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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이 둘 생겼다. 계백이 여색(女色)을 탐한다면 아리타, 마사시, 이또의 처첩을 당장에 10여명 내실로 몰아넣을 수도 있지만 절제한 것이 둘이다. 계백은 화청과 윤진, 백용문 등 수하 중신(重臣)들에게 나머지 처첩들을 내실로 데려가도록 했다. 모두 입이 귀 밑까지 찢어져서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계백 내궁의 시녀장이 된 마사코가 주군(主君)의 처첩이 옹색하다고 불평을 했지만 대놓고 나서지는 못했다. 그날 밤에는 계백이 하루에하고 첫날밤을 보냈다. 아리타의 측실이었던 하루에는 처음에는 수줍어서 몸이 나무토막처럼 이리저리 건드리는대로 흔들리더니 곧 몸이 뜨거워지면서 매달렸다. 흐려진 눈으로 탄성을 내지르는 하루에를 보면서 계백은 문득 무상한 인생을 떠올렸다. 하루에는 아리타의 품에 안겼을 때도 이렇게 열락의 세상으로 함께 빠졌을 것이었다. 계백은 하루에를 힘껏 끌어안았다. 이것이 전시(戰時)의 인생이다. 역사가 승자의 몫인 것이나 같다. 내 품에 안겨있는 한 만족시켜 주리라. 내가 하루에를 빼앗길 때는 내가 패했을 때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다음날 아침, 하루에의 시중을 받으면서 아침을 먹던 계백이 물었다. 네 동생 이름이 무엇이냐? 예, 고노라고 합니다. 스무살이라고 했지? 예, 나리. 시선이 마주치자 하루에게 몸을 조금 비틀었다. 눈밑이 붉어졌고 얼굴은 상기되었다. 몸을 섞은 남자를 향한 교태다. 뜨거운 밤을 떠올린 하루에의 몸이 간지러워진 것이다. 병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계백이 묻자 하루에의 두 눈이 더 반짝였다. 예, 나리. 검술 수업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합니다. 데려와서 위사장을 만나라고 해라. 예, 나리. 하루에의 눈에 금방 눈물이 고이더니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위사대에 뽑히면 3석의 녹봉을 받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공을 세우면 녹봉이 늘어난다. 하루에의 부친이 녹봉 20석을 받는 전상자였으니 살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청에 나갔을 때 마사시성 성주가 된 윤진한테서 전령이 와 있었다. 전령이 보고했다. 주군. 옆쪽 타카모리 영지의 중신 산요가 보낸 전령이 왔었습니다. 백제인 전령의 거침없는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지난번에 마사시와 협의를 해서 카마에강(江) 북쪽 영지를 가져가기로 한 바, 군사를 보내 접수할 테니 양해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계백이 지그시 전령을 보았다. 타카모리는 마사시 영지 옆쪽으로 25만석의 영지를 가진 호족이다. 타카모리의 조상도 백제계여서 매년 백제식 제사를 지내고 조상묘도 백제식으로 꾸며서 서쪽을 향해 조성해 놓았지만 백제방과는 소원한 관계다. 마사시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영지 다툼이 많았는데 카마에강 북쪽에 있는 5천석 정도의 영지를 타카모리가 가져가기로 합의를 한 것이다. 청안의 중신들이 계백을 주시했고 초조해진 전령은 입안의 침을 삼켰다. 타카모리는 몇 대째 영주냐? 불쑥 계백이 묻자 대답은 옆에 앉아있던 노신(老臣) 사다케가 했다. 이또의 중신이었던 사다케가 내력을 훤하게 안다. 예, 현(現) 영주 타카모리 이에하치가 9대가 됩니다. 시조가 백제에서 넘어온 진(眞)씨 성의 진종님이셨지요. 진씨는 한성에 도읍했던 백제시대 귀족이다.
전북작가회의가 시상하는 제9회 작가의 눈 작품상 수상자로 곽병창 극작가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희곡 억울한 남자. 의료사고를 낸 의사 최 교수의 폭력(갑질)에 복수하려는 복동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가진 자 혹은 전문인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약자를 짓밟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갑을 향한 을의 저항을 보여준다. 김종필복효근김병용 심사위원은 문학이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다고 평했다. 곽 극작가는 고등학교 이후 글로 상을 받는 일은 처음이라며 처음 태어난 망아지처럼 기쁘다. 천방지축 더 뛰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곽 극작가는 전북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을, 연극반에서 연극을 배웠다. 창작극회 대표를 지냈다.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학과에서 극작을 가르치고 있다. 시상식은 내년 2월 전북작가회의 총회에서 열린다. 한편 작가의 눈 작품상은 2011년 전북작가회의 작품집 작가의 눈을 활성화하기 위해 제정했다. 매년 그 해 실린 작품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선정한다.
