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이른 아침 트랜지스터 라디오 소리에 신세기 체조 귓전에 두고 등굣길에 나선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힌 살기 좋은 새마을 동네 풍경이 열린다. 시민극장 네거리에 걸린 현란한 간판 창극 대춘향전이 보인다. 주인공 화랑 창극단 김소희 명창(고창 1917~1995)이 분장을 굵고 짙게 하기가 화가 조르주 루오(프랑스1871~1958)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오버랩 된다.먹고사는 문제에만 집착한 교육정책큰 도로 건너 역 앞에 다다르면 왼편에 머리 몸통 온통 당근 색으로 물들인 커다란 양철통이 있다. 가슴에는 선인장 색 고딕글씨로 근면, 자조, 협동이라 새긴 이름표를 매단 대한통운 창고다. 양철 지붕골을 따라 커튼을 치며 어제 늦은 밤까지 내렸던 나그네 비는 수시로 들락거리는 지엠시 트럭 바퀴가 만든 저수조에 갇혀서 기름 한 방울에 쌍무지개를 띄운다. 두 눈 프리즘에 올라붙은 일곱 가지 색은 만화경 속으로 들어간다. 총천연색 70미리 시네마스코프 영화가 시작된다. 인봉리 방죽을 메우고 들어앉은 공설운동장 곁으로 백년 넘은 초등학교 정문 쪽 철둑을 지나 전주천 건너 태극산 구부능선 너머 해가 걸려있다. 턱걸이 많이 하기, 수류탄 멀리 던지기, 넓이 뛰기, 왕복달리기가 한창이다. 국어, 산수, 사회, 자연, 예능 합쳐 200개 만점에 두 개 틀리면 원하는 중학교 낙방이다. 393차 국민교육헌장 달달 외우며 사당오락 이마에 붙이며 고등학교 진학이다. M1소총 분해 조립하다가 예비고사, 본고사 가시울타리를 낮은 포복으로 각개 전투하며 겨우 통과해 대학에 진입한다. 학도호국단, 유신 독재, 518 민주화운동, IMF 경제위기 등 온갖 질곡 속을 헤쳐 온 세대, 베이비붐 세대. 1955년에서 1962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상징하는 단어들이 있다. 샌드위치 세대, 이름 없는 세대, 컴맹 세대. 비운의 세대, 퇴출 세대, 장남콤플렉스, 긴급조치 세대 등 평생 같이한 단어를 모두 모아 양쪽 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닌다. 또 반쪽(Half), 어려움(Hard), 막중한(Heavy), 복잡한 머리 (Head), 조급함(Hurry), 주저함(Hesitate) 통 털어 에이치 (H)세대라 부른다. 625를 지나 월남전, 병영 군사문화, 고도성장위기, 어느 한 곳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제대로 살수 없었던 세대다. 그래도 대한민국 900만 명 이상인 이 애물단지 세대에게도 위안이 되는 몇 가지 예쁜 단어도 있다. 세상을 살만한 곳이라 자위하면서 모두에게 희망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희망 세대(Hope), 가정과 직장을 먼저 생각하고 남의 아픔을 함께 느낄 줄 아는 인간성이 풍부한 세대(Humanity), 정치적으로 보수와 진보, 한문과 한글, 컴퓨터, 이질성 문화에 다리역할을 하는 세대다.다시 그들만의 학교 가는 길로 필름을 되돌려본다. 1967년 이 즈음 하늘 색 창틀 넘어 수세미 넝쿨 사이로 백엽상이 보이고 그 위로 휘파람 소리 내며 바빠 돌아가는 하얀 바람개비, 백년 묵은 얼룩묻은 플라타너스는 계절이 가지를 털어내고, 만국기 걸려 있는 학교운동장은 내일 가을 운동회 준비로 분주하다. 625 사변 통에 부모 잃은 고아들이 한반에 네다섯 명씩 맛있는 옥수수 빵, 죽으로 바꿔먹는 도시락 반찬은 내일은 분명 다르겠지. 그래서 즐겁다. 국어, 산수, 사회, 자연 공부하지 않아 즐겁고 20개 못 채우는 턱걸이도 하지 않으니 더더욱 즐거운 일이라. 학교 가는 길이 모처럼 기다려진다.인문학 중시, 예술 숨쉬는 학교로누구나 평생 학교를 다닌다. 초등학교에서 노인정, 양로원, 요양원, 학생부군신위 저승에 가서도 학교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로 돌아와서 대한민국은 학교가는 길 따라 삶도 따라간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가 학연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일이 도를 넘어섰다. 종교 문제와 버금갈 정도이니 말이다. 심각하다. 지금 교육계는 골머리를 싸쥐고 반성의 길을 모색하려 한다. 그간 먹고사는 문제에 집착해서 진행되어온 교육 정책이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을 정도로 가속페달을 밟으며 질주했다. 궤도를 틀고 속도를 줄여 세워 재출발을 시도할 때다. 인문학 중시하고 예술이 살아 숨쉬는 땅으로 가는 학교길이 즐거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