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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친구, 문화 ODA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지난 2013년부터 베트남 라오까이 지역에 예술강사를 파견하여 문화 ODA(Offcial Di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인 문화예술교육사업을 진행해왔다. 초·중학생들이 자기 마을 여기저기와 주민들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만나고, 생각하고, 인터뷰 하면서 사진을 촬영한다. 마을의 미래도 꿈꾸고, 그 꿈을 미술작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교육 말미에는 공원의 작품전시회를 통해 가족과 주민, 관광객들과 작품을 공유하며, 표현의 기쁨을 체험한다. 우리나라의 문화 공적개발원조 사업또한 한국의 예술강사들이 귀국해도 예술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현지 교사들과 사범대학생들을 예술교육 강사로 교육하는 보조프로그램도 같이 운영한다. 그리고 사진예술이라는 한 장르의 교육에 그치지 않고, 미술공예나 무용과 연관시켜 예술의 체험과 지속, 장르의 확장과 협업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 라오까이 지역 아동들은 감성을 표현하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가치와 함께 마을에 대한 관심도 키워가고 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 혼자 설 수 없고, 약 1년 이전에는 걷지 못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마치 스스로 걷게 된 것처럼 착각한다. 비윤리적인 존재라서가 아니다. 그만큼 현재가 중요하고 현재를 사는 존재이며, 양육의 손길과 눈길은 당연한 디폴트값으로 인식되어 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가피한 착각과 망각을 부채질하는 교만의 유혹으로 우리들은 스스럼없이 시시각각 지원받았던 다양한 은혜들을 물에 흘려보낸다. 사실 생후 1년이 지나 걷게 되어도, 누군가의 지원은 계속되어야 하고,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가족과 사회와 동료들에게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성인들은 자신이 받았던 양육의 은혜는 잊었다하더라도 아이를 양육한다. 양육 초보자인 성인 여성과 남성이 아이 앞에서 쩔쩔 맨다. EBS의 ‘생방송 60분 부모’의 제작팀은 ‘아이 키우기’는 ‘자신의 미숙한 부분을 찾아내 치유하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울까를 고민하기에 앞서 부부가 어떻게 행복해질까를 고민해야한다는 것’이며, ‘부부가 평화롭게 의견을 말하고 자기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만큼 아이에게 좋은 것은 없다’고 했다. ‘평화롭게’와 ‘표현’이 핵심이겠다. 그리고 아빠가 아이와 놀아주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고 했다. 아이를 이제 만나기 시작한 애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듣고 싶어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사랑스러운 눈길로 관찰하고 아이 행동에 반응하면 된다는 것이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감성 표현하도록문화 ODA는 물리적인 양육을 직접 담당하지는 않는다. 보건복지부와 여성부와 농축산식품부 등이 출산, 양육, 식품 등을 지원한다. 문화 ODA는 양육자인 성인과 양육 대상인 아동들의 감성이 억압되지 않고 잘 표현되도록 정서적인 양육과 성숙을 지원한다. 또한 마을 주민에 대한 관심, 좀 더 나아가 지구촌 아니 지구집과의 관계를 느끼게 격려한다. 국내외에서 아동·성인과 어르신의 삶에 작은 열정과 기쁨과 이해와 성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문화예술 활동이다. 상업적 제품들마저도 예술을 표방한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감성을 평화롭고 솔직하게 표현할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 한 걸음 한 걸음 마라톤 인생을 견디며 걷거나 뛰도록 돕는 ‘정서적 친구’가 문화 ODA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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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27 23:02

고전과 전통의 가치

며칠 전 장시간의 기차 여정을 앞두고 가을의 호사를 누려 볼 심산으로 책을 한 권 샀다. 무슨 책을 살까 고민하며 책들을 뒤적거리다 문득 고전 소설에 도전해볼 마음으로 〈오만과 편견〉을 집어 들었다. 워낙 소설책을 즐겨 읽지 않는 개인적 취향과 정말 오랜만에 읽는 고전이라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익숙해진 대상을 선택했다. 그런데 역시 만만치 않았다. 도무지 끝까지 책장을 넘기기 힘들어 포기하고 기차 밖으로 펼쳐지는 이른 가을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그러던 중 문득 이어폰에서 들리는 판소리 한 자락이 고전의 가치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끄집어내더니 평생의 숙제처럼 따라다니던 명제들이 줄줄이 뿌려졌다. 대중성과 예술성, 대중성과 상업성, 국악과 양악 또는 국악과 한국음악, 보존전승과 변화창작, 전통과 현대 등 국악을 전공하고 이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상충과 상생의 관계인 이것들이 늘 어려운 숙제이다.상상력 창의력 통찰력 키우려면고전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미국 문학의 전통을 창조한 작가라 칭송받는 마크 트웨인은 고전이란 모든 사람들이 찬양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 라고 말했다.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방식과 자극적인 소재로 무장한 콘텐츠에 적응된 현대인들이 고전 작품 속에 축적된 가치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고전을 살피고 이해해야만 하는가? 미국의 시카고대학이 이러한 물음에 답을 한다. 1929년 시카고대학의 한 총장이 고전 100권을 외울 정도로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시키지 않는다는 시카고 플랜을 도입했다고 한다. 그 결과 시카고대학은 약 8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명문대학으로 성장했다. 고전은 오랜 시간을 견디어낸 작품이다. 이러한 이유로 고전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위대하다. 그러나 고전의 진짜 가치는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고전의 진짜 가치는 그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의식 확장에 있다. 고전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고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길러낼 수 있는 것이다.판소리 또한 이백여 년이 넘게 이어져 온 고전(음악)이다. 판소리가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것은 예술성과 대중성 등을 포함한 보편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우리가 그 보편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재된 가치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서라 생각된다. 판소리를 낯설어 하는 일반인의 모습과 〈오만과 편견〉을 어려워하며 문장과 문구를 자꾸 반복해서 읽던 내 모습이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판소리를 낯설어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우선 자주 들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익숙해지면 귀가 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판소리는 우리의 선조들의 것이고 그들과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지금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전통공연예술이 강요되거나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전통공연예술에 내재되어있는 가치를 찾고자 노력하고 이를 통해 그 가치를 확장해야 함이 옳다.고전소설 읽고 판소리 듣기를몇 해 전에 관람했던 공연이 생각난다. 명인에게 길을 묻다라는 공연 제목이었는데,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성을 얻은 고전 작품으로부터 새로운 작품을 모색하듯이 명인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통해 전통공연예술의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모색하고자 붙인 공연명이 아니었나 싶다. 올 가을 고전과 전통의 가치를 통해 지금의 우리를 바라보고 미래를 모색해보면 어떨까하는 마음으로 고전소설과 판소리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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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20 23:02

