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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다. 소가 에미시의 편지를 읽은 풍이 시선을 들고 말했다. 앞에는 에미시의 중신(重臣) 오다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백제계인 소가 가문에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황공합니다. 왕자 전하. 오다 또한 백제 유민으로 둘은 백제어로 말하고 있다. 50대의 오다가 머리를 들고 풍을 보았다. 전하, 왜국의 부리는 백제계입니다. 소가 가문이 왜국에서 이만큼 기반을 굳힐 수 있었던 것도 백제방 덕분입니다. 백제방을 습격하려는 발상을 낸 것은 우리 백제계의 의식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족속들의 소행입니다. 네 말이 맞다. 머리를 끄덕인 풍의 표정이 엄격해졌다. 덕솔 진겸 이하 12명의 수행원이 몰사를 했다. 놈들은 내가 궁에서 나오는 줄 알고 나를 노렸던 것인데 진겸이 대신 죽었다. 오후 술시(8시) 무렵, 백제방의 청 안은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둘러앉은 중신들도 비장한 표정이다. 풍의 말이 청을 울렸다. 어젯밤 본국에서 쾌선을 타고 온 전령의 서신을 읽었다. 신라왕 덕만이 비담의 반란을 진압하는 도중에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수단이 이번에 우리를 습격한 것과 유사하구나. 암살을 하고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수단이 말이다. 오다는 눈만 치켜떴다. 바다 건너 소식은 백제방이 훨씬 빠를 것이다. 풍의 말이 이어졌다. 신라는 비담의 반란을 겨우 진압하고 새 여왕 승만이 즉위했다. 김춘추는 승만의 뒤에서 조종하는 섭정 역할이 되어서 권력을 장악했다. 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김춘추의 계략대로 된 것이지만 백제와 신라와의 합병은 멀어진 대신 신라는 당의 신하국으로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다. 예, 전하. 이럴 때일수록 왜국은 하나가 되어서 신라의 모략에 대비해야 될 것이라고 소가 대신에게 전하라. 예, 전하. 풍이 머리를 끄덕이자 오다가 절을 하고 청을 나갔다. 그때 청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위사장이 보고했다. 전하, 예인 동복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무엇이? 놀란 풍이 상반신을 세우더니 물었다. 서문사에서 실종되었던 동복이 말이냐? 예, 전하. 불러라. 청 안이 술렁거렸고 곧 위사장이 초췌한 모습의 관리 하나를 대동하고 청에 올랐다. 예인 동복이다. 동복은 지난밤에 진겸과 함께 백제방으로 돌아오다가 기습을 받았던 것이다. 일행은 몰사했지만 동복 한명만 실종되었었다. 청에 엎드린 동복은 40대의 예식 관리다. 풍이 정색하고 물었다. 어떻게 살았느냐? 덕솔이 서문사 안으로 피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습격자는 보았느냐? 모두 검은 옷에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눈만 보았지만 목소리는 들었습니다. 누구 목소리냐? 신라인이었습니다. 동복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풍을 보았다. 덕솔이 하나라도 살아남아서 습격자가 신라인이었다는 것을 전하께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청 안에 살기가 덮였다.
왕실의 사신이 여왕의 즉위를 통보했을 때 소가 이루카가 먼저 옆에 앉은 아버지 소가 에미시를 보았다. 오후 신시(4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이니 그 시간의 왕실에서는 여왕과 풍이 마주 앉아 있을 것이었다. 여왕이 즉위하셨단 말이지? 에미시가 잠자코 있었기 때문에 이루카가 사신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이루카의 저택 청안이다. 청에는 가신(家臣) 50여 명이 정연하게 늘어앉아 있었는데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예, 백제방의 풍왕자께서 대관식의 증인이 되셨습니다. 이루카가 입을 다물었다. 왜왕 즉위식에는 백제방 방주가 증인이 되어 주관해왔다. 백제방 방주가 증인이 되어야 왕위에 오르는 것이다. 왜왕이 백제계가 된 지 2백여 년, 그것이 관습이다. 대관식에 결격 사유가 없었기 때문에 이루카는 외면했다. 경축한다는 말도 아직 뱉지 않았다. 그때 에미시가 말했다. 여왕께 축하드린다고 전해주게. 소가 가문이 충성을 다해서 여왕을 모시겠다는 말도 전해주게. 예, 대감. 그리고 곧 소가 가문에서 예물을 보내 드릴 것이라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대감. 에미시는 72세, 30여 년간 섭정을 지내다가 3년 전 이루카에게 섭정직을 물려주었지만 아직도 정정하다. 사신이 청을 나갔을 때 에미시가 둘러앉은 가신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물러가라. 내가 섭정과 둘이 이야기할 것이 있다. 거침없다. 가신들이 두말 못하고 순식간에 썰물 빠지듯이 나간 청에는 둘만 남았다. 검게 반들거리는 마룻바닥 끝 쪽에 경호무사 둘이 석상처럼 서 있을 뿐이다. 그때 에미시가 주름진 눈을 더 가늘게 뜨고 이루카를 보았다. 어젯밤에 서문사 앞에서 풍왕자 일행을 쳤느냐? 그런 일 없습니다. 거침없이 대답한 이루카가 똑바로 에미시를 보았다. 요즘 백제방의 풍왕자와 갈등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제 뿌리를 파헤치는 그런 짓은 안합니다. 그렇다면 신라방 놈들이군. 에미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김춘추 족속들의 교활함은 가끔 제 위주로 사물을 판단하지. 무슨 말씀입니까? 그놈들은 현장에 우리 가문이 찍힌 갑옷조각, 허리띠를 두고 갔다. 우리가 풍왕자를 기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렇습니까? 놀란 이루카가 눈을 부릅떴다. 저는 풍왕자 일행이 요즘 아스카에서 돌아다니는 야적들의 습격을 받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너는 연못에서 키운 고기 밖에 안 되는 거야. 눈을 부릅뜬 에미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5척 단구였지만 몸에서 풍기는 위압감에 이루카는 숨을 죽였다. 지금 당장 중신(重臣)을 보내 풍왕자에게 어젯밤의 일을 해명해라. 내가 편지를 써 줄테니 그 편지도 갖고 가도록 해라. 예, 아버님. 얼굴을 붉힌 이루카가 에미시를 보았다. 그리고 당장 군사를 보내 신라소를 몰살시켜 버릴까요? 놔둬라. 에미시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것은 백제방의 처분에 맡기기로 하자.
