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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왔느냐? 여왕이 아래쪽에서 엎드려 절하는 계백을 내려다보았다. 여왕의 얼굴은 수척하다. 여왕의 남편 죠메이왕이 재위 13년 만에 죽고 나서 아직 왕자가 어렸기 때문에 결국 왕후가 여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죠메이왕을 왕으로 옹립한 것도 소가 에미시였으니 소가 가문(家門)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계백이 여왕을 우러러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여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얼굴에 희미한 웃음기까지 떠올라있다. 네 공이 크다. 이번 신라소를 격파한 공(功)을 말하는 것이다. 여왕 즉위식 준비를 마치고 돌아가는 백제방(方) 관원들을 몰사시킨 신라측에 대해서 여왕의 진노도 대단했다. 아직 김부성은 잡히지 않았지만 섭정 이루카에게 두 번이나 재촉을 할 정도다. 황공합니다, 전하. 계백의 목소리가 청 안을 울렸다. 왕궁의 청도 백제 왕궁을 모방해서 붉은 색 기둥에 사방이 트여졌다. 여왕의 옥좌는 계단이 6개다. 백제왕의 계단이 9개였기 때문에 3개를 줄인 것이다. 청 안에는 백제방 방주 부여풍 왕자가 와있었는데 여왕 옥좌의 한 계단 아래쪽에 앉았다. 섭정 소가 이루카는 청에 늘어앉은 문무(文武) 대신들의 맨 앞에 앉아서 여왕과 풍을 바라보는 위치다. 오늘은 왜국의 문무 대신, 백제방 방주와 여왕까지 모두 모여 있는 것이다. 왜국은 수백년 동안 백제의 속국이었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백제에서 이동한 유민이 규슈에서부터 정착하여 제각기 영지를 세우고 동진(東進)하여 마침내 이곳 아스카까지 진출하는 동안 왜 왕실은 백제계로 이어져온 것이다. 영주 대부분이 백제계이며 지금도 백제어가 일상으로 사용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왜말과 섞여지기도 했지만 왕실과 영주, 지도층은 모두 백제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도 왜왕의 한 계단 아래에서 왜국 대신들을 내려다보는 백제방 방주 풍왕자의 위상이 바로 그것을 나타낸다. 그때 섭정 이루카가 입을 열었다. 전하, 이번에 반역을 도모했다가 죽은 아리타와 마사시, 이또 영지에 대한 처분을 내려주시옵소서. 미리 합의가 된 일이어서 이루카가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하루라도 주인 없는 영지로 둘 수가 없으니 그 세 곳 영지를 모아 백제방의 은솔 계백이 다스리게 하여 주옵소서. 그때 여왕이 풍을 보았다. 방주께선 어떻게 생각하시오? 계백은 본국에서 성주(城主)를 지낸 적도 있으니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풍의 말을 들은 여왕이 계백에게 물었다. 계백, 세 영지를 합하면 16만석이 된다. 맡아서 백성을 돌보겠느냐? 명을 받겠습니다, 전하. 계백이 사양하지 않고 대답했다. 미리 풍한테서 지시를 받은 터라 사양하는 시늉을 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여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잘 되었다. 주인을 잃은 영지에서 도적떼가 모인다던데 오늘이라도 당장 부임하라. 예, 전하. 네가 백제의 은솔 관등으로 제3급품이니 이곳 왜국에서는 2급품 소덕(小德)이 적당하다. 소덕 직위를 받으라. 황공합니다. 계백이 머리를 청 바닥에 붙이는 것으로 어전회의가 끝났다. 여왕과 풍이 청을 나갔을 때 대신들의 우두머리인 섭정 이루카가 계백에게 다가왔다. 이루카는 대신(大臣)으로 1급품 대덕(大德)이며 섭정이니 최고 실권자다.
최기종 시인은 아픔과 슬픔을 극복 혹은 망각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에게 아픔과 슬픔은 인생을 함께 열어가는 동반자이다. 세상의 아픈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시집 <슬픔아 놀자>에는 그런 그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집은 아픔과 슬픔에 관련된 시 60편으로 가득하다. 그는 세상의 아픔을 느끼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슬픔이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표제 시 슬픔아 놀자에서는 슬픔에게 손잡고 놀자, 얼싸안고 놀자, 동무하며 놀자, 신랑각시 되어 놀자고 한다. 세상의 아픈 것들이, 내가 그렇다, 삶의 이유 1 갈대밭에서 등에서도 사람들의 애환을 신파나 절망으로 바라보고 주저앉히지 않는다. 대신 때론 희극적으로 때론 역설적으로 그려내 바닥을 차고 일어서게 한다. 목포대 국어국문학과 이훈 교수는 이 시집의 슬픔에 대해 슬픔은 이상에서 멀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이라며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한 솔직한 인정, 불쌍한 존재들에 대한 동정,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깊은 공감 등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고 평했다. 부안 출신인 시인은 1992년 교육문예창작회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나무 위의 여자>, <만다라화>, <어머니 나라> 등을 펴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전남민예총 이사장이다.
교사 출신 전길중 시인이 시집 <그녀의 입에 숲이 산다>를 펴냈다.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이다. 이 안에는 시인의 삶과 생각이 온전히 담긴 70편의 시편들이 빼곡히 실려있다. 언제 그녀가 숲을 먹었는지/올곧은 나무에 찰싹 달라붙어/그리움 딱딱 쪼는 딱따구리/옴팡진 가슴에 박힌 불씨로/짜릿짜릿 사랑의 말을 박는다(그녀의 입에 숲이 산다 일부) 누군가를 이토록 그리워할 수 있을까. 시인은 숲속에서 딱따구리 소리와 계곡의 소리, 휘파람새의 소리를 듣는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사랑을 속삭이고 사랑을 고백한다. 외롭다고, 그립다고 노래한다. 시인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담담히 풀어낸다. 시집의 표제작 그녀의 입에 숲이 산다는 시인의 외로움과 그리움의 힘으로 쓴 시다. 현순영 문학평론가는 시인이 그동안 시로써 피력해 온 존재의 근원, 삶, 죽음, 사랑에 대한 생각들이 이 시들에서 갈무리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생각이 무르익어가는 만큼 이 시집의 언어들은 조금씩 더 뜻을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호응해 줄 것이라 믿는다면서 이 시집을 읽으며 우리는 생의 방향과 빛깔이 선명해지는 어떤 한순간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익산 출신인 시인은 1987년 시문학에서 늦가을 정원, 안개로 천료를 받아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안경 너머 그대 눈빛>, <제 그림자에 밟혀 비탈에 서다>, <울선생님 시 맞지요?> 등 다수의 시집을 냈으며, 두리문학상과 등대문학상, 전북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시문학회와 한국문인협회에서 활동 중이다.
