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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전라감영 텐트 속, 봄밤의 ‘플로우’

“7시부터 텐트 배정 시작입니다.” 2일 오후 6시, 전라감영 서편부지. 아직 해가 완전히 지기도 전인데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코오롱스포츠 아웃도어 시네마 텐트 좌석을 얻기 위한 사람들이다.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줄은 제법 길었고, 얼핏 봐도 40명 남짓은 되어 보였다. “이 줄 뭐예요?”라고 묻는 사람, 긴 줄을 보고 아예 발길을 돌리는 사람, 그래도 일단 줄 끝에 서보는 사람까지. 현장에선 시작 전부터 작은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줄을 선 사람들의 얼굴도 다양했다. 손을 꼭 잡은 연인, 돗자리를 챙긴 친구들, 아이 손을 잡은 가족 단위 관객들까지. 2인용, 3인용, 4인용 텐트가 준비됐다는 소식에 저마다 어떤 자리를 배정받게 될지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일부는 담요를 들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과자 봉지를 미리 챙겨왔다. “제대로 캠핑하려고요”라는 웃음 섞인 말도 들렸다. 오후 7시, 드디어 배정 시작. 텐트를 배정받은 사람들은 빠르게 자신들의 공간으로 향했다. 텐트 안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순간 분위기는 극장이 아니라 작은 캠핑장에 가까웠다. 돗자리에 기대앉거나 아예 몸을 눕히고, 텐트 입구 사이로 전라감영의 저녁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우와, 진짜 좋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입장과 함께 나눠준 과자와 음료도 분위기를 살렸다. 익숙한 팝콘과 콜라 대신 손에 쥔 간식 꾸러미는 마치 소풍 선물 같았다. 텐트 안에서 과자를 나눠 먹고, 음료를 마시며 스크린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영화 시작 전인데도 이미 충분히 즐거웠다. 텐트를 배정받지 못한 사람들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행사장 한편에는 개인 돗자리와 접이식 의자를 가져와 자리를 잡은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준비된 좌석 여부와 상관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을 만들고 봄밤 야외상영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라감영 서편부지는 그렇게 누구에게나 열린 거대한 야외 극장이 됐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야외상영의 약점’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쌀쌀한 밤공기와 날벌레. 늘 야외 영화에서 감수해야 했던 요소들이 텐트 안에서는 훨씬 덜했다. 실제로 친구 추천으로 처음 영화제를 찾았다는 관람객 하누리(32·전주) 씨는 “야외상영은 분위기는 좋은데 추위나 벌레 때문에 망설여졌었다”며 “그런데 텐트 안은 바람도 막아주고 훨씬 아늑해서 생각보다 훨씬 좋다. 처음 전주국제영화제에 왔는데 이런 프로그램까지 즐겨서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상영작은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플로우>. 인간이 사라진 세계, 대홍수 속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고양이가 낡은 배에 올라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모험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전체관람가답게 아이부터 어른까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고, 파도 위를 헤쳐나가는 고양이의 여정은 전라감영의 밤공기와 묘하게 어우러졌다. 스크린을 바라보다 문득 텐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역사 공간 위로 내려앉은 봄밤과 사람들의 작은 웃음소리가 함께했다. 극장 의자 대신 돗자리, 팝콘 대신 과자, 실내 상영관 대신 텐트. 익숙한 영화 관람의 공식이 바뀌자 영화제의 밤은 훨씬 풍성해졌다. 줄을 서는 순간부터, 텐트 안에 자리를 잡고 과자를 뜯는 순간까지. 이날의 아웃도어 시네마는 단순히 영화를 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봄밤의 공기와 공간, 사람들까지 함께 체험하는 또 하나의 영화제였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왜 ‘영화를 넘어 경험의 축제’로 불리는지, 그 이유를 가장 따뜻하게 보여준 현장이었다.

  • 영화·연극
  • 전현아
  • 2026.05.03 13:29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레드카펫 뒤 차가운 현실…지역 영화정책 ‘생존 설계’ 다시 짜야“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화려한 레드카펫의 조명이 꺼진 뒤편에서 지역 영화 산업의 생존을 고민하는 날카로운 정책 제언이 쏟아졌다. 지난 1일 전주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넥스트 시네마: 2026 지방선거, 씬의 전환과 생태계 설계’ 정책 포럼은 위기에 처한 한국 영화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중앙과 지역의 유기적인 협업과 관객 중심의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영화계의 주요 현안과 동시대 사회적 이슈를 함께 조망하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전주포럼 2026’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날 포럼은 네 명의 전문가 발제를 통해 지역 영화계가 직면한 입체적인 문제들을 짚어나갔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채은 독립미디어연구소 공동대표는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개봉 편수 점유율(7.5%)에 비해 턱없이 낮은 관객 점유율(1.2%)을 지적하며 포문을 열었다. 박 대표는 이를 두고 “관객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영화를 만날 수 있는 물리적 조건 자체가 거세된 구조적 결함”이라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관객이 보고 싶어도 볼 수 있는 극장이 없고, 상영 시간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점유율을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생태계가 외부 지원 없이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자생 임계점’으로 관객 점유율 10% 달성을 제안하며, 이를 위한 파격적인 수요 중심 정책을 주문했다. 이어 최낙용 한국예술영화관협회 회장은 인프라 격차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수치를 던졌다. 최 회장은 “인구 30만 명당 1개 스크린 운영을 목표로, 전국에 최소 100개의 공공 독립영화 스크린을 확보해야 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특히 전북과 같은 지역은 수도권(전용관 점유율 76.2%)에 비해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만큼, 지역별 접근성 차이를 좁히기 위한 지자체 차원의 맞춤형 스크린 확보 전략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행정적·제작적 측면에서도 뼈아픈 자성이 이어졌다.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서수민 한국영상위원회 팀장은 지역 영상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영상위원회의 역할을 재점검했다. 서 팀장은 예산은 10년 전 수준에 멈춰 있는데 사업 영역만 무한 확장되는 지역 영상위의 ‘과부하’ 상태를 지적하며, 정책적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거버넌스 재구조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한진 PGK(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국제위원회 디렉터는 대만 가오슝의 사례를 통해 지역 영화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한 디렉터는 지역이 단순히 영화 촬영 장소를 빌려주는 ‘로케이션 서비스’ 단계에서 벗어나, 해외 프로젝트를 직접 유치하고 공동 제작을 주도하는 ‘글로벌 공동 제작 허브’로 거듭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는 지역 영화 산업이 일회성 행사를 넘어 지속 가능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발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2026년 지방선거를 정책 전환의 변곡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토론자들은 예산 부족과 사업 파편화로 동력을 잃어가는 지역 영화계의 현실을 성토하며, 중앙 정부(영진위)와 지자체 간의 유기적인 거버넌스 구축이 생존의 열쇠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참석자들은 지자체가 영화계를 단순히 보조금 수혜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의 목소리가 행정 실무에 즉각 반영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생태계 설계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사람’과 ‘공간’이다. 이번 포럼은 영화제가 끝난 뒤에도 전주의 극장가와 제작 현장에 온기가 돌게 할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묵직한 숙제를 남겼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전주의 영화 정책이 어떤 ‘씬(Scene)’으로 전환될지 지역 영화인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 영화·연극
  • 전현아
  • 2026.05.02 16:55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아침부터 부지런 떨길 잘했어요”⋯전주영화의거리 달군 씨네필 열기

