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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에 가면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이 일품이지만 도솔암 내원궁 아래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도 눈여겨 볼만하다. 흔히 미륵불이라 불리는 이 마애불의 공식 이름은 ‘동불암지(東佛庵址) 마애여래좌상’(1994년 보물 지정)이다. 1000년의 세월만큼 숱한 사연을 품고 있어 음미할게 많다. 이 마애불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250여 기의 마애불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또 불상 내부에 복장물(腹藏物)을 넣은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이 복장물은 ‘선운사 석불 비결(祕訣) 사건’으로 유명하다. 동학혁명 2년 전인 1892년 8월 손화중 휘하의 동학도 300여 명이 선운사 승려들을 포박하고 대나무 사다리를 이용해 복장 안의 비기(祕記)를 탈취한 사건이다. 이 마애불은 칠송대(본래 만월대)라는 암벽에 전체 높이 15.5m, 불신 높이 12.23m, 무릎 너비 8.59m 규모로 사각형의 3단 대좌 위에 앉아 있는 좌상이다. 조각 기법이 거칠고 정교하지 않지만 형태는 뚜렷하다. 이 마애불을 재조명하기 위한 학술대회가 지난달 고창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날 나온 의견 등을 종합해, 활성화를 위한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동불암에 대한 오기(誤記)를 수정해야 한다. 이 마애불은 1894년 이후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1969년 나무꾼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를 신고 접수하는 과정에서 동불암(銅佛庵)이 동불암(東佛庵)으로 잘못 기재되었다고 한다. <송사지(松沙誌, 1757년)> 등 문헌에 동불암(銅佛庵)으로 표기되어 있는데다 “도솔암 아래 석벽에 장육불상이 조각돼 있고 동(銅)의 주물로 만든 면상(面像)이 걸려 있다”고 나와 있다. 1648년 큰 바람이 불어 면상이 땅에 떨어졌는데 깨지는 소리가 수십리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둘째, 보호각을 복원하는 일이다. 이 마애불은 주물 면상뿐만 아니라 200년가량 지난 후 공중누각 건물인 동불암을 1363년에 창건했다. 1648년 태풍에 떨려 나갔는데 이러한 보호각은 어느 불교문화권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사례다. 더욱이 마애불 벽면이 응회암이기 때문에 비바람에 취약하고 현재도 마모가 꽤 많이 진행되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보호각을 복원하면 새로운 명소가 될 것이다. 셋째, 조성 시기에 대한 검토다. 이 마애불은 이규보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199년 3월 이전에 조성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국가유산청 설명을 비롯해 다수 학자(최인선, 정선권, 엄기표)들이 11세기 중반으로 잡고 있다. 하지만 송화섭, 곽장근 교수 등은 조심스럽게 그 이전인 후백제설을 내비치고 있다. 학계에는 후백제의 존재를 무시하고 나말여초(羅末麗初)로 두리뭉실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 사례도 그것이 아닌지 세심하게 보았으면 한다.(조상진 논설고문)
요즘 전북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방선거 양상을 보면 확실한 비전이 거의 없다. 지역발전정책과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보이지 않고 애매모호한 정치적 구호만 난무하는 양상이다. “내가 당선되고 나면 아무튼 열심히 해서 발전시키겠다”는 정도다. 가뜩이나 지역이 어려운 상황에서 확실한 비전과 정책이 없이 그저 우선 당선되고 보겠다는 풍토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구체적 실행계획을 토대로 뛰어도 될까 말까 한데 지사, 교육감, 시장군수, 지방의원 할 것 없이 확실하게 와 닿는 뭔가를 제시하지 못한다.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의 말을 들어보자.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굴욕을 당한 끝에 양무운동을 펼친다. 중체서용(中體西用)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는데 쉽게말해 중국 고유의 전통적인 가치들을 유지한 채 서양의 기술만 받아들이자는 의미이다. 기존의 동양 가치관에 입각한 정치체제를 버리고 서구식으로 급진적 변화를 추구한 일본의 메이지 유신 때 내세운 탈아입구(脫亞入歐)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훗날 역사가 보여주듯 청나라는 망국의 길로 들어섰고, 일제는 전범국가로 내몰렸으나 어쨌든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된다. 조선은 청나라의 중체서용과 엇비슷한 동도서기(東道西器)를 표방했다. 동양의 지배질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서양의 발달한 기술만을 받아들이겠다는 접근법은 보기좋게 실패로 끝난다. 조선은 낯선 세계와의 교류에 가장 강렬하게 저항했으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나무로 만든 돛단배만 보고살던 그 당시 서양의 철갑 증기선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양이(洋夷)의 존재를 애써 외면한다고 해도 그게 없는게 아니다. 우리가 직접 보지 않았다고 해서, 아니면 모른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없는게 아니다. 며칠전 당정은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의 조속한 입법화에 의견을 함께했다. 이미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한 크립토의 확산은 기존 금융권의 붕괴가 시간의 문제임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만들든, 만들지 않든 세계적인 조류는 이미 탈중앙화를 전제로 한 가상화폐, 그중에서도 스테이블코인 시장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다.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하고, 조선이 굴욕을 당하고 에도 막부가 싸우지도 못한채 개항을 서두른 이유는 서구가 옳고 한국, 중국, 일본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동도서기나 위정척사의 근본 정신은 나쁘거나 틀린게 아니지만 냉혹한 현실세계에서는 돛단배 가지고 제아무리 말장난을 해봐야 첨단 기술로 무장한 철갑 증기선을 이기지 못한다. 지금 이 지역에서 필요한 것도 바로 명확한 비전을 기반으로 한 세련된 기술이다. 정치적 구호나 이념적 편견은 전북을 더욱 나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 구체적 해법을 가지고 가장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이가 민심을 얻을 수 있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2023년 1월, 브라질은 39대 새 대통령을 맞았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브라질을 이끌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 12년 만에 다시 집권한 그를 세계는 주목했다. 룰라는 재임 당시 부도 위기에 몰려 있던 브라질을 세계 8위 경제 대국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가 집권했던 시기 브라질의 빈민은 크게 줄었고,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은 안정됐다. 퇴임 이후 새 정권의 부패 척결 수사의 표적이 되며 부도덕한 정치인으로 몰락했지만, 그는 자신에게 씌워진 모든 혐의를 벗고 복권됐다. 그리고 다시 도전한 대선에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1%대로 간신히 꺾고 당선됐다. 그러나 대선 직후 브라질은 충격에 빠졌다.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 집무실이 일제히 습격당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브라질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일으킨 폭동이었다.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선거론을 퍼뜨리며 룰라 취임을 반대해온 이들은 “보우소나루를 다시 자리에 앉히라”며 군부 쿠데타를 선동했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이 지목한 폭동의 배후가 있었다.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쿠데타를 계획해왔다는 혐의의 중심에 선 인물,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다. 