사전이 운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 물가지수 개편안에서 종이사전이 제외되었다는 기사는 하루 종일 나를 헛헛하게 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에게 종이사전이 거의 필요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고등학교 때, 친구들 몇몇이 친구의 친척집을 구경 간 적이 있다. 거대한 기와집의 위용에 주눅이 든 우리들은 문 앞에서 초인종 누르는 걸 서로 미루다가 솟을대문만 올려다보고는 돌아왔다. 검은 바탕에 하얀 자개로 집주인의 이름을 새겨 넣은 문패는 강물이 휘돌아나가는 듯 유려한 한문이었다. 나는 기와집의 위용보다 읽을 수 없는 한자 문패에 더 기가 죽었다.기술 발달로 종이 사전 사용 않지만집에 돌아와 온 집안을 다 뒤져서 손바닥만 한 옥편을 찾아냈다. 중학교 때 잠깐 한문을 배웠을 법도 한데 옥편 사용 방법을 모르니 첫 자부터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비닐 표지가 다 닳아 떨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나의 사전 읽기는 시작되었다. 그 후로 대학에 들어가서는 신기철, 신용철 편저의 『새 우리말 큰사전』을 할부로 샀다. 두 권으로 된 사전이었는데,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까만 천으로 된 표지가 너덜거릴 때까지 국어사전을 읽은 기억이 있다. 사전 읽기에 대한 개인적인 취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휘의 수준이 개인의 격과 가치관을 결정한다는 신념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에게도 사전 찾는 법을 가르치고, 모르는 단어는 반드시 사전을 찾는 습관을 들이도록 했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변하게 했다. 한동안 사오정시리즈가 유행할 때였다. 늦게 대학에 간 내 친구는 사전을 가져오라는 말에 두툼한 종이사전을 들고 학교에 갔다가 전자사전을 들고 온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사오정이 되어 버렸다고 토로하며 반 웃고 반 울던 기억이 있다.나의 작은 서가에는 외국어 사전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우리 말 사전이 있다.『우리말 풀이 사전』, 『우리말 활용사전』, 『우리말 뉘앙스 사전』, 『주제별로 엮은 좋은 말 사전』, 『우리말 갈래사전』, 『아름다운 우리말 찾아 쓰기 사전』, 『보리 국어사전』, 『우리말 부사사전』, 『비슷한 말 반대 말 사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틀리는 한국어』, 『우리말 깨달음 사전』, 『전라도 방언사전』 이런 사전들로 빼곡하다. 다양한 종류의 사전을 갖고 있고, 사전 읽는 것을 좋아하던 나도 지금은 종이 사전을 거의 뒤적거리지 않는다. 컴퓨터로 작업하면서 컴퓨터에게 물어보면 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방식의 사전 찾는 법은 디지털에 밀려 이젠 죽은 지식이 되었다. 종이사전이 활용도가 거의 없어졌다고 해서, 사전 찾는 법이 죽은 지식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말이 사라지진 않는다. 1949년 3월 국민당을 내쫓고 베이징으로 입성하는 마오저뚱의 짐 보따리엔 책 네 권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 중 두 권이 어휘사전인 사해(辭海)와 어원사전인 사원(辭源) 이었다고 한다.(나머지 두 권은 사기와 자치통감이었다고 한다.)우리말 지키려면 좋은 사전 만들어야한글의 역사가 600년이 되어가고 있다. 한글을 국보 1호로 지정하자는 서명도 진행되고 있다. 과학적인 창제과정이 있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우리말을 지키고 키우려면 좋은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언어가 국가의 근간이고 문화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전, 그리고 다양한 사전을 만드는 일은 이젠 국책사업 1순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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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13 23:02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알파고의 충격이 있기 얼마 전인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는 2020년까지 향후 5년 동안 4차 산업혁명으로 전 세계에서 총 710 만개 일자리가 사라지게 될 것이며, 사라지는 일자리는 사무직 및 관리 직종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4차 산업혁명이란 사물인터넷(IoT), 로봇,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최첨단 기술이 나노기술(NT), 바이오기술(BT), 정보기술(IT), 인지과학(CS)의 융합 기술로 발전하여, 이러한 사이버 물리적 시스템이 생산을 주도하는 사회구조적 혁명이다.사이버 물리적 시스템이 생산 주도다소 복잡하지만, 1차 산업혁명은 잘 알다시피 방적기로 대표되는 수력 증기기관을 이용하는 기계적 생산의 도입, 2차 산업혁명은 포디즘으로 대표되는 전기 동력에 의한 대량생산체계 구축,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 제어에 의한 생산자동화였다. 그리고 현재의 단계는 발달된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초연결성, 이 네트워크로 전송된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일정한 패턴을 파악하는 초지능성 그리고 이런 분석으로 미래를 판단하는 예측가능성을 특징으로 한다.이런 사회는 어떤 인재를 필요로 할까?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이는 우리 모두의 관심사일 것이다. 생산기반 변화에 따라 사회적 요구에 적합한 인력을 양성해야 하므로, 1차 산업혁명시대에 집단적 통제와 소통이 가능한 노동자를 공급하려고 전 국민에게 보편적 교육 기회를 제공한 것처럼, 이 사회에서는 복합적 문제 해결력과 융합적 사고 그리고 로봇으로 대체 불가능한 감성적 지능을 가진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이러한 변화로 2014년에 칸 아카데미의 설립자가 세운 칸 랩 스쿨이란 오프라인 학교는 초등과 중등 정도의 구분만 있는 무학년제로, 학생들의 흥미와 수준에 맞춘 프로젝트 학습과 시험 평가가 없는 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2013년에 설립한 알트 스쿨도 1500억 원에 달하는 민간 투자를 얻어내어, 학생들의 흥미와 특성에 따라 반을 편성하고, 학생들의 활동을 철저히 기록, 관리하여 학생들 개개인에게 맞춤화된 수업이 제공한다.고등교육으로는 2011년에 설립한 미네르바 스쿨이 하버드대학의 입학 경쟁률보다 높은 경쟁률로 관심을 받았으며, 교수와 20명 이내의 학생이 100% 온라인 수업으로 지식을 쌓고, 학생들은 6개국에 위치한 기숙사에서 100% 공동체 경험을 하는 체제로 운영한다.개인 특성적성 중시하는 교육 필요이런 학교들은 공통적으로 전통적으로 외워야 했던 개념과 원리를 온라인에서 학생들이 직접 찾아내고, 이 정보를 실생활에 적용한 사례를 스스로 찾아보고, 동료와의 토론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고, 이를 서로 공유하면서 학습 경험을 쌓아가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STEAM 등의 융합 교육과정, 시공간을 넘나드는 협력 학습 활동, 학습자를 소비자가 아니라 메이커 또는 크리에이터로 전환시키는 학습 활동, 그리고 실생활에서의 적용을 염두에 둔 프로젝트 학습 및 문제 기반 학습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국가적인 교육 시스템의 대대적인 변혁과 교육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이 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이다. 교육의 성과보다는 과정, 학생들간의 경쟁보다는 협력, 시험과 같은 객관적인 평가보다는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적성을 중시하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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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06 23:02

우리의 정신적 함정, 문화제국주의와 탐욕

문화영역도 공적개발원조(ODA)사업에서 비록 적은 건수와 적은 예산이긴 하지만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2017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담당할 ODA 사업 건수는 우리나라 전체 무상원조 사업 건수인 1166건 중 23건으로 1.97%를 차지한다. 아쉽게도 2%가 채 안 된다. 사업예산은 무상원조 총액 1조 6005억 중 212억으로 1.3%에 해당한다. 눈치채셨겠지만 사업 건수보다 예산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소액 다건 방식으로 사업이 수행될 예정이다.공적개발원조 중 문화사업도 한몫문화영역의 ODA는 개도국 주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농업용 기계를 보급하듯이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민속공예품을 생산하여 유통할 수 있게 지원한다. 또한 우물을 파서 식수를 공급하고, 도로를 건설해주고, 보건소를 지어 위생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 것처럼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관심을 끌게 해주며, 책을 읽을 작은 도서관도 건립해준다.이러한 사업들에 대해 문화계 내외부 인사들은 머뭇거림 없이 으레 두 가지 질문한다.첫째,개도국 주민들도 그들 고유의 생활양식과 문화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를 보급하는 것은 문화제국주의적 침투가 아닐까? 라는 염려이다. 둘째,우리의 문화 수준이 아직 높지 않고, 우리 국민도 문화 향유를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형편에 개도국에 제공할 문화가 과연 있는가? 우리 내부의 문화권 향유 격차를 줄이는데 오히려 공공예산을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개도국 주민들의 문화권 향유를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격에 안 맞는 위선적 활동이 아닐까?라는 비판적 문제 제기다.문화제국주의적 침투는 19세기부터 식민지 지배를 해 온 공여국들이 문화진화론을 앞세워 문화 지배적 식민동화정책으로 식민지국 주민들을 억압하던 시대에 본격화되었다. 문화제국주의라는 쓰나미가 지구 곳곳을 강타했다. 우리도 우리 언어와 문화를 강제로 잃었다. 우리 조상들은 그 언어와 문화를 되찾기 위하여 죽음도 불사했었다. 타 국가의 문화를 찬탈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역사적 행태들은 오늘날 새로운 형태로 스멀스멀 우리 주변을 맴돈다. 우리가 이런 문화제국주의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을까? 문화찬탈을 당할 때의 고통을 아는 우리는 문화찬탈을 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문화 ODA는 그들의 문화 고유성을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방법론을 제공하는 것에 초점이 있다.상대 문화고유성 보존 활용할 수 있게한편 우리 문화 수준이 절대적 수준의 최고조에 달할 때까지 개도국을 돕는 일을 미루는 것이 합리적인가? 문화적으로 최고 수준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문화권을 누리고 있다면, 또한 공여국의 지원으로 최빈국을 탈피하고 신생 공여국이 된 우리라면, 현재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문화적, 물질적으로 최고 수준을 누릴 때까지 지구촌 형제자매들의 문화권 지원에 손을 놓고 있어야 할까?현재의 삶에 감사하며 주변의 약자들과 정신물질적으로 나누기보다 자신만의 더 큰 만족을 위해 주변에 무관심한 탐욕의 함정은 문화제국주의만큼 위험하다. 적어도 위선은 아니지만 인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개도국 주민들이 고유한 문화를 보존하고 활용하여 정신경제적 풍요를 맛보도록 우리의 문화영역 ODA 사업을 지지하면서, 일상적으로 감사와 나눔의 우물을 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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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30 23:02

