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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 수고했다.” 영류왕이 연개소문에게 말했다. “천리장성 축성은 그대의 공이다. 들라.” 잔을 들어 한모금을 삼킨 영류왕은 연개소문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청에 도열해 앉은 2백여 명의 고관, 장수들의 시선이 연개소문에게로 옮겨졌다. 연개소문 혼자서 일어선 것이다. 아직 손에 술잔을 쥐고 있다. 머리에는 옥이 박힌 은관을 썼고 갑옷은 벗고 비단 겉옷 차림이다. “대왕께 아뢰오.” 연개소문의 굵은 목청이 울리자 청 안이 조용해졌다. “대인, 무슨 일이냐?” 영류왕이 지그시 연개소문을 내려다보았다. 연개소문은 5부 대인의 수장(首長) 격이었지만 언제나 영류왕의 견제를 받아왔다. 지금도 좌석 배치가 5부대인의 3번째 서열이며 조정 고관의 아래쪽이다. 어깨를 편 연개소문이 2백여 쌍의 시선을 받고는 그들을 휘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영류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당한 태도다. “대왕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말하라.” 영류왕의 대답이 냉랭해졌다. 그대 술잔을 든 채로 연개소문이 물었다. “대왕께서는 광개토대왕과 장수대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청 안에서는 숨소리도 나지 않았다. 2백여 쌍의 시선이 연개소문과 영류왕을 번갈아 훑어갈 뿐이다. 그때 영류왕이 소리 내어 웃었다. “앗하하. 내가 그대가 묻는 의도를 알겠다. 그 두 분 대왕은 위대하신 왕이시다. 허나 이 건무는 그분들과는 다르다.” 영류왕의 얼굴에서 차츰 웃음기가 가시더니 곧 눈을 치켜뜨고 연개소문을 노려보았다. “나는 백성을 전란에 빠뜨리지 않는다. 그것이 백성과 땅을 지키는 일이다!” 어깨를 부풀린 영류왕이 꾸짖듯 말을 뱉었다. “보국안민이 내가 갈 길이다!” “그렇습니까?”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인 연개소문이 몸을 돌려 둘러앉은 2백여 명의 고관들을 다시 보았다. 영류왕의 기세에 질린 고관들은 모두 숨만 죽이고 있다. 연개소문이 입술의 한쪽 끝만 비틀고는 웃었다. 그리고는 어깨를 한껏 추켜올리더니 술잔을 추켜올리면서 소리쳤다. “고구려는 다시 일어난다!” 벽력같은 외침이 청을 울리자 모두 아연실색을 했다. 다음 순간 연개소문이 들고 있던 술잔을 청 바닥에 내던져 박살을 내었다. “다 죽여라!” 연개소문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이다. 청의 네곳 문으로 군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앞장선 장수들은 모두 연개소문의 심복 무장들이다. “와앗!” 청 안이 무너질 것 같은 함성이 울리면서 당장 살육이 일어났다. 군사들은 닥치는 대로 다 죽인다. 사방의 문으로 끝없이 군사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청 안은 비명과 외침으로 가득 찼다. 연개소문은 달려온 심복 무장으로부터 장검 두 개를 넘겨받았다. 청에 들어오기 전에 모든 관리는 고하를 막론하고 무기를 맡겨 놓아야 했기 때문에 청 안의 고관들은 비무장이었기 때문이다. 연개소문은 칼을 받자마자 옆에서 허둥거리는 남부대인 고정태의 머리통을 내려쳐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연개소문이 소리쳤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서부대인 양수가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에 달려가 등을 찍었다. 가슴으로 칼이 빠져나갔고 양수가 목청이 터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대인! 살려주시오!” 외치는 소리에 머리를 돌렸더니 북부대인 사반이 연개소문의 무장에게 목덜미를 잡힌 참이었다. 무장은 칼을 치켜들고 있다. 연개소문이 소리쳤다. “베어라!” 그리고는 상을 건너뛰어 영류왕에게로 달려갔다. 왕은 세 명의 무장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악을 쓰는 중이었다. 무장들은 칼을 치켜들었지만 베지 못하고 망설인다. 왕인 것이다.
고구려에는 5개 대부족(大部 )이 있는데 연노부, 순노부, 개루부, 관노부, 절노부로 나뉘어졌다. 그 중 연노부(淵奴部)가 가장 강력한 부족이다. 연개소문은 연노부 출신으로 그의 증조부 연광(淵廣), 조부 연자유(淵子遊), 부친 연태조(淵太祚)는 대를 이어 서부대인(西部大人)에다 대대로(大對盧)를 지냈다. 서부대인은 연노부가 서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서쪽은 곧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래서 618년에 즉위한 영류왕 건무와 온건파 대신들은 연개소문의 부친 연태조가 죽자 호전적 성격인 연개소문의 서부대인 세습을 반대했다. 연개소문은 을지문덕이 주장한 북진정책에 호응하는 강경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개소문은 각 호족들과 대신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온건파의 정책에 따를 것을 맹세하고 나서야 서부대인 세습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서부대인이 된 연개소문은 곧 군사들을 모으고 당에 대항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당과의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자신의 영지가 전장(戰場)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맹세는 했지만 을지문덕이 주장한 북진정책은 버리지 않았다. 영류왕은 10여 년 전 고구려의 오랜 맹방인 돌궐의 힐리가한이 당의 이정(李靖)에게 잡히자 그것을 치하하는 사신을 보냈다. 