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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말띠해가 저물고 열흘 후면 을미년 양띠해다. 말은 진취적이고, 활동적이다. 양은 조용하고 차분하며 내성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연말을 맞아 지나온 1년을 뒤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갑오년 말띠해가 저무는 길목인지라 말과 관련된 사자성어가 눈길을 끈다. 우생마사(牛生馬死)다. 소와 말은 물에 빠져도 헤엄을 쳐서 뭍으로 나올 줄 안다. 실제로 저수지에 빠진 소와 말은 헤엄쳐 나오는데, 말이 소보다 훨씬 빠르게 헤엄쳐 나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말은 땅에서 뿐 아니라 물 속에서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다리를 움직여 물살을 헤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급류가 형성된 강에 빠진 상황에서는 수영선수 말의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폭우가 쏟아져 물이 크게 불어나면 소나 말도 강물에 휩쓸린다. 재주가 많은 사람도 휩쓸려 익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나 말은 익사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이 되면 소는 살지만 말은 죽는다는 것이 우생마사 이야기다. 물속에서 헤엄을 잘 치는 말이 급류에서 익사하는 이유는 말의 그릇된 판단 때문이다. 수영을 잘하는 말은 물살에 떠밀리지 않기 위해 네 발을 마구 저으며 물살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런데 그 방향이 문제다. 물을 거슬러 헤엄을 치는 것이다. 물살이 약한 상황이라면 문제없이 거슬러 올라가겠지만, 급류에 빠진 말은 약간의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제자리를 맴돌 뿐이라고 한다. 결국 탈진해 익사하고 만다. 하지만 소는 바보스럽게도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떠내려간다고 한다. 말처럼 급류를 벗어나기 위해 온힘을 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떠내려 가다 보면(폭포 등 위험구간이 없는 한) 조금씩 조금씩 강가에 접근되고, 얕은 곳에 닿게 됐을 때 빠져나온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이야기처럼, 느림보 소가 빠른 말을 이기는 것이다. 인터넷, 스마트폰, 자동차, KTX, 비행기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빠름의 미학에 빠져 산다. 100세 시대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노후를 대비한 건강과 돈도 챙겨야 한다며 마음이 급하다. 겉으로 ‘슬로시티’를 말하지만 각박한 현실에서 30년 이상을 늙은이로 살아야 하는 서민들에게 느림의 미학은 허세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새옹지마고, 우생마사다. 말처럼 빠르게 앞서간들 종착역은 같다. 3세녀를 고속승진시킨 대한항공 오너 집안이 요즘 행복한가.
지난해 6월,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자리. 모두발언에 나선 시진핑 주석이 한시 한수를 인용했다. 최치원선생이 지은 ‘범해(泛海)’란 한시였다. 중국 난징(南京)시 뤼슈이현의 당나라 시대 원형을 복원한 초대형 7층탑. 이곳에는 ‘최치원 방’이 있다. 그의 시문과 초상을 전시하고 동상과 초상화, ‘계원필경’ 등을 판매한다. 양주(揚州)에는 최치원 기념관이 있다. 지난 2007년 양주시가 중국 외교부의 비준을 받아 당나라성 유적지 안에 건립한 것이다. 외국인을 기리는 기념관으로는 첫 번째라고 알려져 있다. 당나라성이 있던 이 터는 수나라 양제의 행궁과 회남절도사의 관아가 있었다. 최치원은 880년부터 884년까지 회남절도사의 종사관(비서격)으로 일했다. 양주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교류가 활발했던 지역이다. 당나라 시대 고성이 잘 보존되어 있는 이곳에는 한중문화교류를 상징하는 유적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예부터 경제의 중심지로 번창했으며 당나라시대에는 장안과 낙양에 이은 제 3의 도시이자 최대 국제무역항으로 꼽혔다. 최치원은 이곳에서 명망가,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명문으로 꼽히는 ‘토황소격문’을 비롯한 많은 문장과 한시를 남긴 그를 중국인들은 ‘당송 100대 시인’의 반열에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을 기념관까지 지어 추앙하는 일은 특별하다. 최치원을 추모하고 기억하려는 배경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존경받고 있는 역사적 인물인데다 동양의 대문호로 칭송 받을 만큼 빼어났던 문장가에 대한 경외심일 수도 있겠지만 들여다보니 이보다 더 명징한 배경이 보인다. 고운 최치원이 갖고 있는 한중문화교류사에서의 위상이다. 그는 한중문화교류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의 자리에서 한시를 인용하고 양주가 기념관을 건립해 그를 기억하게 하는 중심에는 한중문화교류사에 놓인 그의 족적이 있는 것이다. 최치원 초상화가 47년 만에 태인의 무성서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방식이야 어쨌든 제자리를 찾았으니 반갑다. 국내에서도 기념관 건립부터 크고 작은 규모의 최치원 기념사업이 부상하고 있다. 전북도 최치원과 인연이 깊다. 태산군수 인연 뿐 아니라 신시도 일대의 설화도 흥미진진하다. 예외 없이 기념사업 추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내세운 전략적 목표가 숨어 있다.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한 때다.
연말 극장가에 다큐멘터리 영화 3편이 화제다. 76년을 함께 살아온 노부부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탄탄한 배급망을 통해 누적관객수가 150만명을 넘어섰다. 2009년 영화 ‘워낭소리’ 이후 독립영화로서 최대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호스피스 병동을 소재로 한 다큐 영화 ‘목숨’도 개봉 11일만에 3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말기 암환자들의 애틋한 가족 사랑을 통해 가족 해체시대에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반면 흥행과는 무관하지만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드러낸 다큐 영화 ‘쿼바디스’도 기독교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져주고 있다. 십계 벤허 등과 더불어 불후의 기독교 명화로 꼽히는 할리우드 영화 ‘쿼바디스’와 동명 영화이지만 내용은 전혀 딴판이다. 로버트 테일러와 데보라 카가 열연한 영화 쿼바디스는 네로 황제의 무자비한 기독교 탄압을 피해 로마를 떠나는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환상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로마로 향하는 예수님을 만나자 묻는 물음이 “쿼바디스(quo vadis,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였다. 이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내 양들을 버리고 가니 내가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간다”고 말한다. 그러자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십자가에 거꾸로 순교를 당한다. 다큐 영화 ‘쿼바디스’는 양떼들은 뒷전인 한국 교회 목회자들을 향한 경고 메시지다. 한국 교회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 비리를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다. 수천억을 들여 지은 초대형 교회와 내부 분쟁, 유명 목사들의 탈세와 배임 성범죄와 교회세습 등 언제부터인지 한국 교회내 팽배한 맘몬주의와 초대형 교회 목사들의 탐욕과 타락 성장주의를 지적하고 있다. 사실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최저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사례를 받으며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는게 현실이다.초대형 교회의 법적 조치 압박과 일부 기독교 단체의 영화 상영중단 요구로 쿼바디스는 상영관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전주 디지털독립영화관을 비롯 전국 10여 곳에서 개봉됐다. 입소문을 타고 벌써 만명 가까이 영화관을 찾았다. 온라인상 반응도 뜨거워지면서 포털 영화 사이트에선 네티즌 평점, 관객 평점이 9점대를 넘어서는 호평을 받고 있다.“교회는 점점 커졌고 예수는 점점 작아졌다. 아버지 목사가 교회의 주인이고 아들 목사가 다음 주인이다. 모두 탐욕에 눈이 멀었고 이 땅에서 예수를 죽여버렸다” 고(故) 옥한음 목사의 질타가 한국교회에 뇌성처럼 울렸으면 한다.