우리 악기 이야기

근래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송 프로그램 중 하나가 먹방이다. 먹는 방송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단연코 미각은 오감 중 가장 원초적 감각이지 싶다. 달고 짜고 시고 쓴 맛을 구분하는 미각과 식재료로부터 느껴지는 식감의 조화는 생존을 위한 음식물 섭취를 음식문화로 발전시켰다. 미각을 통해 단맛, 짠맛 등을 구분하여 인지하는 것처럼 청각은 소리의 성격을 구분하여 사물을 인지한다. 소리의 성격은 세기(강약), 높이, 음색의 세 가지 요소로 구분된다. 그림에 있어 구도나 형태를 소리의 세기와 높이에 비교한다면 빛의 다양성을 표현하는 색채는 음색이라 할 수 있으니 음악에서 음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지역과 민족 또는 국가마다 독특한 색채의 악기와 목소리를 선호하고 이를 통해 그들만의 음악문화를 만들어왔다.서양 악기는 주로 금속 재료 많이 사용악기의 음색은 악기를 만드는 주요 재료에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악기의 재료는 나무와 금속이다. 서양의 악기는 주로 금속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데 관악기를 목관악기와 금관악기로 구분하는 것, 현악기를 몸통은 나무, 줄은 금속으로 만드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서양음악은 금속성 음색이 주를 이룬다.이에 비해 우리의 악기는 대부분이 식물성 재료이다. 대금피리단소 등의 관악기는 대나무를 재료로 만들고 가야금거문고해금아쟁 등의 현악기는 몸통은 나무, 줄은 명주실을 재료로 만든다. 물론 징과 꽹과리 같은 타악기들이 금속으로 만들어지지만 대부분의 관악기와 현악기는 자연으로부터 얻는 식물성 재료를 그대로 악기에 사용한다.오랜 과거에 팔음(八音)이라 하여 악기를 만드는 여덟 가지의 재료에 따라 금(쇠)석(돌)사(실)죽(대나무)포(바가지)토(흙)혁(가죽)목(나무)부로 구분하였다.그런가 하면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악기 삼현삼죽(三絃三竹, 세 현악기와 세 관악기)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 악기들은 모두 식물성 재료를 그대로 사용한 악기들이다. 삼현은 가야금, 거문고, 향비파를 삼죽은 대금, 중금, 소금을 말하며 가야금, 거문고, 대금은 천년을 훨씬 넘어 지금도 연주되고 있다. 다시 말해 다양한 재료로 악기를 만들었지만 우리 민족이 주로 즐겼던 악기는 식물성 재료를 그대로 사용한 악기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어떤 학자는 식물성 재질로 만든 악기의 성정은 유순하고 부드러우며, 따듯해서 사람의 감성에 호소하는 감성적 예술을 잉태시켰다고 했는데 이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민족의 삶과 관련 있다고 말했다. 자연으로부터 얻는 재료의 속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우리의 음악문화와 음식문화는 유사한 점이 많다. 우리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발효음식은 자연 속에서 오랜 시간 정성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얻어 왔다.우리 민족, 식물성 재료로 악기 만들어대금에는 청공이라고 하는 구멍이 있는데 여기에 단오를 전후로 채취한 갈대의 속청을 말려 붙인다. 갈대의 속청은 연주 방법에 따라 대금의 음색을 다양하게 하는데 이 울림은 우리나라의 발효음식과 같은 느낌을 준다. 아삭한 식감의 채소를 곰삭은 김치로 만들어 깊은 풍미를 즐기는 음식문화와 음악문화는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청의 울림은 맑고 고운 대금 소리를 발효시켜 맛있게 묵힌 소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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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23 23:02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갑자기 강가를 찾아 가더군. 강물은 깊고 부드러웠다네. 자네의 굽은 등이 조용히 출렁이는 걸 지켜보았지. 자네가 염려스러웠다네. 내가 하나님께 가리라고 예감은 했겠지만, 예감한 이별도 막상 닥치면 슬프다네. 자네는 우두망찰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지. 연민은 넘치고, 나는 이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난 사람이어서 자네의 이모티콘이라도 되어 위로해 주고 싶었다네. 이젠 목 놓아 우는 일도 쉽지 않아서 이모티콘, 바람, 비를 빌려 운다던 자네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지.예감한 이별도 막상 닥치면 슬프다네강가에 앉은 자네는 내 사진을 자꾸 만지작거리데. 추억의 주머니를 열데. 자네가 흘린 눈물로 강이 한 뼘은 더 넓어지는 것 같더라고. 노을은 아직 익지 않은 채 자네를 물끄러미 건너다보고 있더군. 묵묵히 앉아있는 자네 등을 나비 한 마리가 몇 번이나 쓰다듬더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자네는 시고 떫은 순간들까지 천천히 뒤적거리더군. 그만하시게. 잘 익었네.조금씩 몸을 뒤채며 강물이 속살거리자 자네도 뒤척뒤척 강을 떠나데. 천천히 걸어서 노을 카페에 들어가 차를 주문하데. 그리고는 이제는 만져지지 않는 웃음을 불러 차를 따르데. 잘 마셨네. 충분히 따뜻했고 향기로웠다네. 그래도 자네와 나 사이의 시간이 식는 것은 아쉬웠다네.내가 자네 곁을 떠나던 날, 찔레꽃이 뽕나무 밭두렁을 더듬어 피고 있데. 자네도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데. 가난한 살림에 대학은 엄두도 못 냈지만, 자네는 뽕나무 덕분에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지. 뽕잎을 따다 같이 찔레꽃을 바라보곤 했지. 걸핏하면 입술이 부르트고 근육이 욱신거렸지만 재미졌지. 떠나는 내 등 뒤에 대고 자네는 말했네.내가 꼭 물렁게 같어, 등딱지를 잃어버렸어, 슬픔이 뼈 속까지 함부로 들어와 휘젓고 댕겨, 설움으로 발끝까지 저릿저릿혀. 걸핏허먼 가스 불 잊어먹고, 국물은 튀어 넘치고, 생선은 팟싹 태워버려, 어느 누구도 염두에 두지 않고, 어떤 순간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결정을 내려주던 사람을 잃어버렸어, 내 뜻과 달라도 아무 걱정 없이 선뜻 따라갈 믿음을, 생의 절대적인 지표를 잃어버렸다고그만 우시게. 내 새끼, 엇나가던 눈길, 서로의 중심에서 비켜서던 순간까지도 나는 자네를 깊이 사랑했네. 세상에 이렇게나 폭삭 늙은 어미가 자네 등딱지가 되었던가? 고맙네.이젠 그만 일어나서 주변을 돌아보시게. 지금 자네 주위에는 춥고 배고픈 시간을 견디는 어린 물렁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아무도 바다로 이끌어주지 않아서 그들은 날마다 방황하고 있네.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게. 그들과 눈을 맞추시게. 손을 잡아 주시게. 자네가 어미를 놓치고 보니 어머니 없는 아이들의 하루가 얼마나 겁나고 슬플 지 짐작이 좀 가는가? 저녁나절 이웃집 문 밖으로 새어나오는 웃음소리에 그들의 뼈가 얼마나 삭아 내리는지 가늠해 보았는가? 예약하지 않고도 늘 발부리에 몰려와 있는 어둠과 밥 냄새는 얼마나 끈질긴가? 벌겋게 부어오른 목울대에 우겨 넣는 마른 밥 한 술은 또 얼마나 아플 것인가? 그들에게 물 한 모금 따라 주시게.이제 그만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시게끝내 파쇄하지 못한 울음과 눅눅함을 데리고 자네가 호남선을 타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네. 곧 괜찮아질 걸세. 강물은 흘러 흘러 다른 슬픔에게 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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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6 23:02

장소 기반 서비스

주머니 괴물 때문에 속초시가 바빠졌다. 게임 플레이를 원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려고 속초시는 전략지원 사령부를 구성하고 운영한다고 한다. 언론지원대는 관광지의 게임실행 상황, 홍보영상, 게임지도의 제작 및 홍보를, 행정지원대는 게임정보의 수집 분석으로 포켓스탑의 위치 안내도 제작 설치, 포켓몬 성지 안내를 담당한다고 한다. 속초시도 새로운 게임을 진행하는 듯이 게임 홍보업체처럼 바빠지고 있다. 이는 바로 나이언틱이라고 하는 미국의 한 업체가 만든 포켓몬 GO라고 하는 게임이다.증강현실 이용한 포켓몬고 게임 인기걷는 모험(Adventure on foot)이란 모토를 내세고 있는 이 업체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AR)이라 부르는 기술을 이용하여 현실 세계에 출몰하는 포켓몬을 잡는 게임을 만들었다. 증강현실이란 보통 휴대폰에 장착된 카메라로 얻은 현실 이미지에 컴퓨터로 만든 3D 그래픽을 얹어서 현실에 또 다른 정보가 보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드래곤 볼의 베지터가 전투력을 측정하던 스카우터와 같은 것이다. 최근의 홀로렌즈는 이보다 더 현실적으로 구현한다. 보통 고해상도 3차원 이미지를 보여주어 현실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VR)과는 구별된다.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차이점을 흔히 카메라의 사용여부로 말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증강현실기술이 현실의 위치를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포켓몬 GO라는 게임을 하려고 속초시가 난리가 난 이유이다. 포켓몬 GO 이용자는 포켓몬스터를 잡기위해 포케스탑이나 짐으로 몰리게 되는데, 이 공간을 기업이 스폰하는 장소로 만들어 구글이 검색 광고처럼 게임에서 스폰서 장소의 방문자 수에 따라 돈을 받는다고 한다. 뉴욕 포스트지에 따르면 뉴욕 퀸즈의 한 피자 레스토랑은 포켓몬 캐릭터 10여마리를 불러오는데 10달러를 썼더니 지난 주말 매출이 75%나 늘었다고 한다.물론 이런 비즈니스 모형은 앱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시도들이 있었고, 대표적으로는 2009년에 출시된 포스퀘어를 들 수 있다. 이 앱은 특정장소를 체크인하고 그 숫자에 따라 메이어라는 명예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위치기반서비스(LBS)를 위해 우리나라에서도 아임인이라는 유사서비스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으나, 성공적이지 못하였다.전라북도에서도 장소성에 기반한 콘텐츠를 만들려고 증강현실을 이용하여 한옥마을의 관광지, 음식점, 카페를 안내하는 앱, 관광 활성화를 위해 지오캐싱이라고 GPS를 이용하여 보물찾기를 하는 게임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산업을 장소기반 문화콘텐츠산업이라고 명명하고 전라북도의 콘텐츠산업이 관광, 농업과 상생하는 생태계를 만들려고 노력하여 왔다.최근 도내업체들에 의해 미륵사지의 서탑을 AR/VR로 복원하여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전북에 가상현실 테마파크, 가상현실 방 조성에 노력하고 있다.지역 기반 세계적 콘텐츠 개발을2016년은 가상현실 원년이라 한다. 많은 가상현실 기기들이 저렴하게 출시되고 있다. 포켓몬 GO도 떴다. 사용자들은 좀 더 과감하고 감탄할 만한 콘텐츠를 원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사용자 니즈를 충족시킬 스토리와 캐릭터, 이를 지속가능하게 만들 서비스, 과감한 투자와 지원이다.세계가 주머니 괴물로 술렁일 때 지역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세계적인 서비스를 만들어, 재미있고, 흥미롭고, 유쾌하고, 유니크한 도시로 만들면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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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9 23:02

