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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사람] 이석연 법제처장 전북대 특강

"우리 사회 모든 현안은 헌법정신에 입각, 보편의 원칙과 적법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결돼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 등 편가르기식 이념 논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이석연 법제처장(55)은 지난 5일 '미래는 도전하는 자의 몫이다'를 주제로 한 전북대 특강에서 유년 및 대학시절, 그리고 행정고시·사법시험 합격에서 변호사·경실련 사무총장·법제처장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인생관을 담담하게 소개하면서 '소신의 일관성'을 강조했다.이처장은 "진보적인 이미지로 비춰지다 현 정부에 들어오면서 보수주의자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이는 관심밖이다"면서 "사회적 약자 배려에 초점을 맞춘 기본권존중과 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시장경제 등 헌법정신에 입각, 소신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옳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비록 단기적으로 비판을 받더라도 실행하겠다"고 밝힌 이처장은 법제처장으로서 늘'이법위인(以法爲人·법으로써 사람을 위한다)'의 정신을 새기고 있다고 설명했다.그는 "법은 사회적 약자의 눈물과 한숨을 담아내야 한다"면서 "법이 국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한다면 마땅히 그 법을 고쳐야 하고, 법령 개폐작업에 이념이 개입될 소지는 없다"고 주장했다.정읍 출신으로 전북대 법학과(74학번)를 졸업한 이처장은 이날 학생들에게 독서와 논리적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주문했다.그는 "지금도 바쁜 시간을 쪼개 일주일에 3권의 책을 읽고 있다"면서"책을 많이 읽고 논리적 글쓰기를 습관화 한다면 모든 면에서 자신의 소신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이처장은 또 "초등학교때부터 거르지 않은 내 일기는 '역사와 기적은 창조되는 것이다'를 제목으로 했다"면서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변화와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사회일반
  • 김종표
  • 2009.06.08 23:02

[사람] 원로배우 도금봉씨 별세

원로배우 도금봉(본명 정옥순) 씨가 지난 3일 서울 건국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고인은 지난 3일 타계했으나 '세상에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별세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1930년 인천 태생으로 악극단 '창공’에서 활동하다가 조긍하 감독에게 발탁돼 1957년 조 감독의 영화 '황진이’의 주연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이 영화에서 관능미 넘치는 연기로 주목을 받은 뒤 그는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악녀 역할로도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며 1960-1970년대에는 주연보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조연으로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1963년 제2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새댁’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1972년 '작은꿈이 꽃필 때’와 1974년 '토지’로 각각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이밖에 '유관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총 5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전당포 노파 역할로 출연한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1997)를 끝으로 연기 활동을중단했다.한동안 서울 삼청동에서 복집을 운영하다가 말년은 복지시설에서 보냈다.6일 오전 발인에는 유족과 친지, 지인 등만 참가했으며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유언에 따라 영정 사진까지 종이로 가릴 정도로 장례 절차는 최대한 외부에 소문이 나지 않게 진행됐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이날 벽제 승화원에서 화장된 고인의 유골은 낮 12시 30분께 서울 흑석동 성당의 납골시설인 '평화의쉼터’로 옮겨졌다.이어 가족과 친지, 천주교 성직자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여분간 천주교 의식에 따른 안치식을 거쳐 납골시설에 안치됐다.고인의 아들은 "가볍게 산책을 하실 정도로 건강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열흘전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시다 돌아가셨다"며 "알리지 말고 조용히 (장례를) 치르라는 고인의 뜻을 최대한 따랐다"고 말했다.

