가누는 비만인 데다가 간질병 환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왕이 원병을 보낼까요? 미장이란 요부가 왕비가 되었어. 무후(武后)가 이제는 당(唐)을 장악했다는구나. 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말을 이었다. 무후가 왕비가 되었기 때문에 정국(政局)이 심상치 않게 되었다. 길게 숨을 뱉은 계백이 미사코의 몸을 바로 눕히고는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미사코, 왜에서도 백제계는 더욱 번성해야 된다. 그때 미사코가 두 팔을 뻗어 계백의 목을 감아 안았다. 두 눈이 반짝였다. 네 주군. 계백의 자손이 왜국에서 번성하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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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7 19:21

[불멸의 백제] (271)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7

계백이 미사코 성(城)에 입성했을 때는 오후 유시(6시) 무렵이다. 미리 전령을 보낸 터라 성주 미사코와 중신들이 모두 성 밖까지 나와 있었기 때문에 함께 내성의 청으로 들어섰다. 계백은 계속 동정(東征)을 해왔기 때문에 거성(居城)도 서쪽의 이쓰와(五和) 성에서 4백여리나 떨어진 토요야마성으로 옮긴 것이다. 미사코성은 그 중간 지점이다. 청에 앉은 계백이 앞쪽에 무릎을 꿇고 앉은 미사코에게 물었다. 주민들이 잘 사느냐? 아직 모르겠습니다. 시선을 내린 미사코가 바로 대답을 했지만 얼굴이 붉어졌다. 미사코는 이곳의 전(前) 지배자였던 후쿠토미의 동생이다. 계백이 후쿠토미를 죽이고 나서 미사코를 성주로 임명한 것이다. 그러나 중신(重臣) 사다케를 보좌역으로 옆에 두기는 했다. 계백의 시선이 사다케에게 옮겨졌다. 사다케, 여기 군사는 얼마나 모을 수 있느냐? 예, 기마군 5천에 보군 1만입니다. 사다케가 바로 대답했다. 이곳은 전마(戰馬)의 산지여서 말을 2만필 가깝게 모았습니다. 잘 조련시키면 기마군 1만은 가능합니다. 가구수, 주민수 조사는 끝냈느냐? 예. 어깨를 편 사다케가 힐끗 옆에 앉은 미사코를 보았다. 미사코님이 성주로 부임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산속, 골짜기에 숨어살던 주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전보다 호구수가 2배나 늘었습니다. 허어. 감탄한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잘된 일이다. 그래, 얼마냐? 16만호에 주민이 어린아이 포함하여 1백만 가깝게 됩니다. 허어, 영지에 비교하면 주민이 많은 편이 되지 않았는가? 아닙니다. 후쿠토미 시절에는 땅이 있어도 경작을 안했기 때문에 영지 계산이 안되었습니다. 소신이 바쁘게 계산했지만 이곳 영지가 1백만씩 소출이 가능합니다. 허, 내가 대영주가 되었구나. 주군께선 이미 대영주이십니다. 계백이 웃음띤 얼굴로 미사코를 보았다. 미사코, 네 백성이다. 예, 주군. 너를 믿고 산에서 나왔다니 잘 살게 해줘야 될 것이야. 예, 주군. 미사코의 얼굴은 붉어진 채다. 그날 밤, 계백의 침실 문이 열리더니 미사코가 들어섰다. 자시(12시)가 가까운 시간이어서 내성 안은 조용하다. 방의 불을 켜놓았기 때문에 계백이 미사코에게 물었다. 미사코, 네 자의로 온 것이냐? 네, 주군. 고개를 든 미사코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불빛에 비친 미사코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지만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침상으로 다가온 미사코가 말을 이었다. 주군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도 너를 만나려고 온 것이야. 손을 벌려 맞는 시늉을 하면서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내가 없더라도 네가 이곳 중심이 되어라. 주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침상으로 오른 미사코가 계백의 옆으로 파고 들면서 물었다. 주군께서 어디로 가십니까? 계백은 대답하지 않고 옷을 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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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4 19:56

