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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 부장을 지낸 민병훈 박사로부터 얼마 전 전화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서 만난 한 작품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란다. 그가 주목한 작품은 작가 불명의 `채용신 평생도병풍`이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수련` 등 대한민국 최고 부호의 수장고에 있던 진귀한 수집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전시장에서, 그것도 작가 불명의 작품이 그를 붙든 것은 전북과의 연관성 때문이었다. 민 박사는 전주 출신으로 국립전주박물관에서 학예실장을 지냈다. 그가 지목한 병풍 속 주인공인 석지 채용신(1850~1941)은 근대 초상화가의 거장으로, 인생 전반부 무관으로 활동하다가 후반부 전북에서 화가로 살았던 인물이다. 고종의 어진을 그리면서 어진화가로 화명을 떨쳤으며, 사대부와 우국지사, 일반인까지 초상화 대상을 넓혔다. 그가 그린 최익현 초상과 황현 초상은 보물로 각각 관리되고 있고, `운낭자초상`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국내 미술계도 석지의 독특한 기법과 표현양식, 회화의 근대성에 주목하며 채용신 관련 연구들을 꾸준히 해왔다. 채용신 관련 연구 논문이 석박사 논문을 포함 20편에 이른다. 2000년대 초 국립현대미술관이 `서거 60주년 기념 석지 채용신전`을 연 것도 그 연장선에서다. 그러나 정읍 태인에서 아들 손자와 함께 공방을 운영했고, 그의 묘소도 선산이 있는 익산 왕궁에 자리하는 등 석지의 활동 기반이었던 전북에서 정작 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전북도립미술관이 그의 사후 70년이 된 지난 2011년에서야 기획전을 연 정도다. 이건희 회장이 어떤 연유로 채용신의 일생을 담은 병풍을 수집했는지 알 수 없으나 작가 미상의 작품이기에 작품 대상의 주인공과 작품성에 주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0폭으로 이뤄진 병풍은 채용신의 어린 시절 공부에서부터 과거급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 수군으로 활동했던 모습 등을 연대기 순으로 담았다. 박물관 측은 조선말 사회변화상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번 355점 컬렉션 전에 이 작품을 내걸었다고 귀띔했다. 민병훈 박사가 주목한 것은 그보다 채용신이 어진을 모사하는 모습의 다섯번째 작품(사어용도)이다. 지금은 없어진, 그 당시 흥덕전(덕수궁 궁전자리)에서 태조 어진을 그리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긴 것을 두고서다. 임금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병(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담긴 병풍)을 펼쳐놓고 여러 신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치 살아 있는 왕의 모습을 그리는 것 같은 어진모사 모습을 이 병풍이 보여주고 있다. 어진은 조선시대 왕을 상징하는 핵심 문물이어서 어진 제작과 봉안, 관리 때 왕을 모시듯 했다. 그러나 이렇게 공들인 제작에도 전란과 화재로 대부분 어진이 소실됐다. 경기전 태조어진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전신상 어진이다. 봉안처인 경기전이 함께 남아 있다. 10여 년 전 경기전 내 어진박물관도 새로 만들어졌다. 전국 유일의 어진 전문 박물관이다. 그러나 콘텐츠는 부족하다. 전북에서 활동한 채용신과 어진 관련 콘텐츠가 담긴 `채용신 평생도 병풍`이 어진박물관에 놓인다면 여러모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 유족은 그의 수집품 대부분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고, 지역 연고와 작가 연고가 있는 광주 대구 등 지역의 공립미술관에도 100여점을 나눠 기증했다. `채용신 평생도 병풍`의 제자리는 어진박물관이지 싶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고가 아닌, 어진박물관에 있을 때 이 작품과 어진박물관, 채용신이 더욱 빛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전북의 소중한 문화자산인 어진박물관과 채용신이 재조명 됐으면 좋겠다. /김원용 논설위원
아버지를 찾는다는 핑계로 날마다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생판 모르는 아저씨들한테 술을 얻어먹고 취하는 고아원 아이. 최인호의 단편소설 <술꾼>의 주인공이다. ‘술꾼’은 ‘술’에 ‘꾼’을 붙인 말로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주량 또한 만만치 않은 사람을 가리킨다. 진정한 술꾼은 주종(酒種)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모름지기 술꾼은 술시가 되면 술이 고플 줄 알아야 한다. 계절 따라 조금 다르지만 ‘술[酒]시’이기도 한 술시(戌時)는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다. 그런데 한자어 ‘술(戌)’은 ‘개(犬)’하고 뜻이 크게 다르지 않다. ‘술 취한 개’도 거기서 나온 말일까.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찰떡궁합이 따로 없다. 어설픈 흉내의 뜻을 가진 말로 ‘풋’이 있다. ‘풋마늘’이나 ‘풋사랑’의 그 ‘풋’이다. 잔 것 같지 않은 잠도 ‘풋잠’이다. 누군들 양손에 술병을 움켜쥐고 태어났으랴. 다들 처음에는 남들 따라서 어설프게 마시기 시작했으니, 그 또한 ‘풋술’이다. 풋술의 대부분은 맛도 제대로 모르면서 따라주는 대로 들이붓는다. 그걸 ‘뻘술’이라고도 부른다. 평소에는 입에 대지도 않던 술을 어떤 일로 ‘회가 동해서’ 갑자기 퍼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한바탕 소나기처럼 퍼마신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소나기술’이다. 술에는 장사 없다고 했다. 소나기술에 엉망으로 취한 이는 제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해 곱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일쑤다. 아, ‘홧술’도 있다. ‘홧병’을 다스리려고 마시는 술이다. 이 또한 뒤끝이 좋기 어렵다. 술이 나를 마시기 때문이다. 홧술이나 소나기술을 마시고 나면 ‘술망나니’ 소리나 듣기 십상이다. 크고 작은 사고를 치기 일쑤다. 끊어진 필름은 무슨 수로 이어붙일 수 있을까. 술을 ‘도깨비 뜨물’이라고 불렀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으리. 논에 물을 대려면 삽이나 괭이로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 술도 물이다. 그래서 술이 들어가는 목을 ‘술꼬’라고 한다. 술을 잘 못하던 사람이 주량이 크게 늘어서 술을 잘 마시게 된 것을 두고 옛날에는 ‘술꼬가 터졌다’고 했다. 그런 이들이야말로 앞서 언급한 술꾼들 아니고 무엇이랴. ‘타오르는 물’이 술이다. 술시부터 자시(子時) 끝까지 퍼마신 술은 다음날 아침에도 코나 입을 통해 알코올 기운을 활활 풍겨낸다. ‘소줏불’이다. 빈속에 안주 없이 마시는 술을 최고로 치는 술꾼들이 적지 않다. 그걸 ‘강술’이라고 한다. ‘깡소주’를 마신다고 하지만 그건 군대식 용어를 빌려다 악으로 깡으로 마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프로기사가 되면 초단을 받는다. 다른 이름으로는 ‘수졸(守拙)’이다. 졸렬하나마 스스로는 지켜낼 줄 안다는 뜻이다. 바둑의 최고 단수는 9단이다. 그걸 ‘입신(入神)이라고 한다. 신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술도 바둑의 입신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지가 있다. ‘열반주(涅槃酒)’다. 한평생 술과 더불어 살다가 결국 술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야말로 ‘술독에 빠져 죽는’ 경지 아니고 무엇일까. 풋술이든 뻘술이든 상관없다. 가끔 퍼마시는 소나기술이 대수랴. 굳이 술꾼 아니라도 살다 보면 때로는 홧술도 필요하리. 출근해서까지 소줏불 좀 풀풀 날린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가끔 깡소주 퍼마신다고 누가 잡아갈 턱 있을까. 그래도 딱 하나, 열반주만은 멀리할 일이다. 입원실 병상에 며칠간 누워 지내면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
