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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K'와 냉소주의

익명 또는 보통명사의 개념쯤으로 독해되는 ‘K’는 모차르트의 작품 번호로 유명하지만, 카프카의 소설 〈성(城)〉에서 주인공이 ‘K’라고 호칭되어 더 유명해졌다. ‘K’는 목수로서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구하는 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가 어떤 성을 찾았는데 문밖에서부터 거절당한다. 생소한 제도로 막히고, 절차의 까다로움으로 거부되고, 고약한 인습과 상이한 문화로 그의 접근이 차단된다.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인간성 차원도 아니며 다만 외지에서 굴러온 낯선 사람이라는 점 하나로 배척당한다. 이 익명의 ‘K’는 성밖에서 마냥 서성거리는 국외자일 뿐이다. 모든 거부의 눈빛 앞에서 주눅이 들고 스스로 하염없이 왜소해지는 심대한 좌절을 경험케 된다. 카프카 ‘K’의 우울과 침통이 감전되는 듯하다. 외지에서 왔다고 배척해서야필자의 친구 한 사람이 좋은 직장을 버렸던 예화 하나가 떠오른다. 그는 제법 내로라하는 큰 회사를 다녔다. 초반에는 행복하고 희망한 출근이었다고 했다. 사장님도 인품이 고매하고, 회사는 퍽 합리적이며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가 소속한 ‘과’에서는 거의 모두가 경상도 사람들이라 그들의 반감은 뿌리가 너무 깊어서 저 ‘카인의 냉소주의’에 몸서리쳤다고 했다. 정치인 거두들이 지역감정을 되새김질할 때여서 그곳 과원들과 동화되기는 너무나 어려워 직장을 스스로 사직했다는 고백이다. 가령 점심때가 되면 자기들끼리만 눈짓으로 교감하여 한 식당으로 몰려가므로 혼자만 덩그렇게 남는 신세였단다. 식사때 정경도 그렇거니와 업무처리 하나하나에서는 오죽했을가. 그런데 우리 사회에 만연된 것은 저러한 지역 감정뿐만 아니다. ‘ㅈ’신문을 구독하는 사람과 ‘ㅎ’신문을 구독하는 독자는 서로 친구지간일망정 한자리에 앉았다하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가장 정론에 입각하여 불편부당하게 진실을 기술해야 할 신문이 저리도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소위 거짓 정의를 내걸고, 가장 이성적입네하고 위장하는 모습은 너무나 꼴사나운 모습이다. 대전제가 민주-국민이 주인이 된다는 발상에서 펜은 달려가야 함에도 어떤 집단에 영합하는 자기 모순 속에 함몰하는 꼴이라니, 종교의 화두가 그렇고, 정치의 각론이 또한 그렇고, 국가관이나 시국관이 또한 양극 쏠림현상으로 치달으니 ‘정반’에서 ‘합’은 절대로 도출되지 않는, 냉소주의의 영토가 되어버린 것이다. 문화의 충돌도 아니다. 기득권층과 이에 반하는 계층의 상호 이반이다. 서울 강남권과 강북권의 상호반대를 위한 반대의 의식들은 또한 어떻던가 또는 어떤 분야, 그 재정적 편중과 예산의 몰아주기 행태는 치졸을 넘어 파렴치함의 극에 도달한다.우주의 대 섭리 안에서, 과학이나 철학의 영토인 공적 공간이란 개념에서 출발한다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에 입각한다면, 합리적 이성주의가 이 땅에서 향유되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반목의 장막 거두고 화목해야조영남의 ‘화개장터’란 노래가 있다. 5일장으로, 하루는 전라 경상 두 고을 사람들이 서로의 냉소주의 장막을 거두고 화목하다는 내용이다. 차라리 5일장에서, 나흘은 화목하고 하루만 냉소해도 그게 나을 성싶다. 아니 5일뿐만 아니라 세월 네월 언제나 영원함으로 가는 민족 화해의 계단에 올라서야 할 것이다.‘세월호’는 냉소의 ‘네월호’가 파생, 만연되고, 단순한 인도주의적 정의도 흐려지고 있다. 그 참상의 현장인 진도 앞 바다는 싸늘한 냉소의 짙은 안개가 뒤덮고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반 인간주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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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14 23:02

후백제와 초기 청자, 진안 도통리

우리는 청자를 소개할 때마다 ‘고려’를 붙여 ‘고려청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비색청자와 상감청자를 천하제일의 명품으로 꼽는데 어느 누구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부터 청자 제작 기술이 들어온 시기와 관련해서는 9세기부터 10세기까지 그 견해가 다양하다. 아마도 그 주된 배경으로는 중국 청자의 본향인 오월과 국제외교를 가장 왕성하게 펼친 후백제의 역사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절강성 항주에 도읍을 둔 오월의 월주요가 우리나라 청자 기술의 출발지라는 점에서는 모두들 의견을 같이 한다.진안 도통리만 문화재로 지정 안돼후백제는 892년 광주에서 나라를 세우고 고려에 멸망할 때까지 45년 동안 오월과 국제외교를 펼쳤다. 그러나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오월에 한 차례의 사신을 파견한 것이 두 나라 국제외교의 전부였다. 918년 견훤은 말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배에 말을 실어 오월로 보냈다. 927년 오월 왕 전유는 감사의 뜻을 담아 반상서를 대표로 하는 사절단을 전주에 파견했다. 견훤과 전유는 왕대 왕으로 41년 동안 양국의 국제외교를 이끌었다.우리나라의 역대 왕조 중 오월과 국제외교를 가장 역동적으로 펼친 나라가 후백제다. 그렇다면 후백제가 오월과 반세기 동안 돈독한 국제외교의 결실로 오월의 청자 기술이 후백제로 전래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후백제와 오월의 사신들이 오갔던 사행로가 우리나라 초기청자의 전파 루트가 아니었을까? 이제까지는 오월의 도공이 고려로의 망명이 큰 지지를 받았었다.우리나라 초기청자는 오월의 월주요 도공들이 직접 파견되어 벽돌 가마를 만들고 청자를 구웠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도공이 중국에 가서 배워 온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에 청자 기술은 오늘날 원자폭탄처럼 국가의 최첨단 기술로 국가에서 직접 관리 운영했다. 오월도 국가 차원에서 월주요의 도공을 특별히 우대하고 후원했다.우리나라와 중국은 가마의 구조와 그 운영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중국은 벽돌 가마로 그 길이가 40m 이상 되는 대형이지만, 우리나라는 흙 가마로 20m 내외이다. 청자를 굽는 방식에 있어서도 중국은 딱 한번만 구웠지만, 우리나라는 초벌구이를 한 다음 유약을 바르고 다시 굽는 재벌구이다. 천하제일의 고려청자를 빚은 과학의 신비가 가마의 구조와 굽는 방식에 그 비밀이 숨어있다.지난해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가마터 발굴조사에서 후백제와의 관련성이 제기됐다. 중국식 벽돌가마에서 초기청자만을 생산하다가 갑자기 가마터의 문을 닫았다. 중국제 청자로 학계에 보고된 전주 동고산성에서 나온 초기청자도 그 생산지가 진안 도통리로 밝혀졌다. 그런데 후백제가 갑자기 멸망함으로써 전주로의 공급이 끊기고 도공들의 강제 이주로 인해 후백제의 첨단국가산업단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다.도자문화 관광정책에 포함해야우리나라 초기청자 가마터는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대부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진안 도통리만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다. 일억 년 전 큰 호수였던 진안고원의 고령토와 조상들의 지혜가 만나 일궈낸 것이 진안고원의 도자문화다. 진안 도통리 초기청자부터 손내옹기까지 도자문화를 찬란히 꽃피웠다. 요즘 마이산 개발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진안군의 관광전략이 발표됐는데, 진안고원의 도자문화를 관광정책에 꼭 포함시켜 관광활성화의 동력으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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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0.07 23:02