“아침부터 부지런 떨어서 나오길 잘한 것 같아요. 오늘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행복해요.”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JIFF) 3일차이자 근로자의 날 연휴가 시작된 1일 오전, 전주영화의거리는 쌀쌀한 봄바람마저 밀어낼 만큼 뜨거운 영화 열기로 가득했다. 오전 기온은 10도 안팎에 머물며 다소 서늘했지만, 영화제를 찾은 씨네필들의 발걸음은 이른 시간부터 끊이지 않았다. 이날 오전 8시 50분께 현장 예매와 아카데미 배지 발권이 가능한 J라운지 앞. 오픈까지 10여 분이 남았음에도 입구에는 이미 30여 명의 관람객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경량 패딩과 두꺼운 외투로 무장한 이들의 얼굴에는 추위보다 기대감이 먼저 묻어났다. 오픈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섰다는 한 관람객은 “평소 같으면 일어나기 힘든 시간이지만 꼭 보고 싶은 작품이 있어 서둘러 나왔다”며 “1등으로 기다리고 있으니 뿌듯하다. 이번 연휴 동안 매일 영화를 볼 생각에 설렌다”고 웃었다. J라운지에서 약 50m 떨어진 공식 굿즈샵 앞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오전 9시부터 형성된 대기 줄은 길 모퉁이를 따라 이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방문객이 몰리며 전주국제영화제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줄을 지켜보던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JIFF 굿즈샵 줄 맞나 봐”, “사람 진짜 많다”는 반응과 함께 “어제 미리 살걸”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 굿즈샵은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키캡 키링부터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폐스크린 업사이클링 상품인 미니 크로스백, 파우치, 카드지갑 등 실용성과 상징성을 모두 갖춘 상품들로 채워졌다. 지난해보다 넓어진 공간 구성 역시 방문객들의 쇼핑 편의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친구와 함께 광주에서 전주를 찾은 이나연(23·광주) 씨는 “성인이 된 뒤 매년 이 시기 전주국제영화제를 찾고 있다”며 “올해도 JIFF에서만 살 수 있는 굿즈를 구하게 돼 만족스럽다. 내년 축제도 벌써 기대된다”고 말했다. 양손 가득 굿즈를 들고 매장을 나서는 방문객들의 표정에는 만족감이 역력했다. 매장 유리창에 전시된 상품 목록을 구경하며 발걸음을 멈추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영화의거리 곳곳은 더욱 분주해졌다. 각 상영관으로 향하는 관객들의 움직임이 빨라졌고, 이른 일정에 간단한 식사를 해결하려는 방문객들로 인근 편의점과 카페 역시 활기를 띠었다. 상영관 로비마다 티켓을 확인하거나 다음 일정을 살피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본격적인 연휴 첫날 영화제의 풍경을 완성했다. 특히 유니버설 픽처스 특별프로그램 ‘슈퍼마리오 갤럭시-인 전주’ 팝업스토어 행사장 주변은 시작 전부터 어린이 관람객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붐볐다. 행사장 앞 빈백 공간은 부모와 아이, 조부모까지 함께한 가족 관람객들로 일찌감치 채워지며 세대를 아우르는 축제의 면모를 보여줬다. 차가운 아침 공기와는 달리, 스크린을 향한 관객들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영화 예매 줄에서, 굿즈샵 앞에서, 상영관 로비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근로자의 날 연휴 첫날, 전주영화의거리는 ‘영화’라는 이름 아래 다시 한번 가장 생기 넘치는 도시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8일까지 전주영화의거리를 비롯한 전주시 일대에서 계속된다.

  • 영화·연극
  • 전현아
  • 2026.05.01 11:20

[전주영화제] 박해일 "안성기, 존재만으로 영화인들에게 신뢰 주던 배우"

"보통 선배 배우들이 후배한테 배역이나 연기에 관해 한두 마디 하실 법한데 그런 말보다는, 조용히 편안하게 제 앞에서 앉거나 서 계셨어요. 그 모습 자체가 굉장히 든든했습니다." (박해일) "모든 배우와 스태프를 예뻐해 주시고 소외되는 누군가 있으면 안 된다고 걱정하신 것 같아요. 큰 나무처럼 주변을 살피시고 저희는 그 그늘에서 잘 쉬었습니다." (한예리)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에 참여한 배우 박해일과 한예리는 고(故) 안성기를 태산처럼 든든했던 선배 배우로 기억했다. 박해일은 30일 CGV 전주고사에서 열린 안성기 출연 영화 '필름시대사랑'(2015)의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선배님은 매력적인 미소와 주름을 갖고 계신다. 제가 그 주름을 되게 좋아한다"며 "미소와 단단하고 차분했던 눈빛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필름시대사랑'은 정신병동에 입원한 할아버지와 손녀, 영화 조명팀 스태프의 여정을 통해 사랑과 필름에 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와 '춘몽'(2016) 등을 만든 장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안성기는 정신병동에 있는 할아버지 역을 맡았다. 한예리는 그런 할아버지의 손녀 역으로, 박해일은 조명팀 스태프 역으로 호흡을 맞췄다. 박해일은 2022년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으로 안성기를 다시 만났을 때도 든든한 존재감을 느꼈다고 돌아봤다. 이 영화에서 그는 이순신 역을, 안성기는 이순신을 보좌한 어영담 역을 연기했다. 박해일은 "조선 수군의 갑옷을 입으시고 딱 모니터 앞에 앉아 계시는데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며 "단지 그분이 계신다는 이유로 모든 영화인이 에너지나 신뢰를 가졌다"고 했다. 한예리는 '필름시대사랑' 속 인물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나오는 장면에서, 안성기 목소리가 지닌 힘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경험을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사운드만 나오는 마지막 장(章)을 볼 때 대사 때문에 그림이 보이는 게 신기했다"며 "보이스가 주는 힘 때문에 생동감 있게 보이는 게 재밌었다"고 말했다. 당시 안성기와의 호흡에 관해서는 "정말 편하게 대해주시고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시던 기억이 난다"며 "불편한 것 없이 정말 다정한 사람과 연기를 했다"고 했다. '필름시대사랑'은 장률 감독이 서울노인영화제로부터 제안받고 만든 작품이다. 장률 감독은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노인영화제를 거절하면 노인을 거절하는 것 같았다. 그 부담에 하게 됐다"며 "안성기 배우에게도 출연을 부탁할 때 '선배님 저를 거절하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거절하는 건 한국의 노인을 거절하는 겁니다'라고 협박 비슷하게 했다"며 웃음을 보였다. 작업할 때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장률 감독은 안성기에게도 딱 한 가지만 부탁했다. 연기할 때 껍질이 길게 남도록 사과를 깎아달라는 것이었다. 장률 감독은 "연습하시라고 사과 한 박스를 보냈다"며 "그랬더니 안성기 선배님이 '원래 잘 깎는다'며 직접 하셨는데 실제 잘 깎으셨다"고 떠올렸다. 그는 영화에서 안성기가 '들리는가'라고 말하는 부분을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았다. 극 중 안성기가 연기한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손짓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행동을 한다. 장률 감독은 "안성기 선배님이 그런 말씀을 하면 믿음이 간다. 정말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며 "안성기 선배님은 필름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다 겪었고 따뜻한 사람이다. 영화의 정서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안성기 특별전은 '필름시대사랑'을 비롯해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남자는 괴로워'(1994), '이방인'(1998) 등 7편을 상영한다. 다음 달 1일 '페어러브'(2009) 상영에는 신연식 감독, 3일 '잠자는 남자'(1996)는 오구리 고헤이 감독, 6일 '부러진 화살'(2011)에는 정지영 감독이 함께해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 박해일은 "배우 입장에서 보면 생을 다해도 필름은 남는다"며 "안성기 선배님의 조금 낯선 영화를 영화제 안에서 즐겨보시는 것도 권해드린다"고 했다.

