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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은 세계 최대의 신데렐라 작물이다. 생산과 이용, 모든 면에서 그렇다. 웰빙식품이나 가공식품 뿐 아니라 가축사료, 바이오에너지, 잉크, 플라스틱, 섬유 등 용도가 1000 가지가 넘는다.이러한 콩의 고향은 한반도와 만주지역이다. 우리가 먹는 곡식 중 유일하다. 우리 조상들이 콩 재배의 주역이었던 셈이다. 콩나물을 키워 먹는 민족도 우리가 유일하고, 이것을 제사상에 올리는 민족도 우리 밖에 없다.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 발효식품인 전통 장류와 두부 요리에는 한민족의 정서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한반도에서 콩을 재배한 것은 5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를 전후한 유적지에서 탄화콩이 출토돼 당시 콩을 식량으로 사용하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반면 서양에는 18세기에 전래되었고, 널리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였다.콩의 가치를 일찍 깨달은 나라는 미국이다. 1929년 콩을 중심으로 식물 유전자원을 수집하기 위해 '동양 식물탐험 원정대'를 파견했다. 그들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콩 유전자 4471점을 수집했다. 그 중 우리나라(조선) 것이 76%인 3379점, 일본이 13%인 579점, 만주가 11%인 513점이었다. 그들은 보고서에서 "조선에서 모은 자료와 사진만으로도 훌륭한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라고 기록했다.미국정부는 1930-40년대 콩 증산정책을 썼고 생산과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세계의 콩 재배면적은 1억㏊가 넘고 계속 증가 추세다. 2010년 기준 세계 콩 생산량은 미국이 가장 많은 9140만톤으로 35%를 차지한다. 이어 브라질 27%, 아르헨티나 21% 순이다. 중국은 1990년대 초까지 콩 수출국이었으나 이제는 최대 수입국으로 변했다. 미국 수출물량의 70%를 수입하는 최대 고객이다. 그런데 올 들어 미국이 최악의 가뭄으로 콩값이 폭등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2월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이 미국 방문시 저렴한 가격으로 862만톤을 미리 구매했다. 당시 가장 큰 손인 중국의 최고위층이 미국 방문 선물로 콩을 사준 것이다. 이것을 당시 시장에서는 '시진핑 랠리'라 했다.그럼 우리는 어떤가. 우리나라의 콩 수입량은 156만톤(2009년 기준)으로 자급률은 8.4%에 불과하다. 콩의 원산지인 우리가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안타깝다. 조상진 논설위원
"우리는 한국의 유서 깊은 도시 전주에 모였다. 아시아 아프리카의 40개국 300여명의 작가들이 모인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은 우리에게 새삼스레 그 역사적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하고 만난 우리는 이곳에서 서로 발견하고 발견당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모임을 통해 확인된 인간에 대한 열망과 정신을 모든 아시아·아프리카 동료 작가들께 전하고자 한다.-AALF 전주선언-"전주에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인들이 모인 것은 2007년 가을이었다. 그해 11월 8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전주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AALF). 조용했던 도시 전주는 문학으로 세상을 깨웠다. 새로운 문학적 가치 실현을 위한 첫 도전과 실험의 현장에서 백낙청 조직위원장은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인들이 지역과 인종, 국적과 사상을 초월해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벅찬 감회를 누르기 힘들다"고 전했다. 사실 세계사의 중심으로부터 변방으로 치부되어 왔던 아시아 아프리카의 문학인들이 한 공간에서 같은 가치를 지향하며 교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므로 두 대륙이 문학을 통해 연대하며 서구 중심의 세계문학사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발판을 이곳에서 마련했다는 평가는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두 대륙 문학인들은 연대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주목했다. 고은 시인은 "지난 세월 오랫동안 우리를 규정해온 제3세계라는 이름을 폐기함으로써 아시아·아프리카는 어떤 타율적 장애 없이 자생하는 생명체로 소통할 수 있다"고 선언했으며, 이집트 소설가 나왈 엘 사다위는 "오늘날과 같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정의는 군사력과 경제적 권력에 기반하고 있다"며 두 대륙의 만남을 통해 정의가 복원되기를 소망했다. 7일 동안 문학으로 소통했던 도시 전주는 문학인 뿐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행복한 공간이었다. '작가와의 만남' '특별토크쇼' '시낭송회' '맞장토론' 등 매일 이어지는 다양한 문학행사에서 독자들은 책으로만 만났던 작가들과 대화하고 교감했다. '디아스포라' '언어' '여성' '평화' '분쟁지역 작가' 등의 주제를 놓고 진행된 학술행사 역시 같은 아픔을 지닌 두 대륙이 세계 평화를 위해 형성해나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세계 문학의 변방에 머물렀던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그들의 언어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AALF'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5년이 지난 지금, 단절된 연대의 복원은 기대할 수 없다. '한바탕의 가을 꿈'이 되고 만 'AALF'의 기억이 새롭다. 복원의 다리를 놓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는 짐승을 죽인 것이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지난 1991년 1월 30일 어릴 적 자신을 성폭행했던 이웃집 아저씨를 21년 만에 찾아가 살해한 김부남씨(당시 30세)가 법정에서 진술한 말이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이었던 김씨는 우물을 같이 사용하던 이웃집 송모씨(당시 35세)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9살 어린이는 성폭행 상처로 열흘 간 제대로 걷지도 못했지만 부모에게 혼날까봐 말도 못하고 몸과 마음의 고통을 혼자 겪으면서 보냈다. 그 끔직한 상처를 안고 성장했던 김씨는 타인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쌓이면서 작은 자극에도 공격성향을 보였고 결혼 후에도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지 못해 석달만에 이혼당했다. 재혼해서 아이를 하나 낳았지만 역시 어릴 적 겪은 상처와 트라우마로 인해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앓아왔다. 김씨는 자신이 당한 상처와 고통을 법에 호소하려했지만 당시 성범죄는 친고죄로 공소시효가 6개월에 불과해 송씨를 처벌할 수 없음을 알고서야 직접 살해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김부남 사건은 아동 성폭력이 부른 우리나라 최초의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보듯 아동 성범죄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인격 살인'인 동시에 한 영혼까지 파괴하는 '영혼 살인'이다. 