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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시인, 삶 되돌아보며 풀어낸 이야기

김형철 시인이 자신의 여섯 번째 시집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합니다>와 자신의 삶을 돌아본 회고록 <동초의 인생과 문학>을 펴냈다. 시인은 아내와 함께 맞는 80년이라는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록과 함께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많은 은혜를 받으면서도 갚지 못한 마음을 시편으로 한곳에 엮어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시집에는 시인이 여행을 하거나 일상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 그리고 가족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시인은 남미와 중국, 일본 같은 해외뿐 아니라 변산과 금강산 등 국내 여행을 하며 돌아본 사람과 풍경을 시로써 표현했다. 시 아래에 덧붙인 시인의 설명을 보고있으면 흡사 여행기를 읽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집 후반부에는 부모님과 아내, 시인 자신의 이야기도 풀어놓았다. 33년의 지방 공무원 생활과 시인으로서의 인생 후반기 등을 담담히 풀어낸 회고록에서는 시인의 부지런했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상략) 인생의 긴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정년의 문턱에 서서/ 조석으로 그림자 늘이고/ 햇볕 쨍쨍한 정오에는 움츠려/ 신발 밑으로 잦아드는 그림자를 본다. (하략) 회고록에 실린 시 자화상에서 처럼 그는 은퇴 후 삶에 대해 헛헛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시집과 회고록을 통해 꿈틀거리며 평범한 인생과 문학의 길을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그는 마음의 창에 쌓인 먼지를 닦고 닦아 행복한 마음 부자를 꿈꾼다고 말했다. 1997년 33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한 저자는 줄곧 부안에 머물며 향토시를 쓰고 있다. 월간 한국시 신인상, 백양촌문학상, 노산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부안지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공무원문학회, 전북시인협회, 전북문인협회 회원과 원불교문인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천경석
  • 2018.11.15 19:53

신남춘 시인, 삶의 희로애락 담아

월간 <한비문학>으로 문단에 나온 신남춘 시인이 6년만에 두 번째 시집 <비오는 날의 초상>(신아출판사)을 펴냈다. 지난 2012년 발표한 첫 번째 시집 <풀꽃 향기>가 자연의 꽃과 나무를 시집 속으로 옮겨, 문명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상처를 입은 마음을 다독거렸다면, 이번 <비오는 날의 초상>은 저자가 부지런히 새로운 풍토, 생경한 물상 등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며 체득한 것들을 쏟아낸다. 저자는 시인의 말을 통해 모자람이 있지만 수년의 고통 끝에 조심스럽게 두 번째 시집을 올린다. 아름다운 꽃향기를 맡아 보듯 해달라고 밝혔다. 이어 세월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지나쳐 간다. 오늘 지나면 또 오늘이 오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란 마냥 똑같은 날은 아니었다며 슬펐지만 기쁨이, 울었지만 웃음이, 허무했지만 희망이, 분노했지만 사랑이 오는 그런 날을 기다리며 사는게 인생이라고 했다. 작은 개울물로 출발하여 / 크고 넓은 대하로 나아가 / 작은 울음이 큰 울음 되는 것 // 강변의 수런거리는 풀꽃들 / 목울음까지 눈 맞춤하다가 / 물 비늘 잔잔히 울고 가는 것 // 높은 하늘, 망망한 바다를 / 기웃거리며 우리는 얼마나 흔적 없이 잦아들었던 가 제1부에서 5부에 걸쳐 91편으로 묶은 시집의 첫번째 시인생은. 이 시에서 저자는 수많은 변이를 겪는 삶의 흥망성쇠를 강의 흐름으로 의인화한다. 삶의 희로애락은 굽이굽이 사무치는 중에도 강변을 눈부시게 하는 기화요초도 만나고 하늘과 구름과 은하수까지 강물에 첨벙첨벙 뛰어드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소재호 시인은 저자의 시 세계를 동양적 정한이 유로(由路)되는 서정시의 표상, 신남춘 시인의 시는 낭만적 서정시다며 시인의 심상은 맑고 깨끗하며 건강하다. 흔들리며 가끔 유랑의 길에 오르는 나그네의 삶이 언뜻언뜻 뜨인다고 평했다. 부안 출신인 저자는 우석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42년간 교편을 잡았다. 교직에서 퇴직 후 지난 2011년 월간 <한비문학> 신안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부안문인협회, 서울시인협회, 석정문학회, 시마을작가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신아문예대학작가회 회장, 한국한비문학회 시 분과회장 등을 맡았다. 한비문학상 시 부문 대상, 월간 추천 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8.11.15 19:53

황의춘 시집 ‘하늘나라 우체통’ 발간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소개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준말)의 사례들이다. 조촐하고 소박한 생활 감각을 중시하는 이 태도는 현대인들의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황의춘 시인의 시집 <하늘나라 우체통>은 이 소확행의 속성이 짙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시인은 조촐하고 소박한 삶을 희구한다. 소재 역시 사회, 국가, 세계와 같은 거대 담론보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상적 관념이나 사물, 사건에 주목한다. 그리고 연민과 동정의 정서를 바탕으로 현실 속 삶의 갈피를 무덤덤하게 기록해 나간다. 삶은 외줄 타기다// 줄에 걸린 바람에/ 육탈肉脫이 시작되면// 햇살 한 조각에/ 두엇 살점 내어주고// 넉넉지 못한/ 초가살이도 내어주고// 흰 뼈에 새긴/ 그리움도 내어주리 (초분 전문) 전북대 양병호 교수는 시인은 현실을 구조적이거나 분석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과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나지막이 읊조릴 뿐이라며 이를 통해 가혹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위로한다고 평했다. 시인은 1990년 계간 시와 의식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석조문학, 청하문학, 군산문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11.15 19:53

