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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저 촉촉이 젖은 대지그대까만 씨로 내 품 파고들어싹 틔우고 꽃피워향기 가득 채웠으니내가 그대 것입니까그대가 내 것입니까△어울린다는 말이 가진 밝은 울림이 대지의 묵묵한 배려인 줄 이제 알겠다. 나와 인연이 되어 내가 싹 틔우도록 품어준 선생님, 부모님, 친구, 선후배, 그리고 삼라만상이 고맙고 고맙다. 나는 온전히 그들의 것이 되어드리지 못했으나 그들은 온전히 내 것이 되어 주셨다. -김영 시인
화장기 없는 여인의 얼굴이다.내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걷는우연적 필연이다.지천으로 너불려 있는 돌멩이 밭에서나의 의미가 된돌멩이 하나다.감추지 못한맨손이다.맨발이다.맨마음이다.△돌멩이도 시인은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언어로 부여할 때 맨발로, 맨손으로, 맨마음의 시가 된다. 가식 없는 하루를 사는 화자가 외로운 글밭에서 맴도는 수많은 언어. 나붓나붓 흔들리는 감정을 가장 낮은 자세로 시에 접근하는 화장기 없는 여인의 보고 싶다. 이소애 시인
어제는 싸랑부리로살강 밑에납작 엎드려 울더니이 봄엔하얀 민들레꽃으로무작정 훨훨 날아가는구나왼 낯바대기에마른버짐꽃 허옇게 핀전라도 촌가시내야△살강 밑 씀바귀처럼 딱 엎드린 촌가시내의 흐느끼는 등짝이 보인다. 학독에 보리쌀을 갈다가 힘들어서 울었고, 부뚜막에 불을 지필 때 매운 연기가 눈물을 만들었다. 낯바대기 마른버짐은 가난한 가시내의 꽃무늬였다. 휘파람 불던 사내에겐 하얀 민들레꽃으로 보였으니 훨훨 날아가고 싶었을 게다. 시인 이소애
나는 텃밭을 가꾸고 있다하루에도 몇 번씩 기웃거려 본다채소도 자라고 잡초도 자란다갈 때마다 잡초를 뽑아 보지만뒤돌아서면 잡초는 내 손보다 빨라서감당하기가 어렵다.생각해 본다내 마음에 잡초를 이렇게 뽑았다면 깨끗한 마음의 밭이 되었을 텐데텃밭에 풀도 무성하지만내 마음도 쑥대밭이 될 때가 더 많다.텃밭에 풀도 뽑고 마음 밭에 풀도 뽑고부지런히 마음의 밭을 갈아야겠다.△잡초를 생각한다. 하찮고 소외되고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풀.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풀은 뽑힌다. 엉겅퀴, 강아지풀, 닭의밑씻개라고 부르는 닭의장풀, 애기똥풀 그리고 연보라 꽃을 피우는 비비추를 생각한다. 마음에 심지 않아도 자생하는 미운 사람. 그 미운 사람을 위하여 이름을 불러보는 텃밭이 푸르다. 시인 이소애
점점 낮아지고 작아지는 집, 대문이 사라진 집경계를 허무는 그곳에 늙은 어머니 꽃들과 함께 흔들린다보고 싶은 것만 보시라고 시력은 뒷걸음질하고듣고 싶은 것만 들으시라고 청력은 아득해졌는가꽃 같은 시간 훌쩍 사라진 자리에 홀로 남겨진 어머니마음만은 꽃 같아서 어머니 꽃자리는 낮아지지도, 작아지지도 않는다 여전히 꽃들은 그들의 시간 지나고어머니의 시간만 가벼워진다△어머니의 시간은 자식의 시간이다. 마술사처럼 배고플 때 따뜻한 밥과 색동저고리와 꽃버선을 만들어 주셨다. 금방 대문을 열고 들어오실 것 같은 어머니 목소리. 꽃 진 자리에 어머니를 닮은 내 모습이 첩첩 슬픔으로 스며든다. 카네이션 꽃만 보아도 가슴이 아리는 오월이다. 시인 이소애
