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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사라지면 마을이 사라질 것이다

김현두 여행작가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가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속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가 함께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들 예를 들어, 또래나 형 누나 무엇보다 어른(할머니할아버지)들을 통하여 보고 배우는 여러 가지의 학습들을 통해 한 아이가 인격체로 성장하는데 까지 필요한 여러 것들을 마을을 통하여 만나고 이뤄진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인구감소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도시보다 더 절박한 인구절벽의 늪에 빠진 시골에서는 아이가 사라지면 학교에 학생들이 사라지고 어느 날 학교가 사라지고 난다면, 마을이 사라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도 있고, 실제 그런 사례를 이제는 심심치 않게 마주할 때 가 있다. 필자가 오늘 이렇게 학교를 화두로 삼는 것은 며칠 전에 있었던 지역사회에 진안(남)중, 진안여중에 관한 남녀공학 전환여부에 관한 설명회의 기사를 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어서이다. 전라북도교육청은 중학교 남녀공학 전환여부에 관한 설명회를 추진하는 중이라고 한다. 특히 진안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의 진행방식 도교육청이 준 문서 그대로를 옮겨 내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나눠 준 유인물을 보면서 과연 현 시점에서 미래세대를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 남녀공학 전환문제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안읍에는 남녀중학교를 두 곳을 합쳐228명의 학생이 있다고 한다. 사실 면단위로 가면 전교생이 7-8명에 이르는 학교도 존재한다. 필자가 중학교를 다니던 1995년에는 진안남중학교의 전교생이 현재 두 학교를 합친 것과 비슷하거나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학생의 숫자가 급감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나고 자란 진안군은 현재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많은 지자체 중에 대표적인 지역이다. 2019년 진안군 지역에 어느 학교는 신입생이 한명도 없는 곳도 있다. 전교생이 10명 미만인데 선생님과 교직원 학생 수 보다 많은 곳들도 이제는 심심치 않게 생겨난다. 이러다가 학교가 사라지면 어쩌지? 정말 그렇게 된다면 나와 어른들의 추억과 기억들도 같이 사라질 텐데 말이다. 이제는 대안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청년과 청소년 아동들에게 쓰는 예산과 vs 노인과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의 비중을 비교해 보면 우리는 더 극명하게 인구감소나 지방 소멸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저 출산과 청년백수 결혼하지 않는 청년세대에게 수많은 예산을 쏟아 부었다고 연일 뉴스와 매체에서 이야기 하지만, 여전히 청년은 시골을 떠나고 다시 지방 떠나 서울로 향한다. 예산이 허튼 곳에 쓰이는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마을을 지켜내려면 보다 본질 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얼마 전 접한 기사에서 폐교위기의 시골 학교 인근 주민과 지자체가 전학을 오는 학생가족들에게 집을 제공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실제로 아이들을 가진 젊은 세대의 부모들은 주거의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집값은 부모의 경제적 도움이 아니면 내 집 마련을 하기 란 하늘에 별 따기가 된지 오래다. 임금의 수준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지속적으로 오른다. 한 아이를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가정을 위해 온 사회가 나서고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그 것은 우리의 마을을 지켜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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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28 19:47

천하제일 호갱이의 혼여기!

소해진 사회복지사 안녕. 라오스에 온 지 3주 지났어. 동남아도, 혼자 여행도 모든 게 처음이야. 회사는 어떻게 했냐고? 한국사회에서 1달 해외 여행하려면 견적이 딱 나오지 않니? 당연히 퇴사했지! 고생한 당신, 관절이 성할 때 떠나라! 겉으로 센 척했지만 출국 날이 하루, 이틀 다가올수록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졌어. 객사한 한국인 발견 한국인 모씨 성폭력 피해와 같은 여자 혼자 여행할 때의 위험 비용 때문에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야. 막상 40리터 배낭을 메고 출국하자 아무것도 아니더라. 나보다 더 큰 배낭 멘 전 세계 여자들도 많아. 물론 나름의 안전 규칙은 있어. 밤늦게 다니지 않기, 지갑과 휴대폰은 꼭 품 안에, 구글 맵스미 켜기,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도움받기! 라오스는 꽃보다 청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고 비방루(비엔티안, 방비엥, 루앙프라방-도시 이름)라는 보편적인 루트도 있어. 나는 다른 루트를 계획했어(사실 계획 따윈 없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근데 웬걸! 나의 위험 비용은 여자라는 정체성보다 소비자로서 정체성에서 핵 망했어. 여행 시작한지 4일째 되던 날부터 천하제일 호구로 등극! 여행사에서 바가지요금과 뚝뚝이(현지 택시)한테 돈을 2배로 뜯긴 거야! 여기는 많은 것들이 정찰제가 아니라 부르는 게 값이라 계속 협상해야 해. 이때부터 호기롭던 포부와 낙관은 땅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회복탄력성 제로가 됐어. 덕분에 나의 상태를 점검했지. 객관적으로 첫 여행, 영알못, 라알못, 돈 계산 어리바리인 내가 판타스틱 한 모험을 계속 할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 보편적인 루트로 가즈아자! 혼자 여행 할 때 자기 욕망을 관찰하고 조절하는 게 중요해! 아~ 무지 덥다. 라오스의 날씨는 510월의 우기와 11~4월까지 건기로 나뉘는데, 지금은 한낮이 38도야. 사람들의 일상은 오후의 더위를 피해 새벽부터 시작되고, 모든 게 느려! 버스도 손님 다 탈 때까지 1시간 기다리는 게 보통이야. 인내심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지! 내가 방비엥이라는 도시에서 충격 받은 이야기했던가! 이곳은 카약킹, 짚라인, 동굴체험이 가능한 액티비티 천국이야. 여행자 거리 중심에 팡팡 노래방이라는 한국 가게가 있는데, 유리창문에 얼짱 몸짱 도우미 항시 대기라고 버젓이 한글로 쓰여 있는 거야!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럽고 해외에서 성매매 업소를 차리는 한국 남자들한테 분노했어! 그냥 노래만 못 부르냐고! 현타 오짐! 지금은 루앙프라방이라는 도시에 있어.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문화재와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이곳에서 4월 13~17일까지 삐마이라고 새해 축제를 했어! 한국의 설날이랑 완전히 딴판이야! 애 어른 할 것 없이 흥겨운 음악을 틀고 트럭이나 오토바이에 탄 채 서로에게 미친듯이 물을 뿌려대. 도시 전체가 밤이 깊도록 쿵쾅대는 거대한 클럽이야! 삐마이 기간에 오지 않았다면 라오스에 대한 인상은 180도 달랐을 거야! 느림보에서 지구 최대 흥부자! 혹시 너도 혼자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일렁인다면, 완전 강추야! 뭐 사기 당하고 무섭고 짜증날 때도 있고 외롭기도 한데!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야!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도 삶도 평온보다 시련에 더 끌리는 법이라고 하던걸, 백퍼 공감! 내가 또 많이 당해본 자산으로 꿀팁도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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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21 19:42

