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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118)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⑭

“이럴 수가 있나?” 계백이 말이 끝났을 때 성충이 반쯤 입을 벌리고는 옆에 앉은 흥수를 보았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이곳은 도성 중부에 위치한 영빈관 안이다. 오늘도 한산성에서 말을 달려온 계백이 성충과 흥수를 만나고 있다. 계백이 급한 보고를 할 것이 있다고 했더니 성충이 흥수를 데리고 온 것이다. 그때 흥수가 탄식했다. “허어, 괴이하구나.” 성충과 흥수는 외부 12부, 내부 12부로 나뉘어 있는 백제 24개부(部)의 각각 수장(首長)이다. 성충은 외부(外部)의 수석인 병관부의 좌평이며 5좌평의 수장인 상좌평이니 관리 중 최고위직이다. 흥수는 내부(內部) 12부의 수석인 전내부(前內部)의 장으로 왕명 출납과 인사를 맡는다. 계백은 둘을 함께 만나는 중이다. 계백이 품에서 서전한테서 받은 편지를 꺼내 성충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6년 전, 신라여왕이 태왕비께 보낸 친필 서한이랍니다. 보시지요.” 그러자 성충이 편지를 받더니 빨려드는 것처럼 읽는다. 그리고는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은 얼굴로 편지를 흥수에게 넘겨주었다. 흥수까지 편지를 읽는 동안 방안에서는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윽고 흥수가 머리를 들었을 때 계백이 먼저 말했다. “그 편지를 선왕(先王)께서는 읽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왕께는 말씀드리지 못했다는군요.” “요사하군.” 성충이 겨우 그렇게 말을 뱉었을 때 흥수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렇다면 태왕비께선 신라로 돌아가시겠다는 말씀이신가?” “그렇습니다. 좌평나리.” “신라에 가면 여왕의 후계자가 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지난번에 연기신이 신라에 갔을 때 여왕한테서 약속을 받았다고 합니다.” “죽은 놈은 말을 할 수가 없지.” 그때 성충이 어깨를 펴고 말했다. “궁중에 요괴가 활보하고 있었구나. 큰일이다.” “덕솔, 지금 그년을 잡아놓고 있나?” 다시 흥수가 묻자 계백이 대답했다. “예, 좌평나리.” “베어 죽입시다.” 불쑥 성충이 말하더니 둘을 번갈아 보았다. “그럼 태왕비는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서 궁 안에서 죽든 살든 할 것 아니오? 우선 날개부터 잘라냅시다.” 흥수는 숨만 쉬었고 성충의 말이 이어졌다. “얼마 전부터 궁안에 여우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돌았소. 또 언젠가는 대백제는 안에서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소. 이것이 다 이 여우들 때문이오.” “이보시오. 상좌평.” 흥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제 사건의 근원을 알게 되었으니 현명하게 대처 하십시다. 그런데 이 내막을 대왕께 말씀드리는 것이 낫지 않겠소?” 그때 성충이 숨을 들이켜고 나서 말했다. “태왕비께서 신라여왕의 후계자가 되어서 신라왕이 된다고 합시다. 그리고서 신라가 백제에 합병이 될 것 같소?” 계백이 시선을 내렸다. 성충이 과격하지만 지용을 겸비한 무장(武將)이다. 앞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흥수가 머리를 끄덕였다. “신라에 김춘추, 김유신, 비담 같은 무리가 왕위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 태왕비께서 어떻게 견디실지 불안하오.” 그러자 성충이 말을 맺었다. “대왕께 은밀하게 말씀 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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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9 20:55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 실컷 봐요

어린이들이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물어오면, 나는 우선 최대한 주의 깊게 보라고 말해준다. 이것이 미술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 앤서니 브라운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기발하고 유머러스하다. 탄탄한 구성력과 이색적인 그림은 어린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의 이름을 건 전시 앤서니 브라운 展-행복한 미술관이 6월 20일부터 9월 2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장 1층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행복을 주제로 원화 200여 점을 내건다. 한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2017년 신작 숨바꼭질도 만날 수 있는 기회. 또 명화들을 침팬지의 시각으로 패러디 한 대표작 미술관에 간 윌리(1999),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중 고릴라가 처음으로 등장한 고릴라(1982), 숲속에서 길 잃은 새끼 코끼리를 풍부한 색채로 표현한 코끼리(1974) 등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전시장 내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해피 도서관, 작가가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보급해 온 셰이프게임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해피 워크북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특히 해피 도서관은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가구들로 꾸몄다. 그리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전시를 관람한 후 인상 깊었던 작품을 직접 그려보는 그림 그리기 대회를 실시한다. 수상자에게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상, 전주문화방송 사장상과 함께 기획공연 초대권을 증정한다. 한편 전시 관람료는 1만5000원. 24개월 미만은 증빙서류를 지참할 경우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6.19 20:55

[불멸의 백제] (117)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⑬

“마마, 부르셨습니까?” 김춘추가 허리를 굽히면서 묻자 선덕여왕이 손을 까닥여 가깝게 오라는 시늉을 했다. 당(唐)에 사신으로 출발하기 이틀 전, 배 5척에 당 황제에게 바칠 서신과 공물도 싣고 고관(高官)들에게 은밀히 줄 선물도 실었다. 사신은 정사(正使)에 이찬 김춘추, 부사(副使)에 잡찬 김문생이 지명되었는데 김문생도 진골 왕족으로 비담 일파에 속한다. 비담이 김문생과 그 수하 6명을 끼워넣은 것이다. 사신은 35명, 수행하는 장졸들까지 122명이며 공물을 포함한 짐은 130상자나 된다. 그래서 대선(大船) 2척에 중선 1척, 쾌선 2척의 선단을 구성하고 떠나는 것이다. 김춘추가 두 손을 모으고 여왕의 다섯걸음 앞으로 다가가 섰다. 이 자리가 최고 관직인 상대등, 이벌찬의 위치다. 청 안에는 여왕 뒤에 시녀 둘만 서있을 뿐이다. 오후 미시(2시) 무렵, 저택에 있던 김춘추는 여왕의 부름을 받고 말을 달려온 참이다. 그대 여왕이 더 가깝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긴장한 김춘추가 다시 두 걸음을 떼어 다가갔을 때 여왕이 낮게 말했다. “더 가깝게 오라.” “예, 마마.” 김춘추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다시 한걸음 다가갔다. 4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여왕은 미모다. 결혼도 하지 않은 터라 아직 피부도 윤기가 흐른다. 그대 여왕이 입을 열었다. “백제 서부 앞바다를 지나게 되겠지?” “예, 마마.” “매년 그 앞바다를 지났지만 백제 수군과 부딪치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가?” 김춘추가 목소리를 낮추고 대답했다. “예, 수군항에 첩자가 있어서 수군의 출항 일정을 알려주기 때문이 아닙니까?” 수군 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김춘추는 생각나는대로 대답했다. 여왕이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아예 수군 선단을 띄우지 않아서 신라 함선과 바다에서 부딪치지 않았다.” 김춘추는 눈만 껌벅였고 여왕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은 백제 수군과 바다에서 만날 것 같다.” “마마, 어찌 아십니까?” “백제 서부 수군항 항장으로 계백이란 백제 장수가 왔기 때문이다.” “계백이 말씀입니까?” “그렇다. 그대의 사위와 딸을 죽인 놈 아닌가?” “예, 마마.” 김춘추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상기되었다. “소신을 고구려에서도 능멸을 한 놈입니다. 마마.” “그대와 전생(前生)에 악연이 있었던 것 같구나.” 여왕은 독실한 불교신자다. 전생과 극락을 믿는다. 김춘추가 어깨를 부풀리며 말했다. “마마, 바다에서 만나 일전(一戰)을 하더라도 당에 가야만 합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인데 머뭇거릴 수는 없습니다.” “내가 그 일 때문에 불렀다.” 여왕이 똑바로 김춘추를 보았다. 왕위 계승 문제로 화백회의에서 연일 갑론을박을 해도 여왕은 놔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왕의 권위가 떨어지고 있는데도 김춘추도 도와주지 않았다. 당(唐) 황제도 “신라는 여왕이 다스리기 때문에 약해진다”고 대놓고 사신에게 말할 정도가 되었다. 그때 여왕이 입을 열었다. “그대의 나라에 대한 충심(忠心)이 기특하구나. 그렇다면 내가 무사히 바다를 건너도록 도와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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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8 21:26

