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6 12:51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청춘예찬

열심히 일할수록 불편한 나의 노동

4년전 지금처럼 활동가와 일을 병행하지 않고, 일에 몰두했었다. 지방 중소기업에서의 일이란 여러명 몫을 혼자 해나가는 것이라, 하루의 일과는 8시에 시작해 밤 11시에 퇴근을 해도 업무가 끝나지 않았다. 물론 주말에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일을 시작할 때 마음가짐은 회사에 기여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회사를 위해서 일하고 미진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면 회사와 내가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선의의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 그렇게 믿었다.하지만 2년간의 노력은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회사의 급여는 조금 올랐으나 업무의 강도는 올라간 급여보다 가중되었다. 업무 수행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업무에 소홀해서가 아니라, 혼자하기에는 너무 과중한 업무 탓이었다. 회사에 기여하면 좋은 파트너로서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업주에게 나는 파트너가 아니라 낮은 임금에도 일을 더 시킬 수 있는 수입원에 불과했다. 더 화나는 것은 일인분 이상의 일을 수행하는 나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남이 해야 하는 노동을 빼앗았다. 정당한 대가를 받지도 못하면서 남의 일자리까지 뺏어 왔던 것이 나의 노동이었던 것이다. 나는 노동법 위반에 동조한 것이고, 누군가에게 생계가 될 수 있는 지역의 소중한 일자리도 빼앗은 것이다. 물론 나도 피해를 본 것이지만, 이런 행태를 묵인하면서 또다른 피해자를 만드는데 한 몫 거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그리고 관행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편법 불법 행위들이 묵인되고 있다. 견적서를 부풀리거나 세금을 덜내기 위해 계산서를 고치는 행위는 어느 회사에서나 항상 해오던 일이었고, 연구비의 일부 내역을 속여 횡령하는 행위는 주변에 공공연하게 들리는 이야기다. 갖가지 사고로 안전에 대해 민감한 지금도 여전히 자격증을 대여하여 직원 혼자 여러명 몫의 업무를 하는 것은, 회사의 수익을 위해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 되었다.문제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입을 모아 법이 현장과 맞지 않다고, 법까지 다 지키면서 먹고 살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법은 시민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그런 안전망은 관행이 앞서서 작동되지 않고 있고, 지역의 대부분의 청년들을 법 테두리 밖의 노동자로 만들었다. 불법체류자처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을 하고 있다. 해마다 하는 최저임금 인상안을 보며 지역에서는 법조차 지키지 않는 현실에 최저임금 1만원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일까란 생각을 할때가 많았다. 일자리창출에 목을 매고 있지만 청년은 일자리의 질을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고 일자리의 질은 거창한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 지역에서 최소한 노동자로서 인정을 받는 것, 적어도 법의 테두리에 넣어 달라고요구하고 있는 것이다.직장인으로 하루를 살아가면서, 그래도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고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보람과 잘못된 부분을 방관하며 불평등한 구조에 협조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같이 느끼고 있다. 열심히 일할수록 부끄러워져야 하고, 부끄러움에 무뎌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에서, 퇴사와 니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그나마 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아닐까 싶다. 당신의 판단은 올바르다고 조금 더 용기내자고 힘내자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지역살이에서 적어도 노동법이라는 안정망이 청년들을 지켜냈으면 좋겠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02.05 23:02

격렬한 진군들을 위하여

9년이 지났다. 새해를 맞이하여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는 와중에 아침부터 절망적인 소식을 접하고 그날은 하루종일 술을 마셨다. 21세기에도 진압을 이유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게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엊그제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공동정범을 봤다. 거대한 적을 상정한 다른 다큐와 달리 용산 철거민과 연대 했던 사람들의 균열이 주가 되는 내용이다. 개발과 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미시사라고 해두는게 낫겠다.어쨌거나 경찰 무전기에서 말하듯이 그들은 격렬한 진군들이었고 검찰에 기소될 땐 공동정범이 됐다. 외부에서 봤을 땐 국가폭력이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으나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그들 나름대로 잘잘못을 가르고 있었다.하지만 모두가 상처였던 2009년 1월이었다.근 십 년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비슷한 상처가 만연하다. 강정이 그랬고, 세월호가 그랬다. 어쩌면 한국 현대사는 이런 상처의 관통일지도 모른다. 대추리도 있었고 한진중공업도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지척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한탄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모든 게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살기 위하여!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아닌 그저 살기 위하여 사람들은 투쟁을 했고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다.어쩌면 그 살기 위하여 자체가 숭고함이 아닐까 싶다. 내 뜻대로 태어나지 않았으나 내 뜻대로 살아갈야 할 이유와 권리를 그들은 비명으로 대신했는지도 모른다. 작년에 제주 43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고통이 엄습했다. 그 시대와 세대를 겪어보지 않았던 21세기의 시민도 고통이 스멀스멀 올라왔을 정도인데 그 참혹한 현장을 겪어야 했던 생존자들은 어땠을까. 영화를 완성하고 반성했던 게 다시는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현장과 사건을 함부로 다루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었다. 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들을 밟고 죽였던 현대사를 겪어야 했다. 밀고를 하고 복수를 하고 밟아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이 비극의 현장을 그린다는 게 창작자의 입장에선 고통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원경이 아닌 현미경으로 그들의 상처를 관찰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공동정범의 창작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쉽지 않았을 이야기와 그림을 덤덤하게 그려내가는 이 영화는 쉽게 상처를 봉합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어쩌면 계속해서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망각에 저항하라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생존과 연명을 위해 우리는 노동을 하고 끼니를 때우고 잠을 잔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실행했을 뿐인데 잔인한 폭력앞에 속수무책이다.뻔히 피해자들의 상처가 보임에도 우리는 구원과 용서를 당위라는 단어로 덮어버리려고 한다. 어떻게 백주대낮에 총검에 찔린 광주시민들에게 이제 그만 용서를 하라고 할까. 모든 매체가 실시간으로 보여준 가라앉는 배의 피해자들에게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정범의 후반에서 이충연씨의 눈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절망에 무뎌진 우리에게 연대의 대오와 망각에 저항하는 것. 그리고 진짜 공동정범은 영화 속 그들이 아니라는 것. 오랜만에 관람을 권하는 영화 한편을 봤다.이 글을 쓰는 와중에 곳곳에서 화재 소식이 들려 용산 참사를 다룬 공동정범에 관한 글을 쓰는게 망설여졌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안전에 관한 법률과 제도가 정착되길 바란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01.29 23:02