돌궐은 수의 대군이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고구려군의 선봉이 되어서 싸워준 맹방이다. 연개소문을 비롯한 강경파 장수들은 왕의 배신에 치를 떨었다. 왕은 스스로 당의 속국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왕은 당의 사신 진대덕이 오자 길 안내를 시키는 한편, 진대덕이 노골적으로 지형과 방비 상태를 염탐을 해도 막지 않았다. 포로로 잡혀있던 한인들에게 고향으로 곧 데려갈 것이라고 진대덕이 고구려를 무시한 언동을 했는데도 놔두었다. 영류왕 건무는 한때 무용을 날렸던 장군으로 선왕(先王) 영양왕을 도와 수나라 대군을 물리쳤으나 왕이 된 후로는 수비에만 치중했고 당에 저자세를 보인 것이다. 고구려는 5부(部), 3경(京)제로 되어 있었으니 동, 서, 남, 북, 내(內)의 5부에 평양성, 국내성, 한성의 3경(京)이었다. 전국의 성이 176개, 호구가 69만7천호여서 백제의 5부(部), 37군(郡), 200성, 76만호에 620만 인구에 비하면 면적에 비해서 인구가 적은편이다. 의자왕 2년 10월, 영류왕 25년, 평양성. 오늘은 평양성에 5부(部)의 수장들이 다 모였다. 부족의 이름을 따서 내부(內部)는 계루부로도 불렸고 서부(西部)는 연노부, 북부(北部)는 절노부, 동부(東部)는 순노부이며 남부(南部)는 관노부이다. 오늘 서부대인 연개소문이 감독했던 장성투입 병력의 열병식을 한 것이다. 천리장성은 대륙으로부터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세워졌다. 곧 영류왕의 북수남진(北守南進) 정책의 산물로써 16년간의 공사로 완공이 된 것이다. 천리장성은 서부(西部)로 뻗어있었기 때문에 서부대인 연개소문이 공사를 맡아야 했으니 인력과 물자의 손실이 대단했다. 5부대인은 모두가 부족의 장으로 대부분 대를 이어서 대인직을 물려받았다. 따라서 제각기 사병(私兵)을 길러 국경을 지켰는데 연개소문의 서부가 영토도 가장 큰데다 사병의 수도 많았으므로 대인(大人)중의 수장(首長) 노릇을 한다. 5부대인이 청에 좌정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영류왕이 들어섰다. 영류왕 건무는 26대 영양왕의 이복동생으로 6척 장신에 수염이 길었고 눈빛이 맑았다. 영양왕때 수의 대군을 을지문덕과 함께 몰사시킨 용장이었으나 왕이 되자 북수남진 정책을 펴왔다. 영류왕이 용상에 앉아 백관을 둘러보았다. 5부대인과 그들의 중신(重臣)들, 그리고 조정의 고관이 모두 모였으므로 대왕진에 모인 관리는 2백인이 넘는다. “모두 앉으라.” 영류왕이 말하자 모두 자리에 다시 앉는다. 각자의 앞에 술상이 차려져 있어서 왕이 먼저 술잔을 들었다. 시녀가 다가와 잔에 술을 채운다. “이제 북쪽 국경은 그것으로 되었어.” 잔을 들어 올리면서 영류왕이 말하자 대신들도 모두 잔을 들었다. 그 때 영류왕의 시선이 연개소문에게 옮겨졌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내성 안으로 다시 한무리의 신라군이 몰려 들어왔다. 대야군주 김품석의 옷을 창끝에 매달아 성문 앞에 걸어 놓았지만 분을 참지 못하고 쳐들어오는 무리다. “막아라!” 이제는 진궁이 백제군 부대를 지휘한다. 앞장선 진궁이 칼을 휘두르며 마당으로 달려 나갔고 뒤를 군사 수십명이 함성을 지르며 따른다. “나솔! 한솔이 이곳으로 오시고 있소!” 전령한테서 보고를 받은 화청이 소리쳤다. 화청은 온 몸에 피칠을 해서 모습이 끔찍했다. 그러나 상처는 없다. “전령이 오면서 보았는데 신라군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답니다!” 주장(主將)을 잃은 군사는 흩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화청이 칼을 지팡이처럼 짚고 서서 웃었다. “3천 군사로 대야성을 함락시킨 것 같소. 모두 나솔의 공이요!” “내 공이 아니야! 나는 앞장만 섰을 뿐이다!” “대야군주 김품석을 벤 공이 1등 공이요!” 그때 청으로 군사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나솔! 대아찬이 살에 맞았소!” “무엇이!” 놀란 계백이 마당으로 뛰어 내렸을때 군사 셋이 진궁을 메고 들어왔다. 계백과 화청이 달려가자 군사들이 진궁을 마당에 내려 놓았다. 마당 구석에 피워놓은 모닥불에 진궁의 모습이 드러났다.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지만 상대방의 피가 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궁의 가슴 깊숙하게 화살이 박혀져 있다. 본인이 화살을 부러뜨려 절반만 남아 있었어도 가슴 깊숙히 박혀져 있다. “대아찬!” 계백이 진궁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상반신을 부축했다. “대아찬! 살을 빼면 되겠습니다!” 소리쳤지만 전장을 많이 겪은 계백은 이것이 치명상인 것을 알았다. 진궁이 피가 뿌려진 얼굴을 펴고 웃었다. “나솔, 힘껏 싸우고 죽소.” “대아찬!” “나솔, 나를 다르게 불러줄 수 없소?” “장인어른.” 순간 화청이 숨을 들이켜더니 곧 머리를 끄덕였다. 화청도 진궁과의 사연을 아는 것이다. 계백이 진궁의 입가로 흘러나온 피를 손끝으로 닦으며 다시 불렀다. “장인어른, 이렇게 모시게 되어서 죄송하오.” “나솔, 내 딸을 부탁하네.” “염려하지 마시고 떠나시지요.” “사위, 자네를 믿네.” “아버님.” 계백이 진궁의 머리를 두팔로 감아안고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아버님, 극락으로 가시오.” “내가 안심하고 가네.” “고화를 아끼고 살겠습니다.” “고맙네.” 또렷하게 말한 진궁이 계백을 향해 웃어 보이고는 눈을 감았다. 그때 함성이 울리면서 외침 소리가 들렸다. “선봉군이 진입했다!” “들으셨소?” 계백이 소리치듯 진궁에게 묻더니 몸을 마당에 내려놓았다. “나솔! 어디 있는가?” 협반의 목소리가 울렸고 계백이 소리쳤다. “여기 있소!” “만세! 만세!” 함성이 울리면서 협반이 마당으로 뛰쳐 들어왔는데 온몸에서 활기가 넘치고 있다. “나솔! 신라군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어!” 협반이 소리치다가 땅바닥에 눕혀진 진궁을 보더니 주춤했다. “대아찬 아닌가?” “네, 내 장인어른이 가셨소.” 계백이 소리쳐 대답했다. 진궁이 들으라는 것 같다.
