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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129) 7장 전쟁 ⑤

바다는 오늘도 잔잔하다. 백제해(百濟海)를 나아가는 5척의 선단은 돛을 펴고는 있었지만 바람이 약해서 그냥 떠있는 것 같다. 앞쪽 대선(大船)의 선수에 서있던 계백이 머리를 돌려 김춘추를 보았다. 이 배는 신라선(船)이다. 김춘추가 타고 온 배인 것이다. 김춘추는 의자왕의 지시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대선에 올라 다시 당(唐)을 향해 떠나는 중이다. 계백의 시선을 받은 김춘추가 입을 열었다. “서약서에 쓴대로 내가 신라왕이 되고 나면 바로 백제와 합병을 할 것이오.” 계백은 시선만 주었고 김춘추가 말을 이었다. “그것이 전쟁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안돈시키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오.” 계백은 시선만 주었고 김춘추의 말에 열기가 띠어졌다. “합병에 장애물이 되는 놈들은 제거해야 되겠소. 덕솔이 도와주시오.” “어떻게 말이오?” 계백이 입을 떼었더니 김춘추가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이 배안에도 부사(副使) 김문생, 경호장 김배선, 그리고 그가 데려온 비담 일파의 군관들까지 10여명이나 타고 있소. 그놈들이 귀국하고 나면 내가 백제와 밀약을 맺었다는 소문을 낼 것이 분명하오.” “……” “덕솔이 그놈들을 없애주시오.” 계백이 한동안 김춘추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계백이 손을 들자 옆으로 나솔 윤진, 장덕 백용문, 하도리까지 다가와 섰다. “배에 탄 신라 관리를 모두 갑판으로 모아라.” 그리고는 김춘추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비담 일파가 누군지 적어주시오.” “알겠소.” 김춘추가 아래쪽에 선 아들 김인문을 눈짓으로 부르더니 서둘러 위쪽 누각으로 올라갔다. 명단을 작성하려는 것이다. 이른바 살생부다. 잠시 후에 갑판에 모인 사신 일행중에 정사선(正使船)에 남아있던 관리들의 살육이 일어났다. 김춘추가 적어준 명단대로 비담 일파로 지목된 관리와 군관을 차례로 베어 죽인 것이다. 시체는 바로 바다에 던졌기 때문에 배에는 핏자국만 남았다. 살육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계백이 휘하 장수들과 함께 신라 정사선을 떠난다. 백제 전함을 옆에 붙여놓고 나서 계백이 김춘추에게 말했다. “이찬, 부디 왕위에 오르시오.” “그렇게 되면 1년 안에 신라는 백제와 합병이 될 것이오.” 김춘추가 바로 대답했다. 머리를 끄덕인 계백이 백제선과 연결된 널빤지를 타고 옮겨 갔다. 이윽고 장수들과 군사들까지 모두 옮겨가고 널빤지가 치워졌다. 배가 흔들거리면서 신라선은 동쪽으로 백제 함선은 서쪽으로 떼어져 간다. 거리가 50보쯤 떨어졌을 때 김춘추가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여 계백에게 인사를 했다. 정중한 인사다. 계백과 뒤에 선 장수들이 답례를 했고 배들은 점점 더 멀어졌다. 곧 1백보 거리쯤이 되었을 때 김춘추는 몸을 돌렸다. 그때 김인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님, 합병을 하실 것입니까?” “당연히.” 머리까지 끄덕인 김춘추가 웃음 띤 얼굴로 김인문을 보았다. “신라가 백제를 합병한다. 저 머저리같은 놈들은 그때 모두 죽었거나 아니면 내 발밑에 엎드려 있을 것이다.” 그 시간에 계백이 멀어져가는 신라선을 바라보며 옆에 선 장수들에게 말했다. “김춘추는 지금 우리를 속였다고 웃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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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4 20:38

[불멸의 백제] (128) 7장 전쟁 ④

김춘추는 입을 다물었고 의자의 말이 이어졌다. “그 전(前)에는 왜에도 가서 원군을 요청했다. 그래서 왜에서는 걸사(乞使)가 왔다고 비웃지 않았느냐?” 의자가 김춘추를 노려보았다. “네 용기는 가상하나 믿을만한 위인은 아니다. 너는 오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라를 멸망에서 구해내고 왕이 되려는 욕심뿐이다.” 쓴웃음을 지은 의자의 말이 이어졌다. “교묘한 말재주와 임기응변으로 지금까지 버티어 왔겠지만, 오늘로 네 목을 베어 욕망을 끝내주마. 신라와의 합병을 너에게 맡길 수는 없겠다.” 이제 김춘추는 머리를 숙인 채 말을 잃었고 의자가 말을 맺는다. “일국(一國)의 왕이 되겠다면 제아무리 소국(小國)이라고 해도 신의를 바탕으로 덕을 보여야 하는 법, 너는 세치 혀만으로 지금까지 잘도 버티어 왔구나.” 그리고는 의자가 협보에게 말했다. “청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목을 베어라. 그리고 그 머리를 상자에 담아 편지와 함께 여왕한테 돌려보내라.” “예, 대왕.” 협보의 대답이 끝났을 때 김춘추가 번쩍 머리를 들었다. “대왕, 살려주십시오!” 김춘추의 얼굴을 본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김춘추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김춘추가 울부짖듯이 말했다. “제가 신라 진골 왕족의 가계표와 조직도를 갖고 있습니다. 비담파와 저한테 우호적인 왕족의 도표가 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신라군의 배치도와 병력, 그리고 성(成)의 위치, 허실까지 모두 기록한 자료도 있습니다.” “…….” “만일에 대비해서 품고 다녔던 자료인데 대왕께 바치지요. 신라의 기밀자료를 다 드리는 셈입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김춘추가 부르짖었다. “대왕,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 서류는 제 자식 인문의 몸에 감아 놓았으니 지금 당장 보실 수가 있습니다!” 의자가 성충과 흥수, 계백까지 시선을 마주쳤다. 넷의 표정은 모두 다르다. 의자는 더러운 것을 보았다는 얼굴이 되어 있는가 하면 성충은 토할 것 같은 표정이다. 흥수는 아예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다. 계백만이 김춘추를 쏘아보고 있었는데 마악 칼을 내려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때 의자가 협보에게 말했다. “이놈 아들을 데려와라.” 잠시 후에 청 안에 김인문이 앉아있다. 겁에 질린 김인문은 옷이 벗겨지고 가슴에 감아놓은 헝겊이 풀려 서류가 나올 때까지 몸을 떨기만 했다. 협보가 서류를 바치자 의자와 성충, 흥수, 계백까지 차례로 읽는다. 서류는 여러 장이었고 김춘추의 말대로 다 적혀 있었다. 이윽고 머리를 든 의자가 협보에게 말했다. “저 부자(父子)를 마당으로 데려가서 기다려라.” 협보가 김춘추 옆으로 다가가 목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대왕, 살려주십시오.” 김춘추가 겨우 그렇게 말하더니 김인문과 함께 끌려나갔다. 잠시 청 안에 정적이 덮여졌고 흥수는 아직도 눈을 뜨지 않았다. 그때 의자가 말했다. “그래, 저놈이 신라왕이 될 수도 있겠지.” 의자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비담이 왕이 되는 것보다 저런 놈이 왕위를 잇는 것이 낫겠다.” 계백은 길게 숨을 뱉었다. 이것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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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3 20:32

