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7 07:52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문화마주보기

터 이야기를 끝내면서

그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전주시내에 있는 명소로 불리는 곳(?)에 대한 터에 대하여 실제적인 내용만을 위주로 다루었다. 터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풍수로 더 친숙한 단어이지만, 발복만을 위주로 하면 속(俗)되고 욕심을 부리는 양 인식되기 쉽고, 애써 돌려 말하면 알아듣기 힘들거나 핵심에서 벗어나기 쉽다. 사실 필자도 이 난을 통하여 과정과 결과 등을 피하고, 사실적인 면만 에둘러 표현한 것도 이러한 사회의 인식도 때문인지도 모른다.명소의 핵심 중 핵심은 '승생기'이제 글을 마무리하는 마당에 어떻게 혈(穴:기운이 뭉치는 자리, 혈터 또는 명당의 다른 말)이 맺힐 수 있는가하는 원리를 가능한 실제적인 내용에 근거하여 기술하겠다. 물론 가능한 한 이 분야 고서 등에서 표현한 단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해보기로 한다. 물론 이러한 핵심적인 내용은 공부하는 전문가마다 배웠던 방법은 △일반 경지를 넘는 안목과, △기구(탐사도구: 펜듈럼 또는 엘로드 등), △형기적 방법, △이기적인 방법 등과 이들을 융합하여 소점하는 등 일정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모두를 아우르는 핵심 중의 핵심은 역시 乘生氣(생기를 타다)다. 이것을 벗어나면 어떠한 방법도 소용이 없게 된다. 따라서 전문가마다 주장을 달리하거나, 본인과 방법과 소점장소가 다르면 부정하는 경향도 이 분야보다 심한 경우도 드물 듯 하다. 여기서는 어떠한 방법도 부정하지는 않지만, 방법과 과정이 다르고, 스스로 인식못하는 것을 부정하거나 잘못된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양하겠다. 오로지 승생기만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승생기만 가능하다면 어떠한 방법도 수긍할 수 있다는 것이다(다음에 기술하는 부정적 요소만을 제외).생기는 대부분 산의 어느 정상부에서 발원되는데, 반드시 음양 두 기운을 수반하고 양쪽에 수기(水氣)가 보호하면서 맥선(脈線, 龍脈)을 따라 이동한다. 이동하는 길은 일정하게 정해지거나 특정한 형상만을 따라가지 않는다. 이 맥선은 산 정상부나 능선, 기슭, 평지 등 반드시 정해진 곳에서만 결혈되지 않고, 대체적으로 현무산, 조안산, 좌우청백호의 균형이 맞고 맥선이 오면 맺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견 외형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 듯한 곳이나 평지에서도 적지 않게 맺혀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보이는 형기만을 위주로 할 경우 부정하거나 인식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맥선이 흘러오다가 맺히려면 가장 먼저 혈터 수미터 또는 수십미터 전방에 혈정(고서에서는 이를 삼척만두, 승금, 뇌두하람: 필자는 동일하게 봄)을 두고, 이곳에서 혈터를 몇 개 정할 것인지 확인이 가능하다. 보통 혈정 하나에서 1~4개소 정도 혈을 만드는데, 병렬로 여러 개를 두기도 하고, 능선에서는 상 중 하 세 개를 만드는 경우가 흔하다. 맥선이 흘러와 혈정으로 들어오는 것을 입수(入首), 혈정에서 혈터로 들어오는 맥선을 입혈맥(入穴脈)이라 말한다. 입수맥과 입혈맥은 동일한 방향도 있지만, 주변 지형에 따라 입혈맥에서 몇 도 또는 90도정도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 맺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음택과 양택의 기본적인 원칙은 동일하다.살기수맥 등은 반드시 피해야이제 생기가 있거나 없더라도 선택되어서는 안되는 곳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살기(煞氣)와 오염(五炎), 수맥, 지풍(地風), 건수(乾水), 水氣(일정한 범위에 맺힌 것)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 살기는 맥선의 발원지부터 함께 오는 것과 혈터의 주변의 사격(주로 산)정상에서 오는 경우, 두 곳에서 살기가 와서 함께 충하여 만드는 곳도 있다. 이런 터의 후손이나 사는 사람은 빠른 시일부터 일정한 시일 지나면서 꾸준히 좋지 않은 사고나, 각종 좋지 않은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한다. 이러한 내용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본인이 알지 못한다고 하여 그 존재를 부정하면 일어나는 불행과 직결될 수 있다. 물론 기운이 없더라도 위의 부정적인 요소가 없으면 긍정적이거나 좋은 장소도 많다. 우리는 이런 장소에 너무 익숙하고, 오랫동안 살아왔다. 이제는 그 익숙한 바에 빠지지 말고, 한 번쯤 진지하게 벗어나서 건강하고 활기차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이 있음을 알리고자 여기까지 온 것임을 밝힌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12.15 23:02

스타 탄생

영화 스타탄생은 지난 1977년 여름 전주아카데미 극장에서 상영됐다. 뮤지컬배우이자 영화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미국 컨트리 가수 크리스 크리토퍼슨을 주인공으로 프랭크피어슨 감독이 1934년 작품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불멸의 곡 Ever Green이란 주제가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내용은 무명 가수를 톱스타 반열에 올려놓는 과정을 그려낸 영화다. 세계에 A Star Is Born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그 시절, 문화계 뿐 아니라 사회에 신선하고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희생과 찬사가 동반되지 않으면 스타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은 지금까지도 아름답고 절절하게 이어온다. 예술가의 삶의 단편에 지침을 내린 명작이다.명실상부한 예향 전북 위하여한 해를 보내는 추워진 계절에 이러한 정서를 바닥에 깔고 1999년으로 돌려보자. 그 해는 정초부터 전북예술계에 슬픔이 찾아왔다. 벽천 나상목 선생님의 타계 소식이다. 그 시기 김제 용등동 벽천 선생님 상가에 지역 예술인 선배 세 분을 차에 모시고 가는 길목이다. 작고하신 서양화가 이복수 선생님이 한 말씀하신다. 우리 지역은 스타를 만들지 않아 어느 정상에 오를 듯하면 마구 흔들어 떨어뜨려. 전국 고소고발이 첫 번째여. 아픈 일이야 옆 동네만 하드래도 서로 다투다 큰일 앞에 두면 큰일부터 해결한 다음이고, 한 인물 내세울때면 서로 공조하며 만들기를 지역 언론도 같이혀. 그 옆 작고하신 월담 미술관 권영도 관장님도 한술 더 거두신다. 이 지역은 수면위로 오를테면 돌팔매질로 잠수시켜 버려. 인기작가 한 사람 지역에서 만들려면 희생과 박수가 따라야 할텐데.여기에 반해서 이런 내용도 따른다. 예부터 타도에 비해서 배고픔이 덜해서 적극적인 삶이 부족하다. 권력과 지주의 잘못된 처사에 아예 정면 공격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지주에 눈밖에 벗어나지 않으려는 서로간의 투쟁이다. 그러는 가운데 아전들이 판치는 세상의 연속이다.을미년 한해를 보내며 내년 활동을 준비하면서 전반적으로 예술계가 침침하다. 이 분야 저 분야 힘들어함이 역력하다. 걱정스럽다. 예술문화계는 스타들의 전쟁이다. 훌륭한 스타가 14개 시군 어느 한 곳에 탄생되면 정치, 사회, 경제 전북 도약의 발받침에 한 축의 역할을 다한다. 또 그렇게 이뤄지면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는 청소년 예비예술인들의 점프대가 된다. 오래전부터 전북의 생명력으로 농업, 교육, 문화를 내세워 왔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무엇보다 예술문화교육을 앞세워야 할 때에 와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문화 역사적 배경을 교육으로 무장하고 스타 탄생을 위하여 마냥 자유스럽게 뛰놀 수 있는 땅을 만들어야 줘야한다. 전북 14개 시군 어느 지역 한 곳 빅스타 탄생이 없겠는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앞서 가신 분들의 훌륭한 예술정신을 받어 명실공이 예향전북 토대를 다시 조성할 때다.지역 문화예술인 양성해야근자에 들어서 전북예술문화가 앞서가는데 터덕거리고 답답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몇몇의 다툼, 시기와 질투가 전체의 현상인 양 보여지고, 엉뚱하게 오염된 사고로 찬란했던 전북예술의 산등성이에 막 떠오르려는 영롱한 별들이 채 피지 못하고 지고 있다. 자기 자신의 재능을 미리 포기하거나, 조건 좋은 타 지역으로 떠나려는 인재들. 여기에 기성 예술인들은 자책하다 세월을 보낸다. 이래서는 안될 일이다. 전북을 빛낸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하는 일은 해도해도 좋은 일이겠고,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반짝이는 별들을 탄생시키자. 그러기 위해서 전북예술문화를 사랑하는 분들은, 전북을 예향이라고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모든 분이라면 그곳으로 가기위해서 뜻을 같이하자.