최명희문학관이 지난 5일 남원으로 혼불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최명희문학관에서 3월부터 소설 <혼불> 열 권 읽기를 끝낸 완독지기들과 4월부터 <혼불> 필사에 도전한 필사지기들이 참가한 기행은 남원 광한루와 서도역, 혼불문학관 등을 방문했다.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혼불문학상 시상식도 참석했다. 기행에 참가한 허혜지 씨(25전주)는 가을비 내리는 남원의 풍경이 소설 <혼불>의 아름다운 문장처럼 단정하고 아늑했다고 말했다. 이번 혼불문학기행은 (사)혼불문학전주MBC최명희문학관혼불문학관이 주최주관하고 남원시와 전주시전라북도가 후원했다.
전주시가 주최하고 (사)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지부장 이소애)가 주관한 제1회 전주 시민문학제 백일장 시상식이 6일 전북예술회관 제1전시실에서 열렸다. 장원 박윤지(기린초 1학년) 학생 등 7명을 비롯해 차상, 차하, 가작 등 74명의 수상자가 기쁨을 누렸다. 이날 식장에는 황권주 전주시청 문화체육관광국장,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의원, 윤석정 전북일보 사장 등 내빈과 수상자 가족 2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전북 문인들도 참석해 수상작을 감상했다. 시상식이 열린 전시장에는 74점의 그림일기, 운문산문의 입상작이 전시됐다. 천년고도 전주가 후백제로부터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전통이 담겼다. 경기전, 풍남문, 한옥마을 등 지역 명소에 관한 여행기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10일까지 이어진다. 수상작은 전시뿐만 아니라 책으로도 엮어 전주지역 학교, 도서관, 주민센터에 전달됐다. 이소애 전주문인협회 회장은 이번 문학제가 우리 고장 전주를 알리고 꿈나무들에게 소중한 애향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며 문학제가 거듭할수록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우영(58) 시인이 8년여 만에 네 번째 시집 <활에 기대다>를 펴냈다. 정 시인은 시력(詩歷) 30년 동안 네 권의 시집을 냈다. 과작 측에 속하는 편.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30년 동안 네 권의 시집을 낸 것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의 시에는 사람의 정신을 현란하게 하는 속도가 없다. 대신 방향이 존재한다. 이 작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게./ 따뜻한 햇살 느낄 수 있다는 게./ 맛있는 김밥 먹고 싶다는 게./ 고소한 강냉이 코에 닿는다는 게./ 이런 느낌 오랜만이야./ 부러움도 안타까움도 없어. (허기에 먹히다-고독사,들 부분) 정 시인의 시는 뜨거운 목숨을 가만히 부르면서 빛난다. 심지어 가까운 사물에게도 목숨을 불어넣는다. 그는 자신의 곁에 있다가 떠나간 옛사람들마저 살려낸다. 그렇게 죽음을 삶으로 또 삶을 죽음으로 옮겨 놓으면서 독특한 아우라를 갖는다. 안경다리가 하나 부러졌다./ 다른 때 같으면 먼저 여분 안경 찾았을 것이나/ 어쩐지 그런 생각은 안 들고/ 다리 부러진 안경이 짠해지는 것이다./ 부러진 다리와 다리 잃은 몸통/ 받쳐 들고 사뭇 경건해진다. (달리는 무어라 부를까 부분) 어쩌면 그가 세월호 참사, 제주 43 사건,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 등 사회적 죽음을 당한 존재들에게 무심할 수 없는 것은 필연적이다. 시인은 임실 출신으로 1989년 민중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 <집이 떠나갔다>, <살구꽃 그림자>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신동엽학회장을 맡고 있다.
근암 유응교 시인이 동시집 <별꽃 삼형제>(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를 냈다. 2011년 첫 동시집 <까만 콩 삼 형제>를 발간한 이후 두 번째다. 유 시인은 많은 어린이들이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면서 들에 핀 꽃이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며 동시를 가까이 하면 아이들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 같은 마음에 동시집을 냈다고 말했다. 동시집에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산 너머 흘러가는 구름,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는 노을, 장미가 곱게 핀 담장길,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 등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세계에 갇혀 있다면 보지 못할 풍경들이다. 총 123편이 담긴 책은 작품마다 유 시인이 직접 촬영하거나 고른 사진을 함께 수록해 시적 감동을 키웠다. 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시간에 맞춰 밥을 먹고/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고/ 시간에 맞춰 집에 오고//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건/ 누가 뭐래도 시계다.(시간의 힘) 아이의 시선에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본 작품도 있다. 본인의 의지 없이 기계적으로 생활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시계가 힘이 세서 그런 것라고 재치있게 꼬집었다. 현재 전북대 건축공학과 명예교수인 유 시인은 다수의 대학 전공 이론서와 칼럼집, 시집을 냈다. 한국예총이 수여하는 한국 예술문화 대상, (주)국제해운이 수여하는 바다사랑상을 수상했다.
