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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전북기업사] 페이퍼코리아①북선제지의 태동

1944년 군산공장 가동…국내 최초 제지업체 '명성'

북선제지 인쇄용지 생산공장 내부모습. (desk@jjan.kr)

군산시 조촌동의 약 53만㎡(16만평) 부지에 ㈜페이퍼코리아가 둥지를 틀고 있다. 1944년 10월 북선제지로 고고성을 터트린 이 회사는 이후 고려제지, 세대제지, 세풍 등을 거쳐 2003년 페이퍼코리아로 사명을 바꿨다. 환갑을 훌쩍 넘긴 67년이라는 회사의 역사가 말해주듯, 페이퍼코리아는 군산 지역경제의 한축을 떠맡아온 향토기업이라는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페이퍼코리아는 '국내 최초의 제지업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제시대에 제지공장을 짓고 가장 오래된 인쇄용지를 생산한 이 회사는 고려제지 시절 대한민국 최고의 신문용지였던 군산갱지를 공급하기도 했다. 2002년에는 워크아웃이라는 시련을 딛고 제2의 도약을 선언하기도 했던 이 회사는 혁신과 도약을 양축삼아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페이퍼코리아의 모태인 북선제지는 일본 굴지의 제지회사였던 왕자제지(주) 조선공장의 방계회사로 지난 1935년 설립됐다. (desk@jjan.kr)

 

2003년 500억원에 달하는 공장 현대화 설비투자의 결과로 첨단 원료공장 신설과 초지 설비혁신을 이루는 등 일산 900t 규모의 탈묵설비와 연산 33만t의 생산능력을 가진 국내유수의 신문용지 전문업체로 뿌리내렸다. 이 회사의 주요 생산품은 신문용지, 중질지, 만화용지, 전화번호부지 등이며 전량 폐지를 재활용하는 등 환경친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에 본보는 앞으로 페이퍼코리아의 역사를 되짚으며 한국제지사를 가늠해본다.

페이퍼코리아① 북선제지의 태동

페이퍼코리아의 모태인 북선제지는 일본 굴지의 제지회사였던 왕자제지㈜ 조선공장의 방계회사로 지난 1935년 설립됐다. 왕자제지는 1930년대 들어 조선·만주의 양지(洋紙)소비시장, 동만주·두만강변의 원시림에 눈독을 들이고 북선제지화학공업㈜를 설립했다. 함경북도 길주에 첫번째 공장을 설립한 북선제지측은 펄프용 원목의 수집과 제품수송 등을 감안해 군산에 제2의 생산공장을 지었다. 북선제지 군산공장은 설립당시 남한의 유일한 인쇄용지(신문용지) 생산공장으로, 연 3만t 규모로 알려져 있다.

1954년 3월에 발간된 한국총람에는 '1943년 군산에 쇄목펄프와 갱지를 초조하는 북선제지 군산공장(용지 15만평)이 건설되었다'라는 기록이 남아있고, 제지계(製紙界)도 '1943년 당시 일본의 태평양전쟁의 전국(戰局)이 급전직하로 악화됨에 따라 선박부족과 일본내의 양지생산능력의 저하로 우리나라에 대한 공급이 점차 감소를 불면할 추세에 있자 우리나라의 양지 자급자족체제의 확립을 위해서 북선제지화학은 조선총독부의 종용으로 군산공장을 건설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다만 북선제지 군산공장 부지의 경우 당초에는 제지공장이 아닌 방직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조성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943년 2월 착공식을 가진 북선제지 군산공장은 다음해인 1944년 10월 제1호 초지기를 준공한 뒤 조업에 나섰다. 제1호 초지기를 가동한 지 불과 10개월만에 일본이 패망함에 따라 군산공장은 미군정청의 관리하에 들어갔다. 미군측은 기본생산시설이 극히 빈약했던 남한내에서 북선제지 군산공장의 존재가 크다고 보고 구레보 중위를 재산관리자로 파견하는 한편 고무신업계의 큰손이었던 경성고무회사 이만수 사장을 첫번째 한국인 관리자로 임명했다.

하지만 이만수 사장은 구레보 중위와의 소통에 한계를 드러내며 관리인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수개월만에 관리인직을 물러났다. 이후 1946년 2월 미군정청 제지부문 고문으로 재직했던 김원전씨가 이 사장의 빈자리를 메우며 제2대 관리인에 임명됐다. 전주중 교사출신이었던 김원전씨는 당시 29세로 영어가 능숙했고, 김씨의 친형인 김흥전 박사는 당시 전북 민정장관이었다.

김원전씨는 관리인 취임직후 군산공장의 질서확립에 주력했다. 당시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김씨는 작업복에 고무신 차림으로 넓은 공장안을 순회하면서 종업원들을 격려지휘했다는 일화가 회자되고 있다. 이같은 김씨의 노력에 힘입어 군산공장은 1950년 3월 제2호 초지기를 증설하는 성과를 냈다. 당시 군산공장은 물론 국내 제지업계의 일대 쾌거로 손꼽히는 낭보였다.

광복직후 국내 기계제지공장은 남북한을 통틀어 21곳에 불과했고, 이 가운데 7곳은 삼팔선 이북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군산공장은 당시로서는 최첨단식인 장망식 초지기를 보유한 유일한 제지공장이었다는 점에서 '국내 양지생산량=북선제지화학 군산공장의 생산실적'으로 인식됐다. 당시 군산공장의 위상이 얼마나 컸는지를 시사해주는 대목인 셈이다.

그것도 잠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군산공장도 전화의 소용돌이속으로 빠져든다.

페이퍼 코리아 연혁은

▲1943년 2월 북선제지 군산공장 착공

▲1944년 10월 북선제지 제1호 초지기 준공 및 조업 개시

▲1950년 3월 제2호 초지기 증설 및 조업 개시

▲1954년 6월 고려제지 개편, 김원전 사장 취임

▲1972년 8월 고려제지 도산

▲1973년 3월 세대제지공업㈜, 고려제지 인수합병

▲1974년 2월 제3호 초지기 조업 개시

▲1976년 7월 KS마크 획득(신문용지 1호)

▲1980년 1월 N-1 M/C초지기 증설 조업개시(일산 250M/T)

▲1985년 8월 한국합판, 세대제지공업㈜ 흡수합병(자본금 합계 191억5000만원)

▲1985년 8월 ㈜세풍으로 상호변경

▲1991년 12월 열병합발전소 완공(1만2000㎾/H)

▲1992년 10월 N-2 M/C공장 준공(일산 400M/T)

▲1995년 10월 ISO 9002 인증 획득

▲1996년 12월 ㈜전주방송에 투자

▲1998년 6월 GR(Good Recycled) 마크 획득

▲1998년 7월 채권금융기관협의회 WORKOUT 대상기업 선정

▲1998년 12월 합판사업본부 폐업

▲2000년 2월 ㈜전주방송 주식매각

▲2002년 11월 워크아웃 졸업

▲2002년 12월 대표이사 회장 구형우 취임

▲2003년 4월 법인명을 ㈜세풍에서 페이퍼코리아㈜로 변경

▲2003년 10월 공장현대화 준공식

▲2006년 11월 디지털미디어 생산공장(나투라미디어) 준공

▲2007년 4월 대표이사 이명철 취임

▲2008년 10월 ㈜나투라파워 준공(수소연료 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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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epicur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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