  • 문화일반
  • 연합
  • 2026.05.01 09:58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영화는 극장에서” 변영주 감독이 꺼낸 5편의 세계

한국 독립·여성영화계의 대표 감독 변영주가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관객과 만난다.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전주국제영화제만의 대표 섹션으로, 각 분야 영화인을 선정해 자신의 영화적 시각과 취향이 담긴 작품들을 직접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2022년 배우 류현경을 시작으로 연상호 감독, 배우 백현진, 허진호 감독, 배우 이정현에 이어 올해 여섯 번째 주인공으로 변영주 감독이 이름을 올렸다. 변 감독은 1989년 여성영화집단 ‘바리터’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한국 여성주의 영화운동의 흐름을 함께 만들었고,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낮은 목소리> 연작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기록해왔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을 담아낸 <낮은 목소리>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30일 중부비전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변 감독은 이번 섹션을 통해 자신의 창작 인생에 영향을 준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했다. 선정작은 변 감독의 <낮은 목소리2>, <화차>,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오가와 신스케의 <청년의 바다>, 장피에르 다르덴·뤼크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이다. 변 감독은 “프로그래머 제안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였다”며 “어린 시절 ‘나도 저런 세계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며 인생의 방향을 바꾼 영화”라고 말했다. 이어 “오가와 신스케 감독의 <청년의 바다> 역시 청년 시절 제게 큰 영향을 준 작품”이라며 “서로 방식은 다르지만 세상을 이해하려 했던 감독들의 작품, 그리고 지금 다시 관객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들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가장 기대되는 작품으로 꼽으며 극장 관람의 의미를 강조했다. 변 감독은 “OTT와 개인 공간에서의 감상과 달리 스크린에서 느끼는 압도감은 완전히 다르다”며 “인터미션까지 포함된 긴 러닝타임 자체가 특별한 체험이고, 이런 경험은 지금 시대에 극장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날 변 감독은 OTT 시대 속 영화제의 역할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그는 “이제 영화가 더 이상 대중문화의 중심만은 아닐 수 있지만, 극장에서 함께 보고 서로 다른 감정을 안고 나오는 공동체적 경험은 여전히 특별하다”며 “영화제는 그런 경험을 다시 뜨겁게 만드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주와의 인연도 남달랐다. 변 감독은 “전주국제영화제 초창기 전주 지역 영화사를 기록하는 작업으로 1년 가까이 머문 적이 있다”며 “당시 전주는 ‘영화의 도시’라는 흔적이 분명했고, 27년 뒤 다시 찾은 전주에서도 그 기억이 생생해 울컥했다”고 회상했다. 사회적 질문을 놓지 않는 시선, 그리고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깊은 애정을 동시에 보여준 변영주 감독의 ‘J 스페셜’은 그의 창작 세계를 돌아보는 동시에, 오늘날 영화가 관객과 어떻게 다시 만나야 하는지를 묻는 특별한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영화·연극
  • 전현아
  • 2026.04.30 14:59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화려한 개막’… 전주, 열흘간 영화의 바다로

전주국제영화제가 스물일곱 번째 화려한 막을 올리며 ‘영화의 도시’ 전주의 밤을 달궜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이 29일 저녁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국내외 영화인과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됐다. 개막식에 앞서 진행된 레드카펫 행사에는 조직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과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을 비롯해 배종옥, 김현주, 고아성, 채정안 등 우아한 자태를 뽐낸 배우들이 등장해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또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올해의 프로그래머인 변영주 영화감독, 임순례 감독, 배우 권해효·윤종훈 등 100여 명의 영화계 인사가 총출동해 전주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배우 신현준과 고원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개막식은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의 개막 선언으로 열흘간의 영화 축제를 본격화했다. 특히 올해 개막식에서는 한국 영화계의 큰 별 고(故) 안성기 배우가 특별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돼 그 의미를 더했다. 시상식에는 고인의 아들 안필립 씨가 무대에 올라 대리 수상하며 부친이 한국 영화사에 남긴 깊은 발자취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개막작으로는 루켄트 존스 감독의 예술가의 고뇌를 우화적으로 담아낸 작품인 <나의 사적인 예술가>가 상영됐다. 올해 영화제는 ‘파괴와 실험’이라는 아방가르드 정신을 전면에 내세워 54개국 237편의 초청작을 선보인다. 특별 프로그램인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에는 변영주 감독이 참여하며, 김성오·한선화 등 고스트스튜디오 소속 배우들이 함께하는 ‘전주X마중’ 프로젝트도 영화제의 열기를 더할 전망이다. 한편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다음 달 8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폐막작 <남태령> 상영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김현지 감독의 다큐멘터리인 <남태령>은 2024년 12·3 내란 사태 당시의 긴박한 순간을 2030 여성들의 시선으로 담아내 폐막까지 뜨거운 화제를 모을 것으로 보인다.

