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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황의순 문학상'에 배혜숙 수필가

<수필과비평>(발행인 서정환)이 주최하는 ‘제13회 황의순 문학상’에 배혜숙 수필가, ‘제18회 수필과비평 문학상’에 안경덕·피귀자 수필가가 선정됐다. 배혜숙 작가는 수필집 <토마토 그 짭짤한 레시피>로 ‘황의순문학상’을 받았다.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사유, 문학 대상에 대한 미시적이고 섬세한 표현 등이 특징인 그의 작품은 한국 수필의 전통성과 독자성을 잘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197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그는 40여 년간 수필가로 활동해왔다. 국제PEN한국본부 울산지부장을 지냈고, 울산문학상과 춘포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안경덕 작가는 수필집 <달도 밝다 보름달이거든>으로 ‘수필과비평 문학상’을 받았다. 2000년 ‘보리밭’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했다. 부산수필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실상문학상 우수상, 부산수필문인협회 수필문학상 우수상 등을 받았다. 수필집 <그대에게 가는 길>로 같은 상을 수상한 피귀자 작가는 지난 2003년 작품 ‘잃어버린 세월’을 <수필과비평>에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2014년 <창작에세이>를 통해 문학평론가가 됐고, 제5회 대구수필가협회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대구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장이다. 시상식은 오는 25일·26일 성남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수필과비평> 2018 하계 수필대학 세미나와 함께 열린다. 25일에 시상식과 수필문학 세미나 및 정기회의가 진행되고 이튿날에는 남한산성 일대로 문학기행을 간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8.09 19:32

[여름엔 미스터리] (하)게슈타포·블랙골드·폐가 -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맞닥뜨리는 공포

전북지역의 신아출판사가 출판도서 시장의 블루오션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신아 미스터리 컬렉션. 오싹한 미스터리와 잘 맞는 계절, 여름을 맞아 신간 6권이 나왔다. <안시성>(작가 김상중), <자살로 위장해 드립니다>(작가 최진환), <지하실의 멜로디>(작가 김한강)에 이어서 이번에는 <게슈타포><블랙골드>(작가 한유지), <폐가>(작가 하요아)를 소개한다. △ <게슈타포> 바이러스는 얼마든지 변종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핵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생물학전쟁이라는 건 누구나 익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신아 미스터리 컬렉션에서 펴낸 <살인자와의 대화>로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준 한유지 작가의 신간 <게슈타포>. 테러의 신무기로 개발된 바이러스 게슈타포를 쫓는 국정원 요원들의 활약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했다. 사람에게 기면 증상을 일으키는 게슈타포를 살포해 도시의 모든 질서를 마비시키는 것. 소리 없는 아우성 마냥 잠든 도시에 무혈 입성해 지배권을 빼앗는 것이 목표인 세력을 색출하는 과정, 정치외교 등이 얽힌 음모의 배경이 흥미진진하게 담겼다. 허구적인 이야기를 펼치지만 테러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블랙골드> 2차 세계대전에 패전한 일본이 한반도에 금괴를 숨겨 놓았다면? <블랙골드> 역시 한유지 작가의 과감한 상상이 잘 구현된 작품이다. 평범한 두 사람이 취미로 드론을 날리던 어느 날, 드론이 미군 기지를 촬영하다가 추락해 버린다. 여기서부터 평범한 두 사람의 일상이 바뀐다. 의문의 사건과 낯선 인물들과의 만남은 영원히 알려져서는 안 될 비밀을 추적하게 한다. 그 비밀이 바로 일제 강점기 때 숨겨진 금괴, 그리고 약 800억 원에 달하는 국채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이다. 금괴의 존재를 알고 탈취하려던 미국러시아와 한국의 일부 정치세력, 그리고 이를 밝히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허구의 소설이지만 작가가 실제 관계자로부터 들은 소재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썼다. 들었던 이야기에서 금괴보다 채권이 더 강렬했다는 한 작가는 70년 전 발행한 1억 원의 국채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10%의 복리 이자라고 계산하면 오늘날 약 800억 원으로 불어난다며 하지만 현재 상환된 채권이 1%에 불과하다면 나머지 99%는 어디에, 누구 손에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글로 풀었다고 말했다. △ <폐가> 하요아 작가의 소설 <폐가>는 전형적인 공포소설의 구성을 따른다. 하지만 2013년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을 수상했던 작가답게 감각적인 문체와 빠른 전개, 그리고 생생하게 묘사된 극중 인물들이 작품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익숙하지 않은 곳, 폐가는 공포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독자에게 공포를 팔기 위해 폐가에까지 발을 들인 오트컬 잡지 기자는 결국 여자의 원혼을 마주한다. 원혼과 사냥꾼, 도끼맨, 도살하는 남자 등이 얽힌 그날의 살인은 여전히 폐가와 함께 되풀이 되고 있었다. 신아출판사 관계자는 다수의 공포소설 연재 경험이 있는 하요아 작가의 정통 공포물 <폐가>는 공포 애독자들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8.09 19:32

[불멸의 백제] (154) 8장 안시성(安市城) ⑩

의자왕이 계백의 서신을 받았을 때는 안시성 공방이 3개월이 넘었을 때다. 계백의 서신을 품고 온 장덕 백용문은 안시성에서 빠져나와 남쪽 바닷가로 내려온 후에 백제 무역선을 타고 왔다. 대륙의 동쪽은 백제령 담로가 이어져 있어서 백제 무역선을 쉽게 만난다. 의자가 백용문이 올린 계백의 서신을 읽고 나서 얼굴을 펴고 웃었다. “백제군이 안시성의 주력군으로 기틀을 잡았구나. 장하다.” 그때 아래쪽에 서 있던 병관좌평 성충이 말했다. “대왕, 당왕 이세민이 겨울이 되기 전에 안시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철군해야만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이세민이 수 양제보다 나을 게 없지.” 의자가 바로 말을 받았다. “군사력이나 장비 면에서 수 양제가 이세민보다 몇배는 나았다.” 그러나 수 양제 양광은 요동성에서 막혀 1백만 대군이 곤욕을 치르다가 회군했다. 당시 요동성을 우회하여 고구려 내륙으로 진입했다. 수의 30만 대군은 살수대첩에서 고구려 을지문덕에게 대패하여 살아 돌아간 군사는 2천여명 뿐이었다. 그것이 수(隋) 멸망의 원인이 된 것이다. 단 아래쪽에 있던 내신좌평 흥수가 한걸음 나섰다. “대왕, 안시성으로 돌아갈 장덕 백용문에게 고구려 대막리지께 가는 밀서를 줘 보내면 되겠습니다. 따로 사신을 보낼 필요가 없겠습니다.” “옳지.” 의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가 잘 왔다.연개소문공에게 가는 밀서와 내 말까지 전하거라.” “예, 대왕.” “밀서는 곧 써주겠지만 전할 말은 이렇다. 잘 들어라.” 의자가 헛기침했다. 글로 적어 보내는 밀서와는 달리 전할 말은 사담(私談)에 가깝다. 개인적인 말이니 친숙한 사이에서의 전갈이다. “내가 신라 김유신이 끌고 올라가려던 수레 3천대를 포획했다고 전해라. 이건 밀서에 적을 만한 일도 아니다.” 긴장한 백용문에게 의자가 웃어 보였다. “양곡이 6만석 실려 있었으니 당군 30만이 넉 달간 먹을 양식이었다.” “예. 대왕.” “우리 백제군이 신라의 양곡 수송로를 차단하고 있을 테니 이세민을 꼭 잡아서 구경을 시켜주기 바란다고 전해라.” “예. 대왕.” 둘러선 백관들 사이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백제 조정 분위기는 밝고 자유스럽다. 왕좌에 앉은 대왕 앞에 문무백관이 늘어서 있지만 가끔 자색 관복과 비색(緋色) 관복의 신하들이 뒤섞일 때도 있다. 그러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자색띠와 관복을 입은 것은 1품 좌평(佐平)에서부터 6품 나솔까지이며 7품 장덕에서 11품 대덕까지는 비색 관복, 12품 문독에서 16품 극우까지는 청색 관복인 것이다. 그때 성충이 입을 열었다. “지난달에 신라 국경에서 가야족 6천호 3만여명이 백제령으로 넘어왔다고 은솔에게 전해주게.” “네. 좌평.” 성충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남방방령이 가야족 이주민이 넘쳐나는 바람에 아예 국경에 대군을 대기시켜놓고 있다네.” 그말을 들은 안시성의 백제군 사기는 충천할 것이다. 먼 이국땅에서 고국 백제가 번성하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되면 적의 목을 몇개 벤 것보다 더 기운이 날테니까. 그것을 모두가 안다.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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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8 19:34