  • 오피니언
  • 기고
  • 2015.12.08 23:02

내가 반성해야 할 열 가지

1. 월드? 인터내셔널? 글로벌? 우리 축제는 인터내셔널 축제다. 과연 이 시대에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어가 표현 가치가 있을까. 너도나도 ‘글로벌’을 주장하고 ‘세계’를 이야기한다. 단순히 해외 연주자를 초청하고, 우리 음악을 해외 몇몇 곳에서 알아준다고 ‘인터내셔널’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글로벌’이라는 취지하에 무조건 ‘해외’를 지향할 수도 없다. 우리의 축제, 문화가 세계 속 어느 위치에 와있는지 고민해야한다.우리 소리·문화의 확장성 고민해야2. 호남-판소리-축제 ‘소리의 발생은 호남’, ‘풍부한 문화적 인프라, 전북’이라는 안주 또는 자만 속에서 지역의 베네핏을 활용해 안주해서는 안된다. 우리 소리와 문화가 대한민국과 세계로 확장될 수 있도록 폭넓은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3. 현상? 또는 Fact? 주변엔 수많은 우리 소리와 문화 현상이 즐비하고 관련 종사자도 넘쳐난다. 과연 이들의 행위가 문화인의 ‘의무’인지 아니면 소리의 본질과 문화의 발전, 또는 개인적으로 도전을 위한 진심어린 노력을 동반하는지 돌아봐야한다. 또 이들의 고민과 고통,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한다.4. 이끌어 갈 것인가? 이끌려 갈 것인가? 축제의 프로그램을 구성하다보면 예산, 지역특성, 관객의 기호 등을 핑계 삼아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때마다 ‘문화’의 가치와 수준 높은 문화를 함께 향유하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문화는 노력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며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 5. 문화? 또는 문명? 지금은 과거와 달리 ‘문명’이 ‘문화’를 이끌고 간다. 음악과 영상 제작, 홍보의 방향은 디지털 시대의 문명과 발걸음을 같이한다. 하지만 축제 일들을 문명의 발전을 따라가는 데에만 급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화의 세력들이 보다 진일보한 가치와 중심을 가지고 이 시대를 현명하게 타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6.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의 한정된 경험을 토대로 후배 연주자들의 고민과 관객의 수준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새로운 세대는 내가 경험했던 것과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막연한 추측에 대해 반성해야할 것이다. 7. 올곧은 전통과 참신한 창작 전통은 올곧게 지켜야 하고, 새로운 창작품은 참신해야지만 누가 무엇을 위해 올곧게 지켜내고 있는지, 또 새로운 연주가와 작품이 얼마나 참신하고 과장되지 않았는지 등을 깊이 탐색해야한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수많은 자료들을 근거삼아 판단하면 안 될 것이다. 8. 축제조직, 관객, 연주자의 삼각관계 축제 조직, 관객과 연주가. 이 삼각관계는 단순한 정삼각형이 아니다. 때로는 조직의 판단 실수나 관객의 반응, 연주자의 실망스런 모습 등이 이 구도를 긴장케 한다. 이 삼각구도는 정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만큼, 조금은 부드럽고 유연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내년에 멋진 소리축제 만들 것 약속9. 주최 측 추산과 관객의 추산 축제에서는 늘 많은 추산을 한다. 이만큼 관객이 올 것이다. 이만큼 수익을 얻을 것이다. 등 다양한 추산을 한다. 하지만 관객의 생각은 주최 측과 다르다. 당연히 만석을 이룰 것이라 예상했지만 관객의 무관심 또는 홍보의 부족으로 예측을 빗겨가기도 한다. 이 수치와 결과를 주도면밀하게 분석해 보다 밀도 있는 추산을 해야 한다. 10. Sori, Song, Sound 판소리는 이 시대의 ‘Song’, 노래로서 발전돼야 하며, 판소리 창작가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서 한국의 이미지를 풀어나가는 근원적인 ‘Sound’로의 귀결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2016년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미래의 관객들에게 내년에는 보다 멋진 축제를 만들 것을 약속하면서 위의 열 가지에 관해서 올 겨우내 많은 반성을 할 것을 약속한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12.01 23:02

나 홀로 깊은 밤에

오스트리아 작가인 카프카의 소설에 〈변신〉이란 작품이 있다. 한 세일즈맨인 청년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한 마리의 커다란 독충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소설은 주인공이 소시민적인 가정에서 벌레로 기피당하면서 불행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기괴한 삶을 묘파한다. 카프카의 초현실주의 수법 소설이라고 평가되는 이 작품은 철저히 자기 소외를 당한 인간 존재의 리얼리티 부각으로 공감된다.정치 경제분야 편중 심화되고 있어한편 카프카는 관료 기구의 기괴함과 냉엄성을 체험하며 반사회적 환상에 빠지는 심리 상태에 젖는다. 작품 〈성(城)〉에서도 주인공 K는 모든 제도와 사회로부터의 배반을 당하는데, 익명 K는 작가 자신이며 우리 소시민 중 하나인 셈이다. 소설 속에서는 특종의 성격, 아주 예외적 인격을 창조해 낸다.그러나 그 성격은 이 세상 어디엔가에 존재하며 나아가서 널리 고유되는 자아 개념으로 확산되는 캐릭터이다. 고독한 군중이니 하며 다중 속에서 오로지 홀로임을 인식하는 현대인들 삶 속에서 우리가 이제는 기괴한 쉬르리얼리즘의 자아를 자꾸 체험하게 된다. 방대함 속에서 거듭 터득한 것은 왜소한 나 하나라는 인식이다. 방대하게 많은 수의 사람들, 방대하게 질양으로 확대된 지식들,방대하게 범람한 정보들, 방대하면서도 각인은 각인에게 대립하는 주장들, 마치 만인은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라는 존 로크의 말이 상기되는 현상이다.창해일속(滄海一粟)이라는 말이 있다. 넓고 넓은 바다에서 매우 작은 조 한 알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광폭하고 강퍅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그리고 패악한 범죄들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좁쌀 하나로 전락해 가는 자신임을 절감한다. 이미 느끼기 전에 그런 현실 속에 포위당한다. 모든 창문은 빗장을 걸어 잠그고, 다시 방범망을 외벽에 두르고 무슨 광학 센서를 설치하고, 결국 자신을 자기 안으로 결박해 간다. 안으로 갇혀서 자기 홀로의 통로만을 구축해 가는데, 이때 유일한 누림의 도구가 컴퓨터이고 컴퓨터의 게임프로그램이다. 홀로 전쟁하고 홀로 2개의 자아로 나누어 서로 치고 패는 자아끼리의 대립, 홀로 인식하고 단정하는, 편집증 같은 습속에 절어가는, 많은 현대 젊은이들을 본다.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스스로 사회에 벽을 두르고 환상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일반적 보편적 삶에 동떨어진 그런 행보의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카프카의 환상이 스스로를 독충으로 만들듯이, 사람들도 자신을 독충으로 만들어 가는 부류의 상당수를 우리는 목격하기도 한다. 남들이 나를 소외시키기 전에 내가 나를 먼저 소외자로 단정하고 사회의 변경으로 벗어난다. 양지에서 음지로 다시 더 짙은 음지로 쾌속 전락하는 환상들이 무섭다.'명상' 끝내고 우리 함께 광장으로정치 경제 분야에서 가장 현저하게 이런 사회 심리의 조종이 자꾸 울린다. 정치 패거리들의 행패를 보라. 어디 조금이라도 상생을 도모하던가. 정부 예산 짜는 걸 보라. 어느 지역으로 편중해버린 횡포에 경악한다. 피해자가 아니면서 피해자로 둔갑해 버린 소외지역 주민들의 자기 비하 심리도 이런 사회 현상에 부가한다. 소통의 기운은 아예 분쇄되고 상대를 완전히 짓밟아 버리는 완승 쾌자들의 깃발들만 무성하다. 높은 관직은 한 곳에서 독식하고 누리는 자는 더 누리고자 하니, 우리 소시민은 자꾸 서럽다.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창창하다. 나 홀로 깊은 밤 명상(?)은 이제끝내자. 우리 함께 광장에 나가자.같이 놀러 가거나 함께 일하러 가자. 우리는 우리의 노래를 만들어 씩씩하게 부르면서, 소외자가 아니라 시대의 한복판에 군림하는 자로서 당당하게 나아가자.

  • 오피니언
  • 기고
  • 2015.11.24 23:02

터 이야기- 전주 최부잣집

이번에는 전주 최부잣집으로 알려진 최한규 선생 집터 이야기를 다루어볼까 한다. 부잣집하면 우리는 흔히 경주의 최부잣집을 떠올리곤 한다.경주 최부잣집의 직접적인 발원은 최진립 장군 묘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후손은 11대에 걸쳐 300여년을 내린 최부잣집 이야기로 유명하다. 최진립 장군 묘는 2종의 생기가 들어와 그 기초를 닦았다.경주 교동 58번지의 본채에는 3종의 기운이 융결됐고, 마당 좌우로는 대칭해 2종의 기운, 마당 중앙에는 또 다른 1종의 기운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부터 흘러와 맺힌 것이다.진정한 부와 3대를 넘는 부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기운 넘치는 음택터를 기초로 하고 이어서 그에 걸 맞는 양택터가 연계돼야 한다. 다음으로 필수적으로 꼽는 것이 그 집안이 사회적 도적적인 규범을 어떻게 지켜냈는가에 달렸다고 본다. 여기서는 사정상 최한규 선생의 고택의 터에 대한 이야기에 한정하기로 한다.최한규 선생 고택 터 '부'기운 넘쳐최한규 선생의 고택은 유명한 승광재와 접한 남서편에 자리한다. 널직한 터에 3종의 기운이 자리한 중앙에 터를 깔고 앉았다. 다만 갑입혈맥(甲入穴脈)으로 서향(西向)인데, 주변 사정상 남향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고, 문제는 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이 고택의 주용맥은 완주 원등산(해발 713m)정상에서 발원해 총연장 15.48㎞를 달려와 맺힌 것이다.주용맥은 원등산 정상에서 시작해 남과 서향의 능선을 타고 4㎞쯤의 평지에 이르러 서남측으로 방향을 바꾸어 직진하면서 아중역과 천주교 전주교구청, 승광재를 관통해 이곳 고택의 중심혈로 자리 잡았다. 이 터는 주변과 기운이 은은융융(隱隱融融)해 3개의 보조맥을 가졌다. 동편의 보조맥은 두리봉 정상(430m)에서 총연장 5.81㎞로서 북서 및 서향의 능선을 타고 2.7㎞ 쯤 되는 능선에 이르러 혈처까지 곧장 흘러온다.서편 보조맥은 군산 망해산 서편의 한 정상(190m)에서 발원해 약 총 44.68㎞를 흘러와 혈 터에 이른다. 이 보조맥은 서북으로 뻗은 능선을 타고 형태처럼 한 바퀴 돈후, 남서향의 능선을 따라 평지에 이른다. 이곳에서 남동으로 방향을 전환해 낮은 구릉과 논밭을 직진해 마교제의 서북에서 방향을 혈처방향으로 튼 후, 직진해 들어온다.북편의 보조맥은 고덕산 정상(603m)에서 발원해 총 10.53㎞에 이른다. 이 보조맥은 남동능선을 타다가 다시 남향과 남서향의 능선으로 차례로 방향을 바꾸면서 7.9㎞쯤 이르러 평지에 다다른다. 평지에서 다시 남고산 남측의 능선을 타다가 북으로 직진해 서서학동 흑석골을 지나 전주천을 관통해 곧장 가다가 풍남헌과 동낙원에서 낚시바늘처럼 휘어져 혈로 이어졌다.양택은 흔히 기운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살기와 다른 악영향을 직접 미칠 수 있는 요소만 없다면 터의 형상에 맞추어 집을 올리고, 집의 좌향에 맞추어 대문을 내는 것이 관건이다. 고서에서는 이 원칙을 연산괘(連山卦)로 칭하고, 만고불변하락(萬古不易之河洛)이라 하였다. 수천 년간 내려오는 것은 그 영험함이 검증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단독주택은 좌향에 따른 대문의 방향을 가장 중시한다. 물론 기운이 집 안팎으로 드나드는 대문은 생기가 들어오는 방향으로 내는 것이고, 아울러 가족의 먹거리를 조리하는 부엌 역시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한옥마을에도 유사한 터 많아전주의 최부잣집 고택은 위의 법에 충실했다. 즉 고택은 남향에 대문도 남향에 두어 음양의 배합을 맞춘 사례이다. 이밖에도 전주의 옛 부성(府城)내 중심격인 한옥마을에는 그만그만한 혈 터가 적지 않다. 이미 대부분 가옥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한옥마을을 찾는 이들이 다시 찾고, 그 주변을 걷는 걸음걸이도 밝고 가벼울 터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11.17 23:02