  • 영화·연극
  • 전현아
  • 2026.04.29 20:08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시와 예술, 삶의 진짜 얼굴”⋯개막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

“이번 영화의 핵심에는 시(詩)가 있습니다. 단순히 예술가의 삶이나 창작의 과정이 아닌 ‘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를 연출한 켄트 존스 감독은 29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작품의 출발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시적인 분위기를 차용하거나 아름다운 문장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시인의 목소리와 실제 시가 가진 감각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진행된 개막작 기자시사와 기자회견에는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문성경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켄트 존스 감독과 배우 그레타 리가 참석해 영화와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개막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예술을 배경으로 잊혀진 한 예술가의 삶에 찾아온 변화와 전환점을 그린 작품이다. 한 개인의 사적인 서사를 따라가면서도 예술과 현실, 꿈과 생존이 교차하는 지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 당시 호평을 받은 작품으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문을 여는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관심을 모았다. 켄트 존스 감독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에 대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그 이면의 진짜 삶에 더 관심이 있다”며 “인간의 일상, 깨져버리는 환상,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기적 같은 순간들을 포착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영화 역시 꿈과 환상, 현실이 충돌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려 했다”고 덧붙였다. 개막작 선정 이유에 대해 민성욱 공동집행위원장은 “이 영화는 예술을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한 인간의 삶과 변화, 그리고 현실을 함께 비추는 작품”이라며 “주인공의 인생에 찾아온 변화와 그 과정 속 사적인 서사가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과 울림을 줄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시와 유머, 따뜻한 시선이 공존하는 이 작품은 특별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보편성까지 담아낸다”며 “예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생의 복잡성과 아름다움, 현실적 고민을 함께 보여준다는 점에서 올해 영화제의 시작을 알릴 작품으로 적합했다”고 말했다. 배우 그레타 리 역시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과 나를 연결해준 통로였다”며 “이 작품은 예술과 삶, 개인의 내면이 얼마나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특히 그는 한국 영화에 대한 깊은 관심도 함께 전하며 전주국제영화제 참석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강조했다.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은 이날 영화제가 가진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영화산업이 쉽지 않은 시기일수록 영화제는 새로운 창작자를 발굴하고 세계와 연결하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며 “전주국제영화제가 영화의 예술적 가치와 창작 정신을 지키는 공간으로 기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개막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30일 오후 6시 CGV전주고사 1관과 다음 달 1일 오후 1시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상영을 남겨두고 있다. 한편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이날 개막식을 시작으로 다음 달 8일까지 열흘간 영화의거리와 전주시 일대에서 펼쳐진다. 올해 슬로건은 ‘우리는 늘 선을 넘지’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영화와 창작자들이 관객과 만난다.

  • 영화·연극
  • 전현아
  • 2026.04.29 17:16

박종수 화백 개인전 ‘어제와 오늘 사이-생명의 노래’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붓을 들어온 원로화가 박종수가 다시 한번 고향의 관람객 앞에 선다. 다음 달 3일까지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열리는 박종수 개인전의 주제는 ‘어제와 오늘 사이 - 생명의 노래’다. 이번 전시는 그가 평생을 바쳐 탐구해온 ‘전통’과 그 토대 위에서 꽃피운 ‘현대적 재창조’의 결과물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라 할 수 있다. 1980~90년대 오방색 기조의 민화적 풍경으로 한국적 정체성을 탐구했던 작가는 이제 제2의 현실을 추구하는 초현실적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며 예술적 지평을 한층 넓힌 모습이다. 전시장을 채운 그의 화폭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완연한 ‘주조색’의 변모였다. 전반기 작품이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오방색의 시대’였다면, 후반기인 최근작들은 깊은 사유의 고요함이 배어있는 ‘청색의 시대’를 보여준다. 하늘과 바다를 닮은 은은한 청색조의 배경 위로 불상, 삼족오, 말, 나비 등 이질적인 오브제들이 배치되어 몽환적이고도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박 화백의 작업을 두고 “전통과 현실, 그리고 초현실이라는 담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상상력을 불러오는 작업”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과거의 기억과 오늘의 현실을 몽타주 기법 등으로 접목하며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지점은 ‘천지인(天地人) 합일’이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상징체계로 꼽힌다. 금빛 삼족오가 푸른 하늘을 가르고 그 아래로 행글라이더를 탄 인간과 갈매기가 어우러지는 광경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생태 환경적 평화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익두 사단법인 민족문화연구소장은 박 화백의 예술 세계에 대해 “전통을 체득하고 그 속에서 독창적인 ‘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진정한 화가의 자리를 획득했다”며 “이러한 성취는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온고지신의 정신을 현대적 회화로 구현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소장은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도상들은 민족적 기호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생명의 노래”라고 덧붙이며 이번 전시가 갖는 미술사적 의미를 짚었다. 고창 출생인 박 작가는 조선대학교 미술교육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해, 지난 1979년 전북예술회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광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380여 회의 전시를 이어온 지역 미술계의 산증인이다. 전북대와 한양여대 강사를 역임하고 고창고와 전북사대부고 등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써온 그는, 2023년 전북 문화예술대상에 이어 2024년 목정문화상 미술부문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현재 상형전 고문과 전북미술대전 초대작가 등으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교동미술관 개인전을 포함해 총 18회의 개인전을 기록하며 여전히 뜨거운 창작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4.29 13:45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스크린 밖으로 나온 축제⋯가족 위한 부대행사 3선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29일 개막과 함께 열흘간의 영화 축제에 돌입했다. 스크린 안팎을 넘나드는 올해 영화제는 상영작뿐 아니라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부대행사로 어린이날 황금연휴를 더욱 풍성하게 채운다. 전북일보는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주요 체험형 프로그램 3가지를 추렸다. △영화의 거리에서 만나는 ‘슈퍼 마리오’⋯도심 전체가 놀이터 올해 어린이날 연휴, 전주는 영화와 게임, 관광이 결합한 거대한 테마파크로 변신한다. 2026 관광거점도시 전주시 특별프로그램 ‘〈슈퍼 마리오 갤럭시〉 in 전주’는 영화의거리와 한옥마을 일대를 무대로 펼쳐지는 대형 참여형 이벤트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캐릭터 마리오·루이지·피치·쿠파를 활용한 다양한 체험 요소를 통해 어린이 관객은 물론 가족 단위 방문객까지 겨냥했다. 영화제의 상징 공간과 전주의 대표 관광지가 결합하면서 ‘보는 영화제’를 넘어 ‘직접 뛰노는 영화제’의 확장판이 될 전망이다. 특히 어린 자녀와 함께하는 가족이라면 상영관 중심 동선에서 벗어나 한옥마을과 영화의거리를 오가며 보다 가볍고 활기찬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별빛 아래 텐트 영화관⋯전라감영서 즐기는 아웃도어 시네마 연휴 저녁 시간을 책임질 프로그램으로는 코오롱스포츠 아웃도어시네마가 단연 눈길을 끈다. 5월 1일부터 3일까지 전라감영 서편부지에서 열리는 이번 야외 상영은 역사 공간과 캠핑 감성을 결합한 이색 콘텐츠다. 텐트 안에서 가족·연인과 함께 영화를 감상하는 방식으로, <코다>, <플로우>,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상영작이 준비됐다. 무료 프로그램이지만 예약제로 운영돼 비교적 안정적인 관람 환경을 제공하는 점도 장점이다. 전주의 밤공기, 역사 공간, 영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경험은 어린이날 연휴를 특별한 추억으로 바꾸기에 충분하다. 극장을 벗어난 영화제가 줄 수 있는 가장 감성적인 선택지다. △직접 만들고, 듣고, 타보고⋯오감형 참여 프로그램 풍성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참여형 프로그램이 정답이다. 메가박스 전주객사에서는 나만의 관심작 스틸컷으로 꾸미는 ‘J Frame 만들기’가 진행돼 영화제를 개인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직접 고른 이미지가 실제 출력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젊은 관객층의 호응이 기대된다. 어린이날 당일에는 전주영화제작소에서는 한국영화사의 상징적 배우 안성기 특별전과 연계한 ‘KMDb 프린트 스테이션’이 운영된다. 포스터와 스틸컷을 활용한 DIY 워크숍은 어린이·청소년에게는 창의 체험의 장, 성인 관객에게는 아카이브 기반 문화 향유의 기회가 된다. 여기에 전주시 공유자전거 ‘꽃싱이’를 무료 대여하는 활력충전소까지 더해지며, 영화제 공간을 보다 능동적으로 누빌 수 있다. 영화와 도시를 함께 탐험하는 방식의 축제 경험인 셈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어린이날 연휴는 단순한 상영 일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가족 친화형 체험, 야외 감성, 참여형 콘텐츠가 촘촘히 배치되며 ‘전주 전체가 영화제가 되는 시간’을 완성하고 있다. 스크린 밖으로 확장된 이번 연휴 프로그램은 어린이부터 영화 애호가까지 모두를 위한 가장 입체적인 영화제 사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영화·연극
  • 전현아
  • 2026.04.29 11:06