최근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보우소나루에게 징역 27년형을 확정했다. 브라질 역사에서 전직 대통령이 민주주의 파괴 혐의로 실형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이 판결은 한 정치인의 몰락을 넘어,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새로운 위험을 경고한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선거론으로 선거제도·사법부·언론을 동시에 공격하고, 극단적 지지층을 결집시켜 체제를 흔들려 했던 보우소나루의 전략은 무지하고도 위험한 반민주주의의 교본이었다. 브라질 사법부는 이 파괴적 시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멈춰 섰다. 윤석열 대통령의 전격적인 계엄령 선포 때문이다. 무책임한 최고 권력자의 부질없는 망상과 왜곡된 위기 인식은 나라 전체를 충격과 혼란에 빠뜨렸다. 그 후 1년, 대한민국의 오늘은 어떤가. 계엄을 동원해 민주주의의 규칙을 벗어나려 했던 시도, 정권의 위기를 극단적 지지층 동원으로 돌파하려는 천박한 전략, 선거 절차를 둘러싼 음모론적 공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때 아무도 막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란의 밤이 남긴 질문은 민주주의의 최후 방어선이 헌법이 아니라, 그 헌법을 지키려는 정치적 문화와 성숙한 시민들의 의지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확인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했던 권력자에게 브라질이 보여준 답. 이제 그 답을 한국은 어떻게 찾을 것인지, 그 선택의 시간이 우리 앞에 와 있다. 김은정 선임기자
단돈 100원이다. ‘청소년 시내버스 100원 요금제’를 시행하는 지자체가 속속 늘어나고 있다. 인구 유출을 막아야 하는 지방도시들이 ‘청소년 교통비 지원 정책’에 적극적이다. 아예 무료인 지역도 있다. 전북에서는 올해 익산과 김제가 100원 요금제에 동참했다. 익산시는 지난해 어린이(6~12세)를 대상으로 ‘100원 버스’ 정책을 시범운영한 뒤, 올해 7월부터는 대상을 청소년(13~18세)까지 확대했다. 또 김제시도 인구정책의 일환으로 올 10월부터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학생 100원 요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앞서 부안군에서는 지난 2018년 농어촌버스 단일 요금제를 시행하면서 초·중·고교생 요금을 100원으로 책정했다. 군산시가 가장 적극적이다. 100원도 아니고 아예 무료다. 군산시는 지난 2023년 11월 관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교통 사업을 시행한 후 지난해 9월부터는 그 대상을 중학생까지 확대했다. 중·고교생과 또래의 학교 밖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군산시의 무상교통 정책은 지역 청소년 단체의 제안을 지자체장이 공약으로 채택하면서 실현됐다. 각 지자체의 교통비 지원 정책은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와 청소년 이동권 보장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심각한 인구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도 당연히 깔려 있다. 그런데 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전주와 완주에서는 이 같은 정책을 선뜻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예상대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23년 말에는 청소년단체가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년 100원 버스 지원 예산 반영을 촉구했다. 초·중·고교 무상급식 정책처럼 전북도와 전북교육청, 그리고 각 시·군이 예산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100원 요금제를 시행하라는 주장이다. 100원 버스 정책은 단순한 요금 할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선 청소년들의 버스 이용률을 높여 대중교통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또 청소년들의 공동체 의식과 지역 유대감을 강화해 인구 유출 방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전주시는 지역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해마다 버스업체에 막대한 재정지원금을 퍼주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재정부담은 어렵다는 것이다. 전주시는 교통비 지원 대신 대중교통 혁신 정책으로 국비 지원(사업비의 50%)을 받는 ‘BRT(간선급행버스체계)’를 택했다. 도심과 외곽을 잇는 주요 간선도로 중앙에 정류장과 버스 전용차로를 설치해 급행버스를 운행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이다. 버스의 정시성과 신속성을 높여 대중교통 체계의 혁신적 변화를 이끌겠다는 의도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1단계 기린대로 구간 공사에 착수했다. 내년 11월 개통이 목표다. 대중교통 활성화와 버스 운영체계 효율화를 위해 적지 않은 논란과 기대 속에 전주시가 본격 추진하고 있는 BRT사업과 올해 익산·김제시가 도입·시행한 청소년 100원 요금제의 실질적 성과가 궁금해진다. / 김종표 논설위원
2036 하계올림픽 국내 개최지로 확정된 전주 전북이 최종 후보지로 확정되려면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유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갈길이 바쁜 전북도에 지난 추석전 우군인 민주당 도당위원장인 윤준병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 북에 전주하계올림픽이 IOC개최지 요건, 기획재정부의 승인요건을 지금까지도 구비하지 못한 상태임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IOC 요건상 선수촌은 경기장서 1시간 또는 50Km 내에 위치해야 하고 기획재정부가 총사업비의 40% 이상을 광역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규정을 갖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전주를 중심으로 전국 10개 지자체가 연대해 하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은 이미 IOC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단정했다. 김관영 지사는 윤준병의원을 향해 도민들의 올림픽 유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글이라고 비판했고 문체부는 올림픽과 관련해 부정적 의견을 내지 않았다고 해명자료를 냈다. 이처럼 윤 의원이 사실을 바로잡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죽비성 찬물이라는 글을 올리고 재반박하는 등 자신의 판단을 굽히지 않아 도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전북이 새만금잼버리를 실패한 후 이를 만회하려고 전북대에서 한상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2036 하계올림픽 국내 유치전에 서울시와 함께 뛰어들었다. 극비리에 신청서를 낸 전북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지가 100년 된 것을 감안했고 K컬쳐의 본산인 전북이 문화올림픽을 개최할 역량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면서 골리앗인 서울을 제치고 전주가 국내후보지로 확정되었던 것. 당시 전북정치권 조차 열세인 전주가 골리앗인 서울을 이길 수 있겠느냐고 반신반의 했지만 결국 김관영 지사가 뚝심있게 기존체육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지방도시연대 개최를 들고 나온 것이 승패를 갈랐다. 그간 올림픽 유치 도시마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체육시설을 짓고 향후에 제대로 활용 못해 빚더미에 앉게 된 사실을 정확하게 간파,경제성을 감안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였다. 김앤장에서 10년간 변호사로 근무하는 동안 성과주의를 제대로 경험한 김 지사가 전주 하계올림픽을 유치하면 전북의 낙후를 떨칠 수 있다고 판단, 유치의지를 강하게 불살라왔다. 김 지사는 경쟁국인 인도 인도네시아 등 10개국 이상의 유치전략을 심도있게 파악하고 대한체육회와 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을 방문, 전주 전북의 유치전략을 소개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은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소모적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보완할 문제가 있으면 얼마든지 보완하면 그만이다. 