청년들이 가상화폐 열차에 탑승하는 이유

카페에 커플이 앉아있다. 여자는 이야기를 하고, 남자는 스마트폰을 보며 듣는다. 그래서 오늘 무슨 영화 볼까? 신과 함께 아니면 1987? 스마트폰만 주시하던 남자는 처음 입을 연다. 영화보다 재미있는 게 있는데 그런 걸 왜 봐? 참고로 남자가 보던 것은 가상화폐 시세였고, 그 날은 크리스마스였다.우리는 가상화폐가 과학, 경제, 정치를 넘어 두 연인의 사랑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근래에 들어 북스포즈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문의 역시 가상화폐 관련 도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란! 나는 나름 감동을 하며 화폐의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서 찾으시는 책은요? 비트코인으로 10억 벌기요. 아. 없어요.새로운 기술은 멋지다. 하지만 돈 버는 것은 환상적이다. 가상화폐를 8만 원어치 샀다가 280억 자산가가 된 청년의 이야기에 솔깃하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한 편의 신화가 되어버린 가상화폐는 투자할 여력도 없는 청년들에게도 손짓을 날린다. 이봐 흙수저, 서민을 탈출할 마지막 기회야. 내 몸 하나 눕힐 집은 있어야지?열차는 출발한다. 청년들은 지금의 상황을 떠나고 싶다. 돈이 없다면 빚을 내서라도 이 열차에 탑승한다. 오르락내리락 끊어질 듯 말듯한 인생의 기찻길이 펼쳐진다.오피니언 리더들은 가상화폐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가상화폐는 투기다. 공감한다. 그런데 여기에 꼭 한 가지 조언을 덧붙인다. 노동의 가치를 알아라. 땡! 그것은 가상화폐 성공신화보다도 허황된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그들은 열심히 일한 만큼 경제가 쑥쑥 성장하는 시대를 겪어보았지만, 지금의 청년들에게 그런 시기는 오지 않을 것이다.또한 청년들에게 노동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지 오래다. 청춘의 클라이맥스는 취업 발표이고, 이후로는 계속 하강한다는 것이 노동과 청년이 서로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이유 아닌가.그래도 괜찮다.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면 그만이지. 하지만 직업을 가졌다해서 모든 금전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취업을 하면 묵혀놓은 인생의 다음 숙제가 쏟아진다. 명절이 오면 쏟아지는 질문들 결혼해야지, 집은 언제 살 거야. 월급으로는 답도 안 나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러한 바람들이 모여 가상화폐시장을 비대하게 성장시켰다.가상화폐에 대한 문제는 어떤 식으로 진정될 것이라 믿는다. 규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업계의 전문가들이 속속 등장한다.하지만 더욱 문제는 가상화폐 열풍이 진압된 후에 남을 청년들이지 않을까? 초단위로 큰돈이 오르내리는 경험을 한 청년들에게 일상은 지지부진하고 비생산적인 일로 치부될 것이다. 결국 다른 투기나 도박으로 탈출구를 정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쪽도 기형적이라는 생각에 답답해지는 요즘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01.22 23:02

청년농업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충성 중사 신성원. 이말은 일년전만해도 제가 자주하던 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전직 수색부대 직업군인으로 군인이라면 희망하는 장기 진급이 모두 되어 앞날 창창한 사람이었죠. 그런 제가 지금 부모님께서 계신 고향으로 다시내려와 농부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였습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갑작스런 형의 사고 소식에 많은 슬픔이 찾아 왔지만 어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님만 할까요. 설상가상으로 그런 성치않은 몸과 마음으로 하우스 일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낙상을 하시어 크게 다치시고 전역을 해야 겠다고 결정하였습니다. 많은 주변인들이 반대하고 설득하였지만 자식으로서 어떻게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을 보고만 있을수 있을까요.그날 전 바로 전역지원서를 제출하고 2016년 8월 31일 전역을 해 시골집으로 내려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농부이긴 농부인데 어떤 농부? 무엇을 하는 농부? 지금은 부모님 시대와는 다른 농업인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찾고 또 찾아보고 여기저기 보러 다녔습니다. 단 농사를 해도 내가 즐기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농사, 부모님도 좋아하실만한 농사를 하는 걸 첫 번째 조건으로 시작하였죠. 그래서 제가 좋아하고 아직까지는 주변에 없는 원예치유농장과 양봉농장을 하기로 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와 처음 시작한 농사일은 생각보다 목화와 양봉이 잘 되어 기분이 좋았죠. 그런데 단지 젊은 나이에 농사만 짓고 있는다는 게 무언가 모르게 제자신이 너무 아까웠습니다.그 이유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젊음. 흔히 젊은 청년이 가지는 열정, 투지라고 하죠. 만일 제가 도시에 살았다면 다른 분야에 열정을 투자했겠지만 지금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청년농업인이기에 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청년이라는 게 뭐지? 청년농업인이란 게 뭐지? 시골에 인구수가 줄어들고 시골에서 사람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이런 현실 속에 청년농업인라는 명칭을 가지고 농사만 짓고 살 것인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었죠.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청년농업인은 오로지 농사만 짓는게 다가 아닌 지역을 알리고 농업을 발전시키고 우리 부모님들이 이어온 시골문화를 되살리고 후배농업인들이 지금보다는 좀더 쉽게 농사를 지을수 있도록 기틀을 잡아주는 역할이라고 말입니다.지금 저는 저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순창 젊은 청년농업인들을 모아 더불어 농부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우리지역의 문화를 되살리고자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크게는 시골문화 되살리기죠. 지금은 보기힘든 품앗이 시골장 등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시골을 살리고자 활동하고 알리고 있습니다. 청년농업인이란 단지 시골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게 청년농업인이 아니라는걸 우리 청년농업인들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들은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현재 시골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함께 해결하기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단지 나이가 청년이라 청년농업인이라 생각한다면 당신의 청년이 너무 아깝지 않나요? 저는 청년다운 생각으로, 청년다운 모습으로, 청년농업인답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이런 지금 제 모습이 저는 행복합니다.△신성원 대표는 순창 쌍치면에서 화훼와 꿀벌농장을 운영하며 목화 전문 플로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01.15 23:02

지역의 청년살이, 주거부채 해결해야 살아갈 수 있다

주거는 삶에 필수적인 요소이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주거를 소유하거나 타인의 주거에 의탁해야 한다. 어쨌든 내 한 몸 뉘일 공간은 확보해야만 살 수가 있다. 주거를 확보하지 못한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처럼 반드시 필요한 것이므로 주거는 개인의 자산이 아닌 복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전북지역 청년의 주거 복지는 어느정도 수준에 있을까?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로 빈곤한 삶을 살고 있는 청년의 삶과 비교되어, 가시화 되지 않고 있는 지방의 청년 주거문제는 어떨까? 전북 청년의 75%는 부모와 함께 살거나 자가를 소유하고 있고, 25%의 청년이 주거비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일단 부모와 살며 주거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긴급한 경우는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와 함께 살며 현재 주거안정을 누리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잠재적 빈곤층에 불과하다. 스스로 주거비용을 마련하기 힘든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거처를 옮기는 경우, 매체에서 떠드는 청년주거문제의 당사자가 지방 출신의 청년이 되는 것이다. 수도권이건 지방이건 결국 주거문제를 심각하게 겪는 당사자는 지방출신의 청년인데 내 지역은 아직 청년문제 중 주거는 아직 괜찮다고 한다. 문제가 발생하는 건 뻔한 일인데도 말이다.그러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지역에서의 독립은 어떨까? 일단 청년의 재정 상태가 그렇게 좋지 못하다. 지역 청년 1인의 필수 지출 항목인 학자금대출금이자, 주거비, 통신비, 교통비, 공과금, 식비 등 계산해 봐도 독립을 하면 적어도 월 80만원 가량의 돈이 지출 된다. 청년이 숨만 쉬어도 월에 나가는 지출이다. 전북지역의 소득이라고 해봐야 최저소득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로 볼 때 2018년 최저 월급 기준인 157만원도 과하게 책정해 주는 것이고, 아르바이트 하는 청년들의 경우 77만원 세대로 전락한 현재 상황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본인의 지출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취업을 위해 학원을 다니기 위해 아르바이트 기간을 따로 둬야 하는 현실은 지역도 다를 바 없다. 현재를 버티기 위해 필수 지출의 30%에 달하는 주거비를 줄이기 위해,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타 지역에서 유입된 청년의 경우는 주거부채를 의탁할 가족이 없기에 지역살이는 큰 부담일 수 밖에 없다. 주변 청년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지역을 떠난다고 말하지만, 결국에는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일자리는 선택이지만 주거는 필수사항이다. 일은 쉴 수도 있지만 쉬기 위해서는 주거가 필요하다. 지역에 가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벌어진 부채의 격차를 동일한 일자리만으로 타지역 청년의 유입을 바라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다. 전북이 타 지역 청년의 유입을 계획한다면, 일자리 이전에 그들이 지역에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게 할지, 어떻게 주거를 안정 시킬지를 고민해야 한다. 일자리 일변도의 일방적인 정책보다, 청년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들이 정주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만 비로소 지역살이를 시작할 수 있다.청년의 삶은 부채다 요즘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사회에 나온 청년의 삶은 부채를 안고 시작한다.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청년을 위해 문화 생활을 보장해주고, 결혼을 장려하고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런 것들은 이번 달 내야 하는 공과금과 대출금이자 월세를 감당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역에 살고 싶은 청년에게 내 몸뚱이 뉘일 곳 정도는 마련되었으면 한다. 꿈과 희망은 그다음에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부채의 고리를 끊는 것이 먼저다.△김창하 씨는 전주시 청년희망단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8.01.08 23:02