20세기 가장 훌륭한 문화적 창조물이라는 공영방송의 이념과 제도의 원형을 BBC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는 작업.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정용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미디어 공론장과 BBC 100년의 신화>를 펴내며 이렇게 말했다. 저자는 미디어 매체가 신문에서 방송, 인터넷으로 바뀌었지만, 미디어의 철학, 이념과 제도는 역사 속에서 뚜렷한 흔적과 교훈을 남긴다고 말한다. 특히 군사정권의 후견주의 때문에 우리의 공영방송이 왜곡되었기 때문에 선진적이고, 이념형을 제시한 BBC의 역사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책에서는 영국 BBC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을 통해 BBC적 방향성의 한계를 짚어보고 공영방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에서는 BBC 역사연구 경향과 초창기 영국과 미국의 방송이념을 비교분석했고, 제2부에서는 BBC의 역사와 제도를 BBC 거버넌스와 지역방송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제3부에서는 BBC 개혁론을 다루었다. 책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방송은 공영방송이고, 공영방송은 곧 BBC라는 서부유럽적, 영국적인 방향성을 지니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한국공영방송은 다원적인 개혁 지향성을 상실했다는 것. 저자는 한국의 공영방송이 BBC를 이상화해 추종하기보다는, 한국적 상황에 부응하는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용준 교수는 보도지침을 폭로한 <말> 지의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서 간사로 일하고, 언론정보학회의 전신인 한국사회언론연구회를 조직해 학술운동을 하는 것도 시대적 사명이라고 여겼다. 전북대학교에 근무하면서 디지털 공익성과 지역주의 같은 방송의 근본 철학에 몰두하면서, 최근에는 BBC 역사에 흠뻑 빠져있다. 앞으로도 BBC 같은 자유주의 공영방송뿐만 아니라 독일과 스웨덴의 사민주의 공영방송, 이탈리아, 스페인의 후견주의 공영방송의 역사 연구에 매진할 예정이다. 한편, 정용준 교수는 이 책, <미디어 공론장과 BBC 100년의 신화>를 통해 ㈔한국방송학회가 주는 제17회 방송학회 학술상 저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원오 시인과 이현정 시인이 각각 첫 시집을 펴냈다. 이원오 시인의 <시간의 유배>(시와 소금)에는 전봉준정약전허난설헌매창윤선도 등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시인은 제1부 남녘, 2부 북녘, 3부 해협, 4부 생명에 걸친 70편의 작품을 통해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서정적으로 되살렸다. 전기철 숭의여대 교수는 작품해설을 통해 그의 관심사는 역사의 시화나 시의 역사화가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에 있다며 절박한 역사적 순간 속의 인물을 시적으로 자아화한다고 했다. 이현정 시인은 지난 10여 년 동안 써 모은 시를 묶어 <가을비망록>(이랑과이삭)을 내놨다. 시인은 무주의 전원 풍경과 사람들의 순박한 삶을 질감 좋고 청결한 언어로 그려냈다. 시집은 제1부 물음표, 2부 이륙 비행, 3부 아버지의 봄, 4부 해마와 색소폰, 5부 해변의 연가, 6부 숨바꼭질로 구성됐다. 이운룡 시인은 시평을 통해 함부로 가볍게 자아 만족에 치우쳐 방심하지 않고 시적 진실성과 탐구심이 시의 깊이와 무게와 감동을 전해준다며 눈 밖으로 밀쳐내 버릴만한 시가 없다고 찬사를 보냈다. 장수 출신인 이원오 시인은 지난 2014년 <시와 소금>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현정 시인은 2005년 <한올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한국문인협회전북문인협회전북시인협회열린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군산지역 문인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제1회 청암문학상 수상자로 김정수 시인이 선정됐다. 김정수 시인은 서정적인 바탕 위에 그늘진 사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활동을 꾸준하게 이어오며 군산지역 문단의 버팀목이 되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정수 시인은 시인은 오로지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신념으로 글을 쓰려고했고 부족하지만 나름의 체취와 언어로 지역의 작은 소리들을 담아내려고 했다며 이 문학상은 더욱 정진하라는 채찍의 소리로 받아들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부안이 고향인 김정수 시인은 군산문인협회 수석부회장으로 <전북문학>, <군산문학>, <무등문학>과 30회에 이르는 <석조동인지>를 통해 꾸준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시집으로는 <김정수 시집 나왔습니다>(도서출판 솔)가 있다. 시상식은 오는 23일 군산시 나운동 위드스푼에서 열린다. 한편 청암문학상은 김철규 시인이 그의 아호를 따서 제정했으며, 매년 군산 거주 또는 군산 출신 문인 1명을 선정한다.
아야메에게 술상을 봐 오라고 했더니 우물쭈물하면서 계백에게 물었다. 하루에님께 술 시중을 들게 할까요? 너희들 둘이 같이 시중들어라. 대번에 그렇게 말했을 때 아야메는 방긋 웃었고 하루에는 수줍은 듯 고개를 더 떨구었다. 곧 시녀들이 술상을 들고 왔고 아야메와 하루에가 좌우에서 술 시중을 든다. 노회한 시녀장 마사코는 잔소리 들을 것이 싫은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내궁 안은 조용하다. 외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영주의 거처인 것이다. 먼저 아야메가 따라준 술잔을 들고 계백이 하루에에게 물었다. 네가 아리타의 첩이라는 것만 알았다. 네 내력을 네 입으로 말해보아라. 계백이 추상같이 말을 이었다. 내가 왜국에 와서 내가 죽인 반역도의 첩들이나 거느린 신세가 되었는데 너희들 또한 팔자가 기구하지 않느냐? 어디, 네 지아비를 죽인 원수의 품에 안기는 신세도 좋다고 한 년이니 거침없이 말해도 들어주마. 그야말로 신라군 진중으로 칼을 휘두르며 돌입하는 계백의 기상이 입담으로 옮겨졌다. 촌철살인(寸鐵殺人), 아야메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하루에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계백을 보았다. 맑은 두 눈이 반짝이고 있다. 눈에 물기가 많으면 등빛을 받아 더 반짝인다. 곧 굳게 닫혔던 입이 열렸다. 가난한 하급 무사의 딸로 지내다 우연히 아리타님의 눈에 띄어 첩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아리타님이 죽고 또 우연히 영주님께 선택되었는데 제가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렷한 목소리에 막히지도 않는다. 계백을 응시한 두 눈이 두어 번 깜빡였을 뿐 두려운 기색도 없다. 아야메는 숨도 죽인 채 하루에를 응시한 채 굳어져 있고 다시 말이 이어졌다. 제가 거부하면 20석 녹봉을 받지만 전쟁에서 팔 하나를 잃고 사시는 아버지가 당장 녹봉을 내놓아야 할 것이며 20살짜리 남동생은 병사로 뽑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세 식구의 목숨이 저에게 달렸습니다. 그래서 어떤 놈이 왔어도 그놈 품에 안기겠다는 말이냐? 예, 장군. 나를 주군이라고 부르지 않는구나, 이년. 계백이 낮게 꾸짖었을 때 처음으로 하루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음 순간 눈 주위가 붉어지더니 하루에가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었다. 잘못되었습니다. 학문은 어디까지 배웠느냐? 소토쿠 태자께서 세우신 호오류사에서 경전과 백제 박사들이 가져온 한서를 읽고 배웠습니다. 계백이 한 모금에 술을 삼키고는 하루에에게 빈 잔을 내밀었다. 술을 따라라. 얼굴을 붉힌 하루에가 술병을 집다가 옆쪽 안주 그릇을 건드렸다. 아야메가 얼른 그릇을 제대로 놓는다. 술을 따르는 하루에의 손이 떨리는 바람에 술병 주둥이가 흔들렸다. 이년이 간덩이가 큰 줄 알았더니 좁쌀만한 년이군. 혀를 찬 계백이 병 주둥이를 잡아 술을 채웠을 때 하루에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술잔을 든 계백이 아야메와 하루에를 번갈아 보았다. 너희들 둘이 기둥이 되어서 내실의 기율을 잡아라. 둘은 숨을 죽였고 계백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대륙에서 전쟁을 겪은 사람이다. 너희들의 마음을 왜 모르겠느냐? 한 모금에 술을 삼킨 계백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산 자가 이긴다.