전북도청 공무원들이 여행에세이와 실용서 등을 잇따라 펴내 눈길을 끈다. 전북도청 비서실 임수용 주무관과 공보실 추성수 주무관은 <아르메니아에 가고 싶다>라는 책을 통해 한국인의 눈으로 아르메니아를 소개한다. 이들은 아르메니아에 관한 자료와 정보가 많지 않았던 2017년 7월, 세계잼버리대회 유치 활동차 아르메니아를 방문했다. 그리고 곧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아르메니아를 관찰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임 주무관은 아르메니아로부터 받은 자료에 바탕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르메니아의 역사와 자연문화 유산, 명사와 명소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전북일보 사진기자 출신인 추 주무관은 평소 습관처럼 아르메니아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상을 사진으로 담았다.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신화 속 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다는 아라라트 산을 품은 나라이다. 동서양 교차로에 자리 잡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수천 년에 걸쳐 러시아, 터키 등 강대국들의 침략과 수탈을 받아왔다. 특히 한국의 촛불혁명처럼 아르메니아 국민들 역시 벨벳혁명이라는 평화혁명으로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 정부를 세웠다. 알면 알수록 우리와 닮은 나라다. 이들은 아르메니아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그 사람 냄새는 희망에 대한 믿음과 갈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며 조국을 항상 잊지 않는 동포들,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아르메니아 국민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외에도 임 주무관은 공직 비서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리더처럼 비서하라>도 출간했다. 2014년부터 도지사 수행비서로 일하는 임 주무관은 단순한 보좌 역할에서 벗어나 리더와 함께 성장하는 비서들에 주목했다. 5년 차 수행비서의 눈으로 본 특수성, 비서의 마인드부터 자기관리인맥관리 방법, 관가 전설의 수행비서들과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현직 수행비서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비서가 기록과 비밀을 유지하는 방법, 명함에 의미를 담는 방법,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용법 등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업무 기술도 실었다.
무엇이? 다 죽었어? 놀란 풍의 외침이 청을 울렸다. 오전 묘시(6시), 왕궁의 접객소 안, 백제방에서 달려온 한솔 해두가 풍 앞에 엎드려 있다. 비를 맞고 달려온 바람에 옷에서 물이 떨어진다. 예, 덕솔 진겸과 장덕 윤판을 포함해서 모두. 누구냐? 현장에 이것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해두가 풍 앞에 뜯어진 어깨 갑옷과 허리끈, 머리띠를 펼쳐 놓았다. 눈을 치켜뜬 풍이 어금니를 물었다. 모두 소가 가문의 운장이 박혀있는 것이다. 소가 이루카의 부하들이다. 이놈들이. 어깨를 부풀렸던 풍이 해두를 보았다. 시신은 모두 수습했느냐? 예, 적은 한구도 남기지 않고 가져갔습니다. 그랬겠지. 덕솔 장덕 이하 시신 12구는 방의 창고에 일단 모셔 놓았습니다. 잠깐. 풍이 해두의 말을 막았다. 12구라고 했느냐? 예, 왕자 전하. 일행은 진겸 이하 12명이 아니냐? 예, 한명은 서문사 영내에서 피살된 것 같은데 아직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누구냐? 예, 예식을 주관한 예인(禮人) 동보입니다. 찾아라. 예, 왕자 전하. 놈들은 나를 노리고 있었다. 예, 그래서 덕솔 자성이 방(方)의 군사 1백명을 이끌고 소인과 같이 왔습니다. 어쨌든 오늘 오전에 대관식이 열릴 것이다. 어깨를 편 풍의 두눈이 번들거렸다. 여왕의 즉위식이 열린 곳은 왕궁의 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 안이었다. 사당 안에는 백제식으로 제단이 차려졌고 백제식 관복을 갖춘 궁(宮)의 관리들이 도열해 서 있었는데 여왕이 왕좌에 앉아서 제사장인 왕사(王師)로부터 왕관과 옥쇄를 받는 것으로 끝났다. 죠오메이 왕에 이어서 여왕 고교쿠(皇極)의 시대가 된것이다. 여왕은 대관식에 백제방 방주인 풍왕좌와 왕궁 관리들만 참석시켰는데 왕실의 전통이다. 호족이나 영주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시위이기도했다. 다만 섭정인 소가 이루카를 부르지 않은 것이 걸렸지만 대관식이 끝나자마자 여왕의 사신을 보내 통보를 했다. 여왕과 풍이 접견실에서 마주 앉았을 때는 오후 신시(4시)무렵이다. 풍이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했지만 여왕이 먼저 인사를 했다. 왕좌께서 고생하셨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여왕께서 건강하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나는 왕위를 왕자께 물려드릴 작정이요. 