글쓰기가 뭐라고

글쓰기는 역시 타고나야 하는 걸까? 대학교 첫 글쓰기 수업 때 들었던 생각이다. 리포트에 가갸거겨 정도나 쓸 줄 알았던 학생들을 위해 교수님은 매주 글쓰기 특강을 열었다. 그런데 참석을 해보니 나름 글 좀 쓴다는 친구들만 모인 것이다. 그들의 글은 멋진 건축처럼 논리가 차곡하게 쌓여있었다. 그 사이에 위치한 내 글은 수수깡으로 만든 조악한 괴작이었다. 내가 썼지만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났다. 으악 난 틀렸어.글쓰기 데뷔와 동시에 은퇴식을 치를 뻔 한 나를 구해준 책이 있다. 소설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다. 작가와 책 제목만 들어도 글쓰기에 대한 엄청난 비기를 알려줄 것 같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 책은 작법서를 가장한 자서전 혹은 자기 자랑에 가까웠다. 책 내용의 대부분은 자신이 유년시절부터 데뷔까지 어떻게 펜을 놓지 않았는지의 이야기였으니까.비록 유혹하는 글쓰기 비법을 배우진 못했지만 스티븐 킹이 말하는 꾸준하게 쓰는 글쓰기의 즐거움은 간접 체험하게 되었다. 또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보다 내가 편하고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글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나아졌냐고? 안타깝게도 내 글은 수수깡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성을 쌓았다 싶을 정도로 꾸준히 많은 글을 냈다.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재미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야속하게도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캠퍼스에 가면 사람들이 나를 학생이 아닌 교직원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글 쓰는 것을 계속하고 싶어 내가 일하는 북스포즈에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이름은 글쓰기가 뭐라고. 글 쓰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쓰자는 의미다. 매주 모여서 아무런 주제를 뽑아 1시간 동안 쓰고, 1시간 동안 서로의 글을 보고 이야기한다. 자소서를 쓰다 온 취준생도, 보고서에 골머리를 앓는 직장인도 이곳에서는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다.요즘에는 내 글보다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글을 보는 재미가 생겼다. 얼굴도, 이름도 외우기 전에 글이 먼저 인상에 남는데 그것이 엄청난 문장이거나, 깊이 있는 주제의식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서툴지만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적었기에 개성이 생기고, 앞서 말한 화려한 글들보다 이런 글들이 더욱 좋아졌다. 하루의 여독을 글을 쓰며 스스로 마음을 회복하는 사람들도 생겼다.연말에 운 좋게도 이 잡문(?)을 모아 책을 냈다. 소량 출판에 서로 n분의 1로 나누었기에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이 찾기란 힘들 것이다. 하지만 모임 사람 중 누군가 성공하면 이 책을 경매 사이트에 올리기로 약속을 했으니 언젠가는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친김에 이제는 각자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서 글을 써서 새해에 작은 책들을 내자고 했다. 욕심보다는 재미를 느끼며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완성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평소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 공부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다. 글 쓰는 것은 어렵다라는 생각만 벗어나면 우리도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나름의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글쓰기가 뭐라고. 다소 건방진 이 문구 아래에서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12.25 23:02

한 해의 코스터

여러 가지로 1년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집을 나오게 된 것이 올해 2월이니 이제 10개월이 되어가고, 아직 12개월이 되어가지 않는 일들도 있지만 어쨌든 2017년이라는 한 해가 지나고 있다. 토요일 두 번만 지나면 이 해도 끝이다. 한국식 셈 나이도 이제 스물넷이니 이십대 중반이 아니라고 하기에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복학하고 여러 활동을 하다보니 나보다 학번이 낮은 학우들을 만난다. 누군가 나를 선배나, 언니, 누나라고 부르고 가끔은 호칭이 낯설게 느껴져 차라리 화담 씨라고 불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지난 시간들을 반성하며 최근에는 뜨개질을 하고 있다. 솜씨가 좋은 집안 내력을 이어받아 솔직히 손으로 하는 일들을 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유일하게 잘 하지 못했던 뜨개질에 도전을 하게 된 것이다. 유튜브 동영상들을 찾아보며 코도 하나, 둘 떠보고 코를 몇 개 빠트리기도 했지만 차마 목도리로는 만들지는 못하고 코를 조금 넓게 떠서 코스터로 만들었다. 겉뜨기 하나로 반 뼘 조금 못되게 떠서 누구 앞에 내놓기에 민망할 정도의 와인색 코스터. 하지만 괜히 마음이 가서 컵을 사용할 때는 꼭 코스터 위에 올려놓게 되었다. 겨우 이거 하나 만들었다고 금세 의기양양해져서는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며 이번에는 다른 스타일의 뜨개질들을 또 찾아보고 있다.손도 대지 않던 뜨개질을 하게 된 이유는 별거 없었다. 선물 받은 목도리가 조금씩 늘어나서 보기 안 좋아진 것도 있고, 요즘 얇은 목도리가 유행인데 하나 갖고는 싶지만 사기는 조금 아깝고,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은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서, 이것이라도 잘 못해내면 정말 가치 없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작은 것이라도 도전해서 해내고 싶었다. 문구점에서 대바늘과 마음에 드는 색인 와인색 실을 사서 동영상을 보고 차근차근 해냈다. 목도리는 아직 만들진 못했지만 연습 삼아 코스터를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남들이 보기엔 엉망이겠지만, 이 코스터 하나 만들었다고 나는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무언가 더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루저로서 권화담의 글을 보며 알고 계시겠지만, 나는 별로 잘난 사람이 아니다. 화도 잘 내고, 울기도 울고, 아프기도 꽤 아픈 사람이다. 전북일보에 글을 쓰게 되고 내 이런 감정을 담아내도 되는 것일까 고민을 많이 한 편은 아니다. 한 잘나지 않은 청년의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내가 너무 하향 평준화시킨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조금 있긴 하지만 이런 잘나지 않은 청년도 화 낼 때는 화를 내고, 아플 때는 아프고, 슬플 때는 슬픈, 이런 고민을 한다고 드러내고 싶었다. 뜨개질을 하며 내 그런 감정들을 조금 생각해봤다. 솔직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지금 상태에서는 그런 감정들이 전부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지만 어쨌든 그런 고민을 하는 권화담(곧 한국식 셈 나이 24세)도 권화담(지금은 한국식 셈 나이 23세)인 것으로 결론지었다.화를 내기도 엄청 내고, 울기도 엄청 울고,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었던 2017년도 이렇게 다 끝나가고 있었다. 새 해를 엄청 대단하게 맞이할 것 같지는 않다. 새 해를 제때 볼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눈 뜨고 일어나면 이미 2018년도 1월 1일 오전 11시일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이번 해도 꽤 쓸 만한 코스터 하나는 나올 것 같다. 아니, 코스터 하나를 만들고 싶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12.18 23:02