전북의 별

나흘동안 고마운 비바람이 모아다준 노란 별들이 전주 팔달로변에 군데군데 수북이 쌓여있다.을미년 입동을 넘긴 이즈음에 다가오면 전주의 거리는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거리로 연출된다. 늦은 가을비에 씻겨진 은행잎들이 높은 명시도로 옷을 갈아 입으면 거리 곳곳 움직이는 모든 사물은 연극 영화 세트장이 된다. 자전거 타고 가는 서학동 유씨 영감은 팔월의 크리스마스 한석규로 변신하고, 태평동 추씨 아줌마 자매간도 영화속 이만희 감독 만추의 주인공과 조연이 된다. 경원동 우체국 사거리 붕어빵집 포장마차에서 피어오르는 증기가 현란했던 과거의 자리로 잠시 이끈다.낭만이 스며드는 가을 끝자리에이렇게 정서와 낭만이 스며드는 가을 끝자리에 서면 전북예술계 곳곳에서 분주해진다. 전북예총은 건축, 미술, 음악, 문학, 국악, 영화, 연예, 사진, 무용, 연극 10개협회가 있다. 각 장르별 한해 예술활동을 평가 해서 훌륭한 어깨에 별을 달아주는 행사가 연이어 펼쳐진다. 이래 저래 예향 전북을 빛내서 주는 예술상 그 중 몇 가지 의미있게 이어오는 몇 가지 예술상을 챙겨보자얼마전 치러진 문학부문에 중산, 해양문학상, 석정문학상 공모성격에 최명희 문학상이 있고 앞으로 치러질 전주시를 비롯한 각 지역 예술상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서 잠시 미술분야에 한가지 선례를 들면 타지역에서 이사와 오랫동안 전북지역에 머물며 화구 재료상을 해온 형제간이 전북 미술인들의 작업 활동을 위해 각각 제정해서 10년 넘어서 현재까지 이어온 상이 있다. 전라예술상으로 전북화방 고 이승갑 사장이 제정한 상이다. 다음은 동생분으로 전주화방 이승목 사장이 젊은 작가를 위해 제정한 청년작가 위상전 상이 있다. 미술인의 한사람으로서 무척 고마운 일이다.이 밖에도 각 분야별로 아름다운 사연 있는 상이 많을 것이다. 다음으로 개인적 관점과 주변 예술인들의 중론에 힘입어 두가지 상을 중점적으로 내세워 보기로 하겠다. 첫 번째는 (주) 하림 이 지원하는 전북예총 하림 예술상이다. 올해로 19번째 치러지는 상이다. 상의 범위로는 전북예총 10개협회 장르에서 한해동안 훌륭한 활동을 한 전북 예술가를 선정해서 주는 상이다. 아무런 대가없이 해마다 전북예술 발전을 위해 마련한 명실상부 전북 예술상으로 자리매김 하는 상이다. (주) 하림이 어려운 시기에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진행한 상이다. 전북예총 17, 18대 김남곤 회장님이 역임 하실때 (주) 하림 김홍국 회장과 안홍엽 사장의 뜻깊은 인연으로 만들어진 상이다. 전북예총 1만여 회원들이 이시기에 기다려지는 전북예총 하림 예술상이다. 행사 일시 장소는 2오는 12월 8일 화요일 오후2시 전주 전통 문화관 한벽당에서 치러진다.도내 문화예술 분야 시상식 잇따라두번째는 제23회 목정 문화상이다. 1993년 첫회를 시작으로 이어온 상이다. 고 목정 김광수 선생의 뜻을 받들어 목정문화재단 김홍식 이사장이 이어오는 이 상은 순수 예술에 바탕을 두고 치열한 작업 정신과 바른 예술활동을 근거리 원거리에서 체감해 찾아주는 상이다. 전국 순수 예술부문에 수여되는 대표적인 상이다. 그간 69명의 수상자와 전북예술을 짊어지고 가야할 청소년 고교 예비 예술인들을 위해서 미술, 음악, 문학, 순수예술분야 경진대회를 진행해왔다. 예향의 땅에 깃발을 세우는 역할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행사 일시 장소는 이달 27일 오후 3시 금요일 전북대학교 진수당 가인홀에서 치러진다. 전북 예술을 사랑하는 도민들께서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란다. 전북의 별들을 위하여.

  • 오피니언
  • 기고
  • 2015.11.10 23:02

축제를 기억하는 단상들

뜨거운 열정과 마음을 쏟았던 5일간의 축제를 마치고 어느새 일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하다. 하지만 일 년 내내 축제만을 생각하며 달려 온 나는 잊지 못할 수많은 단상들로 축제를 기억할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셀 수 없는 많은 에피소드가 모여 하나의 축제를 완성했다. 소중했던 전주세계소리축제를 더 세밀히 들여다보고 더 정성스럽게 기억하고자 한다.예측 못한 상황으로 한숨웃음 교차축제 전 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했던 팀의 멤버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했다. 한 출연자는 공연 시작을 앞두고 꽉 막힌 도로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긴급 상황을 알려왔다. 한국에 도착한 한 해외연주자는 갑작스레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전통 타악기를 빌려달라고 했다. 축제 기간 벌어지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 때문에 짧은 한숨과 함께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개막공연에 출연하기로 한 출연자들과 전날 모여서 리허설을 한번 하고 본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모두가 불안해했지만 내 믿음은 옳았고, 출연진들의 무대에서의 활약은 대단했다. 판소리의 외형의 확장이 관객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전통음악의 확장은 단순한 포장이 아닌 디자인의 개발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14개 시군 찾아가는 소리축제의 성과는 놀라웠다. 편백나무 숲의 인파를 경험하니 내년에 계획한 한옥마을 사이트 전면 철수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해외 관계자들과 영어실력에 한계를 느낄 정도로 우리음악에 대해 깊이 논의했다.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자원봉사자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수많은 이들이 축제 시작과 동시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돈 보다 일, 그리고 성취 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아름다운 현장이다. 축제 4일째, 야외공연장 7시 공연을 앞두고 6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삼례에서 폐막연습을 마치고 현장까지 달려오던 내내 비야 그쳐라를 백번도 넘게 외쳤던 것 같다. 야속하게도 축제 마지막 두 날은 비가 왔다. 81명의 타악 연주자가 쏟아내는 폐막무대의 사운드와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미국에서 새벽 3시에 개폐막공연을 봤다는 연락을 받았을 땐, 얼마나 더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관계자들의 평가가 쏟아졌다. 어깨가 무거웠다.축제 막바지 준비에 열을 내며 머물렀던 전주를 떠나 다시 서울의 작업실이다. 이미 완성해놓은 내년 무대 도면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축제가 끝나면 단 하루라도 전 직원이 쉬었다가 마무리해야겠다는 나의 야무진 생각은 어림도 없다. 곧장 처리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다. 축제의 폐막을 알리는 불꽃놀이와 함께 수천 건의 정산을 해야 하는 행정축제가 시작된다고 말하는 직원의 모습에 코웃음이 난다. 소리축제에 참여하고 싶어 러브콜을 보내 온 연주자들에겐 출산 휴가 중인 팀장에게 메일을 보내라고 해야 한다. 짧게는 몇 주부터 길게는 수개월씩 단기직원으로 일해 준 직원들과의 이별의 시간은 감성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다.비 맞으면서도 자리 지킨 관객에 감사축제를 마친 후 어느 날, 자고 일어나 커피 한잔을 마시며 들었던 뇌리를 스쳤던 하루의 첫 생각. 많은 비가 쏟아졌던 그 날, 그 많은 관객들은 왜 자리를 떠나지 않았을까? 이루어질 수 없었던 수많은 상황들을 이겨내고 또 하나의 축제가 완성됐다. 비를 맞으면서도 끊임없이 계속됐던 관객들의 입장을 비롯해 수많은 불가사의한 현상과 의문들을 남기며 그렇게 마법처럼, 기적처럼 또 한 번의 축제가 이루어졌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11.03 23:02

