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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예술인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지난 2월 5일 전북지역 문화예술교육계 박00 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 이후 50여개의 여성단체가 모여 열었던 기자회견의 회견문에는 박교수의 공판 과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2년전 2018년 3월 지역 방송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박교수의 성추행은 2018년 9월 10일에 사건이 접수되었고 2019년 4월 15일에 첫 공판이 시작되었다. 무려 7개월을 기다린 공판의 시작이었다. 네 번의 공판 끝에 2019년 8월 12일. 드디어 선고기일이 잡혔다. 그러나 피고인은 또 다른 변호인을 추가로 선임하였고 세 번의 공판을 지나 바로 오늘 2020년 2월 5일, 사건접수 514일 만에 전북지역 문화예술교육계 박OO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유죄가 선고 되었다.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한번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의 행실을 운운하며 억울함과 분노로 일관한 가해자의 태도를 비춰보았을 때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의 유죄선고는 가르침을 주는 판결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그저 재판의 결과만을 기다리던 피해학생들의 긴 시간의 고통들이 이 판결로 보상될 수 있을까? 그 자리에 피해자들과 함께 있던 나는 판결문을 듣는 내내 울분과 눈물을 참아야 했다. 처음 방송을 통해 자신의 피해사실을 용기 있게 고발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박교수의 제자들이었다. 그 아픔에 연대의 뜻을 밝힌 몇몇의 선배들은 지지문과 성명서 발표, 서명 등으로 박교수와 학교에 사과를 요구했고 이를 통해 총장의 사과와 총학생회의 움직임 등 조금의 변화가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얼마못가 학교의 입장은 달라졌다. 1심판결을 기준으로 징계 수위를 결정하겠다며 자체 조사위를 꾸리지 않은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게 보장되어야 할 안전하고 평등한 교육환경 조성에 대하여, 이를 침범한 행위자에 대한 처벌과 재발방지에 대해 학교는 친절한 방관자로 일관한 것이다. 재작년 언젠가 피해학생을 돕던 졸업생이 내게 고민을 토로했었다. 용기 냈던 사람들이 좌절하고 있다. 당연히 해야 되는 말을 하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이러다가 우리만 다치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이 무력감이 무섭다 학교는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학생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교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 원초적 질문이 우습게 들리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인가? 작년에 발제자로 참여한 토론회에서 이런 질의를 받았다. 성폭력에 취약한 예비 예술인들을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대답했다. 그들이 마땅히 싸워야 할 것들에 목소리 내어본 경험, 그리고 그것에 대해 사과 받고 보상 받아본 경험은 정말로 소중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에서는 언제나 실수와 오해, 잘못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성찰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잘못에 사과하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나는 예비예술인들이 학교에서 그 건강한 과정을 배우고 익히기를 소망한다. 누구도 패배감과 무력감에 갇혀 자신을 수동적인 도구로 인식하는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자신의 예술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발화해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배우기를.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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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09 16:08

2020년 전북의 청년작가들 ①

김성수 조각가 바야흐로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의 미래가 현실이 되는 시점이 도래했다. 지금 현재 30대 중후반을 살아가는 어른이들은 어렸을 적 이 애니메이션을 시청했을 때 2020년이 다가오지 않을 것 같은 아주 머나먼 미래로 느꼈을 것이다. 비록 현실은 만화처럼 비행선을 타고 외계로봇과 싸우기 위해 우주를 날아다니거나 캡슐로 된 알약으로 식량을 대체하는 일상을 보내진 않지만, 어느새 30대가 되어버린 나는 외계로봇 대신 매일 보이지 않는 현실의 불안함과 싸우기 위해 하루를 버텨내고 있으며 간편한 인스턴트푸드로 공허한 마음속 허기를 채우곤 한다. 위에 언급한 애니메이션은 프랑스 칸 필름마켓 TV 시리즈 부문에서 만화 강국인 일본의 작품을 제치고 최우수 작품상을 받을 만큼 완성도 높은 수작이라는 평단의 평가를 받았고 프랑스와 일본에 수출되었다. 무엇보다 그 당시 KBS에서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역량 있는 한국의 제작자들을 한데 모아 만든 국가적 지원을 받은 첫 애니메이션이었다. 이후 꾸준한 지원과 척박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규모를 키우는 인식전환의 계기가 있었더라면 더 큰 발전이 있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을 정도로 국산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문화 예술적으로 좋은 창작환경을 만들어 가능성 있는 청년작가들이 싹을 틔우는 토양과 토대를 만드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자생력을 갖자는 의미에서 처음부터 지원 없이 버텨보는 것도 중요한 과정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어진 도내 예술대학의 축소와 순수미술 관련학과의 폐과 과정을 통해 작가의 배출구가 좁아진 현실에서 지역 예술계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한다면 예술의 씨앗인 우리 지역 청년작가들을 어떻게 보듬을 것인가는 문화예술 도시를 지향하는 전주시와 전라북도가 가져가야 할 큰 과제이다. 그 지역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볼 때 중간 청년층의 두꺼운 분포가 건강한 상태를 말해주듯 건강한 싹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산소(문화예술)를 만들어주는 숲(작가군)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의 성장 과정 중에 스스로 자생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자양분(지원)과 가지치기(관심)가 필요하듯이 전주시와 전라북도의 청년작가들을 위한 꾸준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전주에서 매년 공모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동형 갤러리 꽃심과 작가와 직접 매칭하여 진행되는 예술 있는 승강장 조성사업 그리고 전주시, 전라북도, 완주군의 신진, 청년작가들에게 주목한 창작지원 프로그램은 그 좋은 예이다. 더 많은 우리 지역의 청년작가가 참여하고 지원받을 수 있도록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도내의 공공기관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한 창작공간지원과 전시공간지원, 비평가매칭, 도록제작, 작품운송을 포함한 세분화된 지원은 청년작가들에게 더욱 효율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이름은 아이캔으로 영어로 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척박한 국내 애니메이션 환경 속에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분투했던 그 당시 제작자의 각오와 희망으로도 보이는 주인공의 이름은 첫 방영 후 30년이 지난 현재에도 물음표를 지닌 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 지역의 소중한 예술의 씨앗들이 가능성에서 끝나지 않고 비옥한 터전에서 성장하여 풍성한 문화예술의 숲을 이루길 간절히 바라본다. /김성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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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02 15:11

설에 소설 '혼불'을 읽어야 하는 이유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2020이라는 낯선 숫자에 적응하는 사이 설이 코앞이다. KTX 설 예매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명절선물세트가 눈에 띄니 비로소 달력이 넘어간 느낌이다. 함께 윷을 던지며 놀던 사촌들은 대학, 취업, 직장, 결혼, 육아 등의 이유로 명절에도 보기 힘든 얼굴이 되었다. 차례, 성묘, 설빔, 세찬(설에 먹는 음식)도 간편화되고 사라지는 추세다. 대가족에서 4인 가구를 지나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요즘, 농경사회에 기반을 둔 설 본연의 의미보다 연휴의 개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사회구조 변화와 가족 형태 다양화가 반영된 현상이지만, 세시풍속은 상대적으로 희미해지고 있다. 세시풍속을 비롯한 전통문화는 우리에게 여전히 어렵고 낯설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켜온 풍습은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개성이 경쟁력인 시대에 독특한 무늬를 이루며 공유되어 온 우리만의 것은 소중한 자랑거리다. 한글문서 저장 아이콘의 실체를 몰랐던 청소년들이 플로피 디스켓을 사용했던 이전 세대와의 대화를 통해 의미를 알게 되고, 기억이 이어지는 것처럼, 청년들은 전통문화를 배워 다음 세대에게 전해줘야 할 책임이 있다. 비교적 쉽고 간편한 방법이 세시풍속이 담겨 있는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작가 최명희(19471998)의 소설 「혼불」이다. 며칠 전부터 집 안팎을 깨끗하게 치우고, 차례 올릴 준비를 하며, 식구들 설빔도 빠지지 않게 새로 지어야 하니, 이렇게 바쁜 날, 천하 없는 게으름뱅이라도 부지런히 일을 하여 설 준비를 해야 하는 그믐날, 누구라서 잠을 잘 수 있으랴. 그런데도 만약 잠자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눈썹이 하얗게 세어 버린다 했다.(소설 「혼불」 5권 22쪽 중에서) 「혼불」에는 우리 고유의 생활풍속이 생생하다. 섣달그믐날 저녁이면 가족들이 둘러앉아 무사태평을 외치며 무를 베어 먹었다. 껍질과 속 안팎이 모두 희어 티 없이 깨끗한 무처럼 하는 일마다 순탄하고, 무 먹은 뱃속같이 속시원하라는 마음이다. 섣달 스무나흘에는 부뚜막 조왕단에 정화수를 올리고, 잘한 일만 고해 달라!며 조왕신에게 빌었다.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이 하늘로 올라가서 그 집안에서 한 해 동안 일어난 좋은 일과 궂은 일,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낱낱이 고하는 날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 달을 맞는 풍경도 보인다. 달이 뜨고 달집이 타오르면 열두 발 상모에 꽃 같은 고깔을 쓴 농악대는 달집을 돌며 신나게 풍물을 울렸다. 아낙들은 달을 향해 소원을 빌고 남자아이는 정초에 날렸던 연을, 여자아이는 저고리에 달린 동정을 뜯어 달집에 던졌다. 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몰랐을 우리네 귀한 풍습으로, 역사의 한 줄이 아니라 살아있는 일상으로 다가온다. 문학은 인문학이고, 인문학은 문화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 삶의 지혜와 통찰력을 얻는다. 덤으로 소중한 가치도 지켜나갈 수 있다. 다가오는 설, 고마운 이들에게 세배 다니는 틈틈이 묵은 책장의 먼지를 털고 책을 꺼내보자. 새해의 나날이 밝고 환하여 하는 일마다 순탄하게 되기를 비는 소박한 마음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설이 꽃봉오리처럼 화사해질 것이다.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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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19 16:02