[불멸의 백제] (221) 11장 영주계백 17

편지를 읽은 하세가와가 조심스럽게 접더니 앞에 놓았다. 이곳은 하세가와의 저택 안, 안쪽에 앉은 하세가와의 얼굴은 병색이 짙다. 그러나 눈은 번들거리고 있다. 하세가와가 앞에 앉은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계백의 심복 나솔 백용문, 계백이 한상성주 겸 수군항장이었을 때부터 동고동락을 해온 장수 중의 하나다. 그 백용문이 밀사의 임무를 띠고 타카모리의 중신(重臣) 하세가와를 찾아온 것이다. 지금 하세가와가 읽은 편지는 타카모리가 쓴 글이다. 타카모리의 영지를 모두 계백에게 바칠 것이니 모두 계백에게 충성해주기를 바란다고 써진 편지다. 하세가와가 입술 끝을 비틀면서 입을 열었다. 이 편지를 갖고 오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하세가와의 눈동자는 흐려져서 앞에 앉은 백용문의 뒤쪽을 보는 것 같다. 청은 10평쯤 되었는데 타카모리의 가신 10여명이 둘러앉아 있다. 모두 침통한 표정이다. 편지를 읽지 않았어도 내용을 짐작하는 것 같다. 그리고는 하세가와가 입을 꾹 다물었기 때문에 청 안에 어색한 정적이 덮여졌다. 그때 백용문이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백용문은 가죽 갑옷차림이다. 부하 5명을 데리고 이곳까지 말을 달려온 것이다. 노인, 타카모리님에 대해서 더 물어보실 말이 없으시오? 없습니다. 하세가와가 여전히 흐린 눈으로 백용문을 보았다. 장군께선 계백영주의 중신이며 거성(居城)의 수비장이라고 들었습니다. 나한테 오신 목적이 이 편지를 전하시는 것 뿐이시오? 이번에는 하세가와가 묻자 백용문이 쓴웃음을 지었다. 노인께 그대로 말씀드릴까요? 그럼 말씀하시지요. 내 주군이며 상관이시기도 한 계백장군께서 날 보내시면서 딱 한 말씀만 하십디다. 모두 숨을 죽였고 백용문의 말이 이어졌다. 하세가와한테 이 편지를 주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주고와라. 이렇게 말씀하십디다. . 묻는 말씀이 없다고 하시니 할 말이 없소. 그리고는 백용문이 입을 딱 다물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만. 당황한 하세가와가 따라 일어서려다가 비틀거렸다. 겨우 중심을 잡은 하세가와가 두 손을 내민 채 백용문에게 말했다. 장군, 잠깐 앉으시지요. 타카모리님에 대해서보다 다른 것을 여쭤보겠습니다. 다시 자리에 앉은 백용문에게 하세가와가 가쁜 숨을 고르고 나서 묻는다. 장군, 타카모리 가문은 멸문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백 명 가신, 수천 명 군사는 어떻게 됩니까? 내 주군께서는 어떤 말씀도 없으셨으니 내가 내 생각을 말씀드리리다. 백용문의 목소리가 작은 청을 울렸다. 아마 네 생각대로 행동하고 오너라 하고 내 주군께서 말씀하신 것 같소. 듣겠습니다. 그 주군에 그 신하라고 당신들도 다 같소. 어깨를 편 백용문이 하세가와를 노려보았다. 타카모리는 목숨만 살려주면 다 드리겠다고 했소. 그자에게는 신하고 주민이고 안중에 없었소. 제 처자식이 몰사했다는데도 눈 하나 끔벅하지 않았소. . 그리고 저 편지를 써 준 것이오. . 그러니 당신들도 마찬가지겠지. 누가 그런 자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단 말인가? . 내 생각을 말하리다. 백용문이 호통치듯 말했다. 가신들이 결속해서 내 주군께 복속한다는 서약을 하시오. 그래야 영지가 안정이 되고 주민들이 편하게 살 것 아니오? 그것이 우선이요. 그리고는 백용문이 길게 숨을 뱉었다. 영주다운 영주를 만나면 영지 주민들이 첫째로 혜택을 받을 것이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1.14 19:39