축제는 광장에서

다시 축제의 계절이다. 가장 전주다운 축제인 소리축제를 비롯하여 여기저기서 열리는 축제들로 동네가 들썩인다. 거리마다 온갖 색깔의 현수막이 넘쳐나고 유인물들이 흩어져 날린다. 관광객 오백만 시대라는 전주 구도심의 즐거운 가을 풍경이다. 이제 축제를 즐기기 위해 전주를 찾는 이들도 제법 많아졌다. 그 대부분은 블로그를 통해서 하루 일정을 빠듯하게 확인하고 오는 젊은이들이다. 즐길 준비, 놀 준비로 단단히 무장한 축제관광객들이다. 근엄한 공연장·막힌 천막 벗어나하지만 아직도 이 축제의 계절에는 허전한 구석이 많다. 전주 사람들의 표정이 그다지 흥겨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축제의 최대 상품은 지역주민이다. 관광객들은 그 지역 사람들이 자신들의 축제를 얼마나 흥겹게 즐기고 있는지 보려고 간다. 거기에 뒤섞여 함께 놀아보려고 불원천리 찾아가는 게 축제관광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독일 맥주 맛 궁금해서 옥토버페스트에 가는 거 아니고, 요사쿠이 마쯔리에 풍경 구경하러 가는 거 아니고, 자라섬 째즈페스티벌에 음반 사러 가는 게 아니다. 전주의 축제는 결정적으로 무엇을 팔까? 한 마디로 전주 사람을 팔아야 한다. 전주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전통문화도시임을 자랑하며 그것으로부터 이끌어낸 음식, 소리를 컨셉으로 한 축제들을 내세워왔다. 하지만 음식도 소리도 그 자체만으로는 상품이 될 수 없고 축제로서의 폭발력도 지닐 수 없다. 전주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서 얼마나 흥겨워하고 더불어 잘 노는지 보여주지 않으면 결국은 전국에 널려있는 지루한 특산물 축제들과 다를 바 없게 될 것이다. 전주사람들이 축제를 통해서 잘 노는 모습은 어떻게 보여줘야 할까? 문제는 축제의 공간이다. 근엄한 공연장이나 식당에서, 임시로 만든 가설 천막들 언저리에서 전주다운 흥을 펼쳐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다시 거리와 광장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옛날 식으로 부르자면 동네의 큰 마당이고 고샅이다. 고샅은 동네사람들이 무시로 오고 가며 이야기를 물어 나르던 선(線)적 소통의 공간이다. 이 작고 좁은 길을 통해서 크고 작은 동네의 소식들이 사방팔방, 이 집 저 집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마당이야말로 이 작은 길들이 만나고 서로 뒤엉키는 면(面)적 소통의 공간이었다. 마당에 이르러 비로소 개인들은 집단이 되었고 집안의 밀실에 웅크려 있던 희로애락의 사연들이 광장으로 나와 뒤엉켜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런 일들이 어떤 계기를 만나서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전승되면 축제가 된다. 그런즉 고샅과 마당, 거리와 광장은 축제의 본질적 요건이자 가장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다. 축제를 공연장이나 술집, 가설 천막과 특산물 진열대 안에 가두려 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삶으로부터는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넓은 마당·길거리서 놀 수 있도록그런 축제가 관광객들에게 매력 있을 리 없다. 지역민들의 애환, 전통과 문화가 그대로 살아있는 생생한 축제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도시 한 복판의 광장과 그를 둘러싼 거리에서 펼쳐진다. 영국 레딩의 워매드 사이트가 그렇고 호주 애들레이드의 도심 공원인 보태닉 파크, 멕시코 문화예술의 성지와도 같은 소칼로 광장 등이 다 그렇다. 멀리 갈 것 없이 서울시청 앞 광장은 어떤가? 전주의 구도심에는 아직도 광장이 될 만한 공간, 길놀이나 퍼레이드를 펼칠 만한 공간들이 남아 있다. 종합경기장 터도 그렇고 최근 들어선 전통문화의전당처럼 새로 만든 건물들의 앞마당도 있다. 발상을 바꾸면 다 보인다. 문화가 관광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외치는 시대라 자꾸 떠오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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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30 23:02

접었던 꿈을 다시 펼치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꿈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적응해 살다 보니 자신의 꿈과는 멀어지고 다른 방향의 삶을 사는 경우도 많다. 과거의 꿈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시 그 꿈에 도전하며 삶의 가치를 알아가는 이들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문화 관련 일을 하는 나는, 현장의 삶에 관심이 많아 이곳저곳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이 일상의 한 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삶을 통해 어떠한 삶도 소중하지 않은 삶이 없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그 시대의 문화를 만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자신의 끼와 소질 스스로 인식하게내가 예술을 전공해서인지 유독 관심이 가는 삶이 있다. 예술분야에 끼와 소질을 가지고 있었으나, 가정 형편상 자신의 꿈을 접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달려온 삶이 그렇다. 이제 그들은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 내재하여 있는 끼와 소질을 알고 있기에 아련한 꿈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그런 이유로 시작한 것이 그들에게 자신의 꿈을 스스로 찾을 기회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 방법은 일반적인 예술 교습처럼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끼와 소질을 스스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자랑할 기회와 그것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해주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다양한 만남에서 여러 꿈을 만나게 되었다. 사진을 하고 싶어 하는 분, 노래와 연주, 작곡을 하고 싶어 하는 분, 글을 쓰는 분, 그림을 그리며 화가가 되고 싶어 하는 분 등, 그들 각자의 표현은 다르지만, 그들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들과 만난 지 3년이 지났다. 그동안 내가 본 그들의 열정은 여느 예술가 못지않았다. 어느 날, 휴대전화에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와 ‘급 연락 바람’이라는 문자 메시지가 찍혀 있었다. 전화를 했더니 “요즘도 많이 바쁜가 봐? 잘 지내고 있지? 한번 보고 싶네!” 한다.(솔직히 지난주에도 만났다.) 마치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여러 번 ‘부재중 전화’가 찍혔음에도 막상 통화 내용은 형식적인 안부 인사뿐이었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그가 그린 그림을 내게 얼른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먼저 “제가 오늘 한번 놀러 가도 될까요?” 했더니 “어! 그래 좋지. 내가 요즘 이런저런 것을 좀 해 봤는데, 자네 맘에 들지 모르겠네, 하하! 빨리 와!” 한다. 마치 숙제를 잘해 놓고 칭찬을 기다리는 어린아이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그에게 갔더니 그는 그동안 그려놓은 그림을 보여주며 작품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작품 설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날 줄을 모른다. 그에게 앞으로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위해 공간을 만들어 함께 작품 활동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살고 싶다고 한다. 주변서 인정해주면 살아있음을 느껴내가 아는 그들의 생활은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원래 직업과 다시 찾은 꿈을 위해 두 개의 삶을 오가며 이제 더욱 바빠졌다. 그런데도 자신을 주변에서 인정해주기에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일어난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시각에서 자신이 사회 일원으로 주체가 되어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적극적인 사회활동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말에 늦었다고 할 때가 시작이라고 했던가!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살며 주변에 인정받는 삶이 얼마나 큰 행복임을 그들을 통해 배워가고 있다. 그들을 통해 나 또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의문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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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3 23:02

'아니면 말고'의 교훈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여우가 포도송이를 따려 했다. 아무리 높이 뛰어도 포도덩굴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자 여우는 ‘저 포도는 매우 신 거야’하고 그만두었다는 이야기.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하지는 않고 스스로를 기만한 것이다. 자신의 실패를 정당화하며 자가당착하는 그런 세상 사람들의 일탈을 풍자로 경계한 우화인 것이다.삶 포기하는 우를 범해선 안돼필자는 한때 유행하던 ‘아니면 말고’라는 말을 상기한다. 정치권에서 득세한 세력이 자신들을 추격해오는 상대편에게 허위 사실을 퍼뜨려 그에게 심대한 인격 모독을 끼친 뒤, 이에 강력히 항의하면, 그때에 슬그머니 ‘아니면 말고’하면서 물러서는 야비한 경우들이 많았다. 이미 그 헛소문으로 상대편의 이미지는 말이 아니게 추락한 후였다.그야말로 비굴한 언동의 극치였다. 이때에 그 헛소문을 일컬어 유비통신이라 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전이 막바지에 치달을 즈음 정치권에서의 마타도어는 한국인의 얌전한 정서를 뿌리 채 뒤흔들고도 남음이 있었다.그런데 이솝 여우의 ‘아니면 됐고’나 유비통신의 ‘아니면 말고’는 그 의미상 사뭇 대칭적이다. 전자는 자기 변명을 위해 소용된 말이고, 후자는 상대방 비방을 목적으로 한 꼴사나운 언사인 것이다. 그러나 다같이 경계해야 마땅한 언동인 점에서는 틀림이 없다.필자는 한 걸음 더 나가서 ‘아니면 말고’를 우리가 슬기롭게 살아가는 데에 교훈으로 삼자는 화두를 감히 던진다. 말하자면, 어떤 일을 성취하고자 하여 열심히 정려하고서도 실패하면 스스로 심한 좌절감이나 낭패감에 함몰되어 생동하는 삶을 포기하는 우를 범할가 싶어서이다. 속담에 ‘놓친 물고기는 더 커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역설로 받아들여서 놓친 고기는 너무 작고 하찮은 것이라고 스스로의 마음에 다잡자는 것이다. 한때 성취가 좌절되면 이를 빨리 체념하고 패망감에서 탈출하여 제2의 목표를 설정하다면 언제나 생동하는 슬기로운 삶이 전개될 터이다. 그러니까 놓친 것, 실패한 것, 운이 따르지 않은 것 따위를 몰아쳐 ‘아니면 말고’를 목청껏 부르짖을 일이다. 이는 인생 반전을 위해 지극히 필요한 자기 심리적 치유의 한 수단인 것이다. ‘돈 잃고 사람 잃은다’라는 말은 돈 잃었을 때 곧 바로 ‘아니면 말고’를 스스로에게 외치지 못하고 연속적으로 불운의 기운 속에 자신을 침몰시켜 버린 자기 괴멸의 경우인 것이다. 말도 안되는 자해라든지,자학이라든지, 또는 자살하는 행위는 이 ‘아니면 말고’를 일상화하지 않는데에서 연유한다. 성취하여 거머쥔 것은 거룩한 것이요, 놓친 것은 한낱 티끌이요, 앞으로 쟁취하려는 것은 높고 높은 가치의 대상이라고 자신에게 자꾸 관념지울 일이다.저 다윗왕이 했다는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명언은 차제에 효용성을 높인다. 오늘 노심초사하며 또는 전전긍긍하며 애태우던 일은 내일이면 아무것도 아닌 티끌에 지나지 않는 법, 한 국가의 흥망성쇠까지를 일컬어 이 ‘또한 지나가리라’한다면 우리의 오늘 이쯤에서의 우울은 대번에 싹 가시고 말 것이다.앞으로 할 일, 큰 가치 있다고 생각을필자는 근래에 온 세상을 다 놓고 자살하여 이승을 떠난 한 친구를 자주 생각했다. 그는 비교적 유복했는데도 처자식과 지구 전부를 티끌로 여기고 어둠에게 묻혀버렸다. 그는 필자에게 반면 선생이 되었다. 하루하루 나에게 몰려오는 번뇌나 어려운 일상이 친구의 버린 것들에 비하면 너무 작은 미세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이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었다. 두려움도 삭고,부끄러움도 쇠멸되는 소위 수신의 경지가 이룩된 셈이다. 결국 일체유심조라는 명언에 귀의한다. 포획한 포도는 달고,놓친 포도는 시며, 앞으로 다시 따려는 포도는 천금의 가치가 있다고 여김으로써 나를 영활케 하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충고한다. “인생은 헛되고 허무하다. 그러나 치열하게 생동하라. 그대의 운명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던져지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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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16 23:02