술 마셔야 하는 나라

술 권하는 사회란 말은 소설가 현진건이 만든 말이다. 현진건(1900-1943)은 우리나라 근대 소설가이다. 그의 호는 빙허(憑虛). 1920년대 〈개벽〉으로 데뷔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근현대로 오는 우리나라 소설의 지평을 열었다. 그의 소설들은 사실주의 문학을 표방한 작품들이었다. 우리나라 사회를 풍자하면서 사실적으로 묘파해 내는 재주가 뛰어났다. 특히 그의 작품 〈술 권하는 사회〉는 논픽션으로 당시대를 묘사하고 있다. 고대 소설들이 전기체류이거나 플롯이 우연성으로 일관된 점과는 크게 차별화한다.불의부도덕 판 치는 사회그의 다른 소설 〈빈처〉에서 등장하는 소시민적인 평범한 아내는 비슷한 이미지로 〈술 권하는 사회〉에서도 등장하는데, 매우 시사적이다.남편이 말한다. 정신이 바로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으면 술 먹는 일밖에 할 일이 도무지 없지. 아내는 말한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불의와 부도덕이 판을 치는 사회에 적극적 대응의 방식은 피를 토하고 죽는항거일 것이고 현실 도피적 소극적 저항은 술 먹는 일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의와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져야 할 신의는 헌신짝처럼 팽개쳐진 시대를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사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현실을 사실적으로만 그리고 있고 비판의 몫은 독자들에게 맡긴다.1920년대의 시대가 그러했거니와 인문 사회면에서 발전과 발전을 거듭한 오늘날에서도 그 실상이 더욱 참혹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원 높은 국민 교육이 사람들을 부단히 교화하고 훈도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번성한 많은 종교들이 국민들의 도덕성을 끊임없이 함양시켜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참담한 실상은 그 도가 너무 지나친 것이다. 국가를 바람직하게 경영해 가야할 신분 높은 정치가들 부도덕은 필설로 표현할 길이 없고 경제인들들은 또한 부정한 방법으로 자기들 이익만 챙기기 위해 음모하는 일에 영일이 없다. 또한 그런 연유로 지성적이 젊은이들이 취업의 문을 열 새도 없이 실업자가 되어 버렸다.가정에서의 폭력은 이 나라 전통 문화를 의심케 하고, 살인, 방화, 절도 등과 함께 종류도 다양한 범죄는 날로 창궐한다. 민주주의는 남루하게 운영되어 집단 이기주의 성취의 방편으로 전락되었다. 못 살아서, 먹을 것이 없어서, 배움이 부족해서, 선악을 구분할 겨를이 없거나 아예 선악의 개념을 몰라서,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잘 나가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 불의의 사회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우리에게 한사코 술을 권하는 것이다. 술 먹는 일이 그냥 자비(自卑)일 뿐인 나약한 저항이다. 피를 토하며 죽을 거룩한 정의의 실현자(?)는 기대할 수도 없다.그런 중에도 자꾸 우리를 자각케 하는 소수의 선각자가 있긴 하다.우리나라 미래를 빛나게 예언하는 일단의 집합의식도 엄연히 존재한다.이 세상에는 그래도 악보다는 선이 번창하다고도 믿는다.촛불 켜 들고 세상 밝히자나의 시의 스승 구상 시인께서 내신 산문집에 〈하나의 촛불이라도 켜는 것이〉가 있다. 온 세상이 어둡고 사악해도 내가 먼저 촛불을 켜 들고 세상을 밝히자는 논리이다. 이는 저 유명한 펄벅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기도 하지만.어둠이 짙을수록 춧불 하나의 밝음은 엄청난 조명인 것이다. 이것은 드디어 함성이 되어 술 권하는 나라를 바르게 일 권하는 나라로 변환시키고 말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10.27 23:02

전주고등학교 터

맹자라는 경서에 이러한 글귀가 있다. 천문은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날을 받고 좋은 터를 잡아도 사람이 인화하여 서로 뜻을 모으는 것만 못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수천 년 동안 터에 그토록 우리 선인들은 터에 목말라했던 것은 검증의 효과를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지역 최고 명혈서 학생들 활동이번에는 호남의 명문이었던 전주고등학교 터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전주고등학교의 운동장은 전 지역이 크게 결혈된 터이다. 기운의 강도에 있어서도 왠만한 좋은 양택터에 비하여 주관적인 관점이지만, 3배 정도 강하게 맺힌 곳이다. 학교의 전 교정의 반을 채 차지하지는 못하는 운동장의 전 지역에 기운이 맺혔다.운동장의 서북편인 약 3,644㎡에는 여섯 종류(1개소의 혈은 음혈과 양혈로 구성)의 기운이 맺혔고, 동북편 약 3,644㎡에는 네 종류의 기운이, 운동장 전체의 반을 차지하는 남반부 9,715㎡에는 두 종류의 기운이 맺혔다. 이중 남동부는 서로 다른 기운이 서로 겹쳐 뭉친 명혈중의 양택 명혈이다. 다만 학생들이 직접 공부하는 교사(校舍)까지 기운이 맺혔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러한 전주 최고의 명혈이 장래를 짊어질 학생들이 활동하는 학교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사족을 덧붙일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 이 혈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세 결혈지 중 서북쪽의 혈을 중심으로 확인해보기로 한다.이 혈은 세 곳의 혈중에서도 으뜸으로 한 개의 주 용맥과 세 개의 보조 용맥을 가지고 있다. 주욤맥은 대전 식장산 정상(해발598m)에서 발원하여 금산 진산면 오대산(해발640m)을 거쳐, 써레봉(해발670m)을 지나 묵방산 정상(해발617m)을 관통하여 이곳 전주고등학교의 좌향을 잡는 주 용맥으로 들어와 맺혔다. 주 용맥은 장장 80여㎞로 200여리를 달려온 것이다.동편 보조맥은 이곳에서 동으로 약38㎞ 떨어진 전북 제일의 운장산 정상에서 서북으로 4.7㎞지점의 한 정상부에서 발원하여 장군봉(해발735m)과 운암산의 동편능선 정상부(해발520m)를 지나 결혈지까지 100여리를 달려왔다.서편 보조맥은 아산 바로 남측인 태학산(해발460m)에서 발원하여 공주 무성산 동편 능선을 지나, 견훤 왕릉을 관통하여 전주 서편의 황방산 정상에서 북향하여 거의 직진으로 달려와 결혈지의 서편으로 들어왔다. 그 장정은 무려 107㎞인 250여리에 달한다.남편 보조맥은 경각산 정상부(659m)에서 450m되는 지점의 한 능선상에서 발원하여(해발610m)직진하여 남고산까지 내달아 달려왔다. 전주천을 관통하여 곧장 들어오니 그 보조 맥선의 길이는 총11.3㎞ 내외이다.좋은 여건 최대한 살리는 방법 '인화'기운은 넓게 맺히면, 기세가 약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곳은 평지룡이면서도 힘차고 크게 뭉쳐있다. 그것도 모자라 동편에 같은 범위의 결혈지가 연접하여 더 이어졌다. 남쪽에는 이들 두 결혈지를 합한 것보다 더 큰 또 다른 종류의 혈이 동서로 크게 뭉쳐 일부는 기운이 동편의 혈터와 겹쳐 맺혔으니 호남 평지룡의 최고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겠다. 큰 결혈지 3개소가 서로 접하거나 겹쳐 맺힌 것은 그만큼 용혈사수(龍穴砂水)의 국(局)이 크다는 말이다. 이 지역은 조선이후 국운과 함께 잠시 주춤했지만, 호남 제1의 터이다.이러한 좋은 여건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인화이다. 즉 이제는 인업(人業)을 닦아 나아가야한다. 여기에 그 승패가 달려있지 않을까? 천시와 지리는 이미 갖추어진 셈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만이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찾아서인업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10.20 23:02

"춤추는 젓가락"

얼마 전 17년 만에 제24회 전국무용제가 전주에 판을 깔고 ‘한국인의 몸짓, 춤으로 전북을 품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주에서 숟가락 젓가락들이 모여 맛있는 춤을 추게끔 마당을 마련했다.주최는 전주시, 주관은 전주비빔밥축제조직위원회에 의해 오는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치러지는 ‘2015 전주비빔밥축제’. ‘전주! 맛있는 춤을 추다’라는 주제로 활기찬 흥과 춤이 있고, 전통과 현대, 마음과 마음이 어우러지는 축제를 전주라는 큰 그릇에 담아 맛있게 비빔 파티가 열린다. 전주비빔밥축제 22~25일 예정여기에서 잠시 전주비빔밥의 뿌리를 찾아 한걸음 더 들어가 보자. 과거로부터 전주비빔밥은 평양의 냉면, 개성의 탕반과 함께 조선 3대 음식 중의 하나였다.비빔밥이 이렇게 유명세를 가지고 오는 데는 몇 가지 갖춤이 있는데 그중 첫째가 전주의 물맛이라고 한다. 전주 비빔밥축제는 2007년 ‘전주 천년의 맛잔치’로 시작을 해서 2010년부터 ‘전주비빔밥축제’라는 명칭으로 지금까지 개최됐다. ‘2015 전주비빔밥축제’는 비빔밥 판매의 목적을 넘어서서 문화를 파는 콘텐츠 축제로 의미를 확장,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특히 젊은 연구위원들을 대거 선임해서 좀 더 활기차고 미래 지향성 축제로 나아가는데 중점적 역할을 모색했다. 몇 가지 대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자 한다.먼저 전주 팔미(八味)식재료를 활용한 음식체험마당 ‘요리조리 음식 코너’가 있다, 그리고 전주 향토음식 비빔밥 세계화를 위해서 요리경연대회를 개최한다. 전주 및 인근 지역 특산물을 활용하여 전국의 유명 요리사들이 대거 등장해 명장면과 더불어 비빔밥의 다채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그리고 takeout형 판매코너 인 비빔 마차를 운영하는데 올해 접수 결과 비빔밥크로켓, 비빔밥구이, 어묵비빔밥 고로케, 황금비빔호떡 등 먹을거리 볼거리가 동시에 선보이게 된다. 다음은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갖가지 식재료를 통한 소비자와 생산자가 자리를 같이 하는 신선재료 시장이 열린다. 축제는 어른들 아이들 남녀노소의 즐김 공간이다. 미술과 비빔 재료와의 만남을 연출 어린이들을 위한 코너가 있고 젓가락을 활용한 체험마당이 이뤄진다.장인의 비빔 정신 속에서는 각 재료들이 본래 고유의 맛과 색을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져 명품으로 탄생 시키는 데는 화이부동(和而不同)정신이 깃들어져 있다고, 현대 미술계 독보적 존재인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백남준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작업은 각자의 물질이 가지고 있는 물성(物性)의 특성을 살려서 조합해 작품을 탄생시킨다. 그것은 , 곧 나의 작가정신은 비빔밥이다”라고.우리는 현재 정치, 사회, 경제 등 극히 혼란 속에 살고 있다. 비빔밥 정신문화를 각 장르에 대입해볼 필요가 있다.먹을거리·볼거리·즐길거리 풍성이 계절 가을 단풍잎이 저 혼자 어우러질 수 없듯이 갖가지 개성들이 모여져 이뤄낸 어우러짐의 미학 밥 한 그릇 ‘ 비빔밥’, 여럿이 모여서 새로운 맛을 창조해 내는 예술의 음식 ‘비빔밥’ 한 그릇에 담긴 정성에 가치가 더해져 더욱 빛나는 우리 음식 ‘전주비빔밥’.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리는 전주비빔밥축제에 전주시민, 관광객 여러분 모두가 오셔서 먹을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를 마음껏 누리고 가시길 바란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10.13 23:02