원로 소설가 윤영근 한국예총 남원지회장이 대하장편소설 <각설이의 노래>를 펴냈다. 윤 회장은 한 소리꾼의 삶을 세상에 내놓는다. 글을 쓰기 시작한지 한 갑자만이고, 이름 앞에 소설가라는 명패를 단지 40년만이다며 십 수 년 동안 내 안에 살았던 한 각설이를 세상에 내보내면서 신명난 장타령 한 대목 부르고 싶다고 밝혔다. 소설 <각설이의 노래>는 사회적으로 또는 인간적으로 멸시를 받으면서도 의로운 일에 몸을 던지고 신분을 초월하여 소리꾼의 길을 찾아가는 각설이의 생애를 그렸다. 윤 회장은 일제강점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항일 투쟁을 벌이는 각설이와 독립운동가를 등장시켜 일제 암흑기에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을 그렸다며 전쟁통에도 소리 공부에 매진한 주인공의 노래는 잊혀진 문화요, 찾아야 할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비문학적으로도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얼시구시구 들어간다. 절시구시구 들어간다 / 그저께 장에는 눈이 오고, 어제 장에는 비가오고 / 오늘 장에는 내가 왔네.(1장 그 겨울의 만남. 7쪽) 장타령으로 시작한 <각설이의 노래>는 간다간다 나는 간다 / 대궐같은 이내집을 움같이 비워놓고 / 분벽같은 고운 방에 반달같은 처자두고 / 금상자 옥상자에 가지의복 쌓아두고 (8장 해방의 날은 오고. 645쪽) 장타령으로 끝을 맺는다. 각설이들의 장타령이 설움이나 한의 토설이 아닌, 해학이나 시대상을 담은 흥겨운 가락으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각설이의 노래>에는 팔도 장타령 가사와 정겨운 남원 사투리까지 더해져 읽는 재미가 솔찬하다. 윤 회장은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한의학을 전공했고, <월간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상쇠>를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1984년 한국예총 남원지부 창설해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한국문인협회 남원지부를 창립해 지부장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문학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주요 저서에는 장편소설 <동편제>, <의열 윤봉길>, <평설 흥부전>, <평설 최석천>, <유자광전>, <아름다운 삶> 등이 있다. 한편 윤 회장은 오는 11월 10일 오후 4시 남원 켄싱턴리조트 대공연장에서 <각설이의 노래> 출판기념회를 열 예정이다. 신기철이용수 기자
조정숙 시인이 시집 <행복한 동행>을 펴냈다. 일평생 사는 동안 /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 모든 괴로움을 내가 해결하겠다고 / 많이도 울면서 살았네 시인은 4부에 걸려 가족자신세상 그리고 주님과의 동행을 노래한다. 조 시인은 시집을 내면서 행복이란, 성공과 재물의 축복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과 감사와 자족 속에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고 고백하며, 누군가 괴로운 이들이 이 시를 읽고 위로와 힘을 얻게 되기를 소망했다.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이태영 교수는 시평을 통해 조 시인의 시는 고통을 뛰어넘어 살아온 삶을 당당한 모습으로 통찰하여 마치 여행의 안내자처럼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그래서 시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며 찬사를 보냈다.
은솔, 영주가 되어라. 이키타가 물러갔을 때 풍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청 안에는 이제 중신(重臣) 대여섯 명만 둘러앉았다. 전하, 명(命)이시라면 따르겠으나 소장이 감당할 수가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계백이 정색하고 풍을 보았다. 본국에서 성주를 지냈지만 이곳은 체제가 다르다. 백제 성주는 왕이 임명한 후에 수시로 바꿀 수가 있다. 계백이 칠봉산성 성주였다가 수군항장, 고구려 원정군 사령관까지 지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왜국의 영주는 그곳에서 대(代)를 잇는다. 그곳에서 가신(家臣)을 만들고 영지의 소출에 따라 병사도 양성한다. 하나의 소국(小國)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그때 풍이 말했다. 백제방이 왜 왕실과 함께 왜국을 통치해왔지만 무력(武力)은 본국에서 온 장병들로 충당했다. 풍의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두 눈이 번들거렸다. 그래서 신라소 놈들이 함부로 날뛰었고 소가 가문이 월권을 해도 강하게 저지를 하지 못했다. 풍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떠올랐다. 이번에 소가 측에서 어젯밤 죽은 아리타와 마사시 영지를 맡기려고 한 것은 나름대로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머리를 돌린 풍이 중신(重臣) 백종을 보았다. 