어느 완벽한 휴일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4월의 어느 일주일을 쉴 틈 없이 보냈다. 일도, 공부도, 놀기도 욕심이 많아 잠도 줄여가며 열심히 달렸다. 뿌듯한 일주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 주의 마지막 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온몸이 아프고 열이 났다. 병원을 다녀왔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음날 학교를 갔다가 참지 못하고 다시 병원을 갔다. 독감 판정을 받았다. 병원에서 입원을 권했지만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채로 병원에 누워만 있는 일은 결코 할 수 없었다. 버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일을 했다. 그리고 겨우 잠에 들었을 때에는 이미 늦었었다. 증상이 악화되어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시 응급실 신세가 되었다. 눈물이 났다. 아픔의 눈물이었는지, 안도의 눈물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눈물엔 걱정과 연민이 있었다.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는 걱정, 그리고 이렇게 아픈데 그런 걱정을 해야 하는 나에 대한 연민. 분명 아픔보다 더 컸다. 처음 내가 입원을 거절했을 때 엄마가 그러셨다.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고. 다 끝내지 못한 일들보다 내 몸을 우선으로 여길 방법이 있을 거라고. 그래서 입원을 했다. 그리고 그 일들을 더 이상 어떻게든 끝내려 하지 않았다. 이상한 책임감을 버렸다. 아파서 못했다고, 그저 사실대로 말했다. 감사하게도 질타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제 한결 마음이 편해지나 싶었다. 격리병실을 사용했기 때문에 항상 혼자였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모든 것을 혼자 했다. 부모님도 오래 계시지 못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있어본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무서웠던 밤도 잠시, 혼자라는 생각이 점점 행복했다. 영화도 보고, 낮잠도 잤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건 자유도, 해방감도 아닌 미처 끝내지 못하고 미뤄버린 일들과 지금부터 해야 할 일들이었다. 독감은 기본적으로 5일 입원을 권장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입원 4일차인 금요일엔 면접이 있었고 주말까지 쌓인 일들이 나를 옥죄었다. 결국 노트북을 가져와 병원에서 면접 준비를 했다. 3일차에 퇴원하기라는 목표가 생겼다. 드디어 3일차가 되었고 퇴원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끈질기게 설명한 후에야 동의를 받을 수 있었다. 마스크 절대 착용과 뜨거운 물 자주 마시기, 약 꼭 챙겨먹기 등 수많은 조건하에 퇴원을 했다. 무려 독감에 걸렸는데, 책임감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물론 영화를 보거나 낮잠을 자기도 했지만 진정한 휴식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 퇴원하고 해야 할 일들생각으로 가득했고, 심지어 면접을 위해 일찍 퇴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요가 자세 중에는 완전 휴식 자세라는 것이 있다. 일명 송장 자세라고도 불리며 요가의 마무리 자세로 주로 이용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팔은 편하게 바닥에 내려두며 손바닥은 하늘을 향하게 한다.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온 몸의 힘을 빼고 편하게 호흡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잠이 오지만 피로를 풀어주고 마음에 휴식을 준다. 이렇게 간단한 완전 휴식 자세는 쉬워 보이면서도 체득하기 가장 어려운 자세라고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마 완전 휴식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 휴식,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상상해보면 그렇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여유로운 아침을 먹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길을 걷는 것.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가보고 싶었던 곳을 가고, 저녁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하루를 마무리 짓는 것. 물론 거기엔 반드시 있어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해야 할 일과 미뤄둔 일, 끝내지 못한 일등의 것들을 잠시 잊는 것이다. 가능한 일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하루쯤은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런 어느 완벽한 휴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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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14 20:15

꽃집 주인의 정체성 혼란

김지연 문화기획자 군산에서 꽃집을 운영한 지 4년이 되어간다. 갑자기 꽃의 다양한 매력에 빠지게 되면서 직접 꽃집을 운영하고 싶어졌고, 꽃을 배우기 시작했다.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꽃집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배우면서 나만의 목적을 설정했고, 감사하게도 작은 카페 안에서 꿈에 그리던 꽃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달이 나오는 월급을 포기하고 퇴직금을 써가며 준비했기 때문에 생계의 위협을 느꼈지만 나를 믿고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라는 말을 되새기며 나름 창업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자연스럽고 예쁜 꽃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었고, 소소하고 작은 꽃을 선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집에 가끔 꽃을 들여놓으며 기분전환을 하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 꽃 한송이를 선물하며 선물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한 기억에 나의 꽃이 함께 한다는 그 기쁨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컸다. 그래서인지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있었다. 일부러 나의 꽃을 선택하고 구석진 동네까지 찾아와주시는 분들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으려고, 좋은 날 쓰이는 꽃이기에 더더욱. 그렇게 나는 어느새 꽃집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3년 정도 지났을 때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지역 청소년들도 만나고, 지역 청년들과 함께 다양한 것들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점점 꽃집을 비우는 시간은 늘어났다. 꽃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꽃과 관련된 나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비슷한 일을 하는 청년들과 팀을 꾸려 고되지만 재미난 일들을 작당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종종 생각했다. 나는 꽃의 전문가가 맞을까?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반성하게 되고 뒤처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기도 했다. 자체 합리화든 뭐든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정체성의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나는 꽃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꽃이라는 수단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면서 지역사회에 일원으로 조금이나마 함께 참여하고, 나와 같은 청년들의 시작을 돕고 싶은 꽃집 주인. 참으로 복잡하고 길지만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물론 꽃에 대한 공부와 노력은 지속하면서 말이다. 이런 정체성의 혼란이 복잡하고 괴로울 때도 있지만, 새로운 것을 접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내 삶의 기회이기에 쉽게 떨쳐낼 수가 없다. 요즘은 평생직업이라는 개념이 많이 사라지고 있으니, 나의 다음 직업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시기를 보내면서 정확하게 느낀 것이 있다면, 고민하면서 선택한 만큼 경험치도 크다는 것과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내 주변에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나의 삶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싶다. 머릿속은 복잡하고 혼란스럽더라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아마도 해마다 꽃집 주인의 정체성 혼란이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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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4.07 20:27

산티아고 길

김현두 여행작가 2014년 어느 날 오후 친구 녀석이 선물해 준 배낭 하나가 집에 도착했다. 늘 정서적으로 큰 힘을 주던 친구였던 그가 전해 준 그 배낭으로 인해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지금은 TV에서 심심치 않게 다뤄지는 곳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곳을 친구가 선물해 준 배낭 하나 때문에 떠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 배낭을 받자마자 생각했다. 산티아고에 가야겠는데 싶게 생겼었다. 정말 딱 그랬다. 나는 며칠 후 인터넷으로 스페인 행 티켓을 끊었고, 무작정 떠났으며 그 길을 걸었다. 나는 그런 내 마음의 여유가 좋다.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무모한 용기를 고맙게도 간직한 채 살 수 있는 그런 내가 좋았다. 누구에게는 그냥 배낭하나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산티아고순례길(Camino de Santiago)은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이라는 스페인어이다. 그 거리가 약 800km에 이르는 멀고도 아름다운 길이다. 보통은 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대성당까지의 길을 일컫는데, 실제로 성야고보가 지나간 도보순례의 길을 연결해 놓은 것이다. 이 곳을 걷는 이들은 수많은 마을과 유적, 종교적 유산 등을 만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끝없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아닐까?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밀밭이 펼쳐지고 길가에는 새빨간 양귀비꽃들이 바람결에 몸을 비틀며 늘 내 곁을 지켜주었다. 아름다운 길 위에서 걸음을 재촉하며 며칠이 흘렀을까? 생각했던 것보다 아니 그 이상으로 힘이 들었다. 큰 의미를 두고 떠나지 않으려 했던 여행의 시작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복잡한 내 생각의 잡념들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치고 고된 매일의 걸음이 반복되자 이내 생각을 옮기고 정리하는 것조차 사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저 가이드북만을 보며 걷고 있는 나를 보았다. 사실 마을은 어디에나 있었고, 나는 오늘 단 하나의 마을 만나고 걸어도 무방했다. 단지 내 생각의 쉼이 그 곳에 있지 못함이 문제였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서야 작은 손 글씨 노트에 잠시 펜을 들고서 이러한 생각의 흩어짐을 한 곳에 모아보았다. 강한 줄 알았던 나는 까미노 위에서 나약한 존재였다는 것 을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 때 부터였다. 내 속도와 내가 가는 길을 가야지하고 마음을 먹었다. 비단 길 위에서 뿐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그렇게 하자 다짐하였다. 돌아가면 마주 할 일상까지도 복잡한 세상사도 다 저만치 버려두고 내 길을 걸어가는 것, 그러기로 내 마음에 다짐을 하던 날이었다. 모든 것은 길 위의 풍경에서부터였을 것이다. 벤치와 쓰레기통의 숫자도 달랐고, 피부색도 먹는 것들도 달랐다. 그렇게 내가 살 던 곳으로부터 모든 것을 비교하며 다르다는 것을 알고서는, 모든 골목과 마을을 사진기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에 돌아와 약속이 있어 서울에 다녀온 적이 있다. 신사역에서 나와 가로수 길을 걷는 중이었는데,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잠시 앉아 쉼을 가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길이었다. 가게 앞 화려한 사람들의 옷차림과 비싸보이는 자동차들의 풍경보다는 쉼이 있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지도 듣지도 만난 적도 없는 나에게 부엔까미노(Buen Camino)번역하면 좋은길되세요를 외치는 그 곳의 사람들이 그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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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31 19:59