팔달로를 '로얄 마일(Royal Mile)'로

한옥마을의 관광객이 누구도 상상 못 했던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이대로 그냥 둔다면, 우리가 각자 어떤 한옥마을을 꿈꾸었든지 간에, 한옥마을은 ‘돈’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것이다. 전통문화 중심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차분하고 편안한 마을이 되길 원했던 이들은, 이 ‘돈’의 속도와 흥청거림이 너무 어지러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초심으로 돌아가길 부르짖는다 해도, 이미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막을 길도, ‘돈’을 따라 움직이는 투자자들의 욕망을 제어할 길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할 일은 전통문화도시로서의 품격과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 이 관광객들의 발길도, 주민들의 현실적 욕망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 방안 중의 하나로 전주의 구도심 전체를 공간적 거점으로 삼는 거리예술축제를 구상해보면 어떨까?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성공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로얄마일은 에딘버러 성(Edinburgh castle)에서부터 왕궁이 있는 홀리루드 수도원(Holyrood Abbey)까지의 약 1.6 Km 거리를 말한다. ‘마일’이라는 단어의 기원이기도 하다. 이 거리는 이른바 구도심의 한복판이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인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중심공간이다. 해마다 칠팔월이 되면 이 거리에 전 세계의 공연예술 관계자들이 모여들어서 밤낮없이 자신들의 작품을 자랑하고 생각을 나눈다. 그리고 이 거리에서 발굴된 작품들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연투어를 떠난다. 이 기간 동안 로얄마일 주변에서는 프린지페스티벌 말고도 문학, 미술, 영화 등 다방면의 예술축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당연히 경제적 부가가치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에딘버러 시민들이 축제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전주 한옥마을의 흥청거림이 조금 더 색다르고 생동감 있는 도시의 모습으로 이어지게 하는 방안으로 팔달로에 주목하면 어떨까? 오거리 영화의 광장으로부터 풍남문 광장으로 이어지는 팔달로를 주말 거리축제의 공간으로 내어주자는 것이다. 물론 날씨가 좋은 계절을 골라서 구상할 일이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주말 사흘 동안 팔달로와 주변 거리들에서 온갖 장르의 거리예술가들이 자신들만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 팔달로를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시간과 구간은 세심하게 점진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주말마다 이 거리 곳곳의 광장은 물론이고 원래 있던 소극장과 갤러리들, 크고 작은 카페와 길모퉁이 공터 등에서 온갖 장르의 예술가들이 길거리 퍼포먼스를 펼치는 축제와 예술장터가 펼쳐진다면, 그야말로 가장 전주다운 진풍경이 벌어지지 않을까? 이 거리는 전동성당, 경기전, 풍남문, 객사 등의 역사적 공간과 영화의 거리, 동문예술거리, 웨딩거리, 남부시장 등이 가로 세로로 이어진 전주구도심의 등뼈와도 같다. 이들 공간을 잘 활용하고, 연극,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 이 지역 각 분야 예술가들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결합한다면, 거기에 이 거리에 오래 살아온 주민들의 현실적 욕구를 잘 결합한다면, 팔달로가 전주의 로얄마일을 꿈꾸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구도심 거리서 문화예술축제를포화상태에 이른 한옥마을의 흥청거림이, 전국, 나아가 세계에서 몰려온 거리 예술가들의 창의적 에너지와 뒤섞인다면, 전주는 그야말로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역동적인 전통문화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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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02 23:02

땅에서 희망을 보다

세월호는 우리 눈앞에서 침몰했다. 꽃 같은 젊은 생명들과 함께. 그 비극적 참사를 지켜만 봐야 했던 우리는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그리고 그들이 떠난 뒤에야 그 소중함을 인식했고, 우리 삶과 사회구조의 문제들을 보게 되어 다시 한 번 통곡하며 미안해하고 있다. 이제 그들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려 다시는 미안한 세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함께 힘을 모아 아이들을 지켜내야 할 시기이다.■ 타율적으로 형성되는 청소년문화우리 아이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교육제도의 좁은 틀 안에서 자신들의 욕구와 바람은 숨죽인 채, 공부라는 경쟁사회의 굴레에 자신들의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경험들이 필요한 시기에, 자율적 경험과 여가를 즐길 기회가 부족하여 청소년문화가 다양하게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있는 문화 활동마저도 대학 입시와 연계된 활동이나 기성세대의 목적과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로 청소년문화는 질적 양적으로 매우 협소하다. 청소년문화는 청소년이 당사자이기에 그들에 의해 자율적으로 형성되어야 하나, 그 또한 도 타율적으로 형성되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이다.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이 인터넷 중독이나 일탈과 비행,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들로 몰고 가는 것은 기성세대의 불안과 욕심이다. 이러한 사회 현실을 변화시켜내는 노력 없이 ‘미안함’도 ‘지켜준다’는 말도 거짓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기성세대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있기에 기성세대가 지니지 못한 다름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다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없는 상황에서 기성세대의 것들을 강요만 한다면 우리 미래에 대해 밝음은 사라질 수 있다. 이들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세상과 함께하기 위해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청소년들도 많이 있다. 기성세대가 바라볼 때 학업 걱정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그들 삶의 주인으로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고 본다. 내가 아는 열다섯의 최 군은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친구이다. 노래에 대한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그에게 노래를 왜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노래가 있어 자신이 매 순간 살아있음을 발견하고 행복을 느낀다 했다. 자신의 노래가 세상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되길 바라는 믿음으로 노래를 한다고 했다. 그는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는 달리 학교는 다니지 않지만, 계획성 있게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 용기가 대견하고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 삶의 주인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사람들의 관심은 없지만, 지역의 주인으로서 지역의 지속가능 변화를 꿈꾸며 자발적으로 모인 고등학생 동아리도 있다. 그들은 지역 현장을 살피며 지역 문제를 찾고, 그들이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계획하며 지역사회에서 도움이 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의 활동은 스펙을 쌓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의 자질을 통한 지역사회 참여이다. 그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의 확장과 함께 지역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이 자율적 주도적으로 실행되고 있어, 지원금을 지원받지 않는 활동으로 추진되더라도 관련된 교육계나 지자체에서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 땅에서 펼쳐지고 있는 희망이며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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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26 23:02