문화 ODA와 그들의 류, 그리고 한류

한류는 진화하고 있다. 2000년대 초에는 한류가 뜨거운 감자였다. 아도르노가 지적했듯이 시민들의 사회비판력을 몽롱하게 만드는 것이 대중문화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탓이었다. 마르크스가 경계한 종교의 아편론과 유사한 맥락이다. 정통성은 물론이고 예술로서의 품위와도 거리가 있는 문화콘텐츠가 일본과 중국으로 날아가 우리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과연 그 한류가 우리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을 지닌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팽배했었다. 그런 한류가 이제 K-pop, K-arts, K-style, K-ODA에 이르기까지 진화 중이다. 세계 시민들이 우리문화를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점점 자연스러워져 간다. 한류의 진화와 ODA의 행진거울 속에 비친 한류는 청년기를 거쳐 서서히 장년을 향해 간다. 미국과 일본의 문화세례에 의한 잠수기를 벗어나 이제 두발로 당당하게 우리 땅을 딛고 선 우리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적 혼성과 융합의 결정체들이 지구를 횡단하고 있다. 한류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전통 문화를 자긍할 수 있게 해준 신호탄이었다. 문화해방의 행진을 알리는 북치는 소년이었다. ODA(Offcial Di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는 말 그대로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공적’이란 말이 붙는다. 우리도 공여국들의 ODA 덕택에 선진국이 되었다. 한편 긴급재난 시의 인도적 구호활동에는 정부나 민간기관이나 개인이 모두 참여한다. 이렇듯 민간 기관이나 개인들이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국제개발협력 사업도 많다. 차이가 있다면 ODA는 민간의 개발협력사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산 규모가 크고, 사업의 장기적인 지속성과 안정성이 보장되는 편이다. 또한 프로젝트형 단위사업도 있지만 종합적인 프로그램형 사업이 기획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성격을 띤다. ODA 공여국 중에서도 신흥 공여국인 우리나라는 최근 ODA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비교우위가 있는 영역과 방식에 집중하려는 K-ODA를 구상하고 있다. 문화 ODA는 두 가지 주요 방식으로 독해된다. 첫 번째는 모든 ODA가 문화적 관점을 지니고 전개되어야 한다는 차원이며, 두 번째는 타 부처 사업과 달리 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담당하고 있는 ODA 사업유형이다. 개도국 주민들의 삶에 녹아있는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적 관점은 모든 ODA 사업 수행자들에게 필수적이다. 그래서 사전에 현지문화를 관찰하고 조사하며 이해하는 정지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K-ODA 대표 될 문화ODA와 한류사업유형으로서 문화 ODA는 그들이 문화권을 향유하게 하고, 그들의 고유한 문화적 소재를 활용하여 문화상품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 음식을 제공하고, 우리 문화콘텐츠를 권장하는 한류 확산 사업은 우리문화를 알리고 우리문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국가 홍보사업으로 문화 ODA가 아니다. 문화 ODA는 한류 자체가 아닌 한류를 발생시킨 ‘방법론’으로 그들의 류를 형성하도록 지원한다. 즉, 한류를 탄생시킨 인력양성 시스템, 방송촬영 기법, 상상력 개발법, 감정표현 방법, 문화경관과 문화자원의 활용법 등으로 ‘그들의 류’가 지구를 횡단할 수 있도록 그들의 문화를 배양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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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2 23:02

100년전 녹음된 망향의 노래를 듣고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독일의 뮌스터 포로수용소에서 러시아 군인 신분의 강홍식(姜弘植, 러시아 이름은 Gawriel Kang, 평안북도 강계군 출생)은 고향을 그리며 탄식에 가까운 노래를 부른다. 강홍식은 어떠한 사연으로 러시아 군인의 신분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을까? 그리고 무슨 이유로 낯선 독일 땅에서, 게다가 두려움이 가득한 포로수용소에서 망향의 노래를 불렀을까?독일군 포로 된 한국 출신 러시아 군인강홍식 외에도 5명의 러시아 이주 한인 포로가 그 곳에 있었다. 그리고리 김, 스테판 안, 니콜라이 유, 니키포르 유, 카리톤 김, 이들 모두 모병 또는 징집에 의해 러시아 군인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가 포로 신세가 되었다. 1914년 러시아는 전쟁을 위한 총동원령을 내린다. 이 시기 러시아에 이주하여 살고 있던 많은 한인들이 러시아 국적 없이 살고 있었다. 강홍식과 같이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러시아로 이주하여 국적 없이 살던 이들은 안정된 삶을 위해 러시아의 국적이 필요했을 것이고, 모병의 조건이었던 러시아 국적 획득은 전쟁의 참여를 결정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러시아 국적을 갖기 위해서 또는 금전적인 보상을 받기 위해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던 이들이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노래를 불렀던 이유는 독일의 연구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은 세계의 다양한 지역과 문화권의 언어와 음악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연구를 가능하게 한 과학 기술이 녹음이었다. 1878년 토마스 에디슨은 세계 최초로 소리를 녹음하여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했다. 이 획기적인 발명은 이후 레코드의 형태로 발전되며 대중화 되었다. 초기의 음반은 원통형으로 만들어졌고 곧이어 우리에게 익숙한 둥근 접시와 같은 원반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원통형 음반과 원반형 음반의 두 형태로 녹음되었으며 이 소중한 기록들은 1999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독일은 비교음악학과 같은 신생 학문과 녹음·재생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는 여러 목적을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강홍식과 같이 전쟁 중 포로수용소에 억류된 다양한 국가와 민족의 포로들이 이 프로젝트에 이용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나라 또는 민족의 언어로 숫자를 세거나, 이야기를 녹음하였고 알고 있는 다양한 노래를 녹음하였다. 강홍식을 포함한 6명의 러시아 이주 한인들이 부른 노래는 ‘아리랑’, ‘수심가’, ‘애원성’, ‘국문뒷풀이’ 등의 민요와 ‘대한사람의’, ‘조국강사’, ‘만났도다’ 등의 독립운동가 그리고 노래 이외에도 숫자를 세거나 이야기를 녹음하였다. 이 녹음자료들은 당시의 언어·음악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전쟁 두려움·고향 그리움 섞어 불러삶의 터전을 버리고 낯선 환경과 문화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 그리 쉽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목적 없는 전쟁에 참여했다 포로가 되어 격리된 상황은 공포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두려움이 가득한 포로수용소에서 자신의 신세를 처량하게 읊조리는 모습이 그들의 노래를 통해서 가슴 깊숙이 느껴진다. 노르망디의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사진을 통해 만들어진 한 영화의 스토리만큼이나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역경과 삶의 애환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강홍식이 불렀던 노래를 듣고 있자니 콧등이 찡해져 그 가사를 옮겨 본다. “와 왔든고 와 왔든고 타도타관 월사동이 산도 설코 물도 설코 / 금수초목 생소한 곳에 뉘길 믿고서야 / 나 울고 돌아갈 길 나 여기 왜 왔단 말이요.”△이정엽 연구관은 서울대에서 국악작곡을 전공했으며 전남대·전주예술고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 국립민속국악원 장악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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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26 23:02