나와 함께 숨 쉬는 음악

요즘 들어 나의 음악적 취향이 많이 바뀌는걸 느낀다.자주는 아니지만 과거에도 몇 번 이랬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어떤 한 가수에게 빠져서 그 가수의 음악만을 들을 때도 있었고, 발라드가수가 좋으면 발라드만을 듣고 재즈가수가 좋으면 재즈음악만 들었었다.작곡가 그리고 노래하는 사람이 음악을 편식하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소에 여러 장르의 다양한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해왔다.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삶을 살아가다보니 매번 나의 음악적 취향은 바뀌어왔다.노래방에서 누군가를 모창한다고 발라드가수의 음악만을 들었던 시절, 한창 락에 빠져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나의 모습, 그리고 정해진 규칙과 이론에서 벗어난 신선한 음악을 찾고자 재즈음악에 빠져있던 나의 스무살,스물 한살 시절이 생각난다.그리고 군대를 다녀온 후 최근에는 나의 또다른이름 다로의 첫 번째 앨범, 두 번째 앨범을 들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미니멀하게 기타하나에 보컬 , 피아노하나에 보컬과 같은 어쿠스틱한 음악이 좋았다.이렇듯 나의 음악은 나의 삶처럼 다양했고 굴곡진 나의 다양한 감정을 대신 표현해줬다.음악에도 트랜드, 유행이라는 것이 있다.하지만 내가 느끼는 음악의 취향이 바뀌는 시기는 트랜드와는 상관없이 찾아왔다.생각해보았다.과연 무엇 이었을까?매번 나의 음악적 취향이 바뀌는 시기를 고민해보았는데 그럴 때마다 큰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고 빠졌던 음악들이 그 시기의 나의 감정을 기억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내가 슬플 때는 슬픈 이별의 노랫말을 담은 음악이 나와 함께했고, 행복할 때는 행복하고 예쁜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가 함께했다.또한 마음이 복잡할 때는 나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시원한 음악이 함께였고, 고민이 많고 우울할 때는 나를 위로하는 노랫말이 나와 함께 했다.좋아했던 음악을 돌아보니 내가 사랑했던 시절, 이별했던 시절, 겉멋에 잔뜩 들어 자만했던 시절, 자신감이 넘치도록 전진했던 시절들을 기억할 수 있었다요즘 또 나의 음악적 취향이 바뀌고 있다.요즘은 무덤덤한 밴드 음악이 좋다.아무말 하지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같고,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아무생각이 들지 않는 음악을 듣고 있을때만큼은 내 머릿속이 비워지는 그런 음악이 좋다.내가 요즘 머릿속에 있는 책임감과 짐을 잠시 내려놓고 싶은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그냥 가만히 누워서 음악을 듣고 있을때가 좋다.가끔은 나와 함께 숨 쉬는 음악에 나를 의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12.11 23:02

The One Minutes와 캡틴판타스틱

얼마 전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완주군이 아동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하는 아동권리축제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 중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와 The One Minutes 재단이 파트너십을 맺어 진행하는 워크샵에 나 역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The One Minutes는 1분짜리 영상을 둘러싼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단이다. 유니세프와 파트너십을 맺어 2002년부터 아동을 대상으로 영상 제작 워크샵을 시행해왔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아동은 자신의 의견을 말이나, 글 예술을 통해 표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워크샵을 통해 아동은 자신의 삶, 꿈, 세상에 대한 관점 등을 1분짜리 영상에 담아내어 표현할 기회를 갖게 된다. 네덜란드에서 온 3명의 트레이너들에게 이틀 동안 성인 대상 강의를 받고 5일 동안 22명의 아동들과 워크샵을 진행했는데 지역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몇 년 동안 해왔던 나로서는 상호교감의 기회를 체득할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 중간에 통역사가 있었지만, 아동들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네덜란드의 트레이너에게 전하면 트레이너들은 그 이야기를 토대로 영상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피드백을 해주는 형식이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건넬 때 그것이 불가능 하다면 안돼!라고 말하는 한국의 흔한 교육방식에 길들여진 나는 어떠한 권력관계가 작동하지 않는 평등한 의사소통구조에 놀랍기도 했고 반성도 했다.<캡틴 판타스틱>이라는 영화가 있다. 6명의 아이들과 아버지가 깊은 산속에서 자급자족 하며 생활을 하는데 사냥, 채집, 암벽등반을 통해 체력을 단련시키며 생존을 한다. 일종의 자연주의 라이프를 체화하며 사는데 그렇다고 교육에 등한시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밖의 사람들보다 수준 높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 5살짜리 꼬마가 파시스트에 대해 이야기 하고, 7살짜리 꼬마는 권리장전에 대해 읊는다. 그들은 매년 미국의 석학 노암촘스키의 생일에 촘스키의 날이라는 축제를 한바탕 펼친다.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숲을 벗어나 도시로 온 이 가족공동체는 예측불가한 사건들로 점점 변화하기 시작한다. 약간의 균열과 틈도 생기고, 육체적인 상처를 입기도 하고, 아버지가 아이들을 떠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물론 다시 이들은 결합한다) 내가 흥미롭게 본 지점은 아버지와 아이들이 토론하는 장면이다. 토론을 할 때 성인 대 아동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어떠한 권력관계도 작동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는데 이 가족공동체가 오지에서 계속 굴러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환경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가부장제와 가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얼마나 신념과 가치관등을 강제적으로 변화시키고 없앴던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주체적인 사고와 행동양식은 튄다 버릇없다 같은 말로 돌려받고 부모의 욕망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가시키는 빈번한 폭력! 이런 것들이 가능했던 건아이들을 소유 하고 있다는 오만하고 그릇된 인식을 의심 없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 인격, 주체로 인정하고 믿는 것이야 말로 수많은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을 해방시킬 힘이 아닐까. 위 영화가 수정주의로 결말을 마무리 한 것처럼 아이들에 대한 인식도 수정주의가 시급하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12.04 23:02