최명희문학관이 11월 4일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꽃심 표어 창작대회를 연다. 꽃심은 소설가 최명희(1947~1998) 작가가 소설 <혼불>에서 고향 전주를 세월이 가도 결코 버릴 수 없는 꿈의 꽃심을 지닌 땅으로 표현한데에서 비롯된 말이다. 최명희 작가가 어려서부터 듣고 쓰던 전라도 사투리의 토양에서 나온 이 단어에는 전주 사람들의 대동과 풍류, 올곧음과 창신의 정신이 담겨있다. 전주시는 지난 2016년 6월 전주정신을 꽃심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꽃심의 정신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이번 창작대회는 전주시가 주최하고 전주대학교 온다라인문학센터(센터장 백진우)와 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이 주관한다. 참가를 원하는 학생은 11월 2일까지 학교학년이름연락처를 전자우편(jjondara@naver.com)으로 보내면 된다. 행사 당일인 4일 오전 11시부터 현장 신청도 가능하다. 문의 063-220-32013
다음날 마사시 영지까지 돌아보고 난 계백은 아리타성을 거성(居城)으로 삼았다. 아리타성은 계백성(階白城)으로 바뀌었고, 영지 이름이 계백으로 되었다. 계백은 나솔 화청과 윤진, 백용문을 각각 1만석 녹봉을 받는 중신(重臣)으로 임명하여 영지를 나눠 주었는데, 화청은 이또의 거성(居城)을, 윤진은 마사시의 거성을 지키는 성주(城主)를 겸임시켰다. 하도리는 계백 친위군의 대장이며 위사장을 겸하도록 하고 녹봉 1천석을 주었으니 가신(家臣)까지 거느린 소용주가 되었다. 논공행상을 마친 계백에게 이제 측근이 된 사다케가 찾아온 것은 저녁무렵이다. 사다케는 계백령의 집사가 되어서 계백성으로 옮겨온 것이다. 주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청 앞에 엎드린 사다케가 낮게 말했다. 주위를 물리쳐 주십시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손짓으로 청에 있던 가신들을 물리쳤다. 청에 둘이 남았을 때 사다케가 계백을 보았다. 주군, 이또의 측실이었던 아야메님을 이곳으로 부르시지요. 계백은 시선만 주었고 사다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곳 아리타의 처첩 중에서 나가지 않고 남아있는 첩을 두명, 마사시성에서도 두명을 골라 놓았습니다. 주군께서 계시는 거성의 내궁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올시다. 이것이 지사역 중신(重臣)이 할 일이기는 하다. 그때 사다케가 계백을 보았다. 이또의 시녀장이 공평하고 일을 잘합니다. 주군을 따라 이곳과 마사시 거성에 가서 내궁을 둘러보고 조처한 것입니다. 이름이 마사코입니다. 사다케가 시켰을 것이다. 며칠전 아야메를 데려온 늙은 시녀를 말한다. 마사코를 시녀장으로 임명하시지요. 알았다. 내궁의 일은 마사코에게 맡기면 되실 것입니다. 계백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사비도성에 있는 아내 고화와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가족을 이곳까지 부를 수는 없다. 왜국 영주는 왜국 왕실과 백제방의 기반을 더 굳히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언제라도 대왕이 부르시면 귀국을 해야만 한다. 그날밤 계백이 침소에 들어섰을 때 시녀장 마사코가 시녀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사녀들이 계백의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돕는다. 뒤에 지켜서 있던 마사코가 입을 열었다. 주군, 오늘밤에는 이곳 아리타의 측실이었던 하루에님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계백이 몸을 돌려 마사코를 보았다. 내가 남의 과부만 데리고 잔단 말이냐? 더구나 내손에 죽은 놈들의 처첩 아니냐? 목소리는 낮았지만 놀란 시녀들이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늙은 마사코는 시선만 내렸을 뿐 위축된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이 관례가 그렇습니다. 내가 쫓아내면 자결을 할까? 오갈 데가 없으니 그럴 것 같습니다. 하루에가 누구냐? 아리타의 다섯 번째 측실로 제가 직접 뵙고 골랐습니다. 계백이 침상 옆의 의자에 앉았다. 뭘 보고 골랐는지 말해라. 예, 주군. 두손을 모은 마사코가 거침없이 말했다. 먼저 의향을 묻고 나서 용모와 성품, 소양과 근본을 알아보았습니다. 영주의 측실이 된 만큼 모두 뛰어났지만 하루에님은 주군의 첩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때 계백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마사코, 네가 내궁의 질서를 잘 잡았다. 그러나 오늘으 내가 쉬겠다.