[전주국제영화제 어떻게 열리나] 아방가르드에서 골목상영까지⋯전주국제영화제의 진화

새로운 표현 방식과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영화라는 예술의 외연을 확장해 온 전주국제영화제가 29일 개막과 함께 스물일곱 번째 여정에 나선다. 다음 달 8일까지 열흘간 전주 고사동 영화의거리와 전주시 일원에서 펼쳐지는 이번 영화제는 54개국 237편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한다. 올해 영화제는 단순한 상영을 넘어 영화의 형식, 도시의 공간성, 관객 경험 전반에서 ‘전주다운 영화제’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편집자주> △아방가르드 정신으로 돌아간 영화의 본질…프로그램 혁신 강화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 ‘파괴와 실험’이라는 아방가르드 정신을 전면에 내세운다. 정형화된 산업 구조 속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재생산되는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자극을 던지기 위해, 20세기 세계 영화사에서 혁신의 전환점을 만든 인물과 흐름을 다방면으로 호출했다. 대표적으로 ‘뉴욕 언더그라운드 특별전’은 베트남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으로 격동하던 1960~70년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잭 스미스·캐롤리 슈니먼의 급진적 영화 세계를 소개한다. 한국 최초 공개작도 포함돼 동시대 관객에게 영화와 예술의 경계를 허문 실험성을 새롭게 환기시킨다. ‘홍콩 아방가르드 특별전’과 ‘게스트 시네필’ 역시 장르 문법을 해체한 영화들을 통해 기존 영화사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독립예술영화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무협과 액션코미디 중심의 홍콩영화 이면에 존재했던 전복적 미학을 재발견하는 자리다. 올해 초 별세한 배우 안성기를 기리는 특별전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도 주목된다. 국민배우라는 수식어 이면에서 독립·예술영화에 기꺼이 손을 내밀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에 동참했던 그의 또 다른 얼굴을 집중 조명한다. 특히 지난해 특별전에서 출발해 올해 정식 섹션으로 확대된 ‘가능한 영화’는 이번 영화제의 방향성을 상징한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영화 만들기의 본질과 창작 정신을 지켜온 이들을 조명하며, 혼돈의 시대 속에서도 영화의 가치와 삶의 희망을 연결하려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철학을 담아낸다. △도시 전체가 영화제가 된다…전주형 축제 경험의 진화 운영 측면에서 올해 영화제는 ‘영화가 도시가 되는 순간’에 방점을 찍는다. 영화의거리 중심의 상영 구조를 넘어 전주 곳곳의 문화공간과 골목, 한옥마을까지 영화제 경험을 확장해 도시 전체를 하나의 시네마 공간으로 전환한다. 전주만의 대표 프로그램인 ‘골목상영’은 지역 공간성과 영화 관람을 결합한 차별화된 시도로, 관객은 스크린 밖에서도 전주라는 도시의 결을 체감할 수 있다. 여기에 스포츠 브랜드와 협업한 도심형 캠핑 상영, 전시 프로그램 ‘100 Films 100 Posters’ 등은 영화와 디자인,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하며 축제의 스펙트럼을 넓힌다. 관람 환경 개선도 눈에 띈다. ESG 경영 실천 차원에서 친환경 굿즈와 재사용 중심 운영 방식을 확대하고, 관객 동선 재구성과 셔틀버스 개선으로 접근성을 높였다. 또한 배리어프리 상영과 안내 시스템 확장을 통해 장애·비장애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통합적 영화 환경 조성에도 힘쓴다. 결국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스크린 안의 영화만이 아니라, 도시와 관객, 공간과 운영 방식 전반에서 ‘가능한 영화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스물일곱 번째 봄, 전주는 다시 영화로 경계를 넘는다.

  • 영화·연극
  • 전현아
  • 2026.04.28 17:02

‘우리는 늘 선을 넘지’…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29일 화려한 개막

27번째 전주의 봄날을 수놓는 전주국제영화제(JEONJU IFF)가 29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열흘간의 시네마 축제에 돌입한다. 올해 역시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슬로건 아래, 전통적인 영화 형식과 상영 방식을 넘어서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간, 이벤트를 통해 전주국제영화제만의 도전 정신을 선보인다. 전 세계 54개국에서 출품된 237편의 작품이 관객과 만나며, 영화의 도시 전주를 다시 한번 세계 영화인의 교류의 장으로 만든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은 29일 오후 6시 30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열린다. 올해 개막식 사회는 최근 수년간 전주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꾸준히 참석하며 영화제와 깊은 인연을 이어온 배우 신현준과, 독립영화계에서 밀도 높은 연기로 존재감을 인정받아 온 배우 고원희가 공동으로 맡아 현장에 활력을 더한다. 개막식 레드카펫에는 국내외 영화인들이 대거 참석해 축제의 시작을 빛낼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고(故) 안성기 배우 특별전과 연계해 그와 깊은 인연을 맺은 영화계 동료들이 함께하며 의미를 더한다. 여기에 김성오, 고원희, 임재혁, 장희령, 음문석, 류경수, 한선화, 류성록 등 영화제 특별 프로그램 ‘전주X마중’의 파트너사 고스트스튜디오 소속 배우들도 레드카펫에 올라 관객과 호흡한다.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의 환영사에 이어 진행되는 특별공로상 시상식에서는 한국영화계에 남긴 깊은 발자취를 기리기 위해 고 안성기 배우가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날 시상식에는 고인의 아들 안필립 씨가 참석해 대리 수상한다. 이어 심사위원 소개와 함께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선정된 변영주 감독이 무대에 오르며, 작가이자 가수로 사랑받아 온 오지은의 개막 공연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예정이다. 이어 올해 영화제의 개막작인 켄트 존스 감독의 <나의 사적인 예술가>가 상영된다. 이 작품은 예술가의 삶과 고뇌를 우화적으로 풀어낸 영화로,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공개돼 호평을 받았다. 이날 켄트 존스 감독과 배우 그레타 리가 직접 전주를 찾아 한국 관객과 특별한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 영화·연극
  • 전현아
  • 2026.04.28 15:20