해양환경을 보전코자 해양환경관리법에 의해 해양환경공단(이하 공단)이 설립됐다. 공단은 해양수산부의 지도,감독을 받는 산하 공기업이다. 공단은 설립 목적의 달성을 위해 예방선(예인+방제)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공단의 예방선은 본래의 업무인 해양오염 방제활동보다는 돈벌이 사업인 예선 업무에 치중하고 있다. 국회 더불어민주당 이원택의원(김제 부안)이 5년간 공단이 전국 항만에서 운용하고 있는 27척 예방선의 방제건수는 1척당 1년에 2건을 밑돌고 있는 반면 하루 평균 3건의 예선 수익을 올렸다고 밝힌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예선업이 지난 1990년대 등록제로 전환되면서 항만 예선시장은 민간에 활짝 개방됐다. 하지만 공단은 여전히 사기업처럼 민간과 경쟁하면서 예선업에서 발을 빼지 않고 있다. 문제는 공단이 어떤 기준도 없이 항세가 열약한 군산항에 많은 예방선을 운용하면서 민간 예선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단은 전국 입출항 척수의 2.2%에 불과한 군산항에 현재 전체 예선 7척 중 57.1%인 4척이나 운용하고 있다. 올해 예선 적정 수급계획상 공단 예방선의 항만별 시장 점유율(척수기준)은 부산항 13.6%, 울산항 9%, 마산항 20%, 평택항 9.7%, 포항항 5.8%에 불과한데 비해 군산항은 66.7%에 달한다. 군산항에서 민간업체가 설 땅을 공단이 휘젓으면서 돈벌이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인천항은 물론 유류나 화학단지가 있는 대산항이나 여수 광양항 등은 군산항보다 입출항 척수가 훨씬 많고 방제수요가 큰 항만인데도 공단의 예방선은 한척도 배치돼 있지 않다. 누가봐도 공단의 예방선 배치 운용이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다. 왜 유독 전북 유일 항만인 군산항이 이같이 불합리한 홀대를 받아야 하는 지 씁쓸하다. 이와관련,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 의원은 합리적인 예방선 배치기준마련을 주문했다. 당시 해양수산부는 올해 2차 예선수급계획에 예방선 재배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검토는 전혀 없었다. 이 의원은 신임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에 서면 질의를 통해 수요를 감안, 예방선을 전국적으로 골고루 재배치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는 답변을 통해 현 상황에 대한 개선의지가 없음을 내비쳤다. 해양수산부는 추후 타 항만에 예선 폐업, 입출항 척수증가 등 증선 수요가 새롭게 발생할 경우 공단 예선의 다른 항만배치 방안을 공단과 적극 협의하겠다고 답변했다. 또한 새만금 신항 개항에 따른 군산항 예선 증선 수요가 있을 경우 민간 예선업체의 추가 등록이 가능할 수 있다고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예선업이 예선수급계획에 따라 허가제와 비슷해졌고 선박이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런 답변은 비현실적이다. 불합리한 공단의 현 예방선 배치 운용상황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재의 잘못을 바로 잡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해양수산부가 거꾸로 불공정과 비상식을 포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과 상식및 정의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출범했다. 조 장관은 진정 공단의 현 예방선 배치 운용상황이 공정하며 상식에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안봉호 선임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 부장을 지낸 민병훈 박사로부터 얼마 전 전화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서 만난 한 작품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란다. 그가 주목한 작품은 작가 불명의 `채용신 평생도병풍`이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수련` 등 대한민국 최고 부호의 수장고에 있던 진귀한 수집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전시장에서, 그것도 작가 불명의 작품이 그를 붙든 것은 전북과의 연관성 때문이었다. 민 박사는 전주 출신으로 국립전주박물관에서 학예실장을 지냈다. 그가 지목한 병풍 속 주인공인 석지 채용신(1850~1941)은 근대 초상화가의 거장으로, 인생 전반부 무관으로 활동하다가 후반부 전북에서 화가로 살았던 인물이다. 고종의 어진을 그리면서 어진화가로 화명을 떨쳤으며, 사대부와 우국지사, 일반인까지 초상화 대상을 넓혔다. 그가 그린 최익현 초상과 황현 초상은 보물로 각각 관리되고 있고, `운낭자초상`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국내 미술계도 석지의 독특한 기법과 표현양식, 회화의 근대성에 주목하며 채용신 관련 연구들을 꾸준히 해왔다. 채용신 관련 연구 논문이 석박사 논문을 포함 20편에 이른다. 2000년대 초 국립현대미술관이 `서거 60주년 기념 석지 채용신전`을 연 것도 그 연장선에서다. 그러나 정읍 태인에서 아들 손자와 함께 공방을 운영했고, 그의 묘소도 선산이 있는 익산 왕궁에 자리하는 등 석지의 활동 기반이었던 전북에서 정작 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전북도립미술관이 그의 사후 70년이 된 지난 2011년에서야 기획전을 연 정도다. 이건희 회장이 어떤 연유로 채용신의 일생을 담은 병풍을 수집했는지 알 수 없으나 작가 미상의 작품이기에 작품 대상의 주인공과 작품성에 주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0폭으로 이뤄진 병풍은 채용신의 어린 시절 공부에서부터 과거급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 수군으로 활동했던 모습 등을 연대기 순으로 담았다. 박물관 측은 조선말 사회변화상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번 355점 컬렉션 전에 이 작품을 내걸었다고 귀띔했다. 민병훈 박사가 주목한 것은 그보다 채용신이 어진을 모사하는 모습의 다섯번째 작품(사어용도)이다. 지금은 없어진, 그 당시 흥덕전(덕수궁 궁전자리)에서 태조 어진을 그리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긴 것을 두고서다. 임금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병(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담긴 병풍)을 펼쳐놓고 여러 신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치 살아 있는 왕의 모습을 그리는 것 같은 어진모사 모습을 이 병풍이 보여주고 있다. 어진은 조선시대 왕을 상징하는 핵심 문물이어서 어진 제작과 봉안, 관리 때 왕을 모시듯 했다. 그러나 이렇게 공들인 제작에도 전란과 화재로 대부분 어진이 소실됐다. 경기전 태조어진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전신상 어진이다. 봉안처인 경기전이 함께 남아 있다. 10여 년 전 경기전 내 어진박물관도 새로 만들어졌다. 전국 유일의 어진 전문 박물관이다. 그러나 콘텐츠는 부족하다. 전북에서 활동한 채용신과 어진 관련 콘텐츠가 담긴 `채용신 평생도 병풍`이 어진박물관에 놓인다면 여러모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 유족은 그의 수집품 대부분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고, 지역 연고와 작가 연고가 있는 광주 대구 등 지역의 공립미술관에도 100여점을 나눠 기증했다. `채용신 평생도 병풍`의 제자리는 어진박물관이지 싶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고가 아닌, 어진박물관에 있을 때 이 작품과 어진박물관, 채용신이 더욱 빛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원용 논설위원