정읍문학회(회장 류승훈)가 주관한 제6회 정읍사문학상 시상식이 지난 26일 정읍시청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은 시부문 내장산을 출품한 조우리(35전남 순천) 씨가, 우수상은 시부문 녹두꽃을 출품한 신청림(59전주) 씨가 각각 수상했다. 제6회 정읍사문학상 공모는 지난 6월 3개월간 진행됐으며, 전국에서 시 250여 편과 수필 30여편이 접수됐다. 이운룡 심사위원장은 심사평에서 조우리 씨의 시 내장산은 시적 호흡이 거침없이 길고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평했고 신청림 씨의 시 녹두꽃은 시적 형상화를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여 우수작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우리 씨는 그림자도 들어있고 바람도 울리고 있는 그 너머에서 덜컥 수상소식을 듣게 되었다며 먹먹한 하늘을 핑계 삼아 구절초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아름다운 정읍의 기운을 받아 더욱 흔들리며 글을 쓰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신청림 씨는 시인의 존재와 사명은 시대의 괴로움을 함께하며,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데 있을 것이다며 앞으로 조금씩 시적 역량을 길러서 성숙한 시인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수필가 고재흠 씨가 제4회 부안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문인협회 부안지부(지부장 김영렬)가 주최하는 제4회 부안문학상 시상식 및 <부안문학> 제24집 출판기념회가 지난 26일 부안컨벤션웨딩홀에서 열렸다. 부안문학상 심사위원인 김용옥 시인수필가는 고재흠 수필가의 수필집 <대자연의 합주>는 등단 16년 만에 엮은 두 번째 글 집으로 노익장의 자서전 같다. 그의 고향 부안 땅 청림리에 대한 사랑과 한국동란에 얽힌 체험기 등에는 인생이 무르녹아 있다며 그의 글에는 역사성, 문화성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음은 물론, 인생을 정리하는 내면의식을 진솔한 사색의 목소리로 나긋나긋 들려준다고 찬사를 보냈다. 고재흠 씨는 글을 쓴다는 것은 가파르고 험난한 길이며 자드락길을 숨차도록 오르는 것처럼 고통이 따른다고 밝히고 그래도 사는 날까지 펜을 놓지 않고 창작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재흠 씨는 2000년 월간 <문학공간>을 통해 등단했으며, 수필집 <초록빛 추억>과 <대자연의 합주>을 펴냈다. 한국문협전북문협전북수필행촌수필부안문협미래문학영호남수필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행촌수필문학회장과 한국신문학인협회 전북지회장을 역임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부안문협 김형철 시인의 자서전 <동초의 인생과 문학> 출판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계백이 아리타의 거성(居城)에 입성했을 때는 오후 신시(4시)가 되어갈 무렵이다. 아리타의 영지는 6만5천석, 계백이 차지한 3개 영지 중 가장 컸고 성(城)도 규모가 컸다. 안에 5층 누각까지 세워져있어서 볼만 했다. 영주는 영지 안에서는 절대군주다. 가신(家臣)이 곧 신하요, 사병(私兵)이 군사요, 주민은 백성이니 작은 왕국이나 같다. 이곳에서는 선발대로 온 하도리의 지휘로 가신들이 모여 있었는데 아리타의 처첩들까지 모두 대기하고 있다. 청으로 들어선 계백에게 아리타의 집사이며 중신인 고바야시(小林)가 보고했다. 500석 이상 가신이 45명이며 그중 6명이 이번 전쟁 때 주군과 함께 사망했으며 남은 39명 중 7명이 가솔과 함께 영지를 떠난다고 합니다. 새로 오신 주군께서 받아들여 주옵소서. 고바야시는 60세, 6천석의 봉록을 받고 있었는데 아리타를 4대째 주군으로 모셔왔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고바야시가 말을 이었다. 이또 영지에서는 중신 사다케가 그대로 집사로 머문다고 들었으나 저, 고바야시는 가솔과 함께 떠나기로 했습니다. 허락해주시기를. 고바야시가 두 손을 청 바닥에 짚고 계백을 보았다. 백발에 주름진 얼굴이었지만 눈빛이 맑았고 체격도 크다. 뒤에 엎드린 가신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때 계백이 말했다. 네가 모신 주군 아리타는 뒤쪽의 효고 영지를 탐내고 있었더구나. 그래서 이번에 신라소와의 거사가 성공하여 백제방이 무력해지고 왕실의 권위가 약해졌을 때 섭정께 부탁하여 효고의 영지 10만 석을 차지할 계획이었지? 계백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청안은 얼음이 덮여진 것 같다. 계백의 좌우에는 화청과 윤건 등 장수들이 벌려 앉아 있어서 마치 포로를 심문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그때 고바야시가 머리를 들고 계백을 보았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장춘몽이 되었습니다. 너희들 가신들은 한 몸이 되어서 아리타를 모셨느냐? 아리타는 무장이 아닙니다. 한 번도 앞장서서 칼을 휘두른 적이 없습니다. 고바야시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같이 죽은 가신 오쿠치와 키타고가 주동이 되어 아리타를 선동했기 때문입니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떠나라. 감사합니다. 그러나. 계백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남은 가신들의 봉록도 일단 모두 몰수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조정을 할 테니 모두 성 안에서 대기하라. 추상같은 명령이다. 이제 아리타의 가신 전부는 성 안에 구금되어 심사를 받은 후에 처리가 결정될 것이었다. 그때 하도리가 소리쳤다. 하도리는 이제 영주의 선봉장 겸 위사장이다. 모두 일어서라! 하도리의 인솔로 가신들이 물러 나갔을 때 계백이 둘러앉은 장수들에게 말했다. 이보게, 그대들은 나를 따라왔다가 가신(家臣)이 될 형편이 되었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때 화청이 짧게 웃었는데 흰 수염 속의 이가 드러났다. 가신이 되었다가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면 다시 본래의 직위로 돌아가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더니 덧붙였다. 소장은 가신으로 주군을 모시리다.