야동을 끊고 있는 중입니다

소해진 사회복지사 너희 집에 아무도 없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방과 후에 여자 친구들 5~6명이 모여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내 친구 미영이는 성 박사로 유명했는데, 성적 호기심이 왕성하였던 우리는 미영이의 알 수 없는 농담에 웃어 젖혔다. 그 친구가 거실 비디오 위에 올려진 테이프 하나를 틀었다.(고 생각 하지만 나였을 확률이 높다.) 가족 중 누가 빌려놨는지 알 수 없지만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약간 호들갑스럽게 낄낄 거리다가 얼마 후 숨죽이며 관람하였다. 내 야동의 첫 시작이었다. 나중에서야 남성들의 세계에서는 이것은 야동 축에도 못 낀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야동을 본다. 볼 때마다 복잡한 기분이다. 심지어 내 손목을 자르고 싶다. 포르노 산업에서 소비되는 야동은 흔히 말하는 야한 영화 수준이 아니다. 집단 강간, 몰카(불법촬영동영상), 성매매, 아동 성폭력 등으로 얼룩져있다. 반인권적인 내용을 필터링하고 나름 안전한(?) 영상을 찾지만 촬영, 유통, 판매, 소비라는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최근 문화계에서 피해자의 용기 있는 미투로 알 수 있듯, 실상은 전혀 다르다. 성적 흥분의 주요 메커니즘은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이다. 야동을 보면 그 나라의 성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포르노에서 여성들은 극도로 수동적이고 처음에 관계를 거부하다가, 모두 적극적으로 즐기는 설정이다. 한국은 포르노 제작이 불법이지만, 제작된 콘텐츠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본과 유사한 패턴이다. 성적 욕망은 사회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은 평소 현실 관계의 반영이다. 영상 속 재현되는 방식이 폭력적이고 차별적이라면, 그런 모습을 통해서만 성적으로 자극받는다면, 이것을 표현의 자유와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쁜 페미니스트 저자 록산 게이는 우리는 억압이나 처벌의 공포 없이 자신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표현할 자유는 없다.고 하였다. 한국 사회는 남성의 성적 욕망을 본성이라 간주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대하다. 웹하드 업체 대표 양진호에 대한 분노의 시발점은 직원 갑질 때문이지, 불법 촬영 동영상이라는 여성에 대한 성범죄 때문은 아니었다. 승리 버닝썬 게이트, 장자연 씨의 죽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폭력 사건 또한 매한가지다. 하지만 몰카가 불법촬영동영상으로, 성접대가 성폭력으로 언어화되고 범죄로 인식하게 된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이는 전적으로 피해 당사자의 폭로와 저항하는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여성가족부에서 해외불법음란사이트 접속을 차단하였다. 속으로 안도했다. 못된 습관을 정부에서 시스템으로 견제해주니 감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라고, 정부의 방침을 비웃는 우회 접속 방법이 성행하고 있다. 내가 그들과 다른가? 나 또한 소비를 통해 공모했기 때문에 면죄부를 얻을 수 없다. 지금도 웹하드 사이트 성인 카테고리를 완전히 지나치지 못하고 있다. 남성 중심 시선으로 여성을 몸으로 환원하고 성애화하는 게 자연스러워서 탈피하려고 노력 중이다. 다만 당사자들의 삶을 건, 발화에 어떤 식으로든지 수신해야 하지 않을까? 분명한 점은 성범죄자는 엄정히 처벌받아야 하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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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24 19:09

‘데모’를 강요하지 마세요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얼마 전 강원도로 내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내일로 여행은 기차를 이용하여 전국 곳곳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무궁화호, 새마을호를 포함한 ITX-청춘 등 KTX와 관광전용열차를 제외한 거의 모든 노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국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었다. 내일로 티켓은 지정석이 없어 빈자리에 앉더라도 누군가 그 자리를 예매했다면 얼른 일어나 비켜줘야 하고, 카페칸에는 사람이 가득해 앉을 수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그마저도 경험이라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긴 강원도의 낭만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내일로 특성상 기차 외에도 버스나 택시를 많이 이용하게 된다. 묵호에서 저녁 식사 후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경상도 출신이셨던 택시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기사님께서 대학생들이 문제가 많다.며 현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일침을 날리셨다. 기사님은 방학만 되면 놀러 다닐 생각을 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청춘들을 안타까워하셨다. 우리에게 더 힘들어져서 위기를 느껴야한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반값 등록금을 하고 싶으면 한 달만 데모하면 된다고 하셨다. 정치인들이 서로 해주고 싶어 하지만 명분이 없어서 못해주고 있는 거란다. 한 번 해보면 그 다음엔 일자리를 만들어주려고 난리일 것이라며 이 나라는 대학생들이 이끌고 나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들려주신 본인의 대학시절 데모 이야기를 듣는 중 친구가 요즘은 그러다가 잡히면 취업 못하잖아요.라며 입을 뗐다. 그러나 기사님은 사람은 다 쓸모가 있다.며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꼴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 기사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나를 포함한 현시대의 대학생들은 정말 권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밥상을 차려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된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가 문득 그 시절의 데모와 반값 등록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님이 대학생이셨던 시절의 데모는 불합리한 정부에 대한 시위였다면, 반값 등록금시위는 더 많은 혜택을 바라는 시위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혜택이 필요 없어서 데모를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 이화여대 학생들은 최순실 게이트에 기름을 부었다. 우리도 불합리한 공권력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낼 줄 안다는 것이다.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해서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어른들이 청년들을 값어치 있다고 여기지 않고 그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작년부터 내일로 여행 중 코레일 앱이 실행되지 않아 큰 불편함을 겪었다. App Store에 들어가 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용후기가 정말 많았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부분이 고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었다. 그러나 역마다 여행자센터에서는 서로의 QR코드를 찍게 하고,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추가하게 하는 등 이익을 챙기는 데에만 급급했다. 이렇게 데모를 겪어 왔다는 어른들이 대학생들의 이런 사소한 목소리에도 귀기울여주기는커녕 대학생들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려만 하는데 어떤 값어치를 느끼고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그 시절의 대학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시위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나 마음만 먹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시대가 변했다. 그 시절의 대학생들이 변화시킨 대한민국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 힘들었던 시절 본인들의 대학생활을 우리가 반복하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꼰대같은 말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어떤 열정도 느끼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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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7 19:45