게놈(Genome)이든 지놈이든

섬마을 여선생님, 얼마나 이쁜 단어인가? 그 단어가 한순간에 호기심거리로 전락했다. 흑산도의 밤이 흑심으로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좋아하는 노래를 가만가만 부르며 산길을 혼자 걷는 일, 시 한 구절을 나직나직 읊으며 강가를 거니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가? 이런 일들이 여자들에게는 꿈속에서나 가능한 옛일이 되어간다.여자를 향한 잠재적 폭력이 두려워적어도 한반도 통일 같은 대의를 위하거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목숨을 거는 것도 아니다. 여자들은 오직 눈앞의 안전을 보장받는데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여자 혼자서 산길을 걷는 일이, 마음 맞는 친구와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이, 잠깐 공중 화장실을 사용하는 일이,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떠나 근무지로 가는 일이 이제는 목숨을 걸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강남역 한 복판에서, 호젓한 산길에서, 섬마을에서 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재생산되고 있다.여자이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로 자리매김 되었기 때문에, 불온한 시대를 두려워한다. 남자보다 약한 여자라는 동지의식 속에서 공유하는 불안은 불안을 증폭시킨다. 더 나아가 시선 폭력 시선 강간이라는 말도 스멀스멀 자라고 있다. 여자를 향한 모든 눈길에 들어 있는 잠재적 폭력이 여자들은 두렵고 불쾌하다. 어른들의 단어였던 성폭력이 이제는 중고등학생도 알아야 되는 단어가 되었다. 초등학생, 유치원생들까지도, 성폭력이란 단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참담하다.섬마을 여선생님 사건은 단순한 성폭행이 아니다. 그냥 남자가 어떤 여자를 덮친 것이 아니다. 집단이 개인을 가장 저급한 방법으로 폭행한 것이고, 토착민이 외부인을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폭행한 것이다. 사악한 음모가 선량한 순수를 무지막지하게 덮친 것이고, 집단으로 뭉친 무식이 단독으로 있는 지성을 무자비하게 해친 것이다. 또한 지역사회와 이웃이 누대를 거치며 방조한 양심과 암묵적 동의 아래 일어난 저질폭행이다.정부는 해결방법을 즉각 제시했다. 여교사를 섬마을에 보내지 않는단다. 웃는다. 학교 관사마다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겠단다. 웃는다. 가로등도 없는데 감시카메라니. 정부 방침대로라면 그 많은 산길과, 공중화장실의 칸칸마다 감시카메라를 달아야 한다. 하수구도, 나뭇가지도, 심지어 술병들도 감시카메라를 주렁주렁 달고 있어야 한다. 지금도 하루 외출하는 동안 평균 80번 찍힌다는 감시카메라를 800번이 찍히게 설치하면 성범죄가 없어질까?사람이 나쁘면 감시카메라도 아무 소용없다. 교육으로 순화되지 않고, 사회적 감시망으로도 걸러지지 않은 채, 통제력과 자제력을 잃어가는 성범죄 유전자를 알파고의 정보력과 분석력으로 추적할 수는 없을까? 성범죄의 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은 없을까?성범죄 유전자 차단 방법은 없을까남성우월주의, 취중 실수는 봐주자는 관습 아닌 관습, 정신적인 이유를 내세우면 정상을 참작해 주는 사회적 통념, 만사 관심 없다는 귀차니즘, 나만 아니면 된다는 괜차니즘, 조직사회가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은폐, 그리고 왜곡된 여성관, 그릇된 성문화, 심지어 여학교에 잘 생긴 학교전담경찰관을 배치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서슴없이 발언하는 국회위원의 게놈, 이런 것들에게 감시카메라를 달아줄 방법은 없을까?게놈이든, 지놈이든, 비정상적인 성적 충동이 일어나는 순간,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우주 밖으로 떠나게 할 방법은 없을까?△김제김영 시인은 전북시인협회장이며 김제문인협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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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9 23:02

크리에이터 시대

대도서관을 아십니까? 게임 방송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인터넷에서는 유재석 만큼 유명한 사람이다. 지난 6월에 열린 광주 세계 웹콘테츠 페스터벌 홍보 대사였던 그는 아시아 문화전당에서 릴레이 토크 및 사인회를 했었는데, 수천여명의 사람들이 몰렸고,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의 대다수가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2016년 3월 기준, 구독자수 120만, 누적조회수 4억6000만에 달하는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월 35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그는 게임 관련 국내 유튜브 시장을 대중화시켰고, 게임을 잘하지 못하지만, 허세와 애드립, 각종 광고 패러디, 서로 농담하는 채팅방 등으로 유명하다. 특히 마인크래프트, 문명과 같이 스토리가 없는 게임을 자신만의 스토리로 시트콤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람들을 1인 창작자, 소셜 크리에이터라 부른다.IT 발전과 함께 등장한 1인 창작자IT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기존의 미디어 권력이 붕괴되고, 미디어 선택권이 대중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이들이 대두되었다. TV를 본방사수하기 보다는 모바일기기로 자신이 선호하는 콘텐츠 만을 소비하는 것이 현실이다. 콘텐츠 제작도 대규모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PC 한 대로 방송시설을 갖출 수 있고, 영화같은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1인 창작작들을 매니지먼트 하는 인터넷 방송계의 SM, YG와 같은 기획사를 MCN(Multi Channel Network)이라 부른다. 외국의 경우 2009년 설립된 메이커스튜디오는 크리에이터를 발굴하고 육성하면서 유튜브 광고 수익을 나누고 있으며, 어썸니스 TV는 주로 10대를 겨냥한 코미디나 음악, 리얼리티 등의 콘텐츠를, 머시니마는 2030대 남성을 주 시청자로 게임 엔진이나 그래픽, 스토리, 소프트웨어 등을 활용해 만든 동영상을 제작한다.미국의 기존 미디어 업체들은 MCN의 영향력이 커지자 MCN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바꾸었고, 디즈니는 약 1조원에 메이커스튜디오를 인수했다. 국내에서도 CJ E&M, 아프리카 TV 등이 이 사업에 뛰어 들고 있다.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MBC의 마이리틀 텔레비전은 이런 경향을 반영한 것이며, KBS는 예티스튜디오를 만들어 직접 MCN사업에 뛰어들 예정으로 개그, 연기, 연예뉴스, 뷰티패션, 케이팝 등 다양한 웹 채녈을 준비 중이다. MCN 분야의 스타트업도 증가하고 있다, 양띵, 악어, 김이브 등 유명 1인 창작자들이 트레져 헌터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모바일 서비스, 창작가간의 협업, 콘텐츠 창작기반 확충을 하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자신의 끼와 노력으로 새로움 주도1인 창작자들은 기존 미디어에 비하여 모바일 인터넷에서 창작자와 소비자 사이의 활발한 의사소통으로 세분화된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고, 단기간에 저비용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으로 전세계적으로 인터넷에서 기획력과 창의력을 지닌 창작자들이 콘텐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MCN 사업은 미디어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며, 콘텐츠 제작과 유통을 대형사업자가 아닌 1인 창작자가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지속가능한 콘텐츠 생태계가 열리고 있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더 이런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자신의 끼와 노력만으로 우리의 삶, 생각, 문화, 예술을 표현하고, 지역을 넘어 전 세계 시민들에게 당당히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을 주도해야 하지 않겠는가!△한동숭 회장은 서울대 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전주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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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12 23:02