그래야 정국이 안정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백제 대왕이 계신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허락을 받아야지요. 정색한 풍이 여왕을 보았다. 실은 어젯밤 백제방으로 돌아가던 덕솔 진겸 이하 10여명의 백제방 관리가 기습을 받아 몰사했습니다. 놀란 여왕이 숨을 들이켰을 때 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놈들은 내가 백제방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것이지요. 내 대신 덕솔 진겸이 죽은 셈입니다. 누구 소행입니까? 현장에 소가 가문의 장식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는데 전상자를 깨끗히 거둬간 놈들이 흔적을 남긴 것이 수상합니다. 여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멍텅구리는 판단력이 없어서 옳고 그름을 제대로 분별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에 대한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한자어 朦聽骨(몽청골, 듣는 데 어두운 골격)이 변한 것으로 보는 견해다. 멍을 의태어, 텅과 구리를 접미사로 보는 어원설도 있다. 하지만 멍텅구리에 쓰인 멍텅은 흐리멍텅하다의 멍텅과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흐리멍텅하다의 표준어는 흐리멍덩하다인데, 이는 17세기에 맑지 못하고 똑똑하지 못한 것을 지시하는 데 쓰였다. 구리의 정체는 아리송하지만 몽구리(중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라는 단어에 쓰인 접미사 구리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 놀림을 받을 만한 대상을 지시할 때 쓰이는 말로 여겨진다. 또 바닷고기 가운데 멍텅구리라는 고기가 있는데 원래는 뚝지라고 불렸다. 뚝지는 몸이 통통하고 못생긴 데다 동작마저 굼뜨고 느리다. 이 물고기의 속성이 인간에 투영돼 멍텅구리의 의미가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밤, 자시(12시)가 지나자 흐린 날씨에 빗방울이 한두점씩 뿌리기 시작했다. 어둠속에 서문사(西門寺)의 대문 기둥이 흐리게 보였을 때 진겸이 말했다. 서둘러라. 빗발이 굵어진다. 말고삐를 쥔 진겸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따르는 시종은 12명, 그중 경호무사는 여섯, 여섯은 이번 왜왕 조오메이 장례식을 거들고 돌아가는 백제방 문관(文官)들이다. 장례식도 백제식으로 치렀기 때문에 백제방이 기인(技人), 예인(禮人)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때 옆을 따르던 장덕 윤판이 말했다. 덕솔, 금방 쇠 부딪치는 소리가 났소. 쇠? 머리를 든 진겸이 어둠속에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칼 말인가? 매복이 있는 것 같소. 윤판의 눈 흰창이 번들거리고 있다. 이쪽은 모두 기마로 이동한다. 앞에 경호무사 넷이 둘씩 나란히 서서 길을 텄으며 뒤에는 기인, 예인 여섯과 경호무사 둘이 맨 끝을 따르는 대형이다. 윤판은 38세, 백제방에 온지는 2년이나 20년 동안 전장(戰場)을 누빈 역전의 무장이다. 오감(五感)을 이용하여 살기(殺氣)를 정확하게 느낄 수가 있다. 진겸은 43세, 전시(戰時)의 관리였으니 대응력이 빠르다. 말에 박차를 넣으면서 낮게 소리쳤다. 돌파하라! 그순간 윤판이 허리에 찬 장검을 빼들면서 박차를 넣었고 소리쳤다. 매복이다! 따르라! 놀란 앞쪽 경호무사 넷이 박차를 넣었지만 진겸과 윤판이 맨 앞에 선 꼴이 되었다. 그 뒤를 12명의 시종이 따른다. 그때다. 옆을 따르던 윤판이 먼저 낮은 신음을 뱉었다. 화살이 날아와 옆구리에 박힌 것이다. 몸을 숙여라! 화살이다! 그러나 윤판이 말등에 몸을 붙이면서 소리쳤다. 숲에서 쏜 화살이다. 숲속의 길이라 거리는 5, 6보 밖에 되지 않는다. 서문사 앞까지! 진겸이 칼을 치켜들고 있었지만 적은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서문사 앞까지 내달린 진겸이 말고삐를 채어 말을 세웠다. 이곳에서도 다시 숲길을 빠져 나가야 한다. 그때 다가온 윤판이 말에서 뛰어내리면서 소리쳤다. 덕솔! 제가 이곳에서 막을 테니 어서 절 안으로! 장덕! 다쳤는가? 그 사이에 일행이 절의 대문 앞에 모였는데 수행원이 네명 줄었다. 경호무사 둘에 기인이 둘 낙오한 것이다. 무사 하나가 발길로 절의 대문을 차면서 소리쳤다. 하나는 칼로 문을 내려쳤다. 그때다. 앞쪽 길에서 검은 옷차림의 사내들이 쏟아져 왔는데 10여명이다. 그리고 뒤쪽에서도 5, 6명이 달려오고 있다. 이놈들, 분명히 신라놈들일 것이다. 눈을 치켜뜬 진겸이 소리쳤다. 잘 들어라! 너희들 중 하나는 꼭 살아서 왕자께 보고를 해라! 진겸이 칼을 고쳐 쥐면서 다시 외쳤다. 이놈들은 왜인 시늉을 하고 있지만 신라인이다! 신라인이 기습했다는 것을 알려라! 그순간 화살이 쏟아졌다. 먼저 소리친 진겸의 가슴에 화살 2대가 박히더니 윤판의 몸에도 다시 화살이 박혔다. 그때 서문사 정문이 열리면서 서너명의 경호무사, 기인, 예인이 쏟아져 들어갔다. 쳐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어둠속에서 외침이 울렸다. 습격자의 외침이다. 바로 신라어다. 그리고 백제어, 고구려어도 된다.