적당히 벌고, 잘사는 사회

김지연 문화기획자 불과 몇 년 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열풍이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인기가 많은 책이면서도 일부 언론,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에서는 책 제목과 일부 내용을 언급하며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 라고 통쾌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들 하고, 열심히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면 분명 얻는 것도 많고, 그러다 보면 먼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대학졸업 후 다녔던 첫 직장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면서 나름 청춘을 바쳤습니다. 칼퇴근을 포기하면서 야근에 숙박에 몸과 마음이 힘들 때가 많이 있었지만,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며 생각해보니 정말 열심히 했기에 전혀 후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을 보내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왜 우리는 적당히 일할 수 없는 것일까. 적당히라는 말은 대충이라는 말과는 다른데 왠지 같은 어감으로 느껴져서일까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목표와 가치를 분명히 하고 나의 생활이 가능한 만큼 벌고, 휴식과 나의 시간을 즐기는 것. 전주 청년몰의 초기 슬로건이었던 적당히 벌고 잘살자 이 말이 전 정말 많이 와닿았습니다. 일과 삶을 분리할 것인가 말 것인가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각자가 하는 일에 좀 더 집중하고 오래 유지할 수 있으려면 위와 같은 조절이 더욱 필요해 보이지만 야근이 익숙한 우리나라는 참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창업을 하는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구요. 조직 내에서 이런 이유들로 선배들과 충돌하는 이야기도 종종 듣습니다. 선배의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몇 년, 몇십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환경이기에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 원래 다 그런거야와 같은 이야기들은 더이상 할 말을 없게 만듭니다. 저는 혼자 일을 하면서도 적당히 벌고 잘살자라는 말을 항상 생각합니다. 그래야 애초에 내가 꽃일을 시작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더 오래 이 일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서 집중하고 선택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만큼 일하려고 하고 그렇기에 스스로 내 몸을 챙기게 됩니다. 혼자여서 가능한 것일까요? 이제는 서서히 조직 내에서도 이런 적당히, 선택과 집중의 문화가 많이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본인의 일을 더 사랑하고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나와 내 가족을 챙기지 못해서 직장을 떠나는 일이 줄어들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의 최고경영자와 중간관리자들의 마인드 변화가 필요합니다. 청춘이기에 열정적으로 해야 한다는 당연한 마음과, 본인이 그 시절 분리하지 않았던 삶과 일의 경계를 주입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청춘의 열정과 잘 하고 싶은 마음을 먼저 봐주고, 나 때와는 다른 부분의 지적 보다는 잘 할 수 있다는 지지와 격려도 필요합니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야 일을 잘 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사회가 아닌 정말 선택과 집중을 잘 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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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10 20:01

우리는 어떤 여행을 떠나는가?

김현두 여행작가 얼마 전 우연히 여수관광, 위기를 예감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연히 본 기사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관광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푸른 바다와 오동도, 이순신, 엑스포, 심지어 KTX노선까지 이렇게 수많은 교통 관광인프라가 있는 여수도 관광객이 감소추세라고 한다.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요인들은 다양하겠지만, 계절마다 진행하는 축제들도 한 몫 하고 있다. 봄이 성큼 찾아 온 요즘 본격적으로 예열을 준비하는 여행객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여행자들에게 내가 사는 지역을 만나게 해줄 준비가 되어있을까? 서른 이후 떠난 어느 여행에서 지리산을 벗 삼아 살아온 한 여행자가 내게 이런 말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지리산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산다. 지리산을 팔아먹는 사람, 지리산을 짝사랑하는 사람, 지리산과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지리산은 수십 년 동안 많은 지자체들의 경계에 걸친 채 과거나 현재에도 여전히 가장 큰 관광 인프라가 되어주고 있다. 계속해서 내가 사는 곳을 기준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진안은 마이산이 모든 관광의 구심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관광객의 유입도 줄어들고 지자체마다 치열한 관광객유치 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지자체 마다 SNS에 산발적으로 축제를 나열하고, 영화 같은 홍보를 찾아 떠나왔지만 결국 속빈강정처럼 후회를 안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 홍보예산은 급증하지만 새로운 경쟁력은 글쎄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엇이 경쟁력을 길러 줄 수 있을까? 나는 사람이 그 몫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새로운 여행의 패러다임을 인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마이산만이 아닌 진안을 대표 할 공간과 사람을 발굴해야 한다. 가위박물관에는 가위만 있을 뿐 이다. 케이블카는 머무는 여행이 아니라. 오히려 인근 여행지로 더 빨리 여행객을 유출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수년 전 지자체마다 명산에 구름다리를 놓고 몰려들었던 수많은 등산객들, 하지만 그 인기는 몇 해 가지 못했다. 구름다리 하나를 만나러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왔었지만 그들이 머물 공간도 이야기도 부족했던 탓이다. 진안에는 모래재라는 옛 길이 하나있다. 채 500m 도 안되는 메타세콰이어길에 주말이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길 만으로 끝나서 는 안 된다. 이 모든 것들의 시작과 끝에 사람이 살고 향기 나는 공간들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농부가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 한옥마을에 즐비한 멋스럽고 고즈넉한 식당은 아니지만, 농부와 쉐프의 이야기를 먹고 즐기는 것이다. 그 한 끼의 식사를 찾아 떠나게 하는 힘을 가지자는 것이다. 오직, 마이산을 오기위해 진안을 오는 시대는 미안하지만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누구의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누구의 파스타 한 접시를 먹기 위해, 농부의 고구마를 사기 위해, 어느 카페를 찾아 그렇게 멋진 사람을 먹고 마시기 위한 여행, 누군가의 공간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마이산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마이산이 계속해서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이며, 마이산이 여전히 우리 곁에 그대로 머문다는 것은 가장 큰 관광자원이고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이 가진 힘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울 이야기들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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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3.03 19:36

부모 돌봄이란 무엇인가?

소해진 사회복지사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부모 돌봄을 했거나,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일 것이다. 물론 다른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나 또한 부모 돌봄을 경험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치매로 쓰러지신 후부터 임종까지 돌봄을 했다. 이런 경험은 사적이면서도,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적이다. 2017년 우리나라는 노인이 전체 인구의 14%를 웃도는 고령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막상 노인 돌봄 당사자가 겪는 고충, 갈등, 해결 방법을 듣기는 쉽지 않다. 지난 2월 16일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에서 주관한 비혼 여성, 부모 돌봄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부모 돌봄 당사자가 사례 발표를 했다. 나는 이 자리에 사례 발표자로 참여하였다. 당시 현장의 참여자들은 20여 명이었고, 열기는 뜨거웠다. 사례 발표는 크게 3가지였는데, 일과 돌봄의 양립/ 독박 돌봄, 전업(재가) 돌봄/ 노인 요양기관 이용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언니가 있어 돌봄 노동을 적절히 분배했지만, 다른 두 명의 사례 발표자는 오빠가 있음에도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 채 독박 돌봄하고 있었다. 한 참여자의 질문, 저는 남동생이랑 멀리 떨어져 있는데 동생은 돈만 주고 제가 다 처리하거든요. 앞으로 동생이랑 어떻게 부모 돌봄을 나눌 수 있을까요? 서로 전화로 대화하면 감정이 상할 수 있어요. 카톡으로 했던 일을 공유하고 해야 할 일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이 좋아요라고 사회자의 깨알 팁을 나누자, 탄성을 터뜨리며 좋은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비혼 여성이 돌봄을 하는 경우 돌봄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뿐만 아니라 또 다른 낙인이 존재한다. 네가 시집도 안 가고 쯧쯧쯧 느 오매를 모시고 살아서 쯧쯧쯧 사례 발표자가 동네 어르신한테 들었던 말이다. 사람 구실도 못하는 것이라고 동정하거나, 부모를 돌보고 있음에도 역으로 부모한테 의지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비혼 여성은 자녀 세대의 돌봄 분배에 있어, 1순위임에도 이들을 보는 편견은 강고하다. 그 사이 국가 차원에서는 여성의 노동력을 값싸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이득을 보고 있다. 이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부모 돌봄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했다. 가족한테 털어놓았을 때, 부담스러워하거나 책임의 문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말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홀로 떠안는 괴로움과 분노, 부모와 일상을 보내며 느껴지는 친밀감과 애정, 인간의 쇠락을 지켜보는 슬픔과 비애 등 복잡한 감정을 나누었다. 부모 돌봄을 하며 겪는 가장 큰 고통은 경력 단절, 소득 감소, 신체적인 고통 있지만 상대적 박탈감과 심리적 고립감이 크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사회를 겪었던 일본은 가족회라는 자조 모임이 전국에 3만 개나 될 정도로 활성화되어있지만 우리나라는 개개인 경험으로 국한되어 있다. 정부가 2017년부터 치매 국가 책임제를 주요 국정과제로 시행하고 있다. 노인 돌봄을 국가적 의제로 설정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여러 문제 또한 산적해있다. 무엇보다 돌봄 노동에 대한 재평가를 바탕으로 하여 제도를 점검해 볼 일이다. 우리의 모든 삶은 누군가의 돌봄을 통해 지금 여기 존재한다. 아프거나 아프지 않을 때와 상관없이 일상의 삶은 돌봄으로 채워져 있고, 그 역할이 특정인에게 쏠리지 않도록 감정과 물리적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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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24 18:35