바람 일지 않게 스란치마 끄는 소리로 그러나 여물게 굴러떨어지는 잎새에 흘러 소년의 반짝이는 이 꽃잎에 앉아 소녀의 부끄러움 산천을 씻는 빗물 방울방울 산도 들도 초록 세상 한 마리 새로 날아서 올라 구름도 초록으로 물들이고 싶은 △‘스란치마’는 소란 단을 부착한 치마다. 전통 혼례 의상이지만 녹색당의와 스란치마를 입고 폐백을 올리는 건 신부의 꿈이었다. 대청마루를 지날 때 스쳐 지나가는 스란치마의 소리는 우아하고 아름답게 들렸을 것이다. 마음이 초록일 때 마음을 적시는 빗방울도 초록으로 스민다. 초록은 순수한 자연의 무채색이다. 초록을 더 초록으로 물들이는 빗방울은 젊은 날의 기억으로, 초록 세상의 공간으로 간다. 꽃잎이 초록으로 스미는 곳, 젊은 꿈이 있었던 공간일터. /이소애 시인
‘저를 만나면 즐거우시죠?’ 김관영 전북도지사 당선인이 지난 2012년 4월 치러진 19대 총선을 앞두고 2011년 8월 출간한 책 제목이다. 자신의 살아온 길과 정치적 견해 및 신념을 밝힌 자서전이다. ‘고시 3관왕 희망전도사 김관영’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 입문이 ‘지경(地境)을 넓히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되길 소망했다. 자신이 가진 역량을 발휘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는 소망대로 국회의원에 이어 전북도지사에 당선되며 지경을 넓혔고 전북 발전을 위해 일할 기회를 갖게 됐다. 김 당선인은 지난 2일 당선후 첫 행보로 군산과 전주의 전통시장을 방문해 경제와 민생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도지사가 될 것을 다짐했다. 책상에 앉아 권력을 행사하는 도지사가 아니라 도민 곁에서 대화하고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정경제부에서 7년 정도 근무한 그는 ‘공무원이 현장에 가까울수록 행정은 현실에 가까워진다’는 경험칙을 갖고 있다. 공공기관 심사평가 업무를 맡았을 당시 광업진흥공사에 대한 불합리한 평가기준의 문제점을 현장 출장을 통해 확인한 뒤 바로잡았고 평가에서 만년 꼴찌이던 광업진흥공사는 불명예를 벗었다고 한다. 공무원의 사명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관료사회의 우수성과 성실함이 국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지난 3일 전북도청 기자실을 찾은 김 당선인은 도정의 중점 과제로 기업유치 및 경제, 시·군과의 협치, 인사 문제 등을 강조했다. 기업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군수들의 지역발전 노력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지 않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열심히 일하고 도민들께 서비스 잘하는 공무원을 승진에서 우대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사로 일할 당시 체험했던 고객중심 서비스 정신을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기도 전에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 스카우트 된 김 당선인은 ‘변호사는 의뢰인의 을이어야 한다’는 고객중심주의를 체득했다. 후배 변호사들에게는 “고객이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아가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진정성을 갖고 상대와 소통하기 위해 주파수를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당선인은 학창시절과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육시절, 김앤장 근무시절 내내 오락부장 또는 엔터테이너로 불릴 만큼 분위기 메이커였고 노래 실력도 뛰어나 초청받은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열 번도 넘게 불렀다고 한다. 200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며 기념문집(아름다운 약속)에 직접 쓴 자신의 묘비명에 ‘30대 초반까지 자신을 절차탁마하기 위해 보여준 불굴의 의지는 이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으며, 만 30세에 이룬 고시 3관왕의 성과는 그의 노력의 극히 일부 부산물일 뿐이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만나면 즐거운 사람, 즐거운 전북을 위한 그의 더 큰 노력과 성취가 기대된다. 강인석 논설위원
이번 6.1 지방선거는 더불어민주당 공천과정에서 빚어진 선거 브로커 파문을 비롯해 휴대전화 대리투표, 금품 선거 의혹, 유권자 선택권이 사라진 무투표 당선 속출, 역대 최저 투표율 기록 등 적지 않은 폐단과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러한 지방선거의 폐해는 지역정서에 기인한 정당 공천제도의 허점에서 비롯된 것으로써 지방선거 제도의 전면 개정이 요구된다. 지난 1991년 지방의원 선거에 이어 1995년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전국 첫 동시지방선거가 시행된 이래 8차례 지방선거를 치러왔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처럼 정당 공천을 둘러싼 잡음과 혼탁, 과열이 심했던 전례가 없다. 민주당 후보 자격심사와 공천심사 과정에서 계파 간 알력 다툼과 줄 세우기 줄서기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선거 브로커가 후보 경선 과정에 개입해 금권 동원과 공무원 인사권 거래, 휴대전화 여론조사 왜곡 및 금품 살포 문제 등이 터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유력 후보들이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극심한 공천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민주당의 공천 파문과 부작용은 요지부동인 지역정서에서 비롯됐다. 특정 정당의 공천이 끝나면 사실상 선거 결과가 결정되는 상황이기에 후보자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천장을 거머쥐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책과 비전, 인물론은 실종되고 조직 동원과 세 대결을 통해 공천에만 집착하는 그릇된 선거 풍토를 조장하고 있다. 이번 제8회 지방선거에서도 광역의원 지역구 후보 22명과 시·군의원 지역구 후보 33명, 기초 비례대표 후보 7명 등 총 62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이는 역대 최다 규모로 이들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대거 무투표 당선은 유권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역대 최저 투표율도 문제다. 이번 전북 투표율은 48.7%로 지방선거 사상 최저치다. 민주당 공천 파문에 따른 선거 피로감과 대거 무투표 당선이 선거 무관심을 부추긴 탓이다. 따라서 인물 본위의 투표와 유권자 참정권 확대, 그리고 지방자치의 중앙정치 예속화 등을 탈피하기 위해선 시장·군수와 지방의원 선거의 정당 공천제 폐지가 마땅하다.