휴먼스타코칭연구소 박은선 대표가 27일 오후 5시 전주 오즈하우스 명품관에서 <코칭으로 나를 빛내라> 출판기념회를 연다. 이 책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묻고, 코칭의 비밀로 답하는 자기계발서. 박 대표는 그녀 인생의 갈림길에서 코칭을 만났고, 코칭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근본적임 힘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이어 코칭은 단순하지만은 않다며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열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1장 生. 구사일생으로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2장 死. 필사즉생으로 다시 태어나다, 3장 苦. 고진감래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다, 4장 樂. 동생동락으로 함께 여는 삶을 즐기다로 구성되어 있다. 박 대표는 전주대 국제경영학과 석사, 남서울대 코칭학과 박사과정을 거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예계간지 <문예연구> 2018년 가을호(통권 제98호)에서는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은 천재시인 오장환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세 편의 평론과 2018 제5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등을 특집으로 꾸며 발간했다. 류경동 시인, 김청우 문학평론가, 정민구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등이 각각 근원공간의 상실과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 오장환 시와 도시, 그리고 쓰기의 공간, 오장환 재-구축 등을 기고했다. 문예연구와 다층, 리토피아, 시와정신, 열린시학, 미네르바, 시와사람 등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차현각, 반연희, 정령, 구지혜, 구애영, 임화지, 서승현 시인의 시들도 수록됐다. 전북 지역의 대표적인 문인을 선정하고 문학 세계를 조명하는 우리 시대 우리 작가 기획에서는 차성환 시인이 순례로서의 시적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류근조 시인의 시 세계를 조명했다. 이밖에도 이번 호에서는 이운룡, 윤용선, 서범석, 이만식, 홍수연 등 시인 24명의 신작시와 현순영 평론가의 함께 살기의 불가능성과 가능성, 김정배 교수의 심리적 디아스포라, 그 감정의 질곡들, 신종곤 교수의 속죄의 진정한 방식 등의 평론도 만나볼 수 있다.
아야메는 계백이 옷을 벗기자 움츠리고는 있었어도 팔을 들고 허리를 올려 금방 알몸이 되었다. 알몸이 된 계백이 아야메를 안았을 때 놀라 숨이 들이켜졌다. 아야메의 몸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숨도 가빠져 있었고 안았더니 금방 사지를 폈다. 받아들일 자세가 된 것이다. 자시(12시)가 되어 가는 내궁 안은 간간히 순시병의 발자욱 소리만 들릴 뿐이다. 곧 방안에서 가쁜 숨소리에 섞인 아야메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를 물어서 신음이 코로 뿜어져 나오더니 곧 참지 못하고 가쁜 숨과 함께 입에서 비명 같은 탄성이 울린다. 계백은 망설이지도 서두르지도 않았다. 품에 안긴 뜨겁고, 땀이 배어 미끈거리며 문어처럼 꿈틀거리면서 엉키는 아야메를 이끌고 달려가고 있다. 때로는 아야메를 쉬게 하고, 또 때로는 아야메의 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더 뜨거운 곳으로 몰아간다. 이윽고 아야메가 사지를 늘어뜨리면서 절규했다. 너무 소리가 커서 계백이 손바닥으로 입을 막을 정도였다. 다음 순간 아야메가 계백의 품에 안겨 의식을 잃었다. 뜨겁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작은 새가 품안에 든 것 같았다. 그렇다. 아야메는 작고 가늘었지만 부드러웠고 뜨거웠다. 뜨거운 샘에서는 생명수가 넘쳐흘렀으며 계백의 목을 감싸 안은 두 팔은 의식을 잃고 나서도 풀리지 않았다. 다음날 눈을 뜬 계백은 침상 옆쪽에 아야메가 단정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머리도 말끔하게 빗었고 옷도 빈틈없이 마무리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가 시선이 마주친 순간에 머리를 숙여 절을 했다. 일어나셨습니까? 가늘고 여린 목소리, 그러나 여운이 있어서 분명하게 고막을 울린다. 아야메의 말을 처음 듣는 터라 계백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어젯밤 그 긴 시간 동안 열락의 세상에 빠져 있었지만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신음과 탄성, 비명 같은 쾌락의 울부짖음만 울렸을 뿐이다. 계백의 웃음을 본 순간 아야메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눈꼬리가 조금 솟은 두 눈, 곧고 가는 콧날에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 얼굴형은 계란형이다. 그때 계백이 물었다. 넌 그동안 극락에 몇 번이나 다녀왔느냐? 처음입니다. 빨개진 얼굴을 그대로 든 아야메가 습기에 젖어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몸을 일으키자 아야메가 준비해 놓은 옷을 입혀 주기 시작했다. 바지를 입히고 저고리에 팔을 꿰어 주면서 아야메의 숨결이 이마에도 느껴지고 뺨에도 닿았다. 그때 계백이 아야메의 허리를 감아 안으면서 물었다. 너, 어젯밤 여기서 쫓겨났을 때 죽으려고 했느냐? 예, 영주님. 바로 대답한 아야메가 허리를 계백의 몸에 붙이면서 처음으로 웃었다.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지면서 입끝도 올라갔다. 귀여운 모습이다. 침실을 나온 계백이 위사들과 함께 청에 들어섰을 때는 오전 진시(8시) 무렵이다. 기다리고 있던 화청과 윤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아리타와 마사시 영지까지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3개 영지를 통합한 16만석의 영주가 되었으니 왕궁이 위치한 아스카 주변에서는 제법 큰 영주인 것이다. 앞장을 서서 청을 나온 계백이 화청과 윤진을 둘러보며 말했다. 왜국 영지를 대륙의 담로처럼 백제가 다스리는 것이 낫겠소. 대륙의 담로는 곧 백제의 직할령이다.