도마뱀이 되지 말기를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개강을 앞둔 요즘, 휴학생으로 보냈던 지난 한 해를 돌아봤다. 참 많은 새로운 것들에 도전했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를 재충전해주는 것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나를 힘나게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여행이다. 어렸을 적 여행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그 여행이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흐르도록 설렘에서 추억에 이르기까지 큰 힘이 되어준다. 그래서 나는 여행이 좋다. 여행은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끼게 해준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많은 다른 사람들이 있을 뿐, 열등한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고,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 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곳은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어렸을 적 유럽여행에서 나는 인종차별을 몸소 느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나 역시 중국이나 동남아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 편견은 중국 교환학생 시절 경찰도 찾지 못했던 택시에 두고 내린 내 가방을 룸메이트의 아버지가 찾아줬을 때, 베트남의 바닷길에서 자전거 사고가 났을 적 길가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또 라오스의 다리에서 오토바이 사고가 났을 적 호텔 직원의 도움을 받았을 때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 자유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들과 소중한 추억들은 내가 어떤 일에 도전할 때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고, 새로운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내 소중한 여행 덕분이다. 일상을 빛나고 힘차게 만들어 주는 것은 나에겐 여행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또 다른 어떤 소중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 사정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꿈, 친구, 가족, 운동, 사랑 등 수많은 것들이 있다. 나는 결코 그것들을 포기한 채 현실에만 열중해서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 꿈꾸는 일을 통해 무엇이든 배우고, 경험하며 얻는 것들이 반드시 일상에 돌아왔을 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도마뱀은 생명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의 꼬리를 끊고 도망간다. 꼬리를 끊어냄으로써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는 존재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그 순간 멀리 도망가는 것이다. 도마뱀의 꼬리는 재생이 가능하지만, 이런 점이 결코 다행인 것은 아니다. 꼬리재생에 많은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하므로 다른 신체 성장과 생식 활동 등을 멈춰야하고, 꼬리를 완전히 재생했다고 하더라도 기존에 가졌던 꼬리와는 모양과 구조 등이 달라진다. 모양은 볼품없어지고, 뼈 없이 힘줄만이 남는다. 그리고 한 번 재생된 꼬리는 다시는 재생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꼬리의 역할이 막중하다.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구애와 짝짓기에도 이용하며, 에너지를 저장하는 창고로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중한 꼬리를 끊어내면 재생된 이후에도 기존 기능의 일부만 보존할 수 있다. 그런데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소중한 꼬리를 끊고 도망가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마뱀 같은 선택을 하는 것 같다. 도마뱀처럼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정말 소중한 것을 포기해가며 다른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면 도마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말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해야 내가 힘이 나고 추진력이 생기는지 고민해보고 실천했으면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지친 일상을 깨워주는 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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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7 18:56

남이 아닌, 나에게 좋은 직업을 선택할 권리

김지연 문화기획자 설 연휴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최근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첫 출근을 앞두고 나눈 이야기. 직원이 친구 한 명 뿐이라 부담과 걱정도 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자율적이고 도전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직업적 가치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게 되었죠. 아주 예전부터 직업적 가치에 대해 관심이 많고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친구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할 일이지만 생계와 연결된 직업이다 보니 직업적 가치관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은 낭비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장래희망, 진로, 꿈의 질문들. 이런 질문의 대답은 직업이 됩니다. 성인이 된 이후 학교 대신 직장을 다니며 생계를 유지하고 소속감을 느끼며,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살아가니 직업은 우리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부분이죠. 하지만 위 질문의 대답은 단순히 직업으로만 작성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직업을 생각하기 이전에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직업을 가지고 어떤 것들을 이루면서 살아갈 것인가와 같은 고민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소년기에 이런 질문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나 물음을 던져주는 어른이 얼마나 있을까요. 좋은 직업을 가져야 돈을 많이 벌고, 명예롭고, 존경받고 잘 산다는 이야기, 그러니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고,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정작 힘들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청년이 되면 혼란스럽습니다. 대학교를 다니긴 하는데 이게 정작 나한테 맞는건지 모르겠고, 어떻게 내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어렵기만 합니다. 뉴스에서는 어려운 취업난에 대해 떠들어대고,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직업(임금이 높고, 복지도 좋고, 인정 받는)을 가지기 위해서는 작은 고시원에 박혀 더 노력하고 공부해야합니다. 정작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내가 행복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저 멀리 둔 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낭비처럼 느껴지게 말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빛이 납니다. 매일이 행복하고 좋을수 만은 없지만, 적어도 직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에 도전하고, 기대하고 가끔 벅차오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남이 아닌, 나에게 좋은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창직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남들과 다르다고, 남들이 가는 길로만 가야한다고 강요받아서도 안되며, 남들보다 느리다고 비난받아서도 안됩니다. 청년사춘기의 시간을 보내며 삶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직업 가치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존중해주세요. 직장 어디 다니냐, 얼마 버냐 라는 질문보다는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해주세요. 이제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직업이 아닌 나에게 좋은, 가치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청년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뉴스에서 직업적 가치가 전혀 없는 사람들의 구속 소식에 혀를 내치며 안타까워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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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0 18:39

비혼을 선택한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만

소해진 사회복지사 내 나이 30대 중반, 주변에서 하는 소리들이 있다. 자기는 언제 결혼해? 부모님한테 효도해야지. 나중에 가면 생각이 바뀌어 결혼 안한 여자들은 이기적이야. 저는 비혼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원색적이거나 애정으로 포장한 비난은 끝이 없다. 직접 대항해 몇 번 얘기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혼을 디폴트(기본값)으로 놓고, 모든 사람의 삶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자리나 직책이 있는 사람한테는 차별적 발언이라고 알려주지만, 보통은 상대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2000년대 초반 비혼이라는 말이 태어나기 전에 쓰였던 대표적인 명사는 미혼이다. 결혼해야 하는데, 아직 못했다는 뜻이다. 사실 결혼 이외에도 내가 아직 못한 것은 수두룩하다. 세계 일주, 영어 마스터, 세기의 사랑, 비혼 여성 노인 공동체 만들기 등. 왜 유독 생애 주기 과업으로 결혼만이 부각되는 걸까? 2000년대부터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졌는데, 비혼이 자주 뭇매를 맞고 있다. 자녀를 원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박 육아, 유치원 대란, 아동 성폭력, 결혼 밖 출산에 대한 낙인, 안전하지 않은 사회. 그 모든 사회적 비용을 비혼에게 요구하는 것은 안일하고 치졸한 방법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은 늦은 새벽, 누군가 현관문 번호 키를 미친 듯이 눌러댔는데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행여 내가 여자인 게 들통나면 더욱 위험해질까 봐, 술 취한 아저씨가 어서 사라지기를 소망했을 뿐이다. 내 주변 지인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바로 경비실에 연락하라며 대처 방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를 통째로 압도했던 공포감이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못했냐고 묻는 것은 그 공포감을 1도 몰라서 하는 얘기다. 그러니까, 결혼해야지! 혼자 살면 무섭잖아.라고 채근할 것 같은 당신. 이진송 작가의 말처럼 우리 사회 안전 비용을 남편에게 아웃소싱하는 게 가능한 걸까? 그것은 불가능할뿐더러(성폭력 범죄자의 80%가 아는 사람) 바람직하지도 않다. 혼자 살든, 둘이 살든, 그것과 상관없이 안전은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다. 비혼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딱히 없다. 누군가와 결합보다 나를 돌보고, 키우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들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다. 한마디로 결혼은 손해 보는 장사!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라고 다짐한 딸의 세대인 나는 불행의 자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겠으나 굳이 그런 결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나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는 2016년 기준 539만 8000가구다. 1인 가구 비중이 30%에 육박했다.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N포 세대의 좌절로써 결혼을 포기하는 세태도 반영됐지만, 우리와 비슷한 일본을 보더라도 4인 가구 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옵션이 되는 사회, 누구와 함께 사느냐는 자격의 문제보다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로서 타인과의 친밀성, 책임감, 돌봄 같은 덕목이 중요해지는 사회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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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7 19:21