결국 또 하나의 다양성일 뿐이다

김주은 도르 대표 장애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사회는 장애라는 한 가지 이슈에 대해서 장애인/비장애인 2가지로 분류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분류는 장애를 나아가 장애인을 이해하기에 커다란 장벽이 되고 있다. 본 저자는 장애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 즉 개인의 다양성에 포함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름, 차이 즉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장애라는 테두리 안에 가둬두고 있다. 예를 들어 우울장애, 불안장애, 원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을 나타내는 강박장애를 포함하는 정서행동장애. 빠른 말 속도 때문에 문법적으로 오류가 생기는 속화, 억양 및 매끄러운 대화에 문제가 생기는 말더듬을 포함하는 의사소통장애. 이렇게 많은 장애 중 나는 아무것도 속하지 않았을까? 나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얼마나 많은 장애가 있는지 몰라서, 장애에 대한 이슈는 늘 뒤편으로 미뤄두었던 것은 아닌가? 전북 장애인 청년들의 자조모임 어쩌다 청년에서 강의를 할 때 물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장애란 무엇인가요? 그들은 대답했다. 신체가 약한 사람. 남들과 다른 사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불편함이 있는 사람 나는 반문하였다. 신체가 약한 사람들은 모두 장애인인가? 남들과 다른 사람은 모두 장애인인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불편함이 있는 사람은 모두 장애인인가? 그렇다면 그 불편함을 정의하는 것은 누구인가? 불편함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지 않는가? 개인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장애가 아닌 것인가? 이 글은 주장이 아닌, 질문의 글이다. 우리는 장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와 다른 모습이기에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단정 짓진 않았는지. 장애를 몰라서, 내가 불편하지 않아서, 또는 불편함을 숨겨서 장애가 아니었던 것은 아닌지. 혼자서 던져도, 던져도 결론이 나오지 않는 끝없는 질문들을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영위하면서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부부를 뜻하는 딩크족, 취업에 대한 의욕이 전혀 없어 취업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니트족,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여성 애자, 남성 애자, 양성애자와 젠더 퀴어, 트랜스젠더, 간성, 제3의 성 등을 포함하여 다른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성별 등을 지닌 성소수자, 갈수록 늘어나는 우리 사회의 소수들은 외친다. 우리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를 뿐이라고. 장애도 사실 이 정도의 다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소수들은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다수를 이해시키고 인정받아 권리를 찾는 것이 빨랐고, 장애인은 고유의 특성 때문에 목소리를 높여 다수를 이해시키는 것이 늦어졌을 뿐이다. 현재의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 모든 다름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나와 달라서, 소수여서, 나는 경험해 보지 못해서 장애라고 정의했다면 우리는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그들이 가진 다양성을.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장애란 우리의 문제임을. /김주은 도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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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12 15:33

우리에게는 더 다양한 질문이 필요하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새 해 첫날 그녀가 물었다. 올해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어? 그녀가 무심하게 던졌던 이 짧은 질문은 나를 둘러싼 사회의 많은 것들과, 과거와 현재의 나에 대한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올해로 14년째 연극활동을 하고 있다. 배우로 10년 그 후엔 연출로, 처음 연극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연예인이 얼마나 힘든 직업인 줄 아느냐는 (질문을 가장한) 질타였다. 나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게 아니었는데... 5년쯤 지나고 나니 아직도 연극 하니? 라는 냉소어린 비아냥을 받기도 했고 10년쯤 되니요즘은 연극 같은거 해도 벌이가 되느냐?며 끈기를 인정(?)받기도 했다. 예술가를 직업군에 포함시키지 않으려는 우리사회의 인식은 어린 날의 나를 안정된 직장인이라는 기준에 한참 못미치는 객기 넘치는 철부지로 규정했고 그로인해 꽤 긴 시간 나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왜 하필 연기가 하고 싶을까, 내가 가진 재능이 마치 독이라도 된 듯이 무명의 연극배우가 감내할 것은 배고픔이라 믿으며 온갖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도 참고 버티는 것만이 해결책라고 믿고 버티고 또 버텼다. 돌아보면 짠내나고 암울했던 기억들.. 초라해질 대로 초라해진 그때의 나에게 너의 창작과정은 근로로 환산할 수 있으니 너의 배고픔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은 높이 평가 받아야 마땅하며 너의 권리는 반드시 보장받아야 한다고 일러주는 선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또한 그게 어떤 일이든 우리 모두는 그저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괜찮다며 내 손을 잡고 격려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느덧 나는 그런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줄 어른으로, 예술가의 권리에 대한 제도적 변화를 주장할만한 선배로 성장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크고 작은 자리에서 청년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언하고 30대 중반의 여성예술인이자 연출가로서 동시대에 예술의 기능적 요소를 이해하는 창작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제야 이 직업을 선택한 스스로를 인정하고 긍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 나에게 다시 시련 같은 질문이 많아진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계획이냐? 가슴이 턱 하고 막힌다. 예술가로 고군분투 하며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의 흔적이 완벽하게 지워지는 느낌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여자 선배들을 일컬어 독하다고 치부하거나 히스테릭하다고 폄하하는 분위기를 체험했기에 결혼과 출산은 여성예술가로 하여금 완성된 삶의 형태라고 믿게 하기도 했다. 더 큰 사회적 인식의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이다. 그렇게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은 나는 또 한번 이 사회에서 철부지로 평가되는 위기에 놓였다. 그런데 그녀는 결혼이나 출산, 가족관계, 연봉 등 사회적 기준이 아닌 내가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해 질문해주었다. 올해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어? 그것은 나를 다시 살게 하는 질문이다. 나를 더 잘 살게 해줄 질문이다. 무척 사적이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은 질문. 나를 오롯이 창작자의 위치에 놓아두었기에 가능한 질문. 나는 대답한다. 어딘가 불편해서 자꾸만 외면하고 싶었던 이야기, 들여다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야기, 하다보면 잘 했다 싶은 이야기.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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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05 16:08

