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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감나무

감나무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마을 어디서 나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격 있는 나무가 감나무다. 감나무 모습 중에서 가장 문기가 넘치는 모습은 뭐니 뭐니 해도 붉은 감이 몇 개 달린 눈 쌓인 감나무 가지에 까치가 앉아 우는 새 아침의 모습일 것이다. 다른 나무에 비해 실 가지가 굵은 감나무는 눈을 많이 받는다. 검고 굵고 짧고 뭉툭한 가지에 가만가만 내려 눈은 소복하게 얹힌다. 가지에 얹힌 눈이 녹을수록 감나무는 눈 녹은 물로 젖어 더 검어지고 눈은 희게 빛난다. 내가 오랫동안 근무했던 초등학교 주위에 감나무들이 많았다. 그 감나무들은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거기 있었다. 나는 계절을 따라 아이들과 감나무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였다. 감잎이 진 가을이면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학교 뒤에 있는 감나무를 향해 돌멩이를 던져 감을 따 먹다가, 감나무 주인인 강 건너 우리 고모가 운동장에 들어서며 누가 우리 감 따 먹었느냐고 고함을 치기도 해서 달려가 내가 그랬다고 늦가을 소동을 무마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내가 유리창을 열어 놓고 감나무를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하나둘 감 같은 얼굴로 내 곁에 모였었다. 겨울이 와서 감나무 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거나, 가지마다 가만가만 쌓인 눈이 여기저기서 천천히 허물어져 떨어지는 모습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아득해지는 고적함을 가져다주었다. 감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몸이 검어진다. 다른 나무에 비해 몸이 검고, 투박하고 까만 가지들은 세월이 갈수록 단아해져 가고 품위를 갖추어 간다. 감나무는 찢어지지 않고 부러진다. 찢어지지 않고 뚝! 부러진 내면은 얼마나 고운, 흰색인가. 뻗어나가며 적당한 길이로 구부러진 멋스러운 마디의 검은 가지에 얹힌 흰 눈의 대비는 수묵의 경지다. 감나무도 나이가 들고 고목이 되어 이 가지 저 가지가 죽어가는 그 꾸밈새 없는 모습은,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자라 평생을 살면서 마을을 이해하여 그에 알맞은 마음을 곱게 쓰며 살아 온 선량한 동네 어른처럼 믿음이 간다. 나이가 들어가며 자기 생각을 버리고 가다듬어 살아 온 세월의 자세로 다문다문 열린 감 같은 시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새잎 피는 봄날, 내 책을 들고 온 사람들에게 사인을 이렇게 해 준다. ‘감나무에 새잎 피어 좋은 날, 임 만나러 가고 싶은 날’. 잎이 피면 잎이 피고, 감꽃이 피면 감꽃 핀대로, 땡감이 열려 있으면 그런대로, 감잎이 다 지고 붉은 감만 달고 서 있으면 또 그런대로, 빈 나무로 서 있으면 그런대로 검고 단단한 골격을 갖춘 자세를 견지한다. 지금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재래종 붉은 감들이 가시덤불 속에서 눈을 하얗게 쓰고 꽁꽁 얼어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농부들의 일평생 같아 눈 맞는 감처럼 마음은 춥다. 감나무는 농촌 사람들에게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소득원이었고, 농촌의 풍경을 사시사철 소박하고도 조촐하게 그려주던 나무였다. 옛날에는 집집이 마당 가나 뒤 안에 감나무들이 있었다. 큰 집 뒤 안 장독대에 감나무가 있었다. 뒷짐 지고 서서 서리맞은 붉은 감을 바라보던 큰아버지의 등은 얼마나 다정하고 말라가는 곶감이 걸린 처마 밑들은 얼마나 정다웠던가. 감나무는 순박한 삶을 가꾸어 온 우리네 저 유구한 농부들과 그 운명을 같이 해 온 셈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김장까지 끝내고 회관 아랫목에 여기저기 누워 ‘비상 계엄’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기도 한다. 가누기도 힘든 몸으로 자다 일어나 묻고, 뒤척이다 잠결에 눈을 비비며 나라의 안부를 묻는다“어치게 되어가? 날씨도 추운디, 많이 모였네” 오늘 밤도 마을 회관에 모여 텔레비전 보다가 어둑어둑 집으로 돌아 들 간다. 희끗희끗 눈 발이 날린다. 어둠 속이다. 강물 소리가 휘몰아친다.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감나무가 어둡게 서 있다.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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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3 13:15

비상계엄이 유독 부끄러운 순간

지난 6일 오후 1시 (현지시각) 스웨던 스톡홀롬에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첫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그 감동과 환희가 생생한 가운데 전 세계가 주목하는 행사였다. 그런 만큼 그 자리에는 지구촌 85개국 기자들이 참석해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K-컬처의 명성을 뛰어 넘어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격을 한껏 드높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시선이 쏠리는 것은 행사장 출입구 옆에서 한국의 비상계엄을 규탄하는 1인 피켓 시위였다. 벅차 오르는 기쁨과 함께 축하 현장에서 그 날의 주인공인 한강 작가의 고국에서 발생한 비상계엄이 오버랩된 데 대해 만감이 교차했다. 작가 자신도 회견에서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안타깝기는 고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지에서 지난 10일 시상식을 전후로 일주일 간 열리는 '노벨문학상 위크' 행사가 한국에서도 축제 분위기로 들떠야 하는데 탄핵 정국과 맞물려 제한적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작가 자신은 ‘소년이 온다’ 를 쓰기 위해 1979년부터 진행된 계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공부를 했다며 담담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계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서 “2024년 상황이 과거와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생중계됨으로써 모든 사람이 지켜볼 수 있었던 점” 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무력이나 강압에 의해 통제하는 방식의 과거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덧붙였다. 노벨문학상을 받기 위해 이역만리에 온 그녀에게 비상게엄은 남다른 면이 있다. 혼돈으로 치닫는 고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그녀의 답변에는 불의에 맞서는 문학의 힘을 강조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작가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현지 호평이 쏟아지는 가운데 그녀가 겪은 계엄 상황에 현지 언론이 주목하는 것도 작품 세계와 무관치 않다. 5.18 민주화 운동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소년이 온다' 와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희생된 주민의 아픔을 담은 '작별하지 않는다' 가 대표적이다. 특히 그녀 고향이 광주인 것도, 과거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도 계엄 상황과 배치되지 않아 더욱 그렇다. 전북일보를 비롯한 전국 일간지의 신춘문예 공모가 한창이다. 문단의 등용문으로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MZ세대 예비 작가들에게 비상계엄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것도 교과서에서 배운 비상계엄을 현실에서 맞닥뜨렸을 때의 충격은 어땠을까. 한강 작가가 느꼈던 억압적이고 폭력적 형태의 비상계엄이 AI 로봇시대 젊은 세대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점에서 분노가 치민다. 노벨문학상을 배출한 국가로서의 자존감과 명예를 실추시킨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4.12.13 13:14