잡찬 김부성은 김춘추의 친척이다. 왜국에 온지는 3년, 그동안 꾸준히 왜왕실 관리들의 환심을 사 놓았지만 백제방(百濟方)의 위세를 당할 수는 없다. 백제방은 2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존속해 왔을 뿐만 아니라 왜왕실 또한 백제계인 것이다. 백제 왕실과 마찬가지로 수백년 간 이어져왔기 때문에 신라는 아스카에 신라소(新羅所)라는 이름으로 저택 하나를 빌려 20여명의 상주 인원을 두고 있을 뿐이다. 백제방은 궁성 근처에 성 같은 대저택에서 왕자를 방주(方主)로 삼고 왜왕과 함께 왜국을 통치하는 상황인 것이다. 더구나 왕실의 주요 대신은 물론이고 지방 영주 대부분이 백제계였으니 신라소는 사신 영접이나 무역거래를 돕고 있을 뿐이다. 김부성이 박치수를 불렀을 때는 해시(오후 10시) 무렵이다. 신라소 안쪽 내실에서 둘이 마주앉았을 때 김부성이 말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야. 왕후가 왕위를 잇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데다가 소가 이루카는 이 기회에 왜왕이 되려고 하거든. 그렇게 되면 왜국은 소가 가문에게 넘어가고 백제와는 원수가 되는 것이지. 불빛을 받은 김부성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김부성이 말을 잇는다. 그러면 이루카는 신라한테 매달리게 되지 않겠나? 백제는 왜국을 잃는 거야. 그때 박치수가 물었다. 대감, 지금 풍이 왕궁에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 왕후께 대관식을 치르라고 조르고 있지 않을까요? 아직 나오지 않았어. 김부성이 눈썹을 모으고 박치수에게 말했다. 아찬, 10명을 데리고 가서 풍을 치도록 하게. 지금 말씀이오? 풍이 아직 궁에서 나오지 않았다니 지금 달려가 길목에서 기습하는 거야. 대감, 풍은 10여 명의 위사를 끌고 다닙니다. 10명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내 호위병 10명을 더 떼어줄 테니까 20명으로 하지. 예, 풍을 베고 현장에 이루카 대신의 경호병들의 흔적을 남겨놓지요. 옳지. 김부성이 머리를 끄덕이며 웃었다. 과연 그대는 칼솜씨만큼 지모도 뛰어난 무장이다. 만일에 대비해서 모두 이루카군(軍)의 복장을 하고 전상자는 현장에서 치우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박치수는 거구다. 6척 장신에 허리에는 장검을 찼는데 화랑 출신의 무장이다. 내실을 나온 박치수가 부관 석필을 부르자 어둠 속에서 사내 하나가 소리없이 다가왔다. 검은 옷을 입어서 얼굴만 드러났다. 부르셨습니까? 지금 대감의 경호병 10명까지 합쳐서 20명으로 백제방주 풍을 친다. 박치수가 낮게 말하자 석필이 숨을 들이켰다. 길목에서 기습합니까? 아직 궁에서 나오지 않았다니 서문사(西門事) 앞길이 좋겠다. 숲속인 데다 길이 좁지 않으냐? 앞뒤에서 막고 쳐야 합니다. 좌우 숲에 매복시킨 기습대가 풍을 죽여야 한다. 내가 숲에서 직접 풍을 치겠다. 오늘 왜국의 존망이 결정되겠습니다. 이루카가 왕위에 오르면 일등공신은 우리가 되는 것이야. 박치수가 어깨를 부풀렸다. 검객으로 명성을 떨쳐온 박치수다. 지금까지 검술시합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박치수다. 어느새 석필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전북시인협회(회장 조미애)가 수여하는 제19회 전북시인상 수상자로 우미자 시인이 선정됐다. 심사를 맡은 이운룡 시인전정구 문학평론가는 우 시인은 원숙함이 묻어나는 수준 높은 작품으로 시적 긴장감과 언어 구사의 능숙함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1983년 월간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우 시인은 35년간 시집 <무거워라 우리들 사랑>, <길 위에 또 길 하나가>, <바다는 스스로 길을 내고 있었다>, <첫 마을에 닿는 길> 등을 냈다. 우 시인은 뚜벅뚜벅 작은 걸음으로 걸어온 등단 35주년에 기쁜 소식을 들었다며 남은 생애에 연륜처럼 더욱 깊어진 시를 쓰라는 뜻으로 알고 따뜻한 시, 영혼이 맑은 시를 많이 쓰겠다고 말했다. 축하공연이 곁들여지는 시상식은 11월 5일 오후 4시 전주 웨딩팰리스 웨딩홀에서 열린다.