그간 올림픽 유치를 열망해온 도민들도 일희일비 하지 말고 전주가 개최지로 확정될때까지 끝까지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은 전북의 고질병이나 다름 없어 이제라도 서로가 원팀으로 똘똘뭉쳐 김 지사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특히 이달 중으로 전주서 열리는 이재명대통령의 타운홀 미팅 때 정부가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를 국정과제로 삼고 적극 나서겠다는 답을 얻어내야 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무주군과 진안군, 장수군은 오지(奧地)로 꼽히는 곳이다. 머리글자를 따서 흔히 무진장이라 불린다. 시인 안도현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가 1994년 복직돼 장수 산서고등학교에서 3년 동안 국어를 가르쳤다. 그때 쓴 시가 석줄 짜리 시 「무진장」이다. “무주 진안 장수/ 눈 온다/ 무진장 온다”. 눈이 왔다 하면 왕창 오는 이곳을 아주 간명하게 표현했다. 토끼가 발맞추는 심심산골이라는 뜻이다. 무진장 지역은 면적이 2000㎢로 서울 면적(605㎢)의 3배를 훨씬 넘는다. 충남 금산군까지를 포함해 진안고원(鎭安高原)이라 부르기도 한다. 진안고원의 서북쪽에 자리한 금산군은 1963년 충남으로 편입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줄곧 전북에 속했던 곳으로 오랫동안 문화권 및 생활권이 전북 동부지역과 가까웠다. ‘호남의 지붕’이라는 별칭을 갖는 진안고원은 동쪽으로 대덕산(1291m), 덕유산(1611m), 백운산(1279m)이, 서쪽으로 운장산(1126m), 만덕산(763m)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신경준의 <산경표>에 등장하는 백두대간이 동쪽, 금남정맥과 금남호남정맥이 서쪽과 남쪽, 백두대간과 금남정맥 사이를 잇는 험준한 산줄기가 북쪽의 자연경계를 이룬다. 1억년 전 중생대 마지막 지질시대인 백악기때 호수였던 곳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했다. 해발고도는 300∼500m며 주변 산들은 600m∼1100m다. 이곳에서 금강과 섬진강, 만경강 등이 발원하고 금강 수계에 용담댐이 건설되었다. 지난 20일 진안에서 ‘진안고원 속 백제의 흔적’이란 학술대회가 열렸다. 국보 순회전과 연계한 것으로 곽장근 교수(군산대)의 기조강연 등 11명이 발제와 토론을 벌였다. 주로 진안군에 집중된 내용이었지만 교통망과 문헌, 성곽, 불교문화, 기와, 분묘 등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아 의미가 컸다. 곽 교수는 진안고원을 금산·진안권과 장수권, 무주권으로 세분해 진안고원을 무대로 치열하게 전개된 백제와 가야, 신라의 역학관계를 분석했다. 이들 지역에는 240여 기의 가야계 중대형 고총 및 300여 개소의 제철 유적과 함께 산성 및 봉화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중앙부에 위치한 지정학상 이점 때문에 옛길의 중심지이자 대규모 철산지로 문화상 점이(漸移)지대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점이지대는 서로 다른 지리적 특성을 가진 두 지역 사이에서 중간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지역을 의미한다. 이들 지역은 지금 인구감소로 소멸 위기에 직면한 공통점이 있다. 무진장은 인구가 2만 명대며 금산 역시 5만 명 선이 무너졌다. 하지만 지금 주목받고 있는 생명과 생태자원이 풍부한 청정지역으로, 여기에 오랫동안 묻혀있던 역사자원이 합세한다면 핫플로 각광 받을 수 있는 곳이다. 각자도생보다는 진안고원행정햡의회 등을 만들어 공동보조를 취하면 어떨까. (조상진 논설고문)
정치인들의 탈당과 복당은 한국의 현실 정치 상황을 감안하면 너무나 당연한 경우가 많다. 주요 정당의 이합집산이 빈번한데다 호남에서는 민주당 공천이 아니면 다른 정당보다는 무소속으로 나서는게 유리하기에 정치이력이 풍부한 후보들은 탈당과 복당 횟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공천을 받지 못해도 은인자중하면서 꿋꿋이 당을 지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공천을 주지 않으면 탈당하고 있다. 당 수뇌부에서는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더라도 절대 복당은 없다”고 공언하지만 이게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대선이나 총선 등 전국단위 선거에서 어떻게든 우군을 확보해야 하는 마당에 탈당했다고 해서 옛 동지를 버릴 경우 자칫 적전분열이 돼 패배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당명을 어기고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당선되면 복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이는 바로 정동영 국회의원이다. 2009년 전주 덕진구 재선거때 민주당은 대선 후보까지 지낸 그를 공천하지 않았다. 탈당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그는 이듬해 화려하게 복당하게 된다. 정세균 당 대표로서는 체면이 구길대로 구겨졌으나 현실적인 힘의 위력은 바로 그런 것이다. 실패하면 역적, 성공하면 혁명 이라는 말이 재확인된 셈이다. 내년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정가에서도 유력한 후보군의 복당 문제가 종종 화두가 되고 있다. 대선을 전후해서 대부분 복당이 이뤄졌으나 임정엽 전 완주군수와 장영수 전 장수군수 등 몇명은 복당이 보류돼 눈길을 끌었다. 그 중에서도 각종 여론조사 결과 나름의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임 전 군수의 복당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다. 한편에선 복당의 마지노선이 지났다고 보는 반면, 다른쪽에선 여전히 살아있는 변수라고 보고있다. 민주당이 복당 문제를 최종 결론내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임 전 군수라는 관측도 있다. 그만큼 찬반양론이 격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된 단체장이 복당한 경우는 확실한 당선 보증수표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복당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지만 지난해 총선때 지역위원장이 바뀐 곳에서는 지방의원 대다수가 교체되는 분위기다. 전주갑 도의원의 경우 현역 의원들이 거의 경쟁없이 연임가도 열차에 승선한 것과는 달리, 전주병 같은 곳은 계파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얼마전 윤준병 민주당 전북도당위원장이 선출되면서 지역정가에서는 A시장은 컷 오프 대상에서 제외돼 살아나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그동안 약체로 평가받던 군수후보 B씨가 급부상하고 있다는 말도 회자된다. 12월에 예정된 전북지역 타운홀 미팅은 내년 지방선거를 향한 출발 총성이 울리는 날로 봐야 한다. 지역정가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현장 메시지에 귀를 쫑긋하는 분위기다. 특히 전북지사 선거에 나선 김관영 지사와 안호영, 이원택 의원, 정헌율 익산시장측에서는 더욱 주목하는 분위기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최근 화제가 된 공연이 있다. 이란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파니즈 파르유세피가 지휘한 테헤란심포니오케스트라의 무대다. 지난 11월 13일, 테헤란의 바다트홀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파르유세피는 머리에 검은색 히잡을 쓰고 손목과 발목을 완전히 가린 검은색 옷을 입고 지휘봉을 잡았다. 테헤란심포니는 이란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지만, 여성 지휘자가 공연을 이끈 것은 처음이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여성의 공적 활동을 까다롭게 규제해 왔다. 음악과 공연 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오케스트라 지휘는 남성의 영역이어서 대형 콘서트에서 여성이 지휘자로 무대에 서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더욱이 테헤란심포니는 여성 단원이 있긴 하지만, 국가 공식 행사에서는 남성 단원만 연주에 참여시킬 정도로 보수적인 오케스트라다. 파르유세피의 테헤란심포니 지휘에 세계적 관심이 쏠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란의 히잡 문화는 이슬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귀족 여성들이 착용했던 히잡이 시작인데, 이때의 히잡은 종교적 규범보다는 신분과 품위를 상징하는 의미가 강했다. 이후 이슬람이 확산되면서 히잡 문화도 널리 자리 잡았지만, 20세기 초 팔라비 왕조 시대에는 근대화를 앞세워 오히려 히잡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러한 히잡이 여성의 공적 규범으로 의무화된 것은 이슬람혁명 이후다. 히잡은 이때부터 단순히 종교 규범이 아니라 이슬람 체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법적 장치로 기능했다.