또한 가족들도 평생 똑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 갈 수밖에 없다. 김부남 사건이후 여성단체에서 1991년 10월말 국회에 '성폭력특별법 제정' 청원을 냈고 1993년 말에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성폭력특별법이 제정 된지 20년이 다 되었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2008년 조두순 사건, 2010년 김수철 사건에 이어 이번 나주 고종석 사건 등 충격적인 아동 성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아동 성범죄는 3.3건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아동 성폭력사건 신고율이 10%를 밑도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도 우리 아이들이 성범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지난 5년간 성범죄를 저지른 9000여명이 아직도 붙잡히지 않고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니 걱정이 태산이다.성범죄, 특히 스스로 방어능력이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흉악한 성범죄는 법의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된다. 화학적 거세 확대 뿐만 아니라 스위스나 미국처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하도록 양형기준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민주당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예전 같지 않다. 지난 4·11 총선서 7명을 물갈이 해놓고도 썩 맘 내키지 않은 분위기다. 뭔가 2%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지난 1일 치러진 민주당 대선후보 전북 경선 투표율이 45.51%로 가장 낮은 이유가 모든 걸 대변한다. 도민들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2부리그로 치러진다고 여겨 관심이 낮았다. 최종적으로 안철수 서울대교수와 야권 단일화 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혹자들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서커스단 보다 박진감도 감동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불공정 경선 관리 논란과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로 민주당이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면서 더 그렇게 느낀다. 이 고장 출신 정세균 후보가 뛰었지만 체면치레만 해줬다. 선거인단은 많이 모집했지만 모바일과 현장투표에 참가치 않아 오히려 문재인과 손학규 후보가 상대적으로 덕 봤다.종로서 새누리당 홍사덕 의원을 꺾고 당선된 정 후보가 도내서 문 후보에게 1위자리를 내준 것은 도민들이 가능성을 낮게 봤기 때문이다. 제주 울산 강원 충북을 돌며 누적득표 4.2%로 꼴찌인 정후보에게 희망을 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지난 17대 대선 때 정동영 후보가 MB한테 530만표라는 기록적 표차로 떨어진 사실을 상기하면서 가능성이 약한 정후보에게 무작정 밀어줘봤자 약발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도민들은 지역 국회의원들이 이래라 저래라 한다해서 표를 안 찍는다. 각자가 전국적인 판세를 내다 보고 있다. 도민들의 정서는 민주당의 압도적인 지지도 아니고 과거처럼 새누리당에 백안시 하지도 않는다. 출마 선언도 안한 안철수서울대 교수를 으뜸으로 칠 뿐이다. 안 교수가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달 전북을 깜짝 방문, 강준만 전북대 교수 등을 만났다. 상당수 도민들은 이번 대선때도 전북이 광주 전남과 함께 호남이란 이름으로 묶여 가야는가 아니면 독자적으로 가야는가를 놓고 고민중이다.6일 광주 전남 경선서 문재인이냐 아니면 손학규냐로 판가름 난다. 도민들은 전북 정치권의 위상 강화를 염려하면서 어떻게 해야 실리를 챙길 수 있을지가 고민거리다. 그간 냉온탕을 모두 경험했기 때문이다. 70년대 전국 7대도시였던 전주의 위상을 되찾으려면 다수의 도민이 민 대선후보가 당선돼야 한다. 백성일주필
올해 명예퇴직한 교원 수가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전국적으로 4738명에 이른다. 2009년 2776명, 2010년 3548명, 2011년 3818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였다. 올해 명퇴자는 4년 전에 비해 70%나 늘어난 수치다. 전북도 마찬가지다. 올해 218명이 명퇴했다. 2009년 125명에 비해 74%나 늘었다. 명퇴 수당으로 지급한 돈이 141억7000여 만원이다. 1인당 6500만원 꼴이다. 명퇴 대상은 근무 연수 20년 이상, 정년 1년 이상 남겨둔 교원이 대상이다. 명퇴연령도 낮아지고 있다. 8월 명퇴자 평균 교직 경력은 28년, 나이는 53~54세 가량이다. 40대 신청자가 늘고 있는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지난 2월에는 공립학교 명퇴 신청자 중 40대가 5%(694명 중 36명) 밖에 안 됐지만, 8월에는 9%(585명 중 53명)로 급증했다. 과거 50대 후반이 주류를 이뤘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명퇴교원 증가 원인은 복합적이다. 건강상의 이유도 있고 자신만의 새로운 2모작 인생을 살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환경 변화에 따른 어려움이 근본 원인이라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지난 5월 한국교총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4.9%가 이같이 응답했다. 교육환경 변화로는 '학생지도의 어려움 및 교권추락 현상'을 꼽은 비율이 70.7%였다. 이유야 어찌됐건 천직으로 알고 내디딘 교직을 이탈하는 현상은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경험 많은 교사들의 노하우와 우수 자원의 능력이 일찌감치 사장되는 건 큰 손실이다. 교대는 내신과 수능이 각각 2.5 등급 이내에 들어야 가능하고 사범대 역시 바늘구멍 만한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교단에 설 수 있다. 명퇴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명퇴한 뒤 기간제 교사로 U턴하는 경우다. 담임 부담과 잡무에서 벗어나 책임질 일은 없는 반면 월 수입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명퇴금과 연금에다 기간제 교사 월급, 보충수업비 등을 감안하면 월급을 능가한다. 명퇴를 유혹하고도 남는다. 올해 도내 기간제 교사는 1060명이다. 교사들에겐 무엇보다 아이들 눈높이 사고와 행동, 활달한 성격이 중요하다. 요즘처럼 교육환경이 변화무쌍한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공부만 하다 교단에 선 교사들이 쉽게 좌절하고, 명퇴교사가 느는 현상을 보면서 교사선발과 양성, 명퇴제도가 적절한 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말하지 않는 보석이 살아있는 인간의 말보다도 더 힘있게 여자의 마음을 움직인다."영국의 문호 세익스피어의 말이다."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도 좋더란 말이냐?"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에 나오는 명대사다. 이렇듯 보석은 부(富)와 귀중함의 상징이다. 단단하고 빛깔과 광택이 아름다워야 함은 물론이다. 