김익두 전북대 국문과 교수와 조선시대 서민 명필인 창암 이삼만(1770~1847) 선생과의 인연은 약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70년대 초반, 서정주 시인의 시 전주우거를 읽고 창암 선생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 창암의 묘소를 찾은 이후 본격적으로 창암의 친필 유묵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4년 창암에 관한 자료를 책으로 엮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 관련 책자와 자료를 재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묵을 수집고증했다. 그 책이 2005년 발간한 <창암 이삼만 선생 유묵첩>이다. 이로부터 13년이 흐른 뒤, 김 교수는 창암 선생에 관한 연구서 <조선 명필 창암 이삼만-민족서도의 길을 열다>를 내놓았다. 창암 선생에 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김 교수는 창암 서도와 서예 특징에 관한 몇몇 연구 외에 이렇다 할 본격적인 창암 연구서가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면서 이런 현실을 그저 우두커니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하게 됐다면서 집필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창암 선생은 우리나라 서도를 중국 서도의 그늘에서 벗어나도록 해 중국 서도와는 다른 한국 서도, 곧 우리 민족서도의 지평을 크게 드높이신 분이라면서 창암 서도 예술에 관한 참뜻과 가치가 뒤늦게나마 세상에 널리 제대로 알려지는 하나의 작은 계기가 되길 바라고 빌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창암 선생의 일생을 선대와 가계, 가족 관계, 청장년과 노년 시절, 서거와 사후 등 평전식으로 자세히 기술했다. 창암 서도의 계보, 창암 서도와 서예의 역사적 의의가치도 풀어 설명했다. 말미에는 현관주련, 비문석각, 서첩 글씨, 병풍서 등 창암의 주요 유묵 작품을 싣고, 이에 대한 감상과 평가를 덧붙이는 형식으로 창암의 유묵 세계를 살펴봤다. 특히 그동안 설왕설래가 오갔던 창암 선생의 출생설에 관해서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정읍 출생설과 전주 출생설을 정읍 출생설로 확증하는 논증을 전개해 눈길을 끈다.
전주에서 전업작가로 살면서 지방 사람에게 힘을 주고 싶었어요. 중앙과 지방으로 나누어져 있는 현실에 지방에 사는 것 자체를 열등하게 생각하고, 지방대를 다니면 패배자처럼 생각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웠습니다. 그런 태도를 벗고 자신감을 갖자는 의미로 책을 냈습니다. 정형기 작가가 네 번째 책 <난 날 믿어>(도서출판 북랩)를 펴냈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독자뿐 아니라 자신의 자신감을 충전하기 위해 책을 냈다고 설명한다. 나는 믿을 만하다, 내가 나를 못 믿는데 누가 나를 믿겠는가, 믿는 만큼 이룬다, 나를 믿고 나아간다 등 총 4장으로 나뉜 이 책에서는 작가 본인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독자에게 전하는 꿈 이야기 등이 빼곡히 실려있다. 정 작가는 여러분과 더불어 자신 있게 살아 인생성형에 성공하기 바란다며 이 책으로 독자 여러분의 인생이 더 풍성해지면 좋겠습니다고 말한다. 진안 출생인 그는 중학교 국어교사와 대학 시간강사, 학원장 등을 거쳐 작가로 산다. 인생성형가라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나와 남을 바람직하게 가꾸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네 인생을 성형하라>, <엄마의 격>, <좋은 아빠 되는 길> 등을 내놓았다.
등단, 그 설렘과 떨림. 수필가로 시인으로 소설가로 이름을 올리는 그 첫 작품. 얼마나 많은 공력을 쏟아부어 글을 깎고 다듬었을까. 132명 전북 문인들의 수필 등단작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책이 나왔다. 수필집 <다시 읽고 싶은, 그 시절 뜨거웠던, 그 문학 열정, 나의 등단작>(신아출판사). <나의 등단작>에서는 지역 수필문학의 거대한 산맥을 이루고 있는 작가들의 신선하고 뜨거웠던 초심을 만날 수 있다. 1979년 등단한 김남곤 시인의 연극 같은 인생을 비롯해 2017년 등단한 소종숙 작가의 가을꽃처럼까지. 등단 시기는 세월의 길고 짧음이 있지만 진솔한 삶을 향한 마음은 높낮이가 없다. 수필 쓰기의 첫걸음인 등단작품 속에서 작가들의 초심을 봤습니다. 설렘과 추억이 담겨 있었으며, 박속같이 소박하고 꾸밈없는 아름다움과 사물을 깊이 통찰하여 예술적 감각으로 풀어나간 필력, 의욕적으로 글을 쓰고자 하는 열정을 읽었습니다. 박귀덕 발간추진위원장은 발간사를 통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쓴 글, 값지고 귀했다며 등단작이기에 가능했던 작품들을 모아 놓으니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영롱하게 빛났다고 밝혔다. <나의 등단작> 출간은 전북 수필문학단체장들이 모여수필가들의 등단작을 한데 모아 책으로 발간하자는 의견을 모아 시작됐으며, 작가들이 간직하고 있던 작품을 선뜻 내주어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출판기념회는 지난 23일 전주 연가에서 열렸다. 박귀덕 발간추진위원장, 윤철 전북수필문학회장, 김정길 영호남수필문학회장, 백봉기 온글문학회장, 이용미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장, 최화경 행촌수필문학회장, 김추리 뿌리문학회장, 윤재석 안골은빛수필문학회장, 문광섭 꽃밭정이 문학회장, 임석재 아람수필문학회장, 정원정 정읍수필문학회장, 김용완 한국신문학인협회장, 이의 덕진문학회장, 남필숙 익산수필문학회장 등이 참석했다. 한편, 1991년 <문예사조>로 등단한 박성숙 작가의 등단작은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1992년 작품을 특별작으로 실었다고 했다. 그러니 이 책에는 전북 문인 133명의 수필이 담겨있다.