홍시가 익어가는 자리

오랜만에 엄마 밥을 먹었다. 배가 고프다는 말에 “별 건 없는데.”라며 배추와 시래기를 넣고 할머니가 준 된장으로 끓인 된장국을 식탁에 차려줬다. 곁들여 나온 김치는 군산 친구네서 받아 온 김치란다. 외식이 잦은 나를 0.5인분으로 계산한다면, 해봐야 1.5인분의 식탁을 차리는 엄마는 올해 김장을 고사한 대신 이모와 친구의 집에서 받아 온 김치들로 한 해를 날 예정이다. 3개의 집에서 각각 온 김치들은 청주, 부안, 군산의 지역 특색만큼 맛이 다르고 빛깔이 다르다. 이번 김치는 어떤 맛일까, 생각하며 먹었다. 아직은 풋내를 풍기는 매콤한 김치와 함께 겨울의 재료로 만들어진 된장을 느끼고 있으면, 계절이라는 게 촉각뿐만 아니라 미각에서도 느껴지는구나 확신하게 된다. ‘엄마’는 어쩌면 이렇게 계절마다 상차림을 바꿔서 먹지. 혼자 살 땐 느끼기 힘들지만, 엄마 집에서는 집안 곳곳의 물건과 식탁에서 계절을 실감한다. 볕이 잘 드는 창가에는 이미 땡감이 홍시로 익어가고 있는지 오래다. “네가 좋아하잖아.” 나란히 놓여있는 땡감 3개를 보며 아는 체를 하자 엄마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단단하던 감이 볕에서 말랑하게 무르익는 것처럼 마음이 물러진다. 계절의 흐름 속에서 계절의 간식과 풍경을 맞이한다.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요즘엔 당연한 풍경이 아니었구나 싶다. “봄이라서 냉이로 된장을 끓여봤다.”, “겨울 무는 달아서 무채 해 먹으면 맛있다.”, “5월에 나는 양파로 김치 담그면 시원하고 맛있단다.”, ‘무슨 계절엔 무엇이 몸에 좋단다.’ 등등. 옛날처럼 아궁이를 떼고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집이 아닌 네모난 시멘트 상자 속에서 살지만, 삶에 담긴 풍습은 여전히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다. 삶 속속히 담긴 풍습과 얕은 믿음이 삶을 풍요롭게 지탱함을 느낀다. 생일을 이야기할 때 12월 22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팥죽을 먹는’ 혹은 ‘밤이 가장 긴 동짓날’에 태어난 탓일까. 아니면 내가 24절기를 구구절절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라 그럴까. 여름엔 열무와 같은 여름의 채소로 배를 채우고, 여름의 물건으로 더위를 나누고, ‘염소 뿔도 녹는 대서’라는 말로 여름을 나듯 겨울엔 냉이와 같은 겨울의 채소로 식탁을 차리고, 겨울의 물건으로 추위를 견디고,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소설’이라는 말로 겨울을 대비한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된장으로 밥을 먹으면서, 시장에 나가 메주를 사와 옥상에서 잘 씻어 볕에 말린 장독대에 된장을 담갔을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맛의 비법을 배우러 가야 하는데.’라며 조바심도 내고. 친구 A의 집 베란다 캣타워에 매달려 있는 풍경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풍경소리는 액운을 풀어주지.’라는 말을 떠올리며 평온을 바란다. 풍습이 내게 스며드는 게 지겹거나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지지 않고 삶을 충만하게 영위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느낀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걸까. 사회에서 말하는 ‘어른’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과거 크게 느껴졌던 어른이란 게 별거가 아니구나 싶어진다. 하지만, ‘별일 없이 산다’는 말이 대단한 말이 듯이 ‘별거가 아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큰 의미이다. ‘자기 몫을 하고 살며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가치와 방식대로 스스로 영위하는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한 모습이다. 어느 계절엔 시래기를 베란다에 잘 말려뒀다가 친구들이 놀러 오면 무 조림이나 국을 끓여 먹으며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계절에 맞는 식탁을 차려 음식을 나눠 먹고, 생활 방식을 계절에 따라 바꾸는 것이 익숙하고 능숙해지면서‘어른’이 될 수도 있겠다. 식탁 위에 차곡차곡 쌓인 계절들을 음미하면서 말이다. 김나은 여성주의문화기획사 우만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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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3 13:13

영주권자 입영신청 제도에 대해 알려주세요

영주권자 등 입영희망 제도는 영주권을 취득하거나 국외이주사유로 국외여행 허가를 받은 사람이 병역의무이행을 희망하는 경우 병역판정검사 일자, 장소 및 입영일자를 본인이 직접 선택하여 원하는 시기에 병역이행이 가능하도록 하며, 영주권 유지를 위해 군 복무기간 중 정기휴가를 이용, 이주국가를 방문할 수 있도록 보장하여 조국애를 도취시키고 병역의무의 자진이행 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영주권자 등 입영희망 신청 대상자는 첫째, 3년 이상 국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외국의 영주권(임시·조건부 영주권 포함)을 취득한 사람과 영주권 제도가 없는 국가에서 무기한 체류자격(5년 이상 장기체류자격 포함)을 취득한 사람. 둘째, ‘국외이주’ 사유로 37세까지 국외여행허가를 받은 사람(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는 사람 포함). 셋째, 재외국민으로 등록된 부모와 같이 국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본인이 복수국적인 사람과 부 또는 모가 외국의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한 경우, 국외파견 공무원 및 주재원이 아닌 부모와 같이 국외에서 5년 이상 거주한 경우. 넷째, 본인이 복수국적자로서 국외에서 10년 이상 계속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해당됩니다. 신청 절차는 병무청 누리집(병무민원-국외여행/체재-영주권자 등 입영희망 신청) 온라인 접수 또는 지방병무청이나 인천공항 병무민원센터에 방문하여 접수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영주권자 등 입영희망 신청자의 군 입영 후 혜택으로는 영주권 유지를 위한 국외여행이 보장되고 휴가 여비가 지급됩니다. 현역병의 경우 정기휴가 기간 중 국외여행이 가능하며, 거주국 방문에 소요되는 왕복 항공료와 국내 여비를 예산의 범위 내에서 국가에서 지급합니다.(전역 시 편도 항공료와 국내 여비 지급)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자는 영주권 유지를 위한 국외여행 시 왕복항공료 지원이 가능합니다. 전북지방병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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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3 13:13