[불멸의 백제] (220) 11장 영주계백 16

무슨 일인가? 청에 와서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지만 백제방의 전령은 왜국의 관리와는 다르다. 전령은 8품 시덕 관등의 백제관리로 백제방 방주이며 백제왕자(王子), 왜국의 제1품 벼슬인 대덕(大德) 부여풍이 보낸 자인 것이다. 소가 이루카가 왜국의 섭정이라고는 하나 백제방은 왜국 왕가(王家)의 자문역이며 방주는 왜왕의 자문관이니 이루카보다는 격이 높다. 실권은 없지만 위상으로써는 소가 가문이 감히 눈을 맞출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때 전령인 시덕 연권이 어깨를 펴고 이루카와 에미시를 번갈아 보았다. 40대의 연권은 두 부자(父子)와 안면이 많다. 대감, 왕자 전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둘의 시선을 받은 연권이 거침없이 말을 잇는다. 이번에 마리타, 마사시, 이또의 영지를 다스리게 된 백제방의 은솔 계백이 타카모리의 기습을 받아 어쩔수 없이 타카모리의 거성을 기습, 일족을 멸문시키고 타카모리를 생포했습니다. 에미시도 긴장으로 굳어진 얼굴로 연권을 노려보았고 이루카는 허리를 흔들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그때 연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사시가 전에 합의한 5천석 영지를 내놓으라면서 군사를 투입시킨 것입니다. 지금 마사시 영지에 기마군 2천 5백, 보군 3천이 투입되어 있습니다. 계백은 타카모리를 생포하고 철수했지만 이대로 후환을 놔두면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깨를 편 연권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타카모리의 영지를 몰수하며 소가 가문과 계백이 나누어 통치 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십니다. 타카모리는 영지를 내놓겠다는 합의서를 써낼 생각이며 가신들도 죽거나 등을 돌린 상황입니다. 이대로 두면 무주공산이 되어 도둑떼가 창궐하게 될 것이니 시급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에미시가 물었다. 지금 타카모리 영지에는 누가 있나? 하세가와가 있습니다. 으음. 신음을 뱉은 에미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영감이 죽기 전에 안좋은 꼴을 보는군. 왕자 전하께서는 타카모리 영지는 이미 없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영지와 여기 있는 섭정의 영지가 타카모리 영지와 붙어 있어. 에미시가 이루카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사코이 산 서쪽 땅을 소가 가문이 가져가도록 하지. 그럼 이번 혼란을 수습하도록 해주겠네. 전하께서는 아와강 서쪽 땅을 소가 가문이 가져가는 것이 공평하다고 하십니다. 연권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것은 소가 가문에 대한 왕자 전하의 예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몇만석짜리 땅으로 성의를 훼손시키면 되겠습니까? 이봐, 성의라니? 누구한테 선심쓰는 것이냐? 화가 난 이루카가 버럭 소리쳤을 때 에미시가 손을 들어 말렸다. 섭정, 시끄럽다. 아버님, 계백이 안하무인입니다. 타카모리가 과욕을 부린 벌을 받은 것이다. 그놈이 성급했고 앞뒤를 구분 못한 때문이야. 자르듯 말한 에미시가 연권을 보았다. 알았네. 왕자 전하의 뜻을 받들겠다고 전해드리게. 연권이 청을 나갔을 때 이루카가 찌푸린 얼굴로 에미시를 보았다. 아버님, 아와강 서쪽 영지를 우리가 떼어 받으면 계백을 타카모리 영지 25만석중 18만석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16만 5천석에서 단숨에 18만석이 불어나 34만 5천석의 대영주가 됩니다. 너는 이미 85만석 아니냐? 에미시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이루카 자신은 90만석이다. 거기에다 이번 7만석을 합치면 1백만석 가깝게 되는 것이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1.13 19:57

[불멸의 백제] (219) 11장 영주계백 15

하도리가 청으로 들어섰을 때는 오시(12시) 무렵이다. 주군, 타카모리가 양도서를 쓰겠다고 합니다. 하도리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이곳은 계백성의 청 안이다. 진시 무렵에 성에 도착한 계백이 잠깐 눈을 붙이고는 나온 참이다. 계백이 시선만 주었을 때 하도리가 말을 이었다. 타카모리 영지 25만석을 계백령의 계백공에게 양도하겠다는 양도서입니다. 청 안에 둘러앉은 가신(家臣), 장수들이 수군거렸는데 몇 명은 소리죽여 웃음소리를 내었다. 계백은 여전히 보료에 몸을 기댄채 듣기만 했고 하도리가 말을 계속한다. 그리고 영지의 가신, 장수, 군민들에게 앞으로 새 영주를 맞아 충을 다하라는 글도 쓰겠다는 것입니다. 머리 상처는 어떠냐? 불쑥 계백이 물었더니 하도리가 어깨를 치켜올렸다가 천천히 내렸다. 여전히 엄숙한 표정이다. 예, 칼등에 맞은 머리 꼭지가 터졌기는 하지만 뇌가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제정신이란 말이렸다? 예, 머리가 아프다고 술을 달라고 해서 한병을 주었습니다. 영지를 내놓고 죽겠다더냐? 아니올시다. 주군. 턱도 없는 말이라는 듯이 하도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살려주는 조건으로 합의서를 쓰겠다는 것입니다. 살겠다고? 예, 죽이지만 말아달라고 저한테도 사정을 합니다. 제 일족이 아이까지 몰사된 것을 알고 있느냐? 예, 제가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오직 제 목숨은 살려달라고 했단 말이지? 예, 주군. 옳지. 계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를 가져갈만 하다. 하세가와한테 그 합의서와 가신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보내주도록 해라. 무엇이? 버럭 소리친 이루카가 옆에 앉은 에미시를 보았다. 오시(12시)가 조금 지난 시간, 둘의 앞에는 타카모리 영지에서 달려온 전령이 엎드려 있다. 하세가와가 보낸 전령이다. 전령은 어젯밤의 내막을 보고했는데 과장이 심했다. 계백군(軍)을 수천명으로 보고했고 타카모리측 피해자도 수천으로 부풀렸다. 이루카의 저택 안이다. 오늘도 부친 에미시가 와있었기 때문에 진구 섭정이 내막을 함께 들은 셈이다. 타카모리를 생포해갔단 말이냐? 이루카가 비명처럼 묻자 전령이 한숨을 쉬었다. 40대쯤의 하세가와 가문의 가신이다. 예, 대감. 일족은 다 죽이고? 예, 유아까지 다 죽였습니다. 허, 타카모리 가문이 끊겼구나. 이루카가 말했을 때 에미시가 물었다. 그리고 기습군이 돌아갔단 말이냐? 예, 대감. 하세가와는 그 사실만 보고하라고 하더냐? 예, 대감. 질문을 그친 에미시가 머리를 둘려 이루카를 보았다. 하세가와가 타카모리한테 만정이 떨어진 것 같다. 그나저나 계백이 안하무인입니다. 이루카가 눈을 부릅떴다. 이러다가 우리 가문에다 칼을 휘두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때 마당이 떠들썩하더니 집사가 소리쳤다. 백제방 왕자 전하의 전령이 오셨습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1.12 19:31

