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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권하고 싶은 책] ⑨이현수 시인-월간 '좋은생각'

어린 시절, 어머니는 도루코 칼로 연필 깎아주곤 하셨다. 자동연필깎이는 연필심을 빨리 닳게 한다고 나중에는 직접 손으로 깎게 하셨다. 물론 어릴 때에는 친구집에 들러 필통 속의 연필을 죄다 자동연필깎이로 깎아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필자는 아직도 연필을 쓴다. 어디 번듯하게 내놓을 필체는 아니지만, 무엇이든 우선은 연필로 쓰는 것이 참 좋다. 그래서 책상에는 잘 깎인 뾰족한 연필들이 늘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사실, 게으른 필자가 뭔가를 끼적거리는 이유에는 '연필의 힘'이 크다. 무엇이든 쓰게 하는 것도, 간혹 읽을 만한 졸작을 만들어내는 것도 모두다 연필 덕분이기 때문이다. 연필 덕을 보고 사는 필자로서는 연필이 지닌 위대한 힘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그래서인지 연필을 닮은 책들이 참 좋다. 인쇄술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몽글몽글하고 뭉글뭉글한 사람 사는 이야기가 좋다는 것이다. 책을 펼치면 그 단단하고 날렵한 활자에도 연필의 기억이 살아 있다. 누군가가 또박또박 사각사각 써내려갔을 두근거리는 이야기들이 있고, 잘 부러져도 침 묻혀가며 꼭 꼭 눌러쓴 연필심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도 하다.1992년 8월에 창간하여 지난 20년 가까이 한결같이 밝고 긍정적인 사람들의 따뜻한 삶을 담아온 월간 「좋은생각」.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잡지에는 우리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있다.그러므로 이것은 책이 아니라 편지다. 누군가가 그대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그대에게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깃들어 있는지 받아들자마자 읽고 싶지만 그렇다고 성급하게 뜯어버릴 수 없는 편지다. 이윽고 조심스레 가장자리를 잘라내고 종이를 펼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래서 더욱 소중한 손 글씨가 보인다. 쓰여 있는 이야기는 눈으로 읽고, 쓰여 있지 않은 이야기는 마음으로 읽는다.악필이든 아니든, 손 글씨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 성격, 기분, 상황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눈매와 입매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여 편지를 읽다보면 그 사람이 봄을 닮았는지, 여름을 닮았는지, 가을 혹은 겨울을 닮았는지 알게 된다. 고백할까 말까 주저하는 사람의 손 글씨와 한달음에 써 내려간 사람의 손 글씨도 꽤나 다르다. 손 글씨의 매력은 이런 데 있다. 행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진정,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다.이 책은 우리의 가족, 친구, 이웃들이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편지에 담아 일궈낸 것이다. 따라서 옆집 아주머니, 뒷집 총각 같은 평범한 이웃의 기쁨과 아픔과 웃음, 추억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니 정갈한 활자가 심장을 꿰뚫을 때가 있다. 책 한 권이 마음을 후려칠 때가 있다. 지우고 쓰고, 지우고 썼을 손 글씨가 느껴지는 '참'다운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좋은 생각」.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는, 36.5℃의 사람 사는 이야기.오늘 밤, 그대에게 길고 긴 편지를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연필을 깎아야겠다.▲ 이현수 시인은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0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1.10 23:02

[전북문화 지형도] ①문학

올해 전북 문단의 기상도는 어떻게 펼쳐질까. 전북작가회의(회장 이병천)가 1월 새로운 수장을 맞으면서 집행부를 다시 꾸린다. '제1회 전국 문학관 대표자 회의'가 2월 최명희문학관에서 마련되고, 격월간지 「수필과 비평」이 창간 20주년을 맞아 월간지로 거듭나면서 지역 문단을 풍성하게 살찌울 것으로 보인다. 장편소설 부문으로 5000만원의 상금이 걸린 '제1회 혼불문학상'이 올해 8월 첫 주인공을 기다린다.▲ 전북문협, 전북문학관 추진…전북작가회의, 새로운 집행부전북문인협회(회장 이동희·이하 전북문협)는 올해도 문단 안팎으로 다양한 소통을 시도한다. 무엇보다 지난해 하반기 개관 예정이었던 전북문학관의 예산을 확보해 문향(文鄕)의 맥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전북도의 지원으로 지역 작가 46명의 책들을 구입해 도내 56곳 작은 도서관에 비치한 전북문협은 올해도 이 사업을 확대할 계획. 「전북문단」과 전북문협 신문 발행, 새만금 문학제와 전북도민해변문예대학 추진 등을 통해 문단 내 화합의 장을 마련하면서 새로운 문인들이 등단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전북작가회의(회장 이병천)는 올해 신임 회장을 선출하면서, 새롭게 집행부를 꾸린다. 기존 사업을 수행하는 데 그쳐왔다는 지적을 받은 전북작가회의는 젊은 작가들의 활동 침체, 회원 가입 정체를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시도할 계획이다.▲ 신아출판사, 출간 20주년 맞아 「수필과 비평」 월간지로 펴내신아출판사(대표 서정환)는 매년 100권 가까이 책을 출간해오면서 '중앙 문학의 권력화','지역 문학의 종속화'라는 등식을 깨뜨려온 곳이다. 신아출판사는 올해 창간 20주년을 맞은 「수필과 비평」을 격월이 아닌 월간지로 새롭게 출간하면서, 중앙에서 우수 문예지로 꼽혔던 「문예연구」를 비롯해 「소년 문학」, 「좋은 수필사」, 「계간문예」 등을 펴내 지역 문단을 지켜간다. 수필이 변두리 문학으로 천대받던 시절 수필의 문학적 가치를 조명해왔던 신아출판사는 「좋은 수필사」를 통해 '현대 수필가 100인선'을 선정, 한국 수필 문학사도 새롭게 정리하고 있다.▲ '제1회 전국 문학관 대표자 회의' 2월 개최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이 '제1회 전국 문학관 대표자 회의'를 2월 전주로 유치했다. 한국문학관협회(회장 김후란)가 창립 이래 지역에서 처음 갖는 행사로 지역 문학관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담론이 전주에서 이어진다. 최명희문학관은 올해 '문학인과 돌려 읽는 헌 책'과 '문학 강연 지원 사업'을 신설, 서가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을 기증 받아 관람객에게 제공하면서 대학·동호회·문학단체 등에서 신청 받아 '최명희와 혼불','전주의 문학'을 테마로 한 문학 강연을 지원한다. 소설가 최명희씨를 비롯해 작고 문인 조명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전주와 전북의 역사적 전통을 세우는 일에도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혼불문학상 첫 공모…다양한 문학상 내실 다져야문학상은 현재 문학계 지형도를 알려주는 바로미터다. 올해는 상금 5000만원이 걸린 장편소설 공모전 혼불문학상이 제정된 첫 해다. 전주문화방송이 주최하고, 혼불문학상제정위원회가 주관한 혼불문학상은 앞으로 전북을 문학의 고장으로 각인시키고, 전북 문단의 맥을 이어가는 공모전으로 거듭날 것으로 예상된다.하지만 도내에 문학상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데다 사숙관계나 친분관계로 수상작가가 결정되는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한 문화예술인은 "문학상의 이념 부재, 심사위원의 친분관계로 문학상이 정해져 중견·원로 작가들의 공로 잔치로 보일 때가 많다"고 꼬집으면서 " 평균적으로 미학적인 모범성을 갖춘 작품에 상을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특별한 개성에 주는 상은 많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1.01.10 23:02