[불멸의 백제] (127) 7장 전쟁 ③

“내가 김춘추를 보겠다.” 의자가 말했을 때 성충은 한숨을 쉬었지만 흥수의 눈빛이 밝아졌다. 협보가 말을 받는다. “밀행을 하시겠습니까?” “그렇다. 그놈을 도성까지 끌고 온다면 백성들이 구경한다고 소동이 일어날 거다.” “그렇습니다. 대왕, 하지만 기마군 5백기는 끌고 가셔야 합니다.” “1백기로 줄여라. 예비마는 3필씩.” “예, 대왕” 전장에서의 대담처럼 위사장 협보와의 대화는 거침이 없다. 그때 성충이 나섰다. “대왕, 제가 모시지요.” “저도 모셔야 합니다.” 흥수가 거들자 의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대들이 있어야지. 함께 만나서 현장에서 그놈의 생사(生死)를 결정하자.” 의자는 나이 40이 넘어서 왕위에 오른 터라 쓸데없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강압이나 회유로 만들어진 권위는 돌아서면 끝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진정한 권위는 존경과 공감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체험해온 의자다. 측근 대신들에게 격조없이 대하는 것도 그런 자신감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서부 수군항에 밀진의 기마대가 들이닥쳤다. 깃발도, 병참대도 따르지 않는 기동대 1백여기였는데 예비마가 3여필이 따랐고 수군함장 계백이 앞장을 서고 있었다. 계백이 대왕을 모시고 온 것이다. 잠시 후에 수군항의 청에는 삼엄한 경비가 둘러싸였고 곧 성안에 감금되었던 김춘추가 청으로 끌려 들어왔다. 청의 안쪽 수군함장의 자리에 의자가 앉았으며 그 아래쪽 좌우에 성충과 흥수, 계백은 더 아래쪽에 옆모습을 보이고 앉았다. 협보는 청의 출입구 옆쪽에 당검을 쥔채 서있다. 김춘추를 데려온 군사들은 청 아래에서 돌아갔기 때문에 김춘추는 혼자 올라왔다. 이제 넓은 청 안에는 김춘추까지 여섯 명이다. 청의 양쪽은 있었지만 아래쪽으로 경비병들이 이쪽에 등을 보인채 도열하고 있다. 그때 협보가 김춘추에게 말했다. “백제 대왕이시다. 10보 앞에서 꿇고 엎드려라.” “예.” 숨을 들이켜 김춘추가 바로 그자리에서 무릎을 꿇더니 두손으로 청바닥을 짚었다. 그러더니 이마를 청바닥에 붙인채 소리치듯 말했다. “신라의 김춘추가 삼가 백제대왕을 우러러 뵙습니다!” 의자가 지그시 김춘추를 내려다본채 입을 열지 않는다. 머리를 든 김춘추가 의자를 보았다. 얼굴은 상기되었고 두눈이 번들거린다. “대왕, 이렇게 뵙게 되어서 광명이올시다. 이제 김춘추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의자는 표정없는 얼굴로 쳐다만 보았고 김춘추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소인의 생사(生死)를 직접 결정하시려고 이렇게 친히 왕림하셨으니 더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말씀해 주시옵소서.” 그때 의자가 물었다. “네가 신라왕이 되고 싶으냐?” “신라왕이 되고나서 백제와 합병하겠습니다.” 김춘추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서 전쟁으로 생업을 잃고 굶주린 백성들은 안돈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백성들을 위해서 왕위를 버린다는 것이냐?” “그것이 여왕과 선왕(先王)의 뜻이기도 합니다. 대왕.” “그 뜻을 받들어서 네 왕위를 버린다고?” “예, 서약서를 쓰지요.” 그때 의자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너는 고구려에서도 서약서를 썼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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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2 18:20

[불멸의 백제] (126) 7장 전쟁 ②

편지에서 시선을 뗀 성충이 곧 두손으로 의자에게 내밀었다. “대왕, 이것이 끝입니다.” 편지를 받은 의자가 훑어 보고 나서 청바닥에 던졌다. 의자의 시선이 계백에게 옮겨졌다. “포로들은 수군항에 감금하고 있느냐?” “예, 대왕” 계백이 말을 이었다. “김춘추와 아들 김인문, 부사(副使) 김문생은 따로 성안에 격리했고 나머지는 모두 옥에 가두었습니다.” “잘했다.” 의자가 다시 대신들을 둘러보았다. 얼굴에 웃음이 떠올라 있다. “이 여우 같은 이모의 제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기탄없이 말해보라.” “보내시지요.” 바로 흥수가 말했는데 얼굴이 굳어져 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흥수가 말을 이었다. “당왕 이세민은 여왕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신라 사신에게 너희들은 여왕 치하에 있으니 국력이 쇠잔해진다고 꾸짖기까지 했습니다. 김춘추는 제 미래를 위해 당왕에게 가는 것이지만 숙적 비담 세력에 비교하면 역부족입니다.” 흥수는 신중하고 사려가 깊은 성품이다. 의자는 경청했고 흥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김춘추를 베어 죽인다면 상대등 비담이 바로 여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될 것입니다. 김춘추를 비담의 견제 세력으로 남겨 두는것이 이롭습니다. 여왕의 말이 맞습니다.” “어허.” 성충이 탄식부터 하고 나섰다. “역시 내신좌평은 순진해, 사내는 전장에서 칼을 휘둘러봐야 살기(殺氣)를 느낄 수가 있는 거요. 나는 이 여왕의 글 뒤에 숨은 살기를 느낍니다.” 뒷말은 의자에게 했다. 의자가 듣기만 했고 성충의 말이 이어졌다. “여왕은 지난 수십 년간 후계자가 되려는 진골 뼈다귀들의 압박을 견디면서 오직 간계만 늘어났습니다. 이 간계 뒤에 숨은 살기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백제와 신라를 합병한다는 진심이 있었다면 선왕(先王)때 이루고도 남았습니다. 김춘추 이하 사신단을 모두 죽이고 저 편지는 불에 태우는 것이 이롭습니다.” “으음.” 이번에는 의자가 탄식했다. 의자의 시선이 계백에게로 옮겨졌다. “달솔, 네 생각은 어떠냐? 너는 고구려에서부터 김춘추를 겪었을 뿐 아니라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을 죽인 악연이 있다. 네가 본 김춘추는 어떠냐?” “김춘추는 고구려에 갔을 뿐만 아니라 그 전(前)에는 왜에도 다녀갔습니다.” 계백이 말하자 의자는 물론이고 성충과 흥수, 협보까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왜에도 갔단 말인가?” “예, 이번에 잡은 사신단의 경호대장한테서 들었습니다.” 비담 측근 무장인 김배선한테서 들은 것이다. 김배선은 김춘추의 행적을 거침없이 털어 놓았다. 의자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무서운 놈이다. 목숨을 걸고 적지(敵地)에 뛰어드는 이자를 여왕이 가볍게 본 것같다. 왜, 고구려에 이어서 당, 거기에다 지금은 백제땅에 들어와 있는가?” “죽여야 합니다. 대왕.” 성충이 말을 받았다. “비담보다 더 간특한 놈입니다. 그놈이 여왕의 후계자가 되면 합병은 더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이제는 흥수도 입을 다물었고 의자가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렸다.