적상산을 넘어 날아가는 새무리들이 구름바다를 가로질러 날아간다. 바람이 내어 놓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 그랬다. 저 새들처럼 내가 이곳 포내리로 날아와 둥지를 틀고 자녀들과 남편과 함께 벌써 40년이란 길을 걸어왔다. 아스라이 먼 것 같아 보이던 길은 내 앞 가까이 있었다. 처음 이곳 포내리에 올 때만 해도 버스는 먼지 자욱하게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30분 넘게 달려야만 도착하는 마을이었다. 아버님 생신날에 맞추어 왔던 날. 버스는 그렇게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투덜거리고 왔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듯 가까운 산길을, 아니다, 굽이굽이 돌아서는 산들이 나에게 왔다가 멀어지고 멀어졌던 길은 또 내 앞에 가르마를 가르듯 나타났다. 어느 곳이든 시골은 내 유년 시절 마을과 잇닿아 있고 닮아 있었다. 사람 살아가는 곳이 다 닮아 있는 것일까. 유년 시절 오르던 야트막한 산등성이도 당산나무도 어쩜 이리도 닮아 있는지 고물고물 몰려 있는 초가집과 싸리대문과 싸리 울타리 돌담들. 고샅길에 맨발로 뛰어나오신 어머님의 환한 웃음과 동네 어르신들의 웅성거림이 내 귀에 여울지게 들리던 그리운 음성들. 자작거리며 매운 연기를 내뿜던 부엌 아궁이 속을 한없이 바라만 보던 그 그리운 불꽃들. 그렇게 느리게만 흘러가던 시간들이 길을 내고 그 길 위에 내가 아프게 서 있다. 살아온 날들의 아픔이다. 행복하게 살아온 날도 아프게 앓아야 했던 흔적들이다. 몸부림치며 살아온 날도 아프게 앓아온 면역들이다. 지금 적상산이 바라보이는 곳 마을 포내리에서 그리운 것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어린 신부로 견딘 날들이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나에게 듣고 싶다. 세상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하여 조금씩 마음의 길을 내고 누군가 나에게로 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 남자와 함께 작은 텃밭에서 과일나무를 심고 채소를 가꾸고 마음에 묻어두었던 것들을 땅에 심는 날은 참으로 힘들었다. 40년 동안 적상산 자락에 발을 뻗고 뿌리를 내리는 동안 작은 바람으로 기다려온 희망이 조금씩 우리에게 길을 내고 왔으면 좋겠다. 느리지만 아프지 않게 산골에서 살아내는 일이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일은 없었지만 지금 산등성이를 넘어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는 길이다. 10년 전 사업으로 조금 기우뚱했지만 서로가 의지하며 잘 견디어 왔음은 보이지 않게 도우시는 그분의 사랑임을 안다. 우리는 또 이렇게 슬픔의 길을 지우며 걸어가고 있다. 길은 우리가 닦아 놓은 나의 앞을 먼저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된다고 믿는다. 길을 걸어왔으므로, 가는 길도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먼지 자욱하게 달려왔던 길에서 이제는 잘 닦여진 아스팔트길을 달려 나가게 되는 것, 그 길에서 나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선옥: 『창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아직도 사랑은 가장 눈부신 것』을 냈다. 글벗회원, 무주작가회의 회원.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가신 중에 떠난 자는 몇 명이냐? 셋이 처자식을 끌고 떠났습니다. 나머지는 저와 함께 남았습니다. 사다케가 말하자 계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사다케, 너한테 수습하는 일을 맡기겠다. 돌아가 가신과 주민들을 안돈시켜라. 숨을 들이켠 사다케가 시선만 주었을 때 계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들었느냐? 내가 일을 맡긴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죽으라고 할 때까지 네 배는 나한테 맡기도록 해라. 몸을 돌린 계백을 바라보던 사다케가 이윽고 머리를 청 바닥에 붙이고 절을 했다. 그날 밤, 야마토성 내궁의 침실에 누워있던 계백이 문밖의 인기척에 몸을 일으켰다. 누구냐? 나리, 내궁의 시녀가 왔습니다. 백제에서부터 따라온 위사여서 지금도 나리라고 부른다. 무슨 일이냐? 그때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주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침실의 문을 열었다. 마루 위 등의 불빛을 받고 선 두 여자가 보였다. 뒤쪽에 선 위사는 당혹한 표정이다. 그때 앞에 선 시녀가 계백에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게 해주시지요. 계백이 머리를 끄덕이자 시녀가 앞장을 섰고 뒤를 젊은 여자가 따른다. 시녀는 나이 들어서 머리가 반백이다. 시녀의 우두머리인 시녀장이다. 이윽고 계백이 자리에 앉았을 때 여자 둘은 나란히 앞에 앉았다. 방 안의 공기가 흔들리면서 향내가 맡아졌다. 기둥에 붙여진 양초의 불꽃이 흔들렸다. 그때 시녀가 말했다. 수청을 들 부인을 모셔왔습니다. 이미 짐작은 한 터라 계백이 가볍게 대답했다. 필요 없다. 데려가라. 그리고는 덧붙였다. 나는 너희들처럼 닥치는 대로 상관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 백제 본국은 그렇게 기준이 섰지만 이곳은 다릅니다. 앞으로 이곳도 그렇게 기준이 있어야겠지, 물러가라. 이분은 이또님의 소실로 아야메님입니다. 영주님. 이또가 죽었으니 절에 가서 여승이 되어도 좋다. 계백이 바로 대답했을 때 시녀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이제는 절로 가실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침실에서 쫓겨났으니 자결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죽지 말도록 해라. 사다케님은 명을 받들겠지만 아야메님은 다릅니다. 영주님. 네가 데려왔으니 너도 함께 죽는 것이 낫겠다. 계백이 눈을 치켜뜨고는 시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뻗쳐 장검을 쥐었다. 건방진 년, 내 앞에서 위협을 하느냐? 이리 목을 늘여라. 두 년의 목을 단칼에 베어주마. 그러자 시녀와 아야메가 동시에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더니 목을 늘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계백이 장검을 쓰윽 빼들었다. 칼집에서 칼이 빠져 나오면서 쇳소리가 났고 두 여자의 몸이 굳어졌다. 그때 계백이 다시 장검을 칼집에 꽂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늙은 년은 불을 끄고 물러가라. 그리고는 침상으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아야메라고 했느냐? 너는 새로 태어났다.