마마, 망설이시면 왕가(王家)가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풍이 말하자 왕후가 머리를 들었다. 수심이 덮인 얼굴이다. 왕궁의 내전 안, 풍은 잡인의 출입이 금지된 내전 안까지 들어와 있다. 오후 미시(2시) 무렵, 죠오메이 왕의 장례가 끝난 지 사흘이 되었지만 왕후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왕궁의 내대신(內大臣)으로부터 왕관만 받아 쓰는 의식만 치르면 되는 일이다. 풍이 말을 이었다. 마마, 소가 일족이 이 기회를 노리고 왕위를 찬탈할 것입니다. 그럴 명분이 있소? 왕후가 겨우 물었을 때 풍이 상반신을 기울였다. 내전에는 시녀까지 물리치고 둘뿐이었지만 풍이 목소리를 낮췄다. 소가는 이제 백제인이 아닙니다. 소가 가문이 대를 이어서 왕실과 인연을 맺고 섭정을 50년 가깝게 이어서 해온 터라 새로운 왕가(王家)를 세워도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젯밤 본국에서 보낸 쾌선이 먼저 도착했습니다. 열흘 후에는 대왕께서 보낸 은솔 계백이 정병 3백을 이끌고 이곳에 옵니다. 어서 왕위에 오르시고 그때까지만 버티시지요. 어젯밤에도 이루카가 보낸 밀사가 궁의 좌대신 마에다를 만났다고 합니다. 대신들이 이루카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음모인 것 같습니다. 그때 왕후가 머리를 끄덕였다. 내일 왕위에 오르겠소. 왕자께서 준비를 해주시오. 제가 궁 안에 머물면서 준비를 하겠습니다. 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이루카는 저만 없애면 왕위를 찬탈할 수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저도 이곳에서 마마를 지키는 것이 안전합니다. 소가 가문은 백제에서 건너온 목협만치(木협滿致)가 시조다. 소가만치로 개명한 후에 소가 가문은 왜국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왜국의 첫 기틀을 세운 쇼토쿠 태자(聖德太子)의 어머니는 소가 노우마코의 생질녀다. 그때부터 소가 가문은 쇼토쿠와 함께 왜국의 법을 제정하고 문화를 장려했는데 호류사 등 40여 개의 절을 세웠다. 호류사의 금당 벽화도 그때 고구려에서 건너간 담징이 세운 것이다. 쇼토쿠가 죽자 유일한 섭정이 된 소가 노우마코는 왜국의 실세가 되었으며 그 후부터 50년 간 그 아들 소가 에이시, 소가 이루카까지 권력이 승계된 것이다. 내궁을 나온 풍이 밖에서 기다리는 덕솔 진겸에게 말했다. 덕솔, 왕후께서 내일 왕위에 오르시겠다고 했다. 잘 되었습니다. 진겸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루카도 주춤할 것입니다. 선왕의 유언을 집행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은밀히 방해를 할 테니 내궁 안의 관리들만 모아놓고 왕위에 오르시도록 할 작정이다. 이루카에게는 알리지 않으신단 말씀입니까? 에미시한테도 알리지 않겠다. 왕위에 오른 후에 통보를 하지. 알겠습니다. 나는 내궁에 머물면서 대관식 준비를 할 테니 장덕 연홍과 의식을 도울 관리들을 보내라. 예, 왕자 전하. 진겸이 말을 이었다. 호위병 50을 남겨두고 가겠습니다. 이제 본국에서 은솔 계백님이 오시면 불안한 상황이 종결되겠지요.
부친 에미시와 헤어져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온 이루카가 중신들에게 말했다. 소가 가문이 왜국에 집권한 지도 1백년이다. 그중 50년간은 왜국 왕의 섭정으로 통치했다. 이만하면 때가 된 것이 아니냐? 거침없는 언행이다. 청 안이 조용해졌다. 이루카의 저택은 규모가 부친 에미시의 저택을 능가한다. 성벽 같은 담장이 내성, 외성 구분으로 두 겹으로 둘러쳐졌고 저택 안에 주둔한 사병(私兵)은 2천명이나 된다. 마치 궁성이나 같다. 그때 중신 아베가 나섰다. 40대 중반의 아베는 대를 이어서 소가 가문에 충성한 호족가문이다. 대감, 백제방에서 본국으로 밀사가 떠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이곳 정세를 보고했을 테니 대비를 해야 됩니다. 무슨 대비 말이냐? 이루카가 묻자 아베가 주위부터 둘러보고 대답했다. 아스카 주위에 왕실파 백제방에 불만을 품은 호족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자들은 기회만 오면 원한을 갚으려고 합니다. 모두 숨을 죽인 것은 아베의 의중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 이루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방법이 있느냐? 신라가 보낸 밀사단에 검객이 끼어 있다고 합니다. 누구한테 들었느냐? 신라의 밀사 잡찬 김부성한테서 직접 들었습니다. 그자가 너에게 그 말을 해준 속마음이 무엇일까? 백제방의 고관이나 백제방의 수족이 되어 있는 왕실 관리들을 처치하는데 써달라는 뜻이겠지요. 교활한 놈들이지만 쓸모는 있군. 대감, 왕위가 왕후에게 넘어가도록 놔두실 겁니까? 이번에는 또 다른 중신 아소가 물었기 때문에 이루카가 보료에 몸을 기댔다. 조금 전에 부친 에미시 앞에서 말을 꺼냈다가 꾸중만 들었던 것이다. 이루카의 중신들은 모두 이루카와 생각이 같다. 이윽고 이루카가 입을 열었다. 백제 본국에서 어떤 대처 방안이 나올지 모르지만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겠다. 이루카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내 조상은 백제계지만 왜국에까지 와서 백제왕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 모두 숨을 죽였고 이루카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왜국에서 대권을 장악한지 어언 1백년 가깝게 되는데도 우리가 백제방 휘하에서 지내야 한단 말이냐? 지당하신 말씀이오. 아베와 아소가 동시에 말했다. 이번에 독립을 해야 됩니다. 아베, 신라의 밀사를 만나라. 이루카가 말하자 아베가 상반신을 기울였다. 예, 주군. 만나겠습니다. 풍왕자는 왕궁에 갈 때 동화(東和寺) 앞을 지난다고 알려줘라. 예, 주군. 요즘은 왜왕이 죽었기 때문에 매일 왕궁에 갈 것이다. 예, 주군. 대답한 아베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이루카를 보았다. 신라 밀사는 그 보상을 바랄 것입니다. 어떻게 말해줄까요? 백제방이 무력해지면 신라와 당이 만세를 부르겠지. 그래, 신라인 몇 명을 관리로 임명해주겠다고 해라.