[금요수필] 우리어머니 이태순 권사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한 달이 지났다. 골반뼈가 부러져 요양병원에서 6개월 가량 치료받으시던 모친이 임종하시기 전날, 배가 아프시다길래 저녁식사 대신 소화제랑 요거트와 과일을 드렸다. 다음날 새벽 당직의사로부터 고열과 저혈압에 염증수치가 너무 높아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고 대학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서둘러 요양병원에 도착했다. 내 울부짖음에 어머니는 간신히 눈을 뜨고 입술을 달싹이시더니 그걸로 끝이었다. 향년 96세를 일기로 영면에 드신 것이다. 6·25동란과 혹독한 가난 속에서도 7남매를 하나도 안 죽이고 길러내신 어머니는 필자가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원으로 이어지는 바깥일을 마감하고 돌아왔을 때만 해도 고향에서 아버지가 세우신 교회를 지키며 독거하고 계셨다. 어머니의 건강은 두말할 나위 없이 효성이 지극한 자식들의 보살핌 덕분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학업과 직장을 핑계로 타국과 외지를 떠돌았으므로 가장 불성실한 자식인 셈이다. 퇴임하자마자 아내의 허락을 구한 후 남매들에게 뒤늦게나마 못다한 내 몫을 다하겠노라고 선언하고 귀향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30년 전에 지어드린 고향집을 수리하는 일이었다. 내고향 순창 쌍치는 고도 300~400 m의 고지여서 겨울이면 유독 눈(雪)이 많고 춥다. 코와 발이 시릴 정도여서 단열을 위해 이십개가 넘는 크고작은 창문을 이중창으로 바꾸고 이제는 불필요한 작은 공간들을 합치는 공사였다. 고치다보니 욕심이 생겨 범위가 자꾸 커지고 그에 따라 비용은 계획의 배가 되고 말았다. 공사가 한창일 때 어머니는 서울에 사는 작은누나가 모셨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말 공사를 마무리하고 딱 4개월 남짓 지날 무렵, 침대에서 주무시다가 화장실 가다 넘어져서 그만 골절상을 입고 말았다. 6개월간의 투약으로 치료할 수 있겠다는 대학병원의 진단에 따라 요양병원으로 옮겨 매일 주사약 처치를 받고 있던 참이었다. 치료경과도 좋아서 일주일 후면 완치를 확인하고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도수치료를 예약해둔 상태였고, 어머니로부터 용기를 내시겠다는 다짐을 재삼재사 받아 뒀는데... 나는 허망할 뿐만 아니라 남매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호언장담했던 백수(百壽)는커녕 불과 일년반 만에 돌아가시게 한 것 아닌가. 나는 그날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식욕이 없어서 먹는 것도 시원찮은데 고질인 역류성식도염은 더욱 심해졌다. 어머니랑 살던 고향집 가기도 싫었다. 그러나 사망 한 달 이내에 주민등록지에 사망을 신고해야 했으므로 며칠 전에야 쌍치면사무소에 가서 신고를 마친 후 어머니 안부를 묻곤하시던 앞집 이웃을 찾아뵈었다. 나를 보자마자 대성통곡하시는 그 권사님 따라 함께 하염없이 울면서 문득 백수(百壽)가 내 욕심이 아니었던가 하는 반성이 일었다. 우리부모는 60년 이상 해로하시면서 금슬이 참으로 좋으셨다. 두 분이 다투시는 걸 단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어머니가 아버지 얘기를 하실 적에는 늘 얼굴이 생기로 반짝이며 ‘네 아버지처럼 훌륭한 양반이 없다.’는 말을 빼놓지 않으시는 걸 즐거운 맘으로 지켜보곤 했었다. 그래그래 15년 동안 못 만난 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이날 이후 내 식도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신형식 시인은 전북대 화학공학부 교수와 부총장,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작가회의 회원·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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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4.12.13 09:40

완주 화학물질 보관시설, 철저한 안전장치를

완주군에 호남·충청권을 아우르는 대규모 화학물질 보관시설이 건립됐다. 동원그룹의 종합물류계열사 동원로엑스가 250억 원을 들여 완주 테크노밸리산단에 화학물질 전용 물류센터를 건립한 것이다. 시설은 축구장 5개 크기에 해당하는 3만3000㎡ 규모로, 국내 내륙지역 화학물질 물류사업장 가운데 가장 크다. 2차전지와 반도체·석유화학 산업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화학물질의 보관과 운송을 총괄하는 이 시설은 기존 항만터미널 인근에서만 가능했던 부분을 내륙에서도 가능케 해 호남·충청권 관련 업체의 물류 부담을 절감하고 편리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사회에서는 이 같은 기대와 함께 떨쳐 낼 수 없는 게 역시 ‘안전’문제에 대한 불안감이다. 유해성과 위험성을 내포한 화학물질 보관시설, 그것도 대규모 시설이라는 점에서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특히 전북지역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유해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잇따랐고, 지난 6월에는 군산의 한 화학약품 제조공장에서 폭발사고까지 발생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화학물질을 보관하는 대규모 물류시설이 건립돼 주변 도로와 산업단지에 화학물질을 운반하는 대형 차량이 수시로 드나들게 됐으니 지역사회의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회사 측에서도 안전에 최우선을 두고 위험 상황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 AI CCTV 솔루션 등 위험물 첨단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환경청과 소방서를 통해 유해물·위험물 인허가를 취득했고, 근무자 전원이 유해물·위험물 취급 교육을 수료했다고도 했다. 그렇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화학물질 사고는 예측하기 어렵고 인명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데다 주변 환경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철저한 예방시스템과 초기 대응이 요구된다. 화학물질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안전시설과 함께 근로자 교육을 통한 작업현장의 안전문화 확립, 그리고 사고 발생 시의 신속한 대응체계가 요구된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지역 소방기관과 긴밀한 연계·협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안전 컨설팅과 함께 사고 대비 방제훈련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4.12.12 13:10