놀이터는 마을을 담고, 마을을 닮아야 합니다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최근 몇 년 새 아이들의 놀이와 놀 권리, 그리고 놀이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른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책도 나오고 포럼도 열리고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를 듣기도 합니다. 순천시는 놀이터를 시리즈로 만들기도 하고, 전북교육청에서는 놀이강좌를 열어 놀이밥퍼라는 멋진 이름의 놀이 선생님들을 길러내기도 했습니다. 바야흐로 놀이의 시대가 열린 것 같습니다. 놀이터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이 놀 골목이 없어졌다는 뜻이고, 놀이운동이 생겨났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아이들이 잘 놀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놀리려는 어른들의 움직임이 각계각층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몹시 환영할 만 한 일입니다. 어찌 되었건 아이들은 놀아야 하니까요. 우리 전주시에도 아이들의 놀이를 위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야호아이놀이과가 신설되어 전주 아이들의 놀이를 지원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놀이터를 만드는 등 크고 작은 변화로 아이들의 놀이와 공간을 더 놀기 좋게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이 중 제 마음에 쏙 드는 이름의 놀이터가 있으니, 바로 아이 숲입니다. 딱정벌레가 많아서 딱정벌레 숲, 조경단 근처에 있다고 임금님 숲, 소나무가 많은 숲에 있는 떼구르르 솔방울 숲, 도토리가 많은 도토리 골에는 꼬불꼬불 도토리 숲,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띵까띵까 베짱이 숲 등 아이들이 숲에서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조성되었고 계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저는 앞서 소개한 아이 숲의 이름처럼 앞으로도 모든 놀이터가 그 지역을 담아낼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이름 지을 것을 제안합니다. 한옥마을에 있는 놀이터는 한옥을 짓는 목수들을 모셔다가 전통 방식으로 나무를 끼워 맞추고, 기와를 얹는 등 한옥마을의 요소를 가득 담고 있어야 합니다. 물고기가 많이 숨어 있다는 뜻의 어은골에 놀이터가 만들어진다면 쉬리, 꺽지, 모래무지 등 어은교 근처에 많이 사는 물고기들을 디자인해서 놀이터를 만들고 그 이름도 아이들이 마을의 역사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짓는 것입니다. 백제를 지키는 사방신 중 하나였던 거북바위가 있는 금암동에 짓는 놀이터에는 곳곳에 거북이나 거북바위의 모양을 넣고 예쁜 이름을 지어서 아이들이 내가 사는 지역, 내가 노는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자연스레 체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린봉이 왜 기린봉인지, 아중호수의 아중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송천동은 옛날에 어떤 모습이었기에 송천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전주에서는 그 마을의 놀이터에 가면 이런 궁금증이 모두 해결된다면 그 또한 우리 전주가 재미있는 도시, 아이들이 즐거운 도시로 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전주는 전국 최초로 아이들의 놀이와 놀 권리, 더 나은 놀이터를 위한 고민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든 도시입니다. 바꿔 말하면 전주는 전국에서 미래에 가장 많이, 그리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도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전주시 곳곳의 놀이터가 새롭게 단장하거나 생겨날 것입니다. 이때 우리 시민들도 놀이터에 관심을 가지셔서 마을의 역사를 담고, 마을 사람들을 닮은 멋진 놀이터를 만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놀이터에서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성장할 수 있도록 공간과 시간을 허락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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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29 16:31

공간, 공존의 가치를 담다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2019년 12월의 겨울, 도심 속 섬과 같이 항상 조용하던 마을에 오랫만에 왁자지껄한 잔치가 벌어졌다. 낙타 봉우리만큼 커다란 2동의 천막 속에는 삼삼오오 모여든 노인과 아이들로 가득했고, 진옥아~, 봉규야~ 여기저기서 들리는 노인들의 외침은 자세히 들어보면 어린시절 편히 부르던 친구들의 이름이었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책임지면서, 사회에 물들면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버지들의 이름. 이날만은 그들의 친구들에 의해 마음껏 불리는 이름. 그렇게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이곳은 팔복오길(팔복5길 41-18). 이미 이곳은 1980년 어느 겨울이 되어 있었다. 2019년 공간의 재탄생(Rebirth of Space) 카멜레존은 소비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였다. 카멜레존이란 특정 공간이 협업재생개방공유 등을 통해 본래 가지고 있던 하나의 공유 기능을 넘어서 새로운 정체성의 공간으로 변신하는 트렌드를 말한다(출처 : 트렌드코리아2020, 미래의 창, 김난도 외). 즉, 팔복 카멜레온이라는 프로젝트 명으로 시작된 에보미디어레지던시의 문화복합공간 팔복오길은 전주 공업지역 내 오래된 가옥을 기반으로 5명의 작가가 협업하고, 예술을 도구로 재생하여, 일반인에게 개방 및 공유한 동네 가옥형 갤러리 공간이다. 디자인에보가 진행중인 공간재생 2차 프로젝트명이기도 하다. 레트로(Retro) 풍의 박세진(Ogilee, briquette 외)의 작품에서부터 뉴트로(Netro) 풍의 김현정(Not in my house series), 이현지(팔복동 방 series), 카하수완 푸총(Room X, Y, Z series) , 장지연(Icecream series)의 작품까지 집을 매개체로 한 다양한 실험예술을 지난 1년동안 무수히 노력하고 선보였다. 미디어아트(mediaart), 설치예술(Installation)등을 통하여, 그들은 그 시절과 필자의 어린시절을 농담삼아 이야기하며, 더불어 우리네 삶이 이렇게나 고단했었음을 회상한다. 예술은 잘 모르겠지만, 현정이의 작품은 참 아름답고, 행복해보인다라는 보일러 수리공 출신의 노인. 맞아 아. 우린 항상 연탄은 켜져 있다고 생각했잖아. 부모님이 매번 새벽마다 갈아주시는 것도 다 커서야 알았지라며 눈물을 글썽거리던 50대의 여인. 그땐 우리 아버지 참 무서웠지. 저녁식사 땐 감히 딴 짓을 할 수도 없었어. 그땐 그랬지라며 작품 앞에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계시던 아저씨. 문화, 특히 예술의 장점은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아니 못한다 하더라도 슬픔, 기쁨, 좌절, 행복 등 그것이 품고 있는 작가의 감정 정도는 누구나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팔복오길에 놀러와 그들의 과거와 지금을 돌아보고, 같이 떠들고 웃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린 충분히 성공한 사람이다. 흥에 겨워 하모니카 연주를 하시는 노인,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대며 연신 소주를 들이키는 노인, 태어나 동네잔치는 처음이라며 못먹어본 뷔페 음식을 연신 퍼나르는 동네 꼬마까지 그날은 간만에 그 곳에 왁자지껄한 잔치가 벌어졌다. 멋스러운 풍물패의 꽹과리 소리만큼이나 흥겹고 행복한 그들의 표정 속에 이제껏 느껴왔던 우리의 고단함도 눈 녹듯 사라졌다. 2019년 12월 13일 에보미디어레지던시 팔복오길은 해피엔딩이다. KBS1 네트워크기획 문화산책 [공간, 공존의 가치를 담다]편(2019년 11월 25일)을 통하여 소개되었다.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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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22 16:24

