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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현실은 곧 詩…이번 시집, 작은시론에 가까워"

시'찔레꽃 오월'을 보며 '(중략) 세상에 살아서 / 살아남아서/ 그래서 수치스러운 오월의 찔레꽃은 나의 저승목이다'라고 나무를 위로하던 김사강 시인이 다섯번째 시집'봄풀의 노래'(신아출판사)를 출간했다.건설 노동 현장을 떠돌던 그의 마음 한 켠엔 늘 시가 있었다.그는 "어려서는 소설가가 되려다 그 길로 가지 못하고, 그림에도 잠시 기웃거리다 뒤늦게 시인이 됐으나 그렇다고 훌륭한 시인이 되지도 못한 것 같다"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노동 현실이 곧 시라고 생각해요. 가난이 긴장감을 줬습니다. 가난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데 눈을 돌렸겠죠. 배 주리지 않고 여지껏 살았고, 시인으로 한생 살았으니 명예욕도 없습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좋은 시 한 편 제대로 못 썼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열심히 살려 했던 사실에 감사하면 돼요."이번 시집은 작은 시론에 가깝다.그동안 입으로만 떠들던 시론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시가 시론에 우선한다'는 이 명제를 위해 공사현장을 전전하면서도 시를 놓지 않았다. 밥을 먹고 배설하듯 일상이 바로 시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때마침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가 그에게 시집을 내지 않겠느냐며 제안해왔다."문학으로부터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더 좋은 시가 있다면 좋겠지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급조된 시들이 많아 아쉽습니다. 게으름을 피운 덕분에 20여 편을 하루 이틀 만에 쓰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런 지 아직도 집나간 자식들이 많네요."표제작 '봄풀의 노래'는 눈물의 다리 같은 그 땅의 역사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떠올리며 쓴 것. 한 때 그도 80년대 정치적 혼돈기에 참여시를 쓰기도 했다. 이 땅의 역사를 직시하며 흘린 눈물 앞에 마냥 부끄러워진다.그는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며 조용히 웃었다.진안에서 태어난 그는 1992년 '시세계'로 등단해 시집'겨울 민들레','다시 내 하늘을 볼 수 있다면','산다는 거'과 함께 아내 시소향 시인과 함께 '바람이 내게 말하는 것은'을 출간한 바 있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1.05.30 23:02

[최명표의 전북 작고 문인을 찾아서] ⑭순수비평의 개척자, 김환태

눌인 김환태(訥人 金煥泰·1909~1944)는 무주 출신의 비평가이다. 그는 전주 보통학교를 마친 뒤에 상경하여 시인 김상용이 재직하던 보성고보에 진학하였다. 그는 1928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쿄토의 도시샤대학 예과에 입학하여 정지용을 만났다. 그후에 후쿠오카의 쿠슈제국대학 영문과에 편입하여 메슈 아놀드와 월터 페이터에 관한 논문을 쓰고 졸업했다. 귀국해서 이광수와 안창호 등으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특히 안창호와의 친교로 인해 그는 일경의 감시를 받게 되어 경찰서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1936년 그는 박팔양, 김상용, 정지용, 이태준, 김기림, 박태원 등 당대의 쟁쟁한 작가들이 모인 구인회에 가입하였다. 이 해 6월 그는 '시문학'을 주재하던 광주 출신 시인 박용철의 누이 박봉자와 혼례를 올렸다. 김환태는 1938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가 1943년 11월 무학여중으로 근무지를 변경하면서 상경하였다.그의 움직임을 눈여겨 살펴보노라면, 한 비평가의 행로에서 차지하는 인연의 중요성과 역할을 짐작케 해준다. 김환태가 맺은 인연은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문학적 관점을 형성하는데 큰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가 나중에 김상용이나 정지용에 관한 평문을 쓴 것을 일러 개인사적 친분의 결과라고 각하할 수 있으나, 평문에 나타난 세련된 감각과 유려한 필치는 비평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기에 충분하였다. 그가 주류 비평가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명문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사실과 함께 천부적으로 뛰어난 감수성을 살린 비평적 인식안에 힘입은 것이다. 그를 가리켜 '한국 비평문학의 효시'라거나 '순수문학의 기수'라고 칭하는 이유인즉 김환태의 비평에 아로새겨진 문학적 안목과 예리한 작품 분석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그는 1934년 최초의 평문 '문예비평가의 태도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문학의 순수성을 벼리로 삼은 비평적 신념을 드러내었다. 그는 문예비평을 "작품에서 예술적 의의와 심미적 효과를 획득하기 위하여 대상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보려는 인간 정신의 노력"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비평가는 "작품의 예술적 의의와 딴 성질과의 혼동에서 기인하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순수히 작품 그것에서 얻은 인상과 감동을 충실히 표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비평적 특징을 온전히 서술한 이 구절은 일제의 지속적인 탄압으로 카프 비평가들이 퇴각하여 공란 상태이던 비평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문학작품의 이해와 평가에서 '몰이해적 관심'으로 접근하기를 바라면서, 비평가는 누구보다도 먼저 문학 작품에 감동하고 표현하는 예술가라고 거듭 강조하였다.이 시기에 김환태가 전대의 공리주의적 문학관을 배격하며 주창한 바는 예술의 순수성에 입각한 인상주의 비평이었다. 그의 등장으로 카프에 억눌려 열세에 놓여 있던 반카프 진영의 평단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문학의 자율성을 옹호하면서 특히 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언어의 감각적 측면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시에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그가 정지용의 시에 편애에 가까운 애정을 보인 것도 그로부터 발원한 것이다. 이처럼 문학의 순수한 국면을 중시했던 그는 평소에도 공허한 관념이나 경직된 태도를 멀리 하였다. 그가 서울에서 할일 없이 노는 동안에 만나 평생지기로 삼았던 비평가 이헌구는 "지극히 낮고도 부드러운 음성과 웃을 때마다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고르고 고운 이빨, 크게 웃지도 않고 조용히 소리 없이 포개지는 작약처럼 수줍게 미소짓던 그 모습"을 추억한 것만 보아도, 김환태의 비평적 태도와 삶이 둘이 아닌 줄 알 수 있다. 요약하여 말하자면, 그는 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가의 지극한 애정을 수시로 강조하였다. 모름지기 비평가는 작품 외적 요인에 압도당하지 말고, 자신의 고유한 안목에 의거하여 작품을 읽고 해석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의 등장으로 평단은 문학의 형식적 요소를 포함한 본질적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 세력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문단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시대 상황은 악화되어 전 부면에서 일제의 군국주의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일제의 작가들에 대한 계속적인 압박은 더욱 강도가 높아지고 횟수가 늘어갔다. 그처럼 비문학적인 상황에 내몰린 김환태는 비평 대신에 절필하고 낙향을 선택하였다.그는 끝내 지병이었던 폐결핵을 이기지 못하고 한창 활동할 서른 다섯의 나이에 생을 마치었다. 덕유산국립공원의 나제통문 앞에는 김환태문학비가 우뚝 솟아서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맞고 있으며, 2010년에는 고향의 유지들이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제를 열어 그의 비평세계를 기리었다. 또 문학비를 앞장서 세운 문학사상사에서는 '김환태평론문학상'을 제정하고, 일년 동안 가장 활발히 활동한 비평가를 선발하여 그의 비평정신을 잇도록 격려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5.24 23:02