2016년, 시골 쥐와 도시 쥐

모두 알고 있는 이솝우화 ‘시골 쥐와 도시 쥐 ‘의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잭 자입스(Jack Zipes)가 편집한 우화집에서 발견한 쥐들의 대화는 의외로 자로 잰 듯 논리정연했다. 역시 우화나 동화의 일차적인 독자는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통제 곤란한 과시욕과 지배욕의 함정에서 늘 일희일비하며 자맥질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듯이 이솝도 당시 어른들에게 할 말이 많았던 듯하다. 경제선진국 자기중심적 모델 반성을도시 쥐는 시골 쥐를 도시로 초청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도시로 가자!’라고 구호를 외치거나, 손을 낚아채는 등 행동을 앞세워 윽박지르지 않는다. 시골 쥐의 현재 처지를 동정하며 귀가 솔깃해지도록 권유한다. 유혹적 논리를 삼 단계로 배치한 것이다. 첫 번째 논리는 시골 쥐가 그의 귀중한 삶을 누추한 곳에서 낭비하고 있다는 상황 진단이다. 둘째, 쥐는 생명이 붙어있는 한 최고의 삶을 성취해야 한다는 삶의 목적을 제시하고, 쥐가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이므로 어서 도시로 가야한다고 좀이 쑤시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셋째, 도시에 가면 도시를 보여주고 삶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구체적인 처방으로써 도시의 삶을 이상적 모델로 던져준다. 상황진단과 지향 목표와 구체적인 처방이라는 종합 세트형 탄탄한 논리구조로 시골 쥐를 돕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시골 쥐는 불안과 공포를 매개로 한 도시의 물질적 풍요를 선택하지 않고, 귀향한다. 이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해피엔딩 우화 속에 등장한 도시 쥐의 논리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기획 시 필독해야할 주의사항이 내장되어 있다. 파트너 국가인 개발도상국 지역 주민들의 가치관 등 문화에 대한 이해 자체를 누락한 비문화적 상황판단, 그들의 적응력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목표의 반강제적 권유, 그리고 공여국들이 자칫 방심하면 저지르기 십상인 자기모델에 대한 일방적 확신이다. 시골 쥐의 삶을 개선시켜보려는 자신의 선의에 도취되어, 시골 쥐의 생활문화와 정서 및 문화자원과 문화권에 대한 독해력이 마비된 도시 쥐의 상대적 우월감은 자신의 판단에 매몰되고, 자기중심적 모델을 반성 없이 추앙하기 일쑤인 경제선진국들의 민낯에서 나타날 수 있다. 물론 경제선진국의 일원인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문화영역의 공적개발원조 사업은 파트너 국가 주민들의 자긍심 증대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성취할 문화재 보존과 활용, 강제된 발전목표가 아닌 스스로 목표를 발견할 수 있도록 표현력과 꿈과 감성을 키워줄 생활문화 활성화와 예술교육, 문화향유 공간인 작은 도서관이나 박물관 등 문화시설 건립, 문화행정 및 예술연수, 문화상품 개발, 관광개발계획 수립, 스포츠 전문가 연수 등 그들의 수요에 따라 다각적으로 전개된다. 이 사업들은 우리의 한류가 아닌 그들 국가의 문화 류(流)를 형성하여 그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풍요롭게 할 뿐 아니라, 인류공동의 자산인 지구 위의 문화다양성을 증진시킨다.문화영역 공적개발원조 확대해야 2017년의 무상원조 예산 약 1조 5199억 중 적정규모가 문화영역에 안착되어, 특정 영역에의 예산편중 폐해가 해소되고 파트너 국가의 발전과 주민들의 삶에 균형의 회복이 이루어지길 바란다.△정정숙 소장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예술연구실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문화경제학회 이사·한국문화의집협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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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7.05 23:02

조선의 40년, 여진의 40년

역사는 과거를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과거를 왜 연구할까. 그 주요한 이유는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속의 수많은 교훈 중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교훈 하나를 끄집어내고자 한다. 병자호란의 삼배구고두의 항복 교훈이다.임난 이후 달라진 두 국가의 운명많은 사람들은 조선이 인조반정 이후 명과 후금 사이의 중립외교정책을 실시하였다면 치욕스러웠던 항복식을 행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들 역시 당시 눈에 훤히 보이는 국제상황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서인들도 광해군의 중립외교정책을 시행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병자호란은 우리의 외교정책 때문이 아니라, 후금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야욕 때문에 일으킨 사건이었다. 후금은 명을 지지하는 조선의 손발을 묶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후금의 조선 침공은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었다.임진왜란 당시에도 일본의 침공을 경계하라는 대마도주와 현소의 여러 차례 경고가 있었다. 심지어 풍신수길이 황윤길과 김성일에게 보내온 답서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지 거의 보름만에 한양을 정복했을 정도로 조선은 전쟁에 대비를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조선은 양난 모두 일본과 후금의 침공을 예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눈 그대로 뜨고 당했다는 것이다.이것은 양난 당시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선사회의 오래된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무기체계와 군대의 재편성이 있어야하고, 이런 제도개편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조세를 증가시키기 위한 대동법으로의 개편이 주장되었다. 대동법은 소유하고 있는 토지결수를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되었다. 당연 토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었던 양반들에게 불리한 세금 체계였다. 양반들의 심각한 반대에 부딪혀 겨우 100년만에 전국적인 실시가 가능했을 정도였다. 입만 열면 청렴결백과 백성을 내세웠던 조선 양반들이었지만, 자신들의 이해관계 앞에서는 공론을 표방한 사론을 전개할 뿐 전란 대비는 뒷전으로 미루어졌던 것이다.말만 앞선 사대부들의 공허한 논의는 병자호란 당시 풍전등화의 남한산성내에서도 여전히 이어졌다. 천도(天道)를 내세우면서 척화와 항전의 논리를 편 김상헌의 당당한 위엄은 때로는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그러나 주화파의 왜 직접 나가 싸우지 않는가라는 힐책에 왜 나를 묶어서 적에게 넘기지 않는가라는 반문에서 말장난의 공허함이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여진족은 여러 부족으로 갈라져 통합세력을 형성하기 어려운 유목민족이었다. 후금의 누르하치가 어려움 끝에 중원을 차지할 정도로 힘을 성장시킨 것은 임난 이후 대략 40여 년 만이었다. 이에 비해 임난 이후 조선의 40년은 치욕스러운 항복식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같은 40년 동안 두 국가의 운명은 극단적으로 갈라섰던 것이다.국민 복지 위한 양보타협 정치를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9대 국회가 저물고 20대 국회가 새로이 개원했다. 북핵과 브렉시트, 청년실업과 저출산노령화, 혁신되고 있는 산업환경에의 적응 등의 대형 과제를 풀어 갈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대통령과 20대 국회에게 40년 후 국가의 운명을 염두에 두면서 당리당략을 앞세운 견제와 균형의 논리보다는 진정한 국민의 복지를 생각하는 양보와 타협의 정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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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8 23:02

모악을 바라보며

모악(母岳)을 생각한다. 얼마 전에 모습을 드러낸 지역 출판사 모악과 첫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를 아껴가며 오래 읽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양 시인의 시집 〈헛디디며 헛짚으며〉는 한국 근대사의 헛디디며 헛짚으며 펼쳐진 풍경이 담겨 있다. 헛디디고 헛짚은 근대사의 변방에서 살아온 젊은 날의 어느 겨울, 평화동의 어느 큰 집에서 유리창이 없는 철창으로 아침마다 모악의 맨 얼굴을 만났었다. 어떤 날은 먼 길을 떠나는 고집 센 선비의 얼굴로, 어떤 날은 밥을 지어놓고 수백 년 동안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얼굴을 모악은 보여주곤 했었다. 모악을 넘어 금산사에 간 것은 평화동의 큰 집을 나와서도 한참 후였다.사회적 타살이 흔한 시절에며칠 전에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온몸으로 구조 활동을 했던 잠수사가 죽음의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더 며칠 전에는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 정비작업을 하던 열아홉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고로 변을 당했다. 모두 사회적 타살이다. 요즘처럼 사회적 타살이 감기처럼 흔한 시절일수록 모악에 대해 더욱 깊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갑오년, 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나섰다가 우금치에서 패배한 이후로, 호남은 지독한 사회적 타살에 시달려야 했다. 동학잔당을 뿌리 뽑겠다고 전라도의 오지까지 토벌군이 밀어닥쳤다. 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일어서기 전에도 조선은 사회적 타살이 만연했던 국가였다. 국민을 타살하는 국가였으니, 당연히 항쟁의 깃발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깃발을 들었다는 이유로 인해 다시금 사회적 타살의 폭풍이 휘몰아쳤던 것이다. 사회적 타살이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영혼의 폐허가 남았다. 그 폐허 한 복판에 모악이 있다.모악은 민중생명사상의 자궁이었다. 금산사에는 미륵이 있고, 그 아래 마을에서는 강증산이 살았고, 또 원불교의 소태산이 금산사에서 짚신을 삼았다. 금산사의 미륵은 거대한 가마솥 위에 서 있다. 왜 솥일까? 〈주역〉 50번째 괘는 화풍정(火風鼎)이라는 정괘(鼎卦)에 풀이가 있다.혁(革)은 옛 것을 버리는 것이요, 정(鼎)은 새 것을 취하는 것이다. 새 것을 취하여 그 사람에 맞게 하고, 옛 것을 바꾸어 법제가 정돈되고 밝아진다.정이라는 것은 변화를 완성하는 괘이다.삶는 것은 솥이 하는 일이다. 혁은 옛 것을 버리고 정은 새 것을 이루므로, 삶아 익히고 맛을 내는 그릇이다.모악은 어머니산이며 동시에 솥의 산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자식을 위해 솥에 밥을 짓는다.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 절망에 빠진 민중들의 삶을 보듬어주기 위해 미륵은 솥 위에 서 있고, 박중빈은 솥의 산을 음차(音借)하여 소태산이라고 법호를 지었다. 강증산의 시루도 결국 솥이 없으면 쓸모가 없다. 솥 위에 시루를 얹고 떡을 쪄내야 하는 것이니.새로운 것 완성하는 '솥' 정신을이런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 이광재의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와 김형수의 〈소태산 평전〉이다. 사회적 타살이 흔하디흔한 이 시절에, 가죽의 이름을 바꿔 옛 것을 버리는 혁(革)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가마솥에다 날마다 새 밥을 짓는 어미의 정(鼎), 새로운 것을 완성한다는 솥의 정신을 읽을 수 있는 평전들이다. 한 번 손에 잡으면 쉽게 놓지 못할 정도로 문학적 완성도도 높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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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1 23:02