[불멸의 백제] (217) 11장 영주계백 13

결사대를 따라 청으로 진입한 계백은 청 안쪽에 서있는 타카모리를 보았다. 옆에 그림 같은 미인이 타카모리에게 딱 붙어있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여자에게 의지하고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의 눈이 초점이 또렷한 대신 타카모리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치켜뜬 눈, 벌린 입, 엉거주춤한 자세가 그렇다. 이것은 계백이 눈 깜박하는 순간에 본 장면이다. 생명체는 이 짧은 순간에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이다. 다음 순간 계백이 소리쳤다. 다 죽여라! 영주이며 대백제 은솔, 대장군, 대륙을 누비며 당왕 이세민의 눈알을 뺀 용장 계백이 손수 칼을 쥐고 외친 것이다. 벽력 같은 외침, 이 외침을 들은 수하 결사대는 누구인가? 계백을 따라 수십번 전장을 누빈 역전의 용사들이다. 와앗! 처음으로 결사대의 외침이 터졌다. 전투는 기세로 승부가 난다. 접전, 난전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기가 오른 용사의 기세는 일당백이 된다. 내려치는 칼날은 제아무리 검법의 달인이라고 해도 막아내지 못한다. 으악! 앞을 가로막던 가신 하나의 비명을 시작으로 청에 살육이 일어났다. 치고 받는 싸움이 아니라 도살장이 된 것이다. 막는 시늉을 했지만 시늉이고 대부분 단칼에 베어진다. 계백은 결사대 사이를 빠져나가 타카모리를 향해 달려갔다. 이제 타카모리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서다가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는 중이다. 타카모리의 팔을 잡아 부축한 여자가 없었다면 넘어졌을 것이다. 타카모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상황에 빠진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장의 전투에 선 적도 없다. 앞을 가로막은 위사 하나의 어깨에서 허리까지를 베어 넘어뜨린 계백이 타카모리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 옆에서 위사 하나의 칼날이 날아왔지만 어깨를 비틀어 피하면서 칼로 목을 쳤다. 피가 분수처럼 튀어 계백의 몸에 뿌려졌다. 그때 타카모리는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여자와 함께다. 타카모리! 계백이 벽력처럼 소리쳤다. 나는 영주 계백이다! 천둥 같은 소리가 청에 울렸을 때 살아있던 두어 명의 가신, 위사가 주춤했다. 놀란 것이다. 그때 타카모리도 숨을 들이켰지만 머리를 돌리지는 않았다. 여자만 이쪽을 보았을 뿐이다. 그때 계백이 한걸음 뒤까지 다가가며 다시 소리쳤다. 너, 타카모리 아니냐? 아니오! 타카모리가 엉겁결에 소리친 순간이다. 계백의 칼이 날아가 타카모리의 뒷머리를 쳤다. 아악! 타카모리의 비명이 청을 울렸다. 밤, 자시(12시)가 되었을 때 자리에 누워있던 하세가와가 마당에서 울리는 소음에 몸을 일으켰다. 말굽 소리, 외침, 부르고 꾸짖는 소리가 내실까지 들린 것이다. 누구냐!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면서 소리치자 문 밖에서 집사 요시다가 소리쳤다. 모리 님이 오셨습니다. 모리는 타카모리의 위사부장으로 500석을 받는 가신이다. 하세가와가 문을 열자 앞쪽 마루 밑까지 와있던 모리가 헐떡이며 소리쳤다. 하세가와 님! 큰일 났습니다! 이제 주변에 등불을 든 하인, 경비병이 모여 섰기 때문에 모리의 몰골이 드러났다. 피투성이다. 하세가와의 시선을 받은 모리가 소리소리쳤다. 다 죽었습니다! 하세가와의 눈빛이 강해졌고 모리의 입꼬리가 떨렸다. 계백군이 내궁을 기습해서 청에 있던 가신, 위사들을 몰살시켰습니다. 계백이 선두에 섰습니다! 내궁으로 진입해서 주군의 마님들, 일족까지 모두. 내전에도 살아남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주군과 나미코님을 사로잡고 마장의 말을 타고 모두 철수했습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18.11.08 21:36

한 사서가 권하는 즐거운 책 읽기

독서의 중요성을 알지만 정작 책을 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책 읽을 용기와 힘을 주는 반가운 책이 나왔다. 백명숙 사서의 <책과 잘 노는 법>(가림출판사). 사서를 천직으로 여기며 전주대학교 도서관에서 30년 넘게 책과 호흡해 온 저자가 즐거운 책 읽기를 위한 비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책과 잘 노는 법>은 아직 책과 친해지지 않은 사람, 책 읽기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책과 친해질 수 있는지를 경험을 통해 안내한다. 또한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게 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일 뿐 아니라 책 읽기가 즐겁게 노는 일이라는 점을 알게 해준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정신이 한 뼘씩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책과 놀아보기를 제안한다. <대통령의 글쓰기>을 펴낸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추천의 글을 통해 말과 글의 감동은 진정성에 있다며 책을 읽으며 저자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고 책과 함께 살아온 저자의 삶이 감동으로 다가와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밝혔다. <인문학 공부법>의 안상헌 작가는 한 사서의 자기 영혼을 위한 시간의 기록인 이 책이 자신이 선택한 책이 어떻게 삶을 바꾸었는지 그 결과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며 여러모로 이 책은 소파에서 읽고 가슴으로 남기기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부안 출신인 저자는 현재 전주대학교 단과대학 행정업무를 맡고 있으며 <나를 바꾸는 가르침>(하나의 책)을 공저자로 펴낸 바 있다. 출판기념회는 오는 24일 전북은행 중산지점 3층 투어컴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8.11.08 21:36