6·1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전북도민의 민심은 변화와 발전에 대한 갈망이었다. 물론 민주당이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대거 배출하면서 ‘민주당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을 다시 확인했지만, 일부 시·군에서 무소속 후보에게 패해 텃밭을 내주면서 압승을 거두지는 못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전북은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해 지역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과 피로감을 보여줬다. 공천 파행 사태 등으로 인한 실망과 변화에 대한 갈망으로 민주당 지지층이 상당수 이탈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은 반성이나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노력조차 없는 민주당에 실망이 크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당선자들은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고, 지역발전을 이끌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인구절벽의 시대, 전북지역 상당수 시·군은 소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전북 대전환’의 급물살이 시작되는 변곡점을 만들어내야 한다. 올해 출범한 새 정부가 ‘어디서나 살기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지방시대, ‘전북 대전환’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된다. 공동체의 위기를 직감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살린 창의력과 추진력으로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위기의 시대, 지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소통과 통합으로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협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진보와 보수의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시민사회와 여야 정치권, 행정 등 다양한 영역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협치야말로 이 시기, 지역의 미래를 이끌 새 단체장들이 보여야 할 리더십이다. 특히 지역현안을 놓고 불거진 시·군 간 갈등에 대해 그동안 조정·중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전북도의 역할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교육청과 지자체의 협치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우리 사회 교육문제가 풀기 어려운 난제가 된 것은 교육의 문제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회 불평등과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교육현안 해결은 지자체·시민단체 등 지역사회 다양한 주체의 긴밀한 소통과 협업이 필요하다.
내 나이 채 스무 살도 안 되던 해에 군에 입대하여 월남전 파병이라는 국가의 명령을 받았다. 혹독한 훈련을 받고난 후, 부산 항 제 3 부두를 떠날 때는 나는 내 나라 대한민국 땅을 다시 밝게 될지 모르겠다고 수없이 맘속으로 되 뇌였다. 그리고 남지나해의 검푸른 파도를 타고 장장 5박6일간의 긴 항해를 시작한 끝에 도착한 곳은 월남 땅 퀴논이라는 항구였다. 도착 시간은 그날 오전 10시 30분 정도… 역시 열대의 나라답게 날씨는 무척 뜨거웠다. 월남인의 특이한 삼각형 모자며, 두부장수처럼 어깨에 걸머진 물통 같은 짐들, 아오자이 입은 가냘픈 여인들의 자태…… 이 모든 것이 낯 설은 이국땅이었지만 임무를 마치고 꼭 살아서 돌아가고야 말겠다는 마음만은 간절했다. 그 후, 십 육 개월간의 파월 생활 동안 나는 생(生)과 사(死)의 전투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실전을 경험했다. 고막이 찢어지는 듯 한 팬텀 비행기 소리며 콩 볶듯 쏘아 대는 소총소리, 내 키보다 훨씬 큰 정글을 헤매며 숨 가쁜 베트콩과의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나는 내 삶을 영위하려고 안간힘을 다해 싸웠다. 살아서 돌아가리라! 살아서 돌아가리라! 하고 이를 악물고 싸웠다. 사정없는 베트콩과의 총격전이 끝난 후, 새벽녘 별빛에 비친 전쟁의 흔적은 비참했다. 부상을 입은 전우는 붉은 피를 흘리며 정글 속에 나뒹굴고 있었고, 여기 저기 적들의 총탄으로 얼룩진 참혹한 광경은 참으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부상을 입은 전우들의 살려달라는 피맺힌 울음소리며 부상당한 전우를 부둥켜안고 헬리콥터만 오기를 애타게 기다릴 때, 나는 전우애란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참혹한 광경은 나의 가슴을 옥죄고 있다. 치열한 싸움터에서 임무를 마치고 내 나라 고국을 향하는 거대한 배에 올랐을 때에는 같이 파병에 임했던 수 많은 전우들 중에는 전사한 자도 있었고 부상을 입은 전우도 있었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나는 살아서 돌아간다는 아주 벅찬 희망감에 파랗게 철썩이는 파도의 갑판에 서서 하늘을 향해 내 조국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그 검푸른 파도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월남 땅을 뒤로하며 임무를 끝낸 내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간신히 살아나왔음을 파랗게 철석이는 파도는 그렇게도 나를 축복하고 있었다. 월남참전을 그렇게 말리시었던 어머님이 바다의 넘실대는 파도위에서 환한 얼굴로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내 아들아! 손짓하시는 것 같았다. 애타게 불렀던 내 조국 대한민국 태극기가 파도위에서 너울거렸다. 파도야! 얼마든지 바람에 부디 치거라. 얼마든지 바람에 부딪쳐 보아라. 나는 굴하지 않고 굿굿이 살아남았음을 내 조국에 가서 고하리라. 아! 살아서 돌아가는 내 조국이여, 내 조국이여…… 파도야 어서 함께 내 조국으로 돌아가자 꾸나. /황만택 월남전참전용사·수필가
여름이 오면 성창순 명창이 생각난다. 아주 무더웠던 그해 여름에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자신이 그동안 여러 형태로 출반했던 모든 음반자료를 책보에 싸서 내게 건네주셨다. 오래된 음반, 카셋트 테이프, CD 음반까지 망라한 것이었다. 당신의 예술세계를 하나로 묶어서 종합음반으로 정리하시고 싶다고 했다. 그때 선생은 내게 우전(雨田) 신호열 선생의 ‘적벽부’ 글씨가 담긴 부채를 선물해 주셨다. 선생이 내게 주신 부채는 우전 선생의 글씨로 소동파의 ‘적벽부’가 촘촘하게 채워져 있었다. 우전이 세필로 단아하게 써서 직접 성창순 명창에게 준 것이다. 우전 선생은 빼어난 한학자이자 섬세한 글씨를 잘 쓴 분으로 이름이 나있다. 나도 대학 다닐 때, 이분에게 <고문진보>와 <시경>을 배운 바 있는데, 선생의 가르침에 수업 때마다 감탄했었다. 선생은 토를 달지 않고 한문을 읽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선생은 네 글자씩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낭송하셨다. 지금도 부채를 펼치면 스승이신 우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 경이롭다. 성창순 명창은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가졌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소리로 그려냈다. 명창이 소리할 때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소품은 부채다. 성창순 명창에게는 탐낼만한 부채가 많았는데, 이당(以堂) 김은호 선생의 장미그림 부채가 기억에 남는다. 성창순 명창은 소리판에서 늘상 장미 그림 부채를 들고 판을 이끌어갔다. 이 그림은 원래 이당이 김소희 명창에게 선물한 것이었다고 한다. 김소희 명창은 이 부채를 두고두고 아꼈는데, 어느날 성창순 선생을 불러 부채를 물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끼던 놈인디 결국 자네에게 주네. 잘 간직허고 좋은 소리허시게”. 성창순 명창은 귀한 <춘향가> 소리판에서만 장미그림 부채를 들었다. 부채를 강하게 펼치면, 붉은 장미에서 내뿜는 진한 장미향이 순식간에 주변에 퍼졌다. 김은호 화백은 20세기 전반기부터 활약한 당대 최고의 화백으로 화조도와 인물 그림에 능한 분이었다. 남원 광한루의 춘향사당에 모셔진 춘향 영정이나, 진주의 촉석루에 모셔진 논개의 초상도 이당의 단아한 화풍의 산물이다. 이당은 우리 음악을 애호하였고, 우리 음악에 대한 조예도 대단히 깊어 인연이 닿은 예술가들에게는 멋진 그림을 선사했다고 전한다. 성창순 명창이 <심청가>를 할 때면 소정(小亭) 변관식 선생의 복숭아꽃밭 그림 부채를 꺼내들었다. 심청이가 살던 곳은 도화동이고, 장승상 부인이 살던 곳은 무릉촌이다. 소정 선생은 바로 그 도화동 무릉촌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그려, 성창순 선생에게 증정했다. 소정은 산수화에 특히 빼어난 분이다. 그이의 복숭아 그림은 도원을 지향하는 도가적 세계와, 복숭아밭이 가진 관능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소정의 산수화 부채는 명창이 펼쳐만 보아도 시원한 바람이 일어났다. 부채에는 소리꾼의 교양이 담겨 있다. 성창순 명창은 우전 선생에게 서예를 배워 단아한 글씨를 남기기도 했다. 선생은 특히 우아하고 기품있는 자세로 소리판에 임했다. 선생은 부채를 펼쳐 보이는 자태마저도 우아했다. 선생이 직접 소리하는 장면은 이제 다시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선생이 남겨준 부채와, 책보에 싸서 내게 건네준 음원자료는 내게 남아있다. 음원으로 만들어 선생께 전해드리지 못한 것이 여전히 내게는 부채다. 그렇지만 이제 선생이 남기는 음원자료를 모두 정리했다. 이 소중한 음원을 국악방송 아카이브에 담아두고, 선생의 예술세계 전모를 세상에 전하고자 한다.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