언제부턴가 도민들이 왜소해졌다는 말이 들린다. 상당수가 경기 침체로 힘들지만 그 보다는 자신감을 잃은 게 더 문제인 것 같다. 지역에 돈도 없다. 먹고 살기가 팍팍해졌다. 예전에는 도민들이 정권한테 불이익을 받으면 그냥 있질 않았다. 불처럼 일어나 도민들의 의사를 표현했다. 막히고 맺힌 것을 스스로 뚫고 해결했다. 하지만 지금은 장차관 하나 없는데도 그 누구 하나 나서서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항변하는 사람조차 없다. 왜 이렇게 전북이 쪼그라 졌을까.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내부의 적이 크다. 바로 패배주의와 자기비하적 사고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쳐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 지역이 소외된 탓도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도민들이 자신감을 잃고 있는 게 더 걱정스럽다. 차츰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도민들이 전북인으로서 자긍심을 잃어버린 걸 지적할 수 있다. 자긍심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스스로에게 긍지를 갖는 마음을 뜻한다. 전북인이란 걸 자랑스러워해야 하지만 그렇게 못해 애석하다. 과거에는 도민들한테 자긍심을 심어주려고 심지어 관에서 관변단체까지 만들어 나선 적이 있었지만 별반 성과는 못 올렸다. 지난 8년 전북은 정권으로부터 소외돼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경제가 어렵게 돌아가면서 도민들의 의식수준도 뒷걸음질 쳤다. 응집력도 떨어졌다. 보자기 찧는 일도 많았다.최근 국립대 총장을 역임하신 원로 한분이 너무 도민들이 자긍심을 잃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학에서 특강을 했지만 젊은 대학생들도 자긍심을 못 갖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웠다고 전한다. 일례로 전북대는 예전의 전북대가 아니다. 학교위상이 사뭇 달라졌다. 하지만 그 구성원들이 명문대를 다닌다는 자긍심을 못 느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말했다.마음가짐이 그래서 중요하다. 전북대가 SKY대학 못지 않은 대학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것. 그게 긍지다. 자긍심을 갖는 사람은 항상 용기가 있다. 무슨 일이든 두려워하지 않는다. 강인한 도전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까지는 네 탓 공방만 일삼았지만 앞으로는 내 탓으로 돌리고 깨어 있는 도민이 되었으면 한다. 도민들도 정권에 대해 잘한 것은 잘했다고 박수쳐주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새해에는 도민들도 이남호 신임 총장이 취임한 전북대가 인접 충남 전남대 경북대 등을 크게 앞질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자긍심을 회복했으면 한다. 도민들이 자긍심을 되찾아야 전북의 미래가 열린다. 상무이사 주필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10배 부자에게는 욕을 하고, 100배 정도 부자라면 무서워하며, 1000배 부자한테는 그 사람 일을 해 주고, 만배 부자라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의 말이다. 기원전 100년쯤의 얘기인데 오늘날에 비춰보아도 사뭇 어울리는 표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富)는 만능 키처럼 여겨진다. 수많은 사람을 부릴 수 있고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잘 나간다는 의사나 판·검사 등 ‘사’자 들어가는 사위나 며느리도 돈이면 해결된다. 부는 또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다. 부는 특권과 힘, 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지도층이라는 명예까지 따라 붙게 만든다. 부와 명예, 지위와 힘을 가진 사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조직 내 인사를 좌지우지 하는 사람이라면 두 말할 필요도 없겠다. 하지만 돈과 지위 앞에 무릎 꿇는다고 해서 이성까지 마비되는 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사회 지도층은 적지 않은 권리를 갖고 존경을 받는다. 사회 구성원은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한다. 또 사회 지도층의 언행은 사회적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항상 주시의 대상이다. 공식적인 행위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모범이 돼야 한다. 윤리 도덕적인 하자도 없어야 한다. 모범적 삶의 자세를 요구 받고 있는 건 명문화되지 않은 사회적 통념이다. 그런데 요즘 ‘사회 지도층’의 행실이 도마에 올라 있다. 존경은 커녕 오히려 욕을 먹는다. ‘땅콩 회항 부사장’ ‘성추행 서울대 교수’ ‘벤츠 여검사’ ‘막말 판사’ ‘폭행 CEO’ 등 상식을 벗어난 사건의 주인공이 모두 사회 지도층이다. 오만 방자하고 이기적 사고에 함몰된 결과물이다. 고생 없이 손쉽게 부를 얻거나 돈으로 지위를 사는 등 사회 지도층으로 기능할 내적 인프라가 형성돼 있지 않은 탓이다. 일천한 사회자본은 서민만도 못하니 누가 누구를 우러러야 할지 모르겠다. 사회 지도층이라는 말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도 많다. 천민 자본, 부도덕성의 동의어 쯤으로 인식한다. 공동체 의식, 배려와 겸손, 법 준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겠다. 사회 지도층이 어쩌다 욕 먹는 대상이 됐는지 딱하다. 부와 권력, 명성을 가진 사회 지도층일수록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럴 때 존경받고 사회도 건강해진다. 수석논설위원
담배는 원산지가 남아메리카다. 1492년 유럽의 정복자들이 아메리카에 상륙했을 때 원주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하니, 담배는 아메리카의 선물이다.담배가 본격적으로 지구촌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1518년 스페인에 상륙하면서부터다. 담배에 약효가 있다고 믿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처럼 유럽인들도 니코틴에 쉽게 중독된 것이다. 유럽에서의 담배 재배는 한참 후의 일이었다. 1556년 프랑스, 1558년 포루투갈, 1559년 스페인, 1565년 영국 등으로 알려진다. 아시아에는 1571년 필리핀 상륙이 처음이고, 중국과 한국에는 1600년대 초에 일본 등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인들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게 400년 정도 되는 셈이다. 선조들의 담배 사랑은 담뱃대에서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원에서 만들어진 백동연죽장 제작 기능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끽연가들이 내세우는 ‘식후불연초 노상객사’란 말은 그들 스스로 담배의 마약성에 심각하게 중독됐음을 알리는 고백이다.담배의 주성분은 니코틴이다. 니코틴은 생명을 위협하는 매우 해로운 성분이지만, 애연가들은 담배를 피우면 마음이 안정된다며 개의치 않는다. 