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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교육문화회관 앞뜰에 가면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무명 순직교육자 추모탑이 서있다. 추모탑은 원래 전주종합경기장 내에 있었지만 지난 2001년 6월 이 곳으로 옮겼다. 무명 순직교육자 추모탑은 지난 1968년 전북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제자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다 순직한 선생님들을 기리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여 세워졌다. 당시 62개 학교 2만5000여명이 참여해 47만8360원을 모아 1968년 5월 15일 착공, 그 달 30일에 완공됐고 제막식은 그 해 10월 8일 가졌다. 추모탑에는 ‘스승님 감으신 눈망울에, 눈망울이 남기신 광막 속에 트이어온 역사여 길이 빛나라’라는 신석정 시인의 추모시와 함께 86명의 순직교육자 이름이 새겨져있다.이 무명 순직교육자 추모탑이 세워진 것은 고창 성내면 용교초등학교 한상신 선생의 제자들을 위한 살신성인이 단초가 됐다. 한상신 선생은 1958년 3월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5월 고창 상하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1964년 9월 1일 용교초등학교로 자리를 옮긴 한상신 선생은 4학년 담임을 맡아 가을 소풍에 나섰다. 아이들이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기차를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소풍 장소를 방장산으로 정했다. 정읍 평야를 달리는 기차를 보려면 높은 산을 올라가야하기 때문이었다. 소풍 날인 10월 17일,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전갈에도 아이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40여명을 데리고 방장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참 산을 오르는데 산 위쪽에서 큰 바위덩이가 굴러 내려오면서 아이들을 덮치려는 순간, “모두 피하라”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몸을 던져 바위를 막아섰다. 아이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한 선생님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졌고 정읍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이튿날 스물넷 꽃다운 나이에 마지막 소풍이 되고 말았다.한 선생은 자신이 죽기까지 사랑하던 제자들 곁 학교 뒷동산에 묻혔고 지난 1997년 10월 그 제자들이 고창군 성내면 양계리 고인의 묘지 앞에 추모비를 건립했다. 앞서 전라북도 교육자들이 모은 정성으로 지난 1978년 고창 새마을공원에 선생을 기리는 추모탑이 세워졌고 1995년 10월 군산사범학교 동문회에서도 기적비를 건립했다. 고창교육청에선 매년 10월 16일 추모행사를 개최해오고 있으며 지난 1984년부터는 한상신 선생 추모 종합예능경연대회도 열고 있다.사혼불멸(師魂不滅). 선생의 추모비에 새겨진 숭고한 제자사랑과 희생이 지난 15일 제34회 스승의 날을 맞은 교사들과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과 도전과 사표(師表)가 되고 있다.
부안 계화도는 원래 섬이었다. 계화도가 육지와 한 몸이 된 것은 1963년부터 1968년 사이에 이루어진 계화도와 부안군 동진면을 잇는 방조제가 축조되면서부터다. 육속화((陸續化) 된 계화도의 환경은 빠르게 변했다. 섬을 지탱하고 있던 갯벌이 농경지가 되면서 주민들의 삶도 바뀌었다. 주민들은 갯벌에 나가 백합을 잡고 꼬막을 캐는 고된 노동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주민들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던 갯벌이 사라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더러는 섬을 떠나고, 더러는 새로 생긴 땅위에 조성된 주택단지로 이주해 갯일 대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갯일은 확실히 고된 노동이었다. 물때에 맞추어 갯벌에 나가 잡은 백합을 부안 읍내까지 이고 지고 걸어 나가 보리쌀 됫박과 바꿔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주민들의 삶은 늘 궁핍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농사지을 땅을 얻으면 갯일보다 풍요로운 삶이 안겨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던 것은. 그러나 갯벌 때신 얻은 땅이 주민들에게 돌려준 것은 풍요로운 삶만은 아니었다. 갯벌의 가치에 다시 눈을 떴지만 그 많던 갯벌이 사라진 자리, 주민들의 상실감은 컸다. 사실 계화도 뿐 아니다. 그 이후로도 갯벌은 오랫동안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져 왔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이루어져온 간척사업이 그 증거다. 갯벌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 지금, 서남해안 갯벌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서남해안 갯벌은 전북의 곰소만 갯벌, 전남 신안 다도해 갯벌, 여수와 순천 고흥 보성을 잇는 여자만 갯벌, 충남의 유부도 갯벌의 일대를 이른다. 3개의 광역단체와 8개의 시·군이 이 갯벌을 끼고 있다. 서남해안 갯벌은 이미 지난 201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됐다. 정식 등재의 가능성이 큰 셈이다. 등재를 추진하는 기획단은 오는 2019년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목표다. 그런데 곰소만 갯벌은 과제가 있다. 곰소만의 한 부분을 잇고 있는 부안 지역 주민들이 사유재산권 침해를 우려해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안의 지역사를 돌이켜보니 주민들의 입장이 이해된다. 짐작컨대 이미 수많은 갯벌을 잃어버린 부안 주민들에게는 ‘보존’이든 ‘개발’이든 모두 주민들의 삶으로부터 갯벌을 분리시키는 일이란 생각이 들것 같다. 갯벌의 가치를 지키는 일의 진정성을 의심받는 일은 안타깝다. 개발에만 목매거나 보존만을 앞세워 무조건 규제해온 대가다.