썩고 썩고또 썩어서나 이제없어졌네.한겨울보내고나니온누리가 꽃이어라.△번다한 생(生)을 짧은 양장에 저리 깊게 썩힐 수 있을까! 썩는 것은 삭는 것, 삭는 것은 발효되는 것. 삶의 여러 마디들은 얼마나 오래 발효시켜야 꽃으로 활짝 피어날까? 세상의 모든 꽃은 씨앗이 썩어서 핀다. 자식도 부모가 썩어서 피어난 꽃이다. 김영 시인
여전히 보숭보숭한 할머니지팡이처럼 굽어서도피어나는 할머니 놀랍다산등성이에서 손자를 기다리던 할머니가목을 쑥 빼밀고굽은 등을 쭈욱 펴고풀쩍 나는 것을 보았다막판에 키가 몇 뼘인가 올라섰다모양새 따윈 망가져도 좋아그저 숙이고 굽실거렸던주름의 힘,쫘악 펼친 우산살 웃음이햇빛의 손바닥을 쳤다△미처 몰라서 더 놀랍다. 늙어서도 피어날 수 있다니, 숙이고 굽실거렸던 주름의 힘으로 풀쩍 날아오르면 햇빛과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다니, 봄볕이 따사롭다. 굽은 등 쭈욱 펴고 햇빛 아래 당당하게 걷자. 김영 시인
어머니 목소리처럼자분자분 비가 옵니다마른 땅을 적시고연둣빛 싹을 틔우고말라버린 샛강에겨우내 참았던 이야기로 물길을 엽니다잊어버린 시간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갑니다△비 오시는 날에 차분해지는 이유를 알겠다. 봄비 소리가 어머니 목소리구나. 잔뜩 주눅 들어있고 얼간이 들어있는 세상을 봄비가 토닥여주면 대지엔 싹이 트고 물길 열리고 소홀했던 사람들이 생각나는구나. 전화라도 넣어야겠다. / 김영 시인
지리산 숲길에서 만난 산목련가지마다 꽃송이 매달려두 손 모으고 기도 중이다행여 품고 있는 사랑 날아갈까 봐꽃잎끼리 꽃잎끼리깍지 끼고 기도 중이다사진 찍으려다 말고나도 두 손으로 감싸 안는다피지 마라 피지 마라피고 나면 지는 일은 순간꽃은 피기 전이 절정이다피어난 사랑은 끝이 보이지만가슴에 묻어 둔 사랑은유효기간이 없다- 잠깐 피고 오래 죽는 게 삶이어서 피고 나면 지는 일만 있다 해도 피어있는 동안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피어야 꽃이다. 품고 있는 사랑을 들킬까봐 애면글면하지 않으련다. 짐짓, 피었다 져야 사랑이 무엇인 지 안다. 김영 시인
하, 모숨모숨 느낌표들 끓어오르는아지랑이 산자락시린 세상 손 놓았던 나무들연록의 햇살 한 움큼씩 거머쥐고제각각 목숨 챙겨 일어선다아침나절 천지가 생명을 바르르 떤다보랏빛 자운영 꽃밭도 끌어다 펴니나비들도 굽이쳐 온다 누이의 고운 수틀꿩의 붉은 울음 띄워눈부신 산이 뒤뚱거리며 내려오고나는 그냥 그대로두근거리는 봄의 심장이 된다- 고통과 시련은 내 안에 받아들일 때 성장한다. 거부하면 추락한다. 아슬아슬한 역경의 삶은 뼈를 곧추세우며 산다. 눈보라 치는 겨울 목련나무가 그랬었는데, 움트는 숨소리에 표정이 밝다. 태양에 노출된 두근거리는 봄의 심장을 어쩌랴. 꿩의 울음에 화들짝 놀란 소식. 봄이 왔다. 시인 이소애
생솔가지 한 묶음 꺾어두고봉분 옆 밭두렁에 불을 붙인다부러진 억새 잎이 축축하다손바닥만 한 불씨가 남풍에내 키를 훌쩍 넘어 혀를 날름거린다생솔가지를 치켜들고 힘껏 두들겨도도무지 잡히지 않는다들을 건너 산에서 산으로 속진하는 불꽃나는 눈을 뜰 수가 없다입 속에서만 맴도는 산불이야 산불!내가 눈을 떴을 때는 앞산 뒷산, 벚나무에 활활 불이 붙은 뒤였다내면 저 깊숙한 곳사그라진 줄 알았던 불씨가 새삼 타오르는 날△생솔가지를 치켜들고 힘껏 두들기는 건 봄바람에 꽃분홍 물든 마음이리라. 산불보다 더 빠르게 번지는 벚꽃의 열정을 누가 막는단 말인가. 뜨거운 그리움을 등에 업고 토방을 나서는 사람. 그 헐렁한 신발에 불씨를 지피고 있으니 그것이 꽃불이다. 시인 이소애