청춘의 값으로

김지윤 청춘부보상 홍보담당 소중한 것들을 포기한 채 어떤 일에 열중해본 경험이 있다. 많은 것들을 잃었지만 또 많은 것들을 얻었다. 정말 하고 싶었던 활동도, 소중한 사람도 나를 스쳐갔지만 이따금 성장한 나도, 또 다른 소중한 사람도 얻을 수 있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나는 청춘부보상에 겁 없이 뛰어들었다. 청춘부보상은 전북지역 청년들이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이다. 사회적 기업의 물품을 전국의 온 지역에서 발로 뛰며 세일즈 하고, 그 금액의 일부만으로 숙식을 해결해 기부금을 조성한다. 그렇게 모인 기부금은 도움이 필요한 지역 기관의 햇살이 되고, 그 활동 자체만으로도 사회적 경제조직의 활성화를 가져다준다. 청춘 부보상의 기획단들은 3개월 동안 대장정을 기획하고 100여명의 대원들을 이끌게 된다. 나는 그런 청춘부보상의 기획단이었다. 일주일간의 대장정을 위해 3개월을 고생도 사서 하는 젊음으로, 돌도 씹어 먹는 패기로 달려왔다. 그렇게 온 열정을 바친 대장정엔 웃음도, 눈물도 많았다. 씻는 시간도, 화장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나를 믿고 따라 온 대원들을 보니 더 잘하고 싶었다. 매일 밤 기획단들의 방에는 불이 꺼질 날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속이 상해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래도 힘이 됐던 건 우리였다. 혼자였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들이었다. 함께라서 때로는 쓰라렸고 때로는 뿌듯했다. 우린 그렇게 청춘의 값으로 하나씩 극복해나갔고 서로가 참 힘이 됐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의 소중했던 1년이 꽉 채워진 듯한 활동이었다. 청춘부보상은 2012년 시작된 1기부터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 대장정을 떠난다. 10기 겨울 대장정의 기획단이었던 나는 1년이 지난 지금 12기의 운영단이 되었다. 정말 많은 지원서를 봤다. 기획단이든 대원이든 청춘부보상의 문을 두드리는 많은 사람들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포기하기도, 여행을 미루기도 하면서 찾아온다. 몇 년 전부터 모집 기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도, 청춘부보상을 위해 취업을 잠시 미루던 사람도 있었다.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모든 걸 바치는지 궁금했다. 도대체 취업의 문턱을 넘기도 벅찬 청춘들에게 청춘부보상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이 바로 청춘부보상의 발걸음이 계속되는 이유이고, 그것이 바로 청춘이다. 그들의 도전엔 이유가 없다.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해보고 더 성장하고 싶은 청춘만이 있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마냥 즐겁던 나의 하루에 현실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짧아진 하루가 마음을 점점 조급하게 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겁이 나기 시작했다. 세상을 너무 많이 알게 된 탓인지 아니면 한치도 모르는 탓인지 고민이 됐다. 지금 청춘은 그렇다. 경험은 하고 싶지만 현실은 조급하다. 그래서 많은 것들을 포기한 채 새로운 도전으로 향한다. 사회적 경제조직의 활성화를 위한 활동이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이어가는 것은 청춘들만이 할 수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춘의 도전은 응원 받아야 마땅하다. 청춘의 값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값을 흔쾌히 지불한 청춘들에게 고난이란 나무엔 행복이란 열매가 반드시 열린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청춘의 한 계절을 바쳐 지역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청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하고 있는 게 맞는 지도 모른 채 뒷걸음질 치지 못해 앞으로 나아가는 청춘들에게 너무나 잘 가고 있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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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20 18:19

청년, 로컬 지향의 시대

김지연 문화기획자 전주에서 태어나 군산으로 대학교를 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취업도 하고 창업도 하게 됐습니다. 5년의 직장생활과 3년의 매장운영을 하면서 자연스레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 머물고 있는,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는 청년들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심지어는 군산에 연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여행을 왔다가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창업을 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물론 큰 지역이나 도시로 떠나고 싶은 청년들이 더 많이 있겠지만, 요즘은 자신의 고향이나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작은 지역으로 와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지역, 지방에 와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고민하면서 쉽지 않은 선택을 하는 청년들의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작년, 동네 서점에서 로컬 지향의 시대라는 책을 발견하고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구입했습니다. 일본의 사례들을 보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과 닮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공감했습니다. 큰 도시로 젊은세대들이 많이 떠나면서 남겨진 작은 지역이나 마을에 다시 청년들이 들어오면서 변화된 이야기와 사례들을 보며 최근 몇 년 사이 느끼는 우리나라 청년들의 움직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머물거나 다시 돌아오는 움직임이 단순한 이유는 아니겠지요. 큰 도시로 가게 될 경우 그만큼 많이 경쟁해야 하고 치열하게 살아나가야 한다는 부분이 큰 것 같습니다. 나와의 경쟁보다는 남과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큰 부담을 주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자신의 가치와 목적을 담은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서 가장 큰 매력을 느낍니다. 청년들이 로컬을 지향하면서 생겨나는 매력적인 공간과 주인을 닮은 매장들. 그 안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역에 머물게 된 이야기,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이야기,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서 자리 잡게 된 이야기 등. 어느 지역 구석에 있지만 찾아서 가고 싶게 만드는 힘 말입니다. 제가 지역을 여행할 때 크게 중점을 두고 보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조금 불편한 점은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과 목적을 중심으로 혼자 운영하다보면 매일 똑같은 운영시간이 아닐 수도, 갑작스러운 휴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존에 있던 주변 어르신들은 청년들을 게으르다, 베짱이 같다 라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듣기도 합니다. 새벽 같이 문을 열고 하루종일 땀 흘리며 일하고, 늦은 시간에 문을 닫았던 어르신들의 세상에서는 이해가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저녁 늦게 문을 닫지는 않지만 일을 하는 시간 만큼은 집중하고 고민하고 지역까지 찾아와주는 사람과 소통합니다. 직접 소통과 SNS를 통한 간접 소통도 합니다. 도시에서 느꼈던 물리적인 치열함과 경쟁이 아닌, 정서적인 치열함과 나와의 경쟁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청년이라는 시간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지역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많은 청년들이 지역을 지향하길, 더 멋진 로컬 지향의 시대를 우리나라 청년들이 만들어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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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3 18:38