문제는 문화의 경험이다

〈모든 것은 빛난다(All things shining〉 (휴버트 드레이퍼스, 숀 켈리, 2011). 이 책에서는 이 시대에 가치 있는 삶이란 개인주의에서 탈피해 공동체주의를 지향하고 인간의 자율성을 인정하되 나라는 독단적인 한 인간이 모든 것을 관장할 수 없음을, 그리하여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영향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감수성을 요구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삶은 위험성을 내포하는데 적극적으로 체험하고 부딪치며 깨달은 경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을 감수하지 않는 삶이란 무의미한 권태, 또 무표정과 불안으로 추락하는 삶일 뿐이라고.노령화 시대 '뭘 할지' 고민해야이 글은 어렵기 짝이 없는 이 철학 서적을 누군가 정리해놓은 내용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 2학년 때, 옆집에 사는 드러머의 연습 소리에 반해 드럼을 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대사까지 지내셨던 한 분은 현재 드럼 연습에 매우 열중하고 있다. 역시나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은퇴 후 아프리카에 다시 돌아가서 봉사활동을 하려면 그들의 리듬감을 조금이나마 배워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행히 내 주변의 사람들은 은퇴 후에 문화적인 현상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창의적인 일을 하고 있다.우리가 겪고 있는 노령화 시대에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일까. 나는 소일거리의 부재에 따른 혼란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해 왔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누구도 동물적인 쾌락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이제 무엇을 하지를 더 많이 고민하는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그 모든 고민의 시작이 문화적 소양의 결핍에 따라 개인의 창의적 시간을 어디부터 무엇부터 허용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한국에는 수많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어린이를 상대로 한 프로그램이 가장 관객이 많고 수입이 좋다고 한다. 나의 2세는 보다 문화적인 풍요를 누리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적인 소양을 갖추는 것은 세계를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또한 예술행위 자체에 대한 숙련된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 이를 분간하는 문화적 통찰은 본질적인 참여와 노력 속에서만 구현된다. 이 현상은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어떤 존재인지를 새롭게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기회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다. 내가 어떤 문화를 어디서 또 어떻게 경험하고 이 현상들 속에 있어야 하는지.오래 전부터 전북은 풍요로운 땅으로 1년 내내 수많은 문화 축제로 넘쳐나고 다양한 문화현상을 갖고 있는 곳이다. 이제 전주세계소리축제(10월 7일~11일)는 일년 내내 준비한 전 세계의 다양한 음악가들과 국내외 많은 예술인들,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는 수많은 연주자들을 초청해 5일간의 대 축제를 연다.문화 소양 갖추려면 참여를여러분들의 고장, 여러분들의 땅에서, 벌어지는 문화 현상을 당신의 자녀, 당신의 가족, 그리고 당신 자신을 위해 꼭 참여해주기를 바란다. 선택받은 이 지역에 살면서, 선택받은 문화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채 평범한 사람으로 머무르지 않길 바란다. 이 기회를 통해 가족과 소통하고, 자신의 문화적 소양과 소통하기를 바란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10.06 23:02

터 이야기 3 - 풍남문

풍남문(豊南門)은 전주부성(全州府城)의 4대문 중의 남문이다. 현재의 모습은 1767년 불탄 것을 전라관찰사였던 홍낙인이 새로 건립하고 풍남문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전주부성은 고려 말에 최유경(崔有慶)이 쌓았다고 전해진다.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원향(原鄕)이었다. 홍낙인은 중국 한(漢)을 세운 유방(劉邦)의 원향인 풍패(豊沛)를 따서 풍남문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전주부성 4대문 중 남문에 해당전주부는 호남을 다스렸던 최고 관청이었다. 풍남문은 당시 호남 최고 관부성(官府城))의 남문인 셈이다. 그런데 왜 이곳이 호남최고 관부인 전주부의 정문격인 풍남문이 들어섰을까. 반드시 이곳이 아니면 안되었을까? 이곳이 아니면 안 된다. 우주 질서에서 하늘과 땅이 있고, 땅에 최고의 영장인 인간이 자리 잡고 있듯이, 모든 만물은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필요한 위치에 있어야 질서가 잡히고 충돌 없이 순환하고 번창하게 된다.풍남문은 전주부의 관청자리와 뗄 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주변과 기운이 그렇게 만들어져있다. 자연인 것이다. 풍남문을 처음 세웠던 이는 분명하게 전주부성 중심인 관청터와의 상관관계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풍남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 위치에 건립하였을 것이다. 제 위치란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가? 풍남문지하에 뭉친 기운은 서방산 정상(해발 617m)에서 장장 50여리를 달려와 이곳에 그 기운을 뭉쳐놓은 것이다. 서방산에서 시작한 용맥은 남향한 능선을 타다가 평지로 내려와 작은 산과 들판, 작은 산을 가로질러 구억리 야산에서 서남향으로 방향을 튼다. 조경단 뒷산에 남향으로 방향을 전환한 용맥은 곧장 구 전라감영터 중심 결혈지를 관통하고 구도청현관 직전에 두 번 방향을 틀어 도청현관에 작은 문지하나 낼 정도의 기운을 뭉쳐놓는다. 다시 남으로 직진한 용맥은 동, 남으로 두 번 방향을 틀어 길을 따라 풍남문 처마 밑까지 곧장 이어진다. 이곳에서 다시 수m정도 동과 남으로 두 번 방향을 바꾼 후 마지막으로 풍남문터 기운을 만들어낸 것이다. 풍남문터 기운은 두 개 보조 용맥을 가지고 있다.동편은 묵방산 정상(520m)에서 보조 용맥이 발원해 두리봉 정상을 지나 평지로 내려온 후, 한옥마을 태조로를 따라 10여㎞를 흘러와 풍남문 터에 접하고 있다. 서편 보조 용맥은 군산 고봉리 작은 산 정상(153m)에서 발원한다. 용맥은 산 능선을 타고 달리다가 평지로 내려와 남으로 남으로 달려 만경대교옆을 관통해 직진한다. 김제 수록리에서 동으로 방향을 바꾼 후, 공덕면 황산리에서 남동향으로 다시 방향을 튼다. 다시 이서휴게소에서 동향한 용맥은 풍남문터까지 곧장 들어오게 된다. 이 풍남문 서편 보조 용맥은 장장 100여리가 넘는 45㎞를 달려오는 것이다.다시 정리하면, 전라 감영터의 중심 결혈지의 남쪽 보조 용맥은 곧장 남으로 치달아 풍남문3길에 접하여 동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수십m행도 한 후, 중심도로를 따라 풍남문의 중앙을 관통한다. 한편 풍남문 터를 만들어낸 주용맥 기운은 구 도청내인 감영터를 관통하여 구도청의 현관에 정확하게 문을 낼만한 기운을 만든 후, 바로 앞의 전라감영로에 진입한다. 사거리에서 다시 남향하여 풍남문터까지 곧장 달려가 결혈되는 것이다.전라감영터·풍남문 부부 관계감영터의 중앙 결혈지와 그 보조 용맥은 풍남문의 중심에 이르기까지 구(현) 도로에 맥선이 이어짐으로서 다니는 보행자들로 하여금 밝고 맑은 에너지를 공급한 셈이다. 한편 풍남문의 터기운은 이곳에 이르기 전에 감영터에 점을 찍고, 정문을 만들 수 있는 작은 터를 만든 후, 풍남문에 최종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니 전라감영터와 풍남문은 부부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이 틀림이 없겠다. 밖에서는 남자가 외호하고, 안에 해당하는 감영터의 제자리에 주 건물과 문이 자리 잡으면 전주의 옛 영화가 새롭게 태어나지 않을까.

  • 오피니언
  • 기고
  • 2015.09.22 23:02

학교 가는 길

이른 아침 트랜지스터 라디오 소리에 신세기 체조 귓전에 두고 등굣길에 나선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힌 살기 좋은 새마을 동네 풍경이 열린다. 시민극장 네거리에 걸린 현란한 간판 창극 대춘향전이 보인다. 주인공 화랑 창극단 김소희 명창(고창 1917~1995)이 분장을 굵고 짙게 하기가 화가 조르주 루오(프랑스1871~1958)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오버랩 된다.먹고사는 문제에만 집착한 교육정책큰 도로 건너 역 앞에 다다르면 왼편에 머리 몸통 온통 당근 색으로 물들인 커다란 양철통이 있다. 가슴에는 선인장 색 고딕글씨로 근면, 자조, 협동이라 새긴 이름표를 매단 대한통운 창고다. 양철 지붕골을 따라 커튼을 치며 어제 늦은 밤까지 내렸던 나그네 비는 수시로 들락거리는 지엠시 트럭 바퀴가 만든 저수조에 갇혀서 기름 한 방울에 쌍무지개를 띄운다. 두 눈 프리즘에 올라붙은 일곱 가지 색은 만화경 속으로 들어간다. 총천연색 70미리 시네마스코프 영화가 시작된다. 인봉리 방죽을 메우고 들어앉은 공설운동장 곁으로 백년 넘은 초등학교 정문 쪽 철둑을 지나 전주천 건너 태극산 구부능선 너머 해가 걸려있다. 턱걸이 많이 하기, 수류탄 멀리 던지기, 넓이 뛰기, 왕복달리기가 한창이다. 국어, 산수, 사회, 자연, 예능 합쳐 200개 만점에 두 개 틀리면 원하는 중학교 낙방이다. 393차 국민교육헌장 달달 외우며 사당오락 이마에 붙이며 고등학교 진학이다. M1소총 분해 조립하다가 예비고사, 본고사 가시울타리를 낮은 포복으로 각개 전투하며 겨우 통과해 대학에 진입한다. 학도호국단, 유신 독재, 518 민주화운동, IMF 경제위기 등 온갖 질곡 속을 헤쳐 온 세대, 베이비붐 세대. 1955년에서 1962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상징하는 단어들이 있다. 샌드위치 세대, 이름 없는 세대, 컴맹 세대. 비운의 세대, 퇴출 세대, 장남콤플렉스, 긴급조치 세대 등 평생 같이한 단어를 모두 모아 양쪽 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닌다. 또 반쪽(Half), 어려움(Hard), 막중한(Heavy), 복잡한 머리 (Head), 조급함(Hurry), 주저함(Hesitate) 통 털어 에이치 (H)세대라 부른다. 625를 지나 월남전, 병영 군사문화, 고도성장위기, 어느 한 곳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제대로 살수 없었던 세대다. 그래도 대한민국 900만 명 이상인 이 애물단지 세대에게도 위안이 되는 몇 가지 예쁜 단어도 있다. 세상을 살만한 곳이라 자위하면서 모두에게 희망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희망 세대(Hope), 가정과 직장을 먼저 생각하고 남의 아픔을 함께 느낄 줄 아는 인간성이 풍부한 세대(Humanity), 정치적으로 보수와 진보, 한문과 한글, 컴퓨터, 이질성 문화에 다리역할을 하는 세대다.다시 그들만의 학교 가는 길로 필름을 되돌려본다. 1967년 이 즈음 하늘 색 창틀 넘어 수세미 넝쿨 사이로 백엽상이 보이고 그 위로 휘파람 소리 내며 바빠 돌아가는 하얀 바람개비, 백년 묵은 얼룩묻은 플라타너스는 계절이 가지를 털어내고, 만국기 걸려 있는 학교운동장은 내일 가을 운동회 준비로 분주하다. 625 사변 통에 부모 잃은 고아들이 한반에 네다섯 명씩 맛있는 옥수수 빵, 죽으로 바꿔먹는 도시락 반찬은 내일은 분명 다르겠지. 그래서 즐겁다. 국어, 산수, 사회, 자연 공부하지 않아 즐겁고 20개 못 채우는 턱걸이도 하지 않으니 더더욱 즐거운 일이라. 학교 가는 길이 모처럼 기다려진다.인문학 중시, 예술 숨쉬는 학교로누구나 평생 학교를 다닌다. 초등학교에서 노인정, 양로원, 요양원, 학생부군신위 저승에 가서도 학교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로 돌아와서 대한민국은 학교가는 길 따라 삶도 따라간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가 학연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일이 도를 넘어섰다. 종교 문제와 버금갈 정도이니 말이다. 심각하다. 지금 교육계는 골머리를 싸쥐고 반성의 길을 모색하려 한다. 그간 먹고사는 문제에 집착해서 진행되어온 교육 정책이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을 정도로 가속페달을 밟으며 질주했다. 궤도를 틀고 속도를 줄여 세워 재출발을 시도할 때다. 인문학 중시하고 예술이 살아 숨쉬는 땅으로 가는 학교길이 즐거울 수 있도록.