출생부터 죽음까지, 인간 전봉준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

2018년 4월 서울 종로네거리 영풍문고 앞에 전봉준(1855~1895) 장군의 동상이 건립됐다. 이 자리는 한말 전옥서 터로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이 공주 우금치에서 진압군에게 패배한 뒤 갇힌 장소이다. 동상 건립을 주도한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는 이를 두고 동상은 한국사 속에서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이 바르게 평가되고, 제 위치를 찾게 된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동상 건립을 시작으로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는 전봉준연구소를 세워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연구사업을 시작했다. 그 첫 사업으로 송정수 전북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역작 <베일에서 벗어나는 전봉준 장군>을 총서 제1권으로 선정해 발간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병술보>에 수록된 전봉준 장군 관련 기록을 기반으로 한다. 병술보는 1886년(병술년) 천안 전씨 문중에서 간행한 <천한전씨세보 병술보>로 이 족보의 소유자인 고(故) 전성태 씨는 송정수 교수의 외가 쪽 삼촌이다. 송 교수는 <병술보>의 발견 경위와 그 진위를 검토한 뒤 전봉준 장군의 출생과 가계, 유동 생활과 그 기간 만난 동지들, 피체와 죽음 그리고 묻힌 곳에 대한 내용을 순서대로 서술했다. 그는 전봉준의 족보 분석을 토대로 전병호와 전봉준이 동일인임을 입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봉준의 출생지(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당촌)를 비롯해 처가와 외가를 포함한 가계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전봉준이 살아온 마을들을 추적해 유동 생활을 정리했다. 신영우 사단법인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상임이사는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혁명을 넓은 시각에서 연구하기 위해서는 실증 연구가 필요하다며 그런 측면에서 이 연구는 현지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연구였다. 전봉준 장군과 인척이 되는 송정수 교수만이 할 수 있는 연구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송 교수는 전봉준 장군의 무덤으로 추정됐던 정읍시 옹동면 수암마을의 장군천안전공지묘 조사발굴 과정과 결과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다. 2016년 11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전봉준장군기념사업회는 이 무덤에서 회곽묘(17세기 조선 중기의 묘제)를 발견하고, 전봉준 장군의 무덤이 아니라는 고고학적 판단을 내리고 발굴 조사를 중단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회곽묘는 17세기 조선 중기부터 시작해 전봉준 장군이 살았던 시대 이후까지 사용된 묘제로 발굴한 무덤은 얼마든지 전봉준 장군의 무덤일 수 있다면서 다시 새로운 발굴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책이 계기가 돼 전봉준 장군의 새로운 모습들이 점차 세상에 드러나 보이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명청사학회, 동양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중국근세향촌사회사연구>, <중국 정사 외국전이 그리는 세계들>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11.08 21:36

제20회 백석문학상 수상자에 정읍 출신 박성우 시인

정읍 출신 박성우 시인이 제20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백석문학상은 시인 백석(白石)의 업적과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자야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제정돼 창비가 주관해오고 있다. 수상작은 최근 2년 이내에 출간된 시집을 심사해 선정한다. 심사위원들은 <웃는 연습>은 농촌 공동체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진솔하고 질박한 언어로 고향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이들의 면면과 갖가지 사연, 그리고 그 속에서 포착한 통찰을 들려준다고 평했다. 또한 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도시적 생활 감각과 속도를 존재의 한 부면에 상처처럼 새기는 한편, 이를 거슬러 자연과 어우러지는 사람살이 본연의 리듬을 창출해내고 이제는 희귀해져버린 토박이의 삶과 언어를 새롭게 발견한다는 점에서 백석의 시정신을 계승한다고 평가되어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심사위원으로 시인 고형렬, 시인 천양희, 문학평론가 한기욱 씨 등이 참여했다. 정읍 출신인 박 시인은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웃는 연습>, 청소년시집 <난 빨강> <사과가 필요해>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이용수
  • 2018.11.08 21:36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걷다, 생각하다, 쓰다 - 이준호