더 이상 새만금에 바칠 청년의 미래는 없다

김현두 여행작가 전라북도에 살아가면서 새만금을 볼모로 허비 할 시간 따위는 더욱 없을 것이다. 촛불의 힘으로 무너진 정권 그리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화두로 떠오르는 게 있다면 바로 청년이지 않을까? 싶다. 선거 때면 청년단체들을 만나고 지자체마다 청년관련 사업을 내세우고 있지만, 청년은 언제나 세상의 관심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투표를 행사 하지 않는 세대로 낙인찍히고, 여전히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게 지내는 세대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청년들에게 닥친 문제들을 모두 청년들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지금 세상이 과연 공정한 기회를 청년에게 주고 있는가? 라는 반문을 하고 싶다. 청년세대들도 대통령탄핵과 그 속에서 만난 촛불의 역사를 통해 스스로 정치에 대한 생각들도 진지하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라북도에서 청년의 흔적을 찾아보고자한다면 무엇이 있을까? 전라북도 청년정책포럼4H지자체 마다 하나 둘 씩 들어서는 청년몰그 중에서 청년몰은 어느 날부터 관광 난개발 못지않게 지자체들이 서로 나서서 난 발되는 사업이 되고 있다. 충분한 고민과 지역 상권에 대한 이해 없이 청년들답게 험지로 내 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에게 잊혀 진 공간과 지역에 들어가 청년의 그 무엇(알 수 없는)으로 그 곳을 살려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 상권과의 분리, 교통 불편, 또는 지역의 색깔이나 청년들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예산분배식의 청년몰(청년정책)이 너무 많다. 중앙정부의 청년예산을 지자체에서는 가져다 쓰는 것에 급급할 때 가 있다. 그렇다보니 건물을 짓거나 리 모델링을 하는 식의 보여 지는 정책투자들이 난무하고, 프로그램이나 컨텐츠에 쏟아야 할 예산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게 된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가져다 준 들 고민 없고, 준비 없이 어떻게 그 예산을 쓸 수 있나? 그렇게 사용되면 그 예산은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새만금을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하지 않는 세대이다. 선거 철 마다 정치권에서 내뱉는 새만금 정책들은 청년이 생각하는 전북의 미래가 아니다. 우리는 전라북도에 남은 루저가 아니라 내 고향을 사랑하고 지켜내는 청년으로서 전라북도를 바라보고싶다. 재정자립도의 수준이나 인구의 규모로 내가 있는 곳을 평가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공으로 진짜가 되어서 살고 싶다. 세상에 실패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헛된 약속 따위는 청년들에게 하지 않기를 조심스레 바래본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안정적인 주거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다시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고민하는 여러 활동가들이 생겨나고 그 활동가들이 하는 일들이 새로운 직업의 분류로 인정되면 어떨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에서 고민과 문제를 풀어내는 리빙랩처럼 직업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접근하고, 지자체는 정책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와준다면 그 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일이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양성을 가지고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아낌없이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더 이상 청년은 아프니까 청춘일수 만은 없는 일이다. 청년의 시선과 생각으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갈 때 전라북도를 떠나라라는 말 보다는 너의 오늘을 응원해! 너의 도전을 지지해! 이렇게 안부를 물어주는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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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06 19:20

소수지만 확실한 디딤판이 될 당사자를 위한 전주달팽이집

김창하 민달팽이주거협동조합원 2월 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전주달팽이집이 벌써 2018년의 끝자락 까지 와있다. 누가 봐도 무모했고, 사업으로서의 지속가능성, 공공으로서의 효과 둘 중 어느 하나 장담할 수 없었지만, 이번 사업이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 있는 구성원과 도전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도움을 주었던 많은 분들 덕에 올 한해를 무사히 넘긴 것 같다. 물론 쉐어하우스가 뭔지도 모르고 들어와 잘 살아준 식구들이 제일 신기하고 고맙다. 마치 지역의 청년의 모든 주거문제를 해결할 것 같은 마음으로 시작했고, 협동조합으로서는 나름 거액의 돈을 들인 것과 다르게 입주를 시작한 시점부터 전주달팽이집은 전주 청년을 위한 달팽이집 이 아닌 전주의 직장인 청년을 위한 달팽이집으로 시작했다. 사회주택이라는 공공성을 가진 사업이지만, 서울처럼 사회주택을 통해 시중가보다 싼 월세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긴 힘들었다. 독립을 경험해보고 싶은 지역 청년 누구나 살 수 있도록 월세의 문턱을 낮추고 싶었으나, 지역에서 민간단체에서만은 풀 수 없다는 한계를 체감했다. 살아보니 월세를 낼 수 있다고 해서 청년 누구나 살 수 있는 집도 아니었다. 마당, 옥상 거실, 부엌, 화장실 등 공용공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집은 손이 많이 가서, 식구들과 살림을 적절히 나눠서 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살림에 대한 부담이 전가되던지, 누구도 살림을 안하면 집이 망가지고 불쾌해지는 공간이 되 버린다. 적어도 살림을 나누는데 동의하고 자신의 몫은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전주달팽이집에 살 수 있다. 집안의 따뜻함과 안정감도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닌, 매일매일 사는 사람들의 손길로 만들어 진다는 것을 살림을 경험해 보며 알았다. 반상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살기 불편한 곳이기도 하다. (가족도 마찬가지이지만) 다양한 사람,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달팽이집에 살고 있고, 저마다 주거공간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제각각이다.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달에 한번 반상회 자리에서는 다른 식구들이 이해 할 수 있게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충분히 대화하고,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수준에서 협의하고, 협의된 내용을 이행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습관이던지 사고방식이던지 변화를 겪게 된다. 결국 한 사람을 이해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해해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반상회에 참여는 달팽이집 살이의 필수요소이다. 이외에도 민달팽이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를 통해, 거주하고 있는 달팽이집이 조합원의 자산이며 조합원들을 위해서 집을 소중히 다루었으면 하는 당부와 월세는 조합의 자산으로 다음 달팽이집을 제공하는데 보탬이 되며, 월세의 일부는 조합의 자산을 관리하는 상근자가 마땅이 받아야 하는 일에 대한 보상이자 생계를 위한 비용이므로 월세를 내는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살아 보기도 전에, 당부와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문턱을 만들어 내는 것 같지만, 1년을 지내보니, 전주달팽이집은 모두를 위한 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가오는 해에는 주거환경과 관계의 변화를 통해 당사자가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확실한 디딤판이 될 수 있도록, 발을 닫기 전에 명확히 보이고 디딘 후 올라 설 수 있는 안전하고 분명한 안전망 중의 하나로 다듬으려 한다. 2019년도 달팽이집살이를 통해 당사자의 삶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화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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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30 19:08

편의와 불편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이런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도시의 미관을 해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용 노란 보도블록을 제거했다는 뉴스 말이다.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은 비장애인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다. 오히려 몇몇 비장애인들은 보도블록의 여기저기 튀어나온 노란 발판이 도시의 미관을 해치니 없애거나 기존 보도블록과 같은 색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다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하지만 발판이 노란색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구분이 잘 되는 색상이 노란색이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도시의 미관을 해치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의견은 관철되었어야 한다. 어떤 요구가 타인의 기본권을 해칠 우려가 있다면 다수의 기분이나, 불편이 먼저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 그 선택이 누군가의 생을 위협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필요와 불편함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만 이런 위협을 가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에도 위협을 가하고 있다. 최근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플라스틱 빨대의 사용을 금지하자고 했다. 어떤 음료 체인점에서 플라스틱 빨대의 사용을 철회하고, 종이 빨대를 도입했다. 종이 빨대는 플라스틱 빨대보다 내구도가 낮고, 사용감도 불편하다. 사람들은 종이 빨대로는 음료를 섞을 수도 없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종이가 눅눅해져 빨대의 기능도 잃어버린다며 푸념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불편함을 선택한 것이다. 왜 플라스틱이라는 좋은 발명품을 두고 흐물거리는 종이를 선택했을까? 몇 년 전, SNS를 통해 화제가 되었던 동영상은 여러 사람의 공분을 샀다. 바다 거북의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아주 깊숙이 끼어있었다. 그것을 사람들이 힘겹게 제거하고 바다로 다시 보내주는 영상이었다. 몇 분이나 지속되는 영상을 보고 사람들은 거북이 불쌍하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와 같은 말을 남겼다. 비슷한 영상으로 무인도에 플라스틱이 가득 떠내려가 쓰레기 섬이 되어버린 영상 역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분명 그때 사람들은 편의를 위해 인간들이 사용했던 플라스틱이 쓰레기이자 무기가 되어 자연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모습을 봤다. 꼭 저 두 가지의 영상이 아니더라도 수없이 다양한 영상을 통해 기억해왔다. 무리한 일회용의 사용은 자연을 해치고 있다고. 그리고 얼마 전 종이 빨대가 도입되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또 화를 냈다. 불편한 것이 이유였다. 지난 영상과 같은 이야기가 수없이 반복되는 동안 불쌍하다며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은 그 대안에 대해 다시 불편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의 불편은 때때로 어느 생명에게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을 가한다. 물론 현재의 대안으로 나온 종이 빨대 역시 바다 대신 산을 갉아먹고 있다. 아마 종이 빨대가 최종적 대체제가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또 다시 나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말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생활에서 점차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나가는 것이 맞다. 나 하나 줄인다고 티가 나겠어? 라는 생각이 든다면 말을 조금만 바꿔보자. 나 하나 더 보태보자.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 철거, 더빙 영상에 대한 불만, 노년의 디지털 소외를 고려하지 않은 오프라인 매장의 변화와 같은 사례들은 삶에서 기본적인 것조차 공유하지 못하게 되는 위협이 될 수 있다. 때로는 나의 불편이 누군가의 편의와 효율을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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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23 19:28