가까운 미래 모든 인간은 25세가 되면 노화를 멈추고 몸에 새겨진 시계에 1년의 유예 시간을 제공받는다. 이 시간으로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 등 모든 것을 시간으로 계산한다. 부자들의 금고에는 세대를 거쳐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보관되어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퇴근 버스를 탈 2시간이 없어 심장마비로 죽고 동네 불량배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훔치는 게 일상이다. 소수의 영생을 위해 다수가 죽어야 하는 시스템으로 빈민가에 사는 많은 사람은 매일 오르는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죽어 나갈 수밖에 없다. 삶에 필요한 비용이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간으로 결제가 되는 시간의 상상력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우리는 눈앞에 닥친 시간만을 급박하게 대하며 살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보내고 있는 시간은 순환한다. 아침이 되면 닫혀 있던 건물들이 문을 열고 회사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다가 날이 저물면 도시의 길에는 사람이 종적이 줄어들게 된다. 매년 더 뜨겁고 습해지는 여름이 다가오지만 때가 되면 지나간다. 같은 건물이라도 새벽녘의 모습과 저녁노을이 비칠 때의 모습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건축설계 자체는 평면에 그리는 2차원적인 작업이나 그것은 3차원적으로 지어질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사람은 찰나가 아닌 지속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므로 건축 공간은 사람이 머물고 움직이며 생활하는 긴 시간을 위해 수많은 물질로 지어진다. 땅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주 천천히 그 어떤 것보다도 깊이 변하는 것이며 이렇듯 물질을 통해 시간을 불러내고 이어가는 일이다. 어떤 건물이든 특정한 사회를 위해,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용도를 위해 지어지게 되어 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주문생산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용도를 단지 편리함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짓고자 하는 시설의 본래 목적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집과 집 사이의 간격처럼 가까운 거리만 보고 살지만,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면 먼 산과 하늘을 보게 된다. 건축공간은 크건 작건 그것이 서 있는 주변과 거리를 두고 대립하고 있으며 우리의 공동생활을 위한 규칙으로도 작용한다. 물리적 가치나 경제적 가치가 충분하더라도 사람들이 잘 가지 않게 된다든지 딱히 분명한 용도가 없으면 건물의 사회적인 가치가 사라진다. 고유한 지역성이나 역사성이 희박해진 우리의 건축과 도시에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지금 있는 흔한 주택들을 이 도시의 시간적인 삶의 일부로 여기고 시간이 어떻게 공간에 누적되는지를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집은 자기가 살아갈 현재를 위해 설계하고 짓지만 일단 지어지고 나면 미래를 향한 긴 시간이 그 공간에 누적되기 시작한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집과 길과 주변의 사물들과 함께 눈비를 맞으며 바람에 맞서며 다양하게 변화하는 시간을 경험한다. 예술적으로 잘 지은 집을 감상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축이 아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건축의 근본을 말하고 실천하는 것이 좋은 건축이고 그것을 잘 만드는 사람이 좋은 건축가다. 우리 공동의 생활을 지탱하는 질서를 세우고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건축설계의 가장 큰 매력은 오래된 미래를 발견하는 것이다. 커피 한잔에 4분, 버스요금 2시간을 벌기 위해 오늘도 바삐 뛰어다니는 우리에게 건축은 시간을 짓는 이들의 노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한다. /이길환 길종합건축사사무소ENG 대표
6.1 지방선거를 통해 도지사와 시장·군수 등 15명의 단체장이 새로 선출됐다. 도지사와 전주시장 정읍시장 남원시장 김제시장 완주군수 장수군수 순창군수 고창군수 등 9명은 새로운 인물로 바뀌었다. 군산시장과 무주군수 진안군수 부안군수 등 4명은 연임에 성공했고 익산시장과 임실군수는 3선 고지에 올랐다. 김관영 도지사 당선인을 비롯해 14명의 시장·군수 당선인은 이번 선거전에서 저마다 지역 발전을 위한 공약과 비전을 내걸었다. 15명의 당선인 모두 지역 경제 살리기와 민생 회복, 기업 유치와 산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과 청년 지원 정책 등을 이구동성으로 제시했다. 그만큼 전북 경제 상황과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하기 때문이다. 전북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인구 감소와 산업 위축, 청년 인구 유출 등 거듭되는 악순환은 전북의 현주소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전주를 제외하곤 13개 시·군이 소멸 위기에 내몰렸고 성장동력을 잃은 전주시도 지난해부터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게다가 자동차와 조선 등 전통적인 제조업이 퇴조함에 따라 전북은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와 군산 현대중공업 가동 중단에 이어 군산 타타대우와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생산 물량이 격감하면서 전북을 지탱해온 제조업 기반이 무너졌다. 그렇지만 전북도와 정치권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게 현실이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전북 발전의 키를 잡은 도지사와 시장·군수 당선인의 역할과 리더십이 중요하다. 당장 전북은 초광역협력과 메가시티 발전전략에서 소외되면서 고립무원의 처지로 남게 됐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전북 발전전략을 모색하느냐가 도지사 당선인의 제1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단체장 당선인이 내건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 신산업 발굴 등 지역발전 공약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표 얻기에 급급해서 장밋빛 청사진만 내걸고 나 몰라라 뒷짐만 져서는 절대 안 된다. 지역의 힘과 동력을 하나로 모으고 주민과 약속한 비전과 정책, 그리고 발전 전략을 잘 이끌어서 지역 소멸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는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썼다.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브로커)을 거머쥐었고, ‘칸의 남자’라 불릴 만큼 칸영화제의 주목을 받아온 박찬욱 감독은 감독상(헤어질 결심)을 받았다. 남우주연상은 한국 최초이고, 감독상은 2002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은 이후 두 번째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한국 영화의 빛나는 성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결실이다. 한국 영화의 화려한 수상 소식이 전해진 올해 칸영화제에서 그 못지않게 주목을 받은 또 한 편의 영화가 있다. 상영회에서 해외 취재진은 흐느꼈고, 7분 동안 세 번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는 화제의 중심에 선 영화,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다음 소희>다. 이 영화는 부산영화제 선재상(2007), 올해의 여성영화인상(2014),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2015) 수상 등 일찌감치 한국 영화계의 주목을 받아온 정주리 감독의 작품이다. 정 감독의 칸영화제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에도 정 감독은 영화 <도희야>로 비평가주간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었다. 비평가주간은 프랑스비평가협회 소속 최고 평론가들이 참신하고 작품성 있는 영화를 엄선해 상영하는 섹션이다. 해마다 10편 내외의 작품만 선정되는 만큼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부분으로 꼽힌다. 