[키워드로 책 읽기] 중국

새해를 맞으면 반자동적으로 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다이어리 준비하기 같은 소소한 일부터 새해에 빠뜨릴 수 없는 한해의 결심 같은 것들이 그 예. 다이어트 하기와 금연은 새해면 등장하는 단골손님이고 모르긴 몰라도 영어 공부는 영원히 지속될 다짐 중 하나다. 이런 결심들과 함께 2011년은 책 읽기도 더해보면 어떨까? 핸드폰이나 컴퓨터 스크린에 뜬 글자가 아닌 종이에 프린트 된 활자를 읽는 즐거움을 느껴보면 좋겠다. 그래서 혹시나 이미 책 읽기를 결심한 독자가 이번 '키워드로 책 읽기'를 참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제 선택하기가 더 힘들었다. 너무 무거운 주제면 시작과 동시에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주제는 피하고 싶은 생각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고민 끝에 선택한 이번 주 키워드는 바로 '중국'이다. 세계의 대세로 떠오른 중국을 책으로 읽고 나 스스로를 넘어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다소 무거운 키워드가 될지도 몰라 입문서로 이 책을 먼저 추천한다.▲ 20세기 중국사(알랭 루 저/ 책과함께/ 2만원)저자는 중국을 연구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중국학자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만들어 좀 더 객관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역사서. 무엇보다 입문서에 걸맞게 '중국사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열쇠'로 책을 시작해 역사를 두려워하는 독자에게도 친절히 다가온다. 청 제국의 몰락을 시작으로 무력항쟁과 마오쩌둥주의의 해체까지 20세기 중국을 다루고 있으며 다양한 문헌자료를 이용하고 있다. 더불어 중국에서 방영된 연속극이나 영화, 그리고 외국에서 만들어진 중국 관련 인터넷 자료, 간행물을 더해 사회적인 사건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 지난 100년을 정리한 연표와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약력 또한 일목요연하게 파악 할 수 있도록 제공해 책을 읽는데 참고할 수 있다. 겉으로만 보는 중국이 아닌 그 안의 사회가 진짜 겪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들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알 수 있어 읽어 볼만한 책. 21세기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다.▲ 차이나 트렌드(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중앙북스/ 1만 8,000원)과거의 중국을 이해했다면 급속도로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은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차이나 트렌드」는 현재의 중국과 중국이 나아갈 방향을 한눈에 파악하는데 완벽한 책. 중국의 동향을 많은 도표와 그림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넘쳐나는 중국에 대한 분석과 보도를 정리하고 필요한 부분만을 알짜배기만 정리한 것. 경제 이슈부터 정치, 사회, 군사 등 중국의 모든 정보를 포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뽑은 11개의 키워드를 따라 책을 읽다보면 중국의 진짜 모습이 보이게 될 것. 내수시장이나 외교 인터넷등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만 뽑아 읽기에도 편리하다. 전문가가 만들었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도 거부감이 없도록 노력한 흔적이 돋보이는 책.▲ 중화를 찾아서(위치우이/ 미래인/ 2만원)앞의 두 권의 책이 외국인이 바라본 중국이라면 「중화를 찾아서」는 예술평론가이자 문화사학자인 중국인 위치우이가 생각하는 중국. 특히 이 책은 중국을 문화사로 풀어내고 있다. 고대의 하상주 시대에서 현대의 문화대혁명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중화문화의 흐름을 되짚어 가는 것. 저자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는 한족 중심의 중화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중국의 대국주의와 대중화주의가 한족 위주의 혈통주의로 빠져 흑백논리로 판단하게 된다는 지적에서 찾을 수 있다. 중화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외부 문화를 적극적으로 흡수해야 한다는 의외의 주장이 새롭게 다가오며 독자들에게 또 다른 생각의 기회를 줄 것이라 기대된다. 또한, 우리 자신에게는 중화주의에 무조선 휩쓸려서는 안된다는 경고가 되는 책.「중화를 찾아서」가 절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책들을 통해 중국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다면 가장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인 것은 틀림없다.

  • 문학·출판
  • 황주연
  • 2011.01.07 23:02

소설가 이외수 에세이집 '코끼리에 날개 달아주기' 출간

"젊음을 색깔로 표현하면 초록이다. 그러나 갈색이나 똥색인 젊음도 있다. 희망을 상실한 젊음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라. 한평생 어둠만 지속되는 인생은 없다. 다만 지금은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하자."(401쪽)트위터 스타인 소설가 이외수(64) 씨의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해냄 펴냄)가 나왔다.1992년 출간된 에세이집 '흐린 세상 건너기'의 일부 원고에 작가가 새로 쓴 글과 에세이집 '하악하악' 등에 참여했던 박경진 씨의 그림을 더한 개정증보판이다.삶의 지혜를 담은 동서고금의 글들을 수록했던 원작에서 명언을 빼고 다양한 일화만 실었으며, 생각의 여운을 남기는 이씨의 짧은 글 119편을 추가했다.이씨는 "모든 하루는 모든 인생의 중심"이라며 하루하루에 소중하고 충실히 보낼 것을 당부하고 "슬픔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아프냐. 더 아픈 것들을 굳게 끌어안으라. 그러면 지금 아픔은 저절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슬프냐. 더 슬픈 것들을 굳게 끌어안으라. 그러면 지금 슬픔은 저절로사라져버릴 것이다."(59쪽) 또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하기 싫은 일 열 가지를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절망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절망이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고 용기를 불어넣는다.416쪽. 1만2천800원.