  • 오피니언
  • 기고
  • 2015.09.15 23:02

스마트 몹 Smart Mob

스마트폰 보급률 전 세계 1위, 그것도 독보적 1위를 차지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통신 기술의 발전은 ‘시간’ 개념뿐 아니라 ‘장소’ 개념도 바꾸어 놓았다. 이에 미국 테크놀로지 전문가 ‘하워드 라인골드(Howard Rheingold, 1947~)’는 그의 저서 〈참여군중〉에서 ‘인터넷과 모바일이 등장하자 사정은 달라진다. 대중은 사회 전반의 이슈에 적극 개입하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영리한 대중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영리한 대중이 현명한 군중이라는 보장은 없다’라는 의미에서 ‘스마트(Smart)’, ’똑똑하다’라는 의미와 ‘몹(Mob)’, ‘군중’이라는 단어를 조합해 ‘스마트 몹(Smart Mob)’ 즉 ‘똑똑한 군중’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면대면 보다 가상공간 소통이 편해져한때 ‘편지’를 가장 주된 소통 방식으로 사용하던 시절에는 밤새 장문의 글을 써놓고 다음 날 아침에 편지 내용을 수정하거나 찢어버리고 다시 쓰는 등, 편지 한 장을 쓰더라도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던 때가 있었다. 그만큼 감정의 전달과 소통에 ‘시간’과 ‘장소’, ‘방법’의 제약이 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큰 위력을 갖게 되면서 실제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실제로는 곁에 부재하는 사람들의 ‘현존’이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됐다. 이러한 현상들은 상당히 우려할만한 문제다. 즉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공적인 대화가 면과 면을 마주한 상황에서 나누게 되는 자연스러운 대화보다 더 나은 입지를 갖게 된 것이다. 스마트 폰의 작은 화면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러운 대화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쪼개어 스마트폰 화면을 시청하는데 쓰고 있다. 또한 우리는 누군가와 나누던 대화를 갑작스레 중단하고 걸려온 전화에 반응하는 것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의 가상 대화를 수행하기 위해 ‘개인 간 대화’와 ‘작은 공동체’가 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한 때 나는 중요한 모임에서 참여자 모두가 회의에 집중하기를 바라며 스마트폰을 걷자고 제안했다. 회의가 끝나기 전 전화를 받거나 스마트폰에 반응하는 사람이 식사와 커피 값을 내기로 약속했다. 처음엔 모두 불안해했고 각자 전화기에서는 수많은 잡음과 진동, 알림이 엉켜서 들려왔지만 곧 우리는 평온한 상태로 두 시간 동안 회의를 이어갈 수 있었다. 모두가 바쁜 시대, 단 한 시간도 집중하기 어려운 현대인들에게 제시한 나만의 특단 조치였다. 사람들은 상대방 얼굴 표정을 살피며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가상 공간’에서 주고 받는 간편한 글들로 소통하는 것을 더 편하다고 생각한다. 엄지 손가락의 위력은 대단하다. 문자나 메일을 쓰는 시간은 내 맘대로 정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 어느 때가 적절한지 스스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언어도 깨어져버렸다. ‘감사’는 ‘ㄱㅅ’, ‘응’은 ‘ㅇㅇ’으로 대체됐다. 새로운 SNS 용어들이 등장하게 됐고 급기야 이모티콘 하나를 보내면 모든 대화가 정리되는 그런 시대가 돼버렸다. 하루동안 주고받은 메시지 살펴보길물론 우리가 편지 한 통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을 순 없다. 사용하자. 이왕이면 좀 더 현명하게 스마트폰과 SNS를 다스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스마트폰과 SNS에 반응하는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기. 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데 있어 스스로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나는 하루를 마감하면서 내가 스마트폰을 통해 나누었던 대화들, 내가 보냈던 메시지들을 쭉 살펴본다. 짧은 시간에 전달했던 나의 언어들과 감정들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바둑을 끝내고 복기를 하듯이 그날 나의 대화들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본다. 순간적으로 조절할 수 없었던 감정들과 짧은 언어들이 전달됐던 것을 돌아볼 때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독자들도 하루 동안 주고 받았던 수많은 언어들, 작은 화면 속 대화들을 살펴볼 수 있길 바란다. 스마트폰처럼 똑똑한 스마트몹(Smart Mob, 똑똑한 군중)으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09.08 23:02

"추석에 고향에는 다녀오셨습니까"

필자가 대학 다니던 시절,서울에서 하향하는 차편을 놓쳐 추석날 오후에야 집 대문에 들어 섰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눈물 글썽이며,아들이 때 맞춰 도착하지 못한 데 대한 책망의 표정과 늦게라도 집에 당도한 점에 대한 안도와 반가움의 낯빛을 교차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도 그윽히 건너다 보시는 어머니의 눈빛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그때 어머니의 심정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햇던 후회가 지금도 삭지 않았다.■ 무한한 평온행복감 만끽하는 명절추석에는 마땅히 고향에 다녀 와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포한 안부성 인사 다녀 오셨느냐는 단순 질문에도 다녀 온 사람은 으레 낯꽃이 희색으로 넘치나 그러지 못했던 사람은 잠시나마 얼굴에 우수가 지나가는 양을 우리는 허다하게 보았다. 고향에 다녀 오지 못한 사람은 그 점 하나만으로도 불효요,불경(不敬)이요, 비례(非禮)요, 그리고 자책과 자괴가 자못 스스로의 가슴에 불편한 심기로 지펴 오르는 것이다. 추석에 고향에 가서 부모님 모시고 명절을 쇤다.는 말 속에는 무한한 평온감과 행복감이 담지된다.추석이든 설이든 이들 민족의 명절에는 인간성이 풍부하게 누려지는 때이기도 하다. 화해와 용서와 베품의 기풍이 사람들 가슴마다 자연적으로 일렁이기도 한다.이때에는 낭만적 감성도 촉촉하게 넘쳐 나온다. 옛날 무슨 구원도 이때의 짧은 조우로 씻은 듯이 녹아내리기도 한다. 빚진 자는 빚을 갚고, 채권자는 과감히 빚을 탕감해 주기도 한다. 민족의 무한한 화해와 융합이 이때에 이룩되기도 한다. 추석에는 타이밍 놓칠세라 남북 이산 가족 만남이 주선되고 죄 지은 사람에게는 사면의 은전이 주어지지 않던가. 끝없이 용서하는 포용의 카테고리가 그 지름을 하냥 넓히는 것이다.아, 시선을 들어 멀리 들녘을 바라 보라. 누렇게 익은 벼 이삭들 고개 숙이며 황금 물결로 넘실거리고, 뒤안에 솟을 듯 뻗쳐 오른 검은 뱃속 고목의 감나무는 탐진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야트막한 앞 산 자락에서는 알밤 터는 소리가 골목에 이르러 정겹게 메아리로 출렁거리지 않던가. 이때는 풍요와 풍성이 그리고 성숙으로 우리네 가슴마다 감동이 여울지고, 우리 가슴가슴은 마냥 정겨움이 울컥 배어 나오지 않던가. 힘들게,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낯꽃을 활짝 펴고 이 날만은 위안을 느끼고, 불행을 언제나 실감하던 타향살이 사람들도 평안의 툇마루에 엉뎅이를 붙이지 않던가.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은 물질적 심리적 만족감과 포만감을 일컫는 의미이리라. 그래서 잠시나마 빈궁으로부터의 자유, 사회적 억제로부터의 자유가 물결지는 것이다. 비록 취업을 못해 컴퓨터 앞에서 게임으로 분노를 키우던 젊은이들도 이 날만은 방구석을 털고 나와 윷놀이에 동참하지 않는가.추석은 생애의 반전이며 삶의 반환점이다. 귀농 귀향도 이때에 결심이 선다. 저 터무니 없던 반목들은 와르르 무너지며 음흉하고 사악한 음모들은 맥없이 부스러지고 따뜻한 양지에서 손을 마주 잡지 않은가. 갑질은 을에게서 횡포를 거두고, 노사의 갈등은 이마가 맞 닿을 듯이 심장으로 만나 서로의 애로와 고충을 타개하지 않은가. 또한 이때에 정치권은 그 의무와 책무가 복지 국가 건설이요, 만민 만복의 달성에만 있는 것이므로 의자를 서로 끌어 당겨 가며 공동선을 창출하고 민생, 민본, 민주의 궤적으로만 진로를 삼아야 할 것이다.■ 서로 손잡고 둥글게 돌며 강강술래를추석은 효용성 상승의 대 전기이다. 작은 정으로 크게 상승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작은 베품으로 이것이 나비 효과를 일으켜 민족의 온갖 남루까지 벗겨내는 슬기로움에 다가서야 마땅한 것이다.보름달이 천강(千江)에 비추는 날, 밤잠을 미뤄 놓고 서로 손잡아 둥글게 돌며 강강술래 노래나 부르자. 가앙강수울래 휘휘 돌며 춤이라도 추자. 신나게 신이 나게.