전북문학을 해외에 수출하자

살만 루슈디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작가로 유명하다. 1981년 발표했던 소설 〈한밤의 아이들〉이 그에게 부커상 세 차례 수상 영예를 안겼던 것이다. 소설은 우리보다 만 2년 늦은 1947년 8월 15일 자정, 인도가 독립하는 순간에 태어난 아이들의 출생기와 인도 파키스탄 갈등의 역사를 병치시키면서 전개되는 사건이 줄거리인데 신화와 환상, 그리고 현실이 교차되는 마술적 사실주의 경향의 아주 멋진 작품이다. 나는 이 소설로 살만 루슈디를 제대로 알았고, 한편으로는 매년 부커상을 주목해왔다. 1988년 〈악마의 시〉라는 작품에서 무함마드에 대한 묘사를 불경하게 했다는 죄목으로 이슬람 최고지도자로부터 처형 명령을 받았던 작가가 바로 그 루슈디다.도내 작가 작품 번역혜택 못 누려부커상을 우리나라 작가가 수상했다고 해서 아직도 문단에서는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하다. 헌데 이런 얘기가 어떨지 주저되기는 하지만 수상작 〈채식주의자〉를 읽은 우리나라 작가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이런 것 같다. 당신도 쓰고 나도 쓸 만한 소설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한강의 작품을 폄하할 의도가 눈곱만치도 없다. 오히려 한국문학이 재조명받고 있는 현상이 눈물겹도록 고맙다. 나 자신은 그녀의 또 다른 소설인 〈소년이 온다〉처럼 이 작품을 아주 잘 읽었다는 고백도 해야겠다. 다만 그녀 자신이 인터뷰에서 했던 얘기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처음 출간 당시 문단에서 특별한 주목을 받지도 못했을 뿐더러 세상에 나온 지 칠팔년 넘은 작품이 상을 받게 돼서 어리둥절하다고 작가는 말했다.그렇다. 수상작이 발표된 2007년 이후 한국문학이 내내 캄캄한 암흑기였다면 몰라도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문단은 그동안 부커상이든 다른 문학상이든 수상할 만한 작품들을 적잖이 생산해왔다고 봐야 한다.이 말을 뒤집어보면 그새 해외로 소개한 번역 작품들의 상품 선정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주장할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전북의 문학은 절정에 이르러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좋은 작품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전북 작가들의 작품이 해외에 자주 번역되는 혜택을 누리지는 못했다.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거나 메이저 출판사 혹은 번역원 등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변방의 작가들에게는 언감생심 꿈조차 꾸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을 우리 전북 문학의 해외 수출 전진기지로 삼으려고 한다.장편소설 한 권 분량을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하는 데는 일급 번역가의 손을 빌리더라도 500만 원이면 가능하다는 얘기를 출판사 몇 곳으로부터 들었다. 우리는 해마다 시 소설, 동화나 희곡 작품집 네다섯 권을 엄선해서 알찬 번역을 의뢰할 참이다.다음 절차는 영업비밀이라 여기서는 공개하지 않겠지만 매년 1억에 못 미치는 자금 지원이면 우리 계획이 어렵지 않게 현실화될 수 있다. 참고로 올 한해 도내 화가들의 해외전시 지원 사업으로 소요되는 예산이 1억4000만원, 그보다 적은 지원이면 문학의 해외 진출도 가능해진다는 얘기다.전북문화관광재단 번역 지원 계획8월부터는 문학진흥법이 발효될 예정이다. 우리 재단이 시방 꾀하는 비책이 그 법에도 잘 부합할 듯해서 기대가 크고 또한 설렌다. 헌데 다른 지역 문학인들이 앞을 다퉈 우리 전북으로 이주하려고 들면, 그땐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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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14 23:02

변하지 않는 것들

새로운 유행은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유행이라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인간은 뒤를 따라가느라 힘겨움을 느낀다. 그것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문화가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죽음을 앞둔 아들이 아버지에게 비디오 리모콘 조작법을 알려주려고 애쓰는 장면처럼 말이다. 케이블 채널을 통해 전개되는 영화의 장면을 보다가 문득 비디오라는 매체도 사라진 테크놀로지가 되어 버렸다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새로움의 변화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모든 이야기에 경쟁 코드 집어 넣어이러한 흐름 속에서 새로움을 만들어 낸 인간이 뒤처지는 현상을 두고 독일의 비평가 귄터 안더스는 인간의 골동품화 현상을 오래 전에 논한 바 있다. 초기 미디어 시대를 살았던 안더스는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문화와 인간 사이의 격세지감을 두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느새 골동품이 되어 버렸다고 진단한다. 테크놀로지나 미디어 문화를 두고 보면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그러나,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과연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는 문화가 얼마만큼 새로운가 하는 것이다. 요즘 방송의 트렌드를 생각해 보자. 다양한 채널에서 만들어 지는 두 가지 주요 소재는 아이돌 혹은 음악과 요리 혹은 요리사이다. 뮤방과 쿡방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이 된다. 프로그램도 하도 많은 탓에 여기에서 일일이 언급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그런데,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 두 흐름은 실상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두 편으로 갈라진 요리사들이 제한된 시간 속에서 경합을 벌여도, 기성 가수들이 아마추어 가수들과 한 편이 되는 새로운 시도의 프로그램도 동일하게 지닌 구조가 있다. 그것은 경쟁이다. 음악을 앞세워서 가수와 일반인의 듀오를 만들어 내고, 국내를 넘어서 해외의 요리사들과 함께 요리의 향연을 펼쳐도 대다수의 프로그램들은 서바이벌의 형식을 취한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유행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결국 서바이벌의 변형이다. 유행이나 새로움이나 서바이벌을 다른 형식과 다른 느낌으로 포장해 내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서바이벌 형식은 삶의 경쟁을 모토로 삼는 한국의 기업 문화와 학교 문화를 대변한 것이다. 그 속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은 무엇을 보든 서바이벌이 없으면 긴장감을 느끼지 못한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들도 대결의 긴장감이 시청률을 보장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믿는다. 서로 물고 물리는 이 구조는 문화의 구조로 고착화 되어 버렸다. 그것은 미디어라는 것은 인간을 새로움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골동품을 고착시키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환기시켜 준다. 한국 사회의 경쟁 문화는 모든 이야기 속에 경쟁 코드를 집어넣는다. 그리하여, 현실뿐만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2등은 무의미한 것이고, 4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진정한 변화는 무의식을 바꾸어야진정한 변화는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을 바꾸는 데 있다. 경쟁적으로 채널을 돌리고, 경쟁적으로 주차장의 자리를 찾고, 경쟁적으로 예매 전쟁을 벌여야 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음악을 통한 여유나 맛있는 음식을 통해 삶의 전환은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경쟁적으로 맛집을 발굴하고, 경쟁적으로 환상의 목소리를 전시할 따름이다. 그 속에 문화가 있다고 여기지만 한국 사회의 구조와 삶을 미디어의 한 프로그램으로 전환했을 따름이다. 무의식의 변화는, 이 고리들과 완전히 단절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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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07 23:02

인류의 미래, 나의 미래

얼마 전 중세전쟁사를 전공하여 〈사피엔스〉로 세계적 돌풍을 일으킨 유발하라리가 우리나라에 강연을 왔다. 그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혁명으로 기술자뿐만이 아닌 의사, 변호사까지도 직업을 잃게 될 수 있다고 단언하면서, 강연 말미에서 “수십억 명에 달하는 무용지물이 될 인간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충격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현재 인공지능은 감히 접근하기 힘들다고 여겨졌던 감성을 대표하는 작곡가와 화가의 영역까지 그야말로 마당발식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뛰어 넘어서 보다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지 못한다면, 곧 인간은 그야 말로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경고이다. 기술 발달이 사회 변혁 이끌지만실제로 그런 시대가 온다면 인공지능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뉠지 모른다. 인공지능 혜택을 누리는 자는 그렇지 못한 자와 전혀 별개의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 유한한 자원을 가진 지구는 무한정으로 인간에게 생존의 장을 제공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이주하여 생로병사의 고통을 최소화한 인공지능 소유자와 황폐한 지구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나누어질 가능성도 있다. 누구든 새로운 낙원을 건설한 그 곳으로 어떡하든 갈려고 발버둥치는 시대가 도래한다. 이것이 영화 ‘엘리시움’의 줄거리이다. 기술의 발달이 하루가 다르게 사회변화를 넘어 변혁을 이끌고 있다. 그런데 그 기술도 당장 내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데는 상당한 한계성이 있다. 외국으로 출장을 나간 회사원에게 동시통역을 해줄 수 있는 기계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어나 중국어를 공부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가. 아마 그 시간을 다른 곳에 투자한다면 일자리 확충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보고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표정의 변화를 읽어내고, 나아가 그 사람의 감정상태까지도 알아낼 수 있는 기술력이라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에 적절한 통역을 해주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은 기술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이다. 지금 구글의 번역기를 돌려보라. 무슨 말인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은 번역이다. 그리고 거의 매년 듣도 보지도 못한 병이 출현하는데 발달된 의술은 거의 속수무책이다. 작년에 메르스사태가 그러하고, 올해 지카가 그러하다. 지카는 우리와는 상당히 무관할 줄 알았는데, 필리핀 여행자가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여름철 모기가 감염자를 물고, 다시 그 모기가 다른 사람을 물면, 지카의 확산은 단순 이론으로는 거의 기하급수적일 것이다. WHO도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스나 지카의 예방약이 나왔다는 뉴스는 들리지 않는다.현재 고통 해결하지는 못해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정도로 발달하고 있는 기술력이지만 현재 나의 고통을 해결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7포세대니 88만원세대로 전락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흙수저로 비하하면서, 헬조선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암담한 인류미래를 걱정하기에는 내 신세가 너무 처참하다. 청년실업률도 문제이지만, 고령화 사회도 만만치 않은 문제이다. 더구나 장기적인 경기침체의 예고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난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해줄 방안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인공지능은 아직은 요원하다. 지금 당장 사회적 총역량을 모아 적절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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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31 23:02