[리뷰] 익숙한 고전의 해체와 재구성… 국립민속국악원 창극 ’춘향’

국립민속국악원이 선보인 2026년 대표창극 ‘춘향’은 모두가 익히 아는 고전의 서사를 과감히 덜어내고, 춘향이라는 인물의 내면과 감정선에 집중한 실험적 무대로 관객과 만났다.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에서 열린 이번 작품은 ‘서(序)·이별·그리움·신연맞이·수난·재회·어사출도·다시 사랑가’의 구조 아래 방자·향단 등 주변 인물의 비중을 줄이고, 춘향의 정서적 흐름을 중심축으로 재편했다. 약 80분 분량으로 압축된 공연은 익숙한 ‘춘향전’의 서사적 완결성보다 빠른 호흡과 현대적 감각의 무대화에 방점을 찍었다. 김세종제와 만정제 사설을 혼용하고 일부 현대적 어법을 가미한 구성은 전통의 문법을 유지하면서도 오늘의 관객 호흡에 맞추려는 시도로 읽혔다. 한 국악계 전문가는 “익숙한 춘향 서사를 시대 흐름에 맞게 압축했고, 무대와 의상 역시 현대적 감수성을 더해 신선하게 다가왔다”며 “연출 방향이 분명했고 전반적으로 몰입감도 높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춘향 역을 맡은 서진희 소리꾼에 대해서는 “긴 서사를 중심에서 이끌어야 하는 부담 속에서도 안정적인 소리와 표현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설명보다 음악과 장면 중심의 흐름을 택했다. 대본은 전통 춘향가의 해학성과 발랄함을 덜어내고 보다 정제된 정서와 비극성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연출 역시 군더더기 없는 장면 전환과 상징적 무대장치를 통해 한 편의 음악극이자 시각적 이미지극에 가까운 인상을 구축했다. 대나무, 달빛, 그림자 등 시각적 장치와 새롭게 정비된 의상은 비교적 단출한 무대 조건 속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다만 이러한 재구성이 모든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춘향 개인에게 지나치게 비중이 쏠리면서 이몽룡, 월매, 변학도 등 주요 인물의 입체감이 약해졌다”며 “음악극이라면 인물 간 서사와 감정이 유기적으로 교차해야 하는데, 일부 장면에서는 판소리 원전과 새 창작 요소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랑가의 축소와 후반부의 빠른 전개에 대해서는 “춘향전 특유의 서사적 축적과 관계의 결이 줄어들면서 감정의 설득력이 다소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초반 설명이 과감히 생략된 만큼 원전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장면 이해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실제 이번 공연은 ‘춘향의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하는 대신, 고전이 지닌 군상성과 다층적 관계를 상당 부분 덜어냈다. 이는 작품의 방향성을 보다 선명하게 만드는 장점이자, 동시에 일부 관객에게는 ‘춘향전다운 맛’의 축소로 받아들여질 여지를 남겼다. 그럼에도 이번 ‘춘향’은 국립민속국악원이 고전을 단순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려는 방향성을 분명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통 창극이 익숙한 서사를 오늘의 언어로 어떻게 다시 번역할 수 있는지 보여준 하나의 시도이자, 오는 7월 일본 오사카 공연으로 이어질 해외 무대를 앞둔 시험대이기도 하다. 익숙한 고전의 외피를 벗기고 한 인물의 감정선에 집중한 이번 무대는 분명 호불호를 남겼다. 그러나 전통의 현재화라는 과제를 향한 고민과 실험이라는 점에서, 이번 ‘춘향’은 그 자체로 충분히 주목할 만한 무대였다. 고전의 본질과 현대적 해석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만들어갈지는 앞으로 이 작품이 더 다듬어가야 할 과제로 남는다.

  • 전시·공연
  • 전현아
  • 2026.04.27 17:14

제26회 강암서예대전 휘호대회 대상에 배병일 씨

제26회 강암서예대전 휘호대회에서 운정(雲亭) 배병일(66·경남 진주) 씨의 ‘매월당 김시습의 시 위천조도'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재)강암서예학술재단이 주최한 이번 휘호대회는 지난 25일 성황리에 열렸다. 대회는 한국 서예계의 거목 강암 송성용 선생의 뜻을 기리고, 서예문화의 저변 확대와 역량 있는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마련됐다. 앞서 진행된 1차 예심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준 높은 작품이 출품됐으며, 엄정한 심사를 거쳐 총 193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부문별로는 △한문 80명 △한글 43명 △문인화 70명이다. 시상식은 다음 달 26일 오후 3시 강암서예관에서 열릴 예정이며, 대상 수상자에게는 1000만 원, 최우수상 3명에게는 각 200만 원, 우수상 6명에게는 각 100만 원 등 총 2200만 원의 창작지원금이 수여된다. 또 이번 대회에서 특선 이상을 받은 우수 작품은 다음 달 26일부터 6월 2일까지 강암서예관 1층 전시실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송현숙 강암서예학술재단 이사장은 “현장 휘호를 통해 실력이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이게 돼 뜻깊다”며 “시상식과 전시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강암서예대전이 앞으로도 대한민국 서예의 정통성을 지키며 가장 공정한 등용문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전현아
  • 2026.04.27 17:12