시대나 나라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긴 하나 보석은 누구나 좋아한다. 특히 여자가 더 선호한다. 최근에는 인공으로 보석을 합성하는 기술이 발달해 합성보석·인조보석도 많이 이용한다. 보석은 종류가 다양하다. 또 유래와 상징하는 의미도 각기 다르다. 사람이 태어난 달과 연관 짓는 탄생석(birth stone)으로 보면 가장 인기있는 다이아몬드가 4월로 사랑과 행복, 에메랄드가 5월로 청순과 행운을 의미한다. 9월은 사파이어로 덕망 자애다. 이러한 보석을 특화산업으로 내세우고 있는 도시가 익산이다. 익산이 보석산업을 유치한 것은 1975년부터다. 우리나라 유일의 귀금속가공단지에 100여 개 업체가 입주해 있고 왕궁보석테마 관광지와 보석박물관, 주얼팰리스(익산 귀금속보석전시판매센터)가 클러스터를 형성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여기에 보석축제인 주얼리엑스포가 열려 명성을 높이고 있다.하지만 1990년대 부터는 침체기였다. 입주업체들이 높은 임금과 원석 구입이 까다로와 중국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올해 들어 U턴하기 시작했다. 중국내 인건비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는데다 위안화 절상까지 겹쳐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탓이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국내 투자여건이 개선된 것도 한 몫을 거들었다. 미국에 수출할 경우 중국산에는 11%의 관세율이 부과되지만 국내산은 제로다. FTA 발효 전에는 5.5%였다.더하여 정부가 U턴 기업에 세금 감면 등 지원대책을 내놓으면서 이번에 처음으로 중국 청도에 있는 주얼리(jewellery·보석류, 장신구)기업 14개가 익산에 둥지를 틀었다. 중국 청도에만 한국 주얼리 기업이 400여 개에 달해 앞으로 U턴 기업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을 유치할 경우 신규투자 증대와 고용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이번 기회에 여성 친화 도시인 익산이 명실상부한 보석도시로 우뚝 섰으면 한다. 조상진 논설위원
전주 구도심에 있는 전북예술회관의 활용도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모양이다. 알려지기로는 전라북도 브랜드 공연물을 위한 상설공연장으로의 활용이다. 브랜드 공연 연구 보고서는 이 공간을 공연장으로 리모델링할 경우 20억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효율적인 활용도가 아쉬웠던 마당에 그 쓰임새가 구체적으로 모색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이 공간을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인가에 대한 것이다. 전북예술회관은 1982년 문을 연 이후 80년대와 90년대 전북지역 문화예술 활동의 집산공간이었다. 적어도 전북대삼성문화회관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문을 열기 전까지 지역 문화예술을 상징하는 문화공간은 전북예술회관 뿐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전북예술회관의 공연장 기능은 마비됐다. 도심 안에 있다는 지리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낡고 빈약한 시설과 방치되어 있는 듯 한 공간 환경을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전북예술회관이 제 기능을 할 때도 건물의 맨 윗층에 있는 공연장의 활용도는 늘 화제가 됐다. 1·2층과 3층을 지나 4층까지 오르내려야하는 불편함은 차치하더라도 공연예술의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구조 탓이었다. 그나마 전북예술회관의 존재를 지킨 것은 전시실의 기능과 문화예술단체의 사무실 기능이다. 얼마 전부터 구도심 활성화와 연계한 전북예술회관의 효율적 활용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바람직한 활용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전북의 브랜드공연과 관련되어 나온 전북예술회관의 상설공연장 활용은 그 배경의 목적성에도 불구하고 다소 일방적이고 충동적인 제안으로 보인다. 독일 베를린에는 '발하우스 콘서트홀'(Ballhaus Naunystrasse)이라는 아주 작고 낡은 공연장이 있다. 19세기 베를린의 전형적인 사교댄스장이었던 오래된 건물을 복원, 독특한 형식의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평범한 주거지역의 건물 사이에 있어 찾아가기도 쉽지 않고, 화려하게 리모델링된 재생공간들과는 대조될 정도로 낡고 비좁지만 베를린안의 자유로운 예술가 그룹의 창작무대로, 국제예술 무대로 활용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우리를 주목하게 하는 것은 이 공간의 쓰임새를 결정한 과정이다. 이 지역주민들과 전문가들은 제안된 다양한 활용방안을 놓고 고민하면서 '오래된 공간의 역사를 기억하면서도 가장 가치 있게 활용하는 방식'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공간은 지금 지역주민들의 자랑거리가 됐다. 전북예술회관도 지역의 자랑이 될 수 있는 오래된 공간이다. 그 활용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운수(雲水)는 백제의 옛 영토였던 고현(古縣)과 청웅(靑雄)으로서 호남과 영남의 요충지에 끼어있어 가히 한 나라의 적을 방어하는 보루와 장벽이 될 만하다. 동쪽으로는 고덕산과 성수산의 뾰쪽이 빼어난 봉우리들을 이끌고 서쪽으로는 운암과 갈담강의 깊고 맑은 물에 에워싸여 폭과 둘레의 넓이가 100여 리이며 방면의 수가 18이다. 변경방어의 견고함과 물산의 풍부함으로 볼 때 참으로 토지가 비옥하고 산물이 풍부한 땅이다.'여기서 운수(雲水)는 임실의 옛 지명으로, 운수지(雲水誌) 서문의 내용 가운데 일부다. 운수지는 1904년(고종 41년) 참판 윤태일이 기록한 임실군의 역사지로서 그 번역본이 이번에 출간됐다. 지난해부터 임실문화원이 일반인들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작업에 심혈을 기울여 지난 8월초 펴냈다. 임실의 지지(地誌)인 운수지는 원래 1675년(숙종 1년) 현감 신계징이 기록했으나 지금은 발문(跋文)만 남아 있을 뿐이며 1924년 임실군지가 만들어졌으나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것이라 이번에 번역된 운수지가 임실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임실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로서 산수가 빼어나고 땅이 기름져 산물이 풍부한데다 충효의 고장으로 알려져 운수지에도 충신과 효자 열부 선행자들에 대한 방대한 기록이 망라돼 있다. 충절편에 보면 병조참판에 증직된 박순달은 의병장 고경명과 이종형제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구와 맞서 싸웠고 절의를 지키다 죽었다. 이 처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갑자난(이괄의 난) 병인양요 갑신정변 등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몸을 던져 싸웠던 충신 48명의 행적이 기록돼 있다. 효행편에는 7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칼로 위협하는 도적 떼에 죽을 각오로 맞서자 도적들이 감탄하고 놓아주었다는 윤두표를 비롯 부모의 대변을 맛보며 병세를 알아서 처방했다던 박순 등 모두 244명의 효행이 수록됐다. 이외에도 남편의 병세가 위급해지자 넓적다리 살을 베어 복용케 해서 살렸다는 전주이씨, 정유재란 때 갑자기 왜구를 만나자 시아버지와 남편 앞에서 칼을 들고 대치하자 적들이 놀라서 달아나 화를 면하게 했다는 흥덕장씨 등 92명의 효열부 이야기도 있다. 임실의 역사와 문화의 재발견 작업인 운수지 번역본 발간을 통해 임실군이 그동안 민선 단체장들의 불명예를 씻고 새롭게 재도약하는 전기가 됐으면 한다.