[불멸의 백제] (116)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⑫

서진이 머리를 들고 계백을 보았다. 눈이 깊은 우물처럼 느껴졌고 계백은 자신의 몸이 그 우물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을 받는다. 눈을 감았다 뜬 계백이 말을 이었다. “이년, 요사스러운 말로 홀리려고 드는구나. 멀쩡한 관리들이 대역죄를 범한 이유를 이제 알겠다.” “덕솔께서 저를 죽이셔도 됩니다. 하지만 먼저 이것을 보시지요.” 서진이 저고리 안에서 붉은색 비단 주머니를 꺼내더니 안에서 잘 접힌 종이를 꺼내 두 손으로 계백에게 내밀었다. “태왕비께서 이것을 덕솔께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6년 전, 신라여왕이 태왕비께 보내신 편지입니다.” 숨을 들이켠 계백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쳐 편지를 펼쳤다. 질이 좋은 종이였지만 오래되어서 접힌 자국이 깊다. 안에 글이 적혀져 있다. “내가 신라왕이 된지 6년, 아직도 전쟁으로 수많은 양국 백성이 고통을 받는구나. 아버님의 뜻이 어서 이루어져서 신라, 백제가 한 나라가 되어야 할 텐데. 동생을 그리는 언니 선덕이 선화에게 보낸다. 선덕 씀.” 읽고 나서 머리를 든 계백에게 서진이 말했다. “그 편지를 선왕(先王)께서도 읽으셨습니다. 덕솔.” 계백은 숨만 쉬었고 서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선왕께서는 신라 공격을 삼가시고 신라여왕의 기반을 굳혀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옥문곡에서 군사를 되돌려 신라여왕의 계략이 맞도록 만들어주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 후로 신라여왕의 권위가 살아났지요.” “…….” “그런데 선왕이 돌아가시기 전에 대왕께 그 사실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왕께선 즉위하신 후부터 신라를 계속해서 공격하셨지요.” “…….” “나리.” 서진이 다시 깊은 물 같은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습기가 찬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신라여왕이 죽으면 뒤를 이을 성골 후계자는 태왕비마마 뿐이십니다. 이제 선왕께서도 극락에 가셨으니 태왕비께서 신라로 돌아가 신라왕이 되셔야 합니다.” “무엇이?” 계백이 어깨를 부풀리며 물었다. 머리끝이 솟는 느낌이 든 계백이 서진을 노려보았다. “신라로 가신다고 했느냐?” “예, 그러나 대왕께서 보내주실 리가 없으니 몰래 가셔야 합니다.” “허어.” 쓴웃음을 지은 계백이 옆에 내려놓은 장검의 칼자루를 쥐었다.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이년, 단칼에 베어 죽일테다. 입에서 뱀이 나오는 년이구나.” “지난번에 덕솔 연기신이 신라여왕을 만나고 왔습니다. 신라는 비담과 김춘추가 왕위를 노리지만 둘 다 왕이 될 그릇이 아니라고 신라왕이 말했다는군요. 만일 태왕비께서 백제를 탈출해서 돌아오시면 후계자로 지명을 받게 되신다는 것입니다.”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를 듣자.” “이곳 수군항을 통해 배로 신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말을 대왕께 말씀드린다는 것은 예상하고 있겠지?” “예, 덕솔.” 서진이 바로 대답하더니 어깨를 늘어뜨렸다. 계백은 아직도 쥐고 있던 장검을 내려놓았다. 눈동자가 흐려져 있다.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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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7 19:39

[불멸의 백제] (115)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11

“나리.” 관저로 들어선 계백을 고화가 먼저 맞았다. 얼굴이 상기되었고 웃음 띤 눈이 가늘어졌다. “오느라고 고생했어.” 계백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화를 보았다. 청으로 올라간 계백의 옆으로 고화가 다가서며 물었다. “들으셨지요?” “들었어.” 청에 앉은 계백에게 가장 먼저 우덕이 와서 인사를 했다. 반가운지 활짝 웃는다. “주인자리, 관직에 오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오. 넌 몰라보게 고와졌구나.” 계백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더니 고화는 외면했고 우덕은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 덕조와 우덕은 이제 한방을 쓰는 것이다. 청 아래에 서있던 덕조가 헛기침을 하면서 시치미를 떼었고 우덕은 도망치듯이 청에서 내려갔다. 이어서 남녀 종들이 차례로 올라와 계백에게 인사를 했다. 계백과 고화가 나란히 앉아서 인사를 받는다. 이윽고 10여 명의 종들 인사가 끝났을 때 청에는 두 부부가 남았다. 그때까지 청 아래에 서있던 덕조가 계백에게 물었다. “주인, 부를까요?” “내가 안으로 들어갈 테니 객실로 오라고 해라.” 태왕비의 시녀 서진을 만나려는 것이다. 계백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고화가 말했다. “저는 내실에 가 있겠습니다.” 자리를 피해 주겠다는 말이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안쪽 객실로 들어섰다. 손님을 맞는 방이다. 계백이 자리 잡고 앉았을 때 곧 상민 차림의 여자가 들어섰다. 분홍색으로 물들인 저고리와 남색 바지를 입었는데 얼굴을 본 순간 계백은 숨을 들이켰다. 미인이다. 흰 얼굴, 검은 눈동자, 곧은 콧날과 단정한 입술, 조금 상기된 얼굴로 들어선 여자가 계백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바닥을 짚은 두 손이 눈부시게 희다. 절을 한 여자가 머리를 들더니 입을 열었다. “태왕비마마의 시녀 서진입니다.” 낮지만 맑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다. 계백이 시선만 주었고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마마께서 저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계백은 보료에 한쪽 팔을 기대고 앉아서 시선만 준다. 머리도 끄덕이지 않는다. 서진이 당황한 듯 두어 번 눈을 깜박였는데 속눈썹이 길어서 창이 닫혔다가 열리는 것 같다. 서진이 말을 잇는다. “마마께서는 신라 여왕마마의 친동생이십니다. 다 아는 사실이나 마마께선 먼저 그것부터 말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 “그동안 마마께선 언니인 신라 여왕께 자주 연락을 하셨습니다. 이번에 죽은 덕솔 연기신이 갈 때도 있었고 때로는 제가 남장을 하고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서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점점 열기가 띄워졌다. 반짝이는 두 눈이 계백을 응시한 채 떼어지지 않는다. “선왕(先王)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때로는 선왕께서 마마를 통해 신라 여왕께 말씀을 전한 적도 있었습니다.” “……” “신라여왕께서 돌아가시면 후사가 없는 터라 태왕비마마께서 왕위를 이으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신라여왕과 태왕비마마께선 그런 약조를 하셨습니다.”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가 길게 뱉었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말을 뱉는다. “이년, 그것이 가능할 것 같으냐?”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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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4 19:52

[안도의 알쏭달쏭 우리말 어원] 94. 도깨비 - 불·종자 + 성인남자='돗 + 가비' 합성어…복을 가져다주는 '神'