신언서판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당나라 사람들은 인물을 평가하거나 선택할 때 신언서판을 보았다고 한다. 신(身)은 사람의 풍체와 용모를 의미하고, 언(言)은 언변을 뜻한다. 말을 예의바르게 하는지, 또박 또박 의미 전달을 확실하게 하는지, 논리정연한지, 지식은 갖췄는지 등이 언변 중에 무심코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書)는 필적(筆跡)인데, 글씨를 통해 역시 그 사람의 지성과 감성을 가늠할 수 있다고 보았다. 판(判)은 판단력이다.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한다면 자격 미달 인간상이다. 신언서판에 그 사람의 마음씨, 인간 됨됨이가 묻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예부터 사람의 생김새, 말씨, 글씨, 판단력을 중요한 잣대로 사용한 것이다. 최근 정치판이 태풍권에 휩싸였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정가를 강타했다. 경남 도청에 앉아 있던 홍준표 지사, 서울 삼청동 청와대 아랫집 국무총리 공관에 머물던 이완구 전 총리를 덮쳤다. 태풍은 끝내 이완구 의원을 국무총리 자리에서 끌어내렸고, 검찰은 8인의 성완종 리스트 가운데 홍준표 지사를 소환 조사한 뒤 일단 돌려보냈다. 검찰은 이번 주 중 이완구 의원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검사 옷을 벗고 정계에 진출, 지난 20년 동안 원내대표와 대선후보 경선 출마, 경남도지사 당선 등 화려한 정치 이력을 써 온 막강 실력자다. 검찰 소환조사를 받고 도정에 복귀한 그는 1억 원에 양심을 팔만큼 타락하지 않았다며 성완종으로부터 1억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이완구 전 총리도 역시 3000만원 수수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이들이 끝까지 혐의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결정적 증거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동안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과거 행적을 조사, 복원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홍준표, 이완구 등과의 관련성을 얼마나 입증할 수 있을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정치인들은 조선시대 표현대로 하면 선비이자 양반이다. 신언서판을 갖춘, 양심과 학식, 사리판단 능력을 두루 갖춘 인격체다. 그러나 신언서판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사상의학을 정립한 조선말 의학자 이제마는 사상체질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생활, 행동거지를 오랫동안 수차례 관찰하고 점검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했다. 제 아무리 언변좋고 번지르르 해도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이대로는 전북이 발전할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전북이 낙후된 원인을 정치인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아졌다. 모임에서 국회의원 이야기가 나오면 욕부터 퍼붓는 사람들이 늘었다. 결론은 똑똑한 국회의원이 없어 전북이 발전하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각종 지표상으로 전북은 더 이상 나락으로 빠질데가 없다. 빈곤의 악순환 마냥 서로 헐뜯는 부정적인 현상만 나타난다.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을까. 이제와서 남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내탓이 크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선거 때마다 아무 생각없이 특정 정당 후보에 몰표를 안겨준 게 실책이었다. 특정 정당 공천만 받아오면 무조건 찍어 주었던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간 지역감정에 의한 한풀이 선거가 지속되다 보니까 아까운 사람들이 많이 낙선했다. 능력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 못되고 의외인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국회의원이 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야 한다고 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된 경우도 있었다. 지난 1988년 이후 전북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함량미달인 사람도 섞여 있다. 묻지마식 투표를 하는 바람에 옥석구분을 제대로 안했기 때문이다.지금 시중 여론을 종합하면 몇몇 국회의원을 제외하고는 국회의원을 잘못 뽑았다고 힐난한다. 심지어 도의원 수준 밖에 안되는 사람이 국회의원을 하고 있을 정도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19대 국회의원들의 정치력이 너무 떨어졌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간 지역구 의원들이 특권은 다누려 놓고 해놓은 일이 뭣인지를 알 수 없다고 맹공을 퍼붓는다. 지역에 현안이 생길 때마다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했는지 의문 간다는 사람도 있다. 전반적으로 국회의원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예전보다 높다.이 정도 불만이면 물갈이 폭이 커야 한다. 그런데도 막상 선거가 닥치면 또 특정정당 후보를 찍는다. 그래서 악순환이 거듭된 것처럼 지역발전이 안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잘못했으면 표로 심판해서 교체하면 그만이다. 타 지역에서는 의정활동을 잘못하면 주민들이 소환해서 책임을 추궁할 정도로 깐깐하게 군다. 도민들이 양반기질이 강해서인지 앞에서는 비판 못하고 뒷담화나 까고 있으니 지역이 발전할 수 있겠는가. 말따로 행동 따로하는 이중성이 지역발전을 발목 잡는다. 내년에 어떤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과거처럼 특정정당 공천장 받은 사람을 그대로 뽑으면 전북의 장래는 기대할 게 없다. 상무이사 주필
‘호남정치 복원’이란 용어가 총선과 대선 패배 이후 새정치연합 당 대표 경선 등 정치이벤트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2·8전당대회를 앞두고도 문재인, 박지원, 박주선 의원 등이 ‘호남정치 복원’ ‘호남 적자(嫡子)론’을 거론했다. 정동영 전 의원 역시 탈당하기 전인 작년 10월16일 전주를 방문해 ‘호남정치의 복원’을 강조했다. 4.29 재보선에서 광주 서구 을에 출마한 무소속 천정배 의원도 호남정치를 살려내겠다고 공약해 주목 받고 있다. 호남정치 복원이란 말이 자주 쓰이는 건 당에서 호남출신 정치인들이 소외돼 존재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야권의 최대 지지기반이면서도 정작 호남출신 정치인들이 당 지도부에서 소외돼 호남인들의 뜻을 제대로 반영치 못한 정치적 현실을 극복하자는 취지이겠다. 그러나 비판 받을 소지도 다분하다. 호남출신 정치인이 당의 지도자로 나서기 위해 지역주의에 호소한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송재복 호원대 교수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고 지역을 고립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호남정치 복원은 따라서 단순히 호남의 지역주의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호남의 정신을 잇는 정치를 복원한다는 뜻으로 사용할 때 비로소 타당성이 있다고 하겠다. 호남정신은 민족적,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힘 있게 떠받친 가치와 저항정신이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식의 애국정신이랄지 5.18민주화운동의 반독재투쟁 정신, 동학농민혁명이 상징하는 제폭구민과 반외세 반봉건 정신 등이 그러한 예다.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두고도 호남정치 복원이라는 말은 반복돼 사용될 것이다. 문제는 호남정치를 누가,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에 있다. 새정치연합은 지금 야당성, 계파, 리더십 논란에 휩싸여 있다. 대선, 총선에 이어 매번 패인분석만 하다 날 새게 생겼다. 패인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이걸 모르는 게 새정치연합의 문제다. 호남정치 복원은 통합과 혁신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분열하면 내년 총선도, 대선도 필패다. 4.29재보선이 남긴 교훈이다. 전북으로선 걸출한 정치리더를 키워내지 않으면 호남 내에서도 소외받고 말 것이라는 게 또 하나의 고민이다. 수석논설위원