  • 방송·연예
  • 연합
  • 2009.06.08 23:02

[일과 사람] 하천지킴이 양성학교 강좌 충남대 정관수 교수

"하천은 살아있는 생물이고 연속체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도 몸의 말단인 발톱이나 머리카락만 뽑아도 아프다고 느끼는 반응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하천 역시 어느 한 곳에서 발생하는 문제만으로도 온 하천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까지 알고 유역에 대한 사업을 펼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시민행동21과 전북대학교 부설 생물다양성 연구소·전북환경운동연합이 주관하고 전주생태하천협의회가 주최하는 '2009 하천지킴이 양성학교'의 다섯 번째 강사로 나선 정관수 충남대 교수(토목공학과)는 하천 지킴이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하천의 근원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4일 오후 7시부터 전북대 자연대 2호관에서 열린 강좌에서 정 교수는 '물 환경정책과 건강한 물순환 구조의 이해'라는 주제로 열정적인 강의를 진행했다.정 교수는 "지구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하천의 발생부터 모든 매커니즘에 대해 파악한 뒤 하천 운동을 펼친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참여자들이 하천을 지켜나가는 데 큰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하천과 관련해 가장 많이 노출된 문제가 홍수와 가뭄에 대한 대비"라고 지적한 정 교수는 특히 전북의 대표적인 하천 복원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전주천도 홍수와 가뭄에 취약한 문제점을 안고 있어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지구의 탄생부터 함께 한 하천의 역사와 하천의 지형학적 이해·하천의 공학 개론 등 지식 기반을 갖춘다면 더 적극적인 하천 운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 그는 전주의 하천 복원사업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다는 지적도 덧붙였다."전주천과 삼천을 직접 살펴보니 건천화(乾川化) 문제가 알려진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 같아 놀랐습니다. 가뭄에 대한 처방을 내리고 그에 대한 치료 과정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앞서 4대강 살리기 같은 하천 정책도 중장기적인 해석이 기반이 돼야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정 교수는 이날 참석자들에게 앞으로 하천 지킴이로서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데 힘써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하천지킴이 양성학교의 다음 강의는 오는 8일 '하천환경의 이해'를 주제로 박종영 전북대 생물과학부 교수가 맡는다.

  • 환경
  • 백세리
  • 2009.06.05 23:02

[일과 사람] 개관 7주년 맞은 전주역사박물관 이동희 관장

"참 희한합니다. 행사만 하려면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 많이 하는데, 하늘이 무슨 조화를 부리는지 살짝 비켜가요. 행사 진행중에 오든가, 마치면 오든가. 어제도 마음 졸였다가 또 엇갈리겠지 했습니다. 지금 비 안 오죠?"3일 오전 11시 전주역사박물관 개관 7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50)은 며칠 째 잠을 못 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연신 웃었다. 7주년을 맞게 된 기쁨도 크지만, 숙원사업이었던 박물관 앞 진입로 확장사업이 올해 착공될 수 있게 돼 안도감이 컸던 것. 부지 매입 등기이전 절차가 어제 끝나 앓던 이가 빠지게 된 만큼 이제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역사박물관으로 거듭나는 일만 남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스스로 학자로서의 길만을 걸어왔기에 역사박물관장이라는 직함도 부담스러웠을 터. 주변으로부터 정치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는 그는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뜻일 수도 있고, 꾸준히 연구하는 학자다운 면모를 간직한다는 뜻도 있는 것 같아 그냥 묵묵히 걸어왔다고 밝혔다."연구소가 아니면서도 굵직한 연구사업에 주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저의 성향이 반영됐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주력해야 한다는 철학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이관장이 손에 꼽는 의미있는 사업은 많다. 그는 먼저 전문인력과 예산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전주학 연구를 시작, 총서만 해도 10권을 출간하면서 전주의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을 언급했다.7주년을 기념해 열린 정여립과 기축옥사를 주제로 한 학술대회도 의미가 깊지만, 지난해 전라감영에 관한 학술대회와 연구 성과물도 빼놓지 못할 성과.이 관장은 "「경상감영」도 있고 「강원감영」도 출간됐으나, 전주에서만큼은 지역학 연구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관장이라는 직함을 수락한 것도 지역학 연구의 필요성에 기인했던 만큼, 본인 스스로도 지역학 연구에 집중할 생각"이라고도 밝혔다.이어 전주학의 본산, 전주역사박물관'이라는 본래의 정체성이 맞게 학술대회를 지속적으로 열고, 지역내 연구자들을 위해 각종 연구활동을 지원하면서 함께 발전해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이화정
  • 2009.06.04 23:02