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히잡 의무화는 체제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었고, 여성의 공적 활동을 규제하는 핵심 도구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여성들의 히잡 의무화에 대한 저항 운동이 시작되면서 히잡은 이란 사회의 주요 정치 이슈이자 저항의 상징이 됐다. 사실 여성의 공적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이란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성 지휘자는 여전히 소수다. 갈수록 여성 지휘자들이 늘고 있지만,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이름을 올린 지휘자는 10% 남짓에 불과하다. 예술적 역량과 성취에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 무대가 여성 지휘자들에게 여전히 높은 벽이라는 증거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공적 활동에 가장 보수적인 이란의 첫 여성 지휘자가 된 파르유세피의 등장은 의미가 크다. 파르유세피는 그날 연주를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꾸렸다. 여성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려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 경험이 다른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음악을 넘어 사회와 시대를 향한 선언, 그 울림이 깊다. 김은정 선임기자
15년이 걸렸다. 공사기간만 따지면 7년 6개월이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가 22일 마침내 열렸다. 지난 2010년 9월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사업 추진이 확정됐고, 이후 실시설계 등 후속절차를 거쳐 2018년 5월 첫 삽을 떴다. 당초 예정된 사업기간은 2024년 12월까지였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앞두고, 전북특별자치도가 국제행사 이전 조기 개통을 정부와 관계기관에 강력 요청했다. 정부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들의 흔한 립서비스였다. 조기 개통은커녕 예정보다 1년이나 늦춰졌다. 연약지반과 잇따라 발견된 고대 유물, 그리고 송전탑 이설 작업 등이 이유였다. 어쨌든 도로는 개통됐다. 끝이 아니다.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 새만금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내달린 이 도로의 최종 목적지는 경북 포항이다. 사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는 전북의 오랜 현안인 동서 3축 ‘새만금~포항 고속도로’의 한 구간이다. 새만금~전주 구간이 개통되면서 전체 311km 중 약 65%(201km)가 완성됐다는 게 국토교통부의 설명이다. 정부가 지난 2021년 확정, 발표한 ‘제2차 국가도로망 종합계획(2021~2030)’에 담긴 국가 간선도로망은 ‘동서 10축, 남북 10축, 6개 순환망’이다. 이 중 동서 3축, 즉 한반도를 동서로 연결하는 간선도로망 가운데 남쪽에서 3번째 횡단축으로 계획된 고속도로가 ‘새만금~포항’ 라인이다. ‘새만금~전주~무주~성주~대구~포항’을 잇는 동서 3축 구상은 1990년대 말부터 나왔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공식화됐다. 그러면서 전북의 교통 청사진에도 포함됐다. 이후 공사는 구간별로 제각각 진행됐다. 동쪽 대구~포항 고속도로가 2004년 12월 가장 먼저 열렸고, 2007년 익산~장수 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이를 경유하는 방식으로 전주~무주 구간이 어정쩡하게 연결됐다.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 ‘전주~대구 고속도로를 추가 건설해 새만금에서 포항까지 연결하겠다’고 명시했다. 이어 지난해 7월 열린 전북 민생토론회에서도 이를 재차 약속하면서 지역사회의 기대를 키웠다. 그리고 지난달 말 산악지대인 무주~성주~대구 구간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돼 사업 실행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전주~무주 구간이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전주~장수~무주(75km)로 이어지는 기존 우회노선 대신, 전주~무주(42km) 직선 노선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국가도로망 계획에 반영시켜야 한다. 동서 3축 새만금~포항 고속도로는 국가 교통망의 한 축이자, 균형발전의 통로다. 속도전이 필요하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의 길이는 고작 55.1km다. 개통의 의미가 작지 않지만, 부족하다. 효과를 더 확장해야 한다. 동서내륙을 완전하게 연결해 국토의 대동맥 역할을 맡겨야 한다. 만만치 않다. 내륙 산악지대를 넘어 동해안으로 가는 길은 더 멀고 험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지방선거가 6개월 정도 남았지만 교육감 선거를 제외하고는 정당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서로가 민주당 공천을 받으려고 사력을 다한다. 사실 전북에서는 민주당 공천을 받는 후보가 당선이 보장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공천경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공천 기준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지만 당원 한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후보자가 난립한 1차 경선때는 당원 비중을 70%로 높히고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때는 2차로 가서 5대5 비율로 확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언론에서 샅바싸움을 부추킨다. 언론사마다 영향력을 높히려고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공표할 태세다보니까 각 후보들이 잔뜩 지지율을 높히려고 조직을 총가동하는 등 긴장한다. 지금부터 연말까지 형성된 여론이 승패를 가를 것이다. 그래서 각 언론사마다 연말에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연초에 공표할 것이다. 그 결과로 우열이 가려지기 때문에 서로가 우세자편승효과(밴드웨건 이펙트)를 놓치지 않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사실 여론조사라는 게 과학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서 진행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헛점이 많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듯이 경비를 절약하려고 기계음을 녹음해서 들려 주는 ARS 방식이 많이 쓰이는데 그 결과해석을 놓고도 1등위주의 경마식 보도를 하므로 허수가 많다는 것이다. 지사 경선전이 김관영 현 지사와 안호영 국회 환노위원장 대결로 갈 것으로 보였지만 느닷없이 이원택 도당위원장이 뛰어들어 3각구도가 만들어졌다. 3선한 관계로 더 이상 출마를 못하는 정헌율 익산시장이 추석을 앞두고 도내 전역에 자신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게첨했지만 지사 자리 보다는 이춘석의원이 무소속으로 당적을 옮기면서 공석이 된 그 자리를 노린다는후문이다. 예전에 전주시장에서 지사가 된 김완주나 송하진 지사는 재선 때 별다르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예상을 깨고 이원택 의원이 정청래 당 대표가 미는 후보인양 포장해서 선거전에 뛰어들어 급작스레 선거전이 바뀌었다. 도내 10명의 의원들이 정청래와 박찬대의원간 당 대표 선거 때 1차로 격돌한 결과가 지사경선전으로 이어졌다. 도당위원장이었던 이원택과 재선의 윤준병 의원등이 정대표를 밀었고 안호영의원은 친명인 박찬대 의원을 밀었던 것. 그게 이번 지사경선전의 트리거로 작용,과거 송하진 전 지사 세력인 운동권 세력이 조직을 재건하면서 이 의원을 돕고 나선 것. 반면 3선인 안호영은 완주 전주 통합에 반대해 찬성이 85%가 넘는 전주쪽에서 디스가 많아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김관영지사는 재선의원과 김앤장 출신 3관왕 변호사라는 점 때문에 이재명 당 대표가 인재영입 1호로 영입해서 경선 한달만에 월계관을 쓰게 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김관영 지사의 인물론이냐 아니면 정청래 당 대표의 응원을 받는 이원택의 당심이냐로 판가름 날 것이다. 하지만 도내 10명의 의원들이 모두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바라기 때문에 자신들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지는 명약관화하지 않았을까.