지난 1971년 도시의 무분별한 난개발을 방지하고 자연환경보호를 위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지정됐다. 사유 재산권 제한과 개발제한에 따른 일부 폐단도 있었지만 환경 보전과 도시의 무질서한 팽창을 방지하며 순기능적 역할을 해왔다. 특히 도시개발로 인한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녹지축을 구축하면서 도심의 허파로서 기능을 담당해왔다.이 같은 ‘녹색 성역’을 주민불편 해소를 이유로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 3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그린벨트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전체 3868.3㎢의 개발제한구역 가운데 233.6㎢가 해제되는 가운데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 수도권이 97.9㎢에 달한다. 이는 해제되는 전체 면적의 42%를 차지한다.문제는 수도권 그린벨트의 빗장이 풀리면서 수도권 집중이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수도권 집중현상 때문에 지방은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마당에 수도권 그린벨트마저 풀리면 지방은 빈껍데기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전라북도를 비롯 비수도권 자치단체가 그린벨트 해제를 반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도권 그린벨트는 대도시와 인접해서 교통이나 환경 등 입지여건이 좋은 반면 땅값은 상대적으로 저렴해 각종 개발행위에 유리한 점이 많다. 실제 대다수 자치단체는 해제된 그린벨트에 산업단지와 주택단지 등을 조성해 왔다. 이명박 정부 때도 보금자리주택 건설을 위해 수도권 그린벨트를 대거 풀면서 경기 하남 등 일부 지역 땅값이 들썩거렸다. 당시 이들 지역 땅값 상승률이 전국 1~2위를 다투면서 그린벨트 투기 열풍이 불기도 했다.정부는 이번 그린벨트 해제 이유를 주민불편 해소라고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기업 입지 허용 및 수도권 규제 완화나 다름없다. 당장 18만㎡ 규모의 경기 과천 복합문화관광단지나 서울 강동구 상일동 엔지니어링 복합단지 등 5곳이 혜택을 본다. 여기에 80%이상이 그린벨트로 묶인 경기 하남과 과천 광명시 등에 신도시 개발이 가능해진다. 이명박 정부 들어 수도권 규제 완화 방침으로 전라북도로 이전하는 수도권 기업이 크게 줄어들었다. 2010년까지만 해도 매년 50~60개 기업이 옮겨왔지만 2011년 이후 10여개 안팎으로 대폭 줄었다. 되레 수도권으로 유턴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수도권 집중은 국가균형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유럽 등 선진국에선 우리나라처럼 수도권 집중현상이 없다. 지역과 수도권이 함께 발전하고 지방과 서울이 동반 성장하는 천년대계를 세워야 마땅하다.
세계적인 저명 역사학자들이 지난 5일 ‘일본의 역사가들을 지지하는 공개서한’이라 명명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성명에 이름을 올린 학자는 9개 국가의 역사학자 187명. 퓰리처상을 수상한 허버트 빅스를 비롯해 디어도어 쿡과 하루코 다야 쿡 부부, 존 다우어, 브루스 커밍스, 피터 두스 같은 세계적 역사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규모로도 그렇지만 참여 학자들의 이러한 면면 때문이다. 참여자들은 대부분 일본학과 일본사를 전공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명서에 ‘일본은 연구지역일 뿐 아니라 제 2의 고향’이라고 밝혀놓았다. 그만큼 일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의미일터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집단성명까지 냈을까. 이들이 주목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성명서에는 관심을 끄는 내용이 있다. ‘여성인권이 본질인 위안부 문제가 한국과 중국내에서 민족주의적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본질적인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민족주의적 비난으로 문제의 본질이 왜곡되면서 역사적 사실 추구라는 기본적 가치를 놓치고 있다는 학자들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그렇지만 이번 성명서의 본류는 따로 있다. 학자들이 근본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실체다. 지난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의회에서 가진 합동연설에서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인도적 안전의 중요성, 일본이 다른 나라들에 가했던 고통에 직면하는 문제를 언급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기대했던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 없었다. 이번 집단 성명을 주도한 알렉시스 더든 교수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미국 의회연설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발언을 내놓을지 주시했지만 오히려 과거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데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성명은 “과거 고노담화가 그랬던 것처럼 아베 정권이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역사왜곡과 정치쟁점화를 하지 말라는 직접적 호소”라고 밝혔다.일본의 역사왜곡은 시대를 넘나든다. 가깝게는 고노담화가 그 증거다. 사실 지금까지 이루어져 온 행태를 보면 아베정권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일이라면 국제사회의 비판이나 외교적 마찰 따위(?)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다. 전례 없는 187명 역사학자들의 집단성명이 국제사회의 큰 주목을 끌고 있지만 그 영향력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세계가 온통 혁신, 창조라는 화두에 빠져 있다. 인류 역사에서 성장 동력이 된 것은 혁신의 결과물들이다. 등자와 편자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원거리 무역과 정복전쟁은 불가능했다. 증기기관이 발명됐기 때문에 거대한 교통 혁명이 일어났고, 인터넷과 메모리칩은 정보 혁명으로 이어졌다. 최근의 혁신 열풍은 스마트 혁명을 일으킨 스티브 잡스가 출발이다. 최대 경쟁사인 삼성 뿐 아니라 모든 기업이 혁신에 몰두하고, 많은 국가들이 미국의 실리콘밸리식 혁신 거점을 만들고 있다. 혁신만이 치열한 국가간, 기업간 경쟁에서 살아남을 보증수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오늘날 대한민국이 OECD국가, 1조달러 무역국가, 세계 10위에 달하는 경제국가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끊임없는 혁신에서 비롯됐다. 정부가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구축하는 등 기업의 창조와 혁신을 독려하는 것도 혁신만이 미래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한국·미국·유럽연합(EU)·일본·중국 등 5개국의 기술력을 평가하는 ‘2014년도 기술수준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정부가 2년마다 실시하는 이 평가는 정부가 집중 투자하는 10대 분야, 120개 기술을 대상으로 하며 전문가 3,939명이 각국의 기술력을 수치화 해 비교한 것이다. 기술력이 쟁쟁한 선진국들과의 비교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10대 분야 중 전자·정보·통신, 의료, 바이오, 기계·제조·공정, 에너지·자원 등 9개 분야에서 중국에만 앞섰다. 항공우주 분야에서는 중국에도 크게 뒤졌다. 우리의 전체 기술수준은 미국을 100%로 했을 때 78.4%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술력 격차는 4.4년이었다. 2010년 2.5년이던 중국과 우리나라의 기술 격차는 2014년 1.4년으로 좁혀졌다. 중국은 18개 세부 기술에서 우리보다 앞섰다. 우리보다 기술력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중국의 추격이 거센 것으로 확인됐다. 120개 세부 기술에서 우리는 인간친화형 디스플레이, 초정밀 디스플레이 공정 및 장비, 스마트 그리드 등 3개 기술만 미국과 EU, 일본 기술수준의 90%를 넘었다. 2012년과 비교해 74개 기술은 이들과 격차가 좁혀졌지만 45개 기술은 커졌다. 최근 전북의 경쟁력으로 부상한 탄소섬유는 차별화된 기술이지만, 일본에 훨씬 뒤져있다. 계속되는 혁신이 필요하다.