제2의 청년, 60대를 칭송하며

루소는 사람이 60대에 이르면 오직 탐욕으로만 움직여진다고 했다.그러나 공자는 60세를 이순(耳順)이라 일컬었다. 세상일과 자연의 이치를 바로 알고 깨달으며 거친 소리도 순치(純致)해 듣는다고 했다. 두 명인의 표현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어서 마치 산의 정상과 깊은 구릉의 대비만큼이나 극단의 차이를 보인다. 전자는 속물 근성의 천박함을, 후자는 철인에 가까울 정도의 고매한 인품을 강조한다.시골과 도시, 근대와 현대 아우른 삶60세를 기점으로 활발하던 경영은 마감되고, 지난 적 삶을 성찰하거나 음미하는 시기다.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성취와, 아직도 저급한 가치에 탐닉하며 미로를 헤매는 등의 두 가지 모습으로 구분해 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러한 평가 외에도 60대에는 대체로 한 가지 더 불순한 이미지가 붙어 있다. 회색 세대라는 의미의 외연(外延)으로 분장된 것이다. 언제나 생활하는 시간대도 과도기다. 생성과 소멸 사이, 생산과 소비 사이, 상승과 퇴락 사이 등의 어름에서 멈칫거린다. 흑백의 논리가 서로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극렬하게 논쟁할 때에도 60대는 엉거주춤 절충의 공간에서 쭈밋거리기만 했다. 어떤 사조(思潮)나, 의식이나, 생활 양식이 변천의 급류를 탈 때에도 주체자로서가 아닌, 객체자로서 휘둘림을 당한 세대다.우리나라 산업이 발달되어 오던 때에도, 전통의 고수를 집요하게 주문하던 앞 세대와, 그들이 전에 향유하던 문화를 인습이라고 단정해버리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야 했다. 열심히 일해서 가정을 윤택하게 이뤘음에도, 우리나라 생활 수준을 이만큼이나 높이는 데 기여했음에도 이제는 오히려 전진의 걸림돌로 하대받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모든 사회 현장에서 퇴출의 우선 순위로 지목된 지 오래다.앞 세대를 잘 모셨지만 뒷세대에게는 소홀하게 대접받아도 내색조차도 할 수가 없는 세대인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세대요, 빚보증을 잘 서 주던 세대였다. 청장기엔 집 장만에서부터 모든 생활 전선에서 진력하여 가족에게 고스란히 희생된 세대이다. 조상들 무덤을 잘 돌보았으면서도 훗날 자신의 주검을 어떻게 부탁해야 할 지를 걱정한다.우물 안 개구리가 밖에 나와, 세계화 정보화 세상에서 늘 쩔쩔맨다. 컴퓨터에 조롱당하고 스마트폰이란 괴물에 농락당한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생경하다. 음식은 서양풍으로 변해 그들의 식탁은 자신의 기호를 고집할 수가 없다. 어린이날은 융숭했지만 어버이날은 카네이션 조화 한 송이로 만족해야 한다. 퇴직금은 자녀 교육비다 혼수금이다 하여 이미 통장이 고갈 상태다. 60대는 매사에 회의를 품는다. 결단은 더디고, 번민의 회랑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다. 양보하고 망서리며, 진정한 자아는 방기한 상태다.모든 세상 소리를 순화 경청할 수 있어그러나 이제는 60대를 칭송하고 경륜을 높이 사야 할 때다. 모든 분야에서, 그것이 예술이건, 학문이건, 또는 고급 문화를 영속시키는 일이건, 이제는 이 60대에게 마지막 선승(善勝)의 결말을 도출하는 신성한 역할을 맡겨야 한다. 60대를 내치는 가정이나 국가 사회는 쇠락하거나 어두운 미로에서 유랑할 것이다. 그들은, 도시와 시골을 거쳐온 삶, 근대와 현대를 아우른 삶이었다. 많은 경험과 이성적 사변으로 변증법적 예지와 슬기를 창도할 것이다. 60대는 이미 사악함은 걸러지고 모든 경역에서 벌써 달인이 되어 있다.모든 세상소리를 순화 경청하는 이순의 60대를 칭송해야 할 때에 공자의 거룩한 말씀이 퍼뜩 상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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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9 23:02

후백제 왕궁 터 찾아야 한다

흔히 왕이 거처하는 궁전이 있던 곳을 왕궁이라고 한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최상의 격식과 위용을 갖춘 곳이다. 한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도읍을 상징하는 최고의 건축물이다. 왕궁을 중심으로 도읍을 둘러 싼 성벽을 도성이라고 하는데 달리 서울로도 불린다. 37년 동안 후백제의 도읍인 전주에는 도성 안에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왕궁이 있었을 것이다.강원도 철원 북방 풍천원 벌판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 태봉의 도성은 왕궁 터를 감싼 왕궁성과 내성, 외성의 3중성 구조다. 비록 철원에서 쓴 태봉의 역사가 14년으로 짧지만 외성의 둘레가 12.3km로 남북으로 긴 사각형의 도성 안에 왕궁 터가 있다.전주 후백제 왕궁터 아직 못 찾아개성 송악산 남쪽 기슭에 고려 왕궁 터인 만월대가 있는데, 본래 왕건이 태어난 집터로 알려진 곳이다. 조선시대부터 처음 불리기 시작한 만월대는 궁성과 황성이 정전인 회경전을 이중으로 감쌌다.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소실되어 그 터만 남아있던 것을 참여정부 때 인력과 예산을 지원해 발굴조사가 시작됐다.후삼국 때 궁예의 태봉, 왕건의 고려와 패권을 다툰 후백제의 경우만 왕궁 터를 찾지 못해 안타깝다. 다행스러운 것은 후백제의 도성으로 추정되는 견훤의 성터가 도면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때 발간된 ‘전주부사’에 그 평면형태가 반월형을 띠는 성벽이 온전하게 표시되어 있다. 전주 동쪽에 우뚝 솟은 기린봉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는 승암산을 거쳐 전주천을 건너 남고산성을 휘감았고, 북서쪽으로는 서낭댕이를 지나 반대산까지 이어졌다.1960년대부터 전주시의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성벽의 흔적이 대부분 유실 내지 훼손됐다. 최근에 전주 시민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면담조사와 현지조사를 통해 도성의 성벽이 상당부분 복원됐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 후백제의 왕궁 터는 최소한 반월형의 도성 안에서 찾아야 한다.후백제 왕궁 터와 관련하여 전주 동고산성설과 물왕멀설, 전라감영설, 인봉리설이 있다. 그런데 후백제의 도성과 무관하게 왕궁 터로 비정된 곳이 전라감영지다. 엄밀히 말해 전라감영설은 전주부성의 남문인 풍남문 바깥에서 전주객사를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삼국시대 이후의 어떤 왕조도 도성 밖에다 왕궁을 둔 나라가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현재 태봉의 도성은 휴전선이 그 중앙을 관통하고 있지만, 2006년 철원군에서 축소모형으로 제작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황성 옛터로 알려진 만월대는 지난해 개성역사유적지구로 세계문화유산에 그 이름을 당당히 올렸다. 강화도의 고려 왕궁 터와 삼별초의 항쟁 거점인 진도 용장산성 내 임시 왕궁 터도 발굴조사를 통해 그 전모가 파악됐다. 삼국시대 이후의 왕조 중 유일하게 왕궁 터를 찾지 못하고 있는 나라가 후백제다.한옥마을 연계한 관광전략 필요지난해 한옥마을 찾은 관광객의 수가 5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대박이다. 세상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제일의 여행 후보지가 미국 그랜드 캐년이라고 한다. 그랜드 캐년을 뛰어넘는 관광객이 한옥마을을 다녀간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옥마을의 가치를 웅변해 준다. 앞으로 후백제 왕궁 터를 꼭 찾아 한옥마을과 연계시키는 장기적인 관광전략이 마련됐으면 한다. 요즘 후백제의 왕궁 터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국립전주박물관 모든 구성원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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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2 23:02

가자(Gaja), 세월호 그리고 가진 자의 피해의식

세월은 모든 것을 묻는다. 가슴 속에 묻고 기억 속에 묻고 잘 해야 종이 위에 묻는다. 지난 것들은 그저 지난 것들일 뿐 결코 되살아오지 못 한다. 인간은 진정 과거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존재인가? 과거의 기억이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한다면 참으로 좋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떤 인간들은 끊임없이 과거로부터 악을 배워온다. 그들에게 과거란 저주와 분노와 복수의 마음을 쌓아놓은 지하 창고와도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해서 좋을 과거와 가슴 깊이 묻고 삭혀야 할 과거를 잘 분간한다. 오로지 과거의 악마들로부터 자유롭지 못 한 자들만이 평화로운 현실을 무참히 망가뜨린다. 문제는 이들이 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이다. 힘을 지닌 존재들이 과거의 피해의식에 깊이 젖어있을 때 그들의 손짓 하나 목소리 하나, 글 한 줄도 다 흉기가 된다. 인간을 야만으로 만드는 피해의식이천 년의 유랑과 가혹한 살육의 기억으로부터 유대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되살려오고자 하는 것일까? 여전히 세상 모든 나라가 그들을 적대시하고 멸망시키려 한다는 피해의식에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 끔찍한 피해의식이 가공할 폭력 무기들과 뒤엉켜 날뛰는 자리에 죄없는 어린 것들의 찢긴 시신이 나뒹군다. 가자지구의 비극은 인간의 피해의식이 국가라는 이름의 집단 폭력과 결합할 때 얼마나 무서운 악마로 변하는가를 보여준다. 유엔학교도 병원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퍼부어대는 저 끔찍한 첨단 무기들은 과연 저들이 숭상하는 유일신이 보낸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이것은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들의 기억이 보낸 것이다. 그것도 직접 살육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에게까지 대물림되어 내려온 집단적 피해의식이, 악마의 이빨이 되어 저지르는 일이다. 이게 남 일인가? 패전국임을, 원폭의 피해자임을 한 시도 잊지 않고 곱씹어 온 아베 정권과 그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징벌에 더 깊이 파고든다. 그리고 그 피해자로서의 집단기억을 부추기고 되살려서 은인자중 키워온 엄청난 국방력으로 어느 때라도 다시 이웃을 쳐들어갈 태세를 가다듬는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불안한 이웃이다. 문제는 그들 스스로가 가해자였고 여전히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그 내면에 도사린 피해의식이 얼마나 무서운가? 무서운 사람들, 그 흘긴 눈, 함부로 휘두르는 주먹들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꽃다운 아이들 수백 명이 맥없이 죽었다. 어찌 그 배의 이름은 하필 세월호인가? 그래도 건져주겠지 카톡을 하다가, 너무 무서워서 고래고래 랩을 하다가, 울면서 엄마 아빠를 안심시키다가, 왜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다. 모처럼 차려입은 육십 대의 동창생들과 제주도로 살러가던 젊은 부부, 그리고 그 비슷한 처지의 평범한 사람들이 떼로 영문도 모르고 죽었다. 눈 번히 뜨고 어 이게 먼 일여 하다가 죽었다. 그렇게 수백 명을 대낮에 수장시키고도, 그리고 백일을 훌쩍 넘기고도, 이 나라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무슨 무슨 엄마라는 이들, 정치가들, 사회지도층이라는 이들이 땡볕의 유가족들 앞에서, 그 지옥 끝까지 절망한 이들 앞에서, 추하다고, 노숙자 같다고, 이제 좀 편안히 살자고 눈알을 부라린다. 엄마라는 이름을 이렇게 모욕해도 되는가? 어리고 약한 존재, 슬픔에 빠진 이들, 가난한 이들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신이 인간의 내면에 원초적으로 심어 둔 본성이다. 그럴진대 저 으르렁거리는 흰 이빨들이, 핏발 선 눈들이 어디 인간의 것인가? 저들의 내면에 도사린 피해의식의 깊이를 알 길이 없다. 누구의 피해의식이 어떤 방식으로 대물림되고 옮겨온 것인지도 알 길이 없다. 점잖은 종편 패널들은 정권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이란다. 도대체 그 배에서 죽은 이들이, 그 유족들이 이 정권과 기득권 층 누구에게 무슨 피해를 입혔단 말인가? 저주복수의 대물림 끊어버려야전방의 내무반에서 한 병사를 악랄하게 괴롭히다 끝내 죽인 이들은 자신들도 그렇게 당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죽어가던 병사가 마지막으로 본 저들의 눈빛은 과연 인간의 것이었을까? 피해의식은 인간을 야만의 상태로 되돌린다. 그 피해의식의 야만적인 요동을 멈출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이긴 자들, 힘을 가진 자들에게만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스스로의 끔찍한 피해의식을 딛고 서서 저주와 복수의 대물림을 끊어버린 이들도 참 많다. 바라건대, 세상의 모든 가진 자들이여, 낡고 허황한 피해의식을 부추겨 짐승 같은 가해자가 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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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05 23:02