15년 침잠 끝에 꽃피운 원불교 김홍선 교무의 문학적 불공

원불교 교단에서 김홍선(74) 교무의 존재는 구도자의 정진과 문학적 성취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독보적인 사례로 꼽힌다.<삼밭재의 산신령> <사월의 종소리> <연꽃의 미소> <다람쥐 대통령 & 욕심 많은 원숭이> 등 동화 5권을 한꺼번에 발간하며 ‘글을 통한 교화’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고 시절 국어교사로부터 “너는 앞으로 글을 써라”는 당부를 들었던 한 소녀의 남다른 표현력은 이후 원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운영하며 200여 명의 아이를 돌보는 실천적인 자양분이 됐다. 김 교무의 이력에서 주목할 지점은 신앙적 수행을 문학적 전문성으로 승화시킨 치열한 과정에 있다. 그는 낮에는 아이들을 돌보고 교당 교화에 정성을 쏟으면서도 밤이면 타자기 앞에 앉아 15년 동안 전국의 신춘문예 당선작과 심사평을 분석하며 문학적 공력을 쌓아온 침잠의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정진은 <파랑새와 허수아비> 작품으로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이라는 객관적인 성취로 이어졌으며 종교적 메시지를 보편적인 예술의 언어로 번역해낼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그의 작품세계는 원불교의 핵심 가치인 <마음공부> <인성교육>과 무아봉공(無我奉公)’과 ‘정신개벽’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구현한다. 실제 그의 동화 <삼밭재의 산신령>은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 과정을 산신령이라는 친근한 존재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깨달음이 결코 대중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동화로 표현해냈다. 또한 <다람쥐 대통령>이나 <연꽃의 미소> 등의 작품은 나를 잊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삶의 가치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논리적으로 설득한다. 만물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처처불상(處處佛像)’의 원리를 일상 속으로 끌어들인 결과물이다. 김 교무는 지난 24일 전북일보와의 통화에서 탈종교화 시대의 동화는 단순한 어린이책이 아닌 현대인의 마음을 채우는 ‘마음공부’의 매개체라고 정의했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동화를 읽을 수 있는 연령을 4세부터 80세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그는 환상과 현실이 접목한 서사를 통해 성인들에게도 위로와 정화의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새 생명을 부여하고, 존재의 이유를 알려주고 싶다”는 그의 다짐은 글쓰기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불공(佛供)으로 삼아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건설하려는 원불교의 개교 동기와 깊게 맞닿아 있는 셈이다. 그는 앞으로도 환상의 공간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고,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나의 문장마다 정성을 다해 일궈낸 그의 ‘문학적 포교’는 메마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마음의 평온을 찾아주는 따뜻한 응원이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건네는 다섯 권의 선물 같은 동화는 “오늘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있느냐”고 대중들에게 묻는다.

  • 종교
  • 박은
  • 2026.04.27 11:24

“누구에게나 상실의 공간은 있다”…백학기 감독이 띄운 고요한 안부

기자로 20년, 영화감독으로 25년을 보냈다. 45년의 세월을 줄곧 현장에서 보낸 백학기(66) 감독을 23일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거창한 수식어보다는 묵묵히 제 길을 걷는 창작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장편독립영화 <저만치 가까이> 역시 화려한 기교보다는 삶에 대한 깊은 응시에 집중한다. 영화는 진안 마이산과 보성 대원사 등 ‘사찰’이라는 정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두 개의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1부 ‘나는 누구인가’에서는 자신을 버리고 출가한 어머니를 찾아가는 20대 청년 윤지의 여정을 그려낸다.2부 ‘가까이’는 상실의 기억을 안고 사찰을 찾은 은퇴한 교수 수현의 치유를 그려낸다. 백 감독은 이번 영화에 대해 “서로 다른 성격의 눈물을 흘리는 두 여자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자칫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소재를 시적인 독백과 싱잉볼의 진동 같은 감각적인 연출로 갈무리해 관객이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게끔 설정한 점이 돋보인다.ㄱ 그는 지역신문사와 KBS 방송국 홍보실 등에서 일하다 영화계에 데뷔한 후, <공중의자> <이화중선> 등을 제작하며 평단으로부터 ‘한국의 타르코프스키'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백 감독은 ‘시간 이미지’의 구현에 공을 들이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사건이 급박하게 전개되는 일반적인 대중영화들과 달리, 관객이 스크린 속 시간의 흐름을 직접 느끼며 스스로를 반추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도시의 소음 대신 사찰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도 존재론적 고뇌를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백 감독은 관객들이 이번 영화를 통해 각자의 기억 한 조각 또는 상실의 공간을 마주하는 체험을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북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에게 지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행복하면서도 낯선 일이다. 열악한 인프라는 늘 숙제지만 지역의 산천과 사찰의 풍광을 렌즈에 담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 영화 역시 제작사 103X를 이끄는 딸 백지윤 감독과 진안 마이산, 보성 대원사 그리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완성됐다. 엔딩 크레딧을 채운 수많은 이름들은 그가 25년 동안 쌓아올린 영화적 신뢰의 증표이기도 하다. 현재 그는 전주시청 뒤편 선미촌을 배경으로 한 장편 상업영화와 이번 영화의 완결판인 3부 <길 위에서>를 동시에 구상 중이다.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상실의 공간 하나쯤은 품고 살잖아요. 저는 이 영화가 관객 각자의 기억 속에 묻어둔 공간을 마주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영화였으면 해요“ 백 감독의 바람처럼 영화 <저만치 가까이>는 이제 관객의 일상에 고요한 파동을 일으킬 채비를 마쳤다. 상실을 응시하며 이면의 온기를 기록해온 그의 시선은 또 다른 삶의 진실을 향해 묵묵히 발을 내딛고 있다.

  • 영화·연극
  • 박은
  • 2026.04.23 16:4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극작가-‘들어라 전라북도 산천은 노래다’