제4회 은빛수필문학상 수상자로 이종희 수필가가 선정됐다. 안골 은빛수필문학회는 매년 안골노인복지관 사회교육프로그램 수필창작반 수강생을 대상으로 은빛수필문학상을 시상한다. 올해 수상작인 이종희 수필가의 새품은 억새풀의 강인한 생명력을 사람의 삶과 접목해 엮어나간 작품이다. 문학성과 대중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수필가는 수필은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글이기에 진솔해야 한다. 나의 체험을, 독자가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공감했으면 좋겠다며 부족한 글을 뽑아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 수필가는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현재 대한문학작가회 부회장, 영호남수필문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수필집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초원을 찾은 나그네>를 냈다. 한편 시상식은 다음 달 19일 오후 4시 전주 안골노인복지관에서 열린다.
책의 도시 전주의 저력을 보여주는 제1회 전주 시민 문학제 백일장 수상자가 발표됐다. 백일장은 전주시가 주최하고 전주문인협회(지부장 이소애)가 주관했다. 견훤산성과 경기전, 풍남문, 한옥마을 등을 통해 역사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전주를 알리는 내용으로, 초등부 그림일기운문산문, 학생부일반부 운문과 산문 등 총 7개 부문에 걸쳐 공모했다. 심사 결과, 초등부에서 그림일기 대상은 박윤지(전주기린초 1), 운문 대상은 강채영(전주만수초 4), 도지민(전주서문초 4) 학생이 차지했다. 학생부 운문 대상은 유지영(전주 한일고 3), 산문 대상은 유채림(전주한일고 3) 학생이다. 일반부 운문산문 대상은 각각 임선희, 김민지 씨다. 74명의 수상자가 총 상금 1000만 원을 받는다. 입상자들의 작품을 책으로 엮어 전주지역 초중고교와 유관기관 등에 배부한다. 수상작은 오는 5일부터 10일까지 전북예술회관에서 전시된다. 시상식은 10월 6일 오후 2시 30분 전시장에서 열린다. 이소애 전주문협회장은 1500여 편이 출품될 정도로 많은 시민과 학생이 참여해 전주의 자긍심을 높여줬다며 내년에는 보다 알찬 행사를 계획해 시민의 전주사랑 정신을 더욱 높이겠다고 말했다.
햄버거 나라에는 병원이 참 많았어요. 수많은 병원마다 어린이 환자들로 넘쳐났지요. 콜라콜라하며 기침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살갗이 헐고 짓무른 아이들이 울상을 짓고 있었어요. (본문 중 일부) 아이들의 인성 교육은 자아가 형성되고, 사회화가 시작되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돼야 한다. 어린이들의 인성 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는 요즘, 어린이들의 올바른 식습관 형성을 주제로 한 동화책이 나왔다. 박상재 동화작가의 <햄버거 나라 여행>. 햄버거만 좋아해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예나. 어느 날 햄버거 나라 임금님의 초대로 햄버거 나라에 가게 된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동그란 오뚝이처럼 팔과 다리가 짧고, 목과 허리도 없다. 사람들은 하루 세끼를 모두 햄버거만 먹고, 물 대신 콜라만 마신다. 기침할 때도 콜라콜라 한다. 햄버거 나라는 예나가 꿈꾸던 대로 좋기만 한 곳일까? 이 동화책은 햄버거 공주 예나가 햄버거 나라를 여행하고 온 뒤, 김치 마니아가 된 사연을 말랑말랑한 글과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들려준다. 식습관 문제뿐만 아니라 일회용 사용으로 인한 환경파괴 문제 등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준다. <햄버거 나라 여행>은 나한기획의 예쁜 맘 & 고운 맘 어린이 심성 동화 시리즈 다섯 번째 동화책이다. 이 시리즈는 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에 대해 알려준다. 박상재 작가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음식 하나만을 고집해 먹는 편식은 몸과 환경에 생각보다 더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햄버거 나라에 간 예나를 통해 비만이 일으키는 건강의 문제점과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자원, 그로 인한 환경파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수 출신인 박 작가는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그동안 <원숭이 마카카>, <개미가 된 아이>, <달려라 아침해> 등 동화책 60여 권을 냈다. 현재 한국글짓기지도회와 한국아동문학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림을 그린 조영금 작가는 아동복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 일러스트 공모전 입상을 계기로 전문 삽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린 책으로는 <눈사람 먹구리>가 있다.
농민농업농촌이 함께 즐거운 삼락농정(三樂農政)의 중심 전라북도. 지역 농촌경제 활성화를 6차산업(농촌 융복합산업) 관점에서 바라본 책이 나왔다. 정윤성 JTV 전주방송 기자가 펴낸 <농촌재생 6차산업농업에 미래를 곱하다>(씽크스마트). 6차 산업이란 농업의 생산(1차 산업)과 가공(2차)에 유통판매(3차)까지 곱했다는 의미로, 농민이 농업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조직화해 생산가공유통에서 힘을 갖고 궁극적으로는 마을 공동체가 되살아나는 산업을 뜻한다. 신간은 20년 넘게 사회 곳곳을 들여다본 정윤성 기자가 6차 산업의 착안점, 6차 산업체들의 초기 시행착오고민과 과제를 생생하게 그려낸 현장 보고서다. 한국과 일본의 우수사례를 취재해 성공요인과 사례별 특징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저자가 도출한 활성화 전략실현방안도 충실하게 담았다. 6차 산업에서 요구되는 것은 분리된 마케팅 전문가가 아니라 농업경영자이다. 소비자에게 친환경 농산물과 농촌 체험이 왜 좋은 지, 가치를 전달하는 농촌 비즈니스가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저자는 농업을 하면서 경영감각을 갖춘 1.5차형 인재육성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세부적으로는 농민가공센터와 후속 농민 창업 지원과의 연계, 농민의 부담을 덜어주고 신뢰성은 높이는 공인된 전문 식품안전검증센터 설립, 경쟁력 있는 농산물 직매장 육성 정책 등이 제안됐다. 저자는 1997년 JTV 전주방송에 기자로 입사해 10년 넘게 내발적 경제, 마을기업, 로컬푸드,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6차산업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저서 <마을기업 희망공동체>를 냈고, 소네하라 히사시의 <농촌기업가의 탄생>을 번역했다.