전주에서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지명이 최근 소환되고 있다. 후백제 왕성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나온 종광대(鐘廣臺)와 여단(厲壇)이 그것이다. 이중 종광대는 아파트 재개발 무산과 겹치면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1100년 전, 견훤왕은 후백제를 세웠고 도읍을 전주로 정했다. 후백제는 37년간 후삼국 중 가장 강성해 한반도를 호령했으나 갑자기 망하는 바람에 그 흔적이 대부분 지워졌다. 더구나 라이벌이던 고려 태조 왕건은 겉으로 온유한 척했으나 안남도호부(936∼941)를 설치해 5년 동안 후백제 유물 유적을 철저히 파괴했다. 도성과 궁성은 물론 경주에서 가져온 삼국의 서적까지 불살라 버렸다. 그러니 후대에 후백제의 흔적을 찾기가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아무리 짓밟아도 역사의 흔적은 남는 법. 1960년대 이후 뜻있는 분들과 전주시의 노력으로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전주 동고사지가 그렇고 최근에는 왕성 일부가 그렇다. 대표적인 게 전주시 중노송동 일원에 남아있는 ‘전주 종광대 토성’이다. 이 토성은 후백제 왕도의 북쪽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것으로 지난 6월 20일 전북자치도 문화유산(기념물)으로 지정되었다. 지난해 3월부터 발굴에 들어가 잔존규모 장축(동-서) 204m, 최대 단축(남-북) 14m, 최대 성벽 높이 2.5m의 후백제 토성이 확인되었다. 후백제 토목공사 흔적이 확인된 최초의 사례다. 국가유산청 심의 결과 ‘현지 보존’ 결정이 내려졌고 지금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종광대 토성은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전주부 고적조에 ‘견훤이 쌓은 고토성’으로 기록돼 있다. 또 ‘여지도서(輿地圖書)’와 ‘대동지지(大東地志)’, ‘완산지(完山誌)’ ‘전주부사(全州府史 1942)’ 등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은 인근 기자촌 재개발에 이어 2008년 전주 종광대2구역 주택재개발사업(3만1243㎡)이 추진돼 보상을 둘러싸고 어려움이 없지 않다. 이 일대가 종광대와 구(舊) 여단터로 불려온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고 무슨 시설이 있었을까. 그에 대한 명쾌한 기록은 없다. 다만 전주문화원(2001) 이 발행한 자료에는 “종광대는 물앙말(물왕멀) 북쪽에 있었다는 종루(鐘樓)이다. 후백제 때에 종루라는 얘기도 전해지며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여단(厲壇)이 있었다고 한다.”로 나와 있다. 조선시대 시작된 여단은 질병이나 전쟁 등으로 죽은 주인 없는 외로운 혼령을 국가에서 제사 지내주던 제단이다. 이곳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아 전주 시가지와 익산 미륵산, 동고산성, 남고산성 등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조망점이다. 하루빨리 사적으로 지정되고 역사유적공원을 만들어 전주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명소가 되었으면 한다.(조상진 논설고문)
밴드웨건(bandwagon)이란 행렬 선두에 있는 악대차를 말한다. 비유적으로 특히 정치 분야에서 우세한 편에 붙는 것을 의미하는데 흥행하는 곡예단이 광고하기 위해 악대차를 앞세워 시가지를 행진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요즘 지역정가의 최대 화두는 20~21일 이틀간 진행되는 여론조사다. 도지사나 교육감 등 각 후보 진영에서는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향후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지지자들에게 여론조사에 적극 응해달라고 호소중이다. 밴드웨건 효과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선두권 구도가 한번 각인되면 오는 12월말~1월초에 진행되는 여론조사는 물론, 추후 경선이나 지방선거 때도 큰 틀을 뒤집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여론조사의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서울과 경기도다. 각종 여론조사(중앙선관위 참조) 결과 집권여당임에도 민주당에서 오세훈 현직 시장의 확실한 대항마가 보이지 않는다는데서 고민이 있다. 민주당 현역 광역단체장 중 한명을 컷오프 또는 최하점을 줘야 하는데 김동연 경기지사는 일단 고비를 넘겼다는 관측이 많다. 친명(이재명 대통령) 또는 친정(정청래 당 대표)을 중심으로 한 여권 핵심에서 볼때 김 지사는 싹을 잘라야 할 대상일 수도 있으나 그를 배제했을 경우 자칫 경기도지사 자리를 국민의힘에 헌납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북의 경우 교육감 선거에서는 당의 공천이 없기는 하지만 소위 명심 마케팅이 활발하다. 저마다 이런저런 명분과 인연을 내세우며 자신이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전북지사 선거에서는 명심 마케팅뿐 아니라 소위 정심 마케팅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김관영 지사와 안호영 의원은 상대적으로 명심 마케팅에 주력하는 반면, 이원택 의원은 정심 마케팅으로 승부하는 분위기다. 김 지사는 올림픽 유치나 기업유치 등 성과를 거뒀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때 전국 시도지사 후보 영입 1순위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안호영 의원은 환노위원장으로서 활동 상황을 알리면서 대통령과의 친밀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암시한다. 이원택 의원이 갑작스럽게 출마한 배경에 대해 그의 측근들은 “당 대표의 강한 출마 권유가 있었기에 때문 아니겠느냐”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어떻게든 뒤를 봐줄테니까 나서라고 해서 나섰다는 거다. 하지만 상대 후보 진영에서는 몸 불리기를 위한 자의적 해석일뿐 집권여당 대표로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을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이번에 되면 좋지만, 설혹 안되더라도 차기를 위한 몸불리기 차원에서 출마하는 수순을 밟았다는 거다. 어쨋든 오늘, 내일 실시되는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향후 선거구도는 또 한번 요동칠게 분명해 보인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궁궐은 본디 ‘왕과 왕실 가족, 그리고 그들의 생활을 돌보는 사람들이 사는 집’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선다. 궁궐은 왕조의 정치와 행정, 의례와 일상이 집약된 국가의 중심 무대이자, 건축과 조경, 의례 체계가 결합해 권위와 질서를 구현한 복합문화유산이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궁궐은 단순한 건물군이 아니라, 국가의 흥망과 갈등, 번영과 쇠퇴가 켜켜이 쌓인 역사적 무대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경복궁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며 가장 먼저 세운 궁궐이다. 태조는 1395년 경복궁을 지어 이곳에서 정무를 보고 대신들과 논의를 거듭하며 새로운 국가 방향과 정책을 세웠다. ‘왕조 일상 자체가 곧 정치’였던 시대, 경복궁은 그 체제를 상징하는 최고 권위의 공간이자 조선의 국정 운영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던 장소였다. 그러나 경복궁은 왕조의 화려했던 영광만을 담고 있지 않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뒤 270여 년 동안 방치되었고, 대원군의 중건으로 복원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다시 훼손되는 수난을 겪었다. 다행히 경복궁은 수십 년에 걸친 복원 작업 끝에 오늘의 모습을 되찾았다. 경복궁이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흔들리고 회복해온 역사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역사 공간인 이유다. 굴곡진 역사를 딛고 선 경복궁은 더 이상 ‘여러 궁궐 중 하나’가 아니다. 국가의 흥망과 회복, 정치와 문화, 일상과 의례가 응축된 한국사의 중심 공간이다. 경복궁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건희 씨의 잦은 출입이 알려지면서다. 