  • 문학·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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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01 19:05

[안도의 알쏭달쏭 우리말 어원] 96. 방귀(放氣) - 공기를 방출한다는 뜻인'방기'

방귀의 어원은 방기(放氣)로, 공기를 방출한다는 뜻이다. 장 속에 있는 공기가 항문을 통해 빠져나오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인데, 남녀노소 차별 없이 평등하게 누구나 뀐다. 물론 소리의 강약과 진동, 냄새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냄새는 둘째쳐도 그 소리 때문에 방귀를 뀌는 것이 다소 교양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방귀는 왜 생길까?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몸의 소화기 내장 안에 사는 수많은 박테리아들이 섬유질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가스를 만들어 내게 되는데, 뱃속에서 하루에 약 500cc를 만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방귀를 뀌지 않는 것은 불가능 하다. 소리는 다를지라도 변온동물들이 항문에서 가스를 배출하는데 뱀은 소화를 시키는 하나의 과정으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청어와 같은 물고기는 포식자에게 혼란을 주거나 같은 종족들에게 의사표시를 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재미있는 유머가 있다. 방귀를 1자로 표현하면 ‘뽕’ 2자로는 ‘방귀’ 3자로는 ‘똥트림’ 4자로는 ‘가죽피리’ 5자로는 ‘화생방경보’ 6자로는 ‘골짜기의 함성’ 7자로는 ‘계곡의 폭포소리’ 8자로는 ‘쌍바위골 비명 소리’ 9자로는 ‘내적 갈등의 외적 표현’ 10자로는 ‘보리밥의 이유없는 반항’ 17자로는 ‘큰창자 작사, 작은창자 작곡, 십이지장 노래’라는 우스개도 있다. 사람은 하루 평균 15회 정도 방귀를 뀌는데 하루에 배출하는 가스는 최고 2리터 정도 되며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자주 뀌게 된다. 수술환자들에겐 고마운 신호가 되기도 하는 방귀. 나오면 참지 말고 빨리 배출을 해야 건강에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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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18.06.28 20:16

설렘·사랑, 역사의 흔적 노래하다

다방면의 문학 활동을 하며 저서를 냈지만, 시집은 처음이다. 늘그막에 한 첫 시집발간은 시인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첫 시집<바람처럼 살다가>(월간문학출판부)를 낸 김철규 시인(전 전북일보 논설위원)의 이야기다. 김 시인은 “졸작의 시집을 세상에 선보이는 것은 가마 타고 시집가는 기분”이라며 “3,4년 전부터 습작을 해오며 인연을 맺은 원광대 채규판 명예교수(시인)의 추천과 호된 독려로 원고뭉치를 들고 한국문인협회를 찾았다”고 말했다. 30여 년간 칼럼과 수필을 써 온 중견 언론인이자 수필가이기도 한 김철규 시인. 하지만 첫 시집 발간의 기분은 마치 ‘가마 타고 시집가는 신부의 기쁨과 두려움’과 같았다. 그의 시집에는 이러한 설렘과 사랑,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바람처럼 살다가>는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와 2부는 삶을 소재로 그리움을 형상화한 시들이다. 제3부와 4부는 역사의 흔적과 사랑을 대상으로 한 시가 모였다. ‘담쟁이덩굴은 고목이 된 나무의 끝에/ 매달려 있다// 마지막 삶을 이루어 내면서/ 무언가 찾고 있다/ 허공으로 치솟는 이 무량의 아픈 통로에서/ 담쟁이덩굴의 삶을 본다’( ‘담쟁이덩굴을 보면서’ 중) 무언가 찾고 있는 담쟁이덩굴의 삶은 고목과 대조를 이루면서 삶과 죽음으로 대변된다.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담쟁이는 화자 자신이기도 하다. “시인이라는 호칭의 경지에 이르려면 멀고 높은 산을 넘어야 하기에 두렵기도 하죠. 이런 마음에 첫 시집을 내놓는다는 것을 나이 먹은 탓으로 돌리려 합니다. 더욱 열심히 배워 시인이라 부를 만큼의 작품을 내도록 배전의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비롯해 출판을 맡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전북일보 편집부국장과 논설위원, 군산신문·군산뉴스 대표이사 및 사장·부회장을 거쳐 전북도 의회 의장, 금융결제원 상임감사 등을 지냈다. 현재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자문위원이다. 한국문인협회 군산지부회장, 한국수필가협회 운영이사, 전북문인협회 이사, 백두산문학회 회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6.28 20:16