다음날 저녁, 이또의 거성(居城)인 야마토(大知)성에 계백이 입성했다. 이또는 영지 5만 7천석을 보유한 영주였지만 백제계 명문가였다. 그러나 왜 왕가와 소가씨 가문에 불만을 품고 은밀하게 신라계와 내통하다가 멸문을 당한 셈이다. 멸문을 당했다고 하지만 이또와 소수의 측근, 병사 일부가 죽었을뿐 나머지는 다 살아있다. 가족도 아직 멀쩡하다. 선봉대에 의해서 성문은 이미 활짝 열렸고 살아남은 가신(家臣)들이 모두 청 앞 마당에 꿇어앉아 있었는데 새 영주의 한마디에 목숨이 달려있는 상황이다. 역적인 영주가 참살된 경우에는 가신들도 모두 죽이는 것이 통례인 것이다. 가족은 말할 것도 없다. 계백이 측근들과 함께 청에 올랐을 때 선봉대를 이끌고 먼저 온 하도리가 소리쳐 보고했다. 주군(主君), 역적 이또의 가신중 5백석 이상을 받은 자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이미 마당에는 횃불을 여러개 켜놓고 모닥불까지 만들어서 화랑이 충천했다. 하도리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모두 32명으로 그중 4명은 이번에 이또를 따라갔다가 죽었습니다. 마당에 모인 가신은 28명이 남았다. 모두 단정한 차림에 칼은 몰수당한 채 포로처럼 꿇어 앉아 있었는데 비장한 표정들이다. 그때 마루끝에 선 계백이 가신들을 내려다 보았다. 이또 다다시가 4대째 내려온 영주라고 들었다. 맞느냐? 맞다, 백제방 관원을 시켜 이또와 아리타, 마사시의 집안 내력과 성품, 가족, 주민들에 대한 통치 방법, 가신들의 성향까지 조사를 해온 것이다. 그동안 칠봉산성 성주를 지냈을 때부터 주민들을 다스려온 계백이다. 전투에서는 일시적으로 용장(勇將)이 이기지만 전쟁에서는 지장(智將)이 패권을 잡는다는 사실을 깨우쳐 온 계백인 것이다. 덕(德)만 베풀어도 안되고 누르기만 해서도 안된다. 선정을 베푸는 것이 전쟁보다 어렵다고 했다. 계백이 말을 이었다. 이또 다다시는 제 조상의 덕분으로 영주를 이어 받았지만 백성들은 수십년동안 늘어나는 조세와 부역과 군역(軍役)에 시달리기만 했다. 이곳 영지는 곡식의 소출이 좋다면서 조세를 다른 곳보다 많이 가져가는 바람에 오히려 주민 수가 줄어들었다. 힘들어서 도망쳤기 때문이다. 계백의 목소리가 마당 밖으로도 퍼져나가 병사와 하인, 내성에 들어온 주민까지 담장에 붙어 귀를 기울였다. 오늘자로 이또 다다시 가문은 끝났다. 너희들, 이또의 가신이었던 너희들에게 묻는다. 죽은 이또에게 충성하겠다는 자들은 영지를 내놓고 떠나라. 그러나 새영주인 나한테 충성하겠다는 자는 남아라. 내가 판단해서 결정을 할테다. 그리고는 계백이 몸을 돌렸다. 화청과 윤진, 백용문이 뒤를 따른다. 저녁, 술시(8시)가 되었을때 청에서 화청과 술을 마시던 계백에게 하도리가 다가와 보고했다. 주군, 이또의 중신 사다께가 왔습니다. 사다께는 이또 다다시의 중신으로 5천석 영지를 떼어받고 집사 노릇을 해왔다. 나이는 55세, 사다께 또한 이또 가문의 대를 이은 가신이다. 곧 청 안으로 들어온 사다께가 두손을 바닥에 붙이더니 계백을 보았다. 주름진 얼굴,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제가 중신(重臣)으로 가신들을 대표해서 말씀 드립니다. 이또 다다시는 능력이 없고 사리사욕만 차리는 영주였습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그리고 새 영주가 새시대를 열어야겠지요. 사다께가 똑바로 계백을 보았다. 제가 가신을 대표해서 죽음으로 사죄하겠습니다.
[결산! 전북문화 2025] ➂ 응집력 보여준 전북문학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빚어낸 박만식 동시집 ‘코끼리 잠수함’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진숙 수필가-하기정 ‘건너가는 마음’
“노래 통해 전주에 활기 불어넣고 싶어요”
김명자 시인 첫 시집 ‘광야를 사랑하는 법’ 북토크 성료
종이·천·양말로 빚는 예술⋯인형 창작 40년의 기록
등단 50년 만의 첫 시집⋯박윤기 시인 ‘음반 위의 소금쟁이’ 발간
[2026 전북일보 신춘문예 예심] “다양한 소재와 내면을 살피는 작품 다수…글을 끌고 나가는 힘 아쉬워”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조선 선비들이 남긴 슬픔의 언어
‘창단 11년차’ 온빛오케스트라 10번째 정기 연주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