국민의힘 유권자 뜻 받들어 탄핵 표결 나서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상황을 단순화시켜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 보고 결정하면 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정당과 정파를 떠나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모여 탄핵 문제에 대해 소신있게 투표해서 결론을 내야 한다. 보수와 진보, 또 보수내에서도 정파에 따라 탄핵에 대해 찬반이 공존하고 있는게 작금의 상황이다. 탄핵반대 당론으로 표결 자체를 보이콧했던 국민의힘이 이제 표결의 장으로 들어가기로 함에 따라 만시지탄의 감이 있으나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 전세계가 대한민국의 정국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회는 헌법·법률적 절차에 따라 내란죄 우두머리의 탄핵 소추를 신속히 의결하라는게 압도적인 여론이다. 물론 국회에서 탄핵이 의결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헌법재판소에서 치열하게 다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법적 판단인 만큼 거기에 맡겨두고 일단 국회로서는 마땅히 할 일을 해야한다. 광장의 소리에, 모든 시민의 외침에, 그리고 민초들의 간절함에 응답해야 한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윤 대통령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을 이틀 앞둔 12일 탄핵 찬성 입장을 공식화하면서 탄핵 의결은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한 대표는 "지금은 탄핵으로 대통령의 직무 집행 정지를 시키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라며 "당론으로 탄핵에 찬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친한(친한동훈)계는 물론, 중립 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찬성표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힘 내에서도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의원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윤 대통령이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12·3 비상계엄' 결정을 정당화하며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밝힌만큼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탄핵 찬성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권내 잠룡 중 한명인 오세훈 서울시장조차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 만으로도 탄핵소추를 통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그 결정은 당론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1차 탄핵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집단 불참에 따른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폐기됐던 상황은 유권자들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였다. 국가가 난파 위기에 처한 마당에 표결 자체를 거부하면서 “그것 또한 하나의 의사표시”라고 주장하는 것은 옹색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모든 의원은 탄핵 표결에 참여해 육참골단의 심정으로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게 바로 거역할 수 없는 민심이자, 천심이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4.12.12 12:30

우리 헌법이 상상도 못한 일, 윤석열은 저질렀다

윤석열이 내란사건으로 구속되면 어떻게 될까? 헌법 제71조에 따라 국무총리가 권한대행하는 걸까? 많은 분이 궁금해합니다. 우리 헌법 제71조는 “대통령이 궐위(闕位, 자리가 빔)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 등이 권한을 대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는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사망, 탄핵 또는 하야(下野) 등 대통령이 궐위된 경우입니다. 둘째는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입니다. 이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가 요즘 문제가 되고 있지요. 헌법학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처럼 국회에서 탄핵 소추가 의결되었거나, 의식불명 등 건강상 문제를 예로 듭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형사처벌을 받지 않지만, 12ㆍ3 윤석열 내란사건처럼 내란죄를 저질렀을 때는 처벌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12·3 윤석열 내란사건’처럼 대통령이 내란죄를 저질렀을 때, 우리 헌법은 직무수행을 어떻게 하는지 공백이 있습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키는 헌법파괴자가 될 것을 상상조차 못 한 거지요. 다시 생각해 봅니다. 윤석열이 구속될 경우 헌법 제71조에 따라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할까요? 당장 윤석열이 구속되더라도, 직무를 계속 수행하겠다고 버티면 방법이 없습니다. 윤석열이 헌법과 무죄 추정의 원칙을 들어, 직무수행이 가능하다고 계속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한덕수와 한동훈은 자신들이 대통령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겠다 합니다. 이건 하나의 헌법 아래 2명의 대통령을 허용하는 셈이라서 헌법상 근거가 없는 위헌입니다. 윤석열이 국군통수권, 특검법 거부권과 같은 중대한 헌법 권한을 구속 중에도 행사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설마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만, 윤석열은 이미 우리 모두의 상상을 벗어나 해서는 안 되는 짓, 불법 비상계엄을 저질렀던 사람입니다. 어떤 분이 적절히도 지적했듯이, 윤석열은 마치 ‘5살짜리가 총을 들고 있는 것’같은 상황이라고 비판받고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 어디로 튈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이런 윤석열이 국군통수권자로 계속 자리에 있게 하면, 국민들도 그에 따라 불안에 떨고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내란을 저지른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한, 내란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덕수와 한동훈이 ‘질서 있는 퇴진’이라며 제시한 ‘한-한 공동 국정운영 체제’는 헌법적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내란 상태의 연속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헌법은 앞서 말한 대로 대통령이 내란죄로 구속되는 경우를 대비하지 않았고, 당장 개헌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현행 헌법에 따라야 합니다. 결국, 윤석열의 국군통수권을 포함한 권한을 정지시키는 방법은 현행 헌법 체제에서는 ‘탄핵’과 ‘즉각적인 하야’ 밖에 없습니다. 이번 불법계엄시도는 시민들이 막아냈습니다. 위대한 K-민주주의의 승리입니다. 윤석열 탄핵과 하야는 전국의 광장에서 밤을 새우며 외치는 시민들의 요구입니다. 지난 주말 의결하지 못했던 윤석열 탄핵 소추가 이번에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헌법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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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1 18:31

내란의 밤, 탄핵의 밤

‘내란수괴의 망동’이 벌어진 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다. 사실 지금은 굉장히 위험한 시간이다. 왜냐하면 내란죄의 수괴가 대통령 자리에, 군 통수권자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내란 상황(situation)’은 종료됐는데, 법적으로 ‘내란 상태(state)‘는 지속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겨우 120초짜리 담화에 언론 질문답변도 없었다. 민의의 전당 심장부인 국회와 선관위에 공수부대를 보내 짓밟고도, 계엄 선포하던 날의 말투와 얼굴빛 그대로였다. 이미 행정수반으로서도, 국가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도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위험천만한 시간을 빨리 종식시키는 것만이 국가가 안정되는 지름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율은 치솟고 코스피는 급락하고 있다. 특히 국제적 신용평가기관 S&P·무디스·피치가 한국 경제에 대해서 경고를 보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을 굉장히 심각한 우려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 모든 핵심은 ‘윤석열 씨’로 귀결된다. 리스크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경제안정의 첩경이다. 지난 토요일, 만일 탄핵이 가결됐더라면 빠른 속도로 대한민국은 정상을 되찾았을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의 무능보다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위기를 빠른 시일 내에 타개했을 것이다. 장갑차를 몸으로 막은 시민들이, 로텐더홀을 지킨 보좌진과 언론인들이, 지휘관의 지시에도 머뭇거리던 일선 병사들이, 형형색색의 응원봉으로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청년들이 그랬듯 말이다. 그러나 여당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다시 한 번 국민에게 절망과 좌절을 주었다. 당시 나는 표결을 30분여 앞두고 마지막으로 굳게 닫힌 국민의힘 의총장 문 앞에서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서서 기다렸다. 이전에 설득을 하려 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조롱을 건넸던 국민의힘은 이번에는 문전박대로 응수했다. 국회에 총칼을 들이댄 내란수괴가 여당과 협의해 임기를 결정한다고 하는 것이 맞는가. 여당 대표는 무슨 자격인가. 이에 동조하거나 함께하는 것은 내란의 공범이자 부역이다. 결국 국민의힘은 답이 명확한 헌법 위반의 상황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다 더 깊은 늪에 빠질 것이다. 이들도 역시 국민이 뽑아줬던 국민의 대표였다. 국민적 압력, 시민의 분출하는 요구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 취임까지 40여일 남아 있다. 경제는 물론 외교안보 비상상황에서 탄핵이 가결되는 즉시 준비해 국회 차원의 사절단을 파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인수위·미 상하원·싱크탱크·언론과 소통해야 한다. 세계가 집중하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 회복력’이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건 민주적 절차에 따라서 위법한 헌정중단 시도가 다시 회복의 길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말에는 부디, 최소한의 내란 상태가 종식돼 우리 국민께서 두 발 뻗고 주무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다가오는 토요일, 14일에는 반드시 탄핵을 가결시킬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금도를 넘은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주권자의 의사표시다. 법적 처벌은 별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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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1 18:31