청년이라는 빈집, 박제되는 풍경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올해 가장 인상 깊게 본 킬러콘텐츠가 있다. 한 시사 주간지에서 4개월간 전국의 빈집을 찾아다니며 취재한 <빈집에 울려 퍼지는 지방도시의 신음>이라는 기사다. 전국 지방도시의 공가율을 분석해 빈집이 생겨나는 원인과 지방도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기자들의 정확한 시선에 고개가 끄덕여졌고, 황폐한 빈집 사진과 영상을 마주하고는 은근한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현실 비극 속에서도, 희극을 만들어낸 지방도시를 알고 있다. 오래 방치된 공간에 새로운 콘텐츠를 심어 예술촌을 만들어낸 전북 완주군. 완주군은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삼례읍 양곡창고를 2013년 복합문화공간인 삼례문화예술촌으로 탈바꿈시켰다. 목공소와 미술관, 카페 등 7개의 문화시설이 있는 이곳은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예술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곳 시설 중에서도 단연 킬러콘텐츠 역할을 하는 공간이 있다. 국내 손꼽히는 책 장인 대표자가 운영하는 책공방북아트센터가 그곳이다. 책 만드는 문화와 기록하는 삶의 중요성을 오랫동안 전파하고 있는 대표는 지난달 출간한 『책기계 수집기』로 굵직한 출판상을 수상했고, 이에 앞서 책공방에서 7년간 손발을 맞춘 제자와 함께 만든 『책공방, 삼례의 기록』으로 의미있는 출판평론상을 받았다. 수상뿐 아니라 한 장 한 장 쌓아올린 종이를 압착해 책을 만들 듯 매일매일 눌러 쌓아 올린 그들의 의지와 노력은 지방도시 읍내에서 거대한 우주를 키웠다고 해도 무방할 기록을 만들어왔다. 그렇게 예술촌 탄생과 함께 걸어온 유일한 브랜드인 사제의 미래는 꿋꿋해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제자인 직원이 최근 책공방을 떠나야 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삼례문화예술촌 시설 직원 임면권을 가진 민간수탁기관이 바뀌고, 고용 재계약이 되지 않은 까닭이다. 수탁자의 태도가 비상식적이라는 측과 당연히 임면권을 가져야 할 수탁자가 왜 비난받아야 하냐는 시선이 엇갈리는 중이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군의 입장은 난처하겠지만, 미처 아무것도 막지 못하고 뒷짐만 지고 있는 모양새가 궁색해 보이는 건 나뿐일까. 그러는 사이 우리는 다시 확인한다. 일명 문화게릴라라 불리는, 지역에 전에 없던 새로운 문화와 예술의 지형을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청년들이 정작 지역에서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이런 청년들의 일자리가 어떻게 유지되고 내쳐지는지 똑똑히 지켜보게 하는 초미세현실을. 늙은 정치권이 청년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텅 빈 지방도시가 청년 잡기에 성을 다하지만, 있는 청년들은 다 놓치고 마는 풍자와 아이러니를. 이렇게 외면당한 청년들이 질린 얼굴로 짐을 싸고 다시 도시는 빈집으로 남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도시는 지속적으로 단기계약직 청년이라는 빈집을 지으며 청년들을 텅 빈 얼굴로 만들고 있다. 도시의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청년에게서 나온다, 문화예술에서 나온다, 함부로 사라지지 않게 하는 힘에서 나온다면서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하는 지금 여기 박제된 풍경을 본다. 이 현실 세계는 빈집일까. 빈집의 일각일까.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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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15 17:31

청년은 정치를 혐오하는가?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팀장 시민의 참여와 정당에 의한 대표를 핵심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유권자는 투표율은 1987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이는 참여의 위기를 반증하는 것이자, 입법 과정에서 대표성의 위기를 보여준다. 특히 낮은 투표율을 보여주는 청년들의 탈정치화는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변화의 주역이었던 청년들을 오히려 정치와 사회를 망치고 있는 계층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누군가는 청년의 정치 무관심을 탓하며 청년들은 취업준비, 스펙 쌓기 등 개인의 삶에만 집중하며 사회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청년의 탈정치화에 무책임하며 희망 없는 세대라며 소리 높여 비판하곤 했다. 청년들의 투표율이 5060 기성세대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청년들의 낮은 투표율을 비판의 대상으로 다루기 이전에 왜 낮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지속된 경제위기와 실업난, 주거문제 등으로 무력해진 청년세대가 그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을 포함한 전반적인 정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따라서 투표를 하지 않게 되며, 많은 청년들은 선거를 통해 내 삶이 바뀌는 것을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며 투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치효능감이 적다는 것을 지적했다. 정치 효능감이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보고서(2010)에 따르면, 자신의 정치 행위가 실제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투표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정치 효능감은 가족, 교육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형성되는데 특히 집회와 같은 비투표적인 정치참여형식을 통해서 증대된다고 한다. 실제로 박근혜최순실 사태에서 이화여대 학생들과 광장의 청년, 청소년 행동은 변화를 확산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고, 강력한 정치 참여 동기를 확인하며 제19대 대선에서는 당시 2030 청년층의 투표율이 모두 70% 이상을 기록하며 기성세대의 투표율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정치에 참여하였으나 바뀌지 않았던 고난의 시간을 거친 청년들에게 낮은 투표율로만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외면을 이야기할 수 없다. 오히려 국가의 정치와 민주주의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어있었음을 볼 수 있는 지표로 판단해야 한다. 청년들은 저조한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명확한 대결구도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화를 체험한 기성세대의 투표는 정치적 성향이 모호한 반면, 청년 세대는 새로운 가치를 체득한 명확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청년 감수성 없는 청년 정책이 존재하기 때문에,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은 그에 따른 정치 효능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탄핵 촛불집회 등으로 아예 새로운 사회의 시작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투표를 백날 해도 청년 자신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투표를 하러 몸을 움직이는 것을 오히려 비합리적 행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고함뉴스) 촛불집회와 대선,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높아진 정치효능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면 다시 정치에 무관심한 모습으로 회귀를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청년 세대의 문제는 단순히 청년들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으며, 개인적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적 문제로 발전한다. 따라서 정치는 표를 얻기 위함이 아닌 청년들의 효능감을 높이기 위한 진짜 정책을 내새워야 한다. 청년은 정치를 혐오하지 않는다.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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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08 16:23

2025년이 되면 물고기보다 쓰레기가 많아집니다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이대로 가다가는 2025년이 되면 물고기보다 쓰레기가 더 많아진대요! 지난해 환경의 날 행사에서 마주했던 아이들의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정말 계속 이렇게 가면 우리는 후대에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지 못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세대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생존이 어려운 지구를 물려준 탐욕의 세대로 말이지요. 여러분은 GPGP를 아시나요? Great Pacific Garbage Patch. 북태평양 쓰레기 섬. 1997년 요트대회에 참가한 찰스 무어가 한참을 달리다 마주친 것은 수면 바로 아래에 수없이 떠다니는 플라스틱 조각들이었습니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서 플라스틱이 바다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북태평양 위의 거대한 쓰레기 섬이 처음으로 발견된 순간입니다. 발견 이후에도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는 이 쓰레기 섬의 면적은 약 155만㎢로 우리나라(약 10만㎢) 면적의 15배에 이르고 있어 사실상 이제는 쓰레기 섬이 아니라 쓰레기 대륙이라 불러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1조 8억 개의 플라스틱은 서로 뒤엉켜 떠다니며 바다 생태계를 파괴합니다. 바다거북은 바다를 떠도는 비닐을 해파리인 줄 알고 삼키고, 물고기의 알을 좋아하는 새들은 햇빛에 반짝이는 플라스틱 알갱이를 사냥합니다. 이 밖에도 빨대가 코에 꽂혀 피를 흘리는 바다거북, 비닐에 칭칭 감겨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기물개, 소화 시키지 못한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배를 가득 채운 채 해안가로 떠밀려 온 고래까지 이미 여러분들도 이 섬뜩한 사진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탐욕의 찌꺼기들은 바다를 떠다니며 이렇게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큰 플라스틱이었던 것들도 햇빛과 파도에 마모되고 분쇄되어 미세플라스틱이 됩니다. 이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들은 바다를 떠다니며 주변의 독성물질을 포집하는 역할을 하며 계속해서 환경에 이롭지 않은 방식으로 진화합니다. 그러다 물고기, 조개, 꽃게 등 다양한 바다 생물의 몸으로 들어간 다음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의 몸으로 가서 축적됩니다. 2017년 9월, 학술지 네이처는 2015년에 북태평양에서 잡은 멸치 77%의 몸 안에서 평균 2.3조각의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죠. 작년 여름, 군산 앞바다에서 잡힌 아귀의 배에서 플라스틱 생수병이 통째로 들어있어 충격을 주기도 했으니까요. 인체에 축적된 미세플라스틱은 다양한 염증과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으며, 생식계통을 교란하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또한 크고 작은 인체의 질병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악화시킬 요인으로서 충분하다고도 말합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모양을 바꿔 다시 우리 몸으로 들어와 망가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섬뜩하지 않으신가요? 플라스틱의 역습을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됩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생활 속에서 노력해야 합니다. 조금 번거롭더라도 텀블러를 사용하고, 카페에서 주문할 때 빨대는 괜찮아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 일회용품은 안 주셔도 돼요라고 잊지 않고 말해야 합니다. 요즘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쿨한 지구를 지키는 쿨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기념품으로 많이도 받은 텀블러를 꺼내실 때가 왔습니다!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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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01 16:38