한복 입지 않은 지역 미디어는 가능한가

김신철 마시즘 에디터 한복 입고 나오면 채널 돌린다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지역 방송국의 프로그램 편성에 밀리자 친구가 말했다. 그는 조건을 이어 붙였다. 한옥마을 가면 돌린다, 판소리 부르면 돌린다. 친구의 불평도 이해할 법하다. 왜 우리 방송은 한복을 입고, 한옥마을에 가며, 판소리를 부르는 걸까? 그것은 관광객이 느끼는 전주의 이미지일 뿐, 우리가 한복의 핏을 가지고 감탄하고 전율하는 사람은 아닐 텐데 말이다. 하지만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말을 들으면 과연 전주다운 것은 무엇인지, 전주다운 것을 바라는 사람은 있을지 근본적인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지역 미디어 관련 컨퍼런스들에 참가하면 비슷한 고민을 느낄 수 있다. 답은 없는데 숙제만 쌓여가는 느낌이랄까. 젊은 독자층은 텔레비전과 신문을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터넷에서 지역의 뉴스를 보는 것도 아니다. 이런저런 고통배틀을 하고 나면 결국 그래도 지역 미디어가 필요해라는 구호로 끝이 난다. 뿌듯하긴 했는데 돌아가다 보면 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니! 지역 미디어가 필요하다는 건 원래도 알고 있었잖아! 문득 생각해본다. 우리의 그 비장함이 오히려?지역 미디어를 살리지 못한 독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 오히려 지역 미디어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역이라는 키워드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의 인터넷 환경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단군 이래 콘텐츠를 이렇게 대충 만들어도 성공할 수 있는 시대. 많은 고민과 의미를 치열하게 짜낸 콘텐츠 보다도 쉽고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재미있는 콘텐츠에 열광하는 때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보다 현장의 스마트폰 동영상이 설득력도 전파력도 높은 시대다. 이제 제작비와 파급력은 비례하지 않는다. 그저 약간의 감각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니 우후죽순 작은 미디어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남은 녀석은 성장한다. 물론 이런 인터넷 미디어 환경에서지역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서울도 메리트가 없다. 비싸. 마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루는 마시즘은 딱히 지역성을 드러내지 않지만 지역 미디어다. 사무실이 점점 집으로 가까이 가고 있다. 가끔 서울에 미팅을 가면 왜 전주에서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집이 편해서요 우리 콘텐츠는 만드는 사람이 편하게 만들어야 보는 사람도 편하다. 그러니 멀리 떠날 일이 없다. 한 가지 더. 기존의 미디어들도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한다면 좋겠다. 꼭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모든 독자를 잡아야 하는 걸까? 본인 업무만 소화하기에도 벅찬 인력을 사진과 포토샵과 동영상까지 제작해서 터미네이터로 만들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 것이다(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다 한다는 게 함정. 그래도 재밌어서 한다). 더욱 힘을 빼야 한다. 그래서 더욱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다 할 수 없다면 젊은 대학생들에게 그들만의 미디어 실험을 만들어 보라고 기회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짓고 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초인적인 능력으로 지역 미디어를 지키고 있는 분들에게 존경과 함께 걱정의 메시지도 드리고 싶다. 내년에는 고민도 부담 없이,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이웃들을 많이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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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16 19:44

지역을 살리는 천명의 기적

김은총 이상한계절싱어송라이터 잡지 [Wired]의 창간자 케빈 켈리는 「천명의 진정한 팬(1000 True Fans)」이란 책을 통해 개인 창작자는 골수팬 1000명만 있으면 먹고 산다고 주장한다. 성공하는 소수 20%들만 누리는 블록버스터급 히트, 소위 대박을 터트리지 못하더라도 천 명의 골수팬들이 미적지근한 팬들에 비해 더 많이 구매하고, 창작자에게 직접 구매하고, 새로운 후원 모델을 지지해준다면, 창작자들은 굶어죽지 않고 지속가능한 창작활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내가 지역에서 음악을 시작하고 가장 많은 시간 고민해온 주제 중 하나도 지역에서 음악하며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이다. 독립적인 주체로서 내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찾는 건, 한 사회구성원으로서 필수적이고 이 시대 청년들이 앓는 공통과제로써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음악창작을 업으로 하는 뮤지션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만이 아닌 직업으로서 음악활동의 지속유무가 달려있는 난제다. 그동안 지역에서 음악을 지속하는 방법은 레슨이나 다른 일용직 일을 병행하거나 창작을 최소화하고 공연수익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순수하게 음악창작활동만으로 이룬 성공사례는 매우 드물다. 음원수익은 소수에게만 편중되어있고, 지역은 최소한의 지역음악시장조차 매우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지역에서는 여유 있게 음악활동 하는 것을 바라거나 상상할 수 없고,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창작하며 활동하는 팀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케빈 켈리의 골수팬 모델을 지역에서 이룰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지역 내 골수팬들을 확보하고, 그들의 소비를 통해 창작자들의 작업이 지속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창작자들이 안정적으로 창작을 이어갈 수 있고, 지역만의 독창적인 창작물이 탄생할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고무적인 것은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창작자 후원 모델이 최근 꽤 많은 성공사례를 낳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지역에서도 천 명의 힘이 발휘된 사례가 있다. 바로 천년전주사랑모임에서 매년 연말 가장 활발하고 유의미한 활동을 한 문화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천인갈채상이다. 천 명의 시민들에게 1인당 1만원씩의 후원금을 모금하고, 후원한 시민들이 직접 후보를 추천, 모바일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그렇게 시민들 천 명이 자발적으로 예술가들에게 상과 상금을 수여함으로써 지역예술가들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상의 의미를 넘어선다. 상을 수여하는 시민들에게는 직접 지역예술가를 후원하는 특별한 경험을 갖게 하고, 지역예술가들은 지역민들에게 자신의 활동성과를 인정받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렇게 시민들과 예술가는 상을 매개로 만나게 되고, 그 속에서 진정한 골수팬도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상을 통해, 케빈 켈리가 말하는 천명이 한 창작자를 살리는 사례를 어렴풋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 개개인이 천 명의 수를 모으기엔 쉽지 않지만, 우리 모두는 얼마든지 천 명 중의 한 명이 될 수 있다. 골수팬 모델은 지역의 다양한 창작자들에게 얼마든지 적용가능하고,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 다양한 분야의 창작물을 지속적으로 소비해주는 것만큼 지역문화와 예술을 살리는 확실한 길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화를 통해, 지역민들이 더 풍요로워지고 풍족해질 수 있다면, 1000명이란 숫자는 결국 우리 모두를 살리는 숫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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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2.0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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