“네, 이놈!” 시선이 마주친 순간 김품석이 먼저 외쳤다. 계백과의 거리는 겨우 세걸음, 칼을 내려치면 닿는 거리다. 계백이 가쁜숨을 고른다. 뒤쪽에서도 거친 숨소리가 났고 그 뒤쪽에서는 함성과 외침, 비명으로 가득찬 상황. 그러나 계백의 바로 뒤쪽 무장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잠깐동안 마루방, 복도 사이의 좁은 공간에 짧은 정적이 덮여졌다. 그저 숨 두번쯤 마시고 뱉을 만큼의 정적,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계백의 외침이 정적을 깨뜨렸다. “백제 나솔 계백이 김품석을 친다!” “오!” 김품석이 맞받아 소리치면서 칼을 내질렀지만 이미 기세가 꺾였고 살기가 떨어졌으며 검법 또한 미숙했다. 계백이 김품석의 칼을 겨드랑이 사이로 보내면서 치켜든 칼을 후려쳤다. 맹렬한 살기, 노도와 같은 기세, 빈틈없는 검술이다. “으악!” 비명은 뒤쪽 시녀들한테서 터졌다.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허리까지를 비스듬히 잘린 김품석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우왓!” 계백의 뒤에서 함성이 일어났다. “김품석을 백제 나솔 계백이 베었다!” 화청의 외침이 복도를, 청을, 내성으로 울렸다. 뒤쪽 군사들이 따라 외친다. “김품석을 베었다!” “대야군주 김품석을 백제 나솔 계백이 베었다!” 군사들이 너도 나도 다투어서 외친다. 내성으로 따라 들어왔던 신라군이 외침을 듣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의(戰意)가 꺾인 것이다. 장수들이 독전했지만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백제군의 외침은 더 커졌고 더 넓게 퍼졌다. 신라군은 머리를 잃은 용이 되었다. “무엇이? 김품석을?” 펄쩍 뛰듯이 놀란 한솔 협반이 벌떡 일어섰다. 이곳은 서문의 성루 위, 협반은 북문에서 서문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곳이 지휘하기도 용이했고 윤충의 본군이 진입하기에도 쉬웠기 때문이다. “이, 이런, 나솔이 대야성을 먹었다.” 협반이 반쯤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말했다. “내가 그 뒷수습을 해야겠다.” 어깨를 부풀린 협반을 보고 장덕 하나가 물었다. “한솔, 어쩌시렵니까?” “어쩌기는, 내가 곧장 내성으로 가서 나솔과 합류하는 것이지.” “성문은 어쩌시구요?” “이놈아, 내가 수문장이냐?” 협반이 버럭 화를 냈지만 지금은 전시(戰時)다. 조금전까지 죽고 죽이는 싸움을 끝낸 무장(武將)들이라 거칠어져 있다. “한솔, 우린 고작 2천3백이 남았소, 그 병력으로 1만이 넘는 신라군이 우글거리는 성안을 휘젓는단 말이요? 성문을 지켜서 방령이 오시기를 기다립시다.” “이놈아, 그래서 너는 장덕에서 솔(率)품계로 승진하지 못하는 것이야. 우리가 성안을 휘저으면 머리 잃은 용이 제대로 대항이나 할까?” “용 몸통이 꿈틀거리면 다 깔려죽소!”했지만 장덕의 목소리가 약해졌고 다른 장수들이 거들었다. “가십시다! 2천으로 성을 빼앗읍시다!” “신라군이 열린 서문, 북문으로 도망쳐 나갈 것이오!” 그때 협반에 대들었던 장덕을 손으로 가리켰다. “곽청, 네가 나솔이 될 기회다! 앞장서라!” 그러자 장수들이 ‘와’웃었고 분이 난 장덕이 눈을 부릅떴다. “좋소, 대공을 세워 한솔이 될 것이오!”
“이게 무슨 소리냐?” 김품석이 소리쳤다. 함성과 외침이 울린 것이다. 이어서 비명이 울렸다. “알아보고 오너라.” 이맛살을 찌푸린 김품석이 시녀에게 지시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부인인 소연을 만나러 왔던 것이다. 저녁도 먹지 못했지만 식욕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소음이 더 심해졌다. 이제는 칼날 부딪치는 소리에다 여자들의 비명도 날카롭게 울렸다. “나리, 백제군 일까요?” 소연이 다가와 물었는데 눈을 크게 뜨고 입이 조금 벌어졌다. 겁에 질린 표정이다. 소연의 일생에서 이런 일은 처음 당하는 것이다. “아니, 그럴리가…….” 했지만 김품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마룻바닥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의 외침이 울렸다. “군주(軍主)!, 백제군이 내성에 침입했습니다.” 위사장 김채순이다. “나리.” 놀란 소연이 김품석의 소매를 잡았고 뛰는 발소리는 문 앞에서 멈췄다. 이곳은 침실 옆의 마룻방이다. “군주! 어서 피하십시오!” 그때 마룻바닥을 울리는 무수한 발자국 소리와 함성, 비명이 한꺼번에 울렸다. “이런!” 소연에게 잡힌 소매를 뿌리친 김품석이 허리에 찬 칼을 빼들고는 문을 열었다. “으앗!” 함성이 더 크게 방으로 쏟아졌고 문 앞에 서 있던 김채순이 몸을 돌리면서 김품석을 가로막는 시늉을 했다. 그때 김품석은 복도를 달려오는 무리를 보았다. 신라군이다. 앞장선 신라군은 피 웅덩이에 빠진 것 같았는데 손에 칼을 치켜들고 있다. 그 순간 사내와 김품석의 시선이 마주쳤다. 복도의 기둥에 매달아놓은 등빛에 얼굴이 선명하다. 김품석이다. 계백은 방문 안에 선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바로 알았다. 금박을 입힌 붉은색 겉옷, 흰 얼굴, 그리고 그 뒤에 숨듯이 선 여자, 김품석의 부인이며 김춘추의 딸 소연인가? “으앗!” 함성은 뒤를 따르는 진궁과 화청이 질렀다. 계백은 치켜든 칼을 고쳐쥐었다. 거리는 20보에서 어느덧 7, 8보로 줄어들었다. 이제 가로막는 신라군은 없다. 김품석 앞에 선 무장의 기세가 사납다. 위사장인 것 같다. 내성 안을 통과하면서 따라 들어온 위사, 신라군 대여섯명을 베어 죽였다. “이놈!” 그때 김품석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무장이 벽력같은 고함을 지르더니 달려왔다. 맹렬한 기세, 건장한 체격의 무장은 칼을 치켜들고 단숨에 덮쳐왔다. “이얏!” 그 순간에 계백과 부딪친 무장의 칼이 엄청난 기세로 내려쳐졌다. 계백은 무장에게 달려가면서 무장과는 반대로 치켜든 칼을 내렸다. 그래서 둘이 부딪쳤을 때는 칼이 어깨에 비스듬히 걸쳐진 자세, 수비 자세다. 상대가 내려칠 것을 예상하고 기다린 자세, 그 순간 무장의 칼이 벼락처럼 계백의 머리끝을 쳤다. 기다리고 있던 계백이 어깨를 틀면서 걸치고 있던 칼로 무장의 가슴을 찔렀다. “욱!” 가슴을 관통당한 무장과 몸이 부딪치면서 얼굴이 바로 옆에 놓여졌다. 무장은 숨을 들이켰다가 몸이 젖혀지더니 입으로 솟아오른 피를 계백의 얼굴에 뱉었다. 계백이 어깨로 무장을 밀어 젖히고는 칼을 뽑았다. 자, 다음은?