궁궐은 ‘국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지만, 그 공공성은 엄정한 기준과 원칙 위에서 지켜져야 한다. 공공의 공간인 궁궐이 사적 활용의 통로를 열게 되면, 궁궐의 역사성과 상징성은 손상되고 만다. 김 씨의 빈번한 출입과 뒷이야기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공개되지 않고 절차도 거치지 않은 김 씨의 잦은 경복궁 방문은 어처구니없고 이해하기 어렵다. 절차나 목적이 투명하지 않으니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경복궁은 권력을 상징하는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권력이 사적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역사적 상징성이 클수록, 그 공간은 더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오늘의 경복궁 논란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권력의 상징이자 공공의 자산인 공간을 사적 이익으로 훼손하는 순간, 그곳에 담긴 역사적 무게와 국민의 신뢰는 함께 무너진다. 경복궁을 지키는 일은 단순한 복원이나 관리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공공성과 역사적 책임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시험하는 중요한 지표이자 국격을 지키는 일이다. 김은정 선임기자
이제는 여의도다. 봄부터 중앙부처를 들락거렸던 지자체장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국회로 향하고 있다. 내년도 국가예산안이 중앙부처를 떠나 국회 심의단계로 옮겨지면서다. 전국의 광역·기초단체장들이 예산 칼자루를 쥐고 있는 국회 예결위원들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선다. 각 지자체에서는 단체장의 상경활동을 나열하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단체장이 지역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을 주민들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다. ‘국가예산 발품행정, 총력전’으로 포장된다. 이 같은 예산활동 과정을 그들은 ‘건의’, ‘설득’, ‘요구’, ‘호소’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구걸’에 가깝다. 예산을 편성하는 중앙부처나 그 예산안을 심의하는 국회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예산철이면 전국의 광역·기초 지자체장들이 날마다 찾아와 문 앞에 줄을 서니 일일이 다 만나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 간부들과 함께 서울로 간 단체장들이 장·차관이나 국회의원 대신 실무 사무관과 의원 보좌관을 붙잡고, 준비해간 자료를 들이밀면서 사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순례행렬처럼 찾아와 읍소하는 단체장들을 맞아 ‘갑’의 위치를 누리는 중앙부처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들은 이런 상황이 귀찮을지 몰라도 싫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발전을 명분으로 한 지자체장들의 ‘상경 러시’는 이제 연례행사로 굳어졌다. 그리고 연말이면 단체장들은 어김없이 ‘국비 따오기’의 성과를 내놓으며, 떠들썩하게 로비능력을 자랑한다. 행여 이런 러시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무능한 단체장’, ‘일 안하는 단체장’으로 찍힐 게 분명하다. 중앙정부의 각종 공모사업에도 사활을 걸어야 한다. 중앙정부가 예산을 미끼로 지방정부를 통제하려 하니, 치열한 공모경쟁에 내던져진 지자체는 종속적 위치를 자처할 수밖에 없다. 취약한 지방재정과 중앙정부 중심의 권한구조, 중앙정부의 공모사업 중심 예산 배분, 그리고 선출직 지자체장의 ‘단기 성과’ 위주 행정이 만들어낸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그렇게 지자체는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고, 지방정부는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추진할 능력을 잃었다. 정부와 국회에만 매달리는 것도 아니다. 기업 앞에서도 슈퍼 을이 되어야 한다. 투자유치를 위해 보조금과 부지 제공 등의 다양한 혜택을 제시하며 현란한 구애의 춤을 춘다. 며칠 전 고창에서 열린 삼성전자 물류센터 착공식에는 도지사와 군수를 비롯해 지역 국회의원과 정치인, 기관·사회단체장들이 대거 참석해 마치 대규모 최첨단 산업시설을 유치한 것처럼 의미를 부풀렸다. 또 공모를 통해 추진된 제2중앙경찰학교 유치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전북특별자치도와 남원시의 모습에서도 지자체의 서글픈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얼마나 받아왔느냐’가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가 되고, 지자체장의 자랑거리이자 임무가 되는 현재의 구도에서 지방의 품격, 진정한 지방자치는 기대할 수 없다. / 김종표 논설위원
도민들은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이재명 후보 한테 82.65%를 주었고 지난해 총선 때 10석 전석을 석권해 줬기 때문에 정권교체로 전북이 크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표를 줄 때는 나름대로 기대심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도민들 생각처럼 녹록하게 돌아가질 않는다. 왜 그럴까. 도민들이 표를 찍어 주었다고해서 정권담당세력들이 모든 것을 척척 알아서 해주는 게 아니라는 것. 우는 아이 젖준다는 말처럼 현 정부에 전북의 애로사항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 마냥 기다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도민들의 생각이 너무 순진무구하다는 것이다. 정부 여당이 전북에서 표를 주었기 때문에 알아서 잘 해주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너무 현실을 모르고 한 이야기다. 국가예산철로 접어드는 요즘 국회는 날마다 총성없는 전쟁터로 변하기 일쑤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을 앞장 세운채 내년 국가예산을 확보하려고 젖먹던 힘까지 안간힘을 쏟는다. 도민들은 민주당 일색으로 국회의원을 뽑아만 놓았지 실제로 이들이 어떻게 활동 하는지는 잘 모른다. 입법활동도 잘 해야겠지만 전북의 경우는 국가예산을 잘 확보하는 게 더 급하다. 지난 윤석열 전 정권 때는 전북몫을 제대로 확보하질 못했다. 김관영 지사가 백방으로 뛰어도 힘이 미치지 못해 국가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인구와 예산 규모가 전북보다 적었던 강원도와 충북이 전북을 앞질러 버렸다. 이런 상황인데도 전북 출신 국회의원들은 고개 뻣뻣하게 든채 무슨 무슨 예산을 확보했다거나 수능 수험생을 격려하는 플래카드만 마구 부착해 놓고 있다. 복장 터질 노릇이다. 지난 10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무분별한 지역공항 추진에 제동을 건 발언을 했지만 안호영의원을 제외하고는 전북정치권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실제로 강실장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지방정부가 공항개설로 인한 헤택을 누리지만 건설이나 운영과정에서 책임은 부담하지 않는다면서 지방공항이 지방정부의 책임성을 전제로 추진되도록 중앙과 지방정부간 비용 분담개선방안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9월 서울행정법원이 새만금공항 건설에 대해 패소판결을 내려 갈길이 바쁜 전북도에 생각치도 않은 돌발 악재가 생겨나 전북도만 헷갈린다. 우군으로 믿었던 강 실장이 이 같은 발언을 했지만 전북 출신 국회의원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대응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성경 말씀이 있듯이 도민들이 스스로 나서야 할 때가 왔다. 지금 도민들은 권리위에서 낮잠자는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안일하다. 도민들의 성징이 워낙 유순하고 착해서 그런지 악착스럽질 못하다. 내년 지방선거에 나설 후보들이 민주당 공천을 받으려고 난리법석을 떨지만 모두가 오불관언으로 깜냥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다. 