  • 오피니언
  • 기고
  • 2015.09.01 23:02

터 이야기 2 - 한벽당

한벽당(寒碧堂)은 조선 500여 년간 전주 선비들이 풍류를 담아냈던 곳이다. 한벽당은 승암산의 한 줄기가 서북쪽으로 크게 낙맥하면서 다시 서편과 서남측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이 지맥은 낙맥과 수차례의 방향을 바꾸고, 활처럼 휘인 지세와 물관 만나는 지점이 한벽당이다.조선시대 전주 선비들 풍류 담아낸 곳한벽당은 승암산에서 서북편으로 이여지는 지맥 중, 남측면 경사진 아래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전주천이 북향하다가 크게 방향을 틀어 서향하는 가장 바깥과 맞닿는 곳이다. 이른바 풍수적으로 면배(面背)의 배면에 위치하여 나를 배신하는 곳이다. 일견, 물(전주천)로 보면 나(한벽당을 주인으로 봄)를 배신하듯 등지고 무정하게 흘러가는 모습이다. 더구나 무정하게 흘러가다 못해 북쪽으로부터 이곳으로 유유하게 흘러오는 물은 주인인 한벽당을 때리는 모습까지 보이지 않는가. 그렇지만 여기서 조금만 세밀하게 관찰하면, 지세가 전주천을 따라 크게 활처럼 휘이면서 배면하는 직전의 유정(有情)한 곳이 한벽당 터이다. 또 나와 충돌할 듯 돌진해오는 물의 기세는 한벽당 동편 기둥에서 벗어난 지점을 향하니, 나를 살린 것이다.결론적으로 한벽당 마루의 맨 중심선에서 약1m 위쪽에 혈(穴)이 맺혀 있음이다. 그냥 쉽게 말하자면 명당이라는 이야기다. 다만 건물을 짓는 양택혈이 아닌 음택혈이라는 점에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유수한 사찰의 부처님자리도 마땅한 양택혈이 없으면 음택혈의 정확한 혈심에 모시는 경우도 있으니, 한벽당의 격은 지리적으로 이미 격을 갖추고도 남음이 있는 셈이다. 아마도 처음 이 건물을 지을 때 확실하게 눈 밝은이가 자리를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형기(주변 지세 등)만을 위주로 하는 학인들은 이 곳의 혈자리를 인정하지 않을 기세가 아닐까. 한벽당에 들어오는 혈자리의 기운은 승암산 정상인(해발 약 300m) 중바위 전망대에서 북으로 약 30여m 지점에서 발원한다. 이 용맥은 중바위 전망대를 30여m를 지나와 남동편의 지선을 타고 낙맥하여, 해발 110m까지 내려온다. 이곳에서 다시 작은 봉우리 정상으로 치고 올라가다가 서편으로 능선을 타고 다시 낙맥하여 남으로 방향을 크게 꺾이면서 혈을 맺은 것이다. 승암산 정상부에서 발원하여 약1.6㎞를 치달아 이곳에 자리를 만들었다.이 혈터는 두 개의 보조 맥선이 존재한다. 동편 보조 용맥은 승암산 정성부의 중바위 남쪽의 265m 지점에서 발원하여 능선을 타고 전주 천변 가까이까지 내려온다. 용맥은 승암교 직전에서 조금씩 경사면을 타고 올라가다가 한벽당의 동편에 이르러 혈로 이어진다. 동편 보조 용맥은 화산 정상의 서북 능선상에서 발원하여 수차의 방향전환과, 전주천을 건너 천변을 타고 달려간다. 서천교에서 곧장 풍남문을 가로질러 오목대의 작은 능선을 타고 치달아 올라 능선의 남쪽 기슭을 횡으로 가로질러 한벽당 혈터로 들어오는 것이다.학문 자긍심 다시 일으키기에 충분한벽당 북편 마루끝에서 1~2m떨어진 지점의 바위에는 인위적으로 홈을 내어 목재를 놓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물 빼는 목적일수도). 추정키로는 아마도 현재 모습의 한벽당의 정확한 위치와 모습은 조금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도 짐작해봄직하다. 만약 바위에 난 홈 자리에 건물의 목 부재를 놓았다면 마루가 놓인 건물일 경우, 북편은 이 바위에 맞닿은 형태이고, 남쪽은 경사면이기 때문에 높은 기둥이나 현재의 모습처럼 높은 초석을 놓아 들린 마루형태였을지 모르겠다. 따라서 바위에 난 곳에 부재를 놓았을 경우, 지금처럼 혈자리가 북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마루의 중앙에 놓였을 가능성도 있겠다. 누각이나 정자를 막론하고 이렇듯 정확하게 혈자리를 잡아 앉힌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듯 주위의 산이 모두 유정하고, 물과 풍광까지 좋은 곳은 흔하지 않다. 한벽당은 단순한 누각이 아니다. 옛 전주 선비들의 글과 멋을 500여 년간이나 싣고 담아왔던 곳이다. 풍광의 시원함과 주변 지세의 복원에 따른 기운과 실제 혈의 뒷받침에 힘입어 삶과 학문의 자긍심을 다시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08.25 23:02

제54회 전라예술제

얼마전만해도 동에서 서쪽으로 직각을 곤두세우고 넘어가던 해가 하루가 다르게 남으로 남으로 갸울거리며 누어잔다. 해 뒤에 숨은그림자 꼬리도 길어져간다. 입추 지나 말복, 해방이룬지 70년 태극기 휘날리는 바람결타고 너울너울 축제의 계절이 다가온다. 가까운 곳만 해도 장수한우랑사과랑축제를 비롯하여 김제지평선축제와 완주와일드푸드축제, 전주비빔밥축제, 전주세계소리축제, 익산서동축제 등 크고 작은 지역 축제들이 기다린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1,000여개의 축제가 있고, 전라북도만 해도 50여개가 있다고 한다. 특히 1995년 본격적인 지방자치단체가 시작되면서 지역축제는 우후죽순처럼 번지기 시작해, 어떤 곳에서는 1년을 축제로 시작해서 축제로 끝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늬만 축제인 행사가 많아졌다.도내 순수 예술인 한마당 잔치축제는 지역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발생하고 그것을 통해서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계승하고, 지역주민의 단결과 자긍심, 그리고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축제는 자생적인 부분보다 정치적이고 지역 이기적인 측면에서 기획되고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선심성 행사나 지역구 관리로 오해받거나 행정능력을 실험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또한 지역 특산물의 판로를 찾기 위한 행사로 오히려 예산만 낭비하는 억지돌쇠 노릇을 하는 곳도 있다.여기에 다른 축제와는 다른 순수 예술인들의 축제가 있다. 제54회 전라예술제이다. 정치성도 지역성도 없는 예술을 전문으로 하는 예인들의 한마당 예술잔치이다. 벌써 반세기가 넘었다. 역사와 전통이 말해 주듯이 전라예술제는 전라북도 예술인들의 자존심이고 희망이고 중심인 축제이다. 올해는 9월 3일부터 7일까지 닷새간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전북예술의 용광로에 희망의 불 지피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북예술문화를 사랑하는 도민들과 함께한다.전라예술제는 전라북도 각 시군을 순회하면서 실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완주군에서 실시하게된 것도 지난해 가을 전라북도에서 열 번째로 한국예총 완주지회가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전라예술제가 지역을 순회하는 것은 균형과 공유, 예술문화에 대한 이해와 문화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지역예술문화의 발굴과 저변확대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전라예술제가 갖는 의미와 기대와 효과는 다른 축제와 다르다. 요란하지도 않고, 먹자판 공간도 만들지 않는다. 10개 협회 중심으로 자생적이면서도 특색 있게 전북예술문화의 깊이와 수준을 도민과 공유한다. 국악, 무용, 연극, 연예, 음악 등 5개 공연예술장르가 매일 밤 7시30분에 무대공연을 갖는다. 또한 미술, 사진, 문인, 건축 등 4개 협회는 다양한 작품으로 상설전시관을 열고, 영화인협회는 매일 밤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추억의 영화를 상영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예술단과 평양예술단 초청공연도 있고, 완주생활문화동호회 회원들의 우정무대도 펼쳐진다. 예술체험장 운영과 문학강연, 북콘서트와 장수사진 찍어주기 행사도 갖는다. 고무적인 것은 개막일에 완주문화체육센터에서 18개 단체 600여 명의 예술인이 참여하는 전북예술인대회를 열고 화합과 전진을 다짐하는 체육대회를 갖는다.특색있는 지역 문화 도민과 공유제54회 전라예술제가 전북예술의 용광로에 희망의 불을 지피는 의미 있는 축제가 되기를 기원하며 도민들에게 성원과 방문을 기대한다. 또한 진심어린 마음으로 도민들에게 마음의 초대장을 보낸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08.18 23:02