올 여름은 비가 제때 안오고 폭염 때문에 고통이 컸다. 열대야가 15일 이상 지속돼 밤잠을 설친 경우가 많았다. 춘지기방야(春之氣放也) 하지기탕야(夏之氣蕩也) 추지기신야(秋之氣神也) 동지기도야(冬之氣道也). 일년 4계는 변환과 수렴과정이다. 봄에 씨앗 뿌려 여름에 부지런히 가꾸고 가을에는 수확의 기쁨을 맛 보며 겨울에는 다음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인생도 다름없다.절기상으로 처서가 지났기 때문에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 것이다. 하지만 여름의 열기가 남아서 덥다. 사람들은 지금을 여름으로 느끼지만 하늘은 가을을 준비한다. 음기운이 서서히 열화(熱火)를 에워싸 계절의 순행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봄이 생기(生氣)라면 여름은 왕기(旺氣)가 되고 겨울은 사기(死氣)가 되는데 ,특별히 가을은 숙살지기(肅殺之氣)라 했다. 엄숙해지고 살 떨리는 기운이라는 뜻이다.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과정을 '금화교역'이라 한다. 금(金)은 가을 화(火)는 여름이다. 금화교역이란 금기와 화기가 교체된다는 말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과정은 비교적 완만하다. 하지만 여름에서 가을은 그렇지가 않다. 뜨겁던 여름의 열기가 졸지에 쌀쌀하고 매서운 가을 기운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의 대혁명이라고 말한다.대선 철이다. 30일 민주당 전북 경선이 시작된다. 비문(非文) 3인방이 문재인 후보의 선두를 탈환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전북의 선거인단이 자그만치 10만 규모여서 경선의 분수령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출마선언도 안한 안철수 서울대교수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전북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결선투표의 향배가 달려 있을 수 있다. 대규모 캠프를 꾸린 정세균 후보의 득표력도 변수다.전북은 수도권 집중에 따른 소외로 가장 살기가 힘들다. 변방으로 내몰려 기업 유치도 팍팍하다. 김완주 지사가 백방으로 뛰어도 되는 게 없다. 중앙 정부로부터 힘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만금사업도 하대명년이 될 수 있다. MB가 준공연도를 10년 앞당기고 토지이용계획을 바꿨지만 제때 완공될 것이라고 믿는 도민들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대선이 전북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화려한 여름의 열기가 사라진 터전에서 지혜의 열매를 얻으려면 전북인이 이번 경선에서 매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백성일 주필
"일본과 러시아가 인천항에서 포격전을 벌여 대포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탄환이 비오듯 하더니 러시아 함대가 패하고 말았다. 이때 궁안은 물론이고 장안의 사람이 모두 도망치고 구중궁궐이 텅 빈 집이 되었다." "외교력도 군사력도 없는 정부와 우와좌왕하는 지도층의 모습이 서양 종군기자들의 보도를 통해 세계에 알려지면서 국제적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지도층이 특히 웃음거리가 되었다."러일전쟁 당시 대한제국의 광경이다.(강준만의'한국근대사 산책') 1904년 2월8일 일본이 뤼순항과 인천 제물포 항의 러시아 함대에 어뢰를 쏘아 시작된 러일전쟁은 한반도와 만주를 놓고 격렬하게 맞붙은 땅따먹기 전쟁이었다. 일본의 승리로 뤼순과 다롄이 일본 수중에 들어갔다. 이듬해 을사늑약으로 이어져 결국 한반도가 일본에 빼앗긴 계기가 된 전쟁이다. 독도를 일본 땅으로 편입시킨 것도 이때였다. 1905년 2월22일 이른바 '시마네현 고시(제40호)'라는 걸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 부속 섬으로 편입시켰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함대와 일본 함대가 마주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군사적 목적으로 강탈한 것이다. 동남아 식민지 재편을 공고히 한 것도 러일전쟁이었다. 일본 승리로 체결된 테프트(미 육군장관)-가쓰라(일 총리) 밀약은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한 아주 나쁜 협약이다. 그러자 영국도 제2차 영일동맹을 맺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승인하고 일본도 영국의 인도와 버마(미얀마) 지배를 묵인했다. 동남아지역 땅따먹기 완결판이다. 러일전쟁은 실질적으로 한반도 지배권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전쟁이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는 러시아도 중국도 아닌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우리 중·고교 교과서는 너무 소홀히 다루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이자 미래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준다. 내일(29일)이 경술국치일이다. 나라를 빼앗긴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힘이 없으면 남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치욕을 감내해야 하고, 국가 지도자들이 무능하면 엄청난 희생을 치른다는 교훈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이다. 지금도 독도와 센카쿠, 쿠릴열도를 놓고 한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러일전쟁 108년이 지난 지금도 땅따먹기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옥수수에 붉은 솔이 늘어진 것이 꼭 등에 업힌 어린아이와 같다. 언제 보아도 그것이 어린애 같았다. 옥수숫대는 어린 것이 잠이 깰세라 하고 고이고이 업고 있었다." 이광수의 수필 '여름의 유머(일명 소가 웃는다)'에 나오는 대목이다. 작가 눈에는 옥수숫대에 옥수수가 열린 모습이 꼭 등에 업힌 어린애 같아 우스웠던 모양이다."옥수수밭은 일대 관병식(觀兵式)입니다. 바람이 불면 갑주(甲胄) 부딪치는 소리가 우수수 납니다." 이상의 '산촌여정(山村餘情)'의 한 대목으로 옥수숫대가 가지런히 서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밭에서 금방 꺾어 온 옥수수를 쪄서 치열(齒列)처럼 꼭꼭 박혀있는 알갱이를 씹는 맛이 그만이다. 또 방 안팎에 매달아 말린 옥수수 알갱이를 따서 튀밥을 튀기면 궁금한 입을 막기에 딱 좋다. 옥수수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인류가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500년 정도로 짧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해 들어왔으며 중국음의 위수수(玉蜀黍)에서 우리식 발음인 옥수수가 되었다. 구슬같이 노란 수수라는 뜻이다. 