꼰대로 남을 것이냐, 내가 될 것이냐

수능을 마친 저녁 아버지는 말했다. 이제부터 성인인데 무엇을 하고 싶니? 나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냐고 되물었다. 이번에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서른 지구가 멸망해도 내게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나이였다. 물론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함정이다.내게는 지구 상의 그 어떤 문제보다도 대비를 못한 것이 서른 맞이다. 서점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 답을 책에서 찾았다. 아거 작가의 꼰대의 발견이라는 책이다. 우리 사회의 꼰대들을 분석한 꼰대의 발견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종이가 거울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누구나 다 꼰대일 수 있다.꼰대의 발견에서 등장하는 꼰대의 특징은 이렇다. 내가 누군지 아냐며 서열이나 신분을 따진다. 상대에게 충고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게 그 사람을 돕는 일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나 생각을 들어줄 여유는 없다.꼰대는 곧 내 말이 옳다는 신념이 너무 커진 나머지 상대의 생각을 공감하지 못하는 과도기적 상태다. 사실상 영화관에서 팝콘 하나, 혹은 서비스로 나오는 땅콩 하나에도 툭하고 화를 내는 것은 우리 안에 만연한 꼰대기질이다. 다만 비행기를 멈추거나 돌릴 재력이 없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스스로 성찰을 할 수 있는 이 책이 고마워서 서점을 방문하는 손님과 지인들에게 <꼰대의 발견>을 자주 추천한다. 하지만 딱 한 사람. 아버지만은 이 책이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아버지는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아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정말로 기다려줬다. 이웃집 아들이 대기업에 취직했고, 사촌 친척이 국가고시에 합격했어도 그것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나답게 커가고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요새 관심 있는 일은 뭐야?내가 좋아하는 것은 전주다. 정확히 말하면 전주라는 도시의 리듬을 좋아한다. 출근길 지하철처럼 밀도 있는 서울의 삶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때문에 전주에 남아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졸업 후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두 번째부터는 솔직한 욕심이다. 전주에서 전주다운 일로 돈을 많이 버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첫 기고글부터 자기 자랑과 아빠자랑이라니! 전북일보가 가족신문이냐라고 말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것은 사람이 아닌 지역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정말 전주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잘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 당장 지역에 대기업이 들어오고, 지역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전주가 자신만의 길을 잘 가는지 역시 중요하지 않겠는가?지방에 있는 도시들은 낙후라는 낙인을 탈피하기 위해 좋은 것은 모두 따라 지었다. 이제는 어느 지역에 가도 번듯한 백화점이 있고, 영화관이 있다. 딱 하나, 청년세대의 집은 없다. 결국 청년들은 프랜차이즈 도시냐 본점이냐를 골라야 한다. 도시의 정체성이 사라진 곳에 애정은 존재하지 않는다최근 전북일보에서는 어떤 것이 전주의 발전이냐?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독자 입장에서는 생각의 틀을 넓혀주는 좋은 기회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소중한 기회가 내 주장만 외치고 마는 꼰대적인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공통된 영역을 찾고 상대의 생각도 들어보는 어른스러움이 더욱 필요할 때가 아닐까?△노유리 씨가 청춘예찬 필진에서 빠짐에 따라 김신철 디렉터가 필자로 참여합니다. 김 디렉터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옥상블루스> 등 단편영화를 제작했습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11.27 23:02

나는 한옥이 싫어요

학교가 다시 시끄럽다.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이 모인 만큼 조용한 날들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만큼은 꽤 시끄럽고 내년에 우리 학교의 대표가 될 총학생회 선거에도 그 바람이 불고 있다. 한옥 캠퍼스화 사업 때문이다. 나는 한옥을 좋아한다. 마루를 밟았을 때 느껴지는 나무 특유의 차가움을 사랑하고, 입꼬리 마냥 살짝 올라간 기와도 사랑하고, 밝은 단청도 사랑한다. 평소의 나라면 한옥을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학교의 한옥 캠퍼스화 사업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나도 이 사업을 반대하고 나는 한옥이 싫어요 라고 말하고 있다.학교가 예뻐지는 것이 싫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중충하고 낡은 건물보다야 깔끔한 시설을 갖춘 새 건물이 훨씬 좋을 것이다! 나는 전북대학교에 약 4년째 재학 중이고(휴학을 1년 반 했지만 휴학하는 동안 학교에 발도 들이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4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는 많은 건물이 생겼다.휴학하는 동안에도 2017년에 개교 70주년을 맞아 70주년 기념 사업을 할 것이라며 꽤 시끌벅적했다. 논란이 된 한옥 캠퍼스화 사업도 여러 70주년 기념 사업 중 하나로 2019년까지 진행될 계획이라며 대학본부 건물에 매우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학교 차원에서는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렸다. 그래, 이쁘면 좋지. 전통의 도시 전주와 어울리긴 하다. 플래카드는 참 컸다. 이 플래카드를 보지 못한 학생들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될 만큼 컸다.하지만 전북대학교에서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수 많은 건물들 중 불편하지 않은 건물의 수는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본다. 솔직히 한 손 안에 들 것이다. 개교 70주년을 맞이한 만큼 새로운 건물들도 많이 생겼지만 계속 사용하고 있는 건물들도 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서는 농업생명과학대학과 예술대학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학생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 두 단과대학은 전북대학교에서 오래된 건물들을 사용한다.이 단과대학들의 학생들 중 장애를 가졌거나 사고를 당한 학생들이 엘리베이터가 없어 강의실로 이동하는데 불편함을 느꼈거나 특수 목적 강의실에서 설비가 부족해 열악한 환경에서 시설을 이용해야한다는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한옥 캠퍼스화 사업은 대학이 가진 자금보다 국비가 더 사용된다고 한다. 한옥 건축에 쓰일 기와나 나무를 기부받기도 했다. 기부받은 금액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낸 등록금을, 대학이 가진 자금을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돈을 끌어 올 수 있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받을 수 있었다면, 왜 우리의 공간은 아직도 불편한 것인가? 휠체어를 탄 학생은 한 건물에 있는 강의를 통째로 듣지 못하는 것일까? 실습을 할 때 환풍기조차 켤 수 없는 것일까? 장학금은, 기숙사는, 우리의 질문은 끝이 없어진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아주 오랜 시간 인류는 아름다움을 추구해왔다. 설령 추(醜)의 아름다움일지언정 많은 이들이 숭배해왔다. 그렇지만 인류는 어떤 가치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생긴다면 가차없이 이전에 중요하게 여졌던 가치를 포기하기도 한다. 아름다움도 내팽겨쳐질 수 있다는 점을 피할 수가 없다. 많은 학생들에게는 캠퍼스의 아름다움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있다. 모두 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여전히 한옥이 싫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11.20 23:02

나의 일기

어느 날 갑자기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이 이야기는 불과 얼마 전 나의 이야기이다.가끔 그런 날이 있다. 그냥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날, 아무 생각도 안하고 아무고민도 없이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 말로는 쉽지만 사실 이런 시간을 갖기 위해서 큰 용기를 내야한다.어느 순간부터 감사하게도 하루하루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어졌다.그래서 더 필요했나보다. 오늘은 그냥 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쓰는 나의 일기! 한줄 한줄 나의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다.11월 6일 내 생일이 다가오는 어느 날 나는 여행을 결심했다. 아무 계획없이 이틀 후 떠나는 일정이었다. 나의 일들은 잠시 내려놓고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발길 닫는대로 그날 내가 하고싶은대로 그냥 떠나자 이 생각뿐 이었다.홍콩 , 마카오 , 태국 세 나라를 다녀왔다. 처음 내가 향한 곳은 홍콩이라는 나라다.홍콩의 밤은 너무나 화려했다. 화려한 건물사이의 불빛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만들었다. 사진에는 담을수없을만큼 아름다운 밤이었다.홍콩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배를 타고 마카오로 향했다.마카오의 낮거리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거리를 걷다가 일찍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해외까지 나가서 하루를 숙소에서 보내는 게 사치 같았지만 너무 마음이 편한 시간이었고 결국 행복했던 나의 추억이 되었다.마지막으로 태국으로 향했다. 태국은 볼거리 먹을거리 놀거리 모두를 만족시키는 나라였다.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를 하며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듣기도 하고 서로 통하는 취미를 공유하기도 했다.태국에서 한국은 생각보다 현지인들에게 친숙하고 좋은 나라로 인식이 되어 있는 것 같아 나름 뿌듯한 여행을 할 수 있었고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관광지를 둘러보고 맛있는 거리 음식들을 먹고 화려한 밤거리를 즐기면서 이런 게 행복이구나, 그냥 아무이유없이 웃음이 났다.눈을 떠보니 어느새 현실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업무보고를 받고 다음 일정을 확인하고 미팅을 하고 밤에 작업실로 들어와서 음악작업을 하는 나의 모습은 행복하지만 행복하지않은 .오늘은 그냥 그날이 그립다.가끔은 나를 위한 여행이 필요할 것 같다. 나를 알고 소중함을 알고 고마움을 알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가끔은 필요하다.횡설수설한 나의 일기는 여기서 끝내고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까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어야겠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11.13 23:02