[불멸의 백제] (153) 8장 안시성(安市城) ⑨

그물에 걸린 고기나 마찬가지다. 당군은 그물 속에서 꿈틀거렸고 성벽 아래쪽으로 물러선 백제군은 일제히 활을 쏘았다. 투석기로 던진 돌은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그물에 덮인 당군에 맞았다. 함성이 진동하고 있다. 이제 성벽 위로 올라온 백제군이 그물속의 당군을 찔러 잡는다. 성 밖의 당군이 넘어진 운제를 기어올라 왔다가 기겁을 하고 물러가다가 굴러떨어졌다. 성벽 위의 그물 덩어리와 그물에 덮여 죽는 당군의 참상을 본 때문이다. 그리고 그물에 걸려 성벽 위로 올라설 수도 없다. “와앗!” 성벽 위의 백제군이 당군의 시체를 성 밖으로 던지면서 함성을 질렀다. 성벽에 걸쳐진 거대한 운제 2개는 불타오르고 있다. 해가 한 뼘쯤 솟아올랐을 때 당군은 물러가기 시작했다. 전에는 시체를 수습하고 갔지만 지금은 버려두었다. 그만큼 혼란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대승이오.” 지원군을 이끌고 달려온 양만춘이 계백의 옆에 서서 패퇴해가는 당군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성 밖의 들판에 깔린 당군의 시체는 5백여구나 된다. “운제에서 쏟아진 당군을 그물로 덮을 묘수를 썼다니, 우리도 그물을 만들어야겠소.” 양만춘이 옆에 늘어진 그물을 뜯었다. 질긴 삼줄과 쇠줄을 섞어 만든 그물이다. 칼로 끊기 어렵게 가는 쇠줄을 안에 심어 놓았다. 성벽 뒤쪽에 늘어뜨려 놓았다가 좌우에서 당기면 그물이 펼쳐지는 단순한 구조다. “이세민이 운제를 묶어 새로운 공성기구를 만들었지만 우리한테 당했구려.” “당군은 또 다른 공성기구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양만춘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당군은 땅을 파서 성 안으로 들어오려고 세 군데에서 땅굴을 팠다. 하루에 1백자(30m)씩 무서운 속도로 파 들어오다가 그것을 탐지한 고구려군에게 몰살을 당했다. 고구려군이 위에서 땅굴을 허물어버린 것이다. 땅굴 안에 있던 당군 수백명이 생매장을 당했다. 이제 당군은 투석기로 돌을 날리지 않는다. 성안의 고구려, 백제군은 이미 지하에 엄폐물을 만들어놓았을 뿐 아니라 날아온 돌을 모아 무기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성안에는 1년 반을 지탱할 양식이 저장된 데다 수십 군데의 마르지 않는 식수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구려, 백제 연합군의 사기가 높아지고 있다. 계백이 사처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신시(4시)가 되어갈 무렵이다. 이제는 사처 집사가 된 덕조가 계백을 따라 마루방에 들어서면서 물었다. “주인, 당군이 동쪽도 막았다는 게 정말입니까?”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덕조를 보았다. “왜? 넌 도망갈 생각이었느냐?” 당군은 터놓았던 동쪽까지 막아버린 것이다. 이것은 안시성의 군민(軍民)을 몰사시키겠다는 결의다. 지금까지는 성을 비우고 후퇴하도록 해준 것이다. 그래서 경비가 허술한 동쪽을 통해 덕조와 서진이 성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아니올시다. 주인께선 서운한 말씀을 하시오.” 얼굴을 찌푸린 덕조가 말을 이었다. “주인, 낮에 시장에 나갔다가 상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그때 방으로 서진이 들어와 계백의 갑옷을 뒤에서 벗겼다. 자연스러운 행동이어서 덕조는 뒤로 물러섰다. 벽에 등을 붙인 덕조가 서두르듯 말을 잇는다. “그런데 성안에 당군 첩자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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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7 20:32

[불멸의 백제] (152) 8장 안시성(安市城) ⑧

계백이 함성 소리에 눈을 떴다. 먼 쪽에서 울리는 함성이다. 벌떡 상반신을 일으켰을 때 서진이 이불을 끌어 가슴을 가리면서 따라 일어났다. 갑자기 터진 함성에 문밖은 소란해졌다. 옷을 걸친 계백이 밖으로 나왔을 때 위사장 하도리가 마당에서 소리치듯 말했다. 당군의 공격이오! 이 시간에? 계백이 동녘 하늘 보았다. 아직 날도 밝지 않았다. 석달이 되는 동안 당군이 새벽부터 공격하는 것은 처음이다. 당군이 서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하도리의 두 눈이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다. 서문을? 계백이 갑옷 허리끈을 여미면서 마당으로 내려왔다. 서문은 백제군이 맡은 것이다. 당군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공방전을 치르면서 서로 부르고 답하며 욕설은 욕설로 상대하다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계백이 서문으로 달려갔을 때 하늘은 부옇게 밝기 시작했지만 공격은 절정에 올라 있었다. 당군(唐軍)은 이번 안시성 공격에 모든 기구를 다 동원했는데 현장에서 만든 것도 많았다. 구름사다리인 운제는 말할 것도 없고 포차로 돌을 쏘아 성벽과 성안 가옥을 부쉈고 당차, 충차, 누차 등을 동원하여 성벽과 성문을 깨뜨렸고 불화살을 쏘았다. 그때 마침 2대의 운제가 위쪽에 당군을 가득 싣고 다가왔는데 평상시와는 다르다. 계백이 그것을 보고는 소리쳤다. 준비해라! 오늘밤 서문을 맡은 장수는 나솔 윤진. 목청이 터질 것처럼 소리쳐 독전을 하고 있다. 그때 어둠을 뚫는 것처럼 운제(雲梯) 2대가 다가왔다. 그런데 이번 운제는 2대를 연결시켜 통로를 만들어 놓고 그 통로에 가득 당군을 태우고 있다. 운제 2대와 통로에 태운 당군은 수백명이다. 이 수백명이 성벽 위로 쏟아지면 당해내기 어렵다. 쏘아라! 장수들이 목이 터져라 하고 외쳤지만 운제는 괴물처럼 다가왔다. 이쪽에서 쏜 불화살에 운제 곳곳이 불에 타고 있었지만 워낙 튼튼하게 만들어서 부서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덩이가 다가오는 터라 더 위협적이다. 운제의 밑쪽에는 거대한 나무바퀴가 10여개나 달려 있었는데 당군 수천명이 뒤쪽과 아래쪽에서 밀고 있다. 계백이 마침내 허리에 찬 장검을 빼 들었다. 윤진이 다시 소리쳤다. 기다려라! 아래쪽 당군이 내지르는 함성과 백제군이 맞받아 지르는 외침이 천지를 진동하고 있다. 오늘 당군은 결판을 내려는 것 같다. 운제 2대를 묶은 괴물의 크기는 길이가 250자(75m), 높이가 1백자(30m)였고 각 운제의 두께는 50자(15m)가 넘는다. 당군은 그동안 이 괴물 덩어리를 만든 것이다. 계백이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기다려라! 놈들이 쏟아질 때까지! 이제 운제가 20자(6m) 거리로 다가왔다. 운제 위에 탄 당군의 눈도 보인다. 그때다. 운제가 앞쪽으로 기우는 것 같더니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성벽 위로 넘어졌다. 우와앗! 당군의 함성이 진동했고 그 순간 운제와 통로에 가득 타고 있던 당군이 성벽 위로 쏟아졌다. 수백명이다. 그때 계백과 윤진, 화청까지 소리쳤다. 그물을! 그 순간 좌우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십명의 백제군이 일제히 그물을 당겼다. 우왓! 보라. 성벽 위로 그물이 펼쳐지면서 쏟아진 당군을 물고기처럼 덮어버렸다. 거대한 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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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6 20:07