  • 문학·출판
  • 연합
  • 2011.01.06 23:02

'조용필의 음악세계' 펴낸 김익두 전북대 교수

'한국의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조용필도 환갑을 넘겼다. 엄습했던 환갑의 공포를 이겨낸 그는 지난해 소록도에서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가졌다. 그의 음악은 이제 소외된 이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김익두 전북대 국문학과 교수(56)가 '국민 가수' 조용필의 인생이 담긴 「조용필의 음악세계」(평민사)를 펴냈다."노래 잘하는 가수는 많은데, 노래로 자기 세계를 구축한 가수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나는 조용필 노래에서 '한국적 정한'이 담겨 있다고 봤어요. 그의 모든 노래에 샘이자 뿌리죠."그와 조용필의 만남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조용필 매니저 장두익의 소개로 그를 만났다"며 키는 작지만 아우라가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조용필은 당시 '한(恨)'을 강조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망국의 한이 시대적인 한이라면, 고려가요 '가시리'와 김소월의 '진달래꽃' 등에서 노래되는 민족 정서의 한을 정확하게 짚었다고 적었다. 그래서 조용필의 노래는 미당 서정주의 시(詩)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 겨울의 찻집'은 서정주의 '동천(冬天)'과 닮았다고 했다."그의 노래는 정한을 폭발적으로 토로하는 노래가 아니라, 그것을 가만히 응시하고 관조하고 서서히 체념해 가는 노래입니다. 그 정한을 아름답게 정화(淨化)해 나가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시인의 일생을 대변해주는 자전적인 시가 있듯, 가수에게도 가수의 삶을 대변해주는 자전적인 노래가 있다. 조용필의 대표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김희갑 양인자 부부의 작사·작곡에 의해 나온 작품. 이들 부부는 "조용필은 술을 마시면서도 음악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며 "라이브 음악만 고집하는 걸 보면 진정한 프로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그는 조용필의 성음·창법·가사·반주·공연 등에 관한 음악적 성과를 집대성했다. 지난해 초고를 탈고해 10년 가까이 걸린 작업. 그는 "전공이 아닌 분야라 힘들었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매달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그는 은퇴 후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전북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제2회 「객석」 예술평론상(1991), 제3회 판소리 학술상(2003), 제3회 노정 학술상(2003) 등을 수상했으며, 우리의 전통 소리에도 조예가 깊어 「전북의 민요」,「전북의 노동요」, 「위도 띠뱃놀이」 등을 출간한 바 있다.

  • 문학·출판
  • 황주연
  • 2011.01.06 23:02

가람기념사업회 '가람시학 창간호' 발간

가람기념사업회(회장 김제현)는 4일 가람 이병기 선생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자 최근에 '가람시학 창간호'를 발간했다고 밝혔다.창간호는 46판 변형으로 가로 17.5cm, 세로 21cm이며, 386쪽의 방대한 분량이다.또한 이번 창간호에는 익산시 조례에 따라 시상하는 가람시조문학상의 역대 수상자 30명 가운데 12명의 작품 등 모두 117명의 시조시인들의 대표작과 신작이 수록되어 있다.전국의 내로라 하는 시조시인들의 작품을 총망라하여 시조집을 내는 경우는 문단에서 매우 보기 드문 사례다.특히 이번 창간호는 특집으로 제29회·제30회 가람시조문학상을 수상한 김영재·유재영 시조시인의 수상작과 대표작, 제1회·제2회 가람시조신인 문학상을 받은 정용국·이송희 시조시인의 수상작과 대표작을 실어 눈길을 끌고 있다.이 밖에 제2회 가람시조문학제 때 주제 발표에 나선 경기대 이지엽 교수의 '가람 시조의 탈정형 형식 일고', 한양대 유성호 교수의 '정형 양식의 위의로서의 음악성'이란 글도 실려 있고, 가람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제1회, 제2회 전국시조백일장 수상작도 실려있다.한편 가람기념사업회는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정신을 계승하는 추모 사업을 펼치면서 시조 보급 활동에 나서고 있는 단체로, 시조시인과 각계인사, 주민 등 회원 1100여명으로 조직되어 있다.

  • 문학·출판
  • 엄철호
  • 2011.01.05 23:02

전국 신춘문예 주춤…'전북 문단' 힘 떨어졌나

해마다 기대 이상으로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안겼던 전북 문단이 올해는 조용하다. 올해 전국 신춘문예에 전북 지역에서 당선된 이들은 문화일보 희곡 부문 노대원(28)씨, 전북일보 동화 부문 홍인재(43)씨, 전북도민일보 시 부문 하미경(42)씨와 수필 부문 배귀선(54)씨. 매년 조선일보, 서울신문, 문화일보 등 전국에서 강세를 보였던 전북의 문청(文靑)들이 올해는 전북 문단의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같은 현실은 다변화된 글쓰기 환경, 젊은층의 사그라든 글쓰기 열기 등이 작용한다.박태건 원광대 교수는 "올해 신춘문예 등단자 숫자만으로 문단의 열기가 줄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5년 전부터 문청들의 문학에 대한 촉기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국 대학에 문예창작학과(이하 문창과)가 생기면서 신춘문예가 문창과 졸업생·재학생 중심의 글쓰기 공모전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분석. 박 교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상금이 있으면 도전해 보고 아니면 말고 식의 사고방식도 만연돼 있다"며 "문학에 대한 시각이 판이하게 달라졌다"고도 했다.이병천 전북작가회의 회장(소설가)은 젊은층이 신춘문예 도전에 시들해진 것에 대해 완성하거나 바꿔야 할 현실이 없고, 지켜야 하는 주체도 없고, 부채의식이나 짊어져야 할 상처도 없는 이들에게 문학은 더이상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문학이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직시한 결과이기도 하다"며 "자신만의 윤리를 만들거나 아예 이 환상이나 비현실적 질서로 일탈하는 경향도 보인다"고 설명했다.신춘문예가 여전히 실력 있는 예비 문인들의 관문이기는 해도 다변화된 글쓰기 환경으로 그 권위가 약해졌다는 분석도 있다.박성우 시인은 "이젠 고급 독자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며 "평생교육원·문화의집에서 뒤늦게 글쓰기 수업을 받는 중년층이 카페나 블로그, 미니홈피 등에 '생활형 글쓰기'를 하면서 신춘문예가 작가가 되기 위한 절박한 통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시인은 "등단을 했더라도 출판시장이 어렵기 때문에 괜찮은 출판사에서 시집 한 권 내기가 힘든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최명표 문학평론가도 "젊은층이 신춘문예 보다 방송작가에 관심이 높은 것도 글쓰기와 밥벌이를 연관시키기 때문"이라며 "또한 사회구조와 현실의 작동 방식에 대해 글을 쓰기 보다는 살아가는 것의 고통스러움을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풀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1.01.04 23:02