백종은 55세로 왜국에서 30년을 지냈다. 장덕 벼슬이나 왜국에서도 6품 소신(小信) 벼슬을 받았다. 왜국의 물정에 통달한 문관(文官)이다. 장덕, 말해라. 풍의 지시를 받은 백종이 입을 열었다. 아리타와 마사시는 어젯밤에 죽었지만 가신(家臣), 군병들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아리타, 마사시에게 충성하고 있어서 소가 가문이 영지를 빼앗는다고 해도 골머리를 썩일 것입니다. 백종이 말을 잇는다. 아리타는 6만5천석, 마사시는 4만3천석 영지를 갖고 50석당 1명씩의 군사를 낼 수가 있으니 각각 1300명, 8백여 명의 군사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가신은 각각 1백여 명 정도는 될 것입니다. 계백이 잠자코 백종을 보았다. 어젯밤 아리타, 마사시는 가신 10여 명, 군사 1백여 명과 함께 시체가 되었다. 살아남은 가신, 군사들은 제각기 영지로 도망쳤을 것이다. 백종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소가 측은 아리타, 마사시 영지의 안돈을 은솔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때 계백이 물었다. 김부성과 함께 도주한 이또가 있지 않습니까? 이또 이야기는 없습니까? 그렇다. 김부성은 왜호족 이또와 함께 도주했다. 그러자 풍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군, 이또가 잡히지 않았지만 이또 영지도 몰수해야 되는 것 아닌가? 풍의 시선을 받은 백종이 말을 이었다. 이또 영지는 소가 측 옆입니다. 5만7천석이고 기름진 땅입니다. 소가 측이 제 영지로 편입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교활한 영감 같으니. 어깨를 부풀린 풍이 옆쪽에 앉은 관리를 보았다. 시덕, 네가 에미시에게 가거라. 예, 전하. 시덕 등급의 관리가 대답하자 풍이 말을 이었다. 이또의 영지까지 계백에게 넘긴다면 영지를 안돈시키겠다고 전해라. 예, 전하. 안돈시키겠다는 말을 세 번쯤 되풀이해서 너희들의 속셈을 다 알고 있다는 표시를 해주어라. 풍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무엇이? 신라소가? 흠칫 머리를 든 소가 이루카가 다시 물었다. 불에 타고 있다는 거냐? 예, 대감.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사다케가 말했다. 예. 신라소 안의 신라인은 물론이고 지원을 나온 호족들은 모두 몰살당했습니다. 네가 보았어? 예. 순찰병을 데리고 가서 보았습니다. 누, 누구를 만났느냐? 예. 백제군 장수인데 청색 띠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럼 12품 문독 이하다. 이루카가 말했지만 백제군 16품 극우 벼슬이라고 해도 왜국에서는 어렵게 본다. 백제방 소속 관리는 물론 병사도 왜국에서는 직접 연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루카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신라소가 순식간에 멸망했구나. 백제군의 수뇌는 누구냐? 은솔 계백이라고 합니다. 으음. 불타는 대문 앞에 대아찬 박경과 화랑 둘의 머리가 창대에 꽂혀 있었습니다. 호족들의 머리는 땅바닥에 놓였구요. 김부성 머리도 내걸렸더냐? 김부성은 불에 타서 시체를 찾이 못했다는 말도 있고 도망쳤다는 말도 있습니다. 비겁한 놈. 대감. 옆에서 중신 마에온이 말했다. 시급히 부친께 연락을 드리시지요. 이런 일은 부친과 상의하셔야 합니다. 시종을 보내라. 아니, 내가 가겠다. 이루카가 벌떡 일어섰을 때다. 청 밖이 수선스러워지더니 불빛이 왔다갔다 했다. 아직 축시(오전 2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어서 사방은 먹물 속 같다. 그때 시종이 서둘러 청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대감, 전(前) 섭정께서 오셨습니다. 에미시를 이곳에서는 그렇게 불린다. 곧 소가 에미시가 청으로 들어섰다. 이루카의 인사를 받은 에미시가 중신들과 함께 청 안에서 마주보고 앉는다. 분위기가 어두웠고 서두르고 있다. 에미시가 묻는다. 들었느냐? 예, 그래서 아버님께 가려던 중입니다. 이루카가 눈썹을 모으고 에미시를 보았다. 백제방이 신라소를 멸망시켰습니다. 아버님. 김부성이 도망쳤지만 곧 잡힐 것이다. 신라소 측에 붙었던 호족들도 이번에 다 죽은 것 같습니다. 그놈들은 우리한테도 불만을 품은 무리들이니 잘 된 거다. 아버님, 백제방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까요? 그 여세를 몰아서. 그래서 내가 온 것이야. 입맛을 다신 에미시가 지그시 이루카를 보았다. 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예? 저는. 백제방 계백은 상승 장군이다. 대야성 김품석을 죽이고 연개소문과 의형제를 맺었다는 소문이 난 용장이야. 더구나 안시성에서는 당황제의 눈알 하나를 빼놓았다. 자, 너는 계백을 어떻게 할 것이냐? . 내일 날이 밝으면 백제방에 왜국 호족들이 구름처럼 몰려올 것이다. 오늘밤에 죽은 호족 놈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충성을 맹세하겠지. . 왜국 군병의 수문은 백제군을 이끄는 계백의 눈에는 원숭이 무리로 보일 것이다. 자, 네 복안을 듣자.