4·29 재보궐 선거가 야당 참패로 끝나면서 내년 총선으로 관심이 모아졌다. 도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관악을에 출마한 정동영과 광주 서구 을서 출마한 천정배 후보에 관심이 컸다. 그 이유는 정동영의 홀로서기가 가능할 것인가와 호남 새정연 텃밭에서 천정배가 승리할 것인가가 관심사였다. 정동영과 천정배는 신기남의원과 함께 지난 2000년 DJ정권 때 당내 정풍운동을 주도한 멤버로 노무현 정권 때는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당의장과 법무부장관 등을 맡았다.정동영 한테 야권 분열로 인한 책임론이 제기되지만 도민들은 천정배가 뉴 DJ를 내세우며 호남정치 복원을 외친 그점에 관심이 오히려 높다. 5선의 천정배가 호남정치 복원을 외치면 내년 총선 때 새정연에 식상해서 등돌린 도민들이 천정배와 손잡은 후보를 지지할 공산이 크다. 그 만큼 새정연에 대한 믿음이 예전 같지 않고 친노세력에 대한 반감과 경계심이 강해졌다. 일부에서는 “당 주류인 친노가 해놓은 일이 뭣인지 모르겠다”면서 “그들은 수권세력이 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도내서도 친노가 경선때 얄팍한 대중조작기술로 국회의원 후보가 된 사례가 있다”면서 “이들 한테 더 이상 지역정치를 맡겨서는 안된다”고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상당수 도민들은 “그간에는 새정연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해 금배지를 달아 줬으나 지역으로 돌아 온 게 없었다”면서 “이번 광주 서구을서 무소속 천정배 후보를 당선시킨 것처럼 도내서도 선거혁명을 이뤄야 전북이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민 가운데는 “경선 때 당심을 업고 공천만 받으면 국회의원이 되는 잘못된 정치구조가 전북을 피폐하게 만들었다”면서 “내년 총선 때는 당 대 당 아니면 무소속이라도 경쟁을 벌이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여론주도층들은 “도내 국회의원들의 정치력이 너무 떨어져 중앙정치 무대에서 전북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다”면서 “존재감 없는 국회의원도 유권자가 잘못 뽑아서 만든 것인 만큼 유권자 잘못이 크다”고 힐난했다. “앞으로는 선거기술자를 국회의원으로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면서“도민들이 진정한 주인으로 대접 받고 살려면 광주 전남사람처럼 자기주장이 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정배의 승리를 놓고 도민들도 “뭔가 전북도 새판짜기가 필요한 것 아니냐”며 “새정연 후보라고 과거같이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새로운 리더십을 출현시키려면 유권자가 깨어 있어야 가능하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행동하는 양심만이 전북을 살려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무이사 주필
지난 2000년 12월 집권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 일대 파문이 일었다. 당내 소장파인 바른정치모임 소속 의원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권노갑 최고위원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른바 정풍운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정풍운동의 중심에는 ‘천신정’, 즉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등 트로이카가 있었다. 전남 신안과 남원, 순창 출신인 이들 세 사람은 15대 때 함께 국회에 입성했다. 재선의원시절 감히 살아있는 권력인 동교동계 실세들의 2선 후퇴를 요구하며 개혁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여세를 몰아 노무현 대통령 당선 뒤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고 17대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하면서 일약 원내 1당으로 올라섰다. 이후 정동영은 열린우리당 의장과 통일부장관에 이어 집권여당 대통령후보에 오르는 등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천정배 역시 집권여당 원내 대표에 이어 법무부장관으로 입각했다. 신기남은 정동영으로부터 당의장직을 넘겨받아 여당 대표가 됐다.하지만 이들 트로이카의 정치적 명운이 엇갈리고 있다. 정동영은 2007년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 후 민주당을 탈당, 전주덕진 재선거에서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19대 때 강남 을에서 다시 낙선한 뒤 이번 4·29 재보선을 앞두고 다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관악 을에 출사표를 냈지만 3위에 그치고 말았다. 더구나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긴 야권분열의 책임까지 떠안게 돼 정치적 입지가 바늘 꽂을 곳보다도 좁아졌다. 4선 관록의 천정배 역시 19대 총선 때 서울 송파 을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렇지만 이번 4·29 재보선에서 호남정치의 부활을 내걸고 새정연을 탈당해 광주 서구 을에서 무소속으로 5선 고지에 올랐다. 그는 호남 정치권의 중심으로 급부상하면서 내친김에 내년 총선 때 호남 전 지역 공천을 호언하고 있다. 그에게 DJ이후 정치적 무게감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신기남은 강서 갑에서 내리 3선을 했지만 18대 때 안방을 내줬다가 19대 때 권토중래했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여전히 중진으로서 활동하고 있다.이들 3인방 가운데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정동영이지만 지금은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관악 을에서 정치적 부활을 꿈꿨으나 패착을 한데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하면서 국민모임의 추동력마저 잃었다. 전주 덕진에서 마지막 재기를 노릴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잃어버린 명분과 민심을 되돌리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소석(素石) 이후 전북의 정치적 재목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조선왕실의 마지막 회화가 공개됐다. 지난 28일부터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실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그림은 두 점. 