[내가 권하고 싶은 책] ⑧안성덕 시인-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겼다는 다산 정약용의 글 중에 어느 것인들 귀하지 않을까마는, 오래전부터 가서(家書) 가계(家誡) 증서들이야말로 다산의 인품과 철학·문학사상을 제대로 나타낸 글이라 정평이 나 있다.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 편역으로 1979년 시인사에서 출간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1991년 「창비」로 판권이 넘어가 창비교양문고로 출간되고, 이후 2001년 개정판으로 출간되었으며, 2009년 초간본 발행 30주년을 기념하여 네 번째 개정 증보판으로 출간되었다. 이처럼 이 책이 장기 스터디셀러가 된 것은 그가 보낸 편지 속에 인간 정약용의 진정성이 담겨서이며, 또 그의 인간적 면모나 사상 및 학문에 대한 관심사 등 그의 삶 전체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정약용이 유배지 남도 땅에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와 가훈으로 내려준 편지, 흑산도에서 귀양 살던 둘째 형님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친지들에게 교훈삼아 내려준 편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편지로 구별되어 있으며, 하나의 편지에 들어있는 여러 주제는 주제별로 간략한 제목이 붙어 있다."내가 밤낮으로 애태우며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너희들 뼈가 점점 굳어지고 기운이 거칠어져 한두 해 더 지나버리면 완전히 내 뜻을 저버리고 보잘 것 없는 생활로 빠져버리고 말 것만 같은 초조감 때문이다. 작년에는 그런 걱정에 병까지 얻었다. 지난여름은 앓다가 세월을 허송했으며 10월 이후로는 더 말하지 않겠다." (1803년 정월 초하루,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척박한 유배의 삶을 살면서도 고향의 두 아들 학연과 학유를 독촉하고 격려한 200여 년 전의 아버지 정약용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몇 해 전 야구방망이를 사람에게 휘둘러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모 대기업 총수의 도를 넘은 맹목적 자식사랑에 오버랩 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개인주의 팽배로 점차 가족윤리가 무너지고 스승과 제자간의 의리 또한 무너지고 있는 세상에 내리는 서늘한 죽비 소리이다. 편역자의 말대로 우리는 다산이 그토록 강조했던 효(孝)와 제(弟)의 정신과 스승과 제자 간의 간절한 편지글을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과 사제 간의 참다운 의리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들의 삶의 방향을 점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시가 좋고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문장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며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 오늘날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바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200년이라는 시차를 넘어 다산의 서간문은 여러 의미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자식교육법과 독서법을 눈여겨볼 수 있을 것이며, 대학자이자 정치가, 사상가였던 인간 정약용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전통적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소중한 우리의 미풍양속과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안성덕 시인은 정읍 출생으로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한국전력 전주전력관리처에 몸담고 있으며 원광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이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1.03 23:02

지평선 문학상 제정, 김제 문인들 뭉쳤다

하늘과 황금들판이 만나는 풍요의 땅에서 문기(文氣)를 받은 김제 문인들이 뭉쳤다. 지난 2008년 결성된 '지평선 시동인(회장 장종권)'은 김제 출생이면서 다른 지역에 거주하거나 김제에 사는 문인들로 한국 시단에서 활동을 하는 이들로 구성됐다."동인을 만들어 시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80년대 이야기구요, 각기 확고한 시 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침체된 김제 문학을 끌어올려 전국적인 문학의 성지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을 낸 겁니다."회원들은 장종권 회장을 주축으로 4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중견 시인들. 서규정 김유석 이인순 장경기씨 등은 각기 경향신문, 서울신문 신춘문예 를 통해 등단했고, 「문학과 비평」, 「현대시」 등을 통해 문단에 나온 이들로 문학적 역량이 남다르다. 이들은 매년 두 번 정기 모임을 통해 지평선 문학상(가칭) 제정을 통해 김제 지역 젊은 시인을 발굴하고, 작가들에게 창작의욕을 고취시키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장 회장은 "강원 박인환 문학상, 전남 여수 해양문학상, 강진 영랑문학상, 등 지역을 대표하는 문학상을 제정했거나 제정하고 있지만, 김제는 걸음마 수준"이라며 "김제 문학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밝혔다.