법의 현장에서 보이는 모습들

제가 법률 분야 직업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 시간 동안 셀 수 없는 사람들과 많은 사건들을 접하면서 결정하고, 도와주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수사와 공판 활동을 수십 년 하다가 이제는 몇 년 전부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법률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피해를 입었거나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위하여 증거를 모으고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의 협조를 받아 조사하여 법원에 기소하거나 불기소 결정을 하는 활동을 하였다가, 몇 해 전부터는 그러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도와주며 심리적 안정감을 유지해 주는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법률분야 활동을 하면서 그 현장에서 목격하고 깨닫게 되는 진실 하나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피해를 준 사람이나 피해를 당한 사람도 피해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의 신체나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질에 피해를 주는 사례의 경우에는 그러한 현상이 일반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하여 사람의 생명에게까지 해악을 미치는 사안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러한 다툼이 법적 분쟁으로 진행되었을 때 탐욕에 젖어 유리한 결론을 이끌어 내려고 법률적 지원을 해주는 사람마저도 객관적 견해를 유지하지 못한 채 그에 동조하는 사례도 이따끔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원인은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는 대로 자신이 이기는 게 아니면 최소한 유리하게 되는 게 정의라고 고집하는 데 있었고, 그러면서도 각자의 내면에는 참된 정의에 관하여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그 심연에는 신의 공의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도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근ㆍ현대 시대에 접하고 있는 법률쳬계와 그 기저에 있는 철학적 조류에는 서양에서 비롯된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 그리고 제3의 이론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철학적 조류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정의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고, 정의의 여신상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은 그리스와 로마 시대 신화에서 유래한 디케, 유스티티아의 상으로 알려져 있고 눈을 가리고 검과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눈은 가려져 있으나 내면에 담겨있는 바른 관념을 바탕으로 공평하고 공정하게 현명한 결단을 하는 상징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가장 사람과 사물을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눈을 가리고 있을까요. 사유해 보건대, 그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보다 내면으로 꿰뚫어 보는 범주가 더 넓고 깊이 있게 통찰하여 지혜로운 결론을 끌어내지 않을까 라고 판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아가, 인간은 그 판단에 머무르지 않고 신의 공의를 추구하고 따르려고 한 것이 아닌지 묵상해 봅니다. 그래서, 동ㆍ서양의 학문적, 문화적 배경과 표현은 다르더라도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수많은 글귀에는 무거운 울림과 깊은 깨달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글귀들이 찾아가는 곳에는 늘 낮음과 겸손, 사랑과 관용이 피어 있고, 물 같이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흐름은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낮은 곳으로 나아가며 정의와 공의라 불리는 드넓은 바다에 이르게 됩니다. 김석우 LKB&PARTNERS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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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1 18:31

퍼스트레이디의 12∙ 12

10∙26 사태로 인해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가 갑자기 사라진 공백상태에서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일거에 실세로 등장한 사건이 바로 1979년의 12∙12다. 역사의 물줄기는 이후 상당한 시간동안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후퇴를 거듭했고, 대한민국의 민초들이 겪어야만 했던 질곡의 현대사는 참담 그 자체였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어김없이 12∙12의 여명이 비친다. 무려 45년만에 맞는 12∙12는 또다른 의문을 던진다. “역사는 더디지만 전진한다는 말이 과연 맞는 것인가” 12∙12로 인해 단번에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면서 전두환 장군은 대통령이 됐고, 그의 부인은 영부인 이순자로 호칭이 바뀌었다. 집권여당인 민정당의 주요 세력이 육사와 서울법대 였기에 흔히 육법당이라고 했던 1980년대 초부터 사람들은 묘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학사위에 석사, 석사위에 박사, 박사위에 육사, 육사 위에 보안사, 보안사 위에 여사(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가 있다"고 했다. 어느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는 몰라도 그 당시 권부의 속성을 꿰뚫어보는 명징한 비유임에 틀림이 없다. 이순자 여사의 비위를 거슬렸을때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게 바로 5공의 설계자였던 허화평 보안사 비서실장의 낙마가 아니던가.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이 터지면서 개혁을 표방했던 허화평, 허삼수 등 권부실세들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전 장군을 구속시키는데 성공했으나 이는 결국 이순자 여사의 격분을 사게됐고, 쓸쓸히 퇴장당하는 운명을 맞게된다. 그로부터 무려 40여 년이 흘렀다. 아무리 역사가 반복된다고는 하지만 이순자 여사를 능가하는 이가 등장했으니 바로 김건희 여사다.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초반부터 김건희 여사는 이런저런 문제로 국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더니, 급기야 남편인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탄핵의 직접적 사유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지만 그 이면에는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똬리를 틀고 있는게 분명하다. 12∙12사태가 발생한지 45년째를 맞은 날 때마침 특이한 다큐멘터리 하나가 개봉돼 눈길을 끈다. ‘퍼스트레이디’라는 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명품백 수수, 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민간인 국정 개입 의혹 등 김 여사와 관련된 각종 논란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인데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와 김 여사에게 디올백을 전달한 최재영 목사, 21년 동안 김 여사 일가와 싸워온 정대택씨, ‘쥴리 의혹 실명 증언’ 안해욱 전 한국초등학교태권도연맹 회장, 최강욱·김종대 전 의원, 무속인 등이 출연한다. 이순자와 김건희, 전∙현직 퍼스트레이디가 만일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또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2024년의 12∙12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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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4.12.11 15:28

