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를 통해본 어린이날 변천사
어린이날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루하루가 모두 어린이날이라는 것이다. 집집마다 자녀가 한명 아니면 두명에 그치기 때문에 부모들이 아이들을 떠받들고 산다는 것. 옛날에 먹을 것이 없고 삶에 지쳐서 어린이들을 ‘방치’할때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지난 반세기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50년대 전쟁의 폐허에서 60년대 보릿고개를 거쳐 70년대 산업화정책과 새마을운동이 추진되면서 80년대 들어서 비로소 사람사는 꼴을 갖추게 됐다. 이제는 살만한가보다 생각했더니 90년대 후반에는 IMF가 찾아왔다. 지난 50년 창간돼 도민들과 함께 반세기를 지낸 전북일보를 통해 어린이날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어린이를 살찌우자. 주식은 빵과 밀크로…’
1968년 5월 5일자 전북일보는 전주시교육청이 전주진북국민학교를 대상으로 영양식 보급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보도했다. 태반의 어린이들이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시절. 빵과 밀크, 계란즙, 사과, 야채 등이 메뉴로 제공된다는 영양식보급 시범사업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어린이들은 환호했고 잔칫집 분위기가 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하지만 문제는 급식비용으로 한달에 300원을 내야 한다는 점. 당시로서는 거금이었다. 제공되는 음식도 말이 좋아 ‘빵과 밀크’지 요즘 같으면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들이다. 옥수수빵은 이가 아파 씹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했고, 밀크는 몇년이나 묵었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된 분유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전북의 도청소재지 전주에서도 잘나가는 학교인 진북국민학교에서도 선택받은 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70년대 들어서면서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기 시작했다. 진북초등학교처럼 소위 잘나가는 동네는 어린이날 등 ‘특별한 날’에 한정된 것이긴 했지만 좀 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72년 5월 5일자 전북일보는 어린이날을 맞아 꼬마손님들을 위한 간식코너를 마련했다. 감자로 생과자를 만들어주면 좋다고 했다. 또 귤과 계란, 사과를 썩어 만드는 맛있는 ‘펀취’가 등장했고, 사과를 잘게 썰어 만든 ‘프로트볼’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어린이들은 70년대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배곯고 어려운 시절을 살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자포자기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싹트고 있었다는 점이다.
77년 5월 4일 전북일보는 ‘점심 걸렀어도 또렷한 눈망울, 자활 열어줄 흑염소 사육이 꿈’이라는 제목으로 김제 원평 새마을학교를 소개하고 있다. 272명이 다니는 이 학교는 학부모의 75%가 날품팔이를 하고 있어 학생들이 뱃지나 명찰도 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또 학생들이 점심은 굶었지만 구김살없이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이들의 꿈은 상급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돼지나 흑염소를 키워 자립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기술을 배워 야간학교에 가고 싶은 꿈을 가진 이들도 많다고 했다.
80년대는 우리사회가 성장과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빈부격차 등 사회의 명암이 더욱 뚜렷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80년 5월 5일 전북일보에 따르면 전주시는 어린이날을 맞아 동물원을 무료로 개방했다. 많은 ‘똘이장군’과 ‘어여쁜공주’로 동물원이 붐볐다고 한다. 그러나 전주국교에 다니는 한 쌍둥이 어린이는 더 쓸쓸하고 힘든 어린이날을 보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아이들 소풍준비를 위해 시장에 갔던 엄마가 귀가길에 돈을 노리는 괴한에게 피습을 받아 숨졌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어린이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85년 5월 4일자 신문은 어린이 놀이터의 시설과 기구가 다양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미끄럼틀, 시소, 회전대 등만 갖췄다며 ‘볼품없고 적다’고 비판했다. 87년 5월 5일과 6일자 신문은 자녀들의 학교성적에 대한 부모들의 지나친 집착으로 아이들이 집에 가기를 꺼리고 거리를 배회하거나 전자오락실, 만화가게 등 바쁜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다며 성적제일주의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또 성을 금기시하는 폐쇄적인 분위기와 성에 대한 수치심, 잘못된 성지식 등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성교육은 가정과 학교에서 어릴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90년대 들어서는 과외와 고교평준화 등 교육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전인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현장학습이 등장했다. 전북일보 95년 5월 6일자 신문은 ‘책가방 없는 날이 좋아요‘라는 제목으로 순창초등학교가 전국에서 최초로 책가방없는 날을 도입했다고 소개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책가방없이 등교해 인근의 문화재나 명승지 등을 견학한다는 내용이다.
2000년대에 들어선 오늘날의 어린이날은 후세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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