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한달 맞은 김대곤 동학농민기념재단 이사장
동학농민혁명은 전북의 역사적 자랑거리다. 전북에서 불씨를 지펴 전국에 떨친 혁명의 심장부에 전북과 전북의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전까지'동학란'으로 폄하됐던 '1894년 사건'은 특별법(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당당히 법적으로 혁명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혁명은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당시 혁명에 대한 연구작업이 근래 진전되지 않고 있고, 유적지 보전 등 선양사업도 미흡하다. 국가기념일 제정과 관련해 자치단체간 힘겨루기로 선조들이 외쳤던 숭고한 정신을 퇴색시키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사업의 중심에 있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지난달 19일 취임한 후 한 달을 맞은 김대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민간재단 당시 상임이사로 근무한 뒤 현 재단 발족때부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말해주듯 김 이사장은 동학농민혁명 관련 현안을 꿰뚫고 있었다. 재단 운영과 관련, 그는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세계화·미래화'를 강조했다.
-동학농민혁명이 오늘에 갖는 의미를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여러가지 있겠지만, 혁명의 시원이 됐던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그 가치는 현재에도 맞고 미래에도 유효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3·1운동과 4·19혁명, 그리고 오늘의 민주화가 이루지는 과정에도 직간접적으로 그 정신이 닿아 있습니다. 전라감영에 설치된 집강소만 보더라도 당시 실습할 기회가 없었던 풀뿌리민주주의의 주춧돌을 놓은 사건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학농민혁명 100년을 전후해 관련 사건의 연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며, 그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유적지 보전 등 선양 사업쪽에 중심을 둬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시는지.
"그렇지 않습니다. 학계에서는 아직도 '동학농민혁명'명칭부터 다 동의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박정희 대통령때 세운 기념탑에서부터 시작해 특별법으로 현재의 이름이 통용되고 있지만, 개념 규정부터 미진한 부분이 있습니다. 문제는 관련 연구로 갈 데가 없다는 점입니다. 연구 인력이 갈수록 줄어드는 이유입니다. 연구 업적이 나오지 않으니까 다 된 것 아니냐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동학농민혁명으로 프랑스 혁명·중국태평천국운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혁명의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동학농민혁명은 전국적으로 일어났지만 사실 전북의 사건으로 축소시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혁명의 전국화가 선행돼야 합니다. 세계화를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의미와 성과를 논리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의 국가 위상도 많이 높아진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역사로 만드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몫이며 책임입니다."
-유적지 보전에 관심을 높여야 할 텐데요.
"유적지 조사와 발굴은 재단에서 하더라도 그 보전을 위해서는 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몇몇 자치단체에서는 사적지 등록에 나서는 등 관심을 갖고 있지만, 호남지역을 벗어나면 관심이 떨어지는 게 문제입니다. 당시 동학농민군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왜 목숨을 버려야 했는지 유적지가 말해줍니다. 관련 유적지가 전국에 걸쳐 있기 때문에 전북으로 일부러 수학여행 을 올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기념일 제정이 주요 현안인데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1994년 100주년 기념사업 이후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특별법이 제정된 뒤에도 10년이 지난 오늘까지 기념일을 제정하지 못해 목숨 바친 선조들 앞에 부끄럽고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역을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지역마다 의미 있는 날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 나름의 기념일을 기리는 것과 별개로 전국 기념일을 제정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 전국화 될 수 있게 지역이기주의를 벗어나야 합니다. 내년 2주갑(120년)을 국가적으로 기념할 수 있도록 기념일 제정이 필요한 데 안타깝습니다. 국민들이 공감하는 방안을 찾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내년 2주갑과 관련해 특별히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현재 재단에서 120주년 행사 기본계획을 수립해 문화관광부와 예산협의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전문가 등으로 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기념사업에 새 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전국 각지에 20여개 기념사업회가 활동하고 있는 데, 네트워크화 할 필요성이 있지 않은지.
"기념단체협의회가 있습니다. 재단이 발족되면서 재단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면서 협의회가 발전적으로 해체됐습니다. 혁명의 전국화가 안 되는 데는 지역 단체들의 활동 저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재단에서 약한 단체의 활동을 지원해 기념사업의 활성화를 꾀할 계획입니다. 내년 행사도 지역별로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하나의 모토 아래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진할 것입니다. 전북만이 아닌 모든 국민들이 동학농민혁명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느끼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관심이 생기고 참여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대곤 이사장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김대곤 이사장의 애정은 각별하다. 그는 '동학란'으로 불리던 때인 고교(전주고) 시절에 정읍의 동학농민혁명기념탑을 찾을 만큼 자칭 '동학당'이었다. 일찍부터 근현대사의 중요한 흐름으로 '동학'을 주목했던 것이다. 100주년에 맞춰 설립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로 '동학'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고, 2005년 발족된 재단의 전신인 민간 기념재단 상임 이사로 활동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특별법이 제정된 후 2010년 설립된 국가기관. '동학농민혁명의 기념과 전승, 민족 대화합과 통일,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는 게 그 설립 취지다. 정읍 황토현에 설치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전북도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 기념홍보사업과 추모사업, 연구조사사업, 유족 명예회복사업, 유적지 정비사업 등이 주요 일이다.
국가를 대신해 혁명을 추모하고 계승·발전시키는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위상 정립이 아직 덜 됐다. 재단에 대한 사회 인지도 역시 낮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이사장은 기념일 제정과 내년 120주년 행사, 기념공원조성을 역점 사업에 두었다. 기념공원은 현재 기념관이 위치한 황토현전적지를 공원으로 만들어 전국의 유족들이 분향과 헌화를 할 수 있게 하고, 동학농민혁명정신을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기념일 제정과 관련, 그는 인터뷰에서 밝힌 원론적인 입장과 개인적 생각도 드러냈다. 기념일 제정이 필요하지만, 기념일 제정 문제로 지역간 첨예하게 대립돼 내년 120주년 행사가 흐트러질 우려도 있다는 일각의 의견도 전했다. 일각에서 제안하고 있는 특별법 제정일을 기념일로 정하자는 주장과 관련,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여러 의미 있는 날이 많은 데 굳이 특별법 제정일을 택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 것으로 보았다. 제3의 길을 고민하겠다는 이사장이 어떤 묘수를 낼 지 관심이다.
△1948년 전주 출신 △성균관대 법대 졸 △동아일보 ·청와대 비서관·전북도 정무부지사·국무총리 비서실장·원광대 부총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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