그 아이들에게도 청춘예찬(靑春禮讚)을 허하라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법무부 보호관찰위원 올리버 트위스트. 영국 런던의 빈민가 태생. 당시 산업혁명의 폐해와 불평등한 계층화가 만들어낸 시대의 고아이자 범죄소년. 찰스 디킨즈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는 1838년 발표 이후 세계에서 가장 불운한 고아이자 범죄소년의 아이콘이 된 한 소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다. 범죄소년이란 소년법상 범죄/촉법/우범소년 등으로 나뉘며, 특히 사회적 이슈가 큰 촉법소년의 경우,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로 형벌을 받을 범법행위를 한 사람이나, 형사책임능력이 없어 형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받는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청소년 범죄를 접한다. 당연히 사건의 피해자 보호와 배려는 무엇보다 최우선 과제이다. 다만, 청소년 범죄 처벌수위의 부당함과 법률 개정을 통한 사회적 퇴출 등 강력한 처벌 등을 지나치게 논하기도 한다. 반면 가해 청소년의 실질적 환경 문제에 대해선 살피려 들지 않는다. 마치 당연한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른 것 마냥. 보호관찰 대상자에게 지나칠만큼 엄격한 어느 보호관찰관이 유독 청소년 범죄 대상자들에겐 처벌보다는 사회적인 보살핌이 우선해야 함을 언급한 적이 있다. 즉, 그 아이들 스스로가 가정사, 가난 등의 삶과 환경을 선택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인 환경을 그냥 받아들이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모든 범죄소년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대다수의 가해 청소년들의 환경은 일반 청소년에 비해 불완전한 경우가 많고, 이러한 영향 아래 형성된 그들의 판단능력과 행동 양식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데 어찌하여 보살핌을 제외한 강한 처벌만을 강조하는 것인가. 비록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했고, 그 책임을 위해서라도 처벌함은 마땅하나, 우리가 말하는 소위 강력한 처벌이 그들을 개선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왜 재범률은 생기는 건가. 결국 강력한 처벌도 하나의 방편일 뿐 완전하지는 않다는 걸 보여준다. 범죄 피해자의 피해 구제를 최우선으로 하되, 가해자들에게도 태생적 환경의 부당함과 이를 극복할 방안, 행동 개선을 통한 올바른 삶의 방향 제시 등 스스로 올바른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사회적인 보살핌이 마련된다면 오히려 미래의 또 다른 피해자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되진 않을까. 청소년범죄 대상자들의 보호관찰 사례들을 살펴보면, 보호관찰관이나 위원, 혹은 주변 이들의 따뜻한 관심어린 말과 눈빛 하나에도 큰 힘을 얻고, 꿈을 갖게 되며, 적극적인 변화를 도모한다. 이를 통해 검정고시나 대학에 합격하고, 사회복지사가 되고, 미용사가 되는 등 긍정적 사례들 또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는 일부의 경우 불과 몇 개월만에 그들의 인생이 놀랄만큼 개선되는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보통의 우리는 늘 풍족했기에,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기가 어렵고, 혹여 부족함을 알더라도 개선의 필요성을 알아채기 어렵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늘 부족했기에,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재능조차 살펴볼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만약 아이들이 제대로된 사회에서 보통의 일반적인 위치라도 찾을 수 있다면, 세상은 보다 일반적이고, 가장 평범한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는 스스로 자베르가 될 것인가, 미리엘이 될 것인가. 아이들이 올바른 양심을 실천한 또다른 장발장이 되도록 기꺼이 기다려줄 여유는 없는가. 어쩌면 우리가 강력히 처벌하려는 그 아이들의 무리 속엔 본래의 착한 성품을 가진 또다른 올리버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법무부 보호관찰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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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24 16:26

런던 서점 탐방에서 보고 느낀 것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지난주 전주의 서점 운영자 5명이 런던 서점 탐방을 다녀왔다. 짧은 4일 일정이었지만 16곳의 서점을 함께 돌아봤다. 각자 간 데까지 합치자 25곳이 넘었다. 발에 피물집이 잡힐 정도로 강행군이었지만, 서점 문을 여는 순간 우리 눈빛은 번뜩였다. 많은 서점을 돌아보면서 내가 가장 주의 깊게 관찰한 것은 이곳이 다른 서점과 다르게 갖춘 섬세함은 무엇인가였다. 첫날 눈에 들어온 곳은 헨리포드 북스(Henry Pordes Books)라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서점이었다. 이곳은 헤리포터 초판본이나 헤밍웨이 시집 같은 고서적을 파는 공간과 데이비드 호크니나 윌리엄 터너 같은 화가들의 화집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나누어졌다. 15평 남짓한 평수의 아담한 서점이지만 같은 시간대 일하는 점원이 4명이나 된다는 점이 놀라웠다.(그후 둘러본 많은 런던 서점들이 그랬다.) 점원들은 작은 손수건으로 책등을 닦거나 손님에게 정성껏 책 설명을 해주며 묵묵히 자기 일을 했다. 계산대에는 아기 주먹보다 작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사랑에 관한 시를 모은 오래된 시집이라 했다. 점원은 출판연도와 작가에 대해 꼼꼼히 설명하며 책을 펼쳐 한 편 한 편 시를 읽어 주기 시작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듯 그의 눈빛은 깊었고 목소리는 따뜻했다. 다음 날 사뭇 남다른 기대를 하며 찾아간 서점은 페르세포네 북스(Persephone Books)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작가를 발굴해 책을 출간하거나 잊혀진 여성 작가들의 절판된 책을 재출간하는 출판사 겸 서점으로 모든 책의 표지가 회색이어서 회색 책 서점이란 별칭으로 유명하다. 책을 펼치면 제목에 앞서 알록달록한 패턴의 속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책의 표지는 전부 회색인데 펼치면 모두 다른 패턴의 속표지 갖고 있다는 점이 특별했다. 책 옆에 놓인 책갈피도 속표지와 같은 패턴으로 책 설명이 빽빽이 적혀 있다. 모두 다른 속표지와 전부 다른 책갈피를 갖고 있는 한 권의 세상. 이곳에선 한 권의 책이 단 하나의 방이었고, 한 사람의 작가가 유일한 세계로 우뚝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곳은 템즈강 옆 작은 책 시장에서 발견한 비비북스(BB BOOKS)라는 거리 서점이다. 전주 서점 운영자들은 런던에 오기 전 인터뷰에 응해주는 서점 주인에게 선물할 책 한 권을 가져오기로 했다. 나는 허수경 시인의 유고작 가기 전에 쓰는 글들(난다)를 배낭에 챙겼다. 누구에게 주면 좋을까. 마지막 날 홀로 거리를 걷던 중 나는 이 책을 주고 싶은 단 한 사람을 발견했다. 관처럼 생긴 긴 나무 궤짝에서 수도 없는 책을 꺼내던 사람, 칼바람을 맞으며 긴긴 플라스틱 접이식 책상에 정성껏 책을 진열하던 사람, 예술인문학역사스포츠까지 다양한 책 목록을 갖추고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 낯선 이가 다가와 불쑥 건네는 선물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한국 친구에 대해 얘기해 주던 사람, 템즈강이 흐르고 런던아이가 보이는 근사한 풍경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던 사람. 그래서 다른 서점과 다르게 갖춘 섬세함을 파괴하고 거리의 책 악사가 된 사람. 나는 이처럼 다양한 사람과 정밀한 풍경이 있는 런던 서점 탐방에서 고인 생각의 주름이 한꺼번에 펴지는 것을 느꼈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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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17 20:35