[사람] "서민과 직결되는 예산 적극 반영"

김제시의회(의장 경은천)는 3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열고 위원장에 오만수(백산면)의원, 부위원장은 임영택(진봉면)의원을 각각 선출하고 본격적인 추경예산안 심사에 들어갔다.오만수 위원장은 금번 추경예산안 심사와 관련,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경기침체와 중앙정부의 감세정책 등으로 추경예산의 재정여건이 더욱 어려워진 만큼 심혈을 기울여 시민들의 혈세가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내실있고 투명한 예산심사를 펼치겠다"면서 "한정된 재원인 만큼 사업의 타당성 및 투자의 합리성, 효율성을 면밀히 비교하여 투자 우선순위를 정하고 지역경제 살리기 및 일자리 창츨 등 서민경제와 직결되는 예산은 적극 반영토록 할 방침이나, 선심성 예산이나 불요불급한 예산은 최대한 배제하고 조정할 계획이다"고 강조했다.금번 추가경정예산안은 당초 4209억900만원 보다 9.7% 증액된 4610억800만원으로, 사회복지분야 146억6200만원, 농림해양수산분야 116억2600만원, 일반공공행정분야 54억1700만원 순으로 편성됐다.오만수 위원장은 백산면 출신 재선의원으로, 2009년도 본 예산 심사시에도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아 남다른 열정과 소신으로 예산의 건전성 확보와 효율적인 예산편성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은바 있다.

  • 김제
  • 최대우
  • 2009.06.04 23:02

[사람] 암투병 서양화가 김치현씨 27점 고창군에 기증

수년째 병마와 사투하고 있는 이순(耳順)의 서양화가가 주옥같은 작품들을 고향에 기증해 화제다.'색채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서양화가 김치현씨(60). 지난 2006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30여년 동안 붓을 놓지 않고 이어온 작품 27점을 고향 고창군에 기증했다. 고창군은 그의 뜻을 받아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엿새동안 고인돌박물관에서 '김치현 작품 헌정 기념 기증전'을 열고 있다. 전시가 시작된 2일에도 박물관 측에 작품 설치를 맡겨둔 채 병원에 입원중인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고 기념식이 열리는 4일에는 고창에 꼭 갈 것"이라고 말했다.그의 이번 기증은 자신을 낳고 길러준 고향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이뤄졌다."고창은 제가 나고 자란 곳이자 예술혼을 키운 육체적·정신적 고향입니다. 이번에 기증한 작품 또한 고향과 연관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고향에서 영감을 받아 화폭에 표현한 작품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작업인 셈이지요."문화의전당 개관 등으로 고향에 전시공간이 많아져 자신의 작품세계를 고향사람들과 공유하고픈 마음도 적지않았다는 그의 기증작품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근본을 잊지 않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 물씬 배어난다. 나물캐는 아낙과 흐드러진 복사꽃 등 고향의 모습이 오방색으로 표현됐고 한지오브제와 전통문양이 접목돼 옛 추억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서정성이 물씬 나는 구상화부터 초현실주의 작품까지 다양하다.조선대 미술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김씨는 지난해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를 끝으로 교단을 떠나 현재는 전북미술대전 초대작가와 전라미술상 운영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전과 단체전 등 그가 참가한 국내외 전시회만도 200차례가 넘을 정도로 의욕적인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고창군은 다음달 개관 예정인 고창군립미술관에 김씨의 작품을 상설 전시할 계획이다.