쓸모 있는 삶

다르덴 형제의 초창기 영화 <로제타>는 알콜중독자 어머니와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는 로제타라는 소녀가 생존을 하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을 그린 영화다. 내일이란 삶이 존재할까 라는 질문 조차 차단 된 소녀의 삶을 건조하게 그리고 있는 영화는 급기야 영화 말미에 가스통을 붙잡고 절규하는 로제타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투적으로 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걸 어린 나이에 체화한 로제타는 잘 참다가 마지막에 우는데 그녀를 위로하려고 하는 남자의 모습조차도 카메라는 보여주지 않는다.올 초 천식 때문에 꽤 고생을 했는데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기침이 심해 중간에 뛰쳐나온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 극장 가는 게 조바심이 났고 급기야 올 봄에 촬영한 영화의 후반작업을 할 땐 스트레스 까지 겹쳐 오랫동안 영화 보는 행위를 멈췄다. 그저 흩어지는 마음을 붙잡고 싶어 친구들과 7번 국도를 타고 여행을 했다. 7번 국도를 타고 내려오면서 본 산과 바다의 이미지를 꽉 붙들고 여행에 다녀 온 후 용기를 내어 본 영화가 이 <로제타>라는 영화다. 몇 번 봤을 정도로 좋아했던 영화인데 겨우 로제타에게 울음을 허용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예전엔 사는 게 다 그래 라고 오독했다. 하지만 다시 본 로제타에서 얕은 위로 대신 참지마 라는 걸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후에 본 판타지 영화 <몬스터콜>의 코너도,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도 마찬가지였다. 참아야 한다가 정언명령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러나 애당초 참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프랑스 철학자 롤랑바르트는 어머니의 죽음 후 <애도일기>라는 책을 썼다. 책에는 내 무릎을 딱 치게 만드는 이런 레고 문장이 나온다.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나는 로제타 처럼 알콜중독 어머니와 비좁은 트레일러에서 살지도 않고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리처럼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화재로 아이 셋을 잃은 경험도 없고, 부모의 이혼 후 아픈 엄마의 고통을 지켜보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몬스터 콜>의 코너가 아니다. 그래서 섣부른 위로와 얕은 포옹을 해서도 안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물들을 볼 때마다 당장 스크린을 찢고 들어가 속삭이고 싶다. 참지마세요올 해 구술생애사와 관련된 수업을 받았는데 강의를 맡은 선생님에게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이렇게 물어봤다. 선생님, 구술과 채록의 과정에서 고통을 느껴보신 적은 있나요? 그러자 선생님은 단호하게 없다고 하셨다. 당신은 개인적 쓸모와 사회적 쓸모를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 순간 각자의 쓸모라는 한마디가 내게 얼마나 큰 위로와 포옹이 됐는지, 한참 동안 쓸모라는 말을 담고 살았다. 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자각하는 게 삶의 동력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리고 저 영화 속 인물들 역시 쓸모 있는, 그러니깐 계속해서 생의 의지를 안고 살아갔으면 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11.06 23:02

책을 완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매달 이렇게 책을 추천하려면 정말 많이 읽으실 것 같아요. 한 달에 몇 권정도 읽으세요? 기대감으로 가득한 손님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혹여나 실망하지 않을까,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내적 갈등이 일어난다. 큐레이션 서점에서 테마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제안하는 북디렉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서점에 배치하는 책의 전부를 읽지는 못한다. 베스트셀러나 화제의 신간, 강연 저자의 책 외에는 출판사나 신문사의 서평을 보거나 책의 목차를 보고 핵심 부분만 찾아 골라 본다. 독서모임에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추천받기도 한다. 책을 고르고, 책을 사고, 책을 배치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독서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일까. 읽은 책=완독이라는 암묵적인 규칙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찜찜한 마음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결국 나는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아요라는 말과 함께 웃음을 지어 보이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을 선택하곤 했다. 영화평론가이자 「이동진의 빨간책방」 팟캐스트 진행자 이동진은 그의 저서 <이동진 독서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요. 미안해 할 것도 아니고 부끄러울 일도 아닙니다. 다 읽지 못한 책을 책장에 꽂아둔다고 큰일 나지도 않고요. 그저 안 읽힌다면, 흥미가 없다면 그 책을 포기하시면 됩니다. 굳이 완독하지 않아도 됩니다. 완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참 듣고 싶은 말이었지만 아무도 해주지 않은 말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독서를 숙제로만 제시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을 시작으로, 중학생 필독 소설, 서울대 권장도서 100, 20대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까지 당위로 묶여진 부담스러운 리스트들만이 가득했다. 반드시라는 부사에 숨겨진, 읽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숨겨진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독서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혹시 나와 같이 완독에 대해 압박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스스로 책을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이동진 작가, 그가 언제나 즐겁게 책을 향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른 게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99명이 권해도 한 명인 내가 거부할 수 있으며 중요한 건 내가 책에서 흥미를 느껴야 한다는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였다. 그가 내게 괜찮다고 말하자, 정말 괜찮아졌다.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벗어난 뒤에는 한층 책 읽기가 즐거워졌다. 이제는 한 권의 책에서 한 가지 질문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질문조차 하지 않는 사회에서 정해놓은 루트에서 조금 벗어난다는 것,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또 내가 궁금한 지점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책임감은 버리고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즐겁게 책을 읽어보자. /노유리 북스포즈 디렉터

  • 오피니언
  • 기고
  • 2017.10.30 23:02

검은 머리 짐승

검은 머리가 많이 자랐다. 분명 개강 전에 카키색으로 염색을 하고 학교에 다니고 싶다며 8월에 탈색을 한 번 하고, 2주 정도 뒤에 탈색을 한 번 더 할 계획이었지만 어째서인지 8월의 권화담은 너무 바빠 미용실 사장님의 출산 휴가가 끝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탈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화장실 수납장의 셀프 염색약이 울고 있다며 나를 놀렸다. 이제는 예전에 찍었던 사진들에 있는 검은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모습이 어색하다.검은 머리카락이 자란 만큼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개강을 하고 익숙하지 않은 수업과 생활패턴을 고치느라 아직도 허덕이고 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으며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 새로운 일이라고 하면, 내가 이제까지 해온 활동들과 그 활동들을 거치며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활동을 준비하는 데에 8월 한 달을 거의 그 활동에 매진했다. 발성부터 기획까지 많은 교육도 받았다. 9월부터 그 활동을 시작하고 있고, 나름 준비를 많이 했지만 역시나 처음은 처음인지라 이 곳 저 곳이 삐걱거렸다.주황색 머리카락의 권화담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이 들었다. 아마 검은 머리카락의 권화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어서 이 활동을 준비했던 것 같은데 막상 기획을 시작하니 이제까지 내가 한 활동은 보잘 것 없어 보였고 내 감정은 열등감을 어떻게든 해소해보고자 부정적인 감정으로 꽁꽁 싸진 모습이었다. 이것 저것 열심히 했고, 자신감에 차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주황색 머리카락의 권화담은 이게 정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듣게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것들에 관심을 가졌고, 여전히 활동 중이고, 앞으로도 활동을 할 것이긴 하지만 과연이라는 의심을 걷어낼 수가 없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검은 머리카락의 권화담은 대단했다. 어떻게든 체력을 붙잡아두고 일을 끝냈고, 아이디어는 새로웠고, 가장 중요한 자신감도 넘쳤다. 내가 이 활동을 왜 하는지,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이 활동을 사랑하는 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많은 교육을 받고 여러 사람과 피드백을 하며 좋은 말로 신중해졌지만, 좋지 않은 말로는 겁이 많아졌다. 아마 검은 머리카락의 권화담이 지금의 나를 보면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느냐고 물어볼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에 몸이 안 좋아져 지치기도 했고,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준비해야할 것이 검은 머리카락의 권화담이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많았다. 아니, 많이.무언가에 꽂히면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달려들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의심이 많은 나는 가끔 과거의 검은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내가 그리워지곤 했다. 그 때의 나는 자신이 있었고 무엇을, 어떻게, 왜 이 세가지를 대답하는 데에 겁 먹지 않는 검은 머리 짐승이었다. 탈색을 계속 미룬 덕에 검은 머리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 염색을 해야 하기엔 머리 색이 아직 밝지 않으니 다시 탈색을 해야해서 그 때의 나로 완벽하게 되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다시 검은 머리 짐승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다. 어른들 말에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그래도 어쨌든 검은 머리 짐승이 필요하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10.23 23:02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

