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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고향과 가족 위해 할 수 있는 일 고민해야죠"

"30여년간을 톱니바퀴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앞으로 느긋한 시간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지만, 다소 느슨하고 여유있게 살고 싶습니다"지난달 31일로 31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한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방기호 전 상임위원(58). 방 전 상임위원은 지난 2003년 별정1급인 법제처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상임위원에 임명된 뒤 연임을 거쳐 6년동안 상임위원을 맡았다.상임위원의 경우 연임 사례가 거의 전무했었다는 점에서 방 전 상임위원의 연임은 당시 공직사회에 적지않은 화제를 낳았었다. 그만큼 그가 특유의 성실함과 치밀한 업무능력을 보여줬다는 반증이다.남원 주생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원광대를 졸업한 그는 지난 78년 제21회 행시에 합격한 뒤 공직에 입문했다. 줄곧 법제처에서 근무하며 사회문화법제국장과 행정심판관리국장 등 요직을 거쳐 상임위원에 올랐다.상임위원 재직때는 민원인들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서면위주의 행정심판을 구술심리위주로 전환하는 데 주력했다. 또 행정집정지 확대를 통해 민원인들의 불편을 줄이는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남원지역 공직자 모임인 남공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선배들이 퇴임할 때마다 '대과없이 물러난다'는 말을 잊지 않았는데, 이제서야 선배들의 퇴임사가 무슨 뜻인지를 깨닫고 있다"면서 "상임위원 임기를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무한한 영광"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제는 야인으로 돌아온 만큼 나를 되돌아보고 가족들을 돌보는데 주력하겠다"면서 "그동안 고향에 뭔가를 받기만 했는데 이제는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정치일반
  • 정진우
  • 2009.04.03 23:02

[일과 사람] 꾸준한 나눔실천 베이비스튜디오 장순덕 대표

우리 사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남몰래 배려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사업을 하면서 얻는 수입의 일부를 소년소녀 가장과 홀로사는 노인 등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위해 꾸준히 내놓고 있는 장순덕 대표(50·전주 베이비스튜디오)가 그 주인공.지난 1995년부터 시작된 장씨의 이웃사랑은 중증 장애우 목욕봉사, 간식 제공을 비롯해 독거노인 영정사진 찍어주기(1997년)와 명절 소년소녀가장 위로금 기탁(1997년), 희망의 집 고쳐주기 후원(1998년), 결식학생 급식 후원(1999년), 전북사랑 가족사랑 자선음악회 주관(2006년), 노인복지관 물품 기탁(2008년) 등 헤아리기 조차 힘들 지경이다.그는 어려운 이웃을 보면 힘이 닿는 한 꼭 돕고자 노력한다. 2007년에는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파킨슨병(2급 장애인)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집으로 직접 모셔와 3개월 가량 도움을 주기도 했다.그가 이처럼 이웃 사랑에 힘을 쏟게 된 데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15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남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장 대표는 "당시 자동차에 내가 함께 타고 있었다면 아들(당시 8세)은 소년가장이 됐을 것 아닌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렵게 이 세상을 살아갈까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저며들었다"며 "어렵게 살아가는 소년소녀가장 등 이웃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나누고, 배려하는 생을 살아 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제 눈높이도 달라졌다"고 말했다.26년 째 사진사업을 하면서 '베이비스튜디오'라는 자체 브랜드를 개발, 전국적인 브랜드 파워로 성장시킨 장 대표는 "사진사업을 하면서 각박한 세상을 많이 느낀다"고 아쉬워한다. 신구문화의 차이도 있겠지만, 예전에는 사진관을 찾아 가족사랑, 연인사랑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가족사진 손님이 감소 추세라는 것.김제 원평에 '총체보리 한우 특구단지'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그는 "특구단지를 성공시켜 지역을 활성화시키고, 고용도 창출시키겠다"며 "사업이 잘되면 장학금도 더 많이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사회일반
  • 김재호
  • 2009.04.03 23:02