찬 이슬 내리는 개울가갯버들 가지 꺾어 물컵에 꼭꼭 심어 다졌습니다가지 끝 어린 꽃눈부스스 눈 뜨는가 싶더니 달짝지근한 소망 품고하늘로 하늘로 품을 열어갑니다보송보송 간질거리는 솜털 사이에서보일 듯 움트는 작은 생명단단한 껍질을 벗어버리고세상을 여는 갯버들산자락 휘돌아 찾아오는 꽃소식으로그리운 것들은 그리 눈 뜨고 슬며시 다가옵니다△산자락 휘돌아 찾아오는 꽃소식은 내 마음 그리움도 꽃피운다. 어머니는 이불 홑청을 벗겨 빨래하면서 봄 마중을 했었다. 어머니의 한을 빨랫방망이는 알았으리라. 맑고 슬픈 그 소리가 그립다. 빨랫감을 차닥거리는 소리에 놀라 갯버들이 실눈 뜨던 옛 그리움이 다가옵니다. /시인 이소애
건지산 검은 나뭇가지 사이동이 트고산까치가 파득 눈을 떴다샛길을 타고 나가천변을 감아 돌던 바람은 새벽 야채 장수의 트럭 위에서 흔들렸다아내는 천 원어치의 봄을 샀다달래, 취, 돌나물과 냉이봄을 씹는 이른 밥상머리에여린 햇빛들이 때굴거렸다사랑에 빠졌던 날한평생 서럽게 찬연한 봄이강물처럼 일렁이는 아침 일곱 시△봄맛, 향기로 스며드는 봄나물이 겨울과 봄 사이에서 맛으로 다가온다. 산까치의 날갯짓에 봄이 강물처럼 일렁인다. 천변을 감아 돌던 바람도 태양을 따뜻하게 품더니, 봄나물이 얼른 밥상에 오른다. 밥상머리에서 나눌 사랑을 위하여 봄맛은 온 몸을 휘더듬는다. /시인 이소애
산수유나무 가지 끝에콕콕 쪼아놓은 부리 자국이 나 있다연이틀 내리던 비 그치자졸졸졸 개울물 소리가 가려운지버들개지도 귀이개를 부풀린다촐랑대는 검둥개를 앞세워어머니는 뒤꼍 무구덩이를 헤치고겨우내 마른기침이 잦던 텃밭의 늙은 아버지모처럼 환하다자가웃 소낙눈에 발목 잡혔다는 대관령 너머로 고춧대 콩대 호박넝쿨 그러모아, 한나절봉홧불을 피워 올린다바람 편에 들은 아랫녘 꽃사태를 전한다논두렁 검불 속에서 어머니한 움큼 냉이를 캔다△시가 봄을 초대한다. 아직 꽃사태를 전하는 봄바람은 아니어도 목을 감싸던 털목도리를 잊고 외출한다. 콕콕 쪼아놓은 부리 자국에서 연둣빛 생명이 바깥세상을 염탐하는 걸 보니 산수유나무가 일을 낼 것 같다.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도 봄꽃이다. 작품 감상=이소애 시인
금방 전 화려했던너의 모습 어디 가고왜 이리 굴해졌나뒹굴며 우는 저 꼴사는 게 힘들었더냐그 몰골이 흉칙하다세상을 주름 잡고 날뛰던 하루살이호화도 잠시였군 좋을 때 잘 지킬 걸목청은 요란도 하다 실속 없는 천둥소리△김숙 시인은 월간 〈한국시〉 시조 부문, 〈서울문학인〉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저서로 〈하늘에서 내려준 꽃〉, 〈그 곳에 있고 싶어서〉, 〈접해야 정이 든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갯지렁이 같은 뿌리로세상을 짚어갈 때마다한 뼘씩 마디가 생살아가는 동안마디와 마디 사이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이 더 어렵다는 걸잘 알지요평생 꽃 한번 피워내고사그라질 수 있다면꽃상여 뒤따르는 만장이어도 그리 슬프지 않으리△이문석 시인은 〈한국시〉로 등단, 김제문협과 한국문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거친 손으로 뜯겨지는 월력月曆이 초라한 모습으로 내동댕이쳐질 때희멀건하게 바래져가는 나이테로바라보는 둥근달은 수만 년을 그대로인데우리들의 착시錯視로 반달이 되었다더라.