[최명표의 전북 작고 문인을 찾아서] ⑬전북 소년운동의 대표자, 곽복산

우당 곽복산(牛堂 郭福山·1911~1971)은 소년운동가로 출발하여 신문학자로 변신하였다. 그는 목포에서 출생했으나, 부모를 잃고 다섯 살때부터 외가가 있는 김제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읍내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한 뒤, 사립 영신학교와 소성의숙에서 보통학교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어서 그는 통신강의록을 들으며 중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물리학교 예과에서 대학 입학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의 향학열은 계속되어 와세다대학 정경과를 2년 수료한 후에 조치(上智)대학 신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여 동아일보 기자로 취직했다가, 매일신문 북경특파원으로 재직하던 중에 해방을 맞았다.1945년 9월 곽복산은 임시정부 지지 국민대회준비회의 상임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전주 출신 유엽과 함께 한국민주당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동아일보, 한성일보 등에서 기자 생활을 계속하면서 조선어린이날 전국준비위원회의 준비위원으로 활동하여 소년운동의 부흥에 기여하였다. 그밖에 그는 기자 출신 경력과 전공을 활용하여 신문학의 발전을 위해 공을 쏟았다. 그는 1946년 12월 신문과학연구소를 창립하였고, 1947년에는 조선신문학원을 창설하여 대표로 취임하였다. 해방 후의 혼란기에 언론인을 양성하느라 양계장을 경영하던 그는 1959년 6월 한국신문학회를 창설하고 회장에 취임하였다. 한국 최초의 신문학 교수였던 그는 1954년 홍익대학교에 신문방송학교를 창설하고 교수로 취임하였다가 폐과되자, 중앙대학교에 같은 과를 신설하여 한국 신문학의 토대를 구축한 선구자이다.비록 곽복산은 1930년대 이후 아동문학 작품의 발표를 중단하고 언론인과 학자로 활동하였으나, 그의 업적은 전북 지역의 아동문학과 한국아동문학사에 당당히 등재될 만큼 충분하다. 불과 열여섯 살에 신문사의 지국을 경영했던 그는 김제소년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1927년 10월 김제소년독서회 창립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듬해에는 김제소년회를 김제소년동맹으로 전환시키고, 전라북도연맹의 창립준비위원으로 위촉되었으며, 조선소년총연맹의 운영에도 깊숙이 관여하며 방정환 계열과 맞섰다. 그는 소년회, 동화회, 독서회 등을 지도하던 중에 필요한 독물이 부족하자 직접 작품의 생산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의 활약상은 한국의 아동문학의 형성 과정을 헤아리기에 충분한 단서이다. 그처럼 계몽담론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소년운동가들이 독물의 창작 대열에 합류하면서 아동문학은 제도화된 것이다.곽복산은 '꿈에라도'(조선일보, 1928. 1. 17)를 시작으로 약 15편의 동요와 동시를 발표하였다. 이 무렵 전주의 제사공장에 다니던 소녀들이 비인간적 처우와 저임금에 항의하기 위한 대책을 협의하던 중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이처럼 심각한 사태는 소년운동가 곽복산에게 문학작품으로 수용하기를 유혹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는 동요의 대상성이 지닌 특수한 조건을 뚜렷이 인식하고 문학의 본질적 요소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실적 상황을 수용했을 뿐이다. 그 대신에 곽복산은 동요에서 동시로 장르상의 변환을 도모하거나, 동화적 요소를 가미한 동화시를 써서 동요가 지닌 생리적 한계를 극복하였다. 그의 절제된 주제의식은 당시의 경제 상황에 비추어 보면 과도할 정도로 엄격하게 유지되었다.일제에 의한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은 농도 전라북도를 피폐하게 만들어버렸다. 1929년 한 해에 전국적으로 발생한 389건의 소작쟁의 중에서 314건이 전북에서 일어났고, 1930년 현재 도내 농가 중에서 62.6%가 춘궁을 겪게 되었다. 이처럼 악화된 현실에서 운동가들은 지주에 대한 투쟁 등을 형상화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곽복산은 식민지의 원주민 아동들이 처한 물질적 조건과 문학적 형식을 조화시키느라 열심이었다. 그의 노력은 먹을 것을 찾아 떠도는 장애아의 일상을 묘사한 산문 '피리 부는 불구 소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 글에서 소년을 외면하는 기성세대의 타락한 모습에 대한 객관적 기술에 치중했을 뿐이다. 또 곽복산은 동화 '새파란 안경'에서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물욕에 눈먼 부자가 파멸보다는, 가난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아름다운 줄 깨닫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그의 태도가 중요한 까닭은 막 모습을 갖추어 가기 시작한 아동문학의 형식적 측면들이 외부 요인에 억압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의 문학 활동은 여느 소년운동가들의 작품과 확실히 구분된다. 그의 노력은 초창기 아동문단의 물적 토대를 윤택하게 하는데 공헌한 것은 물론,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이 생산될 수 있는 거점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설령 그가 해방 후에 신문학을 발전시키느라 문학 활동과 거리를 두어 생전에 한 권의 작품집도 펴내지 않았을지라도, 동요와 동화 등은 전라북도 아동문단의 초석으로 놓여 있다. 그러므로 곽복산의 작품들은 전북아동문학사를 서술하는데 유효한 자료인 동시에, 한국 소년운동과 아동문학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살피기에 적합한 텍스트이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5.17 23:02