정국에 휘말린 지역예산, 추경 확보에 총력을

전북특별자치도는 2025년도 국가예산 확보 목표를 ‘10조원 돌파’로 정했다. 새만금잼버리 파행의 여파로 2024년 사상 첫 국가예산 감소사태를 겪은 터여서 전북특별자치도와 지역 정치권이 2025년 ‘국가예산 10조원 시대’ 진입에 특별히 공을 들였다. 지자체장들이 일찍부터 정부 부처를 찾아다니며 현안사업의 당위성을 피력했고,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간 후에는 지자체 예산 담당자들이 국회에 상주하면서까지 예산확보에 매달렸다. 그야말로 예산전쟁이었다. 그런데 2025년 정부예산안에 반영된 전북 국가예산은 9조663억원에 그쳤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국제태권도사관학교 설립을 비롯해 상당수 현안사업이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거나 요구액에 미치지 못했다. 전북자치도는 국회 단계에서의 증액에 기대를 걸었고, 실제 국회 상임위 단계에서 4600억 원 가량을 증액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계엄·탄핵 정국에 모두 물거품이 됐다. 민주당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감액예산안을 강행 처리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사용처가 불분명한 권력형 예산을 감액했고, 민생예산 등 필요한 부분은 향후 추경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 상임위 단계에서 어렵게 증액해 놓은 전북 현안 예산은 모두 헛일이 됐다. 결국 2025년 전북 국가예산은 정부 예산안 발표 이후 반영된 부처 가내시 금액과 몇몇 공모사업 예산을 합쳐 9조 2244억원 규모로 확정됐다. 전북특별자치도가 당초 요구한 10조1155억원에 1조원 가량 부족한 규모로, 전북 스타트업 파크 조성, 고령 친화 산업 복합도시 조성, 전북권역 재활병원 건립 사업 등 다수의 현안사업이 반영되지 않았다. 전북예산 10조원 시대를 자신했던 전북 국회의원들은 “국가 비상사태에 어쩔 수 없었다. 당의 방침대로 추경에서 증액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그렇다면 향후 추가경정예산 편성 과정에서 전북 현안사업 예산을 반영시킬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쉽지도 않을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은 전북은 국가예산 의존도가 다른 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애써 추진해온 지역 현안사업이 예산문제로 좌초되지 않도록 자치단체와 지역 정치권에서는 당장 ‘추경 확보’전략을 마련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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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4.12.11 14:19

‘공무원은 시의원의 부하’라는 군산시의원

지방의회 의원들의 행태가 가관이다. 1991년 지방의회제도가 실시된지 30년이 넘었지만 지방의원들의 막말과 고성, 갑질, 행패 등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군산시의회 의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심각하다. 일부긴 하지만 마치 불한당들이 모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비리와 도덕적 해이에 지방의원 자질론과 지방의회 무용론이 계속 고개를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닌성 싶다. 공천권을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국회의원의 각성과 함께 지방의회 윤리특위의 외부인 참여 등 지방자치법 개정도 필요해 보인다. 군산시의회 일부 시의원들의 권한 남용과 행패 등은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최근에만 최창호, 한경봉, 이연화, 서동완, 우종삼, 김영일 의원 등이 경쟁하듯 각종 구설수에 올랐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난달 22일 최창호 의원은 행정사무감사 자리에서 “시민이 뽑아준 시의원이 사장이고 공무원들은 부하인데 왜 말을 안 듣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의식을 가진 최 의원이 이달 8일 군산시의회 윤리특위 위원장으로 뽑혔다. 공직사회에 대한 막말·고성으로 뭇매를 맞은 한경봉 의원은 지난 6일 공개사과 후 나흘 만에 또 말실수를 하는 등 의회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서동완 의원도 막말에는 뒤지지 않는다. 또 우종삼 의원은 배우자 차량 파손 사건으로 공개 경고와 출석정지 10일이 결정되었다. 김영일 의원은 상임위 회의에서 자신의 발언시간을 제한한데 불만을 품고 위원장의 뺨을 때렸다. 무슨 봉숭아 학당도 아니고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을 지경이다. 국민권익위가 지난 1월 발표한 ‘2023년 지방의회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군산시의회는 종합청렴도 5등급 가운데 하위권인 4등급, 체감도 5등급과 함께 부패 경험률이 37.2%로 전국 평균 15.51%보다 배 이상 높았다. 지난 5월에는 동료 여성의원과의 불륜으로 제명된 시의원이 또 다른 여성을 폭행하고 스토킹해 두 번째 제명된 일이 김제시의회에서 일어나 도민들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이들의 행태는 그 지역뿐 아니라 전북자치도민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름 없다. 군산시의회는 23명중 22명이 민주당이다. 이들을 공천한 지구당위원장의 책임을 묻는 동시에 제도 개선책도 마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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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4.12.11 13:03