우리는 어려서부터 도깨비 이야기를 듣고 자랐지만, 도깨비를 만난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도깨비방망이를 한 번쯤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도깨비’가 있다면 서양에는 ‘해리포터’가 있다. 공통점은 누구나 당연히 한 번쯤 맛보고 싶은 마법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현실이 아닌 또 다른 반전이 있어 재미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왜 ‘도깨비’라고 했을까? 박은용은 도깨비의 어원을 목도자와 돗가비의 합성이라고 했다. 목도자에 나오는 ‘두두리(豆豆里)’는 절구질할 때의 형상으로 농경사회의 방아 작업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도깨비 내용이 삽입된 방이설화나 도깨비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제물이 메밀묵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돗가비’설은 ‘돗+가비’의 합성어로 돗은 불(火)이나 종자(種子)의 의미로 풍요를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다. ‘아비’는 아버지의 의미로 장물애비, 처용아비 등의 통계로 볼 때 성인 남자로 이해된다. 이들 용어는 돗+가비>도ㅅ가비>도까비>도깨비로 변화됐다. 위의 예로 보면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도깨비는 복(福)을 가져다주는 신격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의 토착 신격 중에 하나로 전승되어 왔음은 분명하다. 도깨비담에서 묘사되고 있는 도깨비의 형체는 대부분 도깨비불로 상징된다. 일반적인 불빛은 밝은색인데 도깨비불은 파란 불빛을 지니고 있거나 아무런 색이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개로 분리되거나 하나로 합쳐지는 등 변화를 보이면서 도깨비불의 신비성을 간접적으로 강조한다. 이와는 달리 도깨비와 직접 대면하는 이야기의 경우 형체는 사람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특이한 체형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키가 팔대장 같은 놈’, ‘커다란 엄두리 총각’, ‘다리 밑에서 패랭이 쓴 놈’, ‘장승만한 놈’ 등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도깨비는 남성이다. 도깨비담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도깨비의 냄새에 대한 것이다. 흔히 뿔이 두 개 달린 도깨비는 일본 도깨비이고, 우리 도깨비는 뿔이 달려 있지 않거나 한 개뿐이라는 등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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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4 19:52

하멜·박지원·톨스토이…역사속 인물 산책 김현준 수필가 산문집〈아내와 아들의 틈바구니에서〉

김현준 수필가가 산문집 <아내와 아들의 틈바구니에서>(북매니저)를 냈다. 김 작가는 수필의 소재는 우수마발처럼 흔하다는 말을 듣지만 그럴듯한 소재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며 7~8년 글을 쓰면서 자원이 고갈됐는지 사물을 뒤집어보고 낯설게 바라봐도 선뜻 마음에 드는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충전이 필요한 시점에 역사서를 읽은 것이 <아내와 아들의 틈바구니에서>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책은 <하멜 표류기>의 하멜, <연암일기>의 박지원, 조선의 숨은 명의 조광일, 학자 최치원, 러시아 출신 소설가 톨스토이와 그의 아내 소피아,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등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울 점이 있는 다양한 인물을 조명한다. 임진왜란 당시 패했던 신립 장군에 대해서는 유성룡이 기록한 <징비록>의 글을 통해 신립의 고뇌와 작전을 재평가했다. 인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김현준 수필가가 깨달은 감정과 교훈을 중심으로 글을 썼다. 그는 수필을 공부하면서 신변잡기라는 말이 싫어 이번에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가져왔다며 이런 글을 왜 쓰느냐 하지 말고 이런 글도 쓸 수 있구나 하고 느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김 수필가는 대한문학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영호남수필문학회 전북지부 부회장, 대한문학작가회 부회장, 안골은빛수필문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6.14 19:52

황혼, 활력 넘치는 시편들

노을을 등지고/ 풀섶에 앉아 보다// 이젠/ 어쩔 수 없이/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을/ 네게 줘야겠다// 의연한 결심인가/ 오늘따라/ 눈시울에 어리는/ 네 눈물이 마냥 고웁다. ( 평원에서 전문) 희수(喜壽)에 시력(詩歷) 반세기를 넘는 류근조 시인이 열두 번째 시집 <황혼의 민낯>을 펴냈다. 시집에는 중노년층의 현실적 삶과 정서, 경륜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살 또 한 살 더해가는 나이는 매정스럽다. 하지만 시인은 삶의 쓴맛은 물론 그 너머 죽음까지도 편안히 껴안는다. 그래서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시편들을 읽다 보면 살아갈 맛과 힘이 새롭게 샘솟는다. 또 고향을 그리는 시편이나 우리 사회에 쌓인 적폐공해를 청산하고자 하는 시편도 눈에 띈다. 시인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혹은 사회학적 지식을 통해 명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다. 나아가 자신을 혹독하게 검증하기도 한다. 나 같은 은퇴자에게도 비공개로/ 상시 열리는 청문회가 있다/ 업보라 할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준엄한 청문회// (중략)// 지금은 머지않아 다가올 이승과의/ 결별을 앞두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멈추려야 멈출 수 없는,/ 스스로 살아온 숙연한 자세로/ 삶의 청문회장에 나와,/ 가끔은 즐거웠던 추억도 떠올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청문회를 하고 있지만 ( 청문회 계절 일부) 이경철 문학평론가는 노경의 현실적 삶과 내면의 깊이를 솔직 담백하게 보여주면서도 마침내는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 해탈의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는 시집이라며 서권기 가득한 탐구열과 끊임없는 시작에 의한 서정적 형상력이 시집을 깊이 있으면서도 젊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익산 출신인 그는 1966년 문학춘추 신인상에 당선돼 시단에 나와 지금까지 12권의 시집을 펴낸 중진 시인이다. 중앙대 교수로 정년퇴직할 때까지 40여 년 동안 시 창작과 시인론 등을 가르쳐온 학자이기도 하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6.14 19:52

임진왜란 호남 첫 의병장 김천일 아시나요

김익두 전북대 교수와 허정주 전북대 대학원 문학박사가 <건재 김천일 전집>을 내놨다. 건재 김천일(1537~1593년) 선생은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유학자이자 문인, 의병장이다. 호남 유학의 시조인 일재 이항 선생의 수제자로 당대 서인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강원도사, 경상도사, 임실현감, 순창군수 등을 역임했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창의(倡義)의 깃발을 호남에서 처음으로 드높이 든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건재 김천일 전집>은 건재선생문집 번역본과 조선왕조실록 김천일 관련 기사 수록본 등 총 2권으로 구성돼 있다. <건재 김천일 전집-1권>은 1833년 김민상 등이 편집간행한 본집 4권, 부록 7권 등 총 11권 목활자본을 원본으로 한다. 김 교수의 집안 외척인 정운한 옹이 1981년 번간한 국역 건재선생문집을 참고 번역본으로 삼았다. 또 <건재 김천일 전집-2권>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건재 선생 관련 기사(記事)들을 찾아 정리하고, 이에 관한 자세한 주석을 달아 만들었다. 선조실록, 선조수정실록, 광해군일기, 인조실록, 효종실록, 현종실록, 현종개수실록, 숙종실록, 영조실록, 정조실록, 순조실록 등 <조선왕조실록> 안에는 건재 선생에 관한 언급이 총 120여 차례 등장한다. 이와 관련 김 교수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촬영한 사진 자료를 본문 안에 배치해 시각적 효과를 높였다. 사전을 따로 찾지 않고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각주도 자세히 처리했다. 김 교수는 건재 선생은 우리가 어째서, 어떻게 나라를 지키고 또 그런 일에 앞장서야만 하는가를 일생의 삶으로 우리에게 제시해준 선열이다라며 이 소중한 삶의 기록이 국민들의 삶 속으로 면면히 깊이 스며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6.14 19:52