서울 등 대도시는 이미 인물중심의 경쟁의 정치로 가지만 전북은 아직도 후진형태의 연고주의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현직단체장들이 많은 시간 할애해서 행사장을 들락거린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남원 광한루원(廣寒樓苑)에 늦가을이 내려앉았다. 600년 된 정원 원림(園林)에 단풍이 곱게 물들어 눈이 부셨다. 밤에는 달빛기행으로 낮보다 더 환상적이라고 한다. 지난주 전북문화살롱이 주최한 남원읍성 탐방 길에 들른 광한루원은 역시 천하절경이었다. 이번 탐방은 대곡리 암각화에서 시작해 김삼의당(三宜堂) 시비, 남원성, 광한루, 선원사를 거쳐 여단(厲壇)을 둘러봤다. 모두가 보물 같은 역사문화자원이다. 이중 대표적인 명소는 단연 광한루원. 광한루원은 남원의 얼굴이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관아정원으로 국가사적 303호이자 명승 제33호다. 문화재 지정면적은 6만9795㎡이며 보호구역은 8371㎡. 광한루원은 삼신산을 포함한 광한루, 완월정, 월매집 권역 등 3구역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자연 친화적인 요소와 인공적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이상향의 공간과 현실적 공간, 춘향전의 소설적 공간을 이룬다. 그런 가운데 누각과 물, 산, 나무와 같은 가산(假山)적 요소가 어울려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담고 있다. 광한루는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이다. 이러한 광한루를 중심으로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고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를 설치했다. 경복궁 경회루의 지원(池苑)이나 담양 소쇄원 못지않은 산수경원(山水景苑)이다. 잘 알려있듯 광한루원은 1419년 황희가 남원으로 유배와 광통루(廣通樓)를 지었고 정인지가 1434년 고쳐 세우고 광한루라 이름 붙였다. 1582년 남원부사 장의국이 오작교를 가설하고 이때 전라관찰사 정철이 광한루 앞에 삼신산을 조성하고 연정을 세웠다. 이처럼 유구하고 아름다운 광한루는 일본에 의해 두 차례 큰 수난을 겪었다. 한번은 1597년 정유재란 때 광한루가 불탄 것이다. 이를 1626년 남원부사 신감이 중건했다. 또 한번은 100년 전 일제 강점기 때 광한루가 일제 재판소와 감옥으로 사용된 것이다. 기막히고 통탄할 일이다. 일제가 남원재판소와 헌병분견대 감옥으로 사용한 기간은 1910년부터 1928년까지 18년간. 광한루 누마루를 재판소로, 아래는 감옥으로 사용한 것이다. 지금도 아랫부분 초석과 기둥에는 인방재를 끼웠던 홈 자국을 볼 수 있다. 마루 아랫면 판재에는 수형자들이 새긴 글씨도 남아있다. 또 남원권번 소리선생 김정문 명창 등 수형인 명부도 확인되었다. 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 김용근 소장에 따르면 일제는 당시 이곳을 석정화전(石廷化全)청이라 불렀다고 한다. 광한루 정면의 돌기둥에 새겨진 이 글씨는 ‘조선 백성을 일본의 식민으로 만들기 위한 재판과 교화의 감옥을 갖춘 돌로 된 완전한 관청’이란 뜻이다. 늦가을, 단풍이 물든 광한루에는 처연한 비극이 숨겨져 있었다.(조상진 논설고문)
2026학년도 수능 지원자는 55만4174명이다. 총 응시자수로는 2019학년도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은 규모다. 출산율이 이례적으로 높았던 ‘황금돼지띠’해인 2007년생이 고3으로 수능을 보는데다, ‘n수생’ 응시자도 많아 대입 경쟁률이 더욱 치열하다. 삶의 긴 여정에서 보면 대입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고, AI 시대에는 구태여 대학을 꼭 졸업해야 하는가 의문이 들만큼 세상이 급변하고 있지만, 어쨋든 수능은 삶의 커다란 변곡점임엔 틀림이 없다. 유달리 성공과 출세를 중시하는 우리 풍토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04년 초대형 부정 수능이 있었다. 이후 수능에서는 모든 전자기기 반입이 금지되고 개인 필기구가 아닌 획일적인 ‘수능 샤프’가 지급됐다. 전국적으로 부정행위자 363명이 적발됐다. 당시 1심 법원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학력 지상주의가 어린 학생들을 범행으로 내몰았다”고 판시해 눈길을 끌었다. 조사를 거쳐 무효 처리된 수험생은 모두 314명이었으며 무더기로 입학 취소 처분을 받았다. 전국적인 화두가 됐던 일대 사건이었으나 사실 시험에서의 부정행위 역사는 엄청나게 깊다. 특히 조선시대 한 집안의 성패가 달린 과거시험에 등장한 부정행위 수법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정된 관직을 둘러싼 과열 경쟁은 결국 목숨을 건 당파 싸움의 가장 근본적 원인이다. 흥미로운 것은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왕세자였던 광해가 분조하여 전주에서 과거를 실시한 적이 있다. 숱한 부정행위가 있었으나 과거는 전쟁때도 치러야할 만큼 국정의 중대사였다. 그해 문과에서 9인, 무과에서 1000 여 인을 뽑았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한다. 전주시는 이를 기념해 지난 2017년부터 ‘1593 전주별시(別試)’ 재현행사를 열고 있다. 조선후기로 넘어가면서 과거에 합격하고도 관직을 받지 못하는 낭인들은 수없이 넘쳐났다. 세도가의 집안이거나 그 뒷배경을 등에 업지 못하면 평생 한량으로 처량한 신세를 보내야 했다. 사정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낭인(浪人)은 모시던 주군이 죽거나 영주로부터 쫓겨나서 영지나 봉록이 없어 방랑하며 일정한 수입이 없게 된 사무라이를 말한다. 뚜렷한 수입이 없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낭인들의 욕구가 분출하면서 메이지 덴노를 정점으로 결국 전범국가 일제를 만들었다는 분석은 일리가 있다. 내년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정가에서도 숱한 정치 낭인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저마다 그럴듯한 명분과 비전을 내세우고 있으나 결국 철저히 이해관계에 따라 캠프를 전전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음지에서 냉대받던 이들은 화려했던 과거를 꿈꾸고, 양지에서 놀던 이들은 혹여 음지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해서 캠프를 기웃거리고 있다. 수능날 아침 떠올려보는 정치낭인들의 모습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국회에 또 상복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로텐더홀 계단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4일 오전, 이재명 대통령이 첫 새해 예산안을 설명하기 위해 국회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상복 차림에 검정 마스크를 쓰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 불과 5개월이지만, 야당의 상복 시위는 처음이 아니다. 정기국회 개원식이 열린 지난 9월 1일에도 국민의힘은 검은 상복을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앉았다. 여당의 내란·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개정안 추진과 입법 독주를 반대하는 항의 메시지를 내세웠지만, 정기국회가 열리는 첫날, ‘죽은 국회’를 상징하는 야당 의원들의 퍼포먼스는 한국 정치의 품격을 다시 땅에 떨어뜨렸다. 정치 무대에 상복이 등장한 것은 오래 전이다. 상복은 ‘상중에 있는 상제나 복인이 입는 예복’이지만 한국 정치사에서 상복은 단순한 애도의 옷이 아니다. 돌아보면 우리 현대사 속 상복은 시대의 비극을 증언하고 권력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민주주의의 부활을 호소하는 상징이었다. 1960년대, 4·19 거리에서 학생들은 상복을 입고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외쳤다. 1970~80년대, 유신체제와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는 재판정과 거리로 옮겨졌다. 1974년 인혁당 사건 유가족들은 재심을 요구하며 상복을 입고 국가폭력에 저항했으며, 1980년 5.18의 거리에서도 시민들은 상복을 입고 광주의 진실을 외쳤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도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죽은 민주주의를 살리자’며 상복을 입었다. 그때, 도덕과 정의를 상징했던 상복은 곧 말보다 더 깊은 진실의 힘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상복은 국회로 들어왔다. 정치적 대화의 공간이 실종되고, 말보다 퍼포먼스가 앞서는 현실에서 상복은 또 다른 의미였다. IMF 위기 이후 한나라당은 ‘국민의 정부’를 향해 ‘경제가 죽었다’며 상복을 입었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에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상복을 입고 ‘민주주의의 죽음을 애도했다. 정치적 언어가 된 상복은 이제 약자의 것도, 부당함에 맞서는 도덕의 언어도 아니었다. 로마의 정치인이었던 키케로는 “정치가에게 말은 무기이며, 설득은 통치의 기술”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정치는 ’말의 예술‘이다. 정치가 말이 아닌 상징으로 대신하면, 민주주의는 소통의 힘을 잃는다. 말이 사라진 자리, 안타깝게도 오늘의 정치는 토론을 잃고 책임 없는 퍼포먼스만 남았다. 지난 9월에 이어 11월 다시 국회 본회의장에 등장한 상복은 정치의 위기를 드러낸다. 혼란과 분열의 상징 언어가 된 상복이 도덕적 힘을 회복하고, 정치의 품격과 신뢰도 되살아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은정 선임기자