[내가 권하고 싶은 책] ⑫소설가 최기우

먼지 수북한 책들이 적지 않다. 최명희문학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문학인과 돌려 읽는 헌 책'에 매주 한 보따리씩 책을 기증하고 있지만, 아껴 구입하고 귀하게 읽은 그 책들을 덜어내는 일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미안함만 남아 있는 책, 허나 앞으로도 펼쳐볼 일은 아득한…….자주 뒤적이는 책들은 전라북도와 관련된 저작들이다. 신석정·박동화·최형·최승범·김남곤·허소라·정양·윤흥길·이광웅·김학·김용택·이병천·신경숙·이세재·안도현·이병초 등 시인·작가들의 작품집과 최래옥·오하근·임명진·최동현·김익두·최명표·강준만 등 학자들의 연구서, 그리고 전북 출신 작가들의 수필집들이다. 김제문화원의 「벼골의 구비문학」, 순창문화원의 「구전설화」, 임실문화원의 「우리 마을 옛이야기」, 정읍문화원의 「정읍의 전설」, 진안문화원의 「진안 지방의 구전설화집」, 남원문화원의 「남원의 문화유산」, 완주문화원의 「완주의 문화유산」, 전주문화원의 「지명으로 보는 전주 백년」 등 전라북도 14개 시·군의 옛 이야기와 문화유산이 담긴 책도 가까운 거리에 꽂혀 있다. 김병용의 「길 위의 풍경」, 문치상·정지영의 「하늘과 땅 사이」, 송영상의 「전라도 풍물기」, 이종근의 「명인명장이야기」, 조병희의 「완산고을의 맥박」 등 이 땅의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펴낸 기행·인문서들과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의 「전북의 예술사」와 「전북의 역사와 문화」, 뿌리깊은나무의 「한국의 발견: 전라북도」, 신아출판사의 「호수가 있는 30번 국도여행」, 전북도립국악원의 「전북의 민요마을」, 전북대 신문사의 「전라기행」, 전북일보사의 「만경강 동진강」, 전북작가회의의 「전국문학지도」(권3), 전주백년사편찬위원회의 「신문으로 본 전주, 전주 사람들」(권2) 등 여러 단체에서 성의껏 펴낸 책들 역시 그 곁에 있다.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내 삶터에 대한 관심은 이 땅에서 유일하게 순수 문화예술잡지의 맥을 잇고 있는 월간지 「문화저널」을 구독하며 시작됐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생기고, 20년 넘게 이 잡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敬畏)마저 들곤 한다. 잘 묵고 잘 삭은 이 땅의 언어와 전통과 문화와 예술이 차분하면서도 긴 호흡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1987년 11월, 지역의 문화예술계·학계·언론계 사람들이 십시일반 창간했던 「문화저널」은 전라도의 역사와 인물·사상을 뼈대로 각종 문화프로그램과 그 전망을 촘촘히 보고해왔던 지역문화의 산실이며, 늘 살아 있는 역사다. 매월 발행되는 그 달의 잡지를 통해 오늘의 전북 문화를 만나고, 두툼하게 묶인 영인본을 통해 잊힌 문화와 되살릴 문화, 오래전 이별한 이들과 그들을 다시 기억해야 할 이유를 찾다보면 먼지 따위는 쉬 앉지 못한다.「문화저널」은 '전북'과 '문화'라는 테두리에서 씨를 뿌리고 가꿔온 숲이다. 이 울창한 숲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시나브로 성장해 왔다. 그 곁을 지나는 이들의 건강한 시선과 애정 있는 손길이 더해진다면 전라북도의 정신사는 보다 풍성해질 것이다. (끝)▲ 최기우 극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과 창극집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등을 펴냈으며, 전국연극제 희곡상과 불꽃문학상, 우진창작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 기획연구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다.매주 월요일 아침을 열었던 '내가 권하고 싶은 책'을 아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5.16 23:02