사투리 강냉이는 '강남에서 온 것'이라는 말이 바뀐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간식으로 애용되는 옥수수가 이제 세계 곡물시장을 호령하는 왕자가 되었다. 벼, 밀과 함께 세계 3대 식량작물로 등극한 것이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1억5900만㏊에서 연간 8억1900만톤(2009년 기준)을 생산해 밀(6억8600만톤)과 쌀(6억8500만톤)보다 20%나 더 많다. 식품 사슬의 정점에 위치하는 셈이다. 슈퍼마켓 진열상품의 75%에 옥수수가 들어 있고, 연료와 약품, 비누, 연탄, 타이어, 잉크 등 다방면에 이용되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곡물 생산량의 60%가 옥수수(자급률 0.8%)다. 수입된 옥수수의 75%가 가축사료, 21%가 가공용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세계 옥수수의 40%를 생산하는 미국이 올해 가뭄으로 흉작이 들면서 불과 2달 사이에 가격이 50%가량 급등했다. 더구나 세계 곡창지대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도 소출이 20% 이상 감소했다. 사룟값이 오르면 소 돼지 닭고기 값이 오르고, 과자 음료수 등 가공식품 가격도 오를 수에 없다. 옥수수로 인한 애그플레이션(곡물 가격발 인플레이션)이 세계 식량 위기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의 현실이 걱정이다. 조상진 논설위원
세계의 도시들이 '도시 재생'에 나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 건축물이나 오래된 건축물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일은 단순히 쓸모없게 된 공간을 다시 활용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중국 최대도시 상해에도 도심재생을 성공시킨 공간이 적지 않다. 모간산루(莫干山路) 50호 지역이 대표적이다. 'M50'으로 불리며 널리 알려진 이곳은 북경의 '다산츠(大山子) 798'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예술단지로 꼽힌다. 두 곳 모두 대규모 공장 단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간산루는 원래 황푸강 지류인 쑤주우허(蘇州河) 남쪽 강변에 있는 평범한 마을이었는데 배를 이용한 물류수송의 이점 때문에 1930년대, 방직공장들이 들어서 대규모 단지를 이루었다. 모간산루 뿐 아니라 쑤주우허 일대는 면화공장 기계공장, 인쇄공장, 염색공장 등이 몰려있어 상해 서부산업지구의 중심으로 꼽혔다. 자연히 연안의 개발과 보존에 각별한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상해 시정부는 치수와 수질오염개선 오염방지 연안정비에 집중투자하면서 새로운 연안개발계획을 세웠다.이 계획에 따라 공장들이 외곽으로 이전하자 오래된 공장과 창고는 철거되거나 방치됐다. 더 이상 공장으로는 쓸모없게 된 이 지역 공간을 눈여겨 본 사람이 대만 건축가 텐쿤얀(Teng Kun Yan)이다. 임대료도 싼데다 공장이라는 특성 때문에 공간도 넓어 창작을 하는 예술가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1998년 텐쿤얀의 'Dayang Design Company'를 시작으로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간산루의 빈 공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해 시위원회는 2004년 이곳을 문화산업지구로 지정했다. 얼마 전 상해 문화산업지구 몇 군데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역시 가장 관심을 끈 곳이 이곳 'M50'이다. 'M50'에는 20여개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다. 미로처럼 놓인 건물 안팎에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 아트샵, 서점,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공간마다 특성을 달리하는 갤러리를 엿보는 것도, 관광객들의 눈길을 개의치 않는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훔쳐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알려지기로는 10여개국 200여명의 예술가들이 입주해있으며, 하루 평균 5천명 주말에는 1만 명 가까운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관광객 수도 그렇지만 더 주목했던 것은 이곳에 들어와 있는 적지 않은 외국계 갤러리와 문화관련 회사들, 다시 말하자면 외국 자본의 유입이다. 'M 50'를 예술창작지구나 예술촌이 아니라 문화산업지구로 지정한 배경도 분명해졌다. 예술가들의 창조적 작업을 경제적 가치와 연결시키는 산업. 기업의 역할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지역이 골몰하는 기업유치 대상은 어떤가.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은 산이요, 만 가지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로 합하는 것은 물이다. 산수(山水)는 열둘로 나타낼 수 있으니 산은 삼각산 백두산 원산 낭림산 두류산 분수령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 장안산 지리산 등 12산으로 나누어지며, 12산은 나뉘어 팔로(八路)가 된다. 팔로의 여러 물을 합하여 한강 두만강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대진강 금강 사호강 섬강 낙동강 용흥강 등 12수가 되고, 12수는 합하여 바다가 된다. 흐름(水)과 솟음(山)의 형세와 나누어지고 합함의 묘함을 여기에서 가히 볼 수 있다.조선 후기 지리학자이자 실학자인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지리서인 산수고(山水考)에서 산수의 원리에 대한 설명이다. 1년 12달과 같이 우리나라 산과 하천을 각각 12개의 산과 물줄기로 정리한 산수고는 후일 여암이 집대성한 지리서인 여지고(與地考)의 근간이 되며 백두대간과 장백정간 호남정맥 등 13정맥 용어를 처음 도입한 산경표(山經表)를 작성하는 기초가 되었다.이 천재 지리학자 신경준이 우리 고장 순창출신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신경준은 신숙주의 동생 신말주의 11대 후손으로 신말주는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형과는 달리 벼슬을 버리고 그의 부인 설씨(薛氏)의 고향인 순창으로 내려와 귀래정을 짓고 시문을 벗삼아 지냈다고 한다. 1754년 문과에 급제, 강계·순천 부사와 제주 목사 등을 역임한 신경준은 지식이 해박하고 학문이 뛰어나 강계고 사연고 도로고 군현지제 가람고 차제책 등 다방면에 걸친 지리학 저술과 함께 동국여지도 팔도지도 등도 제작했다.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를 지어 한글의 과학적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일본증운(日本證韻) 언서음해(諺書音解)도 저술하는 등 음운학적으로도 유명하다.그는 당대에 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인정했던 천재 학자로서 지리학 분야에 금자탑을 쌓았지만 오늘날 우리 지리학계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다행히 순창군이 오는 10월 5일 신경준 탄생 3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신경준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하고 지리학과 문학 어학 과학 사학 분야에 있어서 학제적으로 고증하고 재조명할 예정이다. 무덤에 묻혀던 천재 지리학자 여암 신경준이 이제서야 다시 살아나는 듯 하다.··