선두에 서서 마당으로 뛰어든 기마군은 조장(組長) 조무다. 이미 대문 앞에서 신라군 둘을 베고 달려온 터라 장검에는 피가 묻었고 피가 튄 갑옷에 말도 흥분한 상태다. 그때는 마당에 서있던 박경이 마루 위로 뛰어올라가 소리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놈! 말을 내달리면서 조무가 소리쳤다. 조무는 칠봉산성 아래의 개울가가 고향이다.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여서 군사로 뽑혔다가 계백이 칠봉성주가 되었을 때부터 전장(戰場)에 따라나왔다. 계백과 함께 대야성 싸움, 수군항, 안시성까지 종군을 했다가 지금은 왜국에 와있다. 그 짧은 순간에 조무는 마루 위에 선 박경을 보았고 다음 순간 들고 있던 장검을 번쩍 치켜들었다가 내던졌다. 말이 마루 위로 뛰어오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급했다. 전장에서는 임기응변이 가장 중요하다. 수십 번 아수라장 같은 전장을 겪은 터라 조무는 땅바닥에 누워 죽은 척을 한 적도 있다. 손에 쥔 장검이 날아갔다. 손잡이 무게가 더 나갔지만 박경과의 거리는 10보, 거기에다 말이 두 걸음을 더 딛는 바람에 5보로 가까워졌다. 순식간에 판단한 것이다. 그 사이에 장검이 날아갔다. 손잡이 무게로 금방 한 바퀴 돈 장검의 끝이 박경의 가슴에 박힌 것은 눈 깜빡할 시간도 안되었다. 박경은 비명도 못 지르고 장검이 가슴 깊숙하게 박힌 채 뒤로 벌떡 넘어졌을 때다. 조무가 탄 말이 달리는 기세를 멈추지 못하고 마루 끝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그 서슬에 조무도 마루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때 조무의 조원 서너명이 그것을 보고 소리쳤다. 적장을 죽였다! 다음 순간 선봉군이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화청이 이끈 선봉군이다. 그 다음부터는 도살이다. 쫓고 쫓기는 자들만 있을 뿐 대항해서 싸우는 광경은 보기 힘들었다. 전장(戰場)이 그렇다. 기세를 타면 일당백이 되고 사기가 떨어지면 1백명이 1명을 못 당한다. 수십명을 한명이 쫓기도 한다. 겁에 질리면 적이 거인으로 보이고 사기가 오르면 적이 좁쌀 만하게 보이는 것이다. 순식간이다. 화랑 석촌은 분전하다가 백제군 셋을 죽였지만 창에 찔려 분사했다. 화랑 하광은 도망치다가 백제군에게 난도질을 당했는데 머리통을 베어든 백제군사는 장수를 베었다고 소리치지도 않고 내동댕이쳐 버렸다. 왜군 장수 아리타는 신라소로 들어오려다가 백제군을 맞자 그대로 도주했는데 방향이 틀렸다. 그래서 백제 본군(本軍)과 마주쳐 말발굽에 밟혀 죽었다. 마사시는 싸우려고 허둥대다가 창에 찔려 죽었으며 신라소를 지키는 일을 맡은 이또는 마루 밑에 숨었다가 다리부터 잡혀 끌려나와 목이 잘렸다. 김부성이 없습니다. 밥 한 그릇 먹을 시간을 한식경이라고 한다. 밥 한 그릇하고 다시 절반쯤 먹었을 시간이 지난 후에 화청이 계백에게 보고했다. 화청의 흰 수염이 붉은 색으로 물들어져 있다. 피가 튀었고 피 묻은 손으로 수염을 쓸었기 때문이다. 신라소의 마당 안이다. 사방은 시체로 뒤덮여 있었는데 신라인은 전멸했다. 그런데 신라소의 수장(首長) 김부성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때 하도리가 왜인 하나의 뒷덜미를 잡고 끌고 왔다. 장군, 김부성이 화랑 아성과 함께 아스카항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하도리가 소리쳐 보고했다. 이놈이 따라가지 못하고 잡혔답니다. 그때 계백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누가 가서 잡겠느냐? 마치 사냥꾼을 찾는 것 같다.
계백이 이끄는 3백 기마군은 정예다. 그 중 절반 이상이 계백을 따라 안시성에 다녀왔으며 그 중에는 대야성을 함께 친 무장(武將)도 있다. 나솔 화청이 그렇고 이제 11품 대덕 관등이 되어 비색 띠를 맨 하도리가 그렇다. 나솔 윤진은 수군항에서부터 심복이 된 무장이요, 장덕에서 나솔로 관등이 오른 백용문도 계백을 수행하고 있다. 백제 기마군은 10인 1조(組)를 조장인 16품 극우가 지휘한다. 앞장선 첨병으로 2개 조가 살같이 어둠 속을 내달렸는데 길 안내역으로 백제방 군사 둘이 끼어 있다. 그 뒤를 선봉을 맡은 화청이 수염을 휘날리며 1백기를 이끌었고 뒤를 중군 겸 본군(本軍)인 2백기가 계백을 중심으로 내달리는데 한 덩어리의 불덩이 같다. 땅이 울렸고 기수들의 살기(殺氣)가 전염된 전마(戰馬)는 머리를 젖혀 들고 콧바람을 세차게 뿜어낸다. 그 시간에 신라소 안에서는 김부성의 지휘 하에 출동 준비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투석기와 충차, 마차에는 투석기용 바위를 가득 채웠고 기마군과 보군으로 나뉘어 제각기 점고를 받는 중이다. 신라군과 함께 출동할 왜군은 신라소 밖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령이 수시로 왕래를 한다. 밤이 깊었지만 주위는 열기에 덮여 있다. 서둘러라! 이번 공격대의 대장 박경이 마당에 서서 소리쳤다. 횃불을 환하게 밝힌 마당은 군사들로 가득 차 있다. 대아찬, 아리타님이 이끈 왜군 150이 도착할 것이오! 화랑 석촌이 다가와 보고했다. 이또님의 군사는 서문으로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아리타의 왜군만 도착하면 바로 출동이다! 충차는 내보냈는가? 지금 나가고 있습니다! 그때 땅이 울렸기 때문에 박경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리타한테 말을 달리게 하지 말라고 전해라! 예, 대아찬. 석촌이 마당을 나갔을 때 박경이 혀를 찼다. 왜인들은 야습의 기본도 모른다.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말굽 소리를 죽여야 한다는 것도 모른단 말인가? 말굽 소리가 더 커졌기 때문에 박경은 화가 났다. 전장(戰場) 경험이 많은 박경이 그것이 1, 2백기의 기마군의 말굽 소리라는 것을 알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아리타의 기마군은 몇이냐? 5, 60기라고 들었습니다. 뒤쪽에 있던 화랑 하광이 소리쳐 대답했다. 다가온 하광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아찬, 아리타군(軍)이 아닌 것 같소. 그, 그러면. 그때 말굽 소리가 와락 가까워지면서 땅이 흔들렸다. 그러나 인간의 소리는 둘리지 않았기 때문에 지진이 일어난 것 같다. 마당으로 군사들이 뛰어 들어오더니 그 중 서너명이 소리쳤다. 기마군이다! 그것이 어느 기마군인지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때다. 지척으로 다가온 말굽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렸다. 이미 신라소의 모든 문은 열어젖혀 놓았다. 