익산에 전북현대문학관 건립을 제안하며

오는 8월 4일에는 〈문학진흥법〉이 시행된다.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의 수상 소식에 문학 한류의 시대가 왔다느니, 문학이 부흥되었다느니 등등의 호들갑을 떨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법률까지 제정하여 진흥해야 할 지경에까지 내몰린 것이 한국문학의 현주소며 현실인 것이다.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전라북도는 정부에서 시행하는 〈한국문학관〉 유치에 나서기로 했고 유치 후보지로 정읍과 남원을 선정했다고 한다. 그나마라도 했으니 다행이라고 하겠다.근대화 애환 집약된 곳에 세워야문학진흥법 3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문학진흥에 관한 시책을 강구하고, 문학 창작 및 향유와 관련한 국민의 활동을 권장보호육성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예산상의 조치를 취하도록 되어 있다. 이어 제5조, 8조, 9조, 10조, 11조, 12조, 16조, 19조 등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할 수 있는 법률적 책무가 규정되어 있다. 자치단체장들이 마음만 먹으면 참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전북도민이며 익산시민으로서 그리고 소설가로서 익산시와 익산지역사회에 〈전북현대문학관〉 건립을 제안한다.익산은 한국문학의 현재이다.전라북도는 지금도 한국문학의 현재이다.가람 이병기 선생을 비롯해 평론가 천이두, 소설가 윤흥길, 박범신, 양귀자, 시인 안도현, 박성우, 김경주 등이 익산에 살았거나 원광대 출신들이다. 당연히 익산은 현대문학의 현재를 살고 있다. 전라북도로 확장하면 시인으로서는 신석정, 고은, 김용택, 복효근 등이 있고 소설가로는 채만식, 최명희, 서정인, 박상륭 신경숙, 은희경, 손홍규, 이병천, 정도상 등이 활동했거나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미처 호명하지 못한 시인과 소설가 평론가 등이 수두룩하다.익산은 호남의 교차로였다. 호남을 떠나는 마지막 역이었고, 호남으로 들어서는 첫 역이었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의 생애가 모이고 흩어진 곳이었다. 한 시대의 슬픔과 상처, 영광과 몰락이 고스란히 반영된 익산에 〈전북현대문학관〉이 들어선다면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전북현대문학관은 삼남을 떠나고 삼남으로 들어서는 익산역 앞의 원도심에 들어서야 한다. 근대화의 애환이 집약되어 있는 원도심을 떠나 지을 수는 없다.아주 거칠게 상상해보면 문학관은 기본적으로 정보원, 교육원, 창작원으로 구성되어야 한다.첫째, 정보원은 전북 현대문학에 관한 모든 자료가 아날로그적으로 수집되어야 하고 디지털 아카이브도 구축하는 업무를 주로 관장한다. 자료의 상설전시, 기획전시, 주요 작가의 개별 작가의 방이나 서재도 재현해야 한다. 둘째, 교육원은 문학교육과 학술활동, 해외 교류, 전문인력의 양성 및 지원의 업무를 주로 관장한다. 또한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문학의 수용과 향수를 위해 라이브러리 파크를 운영한다. 셋째, 창조원은 전문작가의 창작지원, 작가 레지던시, 다른 장르와의 융복합적 콘텐츠 개발 및 지원과 투자를 주로 관장한다.문학적예술적으로 건축을이렇게 기본적인 요소로 구성되지 않으면 문학관은 지속가능성을 상실할 것이고 그저 또 하나의 건물로만 존재할 것이다. 지속가능성과 새로운 창의성을 유지하는 것이 문학관 운영의 목표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건축도 여기에 맞게 문학적이며 예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만일 익산역 앞의 원도심에 〈전북현대문학관〉이 들어선다면, 익산은 새로운 문화의 시대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문학관이 있다고 해서 전북현대문학관이 없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그것을 위해 문화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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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24 23:02

한복 물결, 저 징허게 이쁜 꽃밭

옷이 날개라는 속담,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실감한 적이 있다. 산사의 방 한 칸을 얻어 공부하던 시절에 스님들 헌 바지 하나를 빌려 입던 날의 일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편한 바지가 있었다니!앉거나 서거나, 혹은 걸어 다니거나 바지는 정말이지 편했다. 오죽했으면 일부러 다리를 들어 올리려고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두 다리가 신들린 듯 번갈아 하늘로 날아오르듯 했다. 그래서 알았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이래서 생겼구나, 하고.다시는 한복을 입지 않았던 사연설이었던가? 결혼빔으로 선사받은 한복을 근사하게 차려입고 고향집을 찾아갈 적에도 그랬다. 아마도 혼인한 해였을 것이니, 벌써 삼십년도 넘은 얘기다. 아내는 붉은 치마에 오방색이 찬연한 까치저고리 차림이었고 나는 연분홍 바지에 짙은 청색 마고자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우리 부부를 보더니 길가에 세워둔 채 온갖 찬사를 늘어놓으시면서 좀체 놔주지를 않았다. 징허게 이쁘다고, 어쩌면 이렇게 곱냐고 하면서 말이다. 아직도 그때 할머님들의 낯빛이 또렷하다. 하지만 시골집에 도착해서 TV를 시청하던 중에 아주 낭패스런 얘기를 듣고 말았다. 내가 다시는 한복을 입지 않았던 사연이 거기서 비롯했다. 실내에서라면 몰라도 외출할 때는 반드시 두루마기를 받쳐 입어야 하는 법이라고, 만약 그렇지 않고 마고자만 달랑 걸치고 밖에 나서는 건 상것들의 옷차림이라고 한복 전문가를 자처하는 어떤 여자가 TV에 출연해서 사납게 꾸짖었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내게는 두루마기가 없었다. 까짓 두루마기 한 벌쯤은 어렵잖게 장만할 수도 있었지만 한번 빈정 상해버렸던 터라 그걸 맞추러가기가 영 싫었다. 내 한복은 그날 이후 장롱 속에 매장된 채로 삼십 년 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다.여자의 말은 사실이었을까? 나는 더러 그때를 떠올려보곤 한다. 사실이었다고 하더라도 굳이 그런 얘기를 언급한 이유가 혹시 두루마기 한 벌 더 팔아보겠다는 얕은 장사꾼의 수작은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오방색의 화려한 옷 위에, 더구나 값비싼 호박(琥珀) 단추까지 매달린 저고리와 마고자 위에 반드시 그 칙칙한 쥐색 두루마기를 껴입어야만 한다고 했던 이유를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내 한복에게 미안해진다.요즘 들어 전주 한옥마을에는 한복 물결이 출렁인다. 꽃밭도 그런 꽃밭이 따로 없을 정도다. 한복에서 무슨 피톤치드라도 발산되는 것인지, 나는 저절로 흥이 일곤 하는 한복 꽃밭을 구경하느라고 일부러 발길을 그리 돌리기도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잠시 길가에 세워두고는 징허게 이쁘다고 들려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런데 그들 무리 가운데 두루마기까지 갖춰 입은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만약 두루마기까지 입어야 하는 법이라고 돼먹지 않은 훈계를 한다면 그들 역시 오래 전의 나처럼 입고 있던 한복까지도 주저하지 않고 도로 벗어 내던질지도 모른다.규격화된 환경에서는 질식해 못 살아문화는 그런 것이다. 생전에 무슨 음식을 좋아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홍동백서, 조율시이(棗栗枾梨)식으로 규격화된 제사상을 차리는 환경에서는 질식해서 살지 못하는 게 문화다. 치마폭이 거꾸로 여며지면 기생, 아얌 같은 쓰개가 아닌 전모(氈帽)라는 이름의 어우동 쓰개 역시 기생 모자라는 따위의 괜한 간섭이 한옥마을 인근에서 들려오지나 않을지 별별 걱정을 다 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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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5.1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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