넋두리는 ‘불만이나 불평을 하소연하는 말’을 뜻한다. 원래는 죽은 이의 넋이 저승에 잘 가기를 비는 굿을 할 때, 무당이 죽은 이의 넋을 대신해 하는 말을 넋두리라고 한다. 굿을 할 때 무당은 죽은 이의 넋을 불러낸다. 죽은 사람은 이러저러한 하소연과 불평을 무당의 입을 통해 쏟아낸다. 넋두리를 하는 것이다. 넋타령, 넋풀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넋두리는 ‘무당이 토해내는 하소연이나 불평’이라는 특수한 의미였다. 점차 뜻이 확대돼 ‘불만을 길게 늘어놓으며 하소연하는 말’이라는 일반적 의미를 갖게 됐다. 넋두리는 못다 산 억울함을 풀어 주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죽음은 삶의 미완성이다. 채 살지 못한 죽음은 곧 채 죽지 못한 삶이다. 그러기에 완전히 죽지 못한 넋은 저승에도 못 가고 중음계를 방황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 넋을 불러들여 넋두리를 하게 하고 원한을 풀게 함으로써 못다 산 삶을 채우게 하며 죽음을 완성케 한다. 완전히 죽은 영만이 비로소 저승으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장수지역 출판사 ‘내일을 여는 책’(대표 김완중)이 사회 이슈를 쉽고 재밌는 동화로 풀어내는 ‘내일을 여는 어린이 시리즈’의 일환으로 일곱 번째 신간 <돼지는 잘못이 없어요>를 출간했다. 장수 출신의 동화작가 박상재 씨가 글을 쓰고 고담 씨가 그림을 그렸다. <돼지는 잘못이 없어요>는 구제역과 살처분을 주제로 한다. 황금 돼지해에 태어난 상우가 그의 친구가 된 아기 돼지 상돈이를 살처분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함께 산 속으로 도망치고, 지켜내는 과정을 담았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구제역이란 무엇이고 왜 생기는지, 동물을 강제로 죽여 매장하는 살처분이 구제역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인지, 한 생명을 인간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도록 했다. “아저씨, 안 돼요. 저 쪽에 따로 있는 돼지는 절대 실어 가시면 안 돼요. 저 돼지는 제 동생이에요.”(<돼지는 잘못이 없어요> 중) 어른이 보는 세상과 동심의 세상은 다를 것이다. 아토피가 심해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사는 상우는 유독 작고 여리게 태어난 새끼 돼지 상돈이를 친구로 여기고 지켜주기로 맘먹는다. ‘동물과 우정을 나누는 것은 동화 속 이야기’일뿐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상우는 ‘술지게미를 먹고 술에 취한 상돈이에게 해장국을 끓여달라’고 부탁하는 등 돼지와 교감한다. “우리 돼지들이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는 것쯤은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왜 병들지도 않은 우리들을 한꺼번에 몰살시키는 거야?”(본문 중) 박상재 작가는 “구제역은 돼지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축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키우는 열악한 축산 환경과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에 다녀온 후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옮기는 것”이라며 “구제역을 예방하기 위해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인 친구(상돈)를 통해 인간의 안전을 위해 다른 종의 생명을 빼앗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묻는다”고 말했다. 구제역이 물러날 때까지 산막에서 상돈이를 지켜낸 상우. 안수연 문학평론가는 “생명과 다른 존재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잘못된 현실의 원인을 찾게 하는 동화 <돼지는 잘못이 없어요>는 아이들을 위한 좋은 삶의 나침반”이라고 말했다.
전주의 갤러리 숨(대표 정소영)이 올해 6년째 진행 중인 기획전 PLATFORM(플랫폼)을 시작한다. PLATFORM은 30대~50대 전북 출신 미술가 7명을 초대해 잇따라 개인전을 펼치는 형식이다. 1년 전 섭외해 신작 위주로 선보인다. 올해는 국형원, 김가슬, 김시오, 노성기, 박종찬, 정하영, 차유림 작가가 참여한다. 첫 번째 주자는 4월 9일부터 21일까지 전시를 여는 김시오 작가다. 그는 지난해 처음 상실에 대한 경험을 했는데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나에겐 처음이기에 특별했다며 전시작들은 대상을 잃고 내가 어떻게 애도의 과정을 거치는지 보여 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4월 1일까지 진행되는 그의 개인전 멀리 있는 그대에게와 이어진다. 맥락은 같이하지만 새로운 작품이 걸린다. 김 작가는 두 개의 전시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열고, 닫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군산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박종찬은 회화뿐만 아니라 설치, 마을도시 기록, 전시 기획과 비평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미술활동가다. 4월 23일부터 5월 4일까지 여는 개인전은 가족사와 작품 활동의 근간인 학교, 군산을 돌아보는 기록물 전시 형식이다. 대학시절부터 예술에 몸을 내던졌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전과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한 정하영 작가(5월 7일~19일). 그는 미술가로서, 여성으로서, 아내와 엄마로서 자신의 삶을 고민한 지점들을 작업으로 풀어냈다. 전북 출신으로 홍익대 및 대학원 판화과를 졸업한 김가슬은 완전한 나만의 장소를 정원에 빗대 표현한다. 전시는 5월 21일~6월 2일까지다. 노성기 작가는 6월 4일부터 16일까지 입체와 평면, 사실과 추상이 공존하는 새로운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선보인다. 고목에 고부조(高浮彫)로 조각해 자개, 한지, 옻, 천연석 등 자연재료를 붙이고 채색하는 기법이 특징이다. 차유림 작가(6월 18일~30일)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꽃다운 시절을 오늘날 여성의 시선에서 다시 바라본다. 7월 4일부터 14일까지 전시를 여는 국형원 작가는 의뢰를 받은 일러스트 작업을 주로 하면서 내 작업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며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 풍경을 일러스트로 작업해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소영 갤러리 숨 대표는 전시는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 약 4개월이라는 대장정이 끝날 때까지 많은 관심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계백, 진궁, 화청이 앞장을 섰고 해준이 뒤를 맡았다. 