음악을 어떻게 만드는 거야?나를 위한 곡좀 만들어줘작곡할 때 가사 먼저 써야돼? 멜로디 먼저 써야돼?나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공부했고, 음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자기 음악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자기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꿈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 공연기획과 음악프로듀싱을 하는 열정 있는 청년사업가라는 이름으로 주변에서 나를 불러주기 시작했다.이번에 들려줄 나의이야기는 질문들로 시작을 해보았다. 글의 시작을 알리는 3가지의 질문은 내가 일을 하면서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들이다.한 번도 음악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고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악기를 배우고 화성학을 공부하고 미디(컴퓨터음악)까지 모두 독학으로 했다고 하니 다들 의아해하고 궁금했던 것이다.사실 나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깊은 고민을 통한 심오한 예술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나오는 예술적 작품이라기 보다는 나의 일상생활과 행복한 마음 , 슬픈 마음 , 고마운 마음을 가볍게 담은 나의 이야기들이다.나는 음악을 할 때만큼은 깊은 고민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미래를 위해 억지로 음악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고민부터 하지 않고 일단 나의 이야기를 하나하나씩 적어나간다.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음악은 나에게 있어서 스트레스가 되는 음악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멋있는 음악! 고급스러운 음악! 예술적으로 훌륭한 음악! 난 사실 잘 모르겠다.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많이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보다는 단 한명의 사람이라도 내 음악을 듣고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음악은 이렇게 만드는 것 같다.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강한 나의 마음을 만들고 나의 이야기를 적으면 그게 가사가 되고, 거기에 자신이 어려서부터 들었던 다양한 음악멜로디들이 나의 이야기와 조화를 이뤄 가사전달에 방해되지 않는 음이 생기면 그게 멜로디가 된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음악적 지식을 활용해서 악기구성과 곡의 전개를 고민하면 하나의 곡이 만들어지게 된다.질문에 대한 대답을 읽어보았다면 사실 곡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멜로디가 우선인지 가사가 우선인지 어떤 악기와 어떤 악기가 조화를 이뤄야 사운드가 좋은지 어떤 화성이 더 세련된 화성인지가 중요한 질문이 아니라는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내가 생각하기에 나를 비롯한 음악을 공부하는 주변 친구들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적 미래를 고민하고 테크닉적인 질문을 하기에 앞서 진실된 나의 이야기를 담을 건강한 마음을 준비하고 평소 나의 삶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껴보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지금 이 시간에도 본인의 음악이야기를 한 줄씩 적어가고 있는 모든 아티스트 분들을 응원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10.16 23:02

그 많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아이와 나는 같은 유치원을 나왔고,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같은 중학교를 다녔다. 유치원 때야 너무 어린 시절이라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초등학생이 되고 우리가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지만 나와 그 아이는 복도에서 마주쳤고 급식실에서 마주쳤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도 손을 흔들었다.대학교에 진학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 아이는 없었다. 내가 집에서 먼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중학교 동창들과 멀어진 것도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그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 아이와 같은 친구들을 몇 만났다. 하지만 대학교에서는 마치 그 아이들은 꽁꽁 숨겨져 있기라도 하는 듯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끔 우리 학과가 아닌 사람들을 엘리베이터 앞에서야 보고 이 사람들이 여기에 있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많은 사람들이 고성을 지르고 무릎을 꿇었다. 학교 때문이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가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건물의 시설이나 혹은 교육 방식의 차이로 장애인을 위한 학교가 현재 상황에서는 필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나마 내가 졸업한 국공립 학교에는 특수반 내지는 함께반 같은 이름으로 장애 학생들이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나 교사가 마련되어 있지만 장애와 학급, 학년이 모두 다른 장애 학생을 5명도 안되는 선생님들이 전담하고 있었다. 장애 학생들이 비 장애 학생과 함께 다닐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학교도 적지만 특수학교는 님비 현상 때문에 교외에 있거나, 보호자와 장애 아동이 사는 지역자치단체에 없는 경우가 흔했다.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의 작가 라일라의 보호자인 부모님은 그가 어린 시절 그를 위해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통학도 감수할 정도였다.그 아이가 생각났다. 곧 이어서 고등학교 때 만난 아이도 이어 생각났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던 부스에서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도 생각났다. 교육 봉사활동을 가서 만난 아이가 생각났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힘들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엘리베이터가 없던 학교 건물, 당연하다는 듯 점자가 없는 지도, 당연하다는 듯 다섯 명의 말을 바쁘게 수화하던 TV 속 수화통역사, 당연하다는 듯 사라지던 노란 점자 블록도 떠올랐다. 그 아이는 한 층 밑의 도서관에 가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가 엘리베이터를 바꿔타야 했다. 비장애인인 나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누군가는 포기했던 것들이 생각났다.나도 언젠가 사라질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으니까,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도 사라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고, 이름이 필요하고, 형태가 필요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당연하고 편한 것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최근 구독한 유투버 <둘째언니>의 동생은 18년 동안 시설에서 지냈다. 장애 아동 자원활동가인 친구는 시설에 누워있는 장애인들을 보며 이건 뭔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아이의 보호자는 그 아이가 죽는다면 그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했다. 사회가 원하는 얌전한, 일반인 같은 장애인을 만들기 위해 그 아이들이 사라져버린 것 같다. 그 많던 아이들은 정말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아이들은 왜 숨겨져야 하는 걸까.