  • 고창
  • 임용묵
  • 2009.06.04 23:02

[사람] 전북보훈대상 9일 오후 3시 시상식

<< 전북일보사가 주최하고 전주보훈지청과 익산보훈지청이 후원하는 제35회 전북보훈대상 수상자가 확정됐다. 전북보훈대상 공적심사위원회는 2일 오후 3시 전북일보사 회의실에서 공적심사회의를 열고 상이군경부문 이병우씨 등 8개 부문 8명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9일 오후 3시 전북일보사 7층 회의실에서 열린다. >>▲ 상이군경부문 이병우씨(61)= 1973년 1월27일 51사단 공병대 근무중 감전사고 추락으로 대퇴부 우절단, 요골 및 정중신경마비 고도, 전신화상을 입고 치료후 의병제대해 상이1급 국가유공자가 됐다. 좌절을 딛고 농업에 정진해 1981년 장수군 번암면 4H연합회장으로 활동했으며 사회복지법인 장수원에서 이사로 12년 이상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전주생명의 전화에서 10년동안 상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상이군경회 장수군지회장을 맡고 있다.▲ 유족부문 곽막동씨(84) = 1985년 10월21일 차남이 DMZ 매복작전 도중 동료가 밟은 대인지뢰 파편에 맞아 숨지며 국가유공자 유족이 됐다. 1987년 진흥택시를 인수해 2000년까지 정직 봉사정신으로 운영하며 자립에 성공했다. 자신의 땅을 순창 복흥면 보건소 신축부지로 희사하고, 본인 소유의 산에 무인 TVR을 설치할 수 있도록 협조해 순창지역 난시청 해소에 이바지 했다. 1994년부터 15년 동안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순창군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미망인부문 남덕순씨(62) = 1990년 11월 육군 일등상사로 근무하던 남편(고 김기승 상사)을 불의의 사고로 잃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남편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미망인으로서 시부모님을 극진히 봉양하며 4남매를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시켰다. 2004년부터 전몰군경미망인회 정읍시지회장을 맡아 회원들의 고충 해결에 힘써왔다. 또한 새마을 부녀회장 등을 역임하며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훈사랑을 이웃사랑으로 실천해 왔다.▲ 중상이자 배우자부문 채덕자씨(53) = 1970년 9월 월남에 파병된 남편(강태철씨)이 귀국후 고엽제 후유증으로 전상군경 판정을 받았다. 남편의 병세가 악화되자 병수발에 혼신을 기울여왔으며, 두 다리를 절단한 남편을 24시간 헌신적 사랑으로 보살피고 있다. 어려운 가정 여건속에서도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전상군경들에게 남다른 관심을 갖고 각종 봉사활동에 부부가 함께 참여해 이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무공수훈부문 김창호씨(66) = 1967년 10월 육군 소위로 임관, 1968년 맹호사단 기갑연대 소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해 혁혁한 공훈을 세우며 인헌·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1972년 귀국후 소속부대에 남아 1985년 5월 35사단 무주대대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젊음을 바쳐 국토방위에 헌신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 18년여 동안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전주시회장직을 맡아 회원 복리증진에 힘써왔으며 지난달 전북지부장에 임명됐다.▲ 참전부문 박용배씨(78) =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1952년 12월 육군에 입대해 6·25 전쟁에 참전했으며 1958년 11월 중위로 만기제대했다. 제대후 복직해 1992년 2월 교감으로 퇴임하기까지 40여년간 청소년 교육을 위해 헌신했다. 2000년 10월 6·25참전유공자회 전주시지회장으로 임명된 뒤 회원 복리증진 및 지역 봉사활동에 앞장서왔다. 전주시 가련산에 있는 6·25참전 순국학도의용군 현충탑 주변에서 매월 1회 환경정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고엽제부문 이용기씨(66) = 1967년 2월 건설지원단(비둘기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해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 유지보수 및 진입로 확장공사 등을 펼쳤다. 1968년 5월 美 제8전투비행단 군무원으로 취업, 1982년 12월 전국주한미군노조 군산지부 총무부장에 임명된 뒤 미비행단 신규채용시 월남참전유공자 우선 채용을 권유하는 등 생계안정에 노력했다. 1997년 12월 고엽제전우회 군산지회 홍보부장을 맡아 조직 확대 및 회원 친목도모에 앞장섰다.▲ 특별부문 김만성씨(71) =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천도교 전주지구에서 보내온 독립선언서를 전주시내에 살포해 만세운동을 촉발시킨 애국지사 고 김영호 선생의 아들이다. 아버님의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애족 정신을 받들어 공무원이 돼 40여년간 국가와 국민에 봉사했다. 광복회 전북지부 운영위원으로 전북지역 애국선열합동위령제, 현충일, 광복절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등 광복회 발전 및 회원 복지증진을 위해 노력해 왔다.