찬란한 전북, 다시 싹 틔우자

2018년은 전라도 정도 천 년과 견훤 왕이 후백제의 왕도를 완산주(전주)에 정한 지 1118년을 맞는 해이다. 이를 계기로 전라도 정도 천 년과 후백제 천 년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해 새로운 도약의 마중물로 삼고자 하는 지역 문화·예술계의 염원이 크다. 산 타는 문학인, 김정길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회장이 이러한 염원을 담아 <천년의 숨결-전라도·후백제 역사문화>를 냈다. 장구한 세월 속에 전라도 전주는 조선시대에는 평양·한양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뤘던 3대 도시였다.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물산이 풍부하고 멋과 맛, 소리가 어우러진 풍류와 예향의 고장이었다. 전라감영에 전라감사를 두고 전라도와 제주도까지 관장했던 전북. 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라도에서마저도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김정길 수필가. 그는 “전라도의 역사적인 위상정립과 전북인의 자긍심을 살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책은 전북과 전주뿐만 아니라 전남·광주, 소록도와 제주도까지 아우르며 지역별로 재조명해야 할 역사·문화 콘텐츠를 소개한다. 국토에 대한 지리적인 안목과 역사 유적에 대한 고증 실력을 갖춘 저자가 마을마다 산재한 설화와 근·현대 인물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선화공주 설화가 깃든 백제의 땅 ‘익산’, 죽창들고 민중봉기한 동학의 땅 ‘정읍’, 모양성과 고인돌·갯벌의 ‘고창’과 지붕없는 미술관으로 불리는 ‘고흥’, 느려서 행복한 섬 ‘신안 증도’, 한센인들의 눈물이 서린 ‘소록도’ 등이다. 김남곤 전 전북예총회장은 “전라의 수려한 산하와 풍요로운 물산, 인물, 설화는 물론 사회, 경제, 역사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된 방대한 자료를 수집·발굴했다는 점에서 노고가 빚어낸 업적의 가치가 매우 크다”며 “여러 날에 걸쳐 필자가 쏟은 시간과 열정, 갈등과 고난이 담아낸 피나는 노업을 편하게 읽기가 미안할 정도이다”고 평했다. 국내 이름난 산이란 산은 모두 밟아본 ‘산사나이’답게 보물 같은 전북 진산(鎭山)들도 소개한다. 동양 최대의 백제 고찰 미륵사를 품은 미륵산, 백제부흥을 도모한 김제 성산, 문장가들의 요람인 완주 고산 사인봉 등이다. 임실 출생인 김 수필가는 전주상공회의소 기획관리실장, 전주시민대학 교수, 영호남수필문학협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전북산악연맹 부회장,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회장,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부회장, 전북수필문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6.28 20:16

우리의 삶터, 애틋한 사연들

30년간 전주 서학동에서 산 주민이 자신의 동네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박영진 글로벌문화협회장의 <학(鶴)동네 이야기>다. 서학동 곳곳에 있는 동네의 옛 모습을 기록하는 일이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흘러 다니는 서학동 이야기들을 모아봤다는 박 회장. 30여 년간 한곳에 있었어도 주변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고 살았죠.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를 유치하면서 우리 고장을 소개하려 하니 막상 생각이 잘 나지 않더군요. 그때부터 관심 두게 됐고, 천 년 전주를 받치고 있는 역사문화 유적이 매우 가까운 곳에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깨닫자마자 시민을 대상으로 동네 유적을 탐방소개하는 전주를 바로 알자!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올해 벌써 3년째다. 박 회장이 직접 주변을 찾아다니고 자료를 조사했다. 매 시간마다 직접 작성해 낱장으로 나눠주던 소개물을 모은 것이 바로 <학동네 이야기>다. 서학동 예술마을을 시작으로 천주교 순교터와 초록바위, 서서학동 벽화와 벽화마을, 완산공원 꽃동산, 반곡서원, 보광재, 충경사, 남천 송수남 화백 유택, 남고산성, 만경대, 서학동과 전추천 각시바위, 남천교 등 학동네 인근 33곳에 대한 설명이 직접 촬영한 사진과 함께 담겼다.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상당수 처음 들어본다는 흑석굴(석탄 채광굴)부터 어르신들이 선비 정신을 되새긴다는 반곡서원, 지난해 새로 생긴 마을을 대표하는 학 상징 조형물까지 근현대를 아우른다. 특히 1961년에 세워져 60여 년간 운영되고 있는 학림경노당을 발견한 것이 뿌듯하다는 박 회장. 초대 이상수 회장부터 58대 박헌문 회장까지 운영을 이어오면서 창건 25주년 기념비, 공적비와 편액 8점을 제작을 하는 등 마을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우리 삶 터의 흔적을 외면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다는 그는 교육을 위해 비매품으로 제작한 것인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아서 전주 한옥마을 일대 등 다른 동네의 이야기들을 보완해 정식으로 출간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6.28 20:16

[불멸의 백제] (125) 7장 전쟁 ①

그로부터 이틀 후, 사비도성의 내궁(內宮) 대왕전 침전 옆방에 의자왕을 중심으로 넷이 둘러앉았다. 성충과 흥수, 계백과 협보다. 계백이 수군항에서 말을 달려 도성으로 온 것이다. 먼저 밀사 하도리를 성충에게 보내 내막을 알려준 터라 의자의 앞에는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신라여왕의 밀서가 놓여져 있다. 때는 밤 술시(8시) 무렵, 방에는 양초를 여러개 밝혀놓아서 밝다. 그러나 모두의 표정은 무겁다. 앞에 놓인 붉은색 비단 보자기가 무슨 흉물(凶物)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선들이 스치기만 한다. 이윽고 성충이 손을 뻗쳐 보자기를 집으면서 말했다. 대왕, 소신이 먼저 보겠습니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이 성충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편지에 독을 묻혔을지도 모르니까요. 헛헛, 신라 여왕이라면 그럴만 하지. 의자가 팔받침에 몸을 기대면서 웃었다. 좌평이 읽어보라. 예, 알겠습니다. 헛기침을 한 성충이 보자기를 풀고 접혀진 밀서를 펴더니 읽었다. 신라여왕이 백제 수군항장에게 보낸다. 신라국 이찬 김춘추는 당(唐)에 여왕의 밀서를 소지하고 당 황제를 만나러 가는 바, 이를 저지, 나포한다면 대전(大戰)의 단초가 될 수가 있다. 그러니 이 편지를 너희 대왕께 보여 결정을 하시도록 하는 것이 낫다. 편지에서 눈을 뗀 성충이 의자에게 말했다. 여왕의 의도대로 되었습니다. 대왕. 그게 끝이냐? 더 남았습니다. 읽겠습니다. 다시 숨을 고른 성충이 읽는다. 그리고 이것은 신라여왕이 백제왕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머리를 든 성충이 의자에게 말했다. 대왕, 그렇게 쓰여있습니다. 읽으라. 성충이 다시 읽는다. 백제왕 의자는 들으라. 너는 내 동생의 아들이니 내가 네 이모가 된다. 너는 내 편지를 이미 갖고 있을테니 이 편지의 필체와 비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네 이모로서 말한다. 어느덧 이마에서 돋아난 땀을 손등으로 닦은 성충이 계속해서 읽는다. 너는 네 어미와 처를 연금시켜 놓았다고 들었다. 신라의 첩자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네 어미는 그 어느 편도 들지 않았고 내부의 허점을 나에게 발설한 적도 없다. 나와 네 어미는 부친의 뜻대로 신라와 백제의 합병, 통일을 추구했던 것이다. 네 아비가 그 증인이다. 네 아비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네 어미를 놔둔 것이다. 그때 시선을 뗀 성충이 의자에게 물었다. 대왕, 계속해서 읽습니까? 왜 그러느냐? 교활합니다. 소신이 읽으면서 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럽니다. 그러자 의자가 웃었다. 계속해서 읽으라.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으니, 점점 재미있어진다. 성충이 다시 읽는다. 의자, 들어라. 김춘추를 그대로 당으로 보내다오. 김춘추가 소지한 당황제에게 보내는 친서에는 안부만 적혀 있다. 김춘추는 여왕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제 미래를 위해서 가는 것이다. 머리를 든 성충이 의자를 보았다. 놀란 얼굴이다. 그때 의자가 소리없이 웃었다. 봐라, 재미있게 되지 않느냐? 대왕, 계속 읽겠습니다. 이제는 성충이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김춘추는 내 후계자가 되려고 하지만 부족하다. 그래서 너한테 더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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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8 19:50