[불멸의 백제] (270)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6

장안성의 왕비궁 안, 똑같은 복도를 돌고 또 돌아서 환관을 세 번이나 바꾸어 마침내 도착한 곳이 무후(武后)의 거처, 안락궁이다. 김창준은 궁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오금이 붙어서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따라가기만 했다. 앞장선 이의부는 여러 번 와본 모양으로 안내역으로 새 환관이 나타나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윽고 문지방 밖에 선 이의부가 궁녀의 안내를 받고 들어가더니 곧 나왔다. 무후께서 기다리시오. 김창준이 숨을 들이켜고 나서 이의부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호사스럽다는 표현보다 정신이 어지럽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붉은 기둥에는 황금 용이 칭칭 감겨있는 조각을 붙였고 천장, 계단 모두 황금이다. 붉은 비단이 사방에 드리웠으며 서 있는 궁녀들은 얼굴에 흰 칠을 했고 입술에 붉은 물을 들여 귀녀(鬼女) 같다. 자욱한 향내는 이곳이 지상(地上) 같지가 않다. 수십 명의 궁녀, 환관이 오갔고 서 있었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낮인데도 사방에 수백 개의 황금색 양초를 켜놓지 않았다면 귀신 세상 같았을 것이다. 이윽고 걸음을 멈춘 이의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기 때문에 김창준이 서둘러 엎드렸다. 마마, 신라 사신을 데려왔습니다. 이의부가 보고하고 나서 만세를 불렀다.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엉겁결에 따라서 외친 김장준이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그 순간 김창준이 숨을 들이켰다. 앞쪽 계단 위에 앉은 무후(武后)와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무후는 흰 얼굴에 눈썹을 진하게 그렸고 입술은 붉은 점을 찍은 것 같다. 붉은 바탕에 황금 용이 자수로 놓여진 용포를 입고 머리에는 금으로 만든 봉황 관을 썼다. 미모다. 그러나 눈길이 얼음송곳처럼 느껴졌다. 그때 비스름한 앞쪽에 엎드린 이의부가 소리쳐 말했다. 마마, 신라 사신이 황금 5천냥을 보낸다고 합니다. 김창준이 숨을 들이켰다. 이곳까지 오느라고 황금 1천3백냥이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2천냥을 만나고 나서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무후에게 5천냥을 주란 말인가? 그때 무후가 입을 열었다. 신라에 대당군(大唐軍)을 보내달란 말이냐? 예, 마마. 김창준이 서둘러 대답했을 때 무후가 지그시 시선을 주면서 물었다. 신라에 금이 많으냐? 예, 많습니다. 마마. 김창준이 얼른 대답했더니 무후의 눈빛이 강해졌다. 내가 당군을 보낼 테니 황금 10만냥을 가져올 수 있느냐? 예, 마마. 백제 땅의 금화를 거두면 10만냥은 될 것입니다. 그럼 내가 곧 당군을 보내도록 하지. 마마, 성은이 망극합니다. 신구도행군도총관으로 소정방을 임명해서 출전시킬 것이다. 마마, 꼭 보은을 하겠습니다. 네가 김춘추 대신으로 대당군이 백제에 닿으면 금화 10만냥을 낸다는 약정서를 써놓도록 해라. 당장 쓰겠습니다. 곧 대당군이 출전할 테니 물러가라. 만세, 만세, 만세! 김창준이 무릎을 꿇고 앉은 채로 만세를 불렀다. 이의부와 함께 왕비전을 나온 김창준이 열에 뜬 얼굴로 물었다. 대감, 대왕께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이의부가 빙그레 웃었다. 무후께서 결정하시면 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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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3 16:37