벽화로 제작된 ‘봉황도’와 ‘백학도’다. 애초 이 그림은 역대 왕비들의 거처였던 창덕궁 대조전 안 동쪽과 서쪽 벽에 그려 넣은 그림이다. 벽화인 만큼 크기도 가로 5m 세로 2m가 넘는 대작이다. 1920년 일제강점기, 당대 일급 화가들이 그린 마지막 궁중회화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전통산수화풍에 서구적 화풍이 결합되어 근대과도기 화풍을 보여주는 수작으로 꼽힌다. ‘봉황도’는 산수화로 이름을 날렸던 오일영과 이용우의 합작이고, ‘백학도’는 채색인물화로 유명했던 이당 이은호의 작품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3년 벽화 원본을 보존하기 위해 벽에서 떼어내 보존처리하고 대조전 벽에는 새로 제작된 모사본을 붙였다. 물론 이번 처음 공개된 것은 진본이다.전주에도 귀중한 유산이 있다. 역사적으로도 회화사적으로도 가치가 특별한 ‘왕의 초상’ 태조어진이다. 어진은 당대를 통치한 조정과 국가의 상징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지만 태조어진은 조선 창업자의 초상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더한다. 어진을 모시기 위해 세운 공간을 진전이라고 하는데 태조 어진을 모신 진전은 조선왕조의 본향인 전주와 태조가 태어난 영흥, 태조가 성장한 개성, 고구려 수도였던 평양,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세워졌다. 그러나 모두 소실되고 전주의 경기전의 ‘태조어진’만 살아남았다. 게다가 조선시대 왕의 초상화 중에서 전란을 견디고 화재를 피하여 살아남은 어진은 태조 어진과 영조 어진뿐이다. 특히 태조의 어진은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그린 전신상으로는 유일한데다 초상화의 최고봉으로 꼽혔다. 이런 이유로 태조어진을 모셨던 전주 경기전은 회화사를 전공하는 사람에게는 꼭 들러야 하는 성지 같은 곳이었다. 경기전 안에 어진박물관이 세워진 후로 어진을 보러오는 관객들이 더 늘고 있다. 지난해 통계를 보니 130만 명이 박물관을 들렀다. 그러나 관객들이 박물관에서 만나는 어진은 사실 진본이 아닌 모사본이다. 진본은 11월경 박물관 개관일에 맞추어 2주일 정도 공개될 때만 만날 수 있다. 태조어진은 회화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회화적으로 보자면 모사본과 원본의 차이는 매우 크다. 진본을 보고 싶은 마음은 전문가든 일반관객이든 마찬가지일터다. 진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렸으면 좋겠다. 지혜를 모으면 답이 있지 않을까.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맞춰 새로운 화음과 선율로 노래 부르는 합창단원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노래 실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합창은 혼자 부르는 노래가 아니기 때문에 노래 실력만 좋아서는 안된다. 구성원 간 화합하고 배려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함께 노래하는 공동체 활동이니만큼 음악적 재능이나 노래 실력과 더불어 소통과 조화, 균형 등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30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라면, 30명의 단원이 선율과 가사에 깃든 감정을 서로 공유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최고의 합창이 이뤄진다. 그래서 합창으로 하나가 되려면, 최고의 합창단이 되려면 구성원 모두가 이해와 배려, 감사하는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한다. 합창의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들의 노랫소리를 잘 경청하고 배려하고, 또 그에 맞춰 자기 노래를 부르는 데서 꽃피워진다.세계적 합창 지휘자로 손꼽히는 윤학원 명예교수(75·중앙대학교 음악대학)가 지난 28일 군산을 찾았다. 그는 국내 합창계의 대부다. 합창이 빈약하던 1970년부터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을 이끌고 해외공연을 다녔고, 그가 배출한 현역 지휘자가 70명에 달한다. 그가 인천시립합창단을 맡은 후 2009년에 미국 합창지휘자연합회(ACDC) 창립 50주년 기념무대에 올랐는데, ACDC는 미국 전역의 합창단 40개와 세계 4대 합창단만을 선별해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합창의 대부가 지난해 인천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에서 물러난 뒤 서울 자양교회 시온찬양대 지휘자 등으로 활동하며 여전히 합창 일선에서 뛰고 있다. 군산합창연합회가 이날 군산 남부교회에서 마련한 ‘윤학원 교수와 함께하는 합창세미나’에는 군산지역 합창 애호가 수백명이 참석, 그의 합창강연과 즉석에서 펼쳐진 합창 지도를 경청했다. 윤 교수는 이날 남부교회 찬양대가 부른 ‘그가(우효원 곡)’ 등 4곡의 합창을 들은 후 “곡과 가사에 깃든 기쁨과 슬픔, 평화와 고마움 등 감정을 잘 담아내야 좋은 합창이 된다”고 조언했다. 성대만으로 소리를 내지 말고 공기를 적절히 활용해야(성대 반, 공기 반) 호소력 짙은 노랫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주제의식을 갖고 템포와 엑센트를 정확하게 할 것, 파트간 조화를 이룰 것, 아름답게 할 것, 가사의 뜻을 느끼고 감동이 있는 합창을 할 것 등을 주문했다. 군산합창연합회가 올 가을 계획하고 있는 군산 합창 대향연이 기대된다.
도내 시장 군수들은 한결같이“중앙에 큰 인물이 없어 일하기가 힘들다고”고 볼멘소리를 한다. 유신 때나 군부독재 시절에도 전북 출신들이 곳곳에 박혀 일하기가 수월했는데 MB정권 이후에는 씨가 말라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 총리만해도 5공 때는 김상협 진의종(고창), 김영삼정부 때는 황인성 (무주) 고건(군산), 노무현정부 때는 고건 한덕수(전주)가 발탁돼,보이지 않게 전북 발전의 후원군 역할을 했다는 것. 총리가 전북 출신일 때는 도지사부터가 자유롭게 중앙부처를 왕래하면서 국가예산을 확보하기가 용이했다. 하지만 MB 정권 이후에는 총리는 고사하고 장차관도 없어 전북 몫 확보하기가 버겁고 힘들다는 것.유신정권 때는 정치권에 소석 이철승씨가 떡 버티고 있어 웬만한 부처 일은 전화 한통화로도 해결했다. 중앙정치 무대에 큰 사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참여정부 시절 김원기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사부였던 관계로 국회의장이 돼 지역 일을 원활하게 풀었던 일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전주고법 유치 문제도 참여정부 시절에 전북 출신 인사들이 법조계 등 힘 있는 부처에 다양하게 포진했던 관계로 힘이 모아지면서 이뤄진 것. 