깊은 밤, 이제 성 안은 전장이 되어서 군사들이 이리저리 몰려 다닐뿐 주민 통행은 그쳐졌다. 240여 명이 된 백제군이 내성을 향해 다가간다. 모두 신라군 복장이어서 지나는 신라군도 이상하게 보지는 않는다. “내성의 성문은 항상 열어 놓았는데 오늘은 어떤지 모르겠소.” 앞장선 진궁이 계백에게 말했다. “내성안 수비군은 정문 안쪽의 위사대 2백명이 전부요. 군주는 청 뒤쪽의 별궁에서 기거하고 있소.” 그때 앞에서 일대의 보군이 뛰어왔다. 앞장선 무장들도 뛴다. 어둠 속에서 군데군데 횃불이 켜져 있어서 군사들의 얼굴은 드러났다. “어디 가는 군사요!” 다가온 군사들에게 소리쳐 물은 사내가 진궁이다. 그때 앞장서 달려오던 무장이 가쁜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서문으로 갑니다! 서문으로 백제군이 왔답니다!” “저런!” 진궁이 놀란듯 소리치자 지나던 무장 하나가 진궁을 알아보았다. “대아찬은 어디 가시오?” “군주께 명을 받으러 가오!” 그러나 달려가는 바람에 대답은 듣지 못했다. 길 모퉁이를 돌자 내성 대문이 보였다. 내성 앞에는 군사들이 무더기로 모여 있었는데 무장들이 소리쳐 구분을 시키고 있다. 출전 준비중이다. 기마군사가 오갔고 전령이 달려오고 들어간다. 대문 앞마당에 모인 군사가 2백 여인이나 되었기 때문에 계백은 긴장했다. “내성으로 곧장 진입합시다.” 계백이 다가가며 말했다. 문이 열려있는 것이다. 성안이 어수선해서 지금까지 2리(1km) 가까운 거리를 오면서 검문을 받지 않은것만 해도 천행이다. 성 안은 군사들로 가득차 있다. 1만 5천 가까운 군사들이다. 이제 내성의 대문과 1백보 거리가 되었다. 그때 옆쪽에서 순찰대가 나타났다. “어디 가시오?” 순찰대장은 12품 대사 벼슬이지만 눈빛이 날카롭고 긴장했다. 뒤를 따르는 순찰대는 10여명, 내성 주둔군 소속이어서 병력 이동에 환하다. 진궁이 순찰대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뒤를 따르는 군사들은 멈추지 않는다. “삼현성에서 온 지원군을 데려오라는 군주의 명을 받고 가는 길이네.” “상현성주 아니시오?” 순찰대장이 진궁을 알아보더니 옆에 선 계백과 화청까지 둘러보았다. “가 보시지요.” “수고하게.” 순찰대장 앞을 지난 백제군이 서둘러 내성의 대문으로 다가갔다. 이제 대문의 정문이 20여보 남았다. 정문 좌우에 선 위병이 다가오는 군사들을 보더니 눈을 둥그렇게 뜨는 것도 보인다. 그때 계백이 뒤쪽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잠깐, 지금 어디로 가시오?” “곧장 갑시다.” 계백의 걸음이 빨라졌고 뒤쪽 순찰대장이 다시 불렀다. “내성으로 군사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셨단 말이오?” “뛰어라!” 계백이 소리치자 진궁, 화청이 달렸고 대문 앞에 선 위사들이 창을 고쳐 쥐었다. 그러나 이미 서너걸음 앞으로 다가온 계백과 진궁이다. “으악!” 위병 하나의 비명이 밤하늘을 울렸다. 화청이 들고 있던 창을 던져 몸통을 꿴 것이다. 그때 진궁이 다른 위병의 몸을 쳤다.
속보= 논란을 빚은 전북문인협회의 고은 조명 강연이 결국 취소됐다. (28일자 10면 보도) 전북문인협회는 2018 전북문학관 문예 아카데미 특강의 일환으로 29일 열 계획이던 고은 시인에 대한 문학 강연을 취소한다고 28일 밝혔다. 애초 내용을 일부 수정하더라도 강연은 진행하겠다는 게 전북문협의 입장이었지만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류희옥 전북문인협회장은 고은 시인의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취지였지만 외부에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 결국 취소하기로 했다. 현재는 어떤 내용과 취지든 말이 날 위험이 있는 분위기라며 도민, 문학인을 위해 예산을 들여 무료로 펼치는 강연인 만큼 이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9일 전북문학관에서는 이복웅 시인이 시인 고은에 대한 잡론- 삶과 문학 그리고 현실 강연 대신 특강 채만식 문학 역정에 대한 재조명을 연다. 김인술 작가의 생명의 밥상 이야기 강연도 진행된다.
“성문을 닫아라!” 계백이 소리쳤다. “서둘러라!” 서문 앞까지 밀어닥친 백제군에 밀린 신라군이 열려진 성문 밖으로 나간 것이다. 백제군을 앞뒤에서 협공한다는 말이 신라군에게 먹히기도 했다. 성문에 달라붙은 백제군이 성문을 닫았다. 요란한 소음이 울리면서 통나무 빗장까지 채워지자 그때서야 성문을 탈취한 실감이 났다. “빼앗았다!” 장덕 안준이 칼을 치켜들고 소리치자 백제군이 함성을 질렀다. “우왓!” 전장이 된 서문 안은 사상자가 즐비했고 아직도 이쪽저쪽에서는 칼 부딪치는 소리와 신음이 울렸다. 백제군 사상자도 수백명이 된다. “안쪽을 지켜라!” 안준이 소리치며 지휘했다. 그때 계백이 화살 끝에 기름을 먹인 헝겊을 매달고는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북문 쪽 하늘을 향해 시위를 한껏 당겼다가 놓았다. 협반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는 계백이 소리쳤다. “자, 가자!” 내성으로 잠입하려는 것이다. “북문은 백제군한테 빼앗겼습니다!” 부장 김용하가 소리쳐 보고했는데 머리칼과 옷자락이 불에 타 그을렸다. “백제군이 열린 성문으로 진입해와서 이미 진을 치고 있소!” “이, 이런.” 당황한 김품석이 벌떡 일어섰다. 내성의 청에서도 북문 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어둠에 덮인 청 안팎은 어수선했다. 북문으로 달려간 무장들이 뛰어 들어왔고 일부는 뛰어 나간다. 이미 군사 배치는 끝냈지만 상황은 수시로 변하고 있다. 그때 김품석이 소리쳤다. “북문을 빼앗아라! 보군 5천을 그쪽으로 보내고 대아찬 그대가 지휘하라!” “예, 군주. 일길찬 한천과 사찬 박기문이 거느리고 있는 2개 부대가 그쪽에서 가깝습니다!” “그대가 이끌고 가라!” 명을 받은 김용하가 한천과 박기문을 데리고 황급히 청을 나갔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성문을 빼앗겼단 말인가?” 분한 표정이 된 김품석이 어깨를 부풀리면서 소리쳤다. “성문 수비군은 자빠져 자고 있었단 말이냐!” 둘러선 무장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북문의 불길을 뚫고 온 수비군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제군이 안에서 친 것을 모른다. “군주, 백제 후속군이 있는지 정찰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장 하나가 묻자 김품석이 머리를 저으며 화를 내었다. “밤이 깊어가는데 성 밖으로 정찰대를 보내란 말이냐? 