[불멸의 백제] (269)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5

그날 밤 침상에 누워있던 계백이 방으로 들어서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귀인(貴人) 차림의 여자가 들어서고 있다. 침상에서 상반신을 일으킨 계백이 여자에게 물었다. 누구냐? 우에스기의 소실이었던 오타니라고 합니다. 맑고 높은 목소리였고 위축되지도 않았다. 두 손을 모으고 서서 맑은 눈으로 계백을 응시하고 있다. 거리는 다섯 걸음 정도. 기둥에 붙여 놓은 양초 서너 개의 불꽃이 흔들렸다. 여자가 들어와 공기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여자는 키가 크고 날씬했다. 긴 겉옷을 입었지만 허리를 조여맨 자태가 색정적이다. 이런. 계백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어느덧 소실이 다섯이나 만들어졌는데 그것은 죽거나 쫓아낸 영주의 처첩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아이를 가진 처첩은 함께 죽거나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승자의 몫이 된다. 그리고 여자 측에서도 오갈 데가 없는 터라 원하는 것이다 누가 보냈느냐? 계백이 묻자 여자의 시선이 내려졌다. 예, 중신(重臣) 노무라님이십니다. 노무라가 그냥 들어가라고 하더냐? 주군께서 거부하시면 바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나가서 노무라를 불러와라. 너도 같이 들어오도록. 그러자 여자가 절을 하더니 방을 나갔다. 자시(12시)가 되어가고 있어서 거성(居城)인 토요야마 내궁 안은 깊은 정적에 덮여 있다. 계백은 이쓰와(五和) 거성에서 바다와 가까운 이곳 토요야마 성으로 거성을 옮긴 것이다. 그때 노무라와 함께 여자가 들어와 허리를 굽혔다. 주군, 부르셨습니까? 너는 어떤 기준으로 여자를 내 침소에 넣는 것이냐? 계백이 질책하듯 물었지만 노무라는 머리를 들고 똑바로 시선을 주었다. 우에스기를 멸망시킨 후로 한번도 우에스기 내궁의 여자들을 위무하지 않으셨습니다. 뭐라고? 위무를 시켜? 계백이 노무라를 노려보았다. 내가 포로로 잡은 적장의 처첩을 위무시켜야 된단 말이냐? 이젠 주군의 처첩이올시다. 정색한 노무라가 말을 이었다. 주군, 한시바삐 안돈시켜 주시옵소서. 이년은 누구냐? 계백이 눈으로 오타니를 가리켰다. 그러자 노무라가 서둘러 대답했다. 우에스기가 멸망시킨 북쪽 영지에서 포로로 잡혀왔다가 이번에 남게 된 여자입니다. 아비가 우에스기의 손에 죽었다고 합니다.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래서 우에스기의 소실이 되었다가 이번에는 나한테 넘겨졌다는 말인가? 예, 주군. 본인도 주군의 소실이 되겠다고 합니다. 계백이 고개를 돌려 오타니를 보았다. 이유가 뭐냐? 예, 자식을 낳아서 의지하고 살고 싶습니다. 오타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주군의 자식이라면 아무도 무시하기 못하겠지요. 강한 자식을 낳겠습니다. 숨을 들이킨 계백이 노무라를 보았다. 노무라도 놀랐는지 고개를 돌려 계백의 시선을 받지 않는다. 그때 계백이 오타니에게 말했다. 잘 알았다. 내궁에서 대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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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2 19:46

[불멸의 백제] (268)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4

잘 왔다.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연자춘을 보았다. 연자춘은 9품 고덕(固德) 벼슬로 칠봉산성에서부터 계백의 휘하로 종사하다가 사비도성에 남았던 장수다. 연자춘이 청에 엎드려 계백에게 말했다. 달솔, 다시 뵙게 되어 꿈만 같습니다. 연자춘은 42세, 계백보다 연상이었지만 심복으로 따르던 부하다. 이곳은 계백의 거성이 되어있는 토요야마성의 청 안이다. 연자춘이 말을 이었다. 아스카 왕궁에서 이곳까지 1천여 리 길입니다. 달솔의 영지가 8백여 리나 되었습니다. 모두 백제방의 직할령이야. 달솔께서 영주이시지요. 대영주이십니다. 연자춘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연자춘은 의자왕이 계백에게 보낸 사신이다. 의자왕이 계백의 심복이었던 연자춘을 골라 보낸 것이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청 안에는 계백의 중신(重臣) 노무라와 다케다, 그리고 하도리까지 셋만 둘러앉았다. 연자춘이 주위를 물리쳐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달솔,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계백은 고개만 끄덕였고 연자춘이 말을 이었다. 신라왕 김춘추가 당왕 이치에게 사신을 보내 원병을 청하는 한편으로 신라 안의 전(全) 군사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럴 때도 되었지. 김유신을 총사령으로 하고 대장군 품일, 흠춘을 좌우에 나누어 정병 10만을 동원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번 기회에 당(唐)까지 멸망시켜야 될 것이다. 당왕 이치가 무후(武后)가 된 미랑에게 빠져있어서 정사는 미랑이 다 한다고 합니다. 나도 들었어.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이제야말로 백제, 고구려가 중원(中原)을 차지할 때다. 예, 당(唐)도 3대(代)에 끝날 것 같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연자춘이 열기 띤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그래서 대왕께서는 달솔이 정예군을 대기시켜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계백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오히려 본국이 더 가깝다. 백제방에서 본국으로 가려면 내해(內海)를 거쳐 동해로 나가야 되지만 이곳에서는 곧장 동해를 건너면 된다. 그때 다케다가 말했다. 배만 준비된다면 열흘에 본국에 닿을 수 있습니다. 주군. 고개를 끄덕인 계백이 연자춘을 보았다. 들었느냐? 예, 달솔. 이제 내 영지가 1백50여만 석, 기마군 2만에 보군 3만을 갖추게 되었다. 대왕께 전쟁이 일어나면 바로 달려간다고 말씀드려라. 예, 달솔. 두 손으로 청을 짚은 연자춘의 눈이 더욱 번들거렸다. 물기가 번졌기 때문이다. 그때 계백이 말을 이었다. 수(隋)가 3대 39년 만에 멸망하고 이제 당(唐)이 3대 40년도 안 되어서 멸망하는구나. 이제는 백제의 천하다. 수는 문제(文帝) 양견에 이어서 양제(煬帝) 양광, 양유까지 3대를 거쳤지만 양제가 목메어 죽고 나서 2대째에 멸망한 것이나 같다. 그리고 당이 이연, 이세민에 이어서 당왕(唐王) 이치(李治)가 제위에 올랐지만 제 아비의 첩을 왕후로 두고 비만해서 거동을 못 하는 데다 간질병자다. 왕후 무후(武后)가 권력을 쥐었다니 곧 멸망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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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1 16:35

