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교량)는 연결이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을 이어주는 구조물로 소통의 상징이자 공동체의 기억이다. 오랜 세월의 무게를 버텨내고 서 있다면 그 의미는 더 특별하다. 공간을 건너면서 시간을 건너는 경험까지 할 수 있다. 그 위를 오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 그리고 한 시대의 기술이 담긴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시대의 변화 속에 가장 먼저 철거되는 인공 구조물이 바로 오래된 교량이다.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쌓여 안전성이 떨어지고, 교통량과 체계가 바뀌면서 대부분 보수가 아닌 철거·신축을 선택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세월의 풍화에 깎여 더 이상 차량의 무게를 견디지도 못하고, 이동 통로로서의 역할도 줄었지만, 그 위를 지나온 시간과 이야기를 남겨두기로 한 옛 다리가 극소수지만 남아 있다.
만경강 하류, 김제시 청하면과 군산시 대야면을 잇는 새창이다리가 그렇다. 1933년에 건립된 길이 약 530m의 구조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콘크리트 다리로 알려져 있다. 이 다리의 김제 쪽 통로는 신창마을이다. 조선시대, 김제 만경벌판에서 서해로 통하는 포구였던 신창진(新倉津·새창이나루)이 있던 나루터다. 20세기 초 일제가 수탈한 쌀을 신작로를 통해 군산항으로 운반하기 위해 이곳 나루터에 다리를 건설했다. 일제 쌀 수탈의 아픈 역사를 짊어진 이 낡은 다리는 1989년 바로 옆에 새 교량(만경대교)이 준공되면서 사실상 역할을 마쳤다. 이후 차량 통행이 금지되면서 강태공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시화전과 사진전이 열리는 문화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의 강을 건너온 이 다리가 최근 다시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역시 노후 시설물의 ‘안전성’이 문제가 됐다. 전북지방환경청이 하천정비계획 및 환경영향평가에서 ‘부적합 시설물’로 판단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사고위험이 있는 데다 관리주체마저 명확하지 않아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물론 안전이 최우선이다. 새창이다리는 분명 커다란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그렇다고 아예 없애는 것이 능사일까? 위험 요인과 함께 이 오래된 다리의 가치와 의미까지 허물어버려야 할까? 단순히 낡은 교량이 아니다. 주민 삶의 애환이 겹겹이 쌓여 있는 근대산업시설의 흔적이자 일제강점기 식량 수탈의 상징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적지 않다. 또 1930년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초기 철근콘크리트 교량으로, 근대 토목기술 발전사를 보여주는 기술유산으로서의 가치도 크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안전과 역사, 두 가치를 함께 지켜내면 된다. 교량의 본래 기능은 이미 새 다리에 맡겼으니, 남아 있는 옛 다리에는 역사와 기억을 맡기면 될 일이다. 철저한 보강을 통해 보행자 전용 산책로, 문화·교육 공간으로 의미 있게 남기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 근대 토목구조물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