[일과 사람] 청소년기자단 추진 '문화공간 싹' 채성태 대표

"그동안 우리 문화를 우리(어른)들의 시각으로만 전달해 왔더라고요. 아이들이 도내 문화 현장에 나가 그들의 눈높이로 또래들에게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문화공간 싹」의 채성태 대표(36)는 올해 '우리가 바라본 우리 지역 문화예술!'이란 표어를 내걸고 '청소년기자단'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는 "그동안 문화예술 교육의 수요층에 머물렀던 청소년들을 생산층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고 말했다.채씨가 '청소년기자단'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야심작은 '가로&수수(樹守) 프로젝트'. 단순히 가로수 지키기가 아니라 우리 지역을 지키는 운동이다."가로수가 왜 있나요? 환경, 건강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가로수를 해치는 것은 곧 우리 지역을 해치는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 지역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모든 게 허물어집니다."그는 "가로수에 작은 이름표도 달지 않을 계획이다"며 "무더운 여름 날 물을 주는 것과 가을에 낙옆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은 허용된다"고 말했다.채씨는 원래 화가가 꿈이었다. 어릴 때 집에 있는 온갖 종이와 유리에 그림을 그렸다. 부모님 모두 병으로 누워계셔서 집은 가난했다. 그는 대학(전북대 미술학과)에 와서도 구두닦이와 목욕탕 때밀이, 막노동을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그런 중에도 공짜로 어르신들의 구두를 닦아주거나, 장애인들의 때를 밀어줬다. 그의 환경이, 환경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돕게 만든 것이다."대학 때 공모전에 제 그림이 나가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그러다 정해진 구도,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창조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은 모든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실용 학문이어야 해요. 전 지금 더 넓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현재 그에게 '화판'(畵板)은 버스나 초등학교 운동장 등 일상적인 공간이다. 평소 우리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상이 모두 훌륭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이 된다는 생각에서다."새끼줄을 가지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으면 아이들이 먼저 말을 걸어와요. 그렇게 말을 주고 받다보면 지푸라기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 수가 있어요.""「문화공간 싹」은 작은 문화예술단체지만, 가난한 문화예술단체는 아닙니다." 채씨는 "힘들 때마다 뜻을 같이했던 분들이 '넌 우리의 자랑이니까 힘들면 안돼'라고 말할 때 큰 힘이 된다"며 수줍게 웃었다.

  • 문화일반
  • 김준희
  • 2009.04.02 23:02

[사람] '황성옛터' 원로가수 이애리수씨 별세

80년된 가요 '황성옛터'를 부른 가수 이애리수(李愛利秀)씨가 지난달 31일 오후 3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9세.이씨는 지난해 경기도 일산 백송마을의 한 아파트형 요양시설에서 간병인과 자녀, 손자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씨는 고령인 탓에 지난달 26일부터 건강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입원해왔다.한국인 왕평이 작사하고 전수린이 작곡한 '황성옛터'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상을 담은 가사와 구슬픈 곡조로 큰 사랑을 받았다.'황성옛터'는 고려 옛 궁궐터인 개성 만월대의 쇠락한 모습에 나라를 빼앗긴 아픔을 빗댄 가사 덕분에 조선총독부의 압력에도 전국적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 국민가요가 됐다."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못 이뤄/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1절),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아 가엽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여 있노라"(2절)이 노래는 1928년 단성사에서 열린 극단 취성좌(聚星座) 공연의 막간 무대에서 18세 가수 이애리수의 노래로 처음 소개됐고, 1932년 빅터레코드에서 '荒城의 跡'이라는 음반으로 발매된 후 당시로는 대단한 물량인 5만장이 팔렸다.본명이 이음전(李音全)인 이씨는 개성에서 태어나 9세에 극단에 들어가 배우 겸가수로 활동하다 18세에 '황성옛터'를 처음 불렀고 1932년 음반 발매 후에는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그러나 22세에 연희전문학교 재학생이던 남편 배동필씨를 만나 결혼을 약속했지만 집안에서 반대하자 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결혼, 2남7녀를 낳아 기르면서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이씨의 빈소는 경기도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3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용인 가톨릭공원묘지이다. 유족으로는 장남 배두영 씨 외에 7녀가 있다. 031-787-1507.