[불멸의 백제] (114)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⑩

“주인, 마님 모시고 왔습니다.” 덕조가 인사를 했을 때는 오시(12시)무렵, 계백이 수군(水軍) 조련을 마치고 수군항의 진영으로 돌와왔을 때다. “오, 왔느냐?” 두 달 만에 보는 덕조다. 덕조가 도성에서 고화를 모시고 온 것이다. 도성의 저택이 크고 잘 갖춰진 데다 시장에는 온갖 귀물(貴物)이 넘쳤고 의식주가 편리한데도 고화는 이곳으로 오기를 고집했다. 그래서 마침내 저택에 집 지키는 종만 남겨두고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내가 저녁때 들어간다고 해라.” “네, 주인.” 대답한 덕조가 꾸물거리더니 상석에 앉은 계백을 보았다. 정색한 표정이다. “주인.” “뭐냐?” “마님이 한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모시고 와?” 그때 덕조가 무릎걸음으로 두걸음 다가와 앞쪽에 엎드렸다. 청의 마루방에는 둘 뿐이다. 계백과 집안 집사인 덕조가 만나는 터라 누가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덕조가 목소리를 낮췄다. “주인, 마님의 친척 행세를 하고 따라왔지만 실은 태왕비 마마의 시녀입니다.” “……” “태왕비께서 마님께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시녀를 나리께 데려가라고 부탁을 하신 것이지요.” “태왕비께서?” 계백은 자신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는 것을 들었다. 태왕비 선화공주는 지금 궁 안에서 연금상태다. 그러나 변복을 하고 궁 밖으로 나오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대왕의 모친인 것이다. 가끔 선왕(先王)의 묘에도 가고 사찰에서 불공도 드린다. 덕조가 말을 이었다. “예, 열흘쯤 전 저녁 무렵에 찾아오셨습니다. 불사에 가셨다가 들렸다고 하셨는데 변복을 하고 계셨지요.” “……” “그때 시녀 서진을 두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전할 것도 알고 계시더군요. 서진을 데려가 나리를 만나게 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 “서진을 만나고 나서 대왕께 사실을 말씀드려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괴이하다.” 마침내 어깨를 편 계백이 덕조를 보았다.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라 있다. “태왕비께서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는구나.” 덕조도 계백의 주도하에 신라 첩자 일당이 소탕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 일에 태왕비와 왕비가 연루되어 둘 다 연금상태라는 것도 아는 것이다. 덕조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주인,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마님께서도 주인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시녀인 서진님도 주인의 뜻에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계백이 물었다. “이 일을 집안에서 누가 아느냐?” “네, 저하고 마님, 그리고 우덕이까지 셋입니다.” “셋이라고?” “집안 종들은 서진님을 마님이 도성에서 만난 먼 친척인줄로 압니다.” “그걸 믿겠느냐?” “태왕비께서 대갓집 부인 행세를 하고 계셔서 모두 깜박 속았습니다. 시녀 서진님도 재치가 있으셔서 다른 종들이 모두 마침 친척인줄 믿습니다.” 그때 계백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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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3 20:18

[불멸의 백제] (113)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⑨

“마마, 소신이 당에 가겠습니다.” 김춘추가 말하자 선덕여왕이 시선만 주었다. 청안에 잠깐 정적이 덮여졌다. 김춘추는 석달전 고구려에 들어가 연개소문을 만나 신라와의 동맹을 제의했다가 오히려 잡혀 죽을 뻔했다. 겨우 도망쳐 나왔지만 신라 조정에서 김춘추를 비난하는 무리는 없다. 진골(眞骨) 왕족으로 구성된 화백회의에서도 김춘추의 용기를 칭찬했다. 이윽고 선덕이 입을 열었다. “가서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김춘추는 선덕을 보았다. 미인이다. 여왕의 수심에 잠긴 것 같은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즉위 12년, 선덕은 진평왕의 맏딸로 신라에 남은 유일한 성골(聖骨) 왕족이다. 또 하나의 성골은 지금 백제 의자왕의 어머니인 선화공주다. 그러니 의자왕의 부친 무왕(武王)이 신라와의 합병을 꿈꾸지 않았겠는가? 선덕의 다음 차례는 자신의 왕비 선화공주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를 점령하면 신라 백성들은 합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었다. 그때 김춘추가 대답했다. “마마, 당 황제께서 고구려와 백제왕에게 친서를 내려 신라를 더 이상 침공하지 말도록 청원하겠습니다.” “이보시오, 이찬.” 김춘추 앞쪽에 서있던 이찬 비담이 나섰다. 비담은 진골 왕족으로 구성된 화백회의의 좌장이다. “이찬은 모르시오? 이제 바닷길이 막혀서 사신을 싣고 갈 배가 영락없이 백제 수군에게 나포될 상황이오.” 김춘추가 머리를 저었다. “그렇다고 사신을 보내지 않을 겁니까? 바다는 넓습니다. 피해가면 됩니다.” “그리고 사신이 간다고 해도 당 황제께서는 청을 들어주지 않으실 거요.” 선덕도 단하에서 두 신하가 갑론을박하는 것을 듣기만 했다. 백제에서 첩자가 달려온 것은 열흘 전이다. 백제 서부(西部) 수군항의 항장 이하 지휘관 10여명이 도륙을 당했고 조정에 잠입시켰던 신라첩자 13명이 잡혀 처형당한 것이다. 첩자 중 4명은 간신히 신라로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내막을 알게 되었다. 이제 백제 서부 수군항이 백제군의 수중에 들어왔으니 신라 사신이 탄 배 10중 8, 9는 나포될 것이었다. 그때 김춘추가 머리를 들고 선덕을 보았다. “마마, 소신이 이번에도 목숨을 걸고 당에 가서 청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구석에 박혀만 있다가는 사직을 보존하지 못할 것입니다.” “경의 말이 옳다.” 마침내 선덕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청에 서서 남 탓이나 하고 신세 한탄을 하면 빼앗긴 땅이 돌아오기라도 한단 말이냐?” 선덕의 시선이 비담에게로 옮겨졌다. “그렇다면 경의 의견을 듣자.” “마마.” “어찌하면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가 있겠는가?” “마마, 그것은…….” 당황한 비담이 눈을 부릅떴다가 곧 내렸다. 선덕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담은 여왕 사후(死後)의 왕위 계승 1순위자다. 선덕이 다시 김춘추를 보았다. “이찬, 곧 떠나라.” “예, 마마.” “백제와 고구려를 견제하지 못하면 곧 당은 등 뒤를 찔려 수나라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전해라.” “예, 마마.” 김춘추는 머리를 숙였다. 그렇게 말했다가는 당장에 목이 잘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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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2 18:49