[불멸의 백제] (151) 8장 안시성(安市城) ⑦

밤, 남장을 벗고 여자 옷으로 갈아입은 서진은 아름답다. 삭막한 바위산에서 솟아난 꽃 같다. 안시성주 양만춘은 정부인에 소실까지 거느렸고 장수, 군관들까지 부인을 두고 있었지만 백제군 장졸들은 홀애비다. 그래서 여자 좋아하는 화청은 이미 과부 하나를 숙소에 데려다 놓고 임시 부인 노릇을 시켰고 장수들에다 12품 이하 관직의 무장들까지 요령껏 여자를 두었다. 고구려나 백제 모두 혼인한 남녀 간의 정절은 중하게 여겼지만 교제는 자유롭고 여자가 위축되어 살지는 않는다. 신라는 여왕이 다스리는 나라인 것이다. 계백도 양만춘이 여러 번 숙소로 여자를 보내 시중을 들게 했지만 다음날에는 내보냈다. 서진이 술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섰을 때가 자시(12시)쯤 되었다. 밤늦게 술이냐? 술상을 본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술상 머리에 앉은 서진이 술병을 들면서 따라 웃었다. 한산성에 잡혀 있을 때부터 이 날을 기다리고 있었죠. 요망한 년, 이곳에서는 신라 첩자 노릇은 못 하겠구나. 술잔을 든 계백이 지긋이 서진을 보았다. 제가 도성의 나리 사택에 있을 때도 태왕비께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서진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그것을 아씨는 아시지요. 같은 신라 출신이라 그런가? 예, 저도 가야 출신인데다 고향이 아씨 마을에서 30리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계백이 술잔을 비우고는 긴 숨을 뱉었다. 술맛이 달다. 전장(戰場) 한복판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서진의 목소리도 꿈속에서 울리는 것 같다. 그래서 한산성에 있을 때부터 아씨를 언니로 불렀습니다. 아씨가 저보다 한 살 위이시거든요. 잘 한다. 그래서 아씨도 첩자로 만들었느냐? 아씨께서 나는 아이 때문에 움직일 수 없으니 네가 나리를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계백의 잔에 술을 채운 서진이 옆으로 붙어 앉았다. 서진한테서 향내가 맡아졌다. 체취가 섞인 색향(色香)이다. 나리, 전 아직 남자의 몸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서진이 반짝이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그러나 얼굴은 붉어져 있다. 하지만 몸은 뜨겁고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허, 과연 요물이구나. 나리를 그리면서 여러 번 몸이 뜨거워졌습니다. 계백은 어느덧 자신의 몸도 뜨거워진 것을 깨달았다. 그때 서진이 계백의 바지 허리끈을 쥐면서 몸을 붙였다. 나리, 술상을 치울까요? 놔둬라. 술이 반병이나 남았다. 술에 취하시면 방사가 금방 끝난다고 합니다. 그만두시지요. 이런 색녀(色女) 같으니, 넌 긴 방사를 좋아하느냐? 오래 안기고 싶은 거죠. 마침내 참을 수가 없어진 계백이 술잔을 내려놓았을 때 서진이 허리띠를 풀었다. 나리, 불을 놔둘까요? 이미 새빨갛게 달아오른 서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물었다. 계백의 바지를 벗기던 서진의 손이 뜨거운 몸에 닿는 순간 놀라 움츠렸다. 첫 경험일 것이다. 그때 계백이 서진의 치마를 젖히고는 속바지를 찢듯이 벗겼다. 그리고는 서진을 번쩍 안아서 침상에 눕혔다. 서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눈을 감았다. 계백이 서진의 알몸이 된 하반신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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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5 19:44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앉으면 글, 서면 길 - 김병용