윤석열탄핵이 정답이다

답은 나와 있다. 윤석열대통령이 비상계엄사태를 책임짓고 자진 사퇴하는 길이 있다. 다음으로 국민들이 요구한 윤 대통령을 국회가 탄핵해서 직무를 정지시켜야 한다. 지금 돌아가는 형국으로는 자진사퇴는 물건너 갔고 국회 탄핵 밖에 없다. 지난 8일 한덕수 총리와 한동훈 대표가 질서 있는 퇴진을 말했던 공동담화도 법적으로 근거가 없어 결국 시간 끌기용 미봉책에 불과하다. 심지어 미국은 한- 한체제가 법적으로 맞느냐면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민들의 민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엄중한 시기에 국민의힘이 바른 길을 걷지 않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탄핵을 회피하려고 한다면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지난 7일 밤 윤 대통령 탄핵에 불참함으로써 국힘 국회의원들은 공범자가 되었기 때문에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날 밤 탄핵가결을 외쳤던 여의도 백만애국 시민들의 함성을 탄핵불성립으로 외면한 국힘은 노골적으로 대의정치를 포기했던 것이다. 지금 국힘도 좌고우면 하지말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탄핵을 가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탄핵에 불참한 국힘이 위헌적인 비상계엄과 내란혐의를 받는 윤석열 피의자를 살려 주려고 시간을 지연하면 할수록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국민들은 검찰 경찰 공수처가 각기 수사본부를 만들어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과 관련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펼치지만 별로 신뢰를 안하고 있다. 그 이유는 법무부장관 경찰청장이 수사선상에 올라 특검을 통한 수사를 해야만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내란혐의로 인한 현행범인 만큼 즉각 체포해서 수사하는 게 최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탄핵과 특검을 외면한채 한대표와 한 총리가 공동담화를 통해 질서있는 퇴진을 운운한 것은 국민법감정과 너무 동떨어져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그 이유는 법적근거 없이 너무 한 대표가 자의적으로 판단,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즉각적으로 헌정파괴 2차내란이다고 반대했고 우원식 국회의장도 헌법상 궐위 없이 권한 위임이 어렵기 때문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간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김용현 전경호실장이 국방부장관 취임 당시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충암고 출신이 중심이 되서 계엄령을 선포할 것이란 말이 시중에 널리 퍼져 있다고 제기한 것이 결국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지난달 계엄을 준비했다는 문건을 입수해 폭로, 계엄을 사전 준비했다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 심지어 계엄선포 닷새전인 지난달 28일 오후 북에서 32번째 오물풍선 남하소식을 들은 김 전장관이 합참 전투통제실로 내려와 경고 사격후 원점을 타격하라고 지시했고 김명수 합참의장이 이를 거부하자 김 전장관의 폭언이 이어졌다는 것. 만약 김 의장이 남북국지전유도를 거절하지 않았더라면 더 큰 위험한 사태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 만큼 친위쿠데타로 불리는 이번 계엄령을 윤 대통령이 발령하면서 국정원 홍장원 1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여야정치인들을 싹 다 쓸어버리라고 지시했다는 것. 그의 독단적인 성정 때문에 안하무인격으로 도량발호(跳梁跋扈) 한 게 탄핵을 자초했다. 또 검찰이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사건을 무혐의로 발표하자 국민들은 반기를 들었다. 지금 윤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성난 외침이 들불처럼 번져 탄핵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즉각적인 자진사퇴가 있긴 하지만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아 국민들은 탄핵만이 국민과 나라를 살릴 길이라고 믿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염려하듯 국정혼란이 장기화되면 국가신인도 저하로 경제상황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제발 한강 노벨상 수상자 말처럼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거꾸로 되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어떻게 만든 나라인데 범법자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 특검을 통해 불법계엄과 내란혐의에 가담한 자들을 지위고하를 막론, 신속하게 의법조치해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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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4.12.10 19:04

마을기업을 지켜야 하는 이유

흥부전의 배경지인 남원 인월면에는 농촌체험휴양마을이자 마을기업인 ‘달오름마을’이 있다. 사계절 농사와 먹거리 체험으로 학생들과 외국인 방문이 끊이지 않는 마을인데, 흥부 잔치밥이 인기 아이템이다. 천연 박 바가지에 갖은 나물과 밥을 넣어 쓱쓱 비벼 먹으면, 흥부전 속으로 시간여행을 한 듯 분위기가 절로 무르익는다. 마을기업은 지역과 관련된 스토리, 농산물, 자연경관 등 유무형 자원을 상품화하여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공동체 기업이다. 2010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이래 15년 동안,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주민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는 사회적경제 대표 모델로 성장해왔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농가공 및 체험으로 다양한 6차 산업 모델을 제시해왔다. 남원 주천면에 위치한 웅치마을영농회는 주민들이 농사지은 잡곡으로 전통 강정을 생산하고, 체험객이 연 2천명 방문하는 5년차 마을기업이다. 마을 어르신들과 강정 사업 준비를 하며, 물도 나오지 않는 회관 옥상에서 시제품을 만들던 시절을 지나 올해는 네덜란드와 독일, 미국에 곰재강정을 수출하는 데까지 성장했다. 최근에는 농촌 유휴시설을 활용한 마을기업 사례도 주목을 받고 있는데, 오는 13일에 오픈하는 하주발효마을카페는 폐농협창고를 리모델링하여 추진되었다. 2021년 예비단계를 거쳐 2022년 행안부 신규마을기업으로 발효를 테마로 한 베이커리와 장류 체험 사업을 해온 성과가 바탕이 되었다. 백세 건강마을이라는 비전을 세운 하주발효마을은 주민 카페를 기반으로 ‘설탕 없는 마을’을 선언하고, 마을에서 농사지은 현미로 구수한 무설탕 식빵을 만든다. 남원 서부권의 너른 들녘을 품고 있는 금지면 마을기업 ㈜비즌양조는 매일 아침, 마을에서 수매한 콩을 갈아 따끈한 순두부를 만든다. 방치되어 낡아가던 구판장을 개조한 마을식당의 주메뉴는 순두부와 청국장 정식이다. 점빵도 식당도 모두 사라졌던 마을 중심지에 되살린 밥집의 이름은 ‘화동(和同)식당’이다. 조화롭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미덕, 낡고 버려진 시설을 식당과 양조장으로 바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마을기업 비즌이 나아갈 길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처럼 지역의 활력이 되는 마을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관심있는 시민들을 모집하여 마을기업 투어를 다닌지 2년이 지났다. 남원뿐만 아니라 완주, 고창, 정읍, 순창, 익산, 군산, 순천까지 다양하게 참여 누적 인원만 200여명 가까이 된다. 마을기업을 실제로 준비하고 있는 이장단, 주민 활동가들도 있었고, 지역 투어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참여한 시민들도 있었다. 강의와 현장 견학으로 빈틈없는 하루 일정을 함께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참여자들과 으레 소감을 나눈다. 주를 이루는 이야기는 사람과 희망이다. 마을기업을 만들고 함께 성장해온 주민 대표들이 전해준 여운이 남고, 이게 바로 지역이 소멸되지 않고 살아날 희망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 행정안전부에서도 마을기업이 소규모 농가공와 6차 산업을 넘어 청년과 일자리, 지역사회 문화와 서비스 영역까지 확산되어야 한다는 비전을 세운 바 있다. 2025년 마을기업 공모가 진행중이다. 2024년에 예비와 신규 단계 지정을 하지 않았던 파행에 비하면 다행이지만, 공모는 하되 사업비가 확보되지 않아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마을기업은 농촌 공동체에 지속성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검증된 해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최규혜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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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0 18:32