비평가주간에, 그것도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이 영화의 작품성을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증거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영화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또 있다. <다음 소희>는 콜센터 실습생의 안타까운 사망사건을 그린 영화다. 2017년 전주의 한 이동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여고생이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통신사 하청업체 콜센터에서 실습생으로 일한 지 5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학보다는 일찌감치 취업을 택한 이 여고생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이 사건은 취업률에 목매는 정부와 학교, 저임금에 착취당하는 실업계 고등학생들의 현실을 그대로 들춰냈다. 이 영화를 칸에 보내면서 "너무나 한국적인 이야기에 과연 외국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는 감독의 우려에 칸의 관객들은 뜨거운 공감으로 답했다. 메시지의 ‘보편성’이 가져다 준 힘이었다. 2017년, 불과 5년 전에 벌어졌던 여고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었을까. 그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된 한국 사회의 잔혹한 현실에 함께 분노했던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곧 만나게 될 <다시 소희>가 기억을 불러내는 이유가 있을 터. 아직도 온전히 치유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한계를 보니 그의 죽음을 소환한 영화의 힘이 새삼 커 보인다./김은정 선임기자
1990년대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는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국가 간 세계화로 인해 인구 이동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역사 문헌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목 중에 하나가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이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뿐만 아니라 멀리는 페르시아의 아랍권과 인도까지도 인적·물적 교류가 이루어져 왔었다. 가령, 처용설화에 나오는 아랍인도 그렇고 가야국의 김수로왕과 인도의 허황옥 공주의 국제결혼도 인적교류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제결혼 비율이 전체 혼인 건수 중 약 10%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다문화 가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국가가 되었다. 이는 오래전부터 이민이 활발하여 `다문화`라는 말이 사용된 미국, 유럽, 캐나다처럼 우리나라도 명실상부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다문화 사회는 한 사회 안에 서로 다른 인종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이다. 이는 단순히 다른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개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각기 살아온 삶의 방식이 다르기에 한 사회 내에서 서로의 문화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단일민족`이라는 자긍심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턱없이 부족하다. 다문화 가정의 가족 구성원인 경우 한국에 정착해서 한국 국적으로 살아가니 한국인이나 다름없는데 같은 한국인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외모가 다른 특성으로 인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고 소득에서도 우리와 동일한 노동을 하고도 이방인으로 취급되어 임금 차별을 겪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국제결혼 부부의 결혼 지속기간이 짧고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가족해체로 이어져 개인의 불행에서 끝나지 않고 더 큰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다문화 현상들을 극복해 나가려면 정부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 정부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면의 정책을 수립 및 시행하고 있으나 완전한 해법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결혼 이주여성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는 폐쇄적인 이중적 양상을 보인다. 지금이야말로 다문화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통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시기별 예측되는 기회 요인과 위협 요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발굴하여 단계별 맞춤형 지원정책과 구체적인 정책실천을 위한 매뉴얼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다문화 가정의 상당수가 언어소통문제, 자녀교육 문제, 빈곤 등을 다수 경험하고 있기에 일선 학교와 교육청, 지자체, 지역별 다문화가정지원센터 간 다문화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공유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고, 효율적으로 다문화 가정을 지원할 수 있는 공동의 플랫폼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다문화 시대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와 인종이 하나로 갈 수밖에 없는 시대적 사명이다. 우리나라 또한 국가경쟁력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래 한국사회의 성공과 실패 나아가서는 존망까지 연결되었다. 다문화 사회의 다양성이 갈등의 요인이 아닌 상호 성장과 지속적 발전을 위한 토대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국적·인종·성별·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이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 다문화 구성원과 운명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며 편견은 버리고 더욱 포용하고 이해하는 상생의 인식 대전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나경균 원광대 객원교수
대통령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당선과 즉시 인수위 과정 없이 집권을 시작한 지난정부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는 주택가격 급등으로 대표되는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꼽는 이들이 많습니다. 먼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코로나19라는 괴물은 전 세계적으로 경기부양을 위해 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결과 금리가 제로(0)에 가깝게 되고 풍부해진 유동성이 출구를 찾지 못해 주식과 채권에 집중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부동산에 집중되게 되고, ‘부동산필패’라는 허상은 주택을 주거의 대상이 아닌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국민정서와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여 주택가격 폭등(?)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시장에 넘쳐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주택보급률이라는 변수가 숨어있습니다. 1970년부터 시작된 주택보급률 통계조사는 2008년 처음으로 100%를 넘긴 이후 2019년 말 기준으로 약 104.8%가 되어 이미 공급과잉 상태인데도 여전히 자기 집이 없어 전세나 월세로 세입자 생활을 하고 있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2020년의 주거실태조사에 의하면 자기 소유의 집에서 거주하는 가구는 약 58%정도로 여전히 절반정도가 무주택자라는 의미이고, 전체가구대비 자기 집을 보유한 가구의 비율은 약 60.6%정도입니다. 즉, 주택보급률이라는 통계보다 자기 집에 거주하는 비율인 자가점유율과 자기집을 보유한 가구의 비율인 자가보유율이 더 중요한 지표라는 의미 이며, 이는 한 가구가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 명분이 되고, 정부는 1가구1주택이라는 원칙을 강조하며 수요의 양극화 현상을 줄이기 위한 조세정책을 시행하게 되는데 지난정부의 대표적인 조세정책은 양극화 현상이 심한 지역을 조정지역으로 지정하여 최고세율 82.5%에 이르는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제도였습니다. 정부는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해 중과세제도를 1년간 유예한다고 합니다. 이는 40%정도의 다주택자에게 중과세제도는 반드시 완화된다는 그릇된 정보를 주게 되고, 주택가격이 상승할 때까지 처분시기를 미루는 잠김효과(lock-in)를 유발시켜 애꿎은 서민과 청년층의 주택취득을 더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노인환 한국세무사회 이사