여천 송동균 시인 '시 전집' 출판기념회

시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을 제공한 여천(餘川) 송동균(79)시인의 詩전집 출판기념회가 11일 정읍예총 2층 전시실에서 열렸다.한국문인협회 정읍지부 내장문학회가 주관하고 한국예총 정읍지회, 정읍문화원 후원으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국회 유성엽 의원, 김생기 정읍시장, 정창환 정읍문화원장, 김희선 정읍예총회장, 은희태 한국문인협회 정읍지부장, 김연균 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채규판 원광대 명예교수, 내장 벽련암 대우스님, 문인협회원, 송동균 시인의 부인 강영순씨 및 가족, 고향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해 축하했다.이날 출판기념회는 송동균 시인이 문학 60년을 돌아보며 그동안 펴낸 14권의 시집을 1100여쪽 분량의 시집으로 재발간한 기념으로 마련됐다.평론가 이보영 선생은 "송동균 시인은 고향 관련 시를 100여편 연작한 한국을 대표하는 향수 시인이며, 희망과 부활을 시로 표현하는 대단함이 있다"고 평했다.미당 서정주 시인의 수제자로 평가받는 송동균 시인은"미당 스승님을 닮은 시 정신을 충실히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다시하며 영전에 올린다"고 발간 소회를 밝혔다.정읍 옹동면 금상동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졸업 후 1958년 전북일보에 시 '臨終'발표를 계기로 본격적인 문학 활동에 나서 '琴床洞의 산자락', '오도의 찻잔', '살다가 보면'등 14권의 시집을 발표했다.한국문인협회 감사 및 이사, 한울문학주간 등을 역임하고 현재 미당시맥 부회장, 내장 문학회 고문, 현대문학사조 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임장훈
  • 2011.05.12 23:02

오항녕 교수 "고전을 통해 삶의 주인공 되자"

오항녕 전주대 교수(50)는 '공부의 달인'이다.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고미숙씨처럼 "공부해서 남 주자"는 의견에 적극 동의하면서 '토'를 단다.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공부하면 대체 뭐가 달라질까? 그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전주대 인문 주간을 맞아 첫 강사로 나선 그는 11일 전주대 스타센터 온누리홀에서 '人文, 인간의 무늬'를 주제로 한 강의를 통해 수단으로부터의 공부가 아닌 삶으로부터의 공부에 대해 강조했다."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삶의 무늬가 어떻게 하면 평화롭고 뿌듯할까 하는 생각에서 입니다."본보에 '오항녕의 인문학 에세이'를 연재했던 그는 한 광고를 보여주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페시티즘(물신 숭배)를 비판했다. 에쿠스를 타면 벤츠 500을 부러워하고, 벤츠 500을 타면 바이마흐를 부러워하는 삶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이라고 했다. 특히나 남들이 하면 뭐든 따라하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이같은 심리는 더욱 증폭된다. 그는 여기서 몇 가지 심리학 실험을 통해 "세상이 그러니까""다들 그렇게 사니까""낙오할까봐""어쩔 수 없어서" 등으로 핑계를 대면서 다른 사람들 눈치 보면서 사는 삶에 대해 일침했다."첫째 아이와 산에 가는데, 차 뒤에 앉아 있다가 가만히 몸을 내밀더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빠, 세상은 참 힘든 거 같아요." 그 때 나는 부처님이 환생하신 줄 알았습니다. (웃음) 맞는 말입니다. 인생은 힘든 구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힘들다, 어렵다, 쉽다 등은 인생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말이 아닙니다. 재밌는가 아닌가, 평온한가 아닌가, 뿌듯한가 아닌가 이것이 더 중요한 말이라고 봅니다."그는 이어 자신이 주인 되는 삶에 대한 해결책으로 언어의 습득이 기록을 통해 이뤄지듯 오랜 시간 검증 받은 고전을 배우고, 흉내낼 것을 제시했다. 가장 손쉬운 실천법으로 고전을 읽으면서 '씨앗 문장(좋은 문장)'을 베껴 쓰고 생각해보면 자신이 지향하는 삶에 대한 단서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삶을 위한 공부가 진정한 공부"라고 강조한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공부의 의미와 새로운 공부 방법을 제시했다. 다음 강연은 이남식 전주대 총장(18일 오후 4시 전주대 스타센터 온누리홀)의 '고전과 삶', 박건용 영화감독(청운대교수)의 '영화와 삶(25일 오후 4시 전주대 JJ아트홀)', 김용택 시인의 '시와 삶(6월1일 오후 4시 전주대 예술관 JJ아트홀)'이 이어진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1.05.12 23:02