이행기 청년을 위한 사회안전망 제도 도입해야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팀장 기초연금, 아동수당같이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제도가 확충되며 우리 사회의 복지 정책은 지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누구나 복지제도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어떤 복지국가를 지향하느냐는 생각이 모두 다르다. 대표적인 사례로 청년수당을 말할 수 있다. 수당지급에 따른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것과 청년수당이 단기적인 생활비로 변질할 것이라는 우려로 청년수당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치열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청년 세대 문제를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공동체가 정책으로 풀어나가려고 하는 첫 번째 시도이며, 기존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채찍질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실패해도 괜찮아로 지지하고 청년을 응원하는 정책으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 서울시 청년 기본조례를 시작으로 전국 지자체에 제정된 청년 기본조례는 청년들의 다양한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지난 5년 동안 혁신적인 청년 정책 방향의 전환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청년 고용 문제가 10년 이상 지속하였으나 단기적 일자리 제공중심의 고용 정책으로 제대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사회가 인식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높은 빈곤율, 소득 상실, 생애 소득의 감소, 사회적 배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 있어 청년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크게 부족한 상태이다. 현재 대학 진학이 생애 주기 과제로 인식되며 청년 정책은 대학생에 치중되어 있고, 소득만을 기준으론 정의하는 빈곤율은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며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안전망에서 청년들은 배제되고 있다. 누구나 청년 시기를 겪는 만큼 청년은 고정된 정체성이 아닌 유동하는 상태이다. 이에 청년유니온은 청년의 생애 단계의 특성에 기초한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안전망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며, 특히 교육과 시장으로 진입하는 사이를 이행하는 청년들에 대해 구체적인 사회 정책 대상 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대학에 가지 않고 시장에 뛰어든 청년은 경험과 명분으로 무분별하게 오남용 되는 노동시장에 진입하게 되며 결국 교육의 결과가 좋지 않고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시간과 기회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행의 과정에서 경제적 조건 격차에 따라 다른 출발선에서 서게 된 청년, 즉 수저의 색깔에 따라 출발선이 다른 상황 속에서 사회 진입의 위계 구조가 더욱 강화된다. 따라서 공공은 이런 이행의 과정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단순한 단계가 아님을 인식하고, 그 틈새를 이어주고 청년이 마음껏 지나갈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어야 하며, 어떤 다리를 놓을지 청년의 다양한 상태와 요구에 맞춰서 제공해야 한다. 청년 사회안전망에 대한 이론은 최근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의 노동시장정책에 대한 새로운 전략, 새로운 접근법을 이야기하며 개인의 생애과정에 걸친 다양한 상태 간 유동적인 이행 과정에 주목하여 더 좋은 상태로의 이행을 유도하는 이행노동시장 이론 을 참조할 수 있다. 결국, 이행 과정의 위기가 생애 전반의 위기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고 누구나 기본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생활안정을 보장함으로써 출발선에서 공정한 기회를 얻고 이행기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구성원으로 상대적으로 자원이 부족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행기의 청년에 대해 보충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사회안전망 속에서 박탈감 없이 삶을 꾸려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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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10 16:55

“우리는 미세먼지를 잡기 위해 미세먼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저는 지역의 청년들을 모으고, 교육해서 청년들이 스스로 만든 프로그램을 가지고 농산어촌에 있는 전교생 60명 미만의 작은 중학교에 가서 2주 동안 동고동락하며 시골 청소년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꿈사다리학교라는 이름의 멘토링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활동하다 보면 항상 대학생 멘토들에게 듣는 말이 있습니다. 어? 생각해보니까 저 꿈사(다리학교) 와서 비염이 사라졌어요!. 산 좋고, 물 좋고, 공기도 좋은 곳에서 사나흘만 지나도 우리 몸은 자연의 건강함을 받아들여 금방 튼튼한 면역체계를 갖추어 냅니다. 언제 봐도 신기하고 놀라운 우리들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 있는 시골 학교에도 공기청정기가 교실 한쪽에서 열심히 전기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2017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공기청정기 설치 바람은 2018년 겨울과 2019년 봄 사이에 발생했던 심각한 수준의 미세먼지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가정용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이는 학교에도 우리 아이들을 위한 공기청정기 설치 요구로 이어졌습니다. 2019년 전북교육청이 6900여 교실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기 위해 투입된 예산은 34억 원에 이릅니다. 지난 3월 12일에는 교육부총리까지 나서 학교 맞춤형 공기청정기 생산을 검토하기 위해 산자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세먼지의 근본적 해결책이 공기청정기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저는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의무가 있는 우리가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공기청정기를 설치하는 것이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저는 두 가지 때문에 공기청정기로 내려지는 결론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첫 번째, 미세먼지는 화석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발생합니다. 공기청정기 부속의 대부분은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기를 사용해 가동합니다. 공기청정기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모든 과정에서 화석연료의 연소를 수반합니다. 미세먼지를 잡겠다고 미세먼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두 번째는 공기청정기의 실력에 대한 의문입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엌에서 달걀프라이만 해도 바로 알아차리고 작동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저렇게 작은 오염원에도 공기청정을 해야 한다면, 자욱하게 도시 전체를 채워버린 미세먼지를 공기청정기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크고, 많은 공기청정기가 필요하다는 것일까요? 미세먼지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바뀌어야 합니다. 소비를 통한 해결이 아닌 생산적 활동을 통한 해결해야 합니다. 공기정화 식물을 심고 기른다든지, 미세먼지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숲을 조성한다든지 하는 방식 말입니다. 모든 것을 소비로 해결하려는 우리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아이들이 미세먼지의 해결 방안을 공기청정기라고 생각할 것이 저는 매우 우려됩니다. 아이들이 살아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미세먼지 해결방안은 교육입니다. 아이들이 미세먼지 발생이 근원적 문제를 인지하고, 스스로 생산적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이끌어줘야 합니다. 미세먼지로부터 우리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공기청정기와 마스크와 같은 모든 노력들이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우리 어른들과 아이들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다시, 미세먼지가 돌아왔습니다.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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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03 16:41

인간에 의한 자연의 모습 찾기, 자연에 의한 인간의 모습 찾기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누군가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uin der lusten)> 속 에덴동산을 가리켜 오늘날의 정원의 모습이라 한다. 아마도 당시 기독교 즉, 성서 속 에덴동산이 인간의 이상향을 뜻하며,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상향의 아름다움을 통한 심리적인 안정감을 전해주고자 했던 노력이었으리라. 이런 예술적인 노력들은 오늘날 단순한 도구적 관점을 벗어나, 정원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정서적 치유를 위한 본래적 가치를 지닌 인간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Jacope Bonfadio(이탈리아, 역사가)는 자연 그 자체를 신의 영역으로, 인간의 영역은 자연 속 예술에 의해 향상된 공간으로 구분하였다. 이렇듯 자연(Nature)의 대립어로써 그 어원을 같이 하는 예술(Art)을 도구로 탄생한 정원 즉, 인공적인 자연 공간은 과연 인간에게 무엇을 제공하였는가. 영국의 톰 터너(정원학자)는 인간이 그들의 몸(Body), 특별한 목적(Activity), 정신세계 등 세 가지를 위하여 정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즉, 우리 몸을 위한 우리 집 텃밭, 특별한 목적을 위한 수목원, 개인정원 혹은 사찰의 정원을 통해 정신세계의 안정을 취하고자 했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전북 완주 소양에는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향 만큼이나 향긋한 꽃내음이 가득한 공간이 있다. 사시사철 맞는 옷을 한껏 갖추어 입고, 풍성한 다색단풍이 머무는 공간. 동서양의 이질감이 섞여 색다른 느낌을 주고, 모든 이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대신 맡아주는 그 곳. 주인장이 북극성이 잘 보여서 지었다는 두베(Dubhe)라는 이름은 북두칠성의 시작별이자 가장 밝은 별이라는 의미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막의 신기루와 같은 자연 속 또 다른 정원. 초입의 작은 연못과 나무, 수풀 사이로 조용히 흐르는 작은 물소리는 마치 라인강 로렐라이의 노래 만큼이나 매혹적이며, 소리에 취해 돌아갈 길을 잃은 뱃사공만큼이나 스스로를 취하게 한다. 심성까지 부지런한 벚꽃이 부른 초봄의 싱그러움, 화사하지만 냉정한 빛깔의 여름수국의 시원함, 잘익은 곡식만큼이나 다색다양한 가을단풍의 풍요로움, 하얀 목화솜 이불을 덮은 듯한 휴지기의 겨울풍경의 여유로움 등 이 주는 감성적인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 곳을 찾고, 머물게 하는 인간 본연의 심성을 끌어내는 마력을 지닌다. 왜 사람들은 정원을 찾아올까? 그리고 왜 머물길 원할까? 단순히 아름답기 때문일까? 아님 또다른 의미가 존재하는 것일까? 아이(Human)는 부모의 관심(Nature)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러나 아이는 동시에 부모의 관심(Art)이 계속되길 바란다. 이는 부모의 존재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중요한 정서적 안식처가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최근 전북대학교에서는 사회적 농업(치유농업)을 환경보전과 농공의생명융합 연계라는 콘셉트로 접근하여 경관치유농업 시범단지를 구축하려는 모임이 전북대학교 농공의생명융합산업지원센터 구축위원회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위원장 정안성 교수) 자연 혹은 인공자연으로 조성된 경관농업을 활용한 인간의 정신건강 치유법, 대체의학 접근법, 지속가능한 경관치유농업 정책 발굴, 농가소득 창출 방안 등을 마련하여 지역 거점대학과 지자체와의 단계적 협력을 통하여 농생명과학, 공학, 의생명과학 등이 융합된 전북지역 특화형 고부가가치 산업이 발굴되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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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27 16:51