[불멸의 백제] (112)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⑧

“대선(大船)이 5척, 중선(中船)이 7척, 쾌선(快船) 18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나솔 윤진이 대선 위에서 계백에게 설명했다. 수군항의 전력(戰力)을 말한다. “대선과 중선, 쾌선으로 진이 되어야 대해(大海)로 나갈 수가 있지요. 대선 2척, 중선 4척, 쾌선 6척을 1진(陳)이라고 부릅니다.”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부터 백제는 해상강국이었다. 동성왕 때 대륙의 담로를 적극적으로 개척하면서 수군(水軍)도 양성시켰기 때문이다. 대선은 길이가 200자(60m), 폭이 60자(18m), 높이가 40자(12m)였고 돗대가 2개, 수부가 20명, 수군을 60명까지 실을 수 있다. 중선은 길이가 150자(45m), 폭이 40자(12m), 높이가 25자(7.5m)이며 돗은 2개 ,수부가 12명에 수군 35명을 싣는다. 쾌선은 길이가 100자(30m), 폭이 20자(6m), 높이가 15자(4.5m)인데 수부가 22명, 수군이 20명이다. 수부가 많은 이유는 배 양편에 노가 3개씩 있어서 수부 12명이 저으면 빠르게 달릴 수가 있는 것이다. 윤진이 말을 이었다. “대선과 중선이 해전(海戰)을 벌이고 쾌선은 연락과 정찰, 또는 기습 역할을 맡았지요. 그러나 요즘 몇 년 동안 대해로 진(陣)을 펼친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런가?” 계백이 묻자 윤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해적선은 3척씩 무리지어 오는 데다 노꾼이 많아서 우리 쾌선보다 빠릅니다. 대해에서 잡지 못하고 놀림감만 되는 바람에 아예 근해만 순시하고 있었습니다.” “방법을 찾지 못했단 말인가?” “쾌선에 노잡이를 배로 늘리고 대선과 중선에 대궁을 장착하자고 진즉부터 건의했지만 묵살되었지요.”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신라 선박도 백제 연안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 백제 연안은 대륙과 멀리 인도, 페르시아로 통하는 상로(商路)인 것이다. 다음날부터 수군항에서는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선박을 수리하고 한편으로는 수군을 조련시켰기 때문에 수군항 주변에는 밤이 새도록 불빛이 휘황했다. 병관좌평 겸 상좌평 성충이 수군항에 도착한 것은 공사를 시작한 지 열흘이 되었을 때다. 대선(大船)에 오른 성충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내가 6년쯤 전에 대선을 타고 담로 안남군에 갔었어. 그때 선왕(先王) 마마의 사신으로 갔었는데 도중에 해적선을 만났지.” 대선에 장착된 대궁(大弓)을 쓸면서 성충이 말을 이었다. “그때는 이 대궁이 육지에서 공성전 때 사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야. 이 대궁만 있었다면 그 해적선을 잡았을 텐데.” “마침 알맞은 나무가 있어서 솜씨좋은 군사들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대궁은 길이가 15자(4.5m), 시윗줄은 삼줄과 가죽을 꼬아 만들었고 화살은 두께가 1치(3cm)에 길이는 12자(3.6m)다. 화살 끝에 창날이 꽂혔는데 주위에 기름을 넣은 가죽 주머니를 붙여서 쏘도록 했다. 가죽 주머니 끝에는 불이 붙은 심지를 매달아 화살이 박힌 순간에 기름 주머니가 터지면서 불이 붙는 것이다. 육지에서는 공성전에 자주 사용했지만 배에 장착하는 것은 처음이다. 계백이 옆에 선 나솔 윤진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솔 윤진이 함선용 대궁을 착안했습니다.” “장하다.” 상좌평 성충한테서 칭찬을 받은 윤진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대선에는 대궁이 선수에 2대, 선미에 1대를 장착했고 아래쪽에 노 구멍을 만들고 노를 6개씩 넣었다. 노꾼으로 24명을 충원시켰지만 공간은 넉넉하다. 중선도 대궁을 2대, 노꾼을 20명, 쾌선은 대궁 1대에 노꾼을 20명으로 늘려서 그야말로 쾌속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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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1 19:26

[불멸의 백제] (111)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⑦

두 번째 시녀의 목에 칼을 대었을 때 비명처럼 말이 터져 나왔다. “수군항 궁수장 대덕입니다!” 왕비전의 시녀 단월이다. 위사장 협보가 칼을 단월의 목에서 떼었다가 다시 붙이면서 물었다. “지금 그놈이 어디 있느냐?” “조금 전까지 다리가 아프다면서 부식창고 옆방에 있었습니다!” “잡아라!” 협보가 소리치자 위사들이 달려갔다. 내궁 마당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햇볕이 환한 사시(10시) 무렵, 마당에는 방금 목이 잘린 왕비전 시녀의 시체가 처참한 모습으로 널부러져 있다. 구석에 잡아놓은 시녀들은 50여명이나 된다. 주위를 위사들이 칼을 빼든 채 둘러서 있어서 흉흉한 분위기다. 잠시 후에 달려갔던 위사들이 대덕 종해를 끌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대덕은 반항을 했는지 얼굴이 피투성이다. “덕솔, 도망치려는 것을 잡았습니다.” 위사부장이 보고했다. 머리를 끄덕인 협보가 지시했다. “그놈을 마당에 꿇려라. 곧 대왕을 모시고 나오겠다.” 협보는 종해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그로부터 한 식경쯤이 지났을 때 의자가 대왕전의 청에서 문무 관리들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내궁(內宮)에 신라 첩자가 들락였기 때문에 그와 연관된 역적무리를 토벌했다.” 모두 숨을 죽였고 의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병관부 달솔 진재덕, 내신부 덕솔 연기신 등 17명을 위사대가 잡아 처형했고 그 가족은 종으로 배분될 것이며 재산은 몰수한다.” 단하의 성충, 흥수 등은 의자의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곧 생모(生母)인 태왕비와 왕비의 조처가 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의자가 말했다. “신라 첩자가 태왕비와 왕비전을 들락였다는 증거가 있다. 지금 잡아놓은 서부 수군항 대덕 종해가 자신이 첩자이며 태왕비와 왕비의 지시를 받아 왔다고 자백을 했다.” “……” “증거가 확실한 바 태왕비전을 봉쇄하고 왕비는 폐비함과 동시에 궁 안에 감금한다. 둘은 악의 근원이었다.” 청안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성충의 목소리가 무거운 정적을 깨뜨렸다. “대왕, 대왕께 이렇게 수족을 자르시는 고통을 드린 죄를 제가 받겠습니다.” 의자가 눈만 크게 떴고 성충이 말을 이었다. “신하로서 사전에 일을 막지 못한 죄를 소신이 받겠습니다.” “당치 않은 말이다.” 혀를 찬 의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다 내가 우유부단하게 질질 끌어왔기 때문이야.” “대왕, 신하들의 우두머리인 상좌평이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난국에 상좌평이 공석이면 되겠는가? 입을 다물어라.” 의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임금이 지은 잘못을 왜 신하가 받느냐? 임금이 뼈를 깎아내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대왕.” “지금은 내부 수습이 시급하다. 상좌평.” 의자가 정색하고 성충을 보았다. “신라 첩자들이 그동안 수군항에 집중적으로 도당을 배치시켰다. 이를 더 색출하고 수군(水軍)을 예전의 전력으로 되살리는 것이 상좌평 그대가 할 일이다.” 의자의 논리정연함이 되살아났다. 의자는 결코 혼군(混君), 폭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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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10 18:54