[불멸의 백제] (124)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20

“이것을 받으시오.” 김춘추가 비단으로 감싼 서찰을 내밀면서 말했다. “여왕께서 보내신 서찰이오.” “나한테?” 계백이 눈을 크게 뜨면서 웃었다. “신라 여왕이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백제군의 침입을 알았다고 하더니 과연 그 신하에 그 여왕이구려.” 그러면서도 계백이 서찰을 받았다. 배 안의 모든 시선이 계백과 계백이 쥔 서찰로 모였다. 심지어 부사(副使) 김문생도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그때 계백 옆으로 나솔 윤진이 다가왔다. 윤진은 손에 장검을 쥐고 있었는데 두 눈이 번들거렸다. “덕솔, 궁금하오. 그 편지를 보시지요.” 그때 계백이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내가 신라여왕이 바라는 대로 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중에 읽겠다.” 머리를 돌린 계백이 김춘추를 보았다. “이제는 내가 수군항에서 김공을 대접하겠소. 백제로 돌아갑시다.” 김춘추는 대답하지 않았고 계백이 윤진에게 지시했다. “수군항으로 돌아가세.” 여왕의 편지를 급하게 읽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곧 북이 울렸고 활기찬 수군들의 부르고 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세 척의 대선이 나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포한 신라 대선에는 계백이 올라 대장선(大將船)이 되었다. 생포한 신라 관인과 병사, 수군은 65인이 되었는데 다른 4척의 신라선은 침몰했고 그 배에 탔던 신라인은 모두 죽었다. 계백은 김춘추와 아들 김법민을 제외한 나머지 신라인을 모두 묶어서 선창에 가두었고 발에 족쇄까지 채워 놓았다. 선창 감옥은 배 밑바닥인 데다 올라오는 출구는 1개뿐이다. 갑판 위 2층 누각에는 계백과 나솔 윤진, 장덕 백용문까지 셋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김춘추 부자는 선미 쪽 창고에 가둬 놓았다. “덕솔, 김춘추가 여왕의 편지를 내민 순간에 온몸에서 소름이 돋아났소. 여왕 자매는 귀신이 붙은 모양이오.” 윤진이 말하자 계백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담로에 있을 때 당(唐)의 장수 하나가 귀신을 부린다는 소문이 났어. 그놈이 나타나기 전에는 꼭 불이 났네.” 둘의 시선을 받은 계백이 빙그레 웃었다. “다음날 그놈이 나타나면 군사들이 겁을 먹었지. 그래서 그놈 소문이 화귀(火鬼)였네.” “그놈이 미리 불을 질렀군요.” 백용문의 말에 계백이 머리를 끄덕였다. “미리 군사를 시켜 나타날 곳에 불을 지른 것이지. 난세에는 민심이 불안해서 쉽게 흔들리는 법이야.” “그래서 그 화귀는 어떻게 되었소?” 윤진이 묻자 계백이 쓴웃음을 지었다. “불을 지른 곳에 매복하고 있다가 활로 쏘아 잡았네. 그래서 화귀(火鬼)가 제가 죽을 곳을 미리 알려준 셈이 되었지.” “여왕의 편지는 언제 읽으실 것입니까?” “이 편지가 바로 화귀의 불일세.” 가슴에 든 비단 보자기를 꺼낸 계백이 앞에 놓인 탁자에 놓았다. 그리고는 윤진과 백용문을 번갈아 보았다. 웃음 띤 얼굴이다. “병사 둘을 이 비단 보자기 경비로 세우고 하루 3교대를 시키게. 수군항에 도착하면 병사들이 이 비단 보자기를 함에 넣고 청으로 옮기라고 하게.” “알았습니다.” 윤진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여왕이 화귀였소. 김춘추는 불을 지르려고 온 화귀의 부하였고.” 그때 계백이 정색하고 말했다. “저 편지는 대왕이 계신 자리에서 읽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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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7 18:44

[불멸의 백제] (123)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19

신라선에서 백기(白旗)가 올랐을 때는 3번째 화전이 갑판에 박혔을 때였다. 그것을 본 앞쪽 백제선에서 목청 큰 병사가 소리쳤다. 모두 갑판에 나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라! 이제 백제선은 신라선의 좌우로 50보 거리까지 다가왔는데 배 크기는 비슷했지만 2층 누각이어서 10자(3m)는 더 높았다. 누각에서 10여명의 궁수가 활을 겨누고 있다. 계백은 신라인들이 갑판 위로 모여들더니 하나씩 무릎을 꿇는 것을 보았다. 항복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 사신선(使臣船)을 잡았다. 배 안의 장졸들은 기쁨에 넘쳐 웃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있다. 그때 계백의 지시를 받은 목소리 큰 병사가 다시 소리쳤다. 무기는 모두 한곳에 모아 놓아라. 무기를 소지한 자는 가차없이 베어 죽일 것이다! 배가 흔들리면서 신라 전선에 점점 붙여졌다. 좌우에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거리는 이제 20여보로 가까워져서 양측의 얼굴까지 다 보인다. 누각 위에 서있던 계백은 갑판에 무릎을 꿇고 있는 신라인을 훑어보았다. 2층 맨 뒤쪽에 서있는 고관(高官)의 얼굴로 시선이 옮겨졌다. 그 순간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청색 바탕에 금박을 입힌 관복 차림의 사내, 얼굴이 낯이 익은 얼굴이다. 어디서 보았던가? 그 순간 계백의 눈빛이 강해졌다. 저 해사한 용모, 짙은 눈썹과 단정한 입술, 잘 다듬은 콧수염과 턱수염, 바로 김춘추 아닌가? 그때 배가 신라 배와 부딪치면서 흔들렸다. 수군들이 익숙한 솜씨로 배를 묶고 병사들은 뱃전을 뛰어넘어 신라 배로 옮겨졌다. 앞장을 선 백용문은 장검을 치켜들고 있다. 잠시 후에 신라인은 모두 묶여서 갑판 위에 꿇려졌고 배 안의 수색까지 끝냈다. 계백의 지시에 따라 김춘추는 묶이지 않고 뒤쪽에 서있다. 바다 위에 3척의 대선(大船)이 나란히 묶여서 머물고 있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어느덧 서쪽 수평선 위쪽에 태양이 걸렸고 바다는 은빛으로 반짝였다. 그때서야 계백이 백제선에서 신라선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거침없이 다가간 계백이 김춘추의 다섯 걸음 앞에서 멈춰 섰다. 계백이 신라선으로 넘어온 순간부터 김춘추는 시선을 주고 있던 참이었다. 김춘추는 숨까지 멈춘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계백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계백이다. 김춘추에게는 철천지원수, 대야성에서 사위 김품석을 죽이고 딸을 자결하도록 만든 원수, 거기에다 고구려에서는 고구려 관리로 위장하고 자신을 조롱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제 당에 사신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포로로 잡혔다. 그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김춘추 공이 아니신가? 계백 공이시군. 김춘추가 바로 말을 받는다. 눈빛이 순식간에 풀리면서 어깨가 늘어졌다. 과연 수전산전 다 겪은 신라의 기둥이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김 공하고는 인연이 깊소. 과연 그렇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김춘추가 말을 이었다. 고구려에서는 고구려 관복을 입으셨길래 고구려에 투항하신 것으로 알았소. 그때 신라를 고구려에 바치려고 오셨다가 일이 풀리지 않으셨지요? 지금은 당에 바치려고 가시는 길입니까? 계백 공이 서부 수군항장이 되셨다고 해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소. 과연 신출귀몰하시는 분이시오. 그때 김춘추가 가슴에서 붉은색 비단에 싸인 서찰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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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6 20:47