사람이 문화를 만든다

타지에서 전주로 이사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과거 내 기억속의 전주는 낮은 건물들 탓인지 전주에 들어오면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여유로웠으며, 어느 식당에 가든 음식은 맛이 있었고, 값도 쌌다. 또한 도심권에 유적지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여유롭게 둘러보고 느낄 수 있어 전통문화의 도시로 손색이 없었다. ■ 관광객에겐 시민들이 전주 첫 인상그보다도 나를 더 전주에 푹 빠지게 한 것은 바로 전주 사람들이었다. 양반 도시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조금 느린 듯해 답답한 면도 있었지만 만나는 사람들마다 다정다감하고 친절했다. 또한 음식문화가 발달해서인지 절기마다 이웃과 음식을 나눠 먹는 공동체적 풍습들이 있었고, 단오제나 기타 지역 축제에서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한옥마을 경기전 소나무 아래 어르신들이 모여 여가를 즐기는 풍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전주 사람들은 흥이 있었고 정이 넘쳤으며 멋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내게는 이러한 전주 문화가 멋있어 보였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전주의 힘이었다. 한옥마을의 유명세 때문인지 몇 년 전부터 지인들의 전주 방문이 꾸준히 이어지고 전주 소개를 부탁한다. 그렇지만 나는 전주를 예전처럼 자신 있게 자랑하지 못한다. 그들 또한 방문에 앞서 한옥마을의 비싼 숙박료와 식사 가격 등 주변에서 들었던 바가지요금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할 말이 없다. 어쨌거나 그런 우려를 뒤로하고 그들이 한옥마을을 방문한다 해도 너무 많은 상점이 편중되어 한옥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을 느낄 수가 없어 조금 실망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다른 관광객들도 한옥마을에서 꼭 찾아봐야 할 것들을 찾아보지 못하고, 카페나 상점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 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과연 그들이 다시 한옥마을을 찾아올까. 잠시 내 이야기를 해 보자. 나는 일 때문에 전주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일이 많다. 짐 때문에 항상 배낭을 메고 다니며 편한 복장 차림이다. 그런데 차가 없어서 택시를 타는 일이 많은데 가끔 불쾌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내 차림새와 남도 사투리 때문에 관광객으로 오해한 택시 기사님은 내가 뻔히 아는 길인데도 빙 돌아서 간다든가, 다른 손님을 태우기 위해 목적지에 못 미처 내려주기도 한다. 내가 전주 사람이라고 말하면 미안하다고 하는 기사님도 있고, 신고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기사님도 있다. 그러나 자기가 온 길이 맞는다며 우기거나 화를 내는 기사님도 있다. 만약 외지 사람이 이런 일을 겪고 나중에 바가지요금을 낸 것을 알았다면 두 번 다시 전주를 찾고 싶을까. 설령 관광객이 끝까지 바가지요금을 낸 사실을 모른다 해도 이것은 그 기사님의 양심이며 전주의 양심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기사님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어떤 택시 기사님은 전주에 대해 설명도 잘해주시고 짐도 챙겨주시는 기사님도 있었다. ■ 자율적 자생적 주인 의식 발휘해야전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전주 시민은 곧 전주의 얼굴이다. 택시 기사든, 음식점 주인이든, 기념품 가게 직원이든 관광객들이 만나는 모든 전주 사람들이 곧 전주에 대한 첫인상인 것이다. 시민의식 수준은 지역을 보여주는 얼굴이며 지역 문화의 척도이다. 그렇다면 전주시는 관광객 유입을 위한 외형적 환경 조성에만 총력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시민의식의 함양 및 위상을 제고도 함께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시대적으로 시민의식 함양에 있어 계몽적인 강요가 아닌 시민 자율적 자생적 주인의식을 발휘하며 성숙한 시민의식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채성태 대표는 전북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으며 사회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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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9 23:02

이상한 민족

아주 오래 전에 어느 중앙지에서 읽었던 까마득한 기억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미국에 사는 우리 교포 2세 교수 한 사람이 중국 여행길에 올랐다고 했다. 중국인 안내인에게 일러 조선족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을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안내인이 말하기를, 조선족은 참 이상하다고 했단다. 해질녘에 동네 주민들이 동청에 모여,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다가 마지막엔 꼭 싸움질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더란다.그런데 더 이상한 점은, 다음날 바로 화해하고 다시 모여 그 일을 반복하는 점이란다. 화해가 바로 가능하게 하는 이유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일의 즐거움이 불화가 오래 지속되도록 내벼려둘 수 없게 하는 것이란다.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즐겨미국 교포 교수는 오히려 이 점이 한민족의 바람직한 특성이며 우리 민족이 선진 문화 민족이라고 정의하며 신문에 이를 소개했던 것이다.우리 민족에게는 아득한 선조로부터 저러한 유전인자가 전속(專屬)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필자는 유추해 보았다. 인문학이며 철학의 발원도 갑론을박 논쟁하는 데서 유래했을 터이고,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양은 그것이 바로 종합예술적 형태의 원초이었을 것이며, 소위 풍류며 낭만의 끼는 저러한 습속에서 잉태되지 않았을까 하는 사려에 골똘해졌다.사실 우리 민족의 아득한 고대에는 제천의식이란 것이 행해지고 있었다. 하늘을 숭배하고 제사지내는 원시 종교 의식이었는데, 일종의 추수감사절인 셈이었다. 부족 전체가 한 광장에 모여,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며 즐겼다고 전해진다.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마한의 시월제 따위가 그런 것들이다. 무속행사이면서, 집단 예술 행사였고, 나아가 부족의 결집과 통솔을 위한 통치 수단의 하나였다. 이때 제사장은 부족국가의 왕인 셈이며 한편 무속인인 것이었다. 일하는 것과 노는 일이 한타랑으로 혼융(混融)되었다. 우리 민속 국악이 노동요로 시발된 점에 다름 아니다. 그러고 보면 대개는 농악 속에도 주술적 기복(祈福)의 목청이 숨어 있음도 금방 간파된다. 무속행사는 성장해서 나중엔 정교한 종교가 되기도 하지만 높은 차원의 예술로도 발전한다.프로이트란 사람이 말한다. 집단적 무속행위는 집단적 환상으로 몰아쳐져서 사이비 종교가 된다고. 또 마레트란 사람은, 설명항 수 없는 것에서의 경외감, 초자연적인 힘, 영적인 힘 등은 영적인 에너지로 진작되고 고차원의 문화 문명을 잉태시킨다고도 했다.그렇게 이상한 민족은 그 이상한 점을 크게 성장시키고 창대하게 육성시켜 오늘의 한류열풍을 일으키는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인류학자들이 말하기를 축제의 중심에는 반드시 신이 있고, 그리고 절대로 감성의 큰 폭풍이 있다고 주장한다. 감성을 끊임없이 배양하고 길들이기의 좋은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오늘 한류 열풍 일으키는 국민 돼가령 미개한 민족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할 때, 그러나 그들은 오직 같은 감성을 공유하고 같은 풍부한 정서로 무장할 때, 그리고 그것을 공동선으로 향진한다면, 현대적 개념의 문화 문명의 대칭 거리에 있다 할지라도, 그 민족은 위대하고 거룩한 민족인 것이다. 이는 실존적 의미를 마냥 부여해도 무리는 아니다.우리 민족은 이상한 민족이 아니라, 신비하고 감성적이며, 상징을 잘도 꾸며내는 특별한 민족인 것이다. △소재호 관장은 1984년 시단에 등단했으며 완산고 교장·전북문인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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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2 23:02