  • 문학·출판
  • 황주연
  • 2011.01.03 23:02

[2011 신춘문예] 탈 - 홍인재

그것은 문구점 한쪽 구석진 곳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처박혀 있었어. 아이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리는 거야. 무심코 집어 들었어. 그리고 숨을 잔뜩 들이마셨다가 켜켜이 쌓인 먼지를 젖 먹던 힘을 내어 불어내고 손으로 대충 닦았어. 불그레한 얼굴에 이마는 툭 튀어 나오고 눈은 뻥 뚫려 있었어. 주먹코는 납작한데 입은 헤벌리고 있는 거야. 참, 볼만하더군.-그래, 바로 이거야.등교시간 문구점 안은 학교에 준비물을 사 가려는 아이들로 북새통이었어. 모두들 서로 먼저 계산을 하려고 아우성이었지.-짜식들, 학교에 좀 늦으면 어때서.난 맨 뒤에서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다 아이들이 다 빠져나간 다음에 계산대로 갔어."아저씨, 이거 얼마에요?""어. 수민이 왔니? 근데 이게 뭐지. 처음 보는 건데. 이거 어디에 있었니?"아저씨가 그것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어."저 안쪽 선반에요. 얼마에요? 나 많이 늦었는데.""글쎄. 가격을 잘 모르겠는데. 이거 얼마를 받아야 하나. 그냥 오백 원만 내라."학교 가는 길에 바람이 찼어. 휘파람이 절로 나더군. 맘에 드는 물건을 손에 넣어서 정말 기뻤어.'땡'하고 2교시 끝 종이 울리자마자 난 그것을 꺼냈어. 순식간에 아이들이 내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더니 모두들 한마디씩 했지."우와, 이거 재밌게 생겼다.""한번 써보면 안될까?"난 애들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어. 그리고 거들먹거리며 절대로 안 된다고 했지. 그렇게 애들을 따돌리고 그것을 요리조리 살펴보니 안쪽에 깨알 같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어. 마법의 주문처럼.'억울할 때 탈을 써봐.'미술시간은 정말 시끄러웠지. 그런데 그 틈을 비집고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어.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나는 금방 눈치 챘지. 내 짝꿍 찬이가 몰래 방귀 뀐 것을 말이야. 이런 기회를 그냥 넘길 내가 아니지. 나는 벌떡 일어나 손나팔을 만들었어."아-. 아-. 주민여러분.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김찬. 아-.아-. 바로 우리 반 김찬이라는 아이가 똥방구를 뀌었으니 모두 방독면을 쓰고 대피하시기 바랍니다."교실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어. 그 시끄럽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어. 내가 홈런을 친 거야. 잠시 후 상황 파악을 했는지 남자 아이들은 교실바닥을 떼굴떼굴 구르고 여자아이들은 책상을 치며 웃었어. 찬이만 얼굴이 빨개진 채 주먹을 치켜들고 나를 노려보았어.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지.바로 그때였어."아야! 아……. 아파요."순간 하늘이 노래지고 별 수천 개가 떴어.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어. 찬이가 아닌 벌름코에게 귓불을 잡혔어. 벌름코가 누구냐고? 벌름코는 바로 우리 선생님이야. 화가 났을 때마다 코를 벌름거린다고 우리가 지어준 별명이지. 벌름코가 눈을 치켜뜨고 양쪽 귀를 잡아 당겼어."너 이놈의 자식. 또 사고 쳤지?"벌름코는 그 우악스러운 손으로 내 귀를 잡고 한껏 위로 끌어올렸어. 난 양쪽 귀를 잡혀 허공에 뜬 채 발을 동동 굴렀어. 귓불에 불이 난 것 같았지 뭐야. 한참 후에야 벌름코가 귀를 놓아 주었어.근데 너무 아프고 억울해서 질금질금 눈물이 새어 나오는 거야.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이 창피해서 그 탈을 얼굴에 썼어.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데 억울했어. 내가 놀리긴 했지만 찬이가 방귀를 뀐 건 사실이잖아.-억울해. 정말 억울해. 나는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탈을 쓴 채 벌름코를 노려보며 중얼거렸어. 그러자 그 일이 터진 거야. 그 이상한 탈이 내 얼굴에 딱 달라붙으면서 녹는 거 같았어. 약간 따끔거렸어. 머리가 잠시 어지러웠고 몸도 조금 붕 뜬 것 같았지."어, 선생님이 왜 여기 앉아 있어요?"바로 그때, 옆에서 애들이 웅성거리며 나한테 말하는 거야."선생님, 화장실 좀 갔다 와도 돼요?"이어서 성재가 날 보며 물었어.-얘가 미쳤나. 왜 날 보고 선생님이래.근데 더욱 놀라운 일은 그때부터야. 앞을 보니 저 멀리 벌름코 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린 눈이 딱 마주쳤어. 놀라 등잔만 해진 눈이 정말 볼만했어. 난 순간 이 상황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거야. 그러나 아직 벌름코는 상황 파악을 못 했는지 성재한테 큰 소리로 말하는 거야."안 돼. 수업 끝나고 가."그러자 성재가 큰소리로 말했어."야, 수민이 너 이 자식. 왜 네가 거기에 앉아 있어. 그리고 선생님한테 물었는데 네가 왜 대답해?"벌름코가 벌떡 일어섰어. 그리고는 바람처럼 달려와서는 평소 버릇대로 성재 머리에 꿀밤을 먹였어. 그러자 성재가 벌름코한테 달려들었어. 난 이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정리가 되었어. 그래, 그랬어. 내가 선생님이 되어 있었던 거야. 선생님은 내가 되어 있었고. 웃음이 쿡쿡 나왔어. 난 벌름코처럼 큰 소리로 힘차게 말했어."이놈의 자식들 그만하지 못해."간신히 둘을 떼어놓고 난 후 양쪽 다 귓불을 한껏 잡아 당겼지. 그리고 벌름코 머리를 한 대 더 쥐어박았어. 벌름코 눈에서 불꽃이 '파박'하고 튀었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벌름코를 향해 씩하고 웃어주었어. 벌름코가 뭐라고 하려다 입을 꾹 다무는 게 보였어. 아마 이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없었겠지.이제 교실에서는 내가 왕이었어.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었지. 사회시간에는 자율학습을 시켰어. 책상 사이를 걸어 다니며 숨소리도 못 내게 했지. 떠드는 애들은 귀를 잡아 당겼어. 특히 뒷자리에 앉아서 힘세다고 거들먹거리던 놈들을 주로 말이야. 국어시간에는 인심을 썼어. 오락시간을 주니까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지. 모두들 신나게 떠들었어. 하도 떠드니까 옆 반 선생님이 우리 교실을 들여다보러 와서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냥 가버렸어.근데 4교시 수학시간이 문제였어. 또 자습을 시키려고 하는데 민지가 손을 번쩍 들고 말하는 거야."선생님, 질문 하나 해도 돼요?"그리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수학책을 들고 앞으로 나오는 거야. 민지는 내가 우리 반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였어. 하얀 얼굴에 긴 생머리를 멀리서만 봐도 심장이 콩닥거렸거든. 그런 민지가 내 옆에 얼굴을 바짝 대고 문제를 물어보는데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어.-이대로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그때 내 얼굴에 아마 종이를 갖다 대면 불이 붙고도 남았을 거야. 그런데 아뿔싸. 민지는 도형을 그리는 방법을 물어보았어. 곱하기 정도라면 모를까 도형을 어떻게 그리지? 어떻게든 민지에게 잘 보여야 하는데 내 머릿속이 캄캄한 터널 같았어. 아이들이 숨을 죽인 채 날 바라보았어. 서른 개의 까만 눈동자가 일시에 날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지.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 내렸어.-아! 어떻게 해야 하지.앞이 캄캄했어. 그런데 다시 또 누군가 손을 들었어. 벌름코였어. 나와 눈이 마주친 벌름코가 한쪽 눈을 찡긋했어."선생님, 그거 제가 설명하면 안 될까요?"벌름코가 또박또박 말했어.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어. 난 못이기는 척하고 벌름코에게 기회를 주었지. 벌름코가 매끄럽게 설명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어."와! 수민아. 너 정말 잘한다."아이들이 모두 한 마디씩 했지. 민지가 살짝 웃는 모습이 보였어. 다행히 벌름코 덕분에 위기를 넘겼어.-벌름코. 아까 내 귀 잡아당긴 것 용서해줄게. 이젠 억울한 거 다 가셨어.바로 그 때였어. 내 중얼거림이 끝남과 동시에 약간 어지러움이 느껴졌어."수민아, 탈 벗고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야지."벌름코가 웃으며 선생님 의자에 앉아있던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어.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도 내 얼굴에 아까 그 탈이 씌워져 있었던 거야.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교실에 벌름코와 나만 남았어. 선생님이 코를 벌름거리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셨어. 벌름거리는 코를 보자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어. 한참 후에 벌름코가 씩 웃으며 말했어."수민아, 그 탈 좀 빌릴 수 없을까?"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반전의 묘미, 재미 살린 판타지

신춘문예라는 등용문은 언제나 응모자들과 더불어 심사하는 사람의 마음도 설레게 한다. 예심을 거쳐서 넘겨받은 작품은 '탈' 등 6편이었다.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은 각자 읽고 또 읽어보면서 거르기를 했다. 그런 다음 작품마다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았다.'다섯 병의 붉은 와인'은 주인공이 어린이고 어린이 입장에서 써졌는가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아빠는 슈퍼맨'은 실업문제를 다룬 소재로 어린이들의 생활과 약간의 거리가 있고, 교훈성도 그리 크지 않았다.'그래도 난 행운이야'는 낚시 이야기로 생명존중과 환경문제를 다루었으나 조금은 작위적이어서 공감을 얻어내기 어렵지 않나 싶다.'인형그리기'는 생활동화로 우리주변에서 겪을 법한 일을 재미있게 써 주었다. 그러나 좀 더 참신한 소재와 시각으로 도전하는 자세가 보태졌으면 했다. '얼음나무'는 도입부에서 독특한 과학적 분위기가 돋보였다. 후반부로 오면서 긴장감을 이어가지 못한 점과 코가 찡한 감동이 따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당선작으로 올린 '탈'은 우선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갖게 했다. 문장도 어린이 입장에서의 단문이며, 군더더기가 없었다. 내용도 학교 교실 안에서 있을 법한 실감나는 이야기였다. 또 어린이가 주인공인 점과 구성에서도 "억울할 때 탈을 써 봐."라는 반전의 묘미를 살려서 재미를 주었다. 다만 탈을 쓰는 장면, 즉 환상의 세계로 전환 되는 개연성이 더 그럴법하게 드러났었더라면 하는 욕심을 부려보고 싶었다. 한편 환타지 동화로 대성을 기대해 보고 싶기도 했다.동화는 미래를 창출하는 예지를 담고, 따뜻한 마음과 희망을 안겨 주어야 한다고 본다.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정진을 바라며 당선을 축하하고, 도전한 다른 분들께도 격려를 보낸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동화 다시 만나면서 행복한 꿈"