[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우중(雨中) 단상-749번 지방도에서 - 문신

어느 책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길 위에 서면 세상이 보인다고 했다지? 그 문장을 다 읽기도 전에 피식 웃었던 일이 생각난다. 이런 말도 들었던 것 같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바람이 불자 예의상 잠깐 흔들려주는 나뭇잎 같은 심정이었다랄까? 그럴듯하게 말할 수 있는 남다른 재주에 조금 감탄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뭐라고 한마디 거들어보고 싶다, 길에 관해서.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길과의 로맨스는 떠오르지 않는다. 길에 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본 적도 없고, 검은 숲을 파헤쳐 나만의 길을 내본 적도 없다. 몇 가지 소소한 일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늦가을 어느 날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도로를 횡단하며 마치 큰 범죄라도 저지르듯 으스댔었지만, 무단횡단에 따른 딱지 한 장 받아보지 못했다. 길모퉁이에 서서 어떤 여자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영영 헤어져버린 기억도 있다. 그렇다고 이별의 책임을 길에게 묻고 싶지는 않다. 이별이래야 이별일 수 없는 게, 노상 우리는 같은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발밑에 늘 길이 있어서였을까? 길에 관해 진지하게 고마워해본 적은 없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길에 마음을 앗겨버린 것이 2003년 무렵이다. 홀렸다고나 할까? 운명처럼, 길이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뒷목 근처에서 속삭이는 애인처럼 길은 내 오목한 발바닥을 향해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길의 애무에 끝내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래, 이제 나를 다 가져라! 한껏 달떠서 나는 그렇게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나는 길을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애인으로 삼은 길은 완주군 상관면 신리에서 소양면 화심을 잇는 749번 지방도로다. 신리에서 더듬어가기 시작한 길은 적당한 경사를 이루며 오르막을 형성한다. 그 길을 사랑하는 일은, 사랑에 눈이 멀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수컷처럼, 앞만 보고 무작정 뛰는 것이다. 애인의 발등을 쓰다듬다가 정강이를 스쳐 무릎에서 잠깐 머물렀다가 곧장 살 오른 허벅지로 달려들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재게 발을 굴려야 한다. 신리에서 출발한 지 5분쯤이면 그리 길지 않지만 제법 가풀막진 오르막이 버티고 있다. 이제 등줄기에 땀이 배고 종아리는 딴딴하게 부풀어 오른다. 눈알 벌게지도록 씩씩거리며 단숨에, 그렇다, 멈춤 없이 단숨에 기어오르면 문득, 길은 감추어두었던 상관수원지를 애인의 허벅지 안쪽처럼 내어준다. 그 순간 휘이, 숨이 탁 트이면서 긴장하고 있던 몸의 근육들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길도 마찬가지다. 상관수원지 허리를 살포시 휘감고 도는 길은 풍만한 굴곡을 이루며 길 위에 선 사람을 유혹한다. 그렇다고 거추없이 덤벼들 일은 아니다. 길도 나도 서로 충분히 간을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뛰는 일은 시늉으로 두고 물낯에 드리워진 산그늘의 깊이를 헤아려본다. 이런 날은 아주 맑아도 못 쓴다. 세상이 좀 더 침침해지고 사물의 빛깔들이 바짝 뭉개질듯 흐리흐리해야 연애할 맛도 난다. 주춤주춤 가랑비라도 내리면 더 좋다. 세우(細雨)에 뛰는 일은 어떤 오르가슴도 넘보지 못할 향락의 극치를 맛보게 한다. 그러나 사랑에는 더러 어이없는 장벽 같은 것이 덜컥 나타나기도 하는 법이니. 길과의 연애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처음과 달리 달리는 폼도 안정되고 속도도 붙어서 제법 능숙하게 애인을 대하듯 길을 밟아나가던 때였다. 준비운동을 할 때부터 아랫배가 미심쩍더니 상관수원지를 돌아가는데 기어이 탈이 나고 말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뭘 자꾸만 사달라고 졸라대는 애인처럼 아랫배가 쿡쿡 쑤셨다. 돌아갈까? 그러나 하다 말면 아니함만 못하다는 만고의 진리가 득의하여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미소의 그늘에서 피어오르는 유황불 같은 불길함을 애써 외면했지만, 오래 잊고 있던 길 위에서의 추억 하나가 강제로 소환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것은 느닷없이 내 이름을―그렇다,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자기야, 라고 부르지 않았다.―한 음절씩 끊어서 불러대는 애인의 싸늘한 목소리처럼 뭔가 께름한 징조였다. 다섯 살? 많아야 여섯 살이었을 것이다. 무슨 일인가로 나는 울상이 되어 길을 걷고 있었다. 집에까지는 제법 많은 걸음이 남아 있었고, 뒤편에서는 내 걸음보다 빠르게 해가 지고 있었다. 눈앞으로 길게 드리워진 내 회색 그림자를 보며, 나는 생애 최초의 비극과 맞서고 있었다. 잔뜩 숨을 참았다가 병아리 눈물처럼 조심스럽게 내쉬는 동안, 한주먹감도 안 되는 내 엉덩이는 바윗돌보다 무거웠다. 이미 나는 약간의 설사를 지린 상태였다. 배 속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잔뜩 성난 물찌똥이 출렁거렸고, 내 눈에는 흥건해진 눈물이 여차하면 미끄러져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쥔 채 괄약근에 잔뜩 힘을 주고 걷던 길이었는데.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불행은 혼자 오는 법이 없었다. 중학교 이학년 봄, 소풍 길도 거들어보겠다고 불쑥 끼어들었다. 아, 아득하여라. 그해 소풍 길에서 노랗게 흔들리는 환타는 귀여운 악마 같았다.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날 나는 환타가 아니라 봄볕의 환각에 취한 것이었다. 시작은 한 모금으로 미미했으나 몇 병의 환타를, 아니 봄볕을 마시고 또 마신 끝은 말 그대로 창대한 판타지였다. 찧고 까부는 동안 판타지는 서서히 악몽으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옆구리 터진 김밥을 우겨넣고 난 뒤에 약간의 미심쩍은 기미를 느꼈으나 그때까지는 여전히 판타지에서 헤어날 줄 몰랐다. 그러다가 늦은 오후, 소풍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핏발 선 눈을 번뜩이며 으슥한 덤불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길은 숲을 알지 못했다. 길은 매정하게도 엄폐, 은폐할 만한 것들을 지니지 않았다. 길 위에서 나는 거의 체념하였고, 심판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최후의 눈을 감았다. 그때 아, 신이시여! 건물과 건물 사이 빈터에 누군가 버려놓은 쓰레기더미가 보였다. 가늘게 실눈을 뜨고 보니 그 옆에 우북하게 돋은 쑥대가 찬란한 후광을 두른 채, 여기가 유토피아야, 라고 속삭이듯 나를 향해 손짓을 해댔다. 내가 신의 가호를 인정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단두대의 칼날이 목에 닿기 직전에야 나는 이마를 가린 쑥대밭에 주저앉았고, 염치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어린 양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 나올 수 있었다. 몇 번 입지 않았던 팬티를 과감하게 벗어주는 것으로 쑥대밭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 건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도래하는 미래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말머리에 다시를 붙여본다. 다시 도래하는 미래. 그랬다. 악마의 재림이라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악마가 도래하고 있었다. 가랑가랑 비는 내리고 싸륵싸륵 배는 아파오는데, 오래전 덜 여문 내 엉덩이에 입맞춤하고 사라졌던 악마가 749번 지방도에 강림해 있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머릿속이 바빠졌다. 살기 위해서는 그날 새 팬티를 과감하게 내던졌던 것처럼 길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길을 달려본 사람은 안다. 길이 주는 매력을. 대장정에 나선 이에게 길은 요물이나 다름없다. 나신으로 누운 길은 그 까만 눈동자를 새침하게 내리뜨고는 가볍게 몸을 뒤채며 유혹한다. 길의 매혹에 혼미해지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라고나 할까? 어느 순간 길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장탄식을 토해내기도 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 아니라 걷는 자는 모두 길 왕국의 충복이 되어 길에게 투신하고 헌신한다. 그러나 잔뜩 긴장한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야누스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없다. 혼미한 정신은 길의 유혹에 꿈쩍하지 않는다. 길, 너 없이는 못 한다고 굳게 맹세했던 모든 말들이 모두 부도난 허세였음이 탄로 나는 순간이다. 절세미인과 신방(新房)을 꾸미더라도 뒤가 마려우면 헛일이려니, 앞일 치르고 뒷일 봤다는 말 들어본 적 없다. 이쯤이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당당하게 파혼을 선언하고 길가 밭 언덕으로 기어올랐다. 바짓단을 내림과 동시에 쭈그리고 앉으니 마침 콩잎이 부끄러움을 가린다. 막무가내로 막아댔던 길이 터지자 밤하늘 유성우처럼 내 안의 우주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천지창조의 순간이 이러했을 것이다. 다 끝났다. 여운처럼 발가락부터 정수리까지 야들야들한 비단 한 자락이 아기 걸음처럼 밟고 간다. 환각과 마각의 카타르시스로 부르르 몸이 떤다. 간신히 둘러보니 누리 가운데 나 하나만 외롭게 주저앉은 듯한데, 멀리 산자락들도 한 무더기씩 부려놓은 것처럼 도톰하게 섰다. 눈앞에 안개가 개니 불현듯 참담하여 그제야 엉덩이를 쏘삭이며 간질였던 것이 한낱 볼품없는 풀잎이었음을 안다. 저만치 콩잎들 사이로 껑충한 참깨 꽃이 서넛 질려 있는 것도 보인다. 문득 쓸쓸해진다. 쓸쓸함이란 이런 심정을 두고 하는 말임을 널리 선포해도 좋겠다. 콩잎 서너 장을 뜯어 쥔 채 저만치 늘어져 있는 749번 지방도를 내려다보았다. 뒤를 비우니 장딴지에 힘줄이 불끈 솟는다. 그래, 오늘은 끝장을 보자. 나는 749번 지방도에 올라탄다. 빗줄기가 조금 굵어진 듯하다. 젖은 길은 치명적인 속살을 내보인다. 길 끝은 화심(花心)이렷다? 꽃의 속살을 아니 보지는 못할 일이니, 쓰다 남은 콩잎 한 장 움켜쥐고 우중(雨中) 질주에 속도를 높인다. 애인이여! 너, 거기 꼼짝 말고 기다려라. /문신(시인) * 2004년 <세계일보>, <전북일보> 신춘문예(시),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동시),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문학평론) 당선. 시집 <물가죽 북>, <곁을 주는 일>, 연구서 <현대시의 창작방법과 교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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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8 15:31