새만금, 한·중 교류의 큰 무대

새만금은 인문학의 보물창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1년 새만금 국책사업이 시작된 이후 인문학과 관련된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깝다.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 물줄기가 새만금 내 군산도에서 한 몸을 이루어 줄곧 해양문물교류의 허브로서 막중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해양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곳으로 선사시대부터 지속된 새만금 속 한중 교류사를 소개하려고 한다.국가 차원 영접행사 열리던 곳일본에서 농경의 신과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 제나라 방사 서복이다. 진시황의 명령을 받고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새만금과 제주도를 거쳐 일본에 정착했다. 기원전 202년 제나라 왕 전횡이 어청도로 망명해 왔다. 한나라 유방이 초나라 항우를 물리치고 중국을 통일하자 두 명의 형제, 측근과 병사 500여 명을 거느리고 어청도로 망명해 왔다는 것이다. 그의 망명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뛰어 넘는 역사적인 대사건이었다.진시황의 서복 파견과 전횡의 망명 이후 새만금의 해양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고고학에서는 패총을 해양문화의 백미로 평가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학계에 보고된 600여 개소의 패총 중 200여 개소가 새만금에 밀집되어 있다. 흔히 패총이 해양경제를 대변해 준다고 한다면 말무덤은 정치를 상징한다. 군산대 캠퍼스 내 미룡동에서 말무덤이 마한의 지배자 무덤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에서 말무덤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 새만금이다.삼국시대 때도 마한의 해양문화와 그 역동성이 그대로 계속됐다. 백제가 공주로 도읍을 옮긴 뒤 새만금을 거쳐 인도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로가 열림으로써 새만금의 해양문화가 더욱 융성했다. 그러다가 한 동안 전쟁터로 그 위상이 바뀌면서 아픔도 많았다. 당나라 소정방 13만 군대가 상륙한 기벌포도, 백제부흥군과 왜의 파병 군이 나당연합군과 해전을 벌인 백강도, 676년 신라 수군이 당나라 수군을 물리친 최후의 격전지도 새만금이다.851년 해상왕 장보고 선단의 거점인 청해진을 없애고 당시 최고의 바다 전문가들을 새만금으로 이주시켰는데, 이들은 후백제가 오월 등 남중국과의 국제교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927년 오월의 반상서가 전주를 방문할 때 오갔던 후백제와 오월의 사행로도 새만금을 경유해 전주까지 이어졌다. 새만금 속 군산도가 후백제에 의해 사행로의 거점 항구로 본격 개발됐을 가능성이 높다.1123년 송나라 사신단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영접행사를 주관하기 위해 김부식이 새만금 내 군산도를 방문했다. 그리하여 선유도 망주봉 주변에는 숭산행궁을 비롯하여 사신을 맞이하던 군산정, 바다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오룡묘와 사찰인 자복사, 객관이 있었다. 새만금은 송악산 만월대의 회경전과 벽란도를 제치고 국가 차원의 영접행사가 열린 국제외교의 큰 무대였다.크루즈선 도입박물관도 건립을중국인들이 해외 관광을 할 때 중국과의 역사성과 인연을 가장 중시하는데, 새만금은 두 가지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새만금 속 군산도는 절강성 주산군도와의 관련성이 탁월하다. 신라초와 고려도두로 상징되는 주산군도는, 중국 4대 불교 성지로 해마다 1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군산도와 주산군도를 하나로 묶는 크루즈선을 새만금신항에 띄우는 장기적인 관광전략이 마련됐으면 한다. 동시에 새만금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역동성을 담아낼 새만금박물관의 건립도 모색됐으면 한다.△곽장근 교수는 사학을 전공했으며, 군산대 박물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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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15 23:02

축구, 알제리, 친일파

우리나라의 올해 월드컵은 끝났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평가전을 포함해서 여러 차례의 졸전으로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그 가운데 가장 실망스러운 경기는 대 알제리전이었다. 알제리는 만만한 팀이 아니었고 세 차례의 경기 가운데에서도 우리 팀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결과를 안겼다. 그들이 보여준 경기력은 우리 선수들을 놀라게 할 만했다. 유니폼을 찢고 튀어나올 듯한 상체근육, 지칠 줄 모르고 경기장을 누비는 저들의 체력 앞에서 우리 선수들은 한 동안 기가 질린 채 바라보고만 있다시피 했다. 식민주의 잔재 걷어내야 진정한 해방알제리는 큰 나라이다. 땅덩어리로 치면 전 세계 10위권에 든다. 로마시대부터 내려온 유적들이 거의 방치된 채로 산재해 있어서 앞으로 관광 부국으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알제리는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과 통찰로 유명한 프란츠 파농이 그의 짧은 생애를 바친 나라이다. 파농은 같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마르티니크 출신이었지만 알제리 독립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가 독립을 보지 못 하고 백혈병으로 요절한 작가이자 의사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이어진 프랑스의 식민통치는 이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압도적인 폭력과 차별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그 피해자들은 대체로 저항의 의지를 잃는다. 그 대신 식민주의자들의 얼굴에 자신들의 얼굴을 얹어서 동일시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자학하고 식민지배가 운명적인 것이었다며 수긍하려 한다. 파농은 〈검은 피부 흰 가면〉이라는 책에서 피식민자들이 그들의 의식과 일상에서 식민주의의 잔재를 걷어내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해방은 오지 않는다고 외쳤다. 알제리 독립전쟁은 1954년에 시작해 1962년에 끝났다. 프랑스 사람들로부터 축구를 배웠던 이 나라에서 ‘마르세이유 턴’으로 유명한 축구스타 ‘지네딘 지단’이 나왔고, 이 나라가 프랑스에서 배운 디자인 감수성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을 탄생시켰다. 문화적으로 식민모국의 자존심을 압도한 셈이다. 알제리 축구팀은 사상 처음으로 유럽 팀을 꺾은 아프리카 팀(1982년 스페인월드컵)이기도 하다. 우리 축구 대표팀이 알제리에게 충격적으로 패배하면서 자존심을 구기던 그 무렵, 두 번째 지명 받은 이 나라의 국무총리 후보자는 자신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항변을 하느라고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조선민족이 불결하고 게을러서 식민지가 되었으며 이는 곧 하나님의 뜻이라 외치던 그였다. 교회에서의 강연 동영상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그 동안 써온 칼럼들의 내용이 거의 비슷한 신념으로 일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신앙의 자유’ 운운하며 그를 감싸기도 했다. 그렇다. 그의 확신만은 알아주어야 한다. 파농 식으로 말하자면 그의 피부는 조선 사람의 것이었으되, 한평생 그의 의식을 지배해온 것은 현대사를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해온 강대국들의 지배논리였다. 그것이 그의 ‘흰 가면’이지만 그는 그게 가면인지 자신의 피부인지도 분간하지 못 한다. 자신이 왜 친일파 소리를 듣는지 저승에 가서도 깨닫지 못 할 친일파들이 그 주변에서 다시 철옹성을 쌓는다. 고통 받는 약소국에 뜨거운 연대를알제리 축구 대표팀은 귀국 환영행사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며 국민들과 함께 환호했다. 팔레스타인, 문씨 같은 이들에게는 아마도 게으르고 불결해서 신의 채찍을 받고 있는 나라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알제리의 축구선수들은 고통 받는 저 약소국 국민을 향한 뜨거운 연대와 동료애를 당당히 자랑한다. 우리가 저들에게 진 게 축구만일까? △곽병창 교수는 전북대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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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08 23:02

모스크바 다이어리

지난 6월 28일에 폐막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지난해 〈레바논 감정〉이 이곳의 국제경쟁 부문에 소개됐고, 올해는 삼인삼색 작품인 〈조류인간〉이 경쟁 부문에 소개됐다. 신연식 감독과 배우 소이 씨도 함께 했다. 주상영관인 ‘옥토버’(10월)극장은 모스크바의 대표적인 거리 아라바트와 가까이 있는 곳으로 극장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를 보러 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백야 현상 때문에 밤 11시가 되어도 환한 탓에 모든 것이 늦게 시작됐다. 오후 2, 3시가 되어야 공식상영 프로그램들이 시작됐고, 극장에는 저녁 7시가 되어야 퇴근한 사람들까지 포함해 꽉 들어찬 풍경을 연출하고는 했다. 영화 보다 한국에 대한 관심 높은 듯국제경쟁에 소개된 작품은 좀 제각각이었다. 신인들의 첫 작품도 있고, 알려진 중견들의 영화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러시아의 중견 감독이 만든 〈하얀 이끼〉처럼 이 지역의 에스키모라 할 수 있는 유목민들의 신화와 현대적인 러브 스토리를 담은 작품이 인상에 남았다. 〈조류 인간〉팀을 따라 기자회견 자리와 인터뷰 자리를 따라가 보았다.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이 꽤 많았다. 왜 하필이면 ‘새’로 변하는가, 그것이 한국의 전설과 어떤 관련을 맺는 것인가, 왜 하필이면, 여자만 새로 변하는가 등. 전설과 관련된 질문은 나름 신선하다고 할 수 있는데, 동물에서 인간으로 변신하는 이야기는 꽤 많아도(구미호 이야기처럼), 인간이 끝내 동물로 변신하는 이야기는 의외로 없는 편이다. 신연식 감독은 전주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 이야기가 ‘정체성’에 관한 것임을 강조했지만 모스크바에서는 변신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았던 것 같다. 또한, 한국의 동시대 분위기를 이 영화가 어떻게 내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도 꽤 있는 편이었는데, 그것은 영화에 대한 관심이기보다는 한국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다. 공식 상영이 열리는 옥토버 극장에서 얻은 영화제 데일리에는 〈조류인간〉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리뷰가 실려 있었다. ‘조류인간’ 팀은 영화 상영 전 무대 인사로 공식 일정을 마무리 했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영화제의 공식 상영을 경험했던 것 같다. 영화제는 저마다의 특징과 분위기를 지닌다. 그것이 압축되어 있는 것이 경쟁부문의 프로그램인 동시에 첫 상영이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영화제라는 사이트를 통해, 그곳의 극장에서 처음으로 상영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이 있을 것이다. 평소 무심하게 배치를 했던 것을 진행하는 이의 입장이 아니라 경험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지켜보게 되니 좀 다른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나뿐만이 아니라 전주영화제의 다른 작품과 프로그래머들이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전주영화제, 국제교류 통해 위상 제고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삼인삼색은 뜨거운 평가를 받았고, 신연식 감독의 〈조류인간〉은 6월 말에 열리는 모스크바의 국제경쟁 부문에, 기요르기 폴피의 〈자유낙하〉는 7월초에 열리는 카를로비바리 국제경쟁 부문에 상영이 된다. 여기에는 다른 프로그래머가 참석할 예정이다. 그리고, 박정범의 〈산다〉 역시 좋은 결과가 예상된다. 결과에 대한 발표가 따로 있겠지만 이러한 성과를 내놓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것은 기획과 영화의 힘이었다. 당분간 전주영화제의 새로운 토대는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에 집중했던 것처럼, 영화를 통해 국제적 교류와 위상을 높이는 데 있을 것이다. 모스크바는 국제적 첫 단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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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01 23:02