그 당시에도 김원기 의장의 막후 역할이 컸다. 김의장이 국회의장으로 있을 당시 정읍시장이었던 유성엽 현 국회의원이 국가예산 확보를 쉽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유 시장이 찾아오면 해당 부처 장차관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지역현안을 그 자리서 해결해 줬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언감생심이다.단체장들이 중앙부처를 상대로 국가예산을 확보할 때 상황에 따라 지역구 의원의 도움을 받지만 각 부처에 통하는 인맥이 없으면 명함도 못내밀고 허탕치기 일쑤다. 장차관 못지 않게 중요한게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등 고시 출신 파워엘리트 들이다. 이들 관료들을 알아야 사전에 정보를 파악해서 국가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각 부처에 전북 출신 간부들이 없어 단체장들은 별의별 궁리를 다한다는 것. 남 소개를 받아 타 시도 출신 유력 인사에 매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철저히 인맥으로 얽혀 있는 중앙부처에서 그 만큼 전북이 타 시도에 경쟁력이 뒤처져 있다.그렇다고 전북 출신 유력인사가 중앙 부처에 없다고 하소연만 할게 아니라 전북인맥을 종횡으로 찾아서 활용하는 게 급하다. 송하진 지사는 파벌로 나눠진 의원들과 현안이 있을 때마다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서 전북의 이익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정치권이 단합하지 않으면 전북의 힘은 분대전투력 밖에 안된다. 지역구를 서울 종로로 옮긴 정세균의원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필요한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무이사 주필
수형자 한 명에게 들어가는 돈은 연간 2000만 원대에 이른다. 9급 공무원에 맞먹는 비용이다. 이를 빗대 교도관들 사이에서는 재소자를 ‘10급 공무원’으로 부르기도 한다. 국가 녹을 먹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국가 녹을 먹는것도 팔자를 타고 나야 한다고 한다. 팔자에 없으면 법망을 이리저리 빠져 나가, 국가 녹을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다. 무기형을 선고 받고 징역살이를 하는 죄수가 무기수(無期囚)다. 그들에겐 희망이 없을 것 같다. 절망에 빠져 고통스럽게 죄값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목표를 세워 열심히 노력하는 수형자들도 있다. 징역을 살면서 화장지 제조공장 같은 자립형 공장에 취업하면 매월 25∼30만원, 최고 45만원까지도 번다. 전공을 살려 공부하는 수형자들도 있다. 전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무기수 신창원은 독학사(獨學士) 준비를 하고 있다. 독학 학위 규정에 따라 국가가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에게 주는 학사학위다. 한때 모범수 생활을 한 무기수는 20년 형으로 감형 받기도 했다. 만기 1∼2년을 앞두고 가석방되는 수형자들도 있었지만 지금 이 제도는 없어졌다고 한다. 다만 교정성적이 우수한 수형자에게는 귀휴(歸休)가 주어진다.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심사를 거쳐 수형자에게 잠시 휴가를 주는 제도다. 형기의 3분의 1이 지나야 하고 무기수의 경우에는 7년이 지나야 한다. 전주교도소에 수감중이던 무기수 홍승만씨(47)가 지난 17일 고향인 경기도 하남으로 4박5일 귀휴를 나간 뒤 오리무중이다. 한달 전 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귀휴를 신청했고 영치금 300만원 정도를 챙겨 친형과 함께 고향으로 떠났다. 펜팔로 알게 된 여성에게 혼인신고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사실도 밝혀졌다. 가석방을 노리고 혼인을 제안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1996년 강도살인죄로 수감돼 19년째 복역했고 행형은 모범적이었다고 한다. 미귀(未歸)가 장기화되자 직원을 따라 붙이는 이른바 ‘대동귀휴’를 하지 않은 걸 꼬집기도 한다. 그렇다고 귀휴 탓만 할 건 아니다.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모범적 수감생활을 하면 희망이 있다는 제도적 장치도 차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살만한 동기부여가 없으면 절망에 빠지게 되고 절망에 빠지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지금 이걸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석논설위원
장수 방화동계곡을 오르다보면 용소(龍沼)를 지나 널따란 바위 가운데 작은 물웅덩이 하나가 있다. 꼭 작은 세숫대야처럼 생긴 곳인데 이곳을 정승탕이라 부른다. 그 연유는 황희 정승에서 유래됐다. 1418년 조선 태종 때 이조판서였던 황희는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 폐위에 맞서 장자를 폐하고 아랫사람을 세우는 일(廢長立幼)은 재앙을 부르게 되는 근본이라며 반대하다 태종의 진노를 사서 유배를 당한다. 남원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황희는 세종 즉위 4년(1422년)에 왕의 부름을 받자 이곳에서 목욕재계(沐浴齋戒)한 뒤 상경해 24년간 재상을 지냈고 영의정만 18년을 역임한데서 후세 사람들이 이곳을 정승탕이 불렀다. 지금도 이곳 정승탕을 찾는 사람들은 꼭 세수를 한번씩 한다. 유종근 전 도지사도 대권도전 때 이곳에서 얼굴을 씻은 적이 있다.대쪽 같은 소신과 원칙으로 명재상(宰相)과 청백리의 사표(師表)가 된 황희 정승이 생뚱맞은 논란에 휩싸였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며칠 전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해 이완구 총리의 낙마를 거론하면서 “조선 명재상으로 추앙받는 황희 정승이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간통도 하고 무슨 참 온갖 부정청탁에 뇌물에 이런 일이 많았다는 건데 그래도 세종대왕이 이분을 다 감싸고 해서 명재상을 만들었다”고 말해 파문이 일고 있다. 당장 장수 황씨 대종회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대종회 원로단 회의에 이어 오늘 회장단 회의를 거쳐 김진태 의원의 발언에 대한 공식 대응방침을 결정한다.황희 정승에 대한 기록은 세종 10년 6월 25일자(1428년 8월 6일) 세종실록에 나온다. 세종과 황희 모두 세상을 떠난 뒤 사관(史官) 이호문이 추가한 내용으로 황희의 부정부패를 고발하고 있다. 