출동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는 상황인 것이다. 그때 비명과 함께 처음으로 함성이 울렸다. 와앗! 짧고 굵은 함성을 들은 순간 박경은 이를 악물었다. 백제군이다. 창으로 찌르는 것처럼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그 순간 마당으로 기마군이 진입했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시는 예술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시를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고, 가까이하게 한 분이 신석정 시인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석정 선생이 더 그리워집니다. 제5회 신석정문학상 시상식과 문학제가 지난 13일 부안 석정문학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시상식에는 윤석정 신석정기념사업회 이사장, 정군수 석정문학관장, 허소라 석정문학관 초대 관장, 소재호 전 석정문학관 관장, 류희옥 전북문인협회 회장, 선기현 전북예총 회장, 김남곤 전 전북일보 사장, 이운룡 전 전북문학관장, 조미애 전북시인협회 회장, 김영 김제예총 회장, 김윤아 한국신석정시낭송협회 회장 등 관계자 및 문인들과 신석정 선생의 유족들, 권익현 부안군수, 문찬기장은아 부안군의원, 김춘진 전 국회의원 등 30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올해 신석정문학상에 선정된 이향아 시인은 신석정 선생은 문학의 멘토였다. 선생의 시를 읽으면서 시가 무엇인지를 알았고, 시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며 선생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좋은 시를 쓰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시는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문학 강연을 이어갔다. 신석정촛불문학상을 수상한 조경섭 시인은 민족정신과 시정신을 지키고 세운 석정 선생의 문학상을 받게 돼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는 미래지향적인 상상력과 메타포에 관한 많이 고민하면서 글을 쓰겠다고 밝혔다. 윤석정 이사장은 한국신선정시낭송협회가 부산에서 발족해 더 의미 깊다. 부산의 시 애호가가 전국 각지의 낭송가를 모아 활동하는 것은 석정 선생에 대한 성과와 추억을 되살리게 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전북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신석정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석정 선생의 선양 활동을 열심히 해나가겠다며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당부했다. 또 정군수 관장은 석정 시인은 식민지와 분단, 민주 모순 등 어두운 시대에도 죽음보다 더 지난한 지조를 지키며 푸른 별을 꿈꾸며 살아왔다. 그런 그의 거룩한 시대정신이 이제 평화와 광명의 빛으로 달려오고 있다며 두 수상자가 석정의 시대정신을 잘 선양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린 제4회 신석정전국시낭송대회에서는 전희자 씨가 대상을 받았다. 이외 문학상 시상식을 전후해 시낭송가들이 신석정 시인의 임께서 부르시면, 이향아 시인의 수상 작품 꽃다발을 말리며 등을 낭송했다. 부안교육문화회관 음악교실의 가곡 공연, 한국신석정시낭송협회의 시극 공연 등도 펼쳐져 큰 호응을 얻었다.
익산 출신의 임익홍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산은 그 자리에 있다>(마을)를 출간했다. 임 시인은 15년 전 첫 번째 시집 <수선화, 그 영원한 그리움>을 냈다. 문학에 대한 미련 때문에 정년퇴직 때까지 버리지 못한 글들을 회갑을 맞았을 때 다듬어 엮었다. 책을 받아본 몇몇 지인들은 그의 시집을 두고 시를 잘 써서 좋았다는 것이 아니라 읽기 편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용기를 얻어 그동안 덮어두었던 메모들을 다시 꺼냈다. 그는 자신이 없어 이런 것도 시냐?라고 자문하면서 글을 모았다며, 출간을 맡아준 성춘복 선생과 시를 쓰도록 격려해준 지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60여 편이 수록된 시집에는 산에 관한 글이 많다. 백두산, 금강산, 한라산, 소요산, 불암산 등 전국의 산을 돌며 느낀 감상을 시로 엮었다. 한 산악인 나지막하게 일러준다/ 산은 어디로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 무릎이 아프면 그냥 내려가고/ 다시 찾아오면 된다/ 산을 이기려고 하지 마라(산은 그 자리에 있다 중) 임 시인은 산을 다니면서 건강을 유지했다며 산에 대한 감사의 마음 등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세종한글서예연구회(회장 정명화)가 <서예로 보는 한옥마을 편액 이야기>를 발간했다. 상업화에 가려진 전주 한옥마을의 역사성과 인문학적 가치를 편액을 통해 알아보기 위해서다. 편액은 널빤지나 종이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문 위에 거는 액자다. 이번 책에서는 풍남문, 한벽당, 전주향교, 양사재, 학인당 등 전주 한옥마을 내에 있는 공간들의 편액을 해석해 누구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세종한글서예연구회가 기획하고 이에 맞춰 이종근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 부국장이 집필했다. 전주 최씨종대(宗岱) 화수각(花樹閣)의 편액은 근원 구철우(1904~l989)의 작품이다. 전남 화순에서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여덟 살 무렵에 이미 소년 명필로 유명했다. 종대는 조상 대대로 이어온 집터, 화수(花樹)는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을 뜻한다. 따라서 화수각은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다지는 건물을 의미한다. 천주교 전동교회와 성심유치원이란 전동성당 입구의 빗돌을 누가 썼을까. 전북 중견 서예가 백담 백종희(한국서예교류협회 회장)가 해성중 3학년에 다닐 때 쓴 것이다. 그는 당시 소년 조선일보의 문예상에서 서예 대상을 차지했고, 이후 문교부장관상을 2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최근 빗돌 위에 새로운 문패를 붙이면서 더이상 백담 선생의 글씨는 볼 수 없게 돼 아쉬움을 남긴다.