[불멸의 백제] (122)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18

앗! 부선(副船)이 넘어가오! 부사 김문생이 소리쳤지만, 김춘추는 숨을 죽인 채 대선(大船)인 부선이 화염에 휩싸인 채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보았다. 백제 전함은 화전뿐만이 아니라 포차까지 싣고 있어서 날아온 어른 머리통만 한 돌덩이들이 배를 부쉈기 때문이다. 공격을 받은 지 한식경밖에 지나지 않았다. 백제 전선(戰船) 2척은 교활한 범이었다. 5백보 거리에서 더이상 좁혀 오지 않은채 화전과 돌덩이를 날려 불을 지른 배를 가차 없이 부쉈다. 이쪽은 궁수가 대기하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이다. 김춘추가 탑승한 정선(正船)이 기를 쓰고 백제선에 접근했지만, 그쪽은 대선에도 노가 12개나 있어서 이쪽을 가볍게 떼어놓았다. 발을 굴렀지만 맨 처음에 병사들을 태운 중선(中船)이 먼저 침몰했고 이어서 쾌선 2척이 차례로 부서지더니 바다에서 사라졌다. 그리고서 대선 중 한척인 부선(副船)이 침몰한 것이다. 부선에는 정사(正使)와 부사(副使)를 제외한 사신단 관리들이 다 타고 있었다. 대감! 다급해진 김문생이 김춘추를 불렀다. 놈들이 다가옵니다! 김문생의 얼굴이 누렇게 굳어져 있다. 배 안은 금방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부선은 2백보쯤 앞에서 옆으로 잔뜩 기운 채 불덩이가 되어있다. 바다 위에는 뛰어내린 수군, 병사, 관리들이 가득차 있었지만, 이쪽은 구해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 김춘추는 2척의 백제 전함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거리가 처음으로 4백보 정도까지 좁혀졌다. 지금까지 김춘추가 탄 정사선(正使船), 즉 정선은 단 한대의 화살도 맞지 않았다. 백제선은 다른 4척만 공격했던 것이다. 대감! 김문생이 다시 소리쳐 불렀을 때 김춘추가 머리를 돌려 노려보았다. 잡찬,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예에? 너도 3품 고관이며 부사 아닌가? 이때 어떻게 하는 것이 낫겠는가? 대감, 그, 그것은. 말해보라! 이제 김춘추 옆으로 김인문과 유해성, 경호장 김배선까지 모여들었다. 그때 백제 대선 2척은 2백보 거리까지 다가왔다. 이쪽에서 활을 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대적하려고 하지 않는다.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다. 모두 김춘추와 김문생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김춘추의 시선이 경호장 김배선에게 옮겨졌다. 경호장, 배에 군사가 얼마 남았느냐? 예, 50여명입니다. 백제선은? 예, 1백인은 넘을 것이오. 네 의견을 듣자, 싸워야겠느냐? 모,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니! 이놈! 소인은 싸우라면 싸웁니다! 그때 화전 하나가 날아왔다. 가까운 거리여서 배에서 외침 소리가 나자마자 화전이 돛대 옆에 박히면서 기름이 사방으로 번졌다. 김춘추는 숨을 들이켰다. 백제군은 화전에 불을 붙이지 않고 기름만 매달고 쏜 것이다. 시위를 했다. 그때 백제 대선 한척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앞쪽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선미에서 외치는 소리가 울렸다. 신라선은 멈춰라! 불에 태워 수장시키기 전에 멈추는 것이 나을 것이다! 목소리가 커서 배 안의 신라인은 다 들었다. 다시 백제인이 외쳤다. 신라 사신선(使臣船)의 정사(正使)에게 말한다! 개죽음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돛을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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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5 19:01