2년 전이군요. 아이들과 독서캠프에서 꿈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나는 그 때 꿈은 어릴 적에만 갖는 것이 아니라고, 살아있는 동안 내내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내 꿈은 내가 쓴 동화를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들려주는 거라고 말했었습니다.그런데 생각해보니 교사가 되고 아이들과 함께하면서부터 잊어버렸던 동화를 만나면서부터 꿈을 꾸었었나 봅니다.동화를 쓰면서 동화속의 수민이를 만나고 수민이가 되어 생각하고 수민이가 되어 웃으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수민이도 되고 방귀 뀐 찬이도 되고 민지가 되기도 하면서 즐거웠습니다.나는 앞으로도 왕벚나무 할아버지도 되고 연주도 되고 로빈이도 되어 아이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길게 꿈을 꾸고 싶습니다.이 긴 꿈을 꿀 수 있게 다리를 놓아준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숙제를 미루고 게으름을 피워도 언제나 너그럽게 봐 주시고 술 사주시면서 같이 이야기 나눠주시던 그분들이 정말 고맙습니다. 내내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밤늦게까지 책을 뒤적이고 연극을 보고 시를 읽으면서 같이 공부했던 문창과 대학원 학우들도 고맙습니다. 그대들과 앞으로도 시와 동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때때로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싶습니다.재미있는 이야기라면서 교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랑하는 딸과 아들, 그리고 같이 이야기 나눠주면서 격려해주던 남편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글을 지면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1967년 임실 출생, 전주교대를 졸업, 우석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 재학중. 전주 서신초교 교사.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미역할매의 노래 - 조숙

미역에서 풀내가 난다. 미역도 등줄기 꼿꼿한 한그루의 바다나무다. 줄기, 잎사귀, 뿌리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고 척박한 바윗덩어리에 뿌리박고 포자로 번식하여 일가를 이루는 것이 나무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 년 전에 동남아의 어느 바다에서 스킨스쿠버로 물속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소음 한 조각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바다 속에 끝없이 이어지는 미역 숲이 마치 육지의 밀림과도 같았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역을 식용으로 하지 않는 나라이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처녀 숲인 셈이다. 물속에서 천천히 헤엄치며 미역이 물결 따라 일제히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꿈꾸듯 바라보았다.재래시장에 나갔다가 참기름 바른 듯 반질거리는 미역을 사왔다. 철지난 미역이라 날것으로 먹기에는 좀 억세다 싶은데 '돌바리 미역'이란 말이 돌리려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스티로폼에 포장되어 있는 미역은 제대로 숨 한번 쉴 수 없을 것 같이 답답하게 보이지만 재래시장 좌판에 널린 미역은 치맛자락을 제 모양대로 펼친 듯 수더분해 보인다. 본디 미역이 세련된 것과는 좀 거리가 먼 탓에 산뜻하게 포장되어 조명 받는 일은 저도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한꺼번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라 남은 것을 빨랫줄에 '척' 걸쳐두었다. 도망치려다가 옷자락이 걸린 도둑처럼 미역이 엉거주춤 걸려 있다. 열어 놓은 창으로 미역냄새가 솔솔 들어온다. 짭조름한 미역냄새와 갯냄새가 곧 고향냄새다. 미역냄새가 열어 놓은 길을 따라 녹슨 기억의 빗장이 '삐그덕 ~ 끽 ~' 열리고 거기 고향의 앞바다가 푸르게 펼쳐진다.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에는 바위에 붙어 있던 미역들이 떨어져 파도 따라 헤엄을 친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는 긴 장화를 신고 장대에 솔가지를 매단 '미역장대'를 들고 바다로 나가신다. 할머니는 '미역낭구' 잡으러간다고 말한다. 바다 가장자리까지 밀려온 것은 쉽게 건져내지만 곧 잡힐 것 같으면서 잡히지 않는 미역은 그것이 유난히 큰 것 같이 보여 더 애를 태운다. 처음 옷이 조금씩 젖을 때는 몸을 사리다가도 밀려오는 미역에만 신경 쓰다보면 옷 젖는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게 된다. 어느 사이 허리춤까지 물속에 담근 채 장대 끝에만 온 힘을 기울인다.부지런한 우리 할머니에게 질세라 '애자네 아지매'도 나오고, 혼자 사는 '미구할매'도 나온다. 파도는 성난 듯이 밀려와서 물고 온 미역과 해초들을 뱉어놓고 간다. 파도가 물거품을 물고 밀려나면 한 걸음 물러났던 할매들은 미역장대로 소용돌이치는 파도 속을 헤집는다. 그런 와중에도 할매들은 서로 안부를 묻는다. "아침은 무간나 ?" "허리 아픈 건 좀 어떠나?" 파도소리가 반쯤 잘라먹어 버렸어도 용케 알아듣고 대꾸한다. "인자 그만- 타~"바다사람들의 언어는 단음절이다. 미역이 가미되는 무엇이 없이 혀에 감기는 떫은맛처럼 바다사람들의 관계도 양념치지 않은 원래 맛이다. 은근슬쩍 끼워 넣는 멋이나 혀에 붙는 달짝지근한 맛이라고 애저녁에 없는 무뚝뚝 투박하다. 언어가 생각과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바다사람들은 언어는 각설하고 직유다. 그들의 언어는 질박한 삶이 담겨있을 뿐이다. 그래서 바다사람들의 삶은 존재의 원형에 가까운지도 모른다.성글게 짠 망태기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미역을 머리에 이고 장대를 짚으며 돌아온다. 할머니는 마당 한쪽에 미역망태기를 던져 놓고 찬물에 후딱 밥 한 그릇을 비운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면 넓게 편 가마니에 미역을 붙인다. 할머니가 미역 붙이는 모습은 마치 새 각시에게 옷을 입히는 것처럼 정성스럽다. 미역 줄기를 중심으로 잡고 잎을 펴서 직사각형 틀 모양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안을 채워 넣는 것이다. 잘 붙인 미역은 등줄기가 사람의 그것처럼 올 곧고 부챗살처럼 잎사귀가 잘 뻗어 있는 것이다.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한 줄 한 줄 미역을 붙이노라면 어느새 마당이 검은 천을 깔아놓은 듯 가득하다.다닥다닥 붙여놓았던 미역들은 햇볕에 오그라지면서 자연스럽게 간격이 벌어지고 그 일정하게 벌어진 골 사이를 철없는 나는 징검다리를 건너듯 폴짝거리면 뛰어다녔다. 이리저리 뛰어넘다가 발을 잘못 디뎌 '미끄덩!' 미역위에 미끄럼 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선머슴'같다는 할머니의 타박을 듣지만 그 재미 난 일을 쉽게 관두지 않았다. 말라 들어가는 미역을 먼눈으로 보던 할머니의 삶은 얼마나 많은 징검다리를 건너왔을까? 아기자기 얹어 놓을 고명딸도 하나 없이 아들만 삼형제였던 자식들 중에 두 아들을 한해간격으로 하나씩 먼저 보내고 미역처럼 가슴이 오그라붙던 날도 할머니는 저렇게 뒤 돌아 앉아 남의 집 미역을 품앗이 붙였다.읍내에서 이름 첫 글자만 대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드센 며느리의 비수 같은 폭언도 할머니는 저 오두마한 등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먹은 것이 소화가 되지 않는 다고 병속에 든 알싸한 맛의 소화제를 한 박스 사서 들어오다가 '남편 잡아먹고. 아들 둘 잡아먹고 또 누구 잡아먹으려고 소화제는 사다 나르느냐'고 악쓰며 던진 소화제 병이 마당에서 산산조각이 나던 날도 할머니는 묵묵히 말라 들어가는 미역 건사만 했다.부서진 병조각이 햇살에 더 반짝이듯이 타인에게 감추고 싶은 것일수록 자신에게는 더 명료해지는 것이 곧 형벌이다. 미역이 뻣뻣하게 건조되어 물컹한 속성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할머니의 팍팍한 표현속에는 감추고 싶은 원죄인 듯 남편과 두 아들을 앞세운 곡진한 아픔이 말라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반질거리며 윤기 나던 미역은 해질녘엔 벌써 꼿꼿하게 줄맞춰 횡대로 늘어선다. 바삭거리는 미역을 할머니는 조심조심 마루에 쌓아 놓고서야 허리를 편다. 마루에 쌓여 가는 미역 단의 높이 따라 뿌듯해지는 할머니 마음! 늘 술에 절어 있던 용이 아버지가 그 퀭한 눈을 반짝이는 날은 읍내에 장이 서는 날이다. 아침 일찍 용이 아버지의 리어카가 마당에 와서 마루에 쌓여 있던 말린 미역을 실어낸다. 미역이 실려 나가고 부스러기만 휑하니 남은 마루는 쓸쓸하고 고즈넉하다. 미역이 쌓여있던 빈 마루를 한번 뒤돌아보고 대문을 나서는 할머니 등도 서운하다.빨랫줄에 걸쳐놓은 미역이 모양새 없이 말라 들어간다. 내 할머니의 얼굴처럼, 빈 젖처럼 주글주글 볼품없이 익어간다. 대쪽같이 굳은 절개도 없으면서 살짝 손만 대면 '와삭' 부러질 것 같이 곁을 내주지 않는다. 종잇장보다 얇은 미역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무게가 미역귀이다. 소용돌이치는 파도를 가둬놓은 귀인가? 바다를 향해 귀를 열어놓은 듯 귓바퀴모양 같다. 미역귀에 붙은 끈끈한 점액이 아직 바다냄새를 피워내고 있다. 격랑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거친 시간들이 거기 건조되어있다. 유영하는 물고기와 함께 했던 기꺼운 기억들도 박제되어있다. 웅얼웅얼 알아듣기 힘든 할머니의 넋두리 같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할머니가 파란곡절(波瀾曲折)을 뿌리고 추수한 '미역낭구'는 해산의 고통을 속을 헤쳐 나온 여인의 부름에 제 몸을 부풀려 녹놀해 질 것이다.미역국을 끓여야겠다. 다시 바다가 출렁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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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시적 산문 넘어 산문시를 읽는 듯