지난 13일 군산은 441mm의 물폭탄을 맞고 아비규환의 장으로 변했다. 마치 노아의 방주를 타야만 할 정도로 하늘이 뚫렸다. 가뭄이 너무 들어 그렇게 애타게 비소식을 기다렸지만 한꺼번에 폭우로 변해버려 도시가 완전히 마비됐다. 도심이 저지대이고 만조 때라서 피해가 컸다. 수해 발생 일주일이 지나면서 피해액이 공공피해액 72억을 합해 500억을 넘었다.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다.이처럼 군산시가 순식간에 물포탄을 맞아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도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되지 않고 있다. 이유는 공공시설 피해액이 75억원을 넘어야 하는 기준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지금 군산은 숫자놀음을 할 정도로 한가한 지역이 아니다. 응급복구하는데 일손이 부족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군산시민들은 최근 3년동안 수해를 입어 비만 오면 걱정이 태산같다.피해주민들은 전기와 상수도가 끊겨 뜬 눈으로 첫밤을 지새웠다. 또다시 호우경보가 발령될 때는 아파트 피해자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벌였다. 그야말로 1주일 사이에 군산시민들은 지옥과 천당을 오가면서 심신이 극도로 지쳐버렸다. 피해소식을 접한 군 관 민은 즉각적으로 응급복구 대열에 합류했다. 주로 도내 기관단체가 줄을 이었다. 김완주지사를 필두로 서거석 전북대총장 송하진전주시장 정운천 새누리 도당위원장 등이 피해상황을 살피며 응급복구 대열에 동참했다.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도 중앙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야 대선 주자 중 정세균후보만 현장을 다녀 갔을 뿐 나머지 주자들은 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국민을 사랑한다던 대선 주자들이 군산을 완전히 외면했다. 박근혜 등 여당 주자들은 19일 경선이 코 앞에 닥쳐서 그럴 수 있었겠지만 야권주자들은 말로는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고 강조한 사람들이었는데도 꼴도 보이지 않았다.대선주자처럼 중앙부처 장차관들이 안오기는 매 한가지였다. 군산이 큰 피해를 당하고도 주목 받지 못한 이유가 따로 있다. 거물 정치인이 없고 야당도시라서 외면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피해 입은 군산은 딴나라가 아니다. 민생투어에 나선 대선 주자들이 만사를 제치고 피해 현장으로 한걸음에 달려왔어야 옳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선거 때마다 열나게 민주당 후보만 찍어댄 군산시민이 불쌍할 뿐이다.
전남 장성군 서삼면 일대 축령산 기슭에 들어찬 편백나무 숲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치유의 숲'이다. 이 숲을 가꾼 주인공은 순창 출신 고(故) 춘원 임종국(林種國) 선생이다. 1957년부터 편백나무 253만 그루를 심었다. '숲(林)의 씨(種)가 되어 나라(國)에 기여할 사람'이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살았다. 평생토록 혼신의 땀과 열정으로 일궜지만 말년엔 조림사업에 들인 빚이 불어나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결국 숲은 외지인 9명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정부가 40억원을 들여 숲의 일부를 매입해 국민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숲은 2000년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됐다. 연평균 30여만명이 찾아와 숲 체험과 산림욕을 한다. '치유의 숲'은 완주군 상관면에도 있다. 전주쪽에서 죽림온천 가는 길 조금 전에 위치한 공기마을 편백나무 숲이 그곳이다. 꽤 널리 알려진 곳이다. 1975년 미원그룹이 손가락 굵기의 편백나무를 조림한 것이 무성하게 자라 군락을 이루고 있다. 완주군이 '치유의 숲'으로 명명했다. 지금은 50여만평이 넘는 산림중 26만평이 사유림이다. 산주(山主)가 3명으로 나뉘어 있다. 지난주 2년만에 이곳을 찾았다. 책 몇권 끼고 피톤치드를 흠뻑 들이마시며 쉴 요량으로 갔지만 실망스러웠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쉴만한 곳도 마땅치 않고, 의자나 쉼터 등은 아예 생각할 수 조차 없었다. 2년전이나 똑같았다. 지난 장마때 비바람에 쓰러진 채 방치돼 있는 편백나무들도 많았다. 내친 김에 옥녀봉 한오봉 쑥재 등산로를 헤집고 다녔다. 2시간 30분 정도의 산행으로 제격이다. 호남정맥인 이 등산로는 사방팔방으로 이어진 능선이 많은 곳이다. 그런데도 안내판에는 거리나 시간 등이 명기되지 않아 정보기능이 제로였다. 최고봉인 옥녀봉에는 표지석이나 방향안내판도 없다. 완주 '치유의 숲'은 말만 치유의 숲이지 치유받아야 할 숲이었다. 산림욕이나 숲 체험, 편의시설, 간벌 등 손대야 할 곳이 많다. 사유림이다 보니 완주군이 예산을 투자할 수 없는 게 한계다. 축령산의 예처럼 공적 기능이 높다면 완주군이 매입, 가꾸는 게 정답이다. 임종국 선생 같은 철학이 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산주들이 이 숲을 자치단체한테 넘겨 도민 곁으로 돌려주는 것도 혜안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중국 인구가 많은 이유는 뭘까. 고구마 때문이라면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고구마가 중국 인구 폭발에 중대한 구실을 했다고 한다. 세계 인구는 지난해 말 70억 명을 넘어섰다. 이중 20%인 13억5000만 명이 중국 인구다. 하버드대 드와이트 퍼킨슨 교수에 따르면 중국 인구는 1600년대 1억2000만 명이었고 1913년 4억3000만 명이었다. 인구가 300년만에 4배 급증했다. 이 시기, 특히 청나라 전성기인 강건성세(康乾盛世)에 인구가 크게 늘어난 요인 중 하나는 고구마의 전래 덕분이라는 것이다. 옥수수 감자 등과 함께 원산지가 아메리카 대륙인 고구마는 유럽인들이 항해식량으로 싣고 다녔다. 이것이 필리핀으로 전해졌고 1594년경 중국에 도입되었다. 고구마는 생산량이 많을 뿐 아니라 다량의 전분과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다. 또 가뭄 등 척박한 땅에서도 적응력이 강해 구황작물로 아주 유용하다. 덕분에 청나라 중·후반에 전란과 기근이 이어졌지만 인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일본 역시 1700년대 가고시마(사쓰마번)에 인구가 급증한 것도 고구마와 무관치 않다.유럽에서 고구마는 한때 부유층만이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초창기 감자가 독성이 있어 천한 계층이 먹는 음식으로 폄하되었던 것과 대조적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에는 영조때인 1763년 통신사로 대마도를 다녀온 조엄이 가져와 부산일대에 심었다. 