다리(교량)는 연결이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구조물로 소통의 상징이자 공동체의 기억이다. 오랜 세월의 무게를 버텨내고 서 있다면 그 의미는 더 특별하다. 공간을 건너면서 시간을 건너는 경험까지 할 수 있다. 그 위를 오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 그리고 한 시대의 기술이 담긴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시대의 변화 속에 가장 먼저 철거되는 인공 구조물이 바로 오래된 교량이다.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쌓여 안전성이 떨어지고, 교통량과 체계가 바뀌면서 대부분 보수가 아닌 철거·신축을 선택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세월의 풍화에 깎여 더 이상 차량의 무게를 견디지도 못하고, 이동 통로로서의 역할도 줄었지만, 그 위를 지나온 시간과 이야기를 남겨두기로 한 옛 다리가 극소수지만 남아 있다. 만경강 하류, 김제시 청하면과 군산시 대야면을 잇는 새창이다리가 그렇다. 1933년에 건립된 길이 약 530m의 구조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콘크리트 다리로 알려져 있다. 이 다리의 김제 쪽 통로는 신창마을이다. 조선시대, 김제 만경벌판에서 서해로 통하는 포구였던 신창진(新倉津·새창이나루)이 있던 나루터다. 20세기 초 일제가 수탈한 쌀을 신작로를 통해 군산항으로 운반하기 위해 이곳 나루터에 다리를 건설했다. 일제 쌀 수탈의 아픈 역사를 짊어진 이 낡은 다리는 1989년 바로 옆에 새 교량(만경대교)이 준공되면서 사실상 역할을 마쳤다. 이후 차량 통행이 금지되면서 강태공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시화전과 사진전이 열리는 문화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의 강을 건너온 이 다리가 최근 다시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역시 노후 시설물의 ‘안전성’이 문제가 됐다. 전북지방환경청이 하천정비계획 및 환경영향평가에서 ‘부적합 시설물’로 판단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사고위험이 있는 데다 관리주체마저 명확하지 않아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물론 안전이 최우선이다. 새창이다리는 분명 커다란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그렇다고 아예 없애는 것이 능사일까? 위험 요인과 함께 이 오래된 다리의 가치와 의미까지 허물어버려야 할까? 단순히 낡은 교량이 아니다. 주민 삶의 애환이 겹겹이 쌓여 있는 근대산업시설의 흔적이자 일제강점기 식량 수탈의 상징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적지 않다. 또 1930년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초기 철근콘크리트 교량으로, 근대 토목기술 발전사를 보여주는 기술유산으로서의 가치도 크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안전과 역사, 두 가치를 함께 지켜내면 된다. 교량의 본래 기능은 이미 새 다리에 맡겼으니, 남아 있는 옛 다리에는 역사와 기억을 맡기면 될 일이다. 철저한 보강을 통해 보행자 전용 산책로, 문화·교육 공간으로 의미 있게 남기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 근대 토목구조물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전북의 낙후를 근본적으로 떨쳐 내려면 역량있는 인물을 단체장으로 뽑아야 한다. 국회의원을 비롯 지사 시장 군수 지방의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요즘은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 선출직으로 뽑혀야 한다. 민주당이 지배하는 전북의 정치구조가 잘못되어 있다. 30년 이상을 민주당이 지배하다보니까 경쟁이 선거판에서 실종되었다.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하면 제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선출직으로 진출할 수 없다.최근 경주 APEC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서 우리나라의 국격이 살아난 것도 역량있는 리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해 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AI의 무한경쟁시대에는 성과주의가 제일 중요한 가치라서 단체장들은 그것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민주당 당원 모집 잘해서 알게 모르게 애경사 잘 챙겨온 사람이 지지도가 높아 선출직으로 뽑혀왔다. 하지만 인기영합주의로 자리를 보전하려고 하니까 항상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본인 재력이 있더라도 선거판에서는 한강에 돌 던지는 것이나 다름 없어 필요한 돈 마련 하느라 정신이 다른데에 팔려 있었다. 사실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자리를 보전하려고 쓰는 돈이 엄청나다. 애경사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병문환까지 가야 하므로 여기에 들어간 돈이 월급이나 의정비 받아 갖고는 어림없다. 자연히 곁눈질 하거나 이권에 개입하는 등 유혹의 손길에 자유로울 수가 없다. 빈곤의 악순환 마냥 이같은 후진형의 정치행태가 반복되다 보니까 유능한 인물이 정치판에 끼어들지 못했다. 지금 시장 군수나 지방의원들은 각종 행사장에 불려 나가 축사하면서 스킨십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주최측의 영향력 때문에 가지 않을 수도 없고 대신해서 부단체장을 보내면 관심 없는 것처럼 비춰져 이래저래 속앓이를 하게 돼 있다.요즘 국가예산 확보철인데도 축제장 쫓아 다니느라 업무시간을 다 허비한다. 이젠 유권자들의 생각이 진정으로 바꿔져야 한다. 행사장이나 쫓아 다니고 조직관리 잘 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지역발전을 시켜 놓을 적임자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서울 경기 강원 충청 부산 등은 여야간에 경쟁이 심해 현직 단체장들이 일로 승부 한다. 전북처럼 조직관리 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해외로 나가 투자유치를 하기 때문에 시간을 금쪽같이 아껴 쓴다. 그 지역 유권자들은 성과 여부에 따라 표를 주기 때문에 지사나 단체장들이 죽어라고 일에 매달린다. 결국 워커 홀릭이 될 수 밖에 없다. 전북은 유권자가 스스로 모순된 행동을 했다. 지역을 발전시킬 역량 있는 인물을 단체장으로 뽑아 주도록 해야 하는데 당원을 잘 모집해서 조직관리나 잘 하는 사람을 단체장으로 뽑아주는 빗나간 행동을 했다. 지금껏 취임초부터 발이 닳도록 뛰어 기업유치 성과를 낸 단체장은 김관영 지사나 정성주김제시장 유희태 완주군수 최영일 순창군수 심덕섭 고창군수 정도다. 충북 이시종 전지사처럼 일로 성과를 거둔 사람을 단체장으로 뽑아야 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전주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본다
HAI 시대, 지역사회 감응에도 주목
안호영 의원 통합 결단, 끝까지 최선을
리셋되는 행정, 중단의 비용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고
전주시, 고사 위기의 기령당 활성화하라
지금, 우리에게 ‘호남’이란 무엇인가
김 지사의 컷 오프설은 사실무근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
김성주 이사장 구호 아닌 성과로 말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