「미역 할메의 노래」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예심을 거친 몇 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혼잣말처럼 '좋다'고 중얼거리면서도 무엇인가 꺼림칙했는데 이 작품에 이르러 그런 안개가 말끔히 걷혔다. 선정에 심사위원 사이에 전혀 이견이 없었다.이 작품은 "언어가 생각과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바닷사람들은 언어는 각설하고 직서이다. 그들의 언어는 질박한 삶이 담겨있을 뿐이다."라고 서민간의 관계나 언어를 증언하면서도 그 바닷사람인 '할메'의 삶의 이야기를 '노래'라 이른다. 이 작품은 그 장르가 수필이라는 산문인데도 우리는 시적 산문을 넘어 산문시를 읽는 듯 착각한다.그만큼 그 언어가 시적언어인 양 함축적이고 비유적이다. '아침은 무간나?' '허리 아픈 건 좀 어떠나?'에서 '인자 그만- 타~'에 이르는 짤막한 문장에도 가난한 할머니들의 굶주림과 아픔과, 연민과 위로의 동병상련이 짙게 배어 의미의 집합을 이루고, 그 사이 파도소리는 안부의 말과 함께 시간의 흐름조차도 '반쯤 잘라먹어 버리는' 것이다.이 작품의 구성도 굳이 들추자면 시인 듯 4단의 연쇄 고리로 이어졌다. '꿈 같은 동남아 미역 처녀숲→수더분한 우리네 미역→미역처럼 가슴이 오그라붙은 할머니의 삶→미역국과 출렁이는 바다'가 시치미를 떼면서 접합된다. 그래서 미역의 사연은 할머니의 사연이 되고 수필은 노래가 된다.새삼 인터넷 시대를 실감했다. 예심에서 추리고 추려 기껏 10여 편이 본심에 올랐는데도 경향 각지의 작품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이제 '신춘문예'에서는 지방지도 중앙지와 어깨를 겨루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참신한 묘사적 표현, 시에 생기 불어 넣어

좋은 시는 남들과 다른 언어를 건지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그렇게 태어난 시는 이기적이면서 품이 넓다. 그런데 비유가 생경한 시, 비문이 노출된 시, 인위적으로 제작하는 데 급급한 시들이 적지 않았다. 다들 조바심을 내는 듯했다.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 시들이 그만큼 아쉬웠다는 말이다.네 분의 시가 마지막까지 남았다. 정지웅 씨의 '매미'는 매미 울음이 공중에 구멍을 뚫는다는 재치 있는 발상의 시다. 발상이 그저 발상으로 끝난 아쉬움이 크다. 소재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이명옥 씨의 '사과 연대기'는 어투가 매우 발랄하고 상상의 진폭이 크다. 시에서 감각을 어떻게 끌어올려야 하는지 아는 사람 같다. 하지만 시를 만지는 손끝이 너무 쉽게 드러나 보이는 게 흠이다. 최병국 씨의 '구름을 걷는 달팽이' 외 몇 편은 상당히 현란한 상상력과 언어 구사 능력을 보여준다. 문장과 문장 사이 의미의 연결이 불투명한 약점을 시급히 보완하면 좋겠다.그리하여 우리는 장정희 씨의 '오래된 골목'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했다. 언뜻 보면 평이해 보이지만 자신의 사유를 잘 간추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는 시다. 군데군데 참신한 묘사적 표현이 시에 생기를 더하면서 '오래된 골목'의 전경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시를 보여주는 시인으로 성장하시기를 바란다. 축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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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사막 아래 흐르는 물길 기억하는 '낙타' 처럼"