[불별의 백제] (121)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17

계백이 옆으로 비스듬히 지나가는 신라 선단을 보았다. 거리는 1천보 정도. 덕솔, 신라 사신선(使臣船)이요! 옆에 선 장덕 백용문이 소리쳤다. 앞쪽 대선(大船)에 사신이 탔을 것입니다! 백용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렸다. 어부가 대어(大漁)를 본 것이나 같다. 계백이 선장에게 지시했다. 전속으로 접근하라! 그 순간 북이 울리더니 전선의 아래쪽 좌우 덮개가 열리면서 노가 6개씩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북소리에 맞춰 노꾼들이 노를 젓기 시작했다. 더구나 돛은 바람을 가득 먹고 부푼 상태다. 신라 대선도 하물을 잔뜩 싣고 있는데다 노가 없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8백보, 7백보, 6백보. 그때 계백이 소리쳤다. 노를 멈춰라! 북소리와 함께 노가 일제히 올라가자 원진을 만들고 나아가던 신라 선단과의 거리가 5백보 정도에서 좁혀지지 않았다. 백용문이 앞쪽을 응시한 채 말했다. 5척이 모두 이쪽에 측면을 보이고 늘어서서 항진합니다. 측면에는 모두 궁수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계백의 눈에도 정연하게 늘어선 궁수들이 보였다. 모두 2백여명, 2백여대의 화살이 일제히 날아오면 위력적이다. 거기에다 불화살까지 날릴 것이다. 이쪽 2척의 전함에는 병사 80여 명이 타고 있을 뿐이다. 그때 계백이 백용문에게 지시했다. 앞쪽 대선 한척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격침시켜라. 예, 덕솔. 기운차게 대답한 백용문이 소리쳤다. 2번선(船)에 연락해라! 2번선은 적함 4번째 5번째를 격침시켜라! 1번선에서 쏘는 것을 신호로 사격하라! 2번선과의 거리는 1백보 정도였으므로 깃발과 고함 신호로 명령이 하달되는 동안 신라 선박은 반월형으로 둥글게 포진한 채 나아가고 있다. 지금 백제 전함 2척은 반월형 진에서 5백보 거리를 유지하면서 좌측으로 따라가는 중이다. 그때 준비가 된 1번선에서 백용문이 소리쳤다. 사격! 그 순간 우측 갑판으로 옮겨놓은 2대의 대궁(大弓)에서 화전(火箭)이 날아갔다. 거대한 불화살이다. 창날 밑에 감긴 아이 머리통만한 가죽 주머니에는 기름이 들었고 심지에는 이미 불이 붙었다. 먼저 발사한 2대의 화전이 5백보를 날아가는 동안 다시 화전이 장착되었다. 1번전(箭)이 떨어진 것을 보고 각도를 조절하려는 것이다. 그때 2대의 화살 중 1대가 신라 전선의 2번선에 명중되었다. 와앗! 배 안에서 함성이 울렸다. 화전은 2번선 돛내 밑에 박히더니 불기둥이 솟아오른 것이다. 화전 하나는 옆 쪽 바다에 떨어졌다. 다시 사격! 백용문이 발을 구르며 소리친 순간 백제 2번선에서 화전이 날아갔다. 2개의 불덩이가 날아가는 것 같다. 잘 겨냥해라! 와앗! 옆쪽 2번선에서 함성이 울렸다. 2번선에서 쏜 화전 2대가 그대로 신라선 4번선에 명중된 것이다. 그때 다시 1번선에서 화전이 날아갔다. 이번에는 3대가 날아간다. 선미에 장착된 화전까지 옮겨와 발사한 것이다. 신라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월형 진(陣)이 흐트러지더니 쾌선 1척은 뒤로 숨는다. 그때 다시 함성이 울렸다. 이번에는 다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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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4 19:50

[불멸의 백제] (120)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16

출항 엿새째, 그동안 바다는 잔잔해서 남서풍을 탄 5척의 함대는 순항했다. 쾌선은 노를 젓지도 않았고 대선(大船)의 앞뒤로 오가면서 심부름을 했다. 함대는 백제령에 들어가 해안을 우측에 두고 북상하는 중이다. 이틀 후면 대양(大洋)으로 나간다. 대륙과 반도 사이의 태양은 폭풍이 잦아서 겨울철에는 위험하다. 다행히 지금은 8월, 함대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북상하고 있다. 대양을 건너려면 순풍을 만나도 보름은 걸린다. 바람이 없거나 역풍을 만나면 한달이 걸릴 때도 있다. “잡찬, 선장한테 속력을 더 내라고 이르게.” 오후 미시(2시)무렵, 선미에 선 김춘추가 부사 김문생에게 일렀다. 김문생은 28세, 진골 왕족인 덕분으로 3품 잡찬 직위에 종을 1백명이나 소유한 부호였는데 상대등 비담의 일족이다. 김문생이 대답도 없이 몸을 돌렸을 때 뒤쪽에 서 있던 시위군관 유해성이 말했다. “나리, 경호장 김배선이 데리고 온 군관 6명중 4명이 전에 데리고 있었던 자들입니다. 심복들이지요.” “놔둬라.” 쓴웃음을 지은 김춘추가 힐끗 앞쪽을 보았다. 그렇다면 군사 태반이 비담의 무리인 셈이다. 김배선은 비담이 신임하는 장수였기 때문이다. 입맛을 다신 유해성이 말을 이었다. “부사(副使)이하 경호장, 군관들까지 모두 상대등 나리의 일파인 것을 여왕께서 아시는지나 모르겠소.” “아시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상대등을 사신으로 보내실 것이지. 도대체….” 그때 왼쪽 난간에 서 있던 김춘추의 아들 김인문이 손으로 바다를 가리켰다. “저기 배가 옵니다.” “무엇이?” 놀란 김춘추가 그쪽을 보았다. 맑은 날씨다.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가 맞닿은 대양(大洋)의 수평선을 김인문이 가리키고 있다. “어디 말이냐?” “저쪽입니다. 두척인데요.” “어허,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유해성도 눈썹 위에 손바닥을 붙이고 보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소인도 안 보이는데요.” 젊은 놈이 시력이 좋은 거냐?” 김춘추가 아직 17살인 김인문을 놀리듯이 말했다. 김인문도 이번에 사신단에 끼어있는 것이다. 견문을 넓혀 주겠다고 참가시켰는데 비담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때 앞쪽에서 선장의 외침이 울렸다. “배다! 전함이다!” 놀란 김춘추가 그쪽으로 다가가며 소리쳐 물었다. “어디 전함이냐?” 김춘추의 얼굴은 찌푸려져 있다. 그때 선장이 손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백제 전함이요! 이쪽으로 옵니다!” 선장의 손끝을 본 김춘추가 숨을 들이켰다. 이제는 보인다. 김인문이 잘 보았다. 2척, 돛대가 2대인 것도 보인다. “원진을 만들어라!” 김춘추가 탄 대선의 선장이 선단의 대장 노릇을 한다. 선장이 소리치자 기수가 깃발을 흔들었고 곧 북소리가 바다 위로 퍼져갔다. 그때는 5척의 배가 모두 다가오는 백제선을 본 터라 금방 대열 정돈이 시작되었다. “궁수는 우측 측면으로!” 선장이 다시 소리쳤다. 해전(海戰)의 시작은 궁수가 한다. 불화살과 화살로 일제 사격을 한 후에 배를 붙여 백병전이다. 상대가 대선 2척뿐이라는 것에 신라군은 사기가 올랐다. 이쪽은 정예로 5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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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1 20:57

‘술타령’ 시인의 ‘무릎 탁’ 치는 문장들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입나/ 술 사먹지 애주가들의 술 사랑을 고백한 시 술타령. 이를 쓴 시인 소야 신천희 씨가 시집 <꾼>과 산문집 <나는 날마다 허물을 벗는다>를 내놨다. 그의 시집과 산문집은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뒤통수를 때린다. 그리곤 악의 없이 빙긋 웃는다. 그는 자신을 미친놈으로, 탕자로 표현한다. 겉치레 없는 솔직함과 당당함이 시집 전반에 깔려있다. 비 맞은 중이 중얼거리듯 얼빠진 놈이 따순 밥 먹고 쉰 소리 지껄이듯 도통 무슨 소릴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詩다/ (중략) 그런 훌륭한 시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시시하게 이러쿵저러쿵하는 나는 미친놈이다 ( 나는 미친놈이다 일부) 애주가답게 낮술, 범생이 술꾼 등 술에 관한 시(詩)도 한쪽 차지하고 있다. 사랑하면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던가.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이 연지 곤지 찍은 얼굴보다 아름답고, 저승에도 술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당장 달려가겠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프로 술꾼의 면모를 엿본다. 술꾼은/ 갈지자 하나는/ 똑 소리 나게 배운다/ 혹시라도/ 잊어버릴까 봐/ 집에 갈 때까지/ 계속/ 복습하며 간다 ( 범생이 술꾼 전문) 시집이 시큼털털하고 씩씩한 사내의 모습 같다면, 산문집은 아기자기한 소녀를 연상케 한다. 크고 비싼 것보다는 예쁘고 깜찍한 것에 관심을 두는 그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불도에 입문한 스님으로 깨달음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면모도 드러난다. 한편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소야 신천희 씨의 출판기념회는 다음 달 1일 오후 5시 전주 아름다운 컨벤션웨딩에서 열린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18.06.21 20:57

온갖 세상사 싣고 달려요, 잉!