"나를 詩세계로 이끈 미당 선생 잊을 수 없어"

"내년이면 나의 문학도 삶도 환갑을 맞고, 내 나이도 팔순이 됩니다. 이젠 모든 것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인들에게 나의 순수한 시심을 안겨드리고 싶은 욕심도 들었습니다."그의 스승 미당 서정주(1915~2000)가 타계한 지 10주년이 되던 해. 송동균 시인은 미당 시맥회 추모 마당에서 "스승의 시정신을 충실히 이어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시전집 「송동규 시인 시전집」(도서출판 채운재)을 통해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 맨 처음 스승님 영전에 시전집을 올린 그는 "'송군 잘했군' 감격해 하시며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실 것 같다"고 했다.그가 시인이 된 것도 미당 선생과의 만남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동국대 국문과에 진학한 그는 "미당 선생 시창작 강의 시간은 언제나 대강당이 꽉 찰 만큼 인기였다"며 "나의 시'푸른 기억'이 전교 80여 편 가운데 으뜸으로 뽑혀 넓은 칠판 가득 채운 채 꼬박 한 시간 강의하는 영광을 누렸다"고 회고했다. 시인을 동경했으나 가난한 삶이 두려워 머뭇거렸던 그는 오랜 친구 송 혁 유기만씨의 권고로 시공부를 다시 시작해 미당 선생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이번 시전집에는 첫 시집「금상동의 산자락」을 시작으로 여러 시집이 한 데 묶였다. 「정읍까치」, 「저문 황토길」, 「흑장미」, 「겨울산에 일어선 바람」, 「벼랑 섶에 핀 꽃」, 「밤에만 울던 뻐꾸기 왜, 낮에도 우는가」 등 그간의 시집을 통해 그의 서정적인 시세계와 삶이 완성됐다는 평가다. 시인은 "나를 이끌어주신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을 먼저 전하고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시로 인도한 두 친구에게도 고맙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시전집 출간을 기념해 11일 오전 11시 정읍문화원에서 출판 기념회도 갖는다.

  • 문학·출판
  • 이화정
  • 2011.05.11 23:02

[최명표의 전북 작고 문인을 찾아서] ⑫한국 현대시의 정부, 서정주

미당 서정주(未堂 徐廷柱·1915~2000)는 설명이 필요 없는 전북이 낳은 최고의 시인이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등단한 그는 그해 김광균, 김달진, 김동리, 함형수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고 주재하였다. 그가 만지거나 느끼는 것은 모두 시가 된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현대시의 정부이다. 어떤 이는 그를 가리켜서 부족장이라고 하고, 누구는 그를 100년에 한 명 나올까말까 한 대시인이라고 추켜세운다. 한국의 시인치고 그를 사숙하지 않은 이가 없고, 한국인들 중에서 그의 시를 애송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니, 그는 죽어서도 국민들과 함께 살아 있다.그는 고창 선운리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줄포공립보통학교를 다녔다. 그는 상경하여 중앙고보에 보결생으로 입학하였다가, 1930년 광주학생독립운동 1주년 기념 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퇴학당하여 낙행하였다. 이후에 그는 고창고보에 편입했다가 자퇴한 뒤에 중앙불교전문학원마저 중퇴하였다. 그의 빈번한 자퇴 경력은 만주 유랑과 맞물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던 싯구를 고백으로 변모시킨다. 그는 방랑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 출판한 첫 시집 「화사집」에서 인간의 업죄와 관능을 노래하여 '한국의 보들레르'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 시집에 묶여 있는 작품들이 저 유명한 '화사', '자화상', '문둥이' 등이니, 그는 시집 한 권으로 이미 한국시의 새로운 경지를 구축한 시인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그가 해방 후에 펴낸 시집 「귀촉도」는 제목에서 암시된 바와 같이, 한국의 전통적 정서를 동양 사상과 결부시킨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무렵에 잠시 그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 자리를 물러나온 후, 평생 직장이었던 동국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후진들을 양성하였다. 전쟁으로 인해 종군작가단에 배속된 그는 전주에서 잠간 머무는 동안에 전주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 뒤로 그와 전북은 별로 관련을 맺지 않았다가, 영면에 들어서야 어렸을 때 떠났던 향리로 돌아왔다.그는 생전에 10여권의 시집을 출판하였다. 이러한 분량은 독자들이 그의 시세계에 마음 놓고 진입할 수 있을만한 양이다. 그 중에서도 '질마재신화'는 질박한 전라도 사투리가 낭창거리는 구어체와 결합하여 고유의 소리결과 빛깔을 빚어낸 절편들을 모은 시집이다. 그가 늙어서 노망하지 않으려고 세계의 산이름을 날마다 외운 일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지만, 그는 자신의 시를 낳아준 고향에게 마음의 빚을 갚고 싶어서 이 시집을 냈는지 모른다. 그가 노경에 접어들어 세계의 민화를 수집한 일도, 결국 어렸을 적의 처녀 선생님을 추억하며 좋아라고 웃는 모습과 진배없을 터이다. 이처럼 그는 늙으면 다 어린이가 된다는 속설을 시로 증언하였다.그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태초의 언어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있다. 한 시인이 태를 묻고 성장하며 배운 모국어는 건조한 문어로서의 표준어가 아니라, 땀 냄새 나고 흙 묻은 구어로서의 사투리이다. 서정주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신이 구사한 언어들이 몸에 맞지 않는 낯선 언어인 줄 깨달았다. 혹자는 그의 언어적 귀향을 일러 천의무봉의 경지라고 예찬하지만, 그것은 과공이고 비례이다. 그는 노후에 고향어의 질감이 자신의 몸놀림을 제어하고, 자신의 시세계를 형성한 줄 안 것이다. 그로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안식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이 그를 스스럼없이 맞아준 것도 언어적 동질감에 기반한 정서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서정주는 한마디로 애증이 교차하는 시인이다. 그의 존재는 한국인들에게 곤혹과 당혹의 실체를 똑똑히 체험시켜주기에 충분하다. 시재상으로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면서, 그는 친일과 군사독재정권에 협력하여 스스로 명예를 훼손하였다. 지금도 무수한 사람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를 삼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으니, 시인의 선택과 글쓰기가 얼마나 엄격해야 하고 동시대인들의 정서에 밀착되어야 하는지를 그는 알려준다. 그는 1992년 자신의 친일 행각을 인정하였으나, 이미 독자들은 등을 돌린 지 오래였다.지금 서정주의 고향마을에는 미당 시문학관이 세워져 있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독자들은 문학관의 전시물품에서 그의 체취를 느끼고, 바다가 보이는 산야에서 시심을 형성했던 그의 소년시절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몸가짐이 일관하지 않았으나, 그는 전북이 낳은 한국 현대시의 수장이다. 해마다 그의 문학적 성과를 기리는 문학제가 열리는 문학관을 바라보며 그는 예의 버릇처럼 손등으로 입을 훔치며 너털웃음을 지을 지 모를 일이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5.10 23:02