전북작가회의(회장 김종필)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좌담회를 개최한다. 12일 오후 6시 전주 최명희문학관 앞마당. 박남준 시인의 축시 낭독에 이어 창립 회원인 최동현 시인, 이병천 소설가, 안도현 시인, 박두규 시인을 중심으로 좌담을 펼친다. 문학으로 시대의 아픔을 보듬고 실천하는 문학의 뿌리를 튼실하게 다졌던 이들을 통해 30년 활동을 되짚는다. 김병용 소설가가 사회를 맡는다. 4인조로 이뤄진 어쿠스틱 밴드 음담악설의 축하공연도 이어진다. 김종필 전북작가회의 회장은 지난 30년을 돌아보고 작가로 사는 삶을 생각해보는 자리라며 소박하지만 오래 기억될 즐거운 날이 되길 빈다고 말했다. 전북작가회의는 남민동인(1984)에서 태동해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1988)를 거쳐 (사)한국민족문학작가회의(1997), 그리고 한국작가회의 전북지회(2008)로 이어졌다. 회원은 현재 218명이다. 시소설평론극수필아동문학 등 장르별 분과를 두고 있다. 무주지부가 설립돼 있다.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 안성덕 시인이 4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달달한 쓴맛>을 펴냈다. 이 안에는 어둠을 닦아 빛을 만들어내는 시편들이 가득하다. 아픔과 상처를 보듬는 그의 품은 넓고, 절망과 고통을 쓸어내리는 그의 손은 섬세하다. 시인은 자신의 추억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이번 시집에 이야기시의 형태가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기억을 치장하지 않는다. 다정하고 순연한 유년의 풍경을 담백한 목소리로 고백할 뿐이다. 엿을 먹었네/ 꿈결인 듯 앞산 너머 뻐꾸기가 울면 철걱철걱 엿장수가 가위를 쳤네/ 아무리 아껴 먹어도 할머니 흰 고무신은 금세 녹았고 어머니의 부지깽이는 오래 쓰라렸네/ 소쩍새는 밤이 깊도록 훌쩍거렸네 (달달한 쓴맛 일부) 나아가 시인은 세상을 다독이고, 타인을 보듬는다. 이러한 다정한 시선은 가족과의 관계로부터 기원한다. 특히 그에게 지극한 사랑을 전해준 어머니는 그 기원의 바탕이다. 월남전에 파병된 형을 그린 별, 아내와의 토닥거림을 다룬 핑계 등 가족에 관한 시편들도 다정의 기원을 엿보게 한다. (상략) 갓난아기로 돌아가신 걸까 틀니 빼 쓰레기통에 버렸더라는 어머니, 태엽 감듯 시간 맞춰 공양하시고 무덕무덕 애기똥풀꽃 활짝 피우신다// 쑥고개 아래 연수요양병원 315호실 저, 저 꽃바구니 십 년은 더 걱정 없겠다 (조화 일부) 이와 관련해 박동억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투쟁해야 하는 현실도, 아픈 상실도 조금씩 내려놓으며 안성덕 시인의 시는 넉넉한 품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품은 어머니를 넘어 신화적인 여성성에 비유된다며 천상과 지상을 모두 포용하는 이 근원적인 모성이야말로 안성덕 시의 뿌리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읍 출신인 시인은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입춘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시집 <몸붓>을 냈다. 제5회 작가의 눈 작품상과 제8회 리토피아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원광대에 출강하고 있다.
신라소에서 잡인의 출입을 금지 시킨 채 군병의 출동 준비를 했지만 소문은 딴 곳에서 새었다. 신라소와 동맹을 맺은 호족 마사시 일족에 끼어있던 병사 시로가 도망쳐나와 백제방에 뛰어든 시각이 해시(10시) 무렵, 시로는 왜인(倭人)으로 풍왕자가 신임하는 왜인 무장 아베와 동향 사람이다. 오늘밤 자시에 백제방을 기습할 것입니다. 병력은 대아찬 박경이 이끄는 6백이고 응원군으로 김부성이 군병 3백으로 뒤를 잇는다는 것입니다. 아베가 큰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베의 옆에 선 시로가 말을 받는다. 박경에게 호족 아리타와 마사시가 왜인 군병을 모아 붙었고 김부성은 이또가 가담했습니다. 풍이 머리를 끄덕이며 계백을 보았다. 은솔, 나는 전쟁을 치러보지 못했다. 그대에게 맡긴다. 황공합니다. 계백이 풍에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벽에 선 덕솔 국연에게 물었다. 백제방 안에 병사가 몇이 있는가? 당장 전장(戰場)에 보낼 병사는 2백 남짓이오. 내가 3백을 데려왔으니 5백이야. 그만하면 되었다. 그때 아베가 나섰다. 은솔, 적은 박경의 6백에 김부성의 3백까지 9백이오. 지금 호족들에게 전령을 보내면 내일 오전까지 3천은 모을 수가 있습니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아베가 말을 이었다. 그동안 아군은 백제방 안에서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이 낫습니다. 백제방의 청 안이다. 이곳 청은 사방 1백자(30m) 규모로 붉은색 기둥에 대황초를 여러개 붙여 놓았다. 왜 왕궁의 청에 뒤지지 않는다. 청 안에는 20여명의 무장과 백제방 관리가 모여 앉아 있었는데 상석에 앉은 풍왕자의 바로 앞에 계백이 자리잡고 있다. 