  • 문화일반
  • 연합
  • 2009.04.02 23:02

[사람] 한국 의정사 산증인 김판술 전 의원 별세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판술 전 의원이 31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1세.고인은 제3대 민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군산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 제5, 11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61년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했다.또 민주당 정책위원장, 당무위원회 의장, 사무총장, 평민당 당무지도위원회 의장 등을 거쳐 2007년부터 대한민국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으로 활동했다.유족으로는 아들 일양(우정포스텍엔지니어링 상무), 딸 경원 영자 등 1남2녀와사위 윤승모, 이지홍(영안기업 대표이사)씨 등이 있다.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은 2일 오전 7시, 장지는 군산시 문화동 선영이다. (031) 787-1521.▲ 김판술 전 의원은 1909년 군산에서 태어나 3선의 국회의원을 역임한 고 김판술 선생은 근현대사의 굴곡과 격랑을 넘어온 한국 의정사의 산증인이었다.광복 직후에 국회의원 시절 미군정시절 농지개혁 잘못됐다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국민방위군 사건 질타해 '대쪽'의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군산보통학교 시절 3.1운동에 참여했고, 일본 교토대학 유학을 거쳐 광복후 군산에서 신문사를 운영하기도 했다.1954년 군산에서 제3대 민의원(한국국민당)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으며,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기 전 장면정권하에서 4개월여 보사부장관을 지냈다.5,16으로 국회가 해산된 후 군산에서 두 번 더 국회의원에 도전했으나 두 번 모두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정계를 떠났다가 1981년 종로 중구에서 민한당으로 출마해 다시 정계에 복귀했다.고인은 학교시절 야구선수로 활동하며 체력을 다졌고, 근래까지도 등산을 즐길 만큼 건강함을 과시했다.

  • 정치일반
  • 김원용
  • 2009.04.01 23:02

[일과 사람]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추진위원장 김병옥 교수

군산시살기좋은마을만들기추진단 김병옥 위원장(54)은 31일 '행복한 우리동네 만들기 공동워크숍'에서 "지역 보물찾기는 마을사람 중심의 생명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웃간의 정과 소중함, 따뜻함을 발견한 뒤 이를 가꾸며 주민들간 응집력을 발휘하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 목표이자 방향이기 때문.김 위원장은 "평생 삶의 터전에서 실질적인 역사를 주도했던 마을 주민들이 지역의 뿌리와 전설, 상징, 전통문화, 공예를 발견할 수 있는 주체"라며 "마을의 정신을 재발견하고, 마을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주민들의 활동은 살고있는 곳에 새 가치를 부여하는 소중한 생명운동이다"고 설명했다.이 때문에 '보물찾기를 통한 행복한 우리동네 만들기'는 우리 마을의 소중함을 찾고자하는 주민들의 가치에서 비롯된다. 이를 토대로 한 지역 문화자원의 재생 및 가공, 마을공동체 형성,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을로 전환 노력 등이 가미돼야 한다. 보물찾기의 생명성은 결국 주민 중심의 마을문화를 재생하는 과정인 셈이다."주민들 스스로가 주위에 산재한 풍부한 컨텐츠를 마을의 대표 상징으로 개발해 차별화 및 상품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문화자원이 마을의 미래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협력, 노력이 필요합니다."김 위원장은 단순했던 '합장가옥'으로 지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일본 시라카와마을'의 성공사례를 통해 대표 상징의 중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그는 이런 대표 상징인 마을의 보물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김 위원장은 "마을 보물찾기는 지리적 자원과 경관적 자원, 사회적 자원, 경제적 자원, 생물적 자원, 설화적 자원, 상징적 자원, 공예적 자원, 유희적 자원, 인적 자원, 주민활동 자원 등 마을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해당된다"면서 "이 자원을 재조명한 후 상징요소의 스토리텔링 등을 개발해 생명성을 불어넣는다면, 모든 주민들에게 골고루 부가가치가 돌아가는 지역의 훌륭한 문화자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회일반
  • 홍성오
  • 2009.04.01 23:02

[사람] 완주군 4-H본부 국영석 초대 회장

"농촌을 꿈과 희망이 있는 곳으로 가꾸고, 농업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다채로운 교육사업에 매진하겠습니다."완주군 4-H본부 국영석 초대 회장(고산농협조합장)은 31일 농업기술센터에서 가진 취임식에서 "앞으로 지역 농민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지역 농업 발전을 이끌어가는 구심체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도농간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농민들에 대한 다양한 교육 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한 국 조합장은 "농민들이 살기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때 행정기관을 비롯한 지역사회가 더 큰 힘을 모아줄 수 있다"고 역설했다.이날 행사는 완주군 지역 4-H육성기금 운영위원회, 4-H연맹, 4-H지도교사협의회, 4-H연합회를 하나로 묶는 통합식에 이어 신임 회장단이 공식 활동에 돌입하면서 4-H운동의 재도약을 위한 힘찬 출발을 다짐하는 발대식.4-H본부 명예회장인 임정엽 완주군수와 임원규 군의회의장, 김동복 교육장, 김복기 완주 농업기술센터소장 등 200여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취임식에서 국 회장은 "밭을 가는 농민의 심정으로서 욕심내지 않고 초심을 유지하면서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그는 특히 "4-H는 물론, 농촌이 다함께 어렵지만 청소년 시절부터 우리의 뼈 속까지 깊이 새겨진 지덕노체의 4-H이념을 바탕으로 다함께 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회원 확대에도 주력할 것임을 약속했다.