  • 사회일반
  • 전북일보
  • 2009.06.03 23:02

[일과 사람] (주)휴먼미디어테크 정순곤 대표

"코미디언 심형래씨 말처럼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니까 못하는 것입니다."지긋지긋한 가난을 이겨내고 지역의 소규모 IT업체를 연 매출 10억 원의 주식회사로 이끈 휴먼미디어테크 정순곤 대표(36)가 말문을 열었다.전북일보와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가 공동 주최하는 시민경제아카데미 제7강 '지역 경제 숨쉬기-IT산업'이라는 주제로 2일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5층 회의실에서 열린 강연에서 정 대표는 "지역을 기반으로 일하고, 지역 경제 발전과 더불어 회사를 키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이어 자원이 없는 전라북도에 필요한 '무공해 산업'인 IT기업은 아직까지 도내 경제의 0.2%대에 머물고 있는 현실을 꼬집으며 "지역 발전을 위한 바탕으로 도내 대학 수준을 높이고, 기업과 연계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녹록치않은 현실 속에서 군 제대 후 음성정보처리기술(음성으로 기계를 작동시키는 기술)을 연구하는 벤처 기업에 입사한 뒤 5년 만에 CEO가 되기까지는 처절하게 성실했던 그의 집념이 정답이었다."저는 가진 것도 없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었어요. 게다가 컴퓨터 전공자들만 가득했는데 저는 통계학을 전공한 비주류였죠.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어요. 벼랑 끝에 선 현실과 성실함이라는 무기가 전부였기 때문에 말보다는 실력으로 보여주는 방법 뿐이었습니다."그는 CEO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 자유 의지로 한 단계 앞서 생각하면 더 높이 갈 수 있다는 '10단 가기'를 성공하는 방법으로 꼽았다. 또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실력을 쌓는 '빈그릇 채우기'를 제시했다.0.1%의 차이가 100%를 좌우한다고 믿는 그는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0.1%는 99.9%와 같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정 대표는 "저는 경영자입니다. 이윤만 챙기려는 장사꾼도 아니고, 구성원들의 젊음을 빼먹는 악덕업자도 아니며, 개인 배당만 생각하는 사주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전문 경영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하는 일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밝혔다.시민경제아카데미의 8강(마지막 강의)은 4일 '가정경제 불씨 찾기'라는 주제로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가 맡는다.