승려로부터 황금을 받았다며 황희를 ‘황금 대사헌’으로 지칭하고 간통·살인범인 여성을 자기 집에 숨겨주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매관매직과 뇌물을 받고 옥살이를 면해주었다는 내용 등이다.이와 관련, 단종 즉위년(1452년)에 영의정 황보인을 비롯 김종서 정인지 정창손 최항 등 9명이 회의를 열고 “우리 아홉 사람이 이미 모두 듣지 못하였으니 이호문이 어찌 능히 홀로 알 수 있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사필(史筆)은 다 믿을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라며 삭제나 개정의견 등을 냈다. 하지만 작성된 사초(史草)를 고쳐 한번 그 실마리를 열어 놓으면 나중에 폐단을 막기 어렵다하여 삭제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우리나라 대표적 청백리를 폄훼해서 현직 총리의 비리 의혹을 희석시키려는 김진태 의원의 언동은 치졸하기 짝이 없다. 재갈은 말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골목길’이 도시를 살려내고 있다. 대구의 ‘근대골목’이 그 증거다. ‘근대골목’이란 이름은 다소 낯설지만 적어도 대구의 구도심에서는 지역의 근대사를 이야기로 담아낸 근대골목의 존재가 빛난다. 대구 중구는 역사적 전통과 근대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몇 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다른 도시의 구도심 거개가 그렇듯 대구 중구 역시 근대자산들은 방치되고 공동화된 거리는 활기를 잃었다. 2000년대 중반 새로운 작업이 더해졌다. ‘일상장소 문화공간화사업’과 ‘근대문화공간디자인개선사업’에 선정되면서 구도심의 변화가 시작됐다. 지금은 꽤 이름난 상품이 된 ‘대구 근대골목투어’는 그 결실이다. 대구근대골목투어는 2008년에 시작됐다. 첫해 방문객은 300명이 채 안됐지만 6년만인 지난해에는 근래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김광석 길 방문객까지 67만 명이 찾았다는 통계가 있다. 놀라운 변화다. 중요한 것은 방문객 수가 아니라 골목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다. 근대문화골목길은 1.64㎞, 2시간 정도 걷는 거리다. 골목투어에는 유난히 젊은이들이 많다. 근대라는 주제도 그렇지만 요절한 가수 김광석을 추모하는 ‘김광석 거리’에 관심이 쓸리고 있는 덕분이다. 2010년에 조성된 이 거리는 350미터에 이르는 길지 않은 길이다.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이야기로 입힌 다양한 벽화와 조형물은 통행로로서의 기능에 그쳤을 골목길을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공간으로 바꾸어놓았다. 거리를 끼고 있는 방천시장은 찾아오는 방문객들 덕분에 활기를 띤다. 지역주민들이 반가워하는 이유다. 물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관광 목적만 앞세워 방문객수에만 집중하다보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상업화로의 변질이다. 우리 지역에도 아름다운 골목길이 많이 있다. 5-6년 전, 전주 한옥마을도 적잖은 골목길이 살아 있었다. 한옥마을은 그 골목길들로 인해 더 아름다운 마을로 기억됐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좁디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담장과 담장이 어깨를 맞댄 틈 사이에 또 다른 골목길이 놓여있던 공간. 그 골목길을 걷다보면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이집 저집 대문도 담장도 쳐다보며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옥마을 골목길의 대부분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골목길의 존재는 그렇게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남아 있는 골목길의 존재도 위태롭다. 다른 도시의 ‘골목길 귀환’이 부럽다.
소설 ‘혼불’로 유명한 작가 최명희는 1985년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월간 전통문화에 소설 ‘제망매가’를 연재했다. 여성 명창 안향련의 가련한 죽음에 관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다. 전주와 완주가 배경이고, 이 지역 인물과 풍경, 민담과 설화, 민요, 굿 등이 오롯이 배어 있다. 하지만 제망매가는 미완이다. 연재 도중 잡지가 폐간됐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최명희는 계속 이어진 혼불 연재 때문에 제망매가 집필을 재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았으니 일반인들이 최명희의 소설 제망매가를 책으로 읽을 기회는 없었다.그 소설 제망매가를 최명희문학관이 세상 사람들 앞에 선보이고 나섰다. 올해로 개관 9주년을 맞은 최명희문학관이 21일부터 5월5일까지 한옥마을 부채문화관 지선실에서 제망매가 삽화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판화가 유대수씨와 서양화가 황진영씨가 소설을 읽고 작업한 판화와 펜화 작품이 더해져 눈길을 끌고 있다. 소설의 특정 대목 상황에 걸맞는 그림을 유대수 작가는 판화로, 황진영 작가는 선이 가는 펜 드로잉으로 작업했는데 소설 속 인물의 감성이 섬세하게 드러난다. 소설 속에는 1960년대 전주의 풍경과 역사 인물 등이 가득하다. 소리광대 임호근의 한 세상 소원은 명창이다. 최명희 작가는 임호근이 명창을 꿈꾸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완주 출신의 권삼득 명창이 부친의 강력한 반대에 맞섰다가 결국 파문 당하면서까지 소리꾼의 길을 걸었던 이야기를 절묘하게 접목시켰다. 또 한벽루를 지은 최담과 함께 조선시대 명필 이삼만도 등장시킨다. ‘그날도 그들은, 한벽당의 옛 주인 월당 최담 선생의 유허인 월당지 주변 대숲에 이르러 이삼만의 글씨를 어루만져 보았던 것이다.’전주천변의 풍경도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연날리는 패들은 쇠전 강변 언저리로부터 매곡교를 지나 전주교가 가로 걸린 초록바우 동천에 이르기까지 가득하였다.’경기전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조선을 세운 임금의 관향이라해서, 그 선조의 뼈가 생겨난 전주에, 경기전을 세운 뒤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고,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엄숙하게 분향 제전을 받들었던 곳이, 이제는 허물어져 담장조차 무너지고 있었다. 지난 5백 년 동안, 누구라도 말에서 내려야 했던 경기전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게 울창한 아름드리 고목들이 얼마든지 있었고…’ 소설 제망매가는 살아 있는 전주 완주 역사 교과서다.