참게 뒷다리 잡기

참게는 뒷다리 힘이 세다. 어쩌다가 사람에게 잡혀 항아리 속에 갇혀도 끄떡없다. 힘이 센 뒷다리로 미끌미끌하고 깊은 항아리를 기어올라 거뜬히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다리 힘이 좋은 참게도 항아리를 탈출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다른 참게와 함께 잡혔을 때다. 한 녀석이 항아리를 기어오르기 시작하면 다른 참게가 그 녀석의 뒷다리를 붙잡는다. 기어오르려던 참게는 뒷다리에 매달린 참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항아리 바닥에 떨어진다. 다른 한 마리가 또 항아리 벽을 기어오른다. 역시 다른 참게가 뒷다리를 잡는다. 달라진 선거문화에도 네거티브 여전부걱부걱 거품을 내며 서로 엉겨있는 항아리 속 참게들은 이젠 탈출을 왜 해야 하는지, 탈출하는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오직 남의 뒷다리를 잡느라 한데 엉켜 순식간에 날카롭고 검고 딱딱한 덩어리가 되고 만다. 자기가 가진 모든 힘을 남의 뒷다리 잡는 일에 다 쓴다. 결국 항아리 속 참게들은 누구도 항아리를 탈출하지 못한다. 5월과 6월 내내 남의 뒷다리 잡는 이야기만 들었다. 선거판이 원래 그런 거라고 하지 말라. 명색이 한 지역의 수장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정책을 제안하기 보다는 참게처럼 상대방의 뒷다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선거유세를 하는 동안 추격하는 후보는 앞서가는 후보의 뒷다리를 시끄럽고 요란하게 물고 늘어졌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온갖 네거티브 때문에 진실이 가려질까봐 걱정했다. 대대적으로 지원을 나온 중앙당의 이름께나 있는 분들조차 자기 당 후보의 정책과 비전을 홍보하기 보다는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고 흠집을 내는 일에 더 열심이었다. 선거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금품 따위를 주고받는 일은 없어졌고, 지역감정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역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 지역에서 꿈을 키운 사람, 출마한 지역의 형편을 누구보다 샅샅이 잘 아는 사람, 바른 걸음으로 자기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 지역에 대한 비전이 크고 실현가능성이 있는 정책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유권자들은 깨끗한 한 표를 기꺼이 드린다. 지역민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듣는 사람, 자신의 활동상황과 지역현안에 대해 지역사람들과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을 유권자는 다시 선택한다.선거문화가 달라졌다는 걸 미처 모르고 남의 뒷다리나 잡고 기어오르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유권자의 마음이 움직이는지, 나는 왜 정치를 하려고 하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선되고 싶다면 지역의 현실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고 유권자를 감동시키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네거티브에 맞대응하지 않은 사람은 곁에서 보기에도 바보 같다고 여길 만큼 참아냈다. 진실의 힘을 믿고 끝까지 참는 모습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은 대게는 그 지역의 인물들이다. 배울 만큼 배웠고, 어느 정도의 인격은 갖춘 사람들이리라. 그 사람들이 배운 건 대체 무엇일까? 그들은 언제부터 진실의 힘을 믿지 않았을까?남의 뒷다리 잡는 일 그만해야이제 선거는 끝났다. 남의 뒷다리 잡는 일은 그만하자. 그런 소리에는 귀도 기울이지 말자. 그러기엔, 시원한 품을 열어놓고 묵묵히 우리를 기다리는 유월의 숲에 들기가 진정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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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24 23:02

'문화 바캉스' 예술아, 놀자!

세계적으로 휴가문화가 유난히 극성인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 사람들은 마치 한 해동안 여름휴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는데 연차, 공휴일 등을 망라해 1년의 40%가 노는 날이라니 그들이 휴가를 즐기는 노하우도 대단할 수밖에 없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에서 만나는 프랑스 관광객들은 2~3개월의 넉넉한 일정으로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데 그 얘기를 들으면 한없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더 부러운 것은 프랑스 사람들은 대부분 의미없는 여행이나 관광보다는 피서지의 문화를 마음껏 체험하고 이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가히 문화대국 국민이라 할만 하다.여름밤 도심 속 문화예술 체험우리나라도 경제성장의 당위성에 소외됐던 국민행복추구권을 회복하면서 최소한의 국민 휴식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주5일 근무제와 대체 공휴일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로써 국민 삶의 질 개선 뿐만 아니라 내수경기 진작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선순환구조를 이루는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다. 사실 문화바캉스라는 용어는 피서를 겸한 관광의 목적중 방문지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주요 프로그램이어서 문화바캉스가 색다를 것은 없지만 굳이 구분한다면 산과 바다로 떠나는 전원형 휴가보다는 ‘도심 속 피서’에 더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피서지로 떠나지 못하고 한 여름밤을 도심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주로 야간에 진행되는 각종 문화예술행사와 체험프로그램들은 이런 사회적 니즈에 충실히 부응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서울에서는 매년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대규모 페스티벌이 개최되고 있으며, 남산골한옥마을, 서울역사박물관, 청계천문화관〉 등 여러 문화공간에서 마련되는 다양한 문화공연과 상설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문화바캉스를 즐기는 것이 서울시민들이 여름을 잊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되고 있다. 우리 고장에서도 도립미술관, 전주박물관, 전주역사박물관 등 다양한 문화예술기관에서 여름휴가철을 겨냥한 색다른 전시와 체험프로그램 등을 기획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도민들이 거의 무료로 행사를 즐길 수 있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경제적인 문화바캉스의 재미가 쏠쏠하다.이런 의미에서 전라북도 문화관광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한옥마을에서의 문화바캉스의 여건은 어떤가? 1년이면 수백만의 외지인들이 다녀가는 대표적인 문화관광지로서 문화도민들의 자부심도 크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지역 주민이 한가하게 어느 때든 들러 쉴 수 있는 지역의 휴식공간으로서의 기능은 이미 상실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다. 주말과 주중 가릴 것 없이 주차난과 인파에 휩쓸려 과연 이곳이 슬로시티의 상징적인 관광지로 언제까지 남아있을지 걱정이다. 물론 지자체에서 한옥마을의 외연을 넓히고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는 힘들 것 같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또 지역민들이 일과를 끝내고 야간에 피서를 겸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는 문화바캉스를 활성화 할 수 있다면 낮에 스쳐지나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숙박하면서 여유있게 즐기는 관광지가 될 수 있으며 지역민들에게도 휴식공간을 되돌려줄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안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한옥마을을 문화 즐기는 관광지로전주한옥마을이 문화바캉스의 명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위탁기관, 주민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하겠지만 우리 예술인들과 문화예술단체들의 자발적 참여도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각자가 지닌 재능을 활용하여 훌륭한 작품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작업과정을 함께 즐기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봉사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데 우리 예술인들의 힘을 함께 모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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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17 23:02