길을 찾는다는 것 자연이 인간에게 최초로 허락한 길은 지구의 생김새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산길과 물길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좁고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 가파른 옛길들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최초로 맺어진 역학 관계를 잘 보여준다. 이 관계를 때로는 거스르고 때로는 협상하며 인간은 길을 개척해왔다. 다리를 놓아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사이의 격절감을 무화시켰고, 굽은 길을 반듯하게 펴기 위해 앞을 가로막는 산 한가운데에 터널을 뚫었다. 물길의 흐름도 돌리고 운하를 굴착했는가 하면 난바다 한가운데 뱃길을 내더니 마침내 하늘길까지 열었다. 왜 이와 같이 사람들은 집을 나서 길을 열었을까? 우선, 한무제 때 서역로를 열었던 장건의 경우나 실크로드, 차마고도와 같은 교역로 혹은 마르코 폴로의 모험담이나 콜럼버스의 항해 등에서 볼 수 있듯 인간들은 전쟁과 동맹, 무역과 교류 등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목적하에서 길을 나섰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천하를 주유했던 예수, 석가, 공자의 경우나 구도를 위해 구역(九譯)의 역경을 넘나들었던 현장, 혜초, 엔닌과 같은 구법승들처럼 추상적인 가치를 찾아 길을 떠난 이들도 인류사에는 수두룩하다. 또, 아문센이나 피어리, 텐징 노르가이나 라인홀트 메스너와 같은 극지 탐험가들은 인간의 질서 안에 들어와 있지 않던 야생의 땅에 기어이 발길을 들이밀었다. 이러고 보면 길을 나서고, 낯선 곳에서 난생처음 만나는 사건을 겪는 일이란 게 결국은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던져 남들을 위해 길을 닦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길을 찾는다는 말이 수단과 방법을 강구한다는 뜻 이상, 비밀의 탐구나 진리의 추구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이유가 또한 이로부터 말미암는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해 몸을 던져 다리가 되고 길을 닦는 일,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일이라니! 이런 면에서, 세상의 모든 길은 인간들이 흘린 피와 눈물과 땀의 결정이 빚은 소금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각 시대별로 당대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자연지리, 인문, 경제, 국방, 정치 지리적 인식의 총합이 실제의 지표에 그려낸 거대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즉,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세상의 모든 길은 인간들의 호기심과 필요, 욕망이 뻗어 나와 다져진 길이다. 이 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거기 누가 사는가?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 이 길은 또 어느 길과 이어지는가? 길 들이다라는 말 문학이란 사람들의 삶이 그려내는 무늬를 말과 글로 붙들어두는 인간들의 행위, 사람이 남긴 모든 자취마다 문학은 깃든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알려져 있는 길가메시 서사시나 유럽 문학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오디세이아가 길 위의 문학, 길을 찾기 위한 장쾌한 모험과 도전의 기록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길 찾기란 이처럼 현실적인 동시에 추상적인 인간의 행위로 우리들에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글과 길의 친연성의 출발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는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지니의 송 라인(Song lines)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산과 호수, 나무와 바위에 대한 기억을 길고 긴 노래로 엮어 흥얼거리고 또 그걸 후손들에게 암송하게 하였다. 이 노래를 배우는 어린이들은 아마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의 풍경에 대한 상상을, 자신의 입이 부르는 노래를 자신의 귀로 들으며 머릿속으로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키워나갔을 것이다. 부른다, 노래를 부른다, 길을 부른다, 풍경을 부른다, 기억을 부른다. 그 노랫가락만큼이나 길고 긴 가락 속에는 아직 당도하지 않은 미래도 담겨 있으리라! 이처럼, 그들의 노랫가락 안에는 공간이 담겨 있고, 풍경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으며, 그 길을 먼저 걸었을 선조들의 여정이 또한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을 받아들이고 이해한 선인들의 감성을 이해하면서 자신들의 공간감과 공간에 대한 친연성을 자신들의 마음 깊은 곳에 받아들였다. 내가 어디 살고 있는가를 안다는 것은 곧 내가 누구인가를 자각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로 길게 이어진 길을 자신의 마음에 들이면서, 끊이지 않고 이어진 그 길을 걸어온 선조들과 나 사이의 연계선을 찾는 것. 송 라인은 노래로 엮여진 풍경에 관한 기억이기도 하며, 그 기억이 전승되어온 길에 관한 노래이기도 하다. 애버리지니의 송라인은 구술문학의 전통이 갖는 아름다움과 유장함 그리고 그 전승 과정에 존재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상력의 전승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왜 우리 선조들은 이 바위를 곰과 같다고 노래했을까, 저 강을 왜 은빛 강이라고 했을까, 라고 물으며 후손들의 상상력은 무한 증폭된다. 아마도 우리가 글이라고 하는 문학적 상상력의 출발은 이와 같이 길 위에서 또는 길을 상상하며 시작된 인간의 지적 행위였을 것이다. 동양 최초의 문학이론서라고 할 유협의 『문심조룡(文心雕龍)』에도 이와 흡사한 최초의 문명화된 인식이 드러난다. 하늘에도 무늬가 있고, 땅에도 꿈틀거리는 자취가 서려 있는데 어찌 인간의 마음에 무늬가 없겠는가! 글이 마음이 그려낸 무늬를 구체적으로 외화(外化)하는 것이라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최초의 자극은 어디서 어떻게 발생하는가? 우리말 길들이다라는 말은 묘한 말이다. 길들이다라는 말은 내가 무엇인가를 복종케 하고 나를 이해하게끔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내가 나를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과 나와의 관계에 대한 자기 수긍을 표현하는 말일 수도 있다. 내 마음 안에 이제껏 존재하는 세상의 모든 길을 들여놓는 것, 너에게 가는 길, 세상을 이해하는 길을 들이는 것. 한 사람의 마음에, 생애 깊은 곳에 길을 들여놓으려면 당연히 길을 만나야 한다. 즉, 길에 나서야 한다. 길에 나선다는 것은 길을 향해 나가는 것, 길 속으로 들어가는 것. 길은 목적이며 동시에 과정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 복잡한 길과 길 위의 풍경들이 길에 나선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와 파동을 일으키고 그 파동이 아로새겨진 인간의 마음이 결국 글을 쓴다. 서면 길, 앉으면 글 글이란 결국 길 위에 선 인간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책상 앞에 앉아 찬찬히 자신의 마음결을 살펴 더듬더듬 그려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후나 공간적 차이 등은 있을 수 있지만 이런 면에서 길과 글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글이란 결국 문자로 그려내는, 또 다른 세계 인식의 지도. 길은 곧 글이 되고, 그렇게 그려진 몇 편의 글은 오래 사랑을 받으며 후학들의 길이 되어 계속해 뻗어나간다. 길을 걷는 것은 무엇보다 몸, 발바닥부터 손끝까지 사람들은 온몸의 움직임을 길의 흐름에 일치시킨다. 이렇게 온몸으로 길을 밀고 나가며 세계 인식의 밑그림을 획득한다. 이 경지를 나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단계라고 말하고 싶다. 길에서 돌아와 서탁에 앉아 글을 쓰는 일은 백지 위에 길을 그렸다 지우며 자신이 걸어온 길과 그때 가지 못한 길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원고지에 쓰든 자판을 두들기든 혹은 머릿속에 그리든 쓰기(writing)의 과정이며, 연상(imaging)과 심리적 투사(projection)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차츰차츰 길 위에서 주운 말, 숲을 헤치며 체득하게 된 경난(經難)의 깨달음을 통해 자기 나름의 정명(正名), 맥락(脈絡)을 취득하게 된다. 말하자면, 스스로 문리(文理)를 열어 나가는 것이다. 문리란 곧 울창한 언어의 숲에 자신만의 작은 오솔길을 내는 일. 작가는 그 스스로 길잡이가 되어 숲을 헤치고 나가야만 길을 낼 수 있다. 초입에 들어서는 일부터 종점에 도착하기까지 그 험난한 여정의 순간들이 모여 마침내 길이 되는 것과 발단에서 결말에 이르는 스토리텔링의 과정은 놀라울 만큼 흡사하다. 이런 면에서 작가란 곧 여행자다. 앉으면 글, 서면 길로 살아가는 방랑자! 길 위에서 글을 구상하고, 글을 쓰면서는 걸어온 길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 이들이 글쟁이인 터, 글쟁이는 곧 길라잡이기도 하다. 좋은 글은 작가의 긴 여행, 그의 몸과 마음이 걸어온 길을 통해 그려진다. 오늘 우리는 어느 길 위에 서 있는가, 어떤 글을 그려내고 있는가? 작가의 행로를 따라 함께 걷다 보면 필연, 우리는 어느 곳엔가 당도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풍경일 수도 있고, 사람의 마음일 수도 있으며, 사람들이 사는 마을일 수도 있다. 그렇게 글을 따라 길은 우리 마음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길이 드는 것, 길이 나는 것이다. /김병용(소설가) * 1990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중편소설 당선. 장편소설 『그들의 총』, 소설집 『개는 어떻게 웃는가』, 여행기록서 『길 위의 풍경』, 연구서 『최명희 소설의 근원과 유역』 등을 냈으며, 『길은 길을 묻는다』, 『전북의 재발견-길』, 『아름다운 순례길』, 『이순신 백의종군로』 등의 책임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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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3 15:25

한줄 한줄에 담긴 세월의 흔적

조기호 시인이 스무 번째 시집 <하지 무렵>을 내놨다. 여든을 넘은 시인은 평생을 겪어온, 손때 묻은 연륜을 서리서리 풀어낸다.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력과 창의력이 퇴화됨을 느낀다는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달이 서너 편의 시를 써낸다. 시를 쓰는 날은 가만히 늙어가는 자신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시를 읽으면 세월의 흔적 묻은 얼굴로 시 한 뼘을 끼적이는 그의 형상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 무렵, 모내기하는 아버지와 감자 삶는 어머니가 있는 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시인. 이렇듯 옛 세월을 되새김질하는 그의 시편에는 ‘여백’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여백은 점심에 반주 한잔 나누는 친구들, 전깃불 안 껐다고 지청구하는 아내와 함께하는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워나간다. 또 시인은 이승과 저승에 대해 고뇌하면서 버리고 비우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흔적을 비우고 거둔다는 것조차 부질없음을 깨닫고, 채움도 비움도 거둠도 모른 채 살아가리라 결심하기도 한다. “(상략) 당신의 영혼이 가고 마음 가고 또 가을마저 가고나면/ 서러운 수의를 껴입은 나는 막차를 탑니다.// 맥 빠진 강물이 나를 따라옵니다./ 나를 부르실 때까지 바람은 가득하였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의 백신은 언제쯤/ 이승 어느 울음에서나 빚어질 수 있겠습니까.” ( ‘이별 백신’ 일부) 전주 출신인 조 시인은 전주문인협회 3·4대 회장과 문예가족 회장, 전주시풍물시동인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시집 <저 꽃잎에 흐르는 바람아>, <바람 가슴에 핀 노래>, <산에서는 산이 자라나고>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목정문학상, 후광문학상, 전북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8.02 20:08