정찰대를 보내려면 성문을 열어야 하는데 성 밖에서 백제군이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김품석의 전장 경험이 없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둘러선 무장들은 대부분 전장을 겪은 터라 이런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김품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나, 내실에 들어가 있을테니까 전령이 오면 연락을 해라.” 무장들이 허리를 굽혀 김품석을 배웅했다. 김품석이 청을 나가자 주위가 어수선해졌다. 무장들이 둘씩 셋씩 모여서 두런거렸는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전북문인협회가 성추행 파문에 휩싸인 고은 시인을 재조명하는 강연을 마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군산에서 열린 고은 시낭송회가 전국적인 비난을 받고 도시마다 고은 조형물도서관 등 시인의 흔적 지우기에 진땀인 상황에서 고은 시인을 문학의 장으로 소환한 것은 미투로 추락한 고은 시인을 띄워주기 위한 문단 내 움직임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북문학관에서는 29일 오후 3시 시인 고은에 대한 잡론- 삶과 문학 그리고 현실을 주제로 한 강연이 열린다. 문학관을 수탁 운영하는 전북문인협회가 2018 전북문학관 문예 아카데미 특강의 일환으로 이복웅 시인에게 고은 시인의 삶과 작품,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강연을 부탁한 것. 이에 대해 일부 문인과 도민 사이에서 비난이 일고 있다. 연이어 폭로된 그의 성추행을 작품으로 대신 용서 받을 수 없고, 더욱이 고은 시인의 사과와 반성도 없는 상태에서 그에 대한 문학 활동이 이어지는 것은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강연자로 나선 이복웅 시인은 고은의 행동을 정당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의 변명에 나도 화가 나고 잘못은 강연에서 지적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그의 순수 문학성까지 미투에 휘말려 매도돼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어김없이 문학인의 도덕성과 작품성을 분리할 것인가에 대한 시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지역 여론은 대체로 냉담하다. 지역 문인 A씨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역시 행정과 도덕성을 분리해서 봐야 하나. 그렇다면 왜 직위를 내려 놓겠나. 더욱이 자아가 투영되는 문학을 작가와 작품을 분리한다면 진정한 문학으로 볼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전북문인협회가 미투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인 B씨는 문학인을 대표하는 문협이라면 문학계의 성폭력, 작품성과 도덕성 분리 논란 등을 지적하고 공론화해 자정운동을 해도 부족할 판에, 현 시국에서 고은에 대한 특강이라니,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한 결정이다며 고은 시인의 현 상황에 대해 말한다 해도 그걸 직접 본인이 밝혀야지 왜 누군가가 대신 해줘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류희옥 전북문인협회장은 문단 대선배를 보고 글쓰기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처신도 잘 하자,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로 준비한 것이라며 (논란이 불거진만큼)강연자와 상의해 강연 내용을 일부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서문 수문장 나마 여준은 앞쪽에서 외침과 신음 소리가 울렸을 때 그것이 백제군의 기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거리는 1백50보 정도. 어둠 속인데다 앞쪽이 장애물로 가려 보이지 않는다. “싸움이 일어났소!” 당황한 장교 하나가 소리쳤을 때 여준이 소리쳐 꾸짖었다. “동요하지 말라!” 여준은 서문 수문장으로 수문경비병 50여명을 지휘하고 있다. 전고(戰鼓)는 그쳤지만 이제 서문 앞쪽에는 이곳저곳에서 몰려온 군사 7,8백여명이 진을 쳤고 아직도 더 몰려오는 중이다. 그때 함성이 일어났다. 공격진의 함성이다. “수문장! 아군이 밀리고 있소!” 다시 다른 목소리도 울렸다. 이제 소란은 7,80보 정도로 가까워졌다. 밀리고 있다. 백제군이 이미 북문을 탈취했다는 것은 여준도 알고 있었다. 전령이 다녀갔기 때문이다. 그때 여준이 소리쳤다. “성문을 열어라!” 영문을 모르는 군사들이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준이 목소리를 높였다. “밖은 비었다. 밖에서 신라군을 넣어 적을 안팎에서 협공하려는 것이다!” 그때서야 군사들이 움직였고 여준이 다시 소리쳤다. “서둘러라! 곧 남문에서 군사들이 온다!” 거짓말이지만 누가 확인을 하겠는가? 성문을 열고 닫는 것은 수문장 권한이다. 성주 외에는 수문장에게 명령할 사람은 없다. 그때 함성이 더 가까워졌고 육중한 소음을 내면서 성문이 열렸다. 쏟아지는 것처럼 내려가던 백군의 전진 속도가 차츰 느려졌고 싸움은 그만큼 더 격렬해졌다. 그러나 밀고 내려가기는 한다. 성문과 50여보 거리가 되었을 때는 계백과 진궁, 그리고 안진까지 한발짝씩 떼면서 밀고 나가는 상황이다. “쳐라!” 계백이 소리쳤다. “다왔다!” 백제군이 함성으로 응답했다. “와아앗!” 아직 수적으로 우세인데다 이쪽은 격렬한 전의(戰意)를 품고 있는 공격군이다. 신라군은 수세인데다 소극적이어서 기(氣)에서도 밀린다. 그러나 차츰 결사적이 되어서 전투는 치열해졌다. “백제군이여! 이겼다!” 계백이 다시 소리쳤고 뒤를 따르는 백제군이 함성으로 응답했다. 그때다. 앞쪽 성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요란한 소음이 울린 것이다. “성문이 열린다.” 계백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밀고 나가라!” 그때 성루에 선 여준이 군사들에게 소리쳤다. “성문 밖으로 물러서라!” 군사들이 주춤거렸을 때 여준이 다시 외쳤다. “놈들을 밖으로 유인해내는 거다! 밖에서 신라군이 매복하고 있다!” 그말을 들은 성문 수비군이 일제히 몸을 돌려 성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우왓!” 앞장서서 밀던 계백과 진궁, 안진은 갑자기 앞쪽이 느슨해진 것을 깨닫는다. 막아섰던 신라군이 주춤대면서 물러서는 바람에 한번에 서너걸음을 전진했다. “놈들이 도망친다!” 칼을 휘두르며 안진이 소리쳤을 때 신라군이 등을 보이며 어둠 속에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와앗!” 뒤를 백제군이 달려가며 함성을 지른다. “여준이 성문을 열었소!” 가쁜 숨을 뱉으면서 진궁이 계백에게 말했다. “신라군이 모두 밖으로 나가고 있소!” 그때 성루 위에 서 있던 여준이 아래쪽을 내려다 보면서 소리쳤다. “나솔 계시오? 문을 어서 닫으시오!”