차분하게 사색을 할 수 있고, 복잡한 일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고 한다. 대화 분위기를 이끌수 있고, 작가 등 예술인들은 창작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해소에 담배만한 것이 없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 사람도 많다. 빌딩 몇 십 층을 오르내리는 수고는 물론 모진 풍파가 몰아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물 밖 끽연을 즐기는 모습에서 그들의 사정을 짐작할 수는 있다. 내년 담배 가격 인상이 확정됐다. 찬반 시비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흡연율 하락과 서민 피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흡연율은 지난 10년 사이 떨어지는 추세다. 남성 흡연율의 경우 2003년 49.4%에서 담뱃값이 인상된 2005년에 43.9%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42.5%를 기록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인상 효과도 낙관한다. 흡연율이 2016년까지 35%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그래도 OECD 평균 흡연율 29%에 접근하려면 갈길이 멀다. 하지만 애연가들은 담뱃값 인상으로 서민들만 큰 피해를 입는다며 불만이다. 어쨌든, 폐암 사망률 1위 사회에서 흡연은 공공의 적인 게 분명하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보내오는 선물이 있다. 판화달력이다. 새해 달력을 받으면 ‘한해가 다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마음 황망해지지만 한편으로는 한해를 뒤돌아보게 하는 일깨움을 주니 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도 마음 선하게 하는 아름다운 달력이 왔다. 판화작품이 실린 이 달력은 본래 기능으로 보다는 예술품으로서의 기능이 더 돋보인다. 매월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세상의 풍경을 안고 찾아오는 새로운 판화가 신선한 의미로 시간의 흐름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달력은 일상에 꼭 필요한 생활용품이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일상의 중심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오늘날 달력의 존재는 미미하다. 탁상용 달력은 아직 쓰임이 있어 환영받지만 벽걸이용 달력은 쓰임과 기능의 가치가 확연히 달라졌다. 사실 달력 시장은 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 경기가 좋으면 달력 제작이 활발해지고 경기가 안 좋으면 금세 제작 양이 줄어든다. 그러나 지역의 작은 인쇄소들까지도 매일 수천 부씩 제작해야했던 연말 달력 시장의 분주함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었다. 한 지역인쇄소 이야기로는 4-5년 사이 달력 제작 물량은 더 큰 폭으로 줄어 예전의 절반이 조금 넘는 양을 수주받는다고 한다. 시대에 따라 기능도 달라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달력이 장식품의 기능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얻은 다양한 형식과 내용이다. 생활용품이면서 대중적인 예술품이 되기도 하는 달력은 덕분에 아름다운 그림과 사진을 꽤 오래전부터 품게 됐다. ‘자연달력 제철밥상’을 책으로 엮어낸 농사꾼 장영란 김광화씨 부부는 달력을 직접 만든다. 매월 말일이 가까워지면 농사짓기에 필요한 정보(시기)를 담은 날짜를 배열하고 시절에 맞는 곡식꽃을 그려 새 달력을 제작하는 형식이다. 소소한 즐거움이 크기도 하지만 내 몸에 맞는 옷을 짓듯이 가족들의 일상에 필요한 내용을 담아 달력을 만들어놓아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달력(calendar)’은 라틴어 ‘칼렌다리움(calendarium)’에서 유래되었다. ‘흥미 있는 기록’ ‘회계 장부’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제관이 초승달이 뜨면 피리를 불어 월초임을 알렸는데, 밤을 밝혀주는 초승달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탁상 위 달력에 12월 한 장이 남았다. 이즈음이면 마음 번잡해지기 마련이다. 달력의 쓰임이 새삼스럽다.
지난 2006년 11월 15일 서울 남산 하얏트 호텔.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 부회장이 웃으면서 대우건설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주식 72%의 매각대금은 6조4255억원. 국내 기업 M&A 사상 최대 규모였다. 하지만 2년여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토해내야만 했다. 결국 막대한 손실을 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경영책임을 둘러싸고 오너 형제간에 분쟁으로 번지면서 그룹이 둘로 쪼개지는 상황에 처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였다.지난 2007년 극동건설을 M&A 했던 웅진그룹도 사정은 마찬가지. 시장 평가금액의 2배가 넘는 6600억원에 극동건설을 인수했던 웅진그룹은 유동성위기를 겪으면서 결국 모기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웅진코웨이 웅진식품 등 주력사는 매각해야만 했다. (주)건영을 인수했던 LIG그룹은 더 참혹한 결과를 빚었다. 그룹 해체뿐만 아니라 사기성 CP 발행으로 오너 일가는 법정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승자의 저주가 재계에 뼈저린 교훈을 남긴 것이다.승자의 저주는 미국 석유개발회사인 애틀랜틱 리치필드사의 엔지니어인 카펜, 클랩, 캠벨 등 3명이 1971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언급됐다. 1950년대 미국 석유기업들이 멕시코만의 석유시추권 공개입찰에 참여했는데 당시에는 석유매장량 측정 기술이 부족해 추정해서 입찰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과열 경쟁으로 고가 낙찰기업들이 큰 손해를 보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을 이들이 ‘승자의 저주’라고 명명했다. 이후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가 1992년 발간한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라는 책을 통해 통용됐다.최근 자치단체 금고 유치 경쟁에서도 ‘승자의 저주’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고유치를 위해 금융기관들이 통 큰 베팅에 나서면서 실익없는 장사라는 분석이다. 올 초 26조원 규모의 서울시 금고를 수주한 우리은행은 향후 4년간 1200억원의 협력기금을 출연하기로 했다. 그나마 4년전 1700억원 보다 500억원이 줄어들었다. 지난달 인천시금고를 재유치한 신한은행은 470억원을 협력사업비로 제안했다. 도내서도 시·군금고 유치에 나선 농협은행과 전북은행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자치단체들만 쾌재를 부르고 있다. 지난달 부안군 2금고에서 탈락한 전북은행이 정읍시금고 유치전에 올인하면서 20억원의 협력기금을 써넣어 농협을 제꼈다. 그러자 농협은행이 완주군금고 선정때 20억원의 협력기금을 제안, 12억원을 써낸 전북은행으로부터 1금고를 탈환했다. 장군 멍군이지만 서로 상처뿐인 승리인 셈이다.