[불멸의 백제] (267) 14장 당왕(唐王) 이치(李治) 3

당왕 이치는 몸이 비대했을 뿐만 아니라 간질병까지 있었기 때문에 정사(政事)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더구나 여색을 밝혀 닥치는대로 여자를 탐했는데 이틀에 한 명씩 궁에서 여자의 시신이 밖으로 버려졌다. 그것은 무후(武后)가 이치가 상관한 여자를 때려죽여 궁 밖으로 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을 안 궁녀들은 당왕 이치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도망치기 바빴으니 밤이면 여자를 찾아다니는 이치를 궁에서 왕귀(王鬼)라고 불렀다. 이치는 무후를 왕비로 책봉한 후부터 거의 정사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신라 사신이 자주 찾는 것은 이의부, 허경종 등이었다. 그들은 무소의가 왕비가 되도록 공이 컸기 때문에 실력자가 되어 있었다. 전하께선 요즘 대전에 잘 나오시지 않아서 뵙기가 어렵소. 이의부가 웃음 띤 얼굴로 김창준에게 말했다. 김창준은 진골 왕족으로 김춘추의 친척이다. 대감, 방법이 없겠습니까? 김창준은 45세, 지금까지 당에 여섯 번째 오는 셈이어서 장안성의 지리는 물론이고 이의부가 뇌물을 밝힌다는 것까지 안다. 오늘 김창춘은 이의부에게 황금 3백 냥을 가져왔다. 그래서 이의부가 만나준 것이다. 이의부가 눈을 좁혀 뜨고 김창준에게 물었다. 황금이 몇 냥이나 남았소? 가져온 것은 다 떨어졌지만 빌릴 수는 있지요. 옳지, 공대인한테서 빌린다는 말인가? 예, 자주 거래를 해서 신용으로 빌리고 갚습니다. 그렇다면 황금 1천 냥을 가져오시오. 방에 둘 뿐이었지만 이의부가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왕비께 여쭤서 신라의 원병을 보내도록 애쓰리다. 대감, 한시가 급합니다. 김창준이 상기된 얼굴로 이의부를 보았다. 촛불에 비친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당군(唐軍)만 파견해 주시면 대감께 황금 3천 냥을 드리지요. 우선 1천 냥을 가져오도록 하고. 대감 약조를 해 주시지요. 이것 봐요. 항상 웃는 얼굴이었던 이의부가 눈썹을 모으고 혀를 찼다. 이찬, 나하고 한두 번 만났소? 아닙니다, 대감. 지금 세상이 무후(武后)의 세상이 되었소. 무후가 누군지 아시오? 압니다. 잘 모르는 모양인데 새겨들으시오. 무후께선 미랑으로 계실 때부터 돌아가신 선왕의 왕비나 마찬가지였소. 그렇습니다. 선왕(先王)께서 40이 넘으셨을 때 14살이 된 미랑(媚娘)을 보시고 무미(武媚)라는 이름을 짓고 총애를 하셨소. 예에. 천하가 아는 일이었지만 김창준은 처음 듣는 척했다. 신라는 물론 백제, 고구려는 이런 일은 입 밖에 내기도 부끄러워한다. 지금 이의부는 현재의 당왕(唐王) 이치(李治)의 부친 이세민의 애첩이었던 미랑, 즉 무후(武后) 이야기를 하고있다. 이치는 제 부친의 애첩 미랑을 왕비로 삼은 것이다. 그것을 당의 대신 이의부는 자랑삼아서 떠벌리고 있다. 무후의 권력을 과시할 목적인 것이다. 이의부가 어깨를 펴고 말했다. 무후께서 지시하시면 왕께서는 두말하지 않으시오. 그러니 내일 금화 1천 냥을 가져오시오. 예, 대감. 김창준이 두말하지 않고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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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0 18:19