계백이 선봉 우군(右軍)이 다가왔을 때 협반에게 말했다. “한솔, 서문을 점령하면 서문 방어는 우군대장에게 맡기고 저는 제 수하 군사를 이끌고 내성으로 잠입하겠소.” “내성으로?” 놀란 협반의 목소리가 커졌다. “김품석이 있는 곳으로 말인가?” “그렇소.” 계백이 한걸음 다가섰다. “제 수하 군사가 모두 신라군 차림이니 성안이 혼란한 틈을 타서 잠입해 보겠소.” “으음.” 결단이 빠른 협반도 눈동자가 흔들렸다. 잠깐 망설이는 것이다. 무모한 작전이다. 그러나 3백 기마군으로 대야성까지 잠입했지 않은가? 처음부터 대야성 공략은 무모했다. 마침내 협반의 눈동자가 고정되었다. 결단을 내린 것이다. “나솔, 해 보겠는가?” “전장에서 군사를 끊임없이 운용해야 됩니다.” “과연.” 협반이 불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눈으로 계백을 보았다. “나솔, 조심하게. 내가 잊지 않겠네.” “서문을 빼앗으면 불화살로 신호를 드리지요. 동시에 저는 내성으로 갑니다.” 계백과 진궁이 몸을 돌렸다. 선봉 우군(右軍) 대장은 장덕 안준이다. 20대 후반으로 눈빛이 무거웠고 키는 작았지만 팔이 길다. 첫눈에도 노련한 무장이다. 1천 기마군이 이제는 보군이 되어서 동산을 넘어가고 있다. 동산은 이미 백제군 좌군이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침없이 나아간다. 신라군은 동산 아래쪽에 집결하고 있다. 백제군이 동산을 점령한 것을 아는 것이다. “장덕.” 계백이 부르자 뒤를 따르던 안준이 바로 옆에 붙었다. 이제 1천3백 가까운 백제군이 동산을 내려가고 있다. 2백보쯤 앞이 신라군 진용이지만 어수선하다. 이쪽저쪽에서 몰려온 부대로 아직 대오가 정비되지 않았다. 다가선 안준이 계백에게 물었다. “부르셨소?” “그대는 나하고 앞장을 서서 서문으로 돌진하세.” “당연한 말씀을 왜 하시오?” “내 수하 군사는 후위에 붙었다가 서문을 탈취하면 곧장 내성으로 갈 거네.” 그때 뒤에서 따르던 장덕 화청이 거들었다. “나솔, 부상자를 두고 와서 250여명이 남았소.” 계백은 숨만 들이켰다. 이제 내성으로 돌진하면 그 이상이, 또는 전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안준이 잇사이로 대답했다. 화청이 뒤로 물러갔고 곧 동산을 내려간 백제군 앞으로 신라군 대열이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창날, 쇠갑옷이 드러났다. 그때 계백과 안준이 쥐고 있던 칼을 치켜들더니 함성도 지르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거리는 30여보 정도, 웅성거리던 신라군은 처음에는 어둠 속에서 덮쳐오는 백제군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쪽저쪽에서 외침이 터졌다. “적이다!” “백제군이다!” 그때는 이미 선두에 선 계백과 안준의 첫 칼이 내려쳐진 후다. “으아악!” 비명이 살기를 솟구치게 한다. 더구나 백제군은 함성도 지르지 않고 덮쳐가는 터라 칼끝에 살기(殺氣)가 더 배었다. 마치 검은 파도처럼 백제군이 쏟아져 내려가면서 살육이 일어났다.
전북재능시낭송협회(지회장 김양원)가 주최주관한 제11회 한국시낭송포럼 동서공감이 오는 31일 오후 4시 전주의 한국전통문화전당 공연장에서 열린다. 2001년 설립된 재능시낭송협회는 전국 시낭송 경연대회와 여름 아카데미를 통해 시 낭송가를 배출하고 시 사랑 운동을 펼치는 단체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오후 7시 전주를 비롯해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시낭송회를 열고, 시낭송 봉사활동도 한다. 동서공감은 시 낭송 공연을 통해 호영남 지역이 문화적으로 소통하고 화합하도록 마련됐다. 전북과 경북, 대구지회 회원 50여 명이 시를 들려준다. 김영진 시인의 아이들만 보면, 복효근 시인의 아내와 다툰 날 밤, 안도 시인의 아내의 손 등이 회원들에 의해 낭송된다. 김양원 전북재능시낭송협회장은 봄에 함께하고 싶은 소망을 모아 호영남 화합의 꽃을 피운다며 가슴으로 시를 이야기하며 행복하고 풍요로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모든 전주시민을 글 쓰는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전주시민문학제가 올해 처음 열린다. 전주시가 주최하고 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가 주관하는 제1회 전주시민문학제는 전주시가 예향의 도시임을 널리 알리는 예술제이다. 전주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범시민 축제로, 시민들의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전주시민문학제는 후백제부터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천년고도의 옛 정취가 남아 있는 전주시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작품 공모전이다. 전주시에 거주하는 시민 누구나(문단 등단자는 제외) 자신의 생각을 원고지나 도화지 위에 마음껏 펼치면 된다. 작품은 4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운문, 산문, 그림일기 부문으로 나눠 공모한다. 운문과 산문의 주제는 전주 천년의 역사와 문화, 전주 팔경과 전주신팔경, 한옥마을 등이다. 그림일기 주제는 덕진연못, 전동성당, 한옥마을, 한복이다. 당선자는 9월께 발표한다. 장원 7명, 차상 7명, 차하 14명, 가작 24명에게 시상한다. 총 시상금은 1000만 원이다. 당선작은 작품집으로 발간하고, 낭송회나 전시회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 이소애 회장은 전주시민문학제는 시민의 문화예술적 소양을 높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며 많은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작품은 한국문인협회 전주지부(전주시 덕진구 가리내로 254 환희B/D 5층)로 우편 또는 방문 제출하면 된다. 문의 063-232-3477.