도민들을 가장 열 받게 하는 것은 뭣일까. 각자 생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상당수는 외국을 오갈 수 있는 국제공항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외국 나갈 때는 보통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서 출국수속을 밟아야 하므로 그 시간을 고려해서 집을 나선다. 하지만 도민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김치가 돼 버려 지치기 일쑤다. 전주에서 리무진이나 관광버스를 탔을 때 빨리 가도 3시간 반 정도 걸린다. 그 여타 지역은 더 시간이 소요된다. 전주권에 공항이 없어 밤잠을 설쳐가며 인천공항을 가기 때문이다. 외국 갈 때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엔돌핀이 솟게 마련인데 공항도착 시간이 길어 출발 때부터 기분이 잡친다.도지사가 바뀔 때마다 어떻게든 공항을 건설하겠다고 의욕을 과시했다. 하지만 전주권 공항 건설은 지금도 원점에서 맴돈다. 돌이켜보면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던 유종근 전지사 시절이 공항건설의 찬스였다. 부지매입까지 끝내 놓고도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부터 공항건설을 반대한 게 낭패였다. 글로벌시대에 공항이 없다는 것은 암흑시대에 사는 거나 같다. 군산공항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건 미군공항이다. 우리가 말하는 공항은 국제공항을 말한다. 공항은 심장이나 마찬가지로 항만과 함께 확충이 안 되면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아무리 우리가 기업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공항이 없으면 기업이 전북으로 오질 않는다.통상 바이어들은 인천공항에 내려 1시간 이내서만 움직이려고 한다. 그래서 평택까지가 수도권인 셈이다. 육로로 공항에서 1시간이 넘으면 피곤해 한다. 이 때문에 전북이 힘들다. 특히 이 정권도 MB정권에 이어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써 더 지방이 애를 먹는다. 송 지사가 기업 유치하는데 힘들어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 당국이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도 공항이 없어 좋은 기업을 유치할 수 없다. 공항이 없으면 새만금사업도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송 지사도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중앙무대에서 열심히 뛴다. 공항과 항만을 건설해 놓겠다는 의지다. 새만금지구에 인접한 김제 화포지구를 공항건설 적지로 정해 놓고 밑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사업을 예의 주시하면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 국제공항건설 사업은 장차관 하나 없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송지사는 이 사업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정부에서 김제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부지까지 매입해 놓은 사업을 우리 스스로가 반대해 멋쩍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치권이 앞장서 나가야 한다. 상무이사 주필
지역감정이란 건 해방 이후 얼마동안까지도 없었다. 목포 출신의 김대중이 1961년 강원도 인제지역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지금 같으면 목포 출신이 강원에서, 강원 출신이 목포에서 당선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오늘날의 지역감정은 정치적 이익을 얻는 세력이 지역감정을 부추겨 생겨났다.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타난 것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때다.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 스승으로서 국회의장을 역임한 이효상이 당시 대구유세에서 “전라도에 정권을 넘겨서야 되겠는가?”라고 연설한 것이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효시이다. 야당인 신민당의 김대중이 예상을 뒤엎고 파란을 일으키자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영남 결집을 촉구한 것이다. 이효상은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이유는 딱 한가지, 영남사람이 호남사람보다 ‘쪽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황해도 평산 출신의 이승만이나 충남 아산 출신의 윤보선, 인천 출신의 장면 등은 지역감정을 조장하지 않았다. 지역감정을 부추겨 얻을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집권 공화당의 지역감정 편승 전략은 민정당과 민자당이 충실히 계승했고 이후에도 보수정당은 그 테두리 안에 갇혀 있다.정치적 이익에서 비롯된 지역감정이 국민의식에까지 투영돼 있다는 사실은 더 큰 불행이다. 최근 어느 채용정보 인터넷사이트에 실린 ‘전라도(본적) 지원 불가’라는 지역차별적 채용공고가 그것이다. 이 업체는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의 ‘남영공업’이라는 자동차부품 생산업체다. 연 매출액이 4000억 원에 이르고 직원 수도 700여명에 달하는 중견 기업이다. 완주 현대차와 광주 기아차에 납품하는 1차 벤더가 전라도 사람은 아예 지원하지 말라고 하니 이런 어불성설이 없다.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업체는 채용대행사의 신입사원 잘못으로 떠넘긴 모양이다. 일개 신입사원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지나던 소도 웃을 일이다. 사실이라면 신입사원은 왜 ‘전라도 사람 지원 불가’라는 조건을 달았을까. 전라도는 괴물인가? 여간 찜찜하지 않다. 이번 ‘사건’이 흐지부지돼선 안된다. 성명 내고 비난만 할 일이 아니다. 원인을 규명하고 법적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 쓰레기보다 못한 지역감정이 아무렇지 않게 무의식적으로 조장되는 현상이 더 이상 용납돼선 안된다.