제31회 가람시조문학상 김연동 시인 선정

김연동 시조시인이 제31회 가람시조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가람시조문학상심사위원회(위원장 한분순)는 최근 가람시조문학상 심사위원회를 열고 김연동 시조시인의 '무너지는 우상'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한편 신인상에는 김선화 시인의 '숲에 들어'를 뽑았다.특히 당선작인 김 시조시인의 작품은 가람시조문학상 후보에 오른 36개 작품중 가람 선생의 정신을 잘 드러낸데다 현대시조의 미래지향적 작품임을 인정받아 선정돼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심사위원들은 김 시인의'무너지는 우상'에 대해"작품을 통해 무너지는 우상을 조명함으로써 어두운 곳에서 아직도 부질없는 우상을 세우려는 어리석은 권력을 질타하고 있고, 이 시대의 호명에 응답하는 당당한 시인의 자세가 잘 표현돼 있다"고 평했다.또 신인상의 영예를 안은 김선화 시조시인의 작품에 대해서는 여성시의 한계 극복을 이유로 지나치게 거칠어져 결국 지쳐버리는 독자가 적지않은 시점에서 따뜻한 시인의 목소리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평가했다.본상 수상자인 김연동 시조시인은 상패와 1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며, 신인상을 받는 김선화 시인에게는 5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가람시조문학상 시상식은 다음달 9일 솜리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돤다.

  • 문학·출판
  • 장세용
  • 2011.04.28 23:02

양창식 전 국회의원 회고록·자서전 출간

양창식 전 국회의원이 회고록과 자서전을 동시에 펴내고 오는 29일 남원관광단지 내 그린예식장에서 출판 기념회를 연다.회고록은 '태릉에 핀 불멸의 무궁화', 자서전은 '태산을 넘어'라는 제목의 상·하권이다.양 전 의원은 저서에서 한 평생을 군인으로서, 3선 국회의원으로서, 또 국가 원로로서 지역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과정을 담담히 담았다.특히 6.25 전쟁이 발발하자 임관도 하지 않은 생도 출신으로 포천전투에 투입돼 동기 262명 중에서 117명이 전사했던 비극도 자세히 기록됐다.한국새사도교회 서호련 주교는 "양창식 의원은 현재 82세로 현존하는 한국의 정치인 중에서 애국과 애향정신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밝혔다.서 주교는 이어 "그는 남원의 아들이자 공로자로서 남원인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인물"이며 "고향과 나라를 사랑하는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투혼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라고 썼다.서울대 홍두승 사회학과 교수는 서평에서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린 양창식 장군의 방대한 회고록"이라며 "엄격함과 따뜻한 인간성을 함께 갖추고 지금도 국가 안보를 크게 걱정하는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 문학·출판
  • 신기철
  • 2011.04.27 23:02