고형권 작가가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를 소재로 한 역사소설 <남원성>을 펴냈다. 역사소설 <남원성>은 1597년 전라도 남원성에서 6만 왜군에 맞서 무려 5일 동안 싸워 빛나는 승리를 이루어낸 조선 민중들의 전쟁 이야기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역사에서 저평가된 남원성 의병들의 싸움을 복원한다. 그는 묻는다. 421년 전 남원성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대답한다. 남원성에 있었던 농군, 노비, 백정, 광대, 기생, 노인, 아낙, 아이들 즉 민중들이다. 명량의 이순신을 지켜낸 객군들도, 1980년 5월 전남도청을 끝까지 지킨 시민군도, 지난겨울 광화문을 끝까지 지킨 촛불 시민도 결국 민중이다. 이 소설은 남원성 공성전을 철저하게 고증했다. 조선이 보유하고 있었던 다양한 화포와 화차를 통해 조선의 화력이 공성전에 어떻게 활용됐는지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이 밖에 조선 최고의 상단 남원객관을 등장시켜 조선의 상인과 상업에 관한 새로운 상상을 덧댔다. 고 작가는 단 한 명도 살려고 하지 않은 남원성 싸움의 진실을, 멀리 일본 땅에서 코가 잘려 원혼으로 떠돌고 있는 그 소리를 쓰고 싶었다며 남원성의 그 숱한 민들레꽃들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고 말했다. 작가는 장흥 출신으로 현재 임업 후계자의 길을 걷고 있다.
풍왕자가 덕솔 진겸을 불렀을 때는 오후 미시(12시)무렵이다. 풍왕자는 방금 왕궁에 들렸다가 나온 것이다. 덕솔, 어젯밤 왜왕이 돌아가셨다. 예엣! 놀란 진겸이 풍을 보았다. 백제방 방주 풍은 거의 매일 왜왕을 만난다. 조오메이는 병약했지만 갑자기 죽을지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 풍이 말을 이었다. 왜왕께서 미리 유언으로 왕후에게 왕위를 이양한다고는 했지만 소가씨가 가만두지 않을 것 같다. 본국에서 곧 지원해주실 것입니다. 진겸이 위로하듯 말했다. 본국에 왜국 상황을 알리는 밀사가 급히 떠난 것이 한달 전이다. 백제방은 왜 왕실과 직결되어 있어서 왕가(王家)는 모두 백제 왕실과 혈연관계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대신들도 백제계가 많아서 섭정 역할을 맡은 소가 에미시와 그 아들 소가 이루카도 백제계인 것이다. 풍이 길게 숨을 뱉었다. 왕후를 만나고 왔는데 왕위를 사양하고 싶어하셨어. 왕자 전하. 진겸이 목소리를 낮추고 풍을 보았다. 백제방의 청 안이다. 넓은 청 안에는 그들 둘뿐이었지만 진겸이 낮게 물었다. 전하, 이번 기회에 차라리 왜왕 왕위를 이어 받으시지요.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는 그것이 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왕위에는 미련이 없다. 소가씨가 왕이 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소가씨는 당의 첩자 뿐만이 아니라 신라 첩자도 만나고 있습니다. 전하. 여왕이 즉위하시고 나서 상의하자. 지금은 왕의 유언을 집행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 시간에 소가씨의 대저택안 청에서는 대신 소가 에미시가 아들인 소가 이루카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둘도 모두 왕궁에서 나온 참이다. 둘의 주위에는 가신(家臣)들이 둘러 앉았는데 중신(重臣)들이다. 에미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 은퇴를 했으니 나설 필요는 없지만 이루카, 당분간은 여왕 천하로 두는게 옳다. 아버님, 능력이 없는 여왕을 내세웠다가 신라짝이 납니다. 신라는 지금 내란이 일어났지 않습니까? 이루카가 어깨를 펴고 에미시를 보았다. 이루카는 37세, 장년이다. 소가 가문은 백제계 목협만치씨를 조상으로 50년이 넘도록 왜국을 통치해왔다. 소가 에미시의 어머니 소가노우마코는 쇼토쿠 태자와 함께 왜국을 다스린 섭정이었던 것이다. 그때 에미시의 중신 이키타가 말했다. 대감, 서두르실 필요가 없습니다. 왕후께서도 왕이 되실 뜻이 없으셔서 백제방 풍 왕자에게 두번이나 사양을 했다고 합니다. 으음, 풍이. 이루카의 눈빛이 강해졌다. 머리를 든 이루카가 에미시를 보았다. 아버님, 풍을 이대로 놔둬야 합니까? 욕심이 과하다. 혀를 찬 에미시가 허리를 폈다. 에미시는 72세, 그러나 아직도 눈빛이 강하고 말을 달려 사냥을 한다. 백제는 네 모국(母國)이고 네 바탕이다. 백제방이 있었기 때문에 소가 가문이 이만큼 번성할 수 있었던 거다. 뿌리를 잃으면 곧 말라죽는다. 에미시의 말이 엄격했기 때문에 이루카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루카의 중신들은 눈빛이 다르다.
[결산! 전북문화 2025] ➂ 응집력 보여준 전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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