전주시의회 행정위원회가 지난 3일 덕진구보건소 신축을 위한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을 부결처리했다. 덕진구보건소 신축안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덕진구보건소 신축은 주민 보건 의료 서비스를 위해 수년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됐다. 전주시가 완산구와 덕진구에 각각 운영되던 보건소를 지난 1999년 통합, 완산구 지역에 전주시보건소를 설치한 뒤부터다. 전주시보건소 산하에는 완산구에 평화보건지소, 덕진구에 덕진보건지소가 운영되고 있다. 전주시는 2009년부터 덕진보건소 신설을 추진해 왔다. 당시 지역보건법 제7조 ‘인구 50만 이상 도시의 경우 2곳 이상의 보건소 설치를 할 수 있다’는 보건소 설치 법령에 근거한 것이다.전주와 인구가 비슷한 청주(66만 명)와 안산(75만)만)도 2개의 보건소가 있다. 이 때문에 지난 지방선거에서 지역 시의원 대부분이 덕진보건소 신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역 주민들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시의원이나 입지자들이 주민 보건 서비스와 직결된 보건소 신축이라는 꿀떡을 자신의 지역구에 놓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주시가 2014년 착공을 목표로 덕진보건소 신축 계획을 진행하던 2012년 9월 전주시의회 박혜숙 의원(송천동)이 의회 5분발언을 통해 송천동 입지 당위성을 주장한 것도 지역 정치인들의 정서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그동안 추천된 후보지는 옛 완주군청 부지, 옛 토지공사 건물, 한양아파트 인근 부지, 시립도서관 옆 부지 등 무려 10개소에 달한다. 덕진구 의원 대부분이 자기 지역을 추천한 결과다. 이 때문에 집행부와 시의회 모두 부지를 정하지 못했다. 결국 시민단체와 학계, 시의원 등 20명으로 구성된 부지선정위원회가 가동됐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덕진구 시의원은 배제됐다. 위원회는 지난 10월 30일 후보지 10곳을 대상으로 투표, 송천동 솔내청소년수련관 옆을 보건소 신축 부지로 최종 결정했다. 압도적 득표였다. 하지만 전주시의회 행정위원회가 해당 부지에 대한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을 부결해버렸다. 비공개 회의 후 부결시킨, 전형적 밀실처리였다. 사유는 시민 접근성 부족 등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정당성이 전혀 없다. 덕진구를 지역구로 둔 김성주 국회의원은 지역현안 하나 제대로 조정하지 못했다. 전주시의회는 만약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시민에게 책임을 넘기는 행동을 보였다. 결국 시민들의 결정을 손바닥 뒤집 듯 내팽개쳤다.
연말이 되면 안부가 궁금해지는 목사님이 있다. 완주군 용진면 ‘사랑의 교회’를 20여 년 동안 이끌었던 최용진 목사다. 9년 전, ‘사랑의 김치나누기’를 16년째 하고 있던 최목사 부부를 취재했었다.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는 일에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니겠냐’는 간곡한 부탁에 마음을 열었다. 몇 년 만에 안부 전화를 드렸다. 이제 여든을 앞둔 최목사는 시각장애인이다. 초등학교 졸업 즈음 시력을 잃었으니 거의 평생을 어둠속에서 살아온 셈이다. 부부는 1982년 전주에 개척교회를 열었다. 선교를 위한 목회일도 중요했지만 시각장애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자립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김장김치 나누기 사업도 그 중 하나였다. 시각장애인들은 대부분 부부가 같은 장애를 갖고 있어 김장김치 담그는 일이 쉽지 않다. 자연히 입소문을 들은 시각장애인들의 요청이 밀려들었다. 첫 해 650포기로 시작했던 김치는 해마다 늘어 어떤 해에는 4000포기를 담아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랑의 김치 나누기’는 2008년 최목사의 은퇴와 함께 끝이 났다. 그는 전주로 오기 전 서울에서 시각장애인 복지를 위한 단체를 운영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60-70년대만 해도 시각장애인의 유일한 생업은 안마술이었다. 그나마 안마는 남성시각장애인의 전유물이어서 여성시각장애인의 삶은 더 절박했다. 최목사는 시각장애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고통을 가슴아파하며 안마술을 전수하고 안마시술소를 열어 일자리를 만들었다.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에게만 허용하는 법안을 제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2006년 마사지계에서 ‘직업선택의 자유와 평등권 침해’를 들어 헌법소원을 제기, 위헌판결이 났을 때는 그야말로 ‘사투’를 벌여 이 법을 지켰다. 그러나 최목사는 은퇴한 후, 더 큰 과제를 안게 됐다. 안마업소가 퇴폐업소로 전락해간다는 사회적 지탄에 당당하게 맞설 수 없는 상황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의 안마사 자격증만을 앞세워 문을 연 안마시술소가 늘어나면서 시각장애인들의 안마가 제 기능을 못하고 악용당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그는 해야 할일을 다시 찾았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술을 가르치고 직업의식을 갖게 하는 일이다. 노목사의 의지는 결연해 보인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증거다. 이제 더해져야 할 것이 있다.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다.
세밑 길거리에서 사랑의 나눔 캠페인이 펼쳐지면서 추위를 녹이고 있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1일 도청 광장에서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을 가진데 이어 전북일보 옆 종합경기장 사거리에 사랑의 온도탑을 설치했다. 내년 1월말까지 100도℃, 55억원을 목표로 모금에 나섰으며 현재 5도℃를 가리키고 있다. 구세군에서도 오는 6일 전주시청 노송광장에서 자선냄비 시종식을 갖고 롯데백화점과 이마트 홈플러스 세이브존 한옥마을 경기전 걷고싶은 거리 등에서 연말 모금활동에 나선다.공동모금은 1873년 영국 리버풀에서 시작됐다. 지역 유지들이 기부금 중복 모금과 강제 권유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자선단체를 구성한 것이 단초가 됐다. 이후 19세기 후반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자선조직협의회(Charity Organization Society)운동이 일어나면서 본격화 됐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해안에 배가 좌초돼 생긴 1000여명의 난민과 도시 빈민을 위해 구세군 여사관 조셉 맥피 정위가 쇠솥을 거리에 걸어놓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는 문구로 기금을 모은 것이 시초다. 