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로를 '로얄 마일(Royal Mile)'로
한옥마을의 관광객이 누구도 상상 못 했던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이대로 그냥 둔다면, 우리가 각자 어떤 한옥마을을 꿈꾸었든지 간에, 한옥마을은 ‘돈’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것이다. 전통문화 중심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차분하고 편안한 마을이 되길 원했던 이들은, 이 ‘돈’의 속도와 흥청거림이 너무 어지러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초심으로 돌아가길 부르짖는다 해도, 이미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막을 길도, ‘돈’을 따라 움직이는 투자자들의 욕망을 제어할 길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할 일은 전통문화도시로서의 품격과 분위기를 잃지 않으면서, 이 관광객들의 발길도, 주민들의 현실적 욕망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 방안 중의 하나로 전주의 구도심 전체를 공간적 거점으로 삼는 거리예술축제를 구상해보면 어떨까?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성공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로얄마일은 에딘버러 성(Edinburgh castle)에서부터 왕궁이 있는 홀리루드 수도원(Holyrood Abbey)까지의 약 1.6 Km 거리를 말한다. ‘마일’이라는 단어의 기원이기도 하다. 이 거리는 이른바 구도심의 한복판이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인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중심공간이다. 해마다 칠팔월이 되면 이 거리에 전 세계의 공연예술 관계자들이 모여들어서 밤낮없이 자신들의 작품을 자랑하고 생각을 나눈다. 그리고 이 거리에서 발굴된 작품들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연투어를 떠난다. 이 기간 동안 로얄마일 주변에서는 프린지페스티벌 말고도 문학, 미술, 영화 등 다방면의 예술축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당연히 경제적 부가가치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에딘버러 시민들이 축제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전주 한옥마을의 흥청거림이 조금 더 색다르고 생동감 있는 도시의 모습으로 이어지게 하는 방안으로 팔달로에 주목하면 어떨까? 오거리 영화의 광장으로부터 풍남문 광장으로 이어지는 팔달로를 주말 거리축제의 공간으로 내어주자는 것이다. 물론 날씨가 좋은 계절을 골라서 구상할 일이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주말 사흘 동안 팔달로와 주변 거리들에서 온갖 장르의 거리예술가들이 자신들만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 팔달로를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 시간과 구간은 세심하게 점진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주말마다 이 거리 곳곳의 광장은 물론이고 원래 있던 소극장과 갤러리들, 크고 작은 카페와 길모퉁이 공터 등에서 온갖 장르의 예술가들이 길거리 퍼포먼스를 펼치는 축제와 예술장터가 펼쳐진다면, 그야말로 가장 전주다운 진풍경이 벌어지지 않을까? 이 거리는 전동성당, 경기전, 풍남문, 객사 등의 역사적 공간과 영화의 거리, 동문예술거리, 웨딩거리, 남부시장 등이 가로 세로로 이어진 전주구도심의 등뼈와도 같다. 이들 공간을 잘 활용하고, 연극,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 이 지역 각 분야 예술가들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결합한다면, 거기에 이 거리에 오래 살아온 주민들의 현실적 욕구를 잘 결합한다면, 팔달로가 전주의 로얄마일을 꿈꾸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구도심 거리서 문화예술축제를포화상태에 이른 한옥마을의 흥청거림이, 전국, 나아가 세계에서 몰려온 거리 예술가들의 창의적 에너지와 뒤섞인다면, 전주는 그야말로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역동적인 전통문화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