그때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이것 보게, 아베. 예, 은솔. 신라군이 자시에 온다니 내일 낮까지는 우리가 방어를 한다는 말인가? 예, 은솔. 그것이 안전합니다. 고맙네. 숨을 들이켠 아베에게 계백이 말을 이었다. 그대의 왕자 전하를 위한 충정은 천년이 지나도록 기록되게 하겠네. 은솔, 과분하오. 아베가 큰 눈을 끔벅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베는 북규슈(北九世)의 호족으로 오래전부터 백제의 신민임을 자처했다. 충직한 데다 무용도 뛰어났기 때문에 풍은 왜인(倭人) 심복으로 삼아왔다. 다시 계백이 말을 이었다. 나는 기마군 3백을 이끌고 지금 곧장 신라소를 치겠네. 정공법이지. 아베, 그대는 남은 2백을 모아 왕자 전하를 지키도록 하게. 예, 은솔. 기세에 눌린 아베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웃음띤 얼굴로 풍을 보았다. 전하, 입만 가지고 싸우는 김부성에게 대륙을 휘젓고 온 백제 기마군을 보여주고 오겠습니다. 숨을 들이켜면서 풍이 머리만 끄덕였다. 계백을 따라 무장들이 일어섰기 때문에 대황초의 불꽃이 흔들렸다. 계백이 청을 나갔을 때 풍이 아베에게 말했다. 아베, 이곳은 왜백제(倭百濟)다. 네 자손들에게도 대를 이어서 왜백제를 넘겨주어야 한다. 풍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연정 김경식 수필가가 시문집 <황혼의 강변을 거닐며>를 내놨다. 이 시문집은 30권의 전문 학술서적을 저술한 교육학 박사인 그의 첫 번째 문학작품이다. 시문집은 사물을 직관하고, 시대와 사회를 관조한 시와 수상으로 가득 차 있다. 5대째 대물림으로 농사를 짓고, 평생 교육의 길을 걸어온 그는 문학은 춥고 시릴 때 볕을 쪼일 수 있는 양지이고, 폭염에 쉴 수 있는 서늘한 나뭇잎 그늘이었다고 시문집 전반에서 애정을 드러낸다. 김 수필가는 오늘날 사회상의 아픔에 대해 종종 글로 표현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 내 감정이 주위 환경에 부딪치고 내가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느낌이 있으면 그것을 글로써 표현해 본 것이 나에겐 시가 되기도 하고, 수상이나 칼럼이 되기도 했다며 늙어가면서 삶의 여유를 지닐 수 있는 마음의 텃밭에 시를 비롯한 문학이라는 작물을 가꾸며 조용히 살기를 소원한다고 밝혔다. 김 수필가와 막역한 지기인 전북일보 윤석정 사장은 축간사를 통해 문학은 가슴을 뜨겁게 넉넉하게 그래서 삶에 자양분을 더해준다며 연정이 이 나이에도 쉼 없이 연구와 집필에 매진하는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많은 젊은 지식인들의 귀감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고창 출신으로 전주고,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원광대 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군장대에서 정년퇴직한 뒤 현재 연정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중국 동북 조선민족교육과학연구소 석좌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재중한민족교육전개사(상하)>, <중국교육전개사> 등 30권이 있다. 1997년 월간 문예사조에서 수필로 문단에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다.
시선일여(詩禪一如)라는 생각으로 어려울 때마다 수행하는 자세로 시를 써왔습니다. 그런 사람을 눈여겨보고 상을 주시니 고맙고 기쁩니다. 저보다 훌륭한 문인들이 많아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제7회 중산문학상 수상자인 김동수(71) 시인은 자신의 시 세계를 이같이 밝히면서 수상 소감을 갈음했다. 지난 9일 전북문학관에서 열린 제7회 중산문학상 시상식이 문인들의 깊은 관심과 뜨거운 성원 속에 끝났다. 이날 축사는 전북일보 윤석정 사장과 전북문인협회 류희옥 회장이 맡았다. 김애경이재형 씨가 수상자의 시를 낭송했다. 중산문학상 심사위원인 허호석 시인은 김동수 시인의 작품 세계는 선적, 우주적, 범신론적이다며 문학과 인간 존재의 의미가 동일성으로 육화된 그의 탐미적인 시는 삶과 문학의 가치를 고양하고 탐구하려는 시인의 면모가 엿보인다고 평했다. 김 시인은 1981년 시문학 시 추천으로 등단했다. 현재 백제예술대 명예교수로 미당문학회장, 미당출판사 대표, 온글문학 대표 등을 맡고 있다.
전라도 정도 천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제1회 전라도 천년의 시향(詩香)-시극 페스티벌이 오는 13일 전주 한벽극장에서 열린다. 시극은 시의 내용을 대중이 친숙하게 이해하도록 연극 형식으로 풀어낸 장르다. 이번 공연은 전주 황방산 서고사와 나주의 영산강을 소재로 전북과 전남의 시극배우가 한 무대에서 공연한다. 전북재능시낭송협회, 전남재능시낭송협회, 모레노 극단, 한문화국제협회예술단이 무대에 선다. 심태섭 성악가의 축하공연도 마련돼 있다. 전주대학교 류명희 객원교수가 총 예술 감독을 맡고, 염정숙씨와 이소라씨가 연출을 맡는다. 행사는 전라북도와 전남재능시낭송협회가 후원하고, 모레노 극단과 한국문화교육개발원이 주관, 소울공연예술원이 주최했다.