먼지 풀썩풀썩 날리는 사막을 걷는 한 마리 낙타가 있었습니다.가라! 는 한마디 숙명만 업고 가는 낙타. 때론 등에 지워진 중압감에 무릎을 꺾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긴 속눈썹을 파고 드는 모래바람에 방향을 잃고 헤매일 때도 있었습니다. 눈앞을 가로막는 모래언덕이 너무 아득해서 시간시간 조차 가늠할 수 없을 때 오직 지금만을 걷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놓을 때는 제 몸에 세포가 기억하는 느낌이 나침반이 되어 스스로 방향을 찾아갔습니다.물 없이도 사막을 건널 수 있는 것은 본디 갈증을 이겨 내도록 진화 된 것이 아니라 다만 결핍을 견뎌 낼 뿐입니다. 내 등에 물이 있다는 기억이 희망이 되어주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길 없는 길을 걷는 낙타처럼 쓸쓸한 일이었습니다. 낙타는 사막아래 흐르는 물길을 기억하고 걷는다지요. 낙타처럼 걷겠습니다. 한걸음씩 비록 느릴지라도.당선 소식을 받은 날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습니다. 언어를 바르게 배열하는 일보다 더 힘든 건 잘 솎아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어느 것이 잡초인줄 몰라 '죽' 뜯어내고 나면 뿌리 채 뽑혀 나동그라진 나의 언어들이 추울까 걱정입니다. 피붙이처럼 아까운 떨어져 나간 내 언어들에게 새끼 손가락 약속을 건넵니다. 다시 만날거라고, 다시 만나 일가를 이루는 날이 올 것이라고 수필은 제 상처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일이라서 늘 부끄럽습니다. 상처는 겨우 겉만 딱딱하게 굳어 있을 뿐 속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습니다.부디 읽으시고 '그런데 어쩌라고' 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격려해주는 손들이 많습니다. '보리수필'의 문우들, '문학이 있는 목요일'의 회원들, 경직된 어깨에 힘빼라고 알려주던 그. 무덤덤한 것이 情인 남편, 나를 어머니라는 빛나는 호칭으로 불러주는 두 아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수필을 쓰는 사람은 많은데, 자리 없어서 서성거리는 수필가들에게 선뜻 의자하나 내어주신 전북일보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1962년 강원도 주문진 출생, 문우회 '보리수필'과 '문학이 있는 목요일'를 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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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시는 아름다운 구속,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를 쓰겠다고 대들었던 날부터 혼자 놀기에 익숙해져 갔다. 콩깍지 낀 눈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함께 걷기를 자청했던 유명 시인들의 시집이 때론 오래된 친구처럼 편해져 가던 어느 날, 갑자기 시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에게 무엇일까? 하나씩 더 알아 갈수록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도망치고 싶어 뒤돌아 보았을 땐 이미 늦었다는 걸 알았다. 용감하게 연필을 놓을 자신이 없어 매달렸다. 스스로의 무게에 눌려 주저앉고 싶을 때 항상 나를 응원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넘어지려 할 때 말없이 손 잡아준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십년을 함께 해온 '샘시문학회'의 이병관 선생님과 문우들은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리고 마산대학 시창작반 문우들과 함께 공부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마산대학 시창작반 문우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나에게 시심의 뿌리를 준 이영옥 선생님 고맙습니다. 자신의 언어나 머리를 믿지 말고 더 좋은 언어를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라, 사소한 것도 깊게 보라며 다른 사람보다 한 발 더 진보한 시 쓰기를 가르쳐 주신 김륭 선생님께 진심으로 큰 절 올린다.시로 인해서 알게 된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일일이 열거 하지 못함이 아쉽다. 시의 바탕이 되어준 부모님, 아주 특별한 내 동생들 고맙다. 항상 엄마의 자리를 빛내주었던 아들, 딸 사랑한다. 이 자리 오기까지 묵묵히 지켜봐 준 남편에게 이 영광을 돌리며, 부족한 글 뽑아주신 황동규 선생님, 안도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더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나에게 "시란 아름다운 구속 이었다."고 외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와 아름다운 사이로 나란히 걷기위해 나는 다시 연필을 깎는다.1965년 대구 출생, 마산대학 시창작반과 김해문협, 샘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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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1 23:02

[2011 신춘문예] 불안한 내용, 낭만적인 이미지로 결집

심사를 마치고, "소설은 다른 장르와는 달리 그 자신의 규범을 갖고 있지 않다"는 바흐친의 주장을 상기해본다. 소설에는 어떤 확립된 틀도 없으려니와 그래서 소설은 늘 변전하는 양식이라는 뜻이리라. 우리의 현실이 변화 중에 있으니 거기에서 이야기를 취하는 소설도 변전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예선을 거쳐 올라온 8편은 청년 실업, 가족 공동체 붕괴, 성 정체성 혼란, 고용 불안, 계층 갈등, 몰가치적 세태, 부박한 연애, 사기와 횡령 등 모두가 부정적인 내용들을 다루고 있었다. 각기 그 소재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불안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불안의 시대가 소설을 '불안소설'로 변전시키는가?다소 불안한 심기를 다스리면서 다음 다섯 편을 골랐다. 「곤충채집」(한상도)의 경우 룸쌀롱 접대원의 변신과정과 곤충표본 작업을 대비하여 몰가치한 세태를 비꼰 점은 그런대로 설득력을 지녔으나, 인물의 성격화에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결말처리도 좀 상투적이다.「노블 클럽」(이은미)과 「숨」(지형서)은 공히 직업적 일상과 배우자와의 심리적 갈등관계를 대비하는 구조로 짜여졌다. 안정된 문장력이 심리 묘사를 받치고 있고 가족공동체 붕괴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소품을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그곳에」(차미숙)의 경우, 청년실업이라는 묵직한 내용을 밝은 문체로 이끌어가는, 또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청년들의 심리 상태를 부박한 연애라는 가벼운 호흡으로 처리하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에서의 반전이 나름의 효과를 발휘하려면 앞의 사건들과 긴밀한 관련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인어공주」(강필선)는 앞의 네 작품이 다루고 있는 부정적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거기에 성정체성 혼란과 고용주의 횡포 문제도 건드리고 있어서 '불안'의 백화점이라 할만하다. 이 작품의 장점은 그런 불안한 부정적 내용들을 '인어공주'라는 낭만적 이미지로 결집해내는 아이러니 효과가 돋보인 점에 있다. 게다가 주인공의 죽음은 그런 효과를 다시금 아이러니컬하게 함으로써 결말에 이르러 중층의 의미를 획득한다. 이 작품 역시 단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불안 내용들을 하나로 꿰어가는 구성 과정이 조금은 불안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다소 불안한 구성'이 다양한 불안한 내용을 낭만적 이미지로 결집해내는 역할을 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쉽게 합의할 수 있었다. 당선을 축하하고 정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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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1.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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