[여름엔 미스터리] (상) '안시성'외 2권 - 짜릿한 반전 스릴러 '무더위 싹~'

전북의 신아출판사(대표 서정환)가 지역 출판사의 활동 토대를 개척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작한 신아 미스터리 컬렉션. 더 탄탄해진 노하우와 라인업으로 올 여름, 6권의 미스터리 신간을 냈다. 중앙집권화된 출판도서 시장을 뒤집을 지역의 신선한 작품들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김상중 <최후의 결전 안시성> 올해 배우 조인성 주연의 영화 안시성이 개봉 예정인 가운데, 나라를 삼키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책으로도 볼 수 있다. 김상중의 <최후의 결전 안시성> 역시 책봉의 질서를 어지럽힌 고구려를 징벌하려는 당 태종 이세민의 야망과 백성을 지키려는 장수 양만춘의 일념이 가차 없이 맞붙었던, 처절한 88일의 분투를 담았다. 주제의 화제성, 대중성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도 과감해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신아출판사 관계자는 김상중의 <안시성>은 불필요한 인물과 전개는 과감히 생략하고 두 인물의 심리와 치열한 전쟁터 묘사에 집중했다며 밀고 당기는 공성전의 맥락과 날카롭게 대립하는 팽팽한 심리전이 작품의 묘미라고 말했다. △최진환 <자살로 위장해 드립니다> 삶이 지옥인 민초에게 그의 살인은 구원이었다. 두 번의 호란을 겪고 백성의 삶은 지옥과도 같았던 17세기 조선. 곡절을 지닌 주인공 김삿갓이 시대에 서 있다. 구원의 손길을 갈구하는 민초들은 그에게 살인 의뢰를 한다. 그러나 죽이라고 청부하는 것은 고리대금업자, 비리에 찌든 관리양반들이 아니다. 바로 의뢰자 자신이다. 소설의 설정은 음울하면서도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최진환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김삿갓의 행위는 무도한 살인일까, 구원일까. 시나리오 작가 출신답게 빠른 전개와 극적인 반전으로 소설의 품격을 높였다. 실제 역사에 살인자가 구원자라는 도발적인 허구의 소재를 녹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오늘날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김한강 <지하실의 멜로디> 미스터리 소설은 패턴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야기가 독특하고 반전의 효과마저 탁월하면 새로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지하실의 멜로디>가 그렇다. 중국 유학 생활을 오래한 김한강 작가는 작품의 무대를 미국, 유럽까지 넓혔다. CIA와 FBI 등 국가정보요원들의 암투와 테러, 사랑 이야기다. 현대적인 주제배경 설정에 느와르 액션사랑을 적절히 가미해 최근 트렌드에 맞는다는 평가다. 김한강 작가는 국가, 정권, 불특정 소수의 안위를 위해 가려져야만 했던 비극에는 무고한 시민의 희생도 많지만 미국 CIA, FBI, 대한민국의 국가정보 요원들도 있다며 음지에서 활동하다 끝내 버려지기도 하는 이들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봤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8.02 20:08

[불멸의 백제] (150) 8장 안시성(安市城) ⑥

당황제 이세민을 만나고 왔다고 벼슬이 오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군(唐軍)의 공격이 수그러진 것도 아니다. 당군은 안시성의 고구려, 백제군 수뇌부를 투항시키려면 심하게 공격하여 위세를 보여야 한다고 결정한 것 같았다. 연일 맹공을 퍼부어서 성벽이 하루에도 몇 번씩 허물어졌다. 그러나 고구려 백제군은 즉각 보수하고 반격했다. 당군은 안시성 4면을 포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동쪽은 터놓아서 퇴로를 만들어 놓았다. 지원군이 오지 못하도록만 할 뿐이지 언제든지 동문을 통해 물러나도록 한 것이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사흘, 닷새, 열흘이 되더니 한 달이 금방 지났다. 두달이 지나 석달째가 되었을 때 공격하는 당군은 지친 기색이 드러났다. 반대로 수비하는 고구려 주민들의 사기는 그만큼 높아졌다. 더구나 겨울이 닥쳐오고 있다. 북방의 안시성은 겨울 추위가 매서운 곳이다. 안시성은 창고에 1년 이상 먹을 양곡이 쌓였고 성안에 마르지 않는 우물이 수십 군데가 있어서 내년 겨울까지도 버틸 수가 있다. 그러나 성밖에 포진한 30만 가까운 당군은 겨울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또 반복되는 것이냐?” 마침내 당황제 이세민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목소리가 신음을 뱉는 것 같다. 둘러선 장수들은 머리를 숙였고 이세민의 목소리가 바위처럼 굴러떨어졌다. “이 성 하나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회군해야 된단 말인가!” 그동안 수많은 전략이 나왔지만 모두 채택되지 못했다. 안시성을 놔두고 뒤를 쫓지 못하도록 5만 군사를 배치시킨 후에 곧장 고구려 심장부로 진군하자는 의견이다. 그러나 황제의 친정(親征)을 장수들을 내보내어 싸우는 것처럼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말에 아무도 더 주장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군은 초조해졌고 사기가 떨어졌으며 안시성의 사기는 높아졌다. 그래도 당군은 쉽게 철군하지 않았다. 황제의 친정인 것이다. 이세민의 탄식처럼 ‘또’ 패주했다가는 수(隋)양제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고구려가 바로 천하의 중심(中心)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계백에게 위사장인 하도리가 달려왔다. 저녁 무렵, 성안 사택을 숙소로 쓰고 있는 계백이 마악 저녁상을 물렸을 때다. “은솔, 백제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이? 백제에서?” 놀란 계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일행이 보였다. 앞장선 사내는 덕조다. 깜짝 놀란 계백이 눈만 크게 떴을 때 덕조가 소리쳤다. “주인! 다시 뵙습니다!” “웬일이냐!” “아씨가 보내셨소!” 다가온 덕조가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마루에서 내려간 계백이 덕조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다가 숨을 들이켰다. 덕조의 뒤에 서 있는 사내가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희고 깨끗한 얼굴, 두건을 썼지만 소년같다. “아니, 네가…….” 그때 소년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옆으로 다가온 덕조가 말했다. “아씨가 시중을 들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때서야 계백의 시선이 미소녀에게서 떨어졌다. 바로 서진이다. 태왕비의 시녀, 신라의 첩자 취급을 당하고 계백의 사저에 갇혀 지내던 서진이다. 사비도성으로 옮겨 왔을 때 궁으로 돌아가지 않았는데 고화가 보내다니, 몸을 돌린 계백이 덕조와 서진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때 서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리, 전장에서라도 모시고 싶습니다.” 백제를 떠난지 반년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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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02 17:52