손 안의 작은 기계에 정신을 위탁하고 한가한 시간을 보낼 때 어떤 앱들은 나에게 예의바른 질문을 던지곤 한다. “당신이 나 말고 다른 앱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제가 사용자의 활동을 추적하도록 허용하겠습니까?” 나는 이런 문제에 인심이 후하다. 온라인상의 내 개인 활동 이력이라고 해보았자 몇몇 친구들의 sns 안부와 뉴스 따라잡기, 조촐한 생필품 구매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철통같이 보호해야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다른 앱에서 검색한 내용을 참조하여 예상치 않은 순간에 슬그머니 들이미는 알고리즘의 센스야말로 어찌나 요긴한지. 내 정보력이나 안목을 상큼하게 뛰어넘는 알고리즘의 역량에 몇 번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므로 나는 내 활동 이력을 마음껏 추적하라고 너그럽게 허락하는 편이다. 내 취향과 관심사를 알수록 더욱 더 나에게 적합한 정보를 제공할 알고리즘의 후의에 즐거운 쇼핑으로 답할 우리의 호혜적 관계를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알고리즘의 센스넘치는 추천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으리라고 별 의심없이 생각했는데, 세상은 내 생각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활동 이력 추적을 허용할지 묻는 질문에 나처럼 동의하는 사람은 5% 근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따라다니지 말라고 거절한다고 한다. 95%의 높은 거절률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무난하고 안전하게 다수를 따르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꽤나 별난 5%에 속해버려서 놀랐고, 남들이 아니오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알고나자 이전처럼 마음편하게 알고리즘의 추천을 즐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 흔들리던 알고리즘과 나의 밀월을 방해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내 친구가 골프 레슨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관심사는 온통 골프용품과 골프 연습장에 모이게 되었다. 친구는 나에게도 골프를 함께 배우자고,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소감을 강력하게 피력했는데, 내 나이대에는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으므로 사실 나에게 이런 권유가 처음은 아니었다. 친구들이 아무리 골프가 재미있다고 해도 나는 그 운동에 입문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원래부터 운동과 친하지 않은데다 나는 무엇이든 근접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서 풍광 좋은 먼 곳으로 가야하는 그 운동이 나에게 잘 맞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친구의 제안을 웃음으로 받아넘기고 그 일을 잊었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친절한 알고리즘은 나에게 골프용품과 골프웨어들을 열정적으로 추천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흔히 보여주던 인테리어용품, 고양이용품, 맛있는 빵집, 식품 광고와는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이었다. 친구와 나는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었을 뿐 골프용품을 검색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으므로 알고리즘의 이런 추천은 대단히 수상스러웠다. 알고리즘에게 내가 방문한 페이지나 검색 입력어를 참조하라고 동의한 적은 있었지만 나의 개인적인 메시지를 활용하라고 허락한 적은 없었다. 이 일은 마치, 카페에서 친구와 실컷 수다를 떨고 났더니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판매원이 우리가 이야기했던 바로 그 물건을 들고 나타나 판촉에 나선 것만큼이나 난데없고 침해적이었다. 게다가 내 휴대폰에는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만을 24시간 기다리고 있는 음성인식 AI가 있지 않은가. 그는 항시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힘주어 강조하는 친구다. sns가 아니라 개인적인 대화마저도 참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전까지 침묵하던 나의 느슨한 경각심이 경보음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것은 친절의 범주를 넘어선 일이라고, 무언가 뻔뻔한 일이 일어났다고. 나의 개인적인 메신저가 털린다한들, 그 내용은 내가 방문한 활동이력만큼이나 보잘것없고 무해하다. 기껏해야 유치한 농담이나 섣부른 정치적 견해나 들통나서 비웃음을 당하고 끝날 것이다. 하지만 내 손안의 친절한 알고리즘이 나의 개인적인 대화를 조용히 엿듣고 그 내용을 무언가에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은 섬뜩하다. 더 이상 알고리즘은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심윤경 소설가
유난히 길었던 선거의 계절이 지나갔다. 연초부터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이어지며 정계는 물론 지역사회가 온통 선거 이슈로 뜨거웠다. 그리고 이제 초여름 열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선거판이 일단락됐다. 후보와 선거운동원, 그리고 열성 지지자들에게는 환희와 탄식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승자와 패자로 구분될 수밖에 없는 경쟁구도에서 한쪽에서는 기쁨의 눈물,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슬픔의 눈물을 밤새 흘려야만 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준비했고 피말리는 경쟁을 벌인 만큼, 선거가 끝났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정리될 감정이 아니다. 특히 막판까지 대혼전 양상을 보인 곳이라면 더할 것이다. 네거티브 선거전을 치르면서 깊어진 진영간 갈등이 앙금으로 남을 수도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한다. 하지만 승자독식의 이 축제가 서로 손을 맞잡고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권자들의 최종 선택을 받은 당선자의 과제가 만만치않다. 선거를 치르면서 갈라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고 갈등을 털어내야 한다. 선거는 후보자와 열성 지지자들 사이에 강렬한 감정의 연대를 만들어낸다. 반대로 상대 후보 지지자들과는 감정의 골을 만들어 대립과 배척관계로 이어진다. 당선자의 이 같은 감정이 취임 후까지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선거를 옆에서 적극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위인설관(爲人設官) 하거나 맞지도 않는 자리에 중용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괘씸죄를 씌워 배척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이어지면서 유난히 길었던 선거의 계절이 지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선거도 중요하지만 우리 일상의 삶은 정치보다 훨씬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 선거판에서 생긴 갈등과 상처를 모두 씻어내고 이제 하루하루 소중한 일상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지지하지 않았던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서 무작정 등을 돌리는 소인배의 행태를 보이면서 영원한 패자로 남을 이유는 없다. 박빙의 승부로 당락이 갈렸다고 해도 중임을 맡게된 당선자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다. 우리 삶과 지역의 미래를 위해서다. 지지 후보가 달라 등돌렸던 이웃이 있다면 다시 손을 맞잡고 동행하면서 지역에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번 6.1 지방선거를 통해 전북의 리더십이 새롭게 교체됐다. 앞으로 4년간 민선 도정을 이끌어갈 도백으로 김관영 후보가 당선됐다. 김관영 도지사 당선인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쇠락해가는 전라북도와 전북 경제를 살려낼 적임자임을 자부했다. 선거전 내내 전북 경제에 방점을 찍고 임기 내 대기업 계열사 5개 이상 유치와 일자리 창출, 전북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 민생경제 회복 등을 약속했다. 전북의 변화와 혁신, 성장과 발전도 공언했다. 전라북도는 지난 1995년 민선 자치 이후 미국 럿거스대 경제학 교수 출신인 유종근 지사와 정통 행정공무원 출신인 강현욱 김완주 송하진 지사가 도정을 이끌어왔다. 모두 잘사는 전북, 지역 경제 살리기에 주력해왔지만 쇠락해가는 전라북도의 터닝 포인트를 만드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민선 자치 출범 때 200만 명을 웃돌던 전북 인구는 180만 명 선마저 무너졌고 2050년엔 150만 명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전국 GDP의 4%를 차지하던 경제 규모는 2%대로 주저앉아 16개 광역 시·도 가운데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매년 1만여 명에 달하는 20대 청년들이 고향을 등지고 있고 자동차와 조선 등 전통적인 제조업의 퇴조로 전북의 산업은 위기에 몰려있다. 