태그의 세상

먼저 재밌는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언제부턴가 아름다운 시 구절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푸르른 하늘을 우러러라든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과 같은 시구들은 조금은 낯선 표현들이 됐다. 그 이유는, 이미 다 알고 있듯이, 일상생활 속에서 현대인들 모두가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시각으로 이 현상을 바라보아야 할까 이러한 현상들 때문에 피해를 입은 곳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버스나 열차,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제반 시설에 광고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교통을 기다리면서 휴대전화에 집중하고 있고, 심지어 탑승을 하면서도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이동 중에도 그저 전화기 속의 세상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소통하고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어떤 관련 검색어에 속해 있는지 중요한 때, 우리는 근면과 성실, 노력이라는 가치들을 개미에 빗대어 이야기하곤 했다. 요즘은 개미 세대가 아닌 거미 세대, 거미 세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거미처럼 자신의 영역에 거미줄을 쳐 놓고 그 거미줄 안에 무언가가 걸리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예전처럼 자기를 내세우고 알리는 방법에 몰두하지 않는다. 오히려 태그현상이라는 의미에서 내가 관심 있고 하려고 하는 것이 어떤 범주에 속해있는가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규정 짓는다. 태그는 영어 사전에서 꼬리표 따라가기, 술래잡기, 추적 장치 등으로 해석된다. 태그는 흔히 가격표의 의미로 사용돼왔지만 지금은 따르다, 후속장치라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모차르트를 검색하면 수많은 연관 검색어가 동시에 뜬다. 베토벤, 하이든, 바흐, 살리에리, 영화, 마술피리, 차이코프스키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연관 검색어가 검색된다. 즉 현 세태에는 자신과 자신의 분야가 어떤 관련 검색어에 속해 있는지, 어떤 태그 내에 존재 하는지가 너무나 중요시 되는 세상인 것이다. 현대인으로서 이 시간을 살아갈 때 나는 어느 태그 내에 존재 하는가, 나는 어떤 관련 검색어와 함께 존재 하는가 역시 진지하게 고민 해봐야할 것이다.올해로 14회를 맞는 전주세계소리축제(10월 7일~10월11일)는 곧 프로그램발표회를 통해 2015년도 전체 프로그램을 공개한다. 국내외 훌륭한 연주자들을 초청하고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과연 이 연주자들은 어떤 검색어와 연결되고 어떤 태그 안에 존재 하는지도 중요한 사항이다. 단순히 한 연주자의 이름을 걸고 연주하는 것만으로 프로그램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프로그램과 연주가와 관련된 관객들, 관련된 여타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 축제를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동시에 평가되기 때문이다. 혹시 여러분들의 검색 순위와 관련 검색어 내에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빠져있다면 한번쯤은 깊이 고민해주길 바란다. 전북 지역, 전주에서 14년째를 맞는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중요성은 이 지역 내의 관련 검색, 이 지역 내에 존재하는 태그보다 어쩌면 더 넓은 범위에 태그 돼있을지 모른다. 국제적인 지위와 위상을 가진 세계 축제로서 한국의 전통음악을 알리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그 역량과 수고를 오히려 더 먼 곳에서 관련 검색어와 태그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전주세계소리축제 태그해 주길이제 다시 우리 고장에서 만들어지는 이 아름답고 멋진 음악축제에 여러분들의 힘과 관심을 보태주기 바란다. 여러분들의 고장에서 만들어지는 이 아름답고 멋진 음악 축제를 바라볼 때 자신과 전주세계소리축제는 같은 범주 속에 있어야 하며 관련 검색어에 태그 돼 있어야 한다. 여러분들의 관심을 기다린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08.11 23:02

위안부란 말, 언어도단이다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는 언어 중에는 그 본래의 뜻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왜곡해 쓰는 경우가 가끔 있다. 감기가 들어 약국에 가서 감기 낫는 약 달라고 해야 하는데 감기 드는 약달라는 꼴이 된 경우가 이와 같다. 배 아픈 약도 마찮가지 예이다.이런 상황의 역설법은, 약을 파는 약사나 약을 구매하는 사람 상호간에 소통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비인도적 행위에 반성 없는 일본그런데 저 위안부(慰安婦)란 말의 반어법은 도대체 수궁이 전혀 가지 않는다. 오히려 황당하기까지 하다. 위안이란 말을 사전적으로 정의하면 위로하여 편안하게 함이란 뜻이다.그러니까 위안부란 말을 자구적으로만 해석해 보면, 우리 조선의 순박한 소녀들이 스스로 희망해 성전을 치루는 일본군에 종군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도록 성적 봉사를 했다고 하는 말에 다름 아니니 이런 황당무계한 말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위안부란 말은 그들 일본군 가해자들이 상용하는 말이지 피해자인 우리 입에 담을 말이 전혀 아닌 성 싶은 것이다. 그들은 주장한다. 설득의 정도 차이는 있겠으나 결국 설득되고 양해되어서 자의로 모집에 응해 스스로 그 위안부란 대열에 끼게 되고 이후 일본군 전장에 따라 다니며 그들에게 성적 쾌감을 제공해 전쟁 중에 겪는 피로감을 해소시켜 주는 임무를 띤 여자들이라고. 관권으로 모집한 게 아니라 민간 업체가 모집해서 성매매를 한 것 뿐이라고. 적정한 보수도 지불했노라고 하는 등등 철면피한 주장을 늘어 놓는다. 그러니 사과나 보상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지금껏 버틴다. 어느 나라나 전쟁을 치루는 국가는 이런 일을 하는 게 비일비재한 사실이라고까지 지껄인다.그러나 우리가 당한 실제는 정반대의 논리가 아닌가? 패악한 일제의 관권으로 강제 징발되어, 말하자면 짐승 포획하듯이 납치돼 끌려가 짐승 우리같은 곳에 가두고 그들의 성만족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소위 성노예가 아니었던가? 끌려간 우리네 소녀들은 겨우 나이 14세 전후로 성의 개념도 모르는 순수 순박한 소녀들이었다. 대략 16만명이라고도 집계됐다. 하루에 당하는 성 수모는 몇 십 번에 이른다니 가공할 정경이 아닌가? 저러한 비인도적 행위를 기탄없이 자행하고도 양심의 가책은 커녕 비겁한 논리로 일관하는 양을 보노라면 인류 역사상 가장 치졸한 나라이고 그런 국민이 아닌가 하고 역겨워진다.아베를 비롯한 일본 정치 모리배들은 사과 한 마디에도 인색하므로 그들에게 분노가 삭지 않는다. 독일 수상 메르켈을 비롯한 그들 국민들은 사죄의 태도가 진정한 양심에 바탕을 두고 이에 사과와 보상에 임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메르켈은 일본 정부를 향해 진정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일본이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안겨준 피해는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심대했다. 고려 말엽부터 왜구 침입은 연년세세 무슨 정례 행사나 다름 없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삼남을 휩쓸었다고 했다. 삼남이란 전라, 중청, 경상 전역을 말함이니 그들 횡포가 어떠한지 상상을 초월한다. 약탈, 살육, 방화, 강간 등 못된 짓은 모두 골라 저질렀던 것이다. 일본은 통채로 해적국이었다. 이런 일은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자행됐다. 우리가 편의상 임진병자 양난과 근세 41년의 식민 통치만을 일컬고 있음은 다 말하기에 너무 많은 이유에서인 것이다.'일본 패군 강집 성노예'로 불러야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경계심을 풀고 이러저러한 마음 가다듬는 자세를 이완시키고 있음에 두려워진 것이다. 위안부란 말도 언어도단이며 그 용어도 바꿔야 마땅한 것이다. 왜인이 하는 말을 그대로 우리 입에 올려 쓴다니 정말 자괴심이 인다. 패망한 일본 패군 강집 성노예쯤으로 용어가 바뀌어야 한다. 저주해도 부족할 터에 위로라니 당치도 않는 말이다. 전주에서도 소녀상을 세운다 하니 만분의 일일망정 우리 마음에 자위가 되는 것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08.04 23:02

전라감영 터 이야기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나 할머니 또는 동네 어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터에 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사를 치루거나 동네에서 무슨 좋은 일, 반대로 가장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해당 집안의 산소나 집터를 들먹이게 된다. 나이를 들면서 학교와 직장을 얻고 결혼하면서 사회생활과 집안을 책임지면서 어느덧 잊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선 500여년동안 호남 다스렸던 곳터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집안의 대사 때마다 접하는 문제이다. 전문가가 평생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읽고, 스승을 찾아 평생을 헤매어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요즈음 우리사회에서 가장 익숙한 이른바 과학적인 답안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지만 이렇듯 수 천 년 동안 집요하게 터에 매달려 왔던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오늘은 전라감영을 통하여 터에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이른바 관련 책자에서 볼 수 있는 복잡한 형기적(形氣的), 이기적(理氣的)인 용어는 가급적 지양하고 감지할 수 있는 것을 사실대로 정리하기로 한다. 한편 읽는 분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은 필요시마다 설명을 덧붙이는 방식이 되겠다.조선 500여 년 동안 호남지방을 다스렸던 터이다. 실제 구 도청 주차장 윗편 지점에 약200㎡(약 60평)내외의 양택터가 동서로 길게 맺혀있다. 음·양택을 막론하고 쓸 만한 터는 반드시 주 용맥을 제외하고 세 개 정도의 용맥이 반드시 들어온다. 전라 감영터의 주 용맥선은 북쪽에서(정확하게는 壬方)들어오고, 보조 용맥은 남쪽은 전주 고덕산 정상부(해발603m)에서 시작하여 능선을 타고 학봉과 흑석골, 싸전다리, 풍남문 중심주를 지나 감영터까지 곧장 들어온다. 총연장길이는 약 6.3㎞거리이다. 동편은 보조용맥이 동고산성 중심부(해발220m)에서 발원하여 기린로를 횡으로 관통하여 약 3.2㎞를 달려와 감영터까지 곧장 들어온다. 서편의 용맥은 화산 정상부에서 발원하여 1.4㎞를 달려와 이곳 감영터에 이른다. 건물의 좌(坐)가 되는 주 용맥의 발원은 충남 청양군 앵봉산 정상(해발350m)에서 시작된다. 금강의 바로 옆이다. 주 용맥은 백제 문화단지를 지나, 부여 장암리에서 금강을 1차 관통하고, 성흥산성 서편인 금성산, 임천에서 또다시 금강을 건넌다. 미륵산 남서편인 백제 무왕릉의 바로 앞을 지나 삼례, 전북대 중앙도서관을 기점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곳부터는 곧장 감영터에 이른다. 장장80여㎞인 200餘里를 달려와 자리를 만들었다.얼마 전 전주시에서 구 전북도청 터에 전라감영을 복원한다고 발표했다. 터다지기 행사를 하고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전주는 역사와 문화를 중시하고 그 뿌리가 자못 깊다. 나라일이나 개인일이나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얕으면 번성하기 쉽지 않다. 번성한다 해도 오래가지 못하거나 수준에 미치기 어렵다. 터의 중요성은 수천 년 전부터 증명된 것이다. 전주가 뿌리와 문화를 하나씩 찾을 때마다 그만큼 발전과 안전과 끈기와 편안함과 포용과 베품과 마음의 소통이 그만큼 열릴 것이다. 이는 곧 터의 힘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선조들 지혜에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제 터에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 들어서야 한다. 그래야 힘을 받는다. 주 출입문 역시 남쪽의 보조 용맥에 맞추어 문을 내야 한다. 그래야 오가는 사람들이 기분 좋게 기운을 받으면서 출입한다. 풍남문은 제 터에 제대로 들어섰다. 이는 당시 터의 정수를 아는 우리 선조의 배려덕분이다. 이제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부끄럽지 않도록 힘을 모으고, 하나씩 바르게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이제 우리 전북이 크게 도약하는 시기가 올려나 보다.△최맹식 원장은 단국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15.07.28 23:02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