기업인 가운데 성완종만 유력 정치인들에게 돈을 줬을까. 국민들의 시각은 그렇지가 않다. 아직도 기업하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힘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보험 성격의 돈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그간 IMF를 거치면서 관행이란 이름으로 묵인되어온 불법행위가 형사 처벌을 받으면서 차츰 제도 중심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정치가 부정부패로 얼룩져 OECD에 가입하고도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정체 돼 있다. 우리 정치가 고비용 저효율을 내는 구조라서 다른 분야가 잘 되어도 시너지 효과를 못내고 있다.국회의원들의 중앙정치 말고도 지방의원들이 하는 지방정치는 어떨까. 엇 비슷하다.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와 맞물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생활정치 본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1년에 지방자치제 부활로 도지사 시장 군수를 직접 주민들이 선출하지만 아직도 절름발이식이다. 중앙당에서 지방의원까지 공천권을 틀어 쥐고 중앙정치에 예속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의 사병이나 다를 바 없다. 무소속 지방의원은 국회의원 눈치 안보고 소신껏 의정활동을 하지만 정당공천 받아 지방의원이 된 사람은 그렇지 못한게 현실이다.재정자립도가 빈약한 각 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국세의 지방세 전환이 이뤄지지 않아 각 자치단체는 재정을 중앙정부에 의존한다. 이같은 틀속에서 지방정치는 중앙정치를 그대로 닮아간다. 지방의원들은 선거 한번 치를 때마다 억대를 쓴다. 재력 있는 후보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은행권 차입부터 시작해서 친인척 내지는 지인들을 통해 선거자금을 융통해서 쓴다. 당선자는 임기내 선거자금을 메우려고 혈안이고 낙선자는 빚더미에 빠져 풍비박산난다.상당수 지방의원은 의정비로 의정활동을 하지만 이 돈 갖고는 애경사비 충당하기도 힘들다. 사업하거나 내조가 없으면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 치기가 쉽지 않다. 집행부측은 ‘경제력이 약한 의원들의 쪼들린 행태가 그대로 의정활동으로 나타난다’면서 ‘돈 없이 깨끗하게 의정활동 하기가 사실상 힘들다’고 말한다. 시단위 지방의원은 그나마 낫지만 농촌은 애경사를 외면했다가는 다음에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할 정도다. 의원이랍시고 품위유지도 하면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검은 돈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인사개입과 이권을 쫓아 다니는 일부 의원에 대해 주변에서는 교도소 담벼락을 타고 다니는 사람 같다고 힐난한다. 알게 모르게 지방의원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린 이유는 검은 돈 유혹 때문이지 다른데 있지 않다. 상무이사 주필
유자광(柳子光)은 인명사전에 따르면 간신으로 그려져 있다. 경주 부윤(시장)을 지낸 유규(柳規)의 서자로, 남원 고죽동 황죽마을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본관은 영광(靈光)이다. 재주와 용맹이 뛰어나 1468년(세조 14) 무과에 올랐고 남이 장군 등을 역모로 몰아 죽인 공으로 공신이 됐다. 유자광은 자신의 시가 쓰인 현판을 함양 군수로 부임한 김종직이 떼내 버리자 김종직 문하 김일손의 사초 중 조의제문(吊義帝文)이 있음을 트집 잡아 김종직의 저서와 현판을 모조리 불사르게 하고 그를 탄핵해 대역죄로 몰았다. 이른바 연산군 시절 무오사화를 주도한 장본인이다. 연산군이 폐위되자 이번에는 성희안과의 인연으로 중종반정의 공신으로 책봉돼 무령부원군(武靈府院君)에 피봉됐지만 그후 탄핵을 받아 훈작을 빼앗겼다. 귀양지에서 장님이 돼 사망했다. 세조의 총애를 받았고 자신의 신분에 당당히 맞서 중종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임금을 모셨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낙인 찍혀 희대의 간신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그런데 남원지역에서는 유자광 이름을 딴 대로와 도서관 명칭을 짓자는 주장이 나왔다. 남원고전문화연구회가 최근 남원시 도토동 부영 5차 아파트 앞에 신설 중인 인도교의 이름을 ‘유자광교’로 짓고, 고죽동의 황죽 작은도서관을 ‘유자광 작은 도서관’으로 개명하자고 이환주 남원시장에게 건의했다. 또 박문화 남원시의원도 5분 발언을 통해 인도교와 도서관 명칭에 유자광 이름 사용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유자광은 1908년(순종 2년) 죄명을 탕척받고 삭탈된 모든 관작을 돌려받아 명예를 회복한 남원의 큰 인물이라는 것이 이유다. 그의 이름을 부각시킴으로써 명예를 회복하고 공을 인정해 주자는 뜻이겠다. 글쎄다. 사면 복권됐다고 해서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수수 행위까지 없던 일로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간신의 행적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떼낼 수가 없다. 간신을 갑자기 남원의 ‘큰 인물’로 변환시키는 건 무리다. 더구나 그의 이름을 도로와 도서관에 붙이는 건 좀 거시기하다. 대로와 도서관에 유자광의 이름을 써 붙인다고 해서 남원의 이미지가 쇄신되고 그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을까. 모르는 게 약이란 말도 있다. 공연히 간신의 고장이란 불명예만 세상에 드러낼 지도 모른다. 명칭 사용은 신중히 해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사람들은 평균 8분에 1번씩, 하루에 200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범죄심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폴 에크만 전 캘리포니아 의과대 교수의 연구결과다. 물론 이 거짓말 속에는 우리가 의례적으로 나누는 인사말부터 타인을 배려한 선의의 거짓말과 위장된 표정·태도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어린 아이들의 경우 4살짜리는 2시간에 한 번꼴로, 6살 아이는 90분에 한 번꼴로 거짓말을 한다는 게 캐나다 워털루대학 연구팀의 연구 보고서다. 아이들은 10살까지 거짓말하는 횟수가 증가하다 이후 차츰 줄어든다고 한다. 10살이 넘으면 거짓말하다 들켰을 때 뒤따르는 문제점을 알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빈도수가 감소하는 것이다.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거짓말은 눈덩이와 같다. 오래 굴리면 굴릴수록 커진다”고 설파했다. 한 번 거짓말을 내뱉으면 그 거짓말을 합리화 하려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된다. 결국은 자신의 거짓말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파멸을 부르기도 한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그랬다. 그는 재선을 위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공작반을 침투시켜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됐다. 워싱턴 포스트 등 몇몇 언론에서 사건의 진실을 알렸지만 당시 선거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닉슨은 역대 대통령 선거사상 가장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처음엔 모든 것을 부인했던 닉슨이 1년 만에 사건을 처음 시인했다. 충성스런 부하들이 ‘자신은 모르게 한 일’이라고. 그러나 입막음용으로 백악관에서 돈을 주었다는 딘 보좌관의 폭로에 닉슨은 “돈을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이를 승인하지는 않았다”며 세 번째 거짓말을 했다. 법원은 자동으로 녹음되는 대통령 집무실의 녹음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구했고 닉슨은 대통령 특권을 내세워 거부했다. 하지만 여론에 밀려 녹음테이프를 제출했으나 18분간의 분량이 지워졌었고 이를 우연한 실수라고 네 번째 거짓말을 했다가 결국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요즘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꼭 닉슨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는 듯하다. 처음엔 “만난 적이 없다. 친밀한 관계가 아니다. 일면식도 없다”고 강력 부인했지만 거짓말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완구 총리는 야당의원의 계속되는 말바꾸기 지적에 “충청도 말투가 그렇다”고 답변해 실소를 자아냈다.“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고 몇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있으나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링컨 대통령의 말을 뼈에 새겨야 한다.
규제 풀어야 현대차 새만금투자 성공한다
금융사 전북 이전, 구체적 실행방안 제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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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은행장, 지역이해도 높은 내부 발탁을
전북 ‘금융중심지’, 이제 속도가 관건이다
새만금 웅비의 상징 ‘현대차그룹’
전북지사·전주시장 3선 출마 여부, 객관적 평가가 우선
땅값 폭등한 완주지역 허가구역 묶어야
'언론플레이'보다 '여론몰이'가 좋아요
'쇼케이스'보다 '선보임 공연'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