  • 사회일반
  • 백세리
  • 2009.06.03 23:02

[사람] 도지정 무형문화재 이기동 옹 별세

먹고 살기 힘든 시절, 기술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부채 만드는 일이었다. 평생을 합죽선을 만들며 살아온 전라북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 죽우(竹雨) 이기동씨가 1일 오전 7시 17분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1930년 전남 장성군 북이면에서 태어난 이씨는 열한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함께 전주로 옮겨왔다. 열일곱살에 부채를 잡기 시작해 은근하면서도 질긴 작업의 과정이 싫어 여러번 도망치기도 했었지만, 결국 부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됐다. 1991년 명장으로 인정받았으며, 1993년 전라북도지정 무형문화재가 됐다.2000년대 초반에는 중풍이 왔지만, "합죽선은 단순히 더위를 쫓는 도구가 아니라 조상들의 삶의 양태가 배인 문화유산"이라며 전통에 대한 자부심으로 작업을 쉬지 않았다.이씨는 우리나라 유일의 합죽선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첫 개인전은 2007년. 부채를 만들어 온 지 60년 만의 일이었다. 입에 풀칠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합죽선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꼬박 한 달을 매달리는 이씨로서는 전시장에 내놓을 만큼 많은 양의 부채를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2007년에는 전주시에 자신의 작품을 기증했으며, 같은 해 전주시민의장을 수상하기도 했다.최근까지도 부채 만드는 일을 손에서 놓치는 았았던 이씨는 자신의 뒤를 잇고 있는 아들 신입씨와 사위 한경치씨에게 "부채를 버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빈소는 전주 모악장례문화원. 발인은 4일 오전 10시며, 장지는 진안군 동향면 선영이다. 063) 285-3773.

  • 사회일반
  • 도휘정
  • 2009.06.02 23:02

[일과 사람] 하천지킴이 양성학교 강의 전주의제21 신진철씨

"편리성을 추구하다 보니 도시화에 묻혀 하천은 어느 새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사람은 또 물길을 닮는다'는 말처럼 이미 변해버린 하천을 돌이키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후손에게 어떤 삶을 물려줄 수 있을지 미래를 고민하게 하는 근거입니다."시민행동21과 전북대학교부설 생물다양성 연구소·전북환경운동연합이 주관하고 전주생태하천협의회가 주최하는 '2009 하천지킴이 양성학교' 강단에 선 전주의제21 신진철 사무국장은 "우리에게 하천은 이미 오래전부터 누군가의 추억과 역사 그리고 삶을 함께 담고 있는 존재"라며 환경적 측면과 더불어 보존 가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전북대 자연대 2호관 강의실에서 1일 오후 7시부터 진행된 이번 강좌는 전주천 자연형하천조성공사 과정과 성과에 대한 내용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됐다."도시를 유기체에 비유하면 전주천과 삼천의 하천 조성사업을 시작으로 만경강·아중천 생태하천 사업, 덕진보 철거, 건산천 조성과 노송천 복원까지 모두 천년 전주의 혈맥을 잇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최근 하천 관련 정책은 이렇게 도심의 생태축인 하천생태를 복원하고,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해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며 역사문화 복원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연계돼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70년대의 도시화 정책에 따라 도심을 따라 흐르는 하천은 수질 악화·생태계 파괴·자정능력 상실·건천(乾川)화 됐으며, 하천 둔치를 도로나 주차장으로 이용하는 등 급격한 변화에 따른 문제점이 곳곳에서 노출됐다.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환경의식 성장과 더불어 하천 생태 복원·도심 친수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자연형 하천 조성 사업이 급물살을 탔다. 신 사무국장은 이런 과정들이 자연스레 10년 간의 하천 복원 사업으로 이어져 오늘 날의 '거룩한' 성과를 냈다고 덧붙였다.무엇보다 이 과정에서는 여러 시민단체들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2000년 8월 시작한 전주천 자연형하천조성 민관공동협의회를 필두로 노송천 복원 민관협의회·전주 생태하천협의회·전주천 갯버들시집보내기·전주천 아지트 만들기 등 도내 많은 NGO 단체들이 만들어 낸 결과라 더욱 의미있다는 것. 더욱이 지금도 하천과 더불어 사는 전북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신 사무국장은 "이 자리에서 하천지킴이 양성 교육 과정에 참여한 지킴이들도 듣는 데서 끝나지 말고 자원봉사를 비롯해 지속적인 정화 활동을 벌이고, 나아가 교육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 지역의 하천을 어떻게 만들고 지킬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 환경
  • 백세리
  • 2009.06.0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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