변화는 관심과 바꾸려는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

요즈음 깔끔하게 정비된 청사 외부와 청사 안 휴게공간에서 차를 마시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는 방문객과 청원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필자가 올 1월에 완산구청장으로 부임해서 직원들에게 애로사항을 듣고 청사를 둘러보니 신축한 지 30여 년이 지나,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관련 업무 담당 직원들과 함께 우선 시급한 사항부터 개선해 나가기로 하였다. 먼저 청사 전면에 화단형 울타리를 철거하고 공용 게시판을 이전하여 밖에서 청사가 잘 보이도록 개방감을 확보하고 청사 앞 건널목에서 청사를 바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으며 방문객이 잠시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열린 청사로 바꾸었다. 두 번째로 본관 지하 주차장 출입구와 청사 앞 큰 도로 그리고 청사 후면 도로가 만나는 곳이 좁고 곡선으로 되어 있어 상시 사고위험을 안고 있고 퇴근 시간대에는 차량이 뒤엉키거나 심한 정체를 빚어 일부 직원들은 퇴근 시간이 지나도 사무실에서 기다리다 정체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 퇴근하는 경우도 있어서 해당 지점의 도로 폭을 넓히고 선형을 개량하여 차량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사고위험을 낮추었다. 세 번째로 본관 지하 주차장 입구에 있는 과속방지턱과 배수시설의 높이가 높아 승용차 바닥이 닿거나 긁히는 사고가 잦아서 과속방지턱을 걷어내고 배수시설 주변 도로의 포장 구배를 조정하여 더 이상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였다. 네 번째로 별관 주차장 입구 측면에 있는 관리실이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서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량과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량의 접촉 사고와 보행자 안전사고 위험이 있어 관리실 일부를 잘라내어 시야를 확보하고 주변에 인도를 설치하여 보행자 안전을 확보하였다. 다섯 번째로 본관 지하 주차장 바닥 일부가 경사져 있어 평행 주차된 차량을 밀어서 이동시킬 때 다른 차량과 부딪혀 파손되는 사고가 종종 있어서 차량 밀림 방지턱을 설치하여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였다. 여섯 번째로 방문객들과 직원들이 1층 로비에 있는 카페 앞 좁은 공간에 낡고 허름한 탁자와 의자에서 차를 마시거나 방문객을 응대하고, 외부에는 휴게공간은 고사하고 잠시 앉아 있을 공간조차 없었다. 먼저 로비 후문 입구에 있던 진열장과 승강기 앞 그림 액자의 위치를 서로 바꿔 휴게공간을 넓히고 탁자와 의자를 새것으로 교체하여 좀 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1층 민원실 대기 공간에 있던 집기와 화분을 재배치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서 별도의 휴게공간을 설치하였으며, 청사 후면에 있던 울타리형 화단을 철거하고 시설물을 정비하여 야외쉼터를 조성하여 방문객과 직원들의 휴식과 소통의 장소로 만들었다. 주변 주민들이나 직원들은 사업 결과에 대해서는 아주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도 조금 더 일찍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사를 신축한 지가 워낙 오래되었고 청사 내외부가 좁다 보니 아직도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점들이 많다. 그러나 변화는 관심과 바꾸려는 의지와 실천이 있어야 이룰 수 있으며,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처럼 누군가 조금씩 바꾸어 나가다 보면 더 큰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음을 알기에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보완해 나가리라 믿는다. 끝으로 공휴일에도 출근하여 현장을 체크하는 열정을 보이며 사업을 잘 마무리 해주신 담당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배희곤 전주시 완산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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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2.10 18:31

우리에겐 ‘금실’의 힘이 있지

소설가 한강이 지난 7일 스웨덴 한림원의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 섰다. <빛과 실>이란 제목의 강연은 창고를 정리하다가 발견했다는 유년 시절의 일기장 사이에 섞여 있던 중철 제본 작은 시집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집의 시는 모두 여덟 편. 한강이 여덟 살 때 썼다는 시들이다. 그중 한강의 눈에 들어온 시가 있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시를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구두 상자 안에 넣어두었었다는 그는 이 시를 휴대폰에 담았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는 그는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소설가로 살아오면서 담금질 해온 질문과 고뇌를 소개한 그는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자문한다. 그가 찾은 사랑의 정체는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었다. 12월 3일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대한민국은 미궁의 늪에 빠졌다. 더 참담한 것은 이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놓여 있지만, 그 길이 쉬이(?) 열리지 않는 현실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돌아보면 우리의 현실이 그랬다. 뭔가 터질 것 같은 불안함의 예후. 더러는 분노하고 더러는 포기하며 직면해야 했던 암담한 현실은 이제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되었다.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했던 그 날의 상황을 마주하며 떠오른 소설 속 문장이 있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대원이 있었다. (중략)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계엄령 포고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진실의 실체를 묻으려는 간교한 획책이 나부댄다. 한강의 강연 문장을 다시 빌린다.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金)실을 타고.” 시민들이 다시 선 거리.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그 힘이 지금 ‘금실을 타고’ 온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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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4.12.10 15:57

탄핵 여파속 전북 현안 묻혀선 안된다

요즘 전북의 처지를 보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국운을 가르게 될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사태와 탄핵 여파가 메가톤급 위력으로 휘몰아치는 가운데 자칫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전북은 더욱 낭떠러지로 추락할 위기에 직면한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은 비단 전북에 국한한 것은 아니지만 그 파급효과는 너무나도 크다. 지난해 새만금잼버리대회의 후폭풍으로 인해 타 시도와 달리 예산이 급감했던 전북으로서는 어떻게든 내년 예산 확보 과정에서 상당 부분을 보충해야 할 입장이었으나 대형사업 추진 일정이 일단 멈춤 모드로 들어갔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대략 10조원 이상의 내년 예산을 목표로 했던 전북은 각 부처 심의단계에서 약 1조원이 삭감됐다가 이후 국회 상임위 심사과정에서 절반 정도가 부활했으나 감액 예산 통과 방침으로 인해 9조원 수준에 머물게 됐다. 민주당은 향후 필요한 예산은 추경 등을 통해 확보한다는 방침이나 정치력이 취약한 전북으로선 얼마나 살려낼지 그 결과는 극히 미지수다. 더욱이 전북관련 대형 프로젝트로 기획재정부의 예타 대상이 문제다. 전주-김천 영호남내륙선 철도(2조 5868억원), 국립 수중고고학센터 건립(1111억원), 새만금 남북 3축 도로 건설(1조 3942억원), 국립해양생명과학관 건립(1133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새만금 밑그림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으로 기대됐던 새만금 MP 또한 연말 또는 연초에 결과가 나올 예정이었으나 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자칫하면 계엄및 탄핵 사태의 와중에 지역간 ‘빈인빈 부익부’ 가 심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도민들 사이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주-김천 간 영호남내륙선을 예로들면 국가철도망 제4차 계획(2021~2030)까지 추가 검토사업으로 분류되는 등 흐지부지되는 양상이었다. 그러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전북자치도와 경북도의 건의를 수용해 올해 6월 사전 타당성 조사를 착수하는 등 사업 추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으나 이또한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여야간 극한 대치로 탄핵 정국이 장기화 할 경우 전북 주요 사업이나 예산증액은 물론, 입법 현안 또한 불투명해질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는 점에서 지역 정치권은 확실한 의지와 보다 큰 관심을 갖고 적극 챙길 것을 거듭 강력히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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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4.12.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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