[불멸의 백제] (148) 8장 안시성(安市城) ④

뭐라고? 사신이? 이세민이 앞에 선 대장군 우성문을 보았다. 오전 사시(10시)무렵, 우성문은 어깨를 부풀리며 거친 숨을 뱉는다. 예, 그런데 사신이 백제군 수장인 계백이란 놈입니다. 오오. 이세민의 눈이 좁혀졌다. 황제의 진막안이다. 백여명이 넘는 장군들이 긴장한 채 이세민과 우성문을 번갈아 보고 있다. 그때 우성문이 말을 이었다. 폐하, 그놈이 아군의 허실을 염탐하려고 온 것입니다. 바로 참수해서 머리를 창끝에 꽂고 위세를 보여야만. 가만. 이세민이 우성문의 말을 막았다. 말이 많구나. 황공하옵니다. 폐하. 넌 몸보다 말이 빠른 놈이다. 황공 무지로소이다. 이세민이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우성문의 감군으로 나갔던 곽영탁이 어디 있느냐? 네, 폐하. 말석에 서있던 곽영탁이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진막 안은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세민의 대장군이며 태수, 도독 등 여러 직임을 보유하고 있는 우성문을 개 부르듯이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곽영탁 따위는 말할 것도 없다. 이세민의 눈이 다시 좁혀졌다. 너는 감군으로 우성문의 패퇴를 속인 놈이다. 네 죄를 알렸다? 기가 질린 곽영탁이 숨도 쉬지 못하고 땅바닥에 이마를 붙인채 엎드려 버렸다. 이세민의 시선이 우성문에게 옮겨졌다. 호가호위(狐假虎威)는 너를 두고 한 말이겠다. 그렇지 않으냐? 이제는 우성문이 땅바닥에 엎드렸고 이세민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쥐새끼가 여우의 위세를 빌어서 나대는 것을 뭐라고 하느냐? 이세민의 시선이 요동총독 서위에게로 옮겨졌다. 총독이 말해보라. 예, 서가호위(鼠假虎威)가 되겠습니다. 이놈, 우성문. 이세민이 엎드린 우성문을 꾸짖었다. 백제군 계백에게 대패를 하고 감군과 함께 그 사실을 숨기고는 계백이 사신으로 오니까 탄로가 날까봐서 겁이 났느냐? 우성문은 엎드려 떨기만 했다. 이세민과 긴 인연이 있었으니 성격을 더 잘 아는 것이다. 냉혹하고 잔인해서 형제도 눈 깜박 하지 않고 살육하는 이세민이다. 부친인 태조 이연도 이세민이 겁이 나서 현무문의 변이 일어난지 두달만에 황제 위를 이세민에게 넘겨주고 물러났다. 그때 이세민이 엎드린 둘을 향해 말을 이었다. 이놈들, 내가 모르고 있었던 줄 아느냐? 이세민이 아래쪽에 선 위사장에게 지시했다. 감군 곽영탁의 머리를 떼어서 창끝에 꽂아 계백이 들어오는 입구에 세워 놓아라. 네, 폐하. 우성문은 사지를 결박해서 그 머리통 옆에 꿇려놓아라. 네, 폐하. 계백을 극진히 영접하여 나한테 데리고 오라. 이세민이 지시하자 장수들이 서둘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는데 질서가 엄정한 한편으로 빈틈이 없다. 이윽고 안시성에서 보낸 사신 계백 일행이 황제의 진막 앞에 도착했다. 그때 진막 앞에는 창끝에 꿰인 곽영탁의 머리가 먼 하늘을 바라보며 세워져 있었고 그 밑에는 우성문의 사지가 결박한 채 꿇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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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31 19:34

[불멸의 백제] (147) 8장 안시성(安市城) ③

“성안 군기가 엄정하면서도 장졸의 사기가 높았습니다.” 유춘관이 말을 잇는다. “오가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띠었고 전혀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유춘관은 이세민에게 안시성 분위기를 전하는 중이다. 안시성에 들어갔다가 나온 유춘관의 말을 들으려고 진막에 모인 장수들은 귀를 세우고 있다. 이세민이 쓴웃음을 짓고 물었다. “내 제의를 비웃더냐?” “아니올시다. 폐하.” 정색한 유춘관이 이세민을 보았다. “요동왕에 임명한다고 했더니 놀란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하지만 주위에 장수들이 많아서 속에 있는 말을 내놓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백제 장수는 어떻더냐?” “담로왕으로 봉한다고 했더니 담로 10군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놈이 욕심이 과한 놈이군.” 이세민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일부터 맹공을 하면 놈들이 다급해져서 내 제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예, 폐하.” “시간이 지나 기력이 떨어지면 요구조건이 더 내려가게 된다. 흥.” 이세민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요동왕? 담로왕? 어림없다.” 그 시각에 양만춘과 계백, 그리고 양국의 지휘부가 둘러앉아 다녀간 당 사신 이야기를 한다. “성안 동정을 살피러 온 것이야.” 양만춘이 말하자 장수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성안에 오면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장수 하나가 대답했다. “성안 분위기를 보고 오히려 사기가 꺾였을 것입니다.” “며칠 공격을 하고 나서 또 사신을 보낼 것입니다.” 다른 장수가 말했다. “지난 전쟁 때 수(隋)와 요동성 싸움에서 수 양제는 사신을 여덟 번이나 보냈습니다. 그때 성안 동향을 잘못 전했다고 사신으로 갔던 장수를 양제가 베어 죽인 일도 있었습니다.” “당황제의 후의에 감격했다고 했는지도 모르겠군.” 양만춘의 말에 장수들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 “이때 우리도 사신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양만춘이 계백을 보았다. “우리가 말씀이오?” “예, 우리는 성안 장졸과 주민을 설득시키겠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당군(唐軍)이 20리쯤 물러나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옳지.” 양만춘이 손바닥으로 무릎을 쳤다. “그러면 우리는 시간도 벌고 당군이 진용을 옮기는 실리까지 얻을 수가 있겠습니다.” “두번째는 속지 않겠지만 지금은 설마 하고 사신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묘안이오.” 고구려 장수들도 대부분 머리를 끄덕이거나 웃었다. 그때 고구려군 부장(副將) 한성위가 계백에게 물었다. “그런데 누가 사신으로 갑니까?” “내가 가지요.” 계백이 바로 대답했다. “내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고구려군 장수 우보성이 나섰다. 기마군 대장으로 5품 조의두대형 장군이다. 양만춘이 정색하고 계백을 보았다. “백제군 수장(首將)이 가셔도 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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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30 19:10

[더위 탈출, 문화체험] ④작은 도서관 - 시원한 도서관에서 마음껏 뛰놀자!

여름엔 아이들도 덥다. 그래도 뛰놀고 싶은 게 아이들이다. 땡볕에 땀 줄줄 흘릴 걱정 없이 신나게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곳이 있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 온 가족이 소리 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만화영화도 감상할 수 있는 곳, 밤에는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다 잠드는 곳. 바로 어린이 작은 도서관이다.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도서관일 것이라고 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이들의 천국으로 떠나보자. △놀이터, 캠프장, 학교도서관이 변한다 날이 너무 더워서 아이들 데리고 여름 휴가 왔어요. 공공 도서관인데 소리 내 책을 읽어줘도 눈치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에 책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습 분위기가 형성되고 시원하게 뛰놀 수도 있죠. 키즈 카페보다 편하고 좋아요. 지난 27일 전주 책마루 어린이 도서관. 양미란 씨는 세 자녀와 함께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막내가 의자를 끌고 부산하게 움직여도, 이 씨와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도 눈치 주는 사람은 없다. 기자의 등 뒤로는 부산한 발소리가 쿵쿵 지나갔다. 뛰어온 초등학생 5명이 독서 공간 뒤편의 달팽이 공간(구석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아지트)에 들어가 보드게임을 했다. 딱딱했던 도서관이 변하고 있다. 어른과 어린이로 나눠진 열람실에서 숨죽여 책을 읽던 곳에서 가족친구들과 책을 매개로 함께 즐기는 체험형 공간이 됐다. 김경희 책마루 어린이 도서관장은 도서관은 책을 통해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공간이라며,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니 일단 도서관으로 피서를 오라. 상상보다 매력적인 공간이기에 분명히 계속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방학 특집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주체적인 독서 습관을 기르기 위해 난 이 책을 읽을 거예요 목록을 작성하고 도서관 사서와 함께 실천한다. 8월 8일~10일 도서관에 모여 낭독을 하고, 8월 7일에는 생각놀이 과학미술 프로그램을 한다. 인기가 좋은 도서관에서 1박 2일 캠프도 8월 31일 진행한다. 매주 토요일에 하는 영화 상영도 주중까지 확대했다. △도서관 돌며 스탬프 받고 선물도 받자! 전주에는 책마루 어린이 도서관을 포함해 28개의 공립 작은 도서관이 있다. 전주시립도서관은 여름방학을 맞아 2018 전주독서대전과 연계해 작은 도서관 스탬프 투어를 하고 있다. 방문객들이 작은 도서관별로 준비한 미션을 수행하면 도장(스탬프)을 받는다. 3곳 이상 도장을 받으면 오는 9월 열리는 전주독서대전의 무료 체험권을 준다. 또 작은 도서관에서 한 번에 대출 가능한 책의 수도 10권으로 늘어난다. 미션은 각 도서관의 성격을 잘 드러내면서도 쉽다. 책마루 어린이 도서관은 책마루로 삼행시를 지으면 되고, 건지산 숲속 작은도서관은 나무 안아주기를 하면 된다. 장애인을 위한 열린점자 작은 도서관에서는 흰지팡이 들고 사진 찍기, 만화책이 많은 중산작은도서관에서는 캐릭터만화 그리기를 하면 된다. 투어는 9월 13일까지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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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현
  • 2018.07.30 19:10