작가가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을 언어로 길어 올릴 때, 그 땅은 비로소 제 깊이를 얻는다. 시선집 『들어라 전라북도 산천은 노래다』(전북문화관광재단·2019)는 이러한 문학의 본질을 전북이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증명한다. 전북 14개 시군의 산과 강, 그곳에 깃든 삶의 조각들을 150명의 시인이 150편의 시에 담아낸 이 기록은 우리 문학이 나아가야 할 올곧은 이정표와 같다. 특정한 공간을 표지판 위의 글자를 넘어 더 의미 있는 장소로 바꾸는 힘은 무엇일까. 이 시선집은 이야기와 기록에서 그 답을 찾는다. 수록된 시들은 진안 장날부터 장수 어전리, 부안 곰소와 내소사에 이르기까지 지역 곳곳에 영혼을 불어넣는다. 시인이 세밀하게 포착한 풍경과 사연은 독자의 감각을 생생하게 깨운다. 이소애의 「전주천 여울목 섶다리」를 지나며 물소리를 듣고, 우미자의 「강천산에 단풍 들 무렵」에선 문득 붉은 마음을 들킨다. 신재순의 「군산 경암동 철길 마을 이야기」를 통해 근대의 흔적을 밟는 독자는 전북을 이전과는 다른 정서적 유대감으로 마주한다. 송희의 「어청도 등대」가 비추는 외로운 불빛과 김남곤의 「안국사에서」 느껴지는 깊은 사색은, 문학적 공간이 어떻게 독자의 가슴속에서 생생한 실체로 살아 움직이는지를 깊이 새겨준다. 기록은 곧 보존이며, 동시에 정체성의 확인이다. 문병학의 「전봉준의 눈빛」이 깨우는 강인한 역사의식과 이희중의 「중인리의 봄」에 담긴 계절의 미학은 이 땅의 뿌리를 단단하게 지탱한다. 김도수의 「진뫼로 간다」와 박형진의 「모항1」, 신형식의 「웃동네 통시암」, 유순예의 「말하는 더덕」 같은 작품은 점차 희미해지는 향토적 정서와 사투리, 공동체의 원형을 언어로 붙잡아 둔 소중한 자산이다. 글 쓰는 이들이 지역의 구체적인 모습을 외면하고 관념에만 빠질 때 문학은 생동감을 잃는다. 반면 안성덕의 「목어」, 이봉명의 「입동, 단풍들」, 장교철의 「귀래정에 앉아」, 장현우의 「화백나무」, 전병윤의 「멀미 앓는 뜬봉샘」, 조미애의 「정읍 가는 길」처럼 땅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살피는 시선은 전북의 저력을 한데 모은 인문 지도가 된다. 시선집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전북이 지닌 이야기의 힘에 압도된다. 김영의 「동령 느티나무」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르고, 전선자의 「가을 적상산 그리고 나」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용범의 「줄포에서 보내는 봄 편지」를 읽는 경험은 전북의 산천이 그 자체로 거대한 시적 영감의 보고임을 깨닫게 한다. 시인들이 남긴 흔적은 이 땅을 마주하는 모든 이의 가슴을 채우는 따뜻한 온기가 된다. 이 시선집은 전북의 땅과 그곳을 사랑한 문장가들이 합작해 만든 위대한 합창이다. 지역을 기록하는 문학적 실천이 어떻게 공간의 가치를 일깨우고 대중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이 책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전북의 산과 강이 노래가 되는 순간, 그곳은 지도 위의 굳은 이름을 벗어나 풍성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흐르는 우리 문학의 깊은 젖줄이 된다. 전북의 산과 강은 언제나 노래였다. 시인들은 다만 그 노래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정성껏 옮겨 적었을 뿐이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6.04.23 09:59

오래된 기억과 삶의 진실을 길어 올리다…김현조 시선집 ‘우스운 일’

서정시의 맥을 이으며 시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김현조 시인이 시선집 <우스운 일>(신아출판사)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지나온 삶을 조용히 되돌아보며 삶의 비의(悲意)와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다.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존재와 시 쓰기의 행위를 경유하며 자신의 시력과 인생론을 펼쳐 보인다. 특히 우리 사회의 장면을 더듬어 그 속에 스며있는 오래된 기억과 삶의 진실을 담담히 길어올리는 솜씨가 인상적이다. 단아한 시 정신과 담백하고 진솔한 언어가 어우러진 시선집은 정숙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준다. “비가 온다. 고려인 협동농장에 살고 있는 김 노인은 비를 보고 있다. 낙숫물이 눈물 같다. 이웃나라 알마티로 나가 있는 자식들은 걱정 말라지만 아무래도 거짓말 같다. 나라가 왜 이 모양인지 자꾸 내 잘못인 것 같다 자식들 얼굴 보기는 더욱 어려워졌다.//(…중략…) 도시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꼭 먼지를 동반한 사막의 바람소리 같다. 지금 내리는 빗물은 김 노인의 걱정을 더 키운다. 만리타국에 나와 있는 나를 걱정하고 있을 어머니가 보고 싶다.”(‘낙숫물소리’ 부분) 김 시인은 오래된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지나온 삶의 흔적을 차분히 응시하며 인생을 성찰한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들은 과거의 회상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는 삶의 고단함과 슬픔을 품어 안으며 서정의 힘으로 작고 소박한 것들이 함께하는 사람살이의 본래의 면목을 노래한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작품해설에서 “서정시에서 다루어지는 기억이란 시인이 지나온 시간의 의미를 형상화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며 “김현조의 시편은 내면의 출렁임과 경험적 서사가 기억 속에서 견고하게 결속하는 특성을 지니면서 가장 근원적인 기억들을 향한다”고 분석했다. 시집에 수록된 126편의 시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문득 아득해지는 순간을 선사하는 조용한 힘이 있다. 인간과 삶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독자들은 사람과 자연과 일상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지는 경험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는 시인의 말을 통해 “졸작들이 안목을 가리고 있었다. 시선집이라고 시를 골라보니 쭉정이 뿐”이라며 “‘인쇄된 문장은 도끼로도 파낼 수 없다’는 러시아 속담이 더욱 부끄럽게 한다”라고 고백한다. 정읍 출생인 김현조 시인은 1991년 <문학세계> 시로 등단했다. 시집 <사막풀> <당나귀를 만나 목화밭> <비사벌에는 달 냄새가 난다> 등과 번역서 <요절복통 나스레진 일화집>을 출간했다. 전북시인협회 회장과 전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6.04.22 17:07

삶의 결따라 흐르는 50편의 이야기, 김영진 수필집 ‘구름이 머흘레라’

하해(夏海) 김영진 작가가 신간 <구름이 머흘레라>(신아출판사)를 펴냈다. 이번 수필집은 작가의 고향에 대한 회상으로 문을 열며, ‘금강에서’, ‘바람이 부는 곳으로’, ‘그리운 사람들’, ‘구름이 머흘레라’, ‘시와 노래로’ 등 5부로 구성됐다. 총 50편의 수필에는 유년의 기억과 삶의 결이 잔잔하게 스며 있다. 책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따뜻한 기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어릴 적의 일이다. 밖에 나가 실컷 놀고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나를 붙잡아 씻기시곤 했다. 얼굴에 땟국물이 쪼르르 흐르고 땀내가 나는 나를 번쩍 안아 우물가에서 차디찬 샘물로 얼굴과 눈, 코, 볼을 뽀득뽀득 씻어 주셨다.”(‘어머니의 향기’ 중) 또 다른 글에서는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아낸다. “나의 고향 웅포 제석, 나를 태어나게 하고 어린 시절 꿈을 키워준 곳. 나는 그곳에서 자라고 길러져 세상으로 나와 유영하고 있다. 엉성한 거푸집에 살을 붙여 몸을 키우고 오늘을 살아가지만, 근본인 고향을 벗어날 수는 없다.”(‘내 고향, 웅포’ 중) 이처럼 김 작가의 수필은 가족과 이웃, 그리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한 정겨운 정서를 품고 있다. 특히 일상의 소소한 장면들을 섬세하게 포착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글 전반에는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작가의 소망과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김영진 작가는 현재 호스피스 자원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자유문학회, 민조시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전북수필가협회, 표현문학회, 석정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미당문학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2011년 목포문학 시 부문 시인상을 비롯해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6.04.22 16:44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