역사 기억하기와 지역정신 함양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자랑스러운 역사도 기억해주지 않으면 지나간 과거로 끝난 일일 뿐이다. 대단했던 과거와 녹록치 않은 현실이 교차하는 전북지역의 경우 역사에 대한 기억은 더더욱 의미가 크다.전주의 현재만을 보아서는 조선시대 3대도시로 칭해졌던, 조선제일의 곡창지대 전라도의 수부 전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전북의 현실만으로는 반상(班常)의 차별을 마감하고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한 근대사회로 나가는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이 전북이었음을 이해하기 힘들다. 어렵고 힘들 때 역사의 가치 커져역사를 기억해야 지역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이 형성될 수 있다. 역사는 기억될 때 현재를 살아가는 힘과 자존심이 된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역사는 그 가치와 존재감이 더 커지는 면이 있다. 그런데 전북은 역사 기억하기에 소홀한 점이 있다.지난 2009년 기축년은 정여립모반사건이 일어난지 7주갑(420주년)이 되는 해였다. 임진왜란 직전 1589년에 발발한 정여립모반사건은 3년여를 끌면서 동인 천여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정여립은 전주사람이었고, 이로 인해 전라도는 쑥밭이 되었다. 그럼에도 7주갑을 맞아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전주시의 지원을 받아 전주학 사업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데 그쳤다. 2012년은 임진왜란 7주갑(42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전국적으로 임진왜란에 관한 학술활동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정작 임난 승리의 주역 전북에서는 전라북도에서 지원한 전북박물관미술관협의회 사업비로 임진왜란 특별전을 개최한 것이 거의 다였다. 올해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지 120주년, 즉 2주갑이 되는 해이다. 반봉건, 반외세의 동학농민혁명이 전북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전북이 산실이고 중심이었다. 따라서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전국적 행사가 전북지역에서 진행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은 것 같다.역사적 기념일은 아니지만, 전북역사를 기억하고 현재화하기 위해서는 전라감영복원과 호남실학원건립도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 전라감영은 전라도의 수부로서 전주의 역사적 위상을 담고 있다. 전라감영은 전주와 전북의 역사적 자존심이다. 전라감영복원은 한옥마을과 연계한 원도심활성화 방안이기도 하다.조선후기 실학의 비조 반계 유형원의 유적지 부안 우반동에 호남실학원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호남실학원은 조선후기 호남실학을 집대성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전북지역의 정신사를 총괄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영남에는 안동에 한국학진흥원이 건립되어 있고, 광주와 전남에는 한국학호남진흥원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전북학' 설치해 지역 정신 정립해야광역자치단체로 지역학이 없는 곳은 전북밖에 없다. 전주학이 10년째 지속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전북도에서도 시급히 전북학을 설치해 지역학 제반분야와 함께 전북의 역사와 문화를 총괄해 지역정신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 호남실학원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전북도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문화창조산업에도 지역정신이 연계되어야 한다.역사를 기억할 때 과거는 현재가 된다. 기념일은 역사를 기억하고 재생하는 한 방안이다. 역사는 비가시적이다. 전북지역의 재정도 여유롭지 않다. 그래서 역사적 기념일 등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지역의 정신사적인 것들을 방기하거나 뒷전으로 미루어놓아서는 안된다. 집안이 어려워도 자식 교육은 시켜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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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10 23:02

우리는 이야기에 왜 빠져드는가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축제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랬지만 한국 사회에서 축제가 제대로 정착하는 데에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국소적인 경제 이익, 지엽적인 페스티벌의 이해 등이 얽혀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이권을 둘러싼 부정성의 말들이 손쉽게 고개를 들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펼쳐지는 지방 선거전도 그렇지만 네거티브 전략과 이를 통한 자기 생존의 본능은 지난한 세월 속에서 반복되는 것이었다.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이런저런 소모적인 생각들을 뒤로한 채 책상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진화론 혹은 진화심리학을 다룬 책들이었다. 이 책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진화론 안에서 사람들은 생산적이거나 후대를 위한 것도 아닌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진화심리학과 사회생물학을 기반으로 인간의 다양한 행동양식과 문화적 관심사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뇌과학의 발달과 더불어서 사람들이 어째서 이야기에 열광하는가를 말하는 것은 영화제라는 축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이해의 차원을 지닌다. 이 분야의 전문가 중 하나인 폴 블룸은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라는 저작에서 이야기에 인간이 빠져드는 이유는 “다른 목적으로 진화한 정신작용의 부산물”이며,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마음의 ‘본질주의’에서 우연히 발생한 부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진화론의 대부분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후손을 퍼트리기 위해 어떤 행동 패턴을 지니는가를 설명한다. 남성이 어여쁜 여성을 선택하고, 여성이 능력있는 남자를 선택하는 것은 후손을 위한 진화론적 선택의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 방식 이외에도 인간은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측면들이 있다.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면서 쾌락을 얻는 이유가 맛과 향 때문이고, 음악이 좋은 이유는 소리 때문이며, 영화를 즐기는 이유는 스크린에 나타나는 영상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하 폴 블룸은 일부만 맞는 말이라고 답한다. 그 속에는 맛과 향과 소리와 스크린을 넘어서 “우리가 쾌락을 얻는 대상의 참된 본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본질주의의 추구이며, 어떤 영화를 볼지 결정하는 것은 본질주의에 따란 행동들이라는 것이다. 조너선 갓셜의 〈스토리텔링 애니멀〉은 본질주의의 차원을 넘어서 이야기족과 실용족이라는 두 종류의 인류를 제시한다. “결말은 뻔하다. 이야기족이 땅을 차지한다. 이야기족은 바로 우리다. 이야기와 담쌓은 실용적 인간이 실제로 존재했다 하더라도 이제는 아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사실을 몰랐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실용족이 경박한 이야기족보다 오래 살아남으리라고 추측하지 않았을까?” 이야기의 다양한 본질과 경험과 현재 사례들을 통해 이야기를 삶으로 구성한 현재 인류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이 책은 우리가 바로 이야기족이며, 우리의 문화적, 정신적 진화를 이야기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야기 통해서 문화·정신적 진화한국사회가 문화를 강조하지만 실상은 실용성과 경제를 최우선에 앞두고 있는 현실에서 이야기를 다루거나 제시하는 페스티벌은 인간의 또 다른 진화에 기여하고 있다면 과장된 말일까. 그러나, ‘스토리텔링 애니멀’을 이야기하는 차원은 고사하고, 그냥 애니멀적인 감성을 드러내는 작금의 현상들은 답보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놓는다. 축제를 앞두고, 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작성되지만 이익과 부정성을 앞세운 과거의 판박이일 따름이고, 그것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본능에 맞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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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03 23:02

선거는 선 거다

4월이‘세월’에 실려 무겁게 갔다. 그리고 전라도말로 참 껄쩍지근하게 5월도 다 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4월과 5월은 미안하고 슬프다. 민주화에 밑불이 되어 스러져간 어린 학생들의 이름이 해마다 봄풀 돋듯 돋아나기 때문이다. 살아서 빚진 내게도 그들을 향한 미안함과 참괴가 봄풀 따라 돋아난다. 민주화가 되었으니 이젠 국민을 우습게 아는 국가 때문에 친구와 강제로 헤어지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미안한 날이 이젠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4월 16일, 이름조차 사나운 ‘맹골수도’가 뉴스와 신문지면을 통째로 도배하며 우리는 이젠 어린 학생들에게 죄인이 되어버렸다. 미안하다는 필설이 사치스러운 날들이다. 우리는 무능한 정부와 갈팡질팡하는 시스템, 그리고 국민의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무책임한 사람들을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어야만 했다.정치권·관료 바꿀 수 있는 건 투표뿐곧 있으면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투표를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 살면서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힘 있는 사람은 다 빠져나가고 죄 없고 순진한 사람들만 죽어 나가도 불평할 자격이 없다. 죽어라고 일해도 삶이 늘 옭죄어 오는 걸 불평해서도 안 된다. 울분을 토하는 일들이 복사해서 붙인 것처럼 계속 반복돼도 그런 줄 알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려면 투표해야 한다. 무능한 시스템과 함량미달의 리더에게 희생당한 사람들 앞에 뼈마디 절절하게 반성한다면 투표해야 한다. 참담할 지경으로 부패한 관료와 책임윤리를 던져버린 지도자들을 투표로 솎아내야 한다. 우리가 살 세상, 우리 귀한 새끼들이 살 세상의 시스템을 구성하고 운용할 사람들을 잘 가려내야 한다. 정부의 무능력과 무질서를 절절히 느꼈다면, 정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서러움을 절실히 느꼈다면, 아무리 말해도 안 되는 걸 보고 절망했다면, 이제 그만 울자. 눈물을 닦고 주저앉은 마음을 다독여 조용히 일어서자. 나부터 내 책임을 다해야 국민을 책임지는 정부와 국민을 보호하는 리더를 둘 수 있다.여태껏 투표해 봤자 달라진 거 없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조금씩 느리게 달라졌을 뿐이다. 무능한 정부를 대신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과 배려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구조 현장에 달려간 사람들은 물론이고, 칫솔과 담요와 라면을 쓰고 남을 만큼 보내준 국민들이 달라지는 세상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음식찌꺼기 치우는 일과 청소하는 일, 쓰레기 줍는 일과 빨래하는 일을 기꺼이 도맡아준 사람들이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다만 변명과 책임 회피와 감추기에 급급했던 정치권과 관료들이 아직 국민만큼 훌륭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의 정신을 훌륭하게 바꿀 수 있는 건 투표밖에 없다. 정신 바르게 서 있는 사람을 뽑자선거는 선 거, 즉 서있는 거다. 육체적인 직립이 아니라 정신이 서 있는 거다. 정신이 바르게 서 있는 사람, 국민을 위해 일할 각오가 단단히 서 있는 사람, 자기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서 있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선거다. 밥술이나 얻어먹겠다고 투표하지 말자. 돈푼이나 더 만지겠다고 투표하지 말자. 이 나라의 무능하고 부조리한 것들을 쓸어낼 수 있는 일이 투표 밖에 없으니 투표하자. 투표는 썩은 양심들에게 한 방 먹여줄 수 있는 의식 있는 국민의 유일한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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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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