[불멸의 백제] (146) 8장 안시성(安市城) ②

사신이 왔어? 되물은 양만춘이 옆에 앉은 계백을 보았다. 당황제 이세민이 보낸 사신이 성 밖에 있다는 것이다. 서문(西門)의 수문장이 이마의 땀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말했다. 예, 성주께 황제의 전갈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부상서라고 했습니다. 들여보내라. 양만춘이 웃으면서 지시했다. 이세민이 어떤 조건을 내놓는지 그것으로 그자의 용인술을 보겠다. 잠시 후에 안시성의 청에는 당의 사신으로 온 이부상서 유춘관이 중랑장 둘을 대동하고 들어섰다. 금박을 입힌 붉은 색 비단 예복을 입고 머리에 관모를 썼는데 풍채가 좋았다. 뒤를 따르는 중랑장 둘도 장군이어서 늠름하고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한걸음씩 갈지자로 걸어들어온 유춘관이 양만춘과 계백의 열 걸음쯤 앞에서 멈춰섰다. 청안은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1백평 쯤 되는 청에는 아름드리 기둥 좌우에 고구려, 백제 장수들이 갈라서 있었는데 가운데 선 왕의 사신 옆모습을 보는 자세다. 잠깐 정적이 덮여졌다. 이부상서 유춘관은 언변이 좋고 지모가 뛰어난 인물이다. 이세민이 현무문의 변을 일으켰을 때 계략을 짠 인물이기도 하다. 그때 유춘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당(大唐)의 사신 이부상서 유춘관이 안시성주를 뵙소. 양만춘과 계백은 앞쪽의 의자에 앉아있다. 사신 유춘관과 장수 둘은 서 있는 상황이다. 마치 상국(上國)에 문안인사차 온 조공국의 사신같은 꼴이다. 양만춘이 대답했다. 말하라. 양만춘은 고구려 서부(西部)의 성주다. 당의 이부상서는 6조의 우두머리 상서이니 최고위층 관리인 것이다. 순간 유춘관이 호흡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황제께서 안시성주 양만춘이 투항을 하면 고구려 서부를 식읍으로 하사하시고 대장군 겸 요동왕으로 봉하신다고 했소. 나를 요동왕으로? 되물은 양만춘이 눈을 크게 떴다. 상서, 그 말이 사실인가? 황제의 임명장을 드리겠소. 임명장까지 써주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천하 백성의 황제가 될 수 있겠소? 고구려를 정벌하지 않더라도 임명하신다고 말씀하셨소. 여기 백제군 장수도 와 계시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백제군 장수 계백은 백제 담로왕으로 임명하신다고 했소. 그 휘하 장수들도 합당한 직위를 하사하실 것이오. 굉장한 포상이다. 양만춘이 감동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내가 요동왕이 되다니, 조상의 은덕이 이제야 나한테 쏟아졌구나. 유춘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양만춘의 말이 진심인지 헷갈린 것이다. 그때 계백이 유춘관에게 물었다. 상서, 백제의 담로는 아직 정벌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나를 담로왕으로 봉할 수가 있단 말이오? 물론 그렇지만 고구려가 멸망하면 백제 담로도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담로가 22개니 그중 몇 개 군을 주시겠소? 난 10개는 받고 싶은데. 그것은. 그때 양만춘이 나섰다. 내 수하 장수들에게도 왕을 시켜주면 안시성을 드리지. 적어도 왕 5명은 더 있어야겠는데. 그때 참다못한 고구려 장수 하나가 웃음을 터뜨렸고 청 안은 웃음으로 덮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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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9 19:20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그 여름 숲길 - 한지선