이소애 시인, 허난설헌 문학상 詩 본상 수상자 선정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 여성 문학의 선구자잖아요. 글쓰는 여인들을 인정하지 않는 암흑의 시대에 빼어난 글로 사대부를 놀라게 했습니다. 삶은 불운했지만, 글은 아름다웠죠. 저도 아픔을 승화시켜 여성들의 애환을 담아낼 수 있는 세밀한 시를 쓰고 싶습니다."이소애 시인(68)이 시집 「쪽빛 징검다리」로 '제24회 허난설헌 문학상'의 본상(시 부문)을 수상하게 됐다. '허난설헌 문학상'은 조선 최고의 여류 시인의 삶과 문학을 기리고자 전국 문인을 대상으로 제정된 것이다.2009년에 펴낸 그의 두번째 시집 「쪽빛 징검다리」에는 '어머니를 그리면서, 어머니가 되어가는' 자신의 삶이 담겼다. 시인은 "남편이 아프다 보니, 이 시집이 내놓는데 7년이 걸렸다"며 "당시 덜 된 시를 내놓은 것 같아 아쉬움도 많았는데, 막상 상까지 받게 되니 기쁘다"고 했다.1994년 월간 「한맥문학」으로 문단에 나온 시인은 정읍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전북여류문학회장과 가톨릭전북문우회장 등을 역임한 시인은 현재 재단법인 샘장학재단 이사장과 사단법인 21세기전북발전연구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침묵으로 하는 말」과 「쪽빛 징검다리」, 수상집 「보랏빛 연가」 등을 펴냈으며, '전북여류문학상'과 '한국미래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시상식은 22일 오후 1시30분 서울 국일관에서 열린다.

  • 문학·출판
  • 황주연
  • 2011.04.20 23:02

[최명표의 전북 작고 문인을 찾아서] ⑪한국 최고의 풍자작가 채만식

채만식(蔡萬植·1902~1950)은 옥구 임피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그의 아호는 백릉(白菱)이다. 서울의 중앙고보와 일본 와세다대학 예과를 다닌 그는 1924년 「조선문단」에 소설 「세 길로」가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 이 무렵에 그는 강화도의 사립학교에서 교원으로 재직하다가, 곧 동아일보 기자로 취직하였다. 1929년 말 개벽사에 들어간 뒤에는 천도교단에서 발행하던 「별건곤」, 「어린이」 등의 잡지를 편집하였다. 그 뒤에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다가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그가 문학에 나선 시기는 식민지의 모순이 제도화되던 때였다. 1929년의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은 일제에 의해 이식된 식민자본주의의 폐해를 처리하는 하청기지로 전락한 민중들의 삶을 더욱 황폐화시켰다. 그 사건은 을축년의 대홍수와 겹치면서 식민지의 경제를 파탄 상태로 몰아갔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일제는 식민 통치를 강화하면서 전쟁 수행을 위해 경제 구조를 재편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군산은 자본가들의 만행이 수시로 자행되고, 만경평야에서는 지주들의 농산물 착취가 만연한 실정이었다.채만식은 그처럼 어려운 시절을 소설적으로 증언한 작가이다. 그의 명편 「태평천하」는 당대를 응시하는 작가의식이 첨예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윤직원 영감은 지주이며 고리대금업자이다. 그는 거액을 들여 족보를 세탁하고, 가문의 영화를 도모하고자 자식들을 관료로 성공시킬 꿈을 갖고 있다. 그러다가 그는 손자가 사회주의 사상에 감염되어 검속되었다는 전보를 받고 충격에 빠진다. 일제에 의한 「천하태평」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윤 영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이다. 작가는 이처럼 일제에 기생하며 제 민족의 고혈을 빨아먹는 친일지주계급의 반민족적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여느 작가보다 윗길에 속하는 점은, 그런 성향이 자산가의 추악한 본질이면서 권력에 약한 민중들의 위선적 속성이란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판에 박힌 반일의식의 주제화로 귀착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섬세하게 묘파할 수 있었다.특히 채만식은 이 작품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판소리의 형식이나 구어체를 적극 도입하였다. 그 덕분에 전라도 방언의 고소하고 찰진 어감이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었다. 또 작중 해설자가 구사한 경어체는 판소리가 추구하는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채만식은 판소리 사설 아니리를 작중 화자의 어조로 변이시켜 인물을 희화화한다. 그에 바탕하여 작가는 작품의 도처에 웃음을 마련해 두고, 능청스럽게 서사의 진행 속도를 적절히 통어하면서 인물을 조롱한다. 곧, 작가는 탁월한 기법상의 우위를 앞세워 독자를 공모자로 흡인한 뒤에, 온 세상이 자신만 빼놓고 다 망하기를 바라는 윤직원 영감의 실체를 발가벗긴다. 그에 편승한 독자들은 작가의 제안에 동의하게 되고, 인물에 내포된 이기적 행태를 포착하고 분노한다.그 외에 채만식은 명편 「탁류」에서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이 장편소설은 "금강(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으로 시작된다. 이 구절은 작품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어서 소설을 강독하는 강의실마다 예로 삼는 단골 장면이다. 또 한자로 병기된 '錦江(비단강)'은 제목 '탁류'와 결합하여 서사의 방향을 알려줄 뿐 아니라, 일제에 의해 더렵혀진 식민지의 금수강산과 초봉의 신산스러운 삶을 은유하고 있다. 채만식의 빼어난 문장력과 남다른 비판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여주인공에게 계속적으로 비극적 사태에 직면하게 하면서도 냉정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그의 태도는 작품의 결말부를 '서곡'으로 이름한 것에서도 살필 수 있다. 자신을 배웅하는 초봉이의 "지극히 슬프면서도 그러나 웃을 듯 빛남"을 승재가 보지 못한 채 떠나는 마지막 문장은 그녀의 앞길이 여전히 '탁류'에 잠겨 있음을 시사한다.1939년 박문서관에서 출간된 이 작품집은 "조소와 악매(惡罵)로 묻혀진 눈물과 한숨의 기록"으로 선전되었거니와, 채만식의 세태 풍자가 극정에 달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일관되게 풍자적이고 반어적인 작법을 고수한 이유인즉, 날로 강화되는 일제의 검열정책을 우회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는 1950년 폐결핵으로 죽기 전까지 작가의 신념을 견지한 완벽주의자였다. 이러한 결벽성이 그로 하여금 식민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놓지 않도록 긴장시켰을 터이다. 한국문학사에서 보기 드물게 그가 방황하는 지식인의 군상을 천착한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생전에 약 2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한 채만식의 문학비는 군산 월명공원에 있고, 금강변에는 문학관이 마련되어 있다. 평생 동안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문학적 신념을 결기있게 고수한 고집쟁이 작가였던 그는 명계에서나마 고운 치아가 다 드러나는 결 고운 미소로 오가는 독자들을 바라보며 웃을 터이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4.19 23:02