1983년에 군산에 정착했으니 햇수로 34년째다.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계획도시다. 높은 곳에서 조망하면 시가지가 바둑판처럼 구획돼 있다. 80년대엔 영화동과 월명동에 일본식 건축물이 즐비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월명산은 군산 도심에 자리한다. 명월이 아니라 월명인 건 일본식 어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제망매가」의 지은이가 월명사인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월명산의 벚꽃은 일제강점기엔 경성에서 특별열차를 편성할 정도로 장관이었다고 한다. 월명공원은 문학이나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탁류의 악한 고태수가 산책하려다 몸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만둔 곳이자 어린 고은이 신사참배를 하던 곳이다. 광기 어린 좌우의 살상으로 정신이 피폐해져 방황하던 고은이 노숙하던 곳이자 부산 출신의 소설가 김정한이 소주에 독을 타서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곳이다. 고은이 장항제련소 굴뚝을 건너다보며 영원성을 생각한 곳이자 채만식 문학비가 있는 곳이며, 고은이 출가한 동국사가 있는 곳이다. 일본인들이 뚫은 해망굴은 탁류에서 고태수와 장형보, 행화가 은적사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통과한 곳이자 고은이 미군비행장으로 가기 위해 지나친 곳이다. 그중에서도 수원지와 그 주변의 산책길은 나에게 각별하다. 하루에 한 번, 시간을 정하지 않고 월명공원 수원지 둘레를 걷는다. 체육공원에 설치된 운동기구까지 이용하면 한 시간 남짓한 코스다. 시간을 늘리고 싶으면 주변의 해발 100미터 내외인 산을 슬쩍 끼워 넣는다. 그러면 금세 두세 시간짜리 코스가 된다. 월명산 내에 있는 수원지 역시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 수원지와 산책길의 인연은 고3 때로 거슬러간다. 그땐 상수원 보호를 위해 수원지 둘레에 철망이 쳐두었고, 주변의 길은 비포장이었다. 고등학교 선배와 낚시를 하다 감시원에게 낚싯대를 빼앗긴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시멘트 포장에 우레탄까지 깔아 비가 와도 흙탕물 튈 걱정 없고, 오래 걸어도 무릎 상할 염려가 없다. 흙길 그대로 보전했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내 욕심일 뿐이다. 오히려 이런저런 부속시설과 편의시설이 설치돼 이용이 편리하다. 지금은 수원지를 월명호수라는 낭만적인 이름으로 바꿔 부른다. 그렇지만 수원지를 뭐라 부르건 나와는 상관없다. 나에겐 어디까지나 수원지일 뿐이다. 일반명사를 고유명사화한다는 건 사유화하고 구속한다는 거니까. 명명자의 주관이 개입되는 순간 명명된 사물의 본질과 정체성은 훼손돼 버리니까. 어느 지역의 집필실에 가건 맨 먼저 산책길을 만든다. 하지만 그 어느 산책길에도 이름을 붙인 적은 없다. 단지 식수공급원의 용도로 만들었기 때문에 수원지라고 고집하는 건 아니다. 수원지와 산책길은 내 글의 원천이자 자산이다. 수원지의 물빛이나 냄새는 계절이나 시간대에 따라 달라진다. 비 오는 날이면 머리를 꼿꼿이 쳐든 괴생물체를 발견한다. 어스름 저녁이면 외래종인 황소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한때 숲을 지배하던 청설모는 다 어디로 간 걸까? 공도교에서 쌀 튀밥을 주면 몰려드는 잉어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안개가 심한 어느 겨울밤, 흰 체육복을 입은 커플을 유령으로 착각해 머리칼(?)이 쭈뼛 섰던 적도 있다. 가로등 불빛이 미치지 않는 벤치에서 인기척에 남녀가 후다닥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하면 괜히 미안해진다. 산책길에 떨어진 야구 모자나 장갑 한 짝을 발견하면 그 물건들의 주인들을 상상하게 된다. 며칠 전엔 오후 열한 시쯤에 갔더니 예닐곱 마리가 무리를 이룬 개떼를 만났다. 무슨 모의라도 하는지 산책로 한가운데서 모여선 녀석들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재작년엔 집필실에서 돌아와 몇 달 만에 갔더니 민둥산이 되다시피 했다.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 때문이었다. 겨울 산의 황량함과 스산함은 신록이 우거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모든 글들이 수원지와 산책길에서 구상되고 숙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범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산책길이지만 나에겐 사색과 모색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편백나무 숲에 누워 장르를 구분 않고 다운받은 음악을 듣노라면 상상력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풀벌레 소리에 볼을 간질이는 미풍까지 더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걷기 좋아하는 글쟁이들이 군산에 놀러오면 꼭 안내하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아름다운 길은 많다. 가본 곳을 잠깐만 떠올려도 동해안 자전거길, 지리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 부안 마실길 등등이다. 하지만 산책길처럼 마음이 한갓지고 여유로워지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산책길이 끼니때마다 먹는 집밥이라면, 다른 길들은 돈가스나 짜장면쯤 될까. 이따금씩 정해진 코스를 이탈해 채만식 소설 탁류의 배경이 된 장소를 찾는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군산의 원도심은 탁류 속에 그대로 재현돼있다. 군산시는 관광객들을 위해 탁류의 배경지와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을 중심으로 탁류길을 조성해두었다. 탁류의 등장인물들이 걸었던 동선을 따라가며 만나는 녹슨 못 하나, 비바람에 퇴색한 판자 한 쪽이 모두 정겹고 애틋하다. 채만식의 발자취를 따라 고즈넉한 밤거리를 걷노라면 일제강점기로 타임슬립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영화 <밀정>에서 경성 밤거리를 밝히던 가로등이 현재 군산에 설치된 가로등과 모양이 같다는 걸 안 뒤론 그런 느낌은 더욱 강렬하다. 어느 시인은 채만식을 친일 작가라고 단정한다. 채만식의 친일 작품이 서른 편이 넘는다고 박박 우기는 데엔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야말로 반성적 사유의 결여에서 오는 오만과 자만의 산물이다.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권력지향적인 그 시인이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하는 가정 뒤엔 으레 당꼬바지에 도리우치를 쓴 고등계 형사의 모습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게 된다. 나는 김훈 작가를 좋아한다. 그가 밀리언셀러 작가여서도, 미문을 구사해서도, 지면 곳곳에 깊은 사유의 흔적이 스며 있어서도 아니다. 그가 「치욕」에서 나는 내가 체험하지 못한 시대의 고통에 대해 말해야 하는 일이 두렵다.라고 심경을 밝힌 다음부터다. 시대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그의 균형 잡힌 사고가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 또한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자신할 수 없다. 채만식은 매문으로만 생계를 유지했다. 한땐 그의 식솔뿐 아니라 형의 가족들까지 부양해야 했다. 머리맡에 원고지를 쌓아두고 글을 쓰는 게 그의 평생소원이었다. 한 번 정착된 문자는 오래 전해진다. 구술과 문자의 차이이다. 채만식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덮어놓고 친일 작가 운운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느 평론가는 채만식이 친일을 내면화해 일제에 적극 협력했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때론 채만식이 원망스럽다. 항일이나 반일의 길은 가지 못할망정 왜 손가락질당하는 길을 가셨습니까. 오늘도 산책길을 걷는다. 공도교 입구가 막혀 있다. 그제야 깨닫는다. 언젠가부터 확장 공사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눈으로만 읽고 머리엔 입력하지 않은 탓이다. 당분간은 다른 코스를 걸어야 할 것 같다. 어떤 코스가 좋을까. 길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시공간은 다르지만 내가 걷는 산책길과 채만식이 걸어간 탁류길은 어느 지점에선가 이어져 있기도, 끊어져 있기도 하다. 연결됐나 하면 단절됐고, 단절됐나 하면 연결됐다. 그걸 알면서도, 모르면서도 걷는다. 그게 인생 아니던가. *이준호: 1994년 작가세계 소설 당선, 2001년 MBC 창작동화대상 장편동화 당선, 할아버지의 뒤주, 그해 여름, 닷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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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8 21:35