우리나라에서는 1928년 12월 15일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조셉 바아)사관이 서울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불우 이웃돕기를 시작하면서 비롯됐다.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지난 1998년 민간모금기관으로 설립됐다. 그 해 10월 전북지회가 설립되었으며 도내에서 매년 100억여원을 모금하고 중앙의 지원을 합해 150억원 넘게 배분하고 있다. 공동모금회의 기부 큰 손으로는 아너 소사이어티클럽(Honor Society club)이 있다. 5년간 1억원 이상 기부자들로 도내에는 자영업자와 기업인 교수 사회단체 임원 등 현재 16명이 등록됐다. 이 가운데는 부부가 1억 이상 기부한 가족 회원도 있다.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기부문화 확산과 소년소녀 가장, 홀로 노인들을 돕기 위해 전국 최초로 웜 핸즈클럽(warm hands club)을 창립한다. 웜 핸즈클럽은 월 10만원씩 연간 100만원을 10년동안 총 1000만원을 기부하는 모임이다. 지난 1일 초등학교 교장과 사업가 2명을 공동 대표로 선임했으며 내년 1월중 창립 발대식을 갖는다. 현재 직장인과 자영업자 교사 한의사 등 20여명이 참여했으며 100명을 목표로 모집중이다. 따뜻한 나눔을 통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남아공은 인종차별정책이 심했다. 인종차별정책을 아파트헤이트(Apartheid)라 부른다. 1994년 흑인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절대로 없어질 것 같지 않던 인종차별정책이 무너졌다. 그 일을 가능하게 했던 밑바탕에는 우분투(Ubuntu)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분투는 남아공의 반투어에 속하는 말로 코사족과 줄루족 등 수백개의 부족들이 즐겨 쓰는 인삿말이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 “함께 있어 내가 있다(I am because We are)”란 뜻이다.서양의 한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한 부족 어린이들에게 게임을 제안했다. 사탕을 한 바구니에 담아 멀리 떨어진 나무에 매달아 놓은 뒤 제일 먼저 바구니에 도착한 사람이 사탕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노라고 말하고 “시작”을 외쳤다. 사탕을 놓고 아이들에게 경쟁을 붙인 것. 그러나 놀랍게도 아이들은 사탕을 혼자 가지려고 경쟁하지 않았다. 서로 손을 잡은채 함께 달려가 바구니에 있는 사탕을 나눠 먹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물었다. 1등으로 도착하면 사탕을 몽땅 혼자서 가질 수 있는데 왜 같이 갔느냐고 묻자 아이들이 우분투라고 말했다. “사탕을 혼자 다 가지면 다른 아이들이 슬플텐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나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도 우분투 이말을 항상 가슴에 품고 다녔다.우리는 어떤가. 나 하나의 행복이라면 다른 사람의 불행을 용인하지 않는다. 상생이란 말을 귀가 따갑도록 쓰지만 과연 남아공 아이들처럼 서로 손잡고 함께 달려 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먼저 달려가 혼자 독식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공생의식을 가져야 한다. 서로가 윈윈하려면 다함께 손잡고 나가야 한다. 공직자도 똑같다. 국민이 있어 공직자가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차가운 영하의 매서운 날씨속에서도 AI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검역 초소를 지키는 공직자들의 노고를 국민들이 잘 헤아려야 한다. 그런 공직자들이 있어 희망의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연말 송년 모임에서 술자리가 기다린다. 단체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건배사. 초보자들은 ‘위하여’로, 중급자들은 세마디로 풀, 풀, 풀(남성은 파워풀, 여성은 뷰티풀 ,이 자리는 원더풀)처럼 줄여서 한다. 스토리가 있고 내가 아닌 상대방을 치켜 세우는 건배사도 있지만 앞으로는 ‘우분투’로 건배사를 하면 낫지 않을까. 상무이사 주필
“공론은 국가의 원기이다. 국가에 공론이 없으면 망하게 되는데 어떻게 이를 금절할 수 있겠는가. 공론이 조정에 있으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공론이 여항(閭巷)에 있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율곡전서(栗谷全書)에 나오는 말이다. 여항은 시정(市井)을 뜻한다. 붕쟁이 싹 텄던 선조 때는 훈구파와 척신, 사림 등 오늘날로 치면 여와 야, 당내 계파간 정쟁이 치열했던 시기다. 공론이 실종되고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판쳤다. 율곡전서에 나오는 이 말도 당시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공적 영역이 제 기능을 못하고 사사화(私事化)되는 현실을 우려하는 지식인의 고뇌이다.최근 정국의 뇌관으로 부상한 ‘정윤회 문건’ 파문도 비선(秘線)에 의한 국정농단이 핵심이다. 현 정부 실세로 꼽히는 정씨와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총무, 정호성 1부속, 안봉근 2부속비서관)이 작년 10월부터 매월 두차례 만나 청와대와 정부동향을 논의하고, 김기춘 비서실장 교체설 등 청와대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것이 문건의 내용이다. 이해 당사자들은 ‘증권가 찌라시 수준’(청와대) ‘사실이라면 감방 가겠다’(정윤회)고 단도리쳤지만 문건이 청와대에서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으니 각종 의혹과 추측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건 당연지사다. 우리나라는 혈연, 지연, 학연 등 전통적 연고주의의 특징이 강한 사회이다. 선거가 만연한 요즘에는 이런 전통적 연고보다 ‘캠프 연고주의’가 더 강하게 유지되는 끈이다.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과 비서실장을 지냈고 세 비서관은 정씨가 추천해 기용됐다고 한다. 몇차례 선거도 치렀다. 이들 역시 ‘박근혜 캠프’ 연고라는 속성을 띤다.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단체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선거캠프 출신들이 도정과 시·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하다. 특히 인사 영향력이 강하다. 국가와 자치단체는 물론이고 어느 조직이든 공론을 통하지 않고 사적인 네트워크에 의지한다면 망하게 돼 있다. 조직은 형해화되고 의사결정은 사사화됨으로써 구성원들로부터 외면 받기 때문이다. 율곡의 지적처럼 공조직을 통한 공론장의 기능이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정씨 문건 파문도 파문이지만, 선거캠프 출신에 의존하는 단체장들이 새겨야 할 일이다. 수석논설위원