[불멸의 백제] (266) 14장 당왕(唐王)이치(李治) 2

계백은 왜국의 대영주가 되어 있습니다. 성충이 말을 이었다. 백제방의 직할령을 늘려가고 있는바, 이것은 왜왕과 백제방간의 합의에 의한 것입니다. 풍이 계백을 신임하는 것 같구나. 왜왕께서도 의지하고 계시지요. 계백은 왜국에 두는 것이 낫다. 의자가 결론을 내었다. 왜국은 수백년간 백제 문물을 받아들여 백제화(百濟化) 되었다. 계백이 직할령을 늘려 그것을 더욱 굳히게 하도록 해라. 백제인은 오래전부터 왜국으로 집단 이주를 해서 제각기 근거지를 넓히고 호족이 되었는데 그것이 왜국의 왕가(王家)와 지방 영주의 뿌리다. 백제인들은 왜인과 동화, 선진문명을 전파하고 무기와 전술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왜국을 점령하게 된 것이다. 지금 왜왕 일가(一家)는 물론이고 왜왕과 함께 왜국을 통치하는 섭정 소가 이루카도 백제계이며 담로인 왜국을 관리하는 백제방에는 왕자 풍이 방주가 되어있다. 왜국은 명실상부한 백제령이다. 그때 내신좌평 목부가 나섰다. 대왕, 당왕이 한달동안이나 신라왕이 보낸 사신을 만나지도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의자가 고개를 들었고 목부가 말을 이었다. 신라왕이 계속해서 걸사표를 보내는 터라 읽기가 싫다는 것 입니다. 하긴 제 애비의 애첩을 왕비로 들이느라 머리털이 빠졌을테니까. 의자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여색(女色)을 끊임없이 밝히는구나. 의자가 용상에 등을 붙였다. 신라여왕 김승만(金勝曼)은 재위 8년만인 작년에 죽고 마침내 김춘추가 신라왕위에 올랐다. 김춘추는 이제 신라의 29대 왕이 된 것이다. 목부의 말이 이어졌다. 대왕, 김춘추는 군사만 파병해주면 백제는 모두 당의 직할령으로 내놓고 신라는 신라국으로 남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으음. 신음을 뱉은 의자가 백관들을 둘러보았다. 들어라. 예. 1백여명의 대신들이 일제히 대답했을때 의자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지금 신라는 백제에게 영토의 절반 이상을 빼앗기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빠져있다. 의자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된다. 김춘추가 당을 이용하여 끝까지 항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에서 군사를 파병할 여력이 없습니다. 대신 하나가 말했을때 의자가 머리를 저었다. 너희들은 김춘추를 가볍게 보고 있다. 대륙 동쪽의 3국(國)중에서 김춘추만한 인재가 없다. 모두 숨을 죽였다. 김춘추를 칭찬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백제 조정에서 이런 말이 나온적은 없다. 오랑캐인 당(唐)에 붙어서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지탱하고 있는 소국(小國), 김춘추가 바로 신라다. 김춘추는 고구려, 백제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대야성을 백제에게 함락당하고 성주인 사위 김품석과 딸이 살해당했으며 42개의 성을 빼앗겼다.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을 받아 영토가 반토막이 되었으며 내란이 일어나 상대등 비담 일당과 전쟁을 치뤄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신라가 명운을 유지해 온 것은 오직 김춘추의 공이다. 김춘추는 적국(敵國)인 고구려에 단신으로 들어가 연개소문을 만나 백제를 함께 공격하자는 제안을 했다가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나왔다. 왜국에 밀항해서 왜왕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가 백제방의 호의로 풀려 나오기도 했다. 당으로 가는 중에 해상에서 백제 수군에게 잡혀 도성으로 끌려왔다가 다시 풀려난 인물이다. 그때 의자의 말이 이어졌다. 김춘추는 영웅이다. 적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청안에 한동안 정적이 덮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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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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