전북고교생백일장 운문 변아림양·산문 차보람양 각각 장원

'제15회 전북고교생백일장'에서 운문 장원은 변아림(군산여상1)의'4월의 노래'가, 산문 장원은 차보람(전주여고2)양의'기대'가 수상했다.재단법인 목정문화재단(이사장 김광수)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회장 이동희)와 한국작가회의 전북지회(회장 안도현)가 공동주관한 이 대회는 지난 16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개최됐다.15개교 400여명의 학생이 참가한 이번 대회 시제는 운문 '4월의 노래' '꽃' '어머니', 산문 '봄 숲' '입술' '아버지'.운문 장원 변아림 양은 "백일장에 나가라로 적극 권유해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며 "심사위원들로부터 시적 기교나 참신한 언어구사력이 뛰어났다는 평을 들어 기쁘다"고 말했다. 산문 장원 차보람 양은 "가족사를 수필형식으로 담았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겠다"고 소감을 전했다.차상은 운문 김 산(익산고2) 박율곡(익산고2), 산문 전예은(기전여고2) 이현지(강호항공고3), 차하는 운문 김서연(유일여고1) 유정윤(전일고3) 김유진(강호항공고1), 산문 최찬미(기전여고3) 고서린(한일고1) 김예진(전북여고2)이 선정됐다. 우수학교상은 군산여상과 전주여고. 김남곤 심사위원장(목정문화재단 문학부문 전문위원)은 "학생들 400여명이 참석한 문학잔치 였다"면서도 "순수하고 참신한 노력은 가상했으나 열정에 비해 시나 산문의 기교적인 면에서는 다소 미흡했다"고 평했다.김광수 목정문화재단 이사장은 "문학에 소질있는 청소년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 백일장 뿐 아니라 고고생 미술대회까지 열겠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황주연
  • 2011.04.18 23:02

[내가 권하고 싶은 책] (23)장정희 시인 -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

인생이란 분명한 목표가 보이는 산보다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한 사막을 더 닮았다. 우리네 삶이 그 사막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누가 감히 정답을 제시해 줄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두 자녀를 둔 아이의 엄마로서 20대에 들어선 내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살아가야 할지……. 지금부터 긴 여정의 시작이 아닐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브 도나휴는 "방황을 통해 진정한 방향 감각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내 안의 목적의식을 갖고 방황을 한다면, 방향감각을 상실하지 않는다면, 길을 잃었을 때도 분명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길을 걸어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보다는 장차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만 요구한다. 아무리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 해도 누구나 한 가지의 장점은 다 가지고 있으리라 본다. 다만, 그 장점을 더 다듬고 활용할 줄 모를 뿐 우리는 세상에서 낙후될까봐 늘 불안감에 전전긍긍한다. 힘들어 죽겠는데, 쉬고 싶은데, 누가 내 뒤를 추격해 올까봐, 스스로 틀에 갇힌 시간에 학대한다. 우리 내부의 나침반이 항상 진실된 방향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길을 가다보면 지칠 때도 분명 있다. 그럴 때는 잠시 오아시스에 멈추어 쉬어야 한다. 쉬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될 것이고, 여정을 되돌아보면 정정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때로는 더 많이 쉬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정상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안달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인생이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으며 사막을 닮았다고 했다. 사막에 내 던져진 내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로서 어떤 가르침을 주어야 할까? 를 고심해본다. 내 아이들도 살아가면서 여러 방면으로 방황도 많이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방황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길을 터득할 수 있다" 면 그것 또한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소개하면서 열정이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살아가면서 나침반 같은 책이 될 것이고, 그간 한두 번쯤은 겪어봤을 방황을 감내하며 살아온 중년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책이 될 것이라 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뇌리를 스쳐간 것이 있다면 노력은 않고 그저 신기루만 좇는 사람들이 얼마나 비겁하고 나약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막에다 인생을 대비시켰다는 점이 절묘한 감동을 자아낸 책이었다. 내 아이들에게 또한 이 책을 권해 줄 것이며 시를 쓰는 나에게도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장정희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201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마산대학 시창작반, 김해 문협, 샘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북일보
  • 2011.04.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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