‘청자로’는 부안군 보안면 영전삼거리에서 곰소를 잇는 국도 30호선 이름이다.이 도로에 청자로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도로가 가로지르는 보안면 유천리 일대에서 고려 최고의 상감청자, 비색청자 등이 오랫동안 생산됐고, 그 유적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고려청자 유적지는 전국적으로 부안 유천리를 비롯해 전남 강진 등 25곳에 이른다. 그 중 생산 규모와 품질면에서 최고로 꼽히는 곳이 바로 전남의 강진, 그리고 부안의 유천리였다.인류는 일찍이 흙을 구워 그릇을 만들어 사용하는 지혜를 가졌다. 그러나 세계에서 자토로 만든 그릇에 유약을 칠한 뒤 섭씨 1000에 달하는 고온으로 구워낸 ‘자기’를 처음 생산한 곳은 중국으로 알려져 있다. 뒤이어 세계 두 번째로 자기를 생산하고, 상감·비색청자라는 세계 최고의 명품을 만든 국가가 바로 고려였다. 고려의 도자기 장인들은 처음에는 중국 생산 방식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독특한 고려식 생산방식으로 훨씬 우수한 자기를 생산해 냈다. 중국식 가마는 벽돌가마이고, 그릇 형태를 만든 후 고온에서 한 번 구워낸다. 하지만 고려 장인들은 고유의 진흙가마를 만들고, 그릇 형태를 만든 후 2단계에 걸쳐 구워냈다. 처음 섭씨 600-800도의 낮은 불에서 살짝 구워내 유약을 바른 다음 섭씨 1300도의 고온에서 다시 한 번 구워냈다. 이렇게 구워낸 고려 자기는 유약이 얇아지기 때문에 청자 특유의 바탕흙이 비치는 투명한 느낌을 낸다. 이러한 작업이 발전해 비색청자가 탄생한 것이다. 고려청자는 디자인이 매우 다양했다. 장인들은 무문, 음각, 양각, 압출양각(무늬를 틀로 찍어 도드라지게 표현), 상형(동물이나 식물 등의 형태를 본떠 만든 무늬), 투각, 철화 등의 무늬 표현방법으로 다양한 형태의 청자를 만들어냈다. 모란이나 국화, 애초문 등의 활달한 무늬를 그려 넣은 철화청자와 신비로운 색을 가진 기품있는 비색청자, 상감청자는 오늘날까지 세계적 명품이다. 부안 유천리 가마터는 1929년 처음 발굴됐다. 1939년 일제가 사적으로 지정했지만, 수많은 청자를 빼돌렸고, 해방후에는 도요지 퇴적층이 파괴됐다. 그동안 발굴조사 결과, 유천리 가마터가 전남 강진 일대 가마터와 함께 고려청자 최대 제작지로 쌍벽을 이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결과물이 2011년 4월 청자로 옆에 개관한 부안 청자박물관이다.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에서 하천 흔적이 발견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배병선)가 왕궁리 유적 발굴조사로 밝혀낸 성과다. 공주와 부여 익산을 잇는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2010년 이미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등재되었지만 정식 등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백제 중흥의 꿈을 담고 있는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600∼641) 때 조성된 왕궁성(王宮城)이다. 오랫동안 비밀에 쌓여있던 이 공간은 1989년부터 백제문화권 유적정비사업의 하나로 연차 발굴이 진행되어 왔다. 왕궁 터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지난 2004년, 부여문화재연구소가 300여일에 걸쳐 발굴조사한 왕궁 터와 유물이 공개되면서다. 고대 궁성 관련시설의 대지조성과 공간구획의 실체가 확인되면서 왕궁리 유적에 역사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계획적인 설계에 의한 궁성의 축조양상이 확인되면서 학계는 그동안 확인된 백제 시대 왕궁의 어느 것보다도 완전한 형태의 궁성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실체는 화려했다. 궁성 건물지를 건립하기 위해 기반을 다진 석축과 계단 역할을 하는 월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자리한 후원, 뒷간이 있었던 자리까지 세세하게 드러난 현장은 경이로웠다. 기존에 발굴됐던 터의 구체적 확인 외에도 새롭게 드러난 건물지와 유물도 적지 않았다. ‘王宮寺’가 새겨진 명문기와와 중국청자편, 철제솥 등 중요유물이 쏟아졌으며 궁성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방지에서 출토된 금세공 유물은 아름답고 정교함으로 마음을 빼앗았다. 백제인들의 소박하면서도 섬세한 미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유물들이었다. 궁성의 존재는 오래전에 확인됐지만, 궁성의 내부 구조와 생활공간 등의 흔적이 대대적으로 확인된 것은 중요한 성과였다. 거기에 더해 올해 왕궁리 유적은 또 하나의 실체를 얻었다. 돌아보면 왕궁리 유적 인근에는 삼국시대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 터와 무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쌍릉, 현존하는 백제 석불 중 가장 큰 석불을 갖고 있는 석불사가 있다. 무왕이 건립했다는 제석사도 왕궁리 유적과 불과 1.3km에 있다. 이 유적들이 놓인 공간의 배치를 들여다보면 익산 왕궁리 일대의 역사적 의미는 더 새로워지고 그만큼 실체가 궁금해진다. 내년 6월 독일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백제인들의 꿈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지난 2002년 11월 11일. 민주당 전북도지부 선대위 발대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호남 대통령이 호남에 다 준다는 의혹과 질시 때문에 역차별을 받았지만 나는 그런 점에서 자유롭다”며 전북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약속했다. 그 해 11월 24일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의 대선후보 단일화를 앞두고 전주를 다시 찾은 노무현 후보는 “당내 후보경선 때 전북에서 노풍을 일으켜 주었듯이 다시 한번 도와주면 배반하지 않고 꼭 빚을 갚고 보답하겠다”고 확언했다. 투표결과 노무현 후보가 전북에서 91.6%의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전북 홀대는 역대 정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새만금 관문인 새만금신항만 건설 계획은 2006년 제2차 전국 무역항 기본계획에서 빠졌고 전주권 신공항은 김제주민 반대를 빌미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역 언론에선 노대통령 임기내내 역차별 배신 무대접 이란 단어가 반복됐다.지난 2007년 12월 27일. 대선 지방유세 마지막 일정으로 익산을 찾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낙후된 전북의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호남 운하 건설을 약속했다. 내륙항이 들어서는 익산과 전주 정읍을 다목적 복합지구로 개발해 신산업 레포츠 물류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여기에 새만금 호반도시 인프라 구축을 통해 동북아의 두바이로 개발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하지만 호남 운하와 내륙항 건설은 그야말로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했다. 새만금의 두바이 청사진도 신기루에 그쳤다. 새만금 내부 개발을 2020년까지 마무리하려면 매년 1조원 이상 국비가 집중 투입돼야 하지만 찔끔 찔끔 언 발에 오줌누기식이였다. 