감자보다 60년이 빨랐다. 도입 초기 고구마는 일본에서 들어 와 남저(南藷), 감자는 중국에서 들어 와 북저(北藷)라 구분했다. 대마도에선 고구마를 '고코이모'라 부른다. 고코는 효행(孝行)이라는 의미로 흉년에 부모를 먹여 살린 효도 구근이라는 의미다. 우리말 고구마는 여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고구마는 비타민C, 베타카로틴 알토시아닌 등 항암성분을 많이 함유한 웰빙 식품이다. 미국 공익과학센터(CSPI)가 2007년 '더 낳은 건강을 위한 10가지 슈퍼푸드'중 첫번째로 고구마를 꼽았다.올해는 혹심한 가뭄 등으로 여기저기 고구마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다. 나팔꽃 모양의 이 꽃은 행운의 상징이다. 춘원 이광수가 자서전에서 '100년만에 한번 볼 수 있는 꽃'이라 해서 유명하다. 좀 과장된듯 하나 어쨌든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 했으면 싶다. 조상진 논설위원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오전, 전주 오거리광장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한일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 회원 130여명이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집회였다. '한일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은 일본인 결혼이민자들로 구성된 단체다. 이날 집회는 전주 뿐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13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다. 회원들은 "이 같은 사죄가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인 죄를 씻기엔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양심의 목소리를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고 집회 이유를 밝혔다. 이들의 사죄집회를 보면서 문득 한사람이 생각났다. 여러해 전 취재로 만났던 스가노 토모코 할머니다. 1922년생, 올해 91세지만 당시 중풍으로 투병생활중이셨으니 생존해계신다면 참으로 반가울 일이다. 스가노 할머니는 일제식민지시대, 한국남자와 결혼해 현해탄을 건넜다. 당시 와세다 대학에 유학중이었던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왔지만 남편에게는 이미 결혼한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다. 그래도 아이를 다섯 명이나 낳으면서 한국인의 아내로 살았다. 호적도 없으니 법적으로는 아이들과도 남이었으며, 주민등록증도 얻지 못한 서러운 삶이었다. 20년 동안 함께 살았던 남편이 작고하고 나서는 생계까지 도맡아야 했다. 일본인으로 멸시받으면서도 참고 견뎌야만 남의 집일과 품팔이라도 할 수 있었던 시절, 할머니가 즐겨 부른 노래는 이미자의 '가슴 아프게'였다. 스가노 할머니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일제시대,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아내들은 적지 않았다. 1919년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내선 결혼' 장려정책 때문이었다. 1920년에 있었던 왕세자 이은과 일본 왕족인 이방자여사의 결혼은 내선결혼의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당시 총독부는 내선결혼을 이룬 가정에 표창장까지 내릴 정도로 이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고 한다. 내선결혼의 대상은 대부분 힘없고 가난한 조선남자들이었다. 일제의 잔혹한 농지수탈과 강제징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던 사람들이다. 한 자료에 따르면 1926년에 내선결혼으로 459쌍이 가정을 이루었으며 1927년 499가정, 1928년 527가정 등으로 해마다 그 숫자가 늘어나 1940년대에는 해마다 1천여 가정이 내선결혼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그들, 한국인과 결혼했던 일본인 여성들의 말년은 대부분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렸다.국적이 일본이어서 생활보호대상자도 될 수 없었던 그들은 남편과 아이들의 조국인 대한민국에서도, 자신의 조국 일본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밤잠을 설치게 했던 런던올림픽이 지난 12일 막을 내리면서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지급되는 포상금도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4년간 흘린 땀과 노력, 눈물의 보상이라 할 수 있는 포상금은 선수들에게 명예뿐만 아니라 부(富)도 함께 거머쥘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금메달이라도 소속 협회와 후원기업, 선수의 외모나 스토리 등에 따라 메달의 경제적 가치는 크게 달라진다.우선 이번 런던올림픽의 정부 포상금은 지난 베이징올림픽 때보다 6배나 인상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금·은·동 메달리스트에게 각각 6000만원 3000만원 18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여기에 각 종목별 연맹의 포상금과 기업으로부터 받는 후원금을 합치면 '억'소리'가 난다. 더욱이 외모나 스토리 등 상품성이 있는 메달리스트에게는 광고 섭외가 들어오면 메달의 영광 이외도 '돈방석'에 앉는 성공이 보장된다.한국 체조사상 첫 금메달을 안긴 양학선 선수는 비닐하우스에서의 성공 스토리로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과 심금을 울리면서 기업과 각계의 후원이 쇄도하고 있다.먼저 정부 포상금 6000만원과 매달 받는 연금 100만원 외에 체조연맹 1억원, 구본무 LG그룹 회장 5억원, 신한금융지주 9000만원, SM그룹이 약속한 시가 2억원 아파트 등 9억5000만원에다 전주의 한 건설업체가 지어주기로 한 주택까지 합하면 10억원 대가 훌쩍 넘는다.공기권총에서 금메달 2개를 따낸 진종오 선수는 문체부에서 지급하는 금메달 포상금 1억2000만원과 대한사격연맹 포상금 1억원, KT 포상금 2억원을 받는다. 여기에 연금지급 초과점수에 대한 연금 일시금 1억2000만원을 합하면 포상금은 모두 5억4000만원에 달한다.은메달 2개를 따낸 마린보이 박태환도 정부 포상금 6000만원과 SK텔레콤과 CJ제일제당 휠라코리아에서 3억7000만원을 받는다. 올림픽 첫 동메달을 따낸 축구 대표팀은 포상금 18억3000만원 외에도 병역면제 혜택과 선수 몸값 상승 등 더 큰 선물이 주어진다. 기성용 선수의 경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퀸즈파크레인저스가 제시한 이적료가 100억원이었으나 올림픽 뒤 영국 일간지가 아스널에서 기성용의 몸값으로 158억원을 책정했다고 보도했다. 불과 2주사이 기성용 몸값이 50억원이 더 뛰었다. 또 독일의 구자철 영국의 박주영과 지동원 카타르 남태희 등 해외파들도 다가올 이적 시장에서 블루칩으로 떠오를 전망이다.순수한 스포츠 정신을 내세운 올림픽 그 이면에는 영광과 명예 뿐만 아니라 '돈의 전쟁'도 치열하다.