  • 오피니언
  • 기고
  • 2017.09.25 23:02

나를 사용하는 방법

요즘 들어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나 스스로의 슬럼프인가?나는 나를 잘알고있을까?이렇게 가끔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예를 들면 내가 하는 일이 일을 시작할 때의 내 초심과 같은지 , 사람들을 만날 때 매번 진심으로 대화를 하고있는건지 , 나의 열정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하는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한다.이 생각들이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도 있었고 내가 더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요즘 들어 나는 더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이 생각들을 하는 이유가 내가 나를 아직 잘 몰라서 라고 생각했다.지금 내가 공부가 필요한 시기인지 내가 지쳐서 쉬어야할 시기인지 친구들을 만나서 한없이 웃고 떠들고 내 모든 것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해야 되는 시기 인지 말이다.지금까지 내가 나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요즘 나를 알기위해서 나의 감정을 사용하는 법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슬플 때는 한없이 슬프게 기쁠 때는 한없이 행복하게 솔직한 나의 모습을 꺼내려고 노력한다.이 생각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나는 얼마 전부터 3가지를 실천하기로 했다.첫 번째로 연기를 배우기로 했다. 연기를 배우면 연기를 할 때만큼은 나의 모든 감정을 다 쏟아 부을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날 때도 그리고 대화를 나눌 때도 서브텍스트에 대한 고민을 할수있을 것 이고 그게 된다면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 못하는 상대의 이야기를 고민함에 있어서 생각할 수 있기에 함께 어우러지는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두 번째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다. 일을 핑계로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들이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은 많이 만나지 못했다. 잠시 잠깐이라도 일을 내려놓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대화를 한다면 그 상대방에게서 비춰지는 나의 모습을 듣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서도 분명 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마지막으로는 나를 생각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하루에 최소 30분~1시간이라도 독서를 하고 차를 마시며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꿈을 가졌고 오늘 나는 무슨 일을 어떤 목적으로 했는지 고민하는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을 꾸준히 갖고자 한다.이렇게 요즘 나의 고민들을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리고 타인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 나 스스로의 시간을 통해서 나를 찾고 나를 고민하는 것이 지금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나에게 있어서 정말 필요한 공부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까지 나는 오늘의 약속을 스스로 지켜보고자 한다.진실한 나의 모습을 내가 알고 진심을 실천할 때 비로소 나는 더 건강해지고 모두 함께 어울러질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오늘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실천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9.18 23:02

공포와 혐오, 그리고 치료법

공포가 가장 무서울 때는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착이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유동하며, 종적도 원인도 불가해할 때다.올해 1월에 작고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저서 <유동하는 공포>에서 공포를 위와 같이 규정했다. 형태가 불분명하다 보니 오히려 정처 없는 공포는 증가하고 그것을 제어하는 수단을 가진 권력은 오히려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한다. 80만명의 이민자를 추방한다는 내용의 DACA 프로그램 폐지를 발표한 트럼프 행정부를 멀리 볼 필요도 없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안보라는 공포를 위해 대추리, 강정,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주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추방해왔는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 광주항쟁도, 1975년 대법원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해 최악의 사법살인 사례로 남은 인혁당 사건도 그랬다. 정처 없고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그 공포를 가시화하기 위해 희생이 필요했다.매년 9월이 되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중학교 2학년인 1996년 9월의 일이다. 전주-에버랜드-강원도 코스의 수학여행이었다. 하필 수학여행 첫날 강릉 앞바다에 북한잠수함이 침투하였다. 지금이야 당장 취소를 하는 게 맞는데 그 땐 강행을 했다. 휴대폰은 고사하고 겨우 삐삐나 몇 명 갖고 있던 시절, 그렇게 떠난 수학여행에 초를 친 건 강원도 들어서자마자 검문을 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오던 군인들이었다. 실컷 춤추고 놀다가 마주한 군인들을 보자 머리카락이 쭈뼛 섰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내 머릿속에선 한 달 전 뉴스에서 주구장창 틀어대던 연세대 한총련 사태의 몽타쥬들과 수학여행을 위해 연습하던 판관 포청천 노래가 뒤섞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 때부터 내 안엔 영화를 만들기 위한 고도의 훈련이 준비됐는지도 모르겠다. 3년 뒤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아쉽지만 IMF 여파로 또 다시 강원도로 가는 기쁨을 맞게 됐다. 대학교 4학년 때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단체 금강산 여행을 가게 됐는데 역시 강원도를 거쳐 갔다. 육로를 통해 남한 땅 끝에 잘생기고 우람한 헌병이 버스 속 우리에게 경례를 하는 데 나는 어떤 양가적 감정이 느껴져 눈물이 났다. 하나는 오래 전 내가 느꼈던, 그러니깐 중학교 때 버스에 올라와 내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했던 헌병에 대한 공포심이 별게 아니구나 했던 안도감이었고, 또 하나는 남한 땅을 벗어나는 그 날 해병대로 입대하기 위해 포항으로 떠난 남동생이 떠올라서다. 그리고 바로 앞 왜소한 북한 군인이 경계의 눈초리로 버스 속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새까맣고 작은 체구의 나보다 어려보이는 군인이 북한 사람인가 보지? 우리랑 똑같이 생겼네. 이런 느낌으로 북한 땅을 통과하였다.바우만에 의하면 공포는 시대와 지역을 망라하며 이리저리 유동했다. 그랬기에 우리는 비가시화된 공포에 순응했던 적도 있었지만 실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자각 한 후 광장에서 시민들이 많은 걸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 혐오, 외국인 혐오, 성소수자 혐오, 여성 혐오가 만연하다. 공포를 거세하지 않으면 배제와 혐오로 확장된다는 걸 인류는 20세기 두 차례 전쟁에서 겪었다. 그래서 바우만은 이렇게 말한다.다가오는 공포, 우리의 힘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공포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 그 시작은 그것을 바로 보는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7.09.11 23:02

느슨한 모임, 나를 모르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한 달에 한 번 서점은 잠들지 않는다. 새벽까지 환한 불빛을 내뿜으며 거리를, 사람들을 노란색으로 물들인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서점의 풍경은 지나가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할 만큼 이색적이다. 허리를 곧추세운 채 책에 빠져있는 모습, 종이 위로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모습, 동그랗게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없는 광경이다. 이색적인 행사, 오후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진행되는 심야책방은 북스포즈의 대표적인 이벤트다. 대부분의 반응은 이렇다. 6시간이나? 그것도 불금에 누가 책을 읽으러 오겠어? 사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행사다. 하지만 놀랍게도 10회를 진행하는 동안 대부분 선착순으로 조기 마감됐다.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자면,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 12시까지 자유 독서를 한다. 읽고 싶었지만 이런 저러한 이유로 읽지 못했던 책을 가져오기도 하고,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구매하기도 한다. 약 3시간이 지나면 독서가 지겨워지는데 이때 서점에서 제공하는 간식과 전주 수제맥주를 마시면서 환기의 시간을 갖는다.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심야토크를 한다. 심야책방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모여 그날 정해지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책과 관련된 주제를 진행할 때도 있지만, 일상과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주제가 대부분이다. 당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 3가지는 무엇인가요, 5년 후, 책을 낸다면 어떤 내용을 담고 싶나요?, 자신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무엇인가요. 무더운 7월에는 공포 팟캐스트를 들은 뒤 귀신보다 무서웠던 인생의 경험은?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심야책방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코너는 단연 심야토크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자면, 서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지 또는 책을 좋아한다는 점 외에는 공통점을 예측하기 어려운데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부터 들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우(杞憂)다. 토크가 시작되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인다. 토크에 참여하는 나 스스로도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본 적이 언제였을까라는 생각에 깜짝 놀라곤 한다. 모두가 진지하게 토크에 임하다 보면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껍질을 벗어던진 진짜 소통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도 제법 따뜻하다. 노력해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던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형성이 된다. 모임에 이름을 붙이자면, 느슨한 연결 또는 느슨한 모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시곗바늘은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대화는 이어진다. 어쩌면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의 검열 없이 그 순간 느끼는 그대로 발설할 수 있다. 가끔은 입이 아니라 가만히 들어주는 귀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주위에는 합격은 했니?와 같은 결과에 대해 조언하려는 이들로 넘쳐난다. 많은 사람들이 느슨한 관계를 추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너무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에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일상에 치일 때 여행을 떠올리는 것도, 게스트하우스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심야책방에 관한 포스트를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 연재 중이다. 가장 최근에 올린 한낮의 책맥은 4일 만에 조회수 3,270을 기록했다. 혼밥, 혼놀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타인과의 접촉은 원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다만 꾸미지 않아도 되는, 부담스럽지 않은 관계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노유리 북스포즈 디렉터

  • 오피니언
  • 기고
  • 2017.09.04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