그 사이 4대강 22조원, 해외자원개발 41조원, 방위산업 40조원 등 이른바 ‘사자방’사업에 100조원 넘게 쏟아 부었다. 더욱이 해외자원개발의 경우 5조원만 회수가 가능하고 나머지 36조원은 사라져 국민 혈세 낭비 논란과 함께 야권에서 국정조사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지난 11월 24일 취임 후 1년 9개월만에 전북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은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서 전통문화 농생명 탄소산업과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 기공식에선 “네덜란드 푸드밸리와 미국의 나파밸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식품산업 허브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약속한 것은 반드시 실천하는 정치의 새 모습을 제가 반드시 보여드리겠습니다” 지난 2012년 10월23일 대선 전북선대위 출범식에서 밝힌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발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경찰관 등 공직자들의 처우개선을 꼽을 수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이전만 해도 공직자들의 대우가 좋지 않아 항상 공직자를 소개할 때는 그 앞에 박봉에 시달린다는 표현을 썼다. 그간 정부가 공무원 처우 개선에 나선 결과, 지금은 많이 나아져 공직자 되는 게 선망이다. 9급공무원 시험경쟁률이 이를 잘 말해준다. 대졸자들이 굳이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보다 공직을 우선시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공무원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유는 정년보장과 신분이 안정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기업에 버금 갈 정도의 보수까지 받아 공무원 되길 원한다. 공직에서 총각 처녀들은 신랑 신붓감 1순위로 상한가를 친다.공무원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라서 권한과 책임이 막중하다. 영어로 공무원을 Civil Servant라고 부른다. 세금을 내는 시민들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하지만 과연 그 뜻대로 그렇게 잘 하고 있을까. 대다수 공직자는 자기 맡은바 분야에서 잘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에 나오는 종술이 마냥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천방지축 나부대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는 뇌물 받지 말라고 귀가 닳도록 청렴을 강조해도 막무가내인 사람이 있다. 준공검사 할 때 시공회사한테 돈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강심장도 있다. 지금도 목숨 걸고 뇌물을 받아먹는 사람이 있다. 상당부분 윗선은 정화가 됐다. 아래는 아직도 정화가 덜 됐다. 예전에는 벼슬이 높을수록 뇌물 액수가 컸지만 지금은 실무자가 목숨 걸고 뇌물을 챙겨 먹기 때문에 아랫사람 것이 더 크다.나라가 잘 되려면 공직자 부패가 없어야 한다. 역대 정권마다 공직자 부정부패를 청산하겠다고 금과옥조처럼 되뇌어왔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나 공직세계의 먹이사슬구조는 장난이 아니다. 온통 마피아처럼 이해관계가 얼켜 썩어 문드러져 있다. 모피아에서 출발한 공직마피아들이 각 부문에서 활개 친다. 뇌물을 갖다 바치지 않으면 되는 게 없다. 대한민국이 부패공화국이랄 정도로 망가졌다. 썩지 않은 곳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부정부패와 한판 전쟁을 치러야 한다. 지금 공직자들한테 다산정신의 실천을 주문하고 싶다. 목민심서를 가슴으로 읽고 행동으로 옮기라는 말이다. 다산은 정신을 먼저 개혁하고 법제와 기술개혁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얼마나 선견지명인가. ‘고치고 바꾸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리’라고 경고했던 다산 정약용의 외침이 지금도 생생하다. 갑질하는 공직자들 백성을 졸로 보는가. 상무이사 주필
우리나라 첫 국회의원 선거는 1948년 5월10일이다. 이른바 5·10 제헌의원 총선거다. 이때 전북은 22명의 제헌의원을 탄생시켰다. 전북의 총 인구 수는 201만6142명, 유권자 수는 80만1988명이었다. 충남 금산이 당시엔 전북의 선거구였고 완주 정읍 고창 김제 익산 지역은 각각 갑과 을 두개 선거구였다. 전북 22개 선거구. 지금 생각하면 꿈 같은 숫자다. 선거구 수도 많았지만 역량 있는 정치인들도 많았다. 나용균(정읍 갑) 백관수(고창 을) 조한백(김제 갑) 등 걸출한 인물들이 이 때 선출됐다. 소석 이철승은 당시 27세로 전주에서 최연소 무소속 출마했지만 곡성 출신인 신성균씨(당시 43세)한테 고배를 마셨다. 현행 우리나라 국회의원 지역구는 246개다. 비례대표 54명을 합한 300명이 국회의원 정수다. 전북 지역구 국회의원은 11명이다. 지역구 의원 대비 4.5% 비율이다. 16개에 이르는 국회 상임위를 커버할 수도 없는 숫자다. 상임위는 소관 부처의 사업과 예산은 물론 세세한 것까지 다루는 국회 내 권력기구다. 상임위에 지역출신 의원이 없다면 지역현안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지역의 정치력은 인구에 비례해 왔다. 경부축 위주의 산업화 이후 전북은 인구가 물밀듯 빠져 나갔다. 국회의원 숫자도 그에 비례해 양적으로 쪼그라들었다. 몇몇 역량 있는 정치인이 있었지만 ‘DJ시대’ 이후엔 질적으로도 수척해졌다. 오늘날의 정치 현실이다.그런데 인구가 줄어든 농촌지역이 또 위기를 맞게 됐다. 2001년에 만들어진 ‘선거구별 인구편차 3대1’이 이젠 2대1로 조정된 탓이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은 22개 선거구가 늘어나고, 영·호남은 8곳이 줄어들 판이다. 투표가치의 불평등성이 너무 지나치다는 이유로 인구편차를 줄였지만, 그 결과 이젠 수도권-농촌지역간 정치력 불평등성의 간극이 크게 벌어지게 됐다. 얼마전 여야 국회의원들로 ‘농촌지역 주권 지키기모임’이 발족된 것도 이 사안의 심각성 때문이다. 선거개혁이 화두다. 13년만에 틀을 정비할 절호의 기회다. 선거구 개편과 함께 도농복합, 중대선거구, 권역별 비례대표, 석패율제, 독일식 정당명부제 등이 검토 대상이다. 투표가치와 지역 대표성, 지역주의 완화 등 세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선거 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럴 때 국회의원들이 모처럼만에 밥값 했다는 소릴 들을 것이다. 수석논설위원
규제 풀어야 현대차 새만금투자 성공한다
금융사 전북 이전, 구체적 실행방안 제시하라
새만금 웅비의 상징 ‘현대차그룹’
전북은행장, 지역이해도 높은 내부 발탁을
전북 ‘금융중심지’, 이제 속도가 관건이다
이순신 장군의 사생활 엿보기
땅값 폭등한 완주지역 허가구역 묶어야
전북지사·전주시장 3선 출마 여부, 객관적 평가가 우선
‘공직자 줄서기’ 악습, 이번엔 뿌리 뽑아야
'언론플레이'보다 '여론몰이'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