[불멸의 백제] (215) 11장 영주계백 11

이쓰와성 서문(西門) 수문장 고다와가 해산물을 등에 지고 들어오는 어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어제는 많이 잡았나? 좀 잡았소. 어민 하나가 소리쳤다. 풍랑이 그친 날이어서 고기떼가 많이 밀려왔소! 눈먼 놈들이로구만. 고다와가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오전 사시(10시)무렵, 바닷가에서 이쓰와성까지는 60리(30km)거리였으니 새벽에 길을 떠났을 것이다. 어민들은 30명쯤 되었는데 제각기 바구니에 든 고깃짐을 졌고 수레도 2대가 된다. 모두 이쓰와 시장에 내달 팔 고기들이다. 시장에서 고기와 양곡, 또는 피복이나 생필품을 바꿔야 되는 것이다. 고다와 옆에 서있던 오장 사쓰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아침에는 나뭇짐을 진 셋쓰 마을의 농민들이 들어왔습니다. 오늘 시장은 다른 때보다 장사가 잘 될 것 같습니다. 허, 셋쓰 마을에서도 왔어? 셋쓰 마을은 북쪽 산지의 화전민들이다. 고다마가 힐끗 서쪽을 보았다. 슈토님이 마쓰야 골짜기의 군사를 이끌고 마사시 영토로 간다는 소문이 났던데. 서쪽이 마쓰야 골짜기다. 그러자 사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일어나기 전에 양곡을 사들이는 것이 주민들이지요. 비올 때 개구리처럼 전쟁 일어나는 것 첩자들보다 주민들이 먼저 압니다. 그래서 이렇게 몰려온단 말인가? 그럴지도 모르지요. 주군이 마사시 영지의 새 영주가 된 계백하고 전쟁을 해서 승산이 있을까? 내궁의 위사로 있는 사촌 다다시한테 들었는데 이번에 영지를 내놓지 않으면 곧장 슈토님을 쳐들어가게 한답니다. 계백의 군사는 몇백명 되지 않는다는군요. 하긴 이루카님이 우리 주군을 밀어주고 있으니까, 조금전에 산요님이 끌고 간 말떼는 이루카님께 드리는 예물이야. 그때 활짝 열린 서문으로 다시 한무리의 상인이 들어갔다. 다 들어왔습니다. 하도리가 말하자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계백도 상인 행색이었지만 이제는 수레 바닥에 싣고 왔던 활과 화살통을 옆에 놓았고 손에 장검을 쥐었다. 이곳은 타카모리의 거성인 이쓰와성 안 호국사뒷마당이다. 주위에 20여명의 조장들이 둘러서 있었는데 모두 백제에서부터 계백을 따라온 역전의 용사들이다. 계백이 입을 열었다. 제각기 조별로 은신해 있다가 술시에 성문을 닫는 북소리가 울리면 일제히 기습한다. 정해진 목표를 기습하되 목표를 이루면 내성으로 집결한다. 알았느냐? 옛! 조장들이 낮게 대답하더니 계백의 눈짓을 받고 일제히 흩어졌다. 모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쓰와성 안으로 잠입한 것이다. 계백은 처음부터 정공법을 생각하지 않았다. 신라의 가야성을 함락시킬 때처럼 잠입하여 수괴의 목을 베는 전법을 택한 것이다. 계백은 하도리와 함께 20명을 이끌고 직접 타카모리의 내궁을 칠 것이었다. 계백과 함께 잠입한 백제군은 250, 마사시 영지를 맡고 있는 윤진은 마사시 성에서 타카모리의 사신을 맞아야 했고 화청은 이또의 거성이었던 야마토성을 지키고 있다. 그때 상인 복장의 사내 하나가 서둘러 계백에게 다가왔다. 주군, 마사시성에 갔던 타카모리의 사신이 돌아왔고 타카모리가 슈토에게 출동명령을 내렸습니다. 내궁 밖에서 동정을 살피고 있던 부하다.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슈토가 마쓰야 골짜기의 대군을 이끌고 마사시로 떠났을 때 계백의 기습군은 타카모리를 치는 것이다. 됐다. 준비해라. 호국사는 쇼토국 태자가 건립한 절중의 하나로 뒷마당에는 인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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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6 20:32