“다만 나”이길 바랐던 설리를 생각하며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설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둘 곳 없는 마음으로 찾아간 그의 SNS에는 복숭아라는 별명처럼 아름답고 환한 사진들이 남아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기념하는 게시물과 Girls Supporting Girls(여자는 여자가 돕는다)라는 문구가 적힌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진도 그곳에 있었다. 설리는 개인 SNS외에 그림 계정을 운영하기도 했다. 인물을 그린 스케치나 믹스커피로 흩뿌린 그림, 돌 위에 꽃과 나무를 새겨넣은 창작물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많았던 그는 단순한 유명인으로 치부되기에는 아까운 창작자이자 예술가였다. 그래서 나는 설리를 좋아했다. 숨길 수 없이 뿜어나오는 발랄한 에너지가 좋았고, 사회 문제에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용기에 놀랐다. 그는 험악한 댓글에 생채기를 입으면서도, 제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여성연예인에게 강요되는 이중잣대를 거부하고, 그저 생각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조롱하고 힐난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대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성숙한 인간이었다. 오히려 그에게 심한 악플을 달았던 또래를 선처하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동갑내기 친구가 전과자가 되는 게 미안해서요. 설리를 생각하면 2016년 어느 날 공항으로 들어서며 그가 품고 있던 책이 떠오른다. 지금껏 한번도 보지 못한 연예인 출국 사진이라 그 모습은 퍽 특별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책이 시집이라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시집을 품에 안은 그 모습에 왠지 모를 동질감과 작은 소용돌이를 느꼈다. 그 시집은 박상수 시인의 <숙녀의 기분>이었다. 설리가 공감하며 읽었을지 모르는 시의 귀퉁이를 접으며, 나는 오랫동안 이 시집을 머리맡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펼쳐보면 뚜렷하게 보이는 말들, 6인실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박혔다. 아무도 없이 나는 이 밤에 안겨 있어요/하늘 옷과 스물네 개의 구슬/그리고/나예요/다만 나인 거죠 설리가 이 세상에 끝까지 살아남아 웃어주길 바란 건 지나친 욕심이었을까. 그의 죽음 이후 댓글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과 악플러를 더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에선 본질은 여혐(여성혐오)에 있다며 이에 관한 보도지침과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이 의견들만큼 중요한 것은 그 삶의 방향이 어떻든 사람을 함부로 검열하지 않는 세상의 태도에 있다. 그 태도가 또다른 자기검열로 전염돼 한 사람의 기질과 개성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의 공포에 있다. 설리를 여성연예인이라는 젠더나 유명인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그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창작자로, 따뜻한 예술가로 지켜봐줬다면 덜 갑갑하고 덜 무례한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다만 나이길 바랐던 설리가 그곳에서 지켜볼 이곳이 계속 두렵다. 왜 우리는 살지 않고 살아남아야 하는가. 설리가 남긴 것들을 책처럼 공부하고 시로 받아들어야 할 이유, 여기 무수히도 많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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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20 18:35

정치 속 청년과 청년 정치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팀장 21대 총선을 앞두고 청년 정치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등장하고 있다. 각 정당별로 청년정치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는가 하면, 언론들은 새로운 정치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청년, 청년 정치라는 말이 관행처럼 사용되고 여전히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는 아이템인 동시에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는 행동이 되고 있지만, 말로만 청년 정치를 외치는 현실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청년 발탁 사례를 성공적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 많다. 청년 비례의원이 청년세대와 소통하는 게 아니라 자기 관심 있는 활동을 주로 했다. 그런 사람들을 세대 대표 경선을 해서 데려와야 하느냐를 두고 당내 이견이 있었다고 말한 3선의 한 국회의원의 발언은 기성세대의 청년을 바라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청년은 새로움, 신선함, 아이디어, 패기, 열정의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으며, 이는 정치권에서도 청년 정치인에 거는 기대가 이러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형성되고 있기에 이러한 역할을 청년 정치인이 수행하지 못한다면 청년답지 못한 정치인으로 취급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지역에서 사는 청년, 대학생, 노동자, 결혼을 앞둔 청년 등 같은 청년이더라도 삶의 조건이 다른데 이들 모두의 요구를 수용하는 정치를 어떻게 청년 정치인들이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년의 정치를 지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청년의 현실이 기성세대에 비해 어려운 것이며, 그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을 대표하는 청년인 정치인이 정치의 현실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 조차도 청년정치라는 말에 가두어 그 이미지에 국한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며 청년의제라고 불리는 몇 가지 사안들에만 주력하게끔 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여전히 청년 정치인을 꿈꾸는 청년에게 도전하라고 유혹하지만 청년 정치가 더욱 울창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외면하고 청년 의제는 청년 정치인의 몫이라며 도외시하고 있는 곳이 지금의 정치권이다. 단순히 생물학적 청년정치 만을 중요시하게 되는 현상이 지속되면 당사자성을 갖추지 못한 채 실제 청년 세대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채 정치를 하고싶다는 목표의식만 확고한 기성정치인과 다를 바 없게 된다. 대한민국의 청년 세대 문제는 단순히 청년들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청년 정치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청년만을 위한 의제를 다루는 것 뿐 아니라 세대 간 문제를 극복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반영하는 정책을 내고 그것이 반영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 있어 50대 남성 중산층 기준으로 만들어져있는 제도에서 벗어나 여성, 청년, 장애인, 성소수자 등등 정치를 하고자 하는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정치에 참여하여 그 시대의 시대성을 반영하여 그들의 삶을 정책화할 수 있는 정치가 필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청년 정치일 것이다. /박혜령 전주시사회혁신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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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13 16:33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소개합니다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2023년에 우리 전라북도에서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모이는 거대한 축제가 열립니다.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도대체 뭐가 어쨌다는 건지, 저와 한 번 함께 알아보실까요? 스카우트 운동은 1907년, 영국에서 약 20여 명의 대원과 베이든포우엘 경이 시작한 청소년운동입니다. 170여 개국, 3천 8백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36만 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조철호 선생에 의해 1922년 10월 5일 항일구국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조선보이스카우트 경성1호단이 대한민국 스카우트운동의 시작입니다. 스카우트는 연령대별로 구분 지어 활동하게 되는데요, 스스로 집을 짓는 비버처럼 씩씩한 유치원 나이의 대원들은 비버스카우트, 새끼 동물들처럼 발랄하고 귀여워서 컵스카우트, 스카우트 활동의 중심이 되는 중학생 나이의 대원들은 스카우트, 모험을 즐기는 고등학생 나이는 벤처스카우트라는 이름으로 구분되어 활동합니다. 스카우트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죠. 2023년 여름 새만금에서 열리는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는 전 세계 170여 개 나라에서 5만여 명의 스카우트 대원과 지도자가 약 2주간 야영하며 서로 문화를 교류하고, 여러 가지 스카우트 활동을 즐기며 하나 되는 거대한 규모의 국제행사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에 강원도에서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훌륭히 치러낸 경험이 있으며, 종주국인 영국(4번)을 제외하면 네덜란드, 캐나다, 미국, 일본과 함께 2번 이상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개최한 다섯 번째 나라가 되었습니다. 제가 스카우트 대장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지역의 청소년들이 서울?수도권을 거치지 않고 곧장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범지구적 활동이기 때문인데요, 이 활동의 심장과도 같은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우리 지역에서 열린다니 꿈같은 일입니다. 앞으로 4년,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잼버리 유치 성공은 한국스카우트중앙본부와 전북연맹, 그리고 여성가족부, 전라북도, 새만금개발청 등 다양한 관계기관과 어떠한 보수나 대가 없이 한국스카우트의 명예를 위해 힘을 보탠 스카우트 대장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이뤄낸 성과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이제 우리는 서로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한국스카우트연맹은 잼버리 전체를 디자인하고, 과정 활동과 야영활동 전반의 운영에 대한 고민에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합니다. 잼버리의 본질은 스카우트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전라북도는 물들어올 때 노 저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잼버리 예상 참가 인원은 5만 명. 잼버리가 끝나면 관광객으로 신분이 전환되는 부안군 인구와 맞먹는 수의 참가자들을 어떻게 하면 우리 지역 각지에 하루라도 더 머무르게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홈스테이든, 커다란 축제든, 숙소마련이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준비하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서로 긴밀히 협조하되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면 2023년에 우리 지역에서 열리는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자리할 것입니다. 의여차(義如次)! 의여차! 의, 여, 차! ※의여차 : 의로운 뜻이 이와 같다는 의미로 외치는 스카우트 환호. /이동훈 코끼리 가는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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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06 16:00