  • 완주
  • 위병기
  • 2009.04.01 23:02

[사람] 생활공감정책 주부모니터단 이일순 전북회장

"생활공감정책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사항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과제에 여성특유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으로 풍부한 생활속 지혜를 활용하자는 취지의 '정책프로슈머'를 의미합니다. 각종 분야의 모니터를 통해 아이디어를 찾고, 정책을 발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정부가 주부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정책으로 만들기 위해 꾸린 '생활공감정책 주부모니터단'의 전북회장을 맡게 된 이일순씨(55)는 "잘 해낼수 있을까 부담도 되지만 교육이나 환경, 복지 등 아줌마가 안끼는 곳이 없는 만큼, 회원들의 아이디어를 기관에 적극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이씨는 15년 전 시어머니가 중풍에 걸려 2년동안 간병하면서 개인의 문제를 사회로 이끌어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며 "동네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들도 사회로 이끌어 내면 훨씬 가벼워질 것"이라고 말했다.실제로 이씨는 치매나 중풍에 걸린 환자들을 돌보는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판단으로 치매와 중풍 환자들을 목욕시키거나 자식이 있는데도 돌보지 않는 독거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봉사를 시작했다. 세대수가 적어서 노인당을 짓지 못한다고 했지만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동네에 노인당을 지었다."아줌마들은 못할게 없잖아요. 이고, 지고, 메서라도 어떻게든 가는 사람이 아줌마 아니겠어요?"이씨는 푸른전주가꾸기 중화산 1동 회장 ,전주시 아파트 연합회 부회장, 주민자치위원 등을 10년 넘게 해왔다.

  • 여성·생활
  • 윤나네
  • 2009.03.31 23:02

[일과 사람] '전국 템플스테이' 법고경연 1등 수덕사 경학 스님

8살에 출가해 법고를 두드리기 시작했다.음악 공양의 화두를 안고 수행길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느리게, 빠르게 몰아가는 울림을 통해 구도자의 길을 걸어왔다."오기 전 연습을 한 번 밖에 못했더니, 힘에 부쳐서 혼났습니다. 법고 치기엔 지금만큼 좋은 시기가 없는데…. 법고가 소나 말가죽으로 만들어져 여름엔 축축해서 늘어지고, 겨울엔 팽팽해지거든요."28일 김제 금산사에서 열린'제1회 전국 템플스테이 문화축제'의 법고경연대회에서 '원력을 일으키는 북소리'로 1등상을 탄 수덕사의 경학 스님(39). 둥글둥글 선한 눈매의 그는 쥐고 있던 북채를 내혀놓고 법고에 대한 설명을 차분히 이어갔다."사찰에서는 아침·저녁 예불 전 법고, 목어, 운판, 범종을 칩니다. 법고는 기어다니는 짐승에게, 범종은 지옥의 중생, 목어는 물 속 짐승과 운판은 날아다니는 짐승에게 소리를 통해 부처님의 진리를 전달하는 또 다른 방법이죠. 새벽이 되면 누군가 "일어나"라고 다그치는 소리일 수도 있고, 나태해진 중생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경책의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북소리가 가장 절실해지는 순간은 수행하면서 방황할 때다. 자기 자신도 구원을 못하면서 어떻게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낮지만 긴 여운의 북소리가 귓전을 울린다고 설명했다.악보도, 일정한 틀도 없는 법고를 배우기 위한 왕도는 없다. 수십 년간 법고와 씨름해왔던 스님들의 소리를 수없이 듣고, 따라하는 반복 속에서 울림은 깊어져간다."20대에 한 비구니 스님이 제 북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리셨더랬습니다. 그냥 가슴을 울렸다고 했습니다. 그때 내세의 성불(成佛)에 대해 어렴풋이 떠올리게 됐어요. 자신이 있는 어느 곳에서든 주인이 된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의 경지가 된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이런 것인가 했습니다."금산사를 처음 방문했다는 그는 "1등상엔 상금이 없어서 섭섭하다"는 농담을 던지며 "깊고 맑은 소리를 통해 깨우침을 전파하는 일에 충실하겠다"고 덧붙였다.

  • 종교
  • 이화정
  • 2009.03.30 23:02
사람들섹션