내가 계백을 알지. 김부성이 말하자 청 안이 조용해졌다. 신라소 안, 청에는 10여명의 무장(武將)이 모여 있었는데 분위기가 무겁다. 밤, 술시(8시)가 지난 시간이어서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놓았다. 신라소는 며칠전부터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지더니 지금은 2백여명의 군사가 상주하고 있다. 근처의 민가, 뒤쪽 골짜기 안의 마을에도 호족들의 준병이 대기하고 있다. 섭정이며 실권자인 소가 이루카가 통제를 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권력의 공백상태다. 며칠전 왕비가 왜왕으로 즉위했지만 아직 기반이 굳혀지지 않은 것이다. 김부성이 먼곳을 보는 눈으로 무장들을 둘러보았다. 내 사촌 김품석이를 죽인 놈이지. 내 가문하고는 철천지 원수다. 김부성도 왕족이며 김춘추 하고도 먼 친척이 되는 것이다. 김부성이 말을 이었다. 이미 칼을 빼든 상태야. 서문사(西門寺)의 일이 우리 소행인줄로도 밝혀졌으니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마찬가지다. 대감. 앞에 앉은 무장이 나섰다. 계백이 이끌고 온 군병은 3백여명이라고 합니다. 배에서 내린지 얼마되지 않았을 테니 오늘밤 기습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우리는 1천명 가깝게 됩니다. 계백이 도착하기 전에 백제방을 쳐서 오갈데 없는 신세로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내는 신라소의 2인자인 대아찬 박경이다. 박경이 말을 이었다. 대감, 저에게 군병을 맡겨주시면 오늘밤 백제방을 치고 결판을 내겠습니다. 내가 우유부단했다. 자책한 김부성이 박경에게 말했다. 소가 일족과 백제방과의 싸움을 붙이려고 골몰하다가 시간만 끌게 되었다. 그동안 군병을 더 모을 수는 있었지요. 위로하듯 말한 박경이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부성을 보았다. 대감, 결단을 내려주시오. 좋다. 김부성이 마침내 머리를 끄덕였다. 대아찬, 그대가 화랑 석춘과 아광을 부장으로 삼고 호족 아리타와 마사시의 군병 6백을 이끌고 오늘밤 백제방을 쳐라. 치는 시각은 자시(12시)다. 삼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어깨를 편 박경이 소리쳐 대답했다. 기밀이 새나가지 않아야 할테니 지금부터 잡인의 출입을 통제 시키겠습니다. 나는 화랑 아성과 호족 이또의 군병 3백을 이끌고 지원군을 맡을 테다. 그대 뒤를 따라 응원을 할 테니 서둘러라. 예옛. 힘차게 대답한 박경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모두 살기를 띤 얼굴이다. 무장들이 청을 나가자 김부성의 옆으로 화랑 아성이 다가와 섰다. 아성은 22세, 역시 진골(眞骨)가문의 왕족이며 김부성의 친척이다. 대감, 백제방을 태우고 왕자 풍과 계백까지 죽이고 나면 왜왕이 신라소를 인정해줄까요? 왜왕보다 소가 가문이 먼저 우리와 제휴하게 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부성이 흐려진 눈으로 아성을 보았다. 소가씨는 백제계지만 이제 백제로부터 벗어나 왜국을 지배하려는 것이지, 우리는 소가씨의 앓는 이를 빼주는 셈이 될 것이야. 발을 뗀 김부성이 뒤에 아성 혼자만 따르자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잇는다. 아성, 아스카만에 전함 2척만 대기 시켜라. 만일의 경우에 대비 하는거다.
계백이 아스카에 도착했을 때는 왜왕 즉위식이 끝난 지 닷새가 지났을 때다. 전선(戰船) 3척에 3백 정예군을 싣고 도착한 계백은 백제방으로 들어가 풍왕자에게 신고를 했다. 은솔 계백이 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잘 왔어. 풍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계백을 맞는다. 손을 들어 앞쪽 두 걸음 거리에 계백을 앉게 한 풍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말로만 듣던 용장을 보게 되는구나. 황공합니다. 둘러앉은 중신들도 밝은 분위기다. 모두 계백의 명성을 들어 아는 것이다. 몸은 왜국에 있어도 수시로 본국에서 오는 쾌선의 전령과 오가는 사신을 통해 정세를 듣기 때문이다. 풍은 의자의 동생으로 38세, 왜국 생활이 10년이 넘은 데다 전에는 대륙의 담로에서 태수를 지냈다. 견문이 넓고 역사에 밝다. 풍이 입을 열었다. 은솔, 그대는 역사(歷史)의 진실을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전하. 그러자 풍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대가 지금은 대륙과 본국은 물론 왜국에까지 명성을 떨치는 명장(名將)이지만 훗날 네 기록이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알고 있느냐? 예, 전하. 계백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이지요. 승자에 의해 조작되고 묻혀 버린다. 멸망한 왕조는 악(惡)이 되고 정복한 지배자는 선이다. 예, 전하. 명심해라. 대백제의 지금 융성이 잘못되었을 때는 온갖 조작으로 덮어씌워 질 것이니. 예, 전하. 그때에는 네 명성도 죽을 때 한두줄의 기록으로만 남겨지겠지.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어깨를 편 계백이 정색하고 풍을 보았다. 교활하고 비굴한 악인의 손에 역사를 맡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면서 쾌선 전령에게서 들었습니다만 백제방 관인들이 습격을 당한 일부터 처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가 오기를 기다렸다. 풍의 눈빛이 강해졌고 둘러앉은 중신들도 숨을 죽였다. 숨을 고른 풍이 입을 열었다. 신라소의 김부성이 나를 치려고 한 것이다. 덕솔 진겸과 수행원이 나 대신으로 몰사를 했다. 소가 가문에 혐의를 씌웠다고 들었습니다만. 소가가 권력욕이 강하나 백제인이다. 백제를 등질 위인은 아니다. 먼저 신라소를 쳐서 몰사를 시키지요. 여왕께서도 나한테 맡기셨다. 정색한 풍이 말을 이었다. 김부성도 네가 온다는 것을 알고 대비하고 있었다. 풍의 시선이 옆쪽에 앉은 덕솔 윤환에게로 옮겨졌다. 덕솔, 네가 말하라. 예, 전하. 40대쯤의 덕솔 윤환이 계백과 풍의 중간쯤에다 시선을 두고 말했다. 김부성은 신라에 우호적인 호족들로부터 용병을 얻었습니다. 지금 신라소 근처에 모인 용병이 5백명 가깝게 되어서 민심이 흉흉합니다. 그때 풍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놈들은 소가 가문에 뒤집어씌우려던 혐의가 발각되자 발악을 하는 것이다. 김부성은 신라에서 김춘추가 실권자로 부상하자 용기도 일어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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