과로사회의 최전방에서 장시간 운행을 통해서만 생계유지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직업운전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본문 중) 전주에서 5년째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버스기사 허혁 씨가 글 모음집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수오서재)를 냈다. 그가 버스 안에서 바라본 세상과 사람, 자기 성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버스라는 세상을 책임지는 한 운전사가 전하는 작지만 단단한 삶 이야기다. 하루 열여덟 시간씩 버스를 모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착한 기사였다가 한순간에 가장 비열한 기사가 되는 자신을 마주한 허혁 씨는 그 시간을 자신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왜 버스는 늦게 올까. 왜 기사는 물어봐도 대답도 잘 안 해주고, 왜 선글라스까지 쓰고 인상을 팍팍 쓰고 있던 걸까. 왜 버스는 정류장 앞에 딱 맞춰 서지 않고 급히 좌회전을 해서 몸을 쏠리게 만드는지, 왜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지, 왜 모두 자리를 찾아 앉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지. 이처럼 탑승자들이 가졌던 불만에 대해 버스기사인 저자가 직접 속사정을 전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만든다. 동시에 버스 안에서 느낀 세상의 이치도 전한다. 승객이 신호를 주면 좋은데 우두커니 서 있다. 대형차 기사에게 목숨과도 같은 탄력을 서서히 잃어간다 가뭄에 콩 나듯 정류장 뒤로 몸을 숨겨주는 할머니도 있다. 갑이 을의 노동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미의 정점이라고 본다. 분명 그분들의 삶도 고단했을 것이다.(본문 중) 몸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팔짱 끼고 자신을 부리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생각이나 눈으로는 쉬워 보여도 막상 몸으로 그 기대를 실현해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본문 중) 도로 위에 한 생이 펼쳐져 있다고 말하는 저자. 승객마다 한 생을 짊어지고 오르는 버스는 이야기 공장이자, 인문학의 현장이다. 전주 출생인 허혁 씨는 버스기사를 하기 전 20년간 작은 가구점을 운영했다. 글을 쓰는 직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머리맡에 늘 책을 두고 지냈다. 늘 책에 파묻혀 살다보니 자기가 직접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고 한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쓴 홍세화 작가는 허혁은 사소한 불친절과 냉대 속에서, 이름 없는 존재로 사는 삶 속에서, 하루 열여덟 시간 운전대를 잡는 일상의 행군 속에서 그는 역지사지와 자기성찰에서 비롯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았다며 책이 널리 읽혀 버스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훈훈한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김보현
  • 2018.06.21 20:57

[불멸의 백제] (119)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⑮

자시(밤 12시) 무렵, 내궁(內宮) 안은 무거운 정적에 덮여져 있다. 방안 분위기가 무거웠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어둡다. 상석에 앉은 의자왕도 그렇고 성충과 흥수, 계백, 그리고 말석에 시립한 위사장 협보의 얼굴도 납덩이같다. 방금 의자는 계백으로부터 태왕비 시녀 서진의 이야기에다 선덕여왕이 준 편지까지 읽은 것이다. 붉은 색 기둥에 달린 황초 불꽃이 흔들리고 있다. 이곳은 대왕의 침전 옆 대기실, 사방의 문은 굳게 닫혀졌지만 어디선가 바람이 새어드는 것 같다. 이윽고 의자가 입을 열었다. “그랬었구나.” 탄식하는 것 같다. 의자가 흐려진 눈으로 성충과 계백까지를 차례로 보았다. “그래서 대왕께서 어머니 기를 세워주시려고 애쓰셨구나.” 대왕이란 의자왕의 부친인 무왕(武王)을 말한다. 의자가 말을 이었다. “신라를 복속시켜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이유가 이것이었다.” “대왕.” 마침내 성충이 입을 열었다. 눈빛이 강했고 어깨가 부풀려져 있다. “대왕, 연기신이 여왕의 말을 듣고 왔다지만 믿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신라 내부의 사정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비담, 김춘추의 세력을 견딜 수가 없을 것이오.” 그때 의자의 눈동자에 초점이 잡혔다. “상좌평, 그대는 신라여왕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구나. 당왕(唐王)처럼 여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대왕.” 당황한 성충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렇다. 의자가 부른 당왕(唐王)이란 당황제 태종을 말한다. 태종 이세민을 의자는 당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의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까지 신라가 태왕비와 왕비를 부추겨 백제의 내분을 일으켰다면 이제는 백제가 신라 왕가(王家)를 뒤흔들 차례다.” “대왕, 신라인은 교활합니다.” 흥수가 나섰다. “김춘추는 단신으로 고구려까지 다녀온 지용을 겸비한 후계자입니다. 아예 상종을 안하시는 것이 낫습니다.” “태왕비와 왕비는 보내는 것이 어떨까?” 의자가 자르듯 말하자 방안에 다시 정적이 덮여졌다. 이 경우도 예상하고 온 것이다. 덮어놓고 보고만을 할 고관들이 아니다. 그때 흥수가 입을 열었다. “대왕, 태왕비께서는 선왕이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한 번도 그 이야기를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의자의 시선을 받은 흥수가 말을 이었다. “그러시다가 이번에 연기신 등 첩자 무리가 색출되자 그때서야 신라여왕의 친필 서한을 내보이시며 선왕께서도 알고 계셨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흥수의 말을 성충이 받았다. “대왕, 지금 태왕비 마마를 돌려보내지 마시고 신라에 세력을 굳힐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 낫습니다.” “…….” “그리고 신라여왕이 어떤 복안으로 태왕비마마를 후계자로 만드실 지도 알아야 될 것입니다.” “과연, 그대들 말이 옳다.” 의자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내 어머니가 신라왕이 된다면 좋은 일이지. 선왕께서 이루지 못하신 꿈이었으니까.” 머리를 돌린 의자가 계백을 보았다. “달솔, 네가 잡아두고 있는 그 시녀년을 놓치지 마라. 난 여기서 둘을 놓치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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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6.2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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