다른 대체 기회를 포기하고 올인 해온 새만금은 착공 30년이 넘었지만 언제 완성될지 모른 채 여전히 희망 고문만 계속되고 있으니 전북의 미래는 답답할 뿐이다.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새로운 리더십에 거는 기대가 크다. 김관영 당선인은 지금까지 민선 도백과는 달리 정치인 출신으로서 젊음과 패기에 승부사 기질까지 갖췄다. 민주당에 복당한 뒤 단기필마로 지사 후보 경선에 뛰어들어 3선 연임에 나선 송하진 지사에게 용퇴를 촉구하고 그의 측근을 끌어안는 포용력으로 공천장까지 거머쥐었다. 제3당이지만 원내대표와 정책위 의장을 역임한 경륜과 역량이 결코 허명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김 당선인이 펼칠 전북도정의 앞길은 절대 녹녹하지만은 않다. 우선 야당 지사로서의 한계 극복이 관건이다. 김 당선인은 윤석열 정부와 견제와 협조로 전북 발전을 이뤄내겠다고 언급했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행정고시와 사법시험 양과를 패스하고 재선의원으로서 여야를 망라한 다양한 인맥이 김 당선인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넓혀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지역 경제와 전북의 위상을 어떻게 반전시킬 것인지가 가장 큰 과제다. 전북의 미래 먹거리, 새로운 성장동력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김 당선인의 역량과 리더십에 달려있다. 권순택 수석논설위원
새로운 시대를 맞은 전북교육!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시작되었다. 도민들은 12년간의 전북교육의 침체기를 깨고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교육전환을 갈망했으며, 전북교육이 계층간 학력격차 해소와 기초학력 지도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공약을 발표한 새 교육감 당선인에게 전북표심이 정해졌다고 본다. 앞으로 새 교육감 당선인은 전북도민들의 열망과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 이에 민주교총에서는 전북교육의 대전환을 위한 3가지의 전북교육 발전 방향을 새 교육감 당선인에게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지금까지 전북교육은 불통의 교육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중앙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각종 지원도 마다하였다. 교육감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능력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얼마만큼의 예산을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새 교육감 당선인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원활한 소통과 대폭적인 예산확보를 통해 전북교육의 수준과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앞으로 새 교육감 당선인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소통, 도민들과의 소통, 교육가족과 소통의 교육철학을 실현하길 바라며, 소통의 교육을 통해 전북교육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적극적인 지원과 교육가족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소통의 리더십 교육감이 되길 바란다. 둘째, 기초학력, 기본학력이 향상될 수 있는 학력신장 드라이브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길 바란다. 12년간의 전북교육의 방향은 기초학력 향상보다는 혁신교육, 참학력 향상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물론 혁신교육과 참학력 향상은 앞으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기초학력의 저하가 발생하였으며, 이에 전북도민은 학력향상의 요구가 어느때보다 강력했었다. 새 교육감 당선인은 학력 증진과 기초학력의 향상을 위해 운전자 역할을 충실히 다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세 번째는 생동감 있는 학교, 수업이 즐거운 학교, 다양한 교육과정으로 신명나는 학교환경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공교육의 회복은 교실안에 해답이 있다. 교실안에서 학생과 교사가 행복하게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질적인 향상을 위해 전북도교육청에서는 적극적인 행정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인권 향상과 교권의 증진을 통해 한쪽으로 무게가 치우치지 않도록 교육감은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2022 교육과정 개정과 고교학점제가 안착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시군교육지원청과 연계하여 철저히 준비하길 바라며, 우리 학생들이 타지역 학생들보다 교육적인 소외를 받지 않도록 해야한다. 마지막으로 4차산업혁명시대에 기후위기•디지털 혁명을 대비, 학교공간을 혁신 할 수 있는 방안도 철저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제 교육감 선거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전북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위한 돛을 막 올리기 시작했다. 돛의 방향과 위치에 따라 배가 목적지에 올바르게 갈수도 있고, 풍랑에 좌초될 수도 있다. 새 교육감 당선인은 우리 전북교육의 배가 올바르게 정진할 수 있도록 돛을 잘 올려주길 바라며, 우리 전북도민들은 새롭게 출범하는 교육감 당선인이 바른 길로 갈수 있도록 채찍과 관심•응원을 부탁드린다. /이상덕 민주교총 회장
6·1 지방선거 과정에서 각종 불법 행위가 적발돼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선거사범이 150여명에 달하고 있다. 일부 지역의 시장·군수 선거에서 민주당과 무소속 후보간 격전이 펼쳐지면서 상대 후보에 대한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불법 행위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거사범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또다시 온갖 소문이 난무하고 지역사회가 혼란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30일까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수사가 진행된 사건은 91건 137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4건(5명)은 검찰에 송치됐고 7건(15명)은 불송치 결정으로 종결돼 현재 80건 117명에 대해 수사가 진행중이다. 유형별로는 허위사실유포 혐의가 30건(43명)으로 가장 많고, 금품선거 21건(32명), 여론조작 2건(6명), 현수막 및 벽보훼손 5건(5명), 기타 33건(46명) 등이다. 전북선관위도 허위사실 공표와 기부행위 등 선거법 위반 혐의로 12건을 검찰에 고발 조치한 상태다. 6·1 지방선거사범 가운데 일부 사건은 사안이 중대해 향후 재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정 후보 지지자 차량에서 수천 만원의 현금이 발견되고 돈 봉투를 돌린 지지자가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후보들간 허위 비방 공방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선거사범에 대한 재판에서는 금품 살포 및 기부행위, 허위사실 공표 등으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자질이나 능력도 없이 불법·부당한 선거운동으로 당선된 사람이 지역을 대표하는 일꾼 행세를 하게 해선 안된다.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공명선거를 저해한 선거사범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여론과 정치에 휘둘려 수사와 법정에서의 판단이 길어지면 혼란이 가중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 돌아간다. 특히 단체장이 장기간 재판을 받을 경우 행정의 효율성과 집중도가 떨어지고 지역사회에도 갈등과 분열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선거사범에 대한 사법당국과 법원의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와 판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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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민주 도당위원장, 도민 체감정치 보여라
[기고]전북특별자치도, 진안의료원 도립 승격 외면은 지방소멸 방기다
[박벼농사의 듣다보면 솔깃한 법률 이야기] 재판을 시작도 하기 전에 항소각하결정 된 이유는?
[문화마주보기]인공과 지능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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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전북의 성장사다리, 혁신으로 세계를 향하다
[기고] 생명을 살리는 연결, 119와 응급의료센터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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