도민들은 새누리당 경선판이 시작되면서 새누리당에 섭섭해 하고 있다. 유력주자인 박근혜후보가 경선 기간 동안 전북을 단 한차례도 다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선이 끝나고 공약실천발대식 참석차 도당에 들른 것 외에는 없었다. 4.11 총선 때도 박후보가 전주 완산을을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지역방송국 합동토론회까지 합쳐 모두 18번의 합동연설회 등이 광역자치단체별로 열리지만 전북에서는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지난 7월26일 광주에서 전남·북 광주 합동연설회만 열렸다.지난 20년 이상 전북은 동토의 왕국처럼 돼 버렸다. 민주당만 있고 새누리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북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지난 6·2 도지사 선거에서 정운천 한나라당 후보가 18.2%라는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지난 4.11선거 때는 35.79%를 얻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선거 5일전에 발표된 본보 여론조사에서는 정후보가 42.8%를 얻어 민주당 이상직후보 31.1%를 11.7%나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전주시내 공기는 정후보가 당선될 것이란 여론이 확산됐다. 장관까지 지낸 정후보 한명이라도 당선시켜 지역발전을 가져오자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이처럼 지역 정서가 변해가고 있지만 박근혜후보가 전북을 찾지 않아 실망감만 키웠다. 예전 같으면 표가 안나와 그렇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박후보가 잘못했다. 박후보는 보통 후보가 아니다. 새누리당의 가장 강력한 후보이기 때문에 도민들은 그에 대해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갖고 있다. 김문수 임태희 안상수 마이너 후보들이 전북을 방문할 때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정운천 도당위원장이 "이번 대선서 도민들이 30%를 지지해줘야 전북이 발전할 수 있다"고 외치지만 자칫 공염불로 그칠 공산이 짙다.이유는 박근혜후보가 전북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박후보도 대선 주자로 확정되면 어떤 형태로든 전북을 찾아 지지를 호소할 것이다. 그러나 경선 때 전북을 방문치 않고 외면한 일은 비난 받아도 싸다. 도민들은 MB정권서 찬밥신세였지만 지난 총선때 새누리당 후보들에게 많은 표를 안겨주었다. 전북을 고립시키는 전략 보다도 끌어 안고 가는 전략을 택하는 게 대선 때 도움될 것이다. 백성일주필
"조선은 바둑판이요, 조선 인민은 바둑돌이다. 현하(現下)의 대세가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형국인데 두 신선은 판을 대하고, 두 신선은 각기 훈수하고, 한 신선은 주인이다. 네 신선이 판을 대하여 서로 패를 들쳐서 따먹으려 하지만 주인은 어느 편도 훈수할 수 없어 수수방관하고 공궤(供饋·손님대접)만 할 따름이라…" 구한말 한반도를 무대로 한 세계 열강의 각축전을 바둑에 비유했다. 정읍 고부 출신으로 동학혁명을 겪고 자란 증산 강일순(1871~1909)은 한반도라는 가로 세로 19줄짜리 바둑판에서 조선 사람들은 흑과 백의 바둑돌이자 '4 신선들(4대 강국)'을 접대하는 주인이건만, 일본과 청, 러시아· 미국이라는 네 신선들의 바둑판(조선) 따먹기 놀이에 휩쓸려 있다고 꼬집었다(강준만의 '한국근대사산책' 3권) 전봉준을 극찬하고 자신의 사상을 '참 동학'이라 했던 강증산이 외세의 눈초리를 꿰뚫어 보고, 당시의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바둑판에 비유한 것이 흥미롭다. 1899년에 갈파했으니 113년 전의 일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역학관계는 조선이 남북으로 갈라진 것 말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남북이 서로 다투는 바둑돌이고 미·일·중· 러가 굽어 보고 있다. 한반도는 예나 지금이나 이해 당사국 눈치 보며 살 운명에 처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독도를 방문했다. 1500년 전 신라 장군 이사부(異斯夫)가 신라에 복속시킨 우리땅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 운운하며 왕왕거린다. 대통령이 자기 땅을 밟는 데에도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게 국제관계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력은 크게 신장했다. 수출규모로는 세계 7위이고 상선 보유량, 항만컨테이너 처리량 등 물류 인프라는 세계 5위이다. 작년엔 무역 1조달러 시대를 열었다. 세계 9번째다. 어제 폐막된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은 13개의 금메달을 따내 국가별 종합순위 5위에 올랐다. 한국축구는 일본을 꺾고 올림픽 축구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땄다. 이런 게 곧 국력이다. 국력이 약하면 짓밟히기 마련이다. 독도도 그렇거니와 한반도의 운명도 결국엔 국력에 달려 있다. 내일이 광복절이다. 극일(克日)에 그치지 말고 국력을 키워 세계로 뻗어나가는 게 진정한 광복이다. 그렇게 된다면 주변국이 우리의 눈치를 볼 때도 오지 않겠는가.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뭉쳐야 산다’ 5극 3특 시대, 통합을 움직이는 힘은 결단과 책임이다.
규제 풀어야 현대차 새만금투자 성공한다
전북은행장, 지역이해도 높은 내부 발탁을
금융사 전북 이전, 구체적 실행방안 제시하라
새만금 웅비의 상징 ‘현대차그룹’
전북 ‘금융중심지’, 이제 속도가 관건이다
'매커니즘'보다 '구조'가 좋아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와 골목경제
오래된 다정함, 남문사잇길
‘연두색 넥타이’와 개헌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