[불멸의 백제] (110)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⑥

“오, 왔느냐?” 의자의 절을 받은 태왕비 선화공주가 잔잔한 표정으로 맞는다. “어마마마 부르셨습니까?” 절을 하고 머리를 든 의자는 태왕비 옆에 앉아있는 왕비 교지를 보았다. 의자가 절을 하는 사이에 옆으로 온 것 같다. 시선이 마주쳤을 때 교지가 눈웃음을 쳤다. 그 순간 의자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아름답다. 교지의 나이도 42세, 20대 자식이 있는 나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요염해졌다. 그때 태왕비가 의자에게 물었다. “대왕, 서부 수군항의 항장 이하 지휘관급 11명이 몰사한 사실을 아느냐?” “예, 어마마마.” 허리를 편 의자가 똑바로 태왕비를 보았다. 부친인 선왕(先王) 무왕도 왕비인 선화공주를 어려워했다. 자색을 겸비한 선화공주는 결단력과 용기까지 갖춘 여장부이기도 하다. 백제왕이 되기 전에 소를 키우던 서동과 결혼을 할 만큼 과단성이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부친인 진평왕이 시켰다고 따르는 성품이 아니다. 태왕비의 눈빛이 강해졌다. “그럼 그 극악무도한 범인이 한산성주이며 수군항 항장을 겸임하게 된 덕솔 계백인지도 알겠구나?” “처음 듣습니다.” 놀란 의자가 눈을 크게 떴다. “신라 자객들의 소행이란 보고를 듣고 한산성주 계백에게 시급히 자객단을 잡으라는 전령을 보낸 참입니다. 도대체 누구한테서 들으셨습니까?” “수군항에서 밀사가 왔었다.” “저에게 밀사가 오지 않았습니다.” “나에게 왔다.” “어마마마께 밀사가 오다니요?” 의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임금을 젖혀놓고 태왕비께 밀사가 갔다는 말씀입니까?” “대왕.” 태왕비가 불렀지만 의자가 벌떡 일어서 소리쳤다. “위사장!” “예, 대왕.” 청 밖에서 다 듣고 있던 위사장 협보가 금방 소리쳐 대답했다. 의자가 다시 소리쳐 지시한다. “서부 수군항에서 태왕비께 온 밀사는 신라 첩자가 분명하다. 그놈은 나와 태왕비마마의 사이를 이간질 시키려는 목적으로 온 것이다.” “예, 대왕.” “태왕비마마 전을 샅샅이 뒤져서 찾으라.” “예, 대왕.” “태왕비전과 왕비전을 위사로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외인의 입출을 금한다.” “예, 대왕.” “찾지 못하면 시녀들을 잡아 한 년씩 목을 베어라. 그러면 누군지 밝혀질 것이다. 알았느냐!” “예, 대왕.” 그때 의자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태왕비를 보았다. 왕비 교지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는다. “태왕비마마, 심려하지 마시옵소서. 오늘 중으로 첩자를 찾아낼 것입니다.” “대왕.” 의자의 말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얼굴이 굳어졌던 태왕비가 겨우 불렀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사태를 짐작한 것이다. 의자가 태왕비를 향해 머리를 숙여 절을 했다. “태왕비마마, 옥체를 보중하시옵소서.” “…….” “긴 세월이었습니다. 태왕비마마.” 허리를 편 의자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태왕비를 보았다. “소자도 30여년을 인내하고 있었습니다. 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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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7 20:26

[안도의 알쏭달쏭 우리말 어원] 93. 아들과 딸 - 딸 선호한 모계사회서 유래

딸의 어원은 모계 사회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모계에서 어머니 ‘혈통을 따른다’는 데서 ‘따른다-딸’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은 혈통을 ‘안 따른다’하여 ‘아딸-아달-아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양주동 박사에 의하면 딸의 어원을 ‘앗[小]+딸[女息]’로 보았다. 즉 ‘앗’은 작다의 의미이고 ‘딸’은 말 그대로 딸이므로 ‘작은 딸’이다. 어원적 의미의 해석은 우리 고대 사회가 모계 사회였다는 데서 가능한 추론이다. 다시 말하면 딸은 정계(正系) 상속자이고, 아들은 차계(次系) 상속자였기 때문에 소자(小子, 작은 자식)의 의미를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가족제도를 지배해온 중심 원리는 가계 계승을 위한 직계·부계가족의 원리였다. 장자는 결혼 후 부모와 같이 살면서 부계 중심의 직계가족 형태로 가계를 계승하고, 가계 계승이 바탕이므로 부자 중심의 가족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또 직계가족제도 하에서의 상속제도는 장자 우선과 불균등상속제도로서 가계 계승·제사 상속을 받는 장자가 우선이며, 부인이나 딸은 상속제도에서 제외되었다. 따라서 직계가족 원리가 남아선호·남존여비의 사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제도와 관련해 결혼한 여성에게 남아 출산을 강요했고, 아들을 출산하지 못할 경우는 칠거지악의 하나에 해당해 일방적으로 이혼당하기도 했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말도 있다. 보기만 해도 징그럽고 못생기고 거기에 독까지 있는 두꺼비를 왜 하필 귀한 아들에 비유했을까? 이유는 아들은 기왕이면 똑똑한 아비를 닮은 아들이어야 한다는 데서 유래한다. 여기에서 ‘똑똑한 아비’가 바로 떡두꺼비이다. 똑똑한 아비를 우리말 공식에 대입하면 똑=(똑) 똑=(또)·(ㄱ) 아=(ㅏ) 비=(비) 오른쪽을 세로로 읽으면 똑.또.ㄱ.ㅏ.비=똑또가비= 똑도가비=떡두꺼비가 되어 결국 떡두꺼비는 똑똑 아비의 와전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떡두꺼비의 진실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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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7 20:26