숲길을 걷는 것은 마약과 같다. 어느 순간 숲에 들지 않으면 목마른 것처럼 갈증이 난다. 섬세한 활엽수들로 꽉 찬 숲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난다. 여름엔 태풍이 있고, 폭우가 쏟아지면 드센 물살이 넘어지고 뒤집어지며 아래로 아래로 내달리는 풍경. 숲도 태풍을 겪으면 아프고 상처받은 후에야 다시 고요해진다. 고요한 숲엔 깊은 자정의 한숨 같은 체취가 배어 있다. 그것들이 머금은 그리고 내뿜는 공기 속에 푹 젖으면 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마치 파도치는 바다를 앞에 두고 앉아 있으면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 녹음이 짙은 숲속에서는 나무 숲속에서 뿜어내는 방향성 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을 피톤치드라 하며, 나무가 자라는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내뿜는 물질로 자체에 살균, 살충,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며, 나무가 왕성하게 잘 자라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많이 발산하며, 사람이 피톤치드를 호흡하면 피부와 마음이 맑아져 안정을 가져오며. 백과사전엔 그 공기에 대하여 그렇게 쓰여 있었다. 숲, 피톤치드. 나는 도시와 시골집을 오가며 살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마당을 가꾸며, 일주일의 반을 지내는 시골집 작업실은 내장산이 눈앞에 버티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의 반 중 하루를 내장산 숲길을 걷는다. 유월 어느 오후, 씩씩하게 숲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인사를 했다. 늘 꿈꾸기는 했다. 이 숲길에서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그런 생각. 그러나 걸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스치는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다. 숲을 향유하기 위해서 숲의 소리와 냄새와 바람에 몸을 맡기고 그저 걷는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걷고 있는데 약간 먼 거리에 있던 나무 아래 벤치에서 누군가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서 깜짝 놀라 그 와중에 안경을 꺼내 쓰고 그에게 가까이 갔다. 가까이 가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바퀴가 초록색인 근사한 자전거를 손으로 잡고 서서 싱긋 웃고 있는 키가 훤칠한 꽃미남.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친근한 사람에 속하는 젊은 성직자이며, 언니의 제자인 그를 숲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는 예쁜 초록색 베네통 자전거를 끌고 내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오후가 저무는 시각이었다. 나의 코스 나머지를 자전거를 끌며 같이 걷고 되돌아서 숲길을 걸어 내려왔다. 숲길을 걷는 내내 무언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어폰을 꽂고 있던 나는 이어폰을 내렸고, 끝없이 단풍나무로 이어진 내장산 숲길을 걸었다. 왠지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는데 숲길 어딘가에 주차해 놓은 내 차 가까이 가서는 끊이지 않는 이야기로 어두워질 때까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직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고, 방학이 되어 내 작업실 가까운 정읍시의 집으로 와 있던 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숲으로 와 책을 읽다가 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별로 말을 나눠본 사이는 아니었다. 식구들하고 언니와 만났을 때 언제부턴가 그 옆에 그가 있었고, 몇 번 인사를 나눈 게 다였다. 그런데 무척 친근했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라도 할 수 있을 듯싶었다. 우리는 외로움과 그리움과 슬픔 같은 감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외로울 때 하는 행동에 대한 윤리적 잣대와 어쩌면 윤리와 상관없는 그들 감정에 대해 격론을 벌였다. 숨 쉬고 살아야 하는데 자꾸 숨을 참으라고 하는 것 같은 그 잣대라는 것의 잔인함에 대하여, 혹은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적 지표에 의한 행동양식은 진정한 것인가, 혹은 그냥 원하는 대로 하면 나쁜 것인가, 등등 여기서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그날 나눈 격론은 매우 현실적인 세태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도 다 겪고 있는,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의 굴레에 대한 얘기였다. 지나고 보니 그날 나눈 대화들은 불쑥 꺼낸 내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 그것은 오직 사랑뿐이다라고 나는 말했다. 코엘료의 책 <불륜> 뒤표지에 적혀 있는 말이었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의 언저리를 형성하고 있는 많은 감정들과 거미줄같이 얽혀 있는 줄과 그 거미줄에 걸려 헐떡이거나 죽거나 숨죽이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났고, 이윽고 어두워져서 그는 자전거를 타고 내려갔고 나는 내 차에 올랐다. 그리고 저녁에 아쉬운 이야기를 다시 나눠야 한다고 해서 저녁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계속했다. 결론은 없었다. 우리는 그냥 살아봐야 하고, 사는 것을 보면서 깨닫고 느끼고 고개를 저을 것이다. 우리는 빙수를 먹으면서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하듯 말했다. 아무튼 결론은 필요 없었다. 숲이 있었으므로. 어쨌든 살아봐야만 아는 것들이므로. 인간의 이야기들은 복잡하나 숲은 고요하다. 우리는 그런 격론은 아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워지기 전에 사랑의 다리가 있는 원적암 코스를 오르기로 했다. 숲이나 걷자고.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나는 더위를 심히 타는 사람이므로 입을 열면 안 되었고, 그저 묵묵히, 천천히 산을 올랐다. 여름에는 죽어도 산을 못 오르는 사람인데 중간쯤 가서야 그것이 생각났고, 그냥 내려가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다. 더워지기 시작하면 숲길도 걷기 힘들다. 그날이 그 여름의 숲길 걷기 마지막이었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폭우가 내린 후 거친 물살을 보기 위해 달려갔고, 장마가 끝나면 숲에 들기 어려울 만큼 더웠으므로 가지 못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될 무렵, 그는 오후가 되면 나의 작업실로 와서 노을을 보러 다녔다. 우리는 오래된 북면천의 둑길을 걸으면서 날마다 노을을 마중하러 나갔다. 칠월부터 팔월의 반을 넘기면서 노을을 실컷 보러 다녔다고 할까. 때론 모항의 언덕 위에서, 적벽까지 노을을 보기 위해 차를 몰고 다녔다. 그해 여름이 그렇게 끝났다. 구월은 다시 숲이 소곤거리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숲은 고요하지만 늘 속삭임이 있었다. 여름의 뜨거운 양광을 담뿍 받은 단풍나무들은 조용히 여러 가지 감정처럼 각기 다른 색들을 띠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감정이 미묘하듯 숲은 미묘하고, 숲길을 걷는 것은 뭔가 평화롭다. 내적인 평화가 무엇인지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고요한 아름다움이라고 느낀다. 숲이 그렇다. 학기가 시작되어 학교로 돌아갔던 그는 가을에 어쩌다 자전거를 갖고 숲길에 나타났다. 집에 올 때면 그도 늘 숲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탔으므로. 우리는 몇 번 더 같이 걷던 그 숲길에서 코엘료의 그 말에 대해 언급하였고, 그는 남녀 간의 사랑 말고, 더 큰 사랑에 대해 논하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사랑에 대하여 얘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부딪쳤고, 격론을 벌이곤 했으나 결론은 없었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그것이 결론이었다. 혹은 결론은 필요 없었다. 우리는 숲길을 걸었고, 그것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나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나 향긋한 나무 향기나 바람에 날리는 풀덤불처럼 우리의 이야기들은 스쳐 지나갔고, 또 언젠가 스쳐 올 것이었다. 숲을 스쳐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한지선(소설가) * 장편소설 『그녀는 강을 따라갔다』, 『여름비 지나간 후』, 소설집 『그때 깊은 밤에』, 『여섯 달의, 붉은』이 있다. 9인테마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과 『마지막 식사』를 냈다. 제1회 전북소설문학상과 제2회 작가의눈작품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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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7 14:45

[안도의 알쏭달쏭 우리말 어원] (100)번개 - '번쩍거리다'에 접미사 '게'가 붙여진 말

번개는 하늘에 나타나는 전기적인 현상을 말한다. 사계절 내내 일어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름철에 관측된다. 천둥이 청각적인 요소를 반영한 것이라면, 번개는 시각적인 요소를 의미하고 있다. 영어로는 ‘thunder’와 ‘lightning’으로 구별된다. 번개의 어원은 어디서 왔을까? 먼저 ‘번’ 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눈치 빠른 사람은 ‘번쩍거리다’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번개의 ‘번’ 자는 ‘번쩍거리다’의 맨 앞 자를 따온 것이다. 일부에서는 ‘번’ 자가 ‘밝다’에서 왔다고 보고도 있으나, 여러 정황상 ‘번쩍거리다’에서 온 것이 맞는 것으로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따라서 ‘번’ 자는 명사나, 형용사가 아닌 동사 어간에서 온 말이다. ‘개’가 붙여진 사연도 재미있다. 원래는 ‘개’가 아니고 18세기까지는 ‘게’로 적었다. 답을 미리 말하면 ‘개’ 자는 접미사다. 혼자서는 쓰이지 못하고 앞말에 붙여서 쓰는 말이다. 지우개 등을 생각하면 바로 이해가 간다. 지우개는 ‘지우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에는 이런 식으로 ‘게’나 ‘개’ 자가 붙는 것이 무척 많다. 언뜻 생각해도 지게, 덮개 등이 있다. ‘지는 것’, ‘덮는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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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26 19:40

자연법칙에 따른 생사의 순환을 노래하다

‘목련 꽃길 같이 갈 수 없어서/ 꽃의 속도로 피어날 수 없어서/ 내가 나를 겪는 수천 일 동안 춥고 어두웠다…서로 가는 길 달라도 극점은 같다는 목련꽃말/ 저 수두룩 은백의 문장들 무늬들 물결들// 눈부셔/ 얼어붙은 내 등에 퍽 퍽 꽃불이 인다/ 타오르는 감각들/ 푸르게 확장되는 길/ 발끝이 환해진다’(표제작 ‘꽃의 고도’중) 사물을 바라보는 신선한 시각이 돋보이는 심옥남 시인이 신간 <꽃의 고도>(문학의전당)를 냈다. 허공, 소멸, 이중성 등 일상을 변주하는 시인은 주체적인 주제로 시적 순간을 맞이한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자연법칙에 따른 생사의 순환을 형상화한 시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심 시인만의 시각과 독창적인 시적 이미지들로 주제를 표현한다. 시인에게 허공에서 맴도는 침묵은 올록볼록 엠보싱(시 ‘표면장력’중)이고, 여린 가지 끝을 뚫고 올라오는 새 잎은 단단한 허공을 뚫는 푸른 송곳(시 ‘푸른 송곳’중)이다. 정옥상 원광대 교수(시인)는 “심 시인의 상상력은 현실 속 사물을 다양하게 변형시키기도 하고 현실에 없는 대상을 창조하기도 한다”며 “그의 시적 몽상이 만들어낸 신선한 시적 이미지는 독자들을 경이로운 세계로 초대한다”고 말했다. 심옥남 작가는 임실에서 태어나 전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8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세상, 너에게>, <나비돛>이 있다. 전북시인상, 해양문학상, 신석정촛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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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현
  • 2018.07.2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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