[불멸의 백제] (214) 11장 영주계백 10

지금쯤 계백이 머리를 감싸쥐고 있을 거다. 타카모리가 둘러앉은 중신들에게 말했다. 이곳은 타카모리의 거성(居城) 이쯔와(五和)성, 왕성(王城)인 아쓰카 성보다 더 크고 웅장하다고 소문이 난 성이다. 청도 넓어서 사방 200자(60m)의 면적에 붉은색 기둥이 6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타카모리는 35세, 백제계로 체격이 커서 5자반(170cm)의 키에 배가 나왔다. 둥근 얼굴, 눈이 튀어나왔고 두툼한 입술에는 기름기가 배어 있다. 타카모리의 시선이 중신(重臣) 산요에게로 옮겨졌다. 회신은 언제까지 보내라고 했지? 예, 내일까지입니다. 머리를 끄덕인 타카모리가 이제는 중신 슈토에게 물었다. 병력은 대기 시켰겠다? 예, 주군. 어깨를 편 슈토가 말을 이었다. 기마군 2500, 보군 3천이 마쓰야 골짜기에서 대기 중입니다. 좋다. 타카모리가 어깨를 폈다. 이루카님께는 산요, 네가 가라. 예, 주군. 53세의 산요가 머리를 숙여 보이더니 말했다. 주군, 섭정께 예물로 말 1백마리 정도는 가져가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도 50마리를 보냈으니 50마리만 가져가도록. 예, 주군. 타카모리가 다시 슈토를 보았다. 슈토는 38세, 역전의 용장이다. 계백은 아직 3개 영지의 군사를 모으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리타성의 주력군은 백제에서 데려온 기마군 200정도에 투항한 군사 300가량이다. 타카모리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내일 계백이 영지를 넘겨주지 않으면 바로 마사시 영지로 진입해서 약속받은 영지를 접수한다. 알았나? 예, 주군. 슈토가 기운차게 대답했을 때 집사 겸 늙은 중신 하세가와가 입을 열었다. 주군, 좀 기다리시지요. 뭐라고? 눈을 가늘게 뜬 타카모리가 하세가와를 노려보았다. 영감, 뭐라고 한거냐? 기다리시는 것이 낫겠습니다. 네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 기다릴까? 예, 그러시면 더욱 좋지요. 넌 노망도 들지 않나? 들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입 닥치고 가만 있어. 왜 이렇게 서두르십니까? 영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는게 아니라 10년이건 20년이건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동안에 너는 물론이고 나까지 죽겠다. 이번에 영지 반환 사신을 보낸 것도 시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병으로 집에 누워있지 않았다면 말렸을 것입니다. 여봐라, 위사! 타카모리가 소리치자 놀란 위사들이 달려왔다. 타카모리가 손으로 하세가와를 가리켰다. 이 영감을 집으로 데려가서 눕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와라! 옛! 위사들이 하세가와의 양쪽 팔을 움켜쥐었다. 비켜라! 하세가와가 위사들의 팔을 뿌리치더니 타카모리를 향해 절을 했다. 타카모리 이에하치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 영감이 진짜 노망이 들었구나. 활짝 웃은 타카모리가 손뼉을 쳤다. 타카모리 이에하치는 백제에서 건너온 타카모리의 9대 선조였기 때문이다. 몸을 돌려 청을 나가는 하세가와를 향해 타카모리가 소리쳤다. 나를 이에하치라고 불렀어. 내 선조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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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5 16:11

[불멸의 백제] (213) 11장 영주 계백 9

타카모리는 소가 가문하고 가깝다. 소가 이루카 섭정이 타카모리의 여동생을 소실로 삼았지. 왕자 풍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난번에 마사시와 영토 분쟁이 일어났을 때 타카모리의 편을 들어준 것 같다. 그것이 마사시가 신라소 측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계백이 잠자코 풍을 보았다. 오후 유시(6시) 무렵, 계백은 말을 달려 아스카의 백제방에 와 있는 것이다. 풍이 계백에게 물었다. 타카모리는 아스카 주변에서 영향력을 가진 영주 중의 하나다. 땅이 기름지고 주민이 많아서 군사를 1만 가깝게 보유하고 있는데다 충성스런 무장(武將)이 많다. 더구나 이루카 섭정이 친척이니 마사시가 약속한 대로 5천 석을 떼어주는 것이 어떠냐? 그렇게 물은 것은 네 생각대로 하라는 간접적인 표현이다. 그때 계백이 고개를 들었다. 마사시는 반역을 일으키다가 죽었습니다. 그런 마사시의 약속을 지킬 의무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타카모리는 성격이 급하다. 마사시가 약속한 제 영지를 찾겠다면서 군사를 보낼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여왕께서 저지할 명분이 모자란다. 타카모리를 베어죽이면 그 영지는 어떻게 됩니까? 불쑥 계백이 묻자 풍이 빙그레 웃었다. 청에는 풍과 계백, 풍의 중신 백종까지 셋 뿐이다. 풍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은솔, 그 말을 하려고 직접 왔구나. 예, 전하. 타카모리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성품이 거칠어서 신하건 주민이건 거침없이 베어 죽인다고 합니다. 단세에는 그것이 명군(名君)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전쟁이 오래 끌면 너한테 불리해질 것이다. 알고있습니다, 전하. 그 후의 대책을 듣자. 예, 타카모리 영지 뒤쪽으로 소가 섭정의 부친 소가 에미시 전(前) 섭정의 영지가 있습니다. 그렇지, 36만석이다. 타카모리를 없앤 후에 소가 에미시님께 뒤쪽의 영지 10만석 정도를 떼어주도록 하겠습니다. 나머지 15만석은 계백령에 포함시키고 말이냐? 백제방 영지입니다. 전하. 7만석 정도만 떼어줘도 에미시 영감은 좋아할 것이다. 예, 그렇게 하지요. 다시 말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이루카 섭정이 군사를 일으켜 끼어들 가능성이 있다. 정색한 풍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루카가 거병할 명분을 주는 것이지. 그러면 백제방과 왕실까지 위험해진다. 명심하겠습니다. 타카모리의 무장 중에 용장이 많다. 예, 전하. 고개를 숙인 계백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미 타카모리 영지에 첩자들을 보냈습니다. 허어. 어깨를 편 풍이 짧게 웃었다. 네가 내 자랑이다. 청을 나온 계백이 마당 건너편의 마구간으로 다가가자 기다리고 있던 하도리가 다가왔다. 주군, 지금 떠나실 겁니까? 이곳에서 영지인 전(前) 아리타 거성 계백성까지 2백리(100㎞) 거리다. 계백은 하도리와 위사 1백기만 이끌고 달려온 것이다. 속보로 달린다고 해도 자시(12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닿는다. 계백이 말등에 오르면서 말했다. 속전속결이다. 곧 갑옷소리와 함께 말굽소리가 백제방 마당을 울리더니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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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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