색깔도 농도도 다른 여류 시인 3인의 삶

▲ 김형미 시인과 시집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 윤수하 시인과 시집 <입술이 없는 심장의 소리>. 이은송 시인과 시집 <웃음이 하나 지나가는 밤>. (위에서부터)오늘날 전북 시단을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는 존재인 여류 시인들. 색깔도 농도도 다른 여류 시인 세 명이 각자의 삶으로 엮은 시집을 내놨다. 이들이 존재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시어와 시상, 시학을 비교해 읽는 즐거움이 작지 않다.김형미 시인은 세 번째 시집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로 묵화처럼 고요한, 행간으로 존재하는 시인의 운명을 노래한다. 시인은 온 힘을 다해 쓸쓸함에 맞서고 통증을 삼켜낸다. 그래서 딱 하나만 사랑하는, 딱 한 가지씩만 용서하는 세상이 시인에게는 어쩌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찬바람 불면서 물이 고여들기 시작한다/ 몇 새들이 저 날아온 하늘을 들여다보기 위해/ 물 깊어지는 나뭇가지에 날개를 접고 내려앉는다/ 생숨을 걸어서라도 얻어야 할 것이/ 세상에는 있는 것인가, 곰곰 되작이면서// 그래 사랑할 만한 것이 딱 하나만 있어라” ( ‘시월’ 中) “흰 새가 날아오는 쪽에서 가을이 오고 있다/ 살던 곳의 바람을 죄다 안고서// 딱 한 가지씩만 용서하며 살고 싶다” ( ‘가을’ 中) 문신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김형미 시인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인이라고 평한 뒤 “이런 시인들은 바라보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다만 들여다볼 뿐”이라며 “심연(深淵)이라는 욕망의 물낯에 드리워진 자기 표정을 확인하듯, 자기의 눈으로 오롯하게 들여다볼 때 심연의 무늬는 읽힌다”고 밝히기도 했다. 들여다보는 일은 시선(視線)이 아닌 심선(心線)이 닿아야 하는 문제. 이 심선으로 시인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자신을 알게 된다. 윤수하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입술이 없는 심장의 소리>는 우리의 생을 가로지르는 불가해한 흔적들과 마주하고 있다. 불가사의한 인연 줄에 얽매인 채 이뤄지는 생명의 삶을 이야기한다. 이는 형체와 이름이 없는 존재를 향한 하염없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윤 시인은 우리 몸을 휘감고 있는 이 흔적들을 이미지로 표현한다. 가상이지만 현실과 이어져 있는 이미지. “책 틈에 커피를 흘렸다./ 온종일 그것을 닦느라 뒤졌다./ 그러나 그림자처럼/ 어딘지 자꾸 스며들었다./ 검은 방울은 흩어져 번식했다. 검고 기다란 다리를 휘휘 저어/ 수십 수백 마리의 똑같은 형상이/ 누워있는 내게로 모여들었다.” ( ‘몸속의 거미’ 中) 또 시인은 끝없이 반복되는 생명의 순환 과정을 시작(詩作)의 근거로 삼는다. 그리고 수많은 상처와 흔적이 모여 이룩되는 다채로운 생명의 세계는 자신이 곧 타자가 되는 어떤 세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타자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오홍진 문학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내 안의 흔적을 바탕으로 타자로 나아가는 길은 윤수하 시인이 추구하는 시 쓰기의 길이 된다”며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타자, 혹은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나가 나타나는 지점에서 그의 시가 탄생한다”고 평했다. 첫 번째 시집을 낸 이은송 시인. <웃음이 하나 지나가는 밤>은 오랜 세월 시를 써온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적은 연민의 기록이다. 소멸과 파멸의 시이고, 재생과 탄생의 시이다. 시인은 삶에 내재한 통증을 자각하고, 이를 드러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강력한 생의 의지를 표출한다. 이 시인은 시를 통해 인간은 누구나 병을 앓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자신의 파멸을 생의 절벽까지 밀고 가며 끝내 자기 회생에 대한 갈망에까지 이른다. 그에게 시는 정화와 재생, 자기 구원으로 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어찌 병에 들지 않고 이곳을 건너겠는가/ 오 내 몸의 균열로 들어서는 초록/ 나는 참지 못하고 이슥한 밤이 오면 타라 여신처럼/ 반라의 몸으로 시바 신의 성전으로 스며들 거예요/ 산산이 부서져 파멸당하더라도/ 기어이 저 초록의 음역들을 훔쳐 오고 말 거예요” ( ‘입하’ 中) 초록은 치유와 재생의 상징이듯 시인의 의지는 통증을, 아픔을 감내하면서 기어이 초록으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으로 귀결된다. 시인에게 치유는 아픔을 건너온 단순한 상처의 회복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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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민주
  • 2018.06.07 20:26

[불멸의 백제] (109)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⑤

다음날 아침, 의자가 후궁 백씨의 침전에서 조반을 마친 후에 청에 나가려고 옷을 입을 때 문 밖에서 기척이 났다. “대왕, 태왕비께서 부르십니다.” 태왕비의 시녀다. “그러냐? 곧 뵌다고 말씀드려라.” 소리쳐 대답한 의자가 옆에서 얼굴을 굳히고 선 백씨에게 말했다. “위사장을 부르라.” 백씨가 서둘러 물러나더니 잠시 후에 위사장 협보가 소리 없이 다가와 옆에 섰다. 협보는 덕솔 관등으로 의자가 태자 시절부터 호위를 맡았던 복심이다. 항상 그림자처럼 의자를 따르면서 겉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서 얼굴을 보지 못한 고관들도 많다. 의자가 허리끈을 매면서 협보에게 물었다. “태왕비께서 나를 부르시는 이유를 알겠느냐?” “덕솔 계백이 서부 수군항 지휘관들을 몰사시킨 죄를 주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내가 임금이 된 지 올해로 몇 년째인가?” “3년이 되셨습니다.” “내 나이가 몇인가?” “43세가 되셨지요.” “내가 태자 생활을 몇 년 했지?” “27년을 하셨습니다.” “긴 세월이었어.” “예, 대왕.” “네가 태자 시절부터 내 위사장이었으니 몇 년째냐?” “예, 18년째올시다.” “네 나이가 몇이든가?” “45살입니다.” “그렇지, 나보다 두 살 위였지.” 머리를 끄덕인 의자가 몸을 돌려 협보를 보았다. 눈동자가 깊은 물 속 같다. “내가 너무 어마마마께 주눅이 들어 있었지 않느냐?” “예, 대왕.” 대답은 했지만 협보는 외면했다. 그러나 의자가 말을 잇는다. “태자 위치는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았지. 어마마마의 한마디면 태자 자리에서 밀려날 수도 있었으니까.” “……” “내가 임금이 되고 나서도 그 버릇이 남아 있는 것 같구나. 어마마마가 부르시면 대답부터 하고나서 가슴이 무거워지는 걸 보니까 말이다.” “……” “왕비도 어마마마 등에 업혀서 날 가볍게 보았고.” “대왕.” “말 안 해도 안다.” 눈동자의 초점을 잡은 의자가 협보를 보았다. “위사대를 시켜 병관부 달솔 진재덕, 전내부 덕솔 연기신, 그리고 왕비, 태왕비와 내통한 혐의가 있는 고관을 모두 잡아들여라. 모두 17명이었지?” “예, 대왕.” 협보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눈빛이 강해졌다. “대왕, 반항하면 베리까?” “베어라.” 숨을 고른 의자가 말을 이었다. “너는 내 경호로 남고 부장들을 보내도록 하라. 모두 믿을만한 자들이겠지?” “모두 대왕께 목숨을 바칠 무장들입니다. 염려 마시옵소서.” “그럼 그동안에 나는 태왕비가 부르셨으니 가 뵈어야지.” 의자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방을 나왔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선 후궁 백씨의 어깨를 어루만진 의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묻는다. “내가 오늘, 달라 보이지 않느냐?” 의자는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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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0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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