동물친화도시 전주, 동물들이 고통없이 살 권리 위한 첫 걸음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2019년 7월 가장 인간적인 도시 전주를 위한 인권과 동물복지, 돌봄 기능 등이 강화된 전주시의 조직개편안이 새로이 공개되었다. 또한 개편안을 통하여 전국 최초의 동물복지 전담부서인 동물복지과가 신설되었다. 이는 2016년 전주시 생태동물원 마스터플랜을 시작으로 지난 해 수립된 전주시 동물복지 마스터플랜과 동물보호 및 동물복지 조례 제정에 따른 행정적 후속 조치로 선진화된 동물복지행정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 부부는 2016년 전주시 생태동물원 마스터플랜의 보고서를 접하고, 당시 동물원 동물복지 실태와 사각 지대, 향후 대책 등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배우게 되었다. 그런 관심은 2018년 전주시 동물복지 마스터플랜의 외부연구진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2018년부터는 한국동물복지연구소(대표 박정희)의 창립멤버이자 동물을 위한 행동(www.actionforanimals.or.kr)의 회원으로도 함께하고 있다. 2018년 설립된 한국동물복지연구소(KAWI)는 플리커 러프엣지(서점, 전주 서신동)에서 매월 1회 동물과 동물복지를 주제로 다양한 전문가가 주기적인 릴레이 강연을 하는 전주유일의 동물복지포럼단체이다. 지금까지 개고기 식용 반대, 유기동물 입양, 동물과 법, 물고기 복지, 동물구조의 실태와 대책, 고기의 올바른 식용, 한국과 미영국의 동물복지, 늑대와 개의 상관성, 동물원 동물복지, 캣맘 활동 등의 다양한 동물복지 관련 강연으로 일반인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포럼이 단순 지식 전달을 벗어나 좀더 가깝게 다가갈 방법은 없을까? 이에 한국동물복지연구소에서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였다. 기존 동물 의료계에서는 활용빈도가 그나마 있지만, 전문성과 그로 인한 고비용 문제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3D프린팅을 활용한 동물 의수의족 지원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필자가 올해 오픈 예정인 3D프린팅전문 메이커스페이스 플레이하우스(㈜셈스게임즈)의 개발 전문성과 포럼의 전문 지식, 실천 의지가 결합된다면 충분히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한 공공 목적의 유사한 지원 프로그램이 지역 내 전무하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단, 민간의 첫 시도인 만큼 프로그램 운영비 등의 한계로 인하여 불완전한 태생적 신체조건 여부, 사고 등으로 인한 긴급조치의 필요성, 유기동물의 사용 여부, 더 나아가 안락사 위기에 처한 위기 동물 등을 대상으로, 보조기구를 구입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의 반려동물, 기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유를 가진 동물들에게 무상 혹은 유상(일부) 방식의 제한적인 지원을 할 것이다. 동물 선정 과정 또한 한국동물복지포럼 산하 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규정 및 명문화할 것이다. 무엇보다 일반 반려인들이 포럼 내 동물 의수, 의족 등 보조기구를 구매할 경우 해당 수익금은 전액 프로그램 운영비로 되돌려주는 사용자 도네이션 방식을 원칙으로 한다. 본 캠페인이 지속가능한 로컬 도네이션으로 성장하도록 전주시를 비롯한 산학연 관계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 왜 한국에서는 이런 프로그램 운영이 어려울까요?(필자) 한국에서는 동물이 장애가 생기면 안락사를 택하지. 치료는 돈이 드니까. 피터싱어의 말처럼 동물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다면 이런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는 있어.(박정희 교수) /박세진 디자인에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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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29 16:01

조용한 분노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내 십 대와 이십 대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알 수 없는 분노라 말하기엔 이미 많은 걸 알게 된 분노였고, 알아버린 분노라 말하기엔 시작조차 되지 못한 분노였다. 무엇이 나를 화나게 했나? 이 화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마주 보고 견뎌야 하나, 모르는 척 돌려보내야 하나? 잘 모르지만 잘 다스려야 하나, 아니면 어느 날 잘 터뜨려야 하나? 생각에 생각은 허공에 잽을 날리는 것처럼 무모해 보였지만, 매일 힘쓰는 팔에 근육이 붙듯 생각을 거듭할수록 내 내면엔 끝없는 방문이 열렸다. 중학교 1학년,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한밤중 부스스 일어나 어디에 홀린 듯 정신없이 써 내려가던 나는 알고 싶었다. 나를 둘러싼 기울어진 것들에 대해. 둘러싼 기울어진 것들이 가리키는 방향에 대해. 그 방향이 모여 이야기하는 정확한 말들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몰라도 된다는 마음보다 클 때 그것을 향하는 화살촉은 더 뾰족해지고 길어졌다. 곧 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화살은 날았다. 극렬한 불화의 기억을 지나, 한부모 가정이란 딱지 너머, IMF로 타오른 경제적 추락을 향해. 뜻하지 않게 가장이 된 가족에 의지하며 곤궁에 갇힌 집에 구사일생은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 푹푹 빠지는 뻘판 뿐. 개인의 행동에서 부모 공동의 일로, 가족이란 공동체에서 다시 개인이란 개체로, 돌아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삶과 빚에 졌다. 함부로 대결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비겨보려 덤벼들 계제도 아니었다. 꾸역꾸역 살아 천천히 밀어내고 다시 쌓을 수밖에는. 그 속에서 우리는 파라솔 아래 부는 시원한 바람과 살갗에 닿던 파도의 물결, 훈기 돌던 바닥과 온화한 손짓을 잊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두려웠다. 가장 가깝고 친밀했던 공동체가 실패의 기억을 강렬하게 공유하는 집단이 되어 내면의 공포를 간직한다는 것. 나는 그것이 두려웠다. 불행했던 공동체의 기억을 강력한 공포로 새긴 내가 또다시 무엇 하나 나아지지 않은 꽉 찬 도시에 비슷한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는 것. 제도로 묶여야만 막막한 개인의 삶을 구출할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또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내가 나를 밀지 않으면 누가 나를 떠밀고, 떠밀린 내가 나에게서 점점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것. 그때마다 시집을 펼치며 솟은 마음을 가라앉혔던 건 분노한 열네 살의 내가 미리 지시한 방향이었을까. 내가 조금 더 자라, 시에 마음을 열게 된 이유는 누구나 평등하고 공정한 세상 속에 놓이지 않았다는 것을 일찍이 알아채게 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시 속의 화자들은 공동체의 화목을 강요하지도, 계급과 서열을 나누지도, 남녀를 쪼개지도, 다수와 소수를 구분하지도, 기쁨과 슬픔을 남발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자유와 평등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이 시가 내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윤리 같았다. 그것과 다르게, 이제 이미 갖고 태어난 사람들의 돈이나 말 많은 이들이 돌아가며 하는 똑같은 조언은 내 머릿속에서 긍정도 부정도 낳지 못한다. 나는 그것에 더 이상 슬퍼하지도 분노하지 않는 나와 마주한다. 언제부턴가 무력감조차 무력화시킨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드넓은 거리, 성공과 실패라는 단단한 잣대, 희망과 절망이라는 거대한 언어 속 아직 나는 이 세계에 한 번도 적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래서 더 뾰족하고 길어질 날들, 가리키는 곳은 이 태풍 속 어디쯤일까. 감히 질문해도 될까?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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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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