앞에서 내지른 신라군의 창날을 칼로 쳐 막으면서 계백이 와락 달려들었다. 화광이 충천해서 신라군사의 부릅뜬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으악!” 다음 순간 신라군사가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계백이 몸을 틀면서 칼로 군사의 어깨를 내려친 것이다. 그때 땅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 사이에서 외침이 울렸다. “나솔! 어디 계시오! 선봉장이 찾으시오!” “여기다!” 버럭 소리친 계백이 몸을 틀어 뒤를 보았다. 백제군이 지척으로 몰려왔다. 기마군이다. 계백을 본 기마군들이 달려와 둘러쌌고 일부는 앞으로 밀려가 신라군과 부딪친다. 잠시 후에 계백과 진궁이 한솔 협반과 마주보고 서 있다. 전장(戰場)이어서 아직도 앞쪽에서는 함성과 신음이 터지고 있었지만 많이 줄어들었다. 기마군 3천이 모두 들어온 것이다. 기마군은 기세를 몰아 불에 탄 민가를 뚫고 지나가 옆쪽 동산까지 점령한 상태다. “나솔, 이제 하루만 버티면 되네. 방령께서 내일 저녁에는 진입하실거네.” 협반이 계백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소리치듯 말했다. 협반의 시선이 옆에 선 진궁에게로 옮겨졌다. “대아찬도 수고하셨소.” “때맞춰 잘 오셨습니다.” 계백이 가쁜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곧 신라군이 전열을 정비하고 성문을 탈취하려고 할 것이오.” 진궁이 소리치듯 말했다. “앞뒤에서 협공을 하면 중과부적입니다!” 그렇다. 이제는 탈취한 성문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빼앗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그때 협반의 부장(副將)이 다가와 소리쳤다. 불길을 뚫고 왔기 때문에 옷자락과 머리털이 그을렸다. “옆쪽 동산이 요지요! 그곳에 1천 군사를 배치해야 합니다.” “그럼 네가 가라!” 협반이 바로 지시했다. “좌군(佐軍)을 너한테 맡긴다!” 계백은 협반과는 처음 전쟁을 하지만 곧 전장에 익숙한 장수라는 것을 알았다. 전장에서 장수의 첫째 조건은 빠른 결단이다. 거기에다 냉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 30대 초반의 협반은 백제 대성8족 중 하나인 협( )씨다. 부장이 서둘러 화랑 속으로 사라졌을 때 계백이 협반에게 말했다. “나솔, 저한테 1천 군사를 주시오! 내 군사와 함께 서문을 빼앗겠소.” “서문을?” 되물었던 협반의 눈이 곧 크게 떠졌다. “오오.” 탄성을 뱉은 협반이 소리치듯 말했다. “그렇지, 서문 수문장이 내통하고 있었지. 서문까지 탈취하기로 하자!” 머리를 든 협반이 소리쳤다. “우군(右軍) 대장을 불러라!” 불길을 뚫고 진입하려던 신라군은 거의 격퇴되어서 이제는 백제군만 보인다. 그 사이에 백제군 1진이 옆쪽 동산으로 진출하고 다시 1진이 서문을 탈취하려는 것이다. 백제군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노련한 장수의 용병술이다. 전장에서 군사들을 멈추게 하면 안되는 것이다. “아직 연락이 없느냐!” 그 시간에 김품석이 내성의 청 안에서 소리쳐 물었다. 이제 밤 술시(8시)가 넘은 시간이다. 청 안에 모여선 장수들한테서 살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다. 그때 청 아래에서 무장 하나가 소리쳐 대답했다. “예, 아직 전령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루그룹 이상민 대표가 시급 생활 10년, 경영 생활 10년 노하우를 담은 책 <대한민국 시급 전쟁>을 펴냈다. 이 대표는 더 나은 시급과 조건을 쫓아다니는 생활을 하면서 ‘나라면 풍족한 시급을 주며, 행복한 일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월급쟁이 10년 만에 시급을 주는 사장이 되었다. 경영 생활을 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시급 1만 원 이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해법을 찾았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시급 1만 원이란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20여 년 간의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통해 체화한 ‘물고기 잡는 법’을 공유한다. 그는 이를 일컬어 ‘시급 경영’이라 부른다. 시급 경영의 궁극적인 의미는 시급을 높이기 위해 노·사·정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영 공식’이라는 뜻이다. 난 직원 넌 사장, 난 근로자 넌 경영자, 난 노동자 넌 CEO라는 사고와 용어를 버리고, 모두 함께 사회의 대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 이와 관련해 개발한 시급 공식 ‘팀 시간÷(팀 매출-팀 지출)= 시급’도 소개한다. 팀 매출 최대를 위한 7단계, 팀 지출 최소를 위한 7원칙, 시간 최소를 위한 7원칙, 이익 최대를 위한 7원칙 등도 자세히 설명한다. 이 대표는 “우리는 시급보다 더 중요한 삶의 근원적 이유와 성찰 그리고 바른 생각인 ‘철학’을 가장 먼저 설정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시급 얼마에 흔들리지 않고 시급 그 이상을 굳건히 만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이희두 시인이 펴낸 신간 <그땐 그랬지>(계간문예)에는 어둠속에서 밝음을 찾아가는 노력이 담겼다. ‘봄의 노래’, ‘도시와 농촌’, ‘촛불, 교회’, ‘낮과 밤’ 등 총 7부로 구성돼 150여 편의 시가 수록돼있다. 호병탁 문학 평론가는 “세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글, 순박한 어법, 가식 없는 무심한 문장들이 이례적으로 다가왔다”며 “하지만 가슴에 담은 지극한 정서를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언어로 진솔하게 쓰는 것, 그래서 울림을 주는 것이 시라고 믿는다. 이희두의 시가 바로 그런 작품”이라고 말했다.
예로부터 내려온 물고기(생선)의 어원을 살펴보자. 생선 이름 뒤에는 대개 치와 어가 붙는다. 그런데 이것은 비늘의 유무로 구분한다. 즉 어자가 붙는 생선은 비늘이 있고, 치자가 붙는 생선은 비늘이 없다. 갈치, 넙치, 참치, 날치, 가물치와 붕어, 잉어, 숭어 등을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장어나 문어, 홍어는 어떤가? 따라서 단순히 비늘의 유무에 따라서 치와 어로 구분했다는 말은 보편적이기는 하나 좀 의구심이 든다. 다음은 생선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자. 갈치가 지금은 비싼 생선이지만 예전에는 고등어와 함께 서민들이 주로 먹는 싸구려 반찬거리였다. 그런데 옛날에는 칼치라고도 불렀다. 이는 그 모양이 칼(刀)과 같이 생겨 칼의 고어인 '갏'에서 ㅎ이 없어지고 갈이 되었고 뒤에 접미사 치가 붙어서 갈치가 되었다. 문어는 글을 쓰는 선비처럼 먹물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글월 문(文)자를 넣어 지어졌다고도 하고, 조선시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문어가 사람의 민머리(대머리)와 닮아서 민어라 부르다가 문어라 변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경상도에서는 언제나 제사상에 문어가 오른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잘 잡히지 않는 명태는 함경북도 명천에 태 씨 성을 가진 어부가 있었는데 어떤 물고기를 낚아 관찰사에게 바쳤는데 그 관찰사가 이를 아주 맛있게 먹고 그 이름을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가 바로 지방의 명자와 어부의 성 태자를 붙여 명태라 부르게 하였다. 복어는 위협을 느끼면 배를 부풀리는 습성이 있어 배 복(腹)과 관련이 있다. <본초강목>에서는 고대 중국의 미인 서시의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희다며 서시유(西施乳)라고 했다. 바지락은 깊이 20㎝ 안팎의 얕은 개흙 속에 살며 번식력 좋다. 개펄에서 이 조개가 바지락 바지락 소리를 내며 밟힌 데서 유래했다. 백합은 조개껍데기 무늬가 100가지나 될 정도로 다양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노래 통해 전주에 활기 불어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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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전북문화 2025] ②성과와 과제 함께 남긴 2025 전북 국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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