머리끈 질끈 동여맨 채로 달려 온 비포장 길 이제는 속마음을 열어 싸여진 찌꺼기들을 뱉어내자.세상 누군들 슬픈 사연 없는 이 어디 있으랴만헐레벌떡 뜀박질한 세월을 뒤돌아보며편한 자세로 마주앉아 시원하게 쭉 들이키는 막걸리 잔에다 덩그런 보름달을 담아 마셔버리자.△김형중 수필가 겸 시인은 계간 <문예연구>로 등단, <허수아비들의 노래> 등 3권의 시집을 냈다.
등대는 길을 내지 않습니다느린 배를 위하여옛 길에 빛을 열어 놓습니다어둠에 빠지지 말라고소원을 빌던 성황당 돌무더기처럼 빛을 쌓으며 살아갑니다등대는 빛을 자랑하지 않습니다길을 열어놓고그 바다에서 스러질 뿐항구로 들지 않습니다작은 바위에서 제 몸의 빛으로 살아갑니다.△정군수 시인은 계간 〈시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모르는 세상 밖으로 떠난다〉 〈풀은 깎으면 더욱 향기가 난다〉 〈봄날은 간다〉 〈늙은 느티나무에게〉 등이 있다.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수목원 돌계단온종일 놀다가는 태양아래 자주빛 치마 두르고노란 보퉁이 들려 세상에 던져진 할미꽃 한창이다등이 굽은 청춘이다꽃의 생은굽은 등 꾹꾹 눌러 펴가며 새 털 같은 가벼움으로 늙어가는 일바람 따라 소리 없이 날아오르는 일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일△김동옥 시인은 2014년 계간 〈지구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가톨릭전북문우회·늘푸른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80이 넘은 할아버지가 무얼 생각하시는 지…그저, 뚜벅-뚜벅 걷고.70이 넘은 할머니가90도로 허리를 굽히고 할아버지 뒤에서 바지 끈을 붙잡고 갑니다.할아버지 무슨 생각 하실까힘들어 앞만 보고 걸으실까이마저, 행복해 저리도 태연히 걸으실까?시장에 가시는 길에도성당에 가시는 길에도 어김없이, 부부는 끈을 붙잡고 갑니다.식사를 할 때엔 연신, “이게 맛있어, 먹어-”“예, 이것이 맛이 좋네요. 잡수세요.”참, 아름다운 부부夫婦 사랑이 여기 있습니다.△김영후 시인은 고창 출신으로 정읍농공고 교장으로 퇴임했다. 지난 2011년 계간지 〈한국문학예술〉로 등단. 전북문인협회·전주문인협회·열린시문학회·가톨릭문우회 회원·한국미래문화 회원이다.
남원 모노레일 500억 참사, 시민은 분노한다
완주‧전주 통합, 특례시 지정으로 완성해야
태풍의 눈 ‘통합 전주시장’
지방선거 앞 공무원 정치적 중립 원칙 지켜야
관광 전주, 경주에서 배워라
공직 후보자, 아는 만큼 참모습이 보인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대선 패배의 반성과 교훈
김온 : 다섯 줄
“위기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같은 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